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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리스크' 직면한 오세훈…명태균 "1심 유죄 나올 것"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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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선거 막판 대역전한 날 찬물 끼얹어

"잔칫날이지만 경거망동 말고 자중자애하라"

'여론조사 비용 대납'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재판부, 지방선거로 중단했던 재판 10일 재개

17일 변론 종결…이달 내~7월 중순 선고할 듯

벌금 100만원 이상, 시장직 잃고 대선 못 나와

오세훈 "사기 범죄자의 거짓말, 특검 정치공작"

오세훈 서울시장(왼쪽),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

오세훈 서울시장이 6·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를 상대로 막판 대역전극을 펼친 끝에 5선에 성공하고 업무에 복귀한 4일 오후,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세훈 시장 당선 축하드린다. 잔칫날 재 뿌리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도 잘 알다시피 1심 유죄가 나온다"면서 "경거망동하지 말고 자중자애하라"고 전했다.

이른바 '명태균 게이트'에 연루돼 지난해 12월부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오 시장에게 유죄 선고가 내려질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장담하면서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실제 선거로 인해 5월 내내 멈췄던 오 시장 관련 재판은 오는 10일 재개되며 재판부는 17일에 변론을 종결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특검법에 의하면 1심 선고는 공소제기일로부터 6개월(3심 대법원 확정판결까지는 12개월) 이내에 이뤄져야 하지만 그간 한 달 이상 재판이 중단됐고, 형사 사건에서 결심공판이 끝난 뒤 판결까지 통상 2~4주 정도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오 시장의 선고기일은 빠르면 이달 내, 늦으면 7월 중순쯤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명태균 씨와 얽혀 있는 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은 선거 전부터 오 시장의 '사법 리스크'로 지적돼왔다. 오 시장이 만약 유죄 선고를 받아 100만 원 이상의 벌금형(집행유예 포함)이 확정되면 정치자금법에 따라 서울시장직을 잃게 된다. 향후 5년간 공직에 취임하거나 임용될 수도 없으며, 금고 이상 형을 확정받는 경우 공직 임명·취임 제한 기간은 10년으로 늘어난다. 이는 극적인 선거 승리로 차기 대권 도전에도 날개를 달았다고 평가받는 오 시장에게 최악의 시나리오여서 그가 법적 위기까지 이겨낼지 관심이 쏠린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가 23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2025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해 질의 답변을 마치고 자리로 향하고 있다. 아래는 오세훈 서울시장. 2025.10.23. 연합뉴스

앞서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6개월 전인 지난해 12월 1일 오 시장과 강철원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 사업가 김한정 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오 시장은 2021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명 씨로부터 여러 차례 여론조사 결과를 받아보고 오랜 후원자로 알려진 김 씨에게 비용을 대신 내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캠프 비서실장이었던 강 전 부시장은 오 시장의 지시로 명 씨와 연락하며 설문지를 주고받는 등 여론조사 진행에 관해 상의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 공소사실에 따르면 명 씨는 2021년 1월 22일∼2월 28일 공표용 여론조사 3회, 비공표용 7회 등 총 10회의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김 씨는 같은 해 2월 1일부터 3월 26일 사이 5회에 걸쳐 여론조사 비용 명목으로 총 3300만 원을 명 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여론조사업체 미래한국연구소의 실무자 강혜경 씨에게 지급했다. 특검팀은 김 씨가 오 시장과 강 전 부시장을 위해 여론조사 비용을 낸 행위가 정치자금법 45조 1항에서 금지한 '불법 기부'에 해당한다고 봤다. 이 조항은 법이 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하거나 받을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명 씨는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의 주선으로 오 시장을 7차례 만났으며, 오 시장이 보궐선거를 앞두고 "살려달라" "(국민의힘 서울시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나경원을 이기는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밝혀왔다. 오 시장이 여론조사를 대가로 아파트 제공을 약속했으며, 김 전 의원에게는 서울도시주택공사(SH) 사장 자리를 약속했다는 주장도 했다. 다만 비용을 받고 여론조사를 한 명 씨는 별다른 위법 정황이 발견되지 않아 기소되진 않았다.

반면 오 시장은 명 씨와 만난 사실은 있지만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해 관계를 끊었다며 명 씨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하지 않았고 결과를 받아본 일도 없다고 혐의를 전면 부인해왔다. '정치 특검의 오세훈 죽이기' '이재명 정권을 위한 정치공작'이라는 것이다. 오 시장은 기소 당일 입장문에서 "특검이 민주당 하명에 따라 정해진 기소를 강행했다"며 "사기 범죄자 명태균의 거짓말뿐, 증거도 실체도 없는 사건에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기소 이유를 조각조각 꿰맞췄다"고 강력 반발했다. 김한정 씨 역시 오 시장 캠프와 무관하게 비용을 냈다는 입장이다.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명 씨에게 오 시장을 잘 보이게 하려고 명 씨를 도와줬다고 해명했다.

 

지난 2021년 4월 24일 저녁 오세훈 서울시장의 후원자인 김한정 회장의 제주 서귀포시 별장에서 찍은 단체 사진. 왼쪽부터 최용휘 전 대구시 서울본부 대외협력팀장, 명태균 씨, 김한정 회장, 김영선 전 국민의힘 의원, 김태열 전 미래한국연구소 소장. 2025.4.23. 탐사보도그룹 워치독

미래한국연구소가 실시한 202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오세훈 서울시장 관련 비공표 여론조사 실행 날짜와 오세훈 시장 최측근 스폰서로 알려진 김한정 회장이 강혜경 씨 개인계좌로 돈을 보낸 날짜. 2024.11.22. 뉴스타파

재판이 선거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 시장 변호인은 지난 4월 1일 4차 공판 때 담당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재판장 조형우 부장판사)를 상대로 6·3 지방선거 전인 5월 초까지 선고를 마쳐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판결로 선거에 개입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하지 않으려 한다"면서 선고를 지방선거 이후에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오 시장은 이틀 뒤인 4월 3일 5차 공판 때 법정에서 직접 "선거일이 다가오기 전에 선고가 나오지 않으면 이 재판 진행 자체가 저에게는 엄청난 악재가 된다"며 동일한 요청을 했으나 재판부는 선거 후에 결론 내리겠다고 재차 못박았다. 다만 "피고인 신문은 선거 전에는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 시장으로선 자신의 무죄를 확신했거나,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재판부가 국민의힘 소속 현직 서울시장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지만 일단 실패한 셈이다. 이날 공판에서도 증인으로 출석한 명 씨는 오 시장이 직접 여론조사를 의뢰했다며, 2021년 1월 20일 회동 때 오 시장이 여론조사 2000개 샘플에 얼마나 드냐고 물어서 2000만 원 정도 든다고 답했다고 시종 오 시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이어갔다. 재판부가 "강철원 말고 오세훈에게 통으로 한번 의뢰받은 게 맞느냐"고 묻자 명 씨는 "네"라고 답했다.

4월 15일 6차 공판 때 재판장인 조형우 부장판사가 이날 오후 간단하게 증거조사를 하는 게 어떠냐는 의견을 냈으나 오 시장은 오후 2시 20분에 선거 관련 일정이 있다고 난색을 표했다. 조 부장판사가 "그럼 안 되겠네. 이것도 안 되시고 저것도 안 되시고"라고 하자 오 시장은 "일찍 끝날 거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이에 재판장은 "왜 마음대로 생각하냐"면서 "수사보고서 증거 인부(증거물에 대한 의견 제시)도 어제서야 내고 저도 뒤늦게 봐서 겨우겨우 정리했다. 본인이 쉽게 생각하는데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질책했다.

재판부는 4월 22일 7차 공판 때 김한정 씨와 강혜경 씨 사이의 통화 녹음 파일 등에 대한 증거조사를 실시했다. 이어 "지방선거가 끝난 뒤인 6월 10일부터 재판을 재개하겠다"면서 "6월 17일 오 시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하고 변론을 마무리하는 결심 절차를 갖겠다"고 알렸다. 결심 절차에서는 특검팀의 최종의견 진술과 구형, 변호인의 최종변론, 오 시장의 최후진술, 재판부의 선고기일 지정이 순차적으로 이뤄진다. 재판부는 오 시장 신문에 앞서 오는 10일 강 전 부시장, 12일 김 씨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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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장 3명·소장 11명 진급…김종묵 육군 3군단장 ‘비육사 출신’

권혁철기자

  • 수정 2026-06-05 20:42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합동참모본부 누리집

정부는 5일부로 윤한일 육군 소장(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장·육사 51기)과 조충호 해군 소장(제1함대사령관·해사 49기), 박흥재 공군 소장(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공사 43)을 중장으로 진급시켜 각각 육군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과 해군참모차장, 공군사관학교장으로 보직하는 2026년 전반기 ‘장성급 장교’(장군) 인사를 시행했다. 이번 인사는 대장급은 없고 중장 3명과 소장 11명이 진급했고 주요직위 보직 인사로 이뤄졌다.

정부는 “지상작전사령부 참모장 김종묵(육군 중장)은 3군단장으로, 해군참모차장 곽광섭(해군 중장)은 해군작전사령관으로 보직 이동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해군작전사령관과 육군 3군단장은 직무대리 체제였다. 3군단장에 임명된 김종묵 중장은 학군 32기로, 3군단장 전임자였던 이상렬 지상작전사령관(육군 대장)과 마찬가지로 비육사 출신이다.

12·3 내란 연루 의혹이 제기된 주성운 전 지상작전사령관이 물러나면서 지난 4월 당시 이상렬 3군단장이 대장으로 진급해 지상작전사령관에 임명됐다. 12·3 내란 연루 의혹이 제기된 강동길 전 해군참모총장이 물러나면서 지난 3월 당시 김경률 해군작전사령관이 대장으로 진급해 해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정부는 이번 인사에서 육군 준장 7명, 해군 준장 2명, 공군 준장 2명을 소장으로 진급시켜 사단장, 항공사령관 및 각 군 본부 참모 등 주요 직위에 임명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 인사는 국가와 국민에 대한 사명감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군사력과 국방 역량을 공고히 할 수 있는 우수자 선발에 중점을 두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불안정한 국제 안보정세 속에서 한반도 방위를 주도적으로 수행하고 완벽한 작전수행태세 확립을 달성할 수 있는 역량을 고려하여 분야별 전문성과 작전지휘 능력을 겸비한 인재들을 다양한 특기분야에서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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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지방선거 평가와 과제

 

[정조준260] 6.3지방선거 평가와 과제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6/06/05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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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졌다

 

우리 국민은 내란 청산을 기치로 내걸고 이번 6.3지방선거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투표 결과 한동훈과 국힘당, 즉 내란세력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국민이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해 선거에서 졌습니다. 

 

선거에서 내란세력을 청산했다고 하려면 한동훈과 국힘당이 대부분 낙선해 괴멸되었어야 합니다. 국힘당은 대구·경북에서나 겨우 당선되었어야 합니다. 이게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도 아니었습니다. 선거 전만 해도 경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 내란세력 전멸이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내란세력은 서울, 경남, 대구, 경북 광역단체장을 차지했고 평택을, 부산 북구갑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도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내란세력은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게다가 내란세력의 국회의원 숫자가 더 늘어났습니다. 민주당 의석은 4석 줄고, 국힘당 의석은 한동훈까지 포함하면 4석이 늘었습니다. 

 

이처럼 국민의 내란 청산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고 내란세력에게 재기의 기회를 열어준 어두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패배의 요인으로 몇 가지 꼽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책이 있습니다. 우선 검찰개혁에서 후퇴하는 바람에 민주진영 내 분열주의자들에게 발호할 빌미를 주었습니다. 또 민주당이 선거 직전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특별검사법’을 발의한 것도 패착이 됐습니다. 이 특검법에는 특검에 공소 취소 권한을 주는 조항이 있는데 내란세력이 이를 물고 늘어지면서 ‘공소 취소 특검’이라고 공격한 것입니다. 유리한 쟁점이 없어서 참패의 위기에 몰렸던 내란세력의 손에 선거 기간 내내 휘두를 수 있는 무기를 쥐여준 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특검법을 주도한 이들은 친명세력입니다. 아마 이 대통령의 의중이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특검법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촛불국민이 요구한 것처럼 집권 초기에 바로 하지 않고 선거를 앞두고 하니 공격의 빌미가 된 것입니다. 

