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10/12 01:08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모 조직의 기관지에 쓴 글이다. 계속된 글 쓰기에 지쳐 결국에 내지르는 글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글 쓰는걸 대단히 싫어하는데... 힘들어서 더 이상은 쓰기가 싫어졌다. 

 

오늘은 일요일이구 더군다나 날씨도 죽인단 말이닷! 

 

이 가을 찐~~한 멜로영화인 너는 내 운명이나 사랑니도 보고 싶은데 도통 언제 볼 수 있을지 각도 안나오고, 앞머리가 너무 길어서 입술에 닿을 지경인데 미장원도 못 가구 어두 컴컴한 방에 틀어박혀서 계속 컴터로 글만 써 댔더니만 거의 사회부적응자가 된 느낌이다. ㅠㅠ

 

그나마 오늘 저녁에 미류를 만나기로 했으니 다행이다. 안 그러면 매~~우 우울해졌을거 같다.

 

이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당분간... 꼭 필요한게 아니면 청탁을 거절하는 방법을 배워야 겠다는 것을... 그것이 결국 이렇게 날아다니는 글을 쓰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그런데 문득 어제 운영위 후 뒷풀이에서 집짱이 한 말이 생각났다. '넌 핸드폰 번호를 바꾸지 않는 이상에는 결국 다 쓸 성격이야!' 두둥~

 

갑자기 하늘이 노랗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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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일의 폭스바겐사의 노사 합의안이 화제가 되었다. 독일 볼프스부르크 공장 노동자 들이 1주일에 6.2시간 더 일하고 봉급은 20% 적게 받는 대신 신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독일 볼프스부르크 공장에서 생산키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합의 후 노동조합은 ‘회사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이야기했다. 회사의 순이익이 떨어지고 있는 마당이니 노동조합이 양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었다.


이 기사와 함께 주요 경제지를 장식한 기사가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우리나라 자본들의 동유럽 진출 소식이었다. 서유럽에 비해 인건비가 1/5에 불과하고 노동시간은 주당 10시간 이상 많고, 무관세 혜택까지 있으니 자본의 입장에서는 천국에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사는 이렇게 끝났다.  


‘동유럽도 최근 인건비 상승 속도가 빨라져 저임금 매력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서 5~10년 뒤면 우크라이나나 중앙아시아로 공장을 다시 이전해야 할지 모른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말 끔찍하기 짝이 없다. 좀 더 싼 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한 자본의 행보가 전 세계를 떠돌고 있는 것이다. 흡혈귀처럼 세계 곳곳을 휘젓고 다니며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고 더 이상 빨아먹을게 없으면 이동한다. 보다 나은 조건에 있는 노동자들에게는 이렇게 무한한 착취의 시장이 있음을 빌미로 하여 자발적으로 노동강도 강화에 순응할 것을 강제한다. 고용불안이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문제인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대공장 정규직에게는 ‘노동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덮어 씌우고, 고용불안과 부당한 임금체계를 가지고 파업도 못 하고 잔업·특근으로 삶을 연명하게 만들었다. 4인 가족 최저생계비를 조금 넘을 정도인 기본급을 가지고는 애들 학원비를 보탤 수 없고, 보험료도 낼 수 없다. 국가에서 교육이나 의료를 책임져주는 것도 아니니 벌 수 있을 때 벌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면서 ‘그래도 너희는 비정규직보다는 낫지 않느냐?’라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만을 강조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해외공장에서 신제품을 생산하기로 했다는 둥, 해외 공장이 생산성이 좋으면 국내는 문 닫고 철수 할 수도 있다는 둥 엄포를 놓기도 한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빈곤에 시달리는 많은 민중들에 비하면 그래도 낫다고 얘기한다.


그렇다. 정규직은 많은 빈민들보다는 그리고 많은 비정규직보다는 훨씬 살기가 낫다. 하지만 이런 ‘차이’의 논리 속에 ‘자본’은 어디 있는가?


사회양극화를 이야기하지만 계급간의 양극화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는 이야기되지만 그리고 해외공장과 국내공장의 생산성의 차이는 이야기되지만 자본과 노동자의 커져만 가는 ‘삶’의 차이는 이야기되지 않는다. 노동자 계급을 이간질 시키는 자본에게 놀아나는 것은 우리의 목을 스스로 죄이는 것이다. 자본이 그토록 강조하는 ‘차이’는 노동유연화를 추구한 저들의 신자유주의 전략 때문임이 이야기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나은 ‘정규직’이 참으라는 것이다.


이제 상대적으로 나은 ‘자본’보고 참으라고, 양보 좀 하라고 하자. 그들이 얘기하는 상생은 결국 노동자의 일방적인 희생과 같은 말임을 우리는 IMF 구조조정을 통해 이미 확인하지 않았는가? 순이익율이 떨어져도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이 온전히 노동자들의 것이 되지 않는다. 높은 임금 때문에 죽을 맛이라고는 하지만 ‘적자’가 나는 것은 아니다. 파이는 나날이 커져가고 있지만 결코 우리의 삶은 좋아지지 않았다.


물론, 이러한 요구를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바뀌어야 한다. 훼손된 활동가들에 대한 조합원의 신뢰를 회복해야 할 것이고 많은 이데올로기적 장벽을 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연대를 위한 사회적 의제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해외 공장에 물량 뺏기면 우리의 고용이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장난질에 놀아나지 않기 위한 국제 연대와 조직화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정말 할 일이 많고 어렵다. 그러나 다시 한번 명심하자. 노동강도의 기준이 ‘노동자의 삶’이 되지 않는 이상, 자본은 끊임없이 어디선가 착취를 계속 할 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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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2 01:08 2005/10/12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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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재유 2005/10/15 15: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토요일이구 날씨도 죽이는데 잘 쉬고 계신지... 글을 떠나서 말입니다. ㅎㅎㅎ...^^

  2. 해미 2005/10/18 14: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재유/ 다 떠나서 중산리에서 '공부(!)'를 열심히 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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