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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직업병 발생 논란이 있는 공장에 다녀왔다.  원래는 산업의학회 평의원회에 참석하고 나서( 내가 산업의학회 평의원으로 추천받은 경위를 듣고 나서 이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되었음),   조카들이랑 영화를 보려고 했었다. 방송국 취재에 협조요청을 받고 조카들한테 약속연기에 대한 양해를 구하고 산업의학회 평의원회 불참통보하고 위임장을 쓰고 다녀왔다.  서비스산업 산재원인조사 보고서 작업은 그 때문에 진척이 없어서 일단 된 데 까지 편집을 맡기기 위해 아침에 이메일을 보내고 급하게 출발했다.

 

    전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사측은 브리핑 자료를 만들어 놓고 오랜시간 설명을 했다. 중간 중간 궁금한 거 질문하고... 사측에선 진심으로 직업병이 발생할만큼 작업현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는 것 같다.  내 경험에 의하면, 실제로 작업장 안전보건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믿는 것 같고, 자신들의 노력이 부정당하는 것에 대한 강한 불쾌감을 가지고 있다. 여기도 그렇다.   

 

    하지만 노사 양측의 이야기를 다 듣는 입장이고 주로 사업주의 의뢰를 받아 일하는 뻐꾸기의 경험에 의하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어딘가에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즉  산업보건은 100점 맞기가 참 어려운 과목이다.  우리 팀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늘 부족하고 구멍난 부분이 발견되곤 한다. 작업장이란 살아있는 생물과 같아서 작업물량에 따라서, 공정변화에 따라서 변화무쌍할 수 있다.  그런데 보통 회사측은 자신들은 95점인데 억울하다 한다. 

 

   대학 일학년부터 알고 지내던 선배가 사측의 전문가로 그 자리에 나와서, 여러가지 질문에 대해서 답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87년 대선때 선거감시인단 활동을 함께 했던 이.  후배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라면 얻어먹으면서 본과 4학년이 병원 실습에 안 가고 공정선거감시단 활동을 하는 이유를 들으며 숙연했던 기억.... 그 모습과 우리는 95점은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모습이 겹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   아 다르고 어 다른데, 그는 '어'라고 말하고, 나는 그가 '아'를 '어'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아는 그는 자신이 믿지 않는 것을 말할 사람이 아니다.  나는 '아'라고 느끼는 데, 그는 '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 경험의 차이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문제의 본질이 '정보의 편향'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정보의 편향'의 정도의 심각성도 문제인데...

 

  그렇다.  이 문제를 둘러싼 작업자들의 진술을 보면 '과학자'로서 이해가 안 가는 부분도 좀 있다.  그런데 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사측의 설명이다.  그들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은 완벽하다.  그런데 문장을 이어보면 말이 안된다.  예를 들면 유기용제가 아닌 물로 세척하는 작업에 국소배기시설이 있다고 한다, 그 밖에도 이해가 가지 않는 설명이 있다.  이것이 내 무지의 소치가 아니려면 좀 더 공부해야 하겠지만, 그들의 정보공개의 수준과 태도도 좀 바뀌어야 할 것같다.     

 

    브리핑은 예상시간을 20분 초과했고 작업공정을 보러 갔다.  한시간 가량 공정을 둘러보고 나왔다. 작업현장엔 늘 소음이 있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혀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래서 한번 현장을 보고 나오면 녹초가 된다.   한 시간 정도 현장을 보고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렇기는 해도 작업현장이란 본 것과 보지 않은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직관이라는 것이 생긴다.  서비스 산재 원인조사 보고서 마무리를 희생하고 나서라도 볼 가치가 있다.

 

  중간에 좀 짬이 있어서 사측의 안전보건책임자랑 이야기를 하는데, 이렇게 말하더라.  교수님 텔레비젼에 나오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자주 나오시잖아요?  허거덕. 딱 한 번 나왔을 뿐이고, 좋아하지도 않는데, 이 양반은 왜 그런 말을 할까?  그들의 입장에선 내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이 명예욕같은 거라고 느끼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입장에선 소위 교수라는 자에게 누군가 전문문야에 대해서 자문을 구했을 때 최소한의 의무같은 건데.....

 

  돌아오는 길, 택시를 탔다. 넘 피곤해서 지하철 타고 서서 올 기력이 없었다.  집에 전화를 했다. 오늘 고깔은 늦는다.  아이들한테 배고프면 먼저 밥 차려먹으라 하고, 아니면 엄마 올 때까지 간식 먹고 있으라 했다. 아이들의 선택은 후자.  돌아가면 카레라이스를 해주려고 했는데, 막상 집에 도착하니 진이 빠졌다.  밖에 나가 새우튀김 사고, 포도주 사왔다.  아이들한텐 바나나랑 새우튀김 먹이고, 나는 포도주를 마시면서 오늘 본것을 기록했다.

 

   기록하면서 스승의 날 행사 이메일 생각이 났다.  이런 저런 이유로 오랫동안 스승의 날 행사에 가지 못했다.  그 분은 늘 말씀하셨다. 자신이 읽은 것을 가지고 안다 하지말고, 자신이 경험한 것에 대해서만 안다고 하라고.  산업의학 수련을 받으면서, 산업의학 전문의가 되고 나서 내 이름을 걸고 일하면서 늘 기억했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아는가?  오늘 갔던 공장의 직업병 논란에 대해 내 의견을 말해달라는 주문을 받을 때 마다 그 분이 떠올랐다.  너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네 이름을 걸고 이야기 할 수 있는가?  네가 경험한 것 이상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관련 연구가 부족할 때 나는 내 경험적 근거에 따라 말해도 되는가?   학문적으로 정리할 수 없지만 많은 노동자들이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 그것에 대해서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실 그건 전문가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말이지....

 

  밤 9시, 새우튀김 사러 가서, 그 집 아줌마랑 이야기를 좀 했다.  그이는 설날과 추석 하루만 쉬고 아침 10시반부터 밤 12시까지 가게를 열고 일을 한다.  내 보기에도 즐겁게 일 한다.  가게는 늘 손님으로 붐비고, 그이는 늘 종종 걸음을 치며 음식을 만든다. 

 

   오늘은 늦게 가서 손님도 없고 해서 말했다.  그렇게 오래 일하면 병이 날 수 있어요. 심근경색이나 뇌졸증 같은.  자영업자 산재보험 임의가입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이는 새로 시작한 장사가 너무 재미있고, 신기하고 힘든 줄 모르고 일한지가 약 2년 정도 된단다. 주변에서 장사 하루 이틀 하고 말 꺼냐, 좀 쉬어라 해도, 흘려들었단다.  내가 손님이라 경청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일단 관심은 보인다.   요즘 서비스 산재원인 조사 연구를 하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던 뻐꾸기,  붕어가 좋아하는 새우튀김을 사러 갈 때마다 말을 할 까 말 까 망설였었다.  뻐꾸기 주변에 자영업자들이 많다.  문열면 돈을 벌기 때문에 휴일에도 일하고픈 유혹은 견디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  한 번 생각해보시라.... 하고 나왔다.

 

  하루가 이렇게 가는구나.   낼도 그 공장에 가기로 했었는데 일정이 바뀌었다.  그래서 불참통보를 했던 어버이날 행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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