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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0일
지금까지는 생태관찰을 절기일이나 절기일에서 2~3 정도 뒤에 했는데 이번에는 8월 20일에야 생태관찰을 할 수 있었다. 택견도장에서 얕은 물가수련회와 지리산3박4일 종주를 했기 때문에 거의 열흘간이나 시간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서 절기에는 비가 계속 내렸었다. 장마는 이미 7월 말에 끝났는데 이번 입추 절기 까지 비가 내렸다. 장마 뒤에 더 큰 장마가 왔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아무리 장마 때라도 3일에 1번 정도 밖에 비가 오지 않는데 이 ‘더 큰 장마’ 에는 3일에 2번씩이나 비가 내렸다. 거기에다가 일일 강수량도 장마 때보다 2배 이상 많았다. 이것은 지구온난화가 우리나라의 기후를 온대의 장마가 아닌 아열대지방의 건기와 우기형태로 바꿔놓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런 시기에 우리 집 마당과 뒷산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지난번에 이어 솔뫼도 같이 생태관찰을 하겠다고 나섰다. 방학숙제로 나무열매를 수집하는 것이 솔뫼가 생태관찰에 참여한 이유이다.
사위질빵 꽃이 피었다. 사위질빵의 특징은 잎이 마주나고 세장의 작은 잎이 나오고 잎자루가 길고 줄기가 툭툭 잘 끊어지며 꽃은 7~8월에 흰색으로 피고 꽃차례는 취산상 원추꽃차례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옛날 옛적에 사위를 끔찍이 아끼는 장모가 살았다. 어느 날 사위가 처갓집에 왔다가 함게 일하게 되었는데 마침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이었다. 장모는 다른 사람은 튼튼한 노끈으로 짐을 지워주면서 사위는 힘들지 말라고 줄기가 툭툭 잘 끊어지는 덩굴식물로 가벼운 짐을 지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부추 꽃이 피었다. 부추는 오신채중에 하나이다. 오신채는 다섯 가지의 매운 나물이라는 뜻이고 한자로는 五辛菜이다. 오신채의 종류는 마늘, 파, 달래, 흥거(서역에서 나는 풀), 부추인데 절에서는 이 다섯 가지 음식을 먹는 걸 금한다. 이것을 먹으면 성욕이 생기고 신경질을 잘 내게 되며 입주위에 귀신이 달라붙는 다고해서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오신채 중 흥거를 빼고 고추를 추가할까 생각중이라고 한다.
익모초 꽃이 피었다. 꽃의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니 광대나물과 비슷한 입술모양이었고 꽃받침이 5개로 갈라져있고 꽃이 층층이 달렸다. 꽃 속을 살펴보니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아주 좁아지는데 이 정도 넓이면 나비의 긴 대롱이나 개미 같은 작은 곤충만 꿀을 빨아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꽃을 살펴보다가 꽃에 앉아서 꿀을 빨고 있는 지리산 팔랑나비를 보았다. 지리산 팔랑나비라는 이름은 지리산에서 처음 발견 됐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생김새를 살펴보니 날개는 나방과 비슷한 살색이었고 날개에 그려져있는 줄무늬는 일자 였고 다른 나비에 비해 몸통이 유난히 굵었다. 익모초라는 이름은 翊母草(어머니를 도운 풀)이라는 뜻인데 여기에도 이야기가 하나 얽혀있다.
옛날 어느 마을에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아들이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을 난 후에 몸조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혈액순환이 안 되어 항상 팔다리가 저리고 아팠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항상 의원을 찾아가보라고 권유했지만 어머니는 우리 집에 돈이 어디 있냐면서 항상 거절했다. 그래도 아들은 약초 캐는 노인을 찾아가 약 두 첩을 사다가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효험이 있어서 다시 노인을 찾아가 어머니의 병을 완전히 낫게 할 수는 없냐고 물었더니 쌀 다섯 가마에 은돈 열 냥이라는 엄청난 돈을 요구했다. 아들의 형편으로는 그 돈을 마련할 수 없어서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일단은 알았다고 한 다음에 새벽에 약초를 캐러가는 노인을 미행했다. 노인은 북쪽 제방으로 가서 쭈그려 앉아 약초를 캐기 시작했다. 약초를 다 캐고나서 잎은 다 흝어 강에 버렸는데 아들은 약초 캐는 노인이 가는 것을 보고 강에 들어가서 약초 잎을 건지고 그것과 똑같이 생긴 잎을 가진 풀은 죄다 캐서 집으로 가져갔다. 몸을 씨소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노인이 약 두첩을 들고 찾아와서 이건 이틀 분 약이니까 모레 다시 오겠다고 하며 돌아갔다. 아들은 약봉지를 풀어서 생김새와 냄새를 맡아보았지만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캐온 약초를 달여서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효과가 있었다. 모레뒤에 노인이 찾아왔는데 아들은 다시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다면서 지금까지 먹은 두첩의 약값을 주고 돌려보냈다. 노인은 네 어머니는 약을 드시지 않으면 이번 추석까지도 사시지 못할 거라고 툴툴 거리며 돌아갔다. 아들은 그 다음부터 매일 제방으로 가 약초를 캐다가 어머니에게 드렸는데 아들의 정성 덕분인지 보름도 안가서 완전히 나았다. 아들은 그 약초의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를 도운 약초라고 익모초(益母草)라고 이름 짓자 사람들은 그 뒤로 그 약초를 익모초라고 불렀다.
익모초는 꿀풀과에 속하는 이년생 초본 식물이고 아직도 산모의 지혈, 빈혈, 이뇨제, 더위 먹은데 좋은 약재로 쓰인다. 나도 옛날에 더위 먹은 적이 있어서 아빠가 익모초잎으로 즙을 해주셨는데 너무 써서 안 먹겠다고 했다가 억지로 마셨었고 또 어느 날은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익모초 즙을 짜서 먹는데 뭔지 모르고 달라고 했다가 아주 혼난 적이 있다. 어찌나 쓴지 지금도 생각하기만 하면 인상이 찌푸려진다. 그래도 효과는 직빵이었다.
수크령의 꽃이 피었다. 꽃 이삭을 만져보니 아주 부드러웠는데 모양은 원통형이었다. 다른이름으로 길갱이, 랑미초 라고도 하며 뿌리줄기에서 억센 뿌리가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잎사귀도 잡아당겨보았는데 어찌나 질긴지 잘 끊기지 않았다. 그래서 덫을 만들어놓으면 사람이 걸려도 매듭이 풀리지 않는 풀로 잘 알려져 있다. 수크령에는 고사성어 결초보은에 대한 이야기가 얽혀있다.
옛날에 위무자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젊은 첩이 하나 있었다.
어느 날 그만 큰 병에 걸려 앓아눕게 된 위무자는 아들 위과를 불러서 내가 죽으면 젊은 첩을 다시 결혼시키라고 말했다. 그런데 며칠 뒤에 위무자가 거의 죽기 직전에 다시 아들을 불러 내가 죽으면 젊은 첩을 같이 죽게하라고 말했다. 위과는 아버지의 변덕 때문에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버지가 온전한 정신으로 한 말을 따르기로 하고 아버지가 죽은뒤에 첩을 다시 결혼 시켰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위과는 장군이 되어 전쟁터에서 아주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잘 싸우던 적국의 병사들이 갑자기 저절로 쓰러졌다. 그 덕분에 위과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위과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적들이 있던 곳을 살펴보았더니 풀들이 이상하게도 서로 잡아매어져 있었다. “거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네 왜 풀들이 서로 매어져있을까?”
그날 밤 위과가 잠을 자고 있는데 한 노인이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다른 곳으로 결혼시킨 그 여인의 아버지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풀을 묶어 당신의 적들을 넘어지게 한 것입니다.”
숲에 들어서니 지난번 대서 때보다 분위기가 무겁고 음습하고 습기가 넘쳐났다. 게다가 장마 뒤에 찾아온 ‘더 큰 장마’의 영향인지 풀들의 거의 내 키만큼이나 자라있었다. 거기에다가 모기들이 웽~ 날아다니면서 계속 폭격을 가해댔는데 솔뫼는 이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는지 이정도면 됐다면서 집으로 쪼르르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갈참나무 도토리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동그랗고 가시가 나있는 껍질을 벗고 제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아직 다 익지 않아서 색깔을 초록색 이지만 조금 있으면 갈색으로 익을 것이다. 그러면 다 익은 도토리를 먹으러 청설모들이 찾아오겠지·······.
싸리나무 꽃이 피었다. 꽃의 색깔은 자주색을 띤 분홍색이었는데 꽃이 작아서인지 아주 귀여웠다. 냄새도 맡아봤는데 향기는 정말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향기로웠다. 싸리나무는 농부들의 삶에는 거의 빠지지 않을 정도로 쓰임새가 많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싸리비, 소쿠리, 회초리, 종다래끼, 바소쿠리, 사립문, 지붕 엮기, 지팡이, 광주리, 고리, 삼태기, 울타리 등이다. 특히 싸리나무로 만든 싸리비는 조직이 치밀하고 탄력있는 조직적 특성 때문에 아주 힘있게 잘 쓸린다고 하고 싸리나무회초리는 조직이 아주 치밀하기 때문에 맞으면 따갑고 무지 아프다고 한다. 싸리나무로 만든 지팡이는 가볍고 아주 단단해서 노인들이 이용하기 좋았다고 한다. 싸리나무로 만든 사립문은 여진족에게서 전해진 풍습으로 북쪽지방 서민들이 많이 이용했다고 한다. 또 천연두를 疫神(역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옛날 사람들은 천연두에 걸리면 싸리로 작은 말을 만들어 발병한지 12일이 되면 천연두 귀신을 내쫓는 푸닥거리를 했다. 천연두 귀신을 싸리 말에 태워 보내면 천연두가 낫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집 밖으로 내쫓는 것을 일러 ‘싸리 말을 태운다.’는 결말이 생겼다고 한다. 그리고 싸리나무는 질감과 빛깔과 재질이 단단하고 빛깔과 질감이 좋으며 가운데가 깨끗하게 잘 쪼개지므로 윷을 만들기에 가장 좋다고 한다. 특히 싸리는 겨울철 땔감으로 그만이었다. 그리고 나무 자체에 기름이 많이 들어있어서 물에 젖어도 잘 타고 불심이 좋으며 연기가 나지 않고 오래 타는 이유로 밥을 짓는 땔감으로는 1등급이다. 송강정철의 가사가운데 싸리나무 땔감을 팔던 풍속에 관한 노래가 있다.
댁들아 나무들 사오. 저 장사야 네 나무 값이 얼마 외는가. 사자.
싸리나무는 한 말 치고 검부나무는 닷 되를 쳐서 합하여 헤면 마닷되
받습네.
삿떼어 보으소, 불 잘 붙습느니, 한적곧 보면은 매양 삿때이자 하여라.
산억새가 벌써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랐다. 아빠 말씀을 들어보니 아빠가 어렸을 적에는 산억세를 줄기만 꺾어서 던지는 놀이를 했다고 한다. 아빠가 시범을 보여준다면서 나한테 던졌는데 맞아보니까 정말 따갑고 아팠다. 집에 가는 길에 돼지무덤에서 산억세를 몇 개 따 갔는데 솔뫼가 그게 뭐냐고 물어서 산억세라고 대답했는데 솔뫼한테 던질려는 시늉을 하니까 솔뫼가 기겁하며 도망갔다.