 

둘째는 조국혁신당의 조국 전 대표를 필두로 한 분열주의자들이 문제였습니다. 이들이 선거판을 이재명 민주당 정부 내부 분열과 대결로 몰고 가면서 내란 청산을 덮어버리고 내란세력이 발호할 여건을 마련해 줬습니다. 

 

  © 조국 페이스북


셋째는 내란 척결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절대적 책임자를 자임한 광장이 선거 정국에서 소수화된 것이 한계였습니다. 선거 기간에도 촛불 광장이 활활 타오르면서 내란 척결의 사회적 분위기를 지켜냈다면 패배를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국민은 차후 승리를 위한 중대한 성과를 만들었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한 주요 인물로 조국 평택을 국회의원 후보,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김경수 경남지사 후보를 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분열주의자입니다. 이들이 모두 낙선한 것은 분열주의세력의 힘이 약해지고 거점이 사라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앞으로 이재명 민주당 정부가 내부 분열을 딛고 전열을 재정비하기에 유리한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성과입니다. 

 

분열주의자들 가운데 핵심은 조국과 정원오입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만약 이들이 당선되었다면 이재명 민주당 정부 내에서 분열 행각을 극대화하면서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정부를 무력화하려 했을 것입니다. 이들의 낙선은 참으로 다행입니다. 

 

패배와 승리 가운데 승리 지점이 주요하다

 

이처럼 우리 국민은 6.3지방선거에서 진 지점도 있고 이긴 지점도 있습니다. 이 중에서 더 주요한 것은 이긴 지점입니다. 

 

국민이 진 지점, 즉 내란세력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한 건 자력으로 이룬 게 아닙니다. 분열주의자들이 난동을 일으켜 이재명 민주당 정부 안에서 대립이 격화하면서 어부지리를 얻은 것입니다. 

 

따라서 이재명 민주당 정부 내의 분열주의세력을 제거하는 게 더 중요하고 주된 의미를 갖습니다. 분열주의세력을 제거했기 때문에 앞으로 내란세력을 다시 진압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과 미국의 대결이었다

 

한국 정치에 깊숙이 개입해 온 미국은 우리 국민의 투쟁으로 위기에 몰릴 때마다 자기가 키운 세력을 동원해 판세를 엎으려 했습니다. 이번에도 내란세력이 궤멸의 위기에 처하자 오랫동안 준비된 분열주의세력이 총동원됐습니다. 

 

박근혜 탄핵 후 자유한국당이 궤멸 직전에 놓였을 때도 미국은 당시 촛불정부 안에서 윤석열의 난동을 부추겨 자유한국당 재건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끝내 정권을 찬탈했습니다. 그때 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을 중심으로 촛불세력을 공격하는 걸 중심 방도로 삼았다면 촛불세력은 오히려 더 강하게 뭉쳤을 것입니다. 그러면 미국은 절대 촛불세력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민주세력의 내분 공작에 주력했습니다. 

 

이번에도 미국은 분열주의세력을 내세워 공작을 벌였고 이게 적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주당의 공천에서 문제가 시작됐다

 

서울시장 후보에 정원오가 공천되자 사람들은 정원오가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원오가 행정을 잘 한다고 칭찬해서 많은 이들은 이재명 쪽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4월 24일 수제화 ‘아지오’ 성수점 개점식에 정원오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지오는 청각장애인이 만드는 수제화 브랜드인데 2012년 9월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선 후보가 아지오 신발을 구매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이날 행사도 유시민, 정청래, 탁현민 등 친문계 인사들이 대거 보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정원오가 친문계 인사들과 사이좋게 서서 발을 내밀며 찍은 홍보 사진이 온라인상에 돌면서 사람들은 정원오가 친명이 아니라 친문 아니냐는 의혹을 품게 됐습니다. 

 

▲ 당시 사진이 최근 다시 소셜미디어에 돌고 있다.  © 허재현 기자 페이스북


이후 정원오가 친문 인사인 이인영을 상임선대위원장으로 영입하면서 사람들은 ‘속았다. 정원오는 친문이었다’며 탄식했습니다. 

 

문제는 이 대통령이 정원오를 작년 말부터 콕 집어서 키웠다는 점입니다. 이 대통령이 사람을 잘못 본 게 결정적 패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대통령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박주민에 힘을 실어주었지만 이미 끓어오른 분위기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만약 이번에 박주민이 서울시장 후보였다면 내란 청산 명분도 살리고 선거에서 승리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정치적 사이다가 빠진 ‘일잘러’론이 얼마나 허망하고 위험한지 이번 선거에서 확실히 검증됐습니다. 

 

평택을 선거도 공천이 문제였습니다. 민주당에서는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김용남 전 의원이 후보의 물망에 오른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조국을 이기는 후보를 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약 김용을 공천했다면 아마 당선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청래 대표가 조국을 당선시키기 위해 머리를 굴리다가 국힘당이 당선되는 사태를 빚은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정청래는 김용남 후보를 거의 도와주지 않아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서울도, 평택을도 공천을 잘못하는 바람에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졌습니다. 

 

더 중요한 건 공천 문제가 국민이 승리하느냐 패배하느냐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됐다는 점입니다. 만약 정원오가 당선됐다면 국힘당을 패배시킬 수는 있지만 분열주의가 살아납니다. 반대로 정원오가 낙선하면 분열주의는 약화하지만 국힘당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합니다. 이런 부조화, 딜레마가 생긴 출발점이 바로 공천 문제입니다. 

 

그러나 국민은 위대했다

 

신기하게도 우리 국민은 수박을 정확히 가려보고 모조리 떨어뜨렸습니다. 낙선자들을 두고 개별 후보들의 선거운동 방식에서 원인을 찾는 분석도 있습니다. 하지만 추미애 경기도지사 후보는 선거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았지만 당선됐습니다. 중요한 건 개혁 사이다인가, 수박인가 하는 점입니다. 

 

이걸 보면 역시 우리 국민은 위대하고, 위대한 국민이 있어 희망이 있습니다. 

 

누가 분열주의자인가

 

조국 측은 친명세력을 분열주의세력이라고 공격합니다. 그럼 누가 분열주의자인지 판별하는 기준은 뭘까요?

 

우리 국민은 내란 청산과 국민주권 실현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재명 정부는 대단히 불철저하고 문제도 있지만 큰 흐름에서는 이런 국민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은 이재명 정부를 흔드는 친문세력이 분열주의세력입니다. 

 

만약 조국이 친명이고 친민주당이면 왜 조국혁신당을 따로 만들었겠습니까? 그냥 민주당 안에서 자기 뜻을 펴면 됩니다. 너무 단순명료합니다. 

 

이재명 정부 들어 코스피가 5000을 돌파하자 조국은 2월 9일 조국혁신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코스피 5000의 온기가 대다수 국민에게 닿지 못했다면, 그것은 시장의 실패가 아니라 정치의 실패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높아지는 수치와 우상향 그래프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공장은 문을 닫고, 노동자들은 장갑을 벗고 있다”라며 “이재명 정부가 조국혁신당의 지적에 귀 기울이고 대책을 마련해주시길 바란다”라고 정부를 비판했습니다. 

 

물론 조국의 발언 자체는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선거를 앞둔 5월 6일 코스피가 7000을 돌파하자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가 출범한 지 337일 만의 쾌거”, “이재명 대통령의 과단성과 기업·국민의 노력 덕분”이라면서 “이재명 대통령께 감사드린다”라고 썼습니다. 

 

어떤 게 진심일까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 더. 이번 선거를 앞두고 ‘부정선거론’을 설파한 세력이 있습니다. 모스 탄을 필두로 한 미국, 전한길, 황교안, 장동혁 그리고 조국입니다. 조국 후보 선대위가 선거 감시 활동을 한다며 ‘부정선거감시단’을 만들자 일각에서는 황교안의 ‘한미 부정선거조사단’을 따라하느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보통 정당이나 선대위는 불법 선거운동을 감시하기 위해 ‘공명선거본부’, ‘클린선거감시단’ 같은 명칭을 쓰는데 왜 ‘부정선거’라는 표현을 썼는지 의아합니다. 뭔가 느낌이 오지 않나요?

 

문재인을 역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문재인은 임기 말 기준 역대 가장 높은 40%대 지지율을 유지하며 퇴임했습니다. 그래서 유일하게 레임덕(권력 누수) 없는 대통령이었다고 자랑합니다. 마지막 퇴근길에서는 “여러분, (제가) 성공한 대통령이었습니까?”라고 물으며 “다시 출마할까요?”라는 ‘무서운’ 농담도 던졌습니다. 자고자대가 심한 인물입니다. 친문세력도 자기들이 최고인 줄 알고 권력을 다시 차지하려고 투쟁을 벌입니다. 

 

문재인은 역적입니다. 

 

2018년 그 좋았던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를, 미국의 연장된 팔 역할을 하며 걷어차 버렸습니다. 이런 기회는 아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엄청난 역적죄를 저질렀습니다. 

 

또 윤석열을 키워 줘서 박근혜 탄핵 촛불의 성과를 말아먹었습니다. 민주주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대역죄를 저질렀습니다. 

 

또 집값을 폭등시켜 20·30세대를 보수화시켰습니다. 이들 세대의 뇌리에 민주당은 무능과 배신의 상징으로 깊숙이 새겨졌습니다. 

 

게다가 이런 통탄할 역적죄를 저지르고도 국민 앞에 제대로 사죄와 반성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남 탓으로 일관하면서 아직도 자기들이 잘했고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는 환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 투쟁에 집착합니다. 

 

더 늦기 전에 문재인을 역적으로 규정해야 민주진영의 분열을 막을 수 있습니다.

 

승리를 위한 과제

 

자주의 기치를 높이 들고 광장을 키워가야 합니다. 이번 선거는 자주 없이는 민주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 선거였습니다. 미국의 내정간섭과 정치 공작을 끊어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광장을 계속 키워야 합니다. 한국 역사를 돌아봐도 광장이 없는 선거 승리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국민을 떠받드는 참된 민주정치 역량을 키워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한계가 극명히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국민을 떠받드는 것보다 자기 권력 향유가 우선인 자들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진보운동진영이 국민을 떠받들고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진보운동진영은 끊임없이 혁신하면서 국민을 하늘로 떠받드는 정치 역량을 꾸준히 키워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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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은 선거 때 대체 뭘 한 건가…수상한 전조 현상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06 08:36
  • 수정일
    2026/06/06 08:36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지방선거 평가] 민주당의 무색무취 선거 전략, 국민의힘은 반등의 디딤돌 놓았다

26.06.05 16:37최종 업데이트 26.06.05 17:45

'6.3 지방선거 게릴라칼럼'은 시민기자가 쓰는 지방선거 관련 칼럼입니다.[편집자말]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총괄상임선대위원장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남소연

기대에 미치지 못한 민주당, 선전한 국민의힘, 결정적 패착 조국혁신당. 이번 지방선거 결과에 대한 간략한 요약이다. 분명 민주당은 2022년 8회 지방선거보다 성적이 좋았고, 국민의힘은 밀렸다. 그러나 '승리'라는 민주당의 자평에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세간의 평가 기준이 2022년이 아니라 2018년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조기 대선, 조기 대선 1년 뒤 열린 지방선거라는 공통점은 이번에도 민주당이 2018년에 버금가는 성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서울 등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조건이 무르익었던 승부처에서 국민의힘에 패배했고, 평택과 부산 보궐선거에서도 패했다.

▲7~9회 지방선거 결과이번 9회 지방선거는 8회가 아니라 7회 지방선거 결과를 준거점으로 한다. 당시에 비하면 매우 유리한 조건에서도 민주당은 압승하지 못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 조합.손우정

문제는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느냐다. 이번 지방선거를 단지 몇몇 결과에 대한 아쉬움으로만 넘기기 어려운 이유는, 앞으로 민주당에 닥쳐올 수 있는 더 심각한 위기의 전조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에서 무얼 하려고 했나?

