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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인정할 수 없어 계속 실패하는 악순환에 빠진 철도 정책

[철도 유감] ④ 신자유주의가 떨구고 간 곪디 곪은 종기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원 철도전문위원 | 기사입력 2024.05.02. 08:00:54 최종수정 2024.05.02. 08:33:04

2024년에는 KTX가 스무살이 된다. KTX 개통 20주년은 한국 철도 발전의 상징적 의미를 갖지만, 한국 철도가 처한 현실을 돌이켜보면 만만치 않은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철도는 기술적, 정책적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받지만, 그 이면엔 '민영화'의 그림자가 언제나 함께 따라 다녔던 것이 사실이다. 일례로 KTX 노선을 떼서 민영화하겠다는 구상을 떠올릴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SRT를 새로 설립해 '같은 노선 위를 달리는 두 열차 운영 회사'라는 기형적 구조를 만들어 민영화의 우회적 물꼬를 텄다. 철도 시설과 운영을 분리한 데 이어 관제를 분리하려는 시도 역시 꾸준히 진행됐다. '돈이 안된다'는 이유로 기후 위기 시대 서민의 발이 되고 있는 전국의 철도 노선들도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KTX 20주년, 감격스런 축하도 의미 있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현실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과 전국철도노동조합이 KTX 20주년을 맞아 [철도 유감]을 기획해 글을 싣는 이유다.편집자

 

앞선 글 보기

[철도 유감]① 선거철이면 좀비처럼 되살아나는 철도 지하화는 '미친 짓'이다

[철도 유감]② 역대급 삽질 '철도 지하화'에 80조? 그 돈이면 전국 철도망 하나 더 깐다

[철도 유감] ③ KTX 안전을 위해 상하분리의 덫 걷어내자

 

북위 37° 34′, 동경 126° 59′를 중심으로 그 반경 50KM 안팎에 사는 인류의 상당수는 평일 아침 엄청난 소용돌이에 휩 싸인다. 잘 조화된 매스게임이거나 거대한 자연 현상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소용돌이의 실체는 출근길이다. 기껏해야 길이 200미터가 조금 넘고 폭이 10여미터 남짓한 공간을 꽉 채워 대기하던 사람들은 직육면체 깡통의 문이 열리면 작은 틈을 찾아 쇄도해 들어간다.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이토록 좁은 공간에 몰아 넣을 수 있는 일은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다른 목적을 가진 수 천 명의 사람들을 한날한시 한 곳에 모이게 하는 이 힘이야 말로 현대 산업사회를 지탱하는 원천이다.

 

금강하구둑에서 펼쳐지는 가창오리 떼 군무는 수천수만 마리의 새가 만들어내는 카오스 속 조화에 넋을 잃게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거대한 풍경을 보고 싶다면 평일 아침 경의중앙선 왕십리역 승강장이나 신도림역 환승 공간, 그리고 서울 지하철 4호선의 강북구간, 건대입구역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강남방면 7호선을 타면 된다. 조금 더 극적인 장면을 보고 싶다면 김포 골드라인이나 9호선도 있다. 더구나 이것은 새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다.

 

모빌리티 이론의 대가 존 어리(John Urry)는 인간의 경제생활과 사회생활의 많은 양상이 어떤 의미에서 '이동' 중이거나, 집에서 벗어나는 쪽으로 변했다고 말한다. 이제 집은 행복한 쉼터가 아니라 다음의 이동을 위한 대기 공간으로 변했다. 이동은 인간 삶 그 자체가 되었다. 태극기를 들고 광화문을 가든, 2달 전 예약된 병원 진료에 가든, 일주일 동안 지은 죄를 사면받기 위해 교회에 가든, 팀장에 깨질 각오를 하고 밤새 만든 보고서를 챙겨 출근을 하든 우리는 이동해야 한다. 또 이런 이동을 위해서는 인간은 이동수단에 올라타야 한다.

 

모빌리티는 이제 사회적이며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계급적인 것으로 진화했다. 모빌리티를 정치학 관점에서 접근했던 미미셀러(Mimi Sheller)는 현대 사회의 이동은 차별과 양극화를 내재한 채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누가 이동하고 무엇을 움직일 수 있는가를 결정 짓는 거대한 불평등이 존재할 때, 이동이 에너지 소비에 기초한 권력의 행사일 때, 언제나 '이동 특권층’들은 에너지를 과잉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미미셀러)

 

미미셀러가 말하는 과잉 소비 에너지를 현재 한국 사회에 비추어 본다면 에너지는 단순히 이동수단이 소비하는 연료로서가 아니다. 한 사회의 자산이 대단히 편향적이고 일방적으로 한 곳, 서울과 수도권으로 집중되고 있다.

 

어느새 수도권 교통의 핵심은 강남 접근성이 되어 버렸다. 김포에서도 인천에서도 고양과 일산에서도 모든 길은 강남을 목적지루 두고 싶어 한다. 동탄, 용인, 안성, 평택 같은 서울 남쪽 도시도 마찬가지다. 강남을 중심에 놓고 일정 거리를 불록화 시켜 색을 칠해보면 단계적으로 퍼져나가는 색색의 동심원들은 결국 소득 수준을 나타낸다. 출근하는 사람들은 강남에서 멀수록 더 많은 고생과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강남과 수도권 사이, 수도권과 지역 사이의 간극은 차이 일까 차별일까?

 

놀라운 성장을 이룬 한국 사회는 양극화라는 이면도로로 진입한 지 오래다. 경제적 격차는 교육과 생활환경, 문화 격차를 만들어냈고 지역 격차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또 이 격차는 이동이라는 측면에서도 강화되고 있다. 어떤 격차들은 사람들이 차이조차 느끼지 못하게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사람들이 어떤 지역에서는 만원 버스나 지하철에 시달린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그나마 시달릴 만원 버스나 기차조차 존재하지 않았거나 설령 존재했더라도 사라져 버렸다. 이런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수서에 고속철도역이 생겼는데도 오랜동안 지방 도시와 수서를 잇는 고속 열차가 운행되지 않았고 최근에야 생색내기로 몇 편 달리는 현상도 자연스러운 일과는 거리가 멀다. 이미 네트워크는 기능하는데 관료들의 고집이 시민들의 편익을 무시한 결과이다. 관료들이 인식하든 못하든 이 역시 지독한 지역 차별의 다양한 종류 중 하나일 것이다.

 

모빌리티의 특성은 거대 인프라를 전제로 한다. 한 번 자리 잡으면 세기를 넘어 그 체제가 유지된다. 인프라는 그것이 포함한 도시와 지역의 생활 패턴을 규정해버리고 바꾸기 어렵게 만든다.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일상의 풍경으로 자리 잡은 불균등과 불평등이 우리 삶을 지배하게 된다.

 

KTX가 20년이 되었다. 시속 300킬로미터로 질주하는 고속 열차의 등장은 철도는 물론이고 한국 교통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내기도 했다. 서울과 주요 도시 간 이동 시간 대폭 단축이라는 측면에서는 큰 성공을 이루어 냈다. 하지만 이 성공은 고속 열차가 가지고 있는 특성이 발현될 때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이다. 이 당연함 위에 전체 철도망의 유기적 발전을 통한 철도 수송분담률 확대가 동반되어야 했다. 철도와 같은 네트워크 산업은 전체 망의 호환성과 조화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철도와 다른 교통수단이 조응하여 철도 역할이 더욱 강화되는 정책이 진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KTX 20년 동안 나란히 진행된 국토부의 철도 정책은 KTX와 한국 철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국토부의 20년 철도 정책은 철도공사 코레일의 경영효율화를 위한 경쟁체제 수립과 유지에 몰두했다. 이러다 보니 미래 지향적 대한민국 교통정책이라는 큰 그림이 아니라 철도공사가 수익을 얼마나 많이 올리는 것인가가 매년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이와중에 코레일의 주 수익원인 고속철도 운영을 쪼개 SR을 만들었다. 국토부는 경쟁체제란 매로 코레일을 채찍질해 경영효율을 이뤄내겠다고 장담했지만 국토부가 든 매는 사랑의 회초리가 아니라 쇠몽둥이였다. 고속철도 회사가 갈라지자 차량 운영 효율성도 떨어지고 지역 고속철도 서비스도 제대로 제공되지 못했다. 일반철도 기능 강화는커녕 서비스 축소로 이어지고 있다.

 

국토부가 주기적으로 밝히는 미래 철도 계획에는 자신들의 철도 정책에 대한 자화자찬이 깔려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신자유주의가 떨구고 간 곪디 곪은 종기가 커다랗게 퍼져있다. 문제는 철 지난 경제학 이론에 근거한 빈약한 논리와 정책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토부의 철도 경쟁체제 정책은 바꿀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국토부가 기존 철도 정책을 바꾸지 못하는 것은 20년 동안 일관된 신념으로 추구해온 자신들의 정책을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저히 실패를 인정할 수 없어 계속 실패해야만 하는 악순환의 결계에 빠져 버렸다. 대한민국은 우리가 이끌어 간다는 관료들의 무한한 자신감이 관료 과두 지배체제와 만나면 대통령도 국회도 어쩌지 못하는 거대한 아성이 된다는 것을 지난 역사는 보여줬다.

 

총선이 끝났다. 거대 양당은 지난 선거 때 앞 다투어 철도 관련 공약을 내걸었다. 그리고 그 공약들은 노골적으로 거대 토건 개발로 "당신들의 집값을 올려드릴게요"라는 시그널을 담아냈다. 이 공약들을 찬찬히 정리해보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수도권으로 몰아넣겠다는 것이다. 철도 지하화 공약은 그 선두에 설 것이고 국토부는 앞장서서 깃발을 들것이다.

 

"공정한 차별"이 숭배되는 한국에서 모빌리티의 불균형은 배제의 방식을 더욱 넓고 정교하게 뿌리내리게 한다. 대규모 토건 사업의 종착역은 지역을, 장애인을, 세대를, 빈부를 갈라 차별하는 디스토피아가 될지도 모른다.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있다. 지역은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 몰리고 있고, 인구절벽 밑으로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와 정치인들은 오늘만 살 것 같이 일하고 있다. KTX 교통 혁명 20년을 마냥 축하만 할 수 없는 이유다. KTX 20년, 성과는 품에 안고 문제는 극복하여 한국 철도가 더욱 탄탄한 공공철도로 거듭나는 반전의 역사를 기대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충북 청주시 청원구 문화제조창 중앙광장에서 열린 평택-오송 고속철도 2복선화 사업 착공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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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의 항의 전화... 그 시기만 되면 화가 치민다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전세계 노동자들의 날, 벌써 134년에 이른 노동절, 오늘날 우리 사회는 노동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어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한다고 집에 빨간딱지가 붙고, 어떤 노동자는 ‘노동자’라고 불리지도 못한다. 저임금의 노동자는 초저임금을 강요받고, 그리고 또 어떤 노동자는, 노동조합을 했다고 받은 모욕을 견디지 못해 죽었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어떻게 노동을 대하고 있나. 이 연재는 민주노총이 전하는 우리 사회 곳곳의 노동자들의 ‘일’ 이야기다. 우리의 일, 우리 일상의 이야기. [기자말]

한 초등학교 급식실. 자료사진.

ⓒ 연합뉴스

생활이 넉넉하지 않아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학교 급식실 언니가 있다. 어느 날 늦은 밤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노조 조합비를 몇 달만 잠시 미뤄도 될까?"

수화기 너머 조심스럽고 무거운 목소리가 들려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무슨 일 있어요?"

사정을 들어보니, 남편의 작은 사업이 어려워진 후 카드 돌려막기로 애써 버텼지만, 결국 빚만 남아 살기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아이들을 방과후 교육에도 못 보내는 상황이 몇 달이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언니는 "너무 미안한데 조합비를 못 내고 있다"고 했다. 울음을 참는 건지 끅끅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짧은 순간에 오래된 기억들이 밀려왔다. 나도 삶이 바닥을 쳤다는 느낌이 어떤 마음인지 알고 있다.

외벌이를 하며 아이를 키우는 조합원들은 통장에 월급이 들어오면 공과금에 월세, 대출금, 통신비까지 월급이 며칠을 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다 빠져나간다. 월급은 통장을 스칠 뿐이라고 했나. 결국 투잡, 쓰리잡을 평일이고 주말이고, 낮이고 밤이고 찾는다.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몸이 재산인데 급식실에서 힘들게 일하고 그렇게 또 일하다가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이런 조합원들에게 걱정의 말을 한다. 하지만 걱정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이, 이까짓 걱정만으로는 삶이 나아질 것도 없다는 것이 더 마음 아프다.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 치는 우리들에게 노동조합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적어도 걱정의 말이라도 서로 해 줄 수 있었으니까.

저임금에 높은 노동강도, 때마다 일어나는 산업재해 사고도 노조 안에서 힘을 모아 위로하고 투쟁했다. 더 다행스럽게 그렇게 모은 마음으로 만들어 낸 노조 활동으로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환경은 더디지만 꾸준히 발전했다.

최저임금은 우리의 삶을 흔든다

 

2023년 6월 14일 민주노총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이하 서비스연맹) 소속 학교비정규직, 마트, 요양, 콜센터 노동자들이 서울 용산구 서울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최저임금위원회가 열리는 시기만 되면 화가 난다. 불과 몇 해 전까지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았다(물론 지금도 연차에 따라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최저임금에 미치지 않는 임금을 받는 우리는 그저 '기본급이 최저임금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저임금의 본래 의미란 것이 그것이니까, '아무리 적어도 이것보단 많이 받아야 한다'는 의미.

