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기

<현장에서 미래를> 2006년 4월호 원고

 

5.31 지방선거와 울산지역 노동정치운동

 


동구, 북구 '수성' 가능한가

 

울산은 노동자도시다. 경제활동인구 51만명, 이 가운데 37만이 노동자다. 100인 이상 사업체에 13만, 10~99인 사업체에 18만, 10인 미만 사업체에 6만이 일하고 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있는 노동자는 9만여명, 1/4 가까운 조직율이다. 나머지 28만명의 미조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거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 서비스 부문의 불안정노동자들이다.

 

노동자도시답게 울산에서는 지난 98년과 2002년 두차례 연속 동구와 북구청장에 민주노동당 후보가 당선됐다. 민노당은 2002년 광역시의원과 구의원에 대거 진출함으로써 한나라당에 이어 울산지역 제2당으로 급부상했고 2004년 총선에서는 북구와 전국구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

 

그러나 2005년 10월 치러진 북구 국회의원재선거에서는 한나라당후보에 패배했다. 민주노총 강승규 비리사건에다 민노당 후보의 '흠'(2000년 현대차노조 광고비 비리사건과 비정규직 도입에 합의한 당사자)이 겹쳤고 북구 음식물자원화시설 설치과정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과 집권세력 민노당 사이에 폭발했던 갈등 때문이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이 세번째 동.북구 수성에 성공할 지 누구도 쉽게 장담할 수 없는 분위기다. 이갑용 동구청장과 이상범 북구청장이 공무원노조 파업 참가자에 대한 징계를 거부한 '죄'로 직무정지에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하면서 '무게' 있는 노동자후보를 내세우기 어려워진 데다가 98년이나 2002년과는 정세가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98년에는 정리해고에 대한 대중의 위기감을 노동자후보에 대한 지지로 쉽게 연결시킬 수 있었다. 2002년에는 2000년 북구 총선 패배를 설욕해야 한다는 대중 정서가 워낙 강했다. 그러나 2006년, 노동운동은 '총체적 위기'에 몰려 있고 민노당에 대한 대중의 기대감은 예전같지 않다.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노동자니까 노동자후보 찍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본들 같은 노동자 표 땡기기가 만만치 않다.

 

노동자 가정에서 남편인 노동자는 민노당후보를 찍지만 아내는 한나라당후보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2004년 총선 때 현대차노조에서 퇴근하는 조합원들에게 일일이 장미꽃을 나눠줬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꽃을 안겨주면서 평상시 못했던 진지한 '대화'도 나누고 '표 단속'을 하라는 것이었다. 효과는 있었다. 그러나 2005년 북구 재선거에서 노동자 남편들은 아내들 표심을 붙잡는 데 실패했다.

 

2002년 동구 단체장선거는 노동 대 자본의 대결구도가 분명했고 북구 또한 한나라당 대 민노당, 보수 대 진보, 친자본 대 노동의 대결이었다. 2006년 동구, "이번만큼은 노동계에 구청을 내주지 않겠다"는 정몽준 의원을 정점으로 하는 현대중공업 자본진영의 움직임에 맞서 노동진영이 처한 상황은 2002년과 많이 다르다. 우선, 현대중공업노조가 '협력적 노사관계'를 표방하고 있어 민노당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 현장 민주세력들은 민노당내 계파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래저래 어려운 조건이다. 북구 또한 유권자의 다수인 현대차 노동자들이 현대차 출신이 아닌 '잘 모르는' 구청장후보에게 얼마나 표를 던질지, 더구나 아내의 표 단속까지 스스로 나설지 의문이다.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10.26 재선거, 민주노총후보 등록을 거부한 민노당 국회의원후보

 

2005년 10.26 북구재선거를 앞두고 민노당울산시당은 내부 경선을 치렀다. 민주노총울산본부는 민노당 내부경선에 앞서 10월 1일부터 4일까지 민주노총후보를 모집했으나 민노당 내부경선에 나선 정창윤, 정갑득 두 후보는 둘 다 민주노총후보로 등록하지 않았다.

 

당시 민주노총울산본부 이장우 정치위원장은 2005년 10월 6일 임시대의원대회에 '울산북구재선거 민주노총후보 미등록사태'라는 보고서를 제출하고 이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장우 정치위원장은 "울산지역 민주노조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노총 조합원이 민주노총후보가 되는 것을 포기하고 민주노동당으로 개별등록한 것은 노동자후보가 노동계급의 대표후보가 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의 계급성 강화의 의미를 상실했다"며 "정치의 문제는 이미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각 정파의 입장에 의해 정리되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대표조직인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에 의해 조절될 수 없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만을 통한 노동자정치세력화를 규정하고 있으면서 선거권과 피선거권은 민주노동당 당원의 전제를 강제하고 있다"며 "이는 대다수가 당원이 아닌 조합원들의 자유로운 정치활동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지적했다.

