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P와 K의 대화

세상은 전쟁터인가. 동물의 왕국에 나오는 세렝게티라고 하는 편이 나을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의 개념으로 세상을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은 두 개로 쪼개져 있다. 관점에 따라서 두 개로 쪼개는 기준은 다양한다. 지리적으로 남반구와 북반구로 나눌 수도 있고, 경제적 관점에서 부자와 빈자로 나눌 수도 있다. 물론 성적인 기준에 따라 남자와 여자로 나눌 수 있고, 물리학적 관점에서 작용과 반작용처럼 때리는 자와 맞는 자가 있다.

 

이런 이분법적인 관점이 양면에 맞닿아 있는 공간에 대한 설명을 무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본질을 설명하기에는 이분법이 가장 쉽고, 편리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이분법은 양면에 닿아 있는 각각의 입장을 대립적으로 설명하는데 적합하다. 따라서 양면 사이에 끼어있는 공간의 문제는 다른 관점과 방법으로 설명해야 한다. 가령 적도 근처에 사는 사람을, 중산층이라는 계층집단을, 자웅동체와 같이 암수의 모든 성기를 가진 자를, 서로 맞아터지는 자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이 적당하지 않다.

 

여하간 세상이 전쟁터, 아예 더 구체적으로 생각하면 '삶이 전쟁터'라는 말. 한 편에는 전쟁터 너머에는 평화로운 곳도 있을 것이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싸우고, 버텨내면서 살기위해서 혹은 죽지않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다. 삶이 전쟁터라고 말하는 사람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한 전쟁을 즐기고 게임으로 생각하는 부류가 있는 반면 삶의 참혹한 현장에서 오직 몸뚱아리 하나를 무기와 방패로 삼아 처철한 강호에서 연명하는 부류도 있다.

 

P가 말한다.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장기의 말처럼 조정하는 자에게 반역하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결국 장기의 말이 장기판을 떠날 때 비로소 반역이, 진정한 자유에 도달하는 것이라네."

 

그 말은 틀리지 않다. 그런 장기판의 사정을 고려한다면 결과적으로 장기말들은 장기판에서는 어떠한 자유도, 심지어는 어떠한 가치도 용납되거나 인정될 수 없다. 장기말들 서로가 아무리 착해도, 부지런해도, 고운 빛깔을 드러내도 장기판의 조정자에게는 그런 가치는 사실 의미가 없다. 본질은 승리하는데 있다. 승리한다는 것은 살아남는다는 것이다.

 

다시 P가 말한다.

 

" 그러한 게임에 동참하겠다는 의사와 무관하게 대부분이 그러한 장기판에 올라서는 순간 더 이상의 자신은 없어요. 다만 장기말의 등짝에 새겨진 자신의 존재가 자신의 역할과 진로를 결정할 뿐이다. 가라고 하면 가고, 빠지라고 하면 빠져야 하지 않은가. 죽여야 하면 죽여야 하고, 죽어야 하면 죽어야 하오. 최종적인 승리자가 절대 장기말이 될 수 없는 것은 바로 장기판을 내려올 수 없는 운명때문이오."

 

운명이라는 말은 결국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세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일 게다. 무엇보다 전쟁터가 되어버린 삶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장기말의 걱정은 승리하는데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장기판의 조정자가 선한 의지로 장기판을 접고 장기말들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해 주기를 바라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K는 한참을 생각한다. 그리고 전쟁터가 된 상황과 이유에 집중하게 된다.

 

"전쟁은 상대가 있어야 가능한거요. 그것이 설사 자신이 된다고 해도 말이오. 자신이 또 다른 자신을 대면하면서 서로다른 이유와 결론에 도달할 때  그것이 서로 부딪히면서 마찰음을 내게 마련이오. 그러나 상대가 없다면 어떻게 되겠소?"

 

P는 그러한 K의 문제제기에 대해 집게 손가락으로 턱밑을 받치고 있다가 허공에 두 개의 원을 그렸다. 그리고는 K에게 이렇게 말했다.

 

"허공에 두 개의 원. 이게 보입니까?"

 

K가 물끄러미 P를 바라본다. 그리고 전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까딱까딱이며 설명을 재촉하는 시늉을 한다.

 

"상대가 없어도 전쟁은 가능한지는 중요하지 않소. 그게 본질은 아니란 말이오. 허공의 두 개의 원. 내가 그린 두 개의 원이 같은 크기가 될 수 없소. 게다가 그 안에는 무엇도 담을 수도 없소. 내 의지와 무관하게 아무 것도 담을 수 없소."

 

K가 말을 이어받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신의 이야기는 허공에 원을 그린 후에는 그 허공에 그려진 원은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다는 말이군요."

 

P가 말을 이어었다.

 

"그렇소. 그린 사람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추측은 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알기가 어렵소. 그 의도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내가 그린 두 개의 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아무 곳에도 쓸 수가 없소. 당신의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있소. 따라서 상대방이 없다고 해서 의도가 없는 것이 아니오. 의도가 있는 한 상대방은 계속 만들어진다고 할 수 있소. 의도를 제거하지 않는 한은 결코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없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에서는 게임에 속해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있다. 속세를 완전히 등진다고 하더라도 게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한 사람의 수도 많지 않을 뿐더러 많은 인내와 훈련을 요구한다. 더군다나 가족까지 줄줄이 엉켜있는 상태에서 자기 하나 편하자고 모든 것을 내팽개피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계속>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