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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붕괴 25주년 - 단상

장벽붕괴 25주년.

 

말로 붕괴된 장벽이 말을 믿고 장벽을 넘으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붕괴되었다. 동독을 떠나 서독으로 넘어가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서 세웠던 장벽이 – 공식적으로는 “반파쇼보호장벽”(antifaschistischer Schutzwall)이라고 이름하였지만 – 다시 넘어가려는 사람들의 힘에 견디지 못하고 허물어지면서 갈라진 독일은 통일의 길로 나아갔다.

 

통일이라기보다는 좌파당 원내대표 기지가 지적하였듯이 넘어가는 “가입”(Beitritt)이었다. 그리고 통일의 형식이 아니라 기본법이 제시한 가입의 형태로 정치.경제적 독일 통일이 이루어졌다.

 

가입으로 이루어진 통일은 가입하는 쪽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배제의 통일이었다. 구동독은 싹쓸이 되어 서독이 진출하는 와일드 웨스트가 되었다.

 

 그러나 ‘반파쇼보호장벽’이란 표현에 어렴풋이 스며있는 대립은 사라지지 않았다. 현존사회주의의 일상적인 실천까지, 예컨대 90% 여성의 풀 타임 취업활동과 이를 가능하게 한 사회 인프라 (서독의 경우 40% 선, 그것도 대부분 파트타임), 사라지지는 않았다. 배제된 통일에 이의가 제기되고 통일은 복잡해 졌다.

 

이제야 비로서 진정한 통일의 길로 들어서는 것 같다. 배제의 통일이 대립물의 통일을 넘어서 이제 일상차원에서의 사회주의의 실천이 통일이냐 대립이냐가 아니라 통일과 대립이 서로 삼투하는 통일안에서 전승되어 실천되고 있다.
 

너무 긍정적인 판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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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관사 노조 GDL 파업 관련 알아야 할 사항 – 3

3.

 

자본논리의 관철은 객관성의 관철이 아니다. 항상 ‘정치지형’(politische Landschaft)이 손질(Pflege)된다.  검은 돈(Black Money)이 투입된다.
 

(주) 독일철도의 부분민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과거 독일의 플릭사건(Flick-Affäre)과 같이 무식한 방법이 아니라 세련된 방법이 동원되었다.

 

우선 기업 결산보고서를 조작해서 구미 당기는 기업으로 치장했다. 설비 투자, 인력양성 등을 방치해서 이윤을 많이 남기는 기업으로 만들었다. (참조: “모두를 위한 철도”(Bahn für alle)가 제공한 실질 기업결산보고서,  “[은폐된] 정부지원이 없다면 60억 유로 손해”,   http://www.gemeingut.org/2012/03/deutsche-bahn-ohne-staatliche-zuschusse-6-milliarden-euro-verlust/)

 

나아가 언론을 손질했다 (참조: “공익의 저편에서 – 독일철도 DB의 親철도민영화, 反기관사 노조 GDL 파업 [여론 조성을 위한] 물밑 공세”(Jenseits des öffentlichen Interesses – Die verdeckte Einflussnahme der Deutschen Bahn für die Bahnprivatisierung und gegen den GDL-Streik), https://www.lobbycontrol.de/wp-content/uploads/die-verdeckte-einflussnahme-der-deutschen-bahn.pdf) 용역 PR 회사를 통해서 친민영화 보도를 장려했다. (참조: 위키,  http://de.wikipedia.org/wiki/Deutsche_Bahn#Kritik ; [반]로비미디어의 자료, https://lobbypedia.de/wiki/Deutsche_Bahn)

 

정치지형을 손질하기 위한  ‘퇴역’ 정계인사들의 네트워크도 만들었다. (앞의 자료 참조)

 

심지어는 비판적인 종업원을 감시해 해고 구실을 찾았다. 이게 발칵되었다. (주) 독일 철도 감독위원회가 전내무부장관 바움과 전법무부 장관 도이블러-그멜린으로 구성된 특별조사위를 통해서 조사하게끔 했다. 그러나 이와 연루된 매니저들은 형법처리를 받지 않고 대려 엄청난 퇴직금을 받고 사퇴했다. (앞의 자료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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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관사 노조 GDL 파업 관련 알아야 할 사항 – 2

2.

 

모든 게 (주)독일 철도(Deutsche Bahn AG/이하 DB)를 상장기업으로 만드는게 목적이었다.

 

1차 철도개혁으로 (주) 독일철도가 설립되고 동시에 규제완화로 민영 철도회사 운영이 가능해 졌다.  DB 와 경쟁하는 민영 철도회사들이 등장했다.

 

2차 철도개혁이 추진되었다.

 

수백개의 자회사가 있는 DB 는 크게 두 승객, 물류, 그리고 인프라 분야로 구분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주) 독일 철도 홈페이지, https://www.deutschebahn.com/de/start.html)

 

크게는 인프라 부분(Networks)과 승객(Mobility) 및 물류(Logistics)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연방철도재산[청]의 지원과 무이자 대출로 투자 및 관리가 이루어지는 인프라 부분은 상장기업화에서 제외되었다. 이 부분의 민영화와 관련 법규는 국민생활에 기본적인 인프라는 정부가 담보해야 한다는 이른바 “Daseinsvorsorge”라는 정부의 의무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회수할 게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주) 독일철도 전체를 민영화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승객과 물류 부분을 하나로 묶어 2003년 7월 17일 100% (주)독일철도 자회사인 “(주)독일철도 승객 및 물류”(DB Mobility Logistics AG, 이하 DB ML AG)를 설립하고 DB ML AG 의 상장기업화를 추진하였다. 마침내 관련 법규가 연방 하원 및 상원을 통과한 다음 2008년 10월 부분민명화 (24.9%)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의 도발로 상장기업화가 연기되었다. (참조: DB ML AG – Investor Relations, (주) 독일철도 홈페이지,  http://www.deutschebahn.com/de/investor_relations/ir_tochtersite_mlag.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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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기관사 노조 GDL 파업 관련 알아야 할 사항 – 1

1.

