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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하는 애들도 이렇게 하나??


 

 


 

 

 

망할 정부가 내 시간을 뺏는 바람에 미뤄뒀던 음반 작업.

 

재 시동을 걸어 긴급 회의를 소집하고 간만에 연습을 때렸다.

 

 

화이팅! 한지 6개월..

 

 

우리의 '연습' 은.

 

 

음악하는 애들도 다 이렇게 하나?

 

모르지..

 

음악하는 애들중에 우리만큼 노래 못하는 애들도 있대?

 

김종민 같은 애들도 하잖아..

 

그래도 우리보단 잘하니까 가수하겠지?

 

그렇겠지..

 

연습하면 노래방 버젼에서 벗어날까?

 

일단 자동 반주기 버젼 부터 벗어나자..

 

피아노좀 배웠나?

 

국민학교때 학원 잠깐..

 

드럼 좀 만져봤나?

 

TV 에서 치는거 봤지..

 

... ...

 

 

우리 이거 왜 해?

 

니가 하자매..

 

음악하는 애들도 이렇게 하나?

 

몰라 임마. 우리 좀 늦었지만 학원 나갈까?

 

돈 있냐?

 

없지..

 

뭐부터 할까?

 

옛날 항공대 활주로에 앉아 맨날 하던 거 부터.

 

오오. 금방 그거 좋은데? 다시 해봐! 키보드, 기타 좋아!

 

어.. 다시 하라면 못하는데. 어쩌다 놀래서 된건가봐..

 

음악하는 애들도 이렇게 하나? 

 

... ...

 

 

그래도 아까보단 음악 같아 졌다!

 

우리 귀가 낮아진게 아닐까?

 

아냐! 우리노래가 너무 지겨워져서 그런거야.

 

그렇겠지?

 

음악 하는 애들도 이렇게 하나?

 

물론이지!

 

 

 

 

우린 since1996 [길드리기] 니까.

 


소혹성에서 온 어린왕자는, '길들인다' 라는 것은 '관계를 맺는 것' 이라고 합니다. 관계를 맺음이 없이 길들인다는 것이나 불평등한 관계 밑에서 길들여지는 모든 것은 본질에 있어 억압입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을 서로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개의 나무든, 높은 정신적 가치든, 무엇을 공유한다는 것은 같은 창문앞에 서는 공감을 의미하며,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운명의 연대'를 뜻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신영복.

 

 

수많은 갈등과 관계의 홍수속에서 세상 모든 가치와 존재를 온몸으로 '길들이자' 며 구상한

 

조직 [길드리기]의 2006년 프로젝트 '음반??'  ^^

 

 

 

 

크라잉넛이 홍대의 작은 클럽 오디션에서 처음 모습을 나타냈을 때. 

 

4명이 쭈삣쭈삣 한녀석은 드럼을 잡고 나머지 세녀석은 나란히 기타를 잡고 있더란다.

 

"베이스는 없냐? "

 

다 기타를 치겠다고 해가지고..

 

어이가 없는데 막상 연주를 시작한 녀석들. 미친듯이 뛰어 다니며 가져온 악기를 다 부수고

 

나서야,

 

"우리 떨어졌죠? "

 

 ㅋㅋ

 

 

 

삶의 주체가 되자고.

 

진정한 가치라고 말하기 전에 단 한사람도 포기하지 말자고.

 

그러기 위해선 세상 모든 것들을 길들일 설득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그러니까 재미가 없으면 안된다고.  

 

남들 안하는 짓.  

 

궁금한건 해봐야 한다고 약속했다. ^^

 

 

 

 

음악하는 애들도 이렇게 하나?  ㅋㅋ

 

 

 

 

 

    

앗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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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개새끼들은 예쁘기라도 하지.


 

 

 결국 김지태 이장님과 강상원 집행위원장님 구속이 확정되었다.

 

 

 구속 영장 신청한 놈이 손수 실질심사를 하는 지랄을 하더만 꼴에 적부심을 한다고

 

 기대했더니, 

 

 제발로 찾아간 사람 도망갈까.. 아님 전 국민이 다 아는 뻔한 사실 숨길 거라고

 

 가두어 둔다고 한다.

 

 

이 나라 법이 그러하다. 

 

아니 이 나라 법을 집행하는 놈들이 꼭 그러하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이리와! "  하면,

 

혀를 까 뒤집고 도망가고.

 

 

 웃는 낯으로,

 

 " 저리가~"  하면,

 

 꼬리가 뽑힐 듯 흔들어 쩨끼며 달려온다.   

 

 

 

너희 개같은 것들이 말하는 구속의 이유가 무엇이냐.  

 

네놈들 맘에 들지 않고, 나라 해처먹는데 애로사항이 되는 것 말고 

 

법 어느 구석에 그들을 가두라고 되어 있더냐.

 

 

 

법은 천재를 삼킨 학문이요.

 

시대의 선지자들이 투쟁으로 고쳐 입은 역사의 증거이다.