돌아보자. 이번 지방선거의 시대 과제는 무엇이었을까? 민주당은 어떤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번 지방선거에 임했을까? 내란 세력 청산이었을까, 사회대개혁이었을까? 이 질문에 쉽게 답하기 어려운 이유는 민주당에게 어떤 일관된 기조와 방향, 메시지를 읽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내란 세력 청산이 절실한 1순위 과제였다고 보기에도 석연치 않다. 과거와 달리 전국적인 후보 단일화나 연대 시도도 없었고, 그나마 진행된 곳은 지역 차원의 연대뿐이었다. 그마저도 민주당이 주도한 것이 아니라, 소수 정당의 양보에 따른 결과다. 일정한 희생을 해서라도 내란 세력을 청산하겠다는 의지보다, 자기 승리의 의지가 더 컸다.

동네 단위로 내려가면, 견고한 카르텔도 보인다. 정치개혁을 말하면서도 여전히 무투표 당선자를 양산한 2인 선거구를 그대로 둔 조치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담합에 따른 결과다. 이는 내란 세력 청산은커녕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어떤 위기에 처하더라도, 서로 일정한 지분을 항상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안전망으로 작동한다. 동네 정치, 풀뿌리 정치를 중앙 정치에 복속시키고 공천헌금 논란을 만드는 것도, 이런 구조를 배경으로 한다.

내란 청산에 진심을 보이지 않은 대신, 사회 개혁의 의지를 보인 것도 아니다. 무상급식처럼 진보적 어젠다를 중심으로 야권 연대를 추진했던 지난 2010년 지방선거처럼 특별히 부각된 정책 어젠다도 없다. 마치 유리한 정치적 조건, 높은 대통령의 인기에 편승해 이미 이기고 있는 분위기의 변수가 될 어떤 이슈도 만들지 않겠다는 듯, 민주당의 정책은 '무난함'으로 도배됐다.

선거 승리와 집권 경험이 풍부하게 쌓여 있는 민주당은 이제 굳이 개혁을 외치지 않아도 일정한 수준 이상의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득권을 가졌다. 이 거대해진 정당 주위에는 다양한 욕망과 욕심, 은밀한 이해관계가 끊임없이 달라붙고 있다. 이들은 때론 분노를, 때로는 열정을 시시각각 적절하게 표출하지만, 막상 자신이 결합해 있는 기득권의 핵심은 건드리지 않는 기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중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민주당이라는 이름은 다양한 진보적 열망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존재해 왔다. 물론 진보정치의 실패와 주변화가 이런 경향을 촉진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결코 겨냥하지 않는 민주당식 개혁의 한계가 드러나면, 대중의 불만은 민주당을 넘어 진보라는 가치 전체로 향하게 되고, 그 반대의 세력에게 권력의 무게추를 옮겨 준다. 가설이 아니다. 수없이 반복되어 온 우리의 역사다.

새로운 분노와 적대를 담고 있는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인이 지난 4일 오전 서울시청 정문에서 감사인사를 마친 뒤 시청 로비로 향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무너질 줄 알았던 국민의힘은 기세가 올랐다. 일각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한강 벨트 구청장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한 것을 부동산 정책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물론 타당하지만, 경제적 이해관계가 국민의힘 선전의 모든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20대 남성 등 부동산과 거리가 있는 세대의 압도적 국민의힘 지지의 이유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고 젊은 보수 지지자의 확산을 냉전적 반공 이데올로기에 포획되어서라고 해석하는 것도 안일하다. 그들 중 목소리 큰 이들 중에는 윤어게인도, 보수 정치 지망생도 있겠지만, 사회 구조와 기득권에 대한 젊은 층의 불만과 저항의 감정이 근저에 깔려 있다. 국민의힘이 집권 여당일 때는 반공 극우가 청년 보수를 주도했겠지만, 야당의 위치가 되면 이런 불만이 대중성을 갖는다.

일각에서는 오세훈과 한동훈의 승리로 장동혁 대표와 윤어게인 세력이 위축되고, 합리적 보수가 힘을 얻게 되면서 국민의힘이 자중지란에 빠질 수도 있다고 보는 모양이지만, 어불성설이다. 이진숙과 김태규도 당선됐다. 국민의힘은 두 세력이 본격적인 내전에 돌입하기보다, 적절하게 그런 시늉을 하면서 일종의 역할 분담을 이룰 것이다. 당내 대립과 갈등을 활용해 극우와 합리적 보수를 모두 담아내고, 여기에 다양한 사회적 불만까지 포괄할 수 있는 틀을 갖추는 것이다. 쉽게 말해 확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민주당 입장에서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히 '승리'로 평가하고 넘길 일이 아니다. 2017년 대선 승리, 2018년 지방선거 승리, 2020년 총선 승리 등 일련의 정치 이벤트에서 압승해 막강한 정치권력을 누려왔던, 20년 집권을 떠벌릴 정도로 자신감에 넘쳐났던 민주당의 지지율이 순식간에 빠지며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모두 패배하게 한 2022년의 국면이 다시 도래할 수도 있다. 전조는 이미 나타났고, 국민의힘은 반등의 디딤돌을 놓았다.

'승리'를 외치는 것은 민주당의 자유지만, 이 전조를 읽지 못해 앞으로 닥칠 재난을 대비하지 못한 책임은 온전히 져야 한다.

다시, 사회대개혁?

‘사법부의 정치개입 규탄! 내란청산과 사회대개혁 촉구 기자회견’이 지난 2025년 5월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앞에서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모습.권우성

우리 역사에서 열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비극의 사이클은 드문 경험이 아니다. 그래서 2024년 12월의 밤부터 줄곧 주장했던 것은 내란 청산에 사회대개혁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선 이후, 민주당의 개혁 의지가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스스로를 개혁의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권력 확장이 곧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안일하고 퇴행적인 인식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개혁해야 할 시스템의 기득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다양한 불만은 기득권에 대한 불만으로 대치되고, 그 대상은 민주당으로 특정되며, 이질적이고 다양한 요구와 불만들이 민주당과 적대하고 있는 거대 야당에 대한 지지로 결집할 수 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몇몇 선거의 결과들, 높은 투표율에도 민주당이 압승하지 못한 사실 등은 대중의 정서가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다.

물론 선거 평가는 과학적이라기보다 결과론적인 해석 투쟁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해석은 이후의 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승리라고 자축할 것인가, 아니면 뼈를 깎는 내부 혁신이 필요하다고 할 것인가? 그것이 없으면 다시 2022년의 국면이 곧 재현될 것이라는 명확한 위기감을 가져야 하는가?

답은 너무 뻔하지 않은가?

#지방선거 #사회대개혁 #내란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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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산당 책임비서 김준연, 김구 암살의 배후로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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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김준연 편

조선 최고 인텔리가 반헌법의 설계자 된 사연

"이승만 뜻" 헌법 초안 내각제를 대통령제 바꿔

내각제 초안 5분만에 연필로 쓱쓱 대통령제로

천하의 모사꾼으로 야당 분열시킨 극우 브레인

국회프락치 발단 제공하고 반민특위 와해 앞장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펼쳤다. 김준연(金俊淵, 1895~1971) 항목의 소제목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에서 해방 후 극

우 정치인으로 변신."

"이승만 뜻에 따라 내각제 헌법초안을 대통령중심제로 급히 바꾼 장본인."

"천하의 모사꾼으로 야당을 분열시킨 극우 브레인 노릇."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회프락치 사건 발단 제공하고 반민특위 와해에 앞장서."

한 사람이다. 일제치하에서 고문과 옥고를 겪으며 조선독립을 꿈꾸던 인텔리가, 해방 후에는 반민특위를 파괴하고, 국회프락치 사건의 불씨를 당기고, 김구 암살의 배후로 거론되고, 부역자 학살의 법적책임자가 됐다. 이 변신의 궤적이 이 글의 핵심이다.

'영암 천재', 조선공산당 책임비서까지

김준연은 1895년 4월 8일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다. 영암보통학교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성공립고등보통학교를 전교 6등으로 마친 뒤 1914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동경제국대학 독법과를 졸업하고 1921년 독일 베를린대학에서 정치·법률학을 공부했다. 귀국 후 1925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이 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특파원이었다. 그는 소비에트연방 전체회의를 참관하고, 공산주의 이론가 부하린의 연설문을 번역 게재했으며, 스탈린의 저서를 39회에 걸쳐 연재했다.

1926년 재건된 제3차 조선공산당에서 선전부장을 맡았고, 1927년 9월 당 책임비서가 됐다. 1928년 2월 간부들이 모두 검거되면서 조선공산당이 붕괴됐고, 김준연도 체포돼 6년 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그런데 출옥 후 그는 공산주의와 절연한 정도를 뛰어넘었다. 극우정치인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이 변신에 대해 역사가들의 해석은 다양하다. 공산혁명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판단이었다는 설, 감옥 안에서 배신자로 의심받으면서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꼈다는 설, 이승만의 부인 프란체스카와 독일어로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정치인이라는 특수한 위치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는 설. 어느 쪽이든 그 변신이 완전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김준연(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전향자의 역사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궤적을 걸은 역사적 인물들이 떠오른다. 아르투르 쾨슬러(Arthur Koestler, 1905~1983)다. 헝가리 태생 영국 작가로 1930년대 공산당원이었다가 스탈린의 대숙청에 환멸을 느끼고 전향해 반공주의의 대표적 지식인이 됐다. 『한낮의 어둠』(1940년)은 스탈린식 재판을 고발한 걸작으로 남았다. 쾨슬러의 전향은 지적·사상적 변화의 산물이었다.

이탈리아의 팔미로 톨리아티(Palmiro Togliatti, 1893~1964)는 반대 방향을 걸었다. 소련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이탈리아 공산당을 이끌어 전후 이탈리아 민주화에 기여했다. 신념을 끝까지 지킨 사람이다.

김준연은 둘 중 어느 쪽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는 전향 후 자신이 싸우던 방향의 정반대에 서서, 친일청산을 방해하고, 국회프락치 사건의 불씨를 당기고, 부역자 학살을 법적으로 처리했다. '권모술수의 달인'으로 불린 이유가 있었다.

 

1969년의 아르투르 쾨슬러(위키피디아)

헌법의 씨앗을 대통령제로 바꾼 30분

1948년 제헌의회가 구성됐다. 처음 초안은 내각책임제였다. 국무총리가 실권을 갖고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가 되는 구조였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유력시된 이승만(1875~1965)이 헌법기초위원회에 출석해 "직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책임제가 적합하다""이 헌법 하에서는 어떠한 지위에도 취임하지 않겠다"고 사실상 협박을 했다. 대통령이 없는 초대정부는 있을 수 없었다.

헌법기초위원들이 고민하고 있을 때 김준연이 나섰다.

"내가 고치겠소! 30분 이내에 고쳐놓겠소!"

그리고 초안에 연필로 죽죽 줄을 그은 뒤 "이만하면 되었소"라고 했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 순간 대한민국 헌법의 권력구조가 대통령제로 바뀌었다. 훗날 헌법기초에 참여한 유진오는 탄식했다.

"이 결정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헌법은 결정적으로 대통령제로 넘어가고 대통령 전제 독재의 길은 환하게 뚫려진 것이다."

김준연의 연필 한 획이 대한민국 헌정사의 방향을 바꾼 것이다.

 

김준연(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국회프락치 사건의 불씨, 반민특위의 적

1949년 5월 9일 동아일보 1면에 김준연이 기고한 「의정 단상의 1년 회고」가 실렸다. 이 글에서 그는 민주당에 비판적인 소장파 의원들을 사실상 남로당의 지시를 따르는 세력으로 몰아붙였다. 이것이 국회프락치 사건의 도화선이 됐다. 검찰이 기고문 게재 9일 후 소장파 의원 3명을 체포했고, 이어 6월부터 8월에 걸쳐 13명의 소장파 의원들이 구속됐다. 당시 전체 국회의원의 6.5%였다.

국가보안법 발의에 앞장섰던 제헌의원 김인식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국회프락치 사건 관계자에 좌익은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조작했다기보다는 김준연 의원이 만들어 이 박사를 믿게 한 것으로 본다."

