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2025년은 대한민국(이하, 한국)과 일본의 국교 정상화 60년, 한반도 해방과 일본의 패전 80년, 을사늑약 체결 120년을 맞이하는 역사적 전환의 해이다. 한일 시민은 이 뜻 깊은 해를 가슴에 새기며, 우정과 역사 화해, 평화의 메시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19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은 한국전쟁 정전과 냉전체제의 한계 속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배상 문제를 명확히 하지 않은 채 체결되었고, 이후 한미일 군사협력의 기반이 되었다. 양국 시민들은 문화적, 경제적 교류를 통해 관계를 점차 심화시켜 왔지만, 강제 동원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배 피해자들의 존엄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일본은 아직 북한과의 국교를 수립하지 않고 있다.
책임있는 국가는 가해의 역사를 문명사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이를 부끄러움으로 인식하며 먼저 해결해야 한다. 독일에서는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침략전쟁과 유대인 학살의 “역사적 책임에는 끝이 없다”라고 선언하고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과거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는 것이 성숙한 국가의 책임이라는 인식은 국제적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문제의 책임과는 별개로 독일은 나치 범죄에 대해 전폭적인 사죄와 배상을 실천했고, 미국은 일본계 미국인 강제수용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했다. 덴마크와 프랑스도 식민 지배의 잘못을 반성하고 사과했다. 이는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 지는 것이 국제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길임을 분명히 보여준다.
한일 관계 또한 이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 식민 지배, 한국전쟁, 냉전 구조를 관통하는 한일기본조약의 한계를 인정하고, 무력과 협박으로 체결된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국 병합 조약이 국제법상 불법 무효임을 분명히 하며, 그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
과거를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은 불신과 적대의 악순환을 심화시킨다. 반대로 과거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반성하는 것은 화해와 평화, 상호 이해를 여는 길이 된다. 한일 시민은 과거를 직시하고,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의 미래를 열어가는 길에 함께 하며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제3조 문제
-1910년 8월 22일 한국 병합 조약 및 그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은 불법 무효이다-
한일기본조약은 미국 주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제4조를 근거로 경제협력 중심의 외교적 타협을 통해 체결되었다. 당시 한국의 학생과 시민들이 보여준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식민 지배의 책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가운데, 양국은 서로에게 유리한 해석이 가능한 애매한 문구로 조약을 맺었다. 그 결과, 식민 지배와 관련한 중대한 인권침해 등 문제들은 계속 대립과 갈등의 쟁점으로 남게 되었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는 “1910년 8월 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already null and void)을 확인한다”라고 되어있다. 한국은 이를 ‘일본의 식민 지배가 애초부터 무효였다’고 주장하지만, 일본 정부는 ‘체결 당시에는 유효했으나 1948년 대한민국 성립으로 무효가 되었다’고 해석하며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한국 병합 조약은 군사적 압박과 협박으로 체결되었으며, 국제법적으로도 무효이다. 1963년 유엔 총회를 위한 유엔 국제법위원회 보고서는 을사늑약을 강제 또는 협박에 의해 체결된 효력이 없는(무효) 조약이라고 판단하고, 총회는 이를 채택했다. 이는 일본의 식민 지배가 국제법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이들 조약이 체결되기까지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면 그 불법성은 더욱 분명하다.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근대 한일 관계는 한반도에 대한 일본의 지속적인 무력 개입과 팽창 정책의 역사였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을 외교・군사적으로 압박한 일본은 1904년 대한제국의 중립선언을 무시하고 중립국 영토를 불법으로 점령해 을사늑약과 한국 병합 조약을 군사적 협박으로 체결했으며, 이는 36년에 걸친 식민 지배로 이어졌다. 이에 맞서 한국인은 일제의 군사적 폭력과 학살에 대한 저항을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갔다. 이는 오늘날 ‘한국 독립전쟁’이라 불리며, 우리는 일본의 한반도 식민 지배가 무력과 강제에 의한 불법적 강점이었음을 확인한다.
한일기본조약 제2조의 해석은 일본의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그로 인한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 있는 해결의 핵심 기준이 된다. 일본은 과거의 과오에 대한 법적 책임을 회피해왔고, 이로 인한 피해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일본은 역사 정의와 인권에 기반한 정확한 해석을 통해 과거의 불법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1910년 8월 22일 및 이전에 체결된 모든 조약과 협정이 불법 무효임을 한일 양국이 모두 인정하고 확인해야 하며, 이러한 공동의 인식 위에서 한일 양국은 평화롭고 공정한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갈 수 있다.