그러나 2018년 최저임금 산입 범위 확대로 우리의 바람이 산산조각 났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리는가 싶더니 일방적으로 산입 범위를 확대했다. 최저임금이 올라간다는 소식에 기대했던 조합원들은 정작 월급이 오르지 않은 급여 명세를 받아 들곤 실망했다. 조합원들은 노조에 항의 전화를 많이도 했다.

"노조 탈퇴할래요. 아니, 왜 신입직원만 보전금을 줘요? 기분 나쁘게."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하게 쏘아붙이는 언니는 급식실에서만 십 년 가까이 일했다. 연차에 따라 발생한 수당으로 신입직원보다 급여가 높았다.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급여를 받는 신입직원에겐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만큼의 급여 보전금이 지급됐는데, 그 내용을 세세히 알지 못하는 언니들은 마치 신입들만 별도의 추가 급여를 받은 것으로 오해했다.

언니는 "일하다 골병이 들어 오늘도 퇴근하고 아파서 침 맞으러 가야 한다"고 했다. "일하는 것도 힘든데 월급 받아서 병원 다니느라 다 나간다"고도 했다. 현장에는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 생겼다. 서로 걱정하고 위해주던 사이였는데.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이란 건 사람들의 마음을 서늘하게 만든다.

몇 년 전, '민주'와 '진보'를 자임하는 정부가 들어섰다. 정부의 높으신 분들은 비정규직-저임금 노동자들의 기본급을 최저임금 이상으로 올리겠다고, 최저임금을 끌어올려 많은 노동자들의 소득 수준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후 최저임금은 올랐지만 '산입 범위 확대' 탓에 실질적인 임금 인상은 이뤄지지 않았다.

최저임금이 올랐지만 기본급은 그대로 둔 채 온갖 수당을 다 최저임금 안에 밀어 넣고 나니, 정작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받는 (신입이라 수당이 없거나 적기 때문에) 노동자가 생겼다. 그러다 보니 '보전금' 같은 급여 명세가 생기고, 앞서 말한 것 같은 불필요한 오해도 생긴다.

저 높으신 분들에게 최저임금은 탁자 위에서 퍼즐 맞추듯 짜맞추는 숫자놀음인데, 우리 같은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삶이 걸린 문제다. 10년 넘게 일한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게 하고, 아이들 방과후 교육을 못 하게 하는.

학교 급식실은 유독 몸이 힘들고 노동환경이 좋지 않다. 환기 시설도 제대로 없는 급식실에서 뜨겁고 무거운 식자재를 나르고 쉴 새 없이 일한다. 그러나 급여는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퇴사자가 늘어나는 반면 신규 채용은 이뤄지지 않는다. 자연히 업무량이 늘어나고 노동환경은 열악해진다. 악순환.

최저임금 인상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다음 달의 급여 문제일 뿐 아니라, 내 일자리의 안전 문제, 일자리의 질의 문제이기도 하다. 저임금 초고강도 노동 때문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미 위험의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삶을 '최저'만큼이라도 지켜낼 수 있도록

 

2022년 6월 15일 민주노총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소속 급식노동자 등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급식실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및 산업재해 예방 국정과제 이행, 학교급식실 적정인원 배치 등을 요구하며 '점심한끼 같이 먹읍시다'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거리에 나설 때면 언론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아이들의 식사를 볼모로 잡는다"는 식의 기사가 나온다.

아이들이 급식 대신 빵을 먹고 도시락을 먹을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 든다. 그러나 그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만큼 삭발하고 단식하며 투쟁하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주면 좋겠다.

최저임금도 안 되는 급여를 받으며 힘들게 일하지만 도무지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는 삶에 대해서, 그래서 법이 보장하는 최저임금만큼만은 달라는 당연한 소리를 머리 깎고 밥 굶어가며 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10년을 같이 일하고도 서로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박정한 세상에 대해서.

이번 최저임금위원회에 노동자를 대표하는 위원으로 참여한다. 어떤 말들이 오가게 될까. 이번에도 높으신 분들의 '오더'가 있을까. 온갖 숫자놀음과 법조문이 난무하겠지.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그저 하나다.

학교 급식실에도, 요양원에도, 편의점과 호프집에도 어떤 이들의 삶이 있다는 것. 그 삶을 '최저'에서라도 지켜주는 것이 최저임금이라는 것. 그러니 고작 탁자 위의 숫자놀음으로 최저임금을 받고 살아가는 수백만 명 노동자들의 삶을 흔들지 말라는 것.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이미선은 민주노총 부위원장으로 노동안전보건위원회와 최저임금위원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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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채상병 사건 외압’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오늘 소환

공수처, ‘채상병 사건 외압’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오늘 소환

(자료사진) ⓒ뉴스1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2일 해병대 고(故)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피의자 중 한 명인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소환한다.

공수처는 이날 박 전 직무대리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박 전 직무대리는 지난해 8월 국방부 검찰단이 경북경찰청에서 회수한 해병대 수사단 초동수사기록을 넘겨받아 재검토하고, 과실치사 혐의자를 8명에서 2명으로 줄이는 과정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에게 해병대 수사단에 외압을 행사했는지, 사건 회수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개입이 있었는지 등을 물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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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제2부속실·특별감찰관 빈자리에 김건희 명품가방 사건”



[아침신문 솎아보기] 윤 대통령 측근 관리, 인사 문제 일제히 비판한 조중동

조선 “특별감찰관 임명 먼저”…중앙 “상식 어긋나는 일 잇따라”

이태원 특별법 여야 합의에 한겨레 “채 상병 사건도 함께 처리해야”

30일부터 국회 등장할 12명의 폴리널리스트 “언론 탄압 앞장서지 말라”

 

기자명윤수현 기자

  • 입력 2024.05.02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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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서울공항에 도착해 손을 흔들고 있다. ⓒ 연합뉴스

국민의힘이 4·10 총선에서 참패하면서 정부·여당에 제동이 걸린 가운데,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일간지들이 2일 지면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나섰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등 측근 관리, 인사 등이 문제로 꼽혔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을 부활시킬 방침이지만, 조선일보는 이보다 대통령 가족·측근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을 계기로 민정수석실을 부활할 예정이다. 그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도 “민심 정보와 정책이 현장에서 이뤄질 때 문제점과 개선점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부족한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노컷뉴스는 검찰 출신의 김주현 전 대검찰청 차장이 민정수석에 낙점됐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 주목

민정수석실은 민심 파악 및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하는 조직이다. 윤 대통령은 사정기관 독립성 확보를 이유로 민정수석실을 폐지했다. 조선일보는 민정수석실 폐지로 대통령 측근을 관리하는 기능이 사라지면서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사건이 발생했다고 봤다.

조선일보는 2일 사설 <민정수석실보다 특별감찰관이 먼저 아닌가>에서 “민정수석실이 폐지되면서 핵심 기능 중 하나였던 친인척 관리 기능까지 공중에 떠 버렸다”며 “대통령 배우자를 담당하는 제2부속실이 폐지되고,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을 감찰하는 특별감찰관까지 8년 넘게 빈자리로 남았다. 이런 틈을 비집고 발생한 것이 명품 가방 사건이고, 아직도 미완의 문제로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검찰 출신이 민정수석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면서 “민정수석을 새로 두려는 이유가 사정기관 장악력을 높이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민심 분석과 대통령 가족과 친인척 관리 목적이라면 민정수석실 부활이 아니라 참모들이 제 역할을 하고 특별감찰관을 먼저 임명하면 된다”고 밝혔다.

 

▲5월2일 동아일보 칼럼.

김순덕 동아일보 칼럼니스트는 <MB냐, 박근혜냐… 윤 대통령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칼럼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지지율 상승을 위해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 칼럼니스트는 “윤 대통령은 (인사에서) 능력만 본다고 강조했지만 그 말을 믿는 국민은 검찰과 대통령 동창 그리고 대통령 부인의 측근 빼면, 없다”며 “고물가 저성장으로 살림이 팍팍해진 현실에서 ‘과도한 재정 중독을 해소하는 과정에 살피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윤 대통령의 설교는 1도 와닿지 않는다”고 했다. 김 칼럼니스트는 윤 대통령이 탕평 인사와 중도실용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고 했다.

중앙일보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상렬 수석논설위원은 <대통령은 아직도 소통을 모른다> 칼럼에서 “4·10 총선에서 민심이 분노한 대목 중 하나는 윤 정부에서 국민 상식과 어긋나는 일이 잇따른다는 점, 그런데도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는 것”이라며 이종섭 전 호주대사 임명, 김건희 여사 명품백 논란이 해소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정하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칼럼 <윤석열 이탈층에 미친 영향, 명품백 > 이종섭 > 물가>에서 대선 당시 윤석열 대통령에 표를 줬지만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은 유권자들은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논란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김 논설위원은 “‘명품백 논란’ 하나 때문에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대통령 지지층 이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슈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했다.

세계일보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갖는 것을 두고 “기자의 가감 없는 질문을 듣고 진솔하게 국민의 이해와 협력을 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세계일보는 사설 <尹 취임 2년 기자회견, 달라진 모습 보여주는 자리 돼야>에서 “이번 회견은 윤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씻어내고 변화 의지를 확인시켜 주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압도적 다수 의석을 가진 야당과 상대하며 국정운영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소통은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밝혔다.

▲2022년 11월3일 이태원역 1번출구 모습. 사진=미디어오늘.

이태원특별법 여야 합의에 한겨레 “채 상병 특검법도 함께 처리해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이태원특별법을 2일 합의처리하기로 했다. 이태원특별법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실은 “환영한다”고 했으며, 유족 측은 “만시지탄”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92일 만이다. 주요 신문들은 여야가 양보와 협의를 통해 특별법 통과에 합의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향신문은 <이태원특별법 여야 합의, 이제 진상 규명 속도내야> 사설에서 여야가 조금씩 양보하면서 특별법을 합의 처리하기로 한 건 의미가 있다면서 “특조위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규명하고, 책임자에게 분명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계기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제도 개선을 끌어내야 한다”고 했다.

▲5월2일 한국일보 사설 갈무리.

한국일보는 <‘이태원 특별법’ 처리 합의… 여야, 협치 모범으로 삼아야> 사설에서 “빈손으로 끝난 영수회담 이후 거대 야당의 입법 독주와 정부·여당의 마이웨이식 국정운영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가 컸다. 이태원 특별법 합의 처리 소식이 보다 큰 의미를 갖는 이유”라며 “여야는 채 상병 특검법, 전세사기 특별법 등 쟁점 법안들에 대해서도 합의 처리를 위한 협상의 묘를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는 여야가 이태원특별법 처리에 합의한 건 의미 있지만, 채수근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특검법이 이번 국회 회기 안에 처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사설 <이태원 특별법 합의한 국회, 채 상병 특검법도 처리해야>를 내고 “상병 특검법 처리 여부는 윤석열 정부의 ‘변화’를 판단할 수 있는 가늠자”라며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돼 지난달 국회 본회의에 자동 부의된 상태인 만큼, 2일 본회의에서 함께 처리하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디자인=이우림 기자.

국회 등장할 12명의 폴리널리스트 “언론 탄압 앞장서지 말라”

이번 총선에서 수십여 명의 전·현직 언론인들이 출사표를 던졌고, 노종면·이훈기·박정훈·신동욱·유용원 등 12명이 22대 국회에서 활동할 예정이다. 이 중 신동욱·박정훈·노종면·유용원 등은 퇴사에서 출마 선언까지 6개월이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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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폴리널리스트’에 이종규 한겨레 저널리즘책무실장은 칼럼 <폴리널리스트, 언론의 적은 되지 말자>에서 “언론인의 정계 진출은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어온 일이지만, 이번 총선에선 최소한의 ‘냉각기’도 없이 정치권으로 달려간 이들이 유독 많이 눈에 띈다”며 “마이크와 펜을 놓기가 무섭게 정당 점퍼를 몸에 걸쳤다는 점에서 이들의 행태는 ‘폴리널리스트’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정치 검사’에 견줄 만한 부끄러운 호칭”이라고 했다.

이종규 실장은 “기자 경력을 정치적 자산으로 삼아 정계에 진출했지만, 그들 중에는 언론인 출신임을 망각한 듯한 행보를 보인 이들이 많았다. 때때로 언론 자유를 짓밟는 ‘언론 저격수’, 언론 탄압의 첨병을 자임하기도 했다”며 “22대 국회 폴리널리스트들에게 진심으로 부탁한다. 언론 윤리를 내팽개치고 정치권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을지언정 언론 탄압에 ‘부역’하는 일만큼은 앞장서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이 실장은 “당신들이 손에 쥔 권력은 동료들의 자괴감과 맞바꾼 것임을 잊지 말라. 일말의 부끄러움이라도 느낀다면, 주어진 권력을 언론 자유를 확장하는 데 쓰기 바란다”며 “그것이 당신들이 뿌린 구정물 탓에 불신과 조롱의 늪에 더 깊게 빠진 언론계 후배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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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힘으로 윤석열 정권 반드시 몰아낼 것"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4/05/02 09:29
  • 수정일
    2024/05/02 09: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민주노총, 2024 세계노동절 대회..'이제는 퇴진이다' (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4.05.01 18:28
  •  
  •  댓글 0
 
민주노총은 1일 오후 3만여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2024 세계노동절 대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민주노총은 1일 오후 3만여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2024 세계노동절 대회'를 개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세계 노동절인 1일 오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양경수)은 3만여명의 조합원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2024 세계노동절 대회'(서울·경기)를 개최했다. 

