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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해한 존재, 그래서 두려운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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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인은 모두 아동기를 거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모든 성인은 자신이 성인이라고 인식하는 순간 모두 아동기를 잊고 만다.

그래서 어느 순간.

우리 모두가 거쳐왔던 그 아동기의 존재들이 불가해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그 불가해한 존재와 마주하고 살아야 하는 운명을 가진 성인들은 그들의 불가해성이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나처럼 여섯살 아들의 엄마 역할을 해야 하는 경우..

그리고 어린아이를 돌봐야하는 직업을 가진 경우.

 

영화 말아톤을 보면서 또 한번 그 두려움을 느낀다.

초원이는 끝내주는 몸매를 가진 청년이다. 그러나 초원이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그래서 불가해한 존재이다.

모든 엄마들이 그럴거라 짐작되듯이 초원이의 엄마 역시 아들이 행복하게 생존하길 바라며 끝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제까지 자신의 노력과 애씀이 과연 아들을 위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문제제기 앞에 맥없이 무너진다. 왜냐면..초원이는 불가해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초원이는 "난 엄마가 나에게 하는 것이 진심으로 좋아요"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대의 최선의 삶을 바라는 마음.

그러나 상대는 반응을 보여주지 않는 존재다.

그래서 난 내가 하는 행위가 옳은지 확증을 갖을 수 없다.

이런 순간에 외부로 부터 들어오는 "그게 정말 상대를 위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라는 질문에 "무울론"이라고 자신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초원이 엄마는 자신의 마음과 아들의 마음이 동일하다는 신념이 무너져 버린 순간. 이제까지 해왔던 자신의 모든 행동방식을 철회한다. 그리곤 초원이에게 마라톤 대신 기술훈련을 시킨다. 생존의 방법을 익히게 하기 위해서.

 

초원이 엄마가 맥없이 무너지며 자신의 이제까지의 행위를 '반성'하는 장면은 못내 눈물을 흘리게 한다.

그건 나도 느낄 수 있는 두려움이다. 내가 우리 아들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 그래서 내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안된다는..그 책임감의 두려움이다.

 

이 불가해하며, 의사개진을 못하는 아동이라는, 자폐아라는, 식물인간이라는, 치매노인이라는 존재들을 돌봐야 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냐는 거다.

 

미국에선 예전 한 때 스포크박사의 육아백서라는 책이 모든 엄마들의 바이블이었다고 한다. 우유는 시간맞춰 주어야 하며, 울어도 절대 중간에 주면 안되고 기타등등.. 이 권위적인 인물의 조언을 거부하기란 정말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어려웠을 거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권위에 기대어 그 두려움을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옳은 방법이냐.

 

초원이는 엄마 몰래 혼자서 마라톤 대회장으로 간다. 그리고 찾아온 엄마의 손을 스스로 놓는다. 그러면서 보여준 초원이의 의사는'난 달리고 싶어요'였다. 그건 이미 초원이에게 마라톤이 아닌 자신만의 새로운 의미를 가진 말아톤이었나보다. 완주를 한 초원이를 보면서 엄마는 무척기뻐한다. 완주를 해서 기뻐했을까 아님 초원이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해서 기뻐했을까는 잘 모르겠다.

 

암튼.

초원이를 보면서  좀 희망을 갖게 된다.

잘 보면 보일지도 모른다. 아주 잘 보면 점점 그 불가해한 존재에 가까이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초원이와 엄마 사이에, 쭌이와 나 사이에 우리 끼리는 알 수 있는 정서의 기류가 보일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말한다. 표정으로 몸으로 어눌한 말로..

문제는 내가 그걸 보고 싶은 대로 봐버리는데 있다.

 

엄마는 참 힘들다.

책임도 참 많다. 누가 뭐래지 않아도 스스로 찔리고. 스스로 미안하고.

애 하나짜리 엄마는 더 힘들다. 내 잘못만은 아니라고 항변할 수 있는 또다른 증거가 없으니까.

 

쭌이랑 아침에 한판 붙고.. 늦은 밤까지 오래도록 별생각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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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09 01:38 2005/04/0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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