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강용석 성비하 발언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0/07/21 02:31
  • 수정일
    2015/05/06 18:51
  • 글쓴이
    푸우
  • 응답 RSS

강용석이 대학생들이 모인 술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중앙일보를 인용한 프레시안 재인용(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00720092245&Section=01)

 

강 의원은 "사실 심사위원들은 (토론) 내용을 안 듣는다. 참가자들의 얼굴을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토론할 때 패널을 구성하는 방법을 조언해주겠다"며 "못생긴 애 둘, 예쁜 애 하나로 이뤄진 구성이 최고다. 그래야 시선이 집중된다"고 말했다.

 

강 의원은 또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한 여학생에게 "다 줄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래도 아나운서 할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강 의원은 특정 사립대를 지칭하며 "○○여대 이상은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못하더라"고 덧붙였다. 아나운서들이 성접대를 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그는 지난해 청와대를 방문한 적이 있는 한 여학생에게 "그때 대통령이 너만 쳐다보더라"며 "남자는 다 똑같다. 예쁜 여자만 좋아한다. 옆에 사모님(김윤옥 여사)만 없었으면 네 (휴대전화) 번호도 따갔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보선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개념을 안드로메다보다 멀리 보낸 발언. 민주당은 겉으로는 충격적이네마네하지만 속으로는 '아.. 대박, 한나라당 은근히 강용석 감쌌으면 더 좋겠다' 하고 있을테다.

 

 

일반 여론은 '여성 비하다' '여성에게 수치심을 주는 발언이다' '여성 모독이다' '천박한 여성관이다'라고 매도한다. 그리고 여론은 이 발언을 '성희롱'으로 규정한다.

 

 

 

 

몇 해전에 교양수업 하나 듣다가 성희롱에 대해 레포트를 제출한 적이 있다. 덕분에 성희롱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쉽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성희롱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나는 성희롱에 대해 꽤 너그러운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레포트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그 관점을 완전히 버렸고 성희롱이 가지는 대단히 상징적인 역사성과 맥락성의 '학문적' 가치에 매료되었다.

 

성희롱은 여성을 도구화하고 객체화하는 총체로서의 남성이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남성이 여성의 적이라고 할 때 그것은 남성이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지 않은 존재로 자리잡게 만든다는 것을 의미하며 성희롱은 그 구조를 견고하게 만드는 도구다.

 

만약 지금과 같은 젠더적 지형이 달라진다면 현재 성희롱으로 규정되는 행위들도 달리 판단될 것이다. 예컨대 '미스 김, 오늘따라 몸매가 아주 나이스해! 미스 김이 타주는 커피는 더 달콤할 것 같은데?'는 여성이 성적 불평등에 시달리는 현실에서는 여성을 심리적으로 억압하고 위축시키는 기재로 작동하지만 성적 불평등이 제거된 상황에서는 커피를 얻어 마시기 위한 아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짜 성희롱은 대학 커뮤니티에 만연해 있는 '어디어디 열람실에 앉은 여자 학우분 예쁘더라'나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순결은 남자보단 여자한테 더 중요하지' 따위의 말들일 것이다.

 

강용석의 발언은 성희롱인가? 잘 모르겠다. 확실히 강용석이 묘사하는 현실에서 여성은 도구화 되어있다. 그리고 강용석은 그 현실에 별로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것에 순응할 수 있는 충고를 해주고 있다. 여성 대상화를 더 견고하게 만든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사람의 의도와 맥락을 보았을 때는 성희롱이 맞다. 잘 모르겠다는 말은 취소하겠다. 성희롱이 맞다.

 

생각해보니까 내가 고민했던 이유는 강용석의 발언이 성희롱인지 아닌지의 여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을 둘러싼 논란이 흘러가는 방향이 무섭다. 강용석의 발언은 분명 현실을 어느 정도 그려내고 있다. 그가 성급한 일반화를 저지르거나 말을 거칠게 했을지는 몰라도 여성이 철저히 대상화되고 상품화되고 외모에 따라 평가받는 것은 맞다. 현실이 아무리 옳지 않고 그르다고 할지라도 현실은 여전히 현실이다.

 

그런데 각계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이 발언을 몰상식하고 파렴치한 개인의 발언으로 치부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나는 좀처럼 한 사태에 대해 여론이 통일되어(조중동이 바라던 국론통일이 드디어 이루어졌다! 한나라당 의원 덕분에!)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 목소리는 분명하다: 강용석이 한 말은 용서할 수 없다.

 

중앙일보는 이 발언을 개탄하고, 민주당은 충격적인 발언, 용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발언이라고 하고, 자유선진당은 믿어지지 않는 일이라고 하고, 아나운서협회는 분노와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한다.

 

여전히 이해가 쉽사리 가지 않는다. 왜 그토록 흥분하는가? 왜 한국 사회가 여성을 대상화한 발언을 가지고 이렇게 들떠 있는가? 한국 사회가 언제 여성의 인권에 대해 제대로 신경쓴 적이나 있는가? 정치권이야 재보선의 이해당사자들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만 왜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분노에 잠겨 있는가? 우리가 분노해야 할 대상은 발언을 한 강용석보다는 그 발언을 가능케 한 현실이 아닌가?

 

왜 용서할 수 없을까? 정몽준이 여성 기자의 신체(볼)를 함부로 만졌을 때도, 최연희가 여성 기자를 성추행 했을 때도 이 정도로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여성에 대한 물리적 간섭은 여성에 대한 심리적 간섭만큼이나 심각한 성희롱인데 왜 강용석만을 용서할 수 없을까?

 

그것은 강용석이 성희롱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실을 폭로했기 때문이다.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쓸데없는 반복을 하더라도 신중하게 글을 써야 한다.

 

남성은 여성이 종이 위에 쓰인 평등이라는 단어를 맹목적으로 믿고 자기가 정말로 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다고 믿게 만들고 싶어 한다. 법도 평등하고 제도도 평등하고 다른 형식적 조건들도 평등하니 여성이 현실에 문제제기하지 않길 바란다.

 

지금 발동된 것은 남성의 무의식적 단일화다. 남성은 강용석의 발언으로 인해 여성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 하고 있다(그리고 몇 여성단체들은 한나라당을 깔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에 동조한다). 강용석이 한 말은 부정되어야 하고 강용석은 매장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지 한나라당 내부의 윤리적 문제일 뿐, 단지 한 개인의 윤리적 문제일 뿐이다. 이것이 나쁜 이유는 우리가 믿고 있는 추상적인 평등에 반하는 무언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무언가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알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며, 여성 비하이며, 여성 모독이며,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는 성희롱이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현실이자 진실일지라도.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것이 있다. 여성 불평등이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과, 그 현실을 깨닫고 잘 순응해서 살라고 말하는 것까지 나아가는 것은 다르다. 이것이 진실이라고, 이것이 현실이라고 여기에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강용석은 틈을 보이게 만들었다. 이 틈은 우리가 배우는 현실과 실재하는 현실 사이의 차이다. 그 틈을 직시해야 한다.

 

남성의 무의식은 강하지만 동시에 꽤 허술하다. 곳곳에서 틈이 발견된다. 혹자는 국회의원이 할 말이 있고 안 할 말이 있는데 강용석이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했기 때문에 비난의 대상이 된다고 한다. 금단의 영역, 해서는 안 되는 말. 그것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강용석이 말하는 말은 현실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쪽과 강용석이 말하는 것은 여성 비하 발언이므로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쪽 사이에는 분명히 공간이 존재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