 

법이 없으면 죄가 없듯이, 명확한 법률에 없으면 형벌도 없는 것이다.  

 

 

 

이런걸 죄 형 법 정 주 의 라고 하거든.

 

형이 기분 나쁘다고 패고 말 안듣는다고 패고, 또 어떤 놈은 생긴게 기분 나쁘다고 패면

 

좋겠냐.  네놈들이 그런게 팬 사람들이 4열종대로 운동장 백만 바퀴 아니냐.

 

...

 

 

형이 피곤하거든.

 

...

 

 

에이 개새끼들.

 

진짜 개들은 예쁘기나 하지.

 

 

이 글을 읽어 보고도 그런거면 네놈들은 진정 개만도 못하다.

 



재판장님께
  
  저는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이장 김지태의 어미되는 황필순입니다. 올해로 일흔여덟이고요.
  
  판사님은 지난 6월 5일 스스로 출두하였던 제 아들을 구속할 것인가, 불구속으로 석방할 것인가를 결정하게 됩니다.
  
  지난 6월 8일 영장실질심사에서 결국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을 때 한없이 울었습니다. 내 아들이 한 일이 그렇게 구속해야 하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저의 아들 김지태에 대해서 판사님이 판단하실 때 참고하실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이 귀하고 소중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지만 지태는 제게는 특별한 아들입니다.
  
  뇌염으로 남매를 잃은 끝에 얻은 자식이라 더 없이 소중한 자식으로 키웠습니다. 지금껏 저는 내 자식이지만 욕 한 번 안 했고, 매 한 번 안 들었습니다.
  
  우리 아이들 어릴 때 정미소 집이 제일 잘 살았는데, 그 집에서도 아이들 원기소를 먹이지 않았지만 저는 지태에게 원기소를 사 먹였고, 밥 한 번을 차려 주더라도 꼭 밥상에 차려 주었지 방바닥에 그대로 준 적이 없습니다.
  
  큰 아들도 있고, 지태 동생들도 있지만 다른 애들과는 달리 지태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고, 어떤 일이어도 맘에 들게 해냈기 때문에 예쁜 구석만 있지 눈에 나는 구석은 지태가 나이 50이 다 되도록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농촌을 떠나는 마당에 지태는 대학을 나오고도 부모 모시며 농사짓겠다며 고향 마을에 돌아와 가정을 일구고 동네 어른들한테나 젊은 후배들에게나 신망을 받는 농사꾼으로 살아왔습니다.
  
  대학 다닐 때는 제가 데모에 휩쓸리지 말라고 하면 집에 와 머물다가 가고는 했는데, 지금은 데모 선생이 되었습니다. 내 아들 지태는 이 땅을 일군 어르신들의 뜻을 저버릴 수 없고, 이장이 주민들이 싸우자는데 안 싸울 수가 있냐 고는 했습니다. 주민들의 뜻을 하늘로 알고 있는 사람이 우리 아들입니다.
  
  
  50살이 되도록 눈 밖에 난 적이 한 번도 없어
  
  재판정에서도 자신이 나오고 싶으면 세게 말하지 않아야 하는데도 자신이 한 일이 처벌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제 아들은 여전히 당당했습니다. 재판장에서 우리 아들은 전혀 반성하는 기미 없이 국가 안보 할 거라면서 동두천에 있는 군인들을 왜 빼는 거냐, 미군 1만 2,800명을 감축한다는데 왜 미군 기지를 확장 하냐고 오히려 되물었습니다.
  
  그러니 봐 줄 것도 안 봐주게 생겼다고 우리 할아버지는 걱정이었는데, 이 어미의 눈에는 그것보다도 그 아들이 무슨 잘못을 했다고 포승줄로 묶이고, 또 수갑 차고 법정에 서 있는 모습이 더욱 고통스러웠습니다.
  
  이 땅을 지키겠다고 저 마음은 내 아들의 뜻만이 아닙니다. 여기서 떠난 사람들도 사실은 여기서 죽을 때까지 살고 싶은데 마지못해서 떠난 것입니다.
  
  제가 사는 대추리는 기막힌 역사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오늘의 대추리나 도두리 마을이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대추리는 팽성읍에서 가장 큰 마을입니다. 그러면서도 어느 마을보다도 단합이 잘 되고 인심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습니다. 요즘 농촌 마을은 어디를 가나 황량하기 그지없지만 대추리는 이번 미군기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더 없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우리 마을 사람들은 평생을 미군기지 때문에 고생을 하였고, 미군기지 옆에 살면서 헬기와 비행기 소음에 시달렸고, 심지어는 물까지 미군기지에서 끌어다 써서 물마저 먹지 못한 때도 있었습니다.
  
  미군기지는 우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눈엣 가시 가시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다시 미군기지를 더 넓혀서 미군을 준다고 하니 이 노인네가 미칠 노릇입니다.
  
  
  "주민들에게 미군기지는 눈엣 가시입니다"
  
  판사님,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 마을 얘기를 들어보셨나요? 이번에 미군기지 확정 터로 잡혀 있는 285만평 들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들어보셨나요?
  