-한반도에는 국제연합(UN)이 인정하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
일본의 식민 지배 과거사를 전 한반도 차원에서 온전히 청산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일본 간의 관계 개선과 과거사 정리가 필수적이다. 유럽에서 냉전체제가 침략국 독일의 분단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과 달리, 동아시아의 전후 체제는 전쟁의 책임이 전혀 없는 한반도의 분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그 후유증으로 이어진 냉전이 한반도에 가져온 비극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해방 이후 한반도와 일본의 관계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반도 전역에 걸쳐 이루어졌음에도 한일기본조약은 대한민국과 일본국 사이에서만 체결되었다. 한편, 북한과 일본은 식민 지배 문제에 대한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적대관계를 지속해 왔다. 그 결과 식민 지배 과거사에 관한 논의와 조치가 효력을 발휘하는 범위는 불가피하게 한반도 남쪽, 즉 휴전선 이남에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한일 양국 정부는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며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연합 총회 결의 제195호(III)에 따라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정부임을 확인한다(제3조)”고 합의했다. 그러나 1991년, 한국과 북한이 동시에 국제연합 회원국으로 가입함에 따라, 한반도에 국제연합이 인정하는 두 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한일기본조약 제3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한반도 전역에서 식민 지배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일본 간의 기본 조약 체결과 외교 관계 수립에 상응하는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식민 지배 책임을 외면한 채 북한을 고립시키는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고, 과거사 반성과 새로운 한일 관계에 대한 전망을 전제로 북한과 수교 협상에 나서기를 희망한다. 북한과 일본의 과거 청산과 국교 정상화는 한반도 분단과 전쟁,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 이어지는 냉전적 대치 상태에 대해 일본이 책임을 다하는 길이기도 하다. 북일 간의 적대 관계 해소는 70년 이상 지속된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전 체제를 항구적인 평화 체제로 전환하는 데 크게 이바지할 것이다.
한일기본조약 60년의 평가와 과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과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일본의 전쟁범죄와 식민 지배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서는 식민지 피해국이 배제되었고, 한일기본조약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 관한 법적 책임을 해결하지 않았다. 일본은 이 문제가 한일청구권협정을 근거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고 강변하며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뒤이어 식민주의에 뿌리를 둔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인종차별 철폐 협약이 같은 해 제20차 유엔총회에서 채택되었다. 한일기본조약은 식민주의와 그로 인한 차별을 극복하고자 하는 전후 국제인권법의 흐름과 방향에 역행하는 전후 식민주의의 산물이라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노예제와 노예무역은 인도주의에 반하는 범죄’라고 명시하며 식민주의를 비판한 2001년의 더반 선언은 이를 더욱 분명히 한다.
일본은 여러 총리의 선언을 통해 과거사 책임에 대한 사과와 화해를 시도했다. 고노 담화(1993), 무라야마 담화(1995) 등은 일본군 ‘위안부’와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를 표명했으며, 김대중・오부치 선언(1998)과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에 따른 북일 평양 선언(2002)도 한일, 북일 관계 개선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였다. 특히, 간 나오토 담화(2010)는 일본의 식민 지배가 한국인의 뜻에 반한 것이었음을 인정하여 한일 관계 개선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아베 총리 이후, 일본은 과거사 문제에서 퇴행을 거듭하였고, 2015년 ‘위안부합의’도 실질적 해결을 이루지 못했다.
