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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개론>과 <살인의 추억>

  • 분류
    단상
  • 등록일
    2012/09/04 23:18
  • 수정일
    2014/08/19 00:56
  • 글쓴이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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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개론>은 <살인의 추억> 연장선 상에 있는 영화다. <살인의 추억>이 2000년대 초에 80년대를 불러냈다면, <건축학 개론>은 2010년대 초에 90년대를 불러온다. 두 영화는 특히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규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이정표가 될지도 모르겠다.

<살인의 추억>은 유비적으로 80년대의 민중항쟁을 그리는데 그 과정에서 이 영화가 삭제하는 것은 바로 여성 그 자체이다. 영화는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오면서 경공업 중심의 산업이 중공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여성노동자가 주도한 민주노조가 남성노동자 주도로 변했다는 역사 또한 기억해내지 못한다. 영화는 오히려 역사 속 여성이 지워진 채 남성에 의해 역사가 쓰이는 과정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꼴이 된다. 그 안에서 여성은 오
로지 강간을 당한 채 대상화되지만, 영화는 무엇보다 그 '강간'의 문제는 가시화하지 않은 채 오로지 '살인'만을 추억하려 든다.

<건축학 개론>은 역사 속에서 지워진 여성을 다시 90년대의 '여대생'으로 (재)서술하려는 시도이다. 그 안에서 여대생은 철저하게 첫사랑의 대상이 되는데, 이 대상은 결코 성적 욕망을 지녀서는 안 된다. 그래서, 여자 주인공이 술취한 선배에게 당한 성폭력은 모든 맥락을 뒤로 한 채 청순한 이미지에 대한 배신이 될 뿐이다. 여성은 "'주체'의 충동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전시와 정숙한 위축이라는 이중 활동에 처해"(Irigaray, Ce sexe qui n'en est pas un, p. 25)질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첫사랑으로서 그려지기 시작하는 '여성스러움'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재)서술의 '개론'일 것이다.

2020년대가 2000년대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남성적 담론에 의해 독점적으로 기술되는 여성성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지금 여성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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