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면서 버리기

2007/08/09 01:42 Tags » , , , , ,

책 100권 이상을 버렸다


대부분 어릴때 보았던 책들이다. 그것들은 고등학교때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버려진 대부분의 책들 중 애착이 가는 것을 남겨놓고 간직했던 것들이다.
책을 창고에 쌓을지언정 쉽게 버리지 않았던 나로선 대사건이다. 요즘 아이들이 이런 책을 과연 볼지 전혀 짐작도 할수 없었고 반갑게 떠안을 사람도 생각나지 않았고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도 있었고 하여 이것들은 덧없이 폐지가 되었다.
그 중 가장 많은건 '지경사'에서 나온 국민학생용 소설들로 외동딸 엘리자베스 시리즈,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 최영재 님 시리즈, 최준식 님 시리즈 등등이었다.(이때부터 시리즈를 밝혔구나) 누가 가져가주길 바라는 마음에 지경사 것만 따로 모아서 묶어 내놓았다.
햇빛출판사 시리즈와 세계으뜸문고 시리즈는 정말 아까웠지만 각각에서 권정생, 로알드 달 한권씩만 남기고 다 버렸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열한두살때 읽던 책을 삼십 넘어서까지 갖고 있던 내가 좀 비정상이 아니었나 싶다.(그래도 아까운건 아까운거다)

 

그보다 더 많은 만화잡지로는 좋은 일을 했다


이것은 세 자매가 88년이나 89년 즈음부터 막내가 대학교 다닐때까지 모은 순정만화 잡지들이다. 한국 순정만화 최초 월간지 '르네상스' ('하이센스'가 더 먼저였다면 대략 낭패;;;) 89년것부터 종간됐을때까지 모두. 여기에서 증말 황미나 강경옥 김진 김혜린 신일숙 한승원 등드르등등 대모들이 활약했고 이진경 유시진 이강주 이빈 권교정 기타 등드르등등 완죤히 순정만화의 역사성을 고이 간직한(쿨럭;;;)...... 그리고 천계영 박희정 나예리 오우 슈퍼러스 격주간지 '윙크' 한 8-9년치, 격주간지 '댕기' '케익'도 수 년치, '나인'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오후' 창간호부터 폐간호까지, 이밖에 덧없이 스러져간 짧은 인생의 순정만화잡지들까지........
부천만화정보도서관인지 모시긴지에 몽땅 기증했다...
당시 잡지부록인 일러스트 브로마이드들 수십장까지 고이 갖고 있다가 1톤 트럭 몰고온 거그 직원에게 넘겼다. 느무느무 좋아하믄서 가져갔다. 10년 넘은 만화잡지 어떻게 돈좀 안될까 하며 머리를 굴렸지만 이렇게 보내는구나. 버리는 것보단 낫지 하면서.

 

아 그이름도 가물가물한 '카세트테이프'


놀랍게도 몇개의 박스 안에 고이 다 있었다. 한두시간 끙끙대며 추리고 또 추려 120여개만 남겼다. 일단 현재 씨디로도 절판된 건 당연히 남겼고 구하기 좀 어려워진 것, 씨디로 갖고 있지 않은 것 등은 간택됐다. 버린 것은 대부분 좋아하지 않는 밴드의 흔하디흔한 라이센스반과 많은양의 녹음 테이프였다. 뭘 그리 녹음을 많이 했는지 어떤 것은 카세트 자켓을 직접 만들어서 정성껏 트랙리스트를 적어놓기도 했다. 내가 한 짓 맞나 한참을 봤다. 이중에서 친구들이 선곡해서 녹음하고 자켓도 만들어 넣어준, 이름이 들어있는 녹음테이프는 차마 버리지 못했다.

90년대 중반 '전영혁의 음악세계' 녹음테이프는 너무 많아 선별할 조건이 못돼 전부 버렸다. 이 대목이 약간 아깝다. 버려진 카세트테이프들은 플라스틱 재활용통으로 던져졌다. 남은 카세트테이프들, 과연 제대로 재생이 될까?

 


이 모든것이 14년만의 이사에서 비롯된 비극이다

 

애착이란거,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다
애착을 가졌던 혹은 갖고 있는 물건이란거, 사실은 '애착하고 있다'고 우기는 내 '집착' 아냐?
이제는 중요하지 않은 이런 것들이 어릴때는 전부였단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억지로 부여잡고 있었던건 아닌지
창고에 넣고 잊고 살다가 막상 버리고 나니 허전한 마음은 또, 그리고 돌아서서 후련한건 또 뭐?
'잘 못버리는'거 아버지 닮은것 같아서 싫어하는 내 성질 중 하난데 맘 먹으니 버리는 것 참 쉽네
어쨌든 창고정리하면서 옛날 생각은 참 많이 했다
(이런 노력으로 공부를 했으면 뭐가 돼도 됐겠다 하고 혀를 내두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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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09 01:42 2007/08/09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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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8/09 01:5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최영재 님' 시리즈에서 완전 반가워라...나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면 착한 애들만 나오는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좋아했을까.
    좀 많이 고전이지만 얄개 시리즈는 없삼? 난 그것도 좋아했는데 진짜루.