붉나무가 하얀 꽃을 피웠다. 붉나무는 옻나무과의 낙엽관목인데 옻나무과이면서도 특이하게 독성이 없다는게 특징이다. 붉나무는 다른이름으로 염부목, 오배자나무, 불나무, 굴나무, 뿔나무 라고 하는데 염부목이라는 이름은 붉나무의 열매는 10월에 익는데 열매의 겉에는 소금 같은 흰물질이 생긴다. 이 것 때문에 염부목으로도 불리는 것이다. 잎자루 날개에 진딧물의 1종이 기생하여 벌레혹(충령)을 만드는데 이것을 오배자(五倍子)라고 한다. 오배자는 타닌이 많이 들어 있어 약용하거나 잉크의 원료로 한다. 벌레혹 안에는 날개가 달린 암컷 벌레가 1만 마리 이상이 들어 있다. 가지를 불태우면 폭음이 나는데 나도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미국자리공의 열매가 익어가고 있다. 다 익으면 검은색으로 변하면 벌써 다 익은 것도 몇 개 있었다. 가만히 보면 아주 먹음직스러운데 독이 있으니 절대 먹으면 안 된다. 일부 유기농가에서는 미국자리공열매의 독성을 이용하여 살충제를 만드는데 성능은 좋지만 자연에서 자라는 미국자리공의 열매를 사용해야 돼서 생산량이 많지 않기 때문에 조그만 정원 같은 데에는 쓸 수 있어도 농부들의 넓은 밭에는 사용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고삼이 열매를 열었다. 열매의 생김새를 살펴보니 콩깍지랑 모습이 비슷했다. 열매를 따다가 집에 가서 솔뫼에게 선물해 줬더니 아주 좋아하면서 열매를 열매수집 봉지에 넣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고삼은 한방에서 뿌리를 말린 것을 말하는데 다른 이름으로 도둑놈의 지팡이·너삼·뱀의 정자나무이다. 고삼은 맛이 쓰고 인삼의 효능이 있어서 소화불량·신경통·간염·황달·치질 등에 약으로 쓴다. 민간인들은 줄기나 잎을 달여서 살충제로 쓰기도 한다.
돼지무덤 쪽으로 내려가다가 아빠가 “동고비다!!”하고 말해서 보니까 동고비가 나무아래쪽으로 거꾸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무줄기를 거꾸로 내려갈 수 있나 궁금해서 집에가 찾아봤는데 사진을 보니까 갈고리모양 발톱이 아주 날카로웠다. 그래서 거꾸로 내려갈 때 자신의 몸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동고비에 대해 찾아보니까 나무줄기를 거꾸로 내려가는 것 뿐 만 아니라 굵은 나무까지 아래쪽을 기어다니는 것도 할 수 있다고 한다. 몸 색을 살펴보니 배쪽은 흰색이고 몸 윗면은 잿빛이 도는 푸른색이다. 부리부터 목까지 검은 선이 쫙 그어져 있고 겨드랑이와 아래꽁지덮깃에 밤색얼룩이 그려져 있다. 둥지는 딱따구리가 쓰던 둥지를 사용하는데 입구가 너무 크면 천적들이 자유자재로 침입 할 수 있으니까 자신만 오고갈 수 있을 정도로 입구를 흙으로 막아 좁힌다. 동고비는 곤충, 나무열매 같은 것을 모두 먹는 잡식성인데 특히 종자를 잘 까먹는다. 얼마나 잘 까먹으면 동고비의 영어이름이 Nuthatch(종자를 까먹는 새) 일까? 한 번 찾아봐야겠다.
분꽃의 열매가 다 익었다. 다 익은 열매는 색이 아주 까만데 열매의 속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있다. 옛날 여자들은 이 가루를 분가루로 사용했는데 분꽃이라는 이름이 이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 것 뿐만 아니라 옛날 우리 선조들은 연지는 잇꽃의 꽃잎을 사용하고 눈썹은 보리깜부기를 털어서 칠하고 매니큐어는 봉선화등 화장품을 전부 식물을 이용했는데 이에 비해 서양은 어떨까? 분은 연분, 연지는 적철광, 마스카라는 흑요석, 아이 섀도는 공작석, 매니큐어는 붉은 루비가 원료이다. 우리나라의 화장품은 식물성인데 비해 서양은 온통 광물성이다. 나도 분꽃열매를 따서 가루를 채취해 솔뫼와 함께 얼굴에 발라봤는데 바른 부위가 하얗게 돼버렸다. 열매 몇 개를 따다가 열매를 반으로 짜르고 다른 열매에서 가루를 채취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열매를 모아다 사진을 찍어봤는데 정말 한눈에 비교가 됬다. 처음에는 백지에다가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는데 가루가 백지의 하얀색에 동화되어 잘 보이지 않아서 나중에는 색종이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다.
7월 7일 오늘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된다는 소서이다. 보통소서가 되면 장마철이 서서히 끝나간다. 그리고 햇살이 뜨거워지면서 식물들이 뜨거운 햇살과 충분한 물을 섭취하며 왕성하게 자라나고 토마토, 자두, 복숭아 같은 과일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면 이러한 시기에 우리 집 마당과 뒷산 생태계는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혹시 호랑나비애벌레가 있나 하고 탱자나무를 잘 살펴보니 호랑나비애벌레 1령, 2령, 3령, 4령, 5령 애벌레를 전부 볼 수 있었다. 5령 애벌레와 4령 애벌레가 있는 걸로 봐서 꽤 오래전에 부화한 것 같은데 우리가 찾지 못한 것 같다. 호랑나비애벌레는 나한테 곤충의 성장과정과 자연에 대한 신비를 깨닫게 해준 고마운 곤충이다. 아빠 말을 들어보니 내가 어렸을 때에는 호랑나비애벌레가 부화하고 언제 2령 애벌레가 되고 또 언제 3령 애벌레가 되는지를 관찰하며 탱자나무 앞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와 함께 “호랑나비 애벌레 어디에서 사나?”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호랑나비 애벌레 어디에서 사나?” “탱자나무에서 산다” “뭐 먹고 사니?” “잎새먹고 산다.” “누구하고 사나?” “형제하고 산다.” “너는 뭐가 되나?” “번데기가 되지” 호랑나비애벌레를이 너무 귀여워 내 손에 올려놓고 뽀뽀를 하기도 하고 머리에서 취각이 나오는 걸 보려고 쿡쿡 찌르면서 귀찮게 하기도 했다. 새들이 호랑나비 애벌레를 못 잡아먹게 몽둥이를 들고 새들이 오지 못하게 지켰다가 탱자나무 잎을 다 갉아먹어 죽을 뻔했는데 겨울눈을 틔워서 간신히 살아 난적이 있다. 탱자나무는 온몸에 가시를 달고 있는데 여기에는 슬픈 사연이 있다. “옛날에 자식 다섯을 대리고 사는 홀어머니가 있었다. 남편이 남기고 간 것이 없는 살림살이는 아무리 뼈가 빠지게 일해도 자식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몇 년을 이 양 다물고 일하던 어머니는 견디지 못하고 병에 걸려 앓아누워버렸다. 그 소문이 나자 어떤 노파가 찾아와서 산 너머 부잣집에 큰딸을 소실로 보내면 논 닷 마지기를 준다는 것이었다. 큰딸은 15살 이었다. 어머니는 도저히 딸한테 이야기 할 수가 없어서 노파가 대신 이야기하기로 했다. 노파의 말을 들은 큰 딸은 하룻밤, 하룻날을 운 뒤에 그리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노파에게 조건을 내걸었다. 논 닷 마지기 말고 그 값에 해당하는 쌀을 달라는 것이었다. 부자한테는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조건이었다. 딸은 쌀을 받은 날 떠났다. 늙은 부자와 하룻밤을 보낸 딸은 그 날 저녁 뒤뜰 감나무에 목을 매어 자살했다. 그것을 본 부자는 안쓰러워하기는커녕 속았다면서 당장 쌀을 찾아오라며 불호령을 쳤다. 하인들은 부랴부랴 딸의 집으로 갔지만 식구들은 간 곳이 없었다. 이 소식을 들은 부자는 더욱 길길이 날뛰며 처녀의 시체를 묻지말고 산에 내버리라고 했다. 저런 못 된 것은 여우나 늑대에게 잡아먹혀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녀의 시체는 내버려졌는데 그 날 밤 처녀와 몰래 사랑을 나누던 총각이 시체를 업어다가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도록 平葬(평장: 송장을 평평하게 묻는 것) 그런데 그 다음해 봄에 무덤에서 연초록 새싹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새싹은 자라면서 차츰 몸에 가시를 달기 시작했는데 이 때서야 애인이 아무도 자신을 범하지 못하도록 몸에 가시를 달았다는 것을 알고 평생 결혼하지 않고 산지사방에서 나무 심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다. ” 참나리는 꽃봉오리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상태를 보니 적어도 1주일 안에는 꽃이 필 것 같으니 이번 소서절기 안에 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8월 2일부터 8월 4일 까지 지리산에 갔다왔는데 중간 중간 참나리 꽃이 피어있었다. 산과 평지의 기온 차 때문에 생기는 것 같다. 기온은 100m 올라갈 때마다 0.6도씩 떨어지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참나리는 500~600m쯤 이었으니까 우리 집 보다 적어도 3도쯤 낮을 것이다. 그 때는 우리집 원추리는 진지 오래인데 정말 신기했다. 장마가 소강상태인데 우리 집 원추리와 동네 앞길에 보이는 도리지는 계속 꽃을 피우고 있다. 장마 끝나는 시기와 꽃이 더 이상 피지 않을 때를 올해는 꼭 지켜봐야 되겠다.. 산딸나무의 열매가 구슬만큼 자랐다. 가을이 되면 산딸기 같이 빨간 열매가 익어서 남천, 해당화 열매와 함께 우리 집 마당을 붉게 물들여 줄 것이다. 산딸나무라는 이름은 열매가 산딸기와 비슷해서 산의 딸기나무라는 의미로 이름이 붙었다. 나무는 단단하고 질겨서 방적용 북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배롱나무가 꽃을 피웠다. 줄기를 만져보니 아주 매끈매끈했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원숭이가 미끄러지는 나무라고도 한다. 배롱나무는 백일홍이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은 꽃이 백일동안 피어 있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아빠말씀을 들어보니 배롱나무는 능소화와 함께 양반들의 마당에 많이 심어졌던 나무라고 한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화무십일홍이라는 한자성어가 있는데 백일이나 피어있으니 그처럼 오래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다는 그네들의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방동사니와 나도방동사니 같은 사초과 식물들이 제법 자라있었다. 가끔가다가 사람들이 사초과 식물을 벼과식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1.사초과 식물은 속이 비어있지 않다. 2.사초과 식물은 마디가 없다. 이 2가지 차이점만 외워두면 쉽게 구별 할 수 있다. 이씨 할머니 집으로 가는 언덕배기에 분꽃이 피어있었다. 분꽃은 날이 흐리거나 맑거나 4시 정각에 피기 때문에 항상 구름이 껴있어서 해로 시간을 잴 수 없는 장마철에 박꽃과 함께 시계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 이름도 four-o'clock 4시이다. 인터넷으로 분꽃에 대한 것을 검색해 보다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꽃은 남미가 원산지인데 따뜻한 남미에서는 여러해살이 풀이었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는 겨울을 이기지 못해 한해살이풀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솔뫼와 함께 장신구 놀이를 했다. 분꽃을 꽃받침 째로 따서 꽃과 꽃받침을 잡아 살짝 늘이면 긴 암술 때문에 늘어나서 귀걸이가 된다. 진로슈퍼의 아줌마는 그 걸 보고 “새로 나온 악세사리니?” 하고 관심을 보이셨다. 솔뫼도 하나 해줘 봤는데 부러뜨려 놓고서는 또 만들어 달라고 조르고 다시 한번 해줬더니 이번에는 꽃받침이 귀에 들어가 버리면 어떡 하냐면서 내던져 버렸다. 아직도 타래난초가 피어있나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아빠랑 돼지무덤 안으로 들어가 봤는데 하지 때보다 훨씬 더 많이 피어있었다. 꽃을 자세히 살펴보니 꽃은 투구같이 생겼고 입술꽃잎은 달걀을 거꾸로 뒤집어 둔 듯한 모양이다. 돼지무덤에서 짚신나물을 보았다. 왜 짚신나물일까? 열매나 씨가 짚신을 닮았나? 아니면 짚신나물을 가지고 신발을 엮었나? 사실은 짚신나물의 씨에는 갈고리가 달려있어서 풀숲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짚신에 붙어서 번식하기 때문에 짚신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이러한 짚신나물의 번식방법은 도깨비바늘이나 도꼬마리 처럼 다른 동물 몸에 붙어서 씨앗을 퍼뜨리는 번식방법과 비슷하면서도 고리라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짚신나물의 다른 이름은 仙鶴草(선학초)이다. 이런 이름이 붙은데 에는 이야기가 하나 얽혀있다. 옛날 중국에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두 수재가 있었다. 그 때는 여름이었다. 두 수재는 행여나 과거보는 날을 놓칠까 두려워서 쉬지도 않고 계속 걸어갔다 그러나 젊고 건장한 수재들도 날이 갈수록 점점 지쳐 발걸음이 무거워져갔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밭, 며칠을 가도 인가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길을 잘못 든게 아닐까?” “아니야 반드시 이 곳을 지나가야해!!”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팠지만 먹을 것은커녕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이었다. 