  지금의 K-6라는 미군기지가 있는 곳이 우리 애 아빠가 살던 원 대추리입니다.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제국 말기에 일본 놈들이 강제로 쫓아내어 마을을 파괴했습니다.
  
  일본 놈들이 비행장 활주로를 만든 그 옆에 다시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마을 사람들은 전쟁 때인 1.4 후퇴 때에는 한밤중에 미군들이 불도저를 밀고 들어와 사람 사는 집을 밀어버렸습니다. 세간 살이 하나 건지지도 못하고 맨손으로 쫓겨나야 했던 그 겨울 쫓겨난 마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시나요?
  
  겨울 바닷바람이 세차게 불어오던 거기에 땅굴 같은 움막집에서 도저히 사람의 형상이라고는 할 수 없는 모습-두더지 같이 오로지 살기 위해, 자식들을 살리기 위해 근근이 하루하루 연명했던 그 비참했던 시절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큰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판사님, 보세요
  
  이 마을을 이루었던 사람들의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겼던지, 해동이 채 되기도 전에 버려졌던 대추리 앞 바다 갯벌을 메우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라고 먼저 시작할 것도 없이, 그 갯벌에서 언제 벼 한 포기 심어 나락을 걷을 수 있을지 모르는 그 때에도 세간 하나 없던 사람들이 맨손으로 삽 하나, 쟁기 하나 갖고 갯벌을 메우기 시작했죠.
  
  어떤 집은 그 갯벌을 메우는 일에 몰두하느라 아이를 집에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가 나중에 가서 보니 그 아이가 죽어 있었던 기막힌 일도 있었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그 와중에 잃은 집도 여럿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고생하고 나니 그제야 갯벌에서 조금씩 벼가 자라나고, 보리가 자라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기막힌 사연을 모르고는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이 왜 그 땅을 버릴 수 없다고 버티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 농민들이야 땅에 씨 뿌리고, 그 땅에서 벼가 자라고, 보리가 자라게 하느라 애지중지 자식 키우는 것처럼 여름날 땡볕에도 논을 돌아보고 나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는 게 이 동네 농민입니다. 이 땅을 만들기 위해 고생한 얘기야 며칠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입니다.
  
  
  "우리 아들은 이 동네의 일꾼. 타지에서 출세한 아들 부럽지 않아"
  
  제 아들 지태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소 밥 주고,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한 바퀴 돌고, 논에 가서 물꼬보고, 마을 청소를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늦잠을 자는 적이 없었습니다. 초여름에는 날이 새기 전부터 논으로 가서 모를 심고, 가을에는 새벽 2-3시까지 콤바인으로 추수 작업을 했습니다. 농한기에도 항상 바빴습니다. 논에 깔린 볏짚을 묶는 작업을 12월 말까지 하고, 1,2월에는 이장으로서 그동안 못했던 일들, 연말 정산을 하면서 보냈습니다. 리 서기를 6년 한 다음에 이장 일을 보면서 10년 넘게 마을일을 도맡아 해온 이 동네의 일꾼입니다.
  
  저는 우리 아들을 생각하면 타지에 나가 출세한 이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두 아이 잃고 4남매를 농사일을 하며 키워서 남부럽지 않게 결혼시켜서 살게 한 우리 늙은이들이 세상에 더 바랄 것이 있습니까? 손주 녀석들 재롱 보며 이 땅에서 살 때까지 살다가 죽으면 그만인데 이 소박한 마음마저 짓밟으려 하는 것에 이 동네 노인들이 이장인 지태를 중심으로 같이 싸우는 것은 한 마음입니다.
  
  이 땅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라는 동네 어른들 뜻을 좇아서 미군기지 확장 반대운동을 시작했던 그 아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오히려 주민들의 뜻은 한 번도 묻지도 않고, 계획이 다 세워졌다며 어느 날 갑자기 얼마를 보상해주겠다며 몰아내려는 정부가 잘못이죠.
  
  그리고 주민 대표인 김지태가 대화에 나오라고 해놓고는 자진 출두하니 덜컥 구속시키는 것은 도리에도 어긋나는 짓이 아닙니까? 법을 갖고 사람을 우롱하는 것이 아닌가 이 말입니다.
  
  우리 서방님은 올해로 일흔 여덟인데,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시조 경창 대회도 나가고는 하던 그런대로 멋도 아는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들과 함께 데모에 앞장서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 동네 늙은이나 젊은 애들이나 데모로 내모는 것은 정부가 아닙니까? 어느 누가 제 살던 땅을 미군기지로 순순히 내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까?
  
  
  "'그런대로 멋있는' 우리 서방님도 아들과 함께 데모에 앞장서"
  
  처음에는 아무 것도 모르고 나라가 하는 일이니 따라야 하는가 싶었는데, 점점 정부가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알게 되니까 이런 식으로 이 땅을 절대 내줄 수 없습니다.
  
