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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악, 초조, 분노로 뜨고 지샌 새벽

  • 등록일
    2006/07/10 18:49
  • 수정일
    2006/07/10 18:49

이 모든 일이 하루 밤에 다 일어났다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불판팀("철조망을 불판으로!"의 별칭. 대추리 촛불집회 때 구X구의 발언으로 붙게 된 대추리 연대팀의 이름. 당시 ,구X구씨는 황새울 들판의 철조망을 삼겹살 구워먹는 불판으로 만들자는 발언을 남김)과 함께 평택에서 대추리로 들어가는 토요일 평화행진에 참가하기 위해 7시 평택역 앞 광장에서 모였다. 힘들게 나흘간의 일정을 마친 전일참가자들은 피곤하면서도 결연한 모습이었다. 한 시간 남짓 집회를 마치고 드디어 출발. 군문교를 지나면 나오는 주유소에서 잠시 휴식. 선발대 몇 명이 안정리 상인아라고 밝힌 몇몇의 사람들에 의해 구타를 당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들이 이쪽으로 각목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

 

뜻하지 않은 휴식이 길어지자 불판팀의 윤x이 평소에 갈고 닦은 현란한 춤솜씨를 사람들 앞에서 선보이기 시작, 몇 시간 후에 경찰서 앞에서 연행될 자신의 운명을 예견이라도 한 듯, 몸치인 나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멋진 보아춤으로 마무리하자 사람들의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로 답했다. 이런 즐거움도 잠시, 갑자기 각목을 든 술취한 사람들이 욕지거리를 하며 나타났다. 경찰들은 뒤늦게서야 저지선을 만들어 마치 우리를 보호하는 척 했지만, 깡패들이 각목을 휘두르거나 돌멩이를 던져도 전혀 그들을 연행해가지 않았다. 저지선 위로 돌멩이들이 날아오고 있는 와중에 옆에 있던 여성이 돌에 맞아 가슴을 부여잡고 아파하고 있다. 갑자기 팍팍 터지는 소음. 달걀 공격이 시작되었다. 돕은 안경 쓴 열굴 정중앙을 달갈을 맞고 놀람과 분노가 범벅이된 표정을 짓고 있다. 그게 돌이었다면 정말 큰일날 뻔한 상황. 점점 저지선은 우리쪽으로 좁혀온다. 머릿속에서 계속 다치지 말아야해, 다치지 말아야해를 되뇌인다.

 

결국 평화행진단은 평택역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굴욕적인 후퇴였지만 술취한 난동꾼들과 이를 방관하는 경찰들의 앞에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우리가 돌과 각목을 든다면 아무리 자위라고 해도 평화행진이 폭력행진으로 변질될 것이 뻔하므로. 

 

한편 평택집회에 참여하고  마을로 돌아가던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차량을 원정3거리에서 경찰이 막아섰다. 함께 간 농활대들이 마을로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을을 점점더 고립무원의 상태로 만들려는 경찰의 수작인 것을 알기에 주민들은 노숙도 불사하겠다는 각오로 마을에서 이불보따리를 들고나왔다. 이 소식을 듣고, 평택역으로 돌아온 우리들은 항위하기 위해 한밤중인 2시경에 경찰서로 향했다. 경찰서 앞에 앉아 "평화행진 보장하라", "불심검문 중단하라"는 구호를 열심히 외쳤다. 사회자로 앞에 선 아랫집 용석이의 멋진 발언들이 내 마음속에 알알이 박혔다. 자신이 연행될 것을 알았는지, 평소 닦아둔 비폭력의 신념을 감동적으로 설파했던 그의 발언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결국 경찰은 우리에게 질 수 밖에 없다. 비폭력 상상력으로 넘쳐나는 우리들의 자발성과 창조성앞에서 위계와 명령 속에 같힌 그들은 무력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곧 재판을 받고 구속될 병역거부자이기도 하다.

