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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철 배후설, 정청래가 이미 답해놨다

"직책 없이 비켜 있는 게 낫다" 6년 전 정청래가 옮긴 양정철 본인 진술

양정철 배후설엔 침묵, 다른 비판엔 즉각 고소·고발

6년 전 정청래가 옮긴 양정철의 "비켜 있어야 한다"

무감점 공천 박우량, 햇빛연금 돌려막기까지

2026-05-04 07:26:10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배후설에 입을 다물고 있다. 자신을 향한 비판이 나오면 곧장 고소·고발로 응수하던 정 대표의 평소 패턴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침묵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관계는 정 대표 본인이 이미 답해놨다. 2019년 종편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풀어놓은 발언 그 자체가 답이다.

 

5월 1일 전주, 양정철 묻자 고개 돌린 정청래

 

지난 1일 전주를 방문한 정 대표에게 뉴탐사 취재진이 직접 물었다. "양정철씨 공천 개입 의혹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장인재 부단장한테 계속 감찰 업무 맡길 건가요." "박우량, 김산, 장세일 후보 영장 얘기도 나오는데 공천 취소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정 대표는 한마디도 답하지 않았다. 양정철이라는 이름이 들렸을 만한 거리였지만 고개만 살짝 돌렸다. 다른 비판에는 즉각 법적 대응에 나서던 그가 양정철 배후설에는 어떤 해명도, 부인도 내놓지 않는다.

 

2019년 판도라, 양정철 통화 토씨까지 옮긴 정청래

 

정 대표가 침묵하는 사이, 6년 전의 정청래는 다르게 말했다. 2019년 3월, 미국에 머물던 양정철씨가 민주연구원장직 수락을 앞두고 있었다. 한국에서 그의 입장을 풀어준 인물이 정청래 당시 전 의원이다.

 

정 의원은 MBN '판도라'에 출연해 양씨와 통화한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양씨는 5월 1일 노동절을 피해 5월 2일부터 출근하기로 했고,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의 제안을 처음에는 고사하다가 수락했다는 사실까지 정 의원이 풀어놨다. "본인이 이런 데서 얘기해도 된다고 그러더라고요"라며 운을 뗐다.

 

"본인은 원래 앞에 선봉에 선 사람이 아니라, 조절하고 통합하고 이런 역할을 주로 했다. 대선도 자기가 디자인을 했다. 그런 경험을 살려서 총선을 한번 디자인해 보고 싶다." 양씨가 했다는 말을 정 의원이 거의 토씨까지 옮긴 것이다.

 

진행자가 "공천 학살이죠"라고 받자 정 의원의 답이 더 구체적이다. "민주연구원에 공천하는 권한도 있냐"는 물음에는 "그런 건 없고요"라면서도 "당의 100대 정책, 총선 지역별 맞춤형 공약 이런 것 한다. 후보들이 필요한 거 갖다 쓰게 만든다"고 했다. "그러면 실세 이상이 났네 이거"라는 진행자 말에 "어, 근데 이제 아무래도 이런 사람들을 공천해야 된다는 공천 방향성 정할 수는 있죠"라고 답했다. 양씨가 총선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사실을 정 의원 본인이 인정한 셈이다.

 

청와대 안 들어간 이유, 양정철 본인이 풀어놓은 비선 정치

 

판도라에서 정 의원이 옮긴 양씨의 또 다른 발언이 있다. 양씨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다. 정 의원은 자신이 양씨와 직접 통화한 내용이라며 그대로 풀어놨다.

 

"자기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어쨌든 대통령하고 가깝기 때문에 자기가 직책이 높든 낮든 자기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자기가 있다 보면 대통령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못 본다는 거예요. 가린다는 거예요. 자기가 없어져야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가서 활발하게 일할 수 있다는 거예요. 자기가 비켜 있는 게 낫다는 거예요."

 

직책에 들어가지 않고 비켜 서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본인이 설계한 정치 방식이라는 진술이다. 정 의원은 이 말에 어떤 이의도 달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 양씨는 지금 어떤 직책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민주당 공천과 인사 곳곳에서 그의 손이 보인다는 의심은 끊이지 않는다. 6년 전 양씨 본인이 정 의원에게 풀어놓은 그림과 정확히 같다.

 

별명부터 한보 이력까지, 30년 호위무사 정청래

 

양씨의 행보가 도마에 오를 때마다 정 의원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양씨에게 붙은 "저주의 굿판 비서관", "언론 홍위병", "노무현의 언론 황태자"라는 별명까지 정 의원은 직접 변호했다. 양씨가 주도한 기자실 폐쇄 정책에 대해서도 "구태의 취재 관행을 좀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한 것인데 진보·보수 언론한테 다 집중 공격을 받았다"고 두둔했다.

 

2019년 5월 양씨가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과 강남 한 식당에서 심야 회동한 사실이 더팩트 보도로 드러나자 야당이 거세게 반발했다. 정 의원은 KBS 라디오에 출연해 변호에 나섰다. "그냥 아는 사람끼리 만난 거 아닌가요." "두 사람이 뭔가 사전 모의한 것처럼 몰아가고 싶은 거겠죠. 팩트와 주장은 또 다른 거니까요."

 

이튿달 양씨가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를 잇따라 만나 차기 대권 주자 줄세우기 논란이 일자 정 의원은 다시 같은 방송에 나왔다. "양정철 원장이기 때문에 생기는 말들인 것 같습니다." "세간의 관심을 끄는 이슈 메이커이긴 하지만 좀 과도한 것 같다." 양씨를 변호하는 일에 정 의원만큼 열심이었던 인물은 당내에 없었다.

 

정 의원은 양씨의 30년 정치 이력을 방송에서 그대로 풀어놨다. 한국외국어대 학보사 출신으로 노무현 캠프에 합류한 일부터, 청와대에서 다른 사람보다 두 시간 먼저 출근하던 5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에서 가장 크게 운 사람이 양씨라는 일화까지. "운명이라는 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권에 들어온 거예요. 데뷔를 한 거고. 그것을 마중물 역할을 한 것이 양정철이에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정계 입문 자체가 양씨의 기획이었다는 진술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18대 대선 패배 이후 4~5년에 대해서도 정 의원의 표현이 무겁다. "물 밑에서 온갖 일 다 한 거예요. 집사 역할도 하고 책사 역할도 하고 보좌관 역할도 하고 다 한 거예요." "김경수 지사랑 거의 맞먹는 책권이네요"라는 진행자 말에는 "사실은 더 친하다고 봐야죠"라고 답했다. 양씨의 한보그룹 시절 이력까지 정 의원이 직접 거론했다. "한보 정태수 측근으로도 있었더라고요. 부인을 하지 못하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한보 정태수 시절 직장 상사 이춘발, 언론중재위 부위원장 임명

 

양씨는 1996년부터 정태수의 한보그룹에서 홍보 업무를 맡았다. 당시 직장 상사가 이춘발 전 문화일보 부국장이다. 이씨는 한보철강 부사장까지 올랐고 1997년 1월 한보 부도 당시 현직이었다. 이씨는 그 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언론특보로 정치권에 들어섰다. 2007년 노무현 정부 청와대 홍보수석실 비서관이던 양씨가 이씨를 KBS 이사로 천거하면서 언론노조의 반발 성명까지 나왔다. 그러나 이씨는 결국 2007년부터 2009년까지 KBS 이사를 지냈다. 양씨가 직접 모시던 한보 시절 상사를 공영방송 이사 자리에 앉힌 셈이다.

 

이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 당선 이후 열린공감TV 부흥 행사에서 좌장 역할을 맡으며 뉴탐사를 공격해왔다. 뉴탐사에 자주 출연하던 인사들에게 직접 연락해 출연 자제를 압박한 정황도 확인됐다. 그런 그가 2025년 11월 17일 언론중재위원회 위원장 직무대행을 거쳐 12월 1일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6개월 만에 이뤄진 인사다. 통상 언론중재위원은 현직에서 물러난 지 2~3년 안짝의 언론인을 임명한다. 이씨가 언론사에 마지막으로 몸담은 것은 1996년 문화일보 부국장 시절로, 30년이 다 돼 간다. 부위원장 자리는 판사 출신 위원장이 명예직인 만큼 사실상 위원회를 운영하는 핵심이다. 그 자리에 다시 양씨의 한보 시절 직장 상사가 앉았다. 양씨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는 의심이 따라붙는 이유다.

 

검찰 캐비닛으로 짠 2020년 총선, 양정철과 장인재

 

양씨는 2019년 5월 민주연구원장에 취임한 뒤 "총선 승리의 병참 기지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2020년 21대 총선의 공천 설계가 그의 손에서 짜였다. 이 과정에서 검찰 캐비닛이 동원됐다는 증언이 민주당 내부에서 흘러나왔다. 양씨가 검찰이 보유한 약점 자료로 일부 중진 의원을 압박해 공천에서 배제했다는 것이다. 이 얘기는 한 전직 장관을 통해 민주당 인사 6명에게 퍼졌고, 김어준 진행자 라디오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인사도 그 6명에 포함됐다.

 

검찰 캐비닛을 양씨에게 연결한 인물로 지목된 사람이 장인재 현 민주당 윤리감찰단 부단장이다. 장 부단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사 시절부터 가까이 지냈다. 임종석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의 손에 청와대로 입성했고, 이후 임 전 실장의 소개로 양씨의 민주연구원에 합류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한 제보자는 양씨가 "일도 잘하고 그런 걸 사람들한테 잘한다"며 장 부단장의 처세 능력을 평가했다고 전했다.

 

장 부단장은 정청래 대표 체제에서 윤리감찰단 부단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2020년 총선 인사 영입을 맡았던 백원우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 문정복 의원은 정 대표의 최측근 최고위원으로 자리 잡았다. 2020년 총선 무대를 짠 사람들이 2026년 지방선거에 그대로 복귀한 모양새다.

 

체포동의안 가결파 "이재명으로는 안 된다", 양정철의 비대위 체제 요구

 

2023년 9월 이재명 당시 민주당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국면에서도 양씨의 이름이 등장했다. 가결을 막으려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이 양씨를 만났다. 그 자리에 동석한 인물은 최재성 전 의원이다.

 

양씨는 이 자리에서 "양정철, 최재성, 이광재, 이인영 이렇게 만나서 시뮬레이션을 해 본 결과 의석수가 120개밖에 안 나온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 가지고는 안 되니까 역할을 해 달라"는 요구도 곁들였다. 부결시키면 그때 자신들의 분석을 들어보겠다고 했다는 것이 제보 내용이다. 결국 체포동의안은 가결됐다. 양씨가 원한 그림은 비대위 체제 전환을 통한 2024년 총선 공천권 회수였다. 양씨에게 이재명은 처음부터 끌어내야 할 대상이었다.

탁현민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도 같은 시기 뉴탐사와의 통화에서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당이 제대로 된 개혁을 하든 말든 솔직히 상관이 없어요." 양씨와 가까운 인물로 알려진 탁씨가 이재명 체제에 거리를 둔 셈이다.

 

평택·안산 전략공천에 박지원 국회의장 시나리오까지

 

2026년 지방선거 공천 곳곳에서 정 대표 본인의 결정이라기보다 양씨의 손이 더 짙게 보인다는 의심이 당 안팎에 퍼져 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저격수로 통하는 김용남 전 의원이 평택을 보궐선거에 전략공천된 것이 대표적이다. 정청래·조국 합당이 거론되던 흐름과 정면으로 어긋나는 인사다. 안산갑 출마 채비를 하던 전해철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김남국 전 의원의 전략공천에 자리를 비켜준 일도 거의 같은 시기에 이뤄졌다.

 

국회의장 선거판도 같은 손이 짜고 있다는 분석이 따라붙는다. 박지원 의원과 조정식 전 정무특보, 김태년 의원의 3파전이 시작됐다. 박 의원은 집정부제와 책임총리제를 강하게 주장해온 인물이다. 박 의원이 국회의장이 되면 내각제 개헌이 탄력을 받는다. 조국 대표를 평택에 묶어둔 공천이 8월 전당대회 이후 조국혁신당의 흡수합당으로 이어진다는 시나리오도 같은 라인에서 그려진다.

 

햇빛연금 빼서 기본소득 돌려쓴 박우량, 무감점 공천의 실상

 

정 대표 체제의 공천 검증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그대로 보여주는 후보가 박우량 전 신안군수다. 박 전 군수는 햇빛연금을 농어촌 기본소득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며 이재명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데려와야 되겠다"는 칭찬을 끌어냈다. 그러나 햇빛연금의 정식 명칭은 개발이익공유금이다. 태양광 발전소 주변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피해 보상금이다. 신안군 안좌면 한 주민은 분기마다 받던 36만원의 햇빛연금이 올해 1분기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옆집 40만원도 끊겼다. 그 자리에 기본소득 20만원만 입금됐다. 피해 보상금을 빼서 기본소득으로 돌려쓴 그림이다. 대통령에게 보고한 설계와 정반대다. 이런 후보를 정 대표 체제는 무감점으로 경선에 통과시켜 민주당 후보로 만들었다.

 

다시 전주, 6년 전 본인 발언이 그대로 답이다

 

2019년 판도라에서 양정철의 입이 되어주던 정 의원은 2026년 5월 전주에서 그 이름을 묻는 질문에 입을 다물었다. 침묵의 이유를 정 대표 본인이 6년 전에 다 풀어놨다. 양정철은 총선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했고, 정청래는 그 말을 그대로 옮겼다. 양정철은 직책 없이 비켜 서서 일하는 것이 자기 방식이라고 했고, 정청래는 그 말도 그대로 옮겼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두 사람의 자리만 바뀌었을 뿐 그림은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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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클래스 신현송 선수가 마주한 논바닥 경기장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5/04 10:22
  • 수정일
    2026/05/04 10:2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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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학 경제스케치북

haasim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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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저효율·양극화로 고통 서민 수호 총력을

신임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경제의 수요가 소득과 함께 부채에 의해 결정되며, 과다한 부채로 경기와 금융시스템이 불안해진다는 ‘부채 기반 수요(Indebted Demand)’ 분석을 제시했다. 또한 ‘글로벌 금융 사이클’ 이론을 통해 세계 금융은 미국의 금리와 달러 유동성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는 통찰력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높은 학식과 이론 보다도 그의 이름 석 자가 가진 무게감 자체가 상당하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나 유럽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스타를 영입한 것과 다름없는 기대감이 시장에 감돈다. 그는 국제 금융 무대의 중심인 BIS(국제결제은행)에서 조사국장으로 활동해온, 그야말로 금융계에서 ‘월드클래스’인 학자다.

하지만 한국의 축구 팬들은 안다. 아무리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가진 손흥민 선수라 할지라도, 국가대표팀 경기장이 배수가 안 되는 ‘논두렁 잔디’라면 특유의 스프린트와 정교한 슛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을 목격한 바 있다. 지금 신임 총재가 마주한 한국 경제라는 경기장도 선수들이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려운 상태다. 겉으로는 반도체 수출 호조라는 조명등이 켜져 있으나, 저성장으로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는 구장이 고물가, 고환율, 가계부채라는 진흙탕으로 뒤덮여 있다. 아무리 뛰어난 경제 이론가라 할지라도, 발이 푹푹 빠지는 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은이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란 오명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전임 이창용 총재 체제에서 화려한 등판이 반드시 승리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 전 총재 역시 국제기구에서의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한은의 연구 기능을 비약적으로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 이면의 실상은 참담했다.

한은 총재가 이른바 기재부장관이 주재하는 ‘F4(Finance 4) 회의’라 불리는 고위 당국자 모임에 한 명의 위원으로 정례적으로 참석하며 정부와 보조를 맞추는 사이, 한국은행의 독립성은 소리 없이 붕괴되었다. 중앙은행의 수장이 정부 관료들과 밀실에서 정책을 조율하는 모습은 시장에 잘못된 시그널을 보냈다. 결국 한국은행은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로 되돌아갔다는 비아냥을 자초했다. 정부의 입맛에 맞춰 금리를 낮게 유지하는 데 급급했던 행보는 가계부채 문제를 통제 불능의 수준으로 방치했고, 한미 금리 역전 상황을 방치하며 고환율이라는 직격탄을 서민 경제에 날리는 우를 범했다. 신임 한국은행 총재 앞에는 이러한 과거의 관습을 어떻게 극복하고 한은의 독립성을 제고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놓여있다.