거기에다가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잠시 쉴 곳조차 없었다. 그래도 두 수재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가 갔지만 알마 쯤 가는데 갑자기 한 수재가 풀썩 주저앉는 것이었다. “여보게, 잠깐 쉬었다 가세” 그런데 그 수재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자네 왜 그러나?” “나도 모르겠어 ! 갑자기 어지럽고 온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간 것 같아.” 수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앞쪽으로 푹 숙였다. 이어 모래 위에 시뻘건 코피가 뚝뚝 떨어졌다. “코피가 나잖아? 너무 피로해서 그런가봐!” 손으로 막아보았는데 코피는 멈추지 않았다. 다른 수재는 놀라 긒이 입은 옷을 찢어 친구의 콧구멍을 막아 보았는데 그러자 이번에는 입으로 피가 흘러나왔다. 수재는 어찌할줄 몰랐다. “이일을 어떻게 하지?” “물 물 물 좀 줘” “자네도 알다시피 이 곳에는 몰이 없어 조금만 더 참게나!” “물이 없으면 축축한 돌멩이라도 입에 넣으면 좀 살 것 같은데‘ “사방이 황량한 모래벌판이라 아무것도 없다네. 조금만 더 참아봐 !” 바로 그 때 어디서 하늘을 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두 수재의 머리 위로 두루미 한 마리가 날아왔다. 피를 흘리던 수재는 두 팔을 벌리고 두루미에게 소리쳤다. “두루미야, 너의 날개를 잠깐만 빌려 줘!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두루미는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입에 물고 있던 들풀 한포기를 떨어뜨리고 갔다. 다른 수재는 그 풀을 주워들어 다른 수재에게 주었다. 그 수재는 급히 들풀을 받아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어 먹었다. 그러자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 들풀을 씹어 먹은지 얼마 안돼 피가 멎은 것이었다. “하하하 선학이 선초를 보냈구나!” “신선님, 정말 감사합니다.” 두 명의 수재는 간신히 서울에 도착하여 과거를 보았다. 그리고는 나란히 과거에 장원급제했다. 여러 해가 지난 뒤에 두 사람은 우연히 길가에서 마주쳤다. 두 사람은 주막집에 가서 늦도록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보게, 우리가 과거 보러 갈 때 고생했던 일 기억나나?” “그걸 누가 잊겠는가. 그때 자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죽었을 걸세.” “아니야, 그때 자네를 구해 준 건 두루미였어.” “그래, 그런데 그때 두루미가 준 풀이 무슨 풀이었을까?” “몰라.” “나는 그 약초를 꼭 찾고 싶네. 그것이 많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두 사람은 그 풀의 생김새를 그림으로 그려 여러 사람에게 찾아오도록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사람들은 몇 년을 산과 들을 헤맨 뒤에야 마침내 그 풀을 찾아왔다. 그 풀의 잎은 깃털 모양이고 여름철에 노란 꽃이 피었다. 의원에게 그 풀의 이름을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약초를 준 두루미를 기념하기 위해 그 풀을 선학초라 이름 지었다. 그 뒤로 사람들은 피를 멎게 하는 약으로 선학초를 널리 쓰게 되었다. 짚신나물은 지혈을 하는데도 많이 사용하고 가을에 뿌리째 캐서 말리면 그 것을 용아초라고 하는데 구충제와 수렴제로 사용된다. 마가 꽃을 피우려 하고 있다. 마는 서동이 어렸을 때 마의 덩이뿌리를 캐서 장에 내다팔았다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덩이뿌리는 오래 씹으면 단물이 나기 때문에 우리아이들 간식으로도 딱 좋을 것 같다. 그야말로 친환경 간식이다. 껍질을 벗기고 깨끗하게 씻은 마를 적당량의 우유(믹서기에 마를 넣고 마가 살짝 잠길 정도의 양)를 넣어 곱게 간 후, 약간의 꿀을 첨가해서 마시면 아침식사대용으로 그만이라고 한다. 둥그레봉에서 뒤로 넘어가면 공장이 하나 있다. 옛날 아빠가 어렸을 때 여름에 그 공장으로 넘어가면 빨간 산딸기가 산 언덕배기을 가득 뒤덮고 있었다고 해서 잔뜩 기대 했는데 막상 가보니 듬성듬성 작은 덩굴만 있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오는데 주변 억새밭에서 새똥거미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뭔가 작은 얼룩 같은게 보여서 자세히 살펴봤는데 새똥거미가 온몸을 움추린 채 숨을 죽이고있었다. 나는 새똥거미를 본 게 이번이 처음이고 아빠도 우리동네에서 새똥거미를 본건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왜 이 거미는 왜 새똥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건 자신의 천적인 새들한테 잡아먹히지 않으려는 일종의 방어전략이다. 산을 내려가다가 어떤 나무에서 백금거미를 보았다. 아빠가 어 백금거미다. 하고 소리쳐서 봤더니 등이 하얀 백금거미가 나무 잎새 위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백금거미는 등이 백금처럼 희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무늬는 인삼같이 생겼었다. 뒷산을 다니는 동안 3번을 봤는데 거미마다 선의 굵기와 무늬 패턴이 조금씩 달랐다. 집에 가서 백금거미의 대해 찾아봤는데 백금거미에도 크기와 무늬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누어져 있었다. 우리가 본 것은 중백금거미인데 그 밖에도 백금갈거미, 금빛백금거미(검정백금거미), 왕백금거미, 꼬마백금거미 등이 있다. 이제 장마가 끝나가니 마당과 뒷산에 거미와 사마귀, 왕귀뚜라미애벌레들이 아주 많이 눈에 띈다. 낮에는 매미소리까지 들린다. 이제 정말 여름철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
6월 28일 오늘은 해가 가장 높이 뜬 다는 하지 절기이다. 하지는 해의 에너지가 가장 높을 때이고 지금은 장마철이기 때문에 물도 충분하니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밭에는 오이와 호박이 눈에 띄게 빨리 자라고 있는데 그래서 “장마에 호박 자라듯 한다.” 라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이렇게 왕성하게 자라는 식물의 생장력을 바탕으로 곤충들이 대거 발생하는 것은 집주변 풀밭에서 메뚜기, 사마귀 애벌레들이 많이 보이고 봄 형에 비해서 훨씬 큰 여름 형 나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런 하지의 왕성한 자연의 힘을 느끼며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쥐똥나무는 꽃은 이미 다 지고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를 달려있다. 조금만 있으면 쥐똥만한 크기의 검은 열매로 자랄 것이다. 목련은 벌써 잎눈과 겨울눈이 벌써 많이 자랐다. 열매보다 미리 준비해두는 것을 보면 목련나무의 내년준비가 옹골차다. 그러고 보면 나무들은 오뉴월이 되면 내년준비를 거의 갖추는데 미리 준비하면 걱정이 없다는 것을 진화과정 속에서 터득했나보다. 쑥이 많이 자랐다. 쑥은 국화과의 잡초인데 쑥은 국화과의 식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풍매화이다. 아마도 쑥은 진화의 한 단계에서 건조하고 추운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꽃가루를 옮겨줄 벌레가 마땅치 않자 원래 충매화였던 쑥이 풍매화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쑥이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는 나대지에서 뭉쳐서 자라는 것이나 쑥의 잎 뒷면에 흰색의 털이 촘촘히 나있는 것은 건조한 환경으로부터 수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쑥을 밤에 관찰해보면 잎을 전부 닫고 있어 마치 흰 꽃이 핀 것 같은데 이것은 사막과 같은 데서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데 잎을 펴고 있으면 잎의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에 잎을 닫아 잎의 온도를 보호하는 생존전략인 것이다. 쑥으로 만든 쑥떡을 먹어보면 보통 떡보다 찰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쑥의 잎 뒷면에 있는 털이 쌀과 얽혀서 찰기를 만들어 주어 그런 것이다. 나는 쑥인절미를 싫어했는데 2006년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에 따라가서 어떤 절에 가서 쑥인절미를 사 먹고서는 쑥인절미를 좋아하게 되었다. 쑥은 개척자 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쑥대밭이라는 말은 쑥의 개척자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누구네 집이 황폐화 되었을 때 쑥대밭이라고 하는데 그 집 마당을 쑥들이 점령한 상태를 말한다. 쑥은 농경지나 마당에 한 번 나면 무리지어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한번 쑥의 무리가 자리를 잡으면 뿌리가 서로 엉키기 때문에 뽑아내기도 힘들다. 이렇게 식생이 파괴되는 곳을 먼저 찾아가 식생을 회복하는 것이 쑥의 생태적인 지위이다. 쑥은 우리나라의 풍습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이다. 또한 우리조상들이 단오날에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쑥의 신령스러운 힘으로 잡귀를 쫓아냈다는 풍습과 백성들이 이사를 하면 짐을 싸기 전에 말린 쑥을 집의 네 귀퉁이에서 태워 잡귀를 쫓아내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쑥은 신성한 풀로 존중되었던 것 같다. 쑥은 지혈제로도 사용되며 그 밖에 신경통이나 부인병, 소화불량, 간장질환, 옻독, 풀독, 습진, 독오름, 치통, 편도선이 붓거나 입안의 종기, 빈혈, 요통, 산후통, 숙취, 위장병에 좋다. 섬진 거기에다가 쑥은 강한 알칼리성을 띄고 있어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으로 피부가 산성화 된 사람에게는 아주 좋다고 한다. 쑥에는 단군신화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얽혀있다. 옛날에 아내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효자는 유명한 의원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됬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무렵에 근처 마을에 당대의 명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당장 달려갔는데 그 의원이 진맥을 짚어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것을 보고서 효자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의원님” 그러자 의원이 “자네 어머니의 병은 아주 고치기 어려워 이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라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서는 효자가 기가 막혀서 물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해 옵니까?” 의원이 그 말을 듣고서는 “내가 뭐라고 했나 아주 고치기 어렵다고 했지 않느냐 자네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니까 못하겠으면 돌아가게”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효자는 “아닙니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7년 묵은 쑥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아내를 찾아가서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하나면서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가라고 극구 말렸다. 하지만 효자는 집을 나가서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면서 7년 묵은 쑥을 찾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세월이 흘러 7년째가 된 날에 돌아 왔는데 그 때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때 효자의 머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7년 전 그해에 쑥을 뿌리 째 캐다가 오늘 이용하면 되었을 것을!” 이라고 말하면서 땅을 치며 후회하였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남천 꽃이 피었다. 다른 꽃들은 거의 다 져버린 시기에 원추리와 함께 우리 집 마당을 환히 비춰주고 있다. 