 

또 "일각에서는 민주노총후보로 등록하고 후보검증과정과 대의기구의 동의를 거친 후 또다시 민주노동당에서 동일한 과정을 거쳐 후보경선으로 가야 하는 번거로움과 민주노총 대의기구의 결의가 시당의 당원이 결정하는 것에 유리한 영향을 미치기보다 오히려 민주노총과 당의 긴장관계를 형성시켜 당내 경선에서 불리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후보자들이 계급의 대표가 되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실현하거나 민주노동당의 계급성 강화에 기여하기보다는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는 대중정당에 부합하는 후보가 되고 자신의 당선을 더 지향하기 때문에 민주노총 후보등록 무산사태가 일어났다"고 비판했다.

 

결국 민노당울산시당은 2005년 10월 10일 당내경선을 통해 정갑득후보를 선출했다. 이후 민노당은 민주노총울산본부에 정갑득후보를 민주노총지지후보로 결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민주노총울산본부는 10월 14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정후보를 민주노총지지후보로 결정했다.

 


민주노총울산본부 정치방침 폐기와 민노당 당내경선

 

민주노총울산본부는 2002년 조합원총투표와 같은 방식의 '2006년 지방선거 정치방침안'을 대의원대회에 상정했으나 2005년 10월 6일, 21일, 11월 8일, 12월 15일 네차례나 성원미달로 대의원대회가 유회돼 처리하지 못하다가 12월 19일 속개된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 정치방침안을 최종폐기시켰다.

 

민노당울산시당은 2005년 12월 13일부터 '예비후보자검증위원회'를 가동해 민노당예비후보자에 대한 인터넷검증과 면접 및 필답고사를 진행했다. 예비후보자는 모두 83명이었으나 후보검증과정에서 절반 이상이 중도포기해 38명이 예비후보에 등록했다. 인터넷검증과정에서 예비후보자 5명에 대한 제보와 투서가 있었다. 민노당울산시당은 2006년 2월 9일부터 13일까지 인터넷투표를 통해 구청장후보와 시,군,구의원후보 등 31명을 선출했다. 시장후보와 울주군수, 중구청장후보는 등록한 후보자가 없어 재등록을 받기로 했다. 한편 민주노총울산본부는 민노당예비경선에 앞서 1월 17일 정치위원회를 열고 24명의 민주노총추천후보를 확정했다.

 

민노당울산시당의 후보경선과정에서 동구1선거구의 구의원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김아무개씨가 당내경선에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 최아무개 당원에게 수백만원에 달하는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나 민노당울산시당 김광식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문제를 일으킨 김아무개씨는 민노당 당내경선에서 떨어진 후 모정당 시의원후보에 다시 출마를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전진하는노동자회 전명환 연대사업담당은 3월 15일 울산노동뉴스 월례토론회에서 "민주노동당에서 노동자적 원칙이 사라지면서 권력과 기득권을 좇아가는 '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며 "365일 당간부를 검증하고 당지도부를 통제, 소환하는 시스템을 강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울산시장후보는 조합원총투표로

 

민노당울산시당은 3월 6일 조합원총투표와 같은 대규모 예비경선으로 울산시장후보를 선출하자고 민주노총울산본부에 제안했다. '당 중심'으로 지방선거를 치를 것을 결정한 바 있는 민노당이 이처럼 태도를 바꾼 것은 답보상태인 당 지지율과 노동계 전반의 위기상황,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선거분위기 등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노총울산본부는 3월 13일 운영위원회에서 조합원총투표를 통해 울산시장후보를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조합원총투표에서 당선된 시장후보는 민주노총추천후보의 자격을 갖게 되고 민노당울산시당의 당원투표를 한차례 더 거치게 되지만 사실상 민노당 울산시장후보로 나서게 된다. 이 결정으로 민노당원이 아닌 조합원의 피선거권이 보장됐다. 민노당도 이에 대해 '당원이 아닌 조합원이 경선에 참여해 추천후보로 결정되는 경우 중앙위원회의 당내 투표 피선거권을 득하면 하자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민노당 당규 제15조 2항 '중앙위원회가 추천한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 지방의회의원 후보자의 경우에는 14조 1항 1호(당권을 가진 당원)에 해당되지 않더라도 피선거권을 가질 수 있다'는 조항에 따른 것이다. 민주노총울산본부는 또 이후 선거시기마다 조합원총투표 등에 대한 논란이 재발하지 않게끔 '이번 시장후보 선출방식을 차기 국회의원이나 지방선거 등 민주노동당 공직후보 선출시에도 상호 협의해 지속적으로 추진한다'고 못을 박았다.

 

다음날 3월 14일 민주노총울산본부는 정기대의원대회에서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 선출 관련 정치방침 건'을 다뤄 '조합원 총투표'안을 참석 대의원들의 만장일치 찬성으로 확정지었다. 민주노총울산본부는 이날 정기대의원대회에서 확정된 '조합원총투표를 통한 후보선출방식'은 향후 국회의원 선거나 차기 지방선거에 있어서도 일관된 원칙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창현 대 노옥희

 

민주노총울산본부는 3월 21일 제3차 정치위원회를 열어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4월 17일부터 19일까지 조합원총투표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울산시장후보를 선출하는 조합원총투표에는 김창현 민노당 전사무총장과 노옥희 울산시교육위원이 후보로 나섰다.

