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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4일 진찰실에서

 

  잠, 잠, 잠
   뭔 생각에 몰두하면 잠을 못 자는 습관을 고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새로 시작한 과제가 워낙 촉박하게 진행되어야 해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하다가 새벽 세 시에 잤다. 딱히 하고 싶은 과제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밀리고 밀려서 하게 된 것이긴 하지만, 국민이 낸 세금을 낭비했단 소리는 듣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에 약간 몰리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어제는 어쩌다 시간도 돈도 부족하고 그닥 하고 싶지 않은 과제를 그것도 방학 중에 하게 되었단 말인가 후회를 했는데, 사람이 어찌 하고픈 일만 하고 산단 말인가? 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어젯 밤에는 공동 연구자들에게 이런 저런 할 일에 대한 메일을 보내면서, 좀 미안했다. 연말 연시에 끙끙거리지 않으려면 얼른 해 버리고 말아야지.
 
   40대 남자가 들어왔다. 챠트를 보니 약물치료가 필요할 정도로 혈압이 높다. 2005년 결과는 혈압은 12/70, 단백뇨 4+가 있었고 콩팥기능에 대한 검사 1.14, 07년부터 혈압이 증가하기 시작해서 오늘은 160/100. 지난 4년간 신장기내과 진료를 보라고 꾸준히 통보했건만 그게 뭔소리인지 이해를 잘 못 했던 것 같다. 출장검진때는 사람이 많으니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어서 간단하게 말하게 되는데, 늘 듣는 소리인가 보다 하고 시간이 흐른 모양. 오늘은 원내로 왔으니 차분하게, 그리고 길게, 분위기 잡아서 설명하고 진료의뢰서까지 써주었다.  오늘은 심각하게 듣더라.    
 
   비교적 합리적으로 안전보건관리가 되는 외국계 기계가공업체에서 두 명이 소음성 난청 재검을 받으러 왔다. 두 명 다 청력검사결과가 작년보다 살짝 나빴는 절삭유 취급자, 첫 번째 사람은 귀마개가 불편해서 잘 끼지 않는단다. 청력보호구에 대한 카다로그를 주고 사업장 담당자에게 요구하라고 했다. 두 번재 사람은 소음성 난청 때문에 왔지만 이 사람에게 중요한 문제는 기침. 절삭유 취급자로 원인미상 기침을 3년간 했다. 검사상 천식은 아니라는데,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자꾸 검사와 상담만 하니까 짜증이 난다, 특히 우리가 중간에 챠트를 잃어버려서 물어본 것 또 묻고 또 물어서 화가 난다, 했던 사람이다. 오늘은 전산자료로 과거 기록을 찾아서 비교설명해주었더니 그럭저럭 기분이 풀리는 모양.
 
    일반검진을 받으러 온 40대 여자가 들어오자 마자 오존에 대해서 물어볼게 있다고 한다. 생수회사 검사직원인데, 작업장 소독을 위해 사용하는 오존에 노출될 때마다 호흡기 자극증상과 심장 증상을 느낀 지 수 개월째. 2008년 8월 입사자였는데, 최근 몇 달간 환경영향 평가 한다고 소독을 더 열심히 해서 그런지 증상이 많이 악화되었다가, 평가가 끝난 뒤로 호전중이란다. 증상은 오존과 관련이 있는 게 맞고 노출을 피하기 위해서는 그 작업을 할 때 호흡용 보호구를 쓰라고 했더니, 인터넷 검색해서 회사에 이야기했는데 안 사준단다. 음... 그 회사에 오존에 노출되는 사람은 딱 두 명인데, 한 명은 직접 소독하는 사람. 그러나 증상이 없이 잘 지낸단다. 10인 미만 회사였다. 모아니면 도. 책에 보면 사업장 규모가 작을 수록 소통이 잘되거나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배려를 하는 경향이 있을 수도 있고, 사업주 자신이 그런 일을 해 보았기 때문에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문제해결이 잘 안된다 한다. 이런 경우 진찰실에 앉아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은 당사자에게 작업의 건강위험과 예방법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까지. 그 건강문제가 치명적인 경우에는 가끔 작업장의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보기도 하지만 이 회사는 접근이 쉬운 곳은 아니라 일단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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