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300건

  1. 2004/12/22 비 한 방울
  2. 2004/12/22 動적인 불에 대한 연상 (1)
  3. 2004/12/20 인간은 그/그녀가 행(行)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4. 2004/12/20 새로운 말하기 : 새(bird)는 어떻게 사랑을 할까?
  5. 2004/12/20 코코아 꼬뮌주의
  6. 2004/12/20 자유게시판을 실명으로 하자는 주장에 대해...
  7. 2004/12/20 낙서
  8. 2004/12/20 노동조합은 부족한 자들이 모여서 집단의 지혜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9. 2004/12/20 역사
  10. 2004/12/20 [비나리]개혁정부가 ‘개발’ 정권이 된 사연 : 개발정부는 생명정부로 진화해야 한다
  11. 2004/12/20 자기검열-억압
  12. 2004/12/20 노동자
  13. 2004/12/20 우리 마음 속의 슬픈 괴물
  14. 2004/11/19 인식 주체를 떠나서 객체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1)
  15. 2004/10/01 [박노자] 민중이여, 공범이 될 것인가 (주체형성의 문제의식)
  16. 2004/10/01 정화스님의 금강경 강의
  17. 2004/09/20 [비나리] 디노미네이션(denomination)과 지하경제
  18. 2004/09/16 샤먼과 자본주의의 역사 (1)
  19. 2004/09/06 [고병권] 빈곤의 투쟁, 투쟁의 빈곤
  20. 2004/09/05 [강수돌]노동거부: 시대착오적 망상? 대안의 돌파구?
  21. 2004/09/04 뜨거운 눈물 (2)
  22. 2004/09/04 눈부처
  23. 2004/09/04 나를 바꾸는 힘
  24. 2004/09/04 죽지 않는 것이 추하다
  25. 2004/09/03 [진중권] 그의 물건은 서지 않는다 - 박정희
  26. 2004/09/03 문신의 미학
  27. 2004/09/03 남의 '우주' 구경하기
  28. 2004/09/03 [박노자]애국계몽운동은 '애국'이었나
  29. 2004/09/03 올림픽 선수촌, 혹은 어덜트 디즈니랜드
  30. 2004/09/03 47일의 단시과 저 위의 그들: 지율스님 단식 47일째에 붙여

비 한 방울

2004/12/22 20:52

비 한 방울

              -이두성

 

 

검은 구름에 매달려 있던 비 한 방울

막 껍질을 벗고 나온 비 한방울

오만피트 공중에서 뛰어내린다

새 한 마리 눈 깜짝할 사이도 없이

마당가에 졸고 있는 들국

세번째 잎사귀에

 

그 눈, 푸른 심장이 아직도 추운지

떨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動적인 불에 대한 연상

2004/12/22 20:49
 

動적인 불에 대한 연상



불불불불불불불 불이 움직인다

불 불 불 불 불 불이 걷는다

불, 불, 불, 불, 불, 불이 뛴다

불! 불! 불! 불! 불! 불이 고함지른다

불이 나를 태운다

나는 활활 타오르며

불이 된다

친구여, 가는 길 어두운가

나를 가지고 가라

 

[이두성]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새로운 주체형성과 재조직화에 관한 몇가지 생각들
- '인간은 그/그녀가 행(行)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1. 차가운 사회에서, 개인으로 찢어진 인간들이 오직 욕망과 타인과의 투쟁으로 얼룩진 사회에서, 지식인은 사회의 난로인 것이다. 지식인은 많이 아는 자가 아니다. 지식인은 내면적 속성이 아니라 특정한 행위의 양태일 뿐이다.
'자신이 처한 계(세계)에서 끊임없이 저항선을 만들며 참여하는, 그리고 그러한 다른 계와 횡단적 연대를 서슴치 않는.....(특정한 행위의 양태)'
자신과의 끈질긴 투쟁에서 대중적 일상을 벗어내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자가 지식인이다. 이것은 역동적인 사유와 행위이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 생(生)은 지식인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룩해 놓음이 다른 누군가나 무엇에 의해 무너질 때 아름다운 것이다.
가을 저녁의 노을처럼...곧 이즈러질 누부신 하얀 만월(꽉찬 달)처럼...
고통과 쓰라림이 끝나는 편안한 휴식(죽는 것)을 누리지 못한자는 추한 것이다.

-[인간의 얼굴]이정우 저 (민음사) 읽고 나서 생각을 나누기 위해 씀.


2.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은 의식개혁운동이다. 게으른 봉건적 삶을 탈피하고 근면, 자조, 협동으로 의식을 개혁하면 '우리도 한 번 잘 살 수 있다'라는 물질적 풍요의 결과물을 제시한다. 하늘에서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의식을 개혁하면 인간의 삶은 달라진다'는 철학적인 함의를 담고 있는 의식개혁운동은 근대적 사유의 전형적 산물이다. 의식을 바꾸면 새로운 역사가 창출되는가? 생각을 바꾸면 신세계가 열리는가?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은 실패했다. 물질적 풍요는 일부 재벌과 권력집단에 지나지게 집중되었으며 의식은 개혁되질 못했다. 주어진 삶을 거부하는 저항의식은 탄생하지 못하고 달라진 자본주의 시스템에 순응하는 ‘신봉건적 노예주체’만 반복될 뿐이다.

3. 동양사상에서 인간에 대한 고민은 성(性)의 문제이다. 주희와 다산의 문제의식은 인간의 본성이 후천적 요인이 강하다고 주장하면서 인간이 원래부터‘그런놈’으로 탄생하는 주체는 없고 역사적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주체가 있다는 것이다.

4. 맑스는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공산주의를 실현하는 주체를 ‘생존하는 인간들’로, 그리고 그 인간들은 ‘유적인간’으로 설정한다. 개별인간 보다는 '생존하는 인간들'을 역사의 주체로 인식하고 이 ‘인간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임을 주장한다. 계급투쟁 역사를 지고 나갈 주체의 본질은 과거-현재-미래를 인식하는 ‘(인)류적 인간’이며 개인(개별자)의 발전과 모두의 발전을 인정하는 주체들이다. 바로 이 ‘유적 인간’은 현재의 운동을 공산주의 운동으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혁명적 실천가’들인 것이다. 혁명적 실천가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새로운 주체는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것이 맑스의 공백이다.

5. 레닌는 맑스의 공백을 철학적 사유로 채우질 않고 실천(practice)으로 완성한다. ‘해석의 문제를 실천의 문제’로 역사 속에서 실현시킨 레닌은 구체적 결과물로 소비에트를 호명한다. 소비에트는 스탈린과 사회주의국가장치에 의해 왜곡되고 소멸된다. 새로운 주체인 혁명적 실천가는 권력과 국가기계에 재코드화된다. 다시 부활할 수 없는가?

6. 부활하지 못하는 썩은 소련체제를 바라보고 알튀세르는 국가장치(당과 국가)와 새로운 주체에 대한 고민을 이데올로기로 설명한다. 이데올로기로 호명되는 주체는 동일시되거나 비동일시되는 문제만 남는다. 들뢰즈와 가타리는‘끔찍한 이데올로기’뛰어넘어 새로운 주체성 형성을 시도한다. 동일시되거나 비동일시 되는 주체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색다른 제3의 주체형성을 설명한다. 계급투쟁과 더불어 욕망투쟁에 대한 문제설정을 도입함으로써 새로운 주체성을 시도하는 들뢰즈/가타리는 레닌처럼 실천(현실)으로 공백을 메우지는 못한다.
그러나 들뢰즈와 가타리는 주체를 억압하는 권력의 미시적 작동을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전복과 자율적 주체성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의 문제를 정치(맑스주의)와 정신분석(프로이트)의 단순한 결합이 아닌 '횡단'을 꿈꾸며 새로운 정치적 실천의 영역을 모색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기존의 구조주의적 분석을 벗어난 새로운 무의식 분석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킬수 있는 자율적인 주체성을 생산하는 방식.
"무의식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 "무의식은 건설되고 창안되어야 한다."

7. 새로운 주체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단순히 계급으로 호명하거나 의식을 바꿈으로써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다양한 국가장치와 문화장치, 매체장치와 같은 국가/자본기계의 작동에 복종하거나 탈주(저항)하는 주체만 있을 뿐이다. 또한 실현됐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레닌의 경험). 끊임없이 실현되고 다시 복종되고(재코드화) 갈등하면서 완성되는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주체형성의 완성은 영원한 과제일지도 모른다(가타리의‘영원한 개량주의’). 단지 실현되는 것은 순간에 드러나는 혁명적 주체성과 갈등하면서 소멸하는 주체성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한번 혁명적으로 무장된 인간이 영원히 민주화 투사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공산주의적 주체가 영원히 비국가꼬뮨주의자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과 우리들을 되물어보고 비국가꼬뮨사회를 실현(=실천)하는 경향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 존엄한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개별적 노력보다는 집단적 실천과 마주침이 필요하며 끊임없는 투쟁과 모순된 현실에 대한 저항, 그리고 학습회와 연수가 필요하다. 자율성의 정치의 한계(개별화되는 경향과‘폭발적 힘’을 증폭하기 위한 어려움)를 넘어 집단적 실천를 통한 연대와 차이를 실현하는 주체(성)이 바로 우리에게 있다. 인간은 그/그녀가 행하는 바로 그것일 뿐이다!(*)

 

- 2003. 12. 15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새로운 말하기
-새(bird)는 어떻게 사랑을 할까?-


사랑은 가장 은밀함과 동시에 가장 열린 신체와 커뮤니케이션을 요구한다. 여기서 사랑을 향한 은밀함은 그 어떤 사회적 장치나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시간과 공간을 말하는 것으로 은밀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신체는 훨씬 자유롭게 열리고 소통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보통 우리들은 사랑을 하거나 애인과 섹스를 하고 싶을 때에는 말이나 합리적인 언어보다는 얼굴표정이나 상대방의 눈빛, 그리고 신체의 미세한 떨림 같은 것들을 서로 살피고 교감한다. 소통되지 않는 섹스는 거짓이고 일방적인 권력의 작동이다. 사실 사랑이나 섹스는 서로 끌리거나 꼴리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갑자기 한쪽만 뜨거워져서 '우리 한번 하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쑥쓰러운 일은 없다. 왜? 상대방과 충분히 교감하거나 접속이 되질 않으므로...!


1. 말을 한다는 것-권력

말을 한다는 것은 권력이 작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언어권력'이라고 표현한다. 말이나 언어를 통해서 표시되는 '기표'는 그 순간 의미가 고정되고 확정된다. 우리가 책상 위에 과일을 보고 "사과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과일은 '사과'라는 하나의 의미로 고정된다. '사과'라고 외친 발언자의 언어가 그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권력으로 작동되어서 '사과'라는 의미가 부여된 것이다. 이렇게 기표의 의미작용은 권력의 문제로 드러난다.
학생들을 줄맞춰서 세워놓고 혼자서 연단 위에 올라가 일장연설을 토하는 초등학교 교장은 파시즘의 중요한 결과물이다.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하고, 9시 뉴스에서 아나운서가 사건들을 앵무새처럼 나열하는 것도 '언어권력'의 하나이다. 그 지겨운 소리들, 듣기 싫어도 들리는 말들.


2. 말을 한다는 것-관계

끊임없이 논리정연하게 합리적으로 말하는 인간은 가장 권위적이고 권력적인 인간이다. 그 권위의 확산을 위해 끊임없이 떠드는 자의 의도는 그 말이나 언어로 인해 자기 주위의 배치와 관계가 변화하기를 바랄 뿐이며, 이미 그것을 기대하거나 예상하고 지껄인다. 말이 바뀌면 사람이 변한다. 그 주위도 변한다. 그렇지 않은 말은 말이 아니다. 즉 말은 하나의 중요한 '관계'이자 새로운 '관계형성'이다.


3. 푸코의 말과 사물, 그리고 '무의미'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이 관계와 권력의 문제를 담론(discourse)을 통해 설명한다. 푸코는 담론 분석을 통해 '일정한 담론이 가능할 수 있는 역사적 층위가 어떻게 구성되는가'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말하는 주체(말)와 말하는 대상(사물) 사이에 맺고 있던 지식(인식)의 태도와 그 곳에서 재주를 피우게 된 언어의 새로운 모습에 주목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과 사물의 관계를 보면, '보임'과 '보이지 않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에는 어떤 힘이 작동해서 어떻게 '말해지는 것'과 '말해지지 않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인간이 지식과 권력을 자신의 내부에 흡수함으로써 '말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을 합리적인 언어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권력)와 '언어의 감옥'에서 자유롭고자 하는 인간들이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자유로운 인간은 '무의미한 독특한 의미(가타리)'를 긍정하는 인간이다. 의미작용은 항상 권력의 문제이다. 반대로 '무의미'는 일방적인 권력을 해체하고 다양성을 긍정하게 만든다.
'언어가 사물을 포착하려는 순간부터 그 대상을 마음대로 주무르려고 하는 언어의 음흉한 계략, 즉 끊임없이 새로운 담론 속으로 끌어들여 대상의 모습을 변질시키려 하는 언어적 횡포(푸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언어의 횡포를 넘어서 권력에 대한 저항을

언어에서 작동되는 권력을 보고 '말하지 않기'를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말하기'를 생각해 보자.
물론 '암묵적 동의'를 악용하는 남성이나 권력집단을 옹호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권력자들은 분명히 '침묵'을 점령하고 있으며 자기들 잣대로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자기가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의 침묵만 인정한다. 침묵이라는 일탈의 거리 측정은 자본과 권력자들의 무서운 무기이다. 그러나 통제 가능한 억눌린 침묵보다는 열린 교감이 훨씬 자유롭고 풍만하다. 그 열린 교감과 새로운 소통은 혁명과 사랑에 의해서 극대화된다.
혁명은 끝없는 사랑이다. 혁명은 무한한 타인에 대한 사랑과 더불어 곰곰히 생각해 보면 자기애(自己愛)이자 자기에 대한 배려(푸코)이다. 혁명은 변증법이 아니다. 자기애와 타인에 대한 사랑의 변증법의 아니라 끊임없는 끓고 있는 새로운 구성이다.

문제는 언어가 권력에 의해 장악 당했으니, 우리는 평생 올바르게 말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적 탈주' 즉, 새로운 다양한 생성을 사고하는 것이다.
언어를 점령한 권력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끊임없이 스스로 변형된다. '터미네이터2'에서 나타나는 액체사이보그는 항상 우리 곁에 달라붙어서 어느 시공간에서나 존재하고 출현한다. '터미네이터2'는 새로운 권력의 작동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출현가능하고 이미 존재한 권력(거시권력과 더불어 더 끔찍한 미시파시즘)때문에 저항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저항이 있기 때문에 권력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쉽게 말하면 태초에 권력이 존재하고 저항이 존재한 것이 아니라, 욕망의 탈주가 존재하므로 그것을 재영토화 하는 권력이 작동한다는 말이다. 저항과 탈주는 인간 생성의 원인이면서 발전의 원동력이다. 새로운 말하기는 새로운 저항이다.


5. 새는 어떻게 사랑할까-'새로운 말하기'

생물학적 특성상 얼굴근육이 고정되어 있고 다양한 눈빛을 표현하지 못하는 새(새의 눈동자는 고정되어있다!)들도 사랑을 표현한다. 새들은 사랑하는 상대방을 향해 몸체를 돌려서 '옆으로 비스듬히 쳐다보기'로 사랑을 표현한다. 깃털의 변화을 통해서 표현하기도 한다...합리적이고 권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위대한(?) 인간의 상상을 넘어선다.

논리적 표현과 합리적 언어를 넘어서는 새로운 말하기는 가능하다. 여성의 언어로 말하고, 어린이의 언어로 말하기. 사랑의 뜨거운 언어로 말하기. 이것은 권력의 획일화와 지층을 해체하는 말하기이다.

최고의 말하기-사랑의 교감은 다양하고 항상 열려있는 것이다. 섹스, 부대낌, 눈빛, 느낌, 교감, 영혼, 자세, 떨림, 피부색깔, 소리(파롤parole), 닭살...엄청난 보여주기, 고음과 저음, 흔들림......다양한 침묵들(날카로운 침묵, 냉소적인 침묵, 즐거운 침묵, 오르가즘을 위한 침묵, 파쇼를 향한 얼음장같은 침묵-파시즘은 침묵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라! 투표거부, 협상거부, 대표거부, 더 나아가 집단으로 말하기, 아우성, 들끓음, 웅성웅성, 부글부글...)....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무한하게 열린 감성적 텔레파시(telepathy)들을 사용하자. 그리고 느껴보자!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개인의 에너지와 그로 인해 끊임없이 풍만하게 퍼지는 집단적 에너지들을!!!

 

 

2003. 12. 2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코코아 꼬뮌주의

2004/12/20 02:59

1. 사랑하는 동료에게 코코아를 선물받았다. 생각치도 않은 것을 받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다. 맨 이런 일만 있었으면 너무너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현재와 미래도 마치 코코아 같다. 이렇게 달콤하고 부드럽게 나를 적시면 나는 코코아 코뮌주의자가 된다. 혁명에서 소금과 야만과 폭력적인 거칠함은 제거되고 달고 기쁜 코코아만 존재하면 좋겠다. 나는 코코아 공산주의를 갈망한다!


2. 맑시즘은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꼬뮌을 사유하고 구성하는 데는 무능하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분화된 사회 또는 외적으로 경제가 중심을 이루는 체제(자본주의)에 대해서는 타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분석은 분화되지 않은 사회, 경제에 대한 거부에 토대한 사회에 적용될 때는 우스꽝스러울 뿐만 아니라 몽매주의 적인 것이다.'
[삐에르 끌라스트르의 '폭력의 고고학' p. 203.]

끌라스트리에 의하면 '분화되지 않는 사회'는 지배자와 피지배자, 가진자와 못가진자, 배운자와 배우지못한자로 구분되지 않는 사회이며, '경제에 대한 거부에 토대한 사회'는 생산능력에 대해 부단히 엄격하게 통제하는 반생산의 기계들이 작동하는 사회이다. 이 사회들은 원시사회이며, 원시사회는 국가에 반대하는 비국가, 비권력, 비착취, 비상품 사회이다.

나는 야만적 별종보다는 야만적 원시인이 되고 싶다. 이런 나는 정통적이고 순수한 공산주의자들에게 야만적 꼬뮌주의자로 비칠 것이다. 나는 코코아 코뮌주의자인 동시에 야만적 원시사회인이고 싶으며, 따라서 다시 야만적 별종이 되고 싶다. 아~ 나는 때로는 야한 밤의 섹스천국 꼬뮌주의자가 되고 싶고, 밥꼬뮌주의자가 되고 싶고, 담배코뮌주의자가 되고 싶고, 가끔 술코뮌주의자가 되고 싶다. 이런 코뮌주의자들이 만나서 연대하면 야만적 코뮌주의가 될 것이다. 누구나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해도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방해하지 않는 자유의 공간이 밤하늘 별처럼 무한하게 펼쳐지는 우주적 욕망천국 꼬뮌주의가 될 것이다.


3. 맑스의 '사랑'=공산주의

맑스의 경철수고에서 미친놈/녀같은 만능적 화폐에 대한 분석을 끝으로 구매와 교환을 이루는 착취경제를 거부하는 본심을 드러낸다. 화폐대신에 '사랑'으로 그 엄청난 공백을 메꾼다는 사유이다.

'인간을 인간이라고 전제하고, 세계에 대한 인간의 관계를 인간적 관계라고 전제한다면 너는 사랑을 사랑하고만, 신뢰를 신뢰하고만 교환할 수 있다. 네가 예술을 향유하기를 바란다면 너는 예술적인 소양을 쌓는 인간이어야 한다; 네가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면 너는 현실적으로 고무하고 장려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인간이어야 한다. 인간에 대한, 그리고 자연에 대한 너의 모든 관계는-너의 의지의 대상에 상응하는, 너의 현실적, 개인적 삶의 특정한 표출이어야 한다......'
[칼 맑스의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수고' p.361.]


4. 아무나 자본주의를 찬양하고 인용하고 노래한다. 이런 전지전능하고 마술적인 자본주의에 비해 꼬뮌주의는 너무나 경직되어 있다. 자본주의는 내 몸뚱아리가 되어 버렸고 공산주의는 너무나 멀리 있다. 이제 내 신체에 딱 달라붙는 꼬뮌주의를 생각하고 실천하자! 유연하면서도 부드럽고 기쁨에 충만한 제멋대로 미친 꼬뮌주의를 염원한다. 제맘대로 변신하는 카멜레온 꼬뮌주의 만세! 코코아 꼬뮌주의 만만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1.실명으로 쓰고 싶은 자는 자신의 실명으로 쓰면 된다.