 

김창현 민노당 전사무총장은 2월 27일 부인 이영순 국회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울산시장후보 예비경선 출마를 선언하고 3월 3일 울산시선관위에 예비후보 등록까지 마쳤다.

 

노옥희 교육위원은 3월 22일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위원직을 사퇴하고 23일 울산시장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노옥희후보를 추대한 '노동자, 민중의 희망을 만들어가는 후보추대모임'은 3월 16일 전교조울산지부에 노옥희 교육위원이 울산시장후보로 나설 수 있도록 조직적인 결정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전교조울산지부는 2월 16일 대의원대회에서 오는 8월 실시되는 울산시교육위원 후보자로 노옥희후보를 이미 결정해놓고 있는 상태였는데 이 요청을 받아들여 3월 21일 대의원대회에서 노옥희 교육위원의 울산시장후보 출마를 승인했다.

 

민주노총과 민노당의 '협의추대'까지 이야기가 나왔던 김창현후보는 노옥희후보의 출마선언으로 복병을 만난 셈이 됐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을 준비하고 그 투쟁 한가운데서 동고동락하며 노동자의 벗으로, 스승으로 함께 해온 노옥희 동지"(추대모임 제안서)가 4만5천 민주노총울산본부 조합원들에게 갖는 상징성과 득표력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무게중심을 낮춘 사회당

 

사회당울산시위원회는 2월 10일 당원대회를 열어 재창당운동본부를 결성했다. 현직 국회의원이 있거나 1천명 이상 당원이 존재하는 광역시도위원회 5곳 이상이 있어야 정당등록이 가능하도록 정당법이 바뀐 데 따른 것이다. 사회당은 이 법안이 국민의 참정권을 가로막고 정치사상의 자유를 탄압하며 신생정치세력의 진입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바 있다. 그러나 2년 넘게 계류중인 헌법소원만 기다리다가는 5.31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재창당'으로 가닥을 잡은 것이다.

 

사회당은 98년 청년진보당이라는 이름으로 창당한 이후 '정치적 효과'를 거두는 것을 목표로 하는 선거운동을 펼쳐왔는데 이번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거'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즉 기존 선거와 달리 대중의 삶의 공간에 밀접하게 결합해 다양한 사회주의 정치의제를 마련하고 이를 적극 선전선동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당은 시장이나 기초단체장보다는 시,군,구의원 등에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사회당은 "차이가 차별이 되고, 그 차별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문제와 권리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선거를 통해 이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고 해결하는 계기로 삼고 이를 위해 앞장서겠다"고 밝히고 "사회양극화도 단순한 불평등의 문제가 아니라 700만명이 넘는 절대빈곤층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고 확보하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로 보고 급진적인 대안을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을 지지한다'는 배타적 정치방침안 때문에 사회당은 투쟁의 현장에서도 일상적인 배제와 차별에 시달려왔다"며 "진보진영 안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는 정치세력이 등장해 선의의 경쟁을 벌이면서 상호발전하는 것이 필요하고 사회당 말고 다른 진보정당들이 더 많이 생겨야 한다"는 입장이다.

 

사회당의 '사회주의'가 대중의 삶의 공간으로 무게중심을 낮춘 것만은 분명해 보이지만 여전히 그 사회주의가 어떤 사회주의인지 '내용'이 빈약하다. "장애인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포함하는 사회적 배제와 차별의 철폐" 이상으로 사회당의 사회주의는 구체화되고 있지 못하다. 사회당이 울산에서 단 한석이라도 구의회나 시의회 진출에 성공한다면 사회당의 사회주의가 의회 안에서 어떻게 '실험'되는지 두고 볼 일이다.

 


총파업과 지방선거

 

민주노총은 3월 8일 기자회견을 열어 4월 3일부터 14일까지 전조직이 연맹단위로 순환하는 파업을 벌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비정규 관련 법안 처리가 또 연기돼도 순환파업은 계속 진행할 것이며 한미FTA본협상이 진행될 오는 6월 미국원정투쟁단을 조직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러나 총파업의 투쟁 결의를 모아야 할 3월 16일 38차 임시대의원대회가 성원미달로 무산되면서 '비정규직 철폐, 노사관계 로드맵 분쇄 총파업'이 힘있게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민주노총의 4~5월투쟁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 지방선거는 직접 영향을 받는다. 민노당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현장 분위기는 영 안뜨고 노조비리다 당내경선 비리다 대의원대회 무산이다 자꾸 '악재'만 쌓이는데 선거승리의 유일한 무기인 '계급투표'가 제대로 이뤄질 턱이 없다. 현장에서부터 총파업을 확실하게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유일한 길이다. 민노당이든 사회당이든 국민들에게 표를 더 많이 얻기 위해 '노동'으로부터 자꾸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안'으로 보다 넓고 깊게 들어와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6/03/23 10:40 2006/03/23 10:40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plus/trackback/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