  이 나라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지 어떻게 평생을 미군들에게 시달리면서 살아온 이들에게 다시 미군의 전쟁기지로 땅을 빼앗으려 듭니까. 그리고 이 소중한 땅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키겠다는 사람을 수배시키더니 구속까지 시킵니까.
  
  판사님, 이 늙은 것의 원망은 끝이 없습니다. 글 쓰는 게 힘들어 젊은이에게 대필을 시켜서 하는 말인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아들 무뚝뚝하고 조용한 편이지만 속이 깊은 사람이고, 자신이 옳다고 맘먹은 것은 끝내 포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이들에게도 공부 잘 하라고 한 번 한 적 없고, 고등하교 다니는 둘째 아이랑은 아직도 뽀뽀하고 뒹글곤 하는 자상한 아빠입니다.
  
  우리 지태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도 도망만 다니지 않고 스스로 경찰에 출두해서 조사를 받았던 것입니다. 지태는 불구속이 되더라도 재판정에 나가서 주민들을 대신해서 당당하게 주장할 것이라고 믿지, 어디를 도망 다닌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건 구차한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으려 했지만, 제 아들은 지금 B형 간염을 앓고 있습니다. 두 달마다 초음파, 피검사, 간암 검사 등의 정기 검진을 받아야 합니다. 수배 중이라서 5월에는 검진을 못 받았습니다.
  
  경찰서에 있을 때 며느리가 채혈을 해서 피검사를 했는데, 의사가 바이러스 균이 높은 데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간 경화에서 간암으로 병이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정밀검사를 받는 것이 시급한 상태입니다. 지금도 매일 약을 복용하고 있으나 어미로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판사님, 문정현 신부님이 청와대 앞에서 오늘로 15일째 제 아들을 석방시키라면서 단식농성 중입니다.
  
  몸도 안 좋은 그 신부님은 제 아들이 석방될 때까지는 단식을 풀지 않겠다고 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인 우리 가족들은 그런 신부님의 모습을 보는 것도 너무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래서 지난 번 6월 16일에는 이곳 주민들과 함께 청와대 앞에 올라가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말하는게 구차하지만, 아들은 심각한 B형 간염 앓고 있어"
  
  퇴임 후에는 조용히 농촌에 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겠다는 그 대통령이 왜 우리 농민들의 땅을 빼앗고, 땅을 지키며 농사짓겠다는 아들을 구속시키는지 너무도 원망스러웠습니다.
  
  판사님, 제발 우리 아들을 두 아이들과 며느리, 그리고 이 늙은이들 곁으로 돌려주십시오. 불구속인 상태에서도 충분히 재판은 진행될 것이고, 앞서 말한 것처럼 충실하게 재판에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아들을 의지하고 있는 이곳 주민들 곁으로 돌아오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정부는 저렇게 깡패처럼 군대를 풀어서 우리 농토를 파괴하는 짓을 저질러도 그래도 아직 정의는 살아 있음을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판사님의 바른 판단을 간절히 성모 마리아께 기도하겠습니다. 끝까지 이 늙은이의 호소를 읽어주신 점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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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저작은 생명도 알고 있는 건가요.


 

 

청와대 앞.

 

김지태 이장님의 석방 요구와 신부님 단식을 걱정하는 이들이 모였다.

 

 

노무현 그대도 고향에 내려가 쉬고 싶다고 하지 않았냐고..

 

어머니와 내 자식들의 고향을 지키고 싶다는 내 아들은 왜 차디찬 철창에 있어야 하느냐고..

 

김지태 이장님 어머니의 통곡이 온 하늘과 사람들의 마음에 젖어왔다.

 

 

여러분.. 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를 하겠습니다..

 

 

한걸음은.. 

 

"우리가 좀 더 설득하고 깨우지 못한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으려

 

합니다."

 

또 한걸음은..

 

"그저 바라만 보는 이 땅의 국민들을 향했던 원망을 내려놓습니다."

 

...

 

...

 

 

그들은 몇 걸음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서있기 조차 힘겨운 주민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눈물과 통한의 용서를 토해낼

 

기회조차 가지지 못했다.

 

 

결국 그들에 대한 원망을 내려놓지 못했다.

 

 

 

 

정부는 단 1km 의 삼보일배라도 선례가 되면 안된다고 한다.

 

그들의 안전상 안된다고 한다.

 

 

 

 "가게 해줄때까지 절을 하겠습니다.. 고개를 들지 않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삼보일배를 하길래 선례를 남기지 않으려 하는가..

 

너희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아프고 분노하게 하길래 그토록 두려워 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훔치며 발 길을 돌릴 그 곳.

 

마치 발 길 돌린 사람들 뒷모습에 인사하듯 머리를 조아린 꽃 하나가 있다.

 

 

사람들 한숨일까.

 

길 가에 저 작은 생명도 알고 있는 걸까.

 

 

 

돌아오는 길에 흘겨본 녀석의 허리가 더 숙여진 것 같은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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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보다 많은 길을 갈께..