2. 가상공간에서는 사실 실명보다는 아이디나 자신의 고유하고 특이한 필명으로 많이 쓰여진다. 그 이름(아이디)또한 항상 변하고 변용된다.

3. 가상공간에서는 현실 권력의 작동이 그대로 드러나는 또 하나의 장(場)이면서, 그 권력질서와는 무관하게 새로운 질서가 탄생하기도 한다.

4. 현실에서 권력을 쥔자는 새로운 공간마다 자신의 권력의 세(勢)가 유지되길 바라며, 가상공간에서도 그런 바램과 노력을 하고 있다.
권력에서 소외되고 항상 눌린 자들은 새로운 말하기 공간을 찾고 있으며, 가상공간에서 그런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어한다.

5. 새로운 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는 질서를 부여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드면 되는 것이다.

6. 현실에서 표현의 자유는 많이 배운 자들(교수, 박사, 전문가들)이 충분히 누리고 있으며, 그렇지 못한 자들의 표현의 자유는 하나의 상징으로만 작동하지 실제로 누릴 수는 없다.

7. 가상공간까지 군대처럼 군번대고 말할 필요는 없다.

8. (가상공간에서) 표현의 자유는 실명을 사용할 수도 있고, 익명을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9. 노동자가 스스로 만든 노동조합의 자유게시판은 더더욱 그러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낙서

2004/12/20 02:55

인정 사정 볼 것 없이 
                      - 그들을 보면 

개들의 항문을 정면에서 보면
정말, 개같은 기분이지
피가 머리 끝까지 치솟아 올라
어디, 작대기라도 있으면
사정없이 쑤셔버리고 싶지

 

 

 

어떤 정신 하나 (문득 노조를 생각하다)


정면에서 정면으로
당겨질대로 당겨진 팽팽한 활 시위,
턱 밑에 칼을 들이 밀 듯이
곧은 직선으로 순식간에 날아가
세상의 중심을 관통하는
푸른 화살촉.

 

 

 

* 남원에 사는 면서기 시인이 쓴 낙서입니다. 이 면서기는 승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호봉으로 조지는 공무원입니다. 그래서 면에서 12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자기 인사기록카드가 사라졌다고 말합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이해타산과 손익계산이 빠르고 머리가 잘 굴러가는 자는 노동조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실 노동조합은 머리가 잘 굴러가지 못하는 부족한 자들이 모여서
집단의 지혜로 움직이는 조직입니다.

머리가 잘 굴러가는 자는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에서 생존하기가 참새가 바닷속에서 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역사

2004/12/20 02:50

과거의 잘못된 역사를 지울려고 하는 자들에게...

 

 

과거의 잘못은 지우는 방법은 없다.
그것은 마치 엎질러진 물을 담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진공청소기로 흡입해도 소용없고 마른 걸레질을 해서 짜내도 물을 다시 담을 수 없다.

그러나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는 방법은 있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는 자성의 방법을 행하고
자기로 인해 직접 피해 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고
보이지 않게 영향을 미친 모든 이들에게 용서를 구하면 된다.

그런데 대개 한번 잘못을 행한 인간들은
자기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습관이 있어서
수없이 잘못을 반복하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이 행한 모든 것이 옳다는 자기도착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가 추하게 인생의 종말을 맞이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1. 시대 유감, 겨울의 한 자락에서

겨울이 시작되고 활동가들이 길바닥에 누웠다. 열린마당 한 가운데 활동가들이 드러누우면서 매일 밤 잠자리가 편치 않다. ‘자연아, 미안해’라는 작은 구호가 마음 한 구석을 쓸고 지나간다. 나는 이들을 지지할까? 물론 지지한다. 서울에 다시 돌아온 것이 1995년이다. YS 시절은 기업에서 보냈고 DJ 시절은 정부에서 보냈다. 잠깐 기업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강사실을 나선 것이 10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기간 내내 환경에 대한 갖가지 정책들을 평가하거나 만들면서 지금과 같은 시대는 본 적이 없다. 생태의 눈으로만 보자면 지금은 악랄한 시대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악랄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2. 이 정부를 어떻게 규정해야 하나?

사람들은 흔히 노무현 정부의 철학의 부재가 문제라고 한다. 철학의 부재가 문제일까? 철학이 없는 것은 노무현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철학없이 살아가지만 이들이 다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고, 매일매일 움직이는 철학 없는 수많은 일상들이 다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DJ 시절의 관성대로 노무현 정부를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하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건 신자유주의 정부도 아니다. 신자유주의로서의 최소한의 매너도 가지고 있지 않다. 신개발주의? 박정희 시대에도 이렇게 전국토를 일시에 혼란으로 밀어넣은 적은 없다. 산업화의 폐해를 녹화사업과 그린벨트로 보완하는 유신 정부가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염치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정부의 지금 움직임은 개혁정부라기 보다는 ‘개발정부’로 규정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고, 농림부는 농업지역 개발부, 재정경제부는 개발재정 조달부, 외교통상부는 통상개방부로 변화했고, 환경부는 개발환경촉진부로 변한지 오래이다. 총체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시대의 절대명제에서 한 발도 벗어난 곳은 찾아볼 수 없다. 지역의제는 이제 어떻게 친환경적 골프장을 지역에 들일 것인가라는 것을 주요 회의안건으로 다루고 있다. 이렇게 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인가? 물론 불가능하다. 쿠츠네츠라는 위대한 경제학자가 20년 동안 만든 쿠츠네츠 통계를 들여다본다. 50년대 이후로 사회의 총지출을 100으로 볼 때 15 이상의 지출을 집과 도로, 즉 건설에 사용한 나라 중에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본을 제외하면 세계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일본은 17 정도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회의 총지출 중 24를 건설에 사용하고 있다. 2001년 기준이다. 20 이상 사용하고 있는 나라는 요르단, 베트남이나 아프리카의 몇 개 국가이다. 스위스는 13 정도 되고, 영국, 프랑스 대부분이 10 이하이다. 지출통계만을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는 아프리카 수준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의 시대 인식은 2,000불 정부의 시대인식과 일치한다.

3.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꼬였는가? : 국토생태 개념의 출발을 위하여

생태학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현재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생태라는 표현은 대부분 경관생태학(land-scape ecology)에서 유래한 개념들인 경우가 많다. ‘조경’이라고 하기도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생태도시나 생태적 접근이라고 할 때, 이 개념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눈에 보이는 것을 가꾸는 접근을 끝까지 밀고가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생명’이라는 개념이 중요하다. 현재의 ‘개발’이라는 대단히 독특한 한국적 개념은 특정계층의 이익을 위하여 나머지 모든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그리고 대변 받을 수 없는 것들을 죽이는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이 정부는 개발정부가 아니라 죽임의 정부이고, 살육의 정부라고 할 수 있다. 국토생태라는 개념이 가능할까? 혹은 도시생태라는 개념이 가능할까? 국토 생태라는 개념에서 볼 때 시대는 최악이다. 골프장으로 상징되지만, 문제는 골프장만이 아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모르는 동안에 국토생태의 안전판 노릇을 해왔고 묵묵히 기여했던 농토에 대한 침탈이 이제부터 시작이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10%를 사람들의 거주지역으로 활용해오고 있다. 절대농지로 분류된 농지의 50%를 제외한 나머지 땅이 이제 전면적으로 풀리게 된다. 1%의 사람들을 위해서 5%의 자본이 국토의 50%를 자기 마음대로 하는 세상이 2005년에 펼쳐질 세상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래서 지금 활동가들이 차가운 겨울, 길바닥에 누워있는 것이다.

4. 국회가 정상화되면 무서운 일이 시작된다

국가보안법을 둘러싸고 국회가 공전하고 있다. 민생법안이라고 표현하는 것 중에 농지법 개정안이 포함되어 있다. 국회계류중이라고 표현하지만, 이 농지법 개정안에는 이승만 정부 이후 사회적으로 유지되어 왔던 경자유전의 원칙 포기가 포함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가 바꾼 제도 중에 가장 오래 동안 영향을 미칠 악법이 바로 이것이다. 이 법과 쌍둥이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토지규제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다. 2005년 7월 제정예정이다. 토지와 관련된 모든 제도가 이걸 통해서 풀린다. 농지법과 토지규제기본법 두 가지로 국토생태의 양 대 법이 해체된다. 농민도 농지법을 지키지 못했지만, 환경단체도 토지규제기본법을 막아내지 못한다. 지금과 같이 고립되어 각개격파 당하는 상황에서 국토생태라는 개념은 설 곳이다 없다. 그래도 지금은 국회가 이전투구로 조금 바쁘다. 그래서 ‘농업 포기’라는 선언을 할 시점은 아니지만, 농지법이 조만간 개정되고 나면, 농업은 6헥타르의 농가 7만 가구를 남기고 결국 농업에서 모두 철수하게 된다. 농지법은 이 시대를 위해서 도시자본과 투기자본에게 농지를 넘겨주는 법이다. 그래도 남아있는 규정들, 예를 들면 녹지지역이나 보존지역 같은 규정들을 없애기 위해서 토지규제기본법이 필요한 것이다. 국회가 정상화되면, 이 무서운 흐름이 시작된다. 열린우리당의 무뇌아 거수기들은 개발정부가 던지는 법안을 중독된 마약을 받아먹듯이 덥썩덥썩 받아먹을 것이다.

5. 환경이 농업을 만나면 새로운 반전이 시작된다

정부는 농업을 공식적으로 포기하였다. 노무현 농정로드맵 10개년 계획이 그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풀려난 농지를 노리고 기업도시법과 골프장 정책이 움직이는 것이고, 이렇게 농지로 투기자본이 몰려가면 도시의 자본이 빠질 것이 두려워 서울시의 뉴타운 개발과 각 지자체의 자본유치운동이 시작되는 것이 지금의 정확한 진단이다. 투자가 안되는 것은 이렇게 거대한 투기판이 돌아가는데 어느 기업이 골치 아픈 국제경쟁과 기술투자라는 힘든 길을 걷겠는가?

이제는 농지를 사회적으로 지키는 것이 환경운동의 핵심이 되는 시기이다. 공해추방의 한 시대가 거하고, 농업살림, 생명살림으로 전환되는 또 다른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환경운동이 농업과 만나서 생명산업, 지역산업 그리고 작은 것들의 미학을 만나는 새로운 시대가 이제 열리는 것이다. 그 새로운 환경운동의 시대를 열기 위해서 지금 활동가들이 길에서 고통받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고통은 잉태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전농이 친환경 선언을 하고, 환경이 농업의 수호자 역할을 자임할 때, 비로서 21세기가 한반도에서는 잉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환경은 농업이다. 농지의 해오라기들을 지키기 위해서 농업보조금을 생태보조금으로 전환하는 것이 WTO 시대의 농지와 농업 그리고 환경이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생협을 통해서 먹어도 괜찮은 음식이 유통되고, 믿음으로 생명이 진화할 때 비로서 세상은 이 악의 시대를 종료하게 된다. 그리고 비로서 1만불의 소득을 만끽하고 새로운 발전의 시대로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개발정부의 시대를 종료하고, 생명정부의 시대로 진화하게 된다. 그 대반전은 2005년도에 시작되어야 한다.

 

 

* http://www.greens.or.kr/에서 퍼옴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자기검열-억압

2004/12/20 02:43
[한겨레21] 시사SF (337호) 억압 ... 2000/12/06 337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노동자

2004/12/20 02:41

[한겨레21] 시사SF (355호) 노동자 ... 2001/04/17 355호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우리 마음 속의 슬픈 괴물

2004/12/20 02:19

이달 초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꽤 기분 좋은 연말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8년을 끌어 온 박사 과정이 끝나기 때문이다. 학위를 받는다고 지금 생활에 큰 변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속시원함 같은 것을 기대했던 셈이다. 하지만 심사가 끝난 지금의 나는 그다지 즐겁지도 시원하지도 않다. 반은 필요에 의해서, 반은 관성처럼 얻고자 했던 앎의 자격증. 그것의 획득을 앞둔 지금의 나는 그 동안 내가 무의식적으로 쌓아왔고 그 안에서 편안했으며 때론 우쭐대기까지 했던 벽의 존재를 실감하며 우울하다.

 

내 12월의 기대가 뒤틀어진 직접적 계기는 열린우리당의 이상락 의원 구속 기사였다. 그의 구속은 국가보안법을 사이에 둔 여야의 가파른 대치 속에서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신문들은 그의 의원직 상실로 여당의 과반수 유지가 어렵게 되었다는 것에 약간의 관심을 보였을 뿐이다. 그의 구속 이유는 ‘초졸’의 학력으로 ‘고졸’ 행세를 한 것에 있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땐, 너무 부끄러운 말이지만, 웃음이 나왔다. ‘초졸’의 학력을 숨겼다는 것보다 ‘고졸’로 ‘행세’했다는 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졸자가 넘쳐나는 사회에서 이왕 거짓행세를 하려면 최소한 ‘명문대 졸’, 아니면 돈 주고 산다는 ‘명예박사 학위’ 정도는 적어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한겨레21〉에서 그 복잡한 사연을 읽고 나서 내 기분은 착잡해졌다. 그는 충남의 어느 가난한 소작농 집안에서 태어나 겨우 초등학교를 마쳤다. 농사를 짓다가 상경한 그는 공장 노동자, 밤무대 가수 생활을 했고, 1980년부터 성남 지역에서 과일 노점상, 목수 보조 등의 막일을 했다. 그러다 성남 주민교회 이해학 목사를 통해서 사회 문제에 눈을 떴고, 이후 운동가로 변신해서 80, 90년대 수도권 빈민 운동을 이끌었다고 한다.

 

도대체 뭐가 아쉬워서 이렇게 성장한 운동가가 그런 거짓행세를 해야 했을까? 바리케이드 너머의 무서운 적들에도 꿈쩍 않던 그를 이토록 왜소하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정말로 싸우기 힘든 것은 저 너머에 있는 적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와 있는 적이고, 나를 위협하는 적이 아니라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적이라는 말이 있다. “초등학교밖에 안 나온 무식한 놈이라고 고백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작은 ‘무학’의 부끄러움이 괴물이 되어 한 운동가를 먹어치운 것이다. 가난 때문에 채우지 못한 학력이 빈민 운동가를 무너뜨린 이 슬픈 현실에 무어라 말해야 할까.

 

지난 주 학위논문 심사가 끝났을 때 내게 제일 먼저 전화를 건 것은 어머니였다. 무사히 통과되었다는 말에 어머니는 크게 기뻐하며 “잘했네, 잘했네”를 연발하셨다. 아들의 학위 소식에 기뻐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을까마는 어머니의 관심은 각별했다. 심사일정을 자주 물었고 그 뒤에는 항상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나는 어머니의 조바심과 기쁨의 정체를 알고 있다. 어머니의 최종학력은 ‘초졸’이다. 그것도 서류상으로만 그렇고, 실제로는 2년 정도 학교에 나간 게 전부라고 하셨다. 어머니는 아마도 읽고 쓰고 셈하는 것 대부분을 살아오면서 터득하셔야 했을 것이다. 어머니는 삶 속에서 많은 것을 배우셨지만, 어머니의 최종 학력은 평생 그대로였다. 어머니도 마음 속에 슬픈 괴물을 키워 오셨던 것이다. 어머니 스스로 ‘한’이라고 말했던 그 괴물은 내 학위를 나보다도 더 오랫동안 기다려왔을 터이다.

 

많이 배운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하지만 그것이 자격증이 되고 차별의 근거가 된다면 배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배운 자가 배웠다는 이유로 혜택을 요구하고 못 배운 자는 바로 그 때문에 또 다른 불이익을 받는, 이중의 혜택과 이중의 불이익 속에서 살고 있다. 차별하는 자는 우쭐대고 차별받는 자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니, 우리 맘 속 괴물을 도대체 어떻게 죽여야 할까? 올 연말 내게 슬픈 물음이 던져졌다.

 

 

[고병권/연구공간 ‘수유+너머’ 공동대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우리가 뭘 배운다는 것...근원적 삶으로부터 배우지 않은 것은 '조작'에 불과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민중이여, 공범이 될 것인가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필자는 어릴 때 청소년을 위한 캠프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함께 지내던 학생들은 조회하고 군가(軍歌)를 부르며 행진하고, 단체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등의 군사적 규율에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한편으로 필자를 놀라게 한 것은 학생들이 부르던 가요였다. 그 내용은 1968년의 체코에 대한 소련군의 침략을 찬양하고 “프라하의 부르주아들을 탱크로 무찔러 해산시킨 장한 우리들”을 영웅화한 것이었다. 필자가 노래 부르던 친구들에게 남의 도시를 무찔러야 할 까닭을 묻자, “우리를 배반하고 미국에게 붙으려는 놈들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느냐”라는 격분에 찬 답이 날라왔다. 겁이 나서 더 이상 이야기를 못했지만 그 뒤로 필자가 고심해온 문제는, 군사적 규율을 귀찮게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군사주의의 결과인 침략을 지지하는 세계관의 논리가 무엇이었는가라는 것이다.

체제가 심어준 수구적 환상

군사주의의 폐단을 인식하는 그들은 초보적으로나마 반항 의식이 있었지만 침략을 미화하는 선전에는 포획되고 말았던 것이다. 민중의 아들들인 그들이 과연 저항세력으로 자랄 가능성이 있었는가, 아니면 체제의 사유에 깊이 몰입되어 이미 체제의 공범이 된 것이었는가? 민중은 희생자이자 저항 가능성의 보유자인가, 아니면 관제 애국주의를 위시한 각종 마약의 힘없는 중독자인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뒤 이 고민은 더 무거워졌다. 박정희 시절 저곡가 정책에 신음하고 군대에서 실컷 구타당했음에도 박정희를 비판한 필자에게 호통을 쳤던 농촌 아저씨, 외유나 일삼는 국회의원들이 더럽고 밉다 하면서도 데모하는 민중을 가리켜 “아주 역적들이야, 잡아가서 잘 패야 정신 차릴 거야” 말하던 택시기사 아저씨, 공주님을 뵙고 싶은 백성의 심정으로 모 대표가 연설하는 곳으로 모여드는 경상도 서민들…. 체제의 피해자임에도 체제의 사고를 받아들여 수구적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기층 민중의 모습에서 ‘희생자’의 측면과 ‘공범’의 측면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가? 이들이 과연 지배자들에게 끌려다니는 처지에서 벗어나 계급적인 연대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생각하는 백성’이 될 수 있을까 하는 화두는 동아시아 근대사를 공부하던 필자를 무거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관제 애국주의라는 마약을 유포해 ‘수령님’과 ‘각하’들을 백성의 유사(類似) 가부장으로 만드는 데 남북한의 지배자들이 일제를 스승으로 삼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계급·개인인권 의식이 자리잡히기도 전에 ‘신민’(臣民)으로 호명돼버린 메이지 일본의 피지배민들의 대다수는 결국 체제의 공범이 되고 말았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의병 토벌’ 때 한국 땅에서 만행을 저질렀던 일 군졸들, 일본 목도꾼들에게 폭행을 당하여 정신병을 앓게 된 김소월(金素月 1902~1934)의 아버지 김성도(金性燾)의 경우처럼 조선인을 폭행하는 조선에서의 일본 막노동자들…. 일본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은 영세민들은 현해탄을 건너간 뒤 악질적인 가해자로 돌변했던 것이다. 계급 투쟁을 진보의 원천으로 아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기대하는 저항 의식이 그들에게 처음부터 전무했던 것인가? ‘선량한 황민’으로서 국가적 범죄의 하수인이 되기 전, 그들은 한번이라도 저항할 줄 아는 주체적인 인간이 돼본 적이 있었을까? 만약 그러한 시도가 있었다면 왜 좌절됐을까?

통치자의 목을 쳐본 일이 없는 메이지 시대의 ‘해방되지 않은 노예들’은 한 진보 사학자의 말대로 ‘황민’의 신분에 안주하여 ‘남들에게 족쇄를 씌우는 훌륭한 대리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메이지유신이라는 번벌(藩閥) 정객과 재산가의 위로부터의 혁명만 한 아래부터의 혁명이 일어나지 못했다고 해서 민초들이 단순히 정부쪽의 ‘국민 만들기’ 정책에 순응했다고만은 볼 수 없다. 아무리 계급의식과 조직이 결여된 마을 단위의 농민이라 해도 가혹해진 세정(稅政)과 민중종교인 불교에 대한 메이지 초기의 ‘폐불훼석’(廢佛毁釋)이라는 탄압, 공립 소학교들의 강제적인 설립 등의 반민중적 정책들을 좌시할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이키’(一揆), ‘소요’라고 불리던 민중 저항의 건수는 메이지유신이 이루어진 1868년 직후 30~40%로 늘어났다.