독일 철도 주식회사는 국영철도로 소개되지만 상법적으로 주식회사 형태인 민법상의 사기업다. 단지 국가가 발행주식 100%을 소유하고 있을 뿐이다.
 
법정 자격이 없었던 서독의 독일연방철도(Deutsche Bundesbahn)과 동독의 독일제국철도 (Deutsche Reichsbahn)를 합병하여 1994년 1월 1일 설립되었다.

 

법정자격이 없는 국가소유 기업(staatseigener Betrieb) 형태에서 법정자격이 있는 주식회사로의 전환의 궁극적인 목적은 철도부문의 완전한 민영화였다. 이게 ‘철도개혁’(Bahnreform)하에 이루어졌다.

 

청혼자의 구미에 맞게 신부를 치장하는 것이었다. 금융위기에 휘청거리는, 이른바 자본주의 ‘체제유지에 중요한’(systemrelevant) 은행을 구제한다는 명목으로 은행의 불량투자를 통합하여 불량은행(Bad Bank)의 몫으로 했듯이, 먼저 구미를 당기는 것과 그러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연방정부산하 특별재산[청](Sondervermögen) 하에 통합적으로 관리되고 운영되었던 철도부문을 3개 부분으로 분리하였다. 행정부분은 연방철도재산[청](Bundeseisenbahnvermögen)에 계속 머무르고, 인가 등 통치권 부분은 신설된 연방철도청(Eisenbahn-Bundesamt)에 이양하고, 그리고 직접적인 운영부분은 신설된 (주)독일철도의 몫이 되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연방철도재산청 홈페이지, http://www.bev.bund.de/bahnreform.htm)

 

그리고 결혼시장에 나갈 신부의 지참금으로 서독의 독일연방철도와 동독의 독일제국철도의 채무 및 철도운영과 무관한 부동산을 통합하여 연방정부 산하 연방철도재산[청](Bundeseisenbahnvermögen)에 양도했다. 나머지 알맹이는 모두 (주) 독일철도에 양도했다. 나아가 예전에 [국가직속] 공무원(Beamte)이었던 직원들을 연방정부가 (주)독일철도에 할당하는(zuweisen) 일종의 ‘파견’형식을 취했다.  

이런 ‘파견’ 형식을 취함고 동시에 (주) 독일철도는 더이상 [국가직속] 공무원(Beamte)을 양산하지 않게 되었다. 점진적으로 국가직속 공무원들이 임노동계약 노동자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주) 독일철도에 ‘파견’된 국가직속 공무원들의 급여는 국가직속공무원급여표(Beamtenbesoldungstabelle)에 준거하지 않고 임대계약 노동자를 사용했을 때 경영주에 발생하는 비용(‘Als-ob-Kosten’)에 준거하여 책정되었고, 국가직속공무원 자격정지(beurlauben)하 (주) 독일철도에 가서 근무하게 된 공무원은 일반 임노동계약을 체결하게끔 하였다. (참조: 對연방정부 小질의에 대한 연방정부의 답변, http://dip21.bundestag.de/dip21/btd/16/076/1607653.pdf)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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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6 메모: "뷔르메르 18일"의 현실성

1.

홍콩의 우산운동, 현재진행중인  독일 기관사 노조 GDL의 전면파업 등을 보면서 <뷔르메르 18일>의 현실성(Aktualität)을 느낀다.

 

2.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이 연속되는 역사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시적인 [적대적] 대립관계 안에서 서로 마주하면서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귾임없는 투쟁을, 매번 사회 전체가 혁명적으로 재편되거나 아니면  투쟁하는 계급들의 공동파멸로 끝나는 투쟁을 벌여 왔다.”(공산당 선언)

 

자유민과 노예 등등 저렇게 억압자와 피억압자를 정확하게 구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재진행중인 투쟁을 보면 전선이 매우 유동적이다. 어제의 적군이 오늘의 아군이 되고, 적군의 적이 아군인가 했더니 또한 나의 적이다.

 

3.

"헤겔은 어디선가 모든 세계사적인 대사와 대인들은 꼭 두 차례 등장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근데 한 번은 가히 혁명적인 시대의 첫 비극에, 다른 한 번은 장차의 새로운 혁명이 일어나기 이전의 비극인 막간극에 등장한다고 덧붙이는 걸 잊어먹었다. (...)

