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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시민의 신문 기사
http://www.ngotimes.net/news_read.aspx?ano=36296
베트남 정부· 국민도 화났다
조선일보 기사 보도 후 현지 독자들 항의 쇄도
당 인사·뚜오이쩨신문 등 조선일보에 공식 사과 요구
프레시안 기사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40060428114329&s_menu=사회
베트남여성연합 주석 "조선일보 기사에 분노"
조선일보 국제결혼 관련 기사에 베트남 여론 격앙
레디앙 기사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782
베트남 신문사, 조선에 사과 요구 서한 보내
정부 인사도 입장 발표…베트남 사회 '들썩'
코리아포커스 기사
http://www.coreafocus.com/news/service/article/mess_news.asp?P_Index=26541&flag=
“베트남은 무시당해도 좋을 나라입니까?”
[베트남인이 조선일보에게 2] 현지인 레탄동씨의 분노
민중의 소리 기사
http://www.voiceofpeople.org/new/2006042842184.html
한국의 인격모독 국제결혼행태에 베트남인들 분노
난생처음 신문사에 편지를 씁니다. 그러고 보니 베트남에서도 신문에 그 흔한 독자투고조차 해본 적이 없네요. 그런 제가 이렇게 펜을 들려니 가슴도 떨려오고 어떻게 말문을 열어야 할지 당혹스럽지만,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을 배우려고 했던 베트남 청년으로서 답답한 심정을 마음속에 불만으로만 쌓아두거나 베트남 사람끼리 모여서 한국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푸는 것보다는 이렇게 편지로 쓰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참고로 저는 호치민대 한국학과를 졸업했고, 한국에서 1년간 유학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에 보내는 편지
레 탄 동(Le Thanh Dong, Goodwill대표)
한국에는 수많은 일간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조선일보를 가장 많이 보더군요. 제가 아는 몇몇 한국 친구들은 조선일보를 욕하면서도 아침이면 빠짐없이 조선일보를 읽는 게 베트남 사람인 저로서는 신기했습니다. 저는 베트남에 돌아와서도 한국어 공부를 위해 인터넷을 통해 자주 조선일보를 읽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4월 21일자 사회면에 실린 채승우 기자의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하게 되었고, 조선일보의 동영상 뉴스도 보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채승우 기자의 문체가 너무도 덤덤하고 편안해서 아무 생각 없이 읽었습니다. 마치 어느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잔잔히 보여주는 듯했거든요. 그런데 기사를 다 읽고 나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기사를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고, '거짓말을 쓴 건 아니지만, 도대체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거지?' 점점 의구심이 깊어졌습니다. 저는 꼼꼼히 이 기사를 다시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 베트남 여성들은―채승우 기자는 베트남 '처녀'라고 표현하셨더군요―희망의 땅, 한국에 가려고 아침부터 제단에 향불을 피우고 좋은 남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비는데, 한국 남성들은 “아휴, 미안해서 어떻게 골라요” 하면서 면접까지 포기하는구나…… 베트남 여성들은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한국식 예절에 따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한국 남자들에게 선택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면서 초조해하는구나…… 동영상에 나온 기자수첩을 보니까, 채승우 기자의 말대로, 한국결혼중개업체인 시클로 회사는 베트남 신부뿐만 아니라 한국 신랑까지 에이즈 검사를 받게 하는 공정하고 세심한, 참 좋은 회사구나……
그런데 기사와 함께 실린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가난을 탈출하려' 한국에 목을 매는 베트남 여성들의 얼굴은 보면 누구인지 알 수 있게 또렷이 실려 있는데, 그들을 '가난에서 구원하는'착한 한국 남성들의 얼굴은 최대한 가려주려고 애쓰는 조선일보의 그 겸손한 노력이 안쓰럽기까지 하더군요.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 보았던 광고들이 떠올랐습니다. '준비된 베트남 신부, 마음만 먹으면 가능', '노총각, 재혼하실 분, 자식 때문에 재혼 못 하시는 분, 장애인 환영', 심지어 길거리에 나붙은 플래카드에는 '베트남,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6개월쯤 살아보다 마음에 안 들면 갈아치워도 됩니다', '집을 잘 봅니다' 등등의 문구까지 있었습니다. 