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쌍용 공동집회

[화성신문 인터뷰]오산이주노동자문화센터 장창원 목사, 존스 갈랑선교사 동시 인터뷰

 [화성신문 인터뷰]오산이주노동자문화센터 장창원 목사, 존스 갈랑선교사 동시 인터뷰
  글쓴이 : 노동목사     날짜 : 09-03-06 21:30     조회 : 20    
 
  트랙백 주소 : http://www.owcc.or.kr/gnu4/bbs/tb.php/jang/143
 

 
[인터뷰]오산이주노동자문화센터
장창원 목사, 존스 갈랑선교사 동시 인터뷰
 
2009년 03월 01일 (일) 23:54:18 정현주 기자 news@ihsnews.com
 
   
▲ 장창원 씨.
오랫동안 우리 사회는 자문화 중심주의에 익숙했었다. 90년 중반부터 이주노동자들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우리나라도 다문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이제는 문화를 보는 절대적 관점을 극복하고 열린 마음으로 타문화를 포용하는 문화의 상대주의적 관점으로 시야를 확장시켜할 시점이 됐다. 그 일환으로 오산에서 NGO단체의 대부 역할을 하고 있는 장창원(51) 목사와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존스 갈랑(필리핀, 43) 선교사를 만나 동시 인터뷰를 진행했다. 

   
▲ 존스갈랑 씨.
한국사회는 외국인 이주 노동자 백만 시대를 맞았다. 중요한 자리에서 그들은 우리 사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언제부터 오산에서 활동을 시작했는지
-장창원: 어렵게 돈을 꾸기도 하고 대출을 받아 교회를 지었다. 91년에 지역 도서관을 만들었고  처음엔 공부방으로 시작했다. 그 때 공부방에 다니던 아이들이 성장해서 지금도 여기를 찾고 있다.
 또 ‘오산 환경모임’을 시작했고 지금은 ‘오산 환경운동 연합’으로 발전해서 독립적으로 환경운동을 하고 있다. 현재 환경모임 출신들이 오산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산이주노동자문화센터를 설립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무엇인가
-장: 90년대 후반부터 우리 사회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오게 되는데 그들이 회사에 취직하기 전이나 퇴사 후에 갈 곳이 없다. 여기는 항상 열려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한국사람 뿐만이 아니라 어느 나라 사람들이라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최근에는 노숙자들도 여기에 와서 밥을 먹고 간다.
현재 오산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얼마나 되나
-장: 오산에 있는 이주 노동자들은 공식적으로 3천명 정도다. 경기남부권(수원, 오산, 화성, 평택)에 3만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가
-존스 갈랑: 98년부터 정남에 있는 금형공장에서 5년 동안 일했다. 2001년에 필리핀으로 귀국해 신학공부를 마치고 선교사 자격으로 2002년 한국으로 재입국했다. 98년 한국에 오기 전에 필리핀에서 82년부터 89년까지 신학교를 다녔다. UCC missionary라는 필리핀 연합교회 소속이다.

필리핀은 90%이상이 가톨릭계이고 나머지 5~6%가 프로테스탄트다. UCC는 성공회, 감리고, 장로회, 필리핀 지역 교회의 연합이다.
한국에 필리핀 노동자들이 얼마나 와 있는지
-존스 갈랑: 한국에 와 있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은 7만명 정도다. 그 중에 2만명이 합법적인 신분이고 나머지 5만이 비합법 상태다. 5~6천 정도가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 여성들이다.
한국에 와서 느낀 점은
-존스 갈랑: 필리핀은 모계사회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면을 이해할 수 없다. 꼭 군대 스타일이다. 한국 남자와 결혼한 필리핀 여자를 만나서 상담을 해 보면 남편이 때렸다고 하는데 필리핀에서는 이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다.