(이 글을 쓰는 지금 그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

 

경찰이 자진해산하려고 하는 우리를 덮치기 시작하고 우리들은 삼삼 오오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전경들은 마치 게슈타포가 유태인을 추격하듯 우리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헐레벌떡 옆길로 빠진 나는 직감적으로 전경과의 달리기에서 내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앞에 가는 두 명을 따라 무작정 건물로 뛰어들어갔다. 건물 맨 윗층으로 올라간 우리들은 화장실처럼 보이는 문을 열고 그 안에 숨었다. 좁은 공간 안에 꽉끼어 앉아 숨소리를 죽이고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저기 잡아, 저기"하는 경찰의 외침과 그들의 발자국 소리. 혹시나 이 건물에 들어와 수색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갑자기 문밖에서 여자들이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주변을 살펴보니 우리가 숨은 곳은 세면실. 누구라도 언제고 이 곳에 들어올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누가 문을 잡아당긴다. 좁은 세면실에 옹기종기 앉은 얼굴 세개를 발견한 그 여성은 얼마나 놀라고 황당했을까. 다행히 그는 밖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고 있었고 우리의 처지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다. 그는 자기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녀의 친절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됬다.

 

흩어졌던 우리들은 하나둘씩 민노당사에 모이기 시작했다. 상황을 파악한 결과 40명이 넘은 사람들이 연행됬다. 나와함께 간 불판팀 7명이 포함되어 있다. 11명이 간 중에 7명이 연행된 것이다. 비xx이 잡혀가다 실신했다고 소리도 들리고, 구x이 엄청나게 얼굴을 맞았다는 얘기도 들린다. 부채를 든 어떤 여자가 머리채를 잡혀 끌려가더라라는 얘기에, 그게 썩XX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상황은 처참하고 악랄했다. 보는 사람이 없는 오밤중을 틈타 경찰은 온갖 인권침해사 범벅이된 연행을 감행한 것이다. 숨었던 사람들의 무용담들도 제각각이다. 학교에 숨어있었다는 사람, 끌려가다가 도망쳐나온 사람 등등.  낮에는 술취한 상인들 뒤에 숨어 그들을 돕고, 밤에는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며 인간 사냥을 하는 늑대로 변신하는 저 공권력 앞에서, 물리적 힘으로는 결코 그들을 당해낼 수 없다는 무력감과 좌절, 쓰디쓴 패배감이 민노당사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얼굴위로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밤을 새고 다음날 예정된 평화행진을 시작했다. 다행히 별 충돌은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늘 천진무구한 문정현 신부님의 멋진 발언. 장장 5일 동안의 행진을 끝낸 지킴이들의 감격과 눈물. 마지막에는 노래를 부르며 손에 손 잡고 동심원을 그리며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경찰들이 앞 뒤로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그 전날의 악몽의 깊이 만큼 감동 속으로 너울너울 춤추며 빠져들어갔다. 지난 밤의 패배감과 좌절감을 딛고 마라톤 같은 비폭력 평화행진을 이렇게 극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환영이 스쳤다. 전경들이 마음 한 구석에서, 우리의 노래에 구보를 뛰고, 우리의 춤사위를 따라 정렬을 맞추고,  마침내는 마음의 감옥에서 뛰쳐나와 실제로 우리와 함께 손잡고 춤추는 모습들..  그들은 우리를 막고, 에워싸고, 고립시키고, 억압하는 전술을 택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무장을 스스로 해제시키는 전술을 쓴다. 우리의 리듬에 군화 속에서 몰래 까닥이는 발짓 그리고 눈짓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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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집을 모두의 집으로!" 프로잭트여 영원하라!

  • 등록일
    2006/07/03 21:59
  • 수정일
    2006/07/03 21:59

::님의 [빈 집 꾸 미 기 - 3 rooms] 에 관련된 글.

원래는 문짝도 뜯겨져 나가고 창문도 깨지고, 바닥에는 왠같 잡동사니들이 나뒹굴던 집.