 

30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확대거시경제금융회의 참석자들. 왼쪽부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장. 2026. 4. 30 연합뉴스

친기업적 금통위와 무력화된 통화정책

신임 총재의 앞길을 가로막는 더 큰 암초는 한국은행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에 있다. 한국 경제는 양극화가 심화된 K형 경제의 전형이라서, 통화정책을 펴기 어려운 국가임에 틀림없다. 반면 현재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K자의 한 축인 서민경제와 중소기업보다는 다른 축인 대기업과 부동산업에 우호적인 인사들로 채워져 있다. 중앙은행 총재가 부채의 위험을 강조하는 메이저리거급이라도 함께 금리를 결정하는 금통위원들이 모두 건설 경기 부양만을 외치는 ‘건설 해바라기’들이라면 제대로 된 정책을 펴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행 스스로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건설 및 부동산업에 대한 대출 규모는 무려 600조 원에 달한다. 생산적인 금융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반으로 금융시장의 자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어 경제 성장을 낮추고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금융 시스템 전체를 위협할 정도로 기형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져야 할 금통위원들은 구조조정의 칼을 뽑기는커녕, 여전히 "부동산 경기가 살아야 내수가 산다"는 언론의 논조에 경도되어 금리 인하만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보수적인 학자 출신 총재가 소신 있게 통화 긴축을 단행하거나 부실 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압박하기란 구조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한은 총재의 역할은 이들의 등쌀에 밀려 무력화될 위기에 처해 있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 ‘삼중고’, 서민의 식탁은 눈물바다

경제 지표상의 차가운 숫자는 서민의 삶에 닿을 때 뜨거운 눈물이 된다. 지금 서민 경제는 단순히 '어렵다'는 형용사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놓여 있다.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라는 '삼중고' 앞에서 서민들은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협이 현실화될 때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은 속수무책으로 무력화된다. 케인즈는 금융정책을 '줄을 당기는 것(Pushing on a string)'에 비유한 바 있다. 줄을 당겨 긴축할 때는 효과가 명확하지만, 구조적 불황 하에서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줄을 밀거나 놓아버릴 때는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반도체 대기업이 수출 대금을 환전하지 않는다는 비난에 대응하기 위해 은행에 예금을 하려 했으나, 정작 은행들이 수익성 악화 등을 이유로 이를 마다했다는 보도가 나올 지경이다. 이는 현재 시중 은행들이 가계의 부동산 담보대출이나 건설업·부동산업 대출 외에는 마땅한 대출처를 찾지 못하는 '유동성 함정'에 근접해 있음을 시사한다. 금융정책은 이미 무력화되었고, 재정정책은 비효율의 늪에 빠져 한국 경제의 저성장 체질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자산가들이 저금리 유동성을 타고 주식과 부동산 파티를 벌이며 '금융장세'의 꿀을 빨고 있을 때, 금융회사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이며 배를 불리고 있을 때, 서민들은 그 늘어난 유동성이 초래한 고물가의 청구서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다. 빚을 갚기 위해 점심 식사 한 끼 가격에 벌벌 떨며 소비를 줄이는 이들에게, 한국은행의 금리정책 실기는 단순한 판단 미스가 아니라 생존권을 위협하는 범죄와 다름없다.

가계 부채의 늪과 부동산 투기의 망령

가계는 빚을 갚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 사회 전반의 분위기는 여전히 부동산 투기를 조장하고 있다. 정부와 금융권은 건설업계의 부도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끊임없이 자금을 수혈하고 있으며, 이는 결국 '대마불사'의 신화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일본은 건설업과 금융업의 부실을 감추는 에버그리닝을 방치한 결과 잃어버린 30년을 맞았고, 한국 경제 역시 같은 경로를 걸을 위험에 처해 있다.

한국은행 총재가 이 기형적인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정치권과 금통위 내의 관료주의적 저항은 에버그리닝을 지속하려하기 때문이다. 부실한 건설사와 부동산업에 대한 과감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한국 경제의 자금 흐름은 계속해서 고여 썩게 될 것이다. 600조 원이라는 거대한 폭탄을 안고서도 "언젠가 오르겠지"라는 투기적 망령에 사로잡힌 사회에서, 중앙은행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전무해 보인다.

민주당 정부의 무지와 보수적 경제학자에 대한 짝사랑

여기서 우리는 정치권의 모순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서민 경제와 양극화 해소를 최우선 가치로 내건 민주당 정부가 어째서 한국은행 총재직만큼은 이토록 일관되게 보수적인 경제학자들만 고집하는가? 이는 민주당 정부가 서민의 삶과 직결된 통화정책의 파급 효과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다. 경제정책을 관료들에게 맡기고 다시 그들의 추천을 받아 보수적인 인물로 한국은행 총재를 임명하는 어처구니 없는 의사결정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한국경제의 저성장과 양극화는 심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창용에 이어 신현송까지, 그들은 모두 합리적이고 뛰어난 학자들이지만 기본적으로 자본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보수적 경제관을 가진 이들이다. 이들의 시선에는 자산 시장의 안정과 대외 신인도라는 거대 담론만 존재할 뿐, 한국은행 보고서가 지적한 저성장과 저효율로 기초체력은 약화되고 양극화의 틈바구니에서 무너져 내리는 서민들의 구체적인 삶은 보이지 않는다. 이창용 총재가 방치한 고환율로 한국은행의 금융정책은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게 되었다. 채식주의 식당을 경영한다면서 주방장은 스테이크 장인만 고용하는 이 아이러니가 결국 서민 경제를 더욱 사지로 내몰고 있다.

착시를 걷어내고 운동장 자체를 바꿔라

일시적인 반도체 경기 회복은 독이 든 성배와 같다. 이미 한국 경제는 여러 번 수출 지표가 좋아 보인다는 반도체 착시에 취해 저성장과 비효율의 구조적 문제를 방치해 왔다. 그러는 사이 구조개혁의 골든타임을 흘려 보냈는데 이번에도 다시 같은 우를 범한다면, 한국 경제는 일본이 걸어갔던 '잃어버린 30년'의 장기 침체 경로를 그대로 답습하게 될 것이다. 저출산과 혁신 저하라는 정해진 미래 앞에서, 펀더멘털이 무너진 한국 경제를 구원할 방법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홍종학 전 국회의원 · 중소벤처부 장관

금융회사들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바로 지금이, 그 여유 자금을 활용해 부실 산업을 정리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할 마지막 기회다. 위험을 회피하려는 관료주의적 안일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신임 신현송 총재는 단순한 금리 조정자를 넘어, 기울어진 '운동장'을 다시 설계하고 중앙은행의 '거버넌스' 자체를 개혁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신임 총재는 국제 무대의 찬사보다 서민들의 통곡 소리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한국은행은 정부의 정책을 뒷받침하는 부속 기관이 아니다. 정부의 회의에 참석하는 관례부터 바꿔야 한다. 한국은행은 최고의 독립성을 기반으로 물가 안정과 민생 수호의 최후 보루여야 한다. 메이저리거의 진정한 가치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가 아니라, 팀이 벼랑 끝에 몰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증명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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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트럼프 '호르무즈 통항 지원'에 이란 "휴전협정 위반으로 간주" 경고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6.05.04. 09:01:17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 지원 계획을 밝히자, 이란 측이 "휴전 협정 위반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에브라힘 아지지 의회 국가안보위원회 위원장은 3일(현지시간) X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의 새로운 해상 질서에 대한 미국의 어떠한 간섭도 휴전 협정 위반으로 간주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지지 위원장의 반응은 트럼프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선박을 빼내는 작전을 지원하겠다고 밝힌 후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에 글을 올리고 "중동 분쟁과 무관한 세계 각국이 호르무즈 해협에 갇혀 있는 자국 선박을 풀어줄 수 있는지 미국에 요청해 왔다"며 "이란, 중동, 그리고 미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는 그들의 선박들이 안전하게 해협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 측 대표들에게 미국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들의 선박과 선원들을 해협 밖으로 안전하게 인도할 것이라는 점을 알리라고 지시했다"며 "'프로젝트 프리덤(Project Freedom)'은 중동 시간으로 4일(월요일) 오전에 시작될 예정"이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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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기소 특검’ 파장… 조선일보 “위헌으로 범벅된 공소취소 특검”

[아침신문 솎아보기] 공소취소 권한 주어진 특검법 발의

한국일보 “대통령이 ‘조작기소 특검’ 입장 분명히 밝혀야”

조선일보 1면 삼성노조 겨냥 “내 밥그릇만을 위한 투쟁”

‘분만실 뺑뺑이’ 태아 또 사망… 한겨레 “특단 대책 필요”

기자명박재령 기자

  • 입력 2026.05.04 07:24

  • 수정 2026.05.04 07:25

▲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원내대표 직무대행과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이 30일 국회 의안과에 '윤석열 정치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조작기소 특검’에 공소 취소 권한까지 부여된 것을 놓고 조선일보가 “위헌으로 범벅된 공소 취소 특검법”이라는 사설을 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주장이다. 경향신문도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런 민감한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한국일보는 이재명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사설을 냈다.

경향신문 “여당 내에서도 ‘역풍’ 우려”

조응천 개혁신당 경기지사 후보는 지난 3일 기자회견을 열고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자들에게 ‘조작기소 특검’과 관련된 긴급 연석회의를 제안했다. 조 의원은 “조작기소 특검법은 이재명 대통령의 모든 죄를 덮기 위한 공소취소 특검법, 범죄삭제 특검법”이라며 “윤석열은 비상계엄 내란, 민주당은 사법 내란. 둘 다 역사의 철퇴를 맞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를 이를 4일자 5면 <경기 조응천, 연석회의 제안… 추미애 맞서 야권 연대 시동 거나> 기사에서 주요하게 소개했다.

▲ 4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경향신문은 이날 1면 <‘공소취소 가능’한 특검법에 여당 내서도 ‘역풍’ 우려> 기사에서 “대통령이 당사자인 사건의 특검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그 특검이 공소취소까지 가능하게 한 법안을 낸 것을 두고 진보 진영과 학계 내에서도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했다.

한겨레도 3면에 ‘조작기소 특검’에 대한 법조계와 학계의 비판을 소개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검 도입 자체는 입법권자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공소 취소 권한까지 주는 것은 공정성 논란과 함께 법적 문제까지 불러올 수 있다”며 “지금 특검법은 결국 이 대통령 본인이 자기 사건의 재판관을 선임하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 4일자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위헌으로 범벅된 공소 취소 특검법> 사설에서 “이제껏 수사 기관의 사건 조작이 문제 된 사건과 관련한 특검은 한 차례도 없었다. 대부분 재심 등 기존 법 테두리 내에서 해결됐다”며 “더구나 이 대통령 관련 사건에서 조작 정황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런데도 특검을 해서 이 대통령 사건을 없애겠다는 것은 특정인을 위한 위인설법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헌법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특검법은 이 대통령 사건을 공소 취소할 수 있는 특검을 이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 있다. 그 자체가 이해충돌”이라며 “이것을 누가 공정하다 하겠나. 근본적으로는 ‘누구도 자신의 사건에서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법치주의 대원칙에도 위배된다. 이런 법이 그대로 통과된다면 우리 국민이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근간은 무너진다.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지방선거 한 달 앞, 공소취소·윤 어게인 경고 민심 새겨야> 사설에서 “국조특위에서 드러난 검찰의 수사권 남용 의혹을 밝히고 사법정의를 세우기 위한 특검의 명분은 충분하다. 하지만 공소취소권 부여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을 통해 자신의 사건을 종결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지 않겠는가. 험지 후보들이 ‘중도층에 악재’라며 속앓이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당장 격전지에서 보수 표심이 결집하는 상황을 지도부는 직시해야 한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이런 민감한 법안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 4일자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는 <대통령이 ‘조작기소 특검법’ 입장 분명히 밝혀야> 사설에서 “지난해 여당 주도로 추진된 현직 대통령의 재판을 중지하는 ‘재판중지법’이 이 대통령의 반대 의사가 명확히 드러난 후 없던 일이 된 바 있다. 이번에도 이 대통령이 직접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게 옳다”며 “누구도 본인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근대 형사법 대원칙을 무너뜨린 대통령으로 남아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라고 했다.

조선일보 “밥그릇만을 위한 투쟁, 노동운동 종말”

▲ 4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1면 톱으로 <내 밥그릇만을 위한 투쟁… 노동운동의 종말> 기사를 냈다.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는 삼성전자 노조와 “월급을 포기할 테니 그 돈을 회사 정상화에 써달라”는 입장을 밝힌 홈플러스 노조를 비교하며 “노동계에서는 ‘평등’과 ‘연대’를 내세우던 70~90년대 ‘노동운동의 종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란 해석이 나온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과거 노동운동은 다수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보편적 운동을 지향했는데, 이제는 특정 집단의 이익 극대화만 내세우는 불평등 운동으로 변질되며 노동 시장 이중 구조를 악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라며 “예컨대 삼성전자 노조가 사측에 무기로 꺼낸 파업은 협력 업체 등에 되돌릴 수 없는 피해를 끼치는데, 이런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이 장기 성과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전문가 인터뷰도 나왔다. 4일자 중앙일보 22면에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진에게나 노조원에게나 함께 일하는 주식회사가 ‘장기 번영 공동체’라는 사실”이라며 “회사 자산을 법인(法人)이 소유하는 이유는 자연인은 사멸하지만 법인은 지속할 수 있기 때문이고 그 기반 위에서 장기투자가 가능하다. 이 공동체의 장기 번영을 위해 함께 일하고 그 과실을 나누는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지금 성과급이 문제인데, 정상임금이냐 성과급이냐를 강하게 구분하기보다는 지금까지 이뤄낸 성과에 대한 보상(실적 보상)과 미래에 좋은 성과를 내도록 북돋는 보상(미래 보상)을 나눠 합의를 도출하는 게 좋다”며 “삼성을 포함한 국내 회사 대부분이 장기 성과에 대한 보상 체계가 약하다. 이번 기회에 장기성과 보상시스템을 제대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이하경 중앙일보 대기자는 노조의 성과급 요구를 비판하는 칼럼을 냈다. <한탕주의 현금 파티로 반도체 죽일 셈인가> 칼럼에서 “지구상에서 반도체 기업이 성과급 갈등과 파업 리스크로 홍역을 앓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뭔가 잘못됐다. 국민 69%는 삼성 노조의 이기적인 주장에 반대한다”며 “노다지가 굴러오니 한 밑천 챙기자는 한탕주의식 현금 파티는 정답이 아니다”라고 했다.

‘분만실 뺑뺑이’ 첫 신고부터 이송까지 ‘3시간20분’

충북 청주에서 29주 고위험 임신부가 응급 분만할 병원을 찾지 못해 부산까지 옮겨졌지만 결국 태아가 숨지는 비극이 발생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지난 1일 밤 11시5분께 충북 청주의 한 산부인과에서 임신 29주차 30대 임신부가 출혈 증상으로 태아 심박수가 떨어지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는 119 신고가 들어왔다. 해당 산부인과는 119 신고 전부터 충북대·충남대·대전을지대·건양대·순천향대(충남 천안) 병원 등 지역 내 상급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모두 수용을 거부했다.

▲ 4일자 한겨레 2면 기사.

119 소방은 충청을 포함해 전국 41곳 병원에 연락을 했고, 부산 동아대병원이 “수용 가능하다”고 응답해 헬기를 동원해 2일 새벽 2시25분쯤 병원으로 옮겼다. 한겨레는 “첫 신고부터 이송까지 3시간20분이 걸린 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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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1면 <청주에서 부산까지 위기 임산부 ‘뺑뺑이’ 뱃속아기 또 숨졌다> 기사에서 “‘분만실 뺑뺑이’를 막기 위해 정부가 ‘24시간 분만·고위험 신생아 진료’가 가능한 지역모자의료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전혀 작동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청주→부산 뺑뺑이’ 태아 사망, 특단의 대책 필요하다> 사설에서 “지난 2월28일 대구에서 임신부가 119 신고 4시간 뒤에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쌍둥이 중 한명이 저산소증으로 숨진 지 두달 만에 또 일어난 비극”이라며 “잇단 ‘병원 뺑뺑이’와 ‘태아 사망’ 사건은 산과 전문의 부족과 소아청소년과 등 배후 진료 인력 부재가 낳은 결과다. 출산연령이 높아지면서 조산아·저체중아·다태아 등 고위험 분만이 늘고 있는데도, 저출생과 낮은 의료수가, 24시간 당직과 고난도 수술, 소송 부담 등으로 산과 진료를 포기하는 병원과 전문의가 늘고 있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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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하지만 시끌벅적, 농인 세계를 밝히는 '코다' 이야기

[프레시안 books] 유슬기 <그 집의 언어>

김도희 기자 | 기사입력 2026.05.02. 21:35:58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여러 명의 정치인이 카메라 앞에서 수어를 선보였다. 청인의 음성 소개에 맞춰 몇 초간 어설프게 손을 움직이고 사진을 남겼다.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는 짧은 이벤트, 수어의 쓰임을 자신들의 '이미지 관리'에 가두는 불편한 연출이었다.

미디어에서 농인은 대게 결핍의 대상으로 묘사된다. 농인이 사용하는 수어를 독립적인 문법 체계를 가진 완전한 언어로 이해하지 않고, 농인이 공유하는 농문화와 농정체성을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청인 중심의 시선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다. 1년에 딱 하루, 수어를 이미지 연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정치인의 모습 역시 농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대하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책 <그 집의 언어>는 "필요에 따라 이리저리 변형되는", "미디어가 원하는" 방식으로 농인을 소개하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체성이 강조된다. 책 속에서 수어는 작가의 모어이자, 농인인 그 부모님의 언어다.

이 책을 쓴 유슬기 작가는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 '코다'(Children of Deaf Adult)다. 겉보기엔 고요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뜨겁고 시끌벅적한 농인의 세계와 청인의 세계를 수없이 잇고, 이해하고, 통역해 왔다. 몇 차례의 탈피를 거쳐 코다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게 된 자신의 이야기와 함께 농인의 세계에서는 청인으로, 청인의 세계에서는 농인의 딸로 살며 겪은 기록이 <그 집의 언어>에 담겨있다.