-장: 또 한국 사람들은 빨리빨리 하라고 한다. 기후 때문에 필리핀에서는 뭐든지 빨리빨리 하지 않는다. 천천히 일하는 것에 익숙했던 사람들이 속도를 내서 일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존스 갈랑: 또 한국 사람들은 화를 잘 내는데 익숙하지 않다. 필리핀 사람들은 화를 잘 안 내는 편이다.
문화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필리핀 사람들이 추석이나 설날에 일을 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큰 명절인 성 세인트 데이에 가족들은 어머니 묘로 간다. 한국에서도 성 세인트 데이가 되면 일을 하지 않고 필리핀의 가족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한국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공고하다. 사람들은 너무나 그 시스템에 익숙해져있다. 광고와 백화점의 관계를 생각해 보라. 신상품이 광고에 나오면 바로 바꾼다. 사람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무비판적이다. 문제의식이 없다.

NGO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NGO단체의 활동가들에게도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마지막으로 소수 계층이 부를 독점하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심각해 보인다.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존스 갈랑: 필리핀 노동자들을 위해 서포터해 주고 뿔뿔이 흩어져 있는 필리핀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다. 또 이주 여성들과 상담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교육도 한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다치고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상담하고 밀린 월급을 받도록 도와주기도 한다.
▶어떤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지
-존스 갈랑: 필리핀 이주자들을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복권처럼 티켓을 만들어 판매를 하고 당첨자들에게 경품을 주고 남은 기금으로 예배당을 만들 계획이다.

이주노동자센터에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이고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필리핀만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어렵다. 예배당은 여성센터의 역할도 할 것이다. 현재 필리핀에서 이주해 한국 남자와 결혼한 여성들 중에 크리스찬들이 있는데 교회를 다니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찾아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오산이주노동자문화센터에서 하는 사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나
- 오산이주노동자문화센터의 1층은 공부방이고, 2층은 예배당 겸 청소년 쉼터, 3층은 이주노동자센터로 사용하고 있다. 
2년 전부터 어린이 집을 하고 있다. 14명이 있는데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중국 등 이주민 2세들이 대부분이다.
밥집도 하고 있다. 학교 급식 남은 것을 가지고 푸드 뱅크를 하기 때문에 재정에 큰 어려움은 없다. 누구든지 와서 먹어도 된다. 최근에는 노숙자 10여명이 와서 밥을 먹고 있다.

녹색 가게는 3년 전부터 시작했다. 사회적 일자리 창출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 사회적 기업으로 가야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녹색가게의 물건을 보관할 큰 장소가 필요한데 주변 사람들이 땅을 싸게 빌려 줘서 창고로 이용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쉴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하고 있다. 1년 전에 따로 집을 얻었는데 재정이 많이 들어 힘들어졌다. 현재 근처에 있는 우리 집 방 한 칸을 내 주어서 긴급하게 쉼터가 필요한 이주 노동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도 그렇지만 이주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갈 때까지 가다 마지막에 여기로 온다. 한 케냐 출신 노동자는 6년간 한국에 있었는데 몇 달 전 쉼터로 왔다. 그는 한국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한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했다. 다음 주에 본국으로 돌아간다.

이주 노동자들이 직장을 구하기 전과 퇴사 후에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그래서 여기는 항상 이주 노동자들로 붐빈다. 현재 오산시에서 구교육청 건물을 매입해서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센터를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다. 하지만 시청에서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서류가 미비한 경우나 비합법 이주민들을 수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이주노동자들을 나라별로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소망이다.

3년 전부터 다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독지가가 땅을 빌려 줬다. 텃밭에 농사를 지으며 청소년 센터 아이들과 이주 노동자들과 함께 밭일을 한다. 거기서 나오는 농작물을 팔아 청소년 센터에 나오는 아이들 여행을 시키려고 한다.
오산시에서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에 집중하고 있는데 시와의 관계는
- 오산에는 시에 자유롭게 말할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쓴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박신원 전시장 시절에 많은 비판과 문제제기를 했었다. 그래서 시에서 트집을 많이 잡으며 마지못해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들과 노동조합을 같이 만들었고, 전문적인 분야는 여기 와서 배우고 간다. 자원봉사의 경우 시에서 협조를 부탁하는 입장이다.