시클로를 비롯한 한국결혼중개업체들의 홍보 사이트에 들어가 보니 우리 베트남 여성들의 사진과 인적사항까지 친절하게 올려놓고 여러 가지 장점을 소개하고 있더군요. '필리핀, 중국 여성과는 달리 베트남 여성은 체취가 좋다', '몸매가 세계에서 최고다', '베트남 남자들은 게을러서 농촌에 가보면 여자들만 일을 한다, 베트남 여성들은 고생을 많이 해서 고생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한국 농촌에 가서 일하는 것도 겁내지 않는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잘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제 친구 응언의 얘기는 이렇게 이뤄진 결혼이 어떤 비극적인 결과를 낳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제가 한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어느 여성센터로부터 통역을 도와달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친구가 응웬 티 낌 응언(Nguyen Thi Kim Ngan, 18세)이었습니다. 고향이 메콩인 그는 한국에 시집가면 자신의 병도 고칠 수 있고, 집안도 도와줄 수 있다는 말만 믿고 중매 아줌마를 따라 호치민시에 왔다고 합니다. 그의 부모님은 딸을 한국 남성에게 시집보내는 대가로 단지 300불을 받았을 뿐이지만, 응언에게는 한국에 가서 나 하나 희생하면 고생하는 우리 부모와 가족을 도울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응언에게 한국은 채승우 기자의 말처럼 '희망의 땅'이 아니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남편이 무서웠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사는 한달 동안, 낮에는 남편과 함께 빵집에서 일을 하고, 밤에는 창고에서 지내야 했답니다. 남편이 창고에 들어오는 밤이면 무서워 이리저리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목욕도 하지 못하고, 몸이 아파도 병원에 갈 수도 없고, 부모님께 전화도 할 수 없는 절망의 나날들이었다고 하더군요. 머릿속에는 오로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고, 도망을 가려다 남편에게 들킨 뒤로는 남편의 성난 얼굴이 너무도 무서워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답니다.
한국 생활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는데다 자살기도까지 하자 남편도 응언과 이혼하기로 했던 모양입니다. 남편은 응언에게 결혼반지, 심지어는 먹던 약까지 다 놓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한국말도 할 줄 모르는 응언을 어느 버스 정류장에 내려놓고 사라졌습니다. 응언은 근처 시장에서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채 비를 맞으며 혼자 서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응언을 발견한 어떤 아저씨가 응언을 그 여성센터에 데려다 주었다고 하더군요. 결국 시민단체인 <나와우리>의 도움을 받아 비행기 표를 마련했고, 마침 유학생활을 마치고 고국에 돌아오는 길에 제가 응언을 데리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 가서 가족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이혼녀가 되어서 돌아온 응언은 아버지를 뵐 면목이 없다고 했습니다. 주저하는 응언의 손을 이끌고 그의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소식을 듣고 고향인 메콩에서 호찌민으로 올라온 응언의 아버지는 다만 눈물을 쏟으며, 응언을 다시 베트남으로 돌려보내준 여성센터와 시민단체 <나와 우리>에 고맙다는 말만 계속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한국에 있을 때 제 주변에는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대체로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하다'는 내용이었지만 솔직히 저는 그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알 것만 같습니다. 조선일보의 기사는 처음부터 끝까지'가난 탈출'을 국제결혼의 유일한 동기로 강조함으로써 베트남 여성을‘돈을 목적으로 결혼하는 사람’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과 사진 처리 방법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일보는 베트남 여성들의 인권을 무시되어도 좋은 것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우리 베트남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여성을 무시하는 것은 곧 베트남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이 한국의 언론에 의해 함부로 무시당해도 좋은 나라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요즘은 인터넷 시대입니다. 베트남에서도 조선일보에 어떤 기사가 났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베트남을 약한 나라, 만만한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기사를 실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시 강조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이후 어렵사리 다시 쌓아 온 두 나라 사이의 우호관계를 위해서라도 이에 대해서 어떤 식이든 대답을 해 줘야 하는 것이 조선일보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답장을 기다리며 이만 줄입니다.
오늘 조선일보앞에서 베트남 유학생들의 항의 기자회견이 있었습니다.
