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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고등학생들 "저도 민주화를 몰라요"

일베도 문제지만 고등학생들도 걱정입니다

13.05.24 21:44l최종 업데이트 13.05.24 21:46l

 

 

# 장면1. "저도 민주화를 몰라요"

"야, 요즘 시크릿 전효성이 민주화시킨다는 발언을 해서 난리가 났잖아. 넌 민주화가 무슨 뜻인지 알지?"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고등학생) 한 명을 수업이 다 끝난 후 조용히 데려와 함께 수다를 떨다가 던진 질문이었다. 이 정도는 당연히 알겠지 기대했었다.

"아... 저도 잘 몰라요...."
"어, 그래? 그럼 요즘 5.18도 말이 많잖아. 5.18은 알지?"
"그거 알았었는데, 갑자기 물어보시니까 생각이 안 나요."
"아....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도 5.18이 어디서 일어난 사건인지는 알지?"
"갑자기 물어보셔서 그것도 생각이 안 나네요."


유머 사이트에서 퍼온 농담도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도 아니다. 학생과 대화를 나누다 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다.

# 장면2. 예능이 걱정하는 한국사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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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한 질문을 던진 무한도전의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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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MBC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컬투의 베란다 쇼'에서 '역사교육의 현실' 편을 방송했다. 중간에 중학교 하나와 대학교 하나를 각각 방문해 학생들에게 다짜고짜 역사 퀴즈를 내는 장면이 있었다. "고려를 세운 사람은 누구인가?", "삼국시대부터 대한민국까지 역대 왕조를 써라" 등 초등학교 수준의 간단한 문제였다. 그런데, 꽤 여러 명의 학생들이 이 초등학교 수준의 문제에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 MC와 게스트들은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며 걱정을 했다.

지난 18일,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한국사 특강을 했다. 멤버들이 전문가에게 배워 아이돌에게 가르쳐 주는 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에 사실 전달에 그칠 수밖에 없었고, 이미 한국사를 잘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새로울 것도 없는 내용이었다.

그런데도 이 프로그램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 역사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시청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심어주었다는 점에서였다. '무한도전' 측에서는 한국사를 제대로 알자는 취지에서 기획한 것 같은데, 예능에서도 걱정할 만큼 젊은이들의 역사 지식이 참 부족하기 때문이다.

# 장면3. 5.18에 북한군 개입?

최근 TV조선과 채널A 등 일부 종편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내고,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라는 극우사이트에서 5.18은 폭동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극우 보수라고 평가를 받고 있는 조갑제씨가 북한군 개입설은 사실이 아니라며 비판하자, 이번에는 "조갑제도 좌파종북이다"라고 몰아붙이는 웃지못할 일도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이 사이트가 10대, 20대 젊은이들도 많이 가입해 활동하고 있는 사이트라는 점이다. 어떻게 이렇게 터무니없는 주장을 믿고 퍼 나르고 있는지 걱정스럽다는 의견이 많다.

집중이수제의 허실... 중간고사 시험 범위, 구석기-강화도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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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인물위주의 특강을 준비하고 있는 무한도전 멤버들(유재석,길,하하)과 설민석 강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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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1, 2, 3은 모두 젊은 세대가 역사를 잘 몰라서 벌어진 사건들이다. 젊은이들이 역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한국사도 제대로 안 가르치고 뭐했느냐는 비판 여론도 높아진다. 역사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잘못했다고 석고대죄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역사 교사들만 그 책임을 오롯이 뒤집어쓰기에는 억울한 구조가 있다.

문제의 시작은 2009 개정교육과정의 집중이수제였다. 집중이수제란 생물, 한국사, 윤리, 경제 같은 교과를 1주일에 5시간씩 한 학기 동안 집중적으로 공부한 후, 다 마쳤으므로 다시는 배우지 않는 제도를 말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 과목을 집중적으로 배우니 제대로 완전하게 이해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는 1학년 때 한국사를 배운다. 수업 시간은 1년간 일주일에 2시간이다. 작년까지는 집중이수제를 선택했지만, 문제가 많아서 올해는 집중이수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집중이수제를 시행했던 작년에는 한 학기 동안 1주일에 4시간 한국사를 가르쳐서 한 학기 내에 한국사 과정을 끝냈었다.