센터에 학생들이 자원봉사를 하러 많이 온다. 다른 곳은 보통 청소나 필요한 일을 시키지만 여기 오는 학생들에게는 자원봉사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녹색가게를 사회적 기업으로 키워야하는데 어렵다. 특히 시에서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줘야 하는데 안타깝다.
늘 낮은 곳에서 살고 있는데 왜 이런 삶을 선택했는가
- 그래도 나는 기득권이 있는 경우다. 부모가 있고, 형제 가족이 있다. 삶의 현장엔 어려운 사람들이 중심에 서 있다. 사람들이 같이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중심이 된 사회가 되길 바란다.
바닥이 변해야한다. 지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사람들은 가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IMF때 어려웠던 사람들이 여기를 찾았었다. 형편이 나아지자 뜸하더니 다시 찾는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AAWL’s weekly radio program, Asia Pacific Currents, has been broadcasting labour news for over 20 years.

Rev.Jang
http://nodong.net
http://podcast.3cr.org.au/audio/3CRCast-2009-02-20-68725.mp3
http://www.3cr.org.au/podcasts
3cr_left.gif (10.4 KB), Download : 1
asiapac_100.jpg (13.3 KB), Download : 1
AAWL’s weekly radio program, Asia Pacific Currents, has been broadcasting labour news for over 20 years.
 
 




AAWL’s weekly radio program, Asia Pacific Currents, has been broadcasting labour news for over 20 years.

========-- - - >
http://podcast.3cr.org.au/audio/3CRCast-2009-02-20-68725.mp3
                                                < - - ======


It is now available as a podcast. APC has news round up as well as a feature story every week.

Podcasts for APC can be downloaded at: http://www.3cr.org.au/podcasts

Programs in February have featured:

February 7th, 2009

Introduction to the issues, disputes and campaigns that will shape the labour movement this year

February 14th, 2009
Interview with Graham Bird, Secretary of the Australasian Meat Industry Employees Union of Victoria – Australia, on the impact of 417 working visas on labour conditions

February 21th, 2009
Interview with Ji Giles Ungpakorn, Thai social and labour commentator, on events in Thailand and the issues surrounding his charges of Lese Majeste

February 28th, 2009
Interview with Lionel Bopage, a Sri Lankan human rights activist, on the present situation in Sri Lanka

In solidarity
The APC team
--
Australia Asia Worker Links
PO Box 45 Carlton South Victoria 3053 Australia
Tel: + 61 3 9663 7277   Email: aawl@aawl.org.au   Web: aawl.org.au
ABN: 82 920 590 967   Inc Assn No: A1318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APWSL(AAWL) 호주 멜번 ETU 히피 동지를 추모합니다.

APWSL(AAWL) 호주 멜번 ETU 히피 동지를 추모합니다.
  글쓴이 : 노동목사     날짜 : 08-11-22 17:09     조회 : 3    
 
  트랙백 주소 : http://www.owcc.or.kr/gnu4/bbs/tb.php/jang/119
 

삼가 히피님의 소천하심에 조의를 표합니다. 영면하소서

 

호주전력노동조합(ETU)의 조직운동가 히피 동지가 지난 21일 (향년 53세) 지병으로 병원에서 소천하였습니다.  

 

히피님은 지난해 2007년 11월 전국노동자대회 기간과, 올해 2008년 5월 세계노동절 기간 2회 한국APWSL을 방문하여 노동현장과 구속된노동자, 해고된노동자, 투쟁하는 삼성집회, 한국전력노동조합, 포항건설노동조합, 한국합섬노동조합, 기륭전자노동조합 등 등을 지지연대 방문하며 한국노동자들과 연대투쟁을 하며 장기적인 교류, 협력의 계획을 세우기도하였습니다.

 

오산노동문화센터에서 숙식을 같이 하며 동지애를 나누었던 우리는 갑자기 맞이한 히피 님의 운명에 경황이 없고 놀랍고 슬퍼합니다.  한국에서 먼 거리인 멜번이기에 지금 가서 조문을 할수도 없어서 더욱 안타깝습니다.