같은 시기 김준연은 반민족행위처벌법에도 적극 반대했다. 친일파 처벌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고 형이 가혹하다며, 조항을 대폭 축소하자고 주장했다. 친일 악질경찰 노덕술의 은닉을 도운 이두철에게 체포계획을 알려줘 도피를 도왔다는 기록도 있다. 중추원 참의 출신 현준호의 체포에 반대하고, 그 사실을 현준호에게 미리 알려 자수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김준연(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김구 암살의 배후 의혹

1949년 6월 26일, 김구(1876~1949)가 안두희의 총탄에 쓰러졌다. 4·19혁명 이후 백범암살사건진상규명투쟁위원회는 김구 암살의 배후로 김준연을 지목했다. 이에 대해 김준연은 "전혀 사실 무근"이라며 김창숙을 고소했다. 1992년 안두희의 폭로에서도 김준연의 이름이 일부 거론됐다.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는 김준연과 신성모 등이 포함된 이른바 '88구락부'가 김구 제거에서 이해관계가 충분히 일치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진상은 아직 완전히 규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이 사건과 계속 함께 거론된다는 사실 자체가 말해주는 것이 있다.

 

전남 영암에 있는 낭산 김준연 기념관의 동상이 월출산을 배경으로 서 있다. 네이버 블로그 통통윤이맘 갈무리

법무부장관으로 부역자 학살을 처리하다

1950년 11월 서울 수복 후 김준연은 법무부장관에 임명됐다. 그의 재임 기간 부역 혐의자에 대한 불법 처형이 이어졌다. 홍제리(지금의 홍제동)에서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한 재소자들이 무릎 꿇린 채 총살됐다. 국제적십자위원회 대표는 법무부장관 김준연이 어떤 범죄도 저지르지 않은 공산주의 혐의자들을 구금하고 "예방차원에서 학살하는 것을 정당화했다"고 보고서에 기록했다. 김준연은 이를 비상조치령에 따른 "합법적 처리"라고 주장했다. 그 비상조치령은 그가 한국전쟁 피난 도중 직접 만든 것이었다.

 

김준연(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사상의 전향을 연구한 역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있다. 가장 극단적인 전향자는 가장 극단적인 반대 방향으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조선공산당 책임비서였던 김준연은 해방 후 가장 극렬한 반공주의자가 됐다. 그리고 그 반공주의의 이름 아래 친일 청산을 막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소장파 의원들을 공산주의자로 몰고, 부역자 학살을 합법화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1948년 6월의 그 5분을 떠올렸다. 김준연의 연필 한 획이 대통령제로 헌법을 바꾼 그 순간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헌정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가능하게 한 헌법구조의 씨앗을 심은 사람, 그리고 그 씨앗이 70년 넘도록 어떤 열매를 맺어왔는지를 우리는 지금 목도하고 있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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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여인형, ‘합수부 훈련, 경찰 등 불러 리허설하라’ 지시···실무진은 ‘못한다’ 반발”

수정 2026.06.05 06:04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지난 지난해 11월2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사건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발언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2024년 상반기 ‘자유의 방패’ 연습(한·미 연합연습) 당시 전시 계염사령부의 합동수사본부 편성 훈련을 하면서 이례적으로 “군·관 인력을 실제로 동원해 훈련하라”고 지시했다는 방첩사 내부 증언이 나왔다.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는 여 전 사령관이 12·3 내란을 염두에 두고 이런 지시를 내린 것으로 의심한다.

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종합특검은 최근 방첩사 간부 A씨를 불러 조사하면서 “여 전 사령관이 2024년 상반기 자유의 방패 연습 때 계엄 합수부 편성 훈련도 ‘야외기동훈련’(FTX) 방식으로 실시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자유의 방패 연습은 한·미 군 당국이 한반도 방위 절차 등을 숙달하기 위해 실시하는 훈련으로 매년 상반기·하반기에 한차례씩 진행한다. 전반기 훈련은 군만 참여하는 반면 하반기 훈련은 정부 주도의 비상연습인 을지연습과 함께 실시한다. 한·미는 이 연습과 연계해 실제 병력과 장비가 움직이는 FTX도 병행한다. FTX에는 해병대와 공군 전투비행단, 특수작전부대 등 기동타격 부대가 참여한다. 반면 군 지휘부나 행정 등을 담당하는 비타격 부대는 부대 편성 등 문서·통신 훈련만 한다.

방첩사의 전시 합수부 편성 훈련은 수사·보안 등 행정·사법적 통제가 주를 이룬다. 그간에는 합수부 편성 절차 숙달과 연락 체계 점검 등을 ‘도상훈련’(지도를 이용한 가상훈련) 방식으로 시행했다.

그런데 여 전 사령관은 부임한 뒤 열린 첫 합수부 편성 훈련을 이례적으로 FTX로 지시했다는 내부 증언이 나온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은 경찰·해경 등 합수부에 편성된 외부 수사기관 인력을 파견받아 수사·체포·호송 등 작전을 펼치는 대규모 훈련 시행을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방첩사 내부에선 ‘무리한 지시’라는 반발이 나온 것으로 파악됐다. 상반기 연습은 군 당국의 훈련인데, FTX를 하면 경찰 등 정부 기관이 동원되는 상황이 발생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A씨는 특검 조사에서 “자유의 방패 연습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내부 의견이 모였고, 여 전 사령관에게 ‘할 수 없다’고 건의해 FTX는 실행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여 전 사령관은 FTX 대신 부대원들을 연병장에서 사열하는 방식의 훈련을 진행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수사·체포·호송 훈련이 가상으로 진행됐는데, 이 또한 이례적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은 여 전 사령관의 FTX 지시 등을 그가 ‘계엄 리허설’을 시도한 정황 중 하나로 보고 있다. 여 전 사령관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의중을 감지하고, 합수부 운영을 미리 연습하려 한 것으로 특검은 의심한다.

여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이 2024년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그의 지시를 받아 방첩사에 정치인 체포를 명령한 혐의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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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초 ‘빨갱이 사냥’…제헌국회의원 서용길은 어떻게 날개가 꺾였나

고경태기자

  • 수정 2026-06-05 06:40

국회프락치 사건의 주요 순간 담은 부인 이영란의 비망록

13명 중 홀로 남쪽 잔류…말년에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

지난 4월27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서용길 전 국회의원과 이영란 여사의 아들인 서영철씨가 반민특위 및 국회프락치 사건을 기록한 비망록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경태 기자

국회프락치 사건이란 1949년 이승만 정권이 소장파 국회의원 13명을 ‘남로당 프락치’ 혐의로 제거한 일이다. ‘용공 조작’으로 국회를 제압하고 친일 청산을 가로막은 대한민국 국가폭력의 시초라는 평가를 받지만, 아직 한 번도 국가 차원의 진실규명이 된 적은 없다. 서용길(1912~1992)은 이 사건에 휘말린 13명 중 한국전쟁 와중에 북한에 가지 않고 남쪽에 남은 유일한 인물이다.

한겨레는 서용길 전 의원을 주인공으로 해 부인이 쓴 비망록을 아들 서영철(74, 일창육영재단 이사장)씨로부터 입수해 공개한다. 부인 이영란 여사(1920~2013)는 남편이 고난을 겪던 역사의 중요한 순간을 대학노트 25쪽 분량에 기록해 놨다. 지난 4월부터 한겨레와 인터뷰를 나눈 서영철씨는 “어머니가 평생 국회프락치 사건을 한스러워하며 기억과 자료를 정리하셨는데, 아버지 돌아가신 이듬해인 1993년부터 기어코 기록을 남기셨다”고 말했다. 비망록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이 사건이 조작임을 드러낸다. 마침 6일은 국회프락치 사건을 빌미로 서울 명동에 있던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이 경찰의 습격을 받고 해체의 길로 들어선 지 77주년 되는 날이다. 서 전 의원은 반민특위 특별검찰관으로도 활동했다.

“성대 교수 자리를 사표 내고 입후보했다”

비망록은 이렇게 시작한다.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서용길은 연희전문대 문과를 졸업하고 교토제국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다. 이후 성균관대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 1948년 5·10 총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윤보선을 꺾고 당선하며 젊은 정치인으로서 날개를 활짝 편다. 이는 동시에 가혹한 운명의 시작이었다. 비망록은 그 운명을 따라간다. 1949년 남로당 지령을 받고 외군 철수 운동을 벌였다는 ‘국회 프락치’ 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 갇힌 서용길을 비롯한 제헌국회의원 13명. 그런데 예기치 않은 반전이 일어난다.

서영철씨가 소장하고 있는 가족 사진첩 속의 아버지 서용길. 서영철 제공

1950년 6월25일

밖에서 쿵쿵하는 소리와 사람들의 함성이 감방 안에까지 들려온다.

“으와아 감옥 문이 열렸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북에서 인민군이 쳐들어온 것이다. 너나없이 감옥을 빠져나가려고 아우성들이다.

S는 혼자 감방 안에 앉아있다. 누가 와서 나가시지요 한다.

“아니 나는 무죄 석방돼야 나갈 거다.”

아무도 없는 감방에 혼자 남아서 앉아있는 S를 젊은이가 와서 부축해준다. 선생님 여기 계시면 위험합니다. 나가시지요. 비로서 S는 자리에서 일어나 감옥 밖으로 나와 하늘을 바라본다.

(‘S’는 서용길 전 의원을 일컫는다. 부인 이영란 여사는 비망록 속에서 내내 남편을 S로 표기했다. 또한 인민군의 서울 점령으로 서대문형무소가 개방된 것은 실제로는 6월28일이다-필자 주)

국회프락치 사건으로 기소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13명의 제헌국회의원들은 1950년 3월14일, 1심 판결을 받았다. 서용길은 신성균·이구수 등과 함께 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형을 받았고, 이문원·노일환은 같은 혐의로 가장 높은 10년형을 받았다. 6년형을 받은 이도 있었다. 이들은 곧장 항소했다. 두 달이 조금 지난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헀다. 2심 판결이 내려지기 전이었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고 서대문형무소가 개방됐다. 의원들은 각자 엄중한 선택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섰다.

서용길은 감옥 문이 열렸는데도, 처음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고집했다. 비망록에 적힌 대로 “무죄 석방돼야 나가겠다”는 말은 잡아 넣은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내보내 줘야 나가겠다는 뜻이었다. 그는 반공주의자였고, 일찍이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한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북한 공산당에 의해 자신이 풀려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아들 서영철씨는 “아버지는 강직했으나 융통성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그렇다고 계속 감방에 남을 수는 없었다. 주변에서 강권하자 하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이영란은 소설의 한 대목을 쓰듯 남편이 “하늘을 바라본다”고 적었다. 서용길이 정말 그날 하늘을 바라보았다면, 어떤 상념에 젖었을까.

서용길은 한때 민족과 국가의 운명을 짊어졌다고 자부하던 젊은 소장파 의원이었다. 1950년, 불과 서른여덟이었다. 2년 전 대한민국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인 5·10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말 잘한다 서용길, 똑똑하다 서용길”이라고 열광하며 그를 뽑아주었다. 비망록 앞머리에도 “시골 사람들은 돈 많은 신사 윤보선보다 가난한 자기 고향 출신을 뽑았다. 정견이 좋다는 평이었다”고 썼다. 그러나 남로당과 내통한 프락치, 즉 간첩 혐의자로 추락해 모든 지위와 명예를 잃었다. 형무소에서 석방됐지만 오히려 더 혼란스러운 처지였다. 1년 전만 해도 그는 반민특위 특별검찰관으로 법정에서 친일파들에게 호통을 쳤다.

1948년 7월17일 당시 국회의사당으로 쓰이던 중앙청 앞에서 촬영된 대한민국 헌법 공포 기념 제헌국회의원들의 단체 사진. 맨 아랫줄 가운데 이승만 국회의장이 보인다. 이승만은 7월20일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가기록원

반민특위 사람들은 보수도 없이 성실하게 일을 했다. 민족정기를 바로잡는다는 긍지 하나로.

재판소에서 제일 큰 4호 법정에서 재판은 있었다.

친일파들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다고 하나같이 발뺌을 했다.

김대우는 일제 때 도지사를 지내고 학병, 정신대 색출에 일체 협력한 자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창씨개명했는데, 나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애국자이다.”

이때 검찰관이 일어섰다.(S) (서용길이 일어섰다는 뜻-필자 주)

“일제 때 창씨개명 하지 않아도 살 수 있었던 사람이 몇이나 되었는가.” 박흥식, 한상용(녹기연맹이라는 총독부 아첨단체) 비행기 헌납한 공주 갑부 김갑순 등을 열거했다. 방청석에서 감탄의 소리가 들렸다.

