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읽기
먹을거리에 대한 단상
아이들의 식탁 : 학교급식의 오늘과 미래 ①-생명밥상운동을 시작하자

▲ 지난 5월 18일 지역산 친환경 농수축산물로 학교급식재료를 사용할 것을 촉구하는 학교급식법개정과조례제정을위한울산연대와 친환경 농민단체 대표들

 

‘노로 바이러스’가 전국의 급식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시민단체들의 급식운동 연합체인 ‘학교급식법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그간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급식법 개정이 CJ가 합법적으로(?) 퍼트린 노로 바이러스에 의해 외견상 우연치 않게, 그것도 아주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것은 필연이다! 그간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여러 조항이나 문구들이 급식을 둘러싸서 회자되어오지 않았더라면 조항하나 문구하나 만드는데도 많은 시간을 허비했을 것이니까...

이번에 바뀐 급식법의 주된 골자는 위탁의 직영전환이라는 직영 원칙, 학교급식지원센터 설치 근거 규정, 특히 식중독 예방을 위한 각종 벌칙의 강화이다. 법과 제도가 현실의 반영이긴 하지만 현실을 이끌어가는 선도적인 반영이 아니라, 마지못해 쫓아가는 후진적인 반영임은 여기서도 드러난다. 수도권의 학교들을 제외하고는 이미 대부분이 직영급식을 하고 있으며, 안전한 급식을 위한 지원센터건립은 이미 일부 자치체에서 시행하고 있으며 식중독 예방은 오히려 만시지탄의 사안이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인 울산이 개정된 급식법에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가를 실제로 살펴보자. 직영원칙으로 효과를 보는가? 고등학교 몇 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이미 직영급식을 하고 있다. 식중독은 어떤가? 위탁과는 달리 직영의 경우, 담당 영양사 선생님들이나 조리사들은 노이로제가 걸릴 만큼 식중독에 대한 예방인식이 높으며, 학교 운영위원들의 수시 검수 또한 그의 예방에 한몫하고 있다. 이미 법적 보호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급식 지원센터의 경우만 다른 얘기를 할 수 있는데, 현재의 현실은 최저가 낙찰이란 원칙 앞에서 자신들의 이윤보존이 최대의 목표인 급식 납품업체들끼리의 시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므로 결국, 현재의 급식법을 가지고 우리가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은 급식지원센터의 설립근거 규정밖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와는 다른 줄기로 다른 방식으로 급식에 접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각 지역별로 급식지원조례라는 밑으로부터의 조례제정을 통해 실제적으로 급식이 생명의 밥상이 되도록 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현재 울산의 경우도 ‘조례제정을 위한 울산 학교급식연대’라는 급식운동을 위한 연합체가 시민사회 단체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중이며, 이 활동의 결과로 광역시 차원의 조례도 이미 제정되었으며, 각 기초 자치체에서 이를 근거로 시행규칙을 제정한 곳까지 있다. 또한 06년 2학기부터는 북구청 관내의 7개 초등교와 각1개의 중 고등학교가 시와 구의 예산지원 아래 급식지원이 이뤄질 예정이다.(구체적인 수치와 함께 내용상으로는 얼마나 부실한 지는 후술하겠다)

이상과 같이 급식을 둘러싸고 ‘어떻게 하면 말썽이 생기지 않게 안전하게 급식이 이뤄지게 할 것인가’ 하는 국가 및 관의 노선과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밥상이 생명밥상이 되게 할 것인가’하는 노선이 뒤엉켜 있는 것이 현재의 급식지형이다.

한 쪽이 행정 편의적이고 형식적이며 비용발생을 안하려는 것이라면 다른 한 쪽은 내용적이고 실질적이며 제대로 된 비용으로 제대로 된 내용을 만들려는 것이다.

문제는 결국 어느 노선인가가 아니라 아이들의 밥상을 생명의 밥상으로 바꿔내는 일이며, 이를 위한 내용과 형식의 문제인 것이다. 어차피 법과 제도가 후진적인 것이라면, 먼저 선도적으로 내용을 채워나가고 사후적으로 이를 법과 제도로 보장받도록 하는 것이 합법칙적인 수순일 테니까...