 

그는 평소에 문화활동을 하며 술과 담배를 좋아하였고 째즈 음악으로 노동자 그룹싸운드 만들어 활동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전에 건강이 좋지 않았서 의사의 진단과 권유로 술.담배를 절제하기도 하였지만 결국 간기능이 저하되어 지난 11월 14일 빅토리아지역의 한병원에 입원하였으며 한국에 함께왔고 전력노동조합의 아시아연대 담당자이며 동지이기도한 친구  허기 님과  ETU 조직책임자 존 크레어 , APWSL 한국위원회는 1년간 빅토리아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박승호님 등, 가까운 동지들이 밤을 세우며 간호와 적극적인 위로를 하였지만 끝내 동지들의 곁을 떠나서 하늘나라로 향하여 떠나 가셨다.

 

APWSL 한국위원회를 비롯한 히피님의 동지들이 히피님의 소천을 슬퍼하며 고인의 명목을 빌고 있습니다.

그의 영전에 붉은 장미꽃 바구니를  드리고 그의 가족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슬퍼하는 친구이며 동지인 허기와 AAWL동지들에게 위로와 슬픔을 함께 나누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지난번 히피님과 허기님이 한국을 연대 방문하여서 한국친구들과 반갑게 밤 세워 나누었던 많은 이야기들과 노랫소리, 기타소리가 쟁쟁하고 머릿속에 영상으로 스쳐갑니다.  한국의 동지들과 밤새워 연대의 밤을 가지면서 약간 몸이 불편하고 무리가되어 힘이 떨어져도 마다하지 않고 열정적으로 멋진 노래를 불러주었던 히피님 그의 사랑이 우리의 가슴속에 따뜻한 온기로 남아있습니다.


한국의 노동운동가들도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아서 간이나, 암등의 지병으로 죽음을 맞이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이제 호주의 히피 동지는 죽음도 같이하는 동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운명을 달리하였지만 그가 남김 노동자연대와 투쟁 정신은 APWSL과 우리의 삶가운데 능 함께 할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2008년 11월 22일

                                              APWSL 대표 장창원목사


 
노동목사   08-11-23 01:25
Dearest Comrade Hoggie, John Cleary and to the Family of Hippie
 
It is with deep sadness and sorrow that we, your family at Asia Workers Solidarity Link-Korea (APWSL), learned of the passing of our beloved Comrade, Hippie.
 
With his two times visitation in Korea we felt his deep compassion to the working class and his simple struggle for Justice and Peace.
 
He is so simple and approachable; he is truly a man of Principle that is why Comrade Hippie is a Heroine not only to the Australian Workers but to all workers in the World.
 
We know we are in deep sadness and loneliness but let us turned these into happiness and joyfulness because he just fulfilled his material dedication on earth but his spirit and principle will be alive forever, and we will carry these onward to all the working class till the time that there will be no classes.
 
Our Deepest Condolences:
Rev Jang Chang Weon
Convene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경기국제노동영화제

banrani님의 [경기국제노동영화제] 에 관련된 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빈곤과 가난의 축 위에 신학교 세우다

빈곤과 가난의 축 위에 신학교 세우다
[인터뷰]도시빈민 지역에 건축 중인 필리핀아태장신대 이홍정 선교사

전 세계적으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는 선교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 태평양을 잇는 필리핀은 지리적 위치나 영어권 문화 등 여러 가지 요건이 충족하는 선교 기반 지역으로, 이미 한국교회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풍부한 인적 자원과 영어권 문화, 경제적 효율성으로 선교 요지로 꼽히는 필리핀에 실천중심의 교육선교를 표방하는 필리핀아시아태평양장로회신학대학교(Asis-Pacific Christian College and Seminary)가 건축된다.

▲지난 8월 학교가 일부 건축된 모습. 1차 공사 마감일인 다음해 5월말까지 10억원이 모금되야 하지만 현재 절반 정도만 충당된 상태다.©APCCS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선교지도자들을 길러내는 교육 선교 센터로서의 비전을 가졌지만 학교가 설립되는 지역은 도시빈민쓰레기촌인 빠야따스 접경지역인 이주민집단촌 몬딸반이다.

