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우디요(Caudillo) 경제와 ‘생명없는 발전’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경제학 박사)

1. 세 명의 여성경제학자
내가 경제학 공부를 시작한지 이제 20년이 되어가고 박사 학위를 받은 걸로 생각해보더라도 10년이 지나갔다. 그 동안에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경제학자가 누구일까라고 지난 연말에 곰곰이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우연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 세 명은 전부 여성 경제학자들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스팔타쿠스당을 만들고 이끌었던 여성 정치인 정도로 알려진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ourg), 케인즈의 제자 정도로 치부되는 죠안 로빈슨(Joan Robinson) 그리고 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도넬라 메도우즈(Donnella Meadows)가 그 세 명이다. 아마 나의 학문적 계보나 이론적 흐름은 이 세 명의 여성 경제학자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합친 것 혹은 그들의 공통점 어디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들은 메도우즈라는 이름을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로마 클럽이 세상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 전망하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최고의 시스템 공학자가 바로 2년 전에 급작스럽게 사망한 메도우즈 여사였고, 이제는 사라진 학파인 제로성장론학파를 70년대 10년 간 끌었던 사람이 바로 메도우즈 여사였다. 세상이 자원 고갈로 인하여 멸망할 것이라는 로마 클럽의 우울한 예언의 기술적 근거를 만들었던 메도우즈 여사는 0%의 성장률로도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경제적 운용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보였고, 정부가 도로공사 등 쓸데없는 공공사업과 군수산업을 후생 분야에 투입하면 물량적인 측면에서의 성장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행복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10년간 ZEG(Zero Economic Growth)라는 개념을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로자 룩셈부르크의 분석의 상당 부분은 미국의 철도 산업에 맞추어져 있고, 그렇게 건설과 토목으로 확장된 자본주의가 결국에는 더 이상 착취할 비자본주의적 요소가 사라져 제국주의 단계를 거쳐 멸망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죠안 로빈슨 역시 축적과 성장에 대한 개념을 제시하면서, 가난한 사람과 고용에 관심을 갖지만, 정부의 토목산업에 재정지출로 성장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이 세 명의 여성경제학자들이 지금의 우리나라 경제에 대한 담론을 보았다면, 아주 이상한 논리들이라고 웃어버렸을 것 같다. 지금 우리나라는 짓고 부수는 것으로 경제를 살리자는 논리가 지고지순의 사회정의론처럼 되어있는 사회이다.

2. 쿠즈네츠와 팬 테이블
남성 경제학자 중에서 건설산업으로 경제가 좋아질 수 없고, 빈곤의 문제가 오히려 심화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1971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하버드 대학의 사이몬 쿠즈네츠(S. Kuznets)이다. 쿠즈네츠가 젊은 시절 통계자료를 만들면서 고단한 시절을 보낸 유펜(UPenn)에는 펜 테이블이라는 대단히 훌륭한 국가별 거시경제 통계가 아직도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 쿠즈네츠가 사용한 방식대로 국민총생산과 건설업 지출액을 가지고 우리나라의 경제를 간단히 분석해보고, 이를 국제 통계와 비교해 보았다 졸고, “아픈 아이들의 세대”, 2005. 뿌리와 이파리
. 건설업매출액/GDP가 선진국은 8~13 사이에 존재하고, 이를 벗어난 선진국은 일본 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18을 넘어서면서 헤이세이 공황이라고 하는 10년 공황에 빠져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두 번 20을 넘어서는데, 79-80년 공황이 그렇고, 97-98년도의 IMF 경제위기 때 20을 넘어 26까지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20을 넘어서면 누적된 건설산업이 공황을 일으키는 셈이다. 이론적으로는 경제의 다른 부분에 투입되어야 할 요소가 건설산업으로 집중되면서 요소 부족을 일으키는 일과 ‘지대(rent)’를 과잉으로 획득하기 위한 투기로 인한 거품(bubble)이 발생하게 된다는 두 가지 경우로 설명할 수 있다. 한 마디로 국민경제 내에 건설 관련 활동이 13% 내외 정도에서 유지되어야지, 20%를 넘어서면 이미 건설 중심의 투기경제로 전환된다고 할 수 있다.

3. 중남미형 경제와 스위스-덴마크형 경제
남미 경제를 설명하는 가장 큰 요소가 지방 토호 즉 ‘카리스마를 가진 사나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까우디요(Caudillo)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졸고, “한국경제의 위기가 저성장이 아닌 이유 - 참여정부의 실체, 까우디요 경제로 가는 길”, 당대비평 2005 신년 특집호 “불안의 시대, 고통의 한복판에서”.
. 역사상 가장 악랄하고 잔인했던 착취 경제였던 스페인의 중남미 수탈이 끝나고도 중남미의 고통은 끝이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스페인이 물러난 다음에 토지를 불하받은 까우디요들이 계속해서 플렌테이션과 광산을 중심으로 수탈 경제를 운영했고, 중남미의 불행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발부터 양극화된 중남미 경제는 21세기에도 이 까우디요 경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들보다 낮은 국민소득을 가지고 있던 덴마크와 스위스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경제 발전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가족형 소농이 아직도 존재하고, 직접 민주주의가 꽃을 피웠으며, 가족형 기업에 의한 경제활동이 활성화되고, 현재 국민소득은 3만 5천불을 넘은 상태이다. 현재의 건설산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경제 살리기 움직임은 한국형 대공황의 전주곡일 뿐만 아니라, 토지를 소유한 새로운 한국형 까우디요라는 새로운 계층을 발생시키거나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골프장이 개발될 산을 소유한 지방지주, 도로 옆의 생태보존지구의 지주 그리고 만평 이상의 농가소유주들은 현재의 전국적 개발정책에서 새로 까우디요로 편입되고, 이와 상관없는 대다수의 1주택 소유자나 전세거주자, 도시빈민과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대부분의 선량한 농민은 건설을 내세운 새로운 부의 ‘부등가 교환’을 둘러싼 경제 게임에서 일방적인 피해를 입고, 중산층에서 하류민으로, 그리고 하류민에서 극빈층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사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4. 생명 없는 발전의 말로
건설 위주의 경기부양책은 현재 한국 경제가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선택 중에서 최악의 선택이지만, 이미 이 정부는 이 선택의 버튼을 눌렀다. 금년 7월 헌법 121조의 ‘소작금지’ 원칙을 어겨가면서 도시투기자들에게 전면적으로 농지보유를 허용하는 농지법 개정안을 실행할 것이고, 국토의 생태적 안전장치를 해체할 ‘토지규제기본법’을 제정할 것이다. 카지노와 골프장을 시범사업 종목으로 선정한 기업도시나 국내 법규가 적용되지 않는 경제자유구역은 이 전면적 건설업 활성화의 전주곡에 불과하다. 이러한 발전을 ‘생명 없는 발전’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짓고 부수기 좋아하는 폭력만 남은 남성들의 경제학에 대하여 여성들의 시각으로 본 대안 경제학이 가장 필요한 시점이다. 환경은 미래가치이고, 개발은 현재가치라는 조악한 2분법이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국민들이 행복하고 잘 사는 길인가라는 ‘어머니의 경제학’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를 위해서 간절히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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