'양회동열사 정신계승! 윤석열정권 퇴진!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보장!'을 구호로 제시하고 "이제는 퇴진이다"를 전면에 내걸었다. 

양경수 위원장은 대회사를 통해 "사회와 역사를 발전시켜 온 주체이자, 생산의 주역이며, 세상의 주인"인 노동자는 "나만의 이득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를 위해 함께 나선다"며, 노동권 박탈과 민주주의 훼손, 민심을 외면하는 윤석열 정권을 노동자의 힘으로 반드시 몰아낼 것이라고 밝혔다.

△국적과 인종, 성별과 장애유무, 고용형태로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노동현장 △안전이 보장되고 기후위기와 인구소멸, 전쟁 걱정없는 평화로운 사회 △기술의 발전과 AI의 도입이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하도록 하자고 말했다.

당면해서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조합 할 수 있도록,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위협받지 않도록 노조법을 개정하고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바꿔야 하며 △플랫폼 노동이 전면화되는 시대에 노동자 권리를 위한 초기업교섭을 보장하고 △정부의 정책과 재정이 의료와 돌봄으로 향하도록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노동자·서민의 고통을 멈추고, 그래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대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6개 가맹조직 대표자와 서울·경기본부 본부장, 민주노총 임원들이 격문을 발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6개 가맹조직 대표자와 서울·경기본부 본부장, 민주노총 임원들이 격문을 발표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6개 가맹조직 대표자와 서울·경기본부 본부장, 민주노총 임원들이 무대에 올라 △건설산업 부패척결(이영철 건설산업연맹 위원장) △연금개악·민영화저지, 공공성강화 및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엄길용 공공운수노조 위원장) △공무원 노동권 쟁취(이해준 공무원노조 위원장) △대학공공성 확보(남정희 교수노조 위원장) △회계공시, 타임오프 폐지, 노조무력화 분쇄(장창열 금속노조 위원장) △사학비리 척결과 교육공공성 쟁취(백선기 대학노조 비대위원장) △비정규직과 차별없는 평등 일터 확보(이찬배 민주여성노조 위원장) △비정규직 철폐, 직무급제 반대, 생활임금 쟁취(이영훈 민주일반연맹 비대위원장) △올바른 의료개혁, 필수의료·지역의료·공공의료 회복(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 △비정규직없는 대학(박중렬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 △금융공공성 강화(이재진 사무금융노조 위원장) △비정규직 철폐, 불평등 타파(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 △방송3법 즉각 입법·언론장악 국정조사 관철(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 △교사도 노동자(전희영 전교조 위원장) △직무성과급제·포괄임금제 폐지(이훈재 정보경제연맹 비대위원) △윤석열정권 퇴진 전선의 초석이 될 것(문준모 화섬·식품노조 수석부위원장)을 골자로 하는 격문을 발표했다.

대회 개회선언을 위해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는 고졸노동자, 장애인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를 대표해 신수연 서비스연맹 특성화고노조 경기지부장과 권달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 암릿 림부(Amrit limbu)  네팔 농업노동자, 김정원 금속노조 서울지부 LG케어솔루션지회장이 나섰다. 

이들은 세계노동절의 본래 취지대로 모든 노동자의 평등한 노동권이 보장되어야 한다며 연대를 호소했다.

깃발입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깃발입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노동자 대합창 '못살겠다. 내려가'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노동자 대합창 '못살겠다. 내려가' 공연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시간 30분간 대회를 마친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숭례문사거리와 한국은행 오거리를 거쳐 을지로, 삼일대로 고용노동청까지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노동자들의 요구와 결의를 전했다. 

이날 세계노동절대회는 인천, 충북, 대전, 세종·충남, 전북, 광주, 대구, 경북, 부산, 울산, 경남, 강원, 제주를 비롯한 14개 지역본부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됐다.

2024 세계노동절 대회사 (전문) 

오늘은 우리의 날입니다. 우리는 사회와 역사를 발전시켜 온 주체이자, 생산의 주역이며, 세상의 주인입니다. 우리는 탐욕스러운 자본에 맞서 투쟁하며, 부정한 권력에 굴하지 않고 저항합니다. 우리는 나만의 이득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를 위해 함께 나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구호 아래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윤석열 정권 2년, 우리 사회 노동자들의 삶은 나락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폭력배로, 공갈 혐박범으로 매도당한 양회동 열사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의 몸에 불을 당겼고, 그 불길은 윤석열 정권 퇴진의 외침으로 타올랐습니다. 8시간 노동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던 노동절의 유래와는 반대로,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윤석열 정권의 시도는 노동자들의 거센 저항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노조법 개정 거부로 노동권을 박탈하고, 방송법 거부로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이태원 특별법 거부로 민심을 외면한 정권은 민중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반성하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옳다며 달라질 생각이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귀에는 못살겠다는 서민들의 아우성이 들리지 않기에 부자 감세로, 재벌 퍼주기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살 수 없다는 노동자들의 절규는 그들에게 들리지 않기에 노조혐오로 노동탄압으로 착취를 부채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윤석열 정권을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윤석열 정권을 반드시 몰아낼 것입니다.

우리는 노동자의 날인 오늘 다시 투쟁을 결의합니다.

국적과 인종, 성별과 장애유무, 고용형태로 차별받지 않는 평등한 노동현장을 만들어 갑시다. 노동자 시민의 안전이 보장되고, 기후위기와 인구소멸, 전쟁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사회를 위해 나섭시다. 기술의 발달과 AI의 도입이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삶을 윤택하게 하도록 만듭시다.

우리는 온 민중이 함께 하는 항쟁을 통해 부정한 권력을 몰아낸 경험이 있습니다. 그 항쟁의 맨 앞자리에 노동자가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정권의 교체만으로 우리의 삶이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 역시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바꾸기 위해서는 노동자라면 누구나 노동조합 할 수 있도록,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위협받지 않도록 노조법을 개정해야 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근로기준법을 바꿔야 합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플랫폼 노동이 전면화되는 시대에 노동자의 권리를 위한 초기업교섭을 보장해야 합니다. 정부의 정책과 재정이 의료와 돌봄으로 향하도록 공공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래야 노동자 서민의 고통을 멈출 수 있습니다.

자랑스러운 민주노총 조합원 동지들! 120만 노동자의 힘으로 맞섭시다. 싸웁시다.

윤석열 정권을 넘어, 양회동 열사가 염원한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을 위해 힘차게 투쟁합시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양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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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폭량이 81.6배 줄어든 방사선 환경영향평가서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핵발전소 사고를 우려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방사성물질의 대량 유출 때문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고 때 발생하는 방사성물질의 양을 예측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처럼 중요하고 기초적인 일이 과학적 근거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진다면 믿어지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의 핵발전소 사고는 처음 가동할 때보다 40년 된 노후핵발전소에서 방사성물질이 훨씬 적게 발생하는 요술을 부린다. 고리 3호기의 경우 40년 전보다 방사성 요오드(I-131)의 발생량이 62.3배 줄었고, 인근 주민 피해는 갑상선 피폭량 50.4배 줄고, 전신(全身) 피폭량 81.6배 줄었다.

이는 고리 3호기의 ‘최종안전성분석보고서(FSAR)’와 ‘계속운전을 위한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RER)’를 비교한 것이다. FSAR은 핵발전소 운영 허가를 받던 40년 전 평가이고, RER은 설계수명이 끝나는 40년 후를 기준으로 한 평가이다
 

대형냉각재상실사고 시 격납건물 요오드 발생 및 제한구역 경계 주민 피폭 ⓒ필자 제공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FSAR와 RER이 다른 이유는 서로 다른 ‘방사선원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방사선원항은 사고 때 핵연료에서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의 종류, 화학적 특성, 유출량 등을 미리 규정해 놓은 것이다. 즉, 예측 편의를 위한 사전 설정값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원자력법의 핵발전소 입지 기준(10CFR 100.11)에 따른 정보기술문서 ‘TID-14844’의 방사선원항을 사용해서 평가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고리3호기 RER은 ‘TID-14844’의 방사선원항을 사용하지 않고, 미국의 규제지침서 ‘RG 1.183’에 따른 ‘대체’ 방사선원항을 사용하는 잘못을 범했다. 대체 방사선원항을 사용하면, 기존에 비해 방사성 물질의 발생량은 절반 이하로 감소하고 외부 누출량은 10분의 1로 감소한다.

1979년 쓰리마일 핵사고의 영향으로 미국 핵산업계는 깊은 침체기에 빠진다. 이후 미국은 핵산업계를 위해 일부 규제를 완화하면서 ‘RG 1.183’의 대체 방사선원항을 신규 핵발전소의 ‘설계기준사고’ 평가에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대체 방사선원항을 40년 된 노후핵발전소에 적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한 ‘RG 1.183’ 적용은 우리나라 원자력안전법의 ‘원자로시설의 위치에 관한 기술기준(원안위고시 제2017-15호)’에 위배된다.
 

고리 3호기 중대사고 평가에 미국의 규제지침서 RG 1.183을 적용하고 있다. RG 1.183은 설계기준사고 평가에 적용하도록 되어 있다. ⓒ필자 제공


더욱 심각한 것은 ‘중대사고’ 평가에도 ‘RG 1.183’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RG 1.183’은 표지에서 ‘설계기준사고 평가를 위한 대체 방사선원항’이라고 용도를 밝히고 있다. 중대사고에 ‘RG 1.183’를 사용하면서 다음의 두 가지 문제가 크게 발생한다.

중대사고의 특징은 원자로의 핵연료가 녹아내리는 노심용융(Meltdown)이다. ‘RG 1.183’은 노심용융이 없는 설계기준사고용이다. ‘RG 1.183’에 따르면 연료봉에서 방출되는 방사성 물질은 95%가 ‘입자형’이다. 입자형은 여과장치 등을 통해 비교적 쉽게 걸러낼 수 있다. 그러나 중대사고로 노심용융이 발생하면 입자형이 아닌 ‘원소형’이 많이 발생한다. 기체 상태의 원소형은 여과장치로 쉽게 걸러내기 어렵고 격납건물 외부로 더 많이 누출된다.

다음으로 요오드 방출을 중심으로 중대사고를 평가하는 문제가 있다. 설계기준사고는 요오드를 중심으로 평가해도 되지만, 노심용융이 발생하는 중대사고는 세슘(Cs)이 요오드보다 10배나 많이 방출된다. 그러므로 요오드 중심 평가는 사고 피해를 축소한다.

이렇듯 중대사고 평가에 ‘RG 1.183’를 사용하면 방사성물질 발생량과 주민 피폭량을 대폭 축소하는 안이한 결과를 가져온다. 고리 3호기를 예시로 살펴보았으나 고리2호기를 비롯해 수명연장을 준비 중인 모든 핵발전소가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피폭량이 81.6배 줄어든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순순히 믿고 노후핵발전소의 수명연장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기예보로 치면 날씨가 흐리다고만 했는데 홍수로 집이 떠내려가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예보가 정확해야 생명과 재산을 지킨다. 노후핵발전소의 안전성 평가에 유비무환을 기대하는 것은 난망한 일인가.

 
시민사회는 3월 14일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심사를 중단하고 잘못된 규제체제부터 정비할 것을 요구했다.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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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왕' 통화에서 여당 정치인 이름이? "그놈 대통령 만들려고 내가…"

[사채왕과 새마을금고] 지검장, 윤핵관, 그리고… '사채왕 파일' 속 수상한 이름들

조아영·김보경·김연정·박상규 진실탐사그룹 셜록 기자 | 기사입력 2024.05.01. 05:01:09 최종수정 2024.05.01. 08:08:17

"그놈을 20(억 원)을 들여서 국회의원 만들면, 지가 100억 원어치 가져와. 이권으로 줘." -김상욱 통화녹음 중

'사채왕' 김상욱(1972년생)은 공범과 통화하면서 자신의 정·관계 인맥을 자랑스럽게 늘어놨다. 검사 출신 정치인들, '윤핵관'으로 불린 현직 국회의원, 한 정당의 지역조직 실세 등의 이름이 줄줄이 나왔다.

지난해 청구동새마을금고의 문을 닫게 만든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 사태. 그 배후에는 사채왕 김상욱 일당의 1500억 원대 불법대출 사건이 있었다. (☞ 관련기사 : 새마을금고 뱅크런의 진실, ‘사채왕 리스트’에 있다)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전 상무와 무궁화신탁 김재민 전 대리 등 수많은 공범들이 사채왕 김상욱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김상욱은 "내가 밀어주는 정치인만 해도 한 30명 된다"며, 자신이 정·관계 인맥을 '꽉 잡고 있다'는 말로 공범들을 포섭했다.

<진실탐사그룹 셜록>은 김상욱과 공범 김재민의 통화녹음 파일 약 900건을 입수했다. 녹음파일 속에는 그저 허세로만 생각할 수 없는 수준의 구체적인 증언들도 다수 들어 있었다. 아래에 인용한 대화는 모두 김상욱-김재민 통화녹음 파일에서 확인한 것들이다.

