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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읽고-
이벤트가 있는 줄도 몰랐다. 오늘에서야 몇몇 페친들이 공유한 이벤트를 보고 알았다. 이벤트에 동참한다는 생각도 없다. 이 엄청난 사건을 접하고 행동하지 않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교훈을 얻어 성폭력을 비롯한 운동 내의 인권에 무감각한 우리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한다.
글을 쓰려고 하니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걸까? 내 이성으로는 제목을 붙일 수 없어서 무제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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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 전만해도 이 책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오래전에 이 사건을 알았지만 자세한 내용을 기억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사건들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나도 그 많은 사건들 속의 하나의 ‘사건’으로 체념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두어 달쯤 전에 다른 사건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내가 알고 있는 동지가 그 사건의 대책위활동을 하면서 무척 힘들어했다. 그리고 한 달쯤 전에는 그 사건의 피해자 동지를 알게되면서, 그리고 충남에서 벌어진 사건을 접하면서 다시 고민하게 됐다. 결정적으로는 대책위활동을 했던 동지가 이 책을 읽게 됐다고 포스팅을 하면서 책을 구입해 보기로 결심했다.
피해생존자의 심정을 옮기는 것은 하지 않겠다. 아니 할 수 없다. 그 아픔과 절망을 도대체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겠는가? 매일 매일 평범한 일상을 꿈꾸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을.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사건의 피해자가 매일 자살을 꿈꾸고, 또 그렇게 자신을 자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글로 그 고통을 표현할 수도 없고, 위로할 수도 없다. 그냥 할 말이 없을 뿐이다.
사건은 간단하다.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 수배를 피해 도피하다가 연행되면서 피해생존자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려고 했고, 피해생존자가 동의하지 않자 이러한 결정에 합류하는 것을 강제하기 위해 계획된(!) 성폭력 사건이라고 본다. 문제는 어떤 사건에서나 마찬가지이지만 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2차, 3차가해였다. 특히 이 사건은 민주노총과 전교조라는 거대조직에 의해서 자행된 2차, 3차가해라는 것이었다.
2차, 3차가해는 반드시 조직 내에서의 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이건 현재 운동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만큼 성폭력문제에 대한 운동내의 감수성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피해생존자는 또 다시, 더 큰 상처를 받게 되고 결국 치유를 통한 현장으로의 복귀는 불가능해 진다는 것이다. 더불어 피해생존자와 함께 했던 모든 건강한 활동가들도 상처를 받으며 운동에 회의를 갖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낳는다.
2차, 3차가해에 대해서는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조차 무감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니 이러한 사건에 대해서 대화를 나눠보면 “정확한 진실을 알지 못하다.”거나 “관심 갖고 싶지 않다.”며 회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 막 나가는 경우는 가해자를 변호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2차, 3차 가해자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이 문제를 ‘정치적 적대행위’로 치부하는 태도이다. 물론 약방의 감초처럼 ‘더 중요한 일’이 있다는 핑계로 사건해결의 우선순위에서 자연스럽게(?)밀리기도 한다.
이 사건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나는 세 가지로 본다.
첫 번째는 성폭력에 대해서 규정과 절차로 모든 것을 처리하려는 관료적 태도이다. 민주노총과 전교조가 그랬다. 2차가해에 대한 규정과 처벌, 예방 모두에서 실패했다. 단지 조직적(?)으로 사건을 접수하고 절차적으로 처리했다는 것으로 모든 정치적 책임을 면하고자 했다. 적극적인 의지는 보이지 않았고, 권력을 장악한 집행부는 끊임없이 사건을 무마하려고 했다. 피해생존자의 고통과 민주주의는 절차를 밟았다는 이유로 철저하게 외면당했다.
둘째는 이 문제를 대하는 제3자들의 방관자적 태도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원칙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서 노력하기도하지만 그 목소리가 작아 원칙적인 해결이 불가능하게 되는 것은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방관자적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비판적인 사람들조차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주저한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사건을 인지한 순간 정확한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았고, 먼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던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세 번째로 내가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성폭력이라는 사건의 발생을 예방하자는 것과 더불어 운동 내에 만연한 ‘인권’의 문제에 대해서 나를 포함해서 우리 모두 경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번 사건만 해도 해결해가는 과정이 매우 지난하고 고통스럽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성폭력사건이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데 반해 -이렇게 표현되는 것이 참 아프다. 그런데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일상적인 소소한(?) 폭력과 인권침해는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격렬한 논쟁의 결과 ‘있을 수 있는 일’로 치부되면서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나는 운동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적인 폭력과 인권침해에 대해서 성폭력을 대하는 것만큼 경각심을 가지고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적들의 폭력에는 그렇게 분노하면서도 운동 내의 폭력과 인권침해에 무감감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고자 한다.
“나는 조직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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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피해다니던 책 '하늘을 덮다 (민주노총 성폭력 사건의 진실)'과 마주보았다. 그것의 두께와 내용이 주는 무게감에 쉽게 마주하지 못했다.
펼치기 어려운 책들이 있다. 내 몸을 머리통부터 발끝까지 뚫고 크게 휘감아 포박해버릴 것 같은 책이었다. 머리, 눈, 목구멍, 척추뼈를 뚫어 착착 접어 놓은 옛 기억과 감정들이 새 나온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세미나용으로 종종 읽는다는 '오빠는 필요없다'를 나는 아직도 펼치지 않았다. 학술적이건 감정적이건, 문체와 상관없이 '뚫어버리는 글'들이 있다.
죄책감과 의무감, 두려움이 섞인 도전정신으로 (안 어울리는 조합이군)
'서문까지만 읽자', '당사자의 글까지만 읽자' 했지만 한번에 읽어버렸다. 아마 다시 펼 용기가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러니 나처럼 두께에 '헉'하고 미리 읽기를 접은 사람이 있다면 일단 앉아서 책을 펼치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저절로 읽어질테니까.