쓰레기들을 모아 버리고, 깨진 창문의 유리들도 치우고,

화장실 변기에 그득했던 덩도 치우고,

바닥 물청소, 깨진 유리창에 비닐 씌우기,

페인트로 방 꾸미기, 동네에 버려진 갖가지 가구와 소품들 모우기,

이틀동안의 작업으로 멋진 집 탄생.

 

프로젝트 "빈 집을 모두의 집으로!"가 다른 팀들에 의해서도 퍼져나가기를...

구더기가 꿈틀대는 덩을 치워준 사이에게 스페셜 땡스를 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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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갑시다!!!

  • 등록일
    2006/06/28 00:13
  • 수정일
    2006/06/28 00:13

미친꽃님의 [[평화를택하라]평택에 가서 빈집을 꾸밉시다.] 에 관련된 글

 

그동안 한번은 가야지, 한번은 가야지, 하면서 미뤄왔던 분들,

 

대추리는 계엄상황이니까 검문이 심해서 못들어 갈거야 하며 지레 포기하신 분들,

 

아는 사람이 없어서 뻘쭘해서 못오셨던 분들,

 

주중에는 학교나 일때문에 못오셨던 분들,

 

큰 집회때마다 꼭 일이 생겨 오지 못했던 분들,

 

새로운 액션이 목마른 분들,

 

대추리에 빈집 꾸미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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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을 꾸밉시다!!!

  • 등록일
    2006/06/22 18:18
  • 수정일
    2006/06/22 18:18

http://www.stopcrackdown.net/peace 에 올린 내용

 

 

7월에 들어가면 정부에서 먼저  빈집들을 부수려고 올거에요.
은 7월 중순 정도에 애들이 들어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함께  빈집을 꾸미는 작업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머물렀던 지키미집 옆 집이 지금 비여있는 상태인데요.
굳이 돈 들여 유리창을 달 것 없이. 비닐과 모기장으로 창문을 씌우고,
널브러진 쓰레기를 모아 버리고,
이것저것 각자 가지고 올 수 있는 물건들을 갖다 놓는 거지요.
앞에 푯말을 달고 앞으로 우리가 머물 숙소로 만들어요.
날짜는 직장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다음주 금요일에 들어가서 2박 3일 정도 잡고 작업을 하면 될 것 같아요.


빈집을 꾸며서 철거에 저항하고,
그 집을 우리 밴드연습실겸 숙소로 만들고,
일석이조이며 꿩먹고 알먹기의 비폭력 직접행동이라고 생각해요.
어느정도 필요한 비용을 피자매에서 제공할 생각이 있습니다.
---------------------------------------------------------------

<제안요약>

지킴이집 옆 빈집을 꾸미자!

날짜: 6월 30일(금)  밤~ 7월 2일(일)

준비물: 빈집을 꾸밀 각종 도구와 집기들, 각자 먹을 것, 혹은 요리재료

금요일 밤에 모이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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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내 안에 들어온 제3세계

  • 등록일
    2006/06/22 01:37
  • 수정일
    2006/06/22 01:37

-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기고한 서평 -

 

내 안에 들어온 제3세계 -굶주리는 세계 (창비)


 나에게 처음 제3세계는 동네 구멍가게에서 서성거리는 검은 피부의 외국인으로 낯설고 두렵게 다가왔다. 두 번째는 서투르지만 한국말을 곧잘 하고 김치도 잘 먹는 신기한 이방인으로, 세 번째는 “강제추방반대”, “노동비자쟁취”라고 쓰인 붉은 띠를 두르고 준엄한 눈빛으로 이 사회를 노려보는 투사로 다가왔다. 지금은 그저 보통 남자인 남편으로 내 옆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세계는 여전히 나에게 수수께끼이고, 가장 밑바닥에서 내 존재를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표면에는 떠오르지 않는 경계 밖의 그 무엇이다.



가장 큰 수수께끼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달랑 옷가방 하나 들고 고향을 떠나, 아는 사람도 없고 더욱이 말도 통하지 않고, 음식도 맞지 않는 그런 낯선 나라의 대도시로 떠나게 하는가? 그리고 무엇이 온갖 차별과 탄압, 강제추방의 공포를 감수하게 하는가? 이렇게 쫓기는 것 보다 고향에서 사는 것이 더 싫은 이유는 뭘까?