일본 농민들이 죽창을 들게 한 징병령

그러나 가장 큰 저항을 부른 것은 바로 ‘국민’들을 제국의 충견으로 만들려는 1873년의 징병령이었다. 20년 뒤에 징집병들이 조선과 중국의 땅을 짓밟게 됐지만, 1873년 당시 상당수 농민들은 ‘황국’의 살육자가 즐겁게 되기는커녕 징병령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죽창을 들고 무리지어 관공서를 파괴하려 달려갔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민(愚民)관의 차원에서 한국 개화파와 다를 게 없던 메이지 집권자들은 ‘우매한 백성’이 징병고론(徵兵告論·징병령 포고문)의 ‘혈금’(血金·생명을 바쳐 병역 의무를 다한다는 의미의 상징적 표현)의 용어를 잘못 해석하여 “관료들이 우리 피를 뽑는다는 뜬소문으로 무지에 의한 소요들을 일으켰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런 유언비어들이 반란의 동기가 됐다 해도 그 기본적인 원인은 억압에 대한 합리적인 저항 의지에 있었다. 장정의 징집이 그 가족의 노동 부담 가중을 의미하기도 했으며, 혈세(血稅)의 부담은 공평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오늘날의 한국은 현실적인 ‘빈민개병제’를 갖고 있지만, 한국 징병제의 원형인 메이지의 징병제는 아예 명실공히 빈민개병제이었다. 메이지 시대 초기 징병제의 규정상 관리·특정 학교 출신은 물론, 270엔 정도의 대인료(代人料·다른 장정을 고용할 돈)를 납부할 수 있는 토호도 면제 대상이 됐다. 결국 ‘천황 폐하를 위해서 옥쇄할 영예’는 역시 빈민들의 몫이었다. 거기에다 많은 농민들은 “우리의 목숨을 혈세로 거둘 천황이 도대체 누구냐”라고 분노했다. 지배자들이 ‘현인신’(現人神)으로 치켜세운 천황의 존재를 벽촌에서는 잘 알지도 못했던 것이다.

1873년 6월 징병령을 알게 된 뒤에 죽창을 들고 관공서·관립학교·지주의 집들을 파괴·방화한 수만 명의 돗토리현(鳥取縣·혼슈의 서쪽에 위치)의 농민들, 1873년 거의 600개의 관공서와 관료·부자의 집들을 파괴하여 마루가메시(丸龜市)란 지방 도시를 점령하고 군대와 격전을 벌이던 가가와현(香川縣·시코쿠의 북쪽)의 약 15만명의 반란 농민들…. 목숨을 걸고 새로운 형태의 억압과 싸움을 벌였던 그들은 총포의 힘으로 눌러졌고 그 뒤 소학교에서 천황의 사진 앞에 절하고 천황이 신이라고 배운 그들의 자손이 침략 과정에서 ‘족쇄를 채우는 대리인’이 된 것이다. 

저항 에너지는 고갈되지 않는다


△ 1867년 반란농민들을 그린 일본의 옛날 그림.

1873년의 반란 농민들은 본능적으로 희생만을 강요하는 천황주의 이데올로기를 불신했지만 그 이상의 어느 체계적인 대안적 세계관도, 어떤 전국적 조직도 갖지 못했다. 그러나 메이지 초기의 크고 작은 ‘이키’ ‘소요’들에서 확인된 민중의 저항 에너지는, 국가의 포섭·탄압 양면의 ‘국민화’ 정책에도 고갈되지 않았다. 군대에 끌려간 뒤 피침 지역 주민들을 폭행하면서 자신이 당한 억압을 ‘이양’한 자들도 민중이었지만, 해마다 징병을 기피하고 도망다니던 2만~4만명의 장정들, 각종의 ‘소요’와 쟁의를 계속 일으키던 농민·서민들, 태평양전쟁의 파시스트적 체제하에서 반항적인 ‘유언비어’를 유포한 주민들 역시 민중이었던 것이다.

야누스처럼 다른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진 ‘민중’…. 민중으로서 체제에 대한 환상이나 가부장적인 습관들, 시장 질서를 당연지사로 아는 각종의 왜곡된 ‘상식’들, 그리고 체제 안에서 신분 상승적 욕망을 버리고 혁명 주체가 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오랜 역사적 준비 기간과 특수한 계기들이 필요한 일들이다. 그러나 아무리 살벌한 체제하에서 민중이 순응적인 자세를 취해도 민중의 저항적 가능성을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결국은 “못살겠다!”라는 함성이 들릴 때가 오는 것이다.

 

 

[참고 문헌]
1) 김필동, <근대 일본의 출발>, 일본어뱅크, 1999.
2) 이토야 도시오·이나하타 미치 공저, 윤대원 역, <일본민중운동사: 1823∼1945>, 학민사, 1984.
3) 박영준, <명치시대 일본군대의 형성과 팽창>, 국방군사연구소, 1997.
4) 도야마 시게키, <명치유신>, 동경: 岩波書店, 1978
5) 나카무라 유지로·기무라 모토이 공저, <村落·報德·地主制: 日本近代の基底>, 동경: 東洋經濟新報社, 197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정화스님의 금강경 강의

2004/10/01 18:42

* [펌] http://www.transs.pe.kr/ 2004. 4.

 

 


 佛告須菩提 於意云何

 昔在燃燈佛所 於法所得不

 世尊 如來 在燃燈佛所 於法室無所得

 須菩提 於意云何菩薩 莊嚴佛土不

 不也世尊 何以故 莊嚴佛土者卽非

 莊嚴是名莊嚴 是故 須菩提 諸菩薩

 摩 하 薩 應如是生淸凈心

 不應住聲香味触法生心 應無所住

 而生其心 須菩提 譬如有人 身如須彌山王

 於意云何 是身爲大不 須菩提言 甚大世尊

 何以故 佛說非信 是名大信



  

   1.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요. 잘 사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음식, 주거환경운동 명상 등. 명상의 큰 특징 중 하나가 생각을 정지시키는 것입니다. 생각을 정지시킨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생각의 정지란 몸의 정지입니다. 그것은 호흡만 빼고 몸이 완전히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머리부터 꼬리뼈까지 완전히 정지시키는 것. 몸을 정지 하고 있으면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듣고 느꼈던 상태에서 일어나던 것 밖의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라는 것이 현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현재적인 마음이라는 것은 바로 한 순간 전에 사유된 인식 결과의 총체물이며, 그것이 또한 다음 순간 마음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몸을 정지하고 생각을 정지하는 것은 이제까지 의식의 흐름 안에서만 이해한 것을 너머 의식 밖의 것을 이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 라고 하는 것을 통해서 나를 알게 됩니다. 그것은 습관에 의해 파악된 나이며, 업종자의 흐름에 종속된 자아입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기 관찰을 하다보면, 한순간 자아가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때 자타가 함께 열리는 삶이 느껴집니다. 자기 마음의 흐름과 타인의 마음의 흐름이 함께 어우러진 삶이.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자아, 즉 자신의 영역이 사라지면서 무아가 생겨납니다. 이것은 자비입니다. 자비라고 하는 것은 건전한 생명을 이어가기 위한 무아를 통해 발생하며, 이건 몸을 정지하고 오래 자신을 들여다 볼 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고요히 앉아 명상하는 것. 그건 자신만을 위한 행위가 아닙니다. 자기 우주가 한없이 넓어져 사회영역을 미세하게 감지할 수 있는 경지까지 가는 것, 그게 명상입니다. 이 명상행위는 정지상태 같지만 실은 역동성을 동반합니다.

 몸을 수행하면서 자신을 열어 가면 열어갈수록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 것인가, 무엇을 먹을 것이며,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하는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명상은 잘 살기 위한 첫 번째 길입니다. 현재적 자신을 있게 하는 습관적인 흐름이 바뀌어야합니다. 습관적인 기운과 종자를 전부 바꾸는 것, 이전까지의 자신을 바꾸는 것,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깍지를 낄 때 신발 신을 때를 가만히 떠올려 보십시요. 우리는 습관대로 행동합니다. 오른발을 먼저 내미는지 왼발을 먼저 내미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요. ‘습관’ 이란 것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모든 사유는 습관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나 신발을 신는 동작 자체를 자각할 때 우리는 다른 삶 살 수 있습니다. 오른발 왼발, 신을 신던 습관적 기운과 다른 흐름을 스스로 만들 때, 우리는 다른 삶을 위한 단초를 마련할 수 있고, 그건 집중된 마음으로 행해지는 자기관찰을 통해 이뤄집니다.





   2.

 ‘개념’ 이라는 것을 한 번 생각해봅시다. 이를테면 소라는 것을 생각해볼까요. 우리는 왜 소를 소라고 할까요. 그건 다른 것과 다른, 소의 특성이 있다고 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소의 본질에 해당하는 성(性)은 없습니다. 소라는 성을 보는 우리의 봄만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소라고 하는 것의 특성을 보는 것. 그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성을 본다는 것. 이 봄에 의해 규정된 성은, 이제까지 자신이 인식한 대상의 결과물이 그와 같이 우리 앞에 인식된 것입니다. 즉 본다는 것이 성을 결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보는 일. 일체의 어떤 것들을 떠나서, 다른 것과의 대비를 떠나서, 그 자체로서의 봄이 있을 수 있겠습니다. 앎을 그 자체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묘하게도, 알려고 하면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앎을 다 놓을 때, 역설적으로 앎이 드러납니다. 견(見)과 비견(非見)이 동일한 지표에서 동일한 양상으로 함께 존재합니다. 견이면서 비견이고, 비견이면서 견인 그런. 그게 앎의 형태입니다. 우리의 사유의 결과물이 언어로 표상되는 것뿐이지, 우리의 삶 자체가 언어를 통해, 사유를 통해 드러나 보이지는 않습니다. 언어 이전에 마음 흐름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과 몸이 연기적 상황에서 총체적으로 하나가 될 때 우리의 삶은 따뜻한 흐름으로 열릴 수 있습니다.

 온전한 자기표현은 배움만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배움 없는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배움이라고 하는 것은, 사유의 결과물인데, 이 결과물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 결과가 경직되면, 삶의 역동성을 묶습니다. 이런 묶임을 벗어나야 합니다. 어디에도 규정되지 않고,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것. 무아.

 나는 ‘무엇’ 이다 라는, 규정성이 사라지는 것이 무아입니다. 한 사람 한사람이 무아로 열릴 때, 사회적 연대가 자비로운 흐름으로 일어납니다. 그렇게 되면, 현행과 습기가 일시에 소멸하게 됩니다.

 이전의 자심상속에서, 열린 마음을 통해 타심상속으로 변환돼 가는 것. 습관에 의한 기존의 인연 조건이 달라져 열린 세계로 가는 것. 꼬리뼈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새로운 기운을 느끼고, 그 흐름 기운이 수미산에 흐르는 지구적 기운과 일치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처님이 우리와 동떨어진 독보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부처님만이 중생을 온전히 존경한 분입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존경하는 것은, 부처님이 일체 중생을 존경할 수 있는 마음 내셨기 때문입니다. 삶의 근거 자체가 무아적이며, 관계적이라는 것을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생명 그 자체를 존경하는 삶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중생도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니, 국회의원들이 서로를 지칭 하는데, “존경하는 누구누구 의원님” 합니다. 그들이 정말로 서로를 존경하는 걸까요. 그리고 국민들은 그들을 존경할까요. 국회의원들이 부처님처럼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경할 때, 정말 ‘존경하는 의원님’ 이 있을 겁니다.



  


   3.

 우리의 삶은 주로, 업종자의 훈습에 의해 ‘아’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주체와 대상, ‘아’와 ‘비아’ 가 전체적으로 연기적 상황을 열어갈 때만 삶은 제대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삷의 본모습을 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관찰해야 해야 합니다. 오랜 자기관찰 끝에 마음의 일시적인 비약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비약은, 자기도약은, 묘하게도 정해진 모습이 존재치 않습니다. 다만 자기 삶에서 실천적으로 드러날 뿐이다.

 모든 수행자들은 함께 사는 삶 안으로, 열린 삶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나를 열어 같이 나가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청정함을 내야 합니다. 그건 사유가 정지될 때부터, 몸이 정지 될 때부터, 하여 삶이 전체적 어울림이라는 것을 알 때부터 가능해집니다.

 제가 어렸을 때 동네에 큰 불이 났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상황이기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지만 이웃들은 그 상황을 또렷하게 인식하고 불을 끄려 움직입니다. 주인의 마음에는 집에 대한 집착, 즉 고착된 아의 흐름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불을 끄려는 행위가 불가능합니다. 그저 정신을 멍하니 놓고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이웃들은 불을 끄기 위해 행동합니다. 집착, 얽매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얽매임을 놓지 않으면 어울림의 삶을 이룰 수 없습니다.

 무엇이라고 규정된 얽매임으로부터도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외부대상의 얽매임으로부터 내재적인 삶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자신 마음의 내부를 오래 들여다보는 것. 명상 등을 오래하면 외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습관에 의한 우리의 정신과 몸의 얽매임을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제까지 자신에게 주어진 감각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통해 ‘아’ 의 훈습으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눈, 코, 귀  등등 모든 습관 훈행의 인식장이 허물어져야 합니다. 몸의 감각을 열어 다른 몸이 돼야 합니다. 무아적 삶으로 사회적 연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너와 내가 한 몸으로 느끼고 한 삶으로 숨 섞어가는, 머리와 논리와 이해의 삶이 아닌, 온몸의 삶을.



  4.

 깨달음의 내용이 각 종교간 같은가 다른가의 문제를 생각해봅시다. 여기서 한 가지. 세상에 과연 같은 것이 존재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기독교와 불교가 과연 같습니까. 아닙니다. 종교라는 범주 안에서도 그 둘은 같지 않습니다. 세상에 같은 것은 없고, 차이 그 자체도 그 자체로서 같질 않습니다. 여기서 하나의 가치가 다른 하나의 가치의 차이를 인정하기 매우 어렵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판단 근거가 가장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특히 종교에 있어서는. 무엇이 같은가의 범주에서 다른 종교들을 논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다른가에 의해, 즉 차이에 의해 종교 깨달음의 내용을 논해야 합니다.

  내 판단근거가 가장 높다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종교 그룹이 인정하지 않는데. 불교는 자기존재의 근거가 불경이고, 기독교는 성경입니다. 불경에는 불경의 견해, 성경에는 성경의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견해를 갖고 접근하면 안 됩니다. 먼저 따뜻한 마음을 내야합니다. 상대방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에 의해 종교의 깨달음의 내용을 논의해야만 합니다. 자기인식을 버렸을 때만이 어울림 속에서 ‘상호이해’ 를 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종교가 화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것은 사실, 맞물려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공포스럽게 느끼게 한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게 종교입니다. 이웃 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떠오려보면 충분히 공포스럽습니다. 죽음이라는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사유하는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면 죽음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아는 것이 없어야 알게 됩니다.

 흔히 부처님께서 많은 설법을 하신 것으로 보이겠지만, 사실 부처님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시는 분이였습니다. 함께 어우러진 장에서 다른 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자 하는 마음의 자세를 지녔던 분입니다. 삶의 연기적인 모습을 내신 분입니다.

 본래적 모습으로 삶이 흐르는 것. 그 생명의 모습이 바로 부처이며 부처님은 그 모습의 구현체입니다. 일체 중생의 모습 그대로의 상황, 그 자체가 부처입니다. 부처는 그러니까 부처의 모습, 즉 모든 중생이 어울린 모습으로밖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부처입니다. 깨달아서 얻는 게 아니고, 우리 모습의 당위성이 바로 부처입니다. 자기 마음의 흐름을 잘 관찰하면 됩니다. 어울림 속에 있는 자신을 보는 것. 그것이 여래입니다. 위아래 규정하는 것과 어떤 상황이 결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아의 삶을 사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형태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무상, 무아의 지향점이 같은 것입니다. 한 개체가 무상과 무아인 앎의 장, 연기적 삶을 열어가는 모습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비나리] 디노미네이션인가 화폐개혁인가?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은 아직 위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경제 흐름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물가상승률을 잡은 건 전두환 시절의 일이다. 77년 석유파동을 만나기 전까지 그야말로 완전고용의 신화 속에 중화학공업의 단 꿈에 젖어있는 우리나라 경제가 처음으로 제대로 만난 공급 과잉에 의한 전형적인 공황이 78~79년 경제공황을 만들어냈다. 박정희가 피격당하던 순간은 정치적으로만 혼란기가 아니라 경제적으로 최대의 위기에 몰려있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가장 큰 경제적 위기는 공급과잉이 촉발시켰던 물가상승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의 문제였다. 물론 별다른 경제대책을 했던 것은 아니고 하여간 지 맘대로 물건값 올렸다가는 전두환한테 끌려가서 그야말로 줄경을 쳤다. 그렇지만 그렇게 물가를 잡는다고 해서 원화의 평가절하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달러당 600원 시절에서 달러당 1200원 시절을 살게 되었다.

 

이런 점들을 통합적으로 고려하면 물가상승 때문에 거래 단위가 커져서 디노미네이션이 필요하다는 얘기는 크게 설득력은 없다. 물가상승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외국에도 동일하게 진행된 일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화폐 개혁에 대한 논의는 고액권 발행 논의와 맞물려서 진행된다. 물론 고액거래의 문제점 때문에 임의로 발행되어 사용되는 자기앞수표라는, 은행 발행 수표가 수수료 등의 문제와 환전상의 문제로 그야말로 불필요한 비용이 사회적으로 발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수면 위에서 논의되던 고액권 발행과 관련된 논의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건 참여정부가 출범하면서부터의 일이다. 거래에 대한 사회적 비용이 높아지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하기는 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다보니까 고액권 발행을 정책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한나라당에서 추진된 일이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차떼기를 할려고 고액권을 발행하려고 한다고 보는 것은 약간은 지나친 억측이다. 나쁜넘이 하면 모든 일이 나쁜 넘 같아 보인다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다시 국회의원 이계안을 비롯한 몇 사람들이 그게 아니라 아예 디노미네이션 즉 화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당론을 몰아나간다. 이계안.... 이명박과 비교할 수 있는 린간이다. 이명박이 건설업으로 거물이 되었다면, 이계안은 90년대 석유화학을 만든 사람이고, 자동차 호황구도를 만든 사람이다. 전형적인 반개혁인사이기도 하지만, 혁신의 관점에서는 전형적인 혁신을 만드는 사람이다.

 

여기에서의 화폐개혁에 대한 논의는 실제로는 메카톤급 경제개혁에 관한 논의이다. 당연히 현 경제팀은 강력 반대한다. 물어보나 마나다. 이헌재는 경제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를 그려내고 싶은 의욕도 없을뿐더러 기업과 정부의 원할한 관계라는 관점을 가지고 현 자리까지 올라간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헌재만 그런 것이 아니라 현 경제팀 혹은 재정경제부 자체가 그런 식의 세상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나는 초록화폐개혁을 지지한다. 언젠가는 그런 일을 치밀하게 준비해서 우리나라에서도 한 번 일어나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화폐개혁은 일본과 우리나라 경제의 근본을 가르게 되는 사건인 김영삼의 금융실명제와 연결되어 있다. 김영삼 전대통령은 지금도 바보 아니면 쪼다 정도로 막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해체만큼은 김영삼의 공적으로 잡아주어야 할 것이다. 금융실명제가 가지는 힘은 아무리 과장해도 모자르지 않는다. 덕분에 전두환 선생이 감추어놓은 돈들이 움직인 흔적이 자꾸만 꼬리를 밟히게 된다. 어지간해서 우리나라의 지하경제는 잘 파악되지 않고, 이 지하경제는 현실적으로 국민소득의 10% 정도라고 추정하지만, 추정 방식의 문제점과 별도 항목들을 놓고 계산해보면 15%는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민소득의 3% 정도가 국방비에 해당하니까 군대를 세 개 정도 움직일 정도의 돈이 우리나라의 지하경제를 형성한다고 보면 된다.

 

디노미네이션은 이 지하경제에 대해서 날리는 미사일 같은 거다. 고액권은 지하경제를 키우는 힘이 있는 반면에 디노미네이션은 지하경제가 움직일 공간을 한 번에 사라지게 한다. 그래서 화폐 ‘개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숨어있는 힘들을 한 번에 무장해제시키는 방식이 디노미네이션이고,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은 잘 단행하지 않는다. 대개는 국민경제 4~5% 선에서 지하경제가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화폐개혁이 가능할 것인가? 나는 개인적으로 국민소득 만 불 대에서 한 번은 산업화 과정에서 생겨난 지하권력의 힘을 한 번은 털고 가야한다고 생각을 한다. 그래서 김영삼 시절에 화폐개혁까지 패키지로 진행되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데, 화폐개혁 대신 투신사를 통한 양성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투신사들이 없어져버리는 바람에 정책적인 토론거리가 잘 되지 않지만, 이 투신사들이 IMF 경제위기 때 직격탄을 날린 적이 있다.