 

 

 

간만에 집에 내려갔다.

 

 

연세가 드셔 당신 딸도 못 알아보시고, 얼마전 크게 넘어지셔서 다시는 일어나실 수 없다는 

 

외할머니 간병 가신 어머니 부재에 세 부자가 자리를 펴고 앉았다.

 

 원래는 아주머니들이 몫이라는 버섯다듬기. 남자는 구르마를 타고 4단 재배사를 종횡무진 

 

하며 버섯을 따오는 분업을 취한다. ㅋ  

 

 

 방안 가득 버섯을 펴고 퍼질러 앉아 일단 뿌리를 같이한 버섯 송이를 가르고 다듬는다.

 

적당한 크기와 모양새를 가진 놈과 그렇지 않은 놈을 나누고 2kg 종이 박스 안에 display.

 

 

이젠 익숙한 일이지만 요걸 오랜시간 하다보면 머리속 생각이 지워지면서 양품 버섯크기의

 

기준을 놓치지 않으려는 고행에 빠져든다.

 

 

여기에 사묵사묵 말을 거는 아버지의 얘기가 시작되면 필사의 수행에 들어간다.

 

 " 여기서 좀 더 외진 곳에 땅이 나왔는데.. 평당 4만원하는데는 땅은 좋은데 도로에서 너무

멀고 주위에 인가도 하나 없더라. 거긴 너무 무섭고.. 평당 8만원 하는데는 그 땅주인 내외가

사는 집이 가까이 있고 사과나무 200주 정도 심어져 있고 버섯 재배사 기초공사도 되어 있어

서 딱 좋은데.. 얼마나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젠 남의 집 재배사에서 더이상 눈치보면서

일하기도 힘들고, 조립식 주택이나 아님 콘테이너라도 가져다 놓고 내땅에서 집앞에 꽃도

심고 내 일 하면서 죽고 싶은데 말이야..  그 집에 니네들 장가가서 애들 데리고 놀러오고

그러면 좋겠다.. 그때까지 건강해야 하는데.. 에휴..

외삼촌 사업때문에 이렇게 됐지만 올해 안에 얼마정도는 보내줄 수도 있다네.

네 이름으로 땅 사고 할테니까.. 한 5천 정도 대출 받을 수 없니? 외삼촌에게 확인해볼께.."

 

 

 

 

돈 없고..  아프고..

 

지난날 외삼촌 과오에 힘겨웁지만 어머니 상처받을까 말한마디 마음처럼 하지 못하는

 

아버지. 그 아버지 곁에 또한 말 못하는 어머니..

 

그 이름 만으로도 눈물인, 여느 자식이면 어렵지도 않을 작은 소원에 선뜻 대답 하지 못

 

하는 못난 자식 놈들이 비벼대는 내 가족..

 

 

 

욕심없이, 게으르고.. 느리게.. 내 하고 싶은 일, 일하고 싶은 만큼 받는 세상을 향한 외침.

 

결혼과 혈연 가족이라는 관습 거부에 대한 자기 결정권.

 

나에게 있어 이 모든 것이..

 

진정 가진것 없는 내 부모의 마지막 작은 소망에 이르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애꿋은 버섯 뿌리는 카터칼로 짤둥해진다.

 

 

 

젠장. 누가 5천 땡겨줄 사람.

 

젠장. 누구 나랑 결혼할 사람.

 

젠장.

 

 

 

 

내 방 컴 너머엔 작은 창이 있다.

 

약 한시간 남짓 컴에다 하소연을 하고 있는데 창밖으로 쳐진 방충망엔 민달팽이 한놈이

 

그 위에 붙어 맹렬히 질주 중이다.  요녀석 한시간 동안 달린 거리 약 30cm..

 

 

이녀석이 평생 갈 수있는 거리가 얼마나 될까 생각하다가..

 

그래. 너나 나나 아직 가야 할 길이 많구나.

 

 

 

나는 그래도 너보다 많은 길을 다녀봐도 되겠구나..

 

 

고마와. 

 

나 다 해낼 수 있어. 

 

난 달리기도 빠르고, 가끔 천재거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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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간 외로움을 뒤집어 쓴 이를 찾습니다.


 

 

비소리가 음악처럼 들린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똑.똑.똑.똑..

 

주기적으로 차분한 리듬을 치는 소리.

 

똑똑똑. 똑똑. 똑똑. 똑똑똑똑..

 

솔로기타 part.

 

똑.

 

제법 큰 물방울이 떨어져 저음 건반.

 

 

때마침 스피커에선 이자람의 'belle' 가 흐른다.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듯 꾸밈없는 음색과 들릴듯 말듯 피아노가 소담하고..

 

가까운 창에서, 저-멀리 길위에 내리는 빗소리가 'belle' 를 돕고 있다.

 

 

비가 오는 날엔 세상의 무게중심이 낮아진다.