그런 와중에 떠난 인도, 방글라데시 여행은 제3세계 현실의 표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계기가 되었다. 말끔한 옷을 입고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이편에,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기 위해 세워진 철조망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람들이 저편에 있는 현실, 상상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심한 대기오염 속에서 에어콘을 단 외제차량 안에 느긋하게 앉아있는 사람이 이쪽에, 그리고 차가 정지하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차창을 두드리며 구걸하는 얼굴들이 저쪽에 있는 현실. 가난이 단지 남루한 것이 아닌 생존 그 자체의 문제인 저쪽. 그리고 그들을 풍경처럼 지나치는데 익숙해져버린 이쪽의 무관심과 냉담.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만난 자히드는 한국 기업도 대거 진출해있는 자유무역지대의 노동착취 공장의 비극을 얘기해주며, “돈 없으면 굶어 죽는 정글세계”라고 자기 나라를 묘사했다. 이주노동을 떠나는 사람은 그나마 나은 형편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우연히 서점에서 집어 든 책이 창비에서 나온 굶주리는 세계였다. 전 세계의 식량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단체인 푸드퍼스트(원래 명칭은 식량과발전정책연구소 Institute for Food and Development Policy)가 펴낸 이 책의 한국어판 서문은 멕시코 깐꾼에서 생을 마감한 한국 농민 이경해씨에게 바쳐지고 있다. 굶주림이란 무엇인가로 시작되는 이 책은, 굶주림의 가장 밑바탕에 있는 국면이란 자기 삶을 통제하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할 수 없는 무기력이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왜 세계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무기력한 굶주림의 상황에 빠져 있는가? 이 책의 대답은 간단하다.


분명 먹을 것이 모자라서는 아니다... 지금 세계는 먹을 것으로 가득하다. 자연재해 탓도 아니다. 가장 단순하게 말하자면, 굶주림의 근본 원인은 식량과 토지의 부족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부족에 있다.


여기서의 민주주의는 외형상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아닌 토지와 식량 접근권에 대한 민주주의이다. 즉 가장 가난하다고 알려진 나라에서 조차 모든 국민들을 충분히 먹일 수 있는 식량이 있고, 심지어 식량 수출량이 수입량보다 현저하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식량에 대한 접근권이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어서 대량의 굶주리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굶주림의 원인에 관련된 여러 ‘신화’들이 굶주림의 진짜 원인들을 가리고, 그것을 종식하는 데 가장 큰 장애가 된다. 따라서 이 책의 대부분은 굶주림의 진짜 원인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신화들을 분석하고 깨는 것에 할애된다. 그 신화의 목록은 우리가 주류언론으로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온 것들이다 ‘식량이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해야 한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인구를 줄여야 한다’, ‘시장과 무역의 자유를 보다 확대하면 식량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 된다’ 등등. 특히 굶주림을 종식하겠다며 자유무역을 주도해온 WTO와 FTA가 오히려 굶주림을 더욱 광범위하게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며 남미와 멕시코를 일례로 조목조목 따지는 부분은 지금 한창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더욱더 귀 기울여 들어야할 얘기다.

부유한 사람들은 점점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지는 세계화되는 현실의 문제. 그 세계화 속에서 나는 그들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그 가난에 어떠한 책임을 지는가? 이러한 문제제기는 결국 가장 밑바닥에서 현대의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자기 성찰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우리 안에 들어온 제3세계와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민주화운동의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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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 하나가 아닌 길들

  • 등록일
    2006/06/19 22:00
  • 수정일
    2006/06/19 22:00

검은사슴님의 [불심검문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에 관련된 글.

원정삼거리에서 막혀 친구의 말대로 야산을 타 넘다 걸렸다.

전경 예닐곱이서 친구 하나와 나를 둘러싸고 막고 있으면서

점점 어두어질수록 우릴 들어내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른다.