지난 금요일(21일) 사회면 기사에 대한 것이였습니다.
기사의 카피는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한국으로"입니다.


사실 좀 황당한거죠. 웬 왕자님???
제가 잘아는 베트남 유학생인 한친구는 이날 아침에 이 기사를 보고 하루종일 머리가 띵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뭔 생각으로 이런 기사를 썼는지 그 기자의 머리속이 궁금해 졌습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나와우리라는 시민단체에서 이 기사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조직했구요,
오늘 베트남 유학생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나중에 듣자니 이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가 나와서 개인적으로 미안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인 사과는 당연한 것이고 조선일보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해야 하는데 물론 안하겠지요.
어쨌든 이 문제는 아마도 생각외로 커질 듯 합니다.
베트남의 유명한 일간지인 한신문에서 공식적인 기사가 어제 나왔구요 앞으로 후속 보도기사가 나올 예정이라고 합니다. 좃선일보 너네 딱 걸렸어!!
***에피소드 하나...
위의 사진 중에 조선일보 입구에서 일인시위하는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위 아저씨가 나오더니 자기네 건물이라고 찍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게 어딨냐 찍겠다고 했더니 마구 막더라구요. 그럴때 일수록 흥분하지 말아야 하는데 괜히 흥분해서 대판 싸웠습니다. 이 아저씨가 미운게 아니었는데...쩝....
이날 기자회견과 관련된 기사가 시민의 신문에 났습니다.
http://www.ngotimes.net/news_read.aspx?ano=36228
그리고 이 기사에 대한 베트남의 유학생의 편지가 기자회견에서 발표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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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베트남 여자다
작성자 : 응웬티흐엉센Nguyen Thi Huong Sen(응웬티흐엉센, 나와우리 회원, 서울대 사범대학)
나는 베트남 여자다. 오래전에 한국에 와서 이 나라의 문화, 풍습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 외국인 중 한명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주변에서 “한국 사람에게 시집왔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고, 이 때문에 불쾌함을 느낀 적이 많다. 그래서 택시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 한국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게 된다. 내게 질문을 하는 사람들 십중팔구는 내가, 아니 나와 같은 베트남 여성들이 전부다 ‘한국에 시집왔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싫다. 정말로 싫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는) 불행히도 한국에 시집오는 베트남 신부들은 나날이 많아지고 있다. 베트남에서 방영하는 한국 방송 프로그램들이 많아지면서 베트남 신부 수도 급증하고 있다. 이것은 베트남에서 한창 뜨거운 한류 열풍, 그리고 양국의 활발한 외교 관계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든 주변에서 점점 더 많이 베트남 신부 이야기를 듣게 된다. 처음에는 같은 나라 여성으로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 중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종종 있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아침, 난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평소 나를 아껴주시는 한국 분이 보내신 건데, 그 내용은 조선일보에 난 <베트남 처녀들 “희망의 땅, 코리아로”>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한 것이었다. 기사 때문에 내가 틀림없이 기분이 나쁠 것이라 생각했던 그분은 이메일에 이렇게 쓰셨다. '혹시나 부끄러워할 것 같아 망설이다가 보낸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단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한국 여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너도 나도 미국행을 부러워했었지. ‘가난은 창피한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단다.'