사람들의 제각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의적으로, 즉 자신이 선택한 상황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각자의 의지, 의식, 반성, 그리고 인식과 무관하게 제각자의 목전에 놓인, 주어진, 그리고 전수된 상황하에서 만든다.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살아있지만 잠자는 사람을 짓누르는 악몽처럼  살아 있는 사람들의 두뇌에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이걸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각기 자기 자신과 사물을 변혁하고 여지껏 실존한 적이 없었던 것을 만들어 내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바로 이때, 이런 혁명적 위기의, 분기의 시기에 각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기겁하고 주눅이 들어 그들이 하려고 하는 일을 대신해 줄 수 있는 과거의 망령들을 주문하고, 이들에게서 각자 자신의 명분과 전투에 나서는 아군의 구호와 의상을 빌리고,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저런 유서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분장과 차용한 대사로 세계사의 새로운 장면을 연출하는 막간극에 등장한다."(뷔르메르 18일, 1장)

 

이건 번역이 아니라 오늘날의 상황 이해와 서술을 고민하면서 재독한 읽기의 한 버전이다.

 

<뷔르메르 18일>이란 막간극의 다시 막간극이 되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4.

무엇이 문제인가?

 

die organische Gestalt, worin der reagierende Geist der Nation es bedrohte”(뷔르메르 18, 1)

 [반프롤레타리아 세력으로 집합된 의회라는] 유기적인 형태 안에서 [프롤레타리아]를 위협하는 [민족]국가라는 공동체의 반동하는 정신

 

'반동의 유기적인 형태'의 실체는 오늘날 어떤 모습인가?

 

<흑 대 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저자는 시민사회를 오늘날의 '반동의 유기적인 형태'로 보는 것 같다.

 

독일기관사 노조 GDL의 철도부분 사상 최장기 파업돌입을 놓고 "탈선"(Entgleisung)이라는 비난이 팽배하다. 따로 노는 나쁜놈들이란다. 파리의 프롤레타리아와 같이 고립되고 있다.

 

GDL 파업의 쟁점은 정치적이다. 기관사노조가 승무원의 이익을 대변할 권리가 있는가가 쟁점이다. 대표(Vertretung) 혹은 대의(Repräsentation)의 문제다.

 

과거 철도부문 민영화를 지지하고 경영측이 제공한 제반 특혜 수혜자였으며 경영측의 하수인이란 비난을 받았던 철도부문 대노조 EVG(전신 트란스넷 노조)와 소노조 GDL간의 싸움이기도 하다. 

 

시민사회가 GDL에 고개를 돌리고 있다. ["Hart aber Fair"라는 정치 토크쇼에서 노조 출신 사민당 사무총장 야스민 파히미 (Yasmin Fahimi)가 GDL의 입장을 반박하는 논리를 전개하자 모더레이터가 "어떤 경영진 대표도 그렇게 정교하게 경영측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했을 거"라고 꼬집을 정도로 반GDL 여론이 형성되어 있다.]

 

5.

말의 문제인가? 

"[...] 새로운 언어를 습득한지 얼마 안되는 초보자는 [새로운 언어에 머물지 않고] 항상 모국어로 다시 내려가는 번역을 일삼는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 안에서 모국어에 대한 아무런 회상 없이 움직이고 그에게 유전된 언어를 잊어버려야만 새로운 언어의 정신을 자기 것으로 만들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생산할 수 있다."(뷔르메르 18일,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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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 대 황 – 적대적 계급 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재번역 후기

1.

이 글을 재번역하게 된 동기가 이 글이 운동 서술에 시사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있다는 점은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 글의 들어가는 부분과 나오는 부분이 불가항력적인,  알 수 없는 힘과의 대립을 전제하는 비극을 극(劇/드라마)의 형식이 아니라 서사의 형식으로 서술한다고 지적했다.

 

2.

들어가는 부분과 나오는 부분 외의 서술은 면밀한 분석이다. 홍콩 우산운동의 역학과 역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좌파의 고무된 분석, 예컨대 참세상이 번역소개한 미셸 첸(Michelle Chen)의 글 “10,000 Workers Strike in Support of Hong Kong's Protests”(홍콩 민주화 시위, 중국이 진짜 걱정하는 것은? [해외]포스트 식민주의와 권위적 자본주의 사이에서 시작된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에 예리한 반론을 제기한다.
 
3.

그러나 들어가는 부분과 나오는 부분의 서술에서는 문제점을 느낀다. 특히 이 부분에서 그런다.  

“The breaking of the status quo cuts a glimmer of possibility in a horizon that had appeared before as nothing but sheer doom. There is an opening.”(현 상태의 파괴는 온통 파멸만이 존재하는 지평선에 한 가닥의 가능성이란 칼집을 낼 것이다.  여기에 [꽉 막힌 공간의 탈출구처럼] 트임이 있다.)

 

“트임”(opening)에서 즉각 연상되는 건 하이데거의 “Lichtung”이다. Lichtung은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나무가 빽빽히 들어 선 남독 숲을 홀로 산책하다 보면 갑자기 나오는,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열린 터다. 실존주의의 영웅주의적인 사조가 깃들어 있는 표현이다.

 

이런 영웅주의적 사조는 에른스트 융어(Ernst Jünger)의 “Waldgang”(산행)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 저서에서  재앙에 처하고 재앙 안에서 존재해야 하는 인류의 비극에 맞서 사회를 떠나 “산행”하는 소수의 자주적인 사유에 미래를 건다.