4호 법정은 서울 중구 정동에 있던 서울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 4호 법정을 일컫는 말이다. 반민특위 재판이 열린 곳이다. 피고인석에 선 김대우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하자 반민특위 특별검찰관 서용길이 ‘친일파들은 창씨개명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특혜를 누렸다’는 취지로 반박하는 대목이다. 김대우는 일제 강점기에 전라북도와 경상북도 지사 등 고위직을 지냈다. 반민특위 수사관들에게 1호로 체포된 이는 화신백화점을 기반으로 막대한 자본을 축적했던 기업가 박흥식이었다. 악질 고문경찰 노덕술과 김대우 등이 뒤를 이어 붙잡혔다.

반민특위는 한마디로 우리나라 최초의 과거사위원회였다. 지금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데, 반민특위는 조사권과 기소권, 재판권을 모두 가진 처음이자 마지막 과거사위원회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승만 정권이 반민특위를 가만히 둘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서용길 전 제헌국회의원을 주인공으로 반민특위 해체와 국회프락치 사건의 주요 순간을 기록한 부인 이영란의 비망록. 서용길이 반민특위 검찰관으로 있을 때 육당 최남선, 춘원 이광수가 구금된 일과 국회프락치 사건 검사인 오제도와 판사 사광욱에 관한 내용이 적혀있다. 서영철 제공

서용길 전 제헌국회의원을 주인공으로 반민특위 해체와 국회프락치 사건의 주요 순간을 기록한 부인 이영란의 비망록. 수사기관이 국회프락치 사건의 증거라고 발표한 ‘간첩 정재한’의 암호문서와 연루된 의원들의 최후진술 내용이 기록돼 있다. 서영철 제공

국회 내에서는 80명의 소장파 때문에 한민당이 제대로 일을 못 했다. 소장파 의원, 특히 반민특위 위원을 제거해야 편하게 되는 경찰과 한민당의 목적은 일치되었다.

일단 두 의원을 잡아들였다.

이구수, 이문원은 북쪽과 연락하여 국회 내에 동조자를 만들었다는 거다. 물론 이 두 사람은 소장파이다.

다음은 부의장 김약수를 비롯한 8명의 소장파 의원을 구속했다.

김약수로 말하면 일제 때 모진 고문을 받아가며 독립운동을 펼친 역사에 남을 만한 사람이다.(중략)

이들은 필동 헌병사령부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다. 욕탕에 집어넣고 전기를 통하게 하고 구타하고 했다.

헌병사령관은 전봉덕(전혜린 아버지). 후에 목사가 됐다.

이 사건의 검사는 오제도, 선우종원. 김준연은 오제도를 찾아가 왜 S를 그 멤버의 하나로 잡아들이지 않느냐고 재촉했다.

1949년 5월18일, 소장파 이문원·이구수·노일환 의원이 서울시경에 의해 체포됐다. 6월6일엔 서울 명동에 있는 반민특위 사무실이 경찰 습격을 받고 특경대원들과 권승렬 특별검찰부장이 무장해제됐다. 6월8일 이승만은 에이피(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반민특위 무장해제를 지시했다”고 말했다. 6월16일 ‘남로당 프락치’ 암호문서를 국부에 숨겼다는 ‘40대 여간첩’ 정재한이 개성에서 체포됐다. 6월21일 김약수 국회부의장 등 8명이 대검찰청 요원들에게 체포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6월26일 김구 선생이 경교장에서 암살됐다. 역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이승만의 6월 대공세’라고 일컫는다. 이승만이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비망록에 나오는 김준연은 이승만을 지지했던 한민당 소속 제헌국회의원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제3차 조선공산당 사건(ML당 사건)으로 7년간 복역했던 좌익이었지만, 전향했다. 나중에는 법무부 장관이 된다. 비망록엔 “김준연이 수사검사 오제도를 찾아가 왜 서용길을 잡아들이지 않느냐고 재촉했다”고 나와 있으나, 그 출처는 없다. 다만 김준연이 당시 소장파 의원들을 공산당원으로 몰아세우며 이들에 대한 체포를 부추겼음은 사실이다. 그는 동아일보 1949년 5월9일자 지면에 “60여명의 소장파 의원들이 김일성을 따르고 있고 그 선전방침을 충실히 실행하고 있다”고 썼다.

국회프락치 사건 1·2차 검거가 있은 직후 서용길은 숨어있었다. 김구 암살 하루 전인 6월25일 헌병사령부는 신성균 의원과 함께 그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경찰·검찰에 이어 헌병까지 수사에 뛰어든 셈이다. 비망록은 서용길의 은신처가 서울 명동 성모병원(가톨릭대학교 여의도성모병원의 전신)이라고 증언한다.

S는 위험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양심의 하나도 가책이 없다는 떳떳한 심경으로 태연했다.

장남 명철이가 홍역 후유증으로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다. 집에는 할머니가 지키고 있었다.

성모병원에 S가 있는 것을 아는 것은 수행원 최영화, 나, 중호 뿐이다.

헌병들은 최를 끌고 가서 S의 거처를 알리라고 모진 고문을 했다.

최는 함경도에서 월남한 사람으로서 성대 시절 교수와 제자로 알게 돼 그 당시 취직이 어려운 시국에 S의 수행원이 된 것을 감사하고 충성을 다했다.

최는 끝까지 모른다고 해서 몸을 얻어맞은 탓으로 몸이 구렁이 감기듯 험한 꼴이 되어 처와 그의 어머니는 통곡하고 이렇게 고문을 당했으면 바른대로 알리지 그러느냐고까지 했다.

내수동 집은 형사대가 점령하고 대문만 두드리면 형사가 먼저 맞아 우선 종로서로 끌고 갔다.

마침 일본에 있는 중호 아버지가 찾아왔다. 이분은 할머니 동생이 된다. (중략)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중호를 매달고 고문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먼 데서 아들 보러 왔는데, 이 광경을 보고 중호야 알면 말해라고 애원했다. 중호 입에서 명동 성모병원이 튀어나왔다.

1958년 촬영된 서용길 전 제헌국회의원과 이영란 여사 부부의 가족사진. 맨 왼쪽이 둘째였던 서영철씨. 서영철 제공

서용길은 수행원 최영화와 성균관대 교수 시절에 인연을 맺었다. 최영화는 헌병대에 끌려가서도 서용길의 은신처를 대지 않았다. 하지만 이영란의 오촌 동생이었던 중호는 일본에서 잠시 다니러온 아버지가 있는 앞에서 거꾸로 매달려 고문을 당한다. 아버지는 ‘중호야 알면 말해라’라고 애원한다. 고문을 못 이긴 중호는 결국 서용길이 어디 있는지 말하고 만다. 이는 당시 수사 과정이 불법체포와 감금·고문 및 가혹행위에 기반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서용길은 결국 7월30일 체포된다. 종로경찰서에 ‘구류’되었다. 이영란은 남편을 살리기 위해 나선다. 비망록에는 “나는 미국 영사관으로, 오제도(수사 검사), 수도청 수사과 과장 ‘최운하’ 집으로 구명운동을 매일 다녔다”고 써 있는데, 변호사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이것은 죄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이니만큼 그것이 해결돼야 한다고.”

드디어 재판날이 왔다.

재판장은 사광욱 판사다. (평안북도) 의주 출신으로 오제도와 동향이다.

전날 같은 의주 출신의 안면 있는 분을 판사 집으로 들여 보냈다. 그 당시 법원 관사는 의주로 전매청 맞은편에 있었다.

물론 면회 사절이다. 그러나 다녀온 사람의 말로는 사광욱 판사는 붓글씨로 판결문을 쓰고 있다고 했다. (중략)

도대체 프락치사건이라는 것은 이북에서 정모(정재한) 여인이 월경대에 비밀암호를 가지고 월남해서 국회의원들을 포섭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에는 정모 여인도, 그 암호문서도 볼 수 없었다.

모든 국회의원들이 최후진술을 했다. 노일환의 최후진술은 감동적이었다. 36세의 자기와 같은 나이에 모진 고문을 당한 박팽년을 생각했다고 했다. S는 죄없이 나라를 위해 백의종군한 이순신을 생각했다고 했다. S는 제일 낮은 3년이 선고되었다.

앞에서 밝혔듯, 구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은 국회프락치 사건 관련자 13명은 1950년 3월14일 1심 재판에서 3~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항소했지만 2심 판결을 받기도 전에 인민군이 서울까지 밀고 내려와 형무소 문이 열리면서 얼떨결에 풀려났다. 그것도 잠시,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면서 인민군은 패퇴했고 13명 중 12명이 가족을 남겨두고 북한으로 갔다. 북쪽 공안요원에 강제연행돼 된 이도 있고, 스스로 월북을 선택한 이도 있다. 자진월북을 했다 해도, 이승만 정권 아래서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이 큰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서용길만 남았다.

8월 중순경 새벽 4시경 대문 소리 죽이고 우리 가족은 집을 빠져나왔다. 네살 된 아이와 갓난아이는 엄마가 업고 짐보따리 들고 걸었다. 50리길 고양군 벽제면에 어느 농가를 향해서. 이 집은 성대(성균관대)의 제자 조인선씨 친척 집이다.

9·28 수복이 되어 피난민들도 하나둘 철수하고 우리만 남았다.

학교 선생이고 김씨라고 해서 있었는데 10월, 11월이 되어도 서울에 갈 기미가 없자 의심받기 시작했다.

하루 S는 두꺼운 외투 입고 집을 떠났다. 그때 울고 있는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고개 숙이고.

국회프락치 사건 유족들이 지난 3월24일 오후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송상교 위원장과 면담을 마친 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부터 서용길 전 의원의 아들 서영철씨, 강욱중 전 의원의 아들 강호림씨와 딸 강금자씨, 김병회 전 의원의 딸 김영자씨, 강욱중 전 의원의 며느리 이선자씨, 노일환 전 의원의 손자 노주상씨.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서울이 수복되기 한 달 전의 이야기다. 본래 서용길 가족이 살던 종로구 내수동 옆집엔 김OO이라는 자가 기거했다. 일제 강점기에 항일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인물이다. 비망록에는 “인민군이 서울에 들어오자 공산당 중요멤버였고, 나중에 전향했다”고 썼다. 서용길 부부는 김OO에게 위협을 느꼈다. 공산당은 그들의 선택지가 아니었다. 심야에 은밀히 경기 벽제의 농가로 도피한 이유다. 하지만 9·28 서울 수복 뒤 이웃들의 눈초리 때문에 벽제에 마냥 숨어있을 수도 없었다. 비망록에 나온 대로 ‘두꺼운 외투 입고 집을 떠난’ 서용길의 선택은 검찰청 자진출두였다.

서용길은 자신이 북에도 가지 않고, 죽지도 않고 생존해있음을 세상에 알려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증거 없이 자신을 프락치로 몰아 기소한 오제도 검사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고 여겼다. 그는 1950년 11월19일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국방경비법 위반으로 다시 구속됐다.

S는 서울에서 신문사를 방문했다.

그래야 오제도가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검찰청에 자진출두해서 그동안의 행동개요를 제출했다.

보안법(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갔지만 부역하지 않았다는 증명이다.

정말 사상이 있었다면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고. 하여튼 (6·25)사변으로 흑백이 판명된 것이다.

그러나 오제도는 하나 남아있는 S가 방해가 된다. 자기가 꾸민 프락치 사건이 무효가 되기 때문에.

S는 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바삐 오가는 사람들 사이를 아이 업고 데리고 어머니하고 홍제동 고개를 넘어 서울에 들어왔다. 서대문형무소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발을 옮겨놓았다. 전시에는 제각기 살길 찾아 살아야 한다.

S는 전의 감방생활과는 판이했다. 감방에서 죽어 나가는 사람, 미쳐서 울부짖는 사람, 아무도 밥 한 끼 넣어주는 사람이 없다. 가족이 뿔뿔이 헤어진 것이다. S도 같은 입장이다.