참 고마운 말씀이었다. 어쨌든 난 이 메일을 보고 인터넷에서 기사를 찾아 읽었다. 그분의 메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사가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기사를 읽기 시작하자 글자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면서 ‘이게 뭐야 ’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기사 제목부터가 꼭 광고 같았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합시다>라고 적힌, 흔하디흔한 플래카드를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너무나 기분이 상했다. 정말로 신문에 실린, 그것도 조선일보에 실린 기사가 맞나 의심될 정도로 불쾌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친한 선후배들이 하나둘씩 전화를 걸어 왔다. "너도 그거 봤냐"고 물어와 “응, 나도 봤다. 기분 나빠서 더 이상 이야기 꺼내기도 싫다”고 대꾸했다. 그런데 친구들은 “종이 신문으로 확인해 봐야 된다”고 했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곧 나에게 스캐너로 만든 파일이 왔다. 기사와 함께 커다란 사진이 실려 있었고, 거기엔 정말로 ‘웃기는’ 설명이 달려 있었다. '한국 왕자님들 우리를 데려가 주오…… '기사의 내용은 정말 심각했다. ‘한국에서 구독률이 가장 높은 조선일보의 기사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누구나 사정을 뻔히 아는, 국제결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한국 남자들을 왕자님이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도 기막혔다. 또한 ‘반지를 교환하고 축배를 드는 간단한 의식의 베트남 결혼식’ 같은 표현을 보고는 한 나라의 문화에 대해 쓸 때는 신중하게 공부한 다음에 써야 한다는 충고를 하고 싶어졌다. 우리나라의 결혼 문화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물론 국제결혼으로 큰 이익을 얻는 한국측의 비양심적 중개업체와 베트남측의 뚜쟁이들이 중간에 있기 때문에 결혼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는 것인데, 기자가 이렇게 아무렇게나 쉽게 쓰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결혼 의식은 복잡하고 의미 깊은 여러 가지 행사들로 이뤄진다. 한국의 결혼 문화와 비교해보면 상대적으로 더 복잡하다. 이것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베트남의 문화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것을 모르고 쓰니 왜곡될 수밖에 없다. 기사를 쓰려거든 제발 공부 좀 하고 나서 쓰라고 말해주고 싶다.
신문에 실린 커다란 사진, 그리고 불쾌한 기사를 한꺼번에 찢어버리고 싶다. 인권침해라고 해야 할까, 여성을 낮게 본다고 할까, 기사 내용이 온통 거짓이라고 할까…… 한국말로 충분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할 말은 하고 싶다.
한국에 시집온 베트남 신부의 수는 통계로 나와 있지만, 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어떤 시련 속에 던져져 있는지 좀 더 자세히, 보다 객관적으로 보도해 주었으면 한다. 언론의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기사를 썼으면 좋겠다.
내 고향도 큰 도시에서 몇 시간 가야 하는 가난한 농촌이다. 얼마 전 고향 사람이 나에게 부탁을 하나 해왔는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를 몰라 마음의 짐이 되어 있다. 마을의 아가씨 한 명이 한국으로 시집을 가고 나서 그 어머니가 매일 울며 지낸다고 한다. 고작 백만 동(한국 돈으로 10만원도 안 되는 금액)을 받고 딸을 한국으로 보냈는데, 결혼해 비행기를 타고 떠난 지 거의 한 달이 지났지만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라 애태우는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그 한국인 사위는 외국인 장인, 장모에게 전화 한 통이라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딸도 처음에는 가난에서 벗어난다는 꿈을 가지고 한국으로 시집간다는 결정을 했을 것이다.
진실한 생각과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 아니냐는 질문을 조선일보의 편집 책임자와 기자들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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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땐 민간인 학살로 베트남 사람들에게 평생 씻지 못할 죄를 짓더니 이제는 이런 말도 안되는 기사로 또다시 베트남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젠 미안해서 베트남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어지는 것 같네요.
불타는 필름의 年代記 또는 聯隊記
이마리오
0. 제안배경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습니다.
대한항공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고-그것도 건국이래 단 두번 했던것을 한해에 해버리고-, 쌀비준안을 농민들의 분신에도 불구하고 통과시키고, 집회에선 시위대를 때려 죽이고, 몇십억 비자금을 건네준 삼성을 무혐의로 처리하고, 황우석에 대해선 배타적 민족주의로 여론몰이하고, 평택에선 농민들을 자신의 땅에서 몰아내려고 하고 있고, 새만금사업은 다시 시작하고, 천성산 터널은 막무가내로 진행되고...
너무나 사건들이 많아 일일이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광기가 이 사회를 지배하고 배후조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사건들이 많기에 너무도 빨리 그리고 쉽게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은 편파적이고 파편적으로만 보도되고 금방 사라지고 맙니다. 도대체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어떠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에선 10대 사건류 식의 보도만으로 일관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사람으로, 그리고 독립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는 사람으로써 이대로 가만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큐멘터리로 이러한 사건들을 엮어 우리들의 생각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하여 프로젝트 작업-이름을 뭐라고 부르든간에-을 제안합니다.