강제 동원과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식민 지배와 전후 식민주의에서 비롯된 심각한 인권침해 사건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여전히 거부하며,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강제동원 판결 이래 일련의 판결을 통해 불법강점으로 인한 강제동원 및 일본군’위안부’ 피해에 대한 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결하며,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본 최고재판소 역시 2007년 판결에서 피해자 개인의 배상 청구권 자체가 소멸한 것은 아니며, 다만 재판을 통한 법적 구제 권능만이 제한되었다고 판시한 바 있다. 일본 정부는 스스로 여러 차례 국회에서 개인 청구권이 살아있다고 밝혔음에도 이후 입장을 번복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는 한일기본조약 체결에 수반된 ‘재일 한국인 법적 지위 협정’에 따라 국적을 ‘한국’으로 선택한 사람에게만 ‘협정 영주권’을 허용함으로써 재일 한국인・조선인 사회 내에 법적 지위에 따른 분단을 심화시켰다. 이 협정을 근거로 문부성은 1965년 12월 이래 재일한국인・조선인에 대한 동화교육을 강화하고, 조선학교를 ‘각종학교’의 인가에서 배제하고자 했다. 우리는 일본정부의 식민주의적 민족차별이 오늘날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 차별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편, 한일 시민사회는 일본의 식민 지배 과거사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청산하여 인권을 바탕으로 역사 정의와 화해를 이루고, 한일 시민의 관계를 실질적으로 회복하기 위하여 함께 협력하고 연대해 왔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에 걸쳐 아시아 각지의 전쟁 및 식민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약 100건의 소송을 일본에서 제기하였고, 그중 절반 이상은 한국인 또는 재일 조선인이 원고였다. 비록 일본 사법부의 소극적인 법 해석으로 승소에 이르지는 못했으나 수많은 일본 시민과 일본인 변호사, 재일동포 변호사들이 함께 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학살, 조선인 강제 동원과 강제노동에 대해 일본 시민사회는 끈질긴 조사 활동을 수행하였고, 피해자와 유족을 초청하여 추도식을 진행하였다. 이 활동은 재일조선인 역사학자들의 선구적 연구와 한국・중국 연구자 및 시민단체와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일본 내 역사 수정주의에 맞서 진실을 지켜내는 일본 시민사회와 국제연대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다짐과 요청
지금 세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미국 트럼프 정권의 재등장은 국제적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미국발 관세전쟁으로 세계무역 질서도 대혼란에 빠져 있다. 시대적 전환기 속에서 전후 유럽이 폐허 위에서 공동체를 일궈낼 수 있었던 힘은 국가가 아니라, 68혁명의 정신을 계승한 시민들의 과거사에 대한 확고한 인식과 평화에 대한 열망이었다.
독일과 프랑스 시민들이 역사 왜곡에 맞서 진실을 요구하고 연대함으로써 전후 유럽의 도덕적 기초를 세운 것처럼, 한일 시민사회 또한 촛불혁명과 평화헌법 지키기 운동 등에 상호 연대와 지지를 표하며, 역사 화해와 평화의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이는 2024년 연말 이래 내란 종식을 위한 한국의 평화 시민운동에 일본 시민이 연대하는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우리는 다음의 과제를 제기하고 실현해 나가고자 한다.
1. 한일 양국은 ‘정의에 기반을 둔 역사 화해’를 시민 차원에서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한다. 역사를 직시하는 일은 가해국과 피해국 시민 간 이해를 깊게 하고, 우호적 관계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이다. 한일 시민은 과거의 벽을 넘어 역사 화해의 광장에서 만나,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향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한일 양국은 새로운 미래와 평화를 위한 조약과 협정 또한 준비해야 한다.
2. 식민 지배로 인해 큰 고통을 겪은 재일 한국・조선인은 해방 이후 차별을 감내하면서도 모국과 일본 사회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해왔으며, 다문화 공생 사회의 실현에 이바지해왔다. 우리는 이들의 시련과 역사적 발자취를 공유하며, 재일 영주자 지방참정권 부여와 조선학교(고등학교・유치원) 무상화 실현을 화해와 연대의 과제로 힘차게 실천해 나갈 것이다.
3. 북한과 일본, 북한과 미국의 관계 정상화는 동북아시아 평화 정착의 시급한 과제이다. 북한과 일본은 북일 평양 선언을 토대로 국교 정상화와 상호 연락 사무소 설치를 고려해야 하며, 일본은 잘못된 과거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사죄와 배상을 통해 상호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나아가 북한과 미국이 관계 정상화에 나서도록 하여 남북한 정전 상태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4. 미군 주둔에 기반을 둔 동북아시아 냉전 대결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아시아판 나토, 대만 유사시 대응 구상 등 적을 상정하고 배제하는 것으로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 북한, 중국, 러시아는 화해와 평화를 함께 일구어 가야 할 이웃이자 친구이다. 일본은 평화헌법 제9조를 유지하고 실질적 효력을 높여가야 한다. 우리는 동북아시아 다자간 안보협력 체제 등 평화에 기반을 둔 역내 질서의 구축과 한일 피폭자들이 제시한 ‘비핵 평화’의 목소리를 이어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전쟁포기를 명시한 헌법 제9조를 지켜온 일본 시민과, 독재 정권을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온 한국 시민은 동아시아 평화를 이끄는 원동력이다. 우리 한일 시민은 역사 화해를 통해 한일 관계 및 남북 관계의 시련과 고난을 넘어 평화가 깊게 뿌리내리고 우정의 꽃이 만개한 세계를 향해 손을 맞잡고 전진할 것이다.
