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10/19 09:12
Filed Under 이미지적 인간

합숙이 끝난 일요일 오후 느즈막히 지리산을 올랐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 수는 없는 법... 게다가 가을을 좀 앓고 있던 나에게는 정신과적 용어로 '홍수법'으로의 치료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다. 가을을 앓고 있으니 가을을 지나치게(?) 느끼도록 하여 가을에 대한 자극을 완화시키는 치료법말이다.

 

월요일의 회의와 농성이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그 가을 하늘에 안 올라 갈 수가 없었다.

 

대원사에서 조금 더 들어간 새내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가서 다시 그 길을 되집어 내려왔다. 1박 2일의 일정이었지만 저녁, 밤, 새벽, 그리고 아침과 오후까지 가을 지리산의 정취를 흠뻑 느낄수 있었다.

 

오르기 시작한 것이 2시가 조금 넘은 시간... 천왕봉을 거쳐 장터목에 도착한 것이 밤 9시였다. 헤드 랜턴이 무색할 정도로 밝은 달 때문에 그 밤의 지리산이 너무도 좋았다.

 

눈이 부실정도로 밝은 달이었다. 토끼가 달 전체를 물청소를 한거 같기도 하고... 하늘에 백열전구가 달려 있는것도 같았다. 달빛에 선명하게 맺어지는 내 그림자가 얼마나 낯설었는지 모른다. 달빛에도 그림자가 맺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눈으로 확인한거 같았다.

 

게다가 도착한 천왕봉에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야간산행을 하는 와중에도 사람을 한명도 보지 못했다. 마치 지리산 전체에 사람이라고는 없는거 같았다. 온전히... 정말 지리산에 온전히 안긴 느낌이었다.) 항상 여러 사람이 바글바글한 정상이었는데... 그 밤에 쌩쌩부는 바람에... 하늘에서 쏟아질거 같은 별빛에 입에 문 담배가 타 들어가는 소리까지 들리는 천왕봉이었다.

 

서로의 그늘에 어둠을 품으며... 그렇게 지리산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1. 해질녘 동쪽에 떠오른 보름달... 카메라의 노출을 쓸 줄 몰라서 정말로 안타까웠다. 무지개빛으로 변해가는 가을 하늘이었다.

 


 

 



#2. 해가 넘어가던 시간 동쪽의 하늘은 이랬다. 서로가 서로의 그늘로 어둠을 만들어가는 지리산...

 


 

#3. 어둠이 물든 나뭇잎에 걸려 있는 달... 정말... 서럽도록 밝았다.


 

#4. 그날 본 달이다. 내 감흥의 천만분의 일도 표현이 안 되겠지만... 노출이고 모고 하나도 손 안대고 찍어도 이렇게 밝다.

 


 

#5. 찍힌 천왕봉이라는 비석(?) 왼쪽에 지리산의 밤의 깊이가 느껴진다. 뒤에 검은색 천을 댄게 절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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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9 09:12 2005/10/1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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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ong 2005/10/19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아하는 산에 가서 좋았겠다. 그치만 아무리 충동적으로 간 거라도 너나 정수 중 하나라도 메시지 하나쯤은 남겨두지 그랬니. 영문도 모르고 전화통 붙들고 앉아있어야 하는 일이 오죽 답답하면 집행위원 일정표를 다 만들었을까. 담부터는 연락하구가~

  2. 해미 2005/10/19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콩/ 핫! 그랬군요. 일요일 오후나 월요일 오전에 연구소에서 연락이 올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네요. 근데 무슨일로 전화했었어요? 월욜 회의에서도 아무 얘기가 없었는데... ㅡ.,ㅜ 영문도 모르고 전화통 붙들고 있기... 제가 무쟈게 싫어하는 일인데 미안하네요.

  3. 미류 2005/10/19 21: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컷 약오르고 간다~ 쳇 ㅋㅋ

  4. 해미 2005/10/20 0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류/ 조금 더 약이 오를거다. ㅋㅋ 사진이 많고, 불질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리 나눠서 올리기루 했거덩...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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