 

필자 “An American ultra”가 영웅주의적으로 독존한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의 사유가 들어가는 부분과 나오는 부분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영웅주의적인 사유는 결국 낭만주의로 귀결된다. “And, even if it keeps raining for years to come, people have umbrellas.” (그리고 우기가 수년 간 계속될지라도 사람들에겐 우산이 있다.) 이건 낭만의 극치다.  “비가 다년간 올지라도”라는 말은 표현상으로는 천진난만(harmlos)하나 이게 실질적으로 서민에게 의미하는 것은 비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배고품과 아사와 병들어 죽기와 이주노동자 신세와 전쟁을 의미한다. 여기에 한 치의 낭만도 있을 수 없다.

 

차라리 모든 “덮개”를 거부하는 리어 왕 처럼 행동하는 게 더 낫다.

 

그리고 “우산”이 불편하다. 앞으로 다가올 재앙에 대비해서 각자가 알아서 준비하는 것을 상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상황은 우산이 있는 자와 없는 자로 갈릴 것이다. 서구의 복지국가는 과거  “큰 우산”을 만들어 그러저럭 살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이젠 알아서들 우산을 마련하라고 독촉한다. 예컨대 독일의 아젠다 2010 개[악]혁은 법적연금을 무너뜨리고 이른바 ‘3축 노후대책’이란 미명아래 알아서들 사적연금 및 부동산 투기 등으로 보충된 우산을 마련하라고 독촉했다. 소득이 높은 사람들은 더 좋은 우산을 장만할 수 있게 되었지만, 저소득 층은 갖고 있는 우산마저 빼앗기게 되었다.

 

우산이 있다고 하는데 대다수는 이제 우산이 없다. 비가 오면 속수무책이다. 공산주의 현실 외 대책이 없다.

 

4.

번역에도 문제가 있다. “nationalism”을 민족주의로 번역하지만 어떻게 번역해야 하는가 줄곧 고민한다.  한국산 쌀로 지은 밥 맛이 태국산 쌀로 지은 밥 맛과 다르듯이 서구에서 말하는 민족주의가 한반도에서 말하는 민족주의와 맛이 같을 수가 없다.  근데 문제는 세상 어디가나 똑 같은 맛인 맥도널드의 햄버거를 먹고 자란 사람들이 “민족주의”하면 그게 무슨 지독한 청국장 냄새라도 풍기는듯이 코를 막고 얼굴을 돌린다.

 

그리고 지명 표기도 어렵다. 왕각이 옳은지 몽콕이 옳은지 모르겠다. 중국말을 모르고 더구나 관둥 사투리를 모르면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말이 다르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지만 어떤 표기가 과연 피지배자의 말인지 분간할 수 있는 능력은 갖추지 못한 채 지명을 한문에 기댄 한글로 표기했다.

 

5.

관둥어 사투리로 흘러간 사랑을 노래하는 소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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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 7

태풍

 

첨사저(尖沙咀/침사추이)는 현재 점거된 상태지만 우익이 강세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바리케이드는 쇼핑몰 밖에 세워졌고,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우산 아래 웅크려 앉아 운동의 미래를 토론하고 있다. 어렴풋한 유람선의 형체가 이들을 뒤덮고 있다. 우파는 유람선이 단지 중국본토 자본가들로만 꽉 차 있다는 허구적인 주장을 일삼는데 좌파는 말할 능력을 상실한 듯 말이 없다. 광둥어로 사랑노래를 부르는 소녀와 어설픈 기타반주를 했던 남자친구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어쩜 어딘가에서 관광 안내용 간이시설과 교통 표지판으로 바리케이드를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노래가 아무런 흔적도 없이 그저 사라진 것 만은 아니다. 소녀의 노래는 이제 변형되어 도시 전체로 확산되고 있다. 사람들이 갈망하는 것의 형체가 되어 빈 버스들과 비에 젖은 정부 청사들을 도배하고 있다.  

 


태풍이 왔다. 물결이 격렬하게 출렁거린다. 저 물결에 유람선이 이제 얼마나 더 오랫동안 이 도시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무관하다는 식으로 (above the city) 꿈쩍하지 않고 있을 수 있는지 불분명하다. 중국본토와 그 외 지역에서 온 유람선의 부유한 단골손님들은 모습을 나타내지는 않지만 아마 경찰의 저지선과 배의 흰 벽 뒤에서 조용히 안식하고 있을 것이다. 부두가 점거된다면 항구가 다음 차례가 될까? 예의라는 홍콩의 비참한 노예근성, 우산운동의 근시안적 요구, 그리고 씁쓸한 포퓰리즘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우산운동 이후의 홍콩은 이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현재의 상황을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은 이제 더 이상 없다. 이 사실이야말로 운동이 비록 패배로 끝날지라도 거기에 잠재력이 있다는 확신을 심어준다.  

 

태풍은 속성상 혼돈의 존재다. 이 섬에 물이 범람하면 상황은 이전보다 더 악화된 거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혼란에는 또한 일정한 약속이 있다. 현 상태의 파괴는 온통 파멸만이 존재하는 [지평선 위에 한 가닥의 가능성의 불빛을 켤 것이다.] 지평선에 한 가닥의 가능성이란 칼집을 낼 것이다. 여기에 [꽉 막힌 공간의 탈출구처럼] 트임이 있다. 어쩜 사람들은 [폭]우에도 불구하고 항해하는 법을 익히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우기가 수년 간 계속될지라도 사람들에겐 우산이 있다.