 

젖은 옷이 몸을 잡아당기는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도 그렇게 한꺼풀 내려 앉아

 

어느 누구에게나 매달린 외로움을 만나게 된다.

 

 

그 비를 온전히 맞으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던 외로움으로 온통 뒤집어쓰게 된다.

 

비집고 오르는 잡념은 희석되고 쓸려내려와 발아래 작은 도랑에 먼길을 보내고..

 

다만 외로운 이들에게 소리도 없는 안부를 실을 뿐이다.

 

  

 이시간에도 서울의 중심에서 정자를 지키며 몸을 비우시는 신부님과..

 

 한평도 안되는 우산속에서 끝도 없는 들녘을 바라보는 이들과..

 

 또한 그들을 바라보는 푸른 제복의 사람들과..

 

 

 이땅 억눌린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길..

 

 

 

 

 

 

 

비가 멈추지 않는다.

 

아.. 우울해..

 

 

 

어디든 길을 나서면 외로움을 뒤집어 쓴 누군가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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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을 고쳤어야지.. 쯧.


 

 

나는 정 귀찮지 않으면 버스를 타도 안전벨트를 맨다.

 

오래살려고?  뭐 짜세 안나게 버스 타고 가다가 죽는건 맘에 안들지만, 창밖 구경하며

 

공상하랴 부족한 잠을 청하랴 그 와중에 죽을 걱정을 하고 살진 않는다.   

 

 

사고가 나면.

 

버스가 뒤집혔거나 여기저기 다친 사람들의 아비규환 속 천천히.. 벨트를 풀고

 

상황 정리에 들어가야 한다.

 

 

일단 상태가 심각한 부상자는 밖으로! 

 

내 팔에 매달려 나가는 여기 생명의 은인1.. 저기 생명의 은인2..

 

당신은 날 따라오고! 당신은 저쪽을 좀 맡아 주시오!

 

비상대책위원장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이쪽 재난속 로맨스1.. 저쪽 재난속 로맨스2..

 

후우..

 

 

부상자가 피를 많이 흘려요.

 

도움이 필요해요.  그분은 어디갔죠??

 

 

저멀리..

 

소방차와 의료진이 도착하고 기자들이 몰려오는 가운데..

 

 

이제 우린 살았군요!!

 

그런데.. 그분은 어디갔죠?

 

 

 

흐흐.. ...

 

 

대충 얘기가 이렇게 된다.

 

 

 

그 옛날 대중교통을 혼자 타기 어려웠던 시절. 좀 더 상상력이 풍부했을 그 옛날엔,

 

 

 함장님!  이제 더이상 버틸 수 없습니다!!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자네들 먼저 나가게.. 난 여기 남겠네.. 미사일이 얼마 남지 않았네..

 

 안됩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어서 몸을!

 

  어허.. 이건 명령이야!!

 

 함장님.. 저희도 남겠습니다.. 그럴수 없..  아니!   함장님!   저기..

 

 태권브이가 옵니다.. 흐흑..

 

 

 빰빠라빰빰빰~ 빰빠라빰~ 달려라 달려~  정의로 뭉친 주먹~

 

 

 

- 가끔 심심하면 그러고 놀았단 말이지 -

 

 

 

며칠전 집에 가는 지하철 승강장에서 우연히 올려다본 그림의 전상황! 

 

열차가 도착하고 있는데 다음 배차 차량이 좀더 빠른 속도로 간격을 좁혀가고 있지 않은가.

 

어.. 어.. 이런..

 

앞서오던 열차가 도착을 하는데 전광판엔 단 몇초 뒤면 뒤따르던 열차의 충돌??!!

 

드디어 올게 왔군.

 

 

가방끈을 바투 매고.

 

일단 승강장에 힘 모을 사람들을 파악한뒤. 제길. 막차라 몇안되는군. 

 

저놈은 술처먹어서 상태 안좋고. 

 

탈출구 확인!  소화기 위치 확인!

 

방독면도 있네? 저거 불량이라고 그러더만.

 

제길 충돌하겠어!!

 

 

일단 최초 충돌시 파편이나 후폭풍에 주의해야 해!!!  에잇!

 

 

...

...

 

...

 

 

도착한 열차의 문이 열리고.. 술취한 놈은 유유히 객실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전광판의 두 열차는 충돌해 버렸고..

 

...

 

난 약 3초 뒤에 문닫히는 막차에 올인.

 

...

 

얼마 지나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았다.

 

 

 

 

 

전광판을 고쳤어야지.. 씨..

  

 

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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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멈추지 않으면 되는거야.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를 보는 내내..

 

 머리가 터질것 같은 두통과 토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내야만 했다.

 

 

이러다간 대한민국이 미치기 전에 내가 먼저 요절이라도 할 것 같았단 말이야.  

 

 

그날 이어진 뒷풀이에까지 어지러운 게 가시지  않더니 홀짝홀짝 흘려넣은 술에

 

제법 취했나 보다. 노래방서 '뭐야 이건'을 지르고 먼저 자리잡은 먼지(보라돌이)

 

옆에 그냥 쓰러졌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불꺼진 사무실에 기어들어가 잠을 청하면서,  

 

알 수 없는 편안함이 밀려왔다.