말싸움과 실랑이를 하다가도,

우리는 다소 유유자적하게 길가에 앉아서 껌도 씹고,

브이를 그리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비록 식량은 없으나, 우리를 따듯하게 해줄 침낭이 있으니

하루 이 길위에서 전경들에 둘러싸여 밤이라도 새면 어떠하리...라는 태도로...

(사실 마음 속에서는 실패를 되뇌이며 언제 빠져야할지를 고민하고 있었음)

 

아쉽게도 우리 힘이 아니라, 주민분이 차로 우리를 데리러 와서 대추리를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길 위에서의 40분은 잊지 못할

비폭력 직접행동으로 기억될 것같다.

 

이번 대추리 범국민대회에서 느낀 것은,

꼭 "이 길"이 다가 아니라는 것.

그날밤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들어온 친구들이

바로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길을 잘 몰라 헤메다가 주민분의 탑차 짐칸에 실려온 친구,

대회 당일날, 도두리 근처 논길을 헤메다 역시 마을분의 트랙터가 이들을 발견하고

데리고 와준 덕분에 들어온 친구,

우리처럼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들어온 케이스.

비록 경찰에 연행되긴 했지만 안성천을 따라 고무보트를 타고 들어온 기발한 13인의 이야기,

많은 사람들이 느낄 것이다.

황새울의 길은 "이 길" 하나가 아니었다는 것을...

무수히 연결된 논길의 네트워크를 따라

다양한 사람들이 때로는 징을 치고, 때로는 탬버린을 두드리며 들어온다.

 

친구들과 함께 빈집에서 버려진 그릇 등의 집기를 주워 두드리며 공연을 했다.

각자 자신이 찾아낸 악기로 연주하며 리듬을 맞추는 행위도

'이 길' 하나만이 아니라는 비폭력 상상력이 빚어낸 멋진 직접행동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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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대추리

  • 등록일
    2006/06/14 01:46
  • 수정일
    2006/06/14 01:46

작년 늦 가을 대추리에서 곤이 찍은 사진들이 피자매 사진게시판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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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뺀 마이그런트들의 축제를!

  • 등록일
    2006/05/29 23:00
  • 수정일
    2006/05/29 23:00

물론 어떤 기대를 가지고 간 것은 아니었다.

약 3주 전에 다시 한국에 돌아온 J와 만나서 수다떨기 좋은 장소를 물색하던 중,

그 친구도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이 있던 차에, 마이그런트 아리랑엘 가자고 했던 것이다.

행사가 열리는 올림픽 공원은 여기저기 부스들이 줄지어 서 있고 북적거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각국의 부스에는 전통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의 모습과 악기들, 전시물들이 전시되어 있고, 나라별 부스를 지나니 법무부와 문화부의 부스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 해 마이그런트 아리랑은 수년동안을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이주활동가들의 목소리는 완전히 배제되고, 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상당히 고압적인 행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몇 이주활동가들은 벽에 몰래 "강제추방 반대"나 "우리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 등등의 구호등을 적어넣기도 하고, 주최측과 정부의 눈치를 보아가며 구석에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

속추방 반대 서명을 받으며 전단지를 돌리기도 했지만,

행사를 보는 내내 치밀어오르는 울분을 삭히며 그들만의 잔치를 구경해야 했다.

 

올해 마이그런트 아리랑은 작년에 비해 더 노골적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한국인이 되라"고 강요하고 있다.

한복은 언제나 빠질 수 없는 아이템이다. 얼굴이 뚫린 인형에 이주노동자가 뒤에서 올라 서면, 한복을 입은 이주노동자 인형이 된다. 스피커에서는 한국을 홍보하는 노랫소리가 흘러나온다. 윤도현인지 누군지가 부른 월드컵 노래도 나온다.  

문화의 다양성은 전시되어 있는 옷가지와 음식들로 간단히 대체된다. 

이런 문화들을 숨긴채 한국 노래를 부르고 김치를 먹고, 한복을 입고, 한국을 사랑한다며 가끔 아첨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이주인들의 현실이다.

