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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의 땅을 찾아-동티모르 방문기 ③ (끝)

희망과 절망의 '경계' 국가, 동티모르
독립의 땅을 찾아-동티모르 방문기 ③ (끝)
식민잔재의 우울함 언어

식민지 잔재의 우울함은 동티모르의 언어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현재 동티모르의 공식어는 떼뚬어(Tetum)와 포르투갈어다. 이는 오랜 기간의 식민지배 아래에서 자국언어인 떼뚬어 사용이 금지되다보니 언어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 한정된 어휘와 정비되지 않은 문법체계로는 정확한 의사전달에 한계가 있어 이를 포르투갈어로 보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거나 고위직에 오르기 위해서는 '떼뚬어'보다는 포르투갈어 구사능력이 중요하다. 포르투갈어는 동티모르에서 '엘리트 계층'을 상징한다. 식민지 지배전략의 일환으로 포르투갈은 포르투갈어를 동티모르의 공식어로 지정하고 학교는 물론 교회와 지방정부에서도 포르투갈어만을 사용하도록 엄격히 통제했다. 하지만 당시 교육의 수혜를 받은 계층이 한정적이다 보니 이후 이들은 동티모르의 엘리트 계층으로 성장하게 됐다. 또한 인도네시아 통치기간동안 인도네시아 정부가 포르투갈어를 쓰지 못하도록 강요한 바 있는데 이것이 오히려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는 포르투갈어를 더욱 확산시키는 경향을 낳기도 했다는 분석도 있다. 여하튼 이런 영향 때문인지 독립 이후 동티모르의 많은 법제와 양식들이 포르투갈을 본보기로 삼아 정비되고 있고, 이러한 과정은 자국어보다는 '포르투갈어'를 선호하는 풍조를 낳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식민통치가 또 다른 식민통치의 국가, 포르투갈의 유령을 동티모르에 남기고 간 것이다.


희망을 일구는 땅

여전히 극복되지 못한 식민의 잔재와 경제적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의 미래가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혹자는 암울한 동티모르의 현실을 보며 "독립은 어찌 보면 인도네시아가 행사하던 권력이 이제 사회 내부의 기득권층에게 이양된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비판을 던지기도 하지만 독립은 분명 동티모르인들에겐 새로운 '희망'을 의미한다. 적어도 내가 만난 '활동가'들은 그 희망의 단초를 보여주었다.

쉽사리 극복되지 않는 빈곤과 정치적 혼란의 무게 때문에 '독립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자, 라디오 <라캄비아>(RAKAMBIA)에서 일하는 닌도는 "우리는 지금 죽음의 공포로부터 벗어나 있다"고 말한다. 2살부터 느껴왔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볼 수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이다. 닌도는 "사람들이 정치 문제에 대해 얘기하고 경제 문제에 대해 토로할 수 있는 것조차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상황으로 인해 학업은 무기한 중단됐지만 그는 지난 4년간 한 푼의 수입도 없는 상태에서 '소리없는 자들의 소리'가 되기 위한 방송국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 왜 이일을 계속하냐는 질문에 닌도는 "나는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서 성장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닌도에게 독립은 '공포로부터의 탈출'이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식민지배 아래에서 가족과 젊은 시절을 빼앗겼지만 '정의'가 세워진다면 이 모든 것들을 용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독립과 정부 설립 이후 사회재건을 위해 구석구석 해야 할 일이 산적함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를 위한 연대'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는 인권시민진영의 움직임도 희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동티모르의 승리를 통해 '국제사회의 지원과 연대'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들은 지금, 인도네시아의 또 하나의 식민지 웨스트 파푸아의 해방에 자신들의 힘을 쏟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웨스트 파푸아의 상황을 알리기 위해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캠페인을 조직하고 있다.

그들의 작지만 끈질긴 힘은 동티모르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게 한다. 끊임없는 학살과 침탈이 자행된 땅임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투쟁한 역사를 지닌 민중에 대한 믿음으로, 이방인으로부터 헤아릴 수도 없는 극도의 공포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경계'가 묻어나지 않던 동티모르인들의 선한 눈빛으로부터 그 희망은 더욱 강렬해진다. 이것이 '희망'이 아닌 '현실'이 되기를. 아데우스(안녕)! 동티모르.

사나나 리딩 룸에 게시된 사진들. 동티모르가 헤쳐와야 했던 고난의 역사를 담고 있다. 이제는 '과거'가 되었지만 지금도 동티모르는 채 완성되지 못한 '과거청산'의 과정 속에서, '사회재건'이라는 과제 속에서 쉼없는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글쓴이 주]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해방이후 굴절된 역사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새로운 사회와 질서를 꿈꾸는 활동가의 '희망'을 안고 동티모르 여행길에 올랐다. 400년이 넘는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이제 독립한 지 6년, 자국 정부 수립 만 3년밖에 안 되는 땅이기에 뭔가 '천지개벽'을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자유'가 주어지고, '변화'가 모색되는 땅에, 어쩌면 '국가'라는 씨를 처음으로 뿌리고 있을 땅에, 어떤 씨앗들이 뿌려지고 있는지가 못내 궁금했다. 하지만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머리가 아닌 삶으로 공포의 역사를 공유하지 못한 입장에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이방인이란 위치에서, 불과 한달 남짓한 시간을 들여 동티모르를 이해하려 한 것은, '씨앗'을 보고 싶었던 '허황된 꿈'이었다.

또한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처지에서 '공식적' 혹은 '정확한' 정보 역시 제대로 구한 것이 하나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티모르의 '오늘'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덤비는 것은 또 다른 욕심일 뿐이다. 정보에 목말라 인터넷을 뒤지고 싶었지만 한 시간에 6달러에 달하는 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설사 인터넷을 한다고 해도 그로부터 정보를 얻는 것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까지 망설임이 길었다. 하지만 이해한 수준만큼, 본 만큼이라도 동티모르에 짙게 그리운 수탈의 역사를 알려야할 것 같다는 욕심은 '감상'과 '단상' 뿐인 서툰 글쓰기를 재촉시켰다. 여행기가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여행기일 수밖에 없는 글에 대한 부디 넓은 아량과 이해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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