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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미대사관은 46년간 무단 사용한 약 9,000억원 임대료 전액 지불하라"

평화너머, "불공정 한미관계 개선 위해 국민감사청구 진행"

  • 기자명 서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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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6.16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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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 2026.06.16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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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는 16일 오전 10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미지급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현황 비공개 문제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국민감사청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는 16일 오전 10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미지급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현황 비공개 문제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국민감사청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는 16일 오전 10시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미지급 문제와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현황 비공개 문제에 대해 정보공개를 요구하는 국민감사청구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주한미군의 기지사용료 지원내역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평화너머는 "미국은 한국을 군사적으로 대중국 압박의 전진기지로, 경제적으로 미국 기업의 이익을 관철해야 할 대상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정작 한국 국민이 부담하고 있는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특혜와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 현황은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이번 국민감사청구의 취지를 설명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부터 지금까지 46년간 임대료를 일절 내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이에 △주한미국대사관 임대료 미납의 불법 여부 △주한미국대사관 이전 관련 문서 비공개로 국민 알권리 침해 △관련 기관 간 협의 및 승인 절차의 존재 여부를 따져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현황 자료가 공개되지 않아 민간 통제와 감시가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2022~2025년 주한미군 직간접 지원 비용 △지원 규모 산정시 적용된 기준, 산정방식, 항목별 세부 내역 및 금액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 미집행금 현황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주한 미국대사관이 1980년부터 임대료를 일체 지불하지 않고 무상 사용중이라는 사실이 공론화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말이다. 

김준형 조국혁신당 국회의원이 지난해 10월 외교부 국정감사에서, 한국부동산평가원 시세로 연간 193억원에 달하는 미 대사관 청사 부지 추정 임대료가 45년간 단 한푼도 지불되지 않았으며, 국유재산법에 따라 매년 사용료를 징수해야 할 외교부장관은 단 한차례도 사용료나 임대료를 받지 못했다고 질타한 바 있다. 지금까지 46년간 총액으로는 8,878원에 달하는 금액이다.

임해솔 평화너머 정책기획팀장은 주한미국대사관이 한국 법의 적용을 받지 않고 임대료를 미지급하고 있으며, 주한미군 주둔비 지원이 기준과 방식도 모른 채 진행되고 있다고 하면서 이와 관련된 모든 과정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임 팀장은 먼저 "광화문에 위치한 미대사관은 국유재산으로 국유재산법의 적용을 받는다. 매년 사용료를 징수해야한다는 국유재산법 제32조, 사용료를 납부하지 않은 경우 국유재산의 사용허가를 취소하거나 철회할 수 있다는 제36조 조항이 있다. 또 국유재산법 제8조는 재정경제부장관인 총괄청이 사무를 총괄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정경제부, 외교부 등 정부 중앙관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격년으로 발행하는 국방백서에 3번 연속 발표되었던 주한미군 직간접 지원비용 자료가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막대한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주한미군 지원에 관련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당연한 국민의 알권리다"고 말했다.
 
김주현 평화너머 노동 대의원은 주한미국대사관의 임대료 미지급 문제는 외교적 불평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주한미군 주둔비에 한국 정부의 과대한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김 대의원은 "미대사관의 ‘무단 불법점유’ 문제는 매년 국정감사 등에서 단골로 지적되는 한미 외교 관계의 고질적인 불평등문제이지만, 뻔뻔한 미국은 여전히 저 자리를 불법 무단 점유하고 있다"고 하면서 "우리 국민이 낸 세금 수조 원이 매년 '방위비 분담금'이라는 명목으로 주한미군에 지급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막대한 돈을 우리 정부는 산출근거도 파악하지 못하고, 실제 미군이 필요로 하는 금액보다 과다하게 책정되어도 통제하지 못하고 달라는대로 퍼주고 있는 실정"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연희 평화너머 공동대표는 미셸 스틸 박 주한 미 대사 후보와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최근 발언을 집중 성토했다. 

이 대표는 "새로운 주한 미 대사로 지명된 사람은 한국에 대해서 존중하고 한국 국민과 주권을 존중할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취임도 하기 전에 한국에 들어오면 관세 문제, 주한미군 주둔비 문제, 다 해결하겠다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 '밉상'이 되고 있는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은 취임 과정에서부터 '한국은 항공모함'이라고 이야기를 하더니 지난해에는 주한미군이 교육하는 거꾸로 된 지도를 공개했다. 베이징과 대만에 가장 가까운 제1도련선 안에 한국이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지적했다.

이날 기자회견문 낭독 이후에는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한국은 중국 앞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 미셸 스틸 박 주한 미국 대사 후보의 "쿠팡 등 한국 내 미국기업 차별대우 안 받게 할 것"이라는 발언을 딴 말풍선 포스터에 항의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평화너머는 기자회견이 끝난 직후 바로 감사원에 국민감사청구 등기우편 접수를 완료했다. 감사원이 접수를 수리하면 통상 60여일 안에 결과가 나온다.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한국은 중국 앞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 미셸 스틸 박 주한 미국 대사 후보의 "쿠팡 등 한국 내 미국기업 차별대우 안 받게 할 것"이라는 발언을 딴 말풍선 포스터에 항의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브런슨 주한미군 사령관의 "한국은 중국 앞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 미셸 스틸 박 주한 미국 대사 후보의 "쿠팡 등 한국 내 미국기업 차별대우 안 받게 할 것"이라는 발언을 딴 말풍선 포스터에 항의 스티커를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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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공급 속도전 주문했지만 장관 교체설까지···국토부는 왜 멈춰 섰나

수정 2026.06.16 06:36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1월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공급촉진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정부·여당이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정비구역 지정 권한을 부여하는 법안을 논의하고, 신속 인허가 지원센터 출범을 준비하는 등 주택 공급 속도전을 외치고 있지만 정작 주무부처 내부는 혼란스럽다는 평가가 15일 나온다. 주택공급 총괄 자리는 한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안태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월 발의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정비구역 지정이 지체되는 지역에 대해 국토부 장관이 직접 정비구역을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비구역 심의 시 지방도시계획위원회가 아닌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칠 수 있게 했다.

당시 안 의원은 “정비구역 지정 권한이 광역단체장에게 집중되면서 사업이 지체되는 병목현상이 일어난다”고 밝혔다. 공급 핵심지에서 야당 지자체장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오는 7월 부동산 관련 세금 제도뿐만 아니라 공급 문제까지 한꺼번에 정리한다며 속도를 재촉한 바 있다.

달 넘게 공석인데 장관 교체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공급에 속도를 내기는커녕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6·3 지방선거 이후 서울·과천·성남·용인시 등 정부가 주요 공급지로 꼽은 지자체의 단체장이 모두 야당 소속 후보가 당선되면서 국토교통부 장관이 직접 정비구역을 지정·변경하고 해제할 수 있는 법안이 주목받고 있다.

국토부가 11월 출범을 목표로 준비 중인 신속 인허가 지원센터도 공급 속도전의 주요 수단으로 꼽힌다. 주택 인허가 단계에서 지자체와 사업자 간 이견으로 장기간 정체된 사업장에 조정안을 제시하는 역할이다. 관련 법안이 지난 4월 말 국회를 통과해 국토부는 시행령·조직을 정비 중이다.

그러나 공급 속도전을 낼 수단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당장 정비구역 지정권을 국토부 장관에게도 주는 법안에 정작 국토부는 반대하고 있다. 지자체장과 장관의 권한이 중첩되면 혼선이 생겨 오히려 공급이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세운다.

신속 인허가 지원센터도 인허가 문제로 교착 상태에 빠진 사업장이 대상이므로 공급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5월 시범사업 당시 접수된 7건 중 2건을 조정하는 데 그쳤다.

주택공급 총괄 자리가 공석인 점도 속도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올해 초 택지개발, 정비사업, 1기신도시 재건축 등 기능을 한 데 모은 ‘주택공급 전담조직’으로 출범한 주택공급추진본부장 자리는 이날 기준 한달 넘게 비어있다.

‘부동산 통계조작’ 사건에 연루돼 감사를 받는 주택 부문 공무원들이 적잖은 점이 여전히 인사 난맥상 원인으로 꼽힌다. 국토부가 엮인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등에 대해 특검이 2차 수사를 벌이는 점도 부담을 더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스스로 풀 수 없는 문제여서 그저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개각 대상자로 김윤덕 국토부 장관이 거론되는 점이 조직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김 장관 재임 내내 부동산 대책이 재정경제부·금융위원회가 주축인 세제·금융으로 치우치면서 공급을 담당하는 국토부 존재감이 작아졌다는 해석이 나왔다.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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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 간첩단' 대법 파기환송심 두번 치받은 '핑퐁 판사'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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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오병선 편

비서울대 출신 첫 고등고시 사법과 수석합격

"자백이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 처벌 못해"

헌법 조항 근거로 1970년엔 진보적 판결도

강희남 목사엔 "유무죄 모르겠다"며 10년 선고

'송씨 일가' 대법원 파기환송심 "유죄" 뒤집어

총 7번의 재판 끝에 안기부 뜻대로 유죄 확정

이일규 대법원장 '무죄' 취지 거슬러 잇단 좌천

'고문 조작'에도 유죄 판결… 재심서 모두 무죄

서초동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사무실에서 민변과 참여연대가 검찰 60주년을 맞아 공동으로 개최한 ‘검찰의 과거사 반성 촉구 및 피해자 증언 기자회견’에서 ‘송씨 일가 간첨단 조작사건(1982년)’ 피해자인 송기복씨가 증언을 하고 있다. 2008.10.29. 연합뉴스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을 펼쳤다. 오병선(吳炳善, 1939~2014) 항목에는 색다른 구절이 있었다.

"오병선에게는 안기부로부터 대법원판사 자리를 보장받았다는 등의 뒷말이 법원 주변에 돌았다."

그런데 이 '보장'은 지켜지지 않았다. 오병선은 대법관이 되지 못했다. 그를 대법관 자리에 앉히려 했던 안기부의 보장보다, 대법원판사 이일규가 대법원장이 된 이후의 현실이 더 강력했다.

이일규 대법원장은 오병선이 치받은 바로 그 판결의 주심이었다. 이 묘한 인과관계가 오병선 이야기의 핵심이다.

고등고시 수석 합격, 비서울대 최초

오병선은 1939년 3월 5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태어났다. 1958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조선대학교에 입학했다. 지방 사립대 재학 중이던 1961년 10월, 제13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수석으로 합격했다. 비서울대 출신으로는 최초의 수석합격이었다. 법조계에서 학벌 장벽이 높던 시절, 이 기록은 대단한 것이었다.

고시 동기로는 박종연, 황진호, 정구영 등이 있는데 이들 상당수가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이름을 올렸다. 1965년 11월 서울형사지법 판사로 첫 발령을 받았다.

 

오병선(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압력에 굴복한 엘리트 법관'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유형의 인물이 떠오른다. 독일 나치시대 판사들 중 일부는 처음에 법치주의에 헌신하는 엘리트였으나, 권력의 압박과 경력에 대한 욕심이 결합되면서 체제에 봉사하는 판결을 내리게 됐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가 분석한 "악의 평범성"이 법관에게도 적용됐다.

오병선은 수석합격자였다. 영리했고, 초기에 인권적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안기부와 보안사의 압력 앞에서, 그리고 대법관이라는 경력의 유혹 앞에서 결국 굴복했다. 이것이 단순한 악인의 이야기가 아닌 이유다.

 

한나 아렌트(Getty Images)

"자백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 1970년의 명판결

오병선의 이력에는 주목할 만한 양면이 있다. 긍정적인 면부터 보자. 1970년 8월 대전지법 판사 시절, 통금위반 등으로 즉결심판에 회부된 28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의 자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유일한 증거일 때는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는 헌법조항을 근거로 삼았다. 이 판결이 다른 지역의 즉결심판에도 영향을 미쳤다. 진보적이고 원칙적인 판결이었다.

그런데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이 판결의 근거가 된 헌법조항이 오병선의 판결 이후 2년 만에 유신헌법에서 아예 삭제됐다. 그리고 1980년 헌법 개정에서 되살아났다. 오병선이 지키려 했던 헌법 조항을 박정희 정권이 지워버린 것이다.

오병선의 반헌법 행위는 1977년 전주지법 부장판사 시절부터 본격화됐다. 유신 긴급조치 위반 사건들을 맡아 줄줄이 유죄를 선고했다.

가장 황당한 장면이 강희남 목사 사건이다. 1977년 11월, 오병선은 "피고인은 지난날의 행적으로 보나 기독교 목사이므로 도저히 공산주의자이거나 공산주의를 찬양할 사람으로 생각되지 않기에 재판부도 무척 고민했다"고 말하면서도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반공법에 저촉되는지 안 되는지는 본 재판부도 확실히 모르겠으니 항소해보시오."

공산주의자가 아닌 것 같고, 반공법 위반인지도 모르겠는데, 징역 10년. 이것이 유신시대 긴급조치 재판의 현실이었다. 재판부가 판단을 내리기 두려워 피고인에게 "항소해보라"고 말하는 법정. 오병선은 11건의 긴급조치 사건을 이런 방식으로 처리했다.

대법원의 무죄판결을 치받다 '핑퐁재판'의 주인공

오병선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결정적 장면은 1983년 송씨 일가 간첩단 조작사건 파기환송심이다. 안기부가 1982년 9월 "대형 간첩단"이라며 발표한 이 사건은 처음부터 고문조작이었다. 피고인들은 첫 공판부터 고문 사실을 폭로했다.

1심은 송지섭에게 사형 등 전원유죄, 2심도 유죄. 그런데 1983년 8월 대법원 형사1부(주심 이일규)가 "장기 구금 후 검사 앞에서 한 자백은 임의성을 의심할 만한 이유가 있다"며 파기 환송했다. 무죄 취지였다.

안기부와 대법원장 유태흥이 발칵 뒤집혔다. 파기환송심 재판장이 오병선으로 결정됐다. 안기부 수사관들이 오병선의 방에서 비공개로 증언했다. 통신담당 직원이 비공개로 설명했다. 1983년 12월 23일 오병선은 피고인 전원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의 무죄취지 파기환송 판결을 하급 법원이 치받은 것이다.

변호사 백형구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만약 오 판사가 무죄 판결을 했으면 그 당시에 바로 옷을 벗어야 했을 것이다."

이일규 전 대법원장은 "당시 고등법원 오 판사가 안기부의 부탁을 받고 이렇게 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고 말했다. 국정원과거사위원회가 면담을 요청했지만 오병선은 거절했다.

이 사건이 핑퐁재판으로 불리는 이유가 있다. 대법원이 두 번이나 무죄취지로 파기환송했는데, 고법이 두 번 다 치받아 유죄를 선고했다. 총 7번의 재판 끝에 안기부의 뜻대로 유죄가 확정됐다.

 

(간첩 누명 쓴 ‘송씨 일가’의 지옥 같은 25년 < 문화 < 기사본문 - 시사IN)ⓒ시사IN 안희태. 송기복씨(사진)와 송기준씨는 인터뷰 내내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가슴속 깊이 패인 상처는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되어 줄줄 흘러내렸다. 그들은 사건 이후 수십 년 만에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안기부의 조작은 평온하던 한 일가의 삶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간첩조작 피해자들 재심 무죄는 수십 년 뒤에야

오병선이 항소심 재판장으로 유죄를 선고한 사건들의 목록이 길다. 김광호 사건(2013년), 정영 사건(2011년), 허철중 사건(2013년), 윤정헌 사건(2011년). 모두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이었고,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됐다.

오병선이 항소를 기각하고 유죄를 유지한 결과 피해자들이 수십 년을 억울하게 살아야 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를 냉정하게 기록한다.