 

어릴적 좁은 방 안에서 모기장을 쳐놓고 들어간 것처럼 그렇게.

 

여리한 모기가 아니면 그 어느 것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하는 작은 공간.

 

'인권에는 양보가 있을 수 없어..' 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사무실이 그 작은 공간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올려다 보기에도 힘겨운 계단을 오르는 저 아이는 그 날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것 같다.

 

 

제 몸만한 가방을 얹고 계단을 오르면서 숨이 찬지 헐떡거리는 통에 무슨 노래를 하는지 

 

알 순 없었지만, 제 키만한 우산으로 한걸음 한걸음 옮겨놓는 것을 보고 있노라니 신기

 

하기도 하고 꼭 내 모양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불타는 필름의 연대기 속 아찔한 나라에서 활동가로 살아 남는 것이..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계단을 오르는 삶일지라도.

 

 

뒤늦게 가지게 된 '활동가'라는 명함과 수많은 사람들의 세포가 묻어 있는 이 공간이

 

저 아이의 우산처럼, 약하디 약한 내게 다른 다리가 되기도 하고 비바람을 막아주기도 

 

한다는 것.

 

 

 

다만, 지치지 않고 헐떡거려도 노래를 멈추지 않으면 되는거야.

 

 

 

 

 

 

오늘밤엔 아드보카트의 태극호에 원톱 공격수가 되어 자살골을 넣는 꿈을 꾸면 좋겠다.

 

골을 넣고 운동장을 졸라 뛰면서 토리랑 먼지랑 세리모니를 하는거야.

 

기자들 모인 곳으로 가서 나란히 난닝구를 까면.

 

 

 "올해도 농사짓자!" 

 

 "차 별 철 폐 !"

 

 "한미 FTA 반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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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月)방 있는 여인숙.


 

 

 

 

평택에 가면. 논에 가지못한 어르신들 낮술..

 

평택에서 나오면. 마음 두고온 이들 눈물의 술..

 

 

집에 오는 골목길에 삼삼오오 앉은 사람들은 선거 후폭풍에 정치를 안주삼아 씹어대지만,

 

오고가는 말들은 벽에 부딪혀 죽어가고.  

 

 

4년전엔 빨간 옷 입은 놈들이 다 친구 같더니만.

 

지금은 파란옷 입은 놈도 싫고.

 

 

연애를 할 땐. 앞질러 가는 버스 창가에 낯선 여인한테도 순간 사랑에 빠질 것 같더니만,

 

요즘 같아선. 쾡한 눈을 하고 있는 년놈들을 보면 시비를 걸고 싶어진다.

 

 

얼마전 태양을 피하고 싶은 놈 미국가더니 31억 집 샀다고 하던 날.  

 

오늘도 무사히 집에 오는 길에.

 

 

 

'달 방 있습니다.'

 

 

그 방에 달이 앉아 "기다렸어.." 할 것 같아서.

 

들어갈 뻔.

 

 

 

머리 굴려 '1개월짜리 방 있음' 이란걸 알아내도.

 

고마와고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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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을 그렇게 만든건 무엇인가요..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면서.

 

 황당한 문장중에 최고라고 생각했던 게 있다.  

 

 

- 똥물에 튀겨 뼈를 발라 먹을 - 

 

 

 

 도대체 무슨 말일까 하는건 둘째치고, 어울리지도 않는 단어를 용감하게도 퍼질러놓고

 

범국민적으로 히트를 시킨 그 장본인의 머리속이 신기하기만 했는데 말이야.

 

 

어제 다녀온 평택의 하늘엔 최고를 갈아치운 황당한 문장이 걸려 있다.

 

 

 

 "정신 미숙아들을 배후조종하는 문정현은 북으로 떠나라"

 

 

 

 내가..

 

 좀 모자르긴 한건 알겠는데..

 

 이거야 원 기가 차서..

 

 

 

물러가라! 도 아니고..  북으로 떠나라.. 라니..

 

 

이런 똥물에 튀겨..  발라먹을..  씨팔놈들이..

 

입에 걸레를 물었나.. 

 

 

할려다가...

 

A4 13장 분량의 욕을 드래그 해놓고 지르려다가 삼켰단 말이지..

 

 

똑같은 놈 될까 말이야.

 

 

 

 

 

 

그렇게 살다가 죽으세요..

 

아니요..   그대들을 그렇게 만든건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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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밤중 총천연색 액션 로망.

 

 조목조목.. 한미 FTA.  

 

 하루종일 아찔한 자본주의에 현기증이 나더니만 평택 촛불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보니 

 어느새 빔프로젝트가 어깨에 걸려있다.  

 

 젠장..    

   

 

 귀찮아 옆좌석에 던져놓고 보니 검은색 가방 아래쪽. 어느 동지인지 모를 발자국이

 

선명하다. 나름대로 비싼 놈 인생이 험하다 싶다..