아빠께서 우리 집 마당에서 잘 자라나 시험해 보려고 가져다 심었다는데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옛날에는 남천잎을 쌀과 섞어 먹으면 흰머리가 다시 검은머리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이들은 사람에게 새해인사를 하러 올 때 열매가 달린 남천가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원추리꽃이 피었다. 속담 중에 원추리 꽃이 피면 장마가 오고 원추리 꽃이 피면 지면 장마가 간다고 했는데 올해에는 장마철이 조금 더 일찍 찾아와서 원추리가 기상대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밤나무꽃이 지면 장마가 한창이다.” “도라지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속담에서처럼 밤나무꽃과 도라지꽃 역시 장마철을 알리는 기상예보원 역할을 했다. 원추리의 한자이름은 훤초이다. 원추리라는 이름은 <산림경제>에서 처음 나온다. 원추리의 고유이름은 ‘넘나물’ 또는 ‘엄나물’이다. 그러니까 원추리란 이름은 한자이름 훤초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훤초>원초>원추>원추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처풍토기>에 의하면 애를 밴 부인이 이 꽃을 패용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는데 이 때의 꽃은 꽃봉오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꽃의 꽃봉오리가 영락없는 사내아이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이다. 원추리의 꽃은 참 큰데 원추리 꽃이 왜 그렇게 크냐하면 원추리의 수정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호랑나비와 제비나비 같은 대형나비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꽃의 생김새와 크기는 공진화 해온 곤충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추리의 큰 꽃 속에서 제비나비나 호랑나비가 온몸을 다 넣고 꿀을 빠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집 주변에 제비나비가 많아진 것 같은데 아마 원추리 꽃에 꿀을 빨러 온 것 같다.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해준다 하여 또 다른 이름으로 忘憂草(망우초)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옛날에 어는 형제가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이 들은 슬픔에 잠겨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슬픔을 잊기 위해 엄마아빠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었지만 동생은 이와 반대로 부모님을 잊지 않으려고 난초를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형은 슬픔을 잊고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동생의 슬픔은 더 깊어졌다. 저승에서 지내고 계시는 부모님도 동생이 안타까웠는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슬픔도 잊을 줄 알아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잠에서 깬 동생은 자기가 심었던 난초를 모두 뽑고 원추리를 심어 슬픔을 잊었다는 이야기이다.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인 사상자도 꽃이 피었다. 작년에 비해 여기저기 사상자 군락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상자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어느 마을에 괴상한 병이 돌았다. 환자의 땀구멍과 탈구멍에 닭살처럼 까슬까슬한 돌기와 물집이 생겨 몸이 무척 가려운 피부병이었다. 이 피부병에 걸리면 하루종일 긁어대서 시뻘건 피가 흘러도 시원하지 않을 정도 였다. 그리고 이 피부병은 전염이 빨라 환자의 옷을 말할 것도 없고 환자의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옮았다. 환자가 긁을 때 떨어진 비듬이나 피부껍질이 날아가 건강한 사람의 몸에 닿으면 곧바로 전염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피부병에 전염되어 긁어 대기 시작했다. 약이라는 약은 다 발라보아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의원을 찾아가 가려움이라도 멈추게 하는 약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기에 의원이 대답하기를 “백 리 밖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이 하나 있는데, 듣기로는 그 섬에 잎은 깃털처럼 생겼고 꽃은 우산처럼 생긴 약초가 있답니다. 그약초의 씨를 삶은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섬에는 온갖 독사들이 득실거려서 지금으로서는 뜯어올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서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 때 어떤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고 며칠 먹을 식량을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면서 배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약초를 캐오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명의 청년이 자신이 뱀섬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렸지만 청년은 며칠 먹을 양식을 준비하여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청년은 곧바로 뱀섬으로 가지 않고 먼저 뱀을 잘 잡는 땅꾼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땅꾼은 자기도 독사는 자신이 없다면서 저 버닷가 높은 산에 사시는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 비구니 스님은 백 살이 넘었는데 약으로 쓸 뱀의 쓸개를 구하러 뱀섬에 자주 갔다 왔다고 했다. 청년은 암자를 찾아가 비구니 스님께 어떻게 하면 뱀섬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뱀은 원래 웅황주를 끔찍이도 싫어하여 웅황주 냄새만 풍겨도 멀리 도망간다고 했다. 청년은 스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산을 내려와 웅황주를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뱀섬에 도착하자 여러 독사들이 청년을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다. 청년은 재빨리 준비해간 웅황주를 솔잎 끝에 묻혀서 뿌렸다. 갑자기 웅황주 냄새를 맡은 독사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도망가는 독사도 있고 죽은 듯 꼼짝 않는 놈도 있었다. 청년은 깃털모양의 잎에 꽃이 우산처럼 생긴 약초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 약초위에는 독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청년은 웅황주를 뿌렸다. 그러나 그 독사는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약초위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독사는 혀를 날름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치켜들지도 않았다. 웅황주에 취한 것이다. 청년은 바로 독사를 밀치고 약초를 캐고 약초의 씨를 따서 자루에 넣었다. 마을사람들은 청년이 살아 돌아 온데다가 약초까지 캐오자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그 약초의 씨를 물에 삶아 목욕을 했더니 신통하게도 그 지긋지긋한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약초를 가까운 산에다가 섬어 버짐과 습진 등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했다. 청년은 뱀섬에서 그 약초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청년은 약초가 독사의 침상 같은 생각이 들어 약초의 이름을 蛇床(사상)에 씨까지 하여 蛇床子(사상자)라고 이름붙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쯤 타래난초 꽃이 피었다는 생각이 들어 돼지무덤으로 갔다. 타래란 사리어 뭉쳐 놓은 실·노끈 등을 말하는데 꽃이 실타래처럼 감기며 올라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름다운 타래난초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딱 하지 쯤에 꽃이 핀 것 같은데 타래난초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무덤가나 잔디밭에서 주로 나는 풀인데 수정방식은 꽃가루덩어리를 찾아오는 벌레의 몸에 통째로 붙여버린다. 그리고는 암술 끝에는 접착제를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약삭빠르게 꽃가루 덩어리를 떼어낸다. 타래난초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만든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수만 개 이상의 아주 작은 씨앗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타래난초의 씨앗은 아주 작기 때문에 발아에 필요한 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난균이라는 곰팡이를 자기 몸에 기생하도록 한 후 그 균사체로부터 영양분을 빼앗는다. 물론 이 전략은 위험도 있다. 균의 침입을 받으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도박과 같은 생존전략을 가진 셈이다. 패랭이꽃도 피어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잎의 끝은 뾰족하고 중간에 연갈색 무늬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패랭이꽃 역시 타래난초처럼 무덤이나 잔디밭근처에 많이 난다. 그래서 가난한 농민이나 나무꾼들의 사랑을 받던 꽃이다. 포은 정몽주의 선조인 정습명이 패랭이꽃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석죽화 사람들은 모란의 붉은 빛을 사랑하여 뜰 안 가득 심어서 가꾼다지만 누가 알랴? 풀이 무성한 벌판에도 어여쁘게 피어나는 떨기 꽃이 있다는 것을 그 빛 시골 연못 속의 달에 어리고 그 향기 바람 따라 숲 언덕에 전하네 궁벽한 땅이라 부귀한 이는 적어서 그 아리따운 자태 농부들만 즐긴다네 숲으로 들어가니 지난 망종 때보다 훨씬 더 습기가 차있다. 무성한 수관부는 내리 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장마비에 자란 풀들은 숲으로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을 기세이다. 여기저기 버섯들이 솟아나 있었다. 역시 장마철은 버섯의 계절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멍석딸기가 익어있었다. 하나씩 따서 먹어봤는데 새콤달콤했다. 새들과 곤충 작은 포유류들의 여름식량을 내가 축낸 것이다. 무성했던 인동초 꽃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뻐꾸기소리가 가까운데서 들렸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 버스타러 나가다가 전선줄에 앉아서 우는 뻐꾸기를 자주 본다. 날개를 치켜들고 고함치듯 울대를 울리며 노래하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자식양육을 다른 새한테 맡겨놓고 자기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끊임 없이 울어대는 뻐꾸기의 모정을 갸륵하다고 할까 뻔뻔하다고 할까? 뻐꾸기가 탁란하는 새집은 참새,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등인데 산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박새집일 가능성이 있고 물가에서는 개개비집일 가능성이 있다. 이 주변에 박새가 죽어라고 뻐꾸기 새끼를 부양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