모골이 송연하다. "우리는 너희들을 사랑하니까, 제발 여기서 일하게 해줘!" 하며 애원하라고 강요한다. 이건 그야말로 주인이 노예에게 힘을 보여주는 가장 야비한 방식이다.

 

이번 마이그런트 아리랑에서 나를 더욱 아연실색케 했던 것은,

"코리아 드림, 디딤돌이 되겠습니다!"라고 프랭카드를 내걸어 놓고,

가짜 여권과 진짜 여권을 식별하는 법을 가르치는 법무부 부스였다.

한국인이 되라며, 한국인이 되지 못하면 시늉이라도 하라며, 한국 문화에 동화될 것을 요구하는 정부가 정작 이주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보장못하겠단다.  한국인이 되라고 하고서는 진짜 한국 시민으로서의 지위는 주지 않겠다고 한다. 시민의 지위는 커녕 제대로된 노동자의 지위도 못주겠단다. 그저 3년 정해진 공장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고 나가란다. 우리가 필요한 만큼만, 우리가 정해놓은 기간만큼만 너희들은 일해주면 된단다. 더 일하고 싶어도 이 땅에 아예 뿌리 박을 까봐 안 된단다. 너희들의 정주화는 단일민족인 우리의 피를 흐리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단다.

 

이런 조건속에서 정부가 어떻게 디딤돌이 되겠다는 것인가? 그 디딤돌에 올라가다 아래로 떨어지면 꿈이 깨져버린다는 것일까? 얼마전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출입국의 추격을 피해 3층 건물에서 떨어져 죽은 사건처럼...

 

솔직히 작년에도 그렇고 올해도 그렇고, 정부는 그렇다고 쳐도 이주노동자 센터들이나 외노협쪽 활동가들이 이런 행사를 정부 눈치보며 주도하는 이유를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문화적 다양성과 이주노동자들의 존재를 보다 널리 알리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여겨진 걸까? 권력에 기대는 척 하며 권력을 이용해야한다는 그 흔한 구실과 변명에서 일까? 우리의 힘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와 기업에서라도 돈을 받아 뭔가 크고 근사한 것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엘리뜨들이 가진 그런 외양과 사이즈에 대한 강박일까? 아니면 권력을 향한 의지인가? 아니면 단순한 매너리즘인가?

 

어차피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을 그렇게 많이 불러모을만큼 동원력이 없다.

그래서 각종 단체와 센터에 프로젝트들을 맡기는 것이다.

정부가 지원하는 사업을 아예 맡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조건을 붙이는 것만으로 약간의 탈주를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무부의 부스는 차리지 않는다는 조건,

축제가 열리는 그 주 동안에는 단속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

한국문화를 배제하겠다는 조건,

보다 자유롭게 이주노동자들이 참여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내게 해준다는 조건 등등.

지금의 마이그런트 아리랑은 그저 관의 시녀역할을 할뿐이다.

 

약간의 탈주가 시시하다면 그냥 저항하면 된다.

행사장 앞에서, 법무부 부스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하자.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무시하는 마이그런트 아리랑을 당장 중단하라."

"한국인의, 한국인을 위한, 한국인에 의한 마이그런트 아리랑"

"단속추방을 즉각 중단하라" "아리랑 뺀 마이그런트의 축제를 준비하자" 등등

무수히 많은 말들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이번 행사에서 이런 시위를 친구들과 하지 못한 것이 정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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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16대 조상은 한명일까, 두명일까, 그 이상일까?

  • 등록일
    2006/05/27 22:17
  • 수정일
    2006/05/27 22:17

질문에 먼저 답해보시길...

 



일본어 수업을 같이 듣는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질문했다.

 

"사람들이 때론, '내 16대 조상은 엄청나게 높은 관직을 지낸 조선시대의 아무개였다'라고 자랑하며 말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다른 친구가 "아니, 그런 말이 성립이 되나? 16대 조상이 어디 하나냐?" 하며 문제제기에 대해 반문했다.