▲청구동새마을금고 1500억 원 불법대출의 주범 '사채왕' 김상욱 ⓒ셜록

"(전직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 A, 내일 만나서 점심 먹는다.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는 무서운 곳이야. 깡패 두목들도 거기서 오줌 싸고…." -김상욱, 2023년 6월 22일 오후 4시 38분

지난해 6월 23일 김상욱은 검사 A와의 점심식사 자리에 공범 김재민을 데리고 간 것으로 보인다. 평소 김상욱은 김재민을 '조카'라 부르며 특별한 관계임을 강조했다.

검사 A는 ○○지검 특수부장,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을 거쳐 ○○지검 지검장까지 지냈다. 이후 검사 옷을 벗고 지난 10일 치러진 22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낙선했다.

"그 새끼(A 지칭) 국회의원 (선거) 나가려고 회장님(김상욱 본인)을 만나는 거야. 이번 일 잘 해결하면 ‘스폰’ 해준다고 했어. 나 만나고 싶어서 환장한 놈인데 (그동안) 안 만나줬거든. 그런 놈들 알아두면 좋아. 웬만하면 다 봐주니까." -김상욱, 2023년 6월 22일 오후 10시 19분

김상욱과 공범 김재민은 지난해 6월 23일 전후로 검사 A와의 식사 자리에 대한 구체적인 대화를 주고받았다. 6월 22일 밤, 김상욱은 서울 역삼동 ○○호텔 뒤편에 있는 고급 일식집에서 A와 만나기로 했다며 김재민에게 식당 주소를 전달했다.

김상욱 : "지금 (문자메시지로) 주소 갔을 것이다. 호텔 뒤편에 ○○일식이라고 있다고 하대. 거기서 맛있는 거 먹자."

김재민 : "시간은 그럼 언제쯤 만나시는 거예요?"

김상욱 : "12시야."

김재민 : "12시요? 제가 12시까지 갈게요."

-김상욱·김재민, 2023년 6월 22일 오후 10시 19분

▲'김상욱 파일'에는 검사 출신 정치인과 김상욱의 부적절한 만남 정황이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셜록

점심식사 약속 당일, 김재민은 ○○일식에 먼저 도착해 김상욱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상욱은 "최고의 검사"를 만나는 자리에서 지켜야 할 것을 김재민에게 미리 당부하기도 했다.

"대단한 애들이니까. 검사만 돼도 대단하다고 하잖아. 그중에서 최고의 검사를 만나니까 싸가지가 없지. 오늘 싸가지 없으면 회장님(김상욱 본인)이 욕해버릴 거고, (…) 중요한 얘기할 때는 알아서 조카(김재민)가 (자리를) 비켜주고." -김상욱, 2023년 6월 23일 오전 11시 58분

6월 23일 이후 통화에도, 그날의 만남이 실제로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있었다. 나흘 뒤인 6월 27일, 김상욱은 김재민에게, 다른 금융기관 직원을 포섭하는 데 자신과 A와의 관계를 이용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대목에서 "한 번 봤으니까"라는 언급이 나온다.

"A 이름은 얘기하지 말고, '반부패·강력부장 만날 때 옆에 같이 나온 사람은 밥도 못 먹더라, 그 사람들도 회장님(김상욱 본인)에게 고개 숙이더라'고 얘기해라. (…) 겁주면서 회장님 능력을 말로 보여줘. (너는 A를) 한 번 봤으니까." -김상욱, 2023년 6월 27일 오후 9시 57분

김상욱은 검사 A와의 인연이 상당히 깊고 오래된 것처럼 김재민에게 말했다. 심지어 A가 검찰 내부의 특정 수사 관련 자료를 자신에게 넘겼다는 발언도 있었다.

"검찰이 (그 사건을) 내사 진행한 지가 5년이 됐어. 그 자료가 나한테 싹 넘어왔어." -김상욱

사채왕 김상욱의 전직 검사 인맥은 A 하나만이 아니다. 그는 검사 출신 변호사를 자신의 고문변호사로 두고 있었다.

"내 고문변호사 쓰라고 해. 검사장 출신인데 기가 막혀부러." -김상욱

"작은아빠(김상욱 본인)가 (김재민) 참고인 조사 받으러 갈 때 우리 고문변호사랑 ○○경찰서에다 전화해놓을라니까, 너는 걱정하지 말고." -김상욱

김상욱은 검찰뿐만 아니라, 정치권에도 '줄'이 있다고 자랑했다. 김상욱은 이른바 '윤핵관'으로 통하는 국회의원 B와 친분이 있으며, 심지어 그의 돈을 본인이 '세탁'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수표를 쓰면 추적돼. 근데 네 삼촌(김상욱 본인)은 외국으로 보내버리거든. 스포츠 도박 하는 애들이 가져가, 그럼. 외국 은행에 돌리면 한국에 3일 만에 현금으로 들어오거든. 그럼 돈세탁이야. 뒤 봐주려면 돈이 필요할 거야." -김상욱

김상욱은 국회의원 B와 또 다른 정치인 C 사이에서, '밀당'이라도 하는 듯 말했다. C는 A와 같은 검사 출신 정치인이다.

"B하고 친하거든, 내가. B가 (정권) 실세잖아. 근데 이번 (22대 총선에서) 공천 못 받을 거야. 자기(B)는 그걸 몰라. 그래서 회장님(김상욱 본인)한테 도와달라고 하는데 (…) 작은아버지(김상욱 본인)가 더 이상 개입하게 되면 완전히 내가 C를 등지고 해야 되거든." -김상욱

지난해 8월 13일 통화 중에 나온 이야기. 실제로 B는 22대 총선에서 정당 공천을 받지 못햇다. 김상욱은 C를 성 없이 이름만 부르거나, 혹은 성만으로 "미스터 ○"이라 부르며 친밀함을 과시했다. C가 자신을 "형님"이라 부른다고 말하기도 했다.

"C가 안 그래도 회장님(김상욱 본인)한테 '형님 진짜 자기가 부탁하는데 총리 될 때까지만 (도와달라), 자기 형님이 움직이면 자살한다'고 했어. 그 정도로 회장님이 참 요주의 인물인가봐. 우리나라 경제를 흔들 정도로. 내가 (돈을) 잘못 줘버리면…. '미스터 ○'(C를 지칭)은 버리지 못하거든. 그놈 대통령 만들려고 내가 지금 이 XX을 떨고…." -김상욱

▲'김상욱 파일'에는 현직 국회의원과 여러 정치인들이 실명으로 언급된다. ⓒ셜록

정치자금 제공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정황이 들어 있는 발언도 있다. 한 정당의 지역조직에서 활동하는 D. 과거 지방선거 출마 경험이 있는 그는, 22대 총선에서 한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지원했으나 낙마하고, 비례대표 위성정당의 지역 위원장을 맡아 선거를 지원했다.

특이하게도, 김상욱은 그에게 '후불제'로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한 프로축구단의 이사를 맡고 있는 D가 선수단에게 먼저 쓴 금액을 사후에 보전해주는 방식이었다.

"(D에게) 내가 돈 20억 원 줬는데, 국회의원 하나 키우기 진짜 힘들어. 이번에 ○○FC(프로축구단) 우승했다더라.(실제로는 리그 도중 1위에 오른 것. 기자 주.) 그래서 밥을 사야 한대. 하… 이 새끼(D를 지칭) 1000만 원 후원한 거(청구서) 보내놨네." -김상욱

김상욱과 김재민의 통화녹음 파일에는 김상욱이 정치자금을 건넨 여러 정치인들의 실명이 언급된다. 하지만 김상욱은 모든 정치인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직접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는 자신의 앞에 누군가를 "세우고", 자신의 정체를 감춘 채 로비를 진행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도 있다.

"그놈(D)하고 A하고, 앞에 누굴 세워놨지. 청구서 들어오면 돈 다 해줘." -김상욱

지난 5일 <셜록>은 사채왕 김상욱과 공범 김재민의 통화에서 만남의 정황이 구체적으로 언급된 검사 출신 정치인 A를 찾아갔다. 당시 A는 국회의원 후보였다.

기자 : "작년 6월에 김상욱 한번 만난 적 있으시죠? 서울 역삼동에 있는 ○○일식에서 한번 만났죠?"

A : "예예? 잘 기억이 안 나요."

기자 : "김상욱 회장 모르세요?"

A : "이름은 들어본 것 같아요. 한 번인가 본 것 같기도 하고 딱 그 정도인데…."

기자가 직접 녹음 파일을 들려주며 질문했지만, A는 "한 번 본 것 같기도 하다"고 했다가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말을 바꿨고 이내 "저는 그 사람을 만나러 간 게 아니"라며 혼란스러운 답변을 반복했다. 김상욱에게 정치자금을 받은 적 있냐고 묻자, A는 "이 얘긴 그만 합시다"라며 자리를 떠났다.

그 뒤 20분이 채 지나지 않아 A에게 먼저 전화가 왔다. "악의적 보도를 하면 강력한 법적대응을 하겠다"는 경고였다. 총선이 지나고 다시 A와 통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

▲의전을 받으며 차에서 내리는 사채왕 김상욱 ⓒ셜록

김상욱은 지난 16일 <셜록>과 한 전화 통화에서 "나도 피해자다, 불법대출 한 적이 없다"고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여러 번 다시 통화를 시도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후 기자가 문자메시지로 재차 취재 협조를 요청하자 김상욱은 "본인도 관련자들의 허위주장과 모함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그리고 만약 취재진이 자신을 찾아온다면 "건조물 침입 등으로 법적 조치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내온 바 있다.

한편, 사채왕 김상욱(1972년생)은 지난 23일 구속됐다. <셜록>이 보도를 시작한 지 6일 만이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 청구동새마을금고 전종남 전 상무도 그와 함께 구속됐다. (☞관련기사 : 조폭 출신 사채업자이자 불법대출 주범 '사채왕' 김상욱 전격 구속)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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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쇼' 하려다 역효과... 윤 대통령이 되치기 당한 순간 둘



[영수회담 관전평] 이재명 12가지 요구에 모두 '아니오'... 변하지 않는 대통령 모습 재확인

24.04.30 18:15l최종 업데이트 24.04.30 18:15l

오태규(ohtak)

 

▲ 첫 영수회담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영수회담 종료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4.4.29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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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 29일 여야를 대표하는 자격으로, 즉 국정의 동반자 자격으로 처음 대면했습니다. 무려 720일 만의 회동이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그토록 어렵게 이뤄진 회담에서 합의서 한 장도 내지 못했습니다. 밥도 같이 먹지 않았습니다. 이것만 봐도 얼마나 '냉랭한 만남'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애초 회담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시각과 목적이 달랐던 데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4.29 윤-이 회동'의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우선 '윤 대통령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됐습니다. 둘째, 윤 대통령은 회담 내용보다 소통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힘을 쓰다가 오히려 불통의 인상만 강화했습니다. 셋째, 앞으로 이런 식의 만남은 지속되기 어렵습니다. 제가 이 회담을 본 뒤 내린 결론입니다.

 

어떤 답도 듣지 못한 이재명의 12가지 요구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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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하나 짚어보겠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윤석열 대통령과 회담에서 민생, '이(이태원 특별법)·채(채상병 특검)·양(양평 고속도로)·명(명품백 수수)·주(주가조작 의혹)', 정치 회복, 외교 등 네 분야에서 12가지의 방향 수정과 전환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단 하나도 긍정적인 답변이나 반응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총선 참패 엿새 뒤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밝힌 '정책 방향은 옳은데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시각에서 전혀 변한 게 없었습니다. 모두발언 4시간 뒤에 참모에 의해 공개된 '국민에게 죄송'이라는 사과가 실은 '악어의 사과'였음을 확인해준 격입니다.

 

대통령실은 영수회담 뒤 의료 개혁에 대해 원칙적인 합의가 이뤄졌다고 말했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이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이 대표는,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와 의료진의 즉각적인 현장 복귀, 공공·필수·지역의료 강화라는 3대 원칙에 입각해 해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이것을 '이 대표가 의료 개혁의 원칙에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두루뭉술하게 해석했습니다.

 

의료 개혁은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는 원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얼마나 증원할 것인가 하는 각론이 핵심이기 때문에 '원칙적 합의'란 말은 하나 마나 한 말입니다. 워낙 합의한 것이 없으니까, 이것이라도 끌어들인 것 같은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불통 인상만 커진 윤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지난 4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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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윤석열 대통령은 그동안 이재명 대표가 '피의자 신분'이란 이유를 내세워 만남을 회피해 왔습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이번에 만나려고 한 것 자체를 '선물'로 생각한 것 같습니다. 또 만남을 내세우며 소통에 힘쓰는 모습을 과시하려고 한 듯합니다. 의제와 의전 등을 논의하는 준비 회의를 질질 끌다가 민주당 쪽에 책임을 떠넘기면서 '나는 소통하려고 했는데 민주당이 까다롭게 굴어서 무산됐다'고 책임 전가하려고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윤 대통령 쪽의 기획은 민주당에 두 번이나 되치기당하면서 실패로 끝났습니다. 오히려 불통 인상만 커졌습니다. 우선, 이 대표가 지지부진한 준비 회담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만남을 앞세우는 태도로 나오면서 책임 떠넘기기가 더 이상 어려워졌습니다. 총선 패배 뒤 이 대표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면서 주도권을 잡았던 윤 대통령이 주도권을 내주는 계기가 된 것이죠.