 

지금이 화폐개혁하기에 좋은 시점일까? 화폐개핵에 대해서 특별히 좋은 시점은 없다. 공황이나 호황이나 어렵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어렵기 때문에, 오히려 사회적으로 개혁의 분위기나 사회구성원들이 동의가 있는 시점이 유일하게 화폐개혁이 가능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선진국이 지하경제를 관리하는 방식은 세원관리와 신용거래 확대라는 두 가지 방식을 가지고 있다. 부당한 소득을 끝까지 찾아내 세금을 물리겠다는 강력한 세무당국과 개인 수표와 카드의 활성화라는 두 가지 방식을 통해서 돈의 흐름을 감시하는 방식이 일반적인 방식이다.

 

이 두 가지가 우리나라에서 잘 통하지 않는 것은 카드를 거래의 투명화를 위해서 활용한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에 대한 사회안전망 대신 카드발급 간소화라는 방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화폐개혁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필요할까? 물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 지하경제를 적절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고 또 한 번은 지하경제에 집중된 경제적 권력을 털고 나갈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노미네이션은 열린우리당 보다는 한나라당에 대해서 결정타로 작용할 것이다. 한나라당의 고액권은 약간의 선의를 가지고 있는 정책이지만, 이걸 디노미네이션으로 화답(?)한 것은 초강수 개혁정책 같은 것이다.

 

물론 열린우리당도 디노미네이션은 받아내기 어렵다. 관료들한테 전부 맡겨놓고 있는 경제정책은 한나라당보다 더 하면 더 하지 덜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재의 개혁성향만 놓고 얘기하면 정부의 정책 보다는 차라리 한나라당의 정책이 그래도 비교적 개혁적인 상황이다. 그래서 결국은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확률이 많다. 1년 전 디노미네이션 논의가 제기되었을 때 이헌재 부총리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제대로 한다고 하면,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정말 국기를 흔들 정도의 토목공사를 시행하기 이전에 투기 억제책 같은 것으로 디노미네이션 같은 것들이 같이 만들어지는 것이 옳다. 골프장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읽을 수 있다.

혁신이라고 하지만, 쉽게 돈을 벌고, 어둡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 쉽게 늘어져 있는 경제운용

기조에서 사회적 혁신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외국기업이 환경규제나 세제가 복잡해서 우리나라에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하경제와 골 아픈 관행 같은 것들이 많으니까 쉽게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경제개혁... 변화는 단순히 노동자 위주의 소득개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다 투명하게 질서와 제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경제개혁의 방향이고, 그런 면에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개혁은 투명보다는 불법이었던 사실을 법을 고쳐서 합법으로 만들어주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디노미네이션은 경제를 더욱 더 어둡고 음침한 사람들이 돈을 잘 벌게 만들어주는 지난 1년간의 변화에 던져진 숙제 혹은 퀴즈놀이 같은 것이다. 열린우리당이 화폐개혁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가가 개혁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경제적 입장에 대한 리트머스 같은 것이다. 새만금이 환경정책의 리트머스였다고 하면, 디노미네이션은 경제의 개혁성에 대한 리트머스로 볼 수 있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샤먼과 자본주의의 역사

2004/09/16 22:06

 "[비나리]  왕꽃선녀님 : 노래불러줘, 노래"에서 일부 발췌


 
흡혈귀 전설은 우리나라에는 존재하지 않는 전설이다. 북구에 흔한 전설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흔한 귀신이나 도깨비 얘기에 사람의 피를 먹고 그로 인해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전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흡혈귀가 지금처럼 흔한 전설로 변한 데에는 시대적 배경이 존재한다. 귀신 얘기 중에서 가장 자본주의와 잘 어울렸던 얘기가 바로 드라큐라 얘기이다. 20세기의 경제사를 얘기할 때 꼭 기억해야 하는 숫자들이 몇 개가 있다. 1929와 1945 그리고 1974 같은 숫자들이 그렇다. 1945는 2차대전이 끝난 시기이고, 이때부터 1974까지의 30년을 ‘영광의 30년’이라고 한다. 무얼 해도 잘 되었고, 자본주의가 후기 산업사회로 전개되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신화를 만들던 시기이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발전의 배경은 바로 이 시기에 벌어진 2차 세계노동분업 과정에 성공적으로 편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우파들이 좋아하는 숫자이다가 1945에서 1974까지에 해당하는 연도들이다.

 

반면에 1929는 대공황의 숫자이다. 플로리다에 대한 투자붐이 깨지면서 발생한 미국발 대공황이 마샬 플랜으로 막 일어나기 시작하는 독일 경제에 1차 타격을 주고, 여기서부터 다시 발발한 농업공황이 일본을 덮치고 결국 우리나라까지 영향을 주게 된 세계적인 대공황이 여기에서부터 출발하게 된다. 케인즈라는 우울한 보헤미안에게 미국 최고의 자문관 자리를 주게 된 계기가 이 대공황 시절이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인 투자붐을 제어할 수 없고, 그래서 소비에트 경제가 더욱 우수하다는 사회주의의 1차 경쟁력을 대부분이 지식인들이 별 무리없이 수용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이 1929년의 공황이다.

 

박정희의 경제정책, EPB 시스템이 바로 이 1929년에 충격을 받은 유럽 지식인들이 만든 소위 mixed economy 정신에 있다는 얘기는 박정희 시절을 그리워하는 우파 경제학자들이 어지간해서는 얘기하지 않는 지적이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의 경제정책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교묘한 선을 타던 프랑스의 경제계획 시스템이나 가장 좌파적인 시스템을 채택했다고 하는 이집트의 경제정책 보다는 훨씬 더 사회주의 시스템에 가깝다. 그래서 세계은행에서는 이 시절의 한국 경제를 ‘동원경제(national mobilization)’이라는 붙여준다. 정치적인 담론을 탈탈 털고나면, 이승만은 훨씬 더 자본주의적인 경제를 그렸다고 한다면, 박정희는 그보다는 훨씬 더 사회주의적인 경제 운영에 매혹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역설적이지만, 경제계획이라는, 전혀 자본주의답지 않은 경제계획의 첫 그림을 그렸던 사람은 말기의 이승만이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사회주의 시스템이 자본주의 경제에 새로운 돌파구로 등장하게 될 계기를 만든 1929년이 만든 대중 스타가 두 개가 있는데, 첫째가 채플린 현상이다. 스타인 백의 분노의 포도를 비롯한 일련의 문학은 대공황이라는 현실 앞에서 자본주의의 비극과 비인간성 그리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 휴머니즘에 호소하면서 서로가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그래, 남은 것은 사랑밖에 없어... 어쩌면 채플린을 가장 정면으로 계승한 사람은 우디 알렌이 아닐까라고 곰곰 생각해보게 된다. 맨하탄을 공간으로 지긋지긋하게 사랑하는 사람 없이는 단 1분도 숨쉴 수 없을 정도로 영혼이 ‘걍팍’한 사람들을 그리는 우디 알렌의 시각은 악랄하다 못해 지긋지긋하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대공황이 만든 최고의 스타는 드라큘라다. 드라큘라의 영화화가 이 때 만들어지고, 왜 내가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흡혈귀라는 코드는 그야말로 설명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이해를 대변하는 코드이다. 이후에도 흡혈귀 영화는 큰 공황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돌아온다. 1974년에도 흡혈귀 영화 붐이 있었다. 물론 공포영화는 여름이면 만들어지지만, 피를 빠는 흡혈귀가 유독 유행하는 여름은 공황과 관련되어 있다.

벰파이어와 샤먼의 차이는 접신의 기능이 가지고 있는 차이 정도라고 하면 지나친 단순화일까? 20세기의 최후로 달려가던 90년대가 죽음과 죽음을 잊기 위한 퇴폐가 극단적으로 강조되던 시기라고 하면, 21세기 초반은 어설픈 휴머니즘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000이라는 숫자를 넘어들면서 더 이상 세기말 현상에 집착할 수 없는 예술의 고민이 여기에 있을런지도 모른다.

 

...(중략)...

 

일일드라마에 샤먼과 접신 그리고 내림굿과 씻김굿이 등장하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물론 여기에 자매가 사랑한 한 남자와 또 짝사랑하는 남자에 대한 얘기들 그리고 신데렐라식의 신분상승이 버무러져 있지만, 그래도 접신에 의한 변신이 저녁 드라마 한 가운데로 들어온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살기가 어렵다고 느끼는 것 같다. 대공황의 한 가운데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흡혈귀에 대해서 열광하였던 것만큼, 접신에 대한 얘기가 살기 어려운 시절의 한 가운데를 통과하는 것 같다.

 

참여정부가 매일 같이 하나씩 만들어내는 기본계획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에만 매우 특별하게 존재하는 이 기본계획이라는 것의 특징이 무엇일까 가끔 생각해보게 된다. 전체적인 계획경제는 이제 사라졌지만, 부문별로 만들어내는 계획체계는 이제는 부문별로 익숙하게 남아서 우리나라의 정책에 대한 기본틀로 자리를 잡고 있다. YS 때도 기본계획이 있었고, DJ 때에도 기본계획이 있었다. 2001년에 친환경농업기본계획이라는 5개년 계획이 등장했지만, 2004년 2월의 농어촌종합계획이라는 10개년 계획이 나오면서 6헥타르 7만호 정책으로 농정의 기본틀이 바뀌었다. 골프장도 지자체의 기본계획에 들어가 있다. 이 기본계획이라는 정책틀과 민주주의 사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가끔 질문해보게 된다. 기본계획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할 때에는 불법이라는 말을 쓸 수가 없다. 법에 의해서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절차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기본계획에 불법은 거의 없다. 정부라는 레비아탄이 움직이는 방식이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본계획이다.

 

정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일반 시민이 도대체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서도 체계적으로 문제점을 제시하기 어려운 것은 대부분의 정책이 기본계획과 실행계획 그리고 연간계획이라는 틀을 가지고 움직이기 때문에, 도대체 이게 왜 이래라는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는 이 정책의 기본틀을 이해해야 한다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담당 공무원에게 한 마디도 더 추가하지 못한다. 반면 기본계획과 법령까지 한 번 읽어보았다면, 담당 공무원이 대단히 친절하게 돌변하거나 아니면 그야말로 약한 모습을 보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강한 모습을 보이는 변신을 경험하게 된다.

 

시대가 어렵기는 어렵다고 생각을 한다. 접신과 샤먼이 일일드라마에 매일 밤 저녁상을 찾아오는 걸 보면 확실히 특별한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정치권과 남자들이 국가보안법 가지고 거대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동안 밥상 앞에 앉아있어야 하는 사람들이 무당의 접신들인 모습을 보면서 시대를 읽고 있다는 걸 과연 상상이나 할까? 누가 뭐라고 해도 위기의 한국 사회라는데 동의하고 싶다. 유쾌한 접신이 사회의 유쾌한 돌파가 되었으면 좋겠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고병권] 빈곤의 투쟁, 투쟁의 빈곤

2004/09/06 13:13

빈곤의 투쟁, 투쟁의 빈곤


“빈곤은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자유 시장경제의 일상이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처음 올라온 내 눈을 휘둥그레 만든 것은 대우 빌딩이 아니라 곳곳에 누워있던 노숙자들이었다. 대학로에서 생활할 때는 마로니에 공원에 길게 늘어선 급식 줄을 바라보며 아이엠에프 이후 경제 사정이 어려워졌음을 실감했다. 하지만 이제 종묘 산책을 즐기는 내 눈에 점심 한 끼를 얻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은 익숙한 풍경이 되고 말았다. 교통체증으로 늘어서 있는 종로의 자동차들을 보듯이 나는 언제부터인가 그 줄을 그렇게 보고 있다. 아, 한 개인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을 한 사회의 익숙한 풍경으로 간주하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나는 빈곤을 풍경처럼 보는 내 눈이 무섭다. 잘 사는 사람이 더 잘살게 되고 못 사는 사람이 더 못살게 되는 것을 보면서도 경제가 어렵다는 허망한 말에 수긍하는 내 고갯짓이 놀랍다. 잘 사는 소수를 만드는 과정이 비참한 다수를 만드는 과정과 정확히 일치하는 신자유주의 질서를 어쩔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는 나의 신속한 패배주의. 빈곤 해결을 가로막는 가장 악랄한 방해자가 이것이다.

지난 달 말 미국 인구통계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미국의 빈곤층은 3500만명을 웃돌고, 18살 미만을 기준으로 여섯 명 중의 한 명이 빈곤 아동이라고 한다. 사실 미국만 그런 게 아니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표현을 빌리면 지금 지구 전체가 ‘슬럼투성이’다. 20세기 말 지구의 지니계수는 낮추어 잡아도 0.67이라고 한다. 단순하게 말하면 세계의 상층 3분의 1이 모든 것을 갖고, 하층 3분의 2는 굶어죽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올봄에 발표된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도와 빈곤율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1996년과 2000년 사이 절대빈곤층은 두 배로 늘었고, 전체가구의 15%, 즉 6~7가구 중 한 가구는 절대빈곤층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불행히도 한국개발연구원이 되뇌는 것은 빈곤 양산의 주범인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그것이다. 시장의 폭력으로 생겨난 빈곤층을 없애기 위해 시장을 더욱 활성화하자는 ‘시장활성화론’, 정부의 복지 지원이 자칫 사람들의 버릇을 나빠지게 해서 근로 의욕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근로복지연계론’. 빈곤 상황에 대한 보고보다 우리를 더 암담하게 만드는 건 바로 이런 제안들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디파치오는 지구적 비전을 놓고 경쟁하는 담론이 없는 상황에서 신자유주의가 빈곤 문제를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잘 지적했다. 시장에서의 무한 경쟁이 자연스럽거나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복지가 경쟁력을 저해하는 비용처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복지 담당자들은 재정경제부 눈치를 보고, 시민단체들은 예산을 따내기 위한 로비와 기부금 모집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예산을 위한 로비와 기부금 모집은 빈곤을 끝내는 게 아니라 연장하는 것이다. 구걸하다시피 해서 따낸 예산이나 기부금이 축소된 복지를 만회해 줄 수도 없지만, 빈곤에 대한 그런 접근이야말로 빈곤층을 사회적 부를 축내는 문제 집단으로 만드는 것이며, 빈곤층을 양산한 자본과 국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빈민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왜 빈민운동이 없는가. 디파치오는 이렇게 답했다. 빈민을 돕고 대변한다는 자들이 무엇보다도 빈민을 양산하는 원리에 눈감으며, 빈민을 대신해 자본과 국가에 구걸해주는 선행으로 빈민들의 직접적인 정치세력화를 막았다는 것.

결국 빈곤을 둘러싼 투쟁에서 나오는 새로운 비전이 없다면 우리의 패배주의적 시각과 고갯짓은 멈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1% 나눔운동’ 등을 전개하고 있는 시민단체가 진정 빈곤을 없애고자 한다면, 그 수익을 빈민들의 생계지원이 아니라, 그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국가와 자본을 향한 빈민들의 투쟁 자금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병권  연구공간 ‘수유+너머’ 공동대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2000-07-14) 高大文化 [50호]


노동 거부: 시대착오적 망상? 대안의 돌파구?


강 수 돌 (고려대 국제정보경영학부)

1. 들어가는 말

사람들이 들뜬 기분으로 이야기하는 21세기, 아니 새로운 천년은 과연 희망의 시대가 될 것인가, 아니면 전례 없이 비참한 종말의 시대가 될 것인가? '더 이상 착취당할 기회마저 상실한 사람들이 대량으로 생산되는' 현재의 지구촌을 둘러보면, 최소한, 21세기는 희망의 시대가 될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비참한 종말이 자동적으로 다가온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 결과는 우리들의 집합적이고 의식적인 행위에 따라 많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기 책임성(self-responsibility)과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를 기본 원리로 하는 '풀뿌리 자율성 운동'이 그 얼마나 성공적으로 전개되는가가 핵심일 것이다. 결국 절망의 시대를 희망의 시대로 전화시켜낼 수 있는 거대한 힘은 시장 경쟁력에도 있지 않고 국가(또는 엘리트) 권력에도 있지 않으며 바로 민초들의 자율 역량에 내재해 있다는 것이 이 글의 기본적 문제의식이다.
그렇다면 자율 역량의 문제와 노동거부의 문제는 과연 어떤 관련성이 있는가? 또한 노동권, 즉 노동에 대한 권리와 노동에 대한 거부권의 상충적인 개념들을 민중의 자율성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직도 부분적으로만 문제시되고 있는 노동중독증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노동거부와 삶의 자율성 강화를 이루기 위한 탈구들은 어떤 것일까? 이런 점에서 노동시간단축 운동을 다르게 자리매김할 수는 없을까? 바로 이러한 질문들이 이 글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주제들이다.
자유로운 노동 내지 노동 해방을 향한 외침은 오래되었으나 진정한 자유와 해방에 관한 노동자 내부의 논의는 그리 깊지 않다. 내가 보기에 자유와 해방을 향한 돌파구는 예컨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우리가 당연한 듯 '신성시'하는 '노동'의 권리를 되짚어보는 것에서, 둘째, '자본'을 닮아있는 우리 자신의 의식과 행위를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에서, 셋째, 삶의 재생산과정이 전적으로 화폐의존적으로 변하고 있는 경향성에 맞서는 것에서 찾아지리라 본다. 이 세 가지 사례는 원래 노동시장, 노동과정, 생활과정이라는 세 범주로부터 추출된 것이다. 순서대로 살펴보자.


2. 노동권과 노동거부권

* 에피소드 1: 어느 조용하고 아늑한 어촌 마을의 아침이었다. 햇볕이 따사롭게 내리쬐는 바닷가의 모래밭에서 한 고기잡이 노인이 평화롭게 단잠을 곤하게 자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마을에 휴양을 온 한 관광객이 바닷가를 거닐다 이 노인이 잠자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 젊은이는 그 노인이 행복하게 잠자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기에, 그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고 여기서 찰칵! 저기서 찰칵! 찍어댔다. 그런데 이 찰칵거리는 소리에 그만 이 고기잡이 노인은 잠을 깨고 말았다.
"그 뉘시오?"
"아이쿠, 죄송합니다만, 지나가는 나그네입니다. 할아버지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아 그만 ...…, 이거 어떡하지요?"
"......"
"그런데 할아버지는 고기 잡으러 나가지 않으세요? 벌써 해가 저만치 ..."
"벌써 새벽녘에 한 번 다녀왔구만."
"아, 그러세요? ... 그러면 또 한 번 다녀오셔도 되겠네요?"
"그렇게 고기를 많이 잡아 뭐하게?"
"... 참, 할아버지두, 고기 많이 잡으면 할아버지의 저 낡은 거룻배를 새 걸로 바꾸실 수 있쟎아요?"
"그래가지고?"
"그 다음에는 새 거룻배로 고기를 잡으시면 훨씬 빨리, 한결 많이 ..."
"음... 그 다음에는?"
"그야, 크고 좋은 배를 몇 척 더 사시고, 사람도 많이 부리고... 그렇게 되면, 한꺼번에 뭉칫돈 버는 것은 시간 문제 아니겠습니까?"
"옳거니, 그래서는?"
"그 다음에야... 이 마을에 생선 가공공장도 세워, 싱싱한 통조림도 ..."
"흠... 그리고나서는?"
"그렇게 되면, 할아버지께서는 별 일도 않고 가만히 누워, 그저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지요."
이 말에 고기잡이 노인이 대답했다.
"지금 내가 바로 그렇게 잘 지내고 있네."
"......"(원작 하인리히 뵐; 강수돌 <경영과 노동> 제14장 참고)