 

- 한 미국극단주의자와 몇몇 익명의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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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 6

이것은 “민주주의”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홍콩에서 패배가 결코 불가피한 건 아니다. 홍콩의 젊은이들은, 오늘날 세계 각처의 젊은이들과 거의 마찬가지로, 그들의 미래가 [기회주의자들에 의해서] 약탈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 가고 있는 중이며, 그리고 그들이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서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떻게 반격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모종의 이해에 도달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 작은 도시국가가 거대한 본토 이웃으로1 점점 더 통합되어짐에 따라서 홍콩에서는 참으로 중국이 “미래”가 되었다. 이는 청년세대 사이에 팽배한 암울한 미래에 대한 [추상적인/보편적인] 감각이 중국이야말로  다가오는 파멸의 근원이라는 직감으로 번역된다는 걸 의미한다.

 

[우산]운동의 무기력(inactivity)에 좌절하면서도 스스로 아무것도 추진할 수 없는 고립과 무능력을 느끼기만 하는 젊은 시위대가 많다. 특히 분노와 헌신으로 [무장된] 젊은 사람들이 경향적으로 보다 더 많이 밖으로 나오는 밤에 이 사실을 검증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시위대들이 서로 만나고 그들의 활동을 조직화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은 현재 없다. 더 중요한 점은, 이런 시위대들조차 경향적으로 그들의 불만을 “민주주의”와 “보통선거”라는 언어로 번역해서 [분출하는데 머무르고], 경계를 넘어 주강삼각주 공장 노동자들에게서 동맹자를 찾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 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범민주파가 [차용하고 유통시킨 우산운동 해석에 대한] 공식 버전이 [원문 terminology를 독어 Sprachreglung으로 번역하여 한글로 재번역] 운동[해석]을 지배하는 언어(lingua franca/프랑크 제국에서 통용되었던 공통어/제국의 언어/국제공통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우산운동 자체는 [이 운동의 즉자적인 요소가 되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유 “민주주의”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것임은 분명하다. 시위대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토론들은 대부분 즉각 서로 전혀 다른 지형으로 껑충 뛰어 올라 [갈라지는게] 사실이다. [운동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앵무새처럼 [운동의 공식] 요구항목을 줄줄 읽어 내려가면서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계층과 다양한 연령을 막론하고  믿을 수 없는 정도로 일관된다. 반면 그들이 이러한 것들을 왜 원하는가 다그치면, 시위대 대다수는 즉시 단순히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경제적인 문제의 [지형으로] 껑충 뛰어 올라 대답한다.


사람들은 천정부지의 임대료와 비인간적 수준의 불평등, 식료품비와 대중교통비의 인플레이션, 그리고 사회밑바닥에 있는 방대한 사회적 부류들을 그저 무시하기만 하는 정부의 경향을 개탄한다. 자유발언대에 선 어는 한 사람은 “왜 홍콩에 부자는 한 줌이고 가난한 사람은 그리 많은가?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없기 때문이다!”며 – 말할 나위없이 잘못된 주장이지만 – [홍콩에서는] 통념이 된 주장을 했다. 많은 이들은 – 자유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그리스 또는 미국과 같은 곳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지독하게 빈곤한 의식으로 – 그들 자신의 지도자들을 “선출”할 수 있게 되면 저들이 인플레이션, 빈곤, 그리고 금융투기 등 광범위하게 퍼진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까닭에 민주주의는 일반 투표 제도의 현실적인 적용 보다는 어떻게든 모든 사회적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구하기 힘든 만병통치약을 지적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An older protestor has his picture taken in front of the barricades. Visible at his right is the last character in the word for "Democracy."

(중년의 한 남성(원래 홍콩 출신이지만 수십 년 동안 해외에서 살다가 친척을 방문하기 위해 돌아온)은 코즈웨이 베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사진 촬영을 했다. 그의 좌측에는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다. (그의 뒤에는 “레프티스트 프릭스”에 반대하자고 고무하는 다른 포스터가 있다.) 그는 시위대가 교통과 사회 질서를 방해하는 데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지만 경찰이 시위대에 대해 너무 많은 최루가스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지금 1989년 스타일의 유혈사태가 뒤따를 것이라고 걱정한다. ) [블로거 나오의 보충설명]

 

그러나 대중추수주의자(populist)의 환상과 민주주의자의 환상 둘 다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상실할 수 있다. 점령운동이 보다 포괄적인 주민층으로 확산되면서 발생한 신가담자들이 [그들의 즉자적인 요구를 범민주파 지도자들의 lingua franca로 왜곡하기 보다는 즉자적인 모양 그대로 혹은 즉자대자적으로 완성된 모습으로] 그들 자신의 요구를 바리케이드로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HKFS 대표단을 포함한  자유주의 사상에 기반한 학생들 일부는 이런 상황에 점점 더 불만스러워 하고 사람들이 보통선거 요구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독려하는 안내문을 붙이고 다니고 있다. [이런 부류 중에서]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우산]운동이 “혼란”스러워지고 선거개혁을 위해 시위하기 보다는 학생들을 공격하는 경찰에 맞서 투쟁하기 위해서 등장한 신시위대의 많은 이들에 의해서 “희석”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새로운 요구들이 우산운동을 선거에 관한 요구의 범위를 넘어서도록 밀어붙이면서 실제로 이 운동을 다시 점화할 가능성이 또한 없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운동을 발의한 계급 계층에서 멀리 떨어진 계급 계층이 운동에 합류하기 시작하는 조짐은 현재진행중인 운동이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국면에 처해 있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운동을 희석하기 보다는 운동의 파워를 증폭시켜 주는 것이다.