    근데, 나름이 삼십 넘었단 말에요?;;
    30 가까이 가고 있는 나도 동화책 못 버리게 하고 가끔 본다는.완역판 안보고 홍당무나 작은 아씨들, 빨강머리앤 애들 책으로 보는 재미가 쏠쏠한데...

  2. 물개 2007/08/09 02:1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도 지난 야반도주때 다 버리고 안전 소중한 책과 노트, 앨범만 배낭에 챙겨서 나왔죠. 이사할때마다 떠나 보내야 했던 책들이 문득 그리워지는 새벽입니다. 책보다는 야식이 더 애절하지만...

  3. 가루 2007/08/09 13:1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이진경, 유시진, 이강주....추억의 이름들이네요. 정리를 좀 해야 하는걸까..

  4. 뎡야핑 2007/08/09 15:1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악............ 지경사의 말괄량이 쌍둥이 시리즈... 예전에 친척동생 주고 걔가 버려서 엄청 후회했는데...ㅠㅠㅠㅠ 아아.... 너무 슬퍼요ㅠㅠ
    만화잡지는 정말 놀랍네요. 르네상스 구하고 있었는데. 기증...ㅠㅠ 훌륭하세요ㅠㅠㅠㅠㅠㅠ 전영혁 테이프도 아깝고요... 우와... 계속 눈물이;ㅁ;

  5. 나름 2007/08/09 18:02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샤/ 와와 나도 방가워라~~~ 얄개는 없삼... 샤도 참 대단
    물개/ 야반도주때는 야식을 챙기시길
    가루/ 으트게 내가 좋아하는 3인방을 콕 찝었디야? 신기하다...
    뎡야핑/ 아악...... 뎡야님이 그러니까 나두 눈물이 ㅜㅜ 그르쿠나...... 르네상스 구하는 사람도 있었구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6. 해미 2007/08/09 20:31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진정 이리도 좋아했던 것들이 비슷한줄 몰랐소! 잘 버리지 못하는 습성이라니...ㅋㅋ

  7. 무한한 연습 2007/08/10 01:2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저는, 김혜린 팬클럽 회원이어요(T.T)

  8. 달군 2007/08/10 01:4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만화책 기증한거. 정말대단 +ㅗ+ 그냥 가지고 있으면 안되는거였어? 흑

  9. 달팽 2007/08/10 02:0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황미나, 신일숙, 김혜린, 박희정... 교복을 입고 댕기를 들고 교실로 들어가.... 친구들에게 엄청난 핍박을 받아야 했던... 헤헤... 전 만화책은 버리고.. 테잎은 아직 꽉 쥐고 있어요...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10. 보풀 2007/08/10 09:27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정말 성실하고 알찬 컬렉션이었네요...그냥 듣기에도 아쉽네요.. 가끔 보면 이런 컬렉션들이 버려지는 게 넘 아쉬워요. 몇 명이 모여서 작은 만화도서관이라도 만들 수 있음 좋을텐데 ㅋ ;;
    테이프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음원으로 변환하는 방법은 없나요?
    쉴 수 있는 휴일에 부천이나.. ㅜ_ㅡ;;

  11. 바리 2007/08/10 11:09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잉잉 저는 동화책 수집하고 있어요. 저한테 버리시지... 흑흑... 혹시라도 앞으로 버릴 일 있으면 저를 기억해 주세요...

  12. 나름 2007/08/10 14:0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해미/ 혹 해미도 갖고 있다면 버리지 말아봐봐봐... 사람들이 다 아쉬워하니깐 새삼 아까워ㅠㅠㅠㅠㅠㅠㅠㅠ
    무한한연습/ 우와우와 저도 좋아해요 '아라크노아'는 언제쯤...ㅠㅠㅠㅠㅠ
    달군/ 나도 쪼금은 갖고 있고 싶기도 했는데 내방에 두긴 싫고;;;; 둘데도 없고;;; 세자매가 다들 그래서 회의를 거쳐서 결정했으ㅠㅠ

  13. 나름 2007/08/10 14:0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달팽/ 아 저도저도~ 르네상스는 항상 학교에서 돌려봤어요 선생님한테 몇번 뺏기기도 했지만 악착같이 (빌어서) 다 되돌려받았다는^^ 하지만 이제 없다는거;;;;;;;
    보풀/ 테이프를 음악파일로 변환할 수 있어요^^ 시중에 파는 기계도 있고 오디오와 컴퓨터를 연결해서 녹음하는 방법도 있고요. 하지만 엄두도 못낼 쌩노가다라는거;;;;;;;
    바리/ 동화책이라기보단 삽화가 들어간 어린이소설책이었지만.... 너무 낡아서 누굴 주기도 민망하였어요 혹여 주변에서 목격되면 꼭 기억할께요

  14. 개토 2007/08/13 22: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흑, 아까워 아까워 아까워...........

  15. 나름 2007/08/23 16: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개토/ 인제는 마음을 비웠어여 후후후후................

  16. 개토 2007/08/23 21:50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나름이 마음을 비웠는가 아닌가에는 사실 관심 없어여...버리지 말고 개토 주지...ㅠ_ㅠ 아까워 아까워...개토도 초등학교때 보던 책들 아직까지 꽤 갖고 있어요...

  17. 나름 2007/08/24 14:36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개토/ 그...그랬구나요... 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