1주일에 4시간이나 한국사 수업을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주5일제 수업이기 때문에 하루를 빼고는 매일 한국사 수업이 들어야 한다. 어제 배운 내용도 아직 다 소화도 하지 못했는데, 오늘 또다시 방대한 내용의 한국사를 배워야 한다.

이제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되어서 얼떨떨한 기분으로 3월 첫 주에 조금 정신을 놓고 있으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를 거쳐 고조선 시대, 초기 국가 시대가 끝나버린다. 3월 둘째 주에 아차 싶어서 수업을 듣기 시작하면, 삼국시대를 시작해서 끝나버린다. 3월 셋째 주가 시작되면 고려 시대를 시작한다.

4월이 되면 이미 조선시대 중반을 지나 임진왜란을 배우고 있다. 이렇게 수업을 하면 1학기 중간고사의 한국사 시험 범위는 70만 년 전에 시작되는 구석기 시대부터 1876년에 체결된 강화도 조약까지가 된다. 실제로 재작년 중간고사를 이렇게 치렀다.

말은 이렇게 쉽게 하고 있지만, 교사로서의 솔직한 심정은 이 엄청난 내용을 공부해서 시험 보는 학생들이 신기할 정도다. 그래서 아주 많은 학생들이 방대한 분량에 질려서 한국사 공부를 포기하고 한국사 시험을 포기해 버린다. 공부해야 한다고 애써 강조는 하고 있지만 포기하는 학생들을 뭐라고 다그치기 힘들다.

1/3 토막이 난 수업 시수 vs. 변함없는 교과서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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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 한국사 교과서(자료사진)
ⓒ 김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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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이수제를 적용하지 않으면 1년동안 1주일에 2시간씩 한국사를 배우게 된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인 20년전 시절과 비교해 보아도, 수업 시간이 반토막이 난 것이다. 필자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1학년 때 1주일에 2시간 씩 국사 상권을 배우고, 2학년 때 1주일에 2시간 씩 국사 하권을 배웠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의 수업 시수와 현재의 수업 시수를 비교해 보면 상황은 더 슬프다. 그 시절에는 국사를 1년 동안 1주일에 2~3시간, 한국근현대사를 1년 동안 1주일에 3~4시간에 걸쳐 배웠다. 그 때와 비교하면 현재의 한국사 수업 시수는 1/3 토막이 난 셈이다.

물론 시수가 이렇게 줄어든 만큼 교과서의 페이지 수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과서를 읽어보면 가르칠 분량은 결코 줄어들지 않았다. 과거 교과서에서 10줄에 걸쳐 자세하게 설명하던 것을 1~2줄에 압축해서 써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생들은 이 압축된 교과서 문장을 더 이해할 수가 없게 되고, 교사들은 그 압축파일 같은 교과서 문장들을 하나하나 설명해 줘야 한다. 차라리 교과서 분량을 늘려서 자세하게 설명하기라도 했으면 수업하기 수월하련만, 분량을 줄이기 위해 많은 내용을 압축해 놓았으니, 책을 읽고 이해해야 할 학생들도, 가르쳐야 할 교사들도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많은 이들은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외국처럼 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대화하며 수업을 해 보라고 한다. 교사인 나도 학생들과 대화하면서, 학생들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고 화두를 던져주면서 수업을 해 보고 싶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가르쳐야 할 많은 내용과 엄청나게 부족한 시간 때문에 내용을 체계적으로 요약해서 정리한 후 강의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나도 정말 수업다운 수업을 해보고 싶다.

양날의 칼 서울대... 이과는 필요없는 한국사

최근 수능 시험을 준비할 때 사회탐구영역 선택과목으로 한국사를 택해서 공부하는 학생이 드물다. 서울대에 진학할 생각이 있는 학생이거나 한국사를 매우 사랑하는 역사 마니아가 아니면 선택하지 않는다.

