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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복지제도가 한국 복지제도의 패러다임? - 4

임금이란?

 

자본주의하에서의 임금이란 죽지 않고 다음날에도 와서 일할 수 있게 생활에 필요한 걸 살 수 있게 주는 돈이다. 노동의 등가교환이 아니다. 노동의 대가가 아니다. 이걸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주인의 비유다. 자본가들도 이걸 안다. 그래서 죽지 않을 만큼은 항상 주었다.

 

근데 자본은 언제부터인지 이것도 아깝게 생각하기 시작한다. “임금을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이하로 낮춰서 일하게 만들 수 없을까?” 이런 질문을 하기 시작하고 대책을 마련했다. 내가 보기엔 여기에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이 있다. 세금으로 마련된 금고로 최저생계비 이하 수준의 임금을 보충하자는 것.

 

바로 이것이 또한 아젠다 2010의 핵심내용이다.

 

기본소득과 연동되어 있는 문제다. 자민당의 아젠다 2010에 대한 비판을 보면 더욱 그렀다. 자민당은 아젠다 2010개혁을 기본소득의 한 형식인 시민수당(Bürgergeld)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을 이론적으로까지 지지하는 입장은 최저생계비를 밑도는 임금지불을 원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윤활하게 해주는 모종의 계기(Moment)일 뿐이다.

 

기본소득론자들은 앞 포도원 비유를 인용하면서 휴머니즘과 보편적 복지를 운운하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은 단호히 이야기 할 것이다. 아침부터 일을 했던, 저녁 무렵에야 비로소 일자리를 찾았던, 모든 일꾼 개개인들이 하루의 생활을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1 데나리온이 필요하다고. 이것이 모든 사람이 더불어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 우리네 공동체 속의 공정한 정의이며, 21세기의 휴머니즘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보편주의 복지국가가 우리의 시대정신으로 등장한 이유이다.”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36154)

 

진부한 건 그 1 데나리온이 이젠 주인의 호주머니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옛날엔 그래도 지 호주머니에서 꺼냈는데. 자본가가 양손들고 “할렐루야” 하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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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복지제도가 한국 복지제도의 패러다임? - 3

 경제성장률변화와 연동하는 정치적 변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독일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 전년대비 변화). 1960년까지 평균 8% 성장. 가로막대기는 10년별 평균경제성장률: 1960년대 4%를 넘는 평균성장률에서 2000년대 1%정도로 떨어짐.

(출처: 프리드리히 에버트재단, http://library.fes.de/pdf-files/wiso/08997.pdf /독일 연방통계청)

 

마이너스 성장 시기는 또한 정권변화 혹은 대대적인 정책변화가 일어난 시기이기도 함.

 

1) 1967년 마이너스 성장 시기에 기민/기사연합과 사민당간의 첫 대연정이 구성되고 차후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마련됨.

2) 1975년 마이너스 성장 시기를 전후로 사민당 브란트총리가 퇴임하고 슈미트정권이 들어섬.

3) 1982년 사민당-자민당 연정이 붕괴되고 콜 총리가 이끄는 기민/기사연합-자민당 연정이 구성됨.

4) 1993년 마이너스 성장 시기에 구동독 지원정책의 첫 수정이 이루어짐.

5) 2003년 마이너스 성장기에 이른바 아젠다 2010 개혁정책이 개시됨.

6) 2009년 마이너스 성장기에 기민/기사연합-사민당 두 번째 대연정이 붕괴되고 기민/기사연합-자민당 연정이 들어섬. 금융위기에 이은 2009년 마이너스 성장기가 초래한 특이한 결과는 4년 후 신자유주의정책 완고파라 할 수 있는 자민당이 5%이하 득표에 그치고 독일연방국 사상 처음으로 연방하원에 탈락한 것임. 이후 제3차 기민/기사연합-사민당 대연정아래 신자유주의정책의 일환인 아젠다 2010 개혁이 약간 수정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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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복지제도가 한국 복지제도의 패러다임? - 2

좀 다른 접근 ....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의 맛도 변한다.

 

짝지는 70년대 독일이 살기 제일 좋은 때였다고 한다. 특히 이주노동자의 경우 그랬다. 공짜로 말 가르쳐주고, 말을 잘 못해도 일을 시키면서 월급은 독일노동자들보다 더 많이 주었으면 주었지 덜 주지 않고. 기숙사 월세 50 마르크만 있으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600마르크 정도를 벌었는데. 밥은 병원에서 먹고. 나머지 돈은 모아두었다가 3개월에 한번쯤 한국에 보내고.

 

시대는 변하여 다문화사회를 운운하지만 이주노동자가 살기에는 더 좋아지지 않았다. 다문화사회란 담론은커녕 그런 말조차 없었던 때가 이주노동자가 살기에 훨씬 더 좋았다는 것. 아마 독일 서민들의 삶이 물질적으로 그리 각박하지 않아서 그랬을 거다.


자본의 요구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이 독일로 왔다. 근데 80년을 기점으로 하여 자본은 이주노동자를 불러오는 대신 적극 딴 데로 가기 시작했다. 노동력을 불렀는데 사람으로 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눈총이 변하기 시작했다. “저들은 왜 돌아가지 않고 아지 여기 있어?”에 대한 반응으로 다문화사회담론이 등장했다. 자본의 요구에 따라 형성된 ‘자국’노동자+‘이주’노동자 사회에서 자본은 슬쩍 빠져나가고, 이른바 진보세력은 다문화사회라는 담론으로 자국노동자-이주노동자의 문제를 자본의 문제로 설정하지 못하고 문화와 인식부족의 문제로 전환했다.

 

It's the logic of capital, stupid.

 

아젠다 2010  개혁의 사회적 담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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