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손가락에 붙은 일회용밴드

View Comments

 

일곱 살 먹은 남자 아이가 열손가락에 일회용밴드를 붙이고 있는 모습을 본다면 무얼 상상하게 될까?

그 아이가 손가락 빠는 버릇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면 간단히 손가락 빠는 걸 막기 위해 벌을 받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을거다. 그리고 아이의 손가락 빠는 욕구의 이면을 보지 못하고 행위만을 근절하기 위한 조치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나는 어느 날 쭌이가 열 손가락에 일회용 밴드를 붙이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흔히 보는 어떤 장면이 그 장면이 속해있던 맥락과 떨어져 단지 한 장면으로만 보여 지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떤 현상이나 상황에 대해 성의 있는 파악이나 깊은 이해 없이 쉽게 판단하고 결론지으려고 했던 나의 경향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쭌이가 일곱 살이 되면서 아랫이가 빠졌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1월 중 어느 때다.  아랫 이 두 개가 빠지면서 빠진 자리로 혀가 드나들기 시작했고, 언제부터는 손가락을 빨기 시작했다. 엄지에서 검지로 어느 날은 열손가락이 차례로 드나들더니 급기야 무언가에 집중하는 순간에 손가락은 늘 입속에 들어있게 되었다.


이는 이미 새로 나왔지만 손을 빠는 버릇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내가 쭌이의 손가락 빠는 행위를 인식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늘

“쭌아 손가락 빨지 마. 이가 삐뚤어진다.”

“손가락 빨면 손에 있는 세균이 입으로 다 들어간다.”

그러나 너무 귀찮아지면

“손!”

하고 외마디를 외치는 것으로 손가락 빠는 행동에 대해 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떤 변화도 없이 시간은 흘러 급기야 석 달이 다가오고 있던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며 만족스럽게 손가락을 빨고 있는 쭌이를 보고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난 손가락 빠는 애기는 싫어. 일곱 살 아들로 돌아와 줘~”

그 순간 쭌이 휙~하니 건너 방으로 가버린다.

분위기 심상찮음을 느낀 내가 뒤따라 가보니 쭌은 이미 눈가가 벌게져서 울고 있다.

“야. 엄마가 뭐라고 했다고 울고 그러냐?”

그때 쭌이 너무 억울하다는 듯이

“나도 모르게 손이 들어가는 데 어떡하라구” 외치면서 훌쩍인다.


저런,

너무 미안했다.

저보다 서른 몇 해나 더 산 나도 금연부터 시작해서 기타 등등 나의 의지로 성취할 수 없는 것들을 포기하고 사는 마당에 이제 겨우 여섯 해를 산 아들에게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의지로 손가락 빨기를 멈추라고 하다니.

쭌이에게 엄마가 정말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쭌이도 손가락 빨기를 그만두고 싶은 지 물었다.

물론, 이제까지 손가락 빨기의 어마어마한 폐해에 대해 석 달을 들어온 범생이 우리 아들은 자기도 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손가락이 입으로 들어갈 때 마다 엄마나 할머니가 말해줄 수 없으니 손가락에 일회용 대일밴드를 붙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쭌이는 그러자고 했고,

그래서 쭌이의 열손가락에는 일회용 밴드가 붙게 되었다.


“엄마, 손가락이 입으로 들어갈 때 일회용밴드가 있으면 손가락 빨지 않기로 했지 하는 생각이 나서 안 빨게 되” 라고 쭌이가 말 한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열심히 놀고 있는 쭌이의 손가락에서 일회용 밴드는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손가락은 어쩌다 다시 입속으로 들어간다.

또 다음날 쭌이의 손가락에 일회용 밴드를 붙이게 되겠지.

하지만 그 밴드는 쭌이에게 손가락 빨기에 대한 벌이 아니고 엄마가 생각해낸 도움이다.


무심한 엄마에게 우리 아들이 외쳐서 얻어낸 .. 도움.

 

매번 날 반성하게 하고 성장하도록 하는 우리 아들이에게 엄청 고맙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3/29 01:35 2006/03/29 01:35

3 Comments (+add yours?)

  1. 슈아 2006/03/31 12:54

    아이의 마음을 읽어준 쭌모 멋지삼~~ 내공이 필요한 것 같아요. 훌륭하십니다.

     Edit/Delete  Reply  Address

  2. 쭌모 2006/03/31 16:18

    슈아/제가 읽어주었다기보다는 쭌이 들이댄거지요. 자기를 들이댈 수 있게 자란 아들이 몹시 대견하답니다.

     Edit/Delete  Reply  Address

  3. miya 2006/04/13 12:26

    대단해요..일곱살짜리가 그런생각을 해내다니....대단한 아들이에요~

     Edit/Delete  Reply  Address

Leave a Reply

트랙백1 Tracbacks (+view to the desc.)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lsj/trackback/102
  1. Subject: 손가락과 코와 입에 대해 함구하기로 결심함 Tracked from 2006/04/14 02:07

    쭌모님의 [손가락에 붙은 일회용밴드] 에 관련된 글. 손가락과 코와 입에 대해 함구하기로 결심함

Newer Entries Older Entr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