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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5/01/16
    2005년 살아있는 지금
    평화의 별

2005년 살아있는 지금

타협과 변화에 대한 단상

 

내 지인들은 나에게 타협이 부족함을 늘 질책한다. 심지어는 고지식하다는 평까지

나는 고루한 선비마냥 내 자리를 고수하고 한가지에만 골몰하는 갑갑한 시대의 화석같은

그런 느낌까지 준다. 그들이 말하는 융통성 혹은 타협에 대한 몇가지 오해를

정리해볼까 한다.

 

 

타협과 변화가 혼용되고 있다. 그들은 타협을

변화에 대한 기본적인 자세와 헷갈리고 있으며 나는 그것에 대해 적극적인 내 생각을

표현하고 싶다.

 

 

타협은

분명 '악'이다.

타협은 본질적 가치를 해치고 위협하는

뿌리를 흔드는 표류하는 행위이다.

타협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선에서

적과 나의 애매한 전선에서

무뎌져버린 생각으로

가장 절실한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이다.

 

타협을 하기 위해서는

내 속에 품어온 오랜시간과 고뇌와 실천으로 다져진

본질적 가치에 대해 회의해야 한다.

그것이 열매를 맺기도 전에...

타협은 쉬워지는 길이다.

 

 

변화는

분명 '필요'이다.

변화는 본질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뿌리를 더욱 다져 심게 하기 위한

그래서 나아갈 곳이 있는 사람에게만 유용한

좌표를 만드는 일이다.  

변화는 진보를 위해 잘 다듬어야 하는 기회와 노고이다.

 

 

변화를 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에 대한 애정어린 비판이 전제되어야 한다.

비판은 회의와 다르다.

회의가 기준선을 바꾸는 전복적인 행위임에 반해

비판은 모든 가치를 재고하기 위해 더디가는 길이다.

변화는 어려워지는 길이다.

 

 

쉽고 어려움중에 어느것이 가깝냐고 묻는다면

나는 쉬운것이 더 가깝고 끌린다고 말하겠다.

그러나 어느 것이 더 값지냐는 대답은

시간속에 나의 결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또 개인의, 한 사람만의 것일 때

우리는 그 연구자의 길에서

그가 변화를 할지 타협을 할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

박사과정을 진학하는 것도

유학을 가는 것도

모두가 자신이 고통의 자양분을 통해 이룩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배고픈 혹은 외로운 길의 결과가

안정과 평온이라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

물론 어려움이야 쉽게 말할 수 없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앞서

타협을 못하는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한 고집쟁이가 아닌

진정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

라면김치상과 수라상의 차이가 아닌

나를 끊임없이 포기않게 해주는 연료이자 엔진인

그 가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오로지 나의 것으로만 전가되는

지금의 구조, 분위기, 환경등에 대해서

호락호락하게 수긍하지만은 않아야 한다는 자각도

 

변명이 길어졌지만

 

나는 또 처음을 생각한다.

시대에 뒤떨어진 향수도 아닌

내가 출발 한 곳을 더듬어

내가 갈곳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나의

살아있는 현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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