 

또 한 번은 이 대표의 모두발언입니다. 이 대표는 회담 전의 의례적인 덕담이 끝나고 대통령실이 카메라 기자를 내보내려고 하는 순간, 주머니에 준비해 온 서류를 꺼내 15분간 읽어 내려갔습니다. 총선에서 나온 민심을 요약한 요구 사항들이었습니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이런 움직임을 전혀 감지하지 못한 듯, 웃음기 띠었던 얼굴이 갑자기 잿빛으로 바뀌었습니다.

 

어쩌면 윤 대통령이 기획한 '소통 쇼의 파탄'은 정진석 비서실장 임명에서 예고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 실장은 비대위원장 시절인 2023년 1월, 이 대표가 신년 기자회견에서 여야 수뇌 회담을 제의하자 "대통령이 범죄 피의자와 면담할 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반대한 적이 있습니다. 여야 수뇌 회담을 목전에 두고 이런 전력이 있는 사람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건 제사(회담 결과)보다는 잿밥(소통 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걸 미리 암시한 것이 아닐까요.

 

영수회담, 이어질 수 있을까

 

셋째, 대통령실은 두 수뇌의 회담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관계자는 "허심탄회하게 소통을 이어가기로 사실상 합의를 봤다"라고 말했고, 정진석 비서실장도 "다음엔 두 분만 만나라고 했더니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라고 거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만남은 앞으로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단적인 예가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렸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입니다. 이때도 윤-이 회담처럼 두 정상은 의제 조율도 없이 회담했고 서로 엇갈린 얘기만 했습니다. 둘은 함께 식사도 하지 않았고 합의도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4개월 뒤 판문점에서 번개 모임 하듯 잠시 얼굴을 맞댔지만, 의미 있는 추가 회담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윤-이 회담의 운명도 형식과 내용을 크게 수정하지 않는 한,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상호 신뢰와 양보가 없는 사진 찍기나 보여주기 회담은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열쇠는 윤 대통령이 쥐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이 바뀌어야 합니다. 소통하는 척하는 데서 벗어나 진심으로 총선 민심을 받드는 태도로 돌아서지 않는 한 이재명 대표도 민심을 거스르며 회담에 응하기 어려울 겁니다. 윤 정권이 2년 동안 해온 정책의 대전환을 바라는 민심이 그런 회담을 용인하지 않을 겁니다.

 

29일 오후 서울역 대합실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영수회담 장면이 방송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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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윤석열대통령, #이재명대표, #여야수뇌회담, #소통쇼, #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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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은 이제부터”.. 5월 11일 대규모 ‘거부권 거부대회’



 

거부권 거부대회 선포 기자회견

거부 법안 당사자들, ‘거부권 대회’ 앞장

거부권 법안 신속한 재입법 촉구

“윤석열 정권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악몽 같던 2년, 다시 같은 꿈은 꾸지 않겠다.”

국민의힘 108석, 모두가 입을 모아 “윤석열 정권을 심판했다”는 22대 총선.

그러나 “정부가 과거 어느 정부여당도 받지 못한 초라한 성적표를 받고도 일말의 반성과 성찰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는 진보민중시민단체들.

이들이 “심판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더 강력한 심판 행동 출발의 끈을 조였다.

이들은 지난 총선에서 “정권 심판을 위한 의석수를 확보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곤, 다시 ‘윤석열 심판’을 위한 공동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정부 출범 2년에 맞춰 다음달 11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대규모 ‘거부권 거부대회’를 열겠다고 선포한 것.

말 그대로, 윤석열 정부가 임기 2년 만에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것을 ‘거부’하고, 국회를 향해 대통령이 거부한 법안을 조속히 재입법하라고 촉구하는 대회다.

▲ 30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2년, 거부권 거부대회’ 선포 기자회견 ⓒ뉴시스

정해랑 전국비상시국회의 조직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의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바로 거부권 행사”라며 “지금이 진짜 비상시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법, 양곡관리법, 간호법 등을 거부해 각 계급계층을 적으로 돌리더니 자신의 독재를 위한 방송3법 거부, 그리고 자신과 가족, 선후배들을 지키기 위한 쌍특검법(김건희-대장동 특검) 거부, 이것만 해도 분노스러운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법안인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채상병 특검법, 민주화운동가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까지도 거부하고 있다”면서 “생명 존중, 정의를 바로 세우는 투쟁에 나서야 할 때”라고 소리 높였다.

 

거부 법안 당사자들, ‘거부권 대회’ 앞장

▲ 지난 2월 서울 중구 서울광장 분향소 앞.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 협의회와 시민대책회의가 ‘참사 외면, 거부권남발 규탄’ 윤석열 정권 심판 159개 보라색 풍선 행진.

거부권 법안 당사자들이 거부권 대회에 앞장설 것을 자처했다. 먼저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다.

이정민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무고한 국민 159명이 거리에서 죽어갔다. 온 국민이 의혹을 갖는 참사를 철저히 조사하기는커녕 정쟁으로 몰고 가는 현실”이라고 분노하곤, “윤석열 정권 남은 임기 동안 또 어떤 권력을 남용할지 몰라 불안하다”면서 “유가족들도 마음과 뜻을 모아 거부권 남발을 막기 위해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 할 권리를 거부당한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와 여당이 “아직 매를 덜 맞은 것인가? 정신을 차릴 생각이 없다”고 규탄했다. 여당 원내대표로 거론되는 이철규 의원이 “거부해야 할 법이라면 백번 천번이든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양 위원장은 “장시간 노동, 임금체계 개편, 파견 확대, 노조 할 권리 박탈도 모자라, 최저임금 차등적용, 노조활동 개입과 감시, 단속에 나선 윤석열 정부다. 지난 2년간의 고통을 반복할 수 없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투쟁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오는 1일 노동절을 맞아 ‘윤석열 정권 퇴진’을 구호로 세계노동절대회를 개최해 총선 이후 투쟁의 포문을 연다.

이들은 21대 국회가 한 달이 남았음을 상기하며 “충분히 민생개혁법안을 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말한 총선에 나타난 민심을 겸허히 받아들인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거부권 법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하는 한편,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남은 국회 기간 반성하고 책임을 다하라”고 요구했다.

▲ 지난해 12월, 민주노총이 윤석열 정부의 개정노조법 2,3조와 방송 3법 거부권 남용을 규탄하는 손피켓을 들고 서 있다.

거부권 법안 신속한 재입법 촉구

 

법안 통과를 서두르는 이유가 있다.

박석운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 공동대표는 방송법을 이유로 들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진 임기가 올해 8월 중순으로 끝난다. 현행법대로 이사진이 교체되면 MBC마저 윤석열 정권에 의해 장악될 수 있다”는 것.

방송3법은 공영방송 이사회(현재 9~11명, 여야 추천) 구성을 21명으로 늘리고, 늘어나는 인원에 대해서는 국회, 시청자위원회, 관련 학회, 방송기자연합회 등이 추천하도록 하는 법안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이를 거부했다.

이들 단체들은 22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위원장을 놓고 여야 대치가 이어지면 국회 ‘원 구성’이 늦어지고, 법안 논의가 늦춰질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거부권 법안에 대한 일괄적, 신속한 재입법”을 재차 촉구하곤, “국민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더는 참지 않을 것이며, 거대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만약 21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면 22대 국회에서 거부권 행사 법안들을 1호 법안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압도적 민의로 윤석열 정권을 심판한 것처럼, 22대 국회 역시 엄중하게 심판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했다.

5월11일 열리는 ‘윤석열 2년, 거부권 거부대회’는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와 유가족협의회, 언론장악 저지 공동행동을 비롯해 거부권거부전국비상행동, 전국민중행동, 전국비상시국회 등 윤석열 정권 심판에 앞장섰던 단체들이 공동 주최한다.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청년, 시민사회 등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은 이날 대회 후 도심 행진을 벌인다고 밝혔다.

 

조혜정 기자jhllk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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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종합] 한·미·일, 한 달 내내 북 겨냥 훈련 강행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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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24/05/01 08:13
  • 수정일
    2024/05/01 08: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인선 기자 | 기사입력 2024/04/30 [19:06]

 

 

지난달 14일 한미연합훈련 ‘자유의 방패’가 끝난 이후로도 한·미·일은 북한을 겨냥한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언론에 공개된 한국군 자체 훈련, 한미연합훈련, 한·미·일 연합훈련을 종합해봤을 때, 4월 한 달만 29일 동안 훈련을 진행했다.

 

특히 규모가 크고 공격적인 성격까지 드러낸 훈련들이었기에 북한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4월에 어떤 훈련들이 진행되었는지 정리해본다.

 

한국군 자체 훈련

 

▲ 육군·해군·공군·해병대는 17~26일 포항 인근 해상 및 육상 훈련장에서 여단급 합동상륙훈련을 진행했다. © 해병대

 

육군 제11기동사단 사자여단은 11~19일 강원도 홍천군, 경기도 양평군·여주시 일대에서 대규모 전술훈련을 했다. 군 당국은 훈련을 통해 ‘실질적인 공격·방어 전술’을 익혔다고 밝혔다.

 

육군 제5군단은 16~19일 강원도 철원과 경기도 포천·연천 일대에서 동시 통합훈련을 했다. 군단 10개 부대, 동원전력사령부 3개 부대 등 총 13개 부대가 참가했다.

 

이들은 실전과 같은 상황을 조성하면서 ▲동원부대 전방 전개 ▲공세 행동 ▲대량 전상자 처리 ▲유류·탄약 보급 ▲포탄·전차포 사격 등을 훈련했다.

 

육군·해군·공군·해병대는 17~26일 포항 인근 해상 및 육상 훈련장에서 여단급 합동상륙훈련을 진행했다. 총 2,800여 명이 참가했다.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 24대, 대형 수송함 ‘독도’ 및 상륙함(LST-Ⅰ·Ⅱ) 등 해군 함정 15척과 MUH-1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육군 CH-47 ‘치누크’ 수송헬기, 공군 C-130 수송기 등 항공기 20여 대를 동원했다.

 

훈련은 ▲병력과 장비의 탑재 ▲연습 ▲작전구역으로 이동 ▲해상·공중 돌격 등의 결정적 행동 ▲육상작전 전환 후 지상작전사령부와의 연결 작전 순서로 이뤄졌다. 특히 결정적 행동 단계에선 해병대 상륙군이 해군 함정의 함포 지원과 공군 전투임무기, 육군 공격헬기의 엄호를 받으며 상륙 목표 해안으로 이동했다.

 

육군 제31보병사단은 22~25일 광주와 전라남도 일대에서 ‘2024 대침투종합훈련’을 했다. 군 당국은 “적의 국지도발 위협에 대응해 해안 및 내륙지역의 작전 수행 능력을 숙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육군 수도군단은 22~26일 인천과 경기도 서남부권 등 22개 시·군 일대에서 ‘2024 지상협동훈련’을 진행했다. 훈련은 ‘적 도발 및 침투 상황’, ‘국가중요시설 테러 상황’ 등을 가정해 실시했다.

 

육군 제32사단 화생방 대원들은 25일 세종시 남세종동원훈련장에서 열린 민·관·군·경 소방 통합 방위훈련에서 오염물을 제독하는 훈련을 했다. 훈련은 방사능 폭발물 제독 작업과 대테러 침투 작전 등 가상의 적이 테러를 위해 침투한 상황을 가정해 진행했다.

 

해군 제1함대, 육군 제23경비여단은 26일 묵호항 인근 해상과 묵호 해경 전용부두에서 항만 방호 및 해상 대테러훈련을 했다. 이들은 드론 테러를 가정해 대응하는 훈련도 시행했다.

 

육군 50사단 일격여단은 4월 29일부터 5월 3일까지 경상북도 안동시·문경시·영주시·예천군·봉화군·의성군·청송군 일대에서 통합방위 전술훈련을 실시한다. 이들은 ‘적의 해안·내륙지역 침투’, ‘국가중요시설 테러’ 등 상황에 따른 작전 수행을 훈련한다.

 

한국 공군 정찰기 ‘글로벌호크’(RQ-4)는 26~27일 군사분계선 남쪽 모든 구간을 날아다니며 북한 미사일·정찰위성 동향 등을 정찰했다.

 

한미연합훈련

 

육군 제8기동사단 소속 미국 국립훈련센터(NTC) 전지 훈련단은 4월 17일부터 약 한 달 동안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 있는 국립훈련센터에서 한미연합훈련을 한다.

 

이들은 앞서 3월 18~29일까지 경기 포천 로드리게스 훈련장과 동두천 캠프 케이시 등에서 사전 훈련을 했다. 미2사단/한미연합사단 스트라이커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군 장비 친숙화 훈련 ▲도시지역 전투훈련 ▲중·소대 전투지휘·전투사격훈련 ▲전투부상자 처치훈련 등을 진행했다.

 

한미 해군은 4월 1~9일 경상북도 포항 동쪽 해상에서 연합기뢰전훈련을 실시했다.

 

한국의 기뢰부설함 ‘남포’, 기뢰탐색함 ‘김화’, 기뢰소해함 ‘해남’ 등 함정 6척, P-3 해상초계기, UH-60 해상기동헬기와 미국의 원정이동기지선 ‘미겔 키스’ 등 함정 3척, MH-53 소해헬기 2대가 동원됐다.