많은 이가 헷갈리지만, 수어는 한국어와 다르다. 수어는 문법부터 손, 표정 등 움직임을 활용해 한국어와는 표현 체계가 다른 독립된 언어다. 한국어는 "맑은 하늘"이라고 말하지만, 수어는 "하늘, 맑다"라고 표현한다. '하늘'이라는 대상을 먼저 제시하고, 수식어는 뒤에 온다. 또한 수어는 한국어와 달리 조사가 없다.

"얼굴 표정과 몸짓이 문법이 된다. 눈썹을 올리면 질문이 되고, 고개를 끄덕이면 긍정을 뜻하게 되며, 입 모양과 표정의 미세한 변화로 감정의 결이 달라진다. 한국어에서 문장에 담긴 뉘앙스나 어조가 하는 일을 수어에서는 온몸이 한다."

수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기도 한 작가는 사람들에게 '왜 수어를 배우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대부분이 "수어를 배워서 봉사하고 싶다"고 답한다. 사람들에게 왜 영어를 배우냐고 물으면 "영어를 배워서 미국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요"라고 말하지 않는데, 유독 수어는 선행과 봉사로 인식됐다. 시혜적 시선을 깨는 과정은 중요했다.

작가는 유튜브 채널 <유손생>을 운영한다. '수어로 자기소개하기', '농인을 만났을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수어' 등 수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와 함께 코다의 일상이 담긴 브이로그를 올린다.

미디어는 농인을 "불편함을 참고 사는 착한 사람"으로만 그리기에, "우리의 삶"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직접 나선 것이다. "수어는 어떤 언어인지, 코다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리 삶이 정말 불쌍한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작가는 말했다. 미디어가 전통적으로 재현해 온 농인과 코다에 대한 고정관념을 직접 깼다.

농인과 수어를 향한 일상 속 '차별의 언어', 혐오 표현에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작가의 모어이자 부모님의 언어를 구경거리로 삼는 것, 희화화하는 것 역시 그를 아프게 한다. "차별적인 언어를 고친다는 건 단지 단어 하나를 바꾸는 게 아니다. 그 단어로 상처받았던 누군가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다. 나에게는 내 부모를 지키고 그들의 언어를, 나아가 그들의 존재를 존중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 밖에도 '듣는 사람' 중심의 사회, 목소리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 안에서 농인이 겪는 차별적 요소를 드러낸다. TV 뉴스의 긴급 자막, 은행 문자, 정부 안내문, 공익 광고, 범죄 예방 안내 등 생활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들이 농인에게 얼마나 불친절하게 전달되고 있는지 짚는다.

TV 화면 오른쪽 하단으로 밀려난 수어 통역의 배치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수어 통역은 미디어 안에서 여전히 부가적인 정보, '의무 이행' 정도로만 여겨지기에 그 작은 화면은 도통 커질 기미가 없다. 작가는 오른쪽 구석으로 밀려난 수어 해설 화면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그 작은 창을 따라잡으려면 온 신경을 한곳에 모아야 한다. 청인에게 볼륨을 최저로 낮춘 TV를 보게 하는 일과 같다. 청인들은 말이 잘 안 들리면 리모컨으로 소리를 키운다. 작은 칸에 갇힌 수어 통역사도 리모컨으로 키우거나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는 스스로 "농수저"를 들었다고 표현한다. "쉽게 말로 꺼낼 수 없는 경험들과 농인 부모님의 억울한 삶의 증인이 되어 살아야 했던 시간에도 여전히, 기꺼이 코다로 다시 태어나고 싶다"고 했다.

매년 4월 마지막 일요일은 '엄마 아빠 농인의 날'이다. 동시에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전 세계 코다들이 서로의 존재를 기억하고 축하하는 코다의 날이기도 하다. 소리가 아닌 몸, 감각으로 전달된 사랑은 작가를 더 단단하게 했다. "코다로 사는 건 힘들었지만 그 경험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는 "엄마 아빠처럼 다정해지고 싶다"고 했다.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손끝으로 느낀 다정함을, 작가의 언어로 이미 증명하고 있다.

▲유슬기 <그 집의 언어> ⓒ티라미수 더북

김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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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독일 주둔 미군 5천명 6~12개월 내 철수

한승동 에디터

sudohaan@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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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6.05.02 23:35

  • 수정 2026.05.02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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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전쟁 이전의 3만 명 수준으로 돌아가

장기적 미군 해외전력 재배치 전략의 일환?

미국의 유럽 주둔군 철수는 “자해행위”

주독 미군, 철수하기엔 치러야 할 대가 너무 커

주한 미군과도 겹치는 주독 미군의 존재 이유

주한 미군을 철수하지 않는 이유와도 상통

2023년 독일 그라펜뵈르에서 실사격 훈련을 받는 미군 병사들. 로이터 가디언 5월 1일

독일 주둔 미군 약 5천 명을 앞으로 6~12개월 안에 줄이겠다고 미국 국방부가 1일 밝혔다. 이는 미국의 이란 침공에 회의적이거나 협력을 거부해 온 독일 등 유럽 국가들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비난이 이어지면서 미국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동맹국 간의 갈등이 심화 고 있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으로, 예정대로 삭감될 경우 유럽 주둔 미군병력은 2022년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 수준으로 다시 줄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과 관련해 미국에 협조적이지 않은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에 대해서도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해 왔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의 이란 침공에 대해 “아무런 분명한 전략도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며 “이란 지도부로부터 미국이 굴욕을 당하고 있다”고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총리의 발언(4월27일)이 부적절했다고 비판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이 “적절했다”고 두둔했다. 이 관계자는 지금 독일에 주둔 중인 여단 전투팀이 철수하고, 조 바이든 전 정부가 올해 말에 독일에 배치하기로 계획했던 장거리 화력부대는 배치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주독 미군병력 감축이 최근의 미국, 유렵 쌍방간의 불화와 반목 때문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추진되고 있는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전략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총리. BBC 5월 2일

장기적 미군 해외전력 재배치 전략의 일환?

독일은 약 3만 6천 명의 미군이 주둔하는 유럽 최대규모의 미군 기지국이며, 주요 훈련 허브 역할도 하고 있다. 이는 약 5만 4천 명에 이르는 주일 미군 다음으로 큰 규모다. 그 다음은 한국으로, 약 2만 8500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유럽 기지에는 모두 6만 8천 명(순환배치를 포함하면 약 8만 4천 명)의 미군이 배치돼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독일에서 철수하는 미군이 유럽 다른 지역에 재배치되지 않고 인도태평양 지역이나 남북 미주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서반구’로 옮겨 갈 수 있다고 미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트럼프 정권은 지난 2월 말 이란에 대한 선제공격에 나서기 전부터 나토의 유럽 회원국들에 대해 “핵무기에 대한 방어는 미국이 주축을 맡겠지만 통상전력(재래식무기)에 대한 방어는 유럽이 일차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얘기헤 왔다. 이런 식의 전환을 주도해 온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은 지난 달 말 X(예전의 트위터)에 독일이 유럽 군비강화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는 다른 맥락이다.

이번의 주독 미군병력 감축도 전부터 준비해 온 미군 해외배치 재검토 계획을 반영하는 것으로, 이란과의 대치를 계기로 유럽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들이 있다.

 

"동맹국과 협력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제법의 틀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얘기하는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 가디언 5월 1일

스페인, 이탈리아와도 불화하는 미국

4월 30일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미군 철수를 고려할 것인지 묻는 기자들 질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아마도… 보세요, 왜 안 되겠습니까? 이탈리아는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았고, 스페인은 정말 끔찍했습니다. 정말 끔찍했어요."라고 대답했다.

스페인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 초기부터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산체스 총리는 “동맹국과의 협력은 국제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미군기의 자국 영공 통과와 미군 공동기지 사용 등 미국의 협조 요구를 거부했다. 스페인에는 2025년 말 기준으로 약 3800명의 미군이 로타 해군기지와 모론 공군기지 등에 주둔하고 있다.

이탈리아도 3월 말부터 미국 항공기가 전쟁무기 수송을 위해 시칠리아 공군기지를 사용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탈리아에는 지금 약 1만 3천 명의 미군이 7개 해군기지에 주둔하고 있는데, 이탈리아는 이란 공격을 위해 미군이 자국 영토 내의 군사기지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미국의 유럽 주둔군 철수는 “자해행위”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병력 감축이 얼마나 지지를 받을지는 불확실하다.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의 미군 기지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최근에는 이란을 포함한 여러 나라와의 전쟁에서 미군 작전의 핵심 전진 기지이자 물류 허브 역할을 해왔다.

국방 분석가, 야당인 민주당,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이 속한 공화당 일부 의원들까지도 유럽에 강력한 미군이 주둔하는 것이 미국의 세계적 군사적 영향력 확보에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독일에서 대규모 병력 철수나 기지 폐쇄는 수십억 달러의 손실을 초래하고, 전 세계에서 작전을 수행할 수 있는 워싱턴의 역량을 크게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가디언 5월 1일)

공화당 소속 돈 베이컨 하원의원은 4월 30일 소셜 미디어에 “나토 동맹국에 대한 (트럼프의) 지속적인 공격은 미국인들에게 고통을 준다”며 “독일에 있는 두 개의 대형 비행장은 우리에게 세 대륙에 걸쳐 탁월한 접근성을 제공한다. (독일 주둔 미군병력 감축으로) 우리는 자신을 자해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허풍일 뿐”

이는 지난해 말,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과의 군사관계를 격하하겠다고 위협한 것에 대한 명백한 반발로, 미국 하원은 대통령의 병력 감축 권한을 제한하는 국방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유럽 주둔 병력이 45일 이상 7만 6천 명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금지하고 주요 장비의 철수를 막고 있다.

독일 군 관계자들은 1일 오전, 트럼프 대통령의 미군 감축 위협에 대해 "협력관계는 여전히 긴밀하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통신은 전직 미국 고위 군 관계자가 “그들은 '이런 상황은 이미 여러 번 (겪어)봤다.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허풍일 뿐'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1일 유럽 동맹국들이 이란이 봉쇄한 호르무즈 해협을 재개방하려는 미국에 협조하지 않는다며 나토 탈퇴를 “절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말도 했으나, 미국이 탈퇴하려면 2024년에 통과된 미국 법에 따라 상원의 3분의 2 이상 찬성과 또 다른 입법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은 낮다.

 

2025년 2월 6일, 독일 남부 호엔펠스 훈련장에서 미군 장병들에게 연설하는 랜디 조지 미 육군 참모총장. 미국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가 랜디 조지 참모총장에게 사임을 요청했다고 한 미국 관리가 4월 2일 밝혔다. 이 관리는 조지 참모총장이 즉시 퇴임 요청을 받았다는 CBS 방송의 보도를 확인했다. 2025.2.6. AFP 연합뉴스

주한 미군과도 겹치는 주독 미군의 존재 이유

미국이 독일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 이유, 그 역할,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의 기지 축소 위협이 왜 미국에 이롭지 못할 수 있는지에 대해 가디언(5월 1일)이 간략하게 살펴본 것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주한 미군, 주일 미군의 존재 이유, 주둔 경위, 역할, 감축 가능성 등과도 많은 부분 겹친다.

미국은 왜 독일에 군사기지를 두고 있나?

미군의 독일 주둔은 제2차 세계대전이 나치 정권 항복으로 끝난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독일에는 160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이 숫자는 1년 만에 30만 명 미만으로 줄어들었고, 주로 미군 점령지역을 관리하는 임무를 맡았다.

냉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미국의 주둔 규모는 계속 줄었다. 냉전시대에 미국의 임무는 탈나치화에서 소련에 대한 방어벽으로서 독일을 재건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1949년 나토 창설과 서독 건국으로 미군 기지는 영구적인 시설로 자리 잡았다.

냉전 절정기에는 미국이 독일 전역에 약 50개의 주요 기지와 800개가 넘는 시설을 운영했는데, 여기에는 대규모 비행장과 병영부터 도청 시설까지 다양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2년 뒤 소련 붕괴 이후 많은 기지가 폐쇄됐다.

1960년대, 70년대, 80년대에는 독일 주둔 미군 병력이 25만 명을 넘는 경우도 많았으며, 수십만 명의 가족들이 기지 안팎에 거주하면서 학교, 상점, 영화관 등을 갖춘 자급자족적인 미국 마을과 같은 모습을 보였다.

그 기지들의 규모와 역할은?

미국 국방인력자료센터(Defense Manpower Data Center)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군은 유럽의 기지에 6만 8천 명의 현역 군인을 상시 배치했으며, 그중 절반이 조금 넘는 약 3만 6400명이 독일에 주둔하고 있다.

이들은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유럽사령부와 아프리카사령부 본부를 포함해 20~40개의 기지(기지 정의에 따라 개수가 달라질 수 있음)에 분산되어 있으며, 이 두 사령부는 양 대륙의 모든 미군 작전을 총괄한다.

유럽에 있는 7개의 미 육군 주둔지 중 5개가 독일에 있다(나머지 2개는 벨기에와 이탈리아에 있음). 슈투트가르트 외에도 가장 큰 규모의 미군기지로는 8500명의 공군 병력이 주둔하는 유럽 주둔 미 공군사령부인 람슈타인 공군기지가 있다.

바이에른 주둔군이 관리하는 그라펜뵈르, 빌제크, 호엔펠스는 유럽 최대규모의 미군 훈련장이며, 비스바덴 주둔군은 미 육군 유럽·아프리카 사령부 본부다. 란트슈툴 의료센터는 미국 외의 지역에서 가장 큰 미군 병원이다.

이 기지들의 역할은 냉전 이후 급격히 변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이란을 포함한 미군 작전지의 핵심 전진기지이자 물류 허브로 자리매김했다.

트럼프는 이전에도 비슷한 위협을 한 적이 있나?

여러 번 있었다. 백악관 첫 임기였던 2020년, 독일의 낮은 국방비 지출과 노르트 스트림 2 가스관 건설 지원에 격분한 듯 독일을 "불량 국가"라고 부르며 주둔 미군병력을 3분의 1로 감축하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없었고, 나토 고위 관리들까지 완전히 허를 찔린 것으로 보인다. 그 누구도 그 결정에 대해 통보받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은 일부 병력을 본국으로 철수시키고 나머지 병력을 폴란드와 이탈리아 같은 국가에 재배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의회에서 초당적인 반발에 부딪혔고, 막대한 물류적 난관에 직면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2021년 2월 이 계획을 동결했고, 이후 공식적으로 취소했다.

 

주한 미군 부산 군사우편 터미널 개관식이 열린 30일 부산 동구 범일동 부산 물류센터에서 참석 내빈들이 테이프절단식을 하고 있다. 약 280평 규모의 부산 군사우편 터미널 시설은 인천의 주 허브 터미널과 함께 분할 분배시스템으로 운영되며 매년 한반도로 반입되는 5400톤 이상의 우편물 중 약 40%를 전담하여 처리하게 된다. 2026.4.30. 연합뉴스

주독 미군, 철수하기에는 치러야 할 대가 너무 커

독일에서 미군을 대폭 감축하는 데에는 여전히 많은 장애물이 남아 있다. 아니타 히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안보·외교담당 대변인은 4월 30일 미국이 "유럽의 안보와 방위에 필수적인 파트너"이기는 하지만, 유럽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은 "미국이 자국의 세계적 역할 수행을 지원하는 데에도 유익하다"고 말했다.

존스 홉킨스대 미국독일연구소의 제프 래스케는 같은 의견을 제시하며, 미국이 람슈타인 기지와 같은 곳에 전진 배치를 함으로써 큰 이익을 얻고 있으며, 그런 기지가 없다면 많은 작전 수행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럽 주둔 미군은 감사할 줄 모르는 유럽인들에게 주는 자선 기부가 아니라, 미국의 세계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라고 강조했다. 간단히 말해서, 미국은 유럽 방어를 돕고, 유럽은 미국의 세계 군사작전을 위한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미군은 유럽 내 병력을 재배치할 수 있다. 현재 이탈리아에 약 1만 3천 명, 영국에 1만 명, 스페인에 4천 명의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그러나 2026년 국방수권법에 따라 미군 병력은 영구적으로 7만 5천 명 미만으로 줄일 수 없다.

하지만 국방 분석가들은 슈투트가르트와 람슈타인 같은 기지에서 상당한 인력 감축이 이루어질 경우, 이는 미 국방부 작전의 핵심 전략 거점으로서 수십 년에 걸쳐 발전해 온 만큼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이 주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없는, 또는 철수시키지 않는 이유와도 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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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꿰매는 일" 그의 바늘이 스친 곳에 남은 작품, 그리고 삶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강릉자수의 한 땀, 한 땀에는 여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그것은 바느질이 아니라, 시간을 꿰매는 일이지요."

그는 고개를 들지 않는다. 다가오는 인기척에도 바람처럼 가볍고 깊은 인사만을 건넬 뿐이다. 창으로 스며든 봄빛이 천 위에 내려앉고 그 빛을 따라 바늘이 느리지만 흔들림 없이 오간다. 오랜 세월 몸에 밴 손놀림이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에는 지나온 세월과 삶의 깊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 시간의 결이 여사의 얼굴에 잔잔히 스며 있다.

그의 손끝에서 이어지는 것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다. 이름 없이 이어져 온 여인들의 삶과 사라질지 모를 생활문화의 기억이다. 작업실을 채운 자수 작품들은 공예품을 넘어 하나의 기록처럼 다가온다. 한 땀씩 쌓아 올린 시간 위로 강릉 여인들의 삶과 전통이 오롯이 이어진다. 봄이 짙어지는 어느 날, 강릉의 한 작업실 겸 전시실에서 자수장 김순덕(80)여사를 만났다.