6월 28일 오늘은 해가 가장 높이 뜬 다는 하지 절기이다. 하지는 해의 에너지가 가장 높을 때이고 지금은 장마철이기 때문에 물도 충분하니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밭에는 오이와 호박이 눈에 띄게 빨리 자라고 있는데 그래서 “장마에 호박 자라듯 한다.” 라는 속담이 생겼나 보다. 이렇게 왕성하게 자라는 식물의 생장력을 바탕으로 곤충들이 대거 발생하는 것은 집주변 풀밭에서 메뚜기, 사마귀 애벌레들이 많이 보이고 봄 형에 비해서 훨씬 큰 여름 형 나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을 통해서 잘 알 수 있다. 이런 하지의 왕성한 자연의 힘을 느끼며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쥐똥나무는 꽃은 이미 다 지고 아직 익지 않은 초록색 열매를 달려있다. 조금만 있으면 쥐똥만한 크기의 검은 열매로 자랄 것이다. 목련은 벌써 잎눈과 겨울눈이 벌써 많이 자랐다. 열매보다 미리 준비해두는 것을 보면 목련나무의 내년준비가 옹골차다. 그러고 보면 나무들은 오뉴월이 되면 내년준비를 거의 갖추는데 미리 준비하면 걱정이 없다는 것을 진화과정 속에서 터득했나보다. 쑥이 많이 자랐다. 쑥은 국화과의 잡초인데 쑥은 국화과의 식물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풍매화이다. 아마도 쑥은 진화의 한 단계에서 건조하고 추운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꽃가루를 옮겨줄 벌레가 마땅치 않자 원래 충매화였던 쑥이 풍매화로 다시 되돌아 간 것이다. 쑥이 다른 식물들이 잘 자라지 않는 나대지에서 뭉쳐서 자라는 것이나 쑥의 잎 뒷면에 흰색의 털이 촘촘히 나있는 것은 건조한 환경으로부터 수분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쑥을 밤에 관찰해보면 잎을 전부 닫고 있어 마치 흰 꽃이 핀 것 같은데 이것은 사막과 같은 데서는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추운데 잎을 펴고 있으면 잎의 온도가 내려가기 때문에 잎을 닫아 잎의 온도를 보호하는 생존전략인 것이다. 쑥으로 만든 쑥떡을 먹어보면 보통 떡보다 찰기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쑥의 잎 뒷면에 있는 털이 쌀과 얽혀서 찰기를 만들어 주어 그런 것이다. 나는 쑥인절미를 싫어했는데 2006년 엄마아빠 결혼기념일에 따라가서 어떤 절에 가서 쑥인절미를 사 먹고서는 쑥인절미를 좋아하게 되었다. 쑥은 개척자 식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쑥대밭이라는 말은 쑥의 개척자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누구네 집이 황폐화 되었을 때 쑥대밭이라고 하는데 그 집 마당을 쑥들이 점령한 상태를 말한다. 쑥은 농경지나 마당에 한 번 나면 무리지어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한번 쑥의 무리가 자리를 잡으면 뿌리가 서로 엉키기 때문에 뽑아내기도 힘들다. 이렇게 식생이 파괴되는 곳을 먼저 찾아가 식생을 회복하는 것이 쑥의 생태적인 지위이다. 쑥은 우리나라의 풍습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단군신화이다. 또한 우리조상들이 단오날에 쑥으로 호랑이를 만들어 쑥의 신령스러운 힘으로 잡귀를 쫓아냈다는 풍습과 백성들이 이사를 하면 짐을 싸기 전에 말린 쑥을 집의 네 귀퉁이에서 태워 잡귀를 쫓아내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쑥은 신성한 풀로 존중되었던 것 같다. 쑥은 지혈제로도 사용되며 그 밖에 신경통이나 부인병, 소화불량, 간장질환, 옻독, 풀독, 습진, 독오름, 치통, 편도선이 붓거나 입안의 종기, 빈혈, 요통, 산후통, 숙취, 위장병에 좋다. 섬진 거기에다가 쑥은 강한 알칼리성을 띄고 있어 아토피 같은 피부질환으로 피부가 산성화 된 사람에게는 아주 좋다고 한다. 쑥에는 단군신화가 아닌 다른 이야기가 하나 더 얽혀있다. 옛날에 아내와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 효자는 유명한 의원을 찾아 다녔다. 하지만 어머니의 병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악화됬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무렵에 근처 마을에 당대의 명의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는 당장 달려갔는데 그 의원이 진맥을 짚어보고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것을 보고서 효자가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의원님” 그러자 의원이 “자네 어머니의 병은 아주 고치기 어려워 이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라네” 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서는 효자가 기가 막혀서 물었다.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해 옵니까?” 의원이 그 말을 듣고서는 “내가 뭐라고 했나 아주 고치기 어렵다고 했지 않느냐 자네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은 7년 묵은 쑥뿐이니까 못하겠으면 돌아가게” 하고 냉정하게 말했다. 효자는 “아닙니다. 어딘가에는 분명히 7년 묵은 쑥이 있을 것입니다.” 하고 아내를 찾아가서 사정을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7년 묵은 쑥을 구하나면서 날씨가 좀 따뜻해지면 가라고 극구 말렸다. 하지만 효자는 집을 나가서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니면서 7년 묵은 쑥을 찾아 봤지만 헛수고였다. 세월이 흘러 7년째가 된 날에 돌아 왔는데 그 때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어머니 이 불효자식을 용서하세요.” 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을 때 효자의 머리에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 7년 전 그해에 쑥을 뿌리 째 캐다가 오늘 이용하면 되었을 것을!” 이라고 말하면서 땅을 치며 후회하였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남천 꽃이 피었다. 다른 꽃들은 거의 다 져버린 시기에 원추리와 함께 우리 집 마당을 환히 비춰주고 있다. 아빠께서 우리 집 마당에서 잘 자라나 시험해 보려고 가져다 심었다는데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옛날에는 남천잎을 쌀과 섞어 먹으면 흰머리가 다시 검은머리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이들은 사람에게 새해인사를 하러 올 때 열매가 달린 남천가지를 선물했다고 한다. 원추리꽃이 피었다. 속담 중에 원추리 꽃이 피면 장마가 오고 원추리 꽃이 피면 지면 장마가 간다고 했는데 올해에는 장마철이 조금 더 일찍 찾아와서 원추리가 기상대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 밖에도 “밤나무꽃이 지면 장마가 한창이다.” “도라지꽃이 피면 장마가 시작된다.”는 속담에서처럼 밤나무꽃과 도라지꽃 역시 장마철을 알리는 기상예보원 역할을 했다. 원추리의 한자이름은 훤초이다. 원추리라는 이름은 <산림경제>에서 처음 나온다. 원추리의 고유이름은 ‘넘나물’ 또는 ‘엄나물’이다. 그러니까 원추리란 이름은 한자이름 훤초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정리하자면 훤초>원초>원추>원추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동처풍토기>에 의하면 애를 밴 부인이 이 꽃을 패용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했는데 이 때의 꽃은 꽃봉오리를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 꽃의 꽃봉오리가 영락없는 사내아이의 고추를 닮았기 때문이다. 원추리의 꽃은 참 큰데 원추리 꽃이 왜 그렇게 크냐하면 원추리의 수정을 도와주는 도우미가 호랑나비와 제비나비 같은 대형나비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꽃의 생김새와 크기는 공진화 해온 곤충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추리의 큰 꽃 속에서 제비나비나 호랑나비가 온몸을 다 넣고 꿀을 빠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우리 집 주변에 제비나비가 많아진 것 같은데 아마 원추리 꽃에 꿀을 빨러 온 것 같다. 원추리는 근심을 잊게 해준다 하여 또 다른 이름으로 忘憂草(망우초)라고도 하는데 이 이름에는 슬픈 사연이 담겨있다. 옛날에 어는 형제가 부모를 모두 여의었다. 이 들은 슬픔에 잠겨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형은 슬픔을 잊기 위해 엄마아빠의 무덤가에 원추리를 심었지만 동생은 이와 반대로 부모님을 잊지 않으려고 난초를 심었다고 한다. 그 후 세월이 흘러 형은 슬픔을 잊고 열심히 일을 하였지만 동생의 슬픔은 더 깊어졌다. 저승에서 지내고 계시는 부모님도 동생이 안타까웠는지 꿈속에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슬픔도 잊을 줄 알아야 한다.” 그 말을 듣고 잠에서 깬 동생은 자기가 심었던 난초를 모두 뽑고 원추리를 심어 슬픔을 잊었다는 이야기이다. 미나리과의 두해살이풀인 사상자도 꽃이 피었다. 작년에 비해 여기저기 사상자 군락이 많이 눈에 띄었다. 사상자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어느 마을에 괴상한 병이 돌았다. 환자의 땀구멍과 탈구멍에 닭살처럼 까슬까슬한 돌기와 물집이 생겨 몸이 무척 가려운 피부병이었다. 이 피부병에 걸리면 하루종일 긁어대서 시뻘건 피가 흘러도 시원하지 않을 정도 였다. 그리고 이 피부병은 전염이 빨라 환자의 옷을 말할 것도 없고 환자의 가까이 가기만 해도 옮았다. 환자가 긁을 때 떨어진 비듬이나 피부껍질이 날아가 건강한 사람의 몸에 닿으면 곧바로 전염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은 모두 이 피부병에 전염되어 긁어 대기 시작했다. 약이라는 약은 다 발라보아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사람들은 의원을 찾아가 가려움이라도 멈추게 하는 약은 없냐고 물었다. 그러기에 의원이 대답하기를 “백 리 밖 바다 한가운데 외딴 섬이 하나 있는데, 듣기로는 그 섬에 잎은 깃털처럼 생겼고 꽃은 우산처럼 생긴 약초가 있답니다. 그약초의 씨를 삶은 물에 목욕을 하면 피부병이 낫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섬에는 온갖 독사들이 득실거려서 지금으로서는 뜯어올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서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 때 어떤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고 며칠 먹을 식량을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청년이 자신이 약초를 구해오겠다면서 배를 타고 떠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약초를 캐오겠다는 생각을 버렸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명의 청년이 자신이 뱀섬에 갔다 오겠다고 했다. 마을 사람들은 말렸지만 청년은 며칠 먹을 양식을 준비하여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청년은 곧바로 뱀섬으로 가지 않고 먼저 뱀을 잘 잡는 땅꾼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 땅꾼은 자기도 독사는 자신이 없다면서 저 버닷가 높은 산에 사시는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그 비구니 스님은 백 살이 넘었는데 약으로 쓸 뱀의 쓸개를 구하러 뱀섬에 자주 갔다 왔다고 했다. 청년은 암자를 찾아가 비구니 스님께 어떻게 하면 뱀섬에 무사히 다녀올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비구니 스님이 뱀은 원래 웅황주를 끔찍이도 싫어하여 웅황주 냄새만 풍겨도 멀리 도망간다고 했다. 청년은 스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산을 내려와 웅황주를 준비하여 뱀섬으로 떠났다. 뱀섬에 도착하자 여러 독사들이 청년을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다. 청년은 재빨리 준비해간 웅황주를 솔잎 끝에 묻혀서 뿌렸다. 갑자기 웅황주 냄새를 맡은 독사들은 어쩔 줄을 몰랐다. 도망가는 독사도 있고 죽은 듯 꼼짝 않는 놈도 있었다. 청년은 깃털모양의 잎에 꽃이 우산처럼 생긴 약초를 발견하고 너무나 기뻐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 약초위에는 독사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앉아있었다. 청년은 웅황주를 뿌렸다. 그러나 그 독사는 도망칠 생각도 않고 그대로 약초위에 앉아있었다. 가만히 살펴보니 독사는 혀를 날름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치켜들지도 않았다. 웅황주에 취한 것이다. 청년은 바로 독사를 밀치고 약초를 캐고 약초의 씨를 따서 자루에 넣었다. 마을사람들은 청년이 살아 돌아 온데다가 약초까지 캐오자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사람들은 그 약초의 씨를 물에 삶아 목욕을 했더니 신통하게도 그 지긋지긋한 피부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약초를 가까운 산에다가 섬어 버짐과 습진 등 피부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사용했다. 