우리는 열심히 공부하거나 일을 하고 있을 때 마음속에 '뿌듯함'을 느낀다. 성과가 나타나거나 돈을 버는 데 도움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어딘지 모르게 불안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일, 즉 노동이란 가변자본(variable capital)으로서의 노동이기 때문에, 이 노동은 자본의 가치를 증식시켜 주는 한에서만 사회적 의미를 지니는, 지극히 역사적인 개념이다. 한마디로, 여기서 노동은 곧 자본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노동자들은 실업과 해고라는 삶의 위험성 앞에서 노동을 할 권리(das Recht auf Arbeit), 즉 노동권을 주장해왔다. 그 위에서 오늘날 노동3권, 즉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노동자에게는 지극히 당연시되는 노동기본권으로 되었다.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이러한 노동권조차도 이미 대다수의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토대로서의 자본종속적인 노동을 당연시하고 나아가 노동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부터 주장되고 요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즉 자연과 부단히 교류하며 자연의 일부로서 생명 활동을 수행하던 인간이 마침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의 형태로 거래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노동권 개념이 나왔던 것이다. 노동력의 상품화 과정은 달리 보면 민중들의 삶의 자율성이 거세되는 과정이었다. 삶의 문제를 공동체적인 관계 속에서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여 노동시장에 경쟁력 있게 내다 팖으로써 해결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부터 노동자들은 노동권이야말로 '생존권'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자본 아래 실질적으로 복속되어 노동을 해야지만 임금이라는 소득이 생겨 비로소 삶의 문제(먹고사는 문제, 자녀 양육 문제 등) 해결이 가능하므로 '노동할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실업과 해고는 이런 의미에서 노동자에게는 죽음이다. 그것은 경제적 토대의 박탈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러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적 정체감의 상실이라는 의미에서도 그러하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은 오랜 역사적 과정에서 자신의 노동이야말로 '자아실현'의 기회라고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대량실업 시기에 자살율이 높은 것은 경제적 위기 의식과 더불어 사회적 위기 의식이 극단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제 발로 선 자본주의의 역사 200년만에 닥친 신자유주의 세계화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는 오늘날 세계 어디서나 대량실업이 활개를 치게 되었고 민중들의 노동권에 대한 강한 정열은 식을 줄 모르고 오히려 더 활활 불타오른다: "노동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바로 이런 맥락에서, 노동거부권(das Recht auf Faulheit), 즉 일하지 않을 권리, 게으를 권리, 여유롭게 살 권리는 결코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요구가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완전고용'을 이룰 수 없는 시장의 실패 문제나 정책의 실패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노동 자체가 이미 삶의 기쁨이 아니라 삶의 억압이라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지극히 당연한 인식이다. 가변 '자본'으로서의 노동은 그 자체로 자본이므로 마치 흡혈귀처럼 인간과 자연의 생명력을 부단히 흡수해야지만 시장경쟁 구조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또한 '가변' 자본이기 때문에 자본의 몸뚱어리를 갈수록 더 크게 변화시켜주어야 한다. 이 과정이 바로 삶을 억압하는 과정이 아닌가. 만일 일시적으로나마 삶의 기쁨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가변자본이 증식시켜 준 자본의 떡고물을 좀더 많이 분배받을 때뿐이다(임금인상과 휴가, 승진, 복지라는 형태로). 그리고 바로 이것이 노동하는 사람들을 억압 구조 속으로 더욱 더 단단히 묶어놓는다. 따라서 진정으로 지속가능한 삶의 기쁨은 그 안에는 없다. 따라서 단호한 요구가 나온다. "노동거부!" 어차피 시장경쟁 속에서 20%도 안되는 '똑똑한' 자들 뒤에서 80% 이상이 들러리 삶을 살아야만 한다면 '나만이라도 20% 대열에 합류하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이 무의미하지 않을까? 너도 나도 에피소드 속의 노인처럼 삶의 자율성의 누리며 '주인공'으로 살 필요가 있다! 또한 실업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실업자의 취업 능력(경쟁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실업을 낳는 구조(경쟁 구조) 자체를 타파해야 하지 않을까? 20%의 경쟁력 있는 노동력과 80%의 경쟁력 없는 노동력으로 갈라지는 분열의 패러다임 속에서 서로 처절히 경쟁하지 않고 모두가 더불어 건강하게 사는 방법은 없을까? 분열과 경쟁을 기본 원리로 하는 노동시장(labor market)이라는 공간 위에서 나름대로 사회적 인정을 받겠다고 아우성치는 것이 결코 진정한 대안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자본증식을 위해 목숨을 걸고 서로 경쟁하는 그런 노동을 거부하겠다는 구호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도 새로운 햇살을 강하게 받고 있다.


3. 노동중독증에 대한 고백

* 에피소드 2: "30대 후반의 직장인입니다. 이상하게 저는 주말이나 휴일에도 일을 안하고 쉬는 것을 못 견딥니다. 불안한 데다 컨디션도 평소보다 더 나빠지곤 합니다.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안합니다. 물론 일을 할 때도 몸의 상태가 좋다고 느끼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쉬는 날보다는 낫습니다."(1999. 8. 25. 서울 논현동의 한 회사원)

* 에피소드 3: 주부 박아무개(35)씨는 요즘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결혼생활 10년 동안 두 아이를 낳아 기르며 원만한 가정생활을 했다. 그런데 지난해 초부터 남편과 다투는 일이 잦아졌다. "남편은 집에 들어와 '일찍 나가야 되니 건드리지 말라'고 신경질을 냅니다. 저도 남편 들어오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곤 하죠."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그때부터 남편은 "먹고 살 수 있다는 것만도 다행으로 알아라. 언제 그만두라고 할지 모른다"며 주말에도 쉬지 않고 회사에 출근했다. 평일에도 밤 12시가 돼야 집에 들어오고, 아무런 감정 표현도 없이 침대에 쓰러지곤 했다. 박씨는 "사는 게 허무할 뿐"이라고 말한다. 격무에 시달려 일만 쫓아간 남편의 생활이 부인한테 우울증세를 유발한 것이다.(한겨레 21, 99. 8. 26)

일찍이 110년 전에 맑스의 사위인 폴 라파르그는 '일중독증'에 사로잡힌 만국의 프롤레타리아들에게 '노동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는 '노동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외친 적이 있다. 그만큼 에피소드에서 묘사되고 있는 일중독증은 자본주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된 사회적 병이다. 그런데 알코올중독증이나 마약중독증, 섹스중독증, 쇼핑중독증 등 다른 중독증과는 달리 일중독증만큼은, 위 에피소드들의 사례에서처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아니라 '권장'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과 성과를 내야지만 편안함을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진는 것이다.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일이란 우리 사회에서, '미친 놈, 한가한 소리한다'고 욕먹을 가능성이 크다.
대개 사람들은, 늦게 자더라도 일찍 일어나 다음날 할 일을 일일이 리스트로 작성하고 정말로 일에 흠뻑 빠져 일을 즐기면서 하는 이들을 두고 성실하고 정력적인 사람이라고 추켜세운다. 경영학에서는 '직무몰입'이나 '조직몰입'과 같은 용어를 쓰면서 이것이야말로 조직의 성과를 내는 데에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미 정신과 의사들은 그런 사람들을 일중독증 환자라고 문제시한다. 의사들의 정신이 이상한 것인가, 아니면 일에 중독된 사람들이 이상한가? 정확한 답은, 오늘날 한 해 동안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에 버금가는 '과로사'(work to death) 숫자가 간접적으로 전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그 심각성이 사회문제화 되기는커녕 '국가경쟁력 강화'니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니 하면서 자본은 더욱 많은 사람들을 일중독에 빠지도록 몰아간다.
일반적으로 중독증의 이면에는 모종의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다(이하 Heide 1999, 강수돌 1997a 제14장 참고). 이 두려움은 사실상 자연과 인간을 아우르는 전일적 삶의 총체성에 대한 이해의 결핍(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끊임없는 대립과 경쟁을 조장하는 자본제 사회는 갈수록 이를 부채질한다)에서 온다. 만일 만물의 삶과 죽음 일체에 대해 전일적으로 심층 이해하게 된다면 그 두려움은 극소화되고 대신 삶의 자율성이 극대화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이해의 부족으로 생긴 두려움을 적극 끌어안거나 올바로 극복하려는 내면적 자율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사람들은 그 두려움을 일시적으로나마 '회피'하기 위해 다른 대체물에 의존하게 된다. 일중독 또한 삶의 자율성이 결여된 상태에서 삶의 전반적 불확실성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일을 통해 모든 것을 잊으려고 하는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삶의 불확실성이란 사실은 인간이 자연과(그리하여 동시에, 자기의 내면적 본성과) 맺는 관계가 잘못된 데서 나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적대시하고 또 그러한 과정에서 인간 외면과 내면의 분리가 강화될수록, 또 자기 외의 모든 사람을 경쟁자로 적대시할수록 인간은 결코 스스로 평화로이 살 수 없는 것이다. 삶이 불안해지고 불확실해지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해 다른 수단을 찾고 마침내 그 수단에 종속된다. 그러나 결코 원래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고 공허감만 커져, 갈수록 그 수단에의 종속도가 커지는 것이다. 일중독자의 경우 갈수록 더 많은 성취(가시적 성과)를 이루어야지만 뭔가 하는 것 같고 성공적인 것으로 비춰지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성과는 결코 진실한 만족감을 갖다 줄 수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욱 더 큰 공허감을 느끼게 되고 불안감에 젖은 채 모든 것을 잊기 위해 더 많이 일중독에 빠져들게 된다.
다른 병들이 그러하듯 일중독증도 가장 먼저 솔직하게 '인정'하는 데서부터 치유가 시작된다. 열심히 일에 파묻힌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인 칭찬과 보상이 일중독증을 드러내기는커녕 교묘하게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 성실성과 일중독증을 동일시하는 문화 자체를 단호히 타파해야 한다: "노동거부, 여유로울 권리!"


4. 노동자에게 내면화된 자본 털어내기

* 에피소드 4: "…그분은 결국 회사를 일방적으로 '짝사랑'했을 뿐이었습니다. 그 짝사랑의 보람도 없이 문 밖으로 쫓겨나면서도 여전히 회사를 사랑한다는 그분.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온갖 수발을 다 들다가 헌신짝처럼 버림을 받고도 여전히 그 남자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비련의 여인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심봉사(회사)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정상화시키기 위해) 기꺼이 인당수(해고)에 빠졌던 심청이를 보는 것 같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 심청이를 희생시키고 심봉사의 눈을 뜨게 하는 것보다 심봉사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웃들의 도움에 의해서 전혀 불편함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임원택 1998)

* 에피소드 5: "… 남성들은 회사 다니면서, 회사생활에 적응하면서 '회사가 내 목을 쥐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요. 그래서 성을 회사의 스케줄에 따라 조절하지요. 이른바 회사형 인간이 되는 거예요. 회사가 '너 오늘은 성관계 하지마' 이렇게 대놓고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따르는 순응적인 인간이 되는 거죠. 자기도 모르게 회사 일정에 성 스케줄을 맞추면서도 그게 자연스럽다고 느끼고 또 자기가 자유롭다고 느끼게 되는 거죠. 그게 제일 비극이죠."(엄인희, <생과부 위자료 청구소송>의 작가)

일(성과)과 자신(행복)을 동일시하는 문화를 극복하는 것은 곧, 노동하는 사람들 속에 내면화된 자본의 논리를 훌훌 털어내는 것이다. 가변 '자본'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노동이란 곧 자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본 털어내기 운동'은 앞서 말한 노동 거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앞의 에피소드에도 나오듯이, 내가 회사를 '짝사랑'하고 있음을 냉정히 깨닫는 것에서부터 그리고 돈벌이 기계(회사)의 스케줄에 삶의 세계를 종속시키지 않는 것 등등 매우 많다. 몇 가지 현실적 사례들을 더 살펴보자.
노동자들이 그 기업의 주식을 소유하거나 다른 회사의 소액주주가 되는 경우에 그들은 노동자의 모습과 자본가의 모습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굳이 그러한 지분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노사 협력 하에 '파이를 많이 늘여야지만 나눠먹을 파이가 생긴다'라고 생각하는 때부터 이미 그들은 자본을 닮게 된다. 여기서 자본의 핵심은 본전 생각하기, 끝없이 불려나가기, (그러기 위해서라도) 모든 살아있는 것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기('상품화'하기),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경쟁과 분열하기 따위에 숨어 있다. 이른바 '물신주의'는 자본의 논리가 우리의 일상생활로 전화되는 통로이다(상품 물신, 돈 물신, 자본 물신 등에 대해서는 힌켈라메르트 1999 참조).
따라서 우리가 돈을 은행에다 맡기고 높은 이자를 기대하거나 더 높은 이자를 주는 은행을 찾아다니는 것은 바로 자본의 모습이다. 은행에 예금된 돈은 자본으로 투자되어 정상적인 자본주의 경영행위가 이뤄진다면 가변자본(노동력) 덕택에 불어나게 된다. 이 불어난 자본의 일부를 이윤분배, 이자, 배당금의 형태로 사람들이 나눠먹는 것이다. 크게 보아 한마디로 우리는 '제살 깎아먹기 경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여 경영의 수익성 내지 경쟁력 향상이나 위기 관리에 동참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공동경영자'(Co-Management)가 되는 길이다. 물론 노동자가 철저히 배제되어 어떠한 영향력 행사도 어렵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다. 그러나 경영 참여의 과정이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과 삶의 자율성 향상을 위해 일관되게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익성과 경쟁력, 생산성의 울타리에 새로이 갇혀 자본의 합리성을 앞장 서서 대변하게 된다면, 그것은 자본의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요컨대 '내 마음 속의 자본'(internalized capital)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자본의 모습을 닮아있거나 닮아 가는 행위 논리와 구조를 철저히 파악하고 발본색원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노동조합 운동은 생활임금 쟁취와 노동시간 단축, 고용안정성 유지, 노동 환경 개선, 인격 대우 및 평등 대우, 복지 향상 등과 같은 노동자의 권익 향상을 하는 차원에서는 지극히 정당한 활동을 하고는 있지만, 바로 그러한 노동조건의 개선이 역설적으로 임노동관계의 강화와 일중독증을 부채질하는 역설적 한계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노동이 자본 안에서 '인정'을 받고자 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게 보면 노조운동도 사실은 경쟁과 분열의 패러다임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경쟁 업체를 물리쳐야만 안정된 고용과 소득이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의 현실적 딜렘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국 노동운동은 스스로 노동운동의 한계를 인정하고 뛰어넘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허재영 1997 참고).


5. 삶의 화폐의존도 줄이기

* 에피소드 6: "그는 월 30만원을 벌고 그 돈으로 한 달을 산다. 그는 시인이다. 게다가 다른 직업이 따로 없는 '전업시인'이다. 시는 많이 써야 한 달에 두어 편 정도. … 그 친구는 시 한 편당 2만-5만 원을 받는다. 가난한 잡지에 시를 발표할 경우엔 그나마 원고료도 못 받고 대신 그 잡지의 정기구독권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받게 된다. … 한 달에 30만 원으로 살려니 그건 생활이 아니라 인생 자체가 극기훈련이다. 우선 집밖을 함부로 나서지 못한다. 버스를 타도 거금 500원이 들기 때문이다. 방안에 틀어박혀 사는데도 전화코드를 빼놓는다. … 대신 누군가에게서 '호출'이 오면 코드를 꽂아 전화를 한다. 누군가가 호출을 했다는 건 술이든 밥이든 사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내 시인 친구의 화려한 외출은 그렇게 이루어진다."(김중식, 돈에 관한 쓸쓸한 삽화 둘, <공동선> 1998년 5·6)

* 에피소드 7: "몇년 전부터 농사는 내 먹을 만큼만 하고 나무를 주로 키워. 없는걸 만들어내는 건 농업밖에 없어. 상업이야 있는 물건 사고파는 거고 공업도 모양만 바꾸는 거 아냐. 식물만 새로운 걸 만들어내지. 내가 나무와 풀을 좋아하는 건 그것들로부터 세상살이 이치를 배우기 때문이지. 한 자도 안되는 도라지는 겨울 땅 속에서 완전히 얼었다가 봄이 되면 어김없이 다시 살아나. 시련을 달게 이기고 일어서는 게 사람보다 나아. 나무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가지 뻗으며 사는데 빛 많이 받는 남쪽가지가 북쪽보다 길고 크지. 그렇다고 북쪽 가지가 남쪽으로 가진 않아. 사람은 어떤가. 편하게 살겠다고 농촌을 버리고 다들 도시로 갔잖아. 그래서 남은 게 뭐야. 눈에 쌍심지 돋우고 분초 다투며 산 끝에 다들 나가 떨어지잖아. 도시에서는 요즘 매일 30명이 자살을 한다며. 남 탓할 것 없어. 서울가면 큰 수나 날 줄알고 몰려간 거 아냐. 어떤 사람이 취직해 열심히 일했더니 과장 부장 사장된 다음 송장이 되더라는 농담도 있더구만. 내가 좋아하는 도연명 말처럼 '헛살아야 해'. 이루지 못하고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 해서 아쉬워할 거 없어. 괜히 뭔가 이루려고 아등바등하지 말고 그저 살아있으니 산다는 생각으로 단순하게 살면 돼. 마누라는 오륙년 전에 죽었고 애들(3남3녀)은 모두 나가 살아. 고등학교 나온 놈도 있고 초등학교만 마친 놈도 있어. 막내딸은 공부 지지리 못했는데 시집가서 잘만 살아. 처음 혼자 됐을때는 미치겠더니 차차 익숙해지더구만. 혼자사니 생활이 단순해져 좋아. 결국은 혼자 살고 죽는거야. 잘 산다는 건 옳게 사는거지 사람 많은데 따라가며 사는 게 아니야. 한 삼십년 쉼없이 움직거리며 일하다보니 일에는 워크(Work)와 레이버(Labor)가 있는 거 같아. 워크는 그야말로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거고 레이버는 팔기 위해 노동을 하는 거지. 요즘 직장잃은 사람들 많은데 그렇다고 일(Work)이 없어진 게 아니야. 할 일은 얼마든지 있어. 벼룩은 보통 한번에 3m를 뛴데. 2m 유리병에 벼룩을 가둬놓았더니 유리병을 치워도 1.8m만 뛰고 말더라구만. 사람도 똑같애. 직장은 어쩌면 유리병같은 거라구. 인생은 사는 길이 참 많아. 남들이 옳다고 하는 관습, 상투 이런 것에서 벗어나야 해. 삶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이 말이야."(경북 봉화에서 강아지와 함께 사는 전우익씨, 동아일보 1998. 5. 6)

실업자가 많아지면 한편으로는 자살율이 높아지지만 다른 편으로는 범죄율이 높아진다. 정상적인 소득원이 사라지게 되므로 비정상적인 소득원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도둑질이나 강도질을 하거나 심지어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성마저 상품화하게 된다. 갈수록 교도소가 많아져야 하므로 교도소의 민영화가 이루어지는 반면에, 소수의 부자들은 불어나는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사설 경비원을 두고 자기들만의 성곽을 구축하게 된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왜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가?
그것은 사람들이 삶의 문제를 '돈'을 통해 해결하려는 구조를 강화해왔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를 한마디로 '돈 놓고 돈 먹는 사회'라고 하지 않던가. 다시 말해 더 많은 돈을 추구하는 영리주의가 삶의 전 과정을 돈벌이의 합리성 속으로 포섭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시스템이 생활세계를 식민화한다'고 말했다. 이미 우리 모두의 생활은 충분한 돈이 없으면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고 뿐만 아니라 갈수록 더 많은 돈이 필요해지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생활비가 오르면 노동자는 임금인상투쟁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고, 임금이 오르면 자본가는 물가를 올린다. 그리하여 갈수록 삶의 문제 해결은 값비싼 대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먹는 것도 재료부터 요리까지 사서 먹어야 하고, 옷도 사서 입어야 하고, 집도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사람들 사이에 직접적인 의사소통이 줄어드니까 신문이나 잡지를 사서 보아야 하고 재미나는 놀이 문화를 스스로 하지 못하게 되니까 노래방과 오락실을 찾거나 게임 프로그램을 사야만 한다. 심지어는 집안 일이나 계단 청소까지도 돈을 주고 해결한다. 육아, 교육도 모두 그러하다. 도둑이 설치니까 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경비 체계도 구축한다. 특히 광고와 유행(패션)이 텔레비전이나 신문, 잡지 따위를 통하여 인간 본연의 욕구를 지속적으로 조작하고 '자본친화적으로'(kapitalfreundlich) 변동시켜 나가기 때문에 소비중독, 돈중독, 이윤중독의 경향성이 커진다. 나중에는 별로 필요 없는 상품마저 이미지나 유행 때문에 구매해야만 하는, 그리하여 긴박한 필요가 없이도 많은 돈을 지출해야만 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도 벌어진다. 이런 식으로 삶의 전 과정이 화폐를 통해야 해결되는 양상으로 가다보니 결국 화폐의존도가 높아지는 대신 삶의 자율성은 급격히 약화되고 임금노동에의 종속성이 강화되는 것이다. 결국 일을 더 많이 해야지만, 또 소속된 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더 높여야지만 돈을 많이 벌게 되므로, 생활의 화폐의존도 강화는 마침내 일중독증을 구조적으로 부채질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반면에 위 에피소드의 시인이나 농부처럼 화폐의존도가 지극히 낮은 생활방식을 하나씩 실험해볼 수도 있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생활구조를 근원적으로 혁신하여 '돈'이 별로 필요 없는 삶의 문화를 만들거나, 갈수록 돈이 적게 들도록 바꾸어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컨대 미국의 애미쉬 공동체나 일본의 야마기시 실현지처럼 '자발적 간소함'과 '내면적인 풍요'를 핵심으로 하는, 기존의 것과는 전혀 '다른' 가치관을 공유하는 새로운 마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도 곳곳에 그러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마을에서는 사람들의 생활과정에 돈이 별로 필요 없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일중독에 빠지기보다는 일을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삶이 가능하고 또 남, 여, 노, 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정하고 평등하게 일을 나누어 가지면서 협동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가능하다. 삶의 질 향상에 꼭 필요한 것만 생산하고 소비하려 하니 그렇게 많은 노동을 할 필요도 없어지고 대신에 창의적인 문화생활을 할 여유가 많아진다. 혹시 힘든 일이 있더라도 함께 사는 이들이 각자의 역량에 맞게 도와가면서 하게 되니까 비교적 거뜬히 해낼 수 있다. 이것이 일종의 '자율자치 공동체'일 것이다.
굳이 마을 단위의 구조변화가 아니라도 먹거리의 자립도를 높여 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텃밭이나 주말농장 따위를 통해서 당장이라도 간단한 야채는 스스로 경작하여 먹어보자. 품질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다. 동시에 흙과 물, 공기와 햇볕, 벌레와 곤충 따위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시야가 확장되면 인간이 우주 만물과 맺는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새로운 가치관과 새로운 삶의 원리를 가진 사람들이 서로 만나 교류하고 마을을 만들고 또 그 마을들이 연대하게 되면 우리를 억압하던 커다란 삶의 구조마저도 허물어뜨릴 수가 있다. 여기서 핵심은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 한사람이 가지는 새로운 삶의 원리(다른 사람과 자연에 대해 갖는 관계)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화되는가이다.