다른 이들은 최적의 교육 환경을 찾아 학교를 세우는 반면, 필리핀아태장신대는 ‘복음이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 실천으로 적용될 수 있는 낙후된 지역을 학교 부지로 선택했다.

예장통합 기획국장, 아시아기독교교회협의회(CCA) 국장, 세계교회협의회(WCC) 상임위원을 거쳐 현장으로 돌아간 필리핀아태장신대 총장 이홍정 선교사를 만났다.

“꽃향기처럼 바람처럼 전해지는 복음의 향기”

학교가 세워지는 몬딸반 지역은 이주민집단촌으로 저개발 빈곤지역이다. 언뜻 듣기에도 학교 부지로는 부적합한데, 이홍정 선교사는 그 곳에서 지역에 깊이 뿌리 내리는 실천 중심의 신학교육을 꿈꾸고 있다.

▲이홍정 선교사©뉴스미션
이 선교사는 “보편적인 생각으로는 반대를 할 수밖에 없는 곳”이라면서 “하지만 이 학교는 의도적으로 빈곤과 가난의 축을 따라 간 것이고, 거기서 ‘생태적으로 의식화된 기독교인’을 양성하려는 목적이 있어요”라고 말한다.

질병과 내전, 빈부격차 등 여러 가지 이후로 자신의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모인 몬딸반 지역을 선한 사람들, 곧 지역 기독교인들과 필리핀아태장신대 학생들이 함께 변화시켜 가는 것, 이것이 이홍정 선교사의 상상력이다.

삶의 자원을 나누고, 나눔의 정의를 실천하면서 지역 주민들의 깨지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는 그런 선한 이웃.

“학교가 건축되면 지역주민들과 호흡하면서 진정한 이웃이 되고 싶어요. 꽃이 향기가 스스로를 선전하지 않아도 흘러가고,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모든 이들에게 느껴지는 것처럼 복음의 메시지가 그렇게 흘러갔으면 하는 거예요. 신학교육을 받는 우리의 삶이 꽃과 바람같이 그런 영향을 미치도록 말이죠.”

그가 말하는 실천중심의 교육선교공동체는 다름 아닌 이웃만들기의 과정이다. 학생들이 누군가의 선한 이웃이 될 수 있도록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것. 그래서 4년간의 교육을 마친 후에는 어느 현장에서도 학생 자신부터 선한 이웃이 되어 사역할 수 있도록 말이다.

“생명교육선교 동역자를 찾습니다”

이홍정 선교사가 지역사회와의 호흡을 강조하는 것은 ‘이제는 선교사 중심의 선교 시대가 끝나고, 지역교회가 각 지역의 선교를 책임지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역교회의 지도자가 누구냐,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교회의 미래나 정체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지난 5월 기공식 현장. 허리를 숙이고 삽을 든 이가 이홍정 선교사©APCCS

예장통합 기획국장을 거쳐 CCA, WCC 위원 등 세계 에큐메니칼 기구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그가 지난 2006년 10월 후원 모금이 절실한 건축 중인 학교로 돌아온 것도 자신의 경험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기 위함이다.

이 선교사는 “21세기 기독교의 미래는 교육 선교에 달려 있다고 본다”며 “바른 지도자가 세워지면 그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고, 교회 일치를 도모해 내면서 그야말로 지역사회를 변화시켜내는 변혁적인 복음의 능력을 세워갈 수 있다”고 전했다.

교육의 중요성을 한국교회 성도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이홍정 선교사는 ‘아태일만교육선교운동’으로 동역자들을 찾고 있다.

아태일만교육선교운동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교회와 선교를 위한 일만명 교회 지도자 양육을 목표로 매월 1만명이 1만원에 해당하는 소유와 은사를 나누며 평생을 참가하는 평생교육선교운동이다.

“진정한 성장은 모두가 성장하는 것”

아태지역의 교육 선교 백년대계를 가지고 자원과 열정, 공감대를 모으는 이 운동은 전 지구가 하나의 생명으로 이어져 있다는 정신에서 비롯된다.

내 교회, 한국교회만 생각하면 아태지역의 일반 교회지도자 양성은 아무 의미없는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전 세계적 차원의 복음과 선교를 위해서는 기꺼이 동참할 가치가 있는 운동이다.