"항소심 재판장으로서 후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다수의 사건에서 항소를 기각하거나 유죄판결을 유지한 오병선의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일규가 대법원장이 되자 밀려났다

1985년 오병선은 서울가정법원 수석부장판사가 됐다. 재판업무에서 물러난 것이었다. 1988년에는 사법연수원 교수부장으로 더 깊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자신이 치받은 판결의 주심 이일규가 대법원장이 됐기 때문이었다.

법원주변에는 안기부가 대법관을 보장했다는 말이 돌았다. 그러나 그 보장은 지켜지지 않았다. 1991년 1월 법원장 보직을 받지 못하자 그는 퇴직했다. "수없이 많은 간첩조작사건 피해자를 낳은 이 엄청난 판결로 오병선이 치른 대가는 겨우 대법관 선임의 기회를 갖지 못한 것뿐이었다"고 『반헌법행위자열전』은 기록한다.

퇴직 후 그는 고향 영암 학산면의 재경향우회장과 명예면장을 맡으며 장학금을 지원했다. 2014년 1월 7일 사망했다.

 

오병선.(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나치시대 법관들에 대한 평가는 명확하다. 압박을 받았다는 것이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오병선은 압박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이일규 대법원판사는 같은 압박 아래서 무죄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그 용기 때문에 대법원장이 됐다. 같은 시대, 같은 체제에서 서로 다른 선택을 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오병선을 떠올렸다. 수석합격자가 고문으로 조작된 사건에 유죄를 선고하는 구조가 지금도 어딘가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은지 우리는 물어야 한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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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이 대통령은 ‘월클’”…진퇴양난 돌파구 찾나

최하얀,고한솔,김채운기자

  • 수정 2026-06-16 07:22

당안팎 압박에다 당 지지율 하락

대표 출마 땐 대통령과 맞서는 셈

불출마 땐 정치적 미래 기약 못해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와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6주년 기념식 및 특별강연’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대표직 사퇴와 8월 전당대회 불출마 압박을 받는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과의 대립각은 최소화하면서, 선명성을 선호하는 자신의 지지층을 다지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전당대회가 ‘명-청 대결’ 구도로 짜이는 것을 경계하며, 출마 여부를 저울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 대표는 15일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이 대통령의 이탈리아 순방 성과를 언급하며 “이 대통령은 월드 클래스 지도자”라고 추어올렸다. 그는 오후에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6주년 기념식 축사에서도 “우리 곁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 대통령이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을 가장 잘 체현하고 있는 피스메이커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정 대표의 발언은 지난 10일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란 자신의 발언을 두고 청와대 안에서 “당을 쪼개자는 것이냐”는 격한 반응을 보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 대표로선 집권 1년을 갓 넘긴 이재명 대통령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큰 부담이다.

이재명 정부를 지지하는 상당수 당원들이 자신에게 등을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은 “당권 경쟁자들과 대결 구도도 아닌, 이 대통령과 정면 대결 구도가 되어버린 상황을 (정 대표가)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석 국무총리와 가까운 강득구 최고위원은 이날 “여당은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하는 운명 공동체다. 당·정·청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했다.

정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불법 비상계엄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며 다시금 ‘내란 청산’ 메시지를 냈다. ‘보완수사권 완전 폐지’에 이어 거듭 자신을 지지하는 당원들에게 선명성을 강조한 것이다.

당 주변에서는 정 대표가 딜레마적인 상황에서 전대 출마 여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다른 수도권 재선 의원은 “정 대표로선 출마를 포기하면 향후 정치적 미래를 다시 모색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당원들의 평가를 받기 전에 사실상 밀려나는 것은 정 대표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지”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은 “대표 연임 도전에 실패할 경우 2028년 총선 공천에서 배제될 위험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사실상 정 대표 연임에 ‘비토’ 사인을 보낸 상황에서 전대에서 대표에 뽑히더라도 자신은 물론 여권 전체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수도권 다선 의원은 “과거 정 대표가 ‘더컷 유세단’(2016년 총선을 앞두고 공천에서 탈락한 인사들로 구성된 후보 지원 유세단)으로 활동하며 재기의 기회를 만들었듯, 이번에도 정부·여당 전체를 위해 한발 물러서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본다”며 “여권 내 갈등이 격화한 상황에서 정 대표가 설사 대표 연임에 성공하더라도 엄청난 험로에 놓일 수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민주당에서는 당원이 가장 많은 호남 지역에서 정부·여당 지지율이 빠지는 상황을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한 재선 의원은 “정 대표가 강성 지지층 결집을 의도하는 듯한 발언을 많이 내놓고 있지만, (호남에 30% 이상이 밀집된) 권리당원들은 당·청 관계를 주요하게 고민할 것”이라며 “전당대회 양상은 호남 민심 향방에 달렸다”고 말했다.

최하얀 chy@hani.co.kr 고한솔 sol@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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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한-EU 공동성명, 누가 설계했나…워싱턴의 보고서를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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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6/06/16 07:50
  • 수정일
    2026/06/16 07:50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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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명 박재산 기자
  •  
  •  승인 2026.06.15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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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틱 카운슬의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를 통해 본 한-EU 공동성명의 배경

최근 발표된 한-EU 공동성명은 적지 않은 논란을 낳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경제협력 확대와 디지털 통상협정 체결이 전면에 배치됐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안보·방위 협력, 해양안보, 사이버·하이브리드 위협 대응, 외국 정보조작 대응, 방산 협력, 기밀정보 교환 문제까지 폭넓게 포함됐다.

 
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벨기에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브뤼셀 유럽 연합(EU) 이사회에서 유럽 연합 안토니우 코스타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과 한-EU 소인수 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벨기에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브뤼셀 유럽 연합(EU) 이사회에서 유럽 연합 안토니우 코스타 정상회의 상임의장, 우르술라 폰 데어 라이엔 집행위원장과 한-EU 소인수 회담을 하고 있다. ⓒ뉴시스

실용외교와 균형외교를 말해온 이재명 정부가 어쩌다 유럽연합과의 안보·방위 협력을 이처럼 전면화하게 됐는지는 의아한 대목이다. 이를 접한 외교안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놀라움과 당혹감이 적지 않다. 한국 외교가 왜, 어느 지점에서, 이렇게까지 유럽·나토 안보협력 쪽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런데 이 흐름은 돌발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 워싱턴의 대표적 외교안보 싱크탱크인 애틀랜틱 카운슬은 작년 12월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를 통해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확대를 적극 제안했다.

이 보고서를 소개하는 이유는 최근 한-EU 공동성명에 담긴 안보협력의 방향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어떤 전략적 구상과 맞닿아 있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다.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는 한국을 유럽·나토 안보망과 연결하려는 워싱턴 외교안보 진영의 문제의식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낸다.

애틀랜틱 카운슬은 나토와 대서양동맹 강화를 중시하는 미국의 대표적 국제문제 싱크탱크다. 미국 정부와 동맹국, 방산·에너지 기업 등과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진 기관으로, 미국 주도 국제안보 질서의 관점에서 정책 제언을 내놓는 성격이 강하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4월 17일 방한 중인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집행위원회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을 만나 한-EU 간 경제안보 협력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 ⓒ뉴시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4월 17일 방한 중인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집행위원회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을 만나 한-EU 간 경제안보 협력 강화에 대해 논의했다. ⓒ뉴시스

‘경제안보’ 앞세운 안보망 연결

한-EU 공동성명은 디지털 통상, 공급망, 첨단기술, 에너지, 경제안보 협력을 강조했다. 그러나 공동성명의 무게는 경제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다.

특히 양측은 기밀정보 교환을 가능하게 하는 정보보호협정 협상 개시에 합의했다. 기밀정보 교환은 방산, 군사기술, 사이버안보, 우크라이나 문제, 대북·대러 정보공유로 이어질 수 있는 안보협력의 제도적 기반이다.

공동성명은 러시아와 조선의 군사협력을 강하게 비난하고, 조선의 핵·미사일 문제와 ‘한반도 비핵화’도 다시 언급했다. 남중국해, 대만해협, 호르무즈해협의 항행 자유 문제까지 포함됐다. 유럽 안보와 인도·태평양 안보를 하나의 틀로 묶는 흐름이 뚜렷하다.

한편, 이 과정에도 위성락 안보실장이 등장한다. 위 실장은 지난 4월 17일 방한 중이던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통상·경제안보 집행위원을 만나 한-EU 경제안보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번 공동성명은 ‘경제안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논의가 결국 안보망 연결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가 말한 것

애틀랜틱 카운슬 보고서의 핵심은 한국과 유럽이 안보협력을 더 강화해야 하며, 이를 위해 세 가지 방향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정보공유 확대다. 보고서는 조선의 대러 군사 지원 의혹을 거론하며, 유럽 정보기관과 한국 정보기관이 군사물자 이전, 확산 네트워크, 기술 공급망을 공동으로 추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협력 제도화다. 보고서는 한국과 나토의 맞춤형 파트너십 프로그램, 그리고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로 구성된 나토의 인도·태평양 파트너 4개국, 이른바 IP4 협력을 높이 평가했다. 더 나아가 미국·한국·나토가 참여하는 탄도미사일 방어 지휘통제 또는 모의훈련도 제안했다.

 

셋째는 방위산업 협력 확대다. 보고서는 한국의 K2 전차, K9 자주포, FA-50 전투기 수출을 사례로 들며 한국 방산이 유럽의 재무장 수요를 충족할 수 있다고 봤다. 탄약과 포병 보급, 공중·미사일 방어, 로봇공학, 인공지능, 반도체와 에너지 공급망까지 협력 범위로 제시했다.

이는 단순한 방산 수출 확대론이 아니다. 한국의 군사·기술·산업 역량을 유럽·나토의 안보 수요와 연결하자는 구상이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원문 보고서 「South Korea and Europe are stepping up on security cooperation. Here’s why」는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 기사에서는 이를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로 옮겼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원문 보고서 「South Korea and Europe are stepping up on security cooperation. Here’s why」는 해당 기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본 기사에서는 이를 「한국과 유럽의 안보협력 강화, 그 배경은 무엇인가」로 옮겼다.

한-EU 공동성명과 보고서의 접점

이번 한-EU 공동성명은 보고서의 제안과 여러 지점에서 맞물린다.

보고서가 정보공유 확대를 제안했다면, 공동성명은 정보보호협정 협상 개시를 담았다. 보고서가 사이버·하이브리드 위협 대응을 강조했다면, 공동성명도 같은 분야의 협력을 명시했다. 보고서가 방위산업 협력 확대를 주문했다면, 공동성명은 방산 관련 정보교류와 방위 분야 협력 확대를 언급했다.

무엇보다 두 문서는 공통적으로 유럽과 인도·태평양 안보가 연결돼 있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우크라이나, 조선, 러시아, 남중국해, 대만해협, 호르무즈해협 문제가 하나의 안보 구도 안에서 다뤄지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위치 변화다. 애틀랜틱 카운슬은 한국을 더 이상 “지역 안보 파트너”가 아니라 “글로벌 안보 제공자”로 규정했다. 이번 공동성명 역시 한국이 한반도와 동북아를 넘어 유럽 안보와 나토식 안보 의제에 더 깊숙이 관여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벨기에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브뤼셀 유럽 연합(EU) 이사회에서 열린 한-EU 공동언론발표를 마치고 박수를 받고 있다. ⓒ뉴시스
G7 정상회의 참석 계기 벨기에를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간) 브뤼셀 유럽 연합(EU) 이사회에서 열린 한-EU 공동언론발표를 마치고 박수를 받고 있다. ⓒ뉴시스

공동성명 뒤에 비친 워싱턴의 구상

한국이 유럽과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은 필요하다. 디지털 통상, 공급망, 첨단기술, 에너지 전환은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경제협력의 외피 아래 안보·방위 협력이 제도화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유럽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재무장에 나서고 있다. 나토는 러시아 견제를 명분으로 군사비 증액과 군수산업 재편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유럽의 대러 전선과 인도·태평양의 대중 견제 구도를 동맹망으로 연결하려 한다. 이 흐름 속에서 한국의 방산 공급망, 반도체 기술, 대북 군사 대응 경험은 중요한 연결고리로 부상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는 실용외교와 균형외교를 말해왔다. 그렇다면 유럽과의 관계에서도 경제협력과 안보 편입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유럽과 협력하는 것과 유럽·나토 안보망에 묶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한-EU 공동성명 뒤에는 워싱턴의 구상이 보인다. 한국을 유럽 안보망에 연결하려는 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 길이 한국의 국익과 한반도 평화에 부합하는지에 대한 냉정한 검토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원문보고서 : 「South Korea and Europe are stepping up on security cooperation. Here’s 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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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 26주년, "인내심·일관성 유지해 남북관계 개선노력 계속하자"

임동원, 김대중평화센터 6.15공동선언 26주년 기조강연

  • 기자명 서영빈·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6.16 00:37
  •  
  •  수정 2026.06.16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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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평화센터가 15일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26돌을 맞아 김대중도서관 컨벤션홀에서 기념식과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특별강연에 나서고 조정식 국회의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등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김대중평화센터가 15일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26돌을 맞아 김대중도서관 컨벤션홀에서 기념식과 특별강연을 개최했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특별강연에 나서고 조정식 국회의장,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등이 참가했다.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26돌을 맞아 15일 오후2시 김대중도서관 컨벤션 홀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26주년 기념식.

이날 유일하게 열린 6.15 기념식에서 6.15남북공동선언의 주역인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은 '한반도 평화 : 다시 6.15'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에서 "미국이 결단하면, 북한에 대해서도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북핵 문제는 물론 한반도 평화문제도 해결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을 기회로 포착, 활용하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결코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는 6,15정신을 되살려 인내심과 일관성을 유지하며, 북한과의 대결을 피하고 긴장완화, 남북관계 개선, 평화만들기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임 전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15경축사에서 △어떠한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고 △일체의 적대행위를 할 뜻도 없으며 △남북관계를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의 특수관계'로 합의한 바를 준수하여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다짐한 데 대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했고 그대로 실천돠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또 '9.19군사합의'의 단계적 복원과 트럼프 대통령의 2018년 '싱가포르 북미 정상합의' 이행을 촉구했다.

싱가포르 합의의 핵심 내용은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의 공고한 평화제제 수립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추진 이었으나 트럼프의 변심으로 제2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에서 결렬되어 이 합의가 실천으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짚었다.

이에 북은 "이제 더 이상 미국과의 대화와 협상은 부질없는 일이라며 '안보는 핵무력 강화, 경제는 자력갱생, 외교는 중국과 러시아와의 유대강화'로 나가기로 결정하고 '남북관계를 교전중이고 적대적인 두 국가관계'로 선포했다고 지난 과정을 설명했다.

또 "남과 북은 유엔에 공동가입한 두 국가이지만 '남북관계는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로 합의, 유지해 온 바를 파기한 것"이라고 하면서 "남북관계는 파탄나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중단되었다"고 파악했다

임 전 장관은 2022년 집권한 윤석열이 모든 남북관계를 파탄내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중단되었지만 "한반도 평화를 보장하고 핵무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안보환경을 조성하여, 북핵문제 해결은 물론이려니와 이미 합의한 바 있는 4자평화회담을 개최하여 군사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결단이 문제 해결의 열쇠"라고 재차 강조했다.