 

 

A poster requesting that people stay "on point" and that new protestors stop demanding things beyond electoral reform

(시위대들의 일관적인 요구(“on point”)와 우산운동의 신가담자들이 선거개혁을 넘어서 다른 사항을 요구하는 걸 중단하라고 촉구하는 벽보)

 

[범민주파의] 운동기반을 불안정하게 하는(volatile) 특유한 잠재력은 증가하는 노동자들의 참여에 있다. 상대적으로 작은 홍콩노총은 총파업을 요구에 따라 10월 1일 (중국 “국경일”) 노동자 일부가 파업에 나서기 시작했다.2 최초 항만파업에 참가했던 항만 노동자들 중 여러 명이 이번 주 초 시위에 출현하여 가시적으로 시위대를 지지했다. 제2의 항만파업은 “불가능”할 거라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거리 점거 운동이 계속 성장하면서, 특히 왕각과 같이 주거지가 더 많은 지역에서 다른 노동자들이 운동에 합류할 개연성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점령운동이 확대되어 총파업으로 귀결될 경우 이것은 우산운동의 배타적인 정치적 요구와 [대중추수목적으로] 우산운동에 가담한 포퓰리스트의 [우산운동을 우익화하려는] 추론에 반론을 제기하면서 양자의 기반을 본질적으로 뒤흔드는 추가효과가 있다. 예를 들면, 항만 노동자들이 2번째 파업을 개시한다면, 노동자의 일상과 젊은 세대의 미래를 강탈하는데 있어서의 리자청과 다른 홍콩 자본가들의 역할을 부인할 수가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홍콩 내부의 갈등을 외부화하여 본토 중국인들과의 갈등으로 이전하는 건 전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홍콩 내부의 적대적 계급대립은 점점 더 부정할 수 없게 될 것이며 시위는 최저강도의 저항이라는 경로에서 벗어나오게 강제되어 보다 위험하지만 동시에 보다 희망적인 미래로 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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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7년 홍콩 반환과 아시아 금융위기와 동시에 일어난 이후 중국은 아무런 합리성이 없는 주장에 의해서 경체침체의 시대와 연계되었다. 금융위기가 홍콩의 경제침체의 발단이 되었지만 말이다. 텍스트로 돌아가기
  2. 이건 애매모호하다. “1만 파업 노동자”라는 주장에 어떤 현실적인 근거가 있든 없든, 암무튼 국경일은 전국적인 휴일이어서 노동자들은 꼭 일하러 갈 필요가 없는 날이다. 쉬는 날이었기 때문에, 휴일을 받은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일하러 가는 대신 점거운동에 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파업”이 아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재번역: "흑대황 - 적대적 계급대립과 홍콩의 우산운동 - 5

제 2 부: 현재


우산을 들다1


앞의 항만파업은 “우산 운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례가 된다. 현재 점거시위대가 의심할 나위 없이 똑같은 딜레마에 직면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파업노동자들처럼 시민사회에 어필하느냐  아니면 경제활동 방해를 심화하느냐라는 문제를 놓고 교착 상태에 빠질 위험에 처해 있다. 운동의 내부분열이 이미 이를 뚜렷하게 한다. 보다 젊은 시위대의 대부분은 “양애어평화점령중환“ 지도부 그룹을 전면 거부한다. 진건민 교수는 양진영(梁振英/렁춘잉) 행정장관이 사퇴하면 봉쇄를 끝내자고 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런가하면 아무런 재산상의 손실도 발생해서는 안되고 경찰이 공격할지라도 맞서지 말 것을 요구하면서 민주주의, 보통 선거, 그리고 비폭력에 관한 통속적인 말을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자들이 다름아닌 바로 저 젊은 사람들이다.


 Another poster encouraging people to use non-violence, and to fight only for democracy (but not literally)

(비폭력을 행사하고 민주주의를 위해서만 싸우자고 고무하는 벽보. 싸움은 말 그대로의 싸움이 아니란다.)

 