▲필리핀아태장신대 학생들이 사회봉사주간에 지역 교도소를 방문해 함께하는 모습©APCCS

이 선교사는 “모든 교회가 한 몸이고 지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서로에게서 배우려 애쓰는 것, 서로 다른 상황에서 존재의 표현은 다르지만, 하나의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계교회가 형성된다는 그런 인식을 갖는다면 모든 교회가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지구를 하나의 지체라고 생각하면 한국교회만 부흥한 모습은 몸의 일부만 비대해진 기형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각 지체가 균형있게 같이 성장하는 ‘전체의 성장’은 대형교회만 크고 작은교회는 사라지는 한국교회의 현실과, 전 세계적 교회성장의 불균형을 경험하는 세계교회 모두에게 필요한 과제이다.

지역교회에 선한 이웃이 되어 주되, 전 지구적 차원에서 복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생명선교교육공동체를 꿈꾸는 이홍정 선교사의 꿈이 실현되길 바라는 이유는 한국교회, 더 나아가서는 세계교회가 그런 지도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8/09/16

르완다, 프랑스와 맞장뜨다! /아프리카 학살에 개입한 혐의로 프랑스 정치인들을 기소 입력: 08-08-22 16:59 르완다 정부가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진 학살에 직접 개입한 혐의로 프랑스 정치인들을 기소했다. 르완다 학살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르완다 위원회는 미테랑 프랑스 전 대통령과 30여명의 원로 정치인들이 학살에 개입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고 르완다 정부는 이 보고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이들을 기소했다. 그 동안 프랑스 정부가 르완다 학살에 개입했다는 주장은 많이 제기되었으나 르완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처음이다. 르완다 학살 (Julius Guzy의 작품) 르완다 대학살이라고 불리는 사건은 1994년에 벌어진 투치족과 후투족 사이의 갈등으로 투치 인 80만 명과 온건파 후투 인 수만 명이 살해된 사건이다. 투치와 후투는 유목민이었던 투치가 15세기에 나일강 유역에서 아프리카 중앙에 위치한 현재의 르완다 지역으로 남하하면서 같은 지역에 거주하게 되었다. 그런데 1916년부터 1962년까지 약 40년 동안 벨기에가 르완다를 식민 지배하는 동안 투치와 후투에 대한 분리정책을 실시하면서 그들 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벨기에는 투치 사람의 외모가 후투 사람의 외모보다 우월하다는 말을 퍼뜨리기도 하였고, 이 둘을 구별하는 신분증을 발급했다. 또 투치 인들에게만 정치, 경제, 교육에 특혜를 주어 이들이 후투 인들을 지배하게 하였다. 르완다가 벨기에에서 독립한 이후에도 투치 인들이 지배층의 다수를 차지하고 후투 인들이 소수를 차지하는 구조는 계속되었다. 1963년 12월에 이러한 사회 구조에 반감을 가진 후투 인들이 2만명의 투치 인을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10년 뒤인 1973년에는 후투 인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다. 프랑스는 1975년부터 1994년 대학살 이후 정권이 바뀌기 전까지 후투 정권에 경제와 군사 원조를 하면서 후투 정권을 지원해왔다. 1994년에 투치에 대한 후투의 대 학살이 벌어진 것은 1990년에 우간다에 거주하던 투치 망명자들이 군대를 조직해 르완다를 공격하면서 고조된 갈등에서 비롯되었다. 후투의 강경파 정치인들은 투치가 반군을 지원하고 정권을 빼앗으려 한다며 후투 인들에게 반투치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후투 정권을 지원했던 프랑스 정부는 투치 반군을 막기 위해 무기와 군대 등 군사지원을 퍼부었다. 그리고 프랑스는 1990년부터 1993년 12월까지 르완다 군대를 조직하고 훈련시켰다. 그러던 중 당시의 대통령 주베날 하비아리마나가 비행기 폭파로 살해된 후 투치엔 대한 후투 민병대 인터함웨군의 대량학살이 빠르게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인터함웨는 민병대라는 이름으로 구성되었지만 실제로는 정부군의 지원 하에 조직되었고 정부군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학살을 저지를 수 있었다. 그리고 투치 반군이 정권을 잡고 학살이 중단되기 전까지 100일 동안 80만 명이 살해되는 20세기의 가장 끔찍한 학살이 벌어지게 된다. 르완다 학살 사건을 사실감있게 그린 영화 [호텔 르완다] 그 동안 르완다 정부와 프랑스 정부는 르완다 학살의 책임을 두고 마찰을 빚어왔다. 