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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1.(토).오후5:31
볍씨, 세상을 바꾸다.
'태어나다' 는 말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볍씨는 자신이 사는 세상을 바꾸려고 1년남짓 아주 작은 점에서 아기로 성장했어요.
아직 몸을 자유자재로 쓸 수 없어 전신에 "안간힘"과 "몸부림"을 다해
자신의 세상인 태반을 뚫고 나와
모두 함께 사는 세상에 첫 숨을 내쉬었습니다.
우리, 세상이 바뀌다.
볍씨가 태어난지 7일째 되는 날입니다.
지난 일주일, 우리는 사는 곳도, 생각하는 것도, 하루 일과도 아주 달라졌습니다.
오로지 볍씨 생각뿐입니다.
우리는 여기 병원과 조리원에서 볍씨아버지/어머니로 살고 있습니다.
볍씨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한지붕 세식구가 됩니다.
잊지 않기 위해 자세히 쓰기
2012.02.11.(토).오전8:30
아침 9시에 병원에서 정기검진이 있습니다.
병원에 갔다가 진선샘이 만들어준 소창가제수건을 수진언니에게 줄 예정입니다.
그 후 장간사님-소연언니 결혼식에 갈 예정이었습니다.
다녀와서 친구 영은이 생일저녁식사에 갈 예정으로 정말 약속이 많은 바쁜 하루였죠.
아침 8시쯤부터 산님이 소창가제수건을 다렸고 저는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았습니다.
8시 30분쯤 이제 산님이 씻고 제가 남은 다림질을 하며 다리미를 정리하는 순간,
양수가 터졌습니다. 허리를 구부릴 때 아랫배에서 뭔가 팍 하는 느낌이 나고,
따뜻한 물이 아래로 흘렀습니다.
“산!! 아아악~~양수에요.”화장실에 앉으니 양수가 정말 많이 나왔습니다.
머리를 감고 있던 산님도 당황했습니다.
그 전 날 이슬이 비춰서 밤새 출산가방을 싸보긴 했는데, 바로 다음날이 될 줄이야.
마침 병원 가는 길이었으므로 아래 옷만 갈아입고 병원으로 갑니다.
가면서 얼마 전 둘째 낳은 수진언니와의 통화, 아, 많은 위로가 됩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지난 주에 들었던 분만 강의대로 40~50분은 산모만 혼자 남아 이런 저런 준비를 합니다. 분만 강의에서 들었지만 무섭고 얼떨떨하고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간호사들이 시키는대로 할 뿐이죠.
산님이 목포어머니께 전화드렸다고 합니다.
“또 전화하지 말고 애 낳으면 전화해라. (어머님도 조급해하시지 않고 기다리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잘 타협해서 수술해야 하면 수술해라. (양수 먼저 터지면 힘들다고 산모 힘들면 수술하라는 말씀이십니다.)
간단하지만 뜻있는 목포어머님의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 저를 믿고 계시겠죠.
전날부터 진통이 있긴 했는데, 양수가 터지면 감염위험이 있어 24시간 내에 빨리 분만해야 하니 촉진제를 맞습니다. 촉진제 때문인지 진통이 점점 강하고 간격이 짧아집니다.
산님의 손을 맞잡고 비틀고 쥐고 짜고 해봅니다. 산님은 손으로 진통하고 계십니다.
자궁문이 4-5 cm 쯤 열리고 그 유명한 무통주사를 맞습니다.
나도 무통천국을 경험하게 되는 걸까?
그런데 잠시…정말 무지막지한 배변욕구 같은 것이 몰려옵니다.
근데 힘을 주면 안된데요. 무통으로 몸을 이완시키는 동안 아기가 내려오라고 무통을 맞는 건데,
진통과는 또다른 산고입니다. 힘을 줄 수 밖에 없는 중력방향으로 쏟아져나오는 엄청난 힘.
그 힘에 못 이겨 산님의 몸을 쥐어 짭니다. 산님은 정신 못차리는 저와 함께 분만호흡을 엄하게 해줍니다. 저는 그만 참지 못하고 울음도 터뜨리고 (지르지 않으리라 마음 먹었던) 소리도 지릅니다.