피해 당사자의 글을 읽으며.... 나는 허리가 푹푹 꺾이는 분노와 슬픔을 보았다. 관통당하는 뼈는 내 것이었으니 분노와 슬픔은 글쓴이만의 것은 아니다.
누군가 그랬었다. 이렇게 되니 1차 가해자는 생각나지 않는다고. 사건 해결 과정에서 겪어낸 수많은 뻔뻔한 얼굴이 잠을 쫓고 식욕을 방해한다. 뻔뻔한 얼굴들. 자신이 일반사람이며 대중이며 제 3자라는 이유로, 혹은 자신이 누구의 친구이며 선배이며 후배라는 이유로 던진 말들, 그 때 보여준 뻔뻔한 얼굴.
글쓴이는 함께 했던(그러했다고 여겼던) 동지(라고 여겼던)들에게 끝까지 기대를 놓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그랬던 스스로를 비난하고 탓한다. 바보같이 왜 또 기대를 했을까, 왜 또 그랬을까, 그 사람들에게 왜 나는 미련맞도록 기대를 걸었을까 되묻고 또 되물었을 것이다. 아프다. 소속감을 느끼고 함께 살아왔던 사람들이 뻔뻔한 얼굴을 할 때 느끼는 외로움과 배신감은 결국 나를 겨눈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의심한다.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가' 내 역사를 부정한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누구인가' 그들을 의심한다.
글쓴이는 그 의심과 부정 속에서 손을 움직여 글을 쓰고 발을 옮겨 대책위 사람들을 만났다. 나는 옆에 서서 울고 싶다.
많이들 읽어보세요~ 이런 걸 남기려고 했는데 과연 안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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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올 초 가을쯤 대리인에게 선물(?)받고 피해생존자샘의 글을 다 읽는 데만도 오늘까지. 한장한장 넘기는 데만도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
내가 지금 이 장을 이해하고 넘기고 있는건지도 잘 모르겠고, 순간순간 머리가 과부하가 걸린 엔진처럼 멈춰버렸어요.
왜냐면...제 사건도 지금 현재진행형 이거든요.- 메이데이
마무리 역시 잘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저역시 피해생존자 선생님의 건강과 생존의 날들에 조금의 따뜻함을 전하고 싶습니다.
[손애라는 나에게 용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손애라에게 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고 용서해달라고 하는 거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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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애라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말하지 않았다......무조건 미안하니 용서해달라고만 반복해서 말했다.p64]
-나의 경우는 가해자였다. (그것도 카톡메세지였지만)무엇을 잘못했는지 무조건적인 사과가 아니라, 사건의 경위를 담은 사과문을 먼저 보내달라고 요구했지만,연거푸 만나자고만 하였고 결국 자기 멋대로의 자기성찰을 하고 있는 중이라는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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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피해생존자의 요구를 어떻게 반영할지, 조직 내에서 사건과 해결 과정을 어떻게 공론화할지와 같은 논의는 방기되었다. 피해생존자와 지지모임의 계속되는 요구는 조직현실을 잘 모르고 하는 무리한 요구로 치부되었다.
...성폭력 사건 처리에서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피해생존자의 입장을 존중하고, 피해생존자의 치유와 지지,공감에 조직적으로 나서는 것이다. 조직은 구성원들에게 피해자 중심주의에 의거, 이를 안내할 책임이 있다.p216-217]
<-2차가해자들의6월19일 입장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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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말이 진실인데 ‘가해자’의 말이나 힘에 눌려 왜곡되어서도 안되지만, ‘피해자’의 말이 진실이 아닌데 ‘가해자’를 공격하려고 정당화되어서도 안된다. 사건을 해결하는데서 가장 중요하게 전제해야 할 것은 진실이지 피해자나 아니냐가 아니다. ‘피해자중심주의’는 사회경험상 ‘피해자’의 진실이 ‘가해자’의 말과 힘으로 왜곡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에 균형을 잡기 위해 제기된 것이지, 지금처럼 또다른피해자들을 양산하고 일부운동권들이 다른운동권들을 정파적으로 치고 사회적으로 매장하기 위해 쓰는 음해모략의 수단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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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가해자들은 '2차가해는 없다.'라는e-book을 발행하고,사람들에게 공대위와 피해자가 말하는 것은 정파적 의도가 있고 진실이 아니며,또 변덕스럽고 이것저것 다 들어주는 '피해자 중심주의'는 진정한 피해자 중심주의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내 진실은 매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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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사건의 해결 원칙 중 하나인 ‘피해자 중심주의’란 개념은 완전한 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믿음과는 배치되는 관점이다. 사람들 사이에 권력관계가 존재할 때에 완전한 중립성이나 객관성은 존재하기 어렵다. 중립적,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사실도 이미 기존 권력관계와 그에 따른 사고방식을 답습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있을 때 자본가의 입장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철거민들의 투쟁에서 건설업체의 입장을 고려하여 중립적 입장을 취하자고 말하지 않는다. 형식적 중립성이 실제로는 비대칭적인 권력 관계에서 노동자와 철거민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논리가 손쉽게 정당화되는 중립성과 객관성은 가해자의 논리로 치환되기 쉽다. [...]‘맺는 말_ 일방통행은 언제나 위험했다]
<재판확정전까지 아무것도 확언할 수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하여 가해자의 인권도 동등하게 고려되어야한다._2차가해자들 공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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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데이 진보넷 블로그 방명록/ 비밀글 포스팅 1건 중 일부 발췌
"[...]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저는 조직을 나왔어요. [...]
제 사건은 묻혔지만 잘 해결되길 바라며 지지글 남깁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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