르완다 정부는 학살 당시에 평화유지군으로 르완다에 군대를 파병했던 프랑스가 직, 간접 적으로 학살에 개입했다고 주장해왔다. 당시 르완다 정부군이 인터함웨 민병대를 지원하는 과정에 프랑스 정부가 개입했고, 프랑스 정부의 도움으로 학살이 더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반면 프랑스 정부는 르완다 정부의 주장을 완강히 부인하다가 올해 초에 당시 외교적인 실수가 있었다고만 입장을 밝혔다. 오히려 프랑스의 한 저명한 판사가 르완다의 현 대통령인 폴 카가메가 1994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주베날 하비아리마나의 살해를 지시했고 그 때문에 학살이 시작되었다는 혐의로 폴 카가메 대통령과 그의 측근 9명을 기소했었다. 카가메 대통령은 한 국가의 지도자라는 직책 때문에 기소되지 않았지만 다른 9명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되었다. 그러나 주베날 하비아리마나 전 대통령이 살해되기 이 전에 이미 투치에 대한 대량학살이 계획되고 있었다는 것이 기정화된 사실이었기 때문에 설령 카가메 대통령이 주베날 하비아리마나를 살해했다고 하더라도 카가메 대통령에게 학살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큰 논란이 되었다. 또한 프랑스 재판관이 제시했던 증거가 후투 극단주의자들에게서 받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프랑스 정부가 르완다 대학살에 개입했다는 증거를 조사하기 위한 르완다 위원회는 2006년 10월에 활동을 시작하여 거의 2년 만에 르완다 정부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르완다 위원회는 프랑스의 전직 대통령과 총리, 외무장관 등이 후투 극단주의자들을 무장시켰고 프랑스 정부가 후투를 지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정부는 학살 이전부터 당시까지 후투 정권에 정치, 군사, 외교적 지원과 물자지원을 했다. 위원회는 후투 정권이 남기고 간 공문서를 그 증거로 제시했는데, 공문서에는 프랑스 정부가 후투 정권에 대규모로 무기를 지원했고 학살을 저지른 인터함웨 민병대의 병사들을 훈련시켰다는 증거가 남아있다. 또한 보고서는 프랑스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르완다에 주둔하고 있던 프랑스군이 투치 인에게 반인륜범죄를 저질렀으며 학살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유엔 난민촌을 이용하여 도망갈 수 있도록 했다는 혐의도 두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프랑스 군은 투치 반군에 대항하는 작전에 포병대를 투입시키고 무장 헬리콥터를 사용했다. 그리고 프랑스 군인들이 직접 투치 인과 투치 인을 숨겨준 후투 인을 살해하기도 하였으며 투치 생존자들을 강간하는 일도 수 차례 발생했다. 르완다 위원회는 이러한 사실을 조사하기 위해 프랑스 군과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후투 인과 언론인들의 증언을 수집했고, 그 중에는 프랑스 장교들과 같이 인터함웨 병사들을 훈련시켰던 후투 군 지휘관도 포함되어있다고 한다. 르완다 법무부는 르완다 위원회의 보고서를 근거로 기소된 프랑스 정치인과 군 지도자들을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하도록 당국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외교부는 자신들이 보고서를 다 읽기 전까지 답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뻔뻔하고 거만한 프랑스의 정치인들을 르완다의 법정에 세우기는 쉽지 않겠지만, 르완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프랑스의 전쟁범죄 혐의를 조사하고 공개한 것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많은 아프리카의 국가들이, 그리고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국가들이 서구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독립을 성취한 이후에 식민유산으로 인한 고통을 겪었다. 그리고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한 식민유산은 그 형태를 바꾸어 그림자 같은 망령처럼 민중의 미래를 갉아먹고 있다. 르완다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의지가 같은 처지의 동료 국가들에게도 울림이 되길 기대해본다. 분류: 아프리카 입력: 경계를넘어 / 08-08-22 16:5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Allianz Korea is on strike for 199 days.Status of ethical management in Allianz Life Korea regarding recent strike