한국사를 선택하면 서울대에 진학할 생각으로 공부하는 우수한 학생들과 경쟁해서 등급을 받아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대는 한국사에 있어서 양날의 칼이다. 필수 선택으로 지정해 주어 고마운 면도 있지만,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한국사를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방대한 분량과 부족한 수업 시간 때문에 한국사에 질려서 점점 멀어지는 이들은 서울대 진학을 목표로 하지 않는 대부분의 학생들이다. 그래서 이런 터무니없는 의심이 고개를 든다. 역사는 천하를 통치할 제왕들이 공부하는 학문이었으니, 서울대를 갈 학생들만 공부하라고 하는 것일까?

하지만, 이나마도 모두 문과에 한정된 이야기다. 이과 학생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이과 학생들도 한국사를 1학년 때 배우기는 한다. 하지만, 수능을 볼 때 선택을 하지 않기 때문에 관심이 없다. 왜 수업을 열심히 듣지 않느냐고 물어보면 어떤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저 이과 갈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사 들을 필요 없잖아요?"

1990년대 말, 이과 학생들도 수능에서 한국사를 필수로 시험보아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이과 학생 하나가 내게 한국사 문제를 물어보러 온 적이 있었다. 모든 과목을 열심히 공부하던 우수한 학생이었는데, 그 학생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한국사가 선택 과목이었다면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단 한국사뿐만이 아니다. 이과 학생들도 교양으로 사회 교과를 배우지만, 수능 시험과 관련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

작년 겨울, 리차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읽었다. 저자는 진화론을 전공한 생물학자라고 하는데, 생물학 이야기만 하다가 끝나는 책이 아니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에 대한 저자의 해설, 성경에 대한 심오한 분석과 평가도 담겨 있었다. 서양에서는 이과생들에게도 심도 깊은 인문학적 내용을 가르치는 것일까?

요즘 읽고 있는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도 그랬다. 이 책의 저자 역시 생물학자인데, 사회학, 역사학, 인문학 등에도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주었다. 저자는 과학자이지만, 과학과 인문학을 두루 섭렵했기에 요즘 트렌드가 되고 있는, 전체를 아우르는 통섭의 개념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두 과학자가 쏟아내는 화려한 인문학적 지식의 향연을 바라보며, 그저 부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우리나라의 이과 학생들도 20~30년 후 이런 통섭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황홀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혹시 우리나라는 이과 학생들에게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역사를 비롯한 인문학 교육을 소홀히 하여 결코 이런 저작을 쓸 수 있는 학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한국사 교육 강화,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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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를 위한 시에 '눈물바다' 4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1068차 수요집회'에서 한 시민이 할머니를 위한 시를 경청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와 함께 일본 위안부 범죄의 진상규명과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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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학생들이 역사에 무지한 것은 어찌보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한국사 수업 시수를 늘리고, 수능 시험에서 문과와 이과 모두 필수로 한국사 시험을 치르게 하면 된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그러려면 중요한 교과인 영어와 수학, 국어의 수업 시수를 줄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국, 영, 수 과목을 제외한 다른 교과는 이미 수업 시수를 줄일 만큼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이 독도 문제, 종군 위안부 문제, 야스쿠니 신사 문제 등을 가지고 역사를 왜곡한다고 하니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자는 여론이 높아졌고, 정부도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다. 그런 발표가 처음도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일본과 중국의 역사왜곡으로 국민 여론이 들끓고 있으니, 정부도 뭔가 하고 있다며 여론을 달래기 위해 한국사 교육 강화 발표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대로 나가다가는 역사를 모르는 젊은이들이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는, 몇 년 전 수능에서 한국사 시험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 과목이 되었을 때,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역사 수업 시수가 확 줄었을 때, 이미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제야 현실로 드러난 것뿐이다. 우리 정부의 과거 행태를 통해 예측해 본 미래는 이렇다.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를 모른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여론이 안 좋아지면 정부는 또다시 한국사 교육 강화를 발표만 할 것이다. 그리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모두가 잊어버릴 것이다. 어쩌면 7차 교육과정(2009년 집중이수제 이전 과정)으로 한국사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아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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