생명밥상의 요체

생명밥상의 요체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답하는 데서부터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책들을 모색해보자. 간단히 대답할 수는 없는 문제이다. 대략적으로 얘기하면 다음과 같은 철학적 인식을 기본으로 까는 일일 것이다.

첫째는, 먹는 데 상하를 두지 말자는 공동체 정신이고, 둘째는 건강하고 안전한 소비를 위해서는 건강한 친환경적 생산이 있어야 한다는 생태적 인식이며, 셋째는 먹는 것도 교육의 대상이 되는 숭고한 행위이며, 먹는 것이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명 운동적 의식이고, 마지막으로 먹는 것마저 외국 식량자본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민족의식과 식량주권 의식이다.

위와 같은 철학적 인식들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올바른 식품선택이란 주제나 ‘아이에게 만이라도 좋은 것을 먹이자’는 소박하면서도 절박한 소망에만 한정되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지만 운동은 소망에서부터 이뤄진다는 상식을 따라가 보자.

‘아이에게 만이라도 좋은 것을 먹이자’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 왜 소박한 소망이 되었는가? 왜 절박한 소망이 되었는가? 이미 세상이 자본에 완전 종속당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미 대중이란 것이 사회내의 의식 있는 주체가 아니라 단순한 소비의 주체로 완전히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범위에서부터 지역적 범위에 이르기까지 거대자본이 생산과 유통을 장악하여, GMO(유전자 조작)에다가 각종 성장 호르몬제, 화학비료, 항생제를 사용한 농,축,수산물이 고비용의 단계를 거쳐 대형 수퍼마켙 등에서 넘치는 세상에서, 그리고 그런 시장에서는 대중이란 것이 소비의 주체 이외에는 어떤 위상도 점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에서는 먹을거리라는 문제가 이미 삶의 질과는 관계없이 단순히 생명의 유지에 필요한 칼로리의 분배 정도로의 위상밖에는 점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아이들의 식단을 한번 보라! (한달에 한번씩 식단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주식인 쌀을 무농약 이상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제2의 식량인 밀(빵,면,밀이 첨가된 제품들-된장,고추장,간장과 만두나 수제비나 핫도그 등 냉동식품들)을 우리나라산 밀가루들로 사용하고 있는가? 각종 양념류에 화학첨가물이 안 들어가고 있는가? 채소나 과일이 무농약 이상의 제품인가? 축산물의 경우 항생제나 발색제가 안 들어갔는가? 아마도 이중 하나도 해당 안된 제품을 먹고 있는 학교는 없을 것이다.

농약 묻은 쌀과 방부제 덩어리인 수입밀로 만든 빵과 면, 그리고 농약 투성이인 채소와 화학첨가물 범벅인 각종 양념으로 무친 반찬들과 농약과 방부제로 범벅된 중국산 고추나 콩으로 만든 장류와 항생제 덩어리인 돈가스를 맛있다고 먹고 있는 아이들을 상상해보라! 소아 비만이나 아토피등 면역력체계의 이상들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 아이들의 먹을거리와 상관관계가 깊음은 이미 대중매체의 단골메뉴가 되어있다. 항생제에 찌든 육류를 적어도 일주일에 세 번이상을 먹고(칼로리 구성상 어쩔 수 없다고 한다) 각종 방부제와 발색제 및 화학 첨가물을 수시로 섭취하고도 면역체계가 정상이라면 오히려 그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눈에 보이는 머리카락이나 이물질에는 그리 광분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반생명적인 것들에는 무심한 것이 현재 우리의 주소인 것이다.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역순환형 생산-소비체계 ‘지산지소’(地産地消)

그러면 위와 같은 소박한 소망을 이룰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친환경 유기농으로만 먹이면 되는가? 맞는 말이긴 하지만 생산뿐만 아니라 유통과 비용 등의 문제가 만만하지 않다. 일단 구조적으로 애기한다면,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가 있다. 먹을거리들을 자본이 주도하는 시장에 의존하지 않으면 된다.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온갖 반생명적인 치장을 하고 우리를 유혹하는 먹을거리 시장에 의존하는 것을 탈피하면 된다. 국적도 모르고 생산자도 모르며 어떤 경로로 만들어지고 어떤 경로로 유통되는 지도 모르는 수많은 물건들 앞에서 단지 그것이 상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바꾸면 된다. 아니면 시장에 등장하는 먹을거리관련 상품들을 모두 생태적인 것들로만 채우던지...

