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건강권 (1)

from 콩이 쓴 글 2009/05/11 12:57

경기 노동자건강권 쟁취 기획교육 제2강 자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건강권’이라는 말은 생소한 표현이었다. 어째서 건강권이란 말을 흔히 쓰게 되었는지 생각해보니, 환경오염이나 농축수산물 개방으로 식품 안전에 적신호가 켜지는 사건들이 요즘 들어 부쩍 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던 까닭은 정부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정부는 각계 인사들을 불러모아 소고기를 시식하는 쇼까지 보여주면서, 안심하라고, 믿어달라고 호소도 해보고, 먹기 싫으면 안 먹으면 될 것 아니냐고 을러대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 누구에게나 먹을지 말지 선택할 자유는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먹느냐 마느냐의 자유에 대해서가 아니라 ‘국민 건강권’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의무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단 한사람이라도 안전하지 않은 식품을 먹지 않을 권리를 적극적으로 보장하라는 얘기였다.

 

최근 먹을 거리 문제를 통해 건강권이라는 말도 많이 쓰게 되었고, 정부와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도 많이 상승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책임을 요구하기 보다는, 더 안전한 식품을 찾아서 사 먹는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현실이다. 안전한 식품을 먹을 권리조차 정확한 정보를 얻고 높은 가격을 부담할 수 있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내던져지고 있다.

그렇다면, 노동자 건강권의 현실은 어떨까.

 


1. 노동자 건강권 현실 들여다보기

 

 

산재보험 통계를 보면 2008년 한해동안 하루 평균 6.6명이 노동재해로 사망하고, 하루 262명이 부상이나 질병의 재해를 당했다. 이 중 90% 가량은 사고성 재해로, 기본적인 안전조치만 잘 갖추어졌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는 사고들이었다.

 

하지만 노동자는 당연히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일터에는 노동자 스스로 조심하라는 경고만이 가득하며,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작업자의 안전불감증’을 탓하곤 한다. 이런 노동자 건강권 현실을 교통안전 캠페인과 비교해보자.

 

“피곤하면 쉬었다가 운전하세요”

 

교통안전 캠페인에서는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자주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하고, 정 졸리면 잠깐 눈을 붙였다가 운전을 하라고 한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다. 피로가 쌓이지 않도록 더 많이 쉬어야 안전하다. 더 자주 쉴 수 있고 졸리면 아예 잠깐이라도 잘 수 있어야 한다. 졸지 말라고 얘기하는 건 옳지 않아!

 

“서두르지 마세요”

 

운전자들에게 마음이 급하면 사고가 나기 쉬우니 갈 길이 멀수록 시간을 넉넉히 잡고 천천히 가라고 한다. 일터에서 발생하는 사고들 역시 마찬가지다. 납품 기한이 코앞에 다가왔을 때, 이만큼은 오늘 안에 꼭 처리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때 사고가 나기 쉽다. 그러나 과속이 교통사고의 주 원인이듯, 일을 서두르는 것도 사고로 가는 지름길일 뿐이다.

“야간운전은 피하세요”

 

밤이 되면 신체 기능이 떨어지게 마련이고 게다가 도로 환경도 낮보다 훨씬 위험하다. 따라서 야간, 특히 새벽 1시에서 5시 사이에는 가급적 운전을 하지 않도록 권한다. 수많은 현장에서 야간 교대작업이나 철야 근무를 당연스레 해오고 있지만, 사실 야간 작업은 안전의 기본에 어긋난다.

 

 

피곤하면 쉬었다가 일하기, 서두르지 않고 쉬엄쉬엄 일하기, 밤에는 일하지 않기. 그럴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사업주와 정부의 책임이다. 그러나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책임, 즉 안전 보호 시설과 장비를 제대로 갖추어야 할 책임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피곤해도 참아라, 졸지 말아라, 빨리빨리 일해라, 야간 수당 없으면 뭐 먹고 살래, 이런 말들로 안전할 권리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우리 일터의 현실이다.

 

“기본적인 안전 조치”

도로에는 신호등, 차선, 표지판, 횡단보도, 인도와 차도의 구분 등 사고 발생 위험을 줄이기 위한 기본적인 조치들이 있다. 각별히 사고 예방에 신경을 써야 하는 곳은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설정하거나 사고다발지역임을 경고하는 표지를 세우거나 중앙분리대를 보강하여 설치한다. 도로 보수 작업을 해야 하거나 교통량이 많은 경우에는 신호등이 정상 작동을 하더라도 안전요원이나 교통경찰이 따로 출동하여 차량 흐름을 관리한다. 일터에 이런 기본 조치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작업자가 알아서 조심하라고 당부하기만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규제와 단속”

또 하나의 안전조치는 규제와 단속이다. 교통법규가 있더라도 이를 준수하지 않는 경우를 규제하고, 그런 규제 때문에라도 더욱 안전조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다. 한국은 사업주에 대한 산업안전보건 규제와 처벌이 솜방망이, 아니 솜털 수준이다. 가령 2009년 초 미국에서는 밀폐 공간 질식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에 50만 달러(원화 6억 8천만원 상당)의 벌금을 부과했고,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이 2004~2005년간 기소한 사건들 중 95%가 법원에서 유죄로 판결되어 평균 벌금이 18,765 파운드(원화 약 3천6백만원)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이같은 사망재해에서 사업주들이 무는 벌금은 고작 3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사고가 나도 덜 다치는”

교통안전 조치의 또다른 요소는 만에 하나 사고가 나더라도 부상과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들이다. 안전벨트, 에어백 등이 바로 그런 장치에 속한다. 비행기를 타면 아무리 짧은 거리를 가더라도 늘 몇 분의 시간을 들여서 안전벨트, 산소마스크, 안전조끼 사용법과 비상구 대피방법을 안내한다. 사고가 나지 않는 한 불편하기만 하고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지만, 말 그대로 “만에 하나”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하여 규격과 품질 요건을 엄격히 적용하여 관리하며,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교육을 하는 것이다.

 

일터에서 사용되는 안전시설이나 안전보호구, 안전보건교육도 바로 이래야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규제를 완화한답시고 안전시설과 장비에 대한 점검과 규제를 기업 자율에 맡겨버렸고, 안전보건교육 또한 이름만 남은 것이 일터의 현실이다.

그래 놓고도 정부는 산재 발생률이 줄었네 마네 떠든다. 실제로 산재보험이 도입된 1963년부터 지금까지의 통계를 보면 산재 발생률이나 사망률은 줄어든 건 사실이다.

 

하지만 법을 바꾸거나 정부와 기업들의 노력이 특별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니다. 오히려 전체적인 추세를 보면 1970년대에는 광업의 비율이 줄어들고 산재보험 적용 범위가 점차 확대되면서 사망률과 재해율이 희석된 것이며, 1980년대 후반에 전국민 의료보험이 적용되면서 가벼운 질병과 부상 환자들이 산재보험 진입 장벽을 넘지 못하고 의료보험 환자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다.

 

게다가 산재 사망률만으로 놓고 보면 1990년대 이후 거의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반 인구 사망률의 변화와 함께 비교하면 노동자들의 생명이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위험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981년 산업안전보건법이 도입된 후 강산이 세 번 바뀌었는데도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면, 법과 제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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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1 12:57 2009/05/11 12: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