작업실에서 바느질에 몰두한 김순덕 여사, 한 땀씩 쌓인 자수 작품들에 강릉 여인들의 삶과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 진재중

오죽헌에 스며든 또 하나의 예술

강릉 오죽헌은 오랜 세월을 품은 유적지로, 신사임당과 이이의 정신이 깃든 공간이다. 이제 이곳은 단순한 유적을 넘어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한켠에 강릉자수 무형유산 김순덕 여사가 작업실과 전시실을 마련했다. 그의 자수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규방에서 이어져 온 삶의 기록이자 시간의 언어다. 그의 바느질은 오죽헌이 간직한 시간 위에 또 다른 시간을 덧입히며 공간에 새로운 의미를 더하고 있다.

작업실에는 화려함 대신 깊이가 있다. 비단 위에 수놓인 꽃과 새, 자연의 형상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기억의 흔적처럼 다가온다. 관람객들은 그 앞에서 발걸음을 늦춘다. 소리 없는 이야기들이 실의 결을 따라 흐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과거는 박제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 속에서 다시 숨 쉬며 이어진다. 오죽헌이 품어온 정신과 김순덕 여사의 자수가 만나는 순간, 공간은 하나의 살아 있는 서사가 된다. 바늘 끝에서 이어지는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품은 공간. 오죽헌은 지금도 새로운 이야기를 짓고 있다.

▲오죽헌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는 조선중기의 목조 건물로,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혼이서려있다. ⓒ 진재중

"양말 꿰매던 손으로 평생을..."

그의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가족들 양말을 꿰매던 게 시작이었죠."

7남매의 맏딸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집안일의 중심에 서 있었다. 중학생이 되던 무렵에는 어머니 곁에서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다. 특별한 배움이라기보다는 생활의 일부에 가까웠다. 이불을 만들고 해진 옷을 기워 입히는 일은 늘 반복됐고 바느질은 기술이라기보다 가족을 위한 책임이었다.

"어머니가 하시는 걸 보면서 따라 했어요. 그땐 그냥 해야 하는 일이었죠."

그에게 바느질은 선택이 아닌 일상이었다. 집안을 꾸리고 가족을 돌보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익숙해진 손놀림이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가사 시간에 처음으로 자수를 접하게 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이미 바느질에 익숙했던 그는 자수 작업도 금세 손에 익혔고 결과물 역시 또래들보다 뛰어났다. 이를 본 선생님의 칭찬은 그에게 작은 전환점이 되었다.

"바느질이 익숙해서인지 자수가 손에 잘 맞았어요. 선생님께 칭찬도 많이 받았고요."

그 칭찬은 단순한 격려를 넘어, 바느질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바꾸어 놓았다. 가족을 위해 해야만 했던 바느질이 점차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스스로 선택해 해보고 싶은 일로 의미가 확장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익숙했던 일상 속 기술이 개인의 재능과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곱게 차려입은 한복 속에 깃든 김순덕 여사의 자수 인생, 강릉자수의 깊이를 고스란히 전한다. ⓒ 진재중

스승을 만나 전통이 되다

1975년, 김순덕 여사의 삶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강릉 지역 여성 모임인 예림회에 참여하면서부터다. 그곳에서 만난 성기희 교수(전 가톨릭관동대 가정학과)는 그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예절도 가르쳐주시고, 전통음식이랑 자수까지 하나하나 직접 보여주셨어요."

그가 배운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다. 전통을 대하는 자세와 삶의 방식이었다. 예림회에서 전통자수 분과 위원장을 맡은 그는 성 교수 곁에서 보조 역할을 하며 배움을 쌓았고, 이후에는 직접 강단에 서며 전통을 전하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가르치다 보니까, 우리 규방 문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더 깊이 알게 됐어요."

배움은 자연스럽게 나눔으로 이어졌고, 그 나눔은 전통을 이어가는 힘이 됐다. 한 사람의 손에서 시작된 바늘질은 이제 더 많은 이들의 손으로 전해지며 사라질 뻔한 규방의 기억을 다시 삶 속으로 불러내고 있다.

사라질 뻔한 규방의 기억을 자수로 되살려, 다시 삶 속으로 이어가고 있는 김순덕 여사 ⓒ 강릉자수보존회

강릉수보, 지역의 정체성을 품다

"강릉수보에는 혼이 서려 있어요."

그는 강릉의 수보를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며 이를 단순한 공예품이 아닌 스승 성기희 교수와의 인연이자 이어가야 할 유지로 여긴다. 강릉수보자기는 혼례용 보에서부터 떡 목판을 덮는 목판보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다양하다. 무엇보다도 독특한 색채와 문양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나무와 꽃, 새와 풀, 그리고 작은 벌레들까지, 이러한 소재들은 강릉의 여류 화가이자 문인인 신사임당의 '초충도'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

"한 땀 한 땀에 마음이 담겨 있지요."

그는 수보를 복원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을 이렇게 전한다. 자연을 사랑하던 소박한 마음,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던 간절한 바람이 바늘 끝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작업을 할 때마다 옛 강릉 여인들의 정성과 삶의 무게를 새삼 되새기게 된다고 말한다. 강릉수보는 단순한 공예를 넘어, 마음을 전하는 하나의 문화적 언어다. 그것은 지역의 정체성을 품고, 강릉 자수가 지닌 깊이를 오늘에 이어주는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김순덕 여사는 혼례용 보부터 떡 목판을 덮는 목판보까지,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 온 강릉수보자기의 쓰임과 아름다움을 담았다. ⓒ 강릉자수보존회

반세기 장인의 길, 강릉 자수의 맥을 잇다

2003년 전국 공예 대전에서 '다기와 자수 찻상'으로 주목을 받은 데 이어, 2009년 강원 공예 대전에서 '자수 이야기'로 수상한 김순덕 자수장은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과 전승 노력을 인정받아 2017년 강원특별자치도 무형유산 '강릉전통자수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반세기 넘게 강릉 전통 자수의 맥을 이어온 그는 지역 자수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온 대표적인 장인이다.

2025년 전승발표회에서는 그간 축적해온 기예와 미감을 한자리에서 선보였다. 전시에는 강릉 자수의 특징을 집약한 작품들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강릉수보와 조각보, 여의주보 등 전통 문양을 바탕으로 한 다양한 작업들이 공간을 채웠다. 작품들은 지역 고유의 색채와 조형미를 뚜렷하게 드러냈고, 정교한 침선과 풍부한 색감은 각각의 작품에 깊이를 더하며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초충도를 자수로 재해석한 작품은 전통 회화를 섬세한 바느질로 풀어낸 사례로 주목받으며 큰 관심을 끌었다.

김순덕 자수장에 복원된 방사문 혼례용 강릉자수 보자기(강릉수보) ⓒ 강릉자수보존회

속도보다 깊이가 더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에게도 작업을 잠시 멈춰야 했던 시간이 있었다. 눈을 실명하거나 안구가 위축될 수 있는 망막박리라는 예상치 못한 질환이 찾아온 것이다. 수를 놓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여러 차례의 수술과 회복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한동안 바늘을 잡을 수 없었다. 익숙하게 이어오던 작업이 멈추자 일상도 함께 느려졌다.

"빠른 것보다 한 땀, 한 땀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수를 놓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지요. 바느질이 제 건강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그는 담담한 어조로 자수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했다. 다시 작업을 시작했을 때는 예전과 같은 감각이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바늘을 잡는 것부터 서툴게 느껴졌고 손의 움직임도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천천히 다시 손을 움직였고 익숙함을 되찾기 위한 과정을 이어갔다. 그 시간 속에서 그는 작업을 대하는 마음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한다. 예전처럼 빠르게 완성하는 것보다, 한 땀 한 땀에 집중하는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자수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감각과 집중, 그리고 마음이 함께 쌓여 완성되는 작업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김순덕 여사의 한 땀의 바느질은 기술을 넘어 삶의 시간이 된다. ⓒ 진재중

이건 복원이 아니라, 시간을 겹쳐놓는 작업입니다

그는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자수로 재해석하며, 이를 단순한 모사가 아닌 자신의 시간을 덧입혀 새롭게 쌓아가는 작업으로 여긴다. 자연을 관찰하고 그 모습을 한 땀 한 땀 옮기는 반복 속에서 그는 자신의 삶을 다시 마주한다. 초충도에 담긴 자연의 질서와 생명의 섬세함이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저에게 자수는 옛것을 그대로 되살리는 재현이 아니라, 지금의 감각으로 풀어내는 해석입니다. 전통의 이미지 위에 오늘의 숨결을 더해 새롭게 이어가는 일이죠.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작업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에게 자수는 재현이 아니라 해석이다. 과거의 이미지 위에 현재의 감각을 더하며 전통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다. 그래서 그는 무엇보다도 사라지지 않게 이어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특히 초충도를 자수로 재해석한 작품은 그의 작업 세계를 잘 보여준다. 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오랜 시간 쌓아온 감각과 삶이 더해진 또 하나의 창작이다. 화면 위에는 자연의 섬세함과 함께 장인의 내면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초충도, 김순덕 자수장에 재해석된 자수 초충도 8폭 병풍 ⓒ 강릉자수보존회

그가 가장 크게 고민하는 것은 '지속'이다

그는 전통자수의 기법을 익히는 데서 나아가 그것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 생각은 자수를 일상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시도로 이어졌다. 목걸이와 브로치 같은 장신구부터 보석함, 찻상, 윷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활 소품에 자수를 적용하며 전통을 자연스럽게 현재의 삶 속으로 스며들게 했다. 이러한 작업은 전통을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쓰임을 통해 다시 호흡하게 만든다.

"예쁘지 않아요." 작품을 바라보며 말을 이은 뒤, 팔순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수줍은 미소를 보인다. 그의 작품들은 전통 문양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이유는 전통이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문화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전통이 실제로 쓰일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가진다고 말한다.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외국인들에게 호응을 얻은 눈꽃무늬 자수 목걸이 역시, 그러한 생각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동계올림픽 눈꽃무늬 자수 ⓒ 강릉자수보존회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자수뿐만 아니라 삶 자체가 진정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전통 공예가 새롭게 주목받는 흐름 속에서도 기대와 함께 경계의 시선을 놓지 않는다.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겉모습만 차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현실을 우려하며, 무엇보다 '진정성'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강조한다. 오랜 시간 축적된 기법과 지역 고유의 정서가 함께 담겨야 비로소 전통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이 빠진 작업은 단순한 모방에 그친다는 생각이다. 전통은 상품이 아니라 이야기와 시간이 켜켜이 쌓인 문화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에게 자수는 기술을 넘어 삶 자체다. 특별한 극복의 서사로 설명하기보다 그저 자신의 시간을 이어가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힘든 시기를 지나 다시 바늘을 든 지금도 그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리듬으로 작업을 이어간다. 오랜 세월 함께해 온 일이기에, 끝까지 의미 있고 아름답게 완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고 있다.

한편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 또 다른 핵심어는 '규방 문화'다. 과거 여성들의 생활공간이었던 규방은 단순한 일상의 장소를 넘어, 감정과 바람을 표현하던 창작의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탄생한 자수와 보자기는 삶과 예술이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김순덕 여사의 전통자수는 목걸이와 브로치 같은 장신구를 비롯해 보석함, 찻상, 윷판 등 다양한 생활 소품에 자수를 입혀, 전통 문양이 일상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모습을 보여준다. ⓒ 강릉자수보존회

장신구부터 생활 소품까지 자수를 더해, 전통을 오늘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 강릉자수보존회

한 땀, 그 느린 기록

천 위를 오가는 바늘질은 더디지만 끊어지지 않는다. 그 흐름 위에는 이름 없이 이어져 온 여성들의 삶과 강릉이라는 지역의 시간이 함께 포개져 있다. 그는 전통이란 먼 과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라 말한다. 오늘도 그의 바늘은 묵묵히 천 위를 지나며, 사라질지도 모를 이야기들을 조용히 이어간다.

인터뷰 막바지, 그는 바느질에 눈을 떼지 않은 채 조용히 말한다.

"강릉자수에는 여인들의 마음이 담겨 있어요. 단순한 바느질이 아니라, 삶의 희로애락을 한 땀 한 땀에 담아내는 작업입니다."

김순덕 자수장에게 자수는 생업을 넘어 삶의 방식이다. 시간과 시련 속에서도 손에서 바늘을 놓지 않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그의 꾸준한 손길은 거창한 사명이라기보다, 자신의 삶을 성실히 이어가는 태도에 가깝다. 그리고 그 과정이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으로 닿기를 바란다.

강릉자수는 그렇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는 이 조용한 계승은 전통이란 오래된 유산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시간임을 다시금 일깨운다.

여든이 넘은 손길로 자수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삶을 묵묵히 이어가는 태도와 잔잔한 울림이 전해진다. ⓒ 진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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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흔들어대는 미국을 박살내자!”…189차 촛불대행진 열려

 

“이재명 정부 흔들어대는 미국을 박살내자!”…189차 촛불대행진 열려

 

문경환 기자 | 기사입력 2026/05/02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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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행동이 주최한 ‘내란청산 국민주권실현 189차 촛불대행진’이 2일 오후 5시 서울시청역 7번 출구에서 열렸다. 

 

  © 김영란 기자


‘주권모독 내정간섭 미국을 규탄한다!’는 부제로 열린 이날 집회에는 황금연휴도 반납하고 광장에 나온 연인원 2,600여 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이 함께했다. 

 

사회를 맡은 김지선 촛불행동 공동대표는 “검은 머리 미국인들이 매일 내정간섭 발언을 해대고 있다”라면서 “지금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의원들 그리고 정동영 장관까지 일치단결해서 미국을 규탄하고 있다. 아주 잘하고 있다”라고 응원했다. 

 

사회자의 선창으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시작했다. 

 

“주권모독 내정간섭 미국을 규탄한다!”

“주권모독 전쟁화근 주한미군기지 철수하라!”

“이재명 정부 흔들어대는 미국을 박살내자!”

“친미꼴통 매국역적 내란당을 해체하자!”

“주권자 국민 그 존엄 앞에 미국은 무릎을 꿇어라!”

 

윤경황 서울촛불행동 공동대표는 “미국이 전방위적으로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이런 모욕적인 주권 침해 행위를 허용할 수 있나?”라고 물으며 “미국이 난리를 치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국의 침략전쟁에 동조하지 않고, 전작권 환수를 주장하는 등 이재명 정부가 미국을 따르지 않는다고 여기니 그런 것이다. 미국은 이재명 정부를 계속 공격하고, 끝내는 이재명 대통령을 제거하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미국에는 대한민국의 검찰과 법원이 필수적이다. 한국 내 개혁적인 정치인을 제거하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바로 정치검찰과 조희대 사법부이기 때문”이라면서 “조희대가 버티고 조작검사들이 보완수사권을 달라며 난장판을 피울 수 있는 것도 바로 미국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내란 청산의 최대 방해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최대 걸림돌, 모든 악의 근원은 바로 미국”이라면서 “이재명 정부를 흔들어대며 주권을 모독하고 전쟁 위기를 고조시키는 미국을 제압하자”라고 외쳤다. 

 

▲ 김지선 공동대표(왼쪽)와 윤경황 공동대표.  © 김영란 기자


이해연 동작관악촛불행동 공동대표는 “미국이 벌이는 전쟁에 휘말리게 된다면 가장 먼저 우리나라가 타격당할 것”이라고 하면서 “주한미군기지 철수는 절박하다 못해 우리의 ‘생존 문제’가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미국은 다음 전쟁터로 동아시아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최근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은 한국·일본·필리핀을 하나로 묶는 이른바 ‘킬 웹’ 통합 구상을 언급하며, 우리나라를 북·중·러에 맞선 대리전 전초기지로 삼으려는 속내를 드러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재명 정부는 미국의 부당한 요구와 패권적 계획에 호락호락 응하지 않고 있다. 그러자 미국이 이재명 정부를 맹공격하고 있다”라며 “미국의 주권 모독과 내정간섭을 더는 용납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 이해연 공동대표.  © 김영란 기자


안정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은 “우리나라의 전시작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전두환 신군부의 군대 이동을 몰랐을 리 있나? 한미연합사를 통해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하달받는 미국이 12.3내란 당시 군대 이동을 몰랐을 리 있나?”라고 물으며 “미국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더 정확하게는 전두환의 계엄도, 윤석열의 내란도 미국의 승인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은 주한미군기지가 배치된 한국을 전초기지 삼아 동북아에서 한국·일본·필리핀까지 동원하여 북한·중국·러시아와 대리전쟁을 하겠다는” 속셈이라며 “미국과의 싸움은, 주한미군기지 철수 투쟁은 우리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고 했다. 

 

김정희 프랑스 민족의 집 대표는 “미셸 박 스틸이 미 상원의 청문회를 통과한다면 한국의 내란세력들과 손을 잡고 이재명 정부를 흔들어 정치적·사회적 불안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차기에 우리 사회는 다시 윤 어게인 세력들이 활개 치는 정치적·사회적 대혼란을 겪을 것이 우려된다”라며 국내·해외 촛불행동 공동성명을 낭독했다. 