청년은 뱀섬에서 그 약초위에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청년은 약초가 독사의 침상 같은 생각이 들어 약초의 이름을 蛇床(사상)에 씨까지 하여 蛇床子(사상자)라고 이름붙였다는 이야기이다. 이 때쯤 타래난초 꽃이 피었다는 생각이 들어 돼지무덤으로 갔다. 타래란 사리어 뭉쳐 놓은 실·노끈 등을 말하는데 꽃이 실타래처럼 감기며 올라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름다운 타래난초 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다. 딱 하지 쯤에 꽃이 핀 것 같은데 타래난초는 외떡잎식물 난초목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주로 무덤가나 잔디밭에서 주로 나는 풀인데 수정방식은 꽃가루덩어리를 찾아오는 벌레의 몸에 통째로 붙여버린다. 그리고는 암술 끝에는 접착제를 준비하고 기다리다가 약삭빠르게 꽃가루 덩어리를 떼어낸다. 타래난초는 씨앗을 아주 많이 만든다. 작은 꽃 한 송이가 수만 개 이상의 아주 작은 씨앗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타래난초의 씨앗은 아주 작기 때문에 발아에 필요한 양분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난균이라는 곰팡이를 자기 몸에 기생하도록 한 후 그 균사체로부터 영양분을 빼앗는다. 물론 이 전략은 위험도 있다. 균의 침입을 받으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으니까······. 도박과 같은 생존전략을 가진 셈이다. 패랭이꽃도 피어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꽃잎의 끝은 뾰족하고 중간에 연갈색 무늬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 정말 예뻤다. 패랭이꽃 역시 타래난초처럼 무덤이나 잔디밭근처에 많이 난다. 그래서 가난한 농민이나 나무꾼들의 사랑을 받던 꽃이다. 포은 정몽주의 선조인 정습명이 패랭이꽃을 주제로 시를 지었다. 석죽화 사람들은 모란의 붉은 빛을 사랑하여 뜰 안 가득 심어서 가꾼다지만 누가 알랴? 풀이 무성한 벌판에도 어여쁘게 피어나는 떨기 꽃이 있다는 것을 그 빛 시골 연못 속의 달에 어리고 그 향기 바람 따라 숲 언덕에 전하네 궁벽한 땅이라 부귀한 이는 적어서 그 아리따운 자태 농부들만 즐긴다네 숲으로 들어가니 지난 망종 때보다 훨씬 더 습기가 차있다. 무성한 수관부는 내리 누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장마비에 자란 풀들은 숲으로의 접근을 용납하지 않을 기세이다. 여기저기 버섯들이 솟아나 있었다. 역시 장마철은 버섯의 계절이다. 조금 더 걸어가니 멍석딸기가 익어있었다. 하나씩 따서 먹어봤는데 새콤달콤했다. 새들과 곤충 작은 포유류들의 여름식량을 내가 축낸 것이다. 무성했던 인동초 꽃은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뻐꾸기소리가 가까운데서 들렸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요즘 버스타러 나가다가 전선줄에 앉아서 우는 뻐꾸기를 자주 본다. 날개를 치켜들고 고함치듯 울대를 울리며 노래하는 것을 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자식양육을 다른 새한테 맡겨놓고 자기 정체성을 잊지 말라고 끊임 없이 울어대는 뻐꾸기의 모정을 갸륵하다고 할까 뻔뻔하다고 할까? 뻐꾸기가 탁란하는 새집은 참새,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개개비 등인데 산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나 박새집일 가능성이 있고 물가에서는 개개비집일 가능성이 있다. 이 주변에 박새가 죽어라고 뻐꾸기 새끼를 부양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
6월 8일 오늘은 보리가 익어가고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다는 망종이다. 예전에는 우리동네에도 보리를 많이 심어 들판이 누렇고 이 때 쯤 되면 수확하기 바빴고 한 쪽에서는 보리를 베고 바로 논을 갈고 모심는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보리농사를 짓는 집이 하나도 없어 그 풍경을 확인할 길이 없다. 모도 이미 소만절기 중에 다 심어서 모를 심지 않은 논을 발견할 래야 발견할 수가 없다. 벼는 우리문화를 만들어온 문명의 작물이지만 원래 산지는 중국남부나 인도로 알려지고 있다.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서 온 작물이다 보니 여름이 되어야 생육조건이 되기 때문에 이 시기가 이렇게 바쁜 것이다. 그런데 콩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데 왜 벼를 심는 시기와 비슷할까? 감꽃이 피면 올콩을 심고 감꽃이 지면 콩나물 콩을 심는다고 했는데 감꽃이 진 지 얼마 안돼 콩나물을 심을 때라 작은엄마는 친정으로 갔다. 오묘한 자연의 조화인데 그러면 우리 뒷산의 생태는 망종에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우리 집 옆에 쥐똥나무 꽃은 아직 피어있지만 색이 조금 바랬다. 하지만 여전히 쥐똥나무 사이에는 꿀벌들이 윙윙대며 부지런하게 꿀을 모으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쥐똥같이 생긴 열매가 열리겠지 기대된다. 해당화의 꽃잎은 완전히 졌는데 열매는 벌써 구슬보다 더 크게 자라있었다. 해당화는 정말 여러 용도로 쓰이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해당화는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향수 대신 향기가 나는 주머니(향낭)을 만드는데도 쓰이고 꽃잎은 말려서 술이나 차를 담그는데 쓰인다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해당화의 뿌리를 약으로 쓰는데 치통과 관절염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꽃은 수렴, 지혈, 설사 및 진통을 멈추는데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신경통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해당화들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상황이라고 하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해당화의 다른 이름은 睡花(잠든 꽃)인데 이런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중국 고서에 보면 옛날 당나라 현종황제가 어느 봄날 즐겨 찾던 심향정이라는 정자에 가서 화창한 봄날의 경치를 즐기고 있었는데 이 좋은 광경을 혼자보기 아까워 평소에 아주 예뻐했던 양귀비를 불러오라고 신하에게 속히 명하였는데 신하가 양귀비를 찾았을 때 양귀비는 약간 술에 취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황제의 부르심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는데 술과 잠이 덜 깨서 다리가 후들후들 거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시녀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심향정에 도착했는데 현종황제는 양귀비의 백옥 같은 볼이 약간 붉은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고 현종황제가 “그대는 아직도 잠에 취해 있는고?” 하고 물었는데 양귀비는 “해당화의 잠이 아직 깨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 대답에 현종황제는 “그대는 정말 해당화로다.” 하고 파안대소를 했는데 이 때부터 해당화를 잠든 꽃 수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오악중 하나인 화산에 있는 화청궁에 양귀비가 목욕하던 탕을 보면 해당화 꽃처럼 생겼고 이름도 해당탕인데 이런 것을 보면 양귀비는 해당화를 아주 좋아했나 보다. 앵두가 빨갛게 익었다. 그 동안 앵두가 별로 열리지 않아서 집안 식구들의 원망이 많았는데 앵두나무가 그 것을 만회하려는지 아주 알이 굵은 열매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지난 입하 절기에는 오디가 절정이었는데 이번 망종은 앵두의 계절이 되었다. 솔뫼는 나갈 때마다 몇 개 씩 따달라고 하고 손님들이 와도 앵두나무 밑으로 모여든다. 채희도 우리집에 와서 앵두를 몇 개 따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앵두를 따서 앵두에 녹말가루를 섞어서 앵두편을 만든다고 하셨다. 탱자열매는 잘 자라서 큰 방울토마토 만한데 아직도 호랑나비애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호랑나비생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걸까 걱정된다. 산딸나무는 아직 한창인데 무주 적상산에 갔다온 아버지 말을 들어보면 해발 1000M 가까운곳에 피어있는 꽃들은 대다수 산딸나무였다고 한다. 그리고 쥐똥나무는 이제 색이 바래서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때가 되니 새로운 친구가 이제 찾아오려고 하고 있다. 그 친구는 바로 접시꽃과 남천꽃인데 앞으로 며칠만 있으면 필 것 같다. 남천의 열매는 해당화랑 같은 시기인 9~10월에 익는데 남천의 빨간 열매는 해당화열매와 같이 우리 집 마당을 등불처럼 환히 비춰줄 것이다. 접시꽃은 꽃의 생김새가 접시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은 열매가 오목한 접시처럼 생긴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 집의 첫 번째 여름 손님이다. 원래 우리나라가 원산지는 아니고 중국에서 들여왔는데 신라말기 고운 최치원의 시에 접시꽃이 나오는 것을 보면 들어온 지가 아주 오래 된 것이다. 달래가 자라는 곳을 보면 낮은 언덕이나 산 가장자리 밭두렁 등 햇빛이 많이 드는 곳에서 자라고 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가면 줄기와 잎이 말라죽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긴 꽃줄기 끝에서 여러 개 나와 우산살처럼 펼쳐지는 산형꽃차례이다. 붉은 빛이 도는 흰색인데 자주색으로 바뀐다. 꽃줄기가 거의 솔뫼 키 만큼 큰데 이는 5~6월에 익는 작고 둥글며 검은 씨앗들을 멀리 보내기 위한 것이다. 밤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수꽃은 긴 꼬리 같은 이삭에 달리고 바로 그 밑을 보면 밤송이 같은 암꽃이 2~3개 달려있다. 암꽃이 훨씬 큰데 바로 여기에서 밤송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밤나무냄새는 멀리서 맡아도 지독한데 가까이서 맡으니 속이 매스꺼웠다. 밤꽃의 냄새는 남자의 정자냄새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밤꽃이 필 때면 혼자된 아줌마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고 한다. 산길로 접어드니 소만절기 때 보다 훨씬 더 무성했다. 망초와 산억새, 속털개밀은 벌써 내 키만큼이나 자라있었는데 산길을 침범해서 걷기가 불편했다. 숲은 전체적으로 음습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풀벌레 소리가 본격적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망종이 되면 우리 뒷산에 찾아오는 친구가 있는데 노루발풀과 매화노루발풀이다. 아빠가 다른 산에서 옮겨 심었는데 지금은 산의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세어보니 둘 다 꽃잎이 4개 이고 수술은 10개였다. 수술이 같다는 것은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을 말해주는데 수술을 통해 식물의 분류를 시도한 학자가 유명한 칼 린네이다. 린네가 암술과 수술의 기능을 밝히자 유럽의 종교인과 점잖은 척하는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암술하나에 수술 10개라면 한 여성이 자기 침대에서 10명의 남자와 동침하는 것이니 얼마나 음란하냐는 것 이었다. 대다수 식물들이 자가 수분을 안 하는 것을 몰랐나 보다. 인동초 꽃은 뒷산 곳곳에서 꽃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인동초라는 말은 어려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꽃이라는 뜻인데 대다수 식물들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우는데 왜 이꽃에만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지금 겨울에 로제트상태로 지내는 풀들은 거의 대다수가 귀화 식물이다. 따라서 침엽수를 제외한 대다수나무와 풀들은 잎새를 떨어뜨리는데 우리가 사는 냉온대중부 기후에서 인동초만이 넓은 잎새를 떨어뜨리지 않고 겨울을 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인동초꽃으로 담근 술을 금은화주라고 하는데 우리집에서도 인동초의 흰꽃, 노란꽃을 따서 금은화주를 담았다. 바구니에 담긴 흰꽃과 노란꽃들이 아주 예뻤는데 술단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인동초가 금은화라고 불린데는 이야기가 하나 전한다. 