그렇게 8시간을 보내고 담당과장님과 함께 초음파를 봤습니다.
그런데 아기의 얼굴 방향이 산모의 꼬리뼈를 향해야 하는데, 배꼽쪽을 향하고 있어서
돌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고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힘을 안 줘야 하는데, 힘을 계속 주니 아기가 잘 돌 틈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고통 속에서 내 자신이 더욱 또렷하게 보입니다.
자연분만하길 원했는데, 지금까지 잘 참아주었는데, 본능적으로 수술로 결심합니다.
후회 안 할 것 같았고 지금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아마 그 순간은 수술로 결정할 것입니다.
오랜 산고 끝에 자연분만 한 우리 어머니들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볍씨가 태어났습니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3.26kg 건강하고 예쁜 딸로 태어났습니다. 머리숱이 남달리 까맣고 많아 모두를 놀라게 하고 하루 하루 부쩍부쩍 자라고 있는 이제 7일차 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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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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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결국 낳으셨군요!와~ 말할 수 없는 기쁨, 저도 함께 느낍니다!^-^
수술하셨구나....자연분만에 굳이 집착할 필요 없을 듯 해요. 아기와 엄마가 살아나가는 것도 기적이라 하니까요.
바로 퇴원하셨을텐데 이렇게 컴터 쓰셔도 돼요? 으...너무너무 고생많으셨어요!
(참, 저는 어제 아이이 형체를 드디어 보았답니다. 처음 복부초음파를 했고 앉은 키가 5cm나 되어서 많이 자랐구나! 했어요 심장박동수에도 놀라고 재빠른 손짓과 발짓에도 놀라고ㅎㅎ)
언제쯤 볍씨처럼 건강하게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요.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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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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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와 응원 고맙습니다.많은 축하문자를 받았지만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진심으로 축하해주신 백곰님의 축하가 왠지 손을 맞잡고 좋아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재빠른 손짓과 발짓은 아주 훌륭한 자세인데요. 우리 볍씨는 손을 머리 뒤로 보내고 유유자적 자세만 취해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낳아보니 유유자적은 아니구 바둥바둥입니다.ㅋ 늘 건강 조심하시고 하루 하루 소중하게 보내셔요. 돌아보니 다시 못올 교감의 시간들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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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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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속에서 내 자신이 더욱 또렷하게 보'인다는 그 말에 코 끝이 찡해진다ㅠ 어머니가 되었구나.. 멋지다, 자랑스럽다, 부럽다..라는 말로 채워지지 않을 질투가 난다ㅎㅎ 뭐가 그리 바쁘다고 출산 소식을 듣고도 제때 축하한다는 얘기,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전하지 못 한건지.. 그 동안 광백이 형의 블로그만 알고, 네게도 이런 공간이 있는 줄은 몰랐네ㅠ 여러가지로 소홀해서 미안해ㅠ 요즘 많이 아프다던데.. 괜찮은건지... 그 고통을 덜어주기는커녕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아픔은 공감할 수도 없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ㅠㅜ 광백이 형의 글을 읽다 보면, 그리고 네 이야기 속에도, 서로를 향한 사랑과 믿음이 철철철 넘치는 것 같아ㅋ 그 사랑과 믿음, 오래도록 오래도록 주고 받을 수 있도록, 건강했으면 좋겠다!!! 조만간 산하와, 아버지와, 그리고 최근 등업되신 어머니를 모두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볼 수 있길~ ^ㅡ^부가 정보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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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했네. 넌 내가 요즘 앓고 있는 병을 알고도 가시방석이라는 아이디를 쓰다니ㅠ 여튼 찾아와주고 이렇게 따뜻한 댓글 써줘서 고마워. 락민이도 어머니가 참 잘 어울리는데. 어머니가 못 되어 아쉽지만 산님처럼 단연코 좋은 아버지가 될 거야. 보고싶다. 나중에 산하 데리고 야학에 놀러갈게.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