 

공동성명은 “미셸 박 스틸 지명자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공개적 지지,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적대적 프레임 형성 그리고 시민사회의 민주적 정치운동을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행동으로 규정하는 등 한국 국내 정치에 대한 명백한 편향성을 지속적으로 드러내 왔다. 이런 행보를 걸어온 인사를 주한 미국 대사로 지명한 것은 단순한 외교관 인선이 아니라 한반도 정책 전반을 갈등과 충돌로 몰아갈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셸 박 스틸 지명자는 내정 불간섭 원칙을 준수하고, 한반도 평화 및 긴장 완화 정책에 대한 명확하고 공식적인 입장을 즉각 밝혀야 한다 ▲미 상원은 인준 절차에서 미셸 박 스틸 지명자의 외교적 중립성, 정책 일관성 그리고 한반도 정책 관련 입장을 엄정하게 검증하고, 임명에 신중해야 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셸 박 스틸의 주한 미국 대사 지명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주권정부는 ‘빈 국제협약 제4조 2항’에 따라 해당 인사에 대한 아그레망 동의를 거부할 수 있다 등의 입장을 밝혔다. 

 

이 성명에는 해외촛불행동 13개국 56개 지역이 참여했다고 한다. 

 

▲ 촛불행동 명예최고대표 양회동 열사 3주기를 맞아 참가자들이 추모의 묵념을 했다.  © 김영란 기자


양회동열사정신계승사업회의 강한수 회장은 “정권을 바꿔낸 지도 1년이 다 되어 가고, 그 사이 구속 중이던 조합원들은 사면, 복권을 받기도 했다. ‘근로자’가 아닌 ‘노동자’로, ‘근로자의 날’이 아닌 ‘노동절’로 잃어버린 이름을 63년 만에 되찾기도 했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그러나 여전히 열사의 명예회복을 해내지 못했다”라며 “CCTV 유출범과 패륜 조선찌라시 그리고 그에 동조한 모든 놈들을 단죄하고, 열사와 유족, 건설노조에 대해 사죄, 명예를 회복하는 투쟁의 길에서 꼭 승리하겠다. 윤석열이 망쳐놓은 건설산업의 정상화와 건설노동자의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원청 건설사들과의 교섭 투쟁에서 꼭 승리하겠다”라고 다짐했다. 

 

‘조작수사 피해자 이화영 진실규명과 석방을 위한 시민행동’에서 활동하는 김난희 종로성북동대문촛불행동 회원은 “(조희대 대법원장은) 이재명을 죽이기 위해 윤석열 파면 이후에도 희대의 파기환송으로 사법 내란을 자행하고, 아직도 이화영(경기도 전 부지사)을 희생양으로 잡아 가두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정조사를 통해 실체적 진실이 드러났고, 이제 특검을 통해 죄를 지은 자들을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비극적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조작 사건의 희생양으로 한 가정을 도륙 낸 이 국가 폭력에 대해 국가가 사죄하고, 이화영 전 부지사를 당장 석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 왼쪽부터 김정희 대표, 강한수 회장, 김난희 회원.  © 김영란 기자


집회를 끝낸 참가자들은 미 대사관까지 행진했다. 

 

▲ 참가자들은 미 대사관을 향해 “주한미군기지 철수하라!”, “주권자 국민, 그 존엄 앞에 미국은 무릎을 꿇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 표시를 했다.  © 이영석 기자

 

▲ 참가자들은 미 대사관을 향해 “주한미군기지 철수하라!”, “주권자 국민, 그 존엄 앞에 미국은 무릎을 꿇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항의 표시를 했다.  © 박명훈 기자

 

▲ 극단 경험과상상의 류성 대표가 추모 편지를 낭독했다. (☞ 기사 말미에 추모 편지 전문)  © 김영란 기자

 

▲ “내란 청산이 이렇게 안 되고 있어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광장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남편이 쉬면 같이 항상 그냥 축제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김포에서 온 부부  © 김영란 기자

 

▲ “전작권 회수도 못 하고, 미국놈들 철수도 안 하고, 조희대 탄핵도 못 시키고, 그래서 다시 광화문으로 왔습니다.” -강남에서 온 회원  © 김영란 기자

 

▲ “끝까지 가려고 나오고 있습니다.” -강북촛불행동 사무국장  © 김영란 기자

 

▲ “양회동 열사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 바로 조희대 탄핵과 촛불 광장을 더 힘 있게 키워내는 것.” -춘천에서 온 회원  © 김영란 기자

 

▲ “지방선거 될 때까지 조희대 탄핵을 못 시킨 사람들, 너무나 화가 납니다.” -도봉촛불행동 박재석 신부  © 김영란 기자

 

▲ 배달 노동자 가수 동백 씨가 「내란법비 조희대 탄핵해」, 「이젠 나가」, 「행복의 나라로」를 불렀다.  © 김영란 기자

 

▲ 가수 백자 씨가 「그날이 올 때까지」, 「니들이 뭔데」, 「골목 깡패 트럼프」, 「이제는 미국과 헤어져야 할 시간」을 불렀다.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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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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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명훈 기자

 

추모 편지 전문

양회동 동지, 잘 지내십니까. 

작년 이맘때, 우리는 동지의 묘소를 찾아 승리의 보고를 드렸습니다. 그날, 우리는 참 기뻤습니다. 동지가 환한 웃음을 지으며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양회동과 한 데 얼싸안고 부둥키다가, 덩실덩실 신명 나게 춤을 추는 것만 같았습니다.

양회동 동지. 이제 와서 뒤늦은 고백 하나 해야겠습니다. 3년 전, 동지가 분신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동지의 마음을 차마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순둥이도 그런 순둥이가 없다고 할 만큼 겁이 많았던 사람인데. 교섭장에서 사측 사람에게 큰 소리 한 번 내질렀다가, 그게 며칠 동안 마음에 걸려 했던 착한 사람인데. 아이들 사진에 “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써둘 만큼 사랑이 많은 사람인데. 

그런 양회동이 어떻게 자신의 몸에 스스로 불을 당기는 모진 선택을 했단 말인가. 아무리 억울해도 그렇지. 아무리 절실해도 그렇지.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했을까. 양회동의 마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런 양회동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것은 1년 7개월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12월 3일 내란의 밤, 수천수만 명의 국민이 국회로 달려갔습니다. 청년들은 슬리퍼에 잠옷 차림으로 뛰어나왔습니다. 어르신들은 아까운 청년들 살려야 하니 우리가 앞에 서자며 스크럼을 짰습니다. 모두 계엄군의 장갑차와 총구 앞에 자신을 세웠습니다. 

그때 우리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막아야 한다.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이지만 이 내란을 막아낼 수 있다면, 그 목숨 아낌없이 바치겠다. 그때, 양회동의 절규가 겹쳐 올랐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꼭 승리하여야만 합니다.” 

길고 긴 투쟁이 시작되었습니다. 매일매일 수십만 수백만의 국민이 몰려나왔습니다. 여의도에서, 광화문에서, 안국동에서, 남태령에서, 한남동에서. 국민은 살갗을 파고드는 겨울 칼바람에 자신의 몸을 기꺼이 들이댔습니다. 

그때도 우리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이겨야겠다. 내 몸이 망가져 쓰러진대도 좋으니 기어이 윤석열을 무너트려야겠다. 다시, 양회동의 호소가 겹쳐 올랐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꼭 승리하여야만 합니다.”

그 겨울, 우리는 모두 양회동이 된 것만 같았습니다. 수천수만의 양회동이 되어 함께 싸우는 것만 같았습니다. 누구보다 착하지만 무엇보다 강인한 사람 양회동, 자기 자신보다 동지를 더 보살피는 사랑 많은 사람 양회동, 이길 때까지 싸우는 사람 끈질긴 사람 양회동. 

그렇게 우리 자신이 양회동이 되었을 때, 비로소 양회동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 몸을 태워서라도 대한민국을 바로 세워야겠다는 열망.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지들에 대한 한 없는 믿음. 마침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낙관. 그것이 양회동의 마음이었습니다.

양회동 동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가슴에는 동지의 음성이 고동치고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민주노총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 양회동입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동지 여러분. 꼭 승리하여야만 합니다.” 

예, 꼭 승리하겠습니다. 영원히 우리들 곁에서 힘찬 팔뚝질과 강한 투쟁의 목소리를 높여 주십시오. 우리는 양회동의 자존심, 양회동의 뚝심, 양회동의 진심을 닮아 싸워나갈 것입니다. 승리하고 또 승리할 것입니다. 

양회동의 마음으로, 양회동의 투지로. 예, 꼭 승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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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핵무력 국가', 협상은 이걸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박세열 칼럼] '구성시 논쟁'은 아무 의미 없는 '헛 일'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6.05.02. 01:35:01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북한 구성시에 핵시설이 있다고 발언하고, 미국이 한국에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했다는 문제에 대해 국민의힘이 기회를 만났다는 듯 공세를 쏟아붓고 있다. 헛 일이다.

북한에 영변 외 핵 시설이 여러 곳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정 장관이 언급했다는 '구성시' 역시 이미 수차례 공개된 사실상의 '오피셜' 정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김정은과 베트남 하노이에서 만나 "(김정은은 핵시설) 1∼2곳을 없애길 원했다. 그렇지만 그는 5곳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김정은은 미국의 정보력에 놀랐다고 한다. 아마 지금 북한의 핵 관련 시설은 5곳을 넘을 것이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 매체 <더 디플로맷>이 최근 이 논쟁을 다뤘다. 한반도 담당 수석 특파원인 미치 신 기자는 "결국 '구성 사건'은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이 사건이 제기하는 더 중요한 질문은 워싱턴도 서울의 보수 진영도 직접적으로 답하기를 꺼리는 질문이다. 과연 북한의 비핵화는 실현 가능한가? 답은 분명히 '아니오'다"라고 말한다. 그는 '구성 논란'을 두고 "마치 로마가 불타는 동안 바이올린을 켜는 격"이라고 냉소했다.

미치 신은 결국 북한의 핵무력 보유를 인정할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핵무력은 이미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다. 핵시설이 구성에 있는지, 영변에 있는지는 군사 전술에선 의미가 있지만, 국가 전략에서는 아무런 의미값을 갖지 못한다. 정동영 장관이 북한에 존재하는 핵 관련 시설 위치를 특정했든 안했든 상황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이다. 미국이 (한국의 외교적 노력을 쏟는 것과 별개로)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했든 하지 않았든 역시 마찬가지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미국, 정확히는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대북 강경파로 잘 알려진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트럼프 행정부 사람들이 북한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미국 대통령이 담당 데스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관계는 오로지 그들의 것이다. 트럼프가 직접 북한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입장은 무엇인가. 지난해 경주에서 열리는 APEC에 참석하기 앞서 그는 북한을 "일종의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핵무력 세력)로 규정했다. 그는 "그들(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말한다면(질문한다면), 그들은 많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말하겠다"고 했다. 핵 보유국이라고 규정하는 건 유보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인정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뉴클리어 파워'라는 다소 모호한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건 트럼프는 북한이 핵무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북한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핵무력'은 진화하고 있다. 마크 버커위츠 미국 국방부 우주정책 담당 차관보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 국가정보국(DNI)은 올해 보고서 "북한이 미국 전역에 도달할 수 있는 ICBM 시험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담았다. 베네수엘라나, 이란과 북한은 완전히 다른 위치에 서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일으킨 이란과의 전쟁은 트럼프가 북한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역설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해 준다. 트럼프는 '아직 핵 무력을 갖지 못한' 이란의 핵 시설을 타겟으로 삼지만, '이미 핵 무력을 보유한' 북한은 이 교훈을 사무치게 새기고 있을 것이다. 이번 전쟁을 보고 있는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트럼프는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장관은 이란이 북한처럼 되는 걸 막기 위해 이란을 공격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말하면 북한 수준의 핵무장 단계가 되면 미국이 공격할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달갑지는 않지만 북한은 '협상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침 미국 내에서도 비핵화 회의론이 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지난 2024년 정강정책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언급을 삭제했다. 지난 2020년 대선 공약에서 민주당은 북한 비핵화를, 공화당은 CVID(불가역적 핵 폐기)를 제안했던 것에 비춰보면 미국 정가 내에서도 '북한 비핵화'를 현실적 목표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회의론'을 상징한다.

대북 강경파라는 빅터 차 석좌조차 북한과 북핵을 협상의 중심에 두되 군축 합의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빅터 차 석좌가 제시한 것은 '비핵화' 정책의 실패 인정, 북한과 새로운 '차가운 평화' 체제 구축이다. 북한을 '핵무력 세력'으로 관리하면서 위기 안정, 군비 통제, 그리고 직접적인 소통 채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변화를 읽는 게 중요하다. 정동영 장관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한미 동맹이 무너지고 있다'고 떼를 쓰는 국민의힘은,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비핵화를 접어두고 북한의 핵 무력을 인정하며 김정은과 협상에 나설 때 뭐라고 할 것인가. 국민의힘은 과연 변화하느 세계에 대한 준비는 되어 있는가? 대안이 없다면 야당은 살아 있으되 살아있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독일 통일을 이끈 중부 유럽의 소국 '프로이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는 "현실 정치"라는 개념을 발명했다. 이념과 전통에 매여 있던 당시 유럽의 외교가에서 비스마르크는 오로지 '프로이센의 국익'을 기준으로 약소국의 현실을 인정하고 혁명과 반동을 모두 거부하며 '있는 그대로의 유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는 "독일 통일은 의회(국내 정치)가 아니라 외교와 현장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의 숙적 프랑스의 독재자 나폴레옹 3세와도 전략적 친분을 유지했고, 동맹인 오스트리아와도 전략적 거리감을 유지했다. 결국 그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를 물리치고 독일 통일의 역사적 과업을 이뤄낸다.

결국 '실용'의 문제다. 정세 변화를 읽는 눈과 냉정한 판단, 그리고 실행력이 중요하다. 있는 그대로의 북한과 변화하고 있는 미국을 캐치해야 한다.

▲2018년 6월 싱가포르서 만난 트럼프와 김정은 ⓒAP=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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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킬체인' 버려라?…빅터 차, 자기 보고서 뒤집는 이유

정승호 시민기자

jeong.seungho@hoasen.edu.vn

베트남 호아센대학교 언어심리학부 전임강사,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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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CSIS 한반도 보고서에서 '킬체인' 권고

비핵화 실패·미 전략 과부하에 "차가운 평화로"

김정은, 카다피·이란 선례 보며 핵 포기 안 할 것

북 선제 타격하면 미국에 ICBM 날아온다 걱정

미국 국익 관점서 핵공격 리스크 줄이려는 것

킬체인 한 번 해체하면 되돌리기 쉽지 않아

방패만 들고 수백 발의 미사일 막을 순 없어

방패 남기고 창 꺾으라는 조언은 가치 없어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석좌교수. CSIS 홈페이지 갈무리

2023년 1월 19일, 워싱턴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한반도 위원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존 함레 CSIS 소장과 조지프 나이 하버드 교수가 공동 의장을 맡았고, 빅터 차 석좌교수가 프로젝트 디렉터였다. 보고서 제목은 「북한 정책과 확장 억제」였다.

이 보고서는 한국의 군사력 개선을 지원해야 한다고 권고하면서 그 첫 번째 항목으로 킬체인을 명시했다. 북한의 임박한 공격을 탐지해서 미사일 발사 능력을 사전에 파괴하는 선제타격 계획. 아이언돔 조기 배치, 지향성 에너지 무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추가 배치와 함께, 한국 억제력의 핵심으로 권고된 것이다. 빅터 차가 프로젝트 디렉터로서 직접 만든 보고서에 들어간 내용이다.

2026년 4월 28일, 같은 CSIS 건물에서 열린 한국 특파원 간담회에서 빅터 차는 이렇게 말했다. "추천하는 것 중 하나는 한국이 더 이상 킬체인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유는 이렇다. "킬체인은 선제적 전략이고 북한의 핵무기 발사를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따라서 한국은 킬체인에서 벗어나야 한다."

3년 사이에 무엇이 바뀌었을까. 빅터 차가 갑자기 무능해진 걸까. 아니다. 사실 그는 아주 유능한 학자다. 다만 그가 유능하게 대변하는 이익이 한국의 이익이 아닐 뿐이다. 그가 왜 바뀌었는지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자.

그의 논거를 복기해보자. 빅터 차가 4월 21일 《포린 어페어스》에 발표한 논문 「있는 그대로의 북한: 차가운 평화(cold peace)를 위한 논거」가 제시한 것은 세 가지 논거였다.

첫째, 비핵화는 실패했다. 30년간 7개 행정부가 같은 프레임워크를 들고 북한과 협상했는데 북한의 핵은 줄기는커녕 50기 이상의 탄두와 고체연료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화성-18, 화성-19, 화성-20)과 극초음속 활공체로 늘어났다.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삼는 접근법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건 사실이다. 필자도 동의한다.

둘째, 미국의 전략적 과부하가 심각하다. 2025년 6월 이란 핵시설을 벙커버스터로 공습한 미드나이트 해머 작전에 이어 2026년 2월 28일 본격적인 대이란 전쟁(장엄한 분노 작전)이 터졌다. 항모전단 3개가 중동에 묶여 있고, 한국에 배치됐던 패트리엇과 고고도 요격체계가 중동으로 빠지고 있다. 빅터 차는 이 상황에서 전 국방부 차관보 엘리 래트너의 말을 빌린다. "적을 판에서 빼야 한다." 북한을 그 판에서 빼자는 것이다. 이것도 사실에 기반한 판단이다.