6. 다시 생각하는 노동시간단축 운동

대개 사람들은 그러한 '자율자치 공동체'라는 밑그림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현실적 조건은 자본과 국가의 억압이 첨예화되고 일상적인 노동자의 생활이 임노동에 묶여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 대안적 밑그림이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까에 대해 회의를 품는다.
우선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실성이라는 것조차도 결코 저절로 주어지기보다는 사람들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얼마나 절박하게 열망하는가에 따라, 그리하여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실험을 거쳐가면서 그 얼마나 새로운 돌파구들을 만들어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리 두려움에 사로잡혀 현실적 조건 타령만 하고 앉아있다가는 아무 것도 현실화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도 바로 우리들의 의식적 행위와 온갖 분열의 벽을 뛰어넘는 연대 활동이 새로운 조건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 나아가 새로운 조건 속에서 더욱 넓은 운신의 폭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세계 변화의 원리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지금 당장 우리가 공동전선을 칠 수 있는 구호가 무엇이겠느냐고 묻는다. 그렇다. 그것은 단연코 '노동시간 단축운동'이 아닐까 한다.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건강의 수호와 노동의 인간화라는 차원, 일자리 나누기라는 사회 연대의 차원, 여가 선용과 시간주권의 확보라는 차원 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그간의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발전, 노동자 의식과 욕구의 변화, 대량실업과 불완전고용의 증대라는 조건들은 노동시간 단축운동의 현실적 절박성을 더 크게 해 주고 있다.
만일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일할 수 있다면 삶의 구조는 엄청 달라질 것이다. 텃밭을 일구며 새로운 감각을 키울 것이고 삶의 기쁨을 새롭게 발견할 것이다. 다양한 사회운동 속에서 진보의 방향과 내용을 세우는 데 보다 많은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시간 주권이 어느 정도 회복될 것이고 일중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파열구들이 열릴 것이다. 따라서 어중간한 노동시간 단축보다는 과감한 노동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비록 단기간에 어려울지라도.
그런데 정치경제학적으로 볼 때, 노동시간의 단축은 잉여노동의 감소를 초래하므로 자본은 당연히도 잉여노동을 더 많이 추출하기 위해 노동시간의 유연화 전략을 들고나올 것이다. 따라서 노동시간 단축운동은 실질임금 문제는 물론이요, 노동시간의 유연화 문제까지도 함께 걸려 있어, 전 사회적인 지혜와 힘의 결집이 없는 한 관철되기가 어렵다. 이런 점에서 학생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계운동의 상호 연대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한 시점이다.



7. 맺음말

'노동거부!'라는 구호. 이것은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않음'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의 얼굴을 하고 있는 노동, 자본을 지속가능하게(sustainable) 만드는 노동, 그리고 자본의 생존 논리 그 자체, 이것을 거부하는 것이다. 경쟁과 분열의 패러다임 속에서 온갖 살아있는 것들을 파괴시켜 자본의 몸불리기에 동원해내는 이 구조적 모순을 깨닫는 것은 차라리 쉬운 일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구조와 그 구조를 온존시키는 삶의 방식을 어디서부터 바꾸어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크게 세 가지 아이디어가 가능할 것이다.
첫째, 유능한 노동능력과 왕성한 노동의지를 갖춘 노동력을 양성하는 사회적 공장인 학교를 바꾸어야 한다. 커리큘럼을 바꾸고 학습방식을 바꾸고 선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맺기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일류주의, 일등주의, 엘리뜨주의, 기능주의, 적응주의, 국가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기존 학교에서의 참교육 운동, 새로운 대안 학교 건설 운동, 그리고 이들 사이의 평등하고 자유로운 교류가 필요하다.
둘째, 경쟁력과 생산성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파괴시키면서 자본증식에 혈안이 된 일터를 바꾸어야 한다. 작업방식을 바꾸고 노동시간을 과감히 줄이며(예컨대 하루에 한나절 노동) 생산물의 내용을 사회·생태적 필요에 맞게 바꾸어야 한다. 동료끼리, 상사와 부하끼리 맺어진 관계들도 과감히 바꾸어야 한다. 그리하여 생산력주의, 경쟁지상주의, 효율지상주의, 이윤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차이와 다양성은 존재하되 차별과 지배가 없는 일터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노동조합운동을 비롯한 노동운동이 매우 중요하긴 하나 그 근본적인 내부 혁신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특히 노동시간단축 운동은 노동운동, 여성운동, 생태계운동이 내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 작용할 것이다.
셋째, 개인주의화되고 물신주의에 젖어 가는 마을 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마을을 정치경제, 사회문화의 모든 측면에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공동체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삶의 자립도와 자율성을 증대시켜 나가야 하고 공동체적인 관계를 증진시키는 프로그램들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개발해야 한다. 두레나 품앗이에 의한 건강한 집짓기와 건강한 먹거리 만들기, 건강한 옷 만들기, 건전한 놀이 공간과 문화 공간 조성하기, 교환가치를 중심에 두는 거래의 경제가 아닌 선물의 경제를 확대시키기 따위가 구체적인 과제일 것이다. 그리하여 삶의 구조를 갈수록 화폐의존적인 것이 아니라 화폐독립적인 것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다양한 형태의 '탈상품화' 전략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중요하다.
요컨대, 이 세 가지 핵심 과제를 수행하는 일이란, 반생명적이고 비인간적인 노동(따라서 자본)을 직·간접적으로 거부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새로운 사회를 창조하기 위한 보람있는 활동이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기본 원칙에 동의하는 다양한 실험과 노력에 대해서는 많은 수의 "예스!"가 필요할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여전히 경쟁과 분열, 억압과 지배, 착취와 수탈, 오만과 남용의 패러다임을 고집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호히 이구동성으로 "노우!"를 외쳐야 한다("one No!, many Yes!").
이러한 대안적 운동에 필수적인 요소 두 가지는 첫째, 지금까지 우리를 억눌러 온 온갖 피해의식이나 의무감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자기자신에게 책임성을 가지며 능동적으로 행위하는 일이며(self-responsibility), 둘째, 어떠한 엘리뜨나 지도자에 의해 상층 중심적으로 이끌려가는 운동이 아니라 스스로 조직화를 통해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만들어져 가는 운동(self-organizing)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진정한 노동자의 권리(내지 '노동권')란, 한편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인 노동을 할 권리와 다른 편으로 반생명적이고 물신주의적인 노동을 거부할 권리의 통일물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진정한 삶의 자율성(life autonomy)을 가능케 하는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참고문헌>

강내희(1998), 노동거부의 사상-진보를 위한 하나의 전망, <문화과학> 99년 겨울, 제16호.
강수돌(1997a), 『경영과 노동』, 한울.
강수돌(1997b), 노동 중독 사회의 극복을 위하여, <비판> 제2호, 박종철출판사.
강수돌(1999), 『작은 풍요』, 이후.
A. 고르(1988),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이행: 노동시간의 단축, 심광현·이동연 편저(1999), 『문화사회를 위하여』, 문화과학사.
P. 라파르그(1883), 여유로움을 즐길 권리, 강수돌(1997a), 『경영과 노동』 제10장, 또는 조형준 역(1997). 게으를 수 있는 권리, 새물결.
S. 아로노비츠(1998), 탈노동 선언, 심광현·이동연 편저(1999), 『문화사회를 위하여』, 문화과학사.
이진경(1999), 노동의 인간학과 맑스주의, <진보평론> 창간호, 99년 가을, 현장에서 미래를.
임원택(1998), 심청이를 '정리해고'시킨 심봉사, 노기연(편)(1998), 『아빠 소리 하지마! 사람들이 듣잖아』, 노기연.
H. 하이데(1998), 노동 사회로부터의 탈출구: 노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한 조건, 고려대 노동문제 연구소(편),『미래의 일과 노동』, 미래인력연구센터.
허재영(1997), 노동 운동은 노동운동이기를 거부할 수 있는가, <비판> 제2호, 박종철출판사.
F. 힌켈라메르트(1999), 김항섭 역, 『물신: 죽음의 이데올로기적 무기』, 다산글방.
H. Heide(1999), Arbeitssucht und ihre Folgen f r Unternehmen und Gesellschaft, Vortrag an der Aichi-Universit t Toyohashi am 22. Oktober 1999, Manuskript, Toyohashi, Japan.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뜨거운 눈물

2004/09/04 09:16
상처에 고인 진물을 짜내야 하듯,
가슴속에 고인 눈물도 흘러 내려야 합니다.
진물을 짜내야 상처는 비로소 아물고,
눈물이 흐른 후에 고통도 잊혀질 수 있습니다.
웃음이 내 얼굴을 비추는 빛이라면,
눈물은 내 영혼을 닦아내는 물입니다.
눈물을 흘리세요. 당신 곁에 눈물을
닦아주는 친구가 있을겁니다.
눈물을 닦아내고 난 후에 당신은
다시 웃을 수 있을 겁니다.



- 이삭의 《나랑 닮은 친구에게 주고 싶은 책》중에서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눈부처

2004/09/04 09:12
눈부처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 정호승의《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중에서 -




*눈부처의 낱말뜻은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작가가 말하는 뜻은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입니다.
"나는 일평생 당신의 눈부처가 되고 싶다."
또 하나의 최상급 사랑 고백입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나를 바꾸는 힘

2004/09/04 09:07
나를 바꾸는 힘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되는 것이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내일 다른 위치에 있고자 한다면
자신의 생각을 바꾸면 된다.



- 얼 나이팅게일의 <가장 낯선 비밀>중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죽지 않는 것이 추하다

2004/09/04 02:29

 " 오직 쓰라린 내면의 고통 속에서만

내가 사랑할 가장 아름다운 것 태어나네 !!! "
 
 
 죽지 않는 것은 추하다.
 
 차가운 사회에서, 개인으로 찢어진 인간들이 오직 욕망과 타인과의 투쟁으로 얼룩진 사회에서,
지식인은 사회의 난로인 것이다.
지식인은 많이 아는 자가 아니다.
지식인은 내면적 속성이 아니라 특정한 행위의 양태일 뿐이다.
-- 자신이 처한 계(세계)에서 끊임없이 저항선을 만들며 참여하는, 그리고 그러한 다른 계와 횡단적 연대를 서슴치 않는 ... (특정한 행위의 양태)
자신과의 끈질긴 투쟁에서 대중적 일상을 벗어내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자가 지식인이다.
이것은 역동적인 사유와 행위이다.
그래서 지치지 않고 힘들어하지 않는 생은 지식인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룩해 놓음이 다른 누군가나 무엇에 의해 무너질때 아름다운 것이다.
가을 저녁의 노을처럼...
곧 이즈러질 눈부신 하얀 만월처럼...
고통과 쓰라림이 끝나는 편안한 휴식을 누리지 못한자는 추한것이다. (*)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예전에 서울역에 가면 길바닥에서 장기판 벌여 놓은 야바위꾼들이 제법 있었다. 대개는 장기판 벌인 녀석만이 아니라, 돈 내고 장기 두는 손님이나, 둘러서서 분위기 잡는 구경꾼들까지 한 통속으로 보면 틀림없다. 그렇게 거나하게 판을 벌려놓고, 이제나저제나 순진한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야바위에 속지 않으려면 그 판에서 자기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들은 같은 조직에 속하는 자들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말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겨도 도저히 이길 방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때는 게임에서 빠져 나와 게임규칙 자체를 뜯어봐야 한다. 게임의 규칙 자체를 남이 이길 수 없게 짜는 게 야바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런 게임은, 그 규칙을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평균적 아이큐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게임에 무턱대고 들어가기보다는, 그 시간에 야바위꾼의 뒤통수를 갈길 궁리나 하는 게 좋겠다.

박정희 논쟁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 이 논쟁은 예외 없이 "박정희의 공(功)과 과(過) 중에서 어느 쪽이 더 크냐"는 식으로 진행된다. 게임 규칙이 이렇게 놓여지면 그 안에 들어가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이 없다. 공이 크든, 과가 크든, 25년 전의 죽은 독재자가 졸지에 중요한 인물로 컴백하는 효과를 거두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 야바위판에서 휘파람 불며 유유히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 "박정희는 죽었다. 아무리 애무해도 그의 물건은 서지 않는다."

신드롬의 이데올로기

5년 전이던가? 그때는 지금보다 더 했다. 때는 바야흐로 IMF 전야, 사람들은 잘 풀리지 않는 경제에 대한 불만을 박정희에 대한 향수로 표출했다. 영악한 언론사들은 바로 이런 대중심리에 영합해 박정희 띄우기에 나섰다. 신문사들이 교대로 돌아가면서 박정희 신드롬을 부추겼고, 조선일보에서 아예 한 면 전체를 통으로 써가며 매일 박정희 전기를 내보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박정희가 IMF 사태의 해법이 될 수는 없는 일, 잠시 후 박정희 신드롬은 급속히 가라앉아 버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잘 안 풀리면 사람들은 좋았던 시절,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끔찍했던 과거의 좋았던 측면만을 기억하는 법이다. 그래서 다시 박정희 향수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정치적 동기까지 겹쳤다. 지금 한나라당의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의 귀하신 따님이 아닌가. 그러니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박정희 뒤로 결집할 정치적 이유까지 생긴 셈이다. 이게 지금 다시 반짝하고 있는 소위 박정희 향수의 본질이다. 이 논쟁(?), 애써 리바이벌 해야 이미 5년 전에 다 정리된 얘기다.

한때 박정희 신드롬에 고무되어 박정희 기념관 짓겠다고 한 사람들이 있었다. 신문을 보니, 국민들의 자발적 후원이 거의 없어 사업 자체가 취소될 처지에 놓였다고 한다. 이게 대중들의 평가다. 한 마디로 대중들이 입으로 박정희를 높이 띄우는 데에는 어떤 경제적, 혹은 정치적 배경이 있다는 얘기다. 그것을 떠나서 정작 박정희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문제가 되면, 그토록 박정희를 그리워하던 이들이 아주 냉랭한 태도로 돌아서는 것이다.

신화, 민중창작

신화학자 조셉 캠벨이던가? 자기 책에 그는 "Das Volk dichtet"(민중은 詩作을 한다)이라는 독일어 속담을 인용했다. 한 마디로 민중은 어떤 이야기라도 만들어낼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신화는 민중들의 집단적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뜻일 게다. 실제로 수많은 영웅들의 신화를 만들어냈던 그 아득한 그리스의 민중들처럼, 이 땅의 민중들 중의 적어도 일부는 21세기에 접어든 이 시대에도 계속 영웅시를 지으려는 강한 열망을 갖고 있다.

'신화'를 의미하는 'mythos'는 원래 '제멋대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 신화적 사고방식에 대항해 합리적 사고방식을 내세운 철학자들이 '신화'라는 말에 그런 부정적 의미를 부여했을 것이다. 어쨌든 신화는 구술문화에 속하고, 철학은 활자문화에 속한다. 이는 세계를 이해하는 두 개의 상이한 틀 사이의 대립이다. 구술문화에 속하는 이들은 세계를 영웅들의 행위를 통해 이해하고, 활자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세계를 법칙들의 연관으로 설명하려 한다.

가령 폭풍우의 원인을 설명한다고 하자. 활자문화에 속한 이들은 이를 온도, 기압, 증발과 같은 비인격적 용어로 설명하려 할 것이다. 반면 구술문화에 속한 이들은 폭풍우 속에서 어떤 인격적 힘을 찾으려 한다. 폭풍우, 그것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진노다. 경제발전이나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구술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경제위기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그것의 '범인'을 찾아 심판하기를 좋아한다. 또한 경제발전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그것의 '은인'을 찾아 감사부터 하러든다.

은총과 믿음

박정희에 대한 논쟁은 그의 '공과 과'에 대한 정치적 논쟁이 아니라, 실은 두 개의 사고방식 사이에 벌어지는 문화적 논쟁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사회의 구술문화층과 활자문화층 사이의 공시적 충돌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좀 산다고 하는 서구의 그 어느 나라에도 자기들이 그만큼 먹고사는 공로를 특정 개인에게 돌리고 감사해대는 어법은 아예 존재하지를 않는다. 이 재미있는 정치적 의인법은 우리 사회에 아직 강하게 남은 어떤 시작(詩作)의 욕구, 즉 영웅서사시를 갖고 있었던 구술문화의 잔재다.

박정희 추종자들의 태도를 보면 재미있게도 우리 어머니의 그것을 닮았다. 독실한 신자이신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주님의 은총으로 설명한다. 그 어떤 사건이 터지고, 그 어떤 사안이 걸려도, 어머니는 그 배후에서 결국 주님의 손길을 읽어내고야 만다. 내가 일해서 번 돈도 어머니의 머릿속에서는 주님이 주신 축복으로 설명된다. 운이 좋은 것은 주님의 은총이요, 운이 나쁜 것은 주님이 내리신 시험으로 간주된다. 이 반석 같은 믿음을 과연 어떤 논리로 깰 수 있을까? 또 그것을 깨어서 무엇하겠는가?

경상북도 구미에 있는 박정희 생가에 가면, 아직도 그 초상사진 앞에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는 노인들이 있다. 이들이야말로 박정희 신드롬의 종교적 본질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다. 가끔 대학의 교수들 중에서도 논문식 글쓰기로 박정희 영웅시를 쓰는 해괴한 분들이 계신데, 그들은 모종의 범주 오류에 빠져 있다. 이들은 자기들이 가진 전제자체가 '신화적'이라는 것을 의식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신화적 내용과 과학적 형식은 서로 충돌을 일으킨다.

주체성의 문제

남이야 마징가 제트를 구세주로 섬기든, 도널드 덕을 하나님으로 모시든, 간섭할 게 못 된다. 박정희 덕분에 먹고산다고 믿는 사람들은 영원히 그 믿음을 갖고 살아가면 된다. 그 믿음으로 남에게 해를 끼치지만 않는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신앙의 자유는 맘껏 누릴 일이다. 아직도 청학동에서 상투 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존재로써 이 사회를 문화적으로 다양하게 만드는 것처럼, 21세기 넘도록 박정희를 추종하는 이들도 그 존재로써 인류학적으로 보존가치가 매우 큰 문화상품이 될 수 있다.

박정희는 그 추종자들에게 심리적 '아버지'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 나이가 아무리 먹어도 자신을 그의 '자녀'로 생각하는 것처럼, 박정희를 가부장으로 모신 사람들은 아무리 나이가 먹어도 자신의 그의 '자녀'로 생각한다. 발달심리학적으로 보면 그들은 아직 자의식이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독자적으로 무슨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믿지 못한다. 자기들은 오직 '지도자'를 만나야 비로소 존재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이 이들의 의식의 바탕에 강하게 깔려 있다.

그들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서 올바른 결정을 내려주기를 원한다. 그들은 스스로 행동하지 못한다.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서 자신들을 끌어주기를 바란다.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지 못한다. 위대한 지도자가 있어서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한다.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위대한 지도자를 갖는 것이라고, 경제를 되살리는 유일한 길도 훌륭한 지도자를 갖는 것뿐이라고, 그들은 굳게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자기가 자신을 다스리는 자율적 정체, 즉 민주주의의 능력이 없다. 사실 이념적 방향만 다를 뿐, 박정희 추종자는 실은 김일성 추종자와 본바탕이 같다.