-제안서 초안 중에서
1. 왜 프로젝트 작업인가?
위에서 언급된 사건들을 누군가 혼자서 작업하려고 한다면 2-3년의 기간은 족히 필요할 것이며 무수히 많은 제약들과 한계가 존재할 것입니다. 이러한 제약들과 한계를 어느정도나마 극복할 수 있는 작업방식이 프로젝트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현재의 한국사회를 정확하게 짚어내고 다양한 사건들의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경향 혹은 흐름들을 그 사건의 중심에서 작업을 했던 사람과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시각과 관점들을 이야기하고 모아내는 방식의 프로젝트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이러한 작업을 단기간(?)에 해내기 위해서는 프로젝트 작업방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작업은 이전의 프로젝트 작업(이주 프로젝트, 국보철 프로젝트, 신자유주의반대 프로젝트)의 연장선(각 시기마다 긴급하게 혹은 반드시 이야기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작업을 한다는 의미에서 보자면)입니다.
-제안서 초안 중에서
2. 작업방식에 대하여 - 하나의 장편docu로 작업하자. 왜?
새로운 방식의 프로젝트 작업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이전의 프로젝트 작업이 각 연출자들의 작품을 동일한 주제 혹은 소재를 다양한 입장과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고 펼쳐 놓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되었다면, 이 프로젝트의 경우 펼쳐진 작품들을 하나의 흐름을 갖는 이야기로 만들고자 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각 연출자들의 이야기를 모아서 하나로 보여질 때 갖을 수 있는 일종의 시너지 효과가 존재할 수 있을 거라는 가정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모자이크 혹은 각 부분을 훑어 보다보면 어느 순간 한국사회의 지형도가 그려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는 것이다.
-기획서 초안 중에서
이 작품은 한국의 독립 다큐멘터리 제작자들이 바라본 한국사회의 여러 단면들이다. 과거에 벌어졌던 혹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건들의 단면들을 모으고 재조합하여 ‘지금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어떠한지 그려보고자 하는 첫번째 시도이다.
-기획서 중에서
3. 배급활동에 대한 계획들
특히 이번 프로젝트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배급부분이다. 보다 적극적인 배급에 대한 고민이 프로젝트 모임 초기부터 현재까지 진행되고 있다.
․ 동시다발적이고 집중적인 배급행동을 통해 입체적인 상영회 활동 모색
․ 긴급히 요청되는 상영을 현실화시켜낼 수 있는 네트워크 토대 마련
․ 한미 FTA 저지투쟁과 관련한 사회운동 진영의 대응과 함께 갈 수 있는 상영회 모색
․ 5-6월 집중 상영 기간 설정(5월 15일 - 6월 10일)
1차 : 기존의 공동체상영운동네트워크를 통한 거점 상영화 확보(20여곳)
2차 : 웹 홍보와 사회운동 단위를 통해 진행되는 상영회 확보(20여곳)
4. 내가 프로젝트 전문 감독(?)이 된 이유
독립영화 진영과 사회운동의 연대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것은 독립영화이기 때문에 사회운동과 연대를 하는게 아니라 우리는 이 사회 구성원 중의 하나라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금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현재 한국사회의 민주주의는 분명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이야기하는 현재의 방식이 아닌 구성원 개개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그러한 목소리들이 모여져서 이 사회가 운영되어야 한다고 개인적으로 믿는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나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며, 독립영화를 하는 이들은 독립영화로 그러한 목소리를 내야 하며, 독립영화를 하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위치-일반적인 질서 안에 포섭된 구성원이 아닌 경계에 서 있는 애매한 혹은 자유로운 위치-는 이러한 것들을 누구보다도 쉽고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이러한 것들이 싫은 혹은 체질적으로 안맞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이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최소한의 의무같은 거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생각에서 두번의 프로젝트 작업-이주노동자 인터뷰 프로젝트 &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을 제안했고, 두번째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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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언젠간 이런 사단이 날 줄 알았다니까... 하긴 베트남에 사과하자고 하던 신문사도 베트남 처녀와 국제결혼 시켜준다는 회사의 광고를 실을 정도였으니 뭐 말 다했죠. 정신차려야 할텐데...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