 

Allianz Korea is on strike for 199 days.Status of ethical management in Allianz Life Korea regarding recent strike
2008/08/08 14:35

source : “Multinational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Especially about Allianz Life Korea case)by KANG Su-Dol (Professor of Korea University)

Failure of building trust between Labor and Management ? Neglecting inside customers, Deficiency of advanced management

The conflict of Allianz Life Korea came outside with ‘the implementation of performance related pay’ on January 21st 2008. Labor & management agreed about the introduction of performance related pay in 2005,2006 but the final model of pay system was not agreed. Negotiation of wages was linked with negotiation of performance related pay; the company raised 3.5% of pay additionally in 2006 in terms of giving up the allowance of monthly leave eternally. Allianz Korea had the freezing of wages in 2004, raised 14% in 2005 and 8% in 2006 (including 3.5% compensation for the waiver of allowance; 11.5% in 2006). Average raise of 3 years (2004~2006) is 7.3% of basic pay. But the company included 3.5% compensation for the waiver of allowance and made average rate of 2 years (13% per year; 2005~2006) and claimed that it raised the basic pay very much for the implementation of performance related pay.

So, Labor Union indicated the problems of company’s suggesting performance pay system and tried to get to the agreement by negotiation. But the company compulsorily applied 7.5% raise for the wages of 2007. Without agreement of Labor Union, the company insisted to pay the salary discriminately dividing into 5 grades of employees’ performance. Labor Union could not agree with this idea. Despite a lot of meetings for the renewal, union and company had never made agreement. So the union applied for the mediation in a labor trouble of the National Labor Relations Commission on April 23rd 2007, The National Labor Relations Commission decided to end the mediation without suggesting any proposal because of big difference between labor and company on May 14th.After the end of mediation, over 20 times negotiations were proceeded during May 15th ~ November 14th 2007. But the company insisted consistently that there could be negotiation only after setting the introduction of pe! rformance-related pay as a premise. So the union put to the vote for strike for two days (November 20~21 2007) about “the renewal of collective agreement, productivity bonus and regular promotion”. 1,008 union members out of 1,086 on the resister voted and 95.5% of the voters were agreed for strike. Union reported the strike to the south branch office of Seoul Regional Ministry of Labor. After that, union started the struggle of a work-to-rule and picketing.

On the process of this, the company concluded that the union abused the right of Agreement [distort] and the company announced the CEO message on January 17th and implemented compulsorily the performance-related pay without agreement of union on January 21st 2008. The performance related pay of Allianz Korea divides employees’ performance into 5 grades and pay the salary differently for each grade. But the labor union went into the strike pitching tents at headquarter, underground parking lot against the compulsory implementation of performance related pay: ’discriminated pay of basic salary & performance bonus’. The strike came into the spotlight because it was the first large-scale strike since the president LEE Myung-Bak government.
The company claimed, “the withdrawing of performance-related pay was the essential part for control of the company and could not be the object of strike” [deny, deceive]. The company insisted that “the conflict for power could not be settled by strike” [dominate, distort] and also claimed that “the mediation of the National Labor Relations Commission and the vote of union members was not for the withdrawing of performance-related pay that was pointed as the main reason of the strike by union so the strike was out of order” [deny, distort

 

 

http://api.bloggernews.media.daum.net/static/recombox1.swf?nid=1611054&m=1" quality="high" bgcolor="#ffffff" width="400" height="80" type="application/x-shockwave-flash">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반이명박투쟁

no chr.!님의 [反(李)정부 투쟁 #10] 에 관련된 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9.29 WORKERS ACTION in池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