6.15남북공동선언에 대해서는 △자주적 통일 △남북연합제로 평화통일 지향 △8.15이산가족 상봉 △경제협력 등 다방면의 교류협력으로 신뢰조성 △당국간 대회 개최를 약속한 △선평화 후통일의 평화선언 △합의를 실천으로 옮긴 최초의 남북합의 △'미북 공동코뮤니케 채택과 울부라이트 국무장관의 평양방문을 비롯해 미국의 참여를 이끌어 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한반도평화프로세스 추동 △남과 북이 힘을 합치면 미국을 비롯한 국제적 지지와 협력을 얻을 수 있고 우리의 운명을 우리가 주도해 나갈 수 있다는 민족자존 고양 △이후 2007년 10.4남북정상선언과 2018년 4.17판문점선언 및 9.19평양공동선언으로 이어지는 후속합의의 초석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김대중 대통령이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하여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했듯이, 또한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여 '싱가포르 북-미 정상합의'를 성사시켰듯이, 트럼프 대통령을 기회로 포착·활용하여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다시 추진해야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사진-통일뉴스 서영빈 기자]

이재명 대통령은 강훈식 비서실장을 통해 축사를 보내 26년 전처럼 남북이 다시 마주 앉아 대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과 남북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공존의 출발점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중을 바탕으로 교류와 협력을 통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통일을 이루어나가자는 소중한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의 평화는 남북은 물론 동북아와 전 세계에도 공통의 이익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의 변화를 한반도 공동 번영의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이재명 정부는 지난 1년간 전단 살포와 확성기 중단을 비롯한 선제적 평화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가혹하리만치 무겁고 차가운 침묵 뿐이다. 고뇌와 답답함은 깊어만 간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대화의 끈을 놓을 수 없으며, 평화를 향한 걸음을 멈춰서도 안된다. 지금 주어진 과제는 명확하다. 이 위태로운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도록 관리하고 바꿔내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 장관은 "마침내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김대중 대통령께서 보여주신 6.15의 위대한 정신"이라며, "6.15 26주년, 한반도의 미래를 향한 담대한 여정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겠다. 지치지 않고 인내하며, 적대를 걷어낸 평화적 공존의 토대 위에서 번영의 길을 열어가겠다"고 말했다.

기조강연에 앞서 김성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은 행사 축사에서 "6.15 정신은 총칼이 아닌 대화로, 적대가 아닌 상생으로, 분열이 아닌 공존으로 미래를 만들어 가자는 평화의 약속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관계 규정,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중동의 무력 충돌 등을 언급하며 세계 평화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6.15 정신이 더욱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화는 갈등이 없는 상태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갈등이 깊어질수록, 대화의 문이 닫힐수록 더욱 필요한 것이 평화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할수록 대화의 가치는 커지고, 군사적 긴장이 높아질수록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절박해진다"고 말했다.

박명림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장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회복력은 한반도와 동아시아, 세계의 평화 협력으로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늘 이 기념식과 강의를 통해서 새 6.15 정신, 새 6.15 열정을 향해서 나아가는 그런 다짐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정식 국회의장은 "접경지역 주민들에게 평화로운 일상을, 기업들에게는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청년들에게는 미래를 준비할 희망을, 그리고 코리아 프리미엄 시대의 개막을 여는 열쇠가 바로 평화"라고 강조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평화가 곧 민생이고 경제이며, 우리 아이들의 미래라고 믿는 국민들이 많아질 때 6. 15 정신은 반드시 다시 살아날 것이다. 평화를 말하는 국민, 평화를 지키는 국민, 평화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국민, 바로 그런 국민의 열정이 한반도의 미래를 바꿔낼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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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없는 쿠팡…정보유출 피해자 2만명 주민번호 요구하며 ‘재판 지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15 10:47
  • 수정일
    2026/06/15 10:4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장현은기자

  • 수정 2026-06-15 10:32

피해자들 회원 여부 확인한다며 번호 요구

애초 쿠팡 회원 가입 땐 주민번호 수집 안 해

지난해 12월3일 서울 송파구 본사 모습. 연합뉴스

지난해 말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고를 일으킨 쿠팡이 개인정보 유출 관련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회원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며 수 만명의 주민등록번호 제출을 요구했다. 쿠팡은 애초 회원 가입 과정에서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아, 실효성 없는 다량의 민감 정보를 요구하며 재판을 지연시키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22부(재판장 박정호)는 지난 12일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본 가입자 약 2만1500명이 제기한 ‘쿠팡 개인정보 유출’ 관련 소송 7건의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원고들은 쿠팡의 개인정보 안전조치 의무 위반에 따른 정신적 피해 등에 대해 1인당 3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했다. 이날 심리된 7건은 법무법인 지향이 진행하는 8만여명 규모의 공동소송 중 일부로 지난 3월부터 가장 먼저 법원 심리가 이어진 사건이다. 쿠팡 사태 이후 여러 로펌을 통해 민사소송에 참여한 소비자는 전체 5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날 재판에서는 원고들이 실제 쿠팡 회원인지를 특정하는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쿠팡 쪽은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로 당사자를 특정해야 한다”며 원고들의 주민등록번호 제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무법인 쪽이 대리하는 원고 당사자 2만1500명의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해 제출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제는 쿠팡이 회원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민등록번호는 개인정보보호법상 수집·이용 요건이 엄격하게 제한되는 민감한 개인정보로, 쿠팡을 비롯해 대부분 쇼핑몰은 회원 가입 때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주민등록번호를 제출하더라도 쿠팡이 보유한 회원 정보와 대조해 확인할 수 없는 셈이다.

원고 쪽은 쿠팡이 이미 보유한 이름, 연락처, 이메일 주소, 가입 정보 등만으로 회원 여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데도 쿠팡 쪽이 불필요하게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피해자 확인보다는 소송을 장기화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취지다.

쿠팡이 민사재판을 늦추려는 움직임을 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쿠팡은 지난 3월 첫 재판부터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한 과징금 처분에 대한 행정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민사 재판을 중단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해왔다. 쿠팡은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역대 최대 규모인 6200억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으며,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이상희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쿠팡에 가입할 때는 주민등록번호를 수집하지도 않아서 제출하더라도 자사 시스템으로 대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라며 “법상 취득이 매우 엄격히 제한된 주민등록번호를 재판에서 요구하는 것은 명분 없는 재판 지역 작전”이라고 비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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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26년 전 6.15 선언, 희망의 불씨 지금도 살아있다"

"정전상태 넘어 평화체제 구축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 다 할 생각"

임경구 기자 | 기사입력 2026.06.15. 08:58:04

바티칸 교황청을 공식 방문한 이재명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정전 상태를 넘어, 지속 가능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할 생각"이라며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교황청의 지지와 관심을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성 밖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 미사' 연설에서 남북 관계 회복 의지를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전쟁을 언급하며 "국제사회 곳곳에 분열과 대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고 진단한 이 대통령은 "한반도 역시 이러한 현실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야기했던 남과 북은 다시 단절과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섰다"며 "남북을 연결하던 소통의 통로는 닫혔고, 불신과 긴장은 여전하다"고 했다.

다만 이 대통령은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났던 6.15 남북 정상회담을 상기하며 "26년 전 6월 15일, 남과 북은 분단 이후 처음으로 마주 앉아 6.15 남북공동선언을 발표했다"면서 "오랜 적대와 긴장을 넘어, 대화와 협력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저는 지금도 그 희망의 불씨가 살아있다고 확신한다"면서 "남북 간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고, 군사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꾸준히 이어가겠다"고 했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출범 이후 전단 살포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비롯한 선제적인 긴장 완화 조치를 추진해 왔다"며 "또한 흡수통일이나 일방적 체제 경쟁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갈등과 불확실성이 세계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지금, 이제 대한민국이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며 "더욱 평화롭고 자유로우며, 모든 이가 존엄한 삶을 누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화가 인류 공동의 유산이 될 수 있도록 국제적 책임을 다하겠다"며 "한반도의 평화가 세계평화로 이어지고, 세계의 연대가 다시 한반도의 평화를 굳건하게 만드는 선순환을 함께 만들어 가길 희망한다"고 했다.

또한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와 관련해 "세계 각국의 청년들이 전선(戰線)과 철조망, 국경의 제약을 넘어 이 자리에 함께할 수 있길 바라며, 대한민국 정부 역시 최선을 다해 뒷받침하겠다는 약속을 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서 유흥식 추기경 집전으로 열린 '평화와 연대를 위한 특별 미사'에서 기념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경구 기자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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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미의 숲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기자명

  •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6.15 06:35
  •  
  •  댓글 0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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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외교를 두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기대를 품었던 국민들이 많다. 한국 외교는 오래도록 외교가 아니었다. 미국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움직이는 유사 외교행위였다. 한미동맹은 정책이 아니라 신앙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다른 말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과의 관계를 복원하려 했고, 브라질 룰라 대통령을 국빈으로 맞았으며, 인도 국빈 방문으로 미국만 바라보지 않겠다는 신호를 냈다. 내란 수괴 윤석열은 한 번도 따로 만나지 않은 미국의 혐오국 3인방이다. 한국 외교의 방향이 조금은 바뀌고 있다고 볼 소지가 있는 대목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2월 미 공군의 서해상 무단 훈련에 경고음을 낸 일, 전작권 조기 회복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일, 이스라엘의 국제적 폭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일도 예사롭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6월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우리나라의 주권과 국민의 인권, 국제적 합의를 존중하지 않는 외부의 행태에 대해서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이른바 ‘3불 무관용’ 방침이다. 작년 9월의 ‘3불 원칙’, 곧 이면합의·국익침해·불공정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함께 놓고 보면, 이재명 외교에는 분명 자주외교의 싹이 돋고 있었다.

그러나 6월 10일 한-EU 정상회담의 공동성명은 그 기대를 한순간에 흔들었다. 불과 이틀 전 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조선 핵문제에 대해 현실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비핵화를 협상의 문턱에 세워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동안 조선은 핵물질을 계속 생산하고 ICBM 기술을 고도화한다. 그러므로 당장의 목표는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 핵물질 해외 반출 저지, 탄도미사일 기술 고도화 중단이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조선의 핵은 협상장에서 지워버릴 문구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현실이라는 말이었다. 미국식의 ‘이상론’에 선을 긋는 언사였다.

그런데 한-EU 공동성명은 정반대의 문법으로 돌아갔다. 성명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재확인했으며, 조선이 NPT상 핵보유국으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법적으로만 따지면 두 발언이 상충하는 것은 아니다. 핵능력의 존재를 현실로 인정하는 것과 핵보유국 지위를 법으로 인정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법률 문장이 아니다. “현실을 보자”고 했다가 이틀 후에는 “너는 결코 핵보유국이 아니다”라는 문서에 서명했다면 조선은 어느 쪽을 이재명의 진심으로 읽겠는가. 그리고 조선이 언제 NPT 인정을 원했는가.

이번 공동성명의 문제는 조선 핵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성명은 조선-러시아 군사협력을 ‘규탄’한다고 했다. 외교 문서에서 규탄은 가벼운 말이 아니다. 한국은 러시아와 관계를 정상화해야 하고, 한반도 문제에서 러시아를 완전히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유럽의 입장이 어떠하든 한국이 그 언어를 그대로 받아 적을 이유는 없다. 유럽은 유럽의 전쟁을 말한다. 한국은 한반도의 평화와 생존을 말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성명에서 한국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브뤼셀의 문장만 선명하다.

대만해협 조항도 마찬가지다.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 인도·태평양에서의 일방적 현상변경 반대라는 문장은 중국을 겨냥한 말이다. 중국과 관계를 복원하겠다던 정부가 왜 유럽의 대중 견제 문구를 자신의 선언문에 담는가. 한국이 대만해협 문제에 아무 입장도 갖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외교의 우선순위는 분명해야 한다. 한반도 평화, 대중 경제관계, 러시아와의 관계 복원, 조선 문제의 관리가 한국의 직접 이해다. 유럽의 가치외교 문장을 빌려 중국과 러시아를 동시에 자극하는 것은 전략이 아니라 습관이다.

6월 13일 조선 외무성은 한-EU 공동성명에 대해 “이는 우리 국가에 대한 명백한 주권침해, 엄중한 적대행위로서 지금껏 입 닳도록 떠들어 온 ‘체제존중’, ‘적대행위 불추구’와 같은 위장간판을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난했다. “한국의 집권자가 거치장스럽게 쓰고 있던 ‘평화’의 가면을 내던졌다”고도 말했다. 6월 8일 이 대통령이 조선 핵의 ‘현실론’을 언급한데 대해 냉소를 보내던 조선이 드디어 입을 연 것이다. 같은 날 ‘청와대 관계자’는 공동성명의 내용이 기존 한국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결국 ‘도루묵’인 것인가.

 

조선의 맹비난이 무서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자세를 흩트리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기존 한국의 입장’이란 언제 시점의 입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얘기인가. 누가 조선 외무성의 ‘위장간판’과 ‘가면’ 지적을 틀리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번 성명이 우리의 과거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강변하는 그 ‘관계자’는 우리 외교의 진보를 원점 회귀시키려는 숭미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이 대통령이 이들의 의견을 그대로 흡수하면서 비틀댄다면 그 동안의 이른바 ‘자주’ 행보란 무의미한 몸짓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결국 당신은 실용외교라는 이름하에 ‘숭미의 숲’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이렇게 한쪽의 입장만 전적으로 표현한 사례는 희귀하다. 한국은 EU의 안보 언어를 고스란히 수용했다. 반대급부라면 기껏해야 무관세 철강 수출 쿼터를 덜 줄인다는 얘기다. 그걸 얻겠다고 우리의 외교 목소리를 송두리째 상대에게 넘겼다는 말인가.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설명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사전 협상을 담당한 외무 관리들의 무능과 무책임이다. 다른 하나는 숭미 관료들의 의도적인 반란의 가능성이다.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의심하지 않을 수도 없다. 주인국에 대한 숭미인들의 충성은 갸륵하기 짝이 없다.

오디세우스의 배를 떠올리게 한다. 오디세우스는 사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배가 암초로 향하지 않도록 몸을 돛대에 묶었다. 한국 외교의 배에서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선장은 암초를 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잡이들은 다시 익숙한 노래 쪽으로 키를 돌렸다. 워싱턴과 브뤼셀에서 들려오는 낡은 비핵화 주문, 러시아 규탄의 합창, 대만해협 현상변경 반대의 구호가 그 노래다. 더 큰 문제는 선장이 그 키를 빼앗아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외교는 선언이 아니라 문서로 남는다. 기자회견의 현실론보다 정상성명의 문구가 더 오래 남는 법이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말한 국익 중심의 실용외교에 비추어 보아도 이번 성명은 해명되기 어렵다. 어디에 국익이 있고 어디에 실용이 있는가. 한반도 문제에서는 조선에 대한 유럽의 규탄 언어를 받아들이고, 러시아 문제에서는 유럽의 전쟁 언어를 받아 적고, 대만해협 문제에서는 중국 견제의 언어를 받아들었다. 주권의 언어가 아니라 유럽의 문장을 한국어로 옮겨 적은 것에 불과하다. 물론 최종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이번 성명은 대형 사고다. 이 사고는 조선에는 불신을, 중국과 러시아에는 경계심을, 한국 국민에게는 혼란을 남겼다.

그동안 이재명 정부의 자주적 행보를 지지하고 성원해온 국민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부의 외교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걸었던 길, 말로는 자주를 말하다가 결정적 순간에는 동맹의 문장에 포획되었던 그 실패를 다시 반복하려는가. 숭미의 숲에서 빠져나오려 고독하게 싸운 지난 1년을 변절로 마무리할 것인가. 우선 한-EU 공동성명의 경위와 책임을 따져야 한다. 대통령의 뜻과 다른 것이었다면 철저히 문책해야 하고, 대통령의 뜻이 그런 것이었다면 이재명 정부의 외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자주의 싹이 튼 줄 알았던 땅에서 우리는 다시 숭미의 숲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인가.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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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 끝났다… "종전 MOU 타결, 19일 서명"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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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6.06.15 08:10

  • 수정 2026.06.15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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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호르무즈 즉시 개방, 해상 봉쇄 해제"

이란 "밤부터 모든 전선에서 전쟁 영구 중단"

2·28 미·이스라엘 선제공격 후 106일만 합의

이란 "적은 모든 목표서 패배…위대한 승리"

미국과 이란이 14일 이란전쟁의 종전 합의를 담은 양해각서(MOU)를 타결하고 19일 스위스에서 공식 서명한다. 지난 2월 28일 비핵화 협상 도중 이란에 대한 미·이스라엘 '불법' 선제공격을 계기로 시작된 지 106일 만이다.

