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on 2005/10/10 14:15
Filed Under 손가락 수다방

대학신문에 쓴 글... 원래 내가 썼던 몇 개의 글과 연구소 집짱동지의 글이 짬뽕되어 섞여 있다. 이젠 글을 그만 써야 겠다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무슨 기자도 아니고 하루에 한두개씩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쓰는 최근의 상황을 겪으며 글 쓰는 것을 정리해야 겠다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글을 쓰다 보니... 글이 가벼워진다는 아이구 동지의 말에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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즈음 연일 근로복지공단이 뉴스를 뿌리고 있다. 방용석 이사장은 “근로빈곤층에 대한 복지서비스를 확대”하겠다며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입장임을 이야기하고 다니고 있고, ‘찾아가는 서비스’를 시행한다면서 고객만족을 외치고 있고, 장애를 딛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재활상담을 하고 있는 노동자를 모델로 내세워 공익광고도 찍었다.


한편 얼마 전에는 인천의 동광기연의 재해 노동자가 5월 경인지사농성 후 심사청구 역시 기각되고, 농성 관련자는 고소를 당했다. 어디 이뿐인가. 7월 통영지사에서는, 잘못된 업무처리를 항의하는 민원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시정하겠다고 서면합의까지 했음에도, 6일 만에 합의를 번복하고 민원인을 폭행 등으로 고소하였다. 같은 달 서울북부지사는 공정한 재해 조사를 약속하고, 이를 이행치 않아 항의하는 민원인에게 “산업쓰레기”라는 충격적인 언사를 하기까지 했다. 9월에는 대학병원 재해 간호사의 요양심사 과정에서 “노조 때문에 어렵다”는 망발을 하기도 했다. 하이텍알씨디코리아 노동자들의 감시와 차별로 인한 집단 정신질환을 산재로 인정하지 않아 140여일이 넘게 그 앞에 천막이 깔려있고, 그 사이 경찰기동대를 불러 집회 대오를 폭력 연행하고 최근에는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단식중이던 60여명의 동지들을 한꺼번에 연행하기도 했고, 국감에서는 ‘내 책임 아니오’를 되풀이 하며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거기다가 민원인에 대해 상시적으로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감시해 왔음이 밝혀졌고, 금속노조를 상대로 3억원의 구상권을 청구하기도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한편에서는 ‘고객 100번 기절시키기’라는 친절 가이드북을 발행하면서 한편에서는 ‘민원인 100번 때려잡기’ 라는 집단과격민원대응 지침(올해 5월 9일에 공단 이사장이 직접 지시한 것이다)을 이행하는 정신분열적이며 다중인격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를 탄압한 것은 비단 최근의 일은 아니다. 10여년의 역사를 가진 근로복지공단은 이름과 맞지 않게 자본의 편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왔다.




 


근로복지공단 홈페이지의 첫 화면은 파란, 너무나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젊은 남성과 아이의 환한 미소와 '근로자의 행복과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근로복지공단이 함께 합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근로복지공단은 노동자의 행복을 위하기는커녕 건강권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노조탄압을 하는 악질 자본복지공단일 뿐이다. 작년, 공단과 노동부는 근골격계 인정기준과 요양업무처리지침으로 산재에 대한 인정도 치료도 어렵게 만드는 정책들을 적극 도입해서 본분을 망각한 정책들을 남발했다. 거기다가 한술 더 떠 도덕적 해이 운운하며 가짜 환자 신고 포상금 제도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거짓말쟁이로 매도하고 노동재해를 인정받기 위한 노동자들의 정당한 투쟁을 '과격집단민원'으로 정의하고 관할 경찰서와의 유기적 협조체제 하에 CCTV와 카메라를 가지고 고소·고발을 미리 준비하기로 했다. 이게 정녕 근로자의 행복을 위한다는 공단이란 말인가?


탄압의 역사, 10년


1991년 원진레이온에서 8년간 일한 뒤 1983년 퇴사한 김봉환씨는 이황화탄소 중독의 직업병 인정을 요구하다 사망했다. 당시 정부는 직업병 인정을 거부하고 있었다. 정부의 이런 방침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근로복지공단은 늦장 인정, 불승인, 강제 종결을 남발하면서 노동자들을 탄압해 왔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1999년 157일의 근로복지공단 본부 앞 농성투쟁을 하게 만든 이상관 사건이었다. 허리가 아파 산재 요양 중이던 고 이상관 동지는 근로복지공단의 강제 종결을 비관하여 세상을 저버렸다. 당시 27살의 젊은 노동자가 죽음을 택한 것은 진행되는 증상에 대해 ‘퇴행성’이라는 이유로 입원연기신청을 기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근로복지공단은 ‘자살’에 대한 책임을 방기한 체 유족급여조차 지급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또한 97년 휴업급여를 중지 당한 박광제씨가 자살을 했고, 2000년에는 현대중공업의 하청노동자가 산재 불승인을 비관하여 자살하였고, 2003년에는 우울증으로 자살한 현대 설비의 이종만씨에 대한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 신청을 기각했다.