눈이 내리는 1·4후퇴에 죄수들은 묶여서 대전형무소로, 그리고 부산(부산형무소)으로 이동됐다. 피난민들이 기차를 타려고 아우성들이다. 중공군이 서울 가까이 와 있다. (중략)

부산에 도착하니 차 안에 인원은 반으로 줄어있었다. 모두 죽은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 서용길 전 의원과 함께 한 서영철씨. 서영철 제공

비망록이 묘사하는 풍경은 뒤로 갈수록 비참하다. 서용길은 기차를 타고 부산형무소로 이송될 때 며칠간 물을 한 모금도 못 마셔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을 못할 정도였다. 영어를 잘 했던 그는 이때 간수가 미군 헌병의 오해를 사 일촉즉발의 위기에 몰리자 영어로 변명을 해주고, 목숨을 부지한 간수는 서용길의 청에 따라 체신청장으로 있던 친척(김봉열)에게 연락을 해줘 은혜를 갚는다.

부산에 도착하니 절반이 죽어있었다. 서용길은 살아남았다. 마침내 1951년 2월5일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된다. 부인 이영란이 백방으로 뛰며 구명운동을 펼친 결과였다. 이영란은 비망록을 서용길의 석방소식으로 마무리한 뒤 맨 마지막 장엔 이렇게 적어놓았다.

그 당시는 반대하고 다른 의견을 말하면 저 사람 사상이 이상하다. 빨갱이 아냐?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히면 모든 면에서 매장되고 신체의 위험까지 받아야 했다.

서 의원이 만약 반민특위 검찰관을 하지 않았으면 프락치 사건의 일원으로 집어넣지 않고 옥고도 받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서용길 전 제헌국회의원을 주인공으로 반민특위 해체와 국회프락치 사건의 주요 순간을 기록한 부인 이영란의 비망록. 마지막 쪽에 “반대 의견을 말하면 빨갱이로 몰렸다”는 한탄이 적혀 있다. 서영철 제공

서용길 전 의원이 마지막으로 1967년 총선에 나갔을 때의 포스터. 한겨레 자료

이후의 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 서용길은 정치적 재기에 끝내 실패했다. 고향 아산에서 1954년, 1960년, 1963년, 1967년 총선에 도전했으나 내리 낙선했다. 생계를 위해 서울과 청주에서 교사생활을 하기도 했다. 1960년대 초반 마지막으로 서울 도곡동 숙명여고에서 도덕 과목을 가르치다 교사 일도 그만두었다. 서영철씨에 따르면, 어머니는 아버지를 두고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가정경제는 빵점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부인 이영란도 도쿄 일본여자대학에서 유학한 인텔리였다. 이영란은 학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며 4남매를 키웠다. 두 사람은 1962년 이혼했다.

“어머니는 생전에 아버지와 같은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김약수 부의장, 노일환 의원 등에 대해 ‘엄청나게 똑똑한 사람들, 너무 아까운 인재들이었다’며 안타까워하셨어요. 나중에 아버지와는 거리를 두셨지만 존경심만은 버리지 않았고요.”

이영란 여사가 생전 학원에서 학생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영란 여사는 일본여자대학에서 유학했다. 서영철 제공

서용길은 말년에 제헌국회의원들이 모이던 서울 통의동(처음에는 청진동)의 제헌동지회관(현 제헌회관)에 가 하루종일 신문을 보거나 바둑을 두면서 소일했다. 북으로 간 다른 제헌국회의원 자녀들을 만나 “너희 아버지는 아무 죄가 없다”고 위로하기도 했다.

권력에 철저하게 패배했던 서용길은, 그러나 눈을 감기 전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다. 서영철씨의 말이다. “아버지가 세상 떠나시기 1년 전 인생을 돌아보며 ‘내가 세상을 이겼노라’고 말씀하셨어요. 신약성서 요한복음 16장33절이죠.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하는 말씀. 어떤 부정이나 권력의 외압에 타협 안 하고 한평생 지조를 지켰다는 아버지의 자부심이 느껴졌어요.”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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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멸스러웠던 평택을 아귀다툼, 서울 우경화...그나마 희망적인 건

[6.3 지방선거 게릴라칼럼] 미완의 내란 세력 심판... 그 사이에서 길어올린 것들

26.06.05 06:48최종 업데이트 26.06.05 06:48

'6.3 지방선거 게릴라칼럼'은 시민기자가 쓰는 지방선거 관련 칼럼입니다.[편집자말]

지방선거가 끝났다. 숫자만을 놓고 보면 '민주당의 낙승'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분위기는 영 그렇지 않다. 기대와 관심을 끌던 곳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신승', '석패' 같은 말을 오랜만에 봤다. 개표 막판까지 접전이 이어질 만큼 아슬아슬한 결과라 그 충격이 더 크다.

그야말로 '낙승'을 예상했던 서울시장 선거와 돌풍을 기대했던 대구시장 선거, 모든 선거판의 이슈를 빨아들인 부산 북구갑과 경기 평택을 재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지 못했다. 온갖 호들갑과 이슈로 도배한 선거들에서 정작 패배하고 나니 마치 모든 선거에서 패배한 것 같은 패배감이 민주당을 휩쓸고 있다. 나아가 민주당의 패배가 국민의힘의 약진으로 이해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게 됐다.

내란 심판이 국민적 선택임은 명확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이 3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상황실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개표방송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던 중 생각에 잠겨있다.연합뉴스

그러나 내란 심판이 국민 대다수의 선택이라는 점은 명확했다. 전국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중 12곳에서 민주당이 승리했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민주당에 대한 지지는 명확했다. 2022년 지방선거에서 226개 중 145개 지역에서 국민의힘 후보가 승리했지만, 이번 선거에서 95개 지역에서 승리했을 뿐이다. 국민의힘에 대한 국민적 분노는 이번 선거를 통해 명확하게 표출됐다.

그럼에도 내란 세력이 돌아왔다는 불안감이 드는 이유는 내란 세력 청산과 민주당 승리가 마치 같은 것이라는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민주당이 그동안 '내란 세력 청산'이라는 기호를 자기들만이 전유할 수 있는 것인 양, 또는 자기들만이 내란 청산의 주체인 양 굴었기 때문이다. 하여 이 불안감의 실체는 국민의 불안감이라기보다는 민주당의 불안감이 국민에게 전염되고 있는 상황에 더 가깝다.

선거 이후 민주당은 당차원의 쇄신, 패배한 지역에서의 원인 분석과 반성, 무엇보다 압도적인 국회 의석수와 지방 권력,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만들어낼 비전에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책임을 떠넘기고, 당내 어떤 세력 때문에 분열해서 패배했다면서, 비전을 만들기보다 당권을 차지하려는 데 혈안이 된다면 민주당의 불안감은 정말 현실이 되어 나타날 것이다. 내란 세력의 완전한 부활, 내란 청산의 기호로서 쓰임을 다한 민주당의 자멸 같은 결과로 말이다.

경계해야 할 보수화와 우경화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가 4일 서울 중구 선거캠프에서 입장발표를 위해 도착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내란 세력 청산이라는 근본적인 과제와는 별개로 우리 사회의 보수화와 우경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보수화, 우경화가 내란 세력의 준동이나 극우세력의 확대와 비슷한 의미로 이해되어서도 안 된다. 둘은 엄격히 다르다. 특히 서울은 이제 보수와 우경화의 도시임이 명확하다. 대구와 경북이 '지역주의에 기반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지역'이라면 서울은 어쩌면 최초로 이익과 이념을 근거로 보수주의가 자리 잡은 도시일 수 있다.

한국, 특히 서울은 코스피 지수와 부동산 가격 같은 '지대'의 가치가 최우선이 되며, 공공성보단 능력주의, 개인의 존엄성보다는 학벌이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런 사회는 필연적으로 우경화된다.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자연히 그렇게 흘러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현 정부·여당, 즉 민주당은 코스피 지수와 실용주의를 강조하면서 이 우경화를 추동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들의 공약은 개발과 토건에 몰려 있었다. 재산세 인하를 공약으로 내세운 수도권 후보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민주당이 여전히 진보 개혁, 또는 중도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현실적인 진보, 개혁적인 중도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우경화 정책을 펼치는 것이 표를 얻어오는 데 유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갈수록 우경화되고 보수화된 땅에서 더 이상 이런 기만책이 표를 벌어다 줄 수 없다. 당장 서울시장 선거가 이를 방증한다.

어디에선가 권영국 정의당 후보가 가져간 1% 때문에 졌다는 이야기가 퍼져나가는 모양새다. 표차가 적게 패배하면 민주당 일각에서 늘 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진보정당 때문에. 어차피 같은 편인데, 왜 괜히 나와서는 국민의힘 좋은 일만 시키냐는 식의. 여기에 이대남의 극우화 같은 이야기들도 옵션처럼 이어진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정의당에 단일화 제안도 하지 않았다. 정의당의 정책과 비전에서 민주당과의 유사성은 사실상 찾기 어렵다. 민주당이 적어도 과거만큼이라도 진보와 개혁에 대한 비전을 공식적으로 내세우고 있다면 모를까, 선거에서 패배한 이후에 습관적으로 진보정당을 탓하는 것으론 쇄신이나 반성, 비전 같은 것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이제 이 기만적 노선은 수명이 다했다.

경기 평택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김용남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조국 조국혁신당 후보(오른쪽).남소연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와 분석들이 무의미할 만큼 사실 이번 선거에서 환멸스러웠던 것은 '평택을' 재보궐 선거 과정이었다. '가짜 민주당' 논란을 비롯해, 두 진영의 서로를 향한 네거티브 공세 속에 온갖 발언들이 희화화되고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렇게 지방선거의 모든 이슈를 평택이 다 빨아들였다.

두 진영의 다툼은 이번 선거를 극도로 오염시켰다. 유튜브만 켜면 쏟아지는 양 측의 아귀다툼, 거기에 스피커로 나선 지식인들의 혐오를 부추기는 언행이 결국 무엇을 만들었는지,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지를 정말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럼에도 민주주의는 흘러간다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후보가 4일 오전 2시 30분 대구 두류네거리에 있는 선거사무소에서 낙선 인사를 하고 있다. 소중한

그래도 길어 올린 것들이 있다. 안동에선 창당 후 처음으로 녹색당 시의원이 탄생했다. 전국 각지에서 진보정당의 기초의원들이 적게나마 일할 기회를 얻었다. 개발과 토건, 부동산과 주가 이야기밖에 없던 양당의 정치에 생활임금과 기후, 노동의 권리와 공공의 의료, 공공의료원에 갈 수 있는 마을버스 노선을 이야기할 기초단체 의원들이 탄생했다.

끝내 넘어서지 못했지만, 대구에서 민주당계 후보가 역대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박근혜와 이명박까지 동원됐음에도 이뤄낸 성과다. 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개인에 대해 좋고 싫음을 떠나, 끝내 지역에서의 편견을 돌파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지역 정치의 본질을 보여준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이슈가 중앙 정치에만 쏠리고, 온갖 추태가 난무하는 혐오스러운 풍경에도 61%라는 투표율이 가장 긍정적인 시그널이다. 유구했던 이십대 개XX론과, 정치혐오에도 끝끝내 내란 이후 이뤄진 첫 투표를 통해 내란 세력 청산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어떻게든 잘 흘러갈 수 있음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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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손아귀에 쥐어주는 한국 정치, 이젠 제발 끝장내야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6.05 06:42
  •  
  •  댓글 0
 
 

최근 12·3 비상계엄 종합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국정원의 행태는 한국 정치의 낡고도 부끄러운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국정원장 조태용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해외담당 부서가 주한 미국 CIA 책임자를 불러 비상계엄의 배경과 정당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해외 업무를 총괄하던 1차장 홍장원이 이 과정을 보고받고 재가한 인물인지 들여다보고 있으나 본인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핵심은 특정 개인의 재가 여부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뒤흔든 비상계엄 사태 직후, 국가정보기관이 외국 정보기관 책임자에게 계엄의 논리를 번역해 갖다 바쳤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국민에게서 찾지 못한 세력이 미국 정보기관의 이해와 승인 속에서 자기 생존의 근거를 확인하려 한 행위다. 주권국가의 정보기관이 아니라 식민지 총독부의 연락사무소처럼 움직인 것이다.