양국과 중재국 파키스탄에 따르면, 이날부터 즉시 이란이 봉쇄해온 호르무즈 해협은 재개방되고, 이란에 대한 미군의 해상 봉쇄도 해제될 예정이다. 또한 레바논을 포함해 현재 전투가 벌어지는 여러 전선에서 전쟁도 영구 중단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6. 06. 11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호르무즈 즉시 개방, 해상 봉쇄 해제"

세계를 향해 이 사실을 맨 먼저 알린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이날 오후 5시30분쯤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 이슬람공화국과의 합의가 지금 마무리됐다. 모두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날은 트럼프 대통령의 80세 생일이기도 하다.

트럼프는 "이로써 나는 통행료 없는 (toll free)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전적으로 승인하는 동시에, 미 해군의 해상 봉쇄 즉시 해제를 승인한다"며 "세계의 선박들은 엔진 가동을 시작해 석유가 흐르도록 하라"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 동부시간 기준으로 14일 오후 5시30분쯤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 이슬람공화국과의 합의가 지금 마무리됐다. 모두 축하한다!"고 밝혔다. 2026. 06. 14 [트럼프 계정 갈무리] 시민언론 민들레

중재국인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도 X를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집중적인 협상 결과, 미국과 이란 간 평화 합의가 타결됐다"며 오는 19일 스위스에서 공식 서명식이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샤리프 총리는 "합의에 따라 양측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 작전의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종료를 선언했다"고 소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란 외무부의 카젬 가리바바디 차관도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가리바바디 차관은 이날 이란 국영 TV를 통해 레바논을 포함한 여러 전선에서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전쟁 및 군사 작전 종료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번 합의에 따른 이란의 의무 이행은 오는 19일부터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면서, 최종 합의를 위한 협상이 60일간 진행될 것이며 "상대측의 위반 행위"가 있을 경우 이란 정부도 자체적으로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가리바바디 는 또한 "사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격해온 적은 모든 목표에서 패배했으며, 이란은 이번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뒀다"고 주장했다.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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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수원지검 1313호 현장검증, 확인해야 할 4가지 쟁점

차 오전 7시] '연어 술파티 위증 사건' 본격 시작... 쌍방울 관계자는 왜 술을 샀나

26.06.15 06:48최종 업데이트 26.06.15 06:48

<오마이뉴스>는 8일부터 2주 동안 열리는 이화영 전 경기도평화부지사 사건 국민참여재판을 매일 오전·오후·저녁 등 세 차례 이상 연속보도한다(omn.kr/2il9y). 또한 연어 술파티 의혹을 둘러싼 핵심 혐의가 다뤄지는 2주차 때는 매일 재판이 끝난 뒤 오마이뉴스 법조팀 유튜브채널 '서초동 시끌법정'에서 재판 상황을 해설할 예정이다(www.youtube.com/@ohmynewsLAT).[편집자말]

수원지검 전경. 김종훈

오늘(15일) 예정된 수원지방검찰청 1313호실 현장검증은 단순한 장소 확인 절차가 아니다. 이화영 국민참여재판의 핵심인 '연어 술파티 위증 사건'의 본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비교적 단순한 위증 사건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국회에서 "술이 제공됐다"고 증언했지만, 실제로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국회에서 언급한 날짜가 2023년 6월 18일 또는 6월 30일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 날짜에 소주가 제공되지 않았다면 위증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쟁점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이 전 부지사의 국회 증언은 특정 날짜를 단정한 진술이 아니었다. 그는 일기처럼 적어둔 기록이 사라져 정확한 날짜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기억을 더듬어 "6월 18일 아니면 6월 30일일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장검증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날짜를 붙잡고 위증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 수원지검 1313호실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가 사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쟁점은 네 가지다.

첫째,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둘째, 쌍방울 관계자가 술을 샀나.

셋째, 왜 술을 샀나.

넷째, 결국 이재명을 겨냥했나.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이 사건의 출발점은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이다. 그는 수원지검 조사 과정에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방용철 전 부회장, 안부수 전 아태평화교류협회장 등 관련자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그 자리에서 진술을 맞추는 듯한 대화가 오갔다고 주장해 왔다. 이른바 '진술세미나'가 있었고 외부 음식이 제공됐고, 심지어 연어회와 소주까지 제공됐다는 취지로 말했다.

검찰은 이를 부인한다. 특히 수원지검은 2024년 4월 공식 자료를 통해 "검찰청사에 술이 반입된 바가 없어 음주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쌍방울 관계자가 음식조차 반입한 사실이 일체 없다", "음주 장소로 언급된 검사실은 식사 장소로 사용된 적이 없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나온 법무부 특별점검과 서울고검 인권침해점검 TF의 결과는 달랐다. 두 기관은 2023년 5월 17일 수원지검 1313호 검사실 또는 영상녹화실에서 외부 음식과 술이 반입됐고, 이 전 부지사와 김성태 전 회장 등이 소주를 마신 정황이 있다는 취지로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 대검 과학수사부의 거짓말탐지기 조사 결과도 있다. 이 전 부지사의 관련 진술은 '진실'로 판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거짓말탐지기 결과가 진실과 거짓을 직접 판별하는 절대적 증거가 아니라고 말한다. 검찰 주장대로 거짓말탐지기 결과만으로 유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결과는 검찰이 피고인을 유죄로 만들기 위해 제출하는 증거가 아니다. 피고인인 이 전 부지사 측이 자신의 진술 신빙성을 방어하기 위해 제시할 수 있는 자료다. 다시 말해 '이화영의 주장이 명백한 거짓이라고 단정할 수 있느냐'를 판단하는 데 의미가 있다.

수원지검은 검찰 스스로 실시한 과학수사 절차에서 '진실' 취지 결과가 나왔는데도 이를 전면 부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현장검증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해야 한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나.

2023년 5월 17일, 쌍방울 관계자는 정말 술을 샀나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쌍방울 법인카드(끝자리 1084)의 결제내역2023년 5월 17일 오후 6시 34분과 6시 37분, 수원지검 앞 편의점에서 각각 1만2100원과 1800원이 결제됐다.오마이뉴스

두 번째 쟁점은 더 구체적이다. 쌍방울 관계자가 술을 샀는지 여부다. 이 부분은 이미 <오마이뉴스> 보도를 통해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난 상태다.

2023년 5월 17일 저녁, 쌍방울 법인카드 끝자리 1084번 카드가 수원지검 앞 편의점에서 사용됐다. 오후 6시 34분 1만 2100원, 오후 6시 37분 1800원이 결제됐다. 특히 1800원 결제가 당시 편의점 소주 한 병 가격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법무부는 편의점의 상세 결제 내역, 이른바 밴딩 자료를 통해 두 건 모두 소주 구입과 관련됐다고 확인했다.

구체적으로 1만 2100원 결제는 소주 3병, 생수 3병(2+1행사상품), 담배 1갑, 비닐봉투 1장. 3분 뒤 1800원 결제는 소주 1병이다. 특히 생수 3병과 소주 4병이라는 구성은 '소주갈이' 의혹과 연결된다. 생수병에 소주를 옮겨 담아 외부에서 보기에는 물처럼 보이게 했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현장검증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은 물리적 가능성이다.

수원지검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소주갈이를 한 뒤 140m 정도 떨어진 수원지검까지 바로 올 수 있는지, 이를 김 전 회장 수발을 담당했던 쌍방울 이사 박상웅씨가 실제 소주 등을 전달받을 수 있는 시간이 들어맞는지 여부다. 또 수원지검 2층 로비에서 13층 검사실까지 이동하는 절차는 어떠했는지, 그 과정에서 검색이나 제지가 있었는지를 따져야 한다.

여기서 김 전 회장을 지속적으로 수발했던, 쌍방울 이사 박상웅씨의 출입기록이 핵심으로 등장한다.

박씨는 2023년 5월 17일 오후 6시 32분 15초 수원지검 13층에서 퇴실했고, 6시 41분 04초 다시 13층에 입실했다. 약 9분의 공백이다. 공교롭게도 이 9분 사이에 수원지검 앞 편의점에서는 소주 결제가 이뤄졌다. 오후 6시 34분 1만 2100원, 오후 6시 37분 1800원. 박씨가 13층에서 내려온 시각과 소주 구매 시각, 다시 13층으로 올라간 시각이 절묘하게 맞물린다.

물론 이것만으로 박씨가 소주를 직접 반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장검증은 바로 그 가능성을 확인하는 절차다. 9분 안에 가능한 일인지, 불가능한 일인지 배심원들이 직접 봐야 한다.

왜 술을 샀나

세 번째 쟁점은 더 중요하다. 소주를 왜 샀는가다. 현재까지 공개된 법인카드 내역과 법무부 확인 내용 등을 종합하면, 쌍방울 관계자가 2023년 5월 17일 수원지검 앞 편의점에서 소주를 구입한 정황은 상당 부분 확인된다. 끝자리 1084로 끝나는 쌍방울 법인카드를 가진 관계자가 그날 왜 검찰청 앞 편의점에서 소주를 샀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 술이 누구를 위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목적으로 준비됐느냐를 따져야 한다.

2023년 5월 17일은 우연한 날이 아니다. 이날은 이화영 전 부지사, 김성태 전 회장, 방용철 전 부회장이 수원지검에 있었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의 핵심 인물들이 같은 날 같은 공간에 있었다.

법무부는 김 전 회장이 구속 기간 총 184회 검찰에 출정했고, 김 전 회장 조사 때마다 쌍방울 관계자들이 수원지검 1313호실에 상주하듯 드나들었다는 취지의 교도관 진술을 조사보고서에 담았다. 박상웅씨 등은 김 전 회장에게 커피나 물을 가져다 주고, 필요한 일을 처리하는 수행비서 같은 역할을 했다고 적시했다.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일반 피의자 조사에서 회사 관계자가 검찰청사 안 검사실을, 심지어 '참고인' 출입증을 들고 수시로 드나들며 피의자를 보조하는 일이 가능한가. 구속 피의자가 원하는 외부 음식이 반복적으로 제공되는 일이 통상적인가. 공범들이 한 공간에 모여 식사를 하고 대화하는 구조가 적절한가.

이 전 부지사의 주장은 바로 이 지점과 맞닿아 있다. 그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공범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세미나를 하듯 진술을 맞추는 분위기가 있었으며, 검찰의 회유와 압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외부 음식과 소주는 그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였다는 것이다.

▲증언대에 선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대북 송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지난 4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권 정치검찰 조작기소 의혹 사건 종합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답변하고 있다.남소연

김성태 전 회장이 5월 17일 당일 수원구치소에서 지인을 접견하며 한 발언도 주목해야 한다. 김 전 회장은 "오늘 중요한 날", "결전의 날"이라는 취지로 말하고, "소주라도 한잔 먹고 이야기하면 편할 판"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

구체적으로 김 전 회장은 "세상은 태풍이 오면 태풍을 피할 수가 없다"라면서 "태풍 속에 안 들어가야 되는데, 이미 태풍 속에 이미 들어가 버린 것 어떻게 하냐. 그 흐름을 내가 만들어야지. 이제는. 그렇게 노력을 해야지. 우리가 흐름을 만들어야지"라고 말한다. 이어 "반전시킬 수 있는 뭔가 노력을 해봐야지"라면서 이재명 대통령과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이 전 부지사의 진술을 얻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그는 "소주라도 한잔 먹고 이야기하면 편할 판인데"라는 말을 한다.

"나도 고민무지하게 돼 인마. 사실 엄청난 도박이야. 만약에 저것들이 기소해 가지고 유죄 나오면 1년 6월 이상인데. 스타트가. 예를 들어서 지금 이화영이도 마찬가지 아녀. 오늘은 나온다고 지가 하니까. 소주라도 한잔 먹고 가서 이야기하면 편할 판인데. 내가 변호사한테 이야기해 봤으니까."

김 전 회장은 "물 있잖아. 물은 좀 있잖아. 석수같은 거"라고 지칭한 뒤 "한번 이야기해 보라구 해. 흉금 없이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게끔. 환경을 만들면 좀 어떠냐. 뭔 말인지 알지"라고 당부한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소주는 진술을 끌어내기 위한 분위기 조성 도구였을 수 있다. 더구나 "물에 담아 준비하라"는 취지의 지시가 있었다면, 이는 검찰청사 반입을 염두에 둔 준비였다고 볼 여지도 있다.

현장검증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그래서 단순한 동선만이 아니다. 실제 김 전 회장의 말대로 이뤄졌는지를 따져야 한다. 결국 소주가 왜 필요했는지. 소주가 진술세미나 의혹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봐야 한다. 이 점이 현장검증에서 확인해야 할 핵심 쟁점이다.

결국 이재명을 겨냥했나

마지막 쟁점이 이 사건의 본질이다. 검찰은 이 사건을 이화영 전 부지사의 위증 사건으로 제한하려 한다. 하지만 이 사안이 실제로 벌어졌다면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검찰청사 안에서 구속 피의자들과 공범들이 한자리에 모였고, 외부 음식과 술이 제공됐으며, 그 자리에서 특정한 방향의 진술이 만들어졌다는 의혹이다. 그 특정 방향이 당시 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향해 있다면 더더욱.

이 전 부지사 주장은 명확하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서 이재명을 엮기 위해 김성태 등의 진술이 만들어졌고, 검찰은 그 과정에서 회유와 압박을 했다는 것이다. 외부 음식과 소주, 각종 편의도 이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만약 이 전 부지사 측 주장처럼 검찰청사 안에서 공범 간 진술 조율과 회유·압박이 실제로 있었음이 확인된다면,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 수사와 기소 과정 전반을 둘러싼 중대한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현장검증이 더 중요하다. 이번 현장검증은 수원지검의 기존 설명과 법무부·서울고검 TF의 판단 가운데 어느 쪽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를 가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화영 #김성태 #소주갈이 #쌍방울 #수원지검

프리미엄 이화영 국민참여재판, 끝장 연속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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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 해체" 거론하기 전에 부실 작동 이유 살펴야

이준일 시민기자

profyi@korea.ac.kr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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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제도적 결함에서 비롯

법관 중심 제도와 1인 상임위원 제도가 문제

선관위 내부 감독체계 제대로 작동 안한 탓도

총리가 부정선거 세력처럼 '해체' 편승 안 돼

헌법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개혁 모색을

서울 송파구선관위가 지방선거가 치러진 3일 잠실7동 제2투표소로 이송한 것으로 추정되는 투표용지 상자를 이틀 뒤에 촬영한 사진이다. 이 상자 겉면에 적힌 '투표용지 인쇄 매수'는 총 1900매였다. '박스 1개 중 1번'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이 투표소의 선거인 수는 3856명으로 파악됐다. 서울동부지법 김지연 부장판사가 10일 오후 증거로 보전하려고 했는데 이 상자는 사라진 뒤였다. 송파구선관위는 법원 통보를 받기 5시간쯤 전에 폐기업체가 수거해 갔다고 뒤늦게 밝혔다. 2026.6.5 연합뉴스

지난 6월 3일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유례 없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지금까지의 보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91개 투표소에서 7194장, 서울에서만 4206장의 투표용지가 부족한 상황이 벌어졌다. 11일 김민석 국무총리는 선거권 침해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며 국민의 목소리를 빌어 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해체까지 언급했다.