한국 제안자(총 102명)
강우일(주교, 전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현우(신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 권영길(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초대 위원장), 김경민(한국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한일화해와평화플랫폼 공동대표), 김귀옥(전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상임공동의장, 한성대학교 교수), 김동명(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김민문정(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민환(작가,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김삼열(독립유공자유지유족회 회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김상근(목사, 전 KBS이사장), 김영주(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이사장), 김영호(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전 유한대학교 총장), 김재하(전국민중행동 상임공동대표), 김정길(제45주년 5.18광주민중항쟁기념행사 위원장), 김정륙(반민특위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정헌(화가, 전 서울문화재단 이사장), 김종생(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한일화해와평화플랫폼 공동대표), 김중배(전 MBC 사장), 김태일(몽양여운형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김평수(한국민예총 이사장), 김희중(대주교, 전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남기정(서울대학교 일본연구소 교수, 외교광장 사무총장), 남부원(아시아태평양YMCA연맹 사무총장), 노진철(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노태구(동학민족통일회 상임의장), 류종열(DMZ평화네트워크 이사장), 명진(원로스님), 문국주(6월민주항쟁계승사업회 이사장), 박석무(다산연구원 이사장), 박석운(비상행동 공동의장,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백낙청(서울대 명예교수, 창비 명예편집인), 서중석(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손미희(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대표), 송병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화해와통일위원회 위원장), 송성영(경기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상임대표), 송철원(현대사기록연구원 원장), 신관우(한국YMCA전국연맹 이사장), 신낙균(전 문화관광부 장관, 전 여성유권자연맹 회장), 신승민(기독교사회연구원 원장), 신인령(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 신흥범(조선자유언론수호투위 위원장), 심정수(조각가, 국제 환경 조각 위원회 위원), 안병욱(카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안재웅(목사, 전 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 안충석(신부, 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양경수(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염무웅(문학평론가, 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옥현진(대주교,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유홍준(명지대학교 석좌교수, 전 문화재청장), 윤경로(전 한성대학교 총장,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장), 윤석인(희망제작소 이사장), 윤정모(작가,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이나영(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이만열(시민모임독립 이사장,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부영(동아자유언론수호투위 위원장), 이완기(새언론포럼 대표, 제15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이용길(전국비상시국회의 상임공동대표), 이우재(고 윤봉길 월진회 명예이사장), 이은정(전국여성연대 상임대표), 이의영(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공동대표), 이장희(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전 대한국제법학회 회장), 이재선(자주통일평화연대 청년학생위원회 상임대표), 이준식(전 독립기념관 관장), 이지원(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상임공동대표), 이철우(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태진(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이태호(시민평화포럼 운영위원장), 