셋째, 그러니 비핵화를 전제조건으로 삼지 말고 군축 협정, 핵실험 금지, 미사일 생산 제한, 위기관리 핫라인, 핵이전 금지 같은 것부터 대화하자. 이른바 '차가운 평화'다.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공존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논거 자체는 설득력이 있다. 비핵화 프레임워크가 30년째 실패했다는 진단에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이란전쟁으로 전략적 여유가 줄었다는 것도 명백한 사실이다.

문제는 결론이다. 빅터 차는 이 논거 위에 "한국은 킬체인을 폐기하라"는 결론을 올려놓았다. 논거는 맞는데 결론이 논거를 배신한다. 왜 그런지 다섯 가지를 따져 보겠다.

 

지난달 21일(현지시간) 발표된 포린어페어즈 5, 6월 합병호에 실린 빅터 차의 기고문 제목과 이미지

하나. 김정은이 학습한 교훈

핵을 포기한 자들의 목록이 있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2003년 핵을 포기했다. 서방은 제재 해제와 국제사회 편입을 약속했다. 8년 뒤인 2011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가 지원한 반군이 그를 배수로에서 끌어내 살해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은 핵 프로그램이 해체된 뒤 2003년 미국에 침공당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에 서명하고 세계 3위 핵전력을 러시아에 반납했다. 미국, 영국, 러시아가 영토 보전을 보장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했고, 2022년부터 전면 전쟁이 진행 중이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보증인인 러시아가 직접 침공한 것이다.

그리고 이란. 2015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로 핵 프로그램을 동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2018년 합의를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2025년 6월 미국이 핵시설을 폭격했다.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전쟁을 시작하면서 최고 지도자 하메네이가 사살되었다. 협상으로 핵을 동결한 국가가, 협상 파트너에 의해 공격당한 것이다. 채텀하우스의 2026년 3월 분석을 보자.

"이라크와 리비아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했고, 역시 군사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반면 핵무기를 개발한 북한은 지금까지 군사 공격을 피해 왔다. 관찰자들은 이란이 이미 핵 억제력을 보유했다면 공격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김정은은 이 목록을 전부 보고 있다. 지난달 최고인민회의에서 이렇게 연설하지 않았는가. "오늘의 현실은 적들의 감언이설을 거부하고 핵전력을 영구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우리 국가의 전략적 선택과 결단의 정당성을 명백히 실증하고 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의 비핀 나랑 전 국방부 우주정책 차관보 대행과 프라나이 바디 전 국가안보위원회(NSC) 군축 선임국장은 2025년 《포린 어페어스》 기고에서 이 상황을 "카테고리 5 허리케인"이라고 불렀다. 로버트 켈리 부산대 교수는 《포린 폴리시》에 더 직설적으로 썼다.

"북한은 이제 서방 위협으로부터 안보를 추구하는 불량국가의 모델이 되었다. 비용과 결과에 관계없이 핵무기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전략이 반복적으로 입증되었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나오는데, 빅터 차도 이걸 인정한 것이다. 《포린 어페어스》 논문에 그는 이렇게 썼다. "북한은 이란이 아니다. 입증된 핵보유국이며 미국과 동맹국에 보복할 수 있다."

또 이렇게도 썼다. "군사 행동을 대신 위협할 수 있다. 미국은 이란에 했던 것처럼 비핵화하지 않으면 같은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압박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이란이 아니다." 북한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를 본인이 세워놓은 것이다.

그런데 그 전제 위에 올린 결론이 "한국은 킬체인을 버려라"다. 여기서 논리가 무너진다.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상대 앞에서, 그 핵에 대응하는 억제 수단을 먼저 내려놓으라는 것. 이걸 억제라고 부를 수는 없다. 일방적 양보라고 불러야 한다.

카다피가 핵을 포기하고 죽었다는 교훈을 김정은이 학습했다면, 한국이 킬체인을 포기했다는 사실에서 김정은이 학습할 교훈은 뭘까. 답은 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8일 국방성중앙군악단 창립 80주년 기념 연주회를 관람했다고 조선중앙TV가 다음날 보도했다. 2026.4.29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둘. 빅터 차가 빅터 차를 반박한다

국제정치학에 '동맹 안보 딜레마'라는 개념이 있다. 1984년 글렌 스나이더가 《세계정치》에 발표한 이론이다. 핵심은 이렇다. 동맹 안에서 약소국은 두 가지 공포를 동시에 안고 산다. 하나는 방기이다. 강대국 동맹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 다른 하나는 연루인데, 강대국의 전쟁이나 전략적 선택에 원치 않게 끌려들어갈 것이라는 공포다. 스나이더는 "연루는 통상 강대국보다 약소 동맹국에게 더 심각한 문제"라고 명시했다.

이 이론을 한미동맹에 적용한 유명한 학자가 누구였을까? 바로 빅터 차 자신이다.

빅터 차는 2000년 《국제연구 계간》에 발표한 논문 「아시아에서의 방기, 연루, 그리고 신고전적 현실주의」에서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의 역학을 스나이더 프레임으로 분석했다. 이 논문은 그의 핵심 저작 중 하나다.

바로 그 프레임으로 2026년 현재 상황을 분석하면 어떻게 되는가. 미국은 이란전쟁으로 전략자산을 중동에 집중하면서 한반도에서 빠지고 있다. 이것은 방기의 신호다. 동시에 미국은 한국에게 "킬체인을 폐기하라"고 요구한다. 미국 본토를 향한 ICBM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한국의 억제 수단을 제한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연루인데, 미국의 리스크 계산에 한국이 끌려들어가는 것이다. 방기와 연루가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미국은 떠나면서(방기) 한국의 창을 뺏는다(연루). 빅터 차가 2000년에 정립한 이론적 틀이 2026년 자신의 정책 제안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셈이다.

2024년 로런 수킨과 서우혁의 연구(《평화와 핵군축 저널》)는 한국인 다수가 방기와 연루를 동시에 우려한다는 실증 결과를 보여주었다. 2025년 이도영의 연구(《국제관계》, Sage)는 미국의 확장억제에서 모호성이 커질수록 동맹국의 '안심'이 체계적으로 약화된다는 점을 실증했다. 킬체인을 폐기하고 한국형 미사일 방어체계(KAMD)에만 의존하게 되면, 그 모호성은 극대화된다.

셋. 트럼프 행정부는 영원하지 않다

빅터 차의 논거를 뒷받침하는 조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전부 일시적이다. 이란전쟁은 끝나거나 축소된다. 지금도 위태위태하지만 휴전이 진행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도 영구적이지 않다.

한반도 배치 전략자산의 중동 이전은 행정부가 바뀌면 되돌릴 수 있는 결정이다. 트럼프가 3월 17일 한국·일본·호주를 이란전 참전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공개 비난한 것? 이건 대통령 개인의 스타일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2기 임기는 2029년 1월 20일에 끝난다. 다음 대통령은 민주당일 수도 있고, 다른 노선의 공화당 후보일 수도 있다. 지금의 전략적 과부하, 지금의 동맹 압박, 지금의 중동 전쟁까지 전부 현 행정부의 선택에서 비롯된 일시적 조건이다.

반면 킬체인은 한번 해체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다. 탐지-결심-타격을 잇는 통합 시스템이라, 정보자산 배치, 지휘체계, 타격 플랫폼의 연동을 처음부터 다시 구축해야 한다. 복원에 몇 년이 걸린다.

한국 국방부가 연간 5조 2700억 원(2024년 기준)의 예산을 투입해 57개 3축 체계 프로젝트를 동시 추진하고 있는 것은, 이 체계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루아침에 복원할 수도 없다.

토머스 셸링은 《무기와 영향력》에 이렇게 썼다.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는 능력이 협상력이다.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외교다." 셸링이 1960~70년대에 정립한 군축 협상 이론의 핵심은 간단하다.

협상 전에 자신의 역량을 일방적으로 포기하는 것은 협상 기반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역사적 선례도 명확하다. 2009년 오바마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리셋'을 추진하면서 동유럽 미사일 방어 계획을 일방적으로 철회했다. 푸틴이 선의의 양보로 화답했을까? 결과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이었다. 레이건은 1986년 레이캬비크에서 전략방위구상(SDI)를 양보하라는 고르바초프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소련은 결국 더 미국에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 테이블에 돌아왔다.

군축 협상의 기본 원칙이 있다. 되돌릴 수 있는 조건에 근거해 되돌릴 수 없는 양보를 하지 않는 것이다. 빅터 차는 4년짜리 문제에 10년짜리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넷. 방패만 들고 싸울 수 있는가?

비용교환비의 냉정한 산수를 해보자. 빅터 차의 대안은 이렇다. 킬체인(선제타격)을 폐기하고, KAMD와 미국 전략자산의 정기적 전개로 대체하라. 이것이 실현 가능한지 숫자로 따져 보면 어떨까?

군사 경제학에 '비용교환비'라는 개념이 있다. 공격 미사일 1기를 추가하는 비용 대비, 그것을 요격하기 위해 방어 측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비율이다. 이 비율이 1보다 크면 공격 측이 유리하고, 방어 측은 군비경쟁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하다.

모리츠와 카디셰프가 2024년 《국방평화경제학》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요격 확률 50%, 디코이(기만체) 미식별 조건에서 비용교환비는 70:1에서 85:1에 달한다. 방어 측이 1달러 상당의 위협을 막으려면 70~85달러를 써야 한다는 뜻이다. 로렌스리버모어 국립연구소의 2025년 6월 분석은 대규모 미사일 방어 체계가 실효적으로 작동하려면 약 3000기의 요격미사일이 필요하며, 단가를 4000만 달러 이하로 낮춰야 한다고 추산했다.

구체적인 숫자를 대보자. 패트리엇 PAC-3 MSE 요격미사일 1발의 가격은 약 400만 달러(2024~2025년 미 국방예산 기준)다. THAAD 요격미사일은 1발에 1200만~1500만 달러다. 반면 이란의 파테-110 계열 탄도미사일 가격은 수십만 달러 수준이고, 샤히드-136 자폭드론은 2~5만 달러다. 북한의 화성-11 라(KN-23, 이스칸데르 파생형) 같은 단거리 전술미사일은 러시아 원형 대비 저렴하게 대량 생산되고 있다. 2023년 대성기계공장 위성사진에서 화성-12 미사일 28기가 동시에 포착됐다는 미 북한위원회(NCNK)의 분석이 말해주듯, 북한은 이미 산업적 규모의 미사일 생산 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론만이 아니라 실전 데이터도 있다. 2025년 6월 미-이란 12일 전쟁에서 미군은 11일 만에 THAAD 요격미사일 재고의 25% 이상을 소진했다. 5일 만에 24억 달러 이상의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을 소모했다. 패트리엇 재고가 국방부 요구 수준의 약 25%까지 떨어졌다. 이란이라는 단일 상대와의 제한 전쟁에서 이 정도다.

방사포나 미사일, 자폭 드론 등 다수의 발사체를 동시에 또는 아주 짧은 간격으로 집중 사격하여 목표물을 타격하는 전술을 살보(Salvo) 공격이라고 한다. 만약 북한이 화성-11 라, 화성-12, 화성-15, 화성-18의 살보 공격을 감행한다면? KAMD만으로 막는다는 것은 어렵다.

바로 이것이 3축 체계가 존재하는 이유다. 킬체인(위협 원점 타격), KAMD(요격 방어), 대량응징보복(KMPR, 보복 타격), 이 세 축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을 한다. 킬체인이 발사 전 위협을 제거하면 KAMD의 부담이 줄어든다. KAMD를 뚫은 미사일이 있어도 KMPR이 보복 억제력을 제공한다. 세 축이 함께 돌아가야 억제가 작동한다. 한 축을 빼면 나머지 두 축의 부담이 급증하고, 체계 전체의 신뢰성이 무너진다.

통일연구원 홍민 선임연구위원은 빅터 차의 제안에 대해 코리아 헤럴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반박했다. "킬체인이 정말 문제의 본질인지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 문제는 양측의 깊은 적대감과 상호 불신에 있다. 억제 체계의 존재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군비 통제의 핵심 개념은 억제 체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판을 최소화하고 위협과 공격의 가능성을 줄이는 것이다. 한국의 킬체인을 제거한다고 해서 북한이 핵을 포기하거나 비핵화를 달성하지는 않는다."

방패만 들고 수백 발의 미사일 소나기를 막으라는 이야기가 왜 안 되는지, 이보다 더 분명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12일 구축함 최현호에서 전략순항미사일 2기와 반함선미사일 3기의 시험발사를 참관했다고 조선중앙TV가 같은 달 14일 보도했다. 2026.4.14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다섯. 제국의 과부하는 누가 만들었나?

2026년 1월 23일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국방전략서(NDS) 「미국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위한 힘을 통한 평화 회복」을 보자. 이 문서에 주목할 만한 문장이 있다. "강력한 군대, 높은 국방비, 튼튼한 방위산업, 징병제를 갖춘 한국은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 미국의 지원 하에 북한 억제의 일차적 책임을 질 수 있는 역량이 있다." 그리고 이런 문장도 있다. "동맹국은 자국 방위의 일차적 주체로 나서야 하며, 미국은 핵심적이지만 보다 제한적인 지원을 제공할 것이다."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2025년 4월 8일 상원 인준)의 발언도 같은 기조다. 세계 10위권 경제력을 가진 한국은 스스로를 방어할 능력이 충분하다.

필자도 이 말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한국은 스스로를 방어해야 한다. 주권 국가라면 당연하다. 그런데 빅터 차가 하는 말은 바로 이 NDS의 기조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NDS는 한국에게 "북한 억제의 일차적 책임"을 지라고 한다. 그런데 빅터 차는 그 책임을 이행하는 데 핵심적인 도구인 선제타격 능력을 포기하라고 한다. "스스로 방어하되, 방어에 필수적인 가장 날카로운 창은 포기하라." 이건 자체 방위를 맡기면서 정작 방위의 핵심 도구를 뺏는 것이다. 겉은 '책임 분담'이지만 속은 '위험 전가'다.

현재 미국이 겪고 있는 전략적 과부하는 누가 만들었을까? 2025년 6월 이란 핵시설 공습은 미국의 결정이었다. 2026년 2월 대이란 전면전 개시도 미국의 결정이었다. 이스라엘에 대한 전방위 군사 지원도 미국의 선택이었다. 동맹국이 부탁한 적은 없다. NDS 자체가 이란·중동 관련 기술을 2018년 NDS 대비 오히려 확대했다는 CSIS의 분석이 말해주듯, 중동 개입은 전략적 축소가 아니라 전략적 선택이다.

그런데 이제 그 과부하의 비용을 한국의 억제력 축소로 메우겠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빅터 차의 또 다른 제안인 "핵탑재 가능 미군 전략자산의 정기적 한반도 전개"로 킬체인을 대체하겠다는 것의 내적 모순도 드러난다. NDS가 "보다 제한적인" 미군 지원을 명시하고, 한반도 주한미군 전력 배치의 "재편"을 시사하는 상황에서, 미국이 전략자산을 '정기적으로' 전개하겠다는 약속이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줄이겠다는 나라의 전력에 더 기대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모순은 하나 더 있다. 빅터 차는 《포린 어페어스》 논문에서 미국의 당면 과제 중 하나로 "베이징, 모스크바, 평양 사이의 유대를 약화시키는 것"을 제시했다. 중·러·북 삼각관계에 쐐기를 박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쐐기를 박으려면 망치가 있어야 한다. 제재는 러시아와 중국의 비협조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빅터 차 본인이 인정했다. 킬체인까지 포기하면 남는 도구가 뭔가.

한국의 독자적 억제력이 줄어들면 미국의 한반도 관여 필요성도 줄어든다. 중국과 러시아 입장에서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양보하고 있다는 신호를 읽게 된다. 더구나 북·러 관계의 현실을 보자. 빅터 차 자신이 인정했듯 북한은 러시아에 1000개 이상의 컨테이너, 350만 발의 탄약, 탄도미사일을 제공하면서 양국 관계가 북·중 관계보다 더 강해졌다. 이 관계는 우크라이나 전선의 탄약 수요가 만든 구조적 결합이다. 한국이 킬체인을 포기한다고 해서 러시아가 북한 탄약을 덜 필요로 하게 되지는 않는다. 한반도 긴장 완화와 북·러 군사 협력은 별개의 동력으로 움직이고 있다.

빅터 차의 입장 전환이 그의 변덕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는 미국의 국익 관점에서는 철저히 합리적으로 말하고 있다. 미국 본토에 날아올 수 있는 ICBM의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그의 최우선 과제이고, 한국 국민 수천만 명이 매일 머리 위에 이고 살아야 할 북한의 단거리 전술핵은 그에게 부차적인 문제다.