옛날 중국에 한 착한부부가 살고있었는데 그 부부한테는 금화와 은화라는 쌍둥이 딸이 있었다. 금화와 은화는 아주 우애가 좋아 죽을 때도 한무덤에 묻히자고 약속하였다. 그 둘이 시집갈 나이가 될 무렵에 그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다. 언니 금화도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다. 동생인 은화는 금화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지만 금화는 계속 약해져 갔고 은화도 같은 병으로 눕게 됐다. 두 자매는 죽을 날이 가까워서 부모님께 유언하기를 우리가 죽으면 약초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와 같은 병으로 죽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고 했다. 소원대로 그 둘은 같은 무덤에 묻혔는데 이듬해 봄에 무덤에서 가느다란 덩굴이 하나 자라났다. 덩굴은 해가 갈수로 무성해져 갔는데 어느 해 여름이 되자 은색꽃과 금색꽃이 뒤섞여 피어났다.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혼이 꽃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서 금은화라 부르고 그 전염병의 약으로 쓰게 됬다는 이야기이다. 지난 소만 때는 인대가 늘어나서 아빠가 오디 따는 곳을 가보지 못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빠가 오디 따는 곳을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가보니까 한 두군데가 아니고 한 7군데 정도 되었다. 우리집 뒷산을 처음으로 한바퀴를 빙 돌면서 확인한 셈이다. 나무마다 오디를 맛보면서 갔는데 그중하나는 너무 달아서 쓴맛이 생길 정도였다. 아빠는 어디에 오디가 있는지 어떤 나무에서 오디가 먼저 열리고 있는지 다 알고 계셨다. 내년에는 나도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오디를 따서 같이 효소를 만들어 보고 싶다. 상수리나무에서 거위벌레를 또다시 보았다. 거위벌레를 관찰하다가 상수리나무잎새를 실수로 건드렸는데 그대로 툭하고 떨어져버려서 바닥을 다 뒤져 찾아냈는데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거위벌레는 왜 거위벌레일까 거위처럼 목이 길다고 해서 거위벌레인가? 내가 보기에는 거위벌레가 진짜 거위만하면 상대적으로 목이 더 길을 텐데 그렇다면 기린벌레가 더 낳을 텐데 산중턱에 있는 썩은 참나무 껍질을 들쳐봤는데 흰색벌레들이 우글우글 거렸다. 몸보다는 배가 더 길었고 생김새는 개미 비슷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개미와는 조금 달랐다. 이게 말로만 듣던 흰개미인가 보다. 내가 나무껍질을 들춰서 집을 부수는 바람에 흰개미들이 아주 혼란스러워 했는데 그 때는 정말 미안했다. 그 흰개미들은 나무속을 다 뚫어 놓았나 보다. 이렇게 쓰러진 나무를 분해해서 다른 식물들이 활용할 영양분으로 바꾸는 일을 하는 흰개미는 우리뒷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다. 망종의 식물들이 이 뜨거운 햇빛아래에서 한참 열매와 겨울눈을 키워가고 있을 때 곤충들도 바쁘다. |
6월 8일 오늘은 보리가 익어가고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된다는 망종이다. 예전에는 우리동네에도 보리를 많이 심어 들판이 누렇고 이 때 쯤 되면 수확하기 바빴고 한 쪽에서는 보리를 베고 바로 논을 갈고 모심는 준비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보리농사를 짓는 집이 하나도 없어 그 풍경을 확인할 길이 없다. 모도 이미 소만절기 중에 다 심어서 모를 심지 않은 논을 발견할 래야 발견할 수가 없다. 벼는 우리문화를 만들어온 문명의 작물이지만 원래 산지는 중국남부나 인도로 알려지고 있다. 열대나 아열대 지방에서 온 작물이다 보니 여름이 되어야 생육조건이 되기 때문에 이 시기가 이렇게 바쁜 것이다. 그런데 콩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인데 왜 벼를 심는 시기와 비슷할까? 감꽃이 피면 올콩을 심고 감꽃이 지면 콩나물 콩을 심는다고 했는데 감꽃이 진 지 얼마 안돼 콩나물을 심을 때라 작은엄마는 친정으로 갔다. 오묘한 자연의 조화인데 그러면 우리 뒷산의 생태는 망종에 어떤 변화를 보여줄까? 우리 집 옆에 쥐똥나무 꽃은 아직 피어있지만 색이 조금 바랬다. 하지만 여전히 쥐똥나무 사이에는 꿀벌들이 윙윙대며 부지런하게 꿀을 모으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쥐똥같이 생긴 열매가 열리겠지 기대된다. 해당화의 꽃잎은 완전히 졌는데 열매는 벌써 구슬보다 더 크게 자라있었다. 해당화는 정말 여러 용도로 쓰이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해당화는 향수의 원료가 되기도 하고 향수 대신 향기가 나는 주머니(향낭)을 만드는데도 쓰이고 꽃잎은 말려서 술이나 차를 담그는데 쓰인다는 것이다. 한방에서는 해당화의 뿌리를 약으로 쓰는데 치통과 관절염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꽃은 수렴, 지혈, 설사 및 진통을 멈추는데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요즘에는 신경통에 좋다는 소문이 돌아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던 해당화들이 뿌리째 뽑혀나가는 상황이라고 하니 정말 안타깝기 그지없다. 해당화의 다른 이름은 睡花(잠든 꽃)인데 이런 이름이 붙은 데에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중국 고서에 보면 옛날 당나라 현종황제가 어느 봄날 즐겨 찾던 심향정이라는 정자에 가서 화창한 봄날의 경치를 즐기고 있었는데 이 좋은 광경을 혼자보기 아까워 평소에 아주 예뻐했던 양귀비를 불러오라고 신하에게 속히 명하였는데 신하가 양귀비를 찾았을 때 양귀비는 약간 술에 취해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황제의 부르심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는데 술과 잠이 덜 깨서 다리가 후들후들 거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어 시녀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심향정에 도착했는데 현종황제는 양귀비의 백옥 같은 볼이 약간 붉은빛을 띠고 있는 것을 보고 현종황제가 “그대는 아직도 잠에 취해 있는고?” 하고 물었는데 양귀비는 “해당화의 잠이 아직 깨지 않았습니다.” 라고 대답했더니 그 대답에 현종황제는 “그대는 정말 해당화로다.” 하고 파안대소를 했는데 이 때부터 해당화를 잠든 꽃 수화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오악중 하나인 화산에 있는 화청궁에 양귀비가 목욕하던 탕을 보면 해당화 꽃처럼 생겼고 이름도 해당탕인데 이런 것을 보면 양귀비는 해당화를 아주 좋아했나 보다. 앵두가 빨갛게 익었다. 그 동안 앵두가 별로 열리지 않아서 집안 식구들의 원망이 많았는데 앵두나무가 그 것을 만회하려는지 아주 알이 굵은 열매를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아 놓았다. 지난 입하 절기에는 오디가 절정이었는데 이번 망종은 앵두의 계절이 되었다. 솔뫼는 나갈 때마다 몇 개 씩 따달라고 하고 손님들이 와도 앵두나무 밑으로 모여든다. 채희도 우리집에 와서 앵두를 몇 개 따먹었는데 아주 맛있었다고 했다. 엄마는 앵두를 따서 앵두에 녹말가루를 섞어서 앵두편을 만든다고 하셨다. 탱자열매는 잘 자라서 큰 방울토마토 만한데 아직도 호랑나비애벌레가 보이지 않는다. 올해 호랑나비생태에 심각한 문제가 생긴 걸까 걱정된다. 산딸나무는 아직 한창인데 무주 적상산에 갔다온 아버지 말을 들어보면 해발 1000M 가까운곳에 피어있는 꽃들은 대다수 산딸나무였다고 한다. 그리고 쥐똥나무는 이제 색이 바래서 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때가 되니 새로운 친구가 이제 찾아오려고 하고 있다. 그 친구는 바로 접시꽃과 남천꽃인데 앞으로 며칠만 있으면 필 것 같다. 남천의 열매는 해당화랑 같은 시기인 9~10월에 익는데 남천의 빨간 열매는 해당화열매와 같이 우리 집 마당을 등불처럼 환히 비춰줄 것이다. 접시꽃은 꽃의 생김새가 접시를 닮아서 붙은 이름이라고 들었는데 사실은 열매가 오목한 접시처럼 생긴데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우리 집의 첫 번째 여름 손님이다. 원래 우리나라가 원산지는 아니고 중국에서 들여왔는데 신라말기 고운 최치원의 시에 접시꽃이 나오는 것을 보면 들어온 지가 아주 오래 된 것이다. 달래가 자라는 곳을 보면 낮은 언덕이나 산 가장자리 밭두렁 등 햇빛이 많이 드는 곳에서 자라고 기온이 25도 이상 올라가면 줄기와 잎이 말라죽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긴 꽃줄기 끝에서 여러 개 나와 우산살처럼 펼쳐지는 산형꽃차례이다. 붉은 빛이 도는 흰색인데 자주색으로 바뀐다. 꽃줄기가 거의 솔뫼 키 만큼 큰데 이는 5~6월에 익는 작고 둥글며 검은 씨앗들을 멀리 보내기 위한 것이다. 밤나무꽃이 활짝 피었다. 수꽃은 긴 꼬리 같은 이삭에 달리고 바로 그 밑을 보면 밤송이 같은 암꽃이 2~3개 달려있다. 암꽃이 훨씬 큰데 바로 여기에서 밤송이가 생겨나는 것이다. 밤나무냄새는 멀리서 맡아도 지독한데 가까이서 맡으니 속이 매스꺼웠다. 밤꽃의 냄새는 남자의 정자냄새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밤꽃이 필 때면 혼자된 아줌마들의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고 한다. 산길로 접어드니 소만절기 때 보다 훨씬 더 무성했다. 망초와 산억새, 속털개밀은 벌써 내 키만큼이나 자라있었는데 산길을 침범해서 걷기가 불편했다. 숲은 전체적으로 음습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풀벌레 소리가 본격적으로 들리기 시작한다. 망종이 되면 우리 뒷산에 찾아오는 친구가 있는데 노루발풀과 매화노루발풀이다. 아빠가 다른 산에서 옮겨 심었는데 지금은 산의 곳곳에서 자라고 있다. 세어보니 둘 다 꽃잎이 4개 이고 수술은 10개였다. 수술이 같다는 것은 가까운 친척이라는 것을 말해주는데 수술을 통해 식물의 분류를 시도한 학자가 유명한 칼 린네이다. 린네가 암술과 수술의 기능을 밝히자 유럽의 종교인과 점잖은 척하는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고 한다. 암술하나에 수술 10개라면 한 여성이 자기 침대에서 10명의 남자와 동침하는 것이니 얼마나 음란하냐는 것 이었다. 대다수 식물들이 자가 수분을 안 하는 것을 몰랐나 보다. 인동초 꽃은 뒷산 곳곳에서 꽃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인동초라는 말은 어려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는 꽃이라는 뜻인데 대다수 식물들이 겨울을 이겨내고 봄에 싹을 내고 꽃을 피우는데 왜 이꽃에만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지금 겨울에 로제트상태로 지내는 풀들은 거의 대다수가 귀화 식물이다. 따라서 침엽수를 제외한 대다수나무와 풀들은 잎새를 떨어뜨리는데 우리가 사는 냉온대중부 기후에서 인동초만이 넓은 잎새를 떨어뜨리지 않고 겨울을 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생각된다. 일본에서는 인동초꽃으로 담근 술을 금은화주라고 하는데 우리집에서도 인동초의 흰꽃, 노란꽃을 따서 금은화주를 담았다. 바구니에 담긴 흰꽃과 노란꽃들이 아주 예뻤는데 술단지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인동초가 금은화라고 불린데는 이야기가 하나 전한다. 옛날 중국에 한 착한부부가 살고있었는데 그 부부한테는 금화와 은화라는 쌍둥이 딸이 있었다. 금화와 은화는 아주 우애가 좋아 죽을 때도 한무덤에 묻히자고 약속하였다. 그 둘이 시집갈 나이가 될 무렵에 그 마을에 전염병이 돌았다. 언니 금화도 전염병에 걸리고 말았다. 동생인 은화는 금화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지만 금화는 계속 약해져 갔고 은화도 같은 병으로 눕게 됐다. 두 자매는 죽을 날이 가까워서 부모님께 유언하기를 우리가 죽으면 약초로 다시 태어나서 우리와 같은 병으로 죽는 사람이 없게 하겠다고 했다. 소원대로 그 둘은 같은 무덤에 묻혔는데 이듬해 봄에 무덤에서 가느다란 덩굴이 하나 자라났다. 덩굴은 해가 갈수로 무성해져 갔는데 어느 해 여름이 되자 은색꽃과 금색꽃이 뒤섞여 피어났다. 사람들은 금화와 은화의 혼이 꽃으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서 금은화라 부르고 그 전염병의 약으로 쓰게 됬다는 이야기이다. 지난 소만 때는 인대가 늘어나서 아빠가 오디 따는 곳을 가보지 못해 안타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빠가 오디 따는 곳을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가보니까 한 두군데가 아니고 한 7군데 정도 되었다. 우리집 뒷산을 처음으로 한바퀴를 빙 돌면서 확인한 셈이다. 나무마다 오디를 맛보면서 갔는데 그중하나는 너무 달아서 쓴맛이 생길 정도였다. 아빠는 어디에 오디가 있는지 어떤 나무에서 오디가 먼저 열리고 있는지 다 알고 계셨다. 내년에는 나도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오디를 따서 같이 효소를 만들어 보고 싶다. 상수리나무에서 거위벌레를 또다시 보았다. 거위벌레를 관찰하다가 상수리나무잎새를 실수로 건드렸는데 그대로 툭하고 떨어져버려서 바닥을 다 뒤져 찾아냈는데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날아가 버렸다. 그런데 거위벌레는 왜 거위벌레일까 거위처럼 목이 길다고 해서 거위벌레인가? 내가 보기에는 거위벌레가 진짜 거위만하면 상대적으로 목이 더 길을 텐데 그렇다면 기린벌레가 더 낳을 텐데 산중턱에 있는 썩은 참나무 껍질을 들쳐봤는데 흰색벌레들이 우글우글 거렸다. 몸보다는 배가 더 길었고 생김새는 개미 비슷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개미와는 조금 달랐다. 이게 말로만 듣던 흰개미인가 보다. 내가 나무껍질을 들춰서 집을 부수는 바람에 흰개미들이 아주 혼란스러워 했는데 그 때는 정말 미안했다. 그 흰개미들은 나무속을 다 뚫어 놓았나 보다. 이렇게 쓰러진 나무를 분해해서 다른 식물들이 활용할 영양분으로 바꾸는 일을 하는 흰개미는 우리뒷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이다. 망종의 식물들이 이 뜨거운 햇빛아래에서 한참 열매와 겨울눈을 키워가고 있을 때 곤충들도 바쁘다. |