이런 노예적인 “예의” 정신에는 시위대가 사각지대에 표류하게 하는 위험이 있다. 운동이 사각지대에 표류하게 되면 시위대는 운동에 힘을 실어 줄 경제활동 방해 수준을 높일 수 없는 상황에 묶일 것이다. 다수가 사유 재산을 해치는 것을 [올바른] 시민에 어울리지 않는(uncivil) 행위라고 보기 때문에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행동절제(inaction)는 정부로 하여금 쉽게 대책을 마련할 수 있게 해준다. 시위가 [제풀에 지쳐] 스스로 수그러질 때가지 방관하든지 아니면 행정장관의 사임과 같은 보다 작은 양보를 [떼주는 유화정책으로] 누그러뜨리든지 여유있게 선택을 할 수 있다. 다수가 이 난제를 모르는 건 아니지만 [속수무책이다.] 이들이 이 난제를 두려워하면서 또 똑같이 두려워하는 것은 (소문이 자자하듯이) 폭력배 선동대들이2 북경의 지령에 따라 상황을 악화시켜 중국의 군대가 홍콩에 진주하는데 손쉬운 구실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모순이 발생한다. 시위대 안에 잠재하는 민족주의는 다음과 같은 상황을 야기한다. 즉 경찰은 “홍콩인”이기 때문에 동맹자이자 미래의 시위 가담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로 간주되는 반면, 군사 개입은, 설령 경찰과 전혀 다르지 않는 전술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무조건(universally) 거부된다.  그 이유는 군부대가 중국본토인들로 구성되기 때문에 북경의 통제를 받는 홍콩정치인들의 2차적인 통솔권이 아니라 북경의 직접적 통솔권 아래 있게 된다는 데 있다. 시위대는 여기서 어떠한 종류의 논리적인 모순도 인식하지 못한다. [그래서] 다수가 경찰과 싸우거나 체포에 저항하는 것은 역효과를 낳는다는 입장에 확고부동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사람들이 군대에 저항하기 위해 폭력적인 전술을 사용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화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스트의 관점은 „인민“(the people) 내부에 내재하는 적대적 대립의 인식을 차단한다. 이 관점은 모든 충돌의 근원을 외부화하여 외부그룹의 문제로 뒤바꾸기 때문이다. 외부그룹이 인종에 의하여 규정되든 아니면 민족적 소속에(national origin) 의하여 또는 단순히 이민자 신분에 의하여 규정되든 아무튼 그렇다. 이런 포퓰리즘이 지배적이면 시위대 측에서 발생하는 폭동, 재산 파괴, 그리고 나아가 “무례함”까지 “외부인”의 - 이 경우에는 중국본토인의 – 해서는 안되는 소행으로 인식되고 배제될 것이다. 이런 주장이 보편적인 진리로 여겨질 때까지 그럴 것이다.  반면 파업은 [양애어화평점령중환 운동과 같은 대중운동과 달리]  즉각  어느 한 주어진 사회에 내재하는 적대적 대립를 가시화하기 때문에 포퓰리스트의 논리를 깨는 훨씬 더 큰 경향적 속성이 있다.

 

A barricade in Mong Kok.

(왕각의 한 바리케이드)

Abandoned public buses plastered with protestors' messages.

(시위대의 메시지로 도배되어 방치된 대중버스. 이 사진 중앙 윗쪽에 있는 문구 민주장(民主牆)에 주의하라. 이 문구는 1979-1981년 중국 민주화 운동의 서단민주장의 민장을 지시하고 있다.)

 

Another barricade, this time with two cars parked in front to ensure that the police cannot easily break through. One car has had its tires removed in order to prevent it from being easily pushed away.

(왕각의 또 다른 바리케이드. 바리케이드 앞으로 경찰이 쉽게 진입할 수 없도록  2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지난 3일 꼭두새벽에 추가된 차량 1대는 쉽게 치울 수 없도록 바퀴를 아예 빼놓았다. 그때까지애도 점거자들은 구급차와 소방차가 지나가야 할 때마다 바리케이드를 열어 주었다. 그러나 지난 2일 금종에서 경찰이 시위대가 구급차를 위해 바리케이드를 열자 이를 이용해 점거 공간에 진입해 고무탄과 최루가스를 투입했다. 이 사건 이후 시위대는 2번째 차량을 추가했다.) [이 설명은 울트라스의 글을 재게재한 블로거 나오의 추가설명임]

 


현재진행중인 운동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몇 개 안된다. 이 외의 많은 노선은 패배로 이어질 것이다. 시위대의 전술적인 정체(停滯)는 정부로 하여금 그들이 제풀에 죽어 수그러질 때까지 팔장끼고 기다리게 하는 여유를 허용한다. 시위대가 스스로 선택한 행동절제가 [시간이 지나면서] 보다 평상인에 가까운 참가자들의 눈 앞에서는 정당성을 상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최근에 시위에 가담한 자들 사이에  운동 전체가 앞으로 나아가는 실질적인 힘이 없이 그저  표류하는 것 같다는 불평이 자자하다. [운동이 이렇게 지속된다면] 최선의 경우, 저항운동이 시민사회를 위해 무대에 올라온 척박한 스펙타클로서의 “사회 운동”으로 떨어져 패배할 수도 있다.  장차의 NGO 지도자와  정치인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덮치도록 풀어지기 이전에 잉태되어 자라나는 시민사회의 스펙타클. 최악의 경우엔, 홍콩인들이 스스로 어떠한 통제도 할 수 없는 제도 안에서, 인플레이션, 불평등, 그리고 궁핍화 등 똑같은 문제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는 체제 안에서 그저 참여란 게 허용되는 보통투표권을 얻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3.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의 운동의 패배는 또한 어느 한 우익의 부활 형식을 취할 위험이 있다. 극우가 시위를 정체에서 빠져나오게 하고  다른 쪽으로 비트는 힘을 발휘하는 역량이 있는 세력이 되는 경우,  운동 전체는 민족주의의 경로로 계속해서 빠져 들어갈 것이다. 현재 “봉기들의 시대”에서 우익은 사람들을, 이들 다수가 열혈공민과 같은 그룹의 인종차별주의적 정치에 동의하든 그러지 않든 이와 무관하게, 자기편으로 끌어당기는 역량이 있다. 열혈공민의 경우, 초기엔 [우산]운동 내에서 [속은 다르지만] 평범한 모습을 취하고 „물밑작업“에 유리하게 공공연하게 출현하는 것을 자제하고 운동 지도부 “좌빨꼰대“(leftist pricks)4의 행동자제를 공격하는 전단지와 말들을 뿌리고 다녔다. 그리고 불과 얼마 전에야 비로서 왕각에서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려는 “청색 리본”(우산운동에 반대하는 시민, 북경에 의해서 조직된 것으로 전해진다)의 시도로부터 바리케이드를 사수하려는 조직원들에 의하여 가시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 상황은 극우가 서구 성향의 자본가 동맹을 위한 살인청부업자가 되었던 우크라이나에서의 경험과의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우울하게 만드는 유사성이다. 

