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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최근 쪽글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 이곳이 소통 공간이 아니므로, 물론 엿보는 사람이야 있겠지만 개의치 않고, 생각을 자주 남기려는데. 항상 바빠서 못올린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손을 조금 다쳤기 때문이다.

 

키보드야, 왼손과 오른손 중지로만 쳐도 되니깐 별 문제는 안되는데(쉬프트키를 눌러야 되는 쌍자음의 경우, 세종대왕이 원망스럽다), 손을 다치고 나니 오만 회한이 밀려든다. 회한이라. 거창하기는 하지만, 내가 다니는 회사의 노사관계가 급격하게 냉랭해지고 있어서, 그 회사의 사장격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데올로그가 한심해서, 그런 탓도 있겠지만, 사실 비정규직과 관련된 것이라, 회한이라 표현해 보았다. 사실 손이 부어올라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 느려져 머리 속에서 할 말이 깔대기를 넘쳐 흐르는 물처럼 답답하기는 하지만 간략하게 오늘 일을 옮겨본다.

 

10층에서 책을 가지고  9층을 내려오는 길 목에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바닥에 세제를 풀어놓고 청소중. 사고는 순식간. 나는 미끄러져 넘어졌고, 들고 있던 10여권의 책이 모서리의 날을 세우고 내 손을 찍었다. 그것도 오른 손을. 왼손이 만세를 쾌재를 불렀겠지만. 여튼 순간 너무 화가 났고, 긴급히 응급실로 갔다. 손에서 피가 흘렀고 손가락을 오무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까운 병원으로 가니 내가 왜 왔나 싶더라. 제일 먼저 전기공사 중에 화상을 입은 환자는 내 두 손을 엉덩이 뒤로 감추게 하기에도 버겁게 했다. 이미가 찢긴 사람, 오늘 내일 하는 할머니, 위경련을 호소하는 사람 등. 나는 응급실의 나이롱이 된 거다. 그래도 엑스레이를 찍어봤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고, 책 모서리가 손가락 위를 찍어버린 자리에 조금 찢어진 살가죽만 치료했다.

 

사고 당시. 마침 8층에는 청소용역을 관리하던 분이 계셨는데, 내가 꽝하고 넘어지는 소리를 듣고 올라왔고, 그 양반과 같이 응급실에 왔다. 그 때가 11시 30분. 그 때까지는 화가 많이 난데다 회사동료들에게 병원간다는 얘기도 못하고 오니 치료 도중에 전화가, 게다가 마누라 전화가, 후배 전화가. 뭔가 작정을 한 건지. 그래서 더욱 짜증이 밀려왔던지도 모르겠다.

 

여담이기는 한데, 나와 같이 병원을 온 용역관리하던 이 양반, 재미있는 것이 내가 응급실에 들어간 후, 시간이 좀 걸리니 그 사이 식사를 하고 오신게다. 그리고 겸연쩍었는지, 치료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는데, '식사를 하셔야 되는데'하며 묘한 늬앙스을 남기는 말을 여러 번 하더라. 나도 배는 좀 고팠는데, 같이 밥먹기도 그렇고. 회사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그제서야 이 양반이 식사를 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응급실에 들어가 있는 사이에. 자기는 미안했던 거지. 먹고 왔으니. 그러면 티를 내지 말든가. 계속 이빨 사이에 낀 음식물을 입속의 공기압력으로 빼내는 소리, '쩝쩝'. 이게 단서가 된 거다. 여튼 이하 거두절미.

 

12시 30분이 넘어서야 치료가 끝나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면서 조금 화가 풀리면서 내 손 꼬라지가 어쩌든 간에, 청소하던 아줌마, 걱정되더라. 그래서 용역 관리하시던 분에게 나는 괜찮으니, '그 아주머니, 별일 없게 해 달라. 크게 다친게 아니니 그냥 대충 넘어가자'고 했다.