4月 9日 원래 생태관찰은 절일이나 그다음날 해왔는데 이번에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어 사흘이나 지난 오늘 생태관찰을 하게 됬다. 청명은 말그대로 밝고 푸른 기운을 띤 절기라는 뜻이다. 내 생각에도 주변이 산뜻해진 느낌이다. 마당에는 풀꽃이 만발해 있고 나무꽃도 목련,앵두,개나리등이 활짝피거나 지고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개나리가 온통 노랗고 집뒤에 무덤에 있는 벚꽃도 활짝피었다. 들판은 날로 푸르러 지고 산에도 버드나무나 여러 관목들이 잎새를 내면서 갈색을 벗고 바야흐로 초록색옷을 갈아입으려 한다. 이러한 눈부신 청명절기의 아름다움를 느끼며 생태관찰을 시작했다. 마당에는 목련꽃잎은 거의다 떨어져 있었다. 열흘동안 우리집 마당을 빛내주었는데 이제는 구겨진 휴지처럼 쭈글쭈글 해졌다. 떨어진 목련꽃잎 사이로 큰개불알풀,서양민들레,흰민들레,냉이,제비꽃,꽃다지같은 갖가지 풀꽃들이 피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저번 우수때 까지만 해도 우리집 마당에는 서양민들레가 많았었는데 청명이 되니까 서양민들레보다 우리 토종인 흰민들레가 더 많다. 앵두나무의 하얀꽃이 너무 예뻤다. 앵두나무는 꽃만 예쁜게 아니라 빨간 열매를 먹어보면 아주 새콤달콤맛있다. 빨리 새콤달콤한 앵두열매를 먹고싶다. 옛날 옥포초등학교유치원에 다닐때 유치원 선생님이 내 눈은 별로 그리고 입술은 앵두로 그리던 추억이 생각난다. 하지만 그때 애들이 얼마나 웃든지 정말 창피했었다. 우리집 마당은 목련이 만발할때 앵두꽃이 피기 시작하고 목련꽃이 질때면 앵두꽃이 만발하면서 온갖 꽃들이 연달아 피어난다. 함박꽃이 벌써 20cm쯤 자라있었다. 함박꽃뒤에는 참나리가 손바닥만큼 자라있었다. 참나리의 꽃은 아주큰데 거기에는 주로 호랑나비같은 대형나비들이 많이 날아든다. 상사화를 보니 벌써 다 자라서 잎새끝이 말라가고 있다. 조금 지나면 다 말라 붙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다가 여름 어느날 갑자기 꽃대가 올라오겠지... 빨리 연보라색 상사화꽃을 보고싶다. 집뒤뜰을 보니 은방울꽃이 드디어 새싹을 내밀었다. 나온 새싹을 보니 올해는 은방울 꽃이 열송이 이상 열릴 것 같다. 목련이 큰 등이라면 작은 은방울꽃도 마치 등처럼 빛난다. 일제시대에는 가로등을 은방울꽃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빨리 은방울같이 생긴 하얀 꽃을 보고싶다. 봄맞이꽃은 꽃을 활짝 피웠다. 작년에 쓴 생태관찰일지와 비교해보니 보통 봄맞이꽃은 4월 초에 활짝피는 것 같다. 애기 봄맞이꽃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네이버에서 찾아보니 봄맞이꽃의 높이는 평균 10cm정도 였다. 은행나무를 지나는데 어제 일이 생각난다. 아빠와 함께 은행나무아래 미나리밭옆에 있는 밭을 갈다가 구더기같이 생긴 노란색 큰 애벌레와 꽃무지애벌레를 보았다. 어떻게 꽃무지 애벌레인줄 알았냐하면 등에 짧은 털이 많은 것을 보고 파브르곤충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꽃무지 애벌레는 4령때까지는 똑바로 기는데 5령이 되면 몸을 뒤집어서 등에 있는 근육과 털로 기어다닌다. 가죽나무는 움이 트려고 하고있다. 가죽나무의 냄새를 맡아보면 특유의 노린내가 나는데 아주 지독하다. 가죽나무는 처음에 소엽이 7개가 나는데 점점 숫자가 늘어난다. 찔레를 보니 푸르른 잎이 다 나왔고 돼지무덤에는 무릇이 푸른 융단처럼 깔려 있었다. 춘분 때 까지만 해도 산에는 칙칙한 분위기가 더 강했는데 청명이 되니까 싱싱한 느낌이 든다 조팝나무는 꽃이 피어있었다. 조팝나무의 꽃은 멀리서 보면 팝콘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조팝나무의 꽃가루매개 전략은 작은 꽃이 한꺼번에 많이 피어서 벌들을 유혹하는 것이다. 인동덩굴은 새잎이 전부 나와있었다. 하얀색이었다가 노란색으로 변하는 인동덩굴의 꽃은 아주 예쁘다. 청명이 되니 참나무들도 이제 움을 틔우려 하고 있다. 산에 올라가다본 갈참나무는 정말 움을 틔우기 직전이었다. 산정상에서 본 떡갈나무도 겨울눈의 두터운 겉껍질을 벗었고 올라가다가 본 졸참도 움을 틔우려고 했다. 참나무에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가 수액을 먹으러 오는데 나는 장수풍뎅이쪽이 더 좋다.(옛날에 내가 키우던 장수풍뎅이애벌레가 번데기방을 만들때 모르고 부숴뜨렸다가 기형으로 우화시켰던 기억이ㅠㅠ) 올해 처음으로 도마뱀(?)을 보았다.(장지뱀일수도 있음)도마뱀의 앞다리 바로 뒤피부를 보면 볼록 해졌다가 홀쭉해지는데 도마뱀이 숨을 쉬기 때문이다. 산나물의 제왕이라 불리는 두릅도 움이 텄다. 작년 생태일지에서 말했는데 아빠는 두릅을 살짝 데쳐서 고추장에 찍어 먹는걸 좋아한다. 난두릅이 싫은데.... 줄기가 약해서 뚝뚝 끊어지는 사위질빵도 새싹이 나왔다. 장모님이 사위에게 무거운짐을 들지 않게하기 위해 줄기가 뚝뚝 잘 끊어지는 사위질빵으로 짐손잡이를 만들어 주었다던 이야기가 있다. 길을 가다가 썩은 참나무를 보았는데 꽤 오래전에 쓰러졌는지 곰팡이와 박테리아가 분해시켜서 푹신푹신 했다. 들춰보니 시골가시허리노린재가 붙어 있었고 나무껍질을 뜯어보니 지네가 있었다. 조금더 뜯어보니까 사슴벌레애벌레가 파먹어 들어간 것 같은 흔적이 있었다. 우리동네에는 넓적사슴벌레가 많은데 사슴벌레유충의 흔적이 맞다면 넓적사슴벌레의 유충일 것이다. 기름나물을 보았는데 꽤 자라있었다. 아마 오래전에 새싹이 나왔었나 보다. 꽃은 미나리처럼 생겼는데 옛날에 이식물로 기름을 짜먹었기 때문에 기름나물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고비를 보았는데 벌써 아빠손보다 더 크게 자라있었다. 아마 숲길 바깥에 있어서 못본 것 같다. 고비는 씨앗이 아닌 포자로 번식하는데 포자로 번식하는 것은 원시식물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오리나무도 잎새가 다 나와있었는데 올해는 오리나무잎벌레한테 덜 시달리면 좋겠다. 그런데 오리나무는 왜 오리나무이지? 그걸 모르겠네 그것도 찾아봐야겠다. 엉겅퀴를 보았는데 역시 엉겅퀴의 잎은 사납다. 엉겅퀴는 가시나물이라고도 하는데 어린 잎사귀는 나물로도 먹는다. 그리고 엉겅퀴가 한임금을 구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러니까 옛날에 어떤 두나라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나라에서 왕을 죽이려고 자객을 보냈는데 엉겅퀴덩굴에 걸려 비명을 질렀다. 비명소리에 보초가 깨어나서 그 자객을 죽였다는 전설이다. 산 정상에 있는 무덤에서 식물의 특성이 그대로 이름이 된 억새를 보았다. 억새도 청명이 되니 새싹을 틔우고 있었다. 할미꽃이 활짝 피어있었디 식물 전체에 하얀 털이 나있고 줄기는 꼬부라진 특성을 보면 왜 할미꽃이라 이름 붙여졌는지 알 것 같다. 할미꽃에도 이야기가 얽혀있다. 옛날에 할머니와 두손녀가 살았다. 언니는 외모는 예쁘지만 질투심이 강하고 인심은 눈꼽만침도 없었다. 그 반면 둘째는 외모는 첫째보다 못해도 마음이 비단결 같았다. 첫째는 부잣집에 시집을 가서 잘 살고 둘째는 가난한 농가에 시집을 가서 살았다. 둘째가 할머니를 모시려고 하자 언니가 할머니는 니 형편에 어떻게 할머니를 모시냐고 해서 자기가 모신다고 했다. 하지만 언니는 할머니를 돌보지 않았다. 결국 할머니는 끼니조차 잊을수 없는 지경이 됬는데 언니는 자신의 잘못이 들통날까봐 두려워 할머니는 자기가 잘모시니 걱정말라는 편지까지 보냈다 할머니는 작은 손녀가 보고싶어 지친몸을 이끌고 둘째네 집으로 출발했는데 동네를 눈앞에 두고 쓰러져 돌아가시고 말았다. 뒤늦게 할머니의 시신을 발견한 둘째는 할머니를 양지마른 곳에다 묻어드렸는데 할머니의 무덤에서 꽃이 피어났다. 그 꽃을 보고 동네사람들은 할머니가 꽃으로 환생했다고 해서 할미꽃이라 이름 붙이고 둘째는 그 꽃을 집에 모셔다 놓고 잘 키웠다고 한다. 진달래를 보았는데 우리가 너무 늦게 와서인지 꽃이 거의다 시들시들 해져 있었다. 진달래의 꽃봉오리는 나팔같이 생긴게 아주 예뻤다. 투덜이의 야생초일기를 보니 진달래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진 이라는 이름가진 남자가 있었다. 진이 결혼을 해서 달래라는 딸을 낳았는데 새로 부임한 사또가 달래를 아내로 맞을려고했는데 달래가 거절을 하자 사또는 달래를 죽이고 말았다. 아버지 진은 달래의 시신을 잡고 한참을 울다 죽었는데 그 둘의 시신에서 한 나무가 나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나무이름을 둘의 시신에서 나왔다고해서 진과 달래를 합쳐 진달래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양지꽃도 꽃이 피어있었다. 작년 도청에서도 양지꽃을 봤는데 양지꽃은 양지에서 많이 자란다고 해서 양지꽃이라고 이름붙인 것 같다. 소나무에서 청설모를 보았는데 먹이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그 먹이는 솔방울이거나 잣나무의 열매였을 것이다. 우리가 있는 것을 눈치챘는데 재빨리 나무위로 도망쳤다. 내려가다가 작년에 구슬봉이를 봤던 무덤에서 또 구슬봉이를 보았다. 그 연보라색 작은 꽃은 장미꽃보다 훨씬 예쁘고 앙증맞다. 작년에는 다섯송이정도 봤었는데 이번에는 겨우 한송이 밖에 못봤다. 딱지풀을 보았는데 딱지풀 잎사귀 한개를 따서 표본을 만들었다. 이참에 여러분께도 식물표본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1.식물의 잎사귀나 꽃을 따서 공책이나 수첩에 넣고 누른다. 2.몇시간 동안 수첩에서 눌린 식물의 표본을 표본용액자나 표본 수집공책에 테이프나 풀로 붙이면 완성!!! 소나무밑동을 보았는데 얼마나 썩었는지 아빠가 발로 툭 치니까 그밑동이 굴러떨어졌다. 그 자리를 파보니까 정말 깊었다. 아빠가 졸지에 곤충의 함정이 되버렸다고 말씀하셨다.ㅎㅎ 수빈이란애 할머니집앞에 있는 인공연못 옆에서 수선화를 보았다. 하얀색꽃과 노란색 수술의 조화가 아주 예뻤다. 철쭉도 붉은 꽃을 피었다. 보통은 진달래가 일찍피고 철쭉이 늦게 피는데 요즘은 거의 같이 핀다. 지구온난화의 영향이 이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꽃피는 시기가 달라지면 특정한 식물을 찾아오는 특성을 가진 곤충과 발생시기가 달라 꽃가루를 퍼뜨리는데 많은 지장을 갖게된다. 으름덩굴도 새싹을 내밀었다. 사람들은 으름열매를 한국의 바나나라 할정도로 맛있다고 했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내가 한번 먹어봐야겠다. 으름덩굴아래에 있는 바위그늘 밑에서 쌍살벌집을 보았다. 조금더 내려가니까 꽃뱀(유혈목이)의 시체가 있었다. 몸에 상처가 없는 것으로 봐서 낮에는 날씨가 따뜻해서 나왔다가 추운 밤을 견디지 못하고 얼어죽은 것 같다. 요즘 날씨가 불규칙해서 생긴 사고이다. 앞으로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 아주 추워졌다가 갑자기 날씨가 여름날씨가 되는 등 기후의 극단값이 심해질텐데 곤충이나 양서류처럼 주변기후의 영향을 더 받는 동물들은 더 일찍 멸종할수 있다. 이들이 박테리아,식물과 함께 지구생태계의 생명부양능력을 가진 깃대종인데 이 작은 죽음에서 지구생태그물망이 구멍나고 있는 현실을 본다. 여기저기 나비가 날라다니고 있었는데 한마리를 잡아보니 날개에 굵은 줄이 선명하다. 큰줄흰나비이다.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줄이 좀더 가는 줄나비도 있는데 줄나비는 높은 산에서 살기때문에 우리집 주변에서 발견할수 있는 것은 큰줄흰나비이다. 학교에 있는 화살나무도 움을 틔우려고 하고있다 자세히 보니 겨울눈이 꼭 화살촉같다. 예전에는 화살나무가지에 있는 날개가 화살뒤에 달린 날개를 닮아 화살나무라고 한 줄알았는데 겨울눈이 꼭 화살촉을 닮은 것도 한 이유였을까? 화살나무의 특징인 가지의 날개는 곤충이 먹는것을 막기위한 방어수단이다. 학교화단에 있는 복숭아 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릴려고 하고 있고 수수꽃다리가 잎을 다내고 꽃송이를 다 만들었다. 가운데슈퍼앞에 있는 박태기나무도 꽃이 피기 직전이다. 내가 옛날 현도초등학교에 있을 때 박태기나무꽃을 꺽어가지고 많이 놀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 미안하다. 생태관찰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가 자두나무꽃을 보았다. 한가지에 뭉테기로 피어있었는데 자두나무도 조팝나무처럼 작은 꽃이 한꺼번에 피어서 벌들을 유혹하는 전략을 쓰는 것 같다. 오늘 생태관찰를 통해 청명절기가 가진 눈부신 아름다움을 만끽했다. 산과 들이 푸른 옷을 갈아입으니 내마음도 초록색기운이 솟아오르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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