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지난 5월 1일 SK 정문.
정유탑에 올라간 울산건설플랜트노조 농성자들을 취재하기 위해 SK 안으로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울산노동뉴스에서 왔습니다."
정문 경비실 관계자는 대뜸 "아, 기자시군요? 차는 갖고 오셨죠?" 하며 반갑게 맞는다.
여느 회사 들어갈 때 받지 못했던 태도였다. 기자가 좋긴 좋군...

 

그런데 이 관계자, 어디론가 확인차 전화를 하더니 잠시 후 "울산노동뉴스라는 곳은 등록이 안돼 있어서 출입이 어렵겠답니다. 죄송합니다." 한다.
순간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누구랑 통화해야 합니까? 홍보과죠? 홍보과장님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순순히 전화번호를 일러준다. 바로 전화했다.

"왜 못들어갑니까?" 다짜고짜 물었다.


"인터넷신문은 취재협조 대상으로 등록이 안돼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터넷신문이 취재차 공장 안으로 들어온 적도 없습니다." 홍보과장의 답변.

"올해부터 신문법이 바뀌어서 인터넷신문도 종이신문과 똑같이 언론 지위를 갖게 된 건 아시죠? 그런데 이렇게 취재 못하게 해도 되는 겁니까?"
홍보과장 왈, "다만 위에서 정해진대로 할 뿐"이란다.


5월 3일 울산노동사무소.
건설플랜트노조와 12개 업체와의 두번째 노사교섭을 취재하러 갔다.

 

정문을 막아선 경찰과 노동사무소 안으로 들어가려는 노조 조합원 가족들 사이에 격한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뒷문으로 들어가 노조 측 교섭위원들을 잠시 만나고 교섭 무산에 대한 노동부의 입장을 듣기 위해 근로감독과장을 찾았다.

 

2층 근로감독관실. 3층에 가보란다.
3층에 갔더니 바로 2층에 내려갔다고 한다.
다시 2층. 어디 있는지 모르겠단다.
그러더니 "전화로 사전에 취재 약속을 해놓지도 않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취재하겠다는 게 어디 있느냐?"며 거세게 항의한다.

 

명백한 취재 거부에 명백한 취재 방해다.
만약 KBS나 MBC였다면 저렇게 나올 수 있었을까?
조중동이라면 전화 한 통화에도 현재 돌아가는 정황과 이후 전망까지 스스로 알아서 아주 상세하게 얘기하지 않았을까?

 

인터넷신문 서프라이즈가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뷰하는 시대에, '성역이 없다'는 언론이 제4권력 운운하는 마당에 무슨 청와대도 아닌 SK 한 공장에 취재차 들어가는 것조차 가로막히고 울산노동사무소의 과장 한명 만나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어디 언론이라고 얘기하기도 부끄럽다.

 

새삼 인터넷신문, 그것도 노동자의 입장에 서서 사건의 진실을 보도하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여 출발한 신생 노동자언론의 한계를 절감한다.
기존 주류 언론이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뻗어놓은 그 촘촘한 정보망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게 아니고, 그 무게와 힘이 녹녹치 않음도 또한 느낀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울산노동뉴스가 지역의 무시 못할 영향력을 갖는 노동자언론으로 성장하는 길은 오로지 울산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울산노동뉴스가 자신의 신문으로 받아들여지는 데 달려 있을 것이다.

그 때까지는 온갖 종류의 취재 거부와 취재 방해에 맞서 언론의 이름으로 '투쟁'할 수밖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5/06 09:34 2005/05/06 09:34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plus/trackback/145
무명씨 2005/05/06 10:49 URL EDIT REPLY
이런 이런. 힘내서 싸워나가시길. 맘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