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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6 메모: "뷔르메르 18일"의 현실성

1.

홍콩의 우산운동, 현재진행중인  독일 기관사 노조 GDL의 전면파업 등을 보면서 <뷔르메르 18일>의 현실성(Aktualität)을 느낀다.

 

2.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이 연속되는 역사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시적인 [적대적] 대립관계 안에서 서로 마주하면서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귾임없는 투쟁을, 매번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재편되거나 아니면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동파멸로 끝나는 투쟁을 벌여 왔다.”(공산당 선언)

 

자유민과 노예 등등 저렇게 억압자와 피억압자를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재진행중인 투쟁을 보면 전선이 매우 유동적이다. 어제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이 되고, 적군의 적이 아군인가 했더니 또한 나의 적이다.

 

3.

"헤겔은 어디선가 모든 세계사적인 대사와 대인들은 꼭 두 차례 등장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근데 한 번은 가히 혁명적인 시대의 첫 비극에, 다른 한 번은 장차의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비극인 막간극에 등장한다고 덧붙이는 걸 잊어먹었다. (...)

사람들의 제각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의적으로, 즉 자신이 선택한 상황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각자의 의지, 의식, 반성, 그리고 인식과 무관하게 제각자의 목전에 놓인, 주어진, 그리고 전수된 상황하에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살아있지만 잠자는 사람을 짓누르는 악몽처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두뇌에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이걸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자신과 사물을 변혁하고 여지껏 실존한 적이 없었던 것을 만들어 내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이런 혁명적 위기의, 분기의 시기에 각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기겁하고 주눅이 들어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과거의 망령들을 주문하고, 이들에게서 각자 자신의 명분과 전투에 나서는 아군의 구호와 의상을 빌리고,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저런 유서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분장과 차용한 대사로 세계사의 새로운 장면을 연출하는 막간극에 등장한다."(뷔르메르 18일, 1장)

 

이건 번역이 아니라 오늘날의 상황 이해와 서술을 고민하면서 재독한 읽기의 한 버전이다.

 

<뷔르메르 18일>이란 막간극의 다시 막간극이 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4.

무엇이 문제인가?

 

die organische Gestalt, worin der reagierende Geist der Nation es bedrohte”(뷔르메르 18, 1)

 [반프롤레타리아 세력으로 집합된 의회라는] 유기적인 형태 안에서 [프롤레타리아]를 위협하는 [민족]국가라는 공동체의 반동하는 정신

 

'반동의 유기적인 형태'의 실체는 오늘날 어떤 모습인가?

 

<흑 대 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저자는 시민사회를 오늘날의 '반동의 유기적인 형태'로 보는 것 같다.

 

독일기관사 노조 GDL의 철도부분 사상 최장기 파업돌입을 놓고 "탈선"(Entgleisung)이라는 비난이 팽배하다. 따로 노는 나쁜놈들이란다. 파리의 프롤레타리아와 같이 고립되고 있다.

 

GDL 파업의 쟁점은 정치적이다. 기관사노조가 승무원의 이익을 대변할 권리가 있는가가 쟁점이다. 대표(Vertretung) 혹은 대의(Repräsentation)의 문제다.

 

과거 철도부문 민영화를 지지하고 경영측이 제공한 제반 특혜 수혜자였으며 경영측의 하수인이란 비난을 받았던 철도부문 대노조 EVG(전신 트란스넷 노조)와 소노조 GDL간의 싸움이기도 하다. 

 

시민사회가 GDL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Hart aber Fair"라는 정치 토크쇼에서 노조 출신 사민당 사무총장 야스민 파히미 (Yasmin Fahimi)가 GDL의 입장을 반박하는 논리를 전개하자 모더레이터가 "어떤 경영진 대표도 그렇게 정교하게 경영측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했을 거"라고 꼬집을 정도로 반GDL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5.

말의 문제인가? 

"[...] 새로운 언어를 습득한지 얼마 안되는 초보자는 [새로운 언어에 머물지 않고] 항상 모국어로 다시 내려가는 번역을 일삼는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 안에서 모국어에 대한 아무런 회상 없이 움직이고 그에게 유전된 언어를 잊어버려야만 새로운 언어의 정신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생산할 수 있다."(뷔르메르 18일,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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