끊임없이 탄압하라! 그리고 관리하라!


이러한 근로복지공단의 만행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다. 보험 재정의 ‘효율’과 ‘합리’를 근거로 시행된 근골격계질환에 대한 인정기준 및 요양업무 처리 지침에 따라 많은 환자들이 승인도, 전원도, 연기도 힘든 상황에 처해 있다. 거기다가 최근에는 노조탄압으로 고통받아온 하이텍 노동자들의 정신질환을 전원 불승인 하는 등의 만행을 자행하고 있다.


이는 인정은 엄격하게 해주고, 치료기간을 최대한 짧게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노동자들이 집단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근골격계 직업병 인정 기준이 가장 먼저 표면화된 사례이다. 2003년 말 ‘자본’의 관리를 거부하고 집단요양을 신청한 노동자들은 10명 이상이라는 이유로 해당 지사인 안양지사가 아닌 본부로 이관되었고  38명중 12명만이 원래의 요양신청서 그대로 승인이 되었고 나머지는 변경승인, 부분승인, 불승인으로 철퇴를 맞았다. 반면에 사측 도장이 찍힌 신청서를 몇 번에 나누어 낸 한 사업장은 아무런 문제없이 지사에서 전원 승인이 났다. 또 노사공동프로그램을 통해 발굴된 환자들을 10명이상 요양신청한 한 사업장은 ‘본부로 이관되냐?’는 질문에 ‘검진한 병원이 다르니 10명이상이라 할 수 없다. 그냥 지사에서 처리할 것이다’라는 답변을 들었다.


최근에 근로복지공단은 ‘노조를 끼고 하면 절대 승인 안 내준다’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한다. 노조탄압으로 정신질환을 앓던 청구성심병원은 산재승인을 해주었던 공단이 1년만에 마찬가지로 집단 감시와 노조탄압으로 정신질환을 얻은 하이텍노동자들은 전원 불승인을 내었다. 서울대 병원 수술실 간호사들의 경우 2명임에도 불구하고 불승인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의 자문의는 ‘조합이랑 같이 안 했으면 다 승인나는건데...’라며 말을 흐렸다고 한다.


근로복지공단의 어처구니없는 작태는 이것뿐만이 아니다. 요양처리지침이라는 것을 만들어 산재환자들이 더 나은 치료를 위해 병원을 옮기는 것조차 사전에 근로복지공단의 허락을 받도록 하고 있으며 더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아 요양연기를 할 때도 온갖 복잡한 서류와 함께 7일이전에 미리 승인받도록 하고 있다. 공단은 자본의 이해를 중심으로 재정안정화라는 미명 하에 투쟁하는 노동자에게는 단호한 칼날을 휘두르고, 순응하는 자에게는 굴종을 강요하고 있다. 공단은 스스로 이러한 태도를 교정할 이유도 의사도 없다.


불승인 사유를 듣겠다는 노동자에게 폭언과 욕설 퍼붓기, 재해조사 없이 불승인 내기, 부서 이동 기간에 요양연기를 신청한 노동자에게 결과 확인 안 해주기, 지게차에 허리를 치어 한 달간의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노동자에게 보름간의 통원치료만 인정하기, 요양중인 노동자에게 취업해서 돈을 벌라며 휴업급여 지급 안하기, 증상과 상관없이 무리하게 수술을 권유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자 증상고정 상태라며 치료를 종결하기... 등 전국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개별사안들도 하나씩 얘기하는 것이 벅찰 지경이다.


방용석 이사장, 노동 탄압 전문가가 되다.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인 방용석은 그 유명한 원풍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1970년대 유신 치하에서 노동운동을 하다가 세 차례나 구속된 노동운동가 출신이다. 70년대 한국 노동운동의 산증인인 방용석은 1995년 국민회의 당무위원을 거쳐 15대 민주당 국회의원(전국구)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새천년 민주당 원내 부총무도 역임하고 한국 가스안전공사 사장도 했으며, 노동부장관까지 역임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의 자리에 안착했다.