 

군 당국은 여러 기뢰전 상황을 가정해 ▲기뢰 부설·탐색·제거훈련 ▲군수지원훈련 등을 했다고 밝혔다.

 

한미 공군은 4월 12~26일 연합편대군 종합훈련을 시행했다.

 

한미는 전쟁 상황을 가정해 공대공, 공대지, 정찰, 수송 등 군용기의 임무 수행 능력을 향상하겠다는 목적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총 1,400여 명이 참가했다.

 

한국 공군 전투기(F-35A, F-15K, F-16, FA-50), 수송기(C-130, CN-235), 공중급유기(KC-330)와 미군의 전투기(F-16, F-35B), 공격기(A-10), 조기경보통제기(E-3), 고고도 정찰기(U-2), 무인공격기(MQ-9, MQ-1C), 공중급유기(KC-135), 수송기(C-17, C-130J), 전자전기(EA-18G) 등 항공기 25종, 100여 대가 동원됐다.

 

한미는 ▲적의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 모의표적을 정밀유도폭탄(GBU-12)으로 타격하는 훈련 ▲정찰로 획득한 표적을 최단 시간 내 타격해 적의 공격을 사전에 차단·무력화하는 긴급항공차단훈련 ▲항공차단훈련 ▲근접항공지원 ▲방어제공훈련 등을 진행했다.

 

훈련 기간 항공기가 하루 평균 100회 정도 출격했고, MQ-9 ‘리퍼’ 무인공격기가 정밀유도폭탄을 발사해 적 지상 전력으로 가정한 건물 표적을 타격하는 훈련을 처음 시행했다.

 

우주작전을 전담하는 부대인 공군 우주작전대대와 주한미우주군(USSFK)은 ‘한미 우주 통합팀’을 구성해 훈련에 참여했다. 이들은 적이 위치 정보 파악 시스템(GPS)을 방해하는 전파 방해 공격을 하는 상황을 가정해 훈련했다.

 

훈련은 미국 우주군이 보내온 정보를 함께 분석해 교란 좌표와 영향성 정보 등을 아군 전력에 실시간으로 제공하면 이를 토대로 한미 공군 전투기가 적의 교란 원점을 타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미 특수작전 부대는 18일 경기도 오산 비행장에서 연합공중침투훈련을 실시했다.

 

한국 육군과 주한미군의 특수전사령부 장병 260여 명이 참여했고 C-17, C-130J, C-130H, CN-235 등 수송기 8대가 투입됐다.

 

이들은 한반도 유사시에 대비한다는 목적으로 공중에서 목표지역에 침투해 가상의 표적을 제거하는 훈련을 했다. 중앙일보는 이와 관련해 북한 정권 수뇌부를 겨냥하는 목적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 한미 전투기들이 18일 서해 상공에서 훈련했다. 왼쪽부터 미국 해병대의 F-35B 스텔스 전투기, 미국 공군의 F-16 전투기(2대), 한국 공군 F-15K 전투기(2대), F-16 전투기(2대). © 공군

 

▲ 한미는 19일 적의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 모의표적을 정밀유도폭탄(GBU-12)으로 타격하는 훈련을 진행했다. © 공군

 

▲ 한미는 19일 적의 이동식 미사일발사대(TEL) 모의표적을 정밀유도폭탄(GBU-12)으로 타격하는 훈련을 진행했다. © 공군

 

▲ MQ-9 ‘리퍼’ 무인공격기가 정밀유도폭탄을 발사해 적 지상 전력으로 가정한 건물 표적을 타격하는 훈련을 19일 처음 시행했다. © 미 제7공군

 

한·미·일 연합훈련

 

한·미·일은 2일 제주도 동남쪽 한일 간 방공식별구역(ADIZ) 중첩구역 일대에서 연합공중훈련을 진행했다.

 

한국 공군의 F-15K 전투기, 미국의 B-52H 전략폭격기와 F-16 전투기, 일본 항공자위대의 F-2 전투기 등이 동원됐다.

 

군 당국은 “고도화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억제 및 대응능력을 향상”하는 목적으로 훈련했다고 밝혔다.

 

한·미·일은 11~12일 제주도 남쪽 공해에서 연합해상훈련을 진행했다.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 이지스구축함 ‘하워드’·‘다니엘 이노우에’·‘러셀’과 한국 해군의 이지스구축함 ‘서애류성룡’과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리아케’ 등 함정 6척이 동원됐다.

 

군 당국은 “북한의 잠수함 위협에 대응”한다는 목적이라면서 F/A-18E/F ‘슈퍼 호넷’ 전투기가 항공모함에서 이륙하는 훈련도 했다고 밝혔다.

 

▲ 한·미·일 연합공중훈련이 2일 진행됐다. © 국방부

 

▲ 한·미·일이 11~12일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했다. 아래쪽부터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인 ‘서애류성룡’, 미국 해군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 일본 해상자위대 구축함 ‘아리아케’,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다니엘 이노우에’. © 해군

 

이 같은 훈련 때문에 4월에도 좀처럼 한반도 전쟁 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북한의 대응도 높아지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한·미·일은 대북 적대 행보를 그만두지 않고 5월에도 북한을 겨냥한 훈련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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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생산 5개월 만에 마이너스 전환…4년 만에 최대 감소 폭

산업생산 5개월 만에 마이너스 전환…4년 만에 최대 감소 폭

항구에서 수출 대기중인 컨테이너들(자료사진) ⓒ제공 : 뉴시스
지난달 산업생산이 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통계청이 30일 발표한 ‘3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전산업 생산지수(계절조정·농림어업 제외)는 112.6으로, 전월보다 2.1% 감소했다.

지난해 11월(0.3%)·12월(0.4%), 올해 1월(0.3%), 2월(1.1%) 4개월간 증가세를 유지했으나, 5개월 만에 감소 전환했다.

감소 폭은 2020년 2월(-3.2%) 이후 4년여 만에 가장 큰 수치를 보였다.

부문별로 보면, 제조업을 포함한 광공업은 전월 대비 3.2% 감소했다. 서비스업 생산은 0.8% 줄었다. 건설업과 공공행정은 각각 8.7%, 1.6% 쪼그라들었다.

소비지표는 소폭 개선됐다. 지난달 소매판매는 전월보다 1.6% 늘었다.

다만, 설비투자는 전월 대비 6.6% 감소했다. 기계류와 운송장비 모두에서 투자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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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속없던 첫 영수회담, 악수만 하는 자리로 전락



 

 

취임 이후 첫 영수회담, 집중됐던 관심

오고 가는 대화 방식 기대했지만..

"국정기조 전환 의지가 없어보여"

윤석열 대통령이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영수회담에서 집무실에 도착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맞이하며 악수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민주당은 회담 이전부터 만남의 자리, 악수하는 자리가 아니라, 답을 듣고 실천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뚜렷한 진전은 없었다. 이재명 대표는 여러 의제를 쏟아냈지만, 대통령의 답은 없었다. 민주당은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이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고 총평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답답하고 아쉬웠다”는 소회를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이후 첫 영수회담, 집중됐던 관심

이번 영수회담은 여당과 민주당뿐만 아니라, 다른 야당에게도 많은 관심과 기대를 받았다.

진보당은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고물가·고금리에 국민의 삶이 위태로운 만큼 민생을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촉구했고, 녹색정의당은 “이제 문제는 영수회담 개최가 아니라 의미있는 성과와 진전”이라고 논평했다.

영수회담 전 이재명 대표와 회동을 가진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이 대표와)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남용해왔다는 판단을 공유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남은 21대 국회에서 이태원참사 특별법과 채 해병 특검, 전세 사기 특별법 등 법안 통과를 추진 중인라 이번 영수회담 의제에 거부권 남발 관한 이야기도 오갈 것으로 보였다.

정당뿐만 아니라, 의료계와 시민사회도 이번 회담에 집중했다. 최근 의료공백 사태로 해결책을 요구해 온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전공의와 의대 교수 사직이라는 초유의 의료대란을 영수 회담에서 핵심 의제로 논의해 주길 바란다”고 입장문을 내놨다. 그만큼 이번 영수회담은 대한민국 모두의 시선이 집중됐다.

오고 가는 대화 방식 기대했지만..

 

공개한다던 모두발언은 이재명 대표의 발언만 공개됐다. 대통령은 "좋은 말씀 감사하다" 정도만 덧붙였다. 이는 임기 초 출근길 문답에서 지적된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언행을 숨기기 위한 처사로 보인다. 대화 형식의 회담을 기대했던 이들은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재명 대표는 의제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만큼, 그동안 산적한 현안들을 모두 이야기했다. 방심위의 과도한 심의, 지역 화폐, R&D 예산 복원과 추경, 전세 사기 특별법, 의정 갈등 등 민생에 초점을 맞춘 의제를 내놨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회담이 시작되고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대통령께 드릴 말씀이 많아 써 왔다”며 10페이지 분량의 종이 뭉치를 꺼낸 이 대표는 “여의도에서 여기(대통령실)까지 오는 데 20분 정도 걸렸는데, 실제로는 700일이 걸렸다”며 늦은 만남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채 해병 특검이나, 김건희 특검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부담되는 가족분 주변 인사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정도로 언급했다.

 

"국정기조 전환 의지가 없어보여"

뒤이어 각 입장을 담은 브리핑이 이어졌다. 별도의 합의문이나 뚜렷한 정책연대는 없어 보였다. 많은 대화를 나눴고, 의견 차이를 확인했다는 것이 주 골자였다.

2시간 10분 정도 이어진 회담이 끝난 뒤, 이어진 브리핑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재명 대표의 ‘전 국민 25만 원 공약’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의 공약에 대해 “지금 상황에서는 어려운 분들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방법이 바람직하다”는 대통령의 입장을 전했다.

또, 이태원 참사 희생자에 대한 지원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뜻을 내비치면서도 재표결에 부쳐질 특별법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이도훈 홍보수석은 “특별법은 민간 조사위원회에서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는 해소하고 다시 논의하면 좋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R&D 예산에 관해서는 이 대표가 “예산 삭감에 따라 대학 석박사들의 연구 보조금 문제가 커진다”며 복원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대통령은 “추경을 통해서 복원할 생각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브리핑에서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 관련해서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보였다”며 “다만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을 했고 앞으로 소통은 이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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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새겨야 할 '5.18 정신'의 핵심은 '시민군'이다

[장석준 칼럼] 다시 다가온 5월에 부쳐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 기사입력 2024.04.30. 04:08:46

다시, 5월이 다가온다. 지난 40여 년 동안 5월은 한국인들에게는 단지 열두 달 중 하나의 이름만은 아니었다. '광주 민중항쟁'이라고도 불리고 '광주 민주화운동'이라고도 하는 5.18 때문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해마다 5월이면, 이 땅에 사는 누구든 '민중', '민주주의', '정의' 같은 커다란 말들을 한 번쯤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올해는 좀 더 유별나다. 새해 벽두부터 광주 민중항쟁이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정신적 토대로 헌법에 선명히 기입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월 4일 광주를 방문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수록하는 것에 적극적으로 찬성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을 제외한 다른 정당들이야 오래 전부터 5.18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는 개헌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게다가 제22대 총선으로, 그런 입장이 분명한 정당들이 국회 의석의 거의 2/3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3.1, 4.19에 이어 5.18을 언급하는 헌법 전문이 채택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우리는 다시 한 번 물어야 한다. "그럼 그 '5.18 정신'이란 무엇인가?" 물론, 대체로 틀리지 않은 교과서적 답변들이 준비돼 있다. '불의와 폭력에 맞선 저항 정신', '민주주의를 지키려 한 시민들의 자발적 항쟁', '동료 시민의 생명을 내 목숨처럼 여긴 공동체 정신' 등등.

그러나 이런 숭고한 말들로도 여전히 잘 잡히지 않고 다 담지 못하는 광주 민중항쟁의 얼굴들이 있다. '광주 민주화운동'이 1987년 6월 항쟁을 낳고 제6공화국을 탄생시켰다는 매끈한 서사만으로는 좀처럼 알아채기 힘든 또 다른 얼굴들이 있다. 전 민주노동당 중앙연수원장 황광우가 편저한 <시민군 "잊지 않겠습니다!": 300인의 육성으로 듣는 오월 이야기>(한출판, 2023, 이하 <시민군>)는 바로 그 얼굴들을 망각으로부터 길어내려 한다.

▲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4일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의젓하고 당당했다"

<시민군>은 무참히 희생당하거나 항쟁에 나선 이들의 육성을 모은 책이다. 이미 그런 책이 많지 않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찾기 힘들다. 목격자, 참여자의 구술을 모은 방대한 자료들이 있기는 하지만, 전문 연구자 아닌 이가 접근하기 어렵다. 평범한 독자들이 이제껏 접해온 서적은 예외 없이, 증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재구성한 르포르타주이거나 창작물이었다(대표적으로, 황석영 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창비, 2017; 임철우, <봄날>, 전5권, 문학과지성사, 1997).

