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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12.30 - 단상.

 

이종영,[총체성과 개별성][[성공회대논총]],2004 하반기, p287-288

 

"그렇다면 헤겔-맑스와 대립하는 루카치의 정치적 입장은 무엇인가? 한 개인의 고유한 개별성을 부정하고 그에게 사회적로 부과된 특수성들만을 강조하는 루카치의 정치적 입장을 스탈린주의를 그 한 형태로 도출시킨 레닌주의적 성격의 것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의 규정성의 진리, 즉 생산양식의 진리를 전체적 진리와 동일시하는 실천적-정치적 입장에 의해 레닌주의를 특징지울 수 있다면 말이다루카치의 정치적 입장은 개인성을 특수성으로 환원시켜버리는, 그리하여 개별성을 개인성에서 축출시키는 아주 위험한 것이다. 과연 한 개인이 그에게 외적으로 부과된 특수성들로 환원될 수 있을까? 노동자는 단지 노동자이기만 할뿐이고 또 자본가는 단지 자본가이기만 할까? 그들은 자신들의 개인사적 역경속에서 형성된 풍부한 개별성을 가진 존재들이 아닐까? 물론 루카치는 ‘구체적 특수성’을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 특수성이 특수성이길 멈추고 개별성으로 고양되는 것은 아니다. 몇 가지 외적 규정성을 가지고 전체를 판단하는 것은 그야말로 폭력적이다. 크메르 루주의 파국을 불러온 것도 바로 그러한 태도이다."

 

이부분을 읽다가, 농성장이 떠올랐다.

농성장의 한국인 활동가들의 활동방식과 교육내용은 이주노동자들을 이주노동자라는 특수성 속에서만 파악하여 투쟁하는 기계로서만 사고한다. 그들에게 이주노동자는 특수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고유한 내면을 가진 개별자로, 한 인간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오직 하층 계급의 특수성을 대변하는 투쟁의 전사들로만 그려질 뿐이다. 만약 투쟁 전사의 이미지에서 어긋나게 된다면 이주활동가들은 황당한 냉대를 감수해야 한다.  

 

'노동자, 노동조합'은 그들에게는 진리다.

그들만의 진리를 강요한다. 그래서 난 그들이 너무 숨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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