투표율을 엄밀하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한 선거인(유권자) 숫자만큼 투표용지를 인쇄하지 않는 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예상하지 못한 투표용지의 부족으로 투표용지를 추가적으로 인쇄하여 배부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므로 투표시간을 연장하는 상황도 이해할 수는 있다. 이전에도 투표시간 막판에 투표자가 몰리면 투표시간을 연장했던 선례도 있다.

물론 선관위의 안일한 대처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선관위가 탄생한 배경을 되돌아보면 섣부른 선관위 해체론, 그것도 국무총리가 직접 언급한 선관위 해체는 매우 부적절하다. 오히려 선관위가 독립적인 헌법기관으로 설치된 목적에 부합하지 않게 작동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고민하고 대안을 모색할 시점이다.

선관위는 부정선거에 저항하여 일어났던 4·19혁명의 정신을 구현하기 위하여 설치된 헌법기관이다. 1960년 헌법(제3차 개정헌법)은 헌법기관으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설치하면서 편제에서도 제5장 정부와 제7장 법원 사이에 중앙선관위를 위치시킴으로써 그 헌법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만 중앙선관위 전체 위원 9명 가운데 3명은 대법관 가운데 호선하며 위원장도 대법관인 위원 가운데 호선하도록 규정하였다. 중앙선관위원장을 대법관이 맡는 전통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960년 헌법 제75조의2

① 선거의 관리를 공정하게 하기 위하여 중앙선거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위원회는 대법관 중에서 호선한 3인과 정당에서 추천한 6인의 위원으로 조직하고 위원장은 대법관인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중앙선거위원회의 조직, 권한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써 정한다.

표제에 ‘통치기구’라는 불편한 용어가 등장한 1962년 헌법(제5차 개정헌법)에서 중앙선관위는 국회, 정부, 법원에 이어 제4절에 편제되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2명, 국회에서 선출하는 2명, 대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하는 5명으로 구성되었다. 중앙선관위의 구성에서 대법원의 역할이 강화되었으나 중앙선관위원을 반드시 법관 중에서 선출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지만 대법원에서 선출되는 중앙선관위원을 법관 중에서 선출하는 관례는 유지되었다. 중앙선관위원의 정치적 중립성이 강조되었으며 중앙선관위의 규칙 제정권이 부여되어 독립성도 강화되었다.

 

1962년 헌법 제107조

① 선거관리의 공정을 기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2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2인과 대법원 판사회의에서 선출하는 5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위원의 임기는 5년으로 하며 연임될 수 있다.

④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⑤ 위원은 탄핵 또는 형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의 관리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⑦ 각급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ㆍ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전대미문의 국가기관을 설치한 1972년 헌법(제7차 개정헌법)에서 선관위는 중앙선관위와 각급 선관위로 조직되어 이전보다 체계성을 갖춘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법률에서 선관위를 중앙선관위와 각급 선관위로 조직하고 있었다. 중앙선관위원은 9명으로 유지되었지만 이 가운데 3명은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여 임명하고, 국회에서 선출된 3명, 대법원장이 지명한 3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였다.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위원의 숫자가 3명으로 축소되었으며 위원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됨으로써 중앙선관위는 행정부 의존성이 강화되어 독립된 헌법기관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1972년 헌법 제112조

①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게 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9인의 위원으로 구성하며, 대통령이 임명한다.

③ 제2항의 위원 중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

④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⑤ 위원의 임기는 5년으로 한다.

⑥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⑦ 위원은 탄핵 또는 형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⑧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관리ㆍ국민투표관리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⑨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ㆍ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중앙선관위의 구성과 관련하여 1980년 헌법(제8차 개정헌법)은 1972년 헌법을 거의 그대로 따랐으나 위원장을 위원들이 직접 서로 협의하여 선출하는 방식(호선)으로 개정되어 독립성을 회복하였다. 현행 헌법인 1987년 헌법(제9차 개정헌법)에서도 중앙선관위의 구성은 위원의 임기만 6년으로 연장되었을 뿐이고 대부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대법원장이 법관 중에서 중앙선관위원을 지명하는 관례도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1980년 헌법 제115조

①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위원의 임기는 5년으로 한다.

④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⑤ 위원은 탄핵 또는 형벌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관리ㆍ국민투표관리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⑦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ㆍ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1987년 헌법 제114조

① 선거와 국민투표의 공정한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선거관리위원회를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위원의 임기는 6년으로 한다.

④ 위원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

⑤ 위원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한다.

⑥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선거관리ㆍ국민투표관리 또는 정당사무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으며, 법률에 저촉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내부규율에 관한 규칙을 제정할 수 있다.

⑦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조직ㆍ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중앙선관위와 각급 선관위로 조직되는 선관위는 헌 법개정 없이는 폐지할 수 없는 헌법기관에 해당하며 독립된 국가기관이므로 중앙선관위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나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계엄군의 중앙선관위 침탈은 위헌적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도 내려진 바 있다.

 

헌재 2025. 2. 27. 2023헌라5

“제3차 개정헌법 이래로 우리 헌법이 선거관리사무를 행정부로부터 기능적ㆍ조직적으로 분리하여 독립된 헌법기관인 선거관리위원회에 부여한 것은, 선거관리기구가 대의민주제에서 요청되는 독립적ㆍ중립적 선거관리라는 헌법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외부 권력기관, 특히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의 영향력을 제도적으로 차단할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해서는 선거관리사무를 행정부가 아닌 독립된 헌법기관에 맡겨야 한다는 헌법적 결단이 헌법체계에 반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헌재 2025. 4. 4. 2024헌나8

“피청구인(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이 예정하지 않은 방법으로 군대를 동원하여 중앙선관위 청사에 무단으로 들어가 선거관리에 사용되는 전산시스템을 압수ㆍ수색하도록 하였다. 이는 선관위의 선거관리사무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자 선거가 지니는 본래의 민주정치적 기능에 위협을 가하는 행위로서, 선관위의 독립성을 철저히 보장하고자 하는 우리 헌법의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헌법의 위임을 받아 제정된 〈선거관리위원회법〉에 따르면 선관위는 중앙선관위와 함께 4개 종류로 구분된다. 중앙선관위뿐만 아니라 각급 선관위의 위원으로 법률에서 정한 최소한의 법관이 포함되어야 하며 법관을 우선하여 위촉해야 한다는 규정까지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구성방식이 선관위를 독립된 헌법기관으로 설치한 헌법의 취지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헌법 어디에도 선관위원의 자격을 법관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선관위는 독립적 헌법기관임에도 불구하고 구성단계에서부터 법관의 비중이 높다. 정치적 지향성이 강한 입법부나 행정부보다 사법부가 선거관리에서 상대적으로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여기까지는 납득할 수 있지만 권력분립 원칙의 관점에서 보면 현직 법관이 독립적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위원으로 임명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대법원장이 중앙선관위원을 지명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으나 현직 법관을 선관위원으로 임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제2조(설치) ① 선거관리위원회의 종류와 위원회별 위원의 정수는 다음과 같다.

1. 중앙선거관리위원회 9인

2. 특별시ㆍ광역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 9인

3.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 9인

4.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 7인

제4조(위원의 임명 및 위촉) 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과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한다. 이 경우 위원은 국회의 인사청문을 거쳐 임명ㆍ선출 또는 지명하여야 한다.

②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고 정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한 사람과 당해 지역을 관할하는 지방법원장이 추천하는 법관 2인을 포함한 3인과 교육자 또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중에서 3인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한다.

③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그 구역 안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고 정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한 사람과 법관ㆍ교육자 또는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중에서 6인을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한다. 다만, 정당이 추천하는 위원은 선거기간개시일(委託選擧는 제외한다. 이하 같다) 또는 국민투표안공고일후에는 당해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할 수 있다.

④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그 읍ㆍ면ㆍ동의 구역 안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의 선거권이 있고 정당원이 아닌 자 중에서 국회에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이 추천한 사람과 학식과 덕망이 있는 자 중에서 4인을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가 위촉한다. 다만, 읍ㆍ면의 구역 안에 군인을 제외한 선거권자가 없는 경우에는 그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은 그 읍ㆍ면ㆍ동을 관할하는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의 구역안에 거주하는 국회의원선거권자 중에서 이를 위촉할 수 있다.

⑤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와 읍ㆍ면ㆍ동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이 될 법관과 법원공무원 및 교육공무원은 거주요건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며 법관을 우선하여 위촉하여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위원들 가운데 단 한 명만이 상임위원이라는 점이다. 중앙선관위의 상임위원은 호선이 원칙이지만 관례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 위원 가운데 한 명이 상임위원이 된다. 선관위는 의결기구이며 이를 집행하는 기구로 사무처를 두는데 중앙선관위의 사무처에는 사무총장과 사무차장, 시ㆍ도선관위의 사무처에는 사무처장을 둔다. 이러한 사무처를 감독하는 권한을 상임위원이 갖는데 현실적으로 상임위원 한 명이 사무처를 감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사무처에 대한 효과적인 감독을 위해서는 상임위원의 숫자를 증원할 필요가 있다.

 

선거관리위원회법

제6조(상임위원) 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에 위원장을 보좌하고 그 명을 받아 소속 사무처의 사무를 감독하게 하기 위하여 각 1인의 상임위원을 둔다.

②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상임위원은 위원 중에서 호선한다.

③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의 상임위원은 당해 선거관리위원회의 위원 중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고 선거 및 정당사무에 관한 식견이 풍부한 자 중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명하되 상임위원으로서의 근무상한은 60세로 한다.

1. 법관ㆍ검사 또는 변호사의 직에 5년 이상 근무한 자

2. 대학에서 행정학ㆍ정치학 또는 법률학을 담당한 부교수이상의 직에 5년 이상 근무한 자

3. 3급 이상 공무원으로서 2년 이상 근무한 자

제15조(사무기구 등) 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사무처를 둔다.

② 사무처에 사무총장 1인과 사무차장 1인을 둔다.

③~⑨ 생략

⑩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에 사무처와 필요한 과를 두며 처장은 2급 또는 3급, 과장은 4급 또는 5급인 일반직국가공무원으로 보한다.

⑪ 구ㆍ시ㆍ군선거관리위원회에 사무국 또는 사무과를 두며 국장은 4급, 과장은 4급 또는 5급인 일반직국가공무원으로 보한다.

덧붙여,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투표시간과 관련하여 원칙적으로 오전 6시부터 오후 6시까지인데 대기자가 있는 경우에 번호표를 부여하여 투표하게 해야만 한다. 투표시간은 법률에 고정되어 있지만 투표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투표시간 안에 도착하여 투표를 마치지 못한 유권자에게는 투표시간을 연장하여 투표권을 보장한다. 투표권의 보장을 위해서 투표시간의 조정은 허용된다는 뜻이다.

 

공직선거법

제155조(투표시간) ① 투표소는 선거일 오전 6시에 열고 오후 6시(보궐선거등에 있어서는 오후 8시)에 닫는다. 다만, 마감할 때에 투표소에서 투표하기 위하여 대기하고 있는 선거인에게는 번호표를 부여하여 투표하게 한 후에 닫아야 한다.

투표용지 부족사태와 관련하여 국가의 선거업무를 방해할 목적으로 고의나 과실로 투표용지의 부족을 초래했다면 형법상 직무유기죄에 해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공무원의 직무유기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국가기능을 저해하고 국민 피해를 야기할 구체적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수사기관의 수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대목이다.

 

대법원 2022. 6. 30. 선고 2021도8361 판결

“직무유기죄는 구체적으로 직무를 수행해야 할 작위의무가 있는데도 이러한 직무를 저버린다고 인식하고 작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성립한다. 이때 직무를 유기한다는 것은 공무원이 법령, 내규 등에 따른 추상적 성실의무를 게을리하는 일체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할 구체적인 가능성이 있는 경우만을 가리킨다. 따라서 공무원이 태만이나 착각 등으로 인하여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경우 또는 직무를 소홀하게 수행하였기 때문에 성실한 직무수행을 못한 데 지나지 않는 경우에는 직무유기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국민의 참정권, 특히 선거(헌법 제24조)이 침해되었다는 이유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청구된 경우에 문제가 되는 집단은 투표시간 안에 도착하였으나 투표용지의 부족으로 정해진 투표시간을 넘어 투표한 유권자들 또는 지연된 투표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투표를 포기한 채 돌아간 유권자들이다.

전자의 경우에 투표할 시간이 지연되어 선거권의 행사를 방해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선거권 자체가 박탈된 것은 아니므로 헌법재판소가 선거권을 침해했다고 판단할 수 있을지는 단정할 수 없다. 문제는 후자로 투표할 수 있는 시간의 지연으로 대기표를 받고도 기다리지 못해 투표를 포기하여 사실상 선거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선거권 침해를 확인할 개연성이 높다.

다만 투표용지 부족사태로 인한 선거의 효력, 즉 재선거 실시 여부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선거소청이나 선거소송으로 다투어야 하며 이 문제를 헌법소원으로 다투면 보충성 원칙 위반으로 각하될 수 있으며 굳이 선거소송의 헌법 위반 여부를 다투려면 최근에 도입된 재판에 대한 헌법소원을 청구해야 한다.

 

공직선거법

제219조(선거소청) ①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거에 있어서 선거의 효력에 관하여 이의가 있는 선거인ㆍ정당(후보자를 추천한 정당에 한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 또는 후보자는 선거일부터 14일 이내에 당해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을 피소청인으로 하여 지역구시ㆍ도의원선거(지역구세종특별자치시의회의원선거는 제외한다), 자치구ㆍ시ㆍ군의원선거 및 자치구ㆍ시ㆍ군의 장 선거에 있어서는 시ㆍ도선거관리위원회에, 비례대표시ㆍ도의원선거, 지역구세종특별자치시의회의원선거 및 시ㆍ도지사선거에 있어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소청할 수 있다.

제222조(선거소송) ② 지방의회의원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선거에 있어서 선거의 효력에 관한 제220조의 결정에 불복이 있는 소청인(당선인을 포함한다)은 해당 소청에 대하여 기각 또는 각하 결정이 있는 경우(제220조제1항의 기간 내에 결정하지 아니한 때를 포함한다)에는 해당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인용결정이 있는 경우에는 그 인용결정을 한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피고로 하여 그 결정서를 받은 날(제220조제1항의 기간 내에 결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기간이 종료된 날)부터 10일 이내에 비례대표시ㆍ도의원선거 및 시ㆍ도지사선거에 있어서는 대법원에, 지역구시ㆍ도의원선거, 자치구ㆍ시ㆍ군의원선거 및 자치구ㆍ시ㆍ군의 장 선거에 있어서는 그 선거구를 관할하는 고등법원에 소를 제기할 수 있다.

국가공동체의 의사를 그 구성원이 직접 결정하는 민주주의는 구성원의 자격을 분명하게 확정하기 위하여 국민주권으로 구체화되며 국민주권을 구현하는 방식으로서 대의제 체제에서 선거권은 대표에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함으로써 국민주권을 실현하는 필수적 요소다. 선거권에 대한 제도적 침해는 사라졌다고 하지만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투표용지 숫자에 대한 추정의 실패로 선거권에 대한 사실적 침해가 발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무회의장에서 국민 참정권 침해 문제 관련 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6.6.11 연합뉴스

그렇다고 하더라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일부의 주장처럼 부정선거로 몰아가거나 심지어 부정선거에 따른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것이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선관위의 구성에서 법관중심 제도와 1인 상임위원 제도와 같은 제도적 결함에서 연유하였으며, 더욱이 선관위 내부의 감독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선거권이 침해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이상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정파적 주장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나 여당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정권에 부담이 될 것을 염려하여 부정선거론자의 주장에 편승하여 선관위 해체론을 옹호하지 않아야 한다. 선관위 해체는 헌법 개정으로만 가능하며 헌법을 개정하지 않는 한 선관위를 설치한 헌법의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선관위의 개혁을 모색해야 한다.