굴종의 역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정치가 헌정 위기에 빠질 때마다 정통성 없는 권력은 반복해서 국민이 아니라 미국을 쳐다보았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와 장도영 등 쿠데타 세력은 주한미대사와 유엔군 사령관이 완강히 반대하자, 미국의 의구심을 지우기 위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는다”는 혁명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변 직후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미 CIA 본부와 한국지부를 향해 자신들이 ‘용공 세력’이 아니라 철저한 친미·반공 정권임을 홍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총칼로 민주정부를 무너뜨린 자들이 가장 먼저 매달린 것은 국민의 동의가 아니라 미국의 사후 승인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보내 필립 하비브 대사에게 이를 비밀리에 통보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닉슨 독트린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으니 남북대화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체제 정비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영구집권 체제를 세우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국민에게 먼저 묻는 대신 미국에 미리 설명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권위주의 권력의 본능이었고 숭미동맹의 본질이었다.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고 미국은 허락을 받아야 할 상전이었다.

전두환 신군부 역시 이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직후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윌리엄 글라이스틴 미 대사와 로버트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을 만나 “이것은 정권 찬탈이 아니라 박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충돌”이라고 강변했다.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와 5·18 광주 학살 과정에서도 신군부는 오로지 미국만을 바라보았다. 주미대사 김경원은 리처드 홀브루크 국무부 차관보를 찾아가 미국이 한국의 계엄 조치를 공개 비판하면 동맹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제발 톤을 낮춰달라고 애걸했다.

이처럼 수십 년간 한국의 정치 위기 때마다 미국과 CIA는 단순한 외부 관찰자가 아니었다. 때로는 승인했고 때로는 묵인했으며 때로는 압박했다. 그러나 더 수치스러운 것은 우리 내부의 지배 세력이 스스로 그 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독재자들은 위기 때마다 정상적인 외교 채널조차 우회하여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의 은밀한 파이프라인을 통해 미국 정보기관에 매달렸다. 국민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쿠데타와 비상계엄과 학살의 주범들에게 미국의 내정간섭이란 거부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응당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전직 안보 인사나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윤석열의 집권 과정과 12·3 비상계엄을 둘러싸고 CIA가 사전에 알고 있었거나 일정하게 관여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바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의혹이 터무니없는 헛소리로만 들리지 않을 만큼 한국 정치가 오랫동안 미국 정보기관과 비정상적으로 얽혀 있었다는 점이다. 2023년 CIA의 한국 대통령실 도청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국가안보실 차장 김태효는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 장면은 굴종적 인식의 더러운 민낯이다.

 

물론 미국과 CIA의 모든 개입이 언제나 같은 성격이었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CIA 한국지부장을 맡았고 훗날 주한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는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벌어졌을 때 CIA 본부와 백악관에 긴급히 알림으로써 김대중의 목숨을 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한편 최종길 서울대 법대교수가 중앙정보부에서 수사를 받다가 의문사한 사건에 관해서도 본부의 지시를 어기고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그 결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되고 후임 신직수 부장이 고문금지 지시를 내리는 흐름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사례가 역설적으로 더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김대중을 살린 것도, 중앙정보부의 고문 문제에 제동을 건 것도, 한국의 헌정기관이나 사법체계가 아니라 미국 정보기관 고위 인사의 판단과 개입이었다. 이것을 고마워해야 할 일로만 보아야 할 것인가. 좋은 개입이든 나쁜 개입이든 CIA가 한국 내정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선의의 간섭은 수용가능하다는 이유로 간섭의 구조를 용인하는 순간 우리는 악의의 간섭도 함께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과거 5·16 군사정변이나 5·18 광주 학살을 미국이 왜 막지 않았는지를 추궁하는 일은 별도로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정당한 과제다. 그러나 그 질문이 교묘하게 뒤틀려 “한국의 정치 위기에는 결국 미국의 개입이나 중재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되어서는 도무지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아울러 미국이 과거에 잘못 개입했으니 앞으로는 올바르게 개입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 역시 또 다른 지독한 사대주의일 뿐이다. 미국의 책임을 묻는 것과 미국의 간섭을 청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6월 1일 월스트리트저널 오피니언 란에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강경 좌파’로 규정하며 한미동맹과 한국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저급한 칼럼이 실렸다. 이에 국민의힘 비례의원 김건은 “왜 미국에서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일개 미국 보수 논객의 시선을 곧바로 한국 정치의 심판관처럼 모셔오는 태도를 보였다. 쿠데타 세력이 CIA에 계엄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이나 사대 숭미인이 미국 학자의 말로 자국 정부를 꾸짖는 것이나 굴종의 인식론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자주독립 대한민국은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문화, 산업, 기술 모든 영역에서 세계무대의 중심에 선 나라다. 그런 나라가 아직도 정치 위기 때마다 미국 대사관과 CIA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은 국격의 문제요 주권 의식의 문제다. 과거 중남미 후진국들의 예속정권들 얘기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숭미주의자 내란범 윤석열의 경우를 마지막으로 외국 정보기관에 문건을 번역해 넘기며 스스로의 정당성을 설명하려는 노예적 습속은 앞으로 영원히 끊어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더 이상 한국 정치를 미국의 손아귀에 쥐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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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러 고위당국자, “조선에 대한 경제 제재 용납 못해”

기자명

  •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6.06.03 11:20
  •  
  •  수정 2026.06.03 11:25
  •  
  •  댓글 0
 
1일 모스크바에서 만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차관과 류샤오밍 중국정부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 [사진-중 외교부]
1일 모스크바에서 만난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차관과 류샤오밍 중국정부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 [사진-중 외교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방북설’이 불거진 가운데, 1일(현지시간) 러시아에서 만난 중·러 고위당국자가 ‘한반도 정세’와 ‘북한 정책’ 등을 논의했다고 밝혀 주목된다.

3일 중국 외교부는 류샤오밍 중국정부조선반도사무특별대표가 지난 1일 모스크바에서 안드레이 루덴코 외교부 차관(아시아·태평양 담당)과 협의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동북아와 조선반도 정세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알렸다.

아울러 “양측은 동북아와 조선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가 역내 국가들의 공동이익이며 국제사회의 공통된 기대라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며 “중국과 러시아는 소통과 협조를 한층 강화함으로써 동북아 지역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서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 외교부도 지난 1일 두 사람이 만났다고 확인했다. 

특히 “양측은 조선의 안보를 위협하는 경제 제재, 압박 및 기타 다른 수단이 용납될 수 없다는 공동 입장”을 표명했다. 

“러시아와 중국은 역내 모든 국가의 우려를 고려하면서 상호 주권존중에 토대를 둔 외교적 수단을 통해 지속가능한 지역 안보 체계를 구축하는 데서 건설적 역할을 계속할 용의가 있다”면서 “미국과 역내 동맹국들이 조선반도의 긴장고조, 군비경쟁 및 위협을 초래하는 행위를 종식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라고 촉구한다”고 밝혔다. 

양측의 발표는 지난달 19~20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방중 계기에 중·러 정상이 직접 서명한 「중·러 포괄적 협조 한층 강화와 선린우호협력 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에 명시된 ‘한반도 정책’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에 앞서, 지난달 20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소식통’을 인용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조만간 국빈방북할 것이라며 “중국과 북한이 일본의 신군국주의에 맞서 협조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2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시진핑 방북’ 관련 질문을 받은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내가 제공할 정부가 없다”고 대답했다. 한국 정부 고위관계자는 “지켜보는 중”이라고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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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자 없는 선거'…서울 놓친 민주당, 4곳만 지킨 국민의힘

오세훈 막판 대역전극으로 승패 기준 희미…불발에 그친 '이재명 매직'

곽재훈 기자 | 기사입력 2026.06.04. 10:07:01

6.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전국 16개 광역단체장 선거 중 12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하며 승리했다. 국민의힘은 4곳을 지키는 데 그쳤지만 수도 서울에서 막판 역전승에 성공했고 경남에서도 승리를 가져가며 당초 'TK 자민련'으로 쪼그라들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벗어나게 됐다. 다만 이를 뒤집으면, 민주당은 서울을 내주며 '화룡점정'에 실패했고 국민의힘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패배했다는 말이 된다. 여야 모두 만족스럽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든 셈이다.

4일 오전 지방선거 개표 결과를 종합해보면, 민주당은 △수도권인 인천·경기 △PK 중 부산·울산 △충남 4곳과 호남 2곳 전체 △강원·제주 등에서 승리를 거뒀다. 핵심 전략지역이었던 부산과, 출구조사·예측조사 결과 접전지로 분류된 충남·강원에서의 승리는 특히 돋보인다.

다만 서울에서는 당초 출구조사 결과로나 자체 판세 예측으로나 민주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으나, 개표 막판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대역전극에 성공하며 승패 기준 자체가 희석되는 상황이 됐다. 여권 당정 지도부로서는 막판에 다 잡은 승리를 놓친 셈이다. 특히 정원오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이 응원을 보내온 이른바 '명픽' 후보로 꼽혔다는 점에서 여권의 정치적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도 서울 25곳 중 17곳을 석권했고, 경기도 31곳 중 19곳에서 이겨 과반 승리를 따냈지만 이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으로 불린 성남시장 선거에서는 '7인회' 출신 김병욱 전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 국민의힘 신상진 시장에게 고배를 마셨다.

이번 선거는 공교롭게도 작년 6.3 대선으로부터 정확히 1주년이 되는 날 치러져 이재명 정부에 대한 평가와 불가분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이 대통령은 올해 들어 60% 전후의 국정 지지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해왔고, 특히 지난 3~4월에는 평균 국정 지지도가 60% 후반을 기록하는 등 대체로 긍정적 여론 평가를 받아왔다. 전국 16곳 광역단체장 선거 중 12곳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이같은 이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여론 평가가 바탕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그럼에도 서울·성남 등 수도권 핵심 지역에서 의외의 일격을 당한 것은 이재명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크다. 서울에서도 국민의힘 후보 지지 표가 많았던 강남 3구와 용산·광진·강동 등 이른바 '한강벨트' 지역, 분당이 포함된 성남은 부동산 정책의 핵심 타깃이자 그에 대한 불만이 많은 지역이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선전 끝에 석패한 대구시장 선거나,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마지막까지 초접전을 이어간 끝에 분패한 경남지사 선거 결과를 놓고는 선거 전후 '조작기소 특검법'을 밀어붙이는 등 민주당 지도부의 강경한 정책과 태도가 역풍을 불러왔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김 전 총리는 실제로 선거 기간 당 지도부에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우려를 표하기도 했는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된 모양새다.

국민의힘으로서는 당초 경북지사 1곳만 지키고 전패할 것이라는 극단적 비관론도 나왔다가 서울을 포함한 4곳(서울·대구·경북·경남)에서 극적 승리를 거두면서 장동혁 지도부가 이른바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론을 펼칠 최소한의 근거는 마련됐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승리는 당초 오세훈 시장이 장동혁 지도부의 2선 후퇴를 요구하며 후보 등록까지 연기하는 등 강하게 선을 그어온 점, 실제로 유세 기간에도 오 시장은 장동혁 대표 등 당 지도부와 일부러 겹치지 않는 동선을 짜면서 '따로 유세'를 펼친 점 등을 볼 때 온전히 국민의힘 지도부의 지분을 주장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선거의 3요소 중 '구도'·'이슈'의 불리함을 오 시장이라는 '인물'의 개인기로 돌파한 모양새가 되면서, 오 시장은 대권주자로서의 입지를 한층 굳히게 됐지만 장동혁 지도부가 선거 책임론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한편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는 총 14곳 중 민주당이 9곳, 국민의힘이 4곳에서, 무소속 후보(한동훈)가 1곳에서 승리했다. 지방선거보다도 이같은 재보선 결과가 민주당에는 더 뼈아플 수 있다. 숫자로만 봐도 원래 14곳 중 13곳이 민주당 의원 지역구였다가 4곳을 보수진영에 내준 셈인데, 내용을 보면 전국적 관심이 집중된 부산 북구갑과 경기 평택을에서 모두 보수진영이 승리했다.

다만 국민의힘 장동혁 지도부로서도 진영 내 최대 경쟁상대인 한동훈 전 대표의 북구갑 보선 승리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보수 재건'을 내걸고 당선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복당을 선언하며 장동혁 지도부를 날카롭게 겨누고 있다.