A small group of Civic Passion members defending a barricade from being dismantled by the police.

다른 시위대 소속원들이 바리케이드를 철거하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는 열혈공민 소그룹 멤버들. 극우가 항상 이런 역할을 한 것 아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행동들로 우익은  공론장에서의 존재력(presence)을 강화했다. 그들이 노랑 셔츠에 쓰여있는 영문 „프로레타리아“에 주의하라.  이른바 „제3의 위치“ 그룹에 의한 좌파 용어의 일반적인 남용과 맥을 같이 한다.

 

Translation: Don't trust leftist pricks Be vigilant [lest they ask us] to disperse Remember that we are [doing] civil disobedience, not having a Party!!! What we want is TRUE UNIVERSAL SUFFRAGE!!! No karaoke No group photos We still haven't won No leaders No small-group discussion

물신좌교(勿信左膠) – 좌빨을 믿지말라 
제방산수(提防散水) – 해산요청을 경계하라
기주아지계공민항명(記住我地係公民抗命) 오계개(唔係開) party!!! – 
시민불복종하러 왔지 놀러온게 아니다!!!
아지계요(我地係要) 진보선(真普選) – 우린 참다운 보통선거를 원한다. 

노래방 반대
단체 촬영 반대
우리는 아직 승리하지 않았다.
지도자 반대
소규모 토론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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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하 이 글 마지막 부분에 있는 정보의 대부분은 인터뷰를 지속 진행하고 [우산운동에] 관여하고 있는 다양한 정치 분파의 상태를 지속 조사하는 과정에서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직접 들은 이야기에 근거해서 작성한 이야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우리와 접촉하고 있는데 이들 일부는 초기 학생파과에 관여했다. 다른 일부는 경찰의 진압 후에 비로서 참가하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생생한 정보의 성격때문에 아래 글에서는 자주 인터뷰에서 발췌한 내용과 함께 링크나 인용출처없이 정보가 제공될 것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 홍콩에서, 조직된 폭력배 다수가 이젠 „애국적“이다. 이들은 홍콩 정부와 협력하며 베이징의 이익에 봉사한다. 그렇다고 하지만 그게 다 맞는 말은 아니다. 베이징이 후원하는 폭력배 선동대에 관한 소문은 왕각의 폭력배들이 시위대와 협력하여 바리케이드를 세우고 있다는 보도와 맞닥뜨리고 있다.텍스트로 돌아가기
  3. 미래 언젠가에 건설된 홍콩의 민주주의가 궁극적으로 개혁주의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식을 통해 적대적 계급대립이 분명하게 양극화되는 정치적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뭔가 있을 법 하다. - 이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레프트 21과 같은 몇몇 그룹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망상을 좀 더 지속하고 적대적 대립의 통찰을 무한정 연기시키려는 근본적으로 솔직하지 못한 입장이다. 대개 “적당한 시간”으로 행동을 연기하는 것은 어떠한 행동도 거부하는 방법일 뿐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4. 원어는 „左膠“(좌교). 광둥어로 „좌익 페니스“라는 의미. (대체로 표면에 나타나지 않은) 소규모 좌파 그룹들 보다 범민주파 지도부를 지시하는 말. 膠(교)의 사전적 의미는 플라스틱. 그러나 좃대의 의미로도 사용. 이유는 膠와 페니스의 보다 흔한 은어인 鳩([비둘기] 구)의 발음상의 유사성 때문임. “좌익 좃대“(leftist pricks)란 욕은 하루 이틀 만에 운동권 내부에 폭넓은 퍼져서 홍콩의 모든 주요 점거 지역에서 누차 들을 수 있음. 좌파들까지도 이 욕을 범민주파를 부르기에 적당하고 간략한 욕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말의 사용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속이 쉽게 뒤틀리는 일부 민감한 좌파들은 틀림없이 [이 별것 아닌 모욕에] 삐칠 것이지만 말이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즉 극우가 운동 전반에서 점점 더 수용되는 슬로건을 주조하고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할 수 있는 위상을 점령했다는 데 있다. 이런 슬로건이 (또는 미적 감각이, 또는 전술이, 또는 그 어떤 무엇이) 일반화되면, 이는 우익을 사실상의 지도적 위치에 앉히는 것이다.텍스트로 돌아가기

2014/11/02 엘리아스 카네티-파리의 고통

"Das niedrigste Gefühl, das ich kenne, ist der Abscheu vor Unterdrückten, so als hätte man aus ihren Eigenschaften ihre Getretenheit zu rechtfertigen. Von diesem Gefühl sind sehr edle und gerechte Philosophen nicht frei." (Elias Canetti, Die Fliegenpein, Zürich 1992, S.7)

 

내가 접해 본 감정 중에서 가장 저질적인 감정은 억눌린 자들을 대할 때 [그들이 마치 태어날 때부터 무슨 병이나 또는 더러운 것이 있는 것처럼] 그들에게서 눈을 돌리며 불쾌해 하는 감정이다. 마치 그들의 속성에 근거해서 그들의 짓밟힌 모습을 정당화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매우 고귀하고 공의로운 철학자들이 이런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엘리아스 카네티, 파리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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