이준일 시민기자 profyi@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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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김정은, 시진핑 만나 '뽕 뽑으려던' 계획 성공…아주 대박을 쳤다"

[정세현-박인규의 정세토크 시즌 2] '대한민국' 부르는 북한에 "우리도 '조선' 불러야…그래야 바늘구멍이라도 찾을 수 있어"

이재호 기자 | 기사입력 2026.06.14. 10:09:31

북한에 7년만에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비핵화를 포함해 북한 핵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북핵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 분위기도 마련되지 않는 가운데 비핵화가 점점 더 불가능한 과제가 돼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 고문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으로 "북한은 외교적,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유리한 패를 하나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다"라며 "시진핑의 방북으로 북한의 전략적 위상이 대단히 커졌다. 이런 측면이 아주 확실하게 드러난 것 같다"고 총평했다.

박 고문은 "북한 입장에서는 2013년도 이후, 특히 2019년도 이후에 어떻게 보면 약간 소원했던 조중(북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으로부터 큰 경제 지원을 받을 수있게 된 것이 소득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중국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고려하고 북한에 국빈 방문한 것 같다는 관측을 내놨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 및 간접적으로 얽혀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만 끝나면 다시 인도-태평양 전략을 기반으로 중국 견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다.

정 전 장관은 "이렇게 되면 중국은 한반도가 미국의 대중 압박 견제의 전선에서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하거나 위상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예상했다고 본다"라며 "미국의 대중 압박을 완화시키거나 상쇄시킬 수 있는 레버리지나 카드로 북한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 역시 중국의 방문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정 전 장관은 "아주 융숭하게, 국빈 방문 중 최고급으로 대접을 한 것 같은데 김정은이 시진핑한테 지금 뭘 좀 받아 내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말하자면 소위 '요구 물품 리스트'가 엄청나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라며 "거하게 대접해서 시진핑으로부터 소위 '뽕 뽑으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뿐만 아니라 사실상의 핵 보유국 승인도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장관은 시 주석이 북핵을 아예 언급하지 않은 것을 두고 "어쩌면 트럼프보다 훨씬 더 무게감이 있는 승인 내지 인정이 됐다. 쉽게 말해서 김정은은 대박이 난 셈"이라고 진단했다.

이렇게 북중 간 밀착이 강화되면서 북한이 미국이나 한국을 더 이상 바라볼 이유가 없어졌다는 관측도 나온다. 제재 문제는 러시아와 중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면서 어느 정도 해결했고 경제 문제도 중국에 의존하면서 남한과 관계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남한이 북한과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정 전 장관은 "북한이 필요로 하고 중국이 그걸 뒷받침을 못하는 아이템은 있을 것이다. 이걸 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이를 찾기는 어렵다. 정부보다는 민간을 앞세우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라며 최근 제주도가 신장 투석기 및 한라봉 묘목을 보낸 것과 같이 북한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우선 알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장관은 "민간 루트를 통해서 계속 물줄기를 올려보내면서 그들의 수요를 충족하고 그를 통해 군사 상황을 안정적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평화 공존의 출발점"이라며 "민간 차원에서 그들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야의 물자를 지원해 주면서 군사적으로 분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는 틀을 짜고 이후에 공동 성장을 구상해 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대담은 지난 10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왼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

박인규 :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7년 만에 북한에 국빈 방문했다. 중미, 중러 정상회담 직후에 이뤄진 방문이었는데 공동선언이나 발표가 없긴 하지만 양측에서 나온 보도를 보면 소통을 강화하고 협력을 심화시키며 조중(북중) 간 신시대를 만들어가겠다고 한다.

시 주석의 방북 전에 일부에서는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시 주석이 중재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었다. 또 중국 두만강을 통한 동해 출해권 문제가 논의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는데 공개된 것은 없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2024년 북한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도움을 주면서 조로(북러) 관계가 좀 강화됨에 따라 조중 관계도 더 중시되는, 즉 중국과 북한이 중러 간 관계를 이용해 위상을 높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다. 북한은 외교적 경제적 고립에서 벗어났고 중국은 미중 전략경쟁에서 유리한 패를 하나 확보했다는 분석도 있는데, 시 주석이 7년 만에 국빈 방문한 배경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정세현 : 7년 만의 방문을 부각시키는 분석들이 있는데 시간은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고려하고 움직인 것 같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미국이 간접적으로 개입돼 있고 이란 전쟁에는 직접적으로 개입이 돼 있어서 현재 중국을 견제하는 인도 태평양 전략을 통한 대중 압박이 조금 소강상태인 상황이다. 그런데 시진핑 입장에서 볼 때는 이 전쟁들이 모두 해결되면 미국이 다시 '아시아로의 회귀'(Pivot to Asia)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미국이 전쟁에 묶여 있지만 끝나면 다시 인도-태평양 전략을 가지고 또 중국을 압박해 들어올 텐데, 이렇게 되면 한반도가 미국의 대중 압박 견제의 전선에서 이전과는 다른 역할을 하거나 위상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예상했다고 본다. 미국의 대중 압박을 완화시키거나 상쇄시킬 수 있는 레버리지나 카드로 북한이 상당히 유용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북한이 당장은 러시아로부터 석유도 지원받고 식량, 무기 기술까지도 받고 있지만 중국이 보기엔 이건 오래 못간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전쟁 끝나면 이것도 같이 끝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북한이 다음 10차 당 대회인 2030년까지 밀고 나가야 할 '경제발전 5개년 계획'뿐만 아니라 2024년부터 2033년까지 추진중인 '지방발전 20×10 정책'도 있어서 많은 원부자재를 투입해야 하는데, 중국이 볼 때는 지금 북한은 원부자재가 턱없이 부족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따라서 지금 어려울 때 북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면 그 다음에는 북한이 자신의 손아귀에 들어오고 최소한 북한을 중국 편으로 좀 더 가깝게 끌어다 놓게 되면 중국이 미중 갈등 상황에서 좀 더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이재명 정부는 윤석열 정부 때와 다소 협조의 강도가 다른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한국이 계속 이대로 가게 하기 위해 중국으로서는 북한이라는 카드를 대(對) 한국 외교에서도 쓸 수 있을 것으로 본 측면도 있어 보인다. 이렇게 하려면 북한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놓아야 하는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북한은 공항 영접부터 시작해서 김일성 광장에 사열대 만들어 놓고 대대적인 군중 집회 형식의 환영회를 하는 등 엄청 준비를 많이 했더라. 아주 융숭하게, 국빈 방문 중 최고급으로 대접을 한 것 같은데 김정은이 시진핑한테 지금 뭘 좀 받아 내려고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말하자면 소위 '요구 물품 리스트'가 엄청나게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하게 대접해서 시진핑으로부터 소위 '뽕 뽑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원을 보니까 시진핑은 그걸 들어줄 준비를 해가지고 왔더라. 경제 분야는 북한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국방 분야는 자기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데리고 간 것처럼 보였다. 중국이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김정은으로서는 안보 분야에서 중국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두만강으로 나갈 수 있는 출해권 문제다.

▲김정은(오른쪽) 북한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의 회담이 지난 8일 금수산 영빈관에서 진행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이게 경제 사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안보 차원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일단 북극항로 개발에 있어서 군함의 보호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중요한 측면이 있고,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일본 총리가 대만 문제를 가지고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고 헌법을 개정하는 등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기 위한 계산도 있어 보인다.

시 주석이 <로동신문>에 게재한 기고문이 북한 방문 당일인 8일에 게재됐는데 여기에 "군국주의부활을 꾀하고 지역의 안전과 안정에 위해를 주는 모든 야욕과 책동을 반대해야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군국주의의 부활을 추구하는 일본이 대만 문제와 관련해 군대를 파견하는 등의 행동을 할 때 이를 뒤에서 잡아당기려면은 두만강 하구와 동해 쪽에서 군함이 움직여야 한다.

예를 들어 중국 본토에서 출항시켜서 일본 쪽으로 가는 것보다는 동해 쪽으로 나가면 일본을 뒤에서 괴롭힐 수 있다. 그런 군사적인 필요도 이번 방북 배경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미국에서 시진핑이 2027년 10월 열리는 당 대회 때 4연임을 달성하기 위해 대만을 점령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건 미국의 국방부 주변의 군산복합체와 연결된 싱크탱크에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시나리오다. 무기 시장을 계속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런데 시진핑이 먼저 대만을 건드리지 않을 경우 중국이 어쩔 수 없이 군사 행동으로 나올 수밖에 없도록 미국이 자극할 수는 있다. 그런 식으로 중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 때 주한미군을 포함해서 미국이 대만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도록 하려면, 북한이 중국 편에 서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분란을 야기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계산을 중국이 했을 수도 있다. 이건 우리가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북중 정상이 국경 지역의 통상구(通商口)를 전부 전면 재가동하기로 했는데 이는 훈춘이나 도문, 신의주와 단둥 등 접경지역에서의 무역 등 경제활동을 열어주겠다는 뜻이다. 통상 차원에서 완전히 북중 관계를 복원하는 측면도 있지만, 이런 활동을 보장해 주면서 두만강 하구로의 출해권을 받아내는 합의를 했을 수 있다.

지난해 북한에서 중국의 훈춘을 거쳐 러시아 하산으로 넘어가는 자동차 다리 공사를 했는데 이걸 중국이 용인해줬다. 따라서 러시아도 북한도 중국의 두만강 출해권을 보장해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박인규 : 시진핑의 방북으로 북한의 몸값이랄까 전략적 위상 등이 대단히 커졌다. 이런 측면이 아주 확실하게 드러난 것 같다.

그런데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전쟁도 못 끝냈고 이란 전쟁에서도 발목이 잡혀 있어서 일각에서는 그나마 할만한 북한 핵 문제를 건드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중국이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일종의 중간 조정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또는 관측 등이 있었다.

정세현 : 북한의 비핵화 문제는 중재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이미 건너게 됐다. 트럼프는 취임 초에 김정은과 북한에 대해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 라며 핵 보유를 인정했고 심지어 더 만들 필요는 없다는 얘기까지 한다는 것은 이제 동결·축소하자는 뜻이다.

그런데 국무부나 국방부 쪽 관리들은 아직도 비핵화 노래를 부르고 있고 한국이나 일본은 여기에 동조해서 북한 비핵화에 대해서 3국이 계속 기존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는데, 중국 입장에서 볼 때는 "쟤들 아직도 헛짓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미국이 비핵화 요구한다고 북한이 이를 들을 상황은 이미 지났다. 이미 북한이 핵을 50~60개 가지고 있다고 있다고 하는데 이걸 어떻게 없애나.

이번 시진핑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도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처럼 사실상의 핵 보유국으로 중국이 인정을 한 게 됐다. 미중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북한 비핵화를 이야기했는지, 이야기를 했다고 하면 시진핑이 뭐라고 대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진핑이 방북하기 전날인 7일 김여정 부장 담화를 보더라도 북중 회담에서는 비핵화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는 어쩌면 트럼프보다 훨씬 더 무게감이 있는 승인 내지 인정이 됐다.

박인규 : 조중 회담에서 비핵화를 당면 목표로 내세울 수는 없으나 동결을 전제로 한 북미 관계 정상화 정도까지는 이야기가 됐을 가능성도 있지 않았을까?

정세현 : 지난해 6월 4일 취임 이후 첫 일본 방문을 앞둔 이재명 대통령이 그해 8월 21일 <요미우리 신문>과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 해법을 '동결 → 축소 → 비핵화' 3단계로 제시했었다. 이를 미국에서 일리 있다고 받아들이는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을 중국이 의식했다면 "사실 그거밖에 방법이 없어" 하는 식으로 중국은 입장을 정했다고 본다.

그동안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쌍중단'과 '쌍궤병행'을 이야기했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지와 한미 연합 군사 연습을 중단하는 것이고 쌍궤병행은 비핵화 협상과 정전 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협상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쌍중단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됐다. 해봤자 소용이 없어진 셈이다. 이제 북한이 핵실험이 아닌, 핵을 생산하는 상황 아닌가.

박인규 : 그럼 중국 입장은 북한을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이걸 동결하는 정도까지도 추진할 생각도 없다는 것인가?

정세현 : 중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을 가지면 중국에 대한 의존도도 떨어지고 통제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대북 정책이 오락가락하면서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 1기 집권 때 이미 북한의 여섯번째 핵실험까지 끝나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핵실험을 하지 말라고 해봐야 의미가 있겠나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쌍중단은 의미가 없어진 셈이다.

쌍중단, 쌍궤병행도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이제 중국으로서는 핵 문제는 얘기를 꺼내지 않은 채 북한이 핵을 가진 것을 사실상 인정해주고 북한을 중국 편으로 끌어들여서 미국과의 세력 다툼에서 중국이 좀 영향력을 키우는 것이 낫지 않냐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박인규 : 그렇다면 중국의 동해 출해권 문제에서도 상당 부분의 양해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정세현 : 가능하다고 본다. 보도를 보면 중국은 지금 북한이 필요로 하는 걸 다 주겠다는 입장이다. 심지어 의료 부문, 보건 부문도 지원하겠다고 하는데 북한이 20×10 정책을 통해 공장만 짓는 것이 아니라 보건소나 병원 봉사소 같은 것도 지으려고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실제 이게 효과가 있으려면 MRI, CT, 엑스레이 등 장비와 주사기, 청진기 등 자재도 들어가야 하는데 북한은 이런 수요를 감당할 능력 없다.

제주도 오영훈 지사가 지난해부터 북측과 접촉해서 인도적 지원을 한다고 하던데, 여기에 신장 투석기가 포함돼 있다. 이거 아마 북한 측에서 달라고 했기 때문에 줬을 것이다. 북한이 영양 상태나 위생이 좋지 않아서 신장 나쁜 사람 숱하게 나왔을 가능성이 높다. 신장 투석을 해야 할 사람이 적지 않다고 했을 때 이 자재를 보장할 수 있는 곳은 제주도보다는 중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주도로부터 받고 보니 북한 내부의 여러 군데서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신장투석기뿐만 아니라 치료용 또는 검사용 자재 장비 등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를 중국이 지원해주면 김정은은 이거 받아서 인민들의 일상생활과 건강보호 수준을 높여줬다고 하는 찬사를 받을 것이다. 이걸 중국이 보장해 주겠다고 했을 수 있다.

시 주석이 <로동신문> 기고 글에 옛날 이야기를 잔뜩 써놓더니 가는 날에 중조 우의탑에 헌화를 하고 중앙당 간부 학교를 들렀다. 중조 우의탑은 과거를 잊지 말자는 것, 중앙당 간부 학교를 들렀다는 것은 앞으로 사회주의 혈맹으로서의 동지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자는 것이다. 북한과 중국이 이념적으로 한 편이라는 점을 확인하면서 같은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상징성이 크다고 본다. 쉽게 말해서 김정은은 대박이 난 셈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부인 펑리위안 여사와 지난 9일 평양 모란봉 기슭에 있는 조중(북중) 우의탑을 찾아 꽃바구니를 진정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가 동행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한미 필요 없어진 북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박인규 : 두만강 하류를 통한 출해권이 단순히 경제문제가 아니라 군사적 측면의 투사라는 부분이 중국이 원하는 것이었고, 합의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북한 입장에서는 2013년도 이후, 특히 2019년도 이후에 어떻게 보면 약간 소원했던 조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중국으로부터 큰 경제 지원을 받을 수있게 된 것이 소득이 될 것 같다. 그러면서 전략적 지위도 높아졌는데 그렇다면 북한이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남북 관계를 정상화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 아닌가? 그런 상황이라면 남한은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정세현 : 이번 시진핑 방북을 통해 북중 관계가 긴밀해지고 북한이 중국의 품을 떠날 수 없도록 딱 묶어두고, 여기에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가시권 내에 들어오지도 않고 하면 북한은 미국과 관계개선에 별로 의지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2018년 6월에 있었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약속했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다른 말로 북미 수교인데 이미 트럼프에게 뒤통수 맞은 적 있는 김정은 입장에서는 트럼프를 만나봐야 그 약속이나 합의가 언제 또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이란 전쟁을 보면서 트럼프에 대한 불신도 커졌을 것이고.

