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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연상(聯想)-생각 꿰매기

매일 연상이 있다. 외부의 자극과 내적 필연성이 중첩되어서 일어나는 생각들의 행렬.

 

짝지는 늘 그러듯이 몸을 놀리지 못한다. 한국에 전화를 하면서 거실 식탁아래 깔아놓은 마른 풀잎(무슨 풀이지?)으로 거칠게 짠 융단 아닌  융단에 박힌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뽑고 다닌다. 옛날 할머니가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고 엉금엉금 걸레로 바닥을 훔치시던 일이 생각난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꼭 브뢰첸(Brötchen, 주먹만한 조그만한 빵)을 먹는다. 브뢰첸은 바로 구운 거야만 맛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빵집에 간다. 내 몫이다. 짝지가 잔돈을 챙겨준다. 6개에 1유로 92센트. 잔돈 2센트가 없다면서 데려다 키운 놈의 방에 가서 5센트를 훔쳐서(?) 준다. (이 놈은 우리 둘이 버는 돈보다 훨씬 더 많이 벌면서 장가갈, 집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친하고 살다가 싸우면 짐을 들고 다시 들어온다.) 근데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차바타(ciabatta/이태리 빵)가 남아 있어서 4개만 사올 거라고 했더니 무슨 복잡한 계산을 한다. 20센트 동전을 쓰라고 한다. 뭔 말인지 빵가게에서 지불하면서야 알아먹었다. 4개는 1유로 38센트. 잔돈으로 5센트 훔쳐온 게 허사였다는 것. 결국 큰 돈(?) 20센트 동전을 헐어야 한다는 것.

 

짝지는 빵을 사다주면 고마워하는데 난 사실 즐겨간다. 최근 들어서 더욱 그렇다.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여성이다. 사람이 자주 바뀐다. 이른바 아젠다 2010년 개혁으로 비정상적인(atypisch) 취업형태의 하나인 미니잡(Minijob)이 활성화되어서 그렇다. 근데 이중 참 맘에 드는 여성이 한 분 있다. 혹시 이 여성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즐겨간다. 요새 쉽게 볼 수 없는 얼굴이다. 뭐랄까, 순진하다 할까? 빈켈만(Winkelmann) 남긴 'Edle Einfalt, stille Größe'(뭐라 번역하지? 고귀한 단순과 고요한 위대?)의 Einfalt(단순)의 얼굴이랄까? 언듯하면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멍청’(blöd: 원래는 귀가 막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세상 말귀에 어두운 얼굴이다.  암튼 ‘소녀시대’에 서너 살 먹은 어린아이까지 포즈를 취하고 얼굴표정관리를 하는 요새 흔히 볼 수 있는, 추하기 짝이 없는 얼굴과 반대되는 얼굴이다.

 

자신의 죽음을 넘어서 자식의 심성을 알고 자식의 앞날을 내다보고, 자식의 심성이 그가 세상에서 생존할 수 없도록 하는 걸 알고서 구체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죽은 횔더린의 엄마 요한나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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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포스트모던-프리모던

오늘 베를린 시내를 돌아다녔다. 2차 대전의 폭격으로 뻥 뚫린 공간들이 아직도 채워져 가고 있다.

앙싱앵 레짐의 건축양식, 독일에 자본주의가 완착하고 민족주의가 형성된 이른바 건국시대(Gründerzeit)의 건축양식, 바우하우스의 모던한 건축양식, 포스트모던한 건축양식 등 어지럽다. 근대 이상하다. 모던한 양식과 그 이전의 양식은 어울리지 않는데 포스트모던은 잘 어울린다. 문득 포스트모던한 건축양식이라는 담론을 통해서 프리모던한(pre-modern) 잔재들이 생기를 찾는다는 느낌이 든다. 'post'의 실체가 ‘pre'라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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