편저자 황광우는 그간의 구술 자료들에서 중요한 장면을 뽑아내고 새로 대담하여 얻은 내용을 더해 5월 18일부터 5월 27일까지 열흘간 숨 가쁘게 전개된 역사를 시간 순으로 정리했다. 하루가 끝날 때마다 망월동 묘역에 묻힌 그날의 희생자들이 비문(碑文)과 함께 소개된다. 오월 광주를 기록한 문헌을 볼 때마다 늘 그렇지만 이 책도 한 장, 한 장을 넘기는 것이 고통스럽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잔인함과 극악함이 읽는 이의 넋마저 지옥 한 가운데로 몰아넣는다.

그럼에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결국은 마지막 장까지 내달리게 된다. 같은 인간, 게다가 같은 동포가 만들어낸 지옥을 딛고 일어서는 또 다른 인간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시민군>은 이를 다른 어떤 기록보다 더 생생하게 전달한다. 느닷없는 민간인 학살에 어리둥절해 하고 절규하다 마침내 무장 반격에 나서고 자치를 시도하는 '시민군'의 모습이 그들 자신의 육성으로 전해진다. 그렇기에 유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그만큼 더 진실의 무서운 힘으로 육박한다.

무엇보다 편저자가 <시민군>을 펴내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계기 자체가 그러하다. 2021년, 전남도청을 마지막으로 지키다 쓰러진 시민군 중 한 사람인 윤상원 열사(민주학생투쟁위원회 대변인)의 일기를 책으로 내는 작업을 하던 황광우는 한 지인으로부터 다음 같은 말을 들었다고 한다.

"어이, 광우. 항쟁으로 유명을 달리 한 무명용사들, 총을 들고 싸운 항쟁의 주역들에게도 관심을 가져 주소." (<시민군> 489쪽)

이 충고가 편저자에게는 벼락같은 깨침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시민군 중 학생운동가 출신 인물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것도 5.18의 진실을 한 가지 색깔로 덧칠해버리는 일일 수 있었다. 실제로 희생자와 시민군 대다수는 "불우한 이웃을 보면 짠한 마음이 솟는 분들, 화순과 해남, 장성과 보성에서 자랐으나 먹고살 것이 없어 광주에 올라온 전라도 촌놈, 변변한 직업도 없이 떠돌던 주변인,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막일하던 일용노동자"(9쪽)였다. 그래서 <시민군>을 세상에 선보이는 작업이 시작됐다.

덕분에 우리는 항쟁의 중요한 순간마다 빠지지 않고 출현하는 일신방직과 전남방직의 여성 노동자들과 마주하게 된다. 유신 말기에 섬유산업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던 민주노동조합운동의 연장선에서 그들은 항쟁에 누구보다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그래서 당연하게도 희생자 역시 나왔다. 또한 우리는 시위대가 공수부대에 맞서기 위해 아세아자동차 공장에서 장갑차를 빼내려 할 때 말없이 이를 도와준 노동자가 있었음도 알게 된다.

그리고 한 생존자의 다음 같은 일갈도 건너듣게 된다. 그 유명한 '서방파'에 속한 '주먹'이었다가 시민군에 자원했고 이후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김태찬 씨가 편저자에게 한 말이다.

"오월은 공동체였잖아요. 이렇게 함께 죽자고 외쳤잖아요. 함께 밥을 먹고 피를 나누었잖아요. 당시 상무대 영창 한 방에 150명이 수용되었는데, 모두가 옴에 걸려 고생했어요. 그런데 학생과 일반인을 분리 수용하자는 거예요. 그렇게 2, 3호실은 학생과 지식인, 1, 4, 5, 6호실은 우리 같은 민초들이 수용되었죠. 누가 분리 수용을 요구했는지 아세요? 이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영창에서 그대로 재연되었어요.

오월에는 두 부류가 있습니다. 지금도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분이 있고, 지금까지 오월의 소 뼈다귀를 우려먹는 사람. 저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내 성미를 알기에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습니다. 동지는 간데없고[라고 노래하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말던가, 광주 민중항쟁에서 민중을 빼던가." (491쪽)

또 다른 시민군 증언자 김종배는 "영창생활과 재판과정에서" "인텔리들은 지극히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반면 "오히려 사회 밑바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 의젓하고 당당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447-448쪽)고 비슷한 기억을 꺼낸다. 이런 장면과 회고가 <시민군> 전체를 관통한다.

사실 광주 민중항쟁의 이런 측면은 오래 전부터 주목받은 바 있다. 광주에서 오랫동안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명망가나 대학생은 의기소침하여 투항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학살에 대한 분노를 계기로 항쟁에 참여한 노동자와 가난한 시민들은 반역도당의 폭력에 맞서 끝까지 싸우려 했다. 30여 년 전쯤에는 이런 사실을 마르크스주의의 틀로 설명하려는 젊은 운동가들도 꽤 있었다. 그 중 대다수가 지금은 양대 정당 중 어느 한 쪽에 줄을 대며 이 사회의 새로운 주류가 되어 있지만 말이다.

아니, 이런 에피소드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긴급한 것은 헌법 전문에 실려야 할 '5.18 정신'의 핵심에, 오래 되고 단단한 계급 불평등 구조에 대한 항의와 전복이 있음을 잊지 않는 일이다. "노동3권을 보장하라"와 "전두환을 찢어죽이자"를 함께 외친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외침이 오월 광장에 메아리치고 있었고, "주먹밥을 해주며 등을 토닥여준 아주머니들 때문"에 "살아생전 처음으로 사람 대접을 받는다"(490쪽)고 느낀 이들이 있었음을 또렷이 기억하는 일이다. '5.18'을 헌법 전문에 포함하게 될 민주공화국은 이 기억을 과연 어떠한 새로운 질서로, 미래의 일상으로 구현해낼 것인가?

▲ 광주 남구 광주공원에 5·18 시민군을 상징하는 김군 동상을 지나가는 시민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나라가 엎어진" 그곳에 시민군이 있었다

한데 이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더 있다. 그것은 <시민군>이라는 제목 자체다. 이 책은 오월의 주역이 시민군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일부 몰지각한 극우파가 '무장했다'는 사실만으로 불온시하는 그 시민군 말이다.

이런 억지에는, 이미 헌법 전문에 박혀 있는 '4.19'를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4월 혁명 와중에도 경찰의 발포에 맞서기 위해 서울 시민 일부가 총기를 탈취해 무장했다. 시민군은 이때부터 있었던 것이다. 다만 1960년 4월에는 하나회 반역도당과는 달리 계엄군이 시민을 학살하기는커녕 경찰을 제지했기에 시민들의 무장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5.18 당시에 불과 20년 전 일이었던 이 경험이 광주에서 시민군이 신속히 조직되는 데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민군에게 '무장'이란 오히려 수단이었을 뿐이다. 시민군은 단지 총을 들기만 한 게 아니었다. '5.18 정신'을 말하며 항상 가장 먼저 들어야 할 이 '시민군 정신'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시민군>의 증언들 속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때 나는 집안은 안중에 없었다. 계엄군이 국민을 죽이는 것은 나라가 엎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인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군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우리 편이고 군인들만 막으면 우리가 생각하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김기광 씨 증언, 362쪽)

"나라가 엎어진 것". 그날 광주로부터 15년이 지난 뒤에야 대한민국 사법부는 1980년 5월에 "나라가 엎어져" 있었다고, 그때 '국가'라 참칭한 자들이 실은 '반란도당'이었다고 판결했다. 숱한 목숨이 쓰러지고 무정한 세월이 지나고 난 뒤에야 이 사회의 엘리트들이 못내 인정한 그 진실을 광주의 한 민초는 간파하고 있었다. "나라가 엎어졌다."

시민군이란 바로 그런 순간에 '있어야만 하는' 존재였다. 민주공화국의 근거인 헌법이 유린되거나 작동하지 않을 때에 헌법의 유일한 실체는 헌법 제정 주체인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다. 시민군이란 그런 시민들의 조직적 표현이며, 붕괴된 민주공화국이 재건될 단 하나뿐인 토대이자 출발점이다.

실제로 이런 시민군의 형상, 최후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쓰러져 간 시민군의 기억이 7년 뒤에 반도(叛徒)들의 지배를 끝내고 새 공화국을 열었다. 제6공화국에 그나마 민주주의의 요소들이 잠복해 있다면, 그것은 모두 1980년 5월 27일 새벽, 광주 전남도청에서 시민군의 결단이 일으킨 유장한 물결 덕택이다.

헌법 전문에 '5.18'이란 말로 각인돼야 할 것은 다름 아닌 이런 시민군의 형상이다. 이 형상은 오늘날 기후 급변에 대한 어떤 진지한 대응도 방기하거나 유예하는 정부에 기대지 않고 생존과 전환을 위해 나서는 젊은 세대, 오월 광장의 여성 노동자들처럼 '몫 없는 이들'의 연대를 통해 계급 불평등에 맞서는 노동자들, 극한 대결의 연극 놀음을 벌이면서도 실은 현상 유지에 골몰하는 양대 정당 바깥에서 미래의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가려는 시민들 속에서 거듭 부활하고 있다. 그때 그랬듯이 우리 시대에도 민주공화국은 시민군들에 의해 재건될 것이다.

이런 오늘날의 시민군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40여 년 전 시민군의 한 전형적 삶을 소개하는 <시민군> 속 한 단락을 인용하며, 글을 끝맺고 싶다.

"박용준은 1956년 태어났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른다. 광주영신원에 입소하였다. 서석초등학교를 나와 숭일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신문을 배달하였고, 구두를 닦았다. 숭의실업고등학교에 들어갔다. 고아로서 고단한 삶을 살았다. YWCA 신용협동조합에서 예금 수금 업무를 맡았다. 사무실에서 잠을 자고, 라면으로 식사를 때웠다. 김영철이 살던 광천동 시민아파트로 옮겼다. 박용준은 <투사회보>를 제작했다. 그는 글씨를 잘 썼다. 그는 철필로 등사원지를 작성하는 필경을 자임하였다. 26일 밤, 마지막 일기를 썼다. "하나님, 이 조그만 몸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당신 앞에 내놓겠습니다." 5월 27일, YWCA 2층 창가에서 안면부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471쪽)

※ 덧붙여 : 아쉽게도 현재 <시민군>은 인터넷 서점을 통해서는 구매할 수 없습니다. 다만, 5월 17일 저녁 6시에 서울 노무현시민센터에서 황광우 작가가 함께 하는 출간 기념 행사가 열립니다. 관심 있는 많은 분들의 참석 바랍니다.

장석준 출판&연구집단 산현재 기획위원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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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흥 “중국, ‘반 서방’ 대외전략 추진”

통일뉴스 월례강좌서 “김정은 하반기 베이징 방문하면...”

  • 기자명 김치관 기자 
  •  
  •  입력 2024.04.29 18:55
  •  
  •  수정 2024.04.29 18:56
  •  
  •  댓글 0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지난 16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열린 ‘2024년 4월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새로운 국제질서의 출현과 중국의 대외전략’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지금 시진핑의 정책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향후에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유라시아, 중앙아시아, 러시아와의 협력을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까이고, 거기에는 동북 지역까지 연결이 됩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중국연구센터장은 지난 16일 오후 서울 전태일기념관 공연장에서 열린 ‘2024년 4월 통일뉴스 월례강좌’에서 중국 공산당 20차 대회(2022.10)와 시진핑 3연임(2024.3) 이후 변화에 대해 ‘새로운 국제질서의 출현과 중국의 대외전략’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정재흥 센터장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포위, 압박이 이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며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충돌 발생 이후에 이것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정재흥 센터장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포위, 압박이 이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자료 제공 - 정재흥]
정재흥 센터장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의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포위, 압박이 이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자료 제공 - 정재흥]

러시아는 이미 전쟁 중이고, 중국의 경우 “오커스(AUKUS, 미·영·호주 안보협의체)랑 쿼드(QUAD, 미·일·인도·호주 안보협의체)랑 한미일 안보협력, 이 3가지가 겹겹이 중국을 압박하고 봉쇄하고 포위하겠다는 것”이며, “이 압박의 축이 갈수록 커진다고 하면 긴장의, 갈등의 소위 말하는 물리적 충돌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라고 짚었다.

더구나 “한반도, 대만, 남중국해가 앞으로 가장 리스크가 커진다고 생각한다”고 우려를 표하고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 압박이 되면 당연히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이란과 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그 과정에서 “러시아와의 중국 교역액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 엄청나게 빨리 증가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 센터장은 특히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통해 “미국이나 유럽은 (러시아를) 적으로 생각하지만 중국은 러시아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됐고, 미국의 대 러시아 제재 동참 요구에도 불구하고 “인도를 비롯한 글로벌 사우스(Global Shouth) 국가들이 러시아랑 협력하겠다”는 ‘새로운 다극 질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경제 5국, 브릭스(BRICS)를 필두로 ‘글로벌 사우스’, 중국식 표현으로는 이란, 파키스탄, 북한 등을 포괄하는 ‘반 서방’ 진영이 대두되고 있다는 것. “지금 새로운 다극 질서가 출현했다”는 인식이다.

이같은 상황을 전제로 정 센터장은 “20차 당대회 이후에 중국의 대외전략이 많이 변했다”며 “중국이 유라시아라는 이 거대한 판을 갖고 새로운 정치·경제 질서를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정 센터장은 중국이 유라시아와 글로벌 사우스 내지는 ‘반 서방’이라는 거대한 전략 구상을 추진할 수 있게 된 배경으로 중국의 반도체 등 첨단기술과 14억 자체 시장에 더해 러시아의 값싼 에너지와 추가 시장이 결합돼 있고, 글로벌 사우스와의 교역 전망도 밝다는 점을 꼽았다.