경제 문제

경제가 어렵다. 대충 풀릴 경기가 아닌 모양이다. 수출은 늘어도 내수는 살지 않고, 경제는 성장해도 고용은 늘지 않는다. 정부에서는 백약이 무효라는 푸념을 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할까? 구술문화에 속한 이와 활자문화에 속한 이는 이 상황을 각각 다르게 이해하며, 그것을 극복하는 방안도 각각 다른 식으로 마련할 것이다. 구술문화에 속한 이는 경제문제에 대단히 인격적인 접근을 하고, 활자문화에 속한 이는 그 문제를 건조하게 비인격적으로 다룰 것이다.

가령 구술문화에 속한 이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정치적 지도력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것이다. 만약 노무현이 박정희와 같은 카리스마를 갖고 있었다면, 애초에 경제가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박정희, 전두환 때만큼 경제가 고속으로 성장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이것으로 보아 경제를 성장시키려면 역시 권위주의적 리더쉽을 다시 도입해야 마땅하고, 그 리더쉽 아래 온 국민을 경제발전이라는 목표를 향해 총화 단결시켜야 한다. 그러면 아직도 고속성장이 가능하다. 박정희 추종자들은 아마 이런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반면 활자문화에 속한 이는 위기의 '범인'이 아니라 그것의 '원인'을 찾으려 할 것이다. 경제에 위기가 왔다면, 그것은 경제적 소통의 어느 지점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소통의 시스템 자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길을 찾을 것이다. 아울러 위기를 극복하게 해줄 힘도 위대한 지도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끌어낼 것이다. 경제를 발전시켜온 것도, 앞으로 경제를 다시 회생시킬 것도 각각의 경제주체들의 합리적 판단과 적절한 행동뿐이다.

"바람이 왜 부는가?" 어떤 이는 온도의 차이에 따른 기압의 차이, 그로 인한 공기의 이동 등등을 얘기할 것이다. 이런 과학적 설명의 건조함을 싫어하는 이들은 '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풍백'이라는 가설을 더 선호할 것이다. 둘 다 맞는 얘기다. 바람은 기압의 차이로 공기가 이동하는 현상이자, 환웅과 함께 이 땅에 내려온 풍백이 일으키는 조화이기도 하다. 이 두 견해 중에 어느 것이 옳으냐를 놓고 논쟁하는 것은, 부처님과 예수님의 대결만큼 무의미하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문신의 미학

2004/09/03 18:48
문신의 미학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조폭들의 전유물에서 관능적인 패션 아이템으로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머리가 나빠서 이 얘기를 엄마한테 했는지 모르겠다. 3년 전에 문신을 했다. 뉴욕에 출장갔을 때였는데 당시 묵고 있는 호텔이 그리니치빌리지에 있었다. 한때 예술가들과 보헤미안, 밥 딜런 같은 포크 뮤지션들의 보금자리로 유명했던 동네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클럽보다 옷가게나 타투숍이 즐비한 상업 공간으로 쇠퇴해 있었다. 그때 혼자 타투숍에 들어갔다. 결코 술김이 아니었다. 맥주 한잔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샤워를 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갔다. 문신 견본이 진열된 두꺼운 책자를 두권이나 봤지만 마음에 드는 문양이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 도안을 그려 타투이스트(문신 시술자)에게 보여줬다. 이제는 아무도 외치지 않는 ‘사랑과 평화’. 내 스스로 하트 문양과 ‘Peace’라는 영문자를 연결해 소박한 도안을 그렸다.


△ 사진/ 김태은

세상의 모든 타투이스트들은 스스로를 예술가라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한 화려한 문양을 원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며 디자인이 너무 단순하니까 컬러나 음영을 넣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NO Color, No Shadow.”

잉크 묻은 바늘이 내 어깨죽지의 얇은 살갗을 뚫어주길 기다리며 문신 시술대 의자 위에 숫처녀처럼 앉아 있었다. 두렵고 떨렸다. 첫 번째 바늘이 내 살갗을 관통할 때 양팔의 솜털이 곧추섰다. 그리고 점점 시간이 지나자 온몸에 얼얼한 열기가 번졌다. 난 바늘이 살갗을 뚫으며 내 어깨죽지에 ‘사랑과 평화’를 아로새길 때 느껴지는 내 몸의 감각에 최대한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 감각이 바로 문신의 미학이며 관능이라 여겼다.

예전에는 문신이 조폭 아저씨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확실히 하나의 패션 아이템으로 자리잡은 것 같다. 무엇보다 안젤리나 졸리, 위노나 라이더, 주드 로, 조니 뎁, 브리트니 스피어스 같은 할리우드 스타나 베컴과 안정환 같은 축구 스타들의 공이 컸다. 주변에도 멋진 타투를 자랑하는 스타들이 부쩍 많아졌다. 공효진은 가리기도 쉽고 드러내기도 쉽다는 이유로 발등에 별 모양을 새겼고, 양 어깨죽지에 천사의 날개를 그려넣은 모델 이유의 타투도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특히 얼마 전에 결혼한 이혜영은 엉덩이 부분에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인디언 부족들의 자유와 희망을 상징하는 새의 깃털을 새겼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그들 중 상당수가 나중에 레이저로 문신을 지우거나 다른 그림을 덧입혀 원래 글자를 은폐하려는 ‘헛짓’을 한다는 것이다. 당시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헌사 또는 같은 할리우드 스타와의 애정을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한 용도로 문신을 했던 안젤리나 졸리나 조니 뎁 같은 스타가 그 대표적 예이다. 특히 ‘위노나 포에버’라고 새긴 조니 뎁이나 ‘섹시 새디’라고 새긴 주드 로의 문신이 제일 어리석게 느껴진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에 빠지게끔 디자인되어 있는데, 동시에 그 사랑 안에 머물지 않게끔 디자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다 말인가?

나중에 눈꼽만큼이라도 후회할 것 같으면 차라리 헤나를 해라. 진짜 문신의 미학을 아는 사람들에게 헤나는 쉽게 입고 벗는 양말짝 같은 패션 아이템에 불과하지만 나중에 레이저로 지울 바에 차라리 헤나가 낫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남의 '우주' 구경하기

2004/09/03 18:46
남의 ‘우주’ 구경하기

[김경의 스타일 앤 더 시티]

제각기 취향 부린 그들의 집에 가면 틀림없이 그들이 보인다

▣ 김경/ 패션지 <바자> 피처 디렉터

얼마 전, <한겨레신문>의 김선주 논설위원으로부터 젊을 때는 ‘시간’을 즐기고 ‘공간’은 나이 들어 즐기는 것이라는 멋진 말을 들었는데, 나는 어리석게도 10대 때부터 줄곧 공간에 집착해왔다. 10년 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엄마 지갑에서 달랑 10만원을 훔쳐서(훔친 건지, 빌린 건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길음동 옥탑방으로 독립할 때부터 줄곧 그랬다. 세계 어디를 가도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남의 집 구경하는 재미에 빠져 걸핏하면 길을 잃었고, 때로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집들을 책으로 구경하며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 사진/ 바자 이보경

그런데 최근에 문화평론가 강영희 선생이 쓴 <한국인의 미의식>이라는 책을 보고 내가 왜 그토록 공간에 집착했는지 깨달았다. 그건 ‘악착같이 벌어서 내 집 장만하자’ 식의 어머니 세대의 구호와는 좀 다른 의미였다. 그 크기로 보나 방식으로 보나 나만의 이런저런 취향을 제 멋대로 부려놓기에 집만큼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 집은 책이며 음반, 책상, 꽃과 나무 등 내가 좋아하는 오브제들이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놓인 나만의 우주였다. 그러니까 집은 나라는 인간의 가장 가시적이고 가장 거대한 ‘일부’였다.

내가 취재원 집에 놀러가기를 좋아하는 이유도 실은 그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취향이나 세계를 들여다보기에 그 사람이 사는 공간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그 집에 가면 틀림없이 그 사람이 보였다. 한대수 선생의 집에 가면 샤워할 수 있고 기타를 칠 수 있으면 그만이라는 히피 뮤지션의 일상이 보였고, 만화가 이우일 집에 가면 영화나 책 같은 자기 취미에 빠져 낙천적으로 사는 어린아이 같은 30대 남자가 보였다.

최근에 방문한 집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은 <황산벌>이라는 영화를 만든 이준익 감독의 집이었다. 자동차로 진입할 수 없는 좁디좁은 계단을 한참이나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낡은 슬레이트 집인데, 집 한복판에 오랫동안 가꾸지 않은 야생의 정원을 품고 있어서 홀로 사색하기 좋아 보였다. 그런데 씨네월드라는 견실한 영화사의 대표이기도 한 이준익 감독은 그 누추한 집의 사랑채를 전세 내어 혼자 살고 있었다. 말하자면 집도 사람도 눈곱만큼도 허세가 없었다. 어느 스태프가 이준익 감독을 두고 “촬영하는 내내 고환에 습진이 생길 정도로 생고생을 다 했는데도 걸핏하면 그 망할 놈의 감독이 자꾸 보고 싶어진다”고 했는데 그의 집도 그랬다. 누추하지만 편안하고 아름다워서 자꾸자꾸 가고 싶어지는 집이었다. 마침 부암동이라는 동네 전체가 그런 고졸한 아름다움이 있어서 나는 이사할 것도 아니면서 괜스레 그 동네에 전셋집을 보러 다닐 정도로 좋아하고 있다.

반면 최근에 나를 가장 숨막히게 한 집은 ‘대한민국 1% 아파트’로 불리는 도곡동 타워팰리스였다. 일단 초고층 건물이라 창문을 열 수 없다는 점이 ‘쥐약’이었다. 게다가 집약된 고도의 기술력으로 가장 편리하게 지어졌다는 최고의 홈네트워크 주거 공간이 내게는 인간의 삶을 통제하는 거대한 기계장치처럼 보였다. 또 입주하기 전부터 완벽하게 세팅된 곳이라 거주자가 그곳에 자신의 취향을 부려놓을 만한 여지도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타워팰리스에 못 살아서 난리일까? 그건 4억원에 분양받는 순간 곧 10억원이 되는 집이기 때문이다. 강영희 선생 말마따나 그 경제성이 공간에 대한 인간의 취향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내 눈에는 타워팰리스에 사는 ‘대한민국 상위 1%’가 미국 영주권을 받기 위해서 ‘닭공장’에 가는 화이트칼라처럼 좀 안돼 보였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애국계몽운동은 ‘애국’이었나

[박노자의 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

구한말 계몽주의자들이 추종한 일본인 마당발 오가키 다케오… 친일 환상 부추겼음에도 찬양받아

▣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 · 한국학

‘애국’이란 무엇인가? 자신의 행동을 애국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각자가 생각하는 ‘나라’와 ‘사랑’의 내용이 각각 다르기에 애국을 주장하는 두 쪽이 서로 대립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예컨대 ‘나라’ 개념의 내용을 이라크에 가서 제국의 총알받이로 죽을 서민층 젊은이를 중심으로 본다면 파병 반대가 애국이 되지만, 파병으로 인한 한-미 동맹(대미 예속)의 강화로 미국 투자가 활성화돼 주식값이 오르리라고 군침을 흘리는 투기꾼이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면 파병은 애국이 될 것이다.


△ 1907년 7월20일,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킨 이토 히로부미와 그 행렬이 궁궐에서 물러나고 있다. 이토의 중요한 협력자는 오가키와 같은 민간인 국수주의자들이었다.

애국항일 계몽지의 놀라운 이면

‘애국’이 주관적인 개념이기에 객관성을 내세우는 사학자들이 애국이라는 수식어를 쓰려 하지 않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애국이라는 수식어가 꼭 붙는 것은 1900년대 후반의 이른바 ‘애국계몽운동’이다. 1980~90년대의 민중사학자들이 애국계몽운동 지도자 대다수가 통감부 권력자들과 조화롭게(?) 공존했던 부르주아·지주·관료였음을 입증했는데도, 오늘날까지도 국사교과서를 외워야 하는 학생들은 대한자강회-대한협회(1906년 4월~1910년 9월)나 서우-서북학회(1906년 10월~1910년 9월) 등의 계몽단체 간부들을 ‘애국적인 항일 인사’로 인식하고 있다. 당대의 생생한 증언이라 할 만한 계몽단체들의 출판물들을 읽으면 ‘자강’과 ‘문명’을 부르짖었던 지도자들에게 일제는 위협이면서도 동시에 모방이자 제휴의 대상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900년대 후반 계몽단체의 선구자라 할 만한 대한자강회의 <월보> 제1호(1906년 7월)를 들여다보자. 교과서에서 배웠던 박은식·장지연 등의 이름들이 맨 먼저 눈에 띈다. 그러나 웬일인가. 머리말 격인 3편의 ‘서’(序)를 쓴 사람 중에는, 회장 윤치호(尹致昊), 대문장가 이기(李沂)와 나란히 일본 이름 하나가 보인다. 러시아에 붙었다가 중국에 붙었다가 하는 ‘독립정신이 없는’ 한국 당국자들을 비난하고, “한국이 군대를 키우지 않아도 된다. 문명 열강들이 한국을 정의로 대해줄 터이니 약소국이라 하더라도 침략당할 일 없다. 일단 교육과 식산흥업에 힘쓰고 나중에 적당한 시기에 독립을 되찾자”는 취지의 머리말을 쓴 사람은 일본인 오가키 다케오(大垣丈夫·1861~1929)였다.

미국·영국을 위시한 열강의 적극적인 방조 아래서 일제 침략을 당해 ‘보호국’이 된 나라의 국민들에게 “안심하여 교육이나 힘쓰라”고 훈시하는 것은 그 당시 통감부의 대(對)지식인 선전 방침과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바로 이 서(序) 밑에다 이기는 “국가 정의에 대한 이 이야기는 인간의 정신을 감동시키는 내용이며, 세상을 깨우치게 하는 큰 종(鍾)”이라는 찬양의 코멘트까지 달아놓았다. 이게 애국항일 계몽지 같은가?

<월보>를 계속 정독해보면 놀라움은 더해간다. 13호까지 발간됐다가 정간을 당한 <월보>에 23편(!)의 글을 기고한 오가키야말로 학회의 가장 근면한(?) 필자로 보인다. 기고의 내용은 계몽주의자들의 거의 모든 관심 분야를 아우른다. 예컨대 “40~50년 전에 일본도 한국처럼 미개한 나라였지만 서구 문명을 흡수하고 ‘국혼’(國魂)인 야마토다마시(大和魂)를 배양했기에 오늘처럼 발전됐으니 한국도 교육·식산흥업에 힘쓰고 한국혼(韓國魂·국민 정신)을 키우면 언젠가 독립을 되찾아 하나의 열강이 될 것이다. 단, 참다운 국민이 정부의 뜻을 받들고 국법을 준수할 뿐이지 독립운동과 같은 ‘무모한 짓’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은 대한자강회의 창립 때 오가키 연설의 요지였다(<월보>, 제1호).

오가키, 계몽운동의 실세로 통해

또 그는 인종적으로 일본과 같은 뿌리의 한국인들이 교육만 잘 시키면 중국 영향으로 말미암은 나태·사대주의를 극복하여 곧잘 문명개화로 중국을 앞지를 것이라고 통감부하 반(半)식민지의 ‘진보’를 낙관했으며(‘외국인의 오해’-<월보>, 제2호), 대한자강회를 중심으로 잘 뭉쳐서 교육에 열중하면 아예 백인종까지도 능가하여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리라고 내다봤다(‘교육의 효과’-<월보>, 제1호). 인종적인 형제 국가인 일본에 번거로운 외교를 편하게 맡겨놓은 채 실력 양성을 잘하여 국민 정신, 즉 국가에 대한 충성만 잘 키우면 한국이 곧 개명진보의 역에 도착하겠다…(‘한국 목하(目下)의 급무’-<월보>, 제9호).

이것이 대한자강회 잡지에 우연히 실리게 된 일개 일본인의 망설뿐이었다면 큰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일한 동맹론’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찬사까지 얻어(‘論大垣氏同盟說’-1906년 2월25일치 논설) 장지연과 같은 당대의 대표적 문사와 개인적으로 가까웠던, 그리고 <황성신문> 등의 매체를 연설과 기사로 자주 장식했던 오가키가 단순히 대한자강회와 무관한 일개의 궤변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를 고문으로 둔 대한자강회의 상당수 한국인 논객들이 ‘황인종의 연합’과 집단주의적인 ‘국가 정신’, 그리고 ‘선 실력양성 후 독립’ 등을 뼈대로 한 그의 논지를 그대로 따르기도 했으며, ‘이름을 밝혀 이득을 낚으려는’(황현, <매천야록>, 제5권) 계몽주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그가 마당발이자 실세로 통하기도 했다. 통상 ‘항일 애국운동가’로 생각되는 계몽주의자들은 어떻게 해서 일제의 속뜻을 대표했던 이 ‘호걸’(장지연의 오가키 평)을 이렇게 환대하게 됐는가?

오가키의 전기가 일본 국수주의자들인 ‘흑룡회’(黑龍會)가 1936년에 편찬한 <동아선각지사기전>(東亞先覺志士記傳-‘선각지사’는 침략의 주역을 뜻한다)에 실린 것만 봐도 그의 정치적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국수주의 운동 활동가로서 전형적인 자금 조달 방법인 기업인 공갈협박의 죄로 일본에서 1902년에 형까지 받은 오가키는 원래 지역 정치인이자 ‘국가 원기 회복’을 주장하는 한 국가주의적 신문의 사장이었다.

본인의 말대로라면 1906년 2월에 이루어진 그의 도한(渡韓) 동기는 “국은(國恩)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한국인들의 지도계발을 맡아 제국의 정책에 보탬이 되겠다”는 것이었다. 식민지 백성이 돼가는 한국인에 대한 그의 ‘지도계발’의 전술은 양면적이었다. 한편으로는 그가- 적어도 겉으로- 또 다른 ‘대륙 낭인’(재야 국수주의자)들의 ‘합방론’에 반대하여 이미 허울뿐인 한국의 주권이 명목상 유지돼 일본과 ‘동맹’ 관계가 돼야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을 성공적으로 차별화하고 한국의 계몽주의자들과의 교분을 쌓을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물론 그가 이야기한 ‘동맹’이란 한국의 대일 종속에 대한 기만적 수사에 불과했다. 그는 초기에 아예 <대한매일신보>에 광고를 내 일본인에게서 구타·임금체불을 당할 경우 자신에게 알려주기만 하면 억울함을 다 풀어주겠다고 약속하는 등(1906년 3월13일 잡보란) ‘착한 일본 해결사’의 노릇을 맡은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자들 사이에서 이미 유행한 ‘황인종 연합론’의 인종주의적인 친일적 환상들을 더 부추기고 국채보상운동에 훼방을 놓고 대한자강회의 강제 해산과 같은 일제의 폭거에 대한 분노를 무마하는 데 공을 들였다. 1907년 8월에 대한자강회가 해산당하자 오가키가 이토 히로부미로부터 계몽주의자를 결집할 새 단체, 즉 대한협회의 설립허가를 따주고 그 활동을 배후에서 조종했다.

식민지 거물로 거듭난 극우 공갈꾼


△ 오가키와 가장 친했던 계몽주의자 중의 한 사람인 대한협회 부회장 오세창(왼쪽). 위암 장지연(오른쪽)은 오가키를 “천하의 호걸”로 평가하고 그의 ‘황인종 연합론’에 동조했다.

이완용과 결탁한 오가키는 1910년에 ‘합방의 공로’를 독차지하려던 일진회의 한쪽과 한때 공방을 벌여 일본 당국의 제지까지 당한 바 있었지만 결국 식민지의 ‘개명진보’를 찬양하면서 죽을 때까지 서울에서 눌러살게 됐다. 일본의 한 극우적 공갈꾼이 명예직을 두루 거친 식민지 ‘거물’로 거듭났다.

1900년대 말에 오가키에 대해서 ‘사기꾼’ ‘고등 첩자’ 등의 소문이 나돌았음에도 그가 대한자강회의 고문이 되어 윤효정(尹孝定), 오세창(吳世昌), 권동진(權東鎭) 등의 주요 정객들을 친구로 사귀고 계몽담론의 생산자로 기능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가? 현실적으로는 계몽주의자 집단들에게 오가키처럼 그들과 일제 당국 사이의 매개체가 될 사람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도 있었지만, 더 근원적인 이유는 초기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모순적인 대일관(對日觀)에 있었다. 일제에 국권이 넘어가는 현실을 안타깝고 분하게 여기는 의미에서 그들이 애국자였지만, 그들이 대표하는 신흥지배계급(개명관료, 개항장의 부르주아, 쌀 수출의 주역인 지주 등)이 도일 유학과 대일 무역을 부·문화자본 축적의 수단으로 여기고 일본의 국가주의적 규율을 흠모했던 만큼 그들에게도 일본은 ‘위협’이기에 앞서 ‘인종적 형제’이자 모델이었다.