 

"내 부보는 어머니, 아버지 두명이니까, 그 두명의 부모는 4명이 되지, 그 4명의 부모는 모두 8명이니까... 16대라 그럼 2의 16승이면 얼마냐...."

 

천장을 쳐다보고 손가락을 짚어가며 한참을 계산하더니,

 

"65536명이네. 결국 6만명이 넘는 조상 중 하나가 고관을 지냈다는 얘기네. 흐흠... 내 16대조에도 엄청난 벼슬을 지닌 그 아무개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겠군."

하며 너즈레를 떤다.

 

나도 모르게 16대 조를 한 명 아니면, 할머니 포함해서 두 명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모계를 함께 거슬러 올라가니 정말 기하급수적인 조상들이 생겨난다.

 

이렇게 거슬러가다 보면 오랑케도 내 조상이고, 왜구도 내조상이고, 먼나라 천축국의 여인도 내 조상이 될 수 있겠다. 흠... 나와 내 파트너인 무스타크와도 같은 조상으로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시람은 결국 2의 무한대 승의 조상을 가졌을테니,

우리는 같은 조상의 같은 핏줄인 셈이다.

 

ㅎㅎ 즐거운 궤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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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 속에서 다시 피어나다...

  • 등록일
    2006/05/26 01:43
  • 수정일
    2006/05/26 01:43

님의 [솔부엉이 도서관을 다시 세웁니다] 에 관련된 글.

돕헤드님의 [나도야 간다] 에 관련된 글.

검은사슴님의 [할아부지] 에 관련된 글.


 

14일 인권영화제를 보고 15일의 대추초교를 찍은 사진들이다.

 

 

 

 

 

 

 

 

 

 

이번 주에 다시 들어간 대추리는 저번주에 비해 활기찬 모습이었다.

논에 다시 나가는 마을 분들과 군인들을 향해 선무방송을 시작하는 지킴이들 하며,

다시 도서관을 개관한다며 분주한 헬레나도 보인다.

4일 군부대 투입과 두꺼비가 잡혀가고 난 다음 시들해진 황새울 중창단이

다시 2기 중창단을 꾸리기 시작했다. 중창단에 새얼굴이 보인다.

노래는 여전히 못한다 ㅋㅋ

못해서 즐겁다~~ 그래서 늘 앵콜이다~~

 

몇몇 단체들로부터 기증받은 컴퓨터가 곳곳에 놓이기 시작하고,

검은사슴과 행님(형님 이름 까먹었네)은 평통사앞 쓰레기장 겸 텃밭에 고구마를 심었다.

그날 마을분 한분이 돌아가셨다고 마을 스피커에서 방송이 나온다.

마리아가 책상위에 엎드려 펑펑 운다.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집에 재워주시던 분이시란다.

 

나까이상과 일주일에 한번씩 만나 일어-한국어 교환학습을 하기로 했다.

나까이상은 동네분들에게 인기 짱이다.

카메라를 들고 하루 들어왔다가 딸 것만 따고 나가는 주류 방송사들과는 달리

같이 모판에 흙담고, 비료푸대 나르고 하며 몇개월을 함께 주민들과 함께 하는 비디오 행동가이다. 이젠 촛불집회 앞에 나가 발언도 하고, "밧주르 꽁꼰, 밧주르 꽁꼰, 단다니 무꺼라~" 하며 노래도 따라한다.

 

버스를 타기 위해 나오다 농협창고 앞에서 몇몇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걸 보았다.

옆에 있는 결사에게 물어보니 농협창고를 개조해서 전시회를 한다고 한다.

창고 앞에 근사한 조형물이 하나 놓여있다.

무너진 학교 폐허더미에서 줏어온 철근이 삐죽삐죽 나온 콩크리트들이다.

철근에 호미며 낫이며 빈집에서 모아온 각종 농기구들을 매달았다.

열심히 일하는 예술가와 지킴이들을 뒤로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학교는 무너졌지만

그 폐허 속에서 더 큰 평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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