중국이 북미 정상회담 다리를 놓을 필요도 없지만, 이걸 성사시켜서 챙길 수 있는 이득이 없다. 오히려 북미 관계가 개선되고 미국 연락사무소가 평양에 설치되면 중국 입장에서 볼 때는 그야말로 '인중(人中)의 비수(匕首)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이 우리와 거리를 두고 담장을 높이 쌓고 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면 그 연장선상에서 남북 관계도 좀 개선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거기서 바늘 구멍이라도 뚫리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를 한 때 했었는데 이번 일로 그 꿈은 접어야 될 것 같다.

북한 입장에서는 경제 문제가 좀 힘들었는데 이번에 조중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풀린다고 보면 미국 또는 남한과 무엇인가를 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하려는 배경에는 제재 해제라는 목적도 있었다. 그게 상당한 인센티브였는데 이번에 국경 지역의 통상구를 전부 전면 재가동하기로 했으면 북미관계 개선도 크게 의미가 없어질 수 있다.

이미 북한이 '러-우 전쟁'에 병력을 파병하여 석유나 식량, 무기, 현금 등이 들어오고 있다면 러시아도 유엔 대북 제재를 위반하고 있는 셈이 된다. 사실상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가 무너진 상황에서 시진핑의 방북으로 더 크게 제재의 벽이 무너졌다. 그러면 북한 입장에서는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해 제재 해제를 기대할 필요도 없어진 셈이다.

동시에 남쪽으로부터의 대북 지원에 대한 수요도 그만큼 줄어든 것이고. 그동안 남북 관계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실질적으로 북한이 필요로 하는 경제적 지원이나 비료 등을 지원하면서 남북관계를 끌고 나갔는데 이제 그런 갈증 내지는 수요를 중국이 상당한 정도로 들어주면 우리가 딱히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박인규 : 1995년 쌀 지원에서 시작해서 2016년 개성공단 폐쇄 때까지가 말하자면 남한의 대북 지원이 일정한 레버리지를 발휘하던 시대였는데 그게 끝난 것 같다.

정세현 : 그 시대는 끝났다고 본다. 이재명 정부가 '한반도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이라는 표현을 썼던데 공동 성장은 북한에 경제 지원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걸 중국이 해버리니까 우리의 대북 레버리지가 그만큼 줄어든 셈이다.

그래도 북한이 필요로 하고 중국이 그걸 뒷받침을 못하는 아이템은 있을 것이다. 이걸 찾아야 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이를 찾기는 어렵다. 대북지원경험이 있는 민간단체들이 제3국에서 북한측 인사들과 만나 뒤지다시피 하면 길이 보일 수 있다.

지난 4~5월에 제주도가 신장투석기와 부자재를 북한에 보냈는데, 이걸 참작해서 민간단체들이 나서서 북한의 수요를 조사하라고 하고 정부는 그걸 뒷받침해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재명 대통령이 남북관계에 바늘구멍이라도 뚫고 싶다고 하는데, 여기에 정부가 나서서 뚫으려고 하지 말고 민간을 앞세우는 게 나을 것 같다. 선민후관(先民後官)으로 가보자는 것이다.

민간 루트를 통해서 계속 물줄기를 올려보내면서 그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고 그를 통해 군사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나가는것이 평화 공존의 출발점이다. 평화공존에 돈 안들이고 무슨 일이 되겠는가? 퍼주기? 그런 말 하면 안 된다. 전쟁준비 하는 것보다는 돈이 적게 들 것이다.

박인규 : 상징적일 수는 있지만 국호 문제도 있다. 이제 저쪽에서는 우리를 대한민국이라고 부르고있지 않나? 그래서 우리도 그러면 아예 체제에 북한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정식 명칭은 서로 불러주고 적대적이지 않은 두 국가로, 좀 실무적이고 '쿨한' 단계로 넘어가는 게 낫지 않나?

정세현 : 옛 이름 버리고 새 이름 지어서 호적에 올리기까지 했는데 자꾸 옛날 이름 부르면서 같이 놀자고 하면 되겠는가? 정부가 북한의 국호를 조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필요하다. 사실 1991년12월 남북 총리급 회담에서 체결된 남북 기본합의서 이후에 6.15 정상회담, 10.4 정상회담, 4.27 정상회담, 9.19 정상회담 전부 다 남북이 각자 자기 정식 국호 써가면서 회담도 하고 합의서와 공동성명도 발표했었다.

다만 그때는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라는 전제하에 그렇게 해왔는데, 지금은 북한이 통일을 하지 말자면서 남북이 두 국가로 살자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나오지 않나? 이번 3월에 헌법 개정까지 해버렸기 때문에 특수관계를 복원하자는 얘기는 할 수가 없게 됐다. 또 북한은 정전협정에 근거한 군사분계선을 국경선으로 규정해버렸다.

북한이 이처럼 나가버렸는데 우리 혼자 옛날로 돌아가자고 해봐야 메아리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상호주의 차원에서 우리도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길게 부르기 싫으면 조선이라고 불러주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그나마 남북 접촉이나 대화의 바늘구명이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1990년대 탈냉전 초기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Butros Butros-Ghali)가 냉전이 끝났다고 하지만 국제정세는 아직 '차가운 평화'(Cold Peace)라고 했었다. '차가운 평화'라는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남북이 일단 '차가운 평화'라도 구축한 다음에 '뜨거운 평화'를 꿈꿔야 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북 각각 정식 국호로 교신하고 접촉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남북 접촉과 대화는 백년하청(百年河淸)격이 될 수 있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의 이름에서도 '한반도'라는 용어를 계속 쓸 것인가의 문제도 있다. 또 남북 평화공존도 한조 평화공존, 아니면 아예 국호 빼고 평화공존과 공동성장 정도로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또 국제정세의 변화에 따라 미중 관계가 바뀌면 중국의 대북 지원은 또 줄어들 수 있다. 국제 정치에서 영원한 것이 어디 있나? 지금은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다. 우리도, 한미관계도 그렇지 않나.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

물론 2020년 12월 제정된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때문에 남북 간 왕래나 교류는 당분간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사례처럼 고속 성장을 하면 그 때는 그들도 문화적으로 남한에 별로 떨어질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남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 경제수준이 올라가면 대중문화도 바뀌게 돼 있다.

그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 이게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 것이냐는 문제도 있는데, 북한도 빨리빨리 하는 성질이 있어서,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소강사회 건설까지 43년이 걸렸지만 북한은 10여 년이면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재명 정부 때 다그치면 안 된다. 지금은 북한 경제 규모가 한국 경제 규모에 비해 60분의 1 정도밖에 안 되지만 격차는 좁혀질 수 있다. 다음 정부 때까지 10여 년 정도 기다리면 달라질 수도 있다.

박인규 : 지난해 9월 김정은이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을 때는 딸인 김주애(이름 추정)가 동행하면서 후계자 승인을 받으려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번에는 보이지 않았다.

정세현 : 시진핑이 부인인 펑리위안과 같이 평양에 오지 않았나. 이건 김주애 말고 리설주 나오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낸 것 같다.

북한이 정말 김주애를 후계자로 자리매김하게 하려면 군인들과 행사를 갖고 계속 장군들이랑 가까워지게 해야 한다. 김정은이 잘못되어 권력 공백 상태 생기면 그때 권력 장악할 수 있는 건 결국 총을 가진 사람들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오래전에 한 말이 있다. "권은 총구(銃口)에서 나온다"고.

이재호 기자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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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자식에게 '따' 당하면서도 섬에 다닌 섬에 미친 남자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박섬 밀물 ⓒ 이재언

대한민국에는 약 3,400개의 섬이 있다. 그중 사람이 살아가는 유인도는 446개에 이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섬은 관광지로 알려진 몇몇 장소를 제외하면 낯선 공간이다. 누군가는 평생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섬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 섬들을 평생 기록하며 살아온 사람이 있다. 전국의 유인도를 세 차례나 직접 답사하고, 남한은 물론 북한의 섬까지 조사하며 한반도 섬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해 온 섬 연구자이자 탐험가, 이재언(74) 선생이다.

어린 시절 가출 소년으로 서울의 뒷골목을 떠돌았던 그는 어떻게 대한민국 섬 연구의 산증인이 되었을까. 전남 노화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바다와 섬에 바친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삶. 그리고 사라져 가는 섬의 기억을 기록해 온 그의 여정을 따라가 본다.

섬은 그에게 연구가 아니라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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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항에는 바다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초여름 햇살이 항구를 비추고 정박한 어선들 사이로 갈매기 울음 소리가 퍼진다.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한 남자의 시선은 먼 수평선 너머를 향하고 있다. 그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는 아마도 또 다른 섬이 있을 것이다. 섬 전문가 이재언 씨. 그를 만나기 전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 사람은 섬에 미친 사람입니다."

섬을 기록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는 가진 것을 털어 배를 샀다. 그리고 직접 선장이 되어 30년 넘게 전국의 유인도를 누비며 섬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 편의 역사로 남겼다.

"다른 것은 다 버려도 섬은 버릴 수 없습니다."

재산도, 명예도, 편안한 삶도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섬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섬은 지도 위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그에게 섬은 한 사람의 인생이고 한 공동체의 역사이며 바다 위에 남겨진 대한민국의 소중한 영토이기 때문이다.

▲죽도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에있는 아기고래 형상의 섬 ⓒ 진재중

목숨을 건 항해, 섬을 향한 외길 인생

"아내와 자식들에게 '왕따'를 당하면서도 섬을 다녔습니다. 인생을 걸었고, 목숨도 걸었습니다."

농담처럼 들리는 말이었지만 그 안에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섬에 대한 집념이 함께 담겨 있었다. 주말과 휴일은 물론 명절에도 섬으로 떠나는 일이 많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은 늘 섬이 차지했다. 집에서는 늘 "또 섬에 가느냐"는 핀잔을 들었지만 그는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섬을 다닌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거센 파도와 싸워야 했고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작은 배 안에서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태풍이 지나간 직후 위험한 바닷길을 건너야 했던 적도 있었고 통신이 끊긴 무인도에서 구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때로는 식수와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며칠을 버텨야 했고 파도에 휩쓸릴 뻔한 아찔한 순간도 수없이 겪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뒤에는 파도와 싸워온 세월이 묻어났다.

▲맹골도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도리 ⓒ 이재언

▲거문도전남 여수시 거문도 삼산면 소재의 섬 ⓒ 이재언

대청도 조각바위와 전망대 ⓒ 이재언

"섬이 싫어 떠났지만 결국 섬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재언 선생의 삶은 역설적이다. 섬이 싫어서 고향을 떠났지만 결국 평생을 섬과 함께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목포에 나갔습니다. 전깃불이 반짝이는 도시와 기차, 자동차, 시장과 극장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결국 어머니가 숨겨둔 돈을 들고 목포를 거쳐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15세 소년은 명동과 충무로 거리에서 구두를 닦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경찰관들의 도움으로 직업소년학교에 다니게 되었고 신문 배달을 하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당시를 "인생의 밑바닥"이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 시절의 경험은 훗날 섬을 바라보는 시선의 밑거름이 됐다.

말도선착장 ⓒ 이제언

교회에서 시작된 섬에 대한 사명감

서울에서 생활하던 그는 교회를 다니면서 삶의 방향을 찾기 시작했다.

"교회를 다니면서 내가 떠나온 고향 주변의 작은 섬들이 생각났습니다. 노화도 주변에는 한두 가구만 사는 작은 섬들이 많았어요. 그 섬 사람들을 위해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신학교에 진학한 그는 1989년 낙도 선교사로 고향에 파송됐다. 2톤짜리 어선을 타고 14개의 작은 섬을 돌며 선교와 복지 활동을 시작했다. 전기도, 병원도, 우체국도 없는 섬들이 많았다. 그는 그곳에서 섬 주민들의 삶과 애환을 마주하게 된다.

"처음에는 선교를 위해 갔지만 점차 섬 자체에 매료됐습니다. 역사와 문화,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바닷가를 뛰놀던 소년은 성장한 뒤 바나바선교회 소속 섬 선교사로 활동하게 된다. 선교를 위해 찾았던 섬들은 그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섬마다 역사와 문화가 달랐고, 주민들의 삶에는 육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별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동거차도 주민들과 함께 어울리는 주인공 ⓒ 이재언

조선의 바다 정책과 대항해 시대가 준 충격

그가 전국 섬 탐험을 결심한 또 다른 이유는 역사였다.

"조선은 오랫동안 바다를 경계의 공간으로 바라봤습니다."

조선시대는 왜구의 침입과 외세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해상 활동을 제한하는 해금정책을 시행했고, 일부 섬은 주민을 육지로 이주시켜 비워 두는 공도 정책을 추진했다. 이는 변방 주민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바다를 통한 교류와 해양 활동을 크게 위축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유럽은 대항해 시대를 맞아 바다를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으로 인식했습니다. 바다를 통해 세계를 연결하고 교역망을 확대하면서 경제와 과학,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결국 바다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국가의 미래도 달라졌다. 우리는 오랫동안 바다를 막아야 할 대상으로 여겼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바다가 세계로 나아가는 통로이자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는 장보고와 청해진의 역사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조선의 폐쇄적인 해양 정책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콜럼버스, 마젤란 등 대항해 시대 탐험가들의 이야기는 그에게 강한 영감을 주었다.

"그들이 범선을 타고 세계를 탐험했다면, 나는 동력선을 타고 대한민국의 모든 섬을 탐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재언 선생은 그 생각을 단순한 꿈으로 남겨두지 않았다. 직접 배를 마련해 선장이 되었고, 수십 년 동안 파도와 바람을 벗 삼아 전국의 섬을 찾아 나섰다. 수많은 섬을 오가며 사람들의 삶과 역사, 문화와 자연을 기록한 그의 여정은 대한민국 섬 탐험사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흑산도 섬주민들과 섬탐방을 준비하는 주인공 ⓒ 이재언

전국 유인도 446개를 세 번이나 답사하다

하지만 그의 도전은 많은 사람들에게 무모하게 보였다. 섬을 연구하기 위한 전문적인 지리학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었고 역사를 전공한 학자도 아니었다. 항해 전문가도 아니었으며, 넉넉한 연구비나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부족한 조건을 핑계로 삼지 않았다. 직접 현장을 찾아 배우고 기록하며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갔다.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말할 때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평생을 바쳐 대한민국의 섬을 기록하는 길을 걸어왔다. 1991년 첫 탐사를 시작으로 전국의 섬들을 하나씩 찾아 나섰다. 백령도와 울릉도, 흑산도, 홍도, 추자도, 마라도까지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후 더 큰 배를 마련해 두 번째 탐사를 진행했고, 세 번째 탐사에서는 사진작가들과 함께 전국의 섬을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행정선을 타고 섬을 답사하는 이재언 작가 ⓒ 이제언

죽음의 위기를 넘긴 섬 탐험

섬 탐험은 늘 위험과 함께했다. GPS도 없던 시절, 지도 몇 장에 의지해 항해하던 그는 수차례 사고를 겪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안개였습니다. 암초를 피하기 어려웠고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배가 고장 나 해양경찰의 도움을 받은 일도 여러 번이었다. 2012년에는 신안군 압해도 인근에서 암초에 충돌해 배가 침몰할 뻔했다.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 생활까지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위험과 고난을 떠올리면서도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살아남았으니 지금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수많은 풍랑과 위기를 견뎌낸 세월이었지만, 그의 말에는 후회보다 감사와 자부심이 담겨 있었다.