이 꿈과 같은 일이 과연 가능할까?
어떻게?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라는 신석기유물이념으로? 생산과 소비의 조건이 달라졌는데 어찌 과거의 이념에 종속당할 것인가? 우리는 우리의 길을 찾아야한다. 현재의 생산력의 조건상 해결책은 ‘지산지소’(地産地消-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역 순환형 생산-소비체계)가 될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지역의 생산자들이 학교의 물량에 맞춰 계획생산을 친환경적으로 한다. 그리고 그 지역산 친환경 생산물들을 보관 이송하기위한 공공적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것이며 각 학교의 음식물쓰레기를 유기농 생산의 밑거름으로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역에서 생산되지 않는 것은 최 근접 지역에서 유통하여 손실을 방지하는 것이다. 궁극에는 식단 위주의 유통이 아니라, 지역생산물 위주의 식단으로 바뀌면서 생산자들을 확대하고 땅과 환경을 온전히 살려내는 것이다. 이를 이루려면 생산 자본과 싸워야하고, 유통자본과 싸우면서 그들에 종속되지 않아야 하며, 그간의 식습관이나 식문화와도 싸워야한다.

적어도 우리가 땅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이윤에 눈이 벌게지지만 않는다면, 먹는 것 갖고는 절대로 장난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불문율로만 인식이 된다면, 그래서 생산과 유통과 소비가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만 않는다면 가능할 수 있다. 현재 이를 실현할 무대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이들의 밥상-급식이다. 안정적 재생산의 관점에서는 어느 정도의 규모가 필수적인데 규모가 적정하고, 초기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으며, 공적영역의 장점으로 인해 자본의 공격에 상대적으로 유리하고, 사회적 파급력 또한 크기 때문이다.

‘지산지소’는 이미 서구에서도 local food system이라는 개념으로 새로운 활로로서 모색되고 있는 중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의 산업화 과정에서 모든 것이 대규모화되면서 농업 역시 대농이나 기업농 위주의 정책이 득세를 이뤘었지만, 그런 자본의 흐름이 남긴 것은 황폐화되는 땅과 환경이고, 비만과 면역체계의 혼란으로 인한 보건의료비의 증가와 사회복지의 축소이며, 갈수록 좁아드는 소생산자의 입지로 인한 지역경제의 불균형 및 몰락일 뿐이었다. 공산품과 달리 먹을거리는 생산지에서 소비지까지의 거리가 그 상품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거리가 멀수록 유통기간도 길어지고, 그에 따라 보존기간을 늘리기 위한 각종 처리 공정들이 먹을거리의 질을 필연적으로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것이 죽은 밥상을 차지하는 주요 요소들이기 때문에, 그들도 ‘지산지소’를 택하여 먹을거리를 ‘농업생산’의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건강, 환경, 교육, 사회복지, 지역 경제등과 같은 다층다각적인 목표로서 접근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비만이나 아토피가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지출 하는가에 대한 그들의 대안인 셈이다.

그러므로 학교급식은 단순히 농약과 각종 화학 첨가물 및 항생제와 유전자 조작 등에서 자유로워지자는 네거티브적이고 다분히 개인적인 개념에서 나오는 안전한 식품선택이라는 좁은 틀을 뛰어넘어 급식을 계기로 생산과 유통및 소비의 새로운 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며 이를 통해 생명밥상을 모색해 보고자하는 운동인 것이다.

-다음에는 울산 및 타 지역의 실태와 더불어 예측 가능한 미래를 가늠해본다.

김형근(우리밀살리기운동 울산본부 사무국장)

울산노동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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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20 17:49 2006/08/2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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