노동부 장관을 역임하던 시절 방용석 장관은 발전노조의 생존권을 건 투쟁을 ‘정치투쟁은 용납하지 않겠다’며 발전파업이 한창이던 3월24일 노조와 발전회사, 산자부 사이에 잠정합의가 거의 이뤄진 시점에 돌연 '협상결렬 성명'을 발표해 노조의 뒤통수를 때리는 등 신자유주의 노동 정책의 대표 주자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는 '월드컵 노사평화선언'을 채택하도록 유도하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이후 방용석은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된 이후에도 전공(?)을 살려 노조 탄압에 앞장서고 있다. 노사갈등으로 다친 경비원들에게 산재보험급여를 지급한 후 구상권을 발동시켜 금속노조에 급여금액만큼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노동조합의 총회에 대해 '업무를 방해하는 행위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는 제목으로 띄운 글을 띄우고, '공기업 노조가 순수성을 잃었다'고 이야기하고, 대구본부장에 대한 낙하산 인사 반대 집회로 집행간부 15명을 징계했다. 여기에 신자유주의 관리 기제의 ‘첨병’임을 자임하며 신자유주의의 모순이 극대화 되어서 나타나는 노동자들의 건강의 문제를 탄압하고 관리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자가당착에 빠진 근로복지공단, 투쟁으로 개혁하자!


근로복지공단은 결코 고객만족을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 처리지연, 미진한 보상 등은 일상적 불만일 뿐 아니라, 99년 이후 잠잠했던 재정안정화 절감 대책(99년의 560억 절감대책은 노동자의 투쟁으로 표면 상 좌초되었다)은 당연히 산재 승인을 어렵게 하고, 무리한 치료종결을 낳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공단 경영진이 직원에게 친절을 강요해도 민원인의 불만을 잠재울 수 없고, 특히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 반발과 대응을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공단의 전략을 수정하지 않는 한 정당한 것을 요구하는 집단적(노동조합) 노력은 공단에게 있어 잠재적 범죄행위일 뿐이다.


또 하나는 공단은 보상에 있어 자본에게 면책을 주는 것을 넘어, 자본의 끝없는 탐욕에 대해서도 면책을 주고, 노동자의 집단적 저항마저 대신하여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쟁이 집단성을 가진 원인과 어려움은 현행 산재보험제도 불충분한 보장의 한계에서도 기인하지만, 실상 결정적인 것은 자본의 이해와 정권의 대 노동정책이다. 재원고갈에 앞서 집단요양의 정치적 의미는 노자 모두에게 중요하다. 예컨대 02년, 03년 근골격계 직업병의 집단요양투쟁으로 그 주체 의지와 성향에 관계없이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폐해가 폭로되었다. 오죽하면 경총은 내부문건을 통해 “근골직업병 집단요양 투쟁은 반신자유주의, 반세계화”투쟁이라 했겠는가. 이윤만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시장 편제와 자본의 현장통제는 필연적으로 불안정 노동자를 양산하고, 노동자를 건강하지 못하게 하고, 절대적 혹은 상대적으로 빈곤하게 만든다. 이에 대한 불만에 대한 억제를 위해 자본가 정권은 ‘노사관계 로드맵’과 같은 노동조합 조직력 억제 및 와해 정책을 감행하게 되는 것이다. 직업병의 집단적 대응은 이 선상에 놓여있고 공단은 자본가 정권의 기관이다.


지금 자본이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이윤’이 공격받는 것이다.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그리고 인간답게 살기를 요구하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노동강도 강화를 통한 자본의 이윤율 극대화 구조에 대한 저항을 의미한다. 이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명확하면 그것에서부터 세상 바꾸기의 균열점을 찾으면 된다. 집단적으로 요양투쟁을 전개해서 구조조정의 폐해를 계속 만천하에 드러내고 우리의 ‘몸’을 중심으로 노동과정을 재편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창출 구조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된다. 이러한 투쟁을 통해 자본의 편에서 10여년을 넘게 노동자를 탄압해온 근로복지공단을 진정으로 노동자의 복지를 위한 기관으로 바꿀수 있다. 이미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싸우지 않으면, 그리고 문제를 드러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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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10 14:15 2005/10/1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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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재유 2005/10/10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야 쓰고 싶을 때 쓰는 것이라 생각해요. 너무 글을 많이 쓴다는 데 대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글 자체에 대해 질이 떨어진다는 등에 대해서 동의하기 좀 힘드네요.^^ 쉬고 싶을 때 쉬시고 쓰고 싶을 때, 또 써야 할 때 쓰세요. 전 동지의 글 잘 읽고 있고 많은 걸 배운답니다.^^

  2. 해미 2005/10/11 0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재유/ 흑흑... 고맙슴당..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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