오가키가 주장한 인종주의적 ‘일한 동맹론’이나 ‘국혼(國魂) 배양’ 식의 집단주의·국가주의, 그리고 반(半)식민지적 현실의 인정과 ‘실력양성론’은 그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상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이 벌인 운동을, 과연 ‘애국’으로 지칭해야 되는가? 만약 ‘나라’를 침략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으로 해석한다면 침략자들과 ‘인종적 동맹’을 모색했던 운동에 ‘애국’과 같은 수식어를 붙일 여지는 없어지고 만다. 외세의존적인 초기 부르주아의 메이지 일본식의 계몽이 곧바로 식민지 엘리트의 ‘소신친일’의 논리로 이어지고 지금까지도 일본 극우파를 닮은 수구 기득권층의 군사주의적·국가주의적 논리로 계속 이어져가는 것은 우리가 바로 봐야 할 현실이다.

[오가키 관련 연구]
- 이케가와 히데가쓰(池川英勝), ‘大垣丈夫について-彼の前半期’, -<朝鮮學報>, 제117호, 1985.
- 다구치 요조(田口容三), ‘大韓自强會-大韓協會の日本人顧問に對する 評價をめぐって’, - <朝鮮史硏究會會報>, 제66호, 1982.
- 정관, <한말 계몽 운동 단체 연구>, 효성여자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2
- 최미숙, <大垣丈夫 연구-대한자강회와 대한협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숙명여자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95.
- 최덕수, ‘대한제국기 일본인의 조선론 연구’, -<宋甲鎬 교수 정년퇴임기념 논문집>, 1993.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올림픽 선수촌, 혹은 어덜트 디즈니랜드


최근 미국의 듀렉스 社가 13만개의 콘돔을 아테네 올림픽 선수촌에서 무료 배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선수촌에는 대회 기간 동안 10,000여명의 선수와 5,500여명의 코치 및 임원들이 머물 것이므로, 남녀 구분 없이 배포한다면 개인 당 6개 정도의 콘돔이 돌아간다. 그 콘돔은 도대체 어떻게 사용되는 것일까?

이정화

(편집자 주) 최근 미국의 듀렉스 社가 13만개의 콘돔을 아테네 올림픽 선수촌에서 무료 배포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선수촌에는 대회 기간 동안 10,000여명의 선수와 5,500여명의 코치 및 임원들이 머물 것이므로, 남녀 구분 없이 배포한다면 개인 당 6개 정도의 콘돔이 돌아간다. 그 콘돔은 도대체 어떻게 사용되는 것일까? 짐작이야 할 수 있지만 정확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다. 얼마 전 스코틀랜드의 일간지 '더 스코츠맨 (The Scotsman)'이 올림픽 스타들의 '체험'을 상세히 보도했는데 기사를 발췌 번역 한다.


현대 올림픽의 비밀은 필드가 아닌 선수촌에 있다. 최근 선수촌 내 비기(?)의 트레이닝이 외부에 알려져 화제다. 선수촌에 입성한 선수들의 '마지막 컨디션 조절'은 수영도, 조깅도, 페달링도 아니다. 바로 섹스다.

열전에 들어선 아테네 올림픽의 올림피아드 선수촌. 최근 US 올림픽 팀 소속인 한 여선수가 평소 출입이 금지된 선수촌 기숙사 건물 옥상에서 타국 팀 선수들과 섹스파티를 벌인 것이 화제가 되었다. 놀라운 건, 정작 선수촌 내부에서는 이를 '일상다반사'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 전 선수촌 생활은 고된 트레이닝에 시달려 왔던 혈기왕성한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2주간의 초호화판 휴가이자 수천이 넘는 탄탄한 육체들의 향연이죠." 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수영 2관왕인 넬슨 디벨(美)의 말이다.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선수촌에 입성한 각국의 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는 건 한 마디로 '성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에 가깝다. 24시간 방영되는 스포츠 TV, 언제고 무료로 양껏 즐길 수 있는 최고급의 세계 진미, 드라이브인 콘서트(모든 선수들에게 BMW 한대 씩 대여된다), 수영장, 극장, 볼링장, 디스코 텍 등등이 갖추어진 올림픽 선수촌은 지구 상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VIP 전용 휴양지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곳을 누비는 건 라이벌, 코치, 트레이너라는 이름으로 돌아다니는 잘 빠진 선남선녀들의 육체다.

"코치의 엄격한 통제 하에 고된 운동 스케줄에 시달리던 선수들에게 갑자기, 2주간의 초호화 무상 휴가가 주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사건이 터지지 않는 게 이상하죠." 아틀란타 올림픽 투포환 은메달 수상자인 존 가디나의 말이다. 그들은 200여개국에서 온 혈기왕성한 관광객(?)에 가깝다.

선수촌 입성 후 변화하는 트레이닝 방법도 선수들의 테스토스테론 지수를 높이는데 일조한다. 선수들은 보통 때 정해진 시간에 수영이나 자전거 페달링 등의 트레이닝으로 하루 9천 칼로리를 소모한다. 그러나 선수촌 입성 후, 경기를 위한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가 있기 며칠 전부터 트레이닝 시간을 조금씩 줄여나간다(이를 '테이퍼링 tapering'이라고 한다). 그러나 칼로리 섭취량은 줄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선수촌 선수들은 경기가 가까워올 수록 '놀 시간은 많은데, 원기가 끓어 넘치는' 상황에 처한다. 이른바 클라이맥스에 달한 신체조건에, 건장한 육체들이 종횡무진하는 선수촌만의 풍경이 이들의 성욕지수를 높이게 되는 건 자명하다.

"글리코겐으로 충만한 만 여명의 사람들이 종횡무진하고 있는 걸 보면, 그들 몸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아요." 시드니 올림픽 배영 종목 금메달리스트인 미국의 BJ 베드포드의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선수촌에 비치된 자판기 중 빈번히 품절표시등이 켜지는 건 소프트 드링크가 아닌 콘돔 자판기다.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의 경우 매 두 시간마다 품절이 되었다. 시드니 올림픽 때에도 선수촌 운영진 측이 애초 비치한 7만 개의 콘돔이 완전히 동이 나는 바람에 운영진은 황급히 2만개의 콘돔을 추가주문해야 했다. 이렇게 추가로 비치한 콘돔도 경기 스케줄이 종료되는 3일 전에 다 동이나고 말았다. 쿠바 선수들이 선수촌에 입성한 날 처음으로 품절표시등이 켜졌다.

2002년 솔트레이크 시티 올림픽은 더 가관이었다. 금욕주의로 유명한 몰몬교도들이 절대다수인 솔트레이크 시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총 2십 5만 개의 콘돔이 선수촌에 공수된 것이다.

시드니 올림픽 때 투창 경기에 참여한 캐나다 선수 브리오 그리어는 "여기저기서 섹스판이 벌어진다. 몸매 좋은 사람들만 모여 있으니 테스토스테론 지수도 올라가기 마련 아닌가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알파인 스키 챔피언인 캐리 셰인버그는 선수촌의 섹스파티가 난잡하다는 설에 반대한다. "하지만 난잡한 섹스파티는 절대 아니예요. 우린 좀더 왕성하게 사교적일 뿐이죠. 자유연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랄까."

인터넷 시대와 함께 선수촌 내의 섹스파티는 보다 가속화되고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알파인 스키 레이서인 마르코 부첼은 인터넷으로 선수촌에서의 멋진 원나잇스탠드를 경험했다. "인터넷 덕에 선수촌 내의 어떤 선수들과도 즉각 연락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선수들이 선수촌에 도착하면 선수들의 프로필이 기재된 리스트가 나와요. 모든 선수들이 그걸로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있죠. 저 역시 그리스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온 '아름다운' 스키 레이서들과 접촉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스 스키 레이서에 한 눈에 반해서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어요. 서투른 영어였죠. 그런데 곧장 답장이 오더군요. '영어가 그다지 능숙하진 않군요. 하지만 만나보고 싶군요.'라고요." 그렇게 접선(?)한 두 선수들은 잊지못할 아름다운 섹스를 나눴다고. "아름다운 국제적 사건(!)이었죠."

선수촌에 오는 선수들은 두 부류다. 금메달을 목표로 오는 성실파, 아니면 일생일대의 호화 리조트에서 2주간의 무상휴식을 노리는 쾌락파 . 성실파에게 섹스는 금기이다. 특히, 메달이 걸린 경기 전날이라면 봐서도, 해서도 안될 게 섹스다.

배영 선수 베드포드는 "내 생활 신조 중 하나가 '회사 앞 부둣가에서는 낚시하지 마라'예요. 세상은 너무 좁아요. 다른 나라에서 온 매력적인 수영 선수와 눈이 맞았다고 해도 원나잇 스탠드와 메달 중 어느 것이 더 가치있는지를 생각하면 고민할 이유가 없죠."라며 경기 전 섹스는 선수의 커리어를 망치는 지름길임을 강조한다.

경기 전 섹스가 선수의 컨디션과 경기결과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건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최근 경기 전 섹스가 메달 획득의 지름길이라는 이색 연구보고가 발표되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열리기 전, 예루살렘의 섹스 클리닉 담당의들은 이스라엘 팀 여자 선수들에게 경기 전 섹스를 권장했다. 소속 담당의 중 한 명은 "여선수들의 경우 오르가즘을 느끼고 난 후 훨씬 더 향상된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습니다. 특히 높이뛰기 선수와 주자들에게 섹스는 좋은 에너자이저입니다."라고 말한다.

독일팀 선수 담당의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경기 전 섹스에 여자, 남자 따로 없다'는 의견을 개진하며 남녀 선수 모두에게 섹스를 권장하고 있다. 올해 러시아의 한 심리학자는 독일 신문에 게재한 칼럼에서 "올림픽에서 섹스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니다. 이는 성차와 상관없다. 섹스를 많이 할 수록 메달을 딸 확률도 더 높다."고 말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

47일의 단식과 저 위의 그들 : 지율스님 단식 47일째에 붙여

 

비나리(http://www.greens.or.kr/)

요즘은 몸이 아파 움직이지 못한다. 사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무서워진다. 잠깐 움직이면, 움직임의 대가로 이틀간을 거의 죽은 것처럼 자야한다. 그래도 여전히 몸이 아프다. 그래서 살살 움직이려 한다.

몇 번 정도 죽을뻔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도 집에는 전혀 효자와는 상관없는 나한테 부모님들이 약간의 방황을 참아주는 건, 그래도 살아있는 게 낫다는 생각이 있지 않을까... 괜히 그런 생각을 해본다.

천성산 문제에 대해서 올 1~2월경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도롱뇽 소송으로 알려져 있는 천성산의 문제는 쉽게 이것이다 저것이다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1. 유마힐의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얼마 전에 유마경을 읽었다. 삼보일배를 떠날 때의 수경스님이 유마경 얘기를 잠깐 한 적이 있었는데, 그 얘기가 뭔지 잘 몰랐다.

석가 시절에 이미 깨달은 사람이 있었다. 이미 부처인 사람의 이름은 유마힐이었다. 병문안을 가라고 석가가 제자들에게 얘기를 했다. 예전에 한 번씩 유마힐한테 쫑코, 요즘 식으로 하면 선문답에 한바탕 당한 제자들이 병문안을 가기를 꺼려했다. 석가의 10 제자 중 막내인 문수가 유마힐에게 병문안을 가게 되었다. 문수는 지혜를 상징한다.

문수는 유마힐에게 병문안을 가서, 유명한 세상 만물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중생들이 아픈데 석가가 아프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말을 들은 문수는 부처가 되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마지막 중생까지 해탈할 때까지 세상에 머물기를 자청하고, 그래서 문수는 문수보살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고, 세상 어디에선가 아픈 중생들을 해탈시키기 위하여 떠돌고 있다...

이게 유마경과 관련된 얘기이고, 실제 법전에는 나머지 9명의 제자가 왜 병문안을 가지 못하는지 핑계대는 얘기가 나와있다. 온갖 좋은 얘기나 가치도 다 뻥이라는 소리로 들린다.

네가 아프니, 내가 아프다... 이게 유마경이 우리에게 던져준 질문이다.

2. 지하수법과 습지의 문제

우리나라의 지하수법은 건설교통부 소관사항으로 되어있고, 기본적인 법의 정신은 지하수를 이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어떻게 관리사항으로 유지할 것인가에 맞추어져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관점에서 지하수는 시선에서 멀어져 있다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 한참 터널을 시공할 때 지하수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가 논란거리에 있다고 보면 된다. 대형 택지개발과 지하수의 관계는 아직 법에서 어떻게 처리할지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건설교통부의 자하수 담당관을 한 달 전에 직접 만났다. 착하게 생긴 아저씨다... 눈 껌벅껌벅 거리면서 터널은 어떤 식으로 갈래가 잡힐 것 같다고 대답해주었다. 나는 민원인 신분이다. 택지에 대한 건, 선생님이 어떻게 좀 해결을 해주셨으면 한다고 오히려 나에게 담당관이 부탁을 한다. 마음이 답답했다.

지하수 문제가 앞으로는 사람들의 시건 한 가운데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큰 흐름에서 보면 지금 생태를 주장하는 소위 '경관생태(land-scape ecology)'와 식생 중심의 생태주의가 가져온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 지하수에 대한 관심이라고 할 수 있다. 경관생태를 가장 활용한 사람으로서 이명박 같은 사람을 들 수 있다. 녹색이라는 이미지로 '녹색서울'이라고 얘기할 때는 조경으로서의 생태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은 생태계의 1/10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녹색이라는 사실이나 나무 몇 그루 심는다는 것이 생태계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천성산에 터널을 관통한다는 것이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지하수 문제 때문이다. 터널을 관통하면 상당히 보존가치가 높고 - 그야말로 괜찮은 - 천성산의 습지가 말라버리게 된다. 다른 산은 괜찮을까? 물론 다른 산도 무턱대고 터널을 뚫으면 터널을 통해서 지하수맥이 이리저리 잘려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

크게 보면 천성산 문제와 서울시의 은평 뉴타운에서의 지하수 문제가 동일한 메커니즘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나는 터널을 뚫으면서 천성산의 습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가 하나는 진관내동, 진관외동의 북한산 바로 밑에 30층 짜리 건물을 짓는다고 지하 10미터 이상을 파내려갈 때 다른 지역에서 - 이 경우는 산 - 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의 문제이다.

천성산의 습지의 경우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동의하는데, 이게 고속철 통과와 연관이 되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개별 습지에 대해서는 보호해야 한다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이, 이 보호의 대가가 천성산을 고속철이 통과해서 안된다고 하는 순간에 그렇다면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작은 것에 대한 이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한가운데 떡하고 들어앉은 것이 도롱뇽, 정확히 얘기하면 제주도롱뇽이 천성산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은 중요하지 않고 도롱뇽만 중요하냐고 하면 별 할 말은 없지만, 제주도롱뇽은 멸종을 눈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보호법의 시행규칙이 내년 1월에 발효될 예정이다. 여기에 의하면 제주도룡뇽은 2급 보호대상이다. 1급도 아니고 2급 보호대상의 동물가지고 이런 난리를 펴냐고 하면, 사실 할 말은 없다. 이 시행규칙은 내년 2월에나 발효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이 이런 법리 해석의 문제로 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여기에서 불법적인 요소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애초의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생태조사가 제대로 되었다면, 그래서 제주도롱뇽을 비롯한 인근의 식생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되고, 그리고도 환경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없다고 해서 시행이 된 것이라면 적어도 적법성에 대한 논란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3. 47일째의 단식과 환경영향평가

문제인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이 중재에 나선 것은 KTX와 법정소송의 2심에 올라가 있는 사건의 당사자인 지율 스님 사이에서 적당한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것이고, 그 주된 내용은 도롱뇽을 비롯한 생태계의 식생조사 부분을 다시 할 것인가 하지 않을 것인가의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렇게까지 얘기가 불거진 것은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사항이었고, 두 번이나 재검토 약속이 있었는데, 아무런 조치가 없었던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지만, 이 환경영향평가를 다시 해보자는 얘기가 나오는데 2차에 걸친, 그리고 지금의 47일 단식이 가운데 들어가 있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얘기가 좁혀진 것은 3개월 조사, 6개월 조사라는 두 가지 기간과 누가 할 것이냐의 문제 사이에 협상의 핵심이 들어가 있다. 잘못된 결정이라도 정부가 번복하는 일은 없다는 오만함(!)이 환경영향평가의 주체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환경영향평가가 잘못된 경우에 어떻게 한다는 절차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조사를 새로 하더라도 시민사회 혹은 불교계에서 알아서 한다가 첫번째 문제이다.

두 번째 문제는 하더라도 3개월 내에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영향평가가 사업시행측에서 가지고 있는 불편한 점은 현재로서는 딱 한 가지이다. 4계절 평가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서 봄이나 가을에 시작하면, 3계절 평가만으로 이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시공사들은 대개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환경영향평가를 미리 시작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착공일자를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6개월이라도 두 달 동안 제대로 된 조사를 하기는 어렵다. 이걸 3개월로 줄이면, 현실적으로 조사인단을 꾸리고 또 조사를 위한 용역비를 마련하고 하여간 하다보면 한 달이 그냥 지나가게 된다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여기에 조금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실제로는 본질보다 더 본질에 가까운 문제가 그 동안에 공사를 중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현재도 천성산 공사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공사 진행과 조사 사이의 위계 문제 같은 것들이 불거져 있다.

4. 생명...

협상을 결렬되었고, 지율스님은 단식에 묵언 하나를 추가하였고, 매일 두 시간씩 사람들과 기도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하신다.

불교계가 여기에 대해서 가지는 가장 근본적인 불만감은 현 정부와 사찰 사이의 관계인데, 전국토에 대해서 동시다발적으로 공사를 벌여서 경제를 단기부양하겠다는 정부의 긴급처방이 산마다 사찰을 가지고 있는 불교계와의 힘겨루기 양상을 가지고, 차제에 아예 정부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거 아니냐는게 불교계가 가지고 있는 그ㄴ본적인 불만감이다.

예전 식으로 표현하면 곡기를 끊고 고단했던 삶을 정리하기로 결심을 하신 지율스님을 보면서 과연 모순이 어디에서부터 시작하는가 다시 한 번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생명... 생명이란 과연 무엇일까? 도롱뇽 몇 마리라고 이해하는 것과 제주 도롱뇽 몇 마리가 현 사회에서 그리고 현 정권에서 죽어가는 것들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생각의 차이가 존재한다.

한 사람의 생명이 계산상 많은 경우에 20억 정도 작은 경우 10억 정도를 계산에 포함시킨다. 도롱뇽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개 한 마리의 가치를 이런 가치환산법으로 계산하면, 한 근에 4,000원에서 8,000원 정도의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새만금 사업에 대해서도 이렇게 계산했다. 도롱뇽의 가치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과연 옳은 질문인가 그리고 옳게 생각하는 방식인가에 대해서 뿌리 깊은 회의를 가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이런 방식이 사유가 '합리적인 사고'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 합리적인 사유로 토론하자...

동일한 방식의 사유가 김선일씨의 죽음에서도 작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지율스님의 환경영향평가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은폐와 법리적 순서가 잘못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생명의 합리성... 과연 생명에 대해서 합리성이라는 말을 해도 좋은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통합적'으로 사유해야 한다는 것이고, 천성산의 의미는 도룡뇽의 의미만도 아니고, 도롱뇽이 살고 있는 깨끗한 물을 가지고 있는 습지의 문제만도 아니고, 산 자체의 의미도 아니다. 도롱뇽이 살 수 없는 곳에 다른 것들이 살기 어렵다는 의미와 함께 돈으로 표현된 모든 것만이 가치라고 하는 생각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

생명과 평화...

5. 대체노선에 대한 논의와 현재의 논의

천성산을 관통하지 않는 또 다른 노선에 대해서 생각해보자는 대체노선에 대한 논의의 제기가 있었지만, 이런 얘기가 별로 힘을 받지 못한 이유는 대체 노선과 관련된 다른 지역의 주민들에게서 또 다른 문제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문제제기의 이유도 있지만, 실제로는 별로 양보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불거진 일이다.

47일... 얼마나 더 갈지 모르지만, 현재의 단식도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적... 도대체 문제의 출발이 어디에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의 논의는 지율스님을 어떻게 양보하게 만들 것인가에 집중되어 있다. 한 스님의, 한 선각자의 고집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야말로 안.타.깝.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TA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