이건 우리가 비난할 일이 아니라 곱씹어 볼 점이다. 미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이 이 지점에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이것은 중견국이 강대국 동맹에 의존하면서도 전략적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하느냐는 문제의 가장 첨예한 현실적 사례다. 라몬 파체코 파르도가 2023년 저서 《한국의 대전략》에서 분석한 것처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이 일관되게 추구해 온 대전략의 핵심은 "자국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는 자율성"이다. 킬체인은 바로 그 자율성의 군사적 발현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5일 조선인민혁명군(빨치산) 창건 94주년을 맞아 인민군 서부지구 기계화보병사단관하 연합부대를 축하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고 조선중앙TV가 다음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여단 전체 장병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부대 군인들과 함께 체육 경기도 관람했다. 2026,4,26 [조선중앙TV 화면] 연합뉴스

킬체인의 주인은 누구인가

파머스턴이 1848년 3월 1일 영국 하원에서 한 말이 있다. "우리에게 영원한 동맹은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것은 우리의 이익뿐이며, 그 이익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키신저의 말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파머스턴이 원조다. 2026년 현재 한국 안보에 가장 잘 맞는 격언이다.

킬체인을 유지할지 조정할지는 한국이 결정할 문제다. 이건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이 2023년 9월 헌법에 핵 지위를 "비가역적"으로 명문화한 현실에서, 방패만 남기고 창을 꺾으라는 조언은 전략적 가치가 없다.

킬체인은 펜대 하나로 긋고 지울 수 있는 군사 교리도 아닐 뿐더러, 워싱턴 CSIS 건물의 간담회장에서 한국 특파원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하듯이 말할 성질의 문제도 아니다. 1970년대 한미 미사일 지침의 사거리 통제 속에서, 군사 정보의 독립과 정밀 타격 능력의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수십 년을 들여 구축해 온 안보 주권의 결정체다. 전시작전통제권(OPCON) 전환에 필요한 독자적 작전능력의 핵심 구성 요소이기도 하다. 킬체인의 심장을 멈출 수 있는 근거가 있다면, 북한 핵무기의 실질적이고 검증 가능한 제거라는 조건이 충족되었을 때뿐이다. 워싱턴이 자초한 전략적 과부하는 스스로 감당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게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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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우절은 알아도 노동절은 모르는 고등학생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그동안 아빠, 엄마는 쉬고 나만 등교하는 날."

"학교에서 급식 대신 빵과 우유를 먹는 날."

"기본 시급에다 보너스를 얹어 받는 날."

"5월 연휴의 첫날?"

노동절이 무슨 날인지 말해보라고 했더니, 아이들의 입에선 예상치 못한 대답이 무시로 튀어나왔다. 적어도 노동절이 제정된 역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노동의 가치를 인식하고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날 정도의 답변은 나올 줄 알았다.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변했다.

명색이 고등학생인데, 답변은 초등학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이들 대다수가 노동절의 유래는커녕 그 뜻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직장인들이 1년 중 하루 쉬는 날로만 알고 있을 따름이다. 여전히 아이들에겐 노동자보다 직장인, 회사원, 근로자 등이 익숙한 용어인 듯했다.

부러 중학교 때까지 노동절에 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있는지도 물었다. 예상대로, 손을 든 아이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개 그때가 중간고사 기간이어서 노동절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당일 쉬는 부모님조차 노동절이 무슨 날인지 일언반구조차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5월 1일 노동절은 꼭 한 달 전인 4월 1일 만우절보다도 못 한 기념일이었다. 만우절 때는 몇몇 말썽꾸러기들이 교사를 속이기 위해 작당하기도 하고, 교사 역시 수업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기 위해 농을 걸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만우절을 모르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만우절은 알아도 노동절은 잘 모르는 아이들

요즘 아이들이 기억하고 챙기는 기념일은 달력에 적힌 날짜만큼이나 많다. 밸런타인데이부터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로즈데이 등 매월 14일은 아예 10대의 '고유 명절'이다. 그런가 하면, 3월 3일 삼겹살데이와 11월 11일 빼빼로데이까지 기념일 챙기기는 또래의 놀이문화가 됐다.

되레 3.1절이나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국경일이 뒤로 밀려난 모양새다. 하물며 공휴일이 아닌 4.3 추념일이나 4.19 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기념일 등은 그들에게 여느 평일과 다름없는 날이다. 지금껏 노동절도 뜻 모를 숱한 기념일 중의 하나였다.

올해 처음으로 노동절이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만시지탄이지만, 은연중에 금기시되어 온 노동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원년으로 기록될 것이다. 전쟁과 분단의 모순을 온몸으로 경험한 기성세대야 그렇다 쳐도, 철부지 아이들조차 대놓고 말하길 꺼린 게 사실이다.

노동절이 생겨난 계기인 1888년 미국 시카고의 '헤이마켓 사건'을 주제로 수업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산업혁명 이후의 역사는 세계 노동자들의 투쟁사였다는 것 역시 첫 수업 내용으론 어울리지 않았다. 노동이라는 단어에 들씌워진 편견을 씻어내는 게 급선무였다.

노동절의 역사는 노동이라는 단어에 이물감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발동해 스스로 찾아 공부하게 될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겨나고 제국주의로 변모해 가는 과정 역시 뒤따라 깨닫게 될 내용이다. '백지상태'인 아이들에게 노동절의 유래를 추측해 보라고 질문을 던졌다.

공산당이 창립된 날이라거나 러시아 혁명 기념일 아니냐는 답변이 먼저 나왔다. 노동을 공산주의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뿌리 깊은 편견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황당하게도 북한 노동당을 떠올리는 아이도 있었는데, 노동절을 남북 화해 분위기의 정치적 산물인 양 오해했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날 아니냐는, 나름의 일리 있는 추론도 있었다. 참고로, 근로기준법이 최초 제정된 건 1953년 5월 10일이다. 이후 1997년 3월 13일에 변화한 시대에 맞게 대대적으로 정비했다고 이력이 기록되어 있다. 나 역시 몰랐는데, 아이들 덕분에 알게 된 내용이다.

엉뚱하게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날이라고 답하는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에게 전태일은 노동자라는 보통명사와 동의어처럼 쓰인다.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대견했지만, 대한민국 노동운동의 시발점으로 여기는 1970년 11월 13일을 모른다는 게 당황스러웠다.

'노동'에서 공산주의 떠올리는 아이들... 왜곡된 교육의 결과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되었지만, 요즘 아이들에게조차 노동운동의 역사는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아니 알아서는 안 되는 역사다. 그들조차 노동이라는 단어에서 공산주의와 북한부터 떠올리는 현실은 감추고 왜곡한 교육의 결과다. 노동에 대한 편견은 고래 심줄보다 질기다.

색안경을 끼고 노동을 이해하다 보니, 노동조합은 흔히 반사회적 단체로 인식된다. 나아가 철 지난 색깔론까지 덧씌워져 종북 세력의 온상이자 범죄 집단처럼 그려지기도 한다. 믿기 힘들겠지만, 10대 아이들의 노조에 대한 맹목적인 반감은 60대 이상의 어르신들 저리 가라다.

아이들은 "지금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장래에 노동자가 된다"고 스스럼없이 비아냥댄다. 노동자란 이윤을 발생시키는 토지나 공장 등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을 통칭한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노동자는 천대받고 가난하고 비루한 사람들을 일컫는 말로 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노동)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았고 어디서 읽어본 적도 없으니, 근로기준법에 나오는 노동자의 정의조차 낯설어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몇몇은 되레 "그럼 월급 주는 사장 말곤 모두 노동자냐"며 따져 물었다.

어이없게도 임금의 많고 적음을 노동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여기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노동자는 기름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여름 땡볕에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으로 정형화되어 있는 듯했다. 곧, 사무직 '화이트칼라'는 노동자가 아니라는 식이다.

"교사인 나도 노동자이며, 너희들 대다수가 장래 노동자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스스로 미래의 자신을 비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좋은 봄날 선물처럼 얻은 공휴일 노동절을 앞두고, 이렇게 수업을 매조지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맞는 연휴인 만큼 과제도 한 가지 내주었다. 누가 봐도 노동자가 아닌데 노동자로 분류되는 사례와 분명히 노동자인데 노동자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경우를 조사해 오라는 것!

누구는 당장 AI에 물을 것이고, 다른 누구는 인터넷 블로그를 샅샅이 뒤지게 될 테다. 부모님이나 다른 선생님들을 귀찮게 하며 답을 알아내려는 오지랖 넓은 아이도 있을 것이다. 이든 저든 노동에 대한 아이들의 왜곡된 인식을 바루는 데 큰 도움이 될 게 틀림없다. 아무튼 노동절이 공휴일로 공식 지정됐으니,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

#노동절#노동조합#근로기준법#공산주의#헤이마켓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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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노동절, “명칭 환원 넘어 권리로, 7월 총파업으로 원청교섭 쟁취 총력 투쟁”

  • 기자명 김준 기자
  •  
  •  승인 2026.05.01 18:29
  •  
  •  댓글 0
 
 

14개 지역에서 동시다발 노동자대회
“독재 이후 63년 만에 이름 찾은 노동절”
“처음 쉬는 노동절, 이제야 노동자 같아”
추모 발언 “카네이션 대신 국화꽃이라니”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63년 만에 노동절이 돌아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름을 되찾은 노동절이지만, 특수고용·플랫폼·프리랜서·이주·비정규직 등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아직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며 “체제를 바꾸고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일, 민주노총은 서울, 인천, 경기, 대구, 울산, 부산, 경남 등 총 14곳에서 ‘2026 세계노동절대회’를 개최했다. 서울의 경우, 당초 강남에 있는 BGF리테일 본사 앞에서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화물연대와 BGF로지스의 교섭이 가까스로 타결되면서 광화문으로 옮기게 됐다.

이날 노동자대회는 63년 만에 이름을 찾은 노동절에 개최됐다는 점에서 뜻깊다. 1963년 군사정권이 ‘근로자의 날’로 명칭을 바꾼 이후 2026년에 와서야 노동절이 다시 이름을 찾은 거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63년 만에 이름을 되찾은 노동절, 공무원도 교사도 아이들도 함께 쉴 수 있는 날이 됐다”고 국가 공휴일이 된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아직 노동현장에서 온전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특수고용 플랫폼 프리랜서 이주 비정규직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이 있다”고 짚었다.

그는 “윤석열 정권의 탄압에 맞서 건설노동자 양회동이 스스로 몸에 불을 댕긴 노동절에, 공권력의 비호 아래 처참히 죽음을 맞이한 화물노동자 서광석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체제를 바꾸고 정부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그들과 함께 진정으로 모두의 노동절을 만들어가기 위해 우리의 투쟁은 더욱 강하고 단단하게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양 위원장은 “7월 총파업 투쟁으로 원청교섭을 쟁취하자”고 힘줘 말했다. 노조법 2·3조가 개정됐으나,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사업장이 많은 점을 저격한 거다. 그는 “공공부문 노동자의 진짜사장 정부가, 간접고용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의 진짜사장 원청이, 더 이상 회피할 곳은 없다”며 “120만 민주노총이 탐욕으로 가득찬 착취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해 총력 투쟁에 나서자”고 격려했다.

공무원노조는 “처음 쉬어보는 노동절”이라며 “이제야 진짜 노동자가 된 기분”이라고 밝혔다. 김영운 공무원노조 부위원장은 “그동안 공무원은 노동절에 쉬지 못한다는 이유로 ‘공무원이 무슨 노동조합이냐’ 이런 말들을 참 많이 들었다”며 차별받았던 사연을 털어놨다. 이어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투쟁으로 특별휴무를 쟁취했다”고 자평했다. 

 

김 부위원장은 “노동절 휴무는 시작일 뿐”이라고도 말했다. “밖에서 보기에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마냥 편해 보일 수 있지만,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누리지 못하는 당연한 권리들도 많다”며 대표적으로 정치기본권과 노동기본권을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노동절 명칭을 되찾고 휴무를 쟁취했듯이 모든 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고 살 수 있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전했다.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화물연대 조합원 서 씨의 추모도 이어졌다. 박정훈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카네이션이 아니라 국화꽃을 들고 어머니를 배야 할 서 씨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노조를 만들었더니 개인사업자 주제에 무슨 노조라며 비아냥대고 불법 대체차량에 맞섰더니 폭도라고 한다”며 “주주배당 708억, 영업이익 813%는 탐욕이 아니고 노조 탄압은 불법이 아니란 말이냐”고 따졌다.

박 위원장은 “우리가 꼭 치러야 할 장례가 있다”며 “이윤을 위해서라면 사람도 밀어버리는 살인기업을 영정사진에 넣고, 노동자를 차별하는 낡은 법과 제도, 다단계 하청구조를 관에 넣자”고 독려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를 통해 “다시 찾은 노동절에 새로운 각오로 결의한다”며 아래 결의안을 발표했다. 

▲열사정신을 계승하여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투쟁한다
▲전 조직적․전면적 투쟁으로 7월 총파업을 성사하고 원청교섭을 쟁취한다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철폐, 초기업교섭 제도화를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한다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규탄하며 즉각적인 휴전과 평화실현을 촉구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26 세계노동절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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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대북송금 등 검찰 조작 수사 정황 쏟아졌다

김성진 기자

mindle1987@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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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회/정당

  • 입력 2026.05.01 06:30

  • 수정 2026.05.01 06:37

  • 댓글 1

42일 국조특위, 결과 보고서 채택…30여명 구속

7개 사건 재조명…표적수사·증거은폐 줄줄이

박상용 "이재명 주범 되는 자백 필요" 녹취 충격

대북송금 유일한 물증 서류 사후제작 의혹 제기

국정원 파견검사 수사에 불리한 자료 감춘 정황

공소 흔드는 증언도 속출…'특검론' 급부상

민주당 특검법 발의에…국민의힘 강력 반발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 종료일인 30일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서영교 위원장이 안건을 상정하고 있다. 2026.4.30. 연합뉴스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국조특위)가 30일 사실상 활동을 종료했다. 지난달 20일 첫 전체회의를 개최한 국조특위는 42일의 활동 기간 3차례 기관보고와 4차례 청문회, 2차례 현장조사를 통해 ▲대장동 사건 ▲위례 사건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사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통계조작 사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윤석열 명예훼손 허위 보도 의혹 사건 등에 대한 검찰의 조작수사·기소 정황을 밝혀냈다. 출석 증인은 219명, 참고인은 36명에 달했으며, 총 회의시간은 5720분(95시간 20분)이었다.

특히 이번 국정조사 기간에는 주요 증인·참고인을 통해 회유·압박, 형량 거래, 증거 조작 등 검찰의 불법적인 수사 관행이 드러났을 뿐 아니라, 공소 사실 자체를 흔드는 발언까지 이어지면서 파장이 일었다. 또 마지막 종합 청문회에서는 윤석열 정권이 당시 제1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수사에 개입한 정황까지 나왔다.

 

14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 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열린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 관련 청문회에서 이 사건을 수사했던 박상용 검사가 증인 선서를 거부한 뒤 거부의 이유를 구두로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요구하며 의원들을 지켜보고 있다. 2026.4.14. 연합뉴스

① "이재명 씨 주범되는 자백 있어야" 박상용 통화 녹취 공개

이번 국정조사는 시작부터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변호인이었던 서민석 변호사와 박상용 검사의 통화 녹취가 공개돼, 그간 의혹으로만 제기됐던 검찰의 회유·압박이 처음 육성으로 확인됐다.