 

근데, 용역관리 하시는 이 양반, 잠시 자숙과 성찰의 시간을 단 1초도 가지지 않은 채, '그 아줌마 시말서 써야돼요. 한 두번도 아니고, 이상한 짓을 한 번씩 해가지고, 사람 곤란하게 말이야', 이러는 거다. 여튼 그 양반의 입장도 이해는 되지만, 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에게 시말서라는 건 거의 실형아닌가. 다시 한 번 부탁을 했지만, 마음이 영 찜찜한 걸. 그래도 아줌마가 사고를 좀 쳤다니, 그래, 내가 잘못 한 것도 아니고, 사람을 다치게 한 거니깐. 근무시간 중에 물청소하면 안된다잖아. 청소할라카면 그 쪽으로 왕래를 못하게끔 해야되는데, 그런 조치도 안했으니, 사규든 지시든 뭐든 위반한 거니깐, 난 모르겠다, 잊어버리자.  

 

회사에 돌아와, 손을 다치니, 할 게 없었다. 일은 해야되는데, 동료들 덕에 그냥 오늘은 왼손만 놀리고 있는데, 3시쯤에 아줌마가 내 사무실로 왔다. 사과하러 온 것이다.

 

"잘 할려고 하다 보니 맨날 이런 일이 생겨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병원에 또 가봐야 되죠?"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나는 괜찮다, 상관마라고만 했다. 그 아줌마, 말수도 없고, 인사를 해도 다른 아줌마와 달리 고개만 가딱하는 사람이니, 평소에 무슨 호감이야 있었겠나. 그래도 가끔씩 보면 다른 아줌마들에 비해 남자 화장실 출입이 잦다. 여자화장실은 모르겠지만 중간중간 마다 들어와서 휴지나 떨어진 신문 등을 청소하더라. 아마도 가만히 앉아 있는 체질은 아닌 듯하고 비교적 여러 일들을 찾아서 하는 타입인거 같다. 행동반경이나 일의 양이 많아지면 당연히 실수할 확률이 높아지는 건 사실이니, 그 중에 나도 아줌마의 성실함에 피해를 본 사람이 된 거지뭐.

 

아줌마가 대기업 재벌의 마나님이 아닌 바에야, 이 곳에서 청소하는 일이, 그래도 밥벌이일텐데, 내가 처음에 좀 윽박을 질렀던 거부터 나중에 별 일 없게 된 거지만 괜히 병원까지 간 게 잘못했나 싶었다. 내 상처야 한 2주면 된다고 하니, 2주에 한 사람 인생을 뒤바꿀 필요까지는 없지 않겠나, 등등. 그래도 병원 문을 나서는 순간까지는 아줌마 얼굴 어찌보나 했다. 미워서. 근데 아줌마 사과를 받고 나니 받을 사과인가도 모호한데다가 받아도 되는 사과라면 안불편해야 하는데 마음이 좀 안놓인다. 고의도 아닌 뿐더러, 잘하자고 한 건데.

 

그런 이유는 아줌마가 잘해볼려고 한 게 진실성이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 거다. 아줌마가 죄송하다고 말하는 떨림이나 미안한 눈빛 때문에 진실성을 참작해 미안한 마음이 든 건 아니다. 이유는 따로 있다.

 

회사에서 밥을 먹고 근처를 배회하다 담배를 피다보면 우리 회사 근처에서 우리 회사에서 청소하시던 아줌마들을 가끔 만난다. 인사를 하고 '요즘 안보이던데요' 하면 십중팔구 그만뒀다고 한다. 과연 그만뒀을까. 그리고 왜 우리 회사 근처를 어슬렁 거릴까. 아마도 우리 회사 또는 근처 다른 회사 청소를 하고 있거나 다른 회사 일거리를 찾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줌마들이 무슨 용역회사를 찾아가서 계약하고 나서 일을 시작하는 것도 아니고, 막무가내로 가서 '사람 안구합니까?'하고 물어보는 이력서 생략, 초고속 면담채용 인사관리 시스템이 이 동네의 생리니깐. 여하튼 행여 그 아줌마도 그렇게 만날까, 아니 만나고 싶지 않아 걱정이 된다.

 

그저 시말서 한 장으로 끝냈으면 한다. 더럽게 고용도 힘들고 고용되어도 사람을 개같이 조지는 마당에, 내가 일자리를 박탈하는 원흉이 되어서야 되겠나. 여전히 손가락은 욱신욱신하고 오른손 중지는 숙련되어갈 수록, 그 쪽 회사가 아줌마의 목가지를 잡아 비틀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그럴 일이 없겠지, 없겠지, 이쁘지도 않은, 나 보다 늙은 아줌마가 다시 보고 싶다. 내일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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