이현문(조선의열단기념사업회 회장), 이홍정(자주통일평화연대 상임대표의장), 이희자(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공동대표), 임우택(대학YMCA전국연맹 회장), 임재경(한겨레 신문 초대 편집인), 임진택(판소리 명창), 임헌영(문학평론가,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장완익(변호사, 전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장임원(의료인, 전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상임대표), 장회익(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전진우(언론비상시국회의 대표), 정강자(전 참여연대 상임대표), 정성헌(DMZ생명평화동산 이사장, 전 새마을운동중앙 회장), 정연주(전 KBS 사장), 정영이(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정인성(원불교 교무, 한일화해와평화플랫폼 공동대표), 정해구(전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성공회대학교 교수), 정희성(시인, 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 조성두(역사기억 평화행동 상임대표), 조성호(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조인래(조소앙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조현주(흥사단 이사장 직무대행), 지선(원로스님, 실천승가회 전 대표), 지은희(전 정의기억재단 초대 이사장), 진영종(참여연대 공동대표), 채희완(민족미학연구 소장), 최영찬(빈민해방실천연대 공동대표), 최휘주(진보대학생넷 전국대표), 하원오(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한종범(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대표), 한충목(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 한일화해와평화플랫폼 공동대표), 함세웅(신부,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현기영(작가, 전 한국문학예술진흥원 원장), 황석영(작가, 만해문학상 수상), 황지우(시인, 전 한국예술종합대학교 총장)
일본 제안자(총 44명)
김성제(金性済)(한일화해와평화플랫폼 서기), 김성태(金聖泰)(목사, 재일대한기독교회 도쿄교회), 나가사와 유코(長澤裕子)(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나카이 준(中井淳)(일본 가톨릭 정의와 평화 협의회), 노히라 신사쿠(野平晋作)(피스보트 공동대표), 다카다 켄(高田健)(허용하지 마라! 헌법 개악 시민연락회), 다케다 타카오(武田隆雄)(일본산묘법사 승려, 평화를 만들어내는 종교자 네트워크 공동대표), 류시경(柳時京)(일본 성공회, 오사카 가와구치 기독교회), 미츠노부 이치로(光延 一郎)(일본 가톨릭 정의와 평화 협의회), 사노 미치오(佐野通夫)(도쿄준신대학 교원, 조선학교 '무상화' 제외에 반대하는 연락회 공동대표), 사카이 요스케(酒井陽介)(예수회, 조치대학교 신학부 교원), 사토 노부유키(佐藤信行)(외국인 주민 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전국 기독교 연락협의회), 스즈키 카즈에(鈴木和枝)(후지 성심 여자학원 교원), 스즈키 토시오(鈴木敏夫)(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워크 21 대표위원), 시라이시 타카시(白石孝)(한일 시민 교류를 추진하는 희망연대), 시오에 아키코(潮江亜紀子)(외국인 주민 기본법 제정을 요구하는 가나가와 기독교자 연락회), 신창우(愼蒼宇)(호세이대학교 교수), 신용섭(申容燮)(오사카 KCC 관장), 에가미 아키라(江上彰)(일본산 묘법사), 오노 분코(小野文珖)(종교자 9조의 화 공동대표), 오다가와 코(小田川興)(재한 피폭자 문제 시민회의), 오오시마 카오리(大嶋果織)(일본기독교협의회 총간사), 오오쿠라 카즈미(大倉一美)(가톨릭 도쿄 교구 사제), 와타나베 켄쥬(渡辺健樹)(한일 민중연대 전국 네트워크 공동대표), 와타나베 타카코(渡辺多嘉子)(평화를 실현하는 기독교자 네트워크), 요시타카 카노(吉髙叶)(일본기독교협의회 의장), 우치다 마사토시(内田雅敏)(변호사), 이시카와 유키치(石川勇吉)(아이치 종교자 평화의 모임), 이이즈카 다쿠야(飯塚拓也)(일본기독교협의회 동아시아 화해와 평화위원회 위원장), 정수환(鄭守煥)(재일대한기독교회 총간사), 최선애(崔善愛)(피아니스트, '주간 금요일' 편집위원), 카와카미 시로(川上詩朗)(변호사), 쿠쥬 노리코(くじゅう のりこ)(동아시아 화해와 평화 네트워크), 키타무라 케이코(北村恵子)(일본기독교협의회 여성위원회 위원장), 타이라 아이카(平良愛香)(평화를 실현하는 기독교자 네트워크), 히다 유이치(飛田雄一)(고베 청년학생센터), 토츠카 에츠로(戸塚悦朗)(변호사, 영국 왕립 정신과학회 명예 펠로우), 하세가와 카즈오(長谷川和男)(조선학교 무상화 제외에 반대하는 연락회 공동대표), 하야시 히사시(林尚志)(예수회 시모노세키 노동교육센터), 후지모리 요시미츠(藤守義光)(일본기독교협의회 총무), 후지모토 야스나리(藤本泰成)(포럼 평화・인권・환경 고문), 히루마 노리코(昼間 範子)(일본 가톨릭 정의와 평화 협의회), 히시야마 나호코(菱山南帆子)(전쟁을 허용하지 마라・9조를 부수지 마라! 총합 행동 공동대표, 허용하지 마라! 헌법 개악 시민연락회 사무국장), 히키 아츠코(比企敦子)(일본기독교협의회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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