 

 

 대학에서 영화동아리 재산 1호였던 그녀석 생각이 났다.

 

 

 자막도 없는 희미한 프랑스 영화, 3시간 40분 런닝 타임 롱테이크 흑백의 완전 수면제

 영화, 변증법적 몽타주/딥 포커스/미장센의 교과서적 영화들..

 

 갖은 짜세를 다잡던 녀석에 비하면,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에 밟혀 있는 요녀석 인생이 

 서글프다.  더이상 빼앗길 것 없는 민중들 험한 꼴, 아웅다웅 모양새만 그렇게 밝혀왔

 을테지.

 

 

 너나 나나. 것도 인연일테지. 

 

 

 

 오늘밤 우리 둘이서 놀아볼까?

 

 


 

안녕~

 

....

 

 

 

어떻게 해야해..

 

 

 

 

 

오호..

 

 

 

 

 

69 (Sixty Nine, 2004)

 

 

-시놉시스-----------------------------------------------------------

소녀들을 해방시키자, 페스티벌을 여는 거야!

1969년 큐슈의 서쪽 끝, 나가사키의 사세보북고 3학년생인 켄은 오늘도 평소처럼 청소를 땡땡이 치고 친구인 아다마, 이와세와 옥상에서 매스게임 연습을 하고 있는 여학생들을 훔쳐보고 있다. "뭔가를 강요 당하는 집단은 역겨워…" 아다마의 진지한 말을 듣고 있던 켄은 기다렸다는 듯이 맞장구를 친다. "맞아. 17세 소녀들의 몸에 우중충한 체육복은 안 어울려. 좋아, 그녀들을 해방시키자!"며 영화와 연극, 로큰롤의 종합선물세트인 페스티벌을 개최하자고 한다. 하지만 켄의 선동엔 불순한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물론 인생은 즐거워야 한다는 평소 켄의 신조도 한 몫 했지만 북고 최고의 얼짱인 마츠이 카즈코(레이디 제인)를 여주인공으로 영화를 찍어 가까워려지는 속셈이 있었던 것.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켄의 망상과 함께 계획은 점점 부풀어 오르고, 그 순간 마츠이의 목소리가 켄의 머리 속을 울리는데, "데모하거나 바리케이드 치는 사람, 멋져!" 완전히 충동적으로 켄은 친구들에게 외친다. "바리케이드 봉쇄하자!" 켄과 친구들은 '바사라단'을 결성하고 7월19일 종업식날을 디데이로 학교 옥상을 봉쇄하는 작전을 감행하기에 이른다. 사랑스런 레이디 제인과 즐거움을 위해! 드디어 학교 건물에 내걸린 플랜카드 '상상력이 권력을 쟁취한다!' 결국 바리케이드 봉쇄는 방송국과 신문사를 끌어들이고 경찰이 조사에 나서는 등 일대소동이 되어버리는데…

-------------------------------------------------------------------------------

 

어우.. 이녀석들.

 

놀줄 아네. ㅋ

 

 

 

 

 

 

 

 

조제,호랑이.. 에 나왔던 저 잘생긴 놈 파란 웃음에 넘어가 보게된 영화는 꽤나 유쾌했다.

 

연애 걸고 싶던 여학생 한마디 "데모하거나 바리케이트 치는사람 멋져!"에 한밤중 학교를

접수해버리는 이녀석한테 꼿혀 캔맥주를 하나 따서 건배를 들다!  ㅋㅎㅎ

 

 

 

 

 

 

 

 

 

하루 밤새 학교를 접수하고, 바리케이트를 치고, 교장의 책상에 똥을 싸지르고, 벽이며

복도며 유리창에 휘갈겨진 혁명의 구호들. 

 

 

그들의 결의가 있던 날.

 

 

" 넌 정치에 대해 진지한적이 한번도 없잖아."

 

" 재미있으면 되는거 아냐?"

 

" 대학생들이 우리를 영웅으로 볼꺼야!"

 

"바리케이트 한번 쳐보지도 못한 대학생 놈들."

 

....

 

 

 

하룻밤 대형사고가 실행 되고, 해소되고, 다시 제자리를 찾아 가는 그들의 치기와 축제를

보며, 산만하기 짝없는 내용 전개와 '진지함'에 대한 감독의 메세지에  아쉬움을 호소하다

가.. 그들의 어설픔이 꼭 내 모양이라고. 풋풋하게 던지는 대사가 아슬아슬 칼처럼 다가오

 

다가.. 하릴없는 녀석들의 로망에 웃다가.. 영화는 끝이 났다.

 

 

 

 

 

 

 

 

 

 '재미있으면 되는거 아냐?'

 

 

 그래. 재밌으면 되는거야.

 

 오직 감동이 함께하는 혁명이야 말로 이데아라고 말이야.

 

 

 

 오늘.

 

 괜찮았다.

 

 재밌었어!

 

 

 

 

 

오밤중에 술쳇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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