이번 선거는 여야를 떠나 정치권 전체에 대해 많은 과제를 남기기도 했다. 정청래 지도부가 이끈 민주당이나, 장동혁 지도부 체제 하에서 '극우화'의 길을 간 국민의힘이나 진영 내 결집만을 내세우며 상대 정당을 적대하는 정치적 양극화(극단화)를 부추겼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같은 배경에서 여성·안전·민생 등 건전한 정책 토론의 장은 사라졌고, 대신 극단적 진영논리와 함께 극우 음모론과 색깔론,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시민사회의 공론장을 오염시켰다. 특히 선거 막판에 불거진 서울시 일부 투표소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중앙선관위의 심각한 투표관리 부실 사례여서 그 자체로 문제임과 동시에, 극우적 부정선거 음모론에 땔감을 공급할 우려가 제기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지난 3일 서울 강서구 현대태권도 체육관에 마련된 화곡제8동제5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곽재훈 기자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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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오 패배 승복 “모든 것이 제 탓…시민 선택 겸허히 받들 것”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6/04 10:42
  • 수정일
    2026/06/04 10:42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정혜민,김해정기자

  • 수정 2026-06-04 10:26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가 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캠프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관련 입장을 밝히며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6·3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시민 여러분의 선택을 무겁고 겸허히 받들겠다”며 “제가 부족했다. 모든 것이 제 탓이다”라고 승복을 선언했다.

정 후보는 4일 오전 9시30분께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선거 사무소에서 “더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고, 더 깊이 듣지 못했다”면서 “더 넓게 마음을 얻지 못했다”라고 했다. 이어 “저를 믿고 함께해 주신 시민 여러분, 선거 운동원과 자원봉사자, 또 캠프 관계자, 당원 동지 여러분께 기대에 보답하지 못해 송구하다”면서도 “당선된 오세훈 후보께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자 선거상황실에서 지지자들이 서울시장 선거 아침 개표 상황이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바뀌자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 후보는 이날 오전 9시30분 개표 상황(개표율 97.70%)에서 48.34%를 득표해 48.94%를 득표한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에게 패했다.

정혜민 기자 jhm@hani.co.kr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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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참패'에 조선·동아 "예견된 결과... 장동혁부터 물러나라"

장동혁 국민의힘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송언석 공동선대위원장 등 공동선대위원장들이 3일 여의도 당사에 마련된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및 6.3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국민의힘이 6.3 지방선거에서 또다시 참패의 쓴잔을 마셨습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 이은 3연속 전국 선거 패배입니다. 선거 결과에 대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일제히 사설을 내고, 이번 패배의 가장 큰 책임자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지목했습니다. 두 매체는 장 대표의 즉각적인 사퇴와 당의 해체 수준을 뛰어넘는 쇄신을 강도 높게 주문했습니다.

<조선> "예견된 참패… 쇄신 거부한 장동혁의 책임"

<조선일보>는 이번 선거 결과가 놀랍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조선일보>는 4일 자 사설(예견된 결과, 국민은 다 아는 이유 국힘 지도부는 아나)을 통해 "국민의힘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또 참패했다"라며 "예견된 일이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사설은 그 이유로 "국힘은 계엄과 탄핵을 거치고도 제대로 된 반성과 혁신이 없었다"면서 "당을 쇄신해 국민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했지만 그 반대로 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보수 언론이 꼽은 가장 큰 패착은 장 대표 체제하에서 벌어진 퇴행적 당 운영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장 대표가 혁신위 활동을 방해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윤 어게인' 인사들을 중용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계엄을 옹호하거나 윤 전 대통령 탄핵에 반대했던 사람을 이번 선거에 공천하기도 했다"면서 "공천관리위원장은 두 번씩 사퇴 소동을 벌이다 본인이 출마했고, 경기도 시흥시장 후보 공천을 포기하는 황당한 일까지 벌어졌다"라고 공천 난맥상을 꼬집했습니다.

<조선일보> 6월 4일자 사설 '예견된 결과, 국민은 다 아는 이유 국힘 지도부는 아나' ⓒ 조선일보 PDF

<동아일보> 역시 4일자 사설(참패한 野… 장동혁부터 물러나라

)에서 참패의 원인에 대해 "올 3월 당 지지율이 10%대 후반으로 떨어진 뒤 일부에서 지지층 결집이 감지됐지만 계엄과 탄핵을 거치며 형성된 뿌리 깊은 불신과 반감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라며 "막판 보수결집론은 '신기루'로 드러났다"라고 진단했습니다.

보수 언론의 칼끝은 정확히 장동혁 대표를 향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가장 큰 책임은 장동혁 대표에게 있다"며 "지난 대선 패배 후 당을 쇄신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는 거부했다"라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동아> "절윤도 시늉만... 자신의 영달 위해 당 사지로 모는 정치인에 미래 없어"

<동아일보> 6월 4일자 사설 '참패한 野… 장동혁부터 물러나라' ⓒ 동아일보 PDF

<동아일보>는 장 대표가 지난 10개월간 당의 위기 극복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 구축에 몰두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사설을 통해 "절윤도 시늉만 했고, 부정선거론과 손잡았고,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논란 끝에 제명시켰다"라며 "자신의 영달과 보신을 위해 당을 사지로 내모는 정치인들에게 미래가 있을 리 없다"라고 직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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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동아일보>는 장 대표의 행보를 두고 "기행(奇行) 같은 워싱턴 출장으로 자신과 당을 우스갯거리로 만들었다"라고 일갈했습니다.

장 대표의 리더십 상실은 선거 유세 현장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동아일보>는 "장동혁 대표는 선거 기간 중 자신에게 지원 유세를 요청하는 후보가 많지 않아 외곽을 돌아야 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당의 간판인 대표가 격전지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을 꼬집은 것입니다.

오히려 후보들은 전직 대통령들에게 기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동아일보>는 "몇몇 후보들은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게 선거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라며 "두 전직 대통령이 서울 부산 대구 등 격전지를 찾는 동안 국힘의 퇴행 이미지만 더 굳어졌다"라고 평가했습니다.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모습이 중도층과 부동층의 표심을 더욱 멀어지게 만들었다는 분석입니다.

"환골탈태만이 살길… 장 대표 즉각 물러나야"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국민의힘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장 대표의 사퇴와 뼈를 깎는 쇄신이 불가피하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조선일보>는 "당을 해체하는 수준으로 환골탈태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이런 바람에 국힘이 부응하려면 수도권과 40~50대의 지지를 회복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영남 기반의 당 주류들이 한 줌 기득권에 집착한다면 다음 총선에선 존립마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장 대표의 거취에 대해서는 "패배에 책임지고 물러날지는 알 수 없다"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동아일보>는 더욱 명확하게 장 대표의 퇴진을 요구했습니다. <동아일보>는 "장 대표 체제 10개월은 보수 분열과 해체의 시간이었다"라며 "장 대표는 즉각 물러나야 한다"라고 촉구했습니다. 아울러 "국힘은 환골탈태만이 살길이다"라며 "내란 정당의 꼬리표를 떼어내고 인물, 아이디어, 정책과 노선을 완전히 탈바꿈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보수 언론의 일치된 지적처럼, 국민의힘은 이제 '존재의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장동혁 대표의 거취 표명과 쇄신 여부가 보수 진영의 향방을 가를 첫 번째 분수령이 될 전망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실립니다.

#지방선거#국민의힘#장동혁#보수언론#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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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청산 2차전' 촛불 들었던 손으로 투표를!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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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 입력 2026.06.03 05:36

  • 수정 2026.06.03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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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난해 대선에 이어 다시 6·3 선거

민주주의 더욱 공고히 하는 '회복의 날'로

헌정 파괴에 대한 가장 확실한 심판 내리길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오늘(6월 3일) 본투표가 실시되는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히 지역 일꾼을 뽑는 것이 아니다. 내란 사태의 책임을 묻고, 무너진 헌정 질서를 더욱 굳건히 세우는 중대한 분수령이다. 어떤 선거든 주권자인 국민으로서 그에 참여하는 것은 권리이자 의무지만, 내란 청산의 과제 앞에서 오늘의 투표는 그 의미가 더욱 무겁다.

12·3 비상계엄 선포라는 명백한 내란 행위로 대통령은 파면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주모자들은 법정에 서고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가 분명히 봤듯이 내란은 몇몇 사람의 일탈이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한 구조와 세력의 문제다. 이번 선거 기간에도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 피의자들을 감싸는 이들이 대거 후보로 공천됐다. 거리와 방송, 유세 현장에서 울려 퍼진 이들의 내란 옹호 목소리는 내란이 여전히 진행중이며, 이번 선거가 내란 청산의 또 다른 중대한 싸움이라는 것을 분명히 일깨워줬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이틀차인 30일 오전 광주 광산구 우산동행정복지센터 3층에 마련된 사전투표소에서 한 유권자가 투표함에 용지가 담긴 봉투를 넣고 있다. 2026.5.30 연합뉴스

투표는 헌정 파괴와 민주주의 유린에 대한 주권자의 가장 확실한 심판이다. 국가의 근간을 흔든 세력과 그에 동조한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합법적이고 강력한 무기가 오늘 주권자의 손에 쥐어진다. 투표로써 ‘헌정 질서 수호’와 ‘내란 세력 단죄’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완성해야 한다.

선거일인 오늘 6월 3일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정확히 6개월 만에 치러진 대선으로부터 다시 1년이 되는 날이다. ‘12·3’과 ‘6·3’이라는 날짜의 묘한 중첩은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마치 역사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이 일치는, 우리에게 뭔가 보이지 않는 섭리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이는 사전에 설계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우연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암흑의 12월 3일을 지나, 정확히 반년 후, 그리고 다시 1년 후 같은 6월 3일에 우리는 다시 투표를 앞두고 있다. 파괴된 헌정 질서를 시민의 손으로 복구하는 이 엄숙한 시간표가 이토록 대칭적으로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은 오늘 선거가 지닌 역사적 책무를 다시금 일깨운다. 1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우리가 흘린 땀과 선택이 제대로 뿌리내렸는지 돌아보게 한다. 12월 3일이 민주주의가 일시 정지된 ‘오욕의 날’이었다면, 두 번째 맞는 6월 3일을 주권자인 국민이 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히하는 ‘회복의 날’로 삼아야겠다.

지방선거는 중앙 권력의 교체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새롭게 세우는 것이다. 지방자치에서부터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시민의 뜻을 받드는 인물들이 자리 잡아야 중앙 정치의 독단과 헌정 유린을 견제할 수 있는 건강한 민주주의 토양이 만들어진다.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든 시민들의 힘도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지역에서 쌓인 시민 역량이 폭발한 결과였다. 그것은 지방자치가 키워낸 힘이며 역량이기도 하다.

지방자치의 출발부터가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되찾은 민주주의의 결실이었다. 1991년 지방의회 부활, 1995년 전국 동시지방선거까지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김대중의 13일간 목숨을 건 단식과 수많은 시민의 열망과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 시장·도지사, 지역의원, 교육감을 뽑을 권리를 얻었다.

그 권리는 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힘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가 일상으로부터 먼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육 방향, 동네 하천 관리, 장애인 이동권 예산, 노인 돌봄 서비스까지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다. 그 모든 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지방정부다.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일에 빠져선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로는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하며, 뜨거운 참여 열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 높은 투표율조차 이번 선거에 부여된 역사적 무게 앞에서는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손으로, 오늘 모두들 투표용지 위에 자신의 주권을 행사해야겠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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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오전 10시 투표율 11%…지난 지선보다 2.3%p 높아

투표율 최고 대구 13.7%, 최저 광주 7.3%…사전투표 합산 전

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6.06.03. 10:06:42

제9회 동시지방선거 투표율은 3일 오전 10시 기준 11%로 집계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이날 오전 10시까지 전체 유권자 4464만 9908명 중 490만 8603명이 투표를 마쳤다.

이는 2022년 제8회 지방선거 동시간대 투표율 8.7%보다 2.3%포인트 높은 수치다.

지역별로 보면, 대구의 투표율이 13.7%로 가장 높다. 그 뒤는 강원 13.3%, 경북 13.1% 등이다. 투표율이 가장 낮은 곳은 광주로 7.3%다.

지난달 29~30일 진행된 사전투표 투표율은 23.51%였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곳은 광주 33.9%. 가장 낮은 곳은 대구 18.7%였다. 이는 오후 1시부터 투표율에 합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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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선거는 오후 6시까지 진행된다. 유권자는 신분증을 지참하고 관할 투표소를 방문하면 된다.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3일 인천 연수구 선학초등학교에 마련된 선학동 제2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줄을 서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최용락 기자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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