박 검사는 통화에서 서 변호사에게 "이화영 씨가 사실은 법정까지 유지시켜줄 그런 진술이 필요한 거고 이재명 씨가 완전히 주범이 되고 이 사람이 종범이 되는 식의 자백이 있어야 저희가 그거를 할 수 있고"라며, 허위 자백을 대가로 형량 거래를 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또 박 검사는 서 변호사에게 "저희가 (이화영을) 하루 종일 불러놓고 밤에도 있으니까요. 잠시라도 와서 얘기를 좀 들어주시면 안 되겠느냐"고 회유하거나, "지금 입장으로 계속 간다 그러면 저희는 뭐 한 10년 이상 구형을 할 거고 당연히"라며 압박하기도 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이종석 국가정보원장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정치검찰조작기소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2026.4.3. 연합뉴스

② 국정원장 "리호남은 필리핀에 없었다…실명 여권 확인"

이른바 '이재명 방북 비용 대납 주장'의 핵심 근거를 흔드는 현직 국가정보원장 발언도 있었다. 그간 검찰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2019년 7월 25~26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북한 리호남에게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방북 비용 명목으로 70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주장해왔지만, 이종석 국정원장은 국정조사 기관보고에서 "북한 리호남이 2019년 7월 24일부터 7월 27일 사이에 필리핀에 없었다"며 검찰 주장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 원장은 "제3국에서 리호남은 출입국에 '9272 XXXXX'(번호가) 사용되는 자기 본명 여권을 사용했다"며 "리호남이 7월 24일부터 7월 27일 사이에 필리핀에 없었다라는 것을 증거할 수 있는 2개의 정보가 있고, 이 정보는 거의 확실한 거라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3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정권 정치검찰조작기소 의혹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관련 보고를 하고 있다. 2026.4.3. 연합뉴스

③ 검찰, '김성태 쌍방울 주가조작' 국정원·금감원 자료 안 가져갔다

이종석 국정원장은 윤석열 정부 당시 국정원이 수원지검의 대북송금 사건 수사를 지원하고, 국정원에 파견된 검사를 통해 수사에 불리한 자료를 숨겼다는 내용이 담긴 특별감사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윤석열 정권 당시 검찰 출신이 부서장으로 있었던 국정원 감찰 부서가 수원지검의 '긴밀한 창구' 역할을 했다면서, '쌍방울과 경기도의 연관성을 확인하지 못했다'는 감찰 결과 보고서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시 국정원 감찰 부서장이었던 유도윤 부장검사는 쌍방울과 북한의 접촉 내용 등이 담긴 국정원 문건 66건을 열람하고 13건을 특정해 압수수색에 대비해 은닉 했다고 이 원장은 밝혔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100억 원이 넘는 쌍방울 주가조작에 대해 확인했지만, 검찰이 정작 자료를 가져가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태균씨가 작성해 검찰에 2023년 5월 제출한 쌍방울 내부 회의록. 작성 장소와 날짜가 다르지만 형식과 글자체가 동일해 사후 제작의심을 받는다. 2026.4.13. 탐사보도그룹 워치독

④ 대북송금 유일한 '물증' 김성태-김태균 회의록 사후 제작 의혹

대북송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확보한 유일한 물증인 일명 '김성태-김태균 회의록'마저 조작 논란이 일었다. 쌍방울 내부자인 김태균 씨는 검찰 조사에서 2019년에 작성된 총 5개 회의록을 ▲일본 하얏트 리젠시 도쿄 호텔 비즈니스 센터 ▲미국 시애틀 브레이번 아파트 서비스센터 ▲미국 뉴욕 아파트 서비스센터 ▲홍콩 마카오 호텔에 비치된 공용 컴퓨터에서 작성했다고 주장했지만, 현지 확인 결과 호텔과 아파트에 비즈니스 센터와 서비스 센터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또 김태균 씨는 검찰 조사에서 개인 노트북이 아니라 해외 공용 컴퓨터에서 회의록을 작성하고 출력해 수년간 보관했다고 주장했지만, 회의록 형식과 글자체, 글자 크기 등이 모두 동일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사후 작성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28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제11차 전체회의에서 열린 종합 청문회에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4.28. 연합뉴스

⑤ 김성태 "이재명 한 번도 본 적 없고, 대가도 안 받았다…국힘이 회유했다"

대북송금 사건 '몸통'인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은 종합 청문회에 출석해 "그분(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것은, 제가 본 적도 없고 대가를 받은 것도 없고, 상대를 안 했다"며, 이 대통령과 대북송금 사건은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당시 검찰의 강압수사와 관련해 "가족, 동료들 17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구속시켰다"며 "그런 것에 대해 (검찰에) 원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그 당시에 여당했던 분들의 회유 제의 같은 게 있었다"며, 국민의힘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이 대통령을 향해선 "누가 되어 가지고 그 부분은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속죄도 하고 있고, 제 자신도 창피하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이 28일 공개한 5쪽짜리 대북송금 사건 수사 보고 문건. 박 의원은 해당 문건이 대검찰청과 법무부를 통해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 보고됐고 윤석열도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그림은 문건 1쪽. 2026.4.28. 박성준 의원실 제공

⑥ "윤석열, 이재명 수사 매일 보고 받았다"…문건 공개

종합 청문회에선 윤석열이 대북송금 사건 수사 당시 검찰의 수사 상황을 매일 보고 받은 정황을 담은 문건이 공개돼 논란이 일었다. 5쪽짜리 '쌍방울 그룹 횡령 등 사건 수사 상황' 문건에는 이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와 기소를 주도한 수원지검 형사6부 박상용·송민경·고두성 검사 등의 수사 관련 사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으며, 심지어 향후 수사 계획도 담겨 있었다. '정보보고' 성격의 해당 문건은 대검찰청, 법무부,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을 거쳐 당시 대통령이었던 윤석열에게까지 전달된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정권 차원에서 이 대통령 사건에 개입하고 표적 수사를 한 정황으로, 당시 보고 라인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장동 민간업자 남욱 변호사가 16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열린 대장동·위례 개발비리 및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한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4.16. 연합뉴스

⑦ 대장동 1기 수사팀 "이재명 혐의 없었다"…"이재명 기소하며 정진상 조사 안해"

대장동 사건 1기 수사팀이 이재명 대통령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에 대한 혐의점을 발견 못했다는 당시 수사팀장의 증언도 나왔다. 정용환 전 서울중앙지검 반부패·강력 수사1부장(현 서울고검 검사장 직무대리)은 기관보고에서 "1기 수사팀에서는 특별한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또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 교체된 대장동 2기 수사팀 소속 엄희준·강백신 검사가 정식 발령이 나기도 전에 직무대리로 수사 기밀을 미리 검토했다는 사실도 기관 보고를 통해 드러났다. 이 외에도 검찰이 정 전 실장이 이 대통령에게 대장동 수익 일부를 나눠갖기로 보고했다는 내용의 공소 사실을 꾸미면서도, 정작 정 전 실장을 조사하지 않은 사실도 확인됐다. 허위 공소장을 쓴 정황이다.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가 16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열린 대장동·위례 개발비리 및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한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4.16. 연합뉴스

⑧ "검찰 목표는 이재명…입건도 안 됐는데 '피의자' 적시"

대장동 개발업자 남욱 변호사는 2022년 9월 긴급체포된 뒤, 대장동 수사 책임자였던 정일권 부장검사로부터 "우리 목표는 (이재명) 하나다. 내려가서 잘 생각해 보라"는 말을 들었다고 국정조사장에서 폭로했다. 남 변호사는 "이 사건이 재수사가 이뤄진 이유는 이재명 대통령 기소를 위한 것이라는 걸 누구나 다 알 것"이라며 "어떤 상황이 됐든 간에 이 대통령은 기소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검찰이 같은 해 10월 유동규(전 성남도시개발본부장)의 내연녀를 압수수색하면서 조서에 입건도 되지 않은 이 대통령을 '피의자'로 적시한 사실도 드러났다. 애초부터 이 대통령을 '표적'으로 삼은 정황이다. 특위 위원들은 "이재명을 제거하겠다는 수사 방향이 압수조서에 분명히 드러났다"며 "조작수사"라고 비판했다.

 

대장동 수사를 주도했던 정일권 검사가 16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열린 대장동·위례 개발비리 및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한 청문회에서 증언대에 서서 남욱 변호사의 의원 질의와 답변을 듣고 있다. 2026.4.16. 연합뉴스

⑨ 남욱 "박영수 소개로 김만배가 윤석열 부친 집 사줘"

"(2019년) 박영수 고검장(전 특별검사)이 중간에 소개를 해서 김만배가 윤석열 대통령 아버지 집을 사줬다"는 남욱 변호사의 폭로도 나왔다. 김만배와 윤석열의 인연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대검 중수2과장이었던 윤석열은 부산저축은행 대출비리 사건 브로커 조우형을 무혐의 처리했는데, 당시 조우형 변호인은 윤석열의 선배 검사였던 박영수 전 특검이었다. 조우형에게 박 전 특검을 소개해 준 것은 김만배였으며, 무혐의를 받은 조우형은 부산저축은행에서 종잣돈을 끌어온 대장동 '자금책' 역할을 한다. 2011년 윤석열의 봐주기 수사가 훗날 대장동 개발비리의 싹을 키운 꼴이다. 남 변호사의 폭로는 검찰의 썩은 카르텔이 10년 가까이 흘러와 윤석열이 김만배에게 부친 집을 팔아넘기는 데까지 이어진 정황을 보여줬다.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16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열린 대장동·위례 개발비리 및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한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4.16. 연합뉴스

⑩ 대장동 검사도 속기사도 "재창이형이라 들린다"

대장동 2기 수사팀이 정영학 녹취록 속 '재창이형'을 '실장님'으로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강백신 부장검사 등 전·현직 검사들도 정영학 녹취를 직접 듣고 "(실장님이 아닌) 재창이형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재창이형'을 '실장님'으로 바꿨다는 속기사 김아무개 씨도 청문회에 비공개 증인으로 출석해 녹취를 듣고 "지금 듣기로는 재창이형으로 들린다"고 증언했다. 다만 강 부장검사 등 수사 책임자들은 "녹취록 작성 과정에 검사들이 관여한 건 아니다"라며 조작 의혹에는 선을 그었고, 속기사 김 씨는 속기록 수정 등에 관해 "4~5년 전이라 전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했다.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이 21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통계조작·'윤석열 명예훼손' 허위보도 조작기소 의혹 사건에 대한 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4.21. 연합뉴스

⑪ 들통 난 김태효 거짓말 "국방부 보도자료 삭선·수정"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선 2022년 6월 당시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이 '문재인 정부 국정원이 서해 공무원 사건을 월북으로 조작했다'는 취지로 보이도록 국방부 보도자료를 뜯어고쳤다는 증언이 나왔다. 당시 국방부 정책기획차장이었던 김성구 수도기계화보병사단장은 "(김태효가) 현장에서 (보도자료) 일부 내용을 삭선하고 직접 썼다"며 "수정을 1차적으로 한 이후 복귀해서도 안보전략비서관실에서 전화가 와서 문구를 좀 수정하라고까지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당시 서해 공무원 사건의 새로운 증거가 전혀 없었는데도 갑자기 '정권 실세'로 불리는 안보실 1차장이 보도자료까지 직접 수정하며 문재인 정부의 조작 사건으로 몰아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전 1차장은 "사인펜도 들고 있지 않았다. 수정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김규현 전 국가정보원장이 21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통계조작·'윤석열 명예훼손' 허위보도 조작기소 의혹 사건에 대한 청문회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6.4.21. 연합뉴스

⑫ 김규현 전 국정원장 "서해 피격 고발, 윤석열이 지시"

김규현 전 국정원장은 2022년 7월 당시 대통령 윤석열이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과 관련해 대면보고를 받으면서 "(국정원이) 직접 고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발언을 했다고 청문회에서 증언했다. 보복 성격으로 이뤄진 문재인 정부 고발이 윤석열 지시였다고 당시 국정원장이 직접 밝힌 것이다. 이에 여당 특위 위원들은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조작의 몸통은 윤석열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며 "윤석열과 김태효가 기획한 치밀한 각본에 따라 단 43일 만에 조작이 이뤄졌다는 증거와 정황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당시 2022년 5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개최 이후 같은 해 6월 해양경찰청 수사 결과 번복 기자회견, 7월 박지원 전 국정원장 고발 등이 톱니처럼 맞물려 재빠르게 이뤄졌다.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과 유병호 감사원 감사위원이 21일 국회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통계조작·윤석열 명예훼손 허위보도 조작기소 의혹 사건에 대한 청문회에서 증인 선서를 마친 뒤 자리에 앉아 지켜보고 있다. 2026.4.21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⑬ 검찰보다 더 지독한 감사원…"출산 4개월 차 직원 밤샘 조사" "술먹고 조롱"

최재해 전 감사원장과 유병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이 이끌던 윤석열 정부 감사원이 이른바 '통계 조작 사건'과 관련해 출산 4개월 차로 육아 휴직 중이던 피감 기관 직원을 수차례 밤샘 조사한 정황도 드러났다. 당시 감사를 받았던 국토교통부 사무관은 비공개 증인으로 출석해 감사원의 강압적인 밤샘 조사로 인해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심리적으로 부담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또 감사관들의 음주·강압 감사 정황에 대한 증언이 있었다. 국토부 서기관은 "술 먹고 회식 중 돌아와, 저희 발언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조롱하는 장면도 봤다"고 진술했다. 피감 기관 직원들이 하지도 않은 말이 문답서에 포함됐다는 증언도 있었다. 국토부 과장은 "조작 의도가 있었지 않냐는 것을, 제가 아무 말도 답변을 안 하니까 '고개를 끄덕임'이라고 각본처럼 써놨다"고 했다.

 

서영교 위원장이 29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치검찰 조작기소 국조특위 민주당 위원 기자간담회에서 청문회 주요 성과를 밝히고 있다. 2026.4.29. 연합뉴스

공소 사실 흔드는 증언 속출…민주당, 국조 종료 직후 특검법 전격 발의

이같은 윤석열 정권 검찰의 조작 수사·기소는 1000여 쪽에 달하는 결과보고서로 정리됐다. 국조특위는 이날 오후 전체회의를 열고 보고서 채택 안건을 민주당 주도로 가결시켰다.

또 청문회 출석한 증인 가운데 위증, 불출석, 동행거부한 31명 고발 명단도 확정했다. 증인 선서를 거부한 박상용 검사는 고발 명단에 포함됐으며, 강백신·엄희준 검사도 대장동 사건 관련 진술에 허위가 있다고 판단해 고발키로 했다. '리호남을 필리핀에서 봤다'고 증언한 방용철 전 쌍방울 회장과 '연어 술파티'와 관련해 "술을 먹지 않았다"고 진술한 김성태 전 회장도 고발 대상이다. 서해 공무원 사건과 관련해선 김규현 전 국정원원장, 김태효 전 안보실 1차장, 이시원 전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고발됐으며, 통계 조작 사건과 관련해선 이상훈 감사원 감사관이 고발됐다.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원내대표 직무대행과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이 30일 국회 의안과에 '윤석열 정치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2026.4.30 [공동취재] 연합뉴스

민주당은 이날 국정조사 활동을 사실상 종료한 뒤, 국정조사에서 밝혀진 검찰의 조작 의혹을 수사하는 내용의 특검법을 전격 발의했다. 천준호 원내대표 직무대행과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박성준 의원, 특위 위원인 이건태 의원 등은 오후 '윤석열 정권 검찰청, 국가정보원, 감사원 등의 조작수사·조작기소 등 의혹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냈다.

법안상 특검 수사 대상은 국정조사 대상이었던 7개 사건에 더해 ▲성남FC 광고 및 후원 관련 제3자 뇌물 의혹 사건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증인 김진성에 대한 위증교사 사건 ▲백현동 아파트 개발사업 관련 배임, 부정한 금품수수, 부정행위 등 의혹 사건 ▲대장동·백현동 개발 사업 관련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공표) 사건 ▲이재명 경기도지사 경기도 법인카드 사용 및 배임 의혹 사건 등 5개 사건이 추가됐다.

법안은 특검이 수사 경과를 고려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검사가 수사, 기소, 공소 유지 중인 사건에 대해 이첩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받은 기관이 이를 따르도록 했다. 또 특검이 이첩받은 사건의 공소 유지(공소 유지 여부의 결정을 포함) 업무를 수행한다고 명시했다. 사실상 특검이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근거를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천 원내대표 직무대행은 "독립된 특검이 수사를 통해서 여러 가지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그에 따라 필요한 후속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돼 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다음 달 중 특검법을 처리할 계획이다.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활동 종료일인 30일 국회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위원들이 증인 고발 조치와 활동 결과보고서 채택 의결을 앞두고 퇴장하고 있다. 2026.4.30.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에서 조작 기소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특검 도입의 목적이 이 대통령 사건 공소 취소를 위한 '셀프 사면'이라고 반발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결국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으로 대통령 본인의 재판을 없애겠다는 '이재명 셀프면죄 특검'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했고, 정희용 사무총장은 "정상적 방법으로는 공소를 취하하는 게 어려울 것 같으니 특검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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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63년 만에 되찾은 '노동절'…일터 차별 바로잡겠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5/01 08:23
  • 수정일
    2026/05/01 08:2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정애 "화물연대-BGF 교섭 합의, 노동자 안전권 강화 계기로"

한예섭 기자 | 기사입력 2026.05.01. 06:01:15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이 국가공휴일로 지정된 노동절을 앞두고 "근로자의 날이 63년 만에 노동절이란 제 이름을 되찾고 명실상부한 국가공휴일로 대접받게 됐다"며 "노동존중사회로 나아가는 중대한 진전"이라고 평했다.

한 의장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정책조정회의 모두발언에서 "5월 1일 노동절은 노동의 존엄성을 되새기는 날로, 특히 올해 노동절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 의장은 "그동안 노동절은 사업장 규모나 고용형태에 따라 누군가는 쉬고 누군가는 일해야만 하는 차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날이기도 했다"며 "이제 국가공휴일로 지정된 만큼 온 국민이 함께 노동의 숭고한 가치를 되새길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한 의장은 그러면서 "국민 모두가 일터에서 차별과 배제 없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치 아래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 개선 대책을 마련했다"며 "공공부문이 앞장서서 불공정한 고용구조를 변화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 의장은 "1년 미만 계약을 반복하면서 퇴직금 지급 의무를 회피하려는 불공정 고용 관행을 바로잡겠다"며 "(공공부문이) 모범적인 사용자로서 공정한 고용 관행을 확립하고, 처우 개선의 지속성을 담보하는 등 국민이 체감하는 노동현장의 변화를 이끌 것"이라고 했다.

한편 한 의장은 집회 중 조합원 사망사고 이후 교섭 합의 단계에 이른 'CU 사태'와 관련해선 "화물연대와 BGF로지스 간의 교섭이 합의에 이르러 오늘(30일) 오전 단체 합의 조인식을 앞두고 있다"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화물차 운송구조의 취약성 등 물류산업 전반의 고질적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여당은 노동자 기본권과 안전권을 강화하고 지속가능한 상생구조 확립을 위해 더 힘쓰겠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정책위의장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정책조정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예섭 기자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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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플러스 창간 10주년, 그리고 앞으로 10년

  • 기자명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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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6.04.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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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민플러스는 지난 10년 동안 23권의 책을 출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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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언론 민플러스로 출발한 ‘담쟁이’는 도서출판 민플러스, 교육원 민플러스로 영역을 넓혔습니다. 앞으로 10년, 민플TV를 다시 시작하고 연구원 민플러스, 여론조사 민플러스, Ai 민플러스까지 진출해 민플러스를 명실공히 교육선전매체의 보루로 키워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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