대청도 고목나무 바위를 담는 주인공 ⓒ 이재언

섬의 가치는 관광이 아니다

"사람들은 섬을 휴양지 정도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미래 자산입니다."

이재언 선생은 섬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국가와 바다, 역사가 만나는 중요한 공간으로 바라본다. 그에게 섬은 영토를 지키는 전초기지이자 해양 생태계를 품은 터전이며, 수산업을 떠받치는 기반이고 우리 역사가 남아 있는 현장이다. 독도와 백령도는 국가 안보와 영토 주권의 상징으로, 소안도는 항일 독립운동의 중요한 거점으로 기억된다. 또한 이름조차 널리 알려지지 않은 많은 무인도들은 새와 물고기들이 살아가는 핵심 서식지로서 해양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고 있다.

그는 섬을 소비의 대상이 아니라 지켜야 할 삶의 터전이자 미래 세대에 남겨야 할 자산으로 본다.

독도 성문 ⓒ 이재언

하늘에서 기록하는 섬의 역사

"드론은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을 보여줍니다. 섬의 진짜 아름다움을 기록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입니다."

최근 그는 드론을 활용한 섬 기록 작업에 더욱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과거에는 배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다니며 섬의 모습을 기록했다면, 이제는 드론을 통해 섬 전체의 지형과 해안선, 마을의 변화, 무인도의 생태 환경까지 입체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특히 드론 촬영은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과 암반지대, 갯바위, 무인도 등을 한눈에 보여주며 섬의 숨겨진 모습을 기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섬의 풍경은 단순한 관광 사진이 아니라 섬의 역사와 문화, 자연환경을 보존하는 중요한 기록물이 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수천 회의 드론 비행을 통해 전국의 유·무인도를 촬영해 왔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해안선의 모습, 개발로 인해 변화하는 마을 풍경, 사라져가는 어촌의 흔적 그리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무인도의 원형까지 카메라에 담아내고 있다. 이러한 영상들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 학술 연구와 문화유산 보존, 관광 콘텐츠 개발을 위한 귀중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위험도 적지 않았다. 강한 해풍과 갑작스러운 돌풍, 예측하기 어려운 기상 변화로 인해 지금까지 여섯 대의 드론을 바다에 잃어버렸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장비가 파도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드론 한 대를 잃는 것은 아깝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의 섬을 기록하는 일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풍경은 변하고, 사라진 것은 다시 촬영할 수 없습니다."

그에게 드론은 단순한 촬영 장비가 아니다. 섬의 현재를 미래에 전하는 기록 도구이자, 후손들에게 남겨줄 소중한 역사 기록유산이다. 오늘도 그는 드론을 띄워 바다 위를 날며, 지도에도 제대로 남아 있지 않은 작은 섬들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고 있다. 언젠가 사라질지도 모를 섬의 풍경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서다.

드론을 띄워 섬의 지형과 해안선을 기록하고 있는 이재언 소장. 그는 드론을 활용해 전국의 섬을 촬영하며 섬의 자연환경과 역사·문화 자원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 이제언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섬, 북한의 섬을 기록하다

"북한의 섬은 지금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먼 섬입니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중요한 기초 자료가 될 것입니다."

그의 탐험은 남한에만 머물지 않았다. 최근에는 <북한의 섬> 1·2권을 출간하며 북한 전역에 분포한 1,045개의 섬을 연구하고 정리했다. 평생 섬을 찾아다니며 현장을 직접 확인해 온 그에게 북한의 섬 연구는 또 다른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발로 뛰는 탐험이 불가능했다. 직접 배를 타고 섬에 들어갈 수도 없었고,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을 수도 없었다. 그는 위성사진과 항공사진, 오래된 지도와 문헌자료를 하나하나 대조하며 섬의 위치와 역사, 지형과 환경을 추적해 나갔다. 수년간의 자료 분석 끝에 북한 섬에 대한 체계적인 기록을 책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아쉬움이 남아 있다.

"남한의 섬은 직접 걸어보고 냄새를 맡고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북한의 섬은 그럴 수 없었습니다. 사진과 자료만으로는 섬의 진짜 모습을 모두 담을 수 없습니다."

그에게 섬은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니다. 바람의 냄새와 파도 소리, 그곳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까지 함께 기록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공간이다. 그래서 북한의 섬을 연구하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점은 현장을 직접 밟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언젠가 자유롭게 북한의 섬을 찾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온다면 책 속의 섬이 아닌 실제 섬의 모습과 사람들의 삶을 기록해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제가 기록한 북한의 섬은 미완성입니다. 언젠가 직접 그 섬에 서서 바람을 맞고 해안선을 걸으며 진짜 북한의 섬 이야기를 완성하고 싶습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아직은 갈 수 없는 섬. 그는 오늘도 자료 속 북한의 섬을 들여다보며 언젠가 그 땅을 직접 밟을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날이 오면 반세기 넘게 이어온 그의 섬 기록은 비로소 한반도 전체의 이야기로 완성될 것이다.

▲무송정 섬강원 고성군 현내면 마차진리 233-4, 금강산콘도 앞 섬, 남한에서 촬영할 수 있는 마지막 섬이다. ⓒ 진재중

섬은 나의 운명입니다

"저는 섬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그 말 속에는 반세기 넘게 섬을 찾아 바다를 누벼온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가족과 함께해야 할 시간보다 섬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았고, 때로는 목숨을 걸고 파도와 싸우며 섬을 기록했다. 아내를 먼저 떠나보낸 아픔과 가족들에게 남은 미안함도 있지만,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섬은 나의 운명이고 사명입니다. 앞으로도 섬을 기록하고 연구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섬의 가치를 알리고 싶습니다."

그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언젠가 5톤급 탐사선을 마련해 청소년들과 함께 전국의 섬을 찾아다니며 섬의 역사와 문화, 자연생태를 직접 체험하게 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한다. 섬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우리 삶과 역사, 문화가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알리고 싶다는 것이다.

▲금구도 강원 고성군 현내면 초도리에 있는 섬으로 화진포해변에서 조망이 가능하다. ⓒ 진재중

바다의 내일을 향한 끝없는 항해

항구를 떠나며 다시 한번 그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섬, 아직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가 수평선 너머 어딘가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산을 오르며 평생을 보내고, 누군가는 강을 따라 세상을 배운다. 그러나 이재언 선생은 평생 섬을 따라 살았다. 섬을 찾아 바다를 건너고, 섬을 기록하며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되새겨 왔다.

그가 남긴 발자취는 단순한 답사 기록이 아니다. 섬에 깃든 삶과 기억 그리고 우리 바다의 가치를 후대에 전하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오늘도 그는 새로운 섬을 향해 눈을 돌린다. 바람이 부는 곳, 파도가 닿는 곳 그리고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으로...

섬은 그의 운명이었고, 기록은 그의 사명이었다. 그리고 그가 평생에 걸쳐 써 내려온 섬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대한민국 해양문화사의 소중한 기록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섬과 관련된 서적을 펴낸 이재언 연구원 ⓒ 이재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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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행동이 될 때, 당신들은 우리 곁에 숨 쉰다"

35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 거행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6.13 23:47
  •  
  •  수정 2026.06.14 01:29
  •  
  •  댓글 1
 
13일 오후 서울시청 동편 도로에서 거행된 35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제에서 유가족들이 참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스스로 빛이 되어 이 땅 위에 꿈 하나 찍어 놓은 이들이 제단을 가득 채우고 내려다보고 있다.

35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위원회가 주최하고 전국민중행동과 민족민주열사·희생자추모기념단체연대회의(추모연대)가 주관한 '35회 민족민주열사· 범국민추모제'가 거행된 13일 오후 서울시청 동편도로 앞 제단.

한줄에 85분의 영정을 세워놓은 8단의 제단에는 노동하는 민중이 주인되고 해방되는 민주주의를, 자주적이며 통일된 세상을 꿈꾸던 680여 위의 영정이 모셔졌고, 지난해 유명을 달리한 조성우(1.18), 김용섭(3.16), 권오헌(4.25), 김태식(5.16), 이천재(6.9), 이장욱(7.21), 임승헌(8.6), 박순자(11.4), 노수희(11.6), 이형진(11.23), 황현승(12.15) 선생을 비롯한 29위의 영령이 새로 안치됐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1945년 8월 15일 이후 4.19혁명을 지나 5.18민중항쟁, 87년 6월항쟁, 그리고 2016~2017년 국장농단세력을 몰아낸 촛불혁명과 2024~2025년 내란청산과 사회대개혁을 요구하는 빛의혁명으로 계승되는 80여 년의 세월 동안 참으로 많은 이들이 하나뿐인 목숨을 이 거룩한 제단에 아낌없이 바쳤다.

그뿐이랴. 외세를 배격하고 부패한 봉건왕조를 개혁하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일어섰던 1894년 동학농민항쟁으로부터 3.1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역사속에 수 많은 이들이 씨앗을 뿌리듯 온몸을 던져 역사를 전진시켜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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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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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낮 1시 송현공원 앞에 모인 참가자들은 가신 이의 영정을 가슴에 들고 광화문사거리와 세종로-서린호-개풍로를 거쳐 범국민추모제가 열리는 시청 동편 도로까지 행진하는 동안 못다 이룬 꿈에 대해 그 이들과 대화하며 왔으리라. 

오후 3시 정각에 열린 범국민추모제는 원활한 진행을 위해 미리 제단에 안치한 영정 앞에서 영령들을 맞이하기 위한 예술의례로 시작했다.

진보대학생넷 권율,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허명진 학생이 힘차게 결의문을 낭독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열사정신계승청년학생실천단'(열정단)을 대표해 진보대학생넷 권율,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허명진 학생이 힘차게 결의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민족민주열사들은 예속과 분단에 맞서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항한 분들"이라며, "우리는 열사들의 정신이 미래세대에 계승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민주유공자법 제정으로 민주열사들은 국가적 예우의 대상이 되고, 열사 정신은 국민적 가치로 거듭나게"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나아가 열사정신 계승을 위해 각 영역에 민주열사 정신을 기억하는 사업을 전개하며, 이들의 사회적 명예회복이 더욱 넓게 진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고난의 시기에 해방을 위해 민중과 함께했던 민족민주 열사들의 끈질긴 투쟁을 다시금 기억하며 제국주의와 수구 보수세력들의 탄압, 민주주의 후퇴에 맞서 다시 투쟁할 것"이라며, "지금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한 민주열사·희생자들의 투쟁을, 또 열사의 죽음과 희생뒤에 이어진 유가족들의 투쟁과 열사를 기억하는 동지들의 끝없는 투쟁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고 당부했다.

△모든 침략전쟁 반대한다! 세계평화 실현하자! △열사정신 계승하여 자주적 주권 수호하자! △12.3내란·외환 청산하고, 사회대개혁 실현하자! △민주유공자법 제정하라! 국가폭력에 의한 열사들의 의문사 진실규명하라! △비정규직 철폐하고 평등세상 실현하자! △노점단속 특별사법경찰 해체하고 노점산ㅇ 생계보호 특별법 제정하라! △강제철거 중단하고 선대책 후철거 순환식 개발 시행하라!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실현하자! △농민주권시대 열어가자!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하고 역사정의 실현하자! △성차별·혐오정치 끝장내고 평등세상 건설하자! △미국 패권위한 한미동맹 해체하고 전쟁 화근 주한미군 철거하자! △내란 토대 반민주 반통일 반인권 악법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양심수를 석방하라!는 구호가 울려퍼졌다.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한충목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대회사를 통해 "오늘 우리가 열사들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의미는 반헌법 수구세력과 그 배후 미국에 맞서 강력한 투쟁을 전개하고 사회변혁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12.3내란에 가담한 공안기관 해체, 반민주·반인권·반평화 국가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배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비롯한 역사정의 수립 △비정규직없는 평등한 노동세상, 차별과 혐오가 사라진 인권광장, 농민과 노점상, 장애인 등 사회적 약사가 존중받는 평등사회 실현 △관세폭탄과 패권유지를 위한 한미동맹 반대, 군사적 대결과 적대를 강제하는 주한미군 몰아내는 투쟁, 분단 극복을 위한 국가보안 폐지 투쟁 등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윤일권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정영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오영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상임대표는 영상으로 대회사를 보내왔다.

열사들의 뜻을 계승하는 현재의 과제에 대해 양경수 위원장은 극심해지는 불평등, 양극화 문제 해소와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 평화를, 윤일권 의장은 식량주권 수호와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 수호, 농민이 정당하게 대우받으며 지속가능한 농업과 농촌을 실현을 제시했다.

정영이 회장은 평등과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누구나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더욱 굳건히 연대하고 행동하겠다고, 오영철 대표는 21년전인 2005년 3월 16일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활동가였던 이현준 열사를 소환해 장애인의 '완전한 자립생활'과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는 장애인 기본권임을 강조했다. 

 '리벰버 1996' 송승연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리벰버 1996' 송승연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지난 1996년 김영삼 정권의 대선자금 공개와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을 벌이다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희생된 노수석 열사를 비롯한 8명의 열사를 기리는 '리벰버 1996' 송승연 공동대표는 "오늘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반값등록금' 의제와 '무상교육' 담론은 민주주의를 한반짝 더 진일보시키기 위해 청춘의 삶을 바쳐야 했던 당신들의 눈물과 피땀이 서린 결실"이라며, '장현구, 노수석, 진철원, 권희정, 황혜인, 오영권, 박동학, 김하영' 열사의 이름을 불러냈다.

송 대표는 "우리들이 여전히 부끄러운 것은 아직까지 당신들의 죽음이 민주화 기여도에 저울질당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해 있다는 것"이라며, "민주유공자법은 단순한 법조문 한 줄이 아니라 당신들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우리의 약속이자, 제대로 기억하고 예우하겠다는 살아남은 자들의 엄중한 책임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민주유공자법을 꼭 통과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기억이 행동이 될 때, 비로소 당신들의 뜻이 우리 곁에 살아 숨 쉴 것임을 믿는다"며, "우리의 오늘과 내일속에 당신들의 이름을 영원히 새기겠다"고 말했다.

 김동국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동국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동국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위원장은 지난 4월 20일 경남 진주 BGF로지스 진주물류센터 앞 화물연대 집회에서 물류센터를 나오던 화물차를 막아서다 숨진 고 서광석 열사를 추모하며 "서광석이 지키고자 했던 안전운임제를 지켜내고,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쟁취하며, 더 이상 노동자가 권리를 요구하다 목숨을 잃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6년째 국회앞에서 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위해 장기 농성을 하고 있는 장남수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은 지난 3월 30일 법사위 통과에 이어 제22대 국회에서 이 법이 꼭 통과될 수 있도록 하자며, 유가족들을 단상에 올라오도록 해 추모제 참가자들에게 인사했다.

민중의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중의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영령맞이 예술의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영령맞이 예술의례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송현공원에서 범국민추모제 대회장인 서울시청 동편으로 이동하는 참가자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송현공원에서 범국민추모제 대회장인 서울시청 동편으로 이동하는 참가자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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