중국은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중국이 적어도 사회주의 특색 사회주의 강대국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시진핑이라는 이 강력한 리더를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 체제”을 구축했고, “강권 정치,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그리고 훨씬 더 공정하고 평등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소프트 파워’, 담론에 힘을 쏟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핵심 대외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자료 제공 - 정재흥]
중국의 핵심 대외정책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자료 제공 - 정재흥]

실제로도 “미국이나 서방은 해 줄 수 없는 걸 지금 중국이 만들어주고 있다. 아프리카, 중동, 중아시아 지금 도로 닦고 인프라 닦고 뭐 이런 것들을 다 중국 자본이 들어가서 해주고 있다”며 중국의 일대일로가 지향하는 ‘서쪽’과 러시아의 ‘유라시아 경제연합체’가 교집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중국이 지금 일대일로에 대해 조정을 하고 있다”며 “옛날처럼 무조건 그냥 필요하다고 해서 돈 주는 게 아니라 정부가 전략적으로 봐서 필요한 부분만 집중해서 지원을 하고 이제는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상호 윈윈하는 구조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정 센터장은 “중국은 시진핑이라는 강력한 1인 지도체제가 형성이 돼 있다”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부친 쉬중신(習仲勳)은 중국 공산혁명의 주역 중 한 명이고, 부인 펑리위안(彭麗媛)은 군인이며, 정치적 고향은 중국 서북지역인 산시성(陝西省)이라고 적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월 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1차 회의 제3차 전체회의에서 표결을 거쳐 만장일치로 국가주석에 선출됐다.  [사진 출처 - https://english.www.gov.cn]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3월 중국공산당 총서기와 국가 주석으로 선출돼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다. [사진 출처 - https://english.www.gov.cn]

짱쩌민(江澤民) 주석 시기 주류를 이룬 상하이방(上海帮)은 대체로 태평양 연안지역 출신으로 미국, 일본, 한국 등 태평양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했다면, 시진핑 시기는 “장쩌민 때와는 다르게 중앙아시아, 유라시아, 러시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

정 센터장은 “지금 중국이 내부적으로 가장 큰 딜레마가 고령화 그리고 양극화, 빈부의 격차”라고 짚고 시진핑 주석이 ‘공동부유론’를 주창하며 부동산에 ‘브레이크’를 걸어 “지금 부동산 기업들이 도산하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전하고 이를 꼭 부정적으로 볼 사안은 아니라고 말했다. 거대 민영 자본에 대한 압박이나 사교육 통제 등도 이같은 맥락이라는 것.

“중국은 경제도 점진적으로 발전을 해 가면서도 이 사회의 어떤 모순 이런 것들을 또 해결해 가는 이게 쉽지는 않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쉽지 않다”면서 “황금만능주의라서 부정부패도 심했는데 이런 게 지금 많이 척결되고 있기 때문에 과거랑 다른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정 센터장은 사견임을 전제로 “중국이 얘기하는 이 사회주의가 정말 현대화되고 이게 어느 정도 경제적인 부를 갖춘 사회주의 담론이 된다면 자본주의보다 훨씬 더 경쟁력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의 일대일로의 키워드인 ‘유라시아’에는 북한도 포함된다. “지금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이며, 이례적으로 “지금 베이징에 나가 있는 리용남 대사 같은 경우는 대외경제무역상 출신”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중 친선의 해’를 기념하기 위하여 북한을 공식 친선방문하고 있는 자오러지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당 및 정부 대표단을 4월 13일 접견했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조중 친선의 해’를 기념하기 위하여 북한을 공식 친선방문하고 있는 자오러지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중국 당 및 정부 대표단을 4월 13일 접견했다. [자료 사진 - 통일뉴스]

뿐만 아니라 “북한 입장에서는 중국과 러시아가 자기의 어떤 확실한 우군으로서 이게 확보가 된다고 하면 적어도 안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이제는 안정을 저는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기류를 전했다.

중국과는 “동북3성의 지방 간의 교류 같은 거 이런 거를 더 확대시켜 나가고 그래서 관광이라든지 기본적인 그러니까 이런 가공 무역 이런 쪽으로 아마 저는 얘기가 많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작년과 최근에 중국의 동북3성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하고 있다”고 주목했다.

나아가 “올해 조중 수교 75주년 행사를 지금 많이 한다”며 “앞으로 김정은 위원장이 하반기에 베이징을 방문한다고 하면 아마 꽤 큰 뭔가 좀 성과를 내려고 할 거라고 보여진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정재흥 센터장은 강연에 이어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래곤 통신원]

통일뉴스 월례강좌는 (사)평화3000이 후원하고 있으며, 5월 강좌는 오는 5월 14일 오후 6시 30분 전태일기념관 공연장에서 “AI와 진보”를 주제로 권태현 AI 전문강사가 강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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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논리' 읊어대던 민주당 의원들, 왜 반성 안 하나



[전강수의 경세제민] 지금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승자의 성찰'

 

24.04.30 07:15최종 업데이트 24.04.30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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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당선인들이 12일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당선인들과 함께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번 총선이 윤석열 정권에 대한 심판 선거였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지율 1%라도 할 일은 하겠다고 큰소리쳤던 윤석열 대통령조차 소통하겠다며 먼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아래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한 걸 보면, 그도 내심 국민에게 심판의 회초리를 맞았다는 것을 느끼는 듯하다.

 

정치평론가들은 윤석열 정권이 마침내 레임덕에 돌입했다고 진단한다. 승리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권은 환호하는 가운데 공세를 어떻게 펼칠지 전략을 짜느라고 고심이다. 다음 대선이 언제쯤 치러질지 예측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마음껏 승리의 기쁨을 노래해도 괜찮을 만한 상황이다. 그런데 필자는 그냥 이렇게 지나가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렵다.

 

민주당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보자. 이번 선거는 민주당이 이긴 선거인가, 정부 여당이 패배한 선거인가.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이 패배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 결과를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민주당이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의 계속된 실수와 군계일학과도 같았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활약이 겹쳤다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물론 이재명 대표의 끈질긴 유세와 민주당 후보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대세를 결정짓는 키(key)는 아니었다.

 

윤석열 정권 출범 후 민주당의 행태를 돌아보면, 이번 선거 승리의 공을 민주당에 돌리기는 어렵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번에 민주당이 거둔 승리는 본질적으로 어부지리다. 그러니 지금 민주당이 할 일은 개가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승자의 성찰'이 아니겠는가.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미래를 제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필자는 민주당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반성을 촉구하는 몇 가지 지적을 하려고 한다.

 

개혁 전사의 등 뒤에다 화살을 쏘아댔던 민주당 인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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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대 총선에서 12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조국혁신당 파란불꽃선대위 해단식이 지난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조국혁신당 사무실에서 열린 모습. 당선자 자격으로 꽃다발을 목에 건 조국 대표. ⓒ 권우성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민주당은 개혁을 천명하고 발걸음을 뗀 후 얼마 못 가서 처음 입장을 철회하고는 개혁의 전사로 나섰던 사람들을 뒤에서 공격하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질렀다. 핑계는 '중도층이 떠나간다', '역풍이 분다', '선거에서 지게 생겼다' 하는 것이었다. 이런 행태에 희생된 대표적인 인물이 조국 교수와 추미애 전 장관이다. 두 사람은 검찰개혁을 해 달라는 당부를 거절하지 못해서 독배를 받았다가 가족까지 견디기 힘든 어려움을 겪었다.

 

전투에서 병사와 장수가 쓰러지는 것은 어쩌면 불가피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자기편 장수가 적군의 화살을 맞고 쓰러졌는데 거기다 대고 등 뒤에다가 화살을 쏘아댄다면 그건 이상하기 짝이 없다. 지난 몇 년간 민주당 사람들이 바로 그런 짓을 했다. '조국의 강'이니 '추-윤 갈등'이니 하는 보수 언론의 조어를 아무렇지 않게 입에 담으며 쓰러진 개혁 전사를 매도하기에 열심을 내지 않았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지난 2월 13일 조국 교수가 신당 창당을 선언했을 때 민주당의 선거연합 추진단 단장 박홍근 의원은 페이스북 글에서 "절체절명의 역사적 선거에서 조 전 장관의 정치 참여나 독자적 창당은 결코 국민의 승리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불필요한 논란과 갈등, 집요한 공격만 양산시킬 것"이라며, "과도한 수사로 억울함이 있어도 진보개혁 세력 승리를 위해 자중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같은날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KBC '여의도 초대석'에 출연해 "조 전 장관의 신당에 대해 방치하거나 혹은 받아들이거나 하는 경우 이른바 우리가 어렵게 건너갔다고 생각했던 조국 사태, 조국의 강 이런 부분을 다시 되돌아가는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년 11월 추미애 전 장관과 조국 교수가 이번 총선에 출마할 뜻을 내비치자 '조·추·송(송영길까지 포함) 리스크'라는 말이 새롭게 회자하면서, 이들의 출마가 중도층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민주당 안에 팽배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21년 6월 2일 송영길 당시 민주당 대표는 기자회견을 열어 조국 교수 대신 사과하는 '촌극'을 벌였다. 그해 12월에는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까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는 여전히 우리 당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고 비판받는 문제의 근원 중 하나"라며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했으니 당시 민주당 분위기가 어땠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나놓고 보니 어떤가. 이번 총선 과정에서 과연 '조·추·송 리스크'가 작용했는가. 세 사람 때문에 중도층이 국민의힘 쪽으로 돌아서는 역풍이 불었는가. 민주당 인사들이 걱정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다수의 국민은 '조국의 강'이 아니라 '윤석열의 강'이 문제였고 추미애 전 장관의 지나친 고집이 아니라 윤석열 총장의 '검찰 쿠데타'가 문제였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총선 과정 내내 소위 중도층 중 다수가 조국 대표의 선명한 입장에 열렬히 환호했고, 지금은 추미애 당선인의 국회의장 취임을 지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지켜보면서 지난 몇 년간 조국의 강, 추-윤 갈등 운운했던 민주당 사람들은 마음이 찔려야 마땅하다. 지금쯤이면 그때 오판했던 사람들 가운데 누구든 한 사람이라도 나서서, 우리가 조·중·동의 선전을 내면화하는 바람에 큰 잘못을 범했다고 고백해야 하지 않겠는가.

 

감세 정책에 합의해 주고는 웬 부자 감세 비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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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표 국회의장이 지난 1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 도중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대통령실 경호원들에 의해 강제로 퇴장당한 데 대한 입장표명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윤석열 정권의 감세 정책으로 인해서 세수가 격감하고 국가부채가 급증하고 있다. 법인세 세율 인하로 2023년 법인세 세수는 2022년보다 23조 1509억 원(22.4%)이나 줄었고, 종부세 완화로 2023년 종부세 세수는 2022년보다 2조 2024억 원(32.4%) 감소했다. 그 결과 국세 수입이 예산보다 56조 4000억 원이 줄고 국가 채무는 59조 3000억 원이 늘어나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은 윤 정권이 부자 감세를 부르짖다가 역대급 세수 부족을 초래했다고 맹렬히 비난한다.

 

여기서 한 가지 이상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정권이 무리한 감세 정책을 밀어붙일 때 민주당은 무엇을 했을까. 윤 정권의 법인세 감세와 종부세 완화는 법률 개정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일이다. 흔히 비난하듯이 시행령만 고쳐서는 안 되는 일이어서 민주당이 합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는 말이다. 심히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은 윤 정권의 법인세 감세와 종부세 완화에 동의했다. 국회 의석 180석을 가지고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법률 개정에 합의했던 것이 바로 민주당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윤 정권이 부자 감세를 하는 바람에 현재의 세수결손이 초래됐다고 비난할 자격이 없는 셈이다.

 

여기서 문제적 인물로 등장하는 것이 김진표 국회의장이다. 그는 국회의장이 되기 전부터 종부세를 상위 2%에게만 부과해야 된다고 주장하면서 민주당 안에서 종부세 후퇴의 분위기를 조성했고, 국회의장이 된 다음에는 법인세 개편과 관련해 2년 유예를 전제로 국민의힘의 개정안에 찬동하는가 하면 최고세율을 1% 포인트 낮추는 중재안을 제안함으로써 법인세 과세표준 전 구간 세율을 1% 포인트씩 낮추는 일에 물꼬를 텄다. 이런 인물을 국회의장으로 뽑았으니 민주당 의원들의 잘못이 크다.

 

병립형 주창자들, 다 어디에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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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지난 2월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중앙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유성호

 

작년 연말부터 여의도 정가를 들썩들썩하게 만들었던 최대 이슈는 선거제도다. 병립형이니 연동형이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기존 제도가 연동형이었으니 민주당으로서는 가만히 있으면 연동형으로 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지만, 민주당 안에서 선거제도를 병립형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의견이 표출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민주당 지도부가 거기에 적극적으로 동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잠깐, 병립형이 뭔지 연동형이 뭔지부터 알아보자. 둘 다 국회의원 비례대표 제도의 유형인데(비례대표 제도 자체가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가 의석수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전자는 정해진 비례 의석수를 각 정당의 정당 지지율에 따라 단순 배분하는 제도이고, 후자는 각 정당의 정당 지지율에 따라 지역구와 비례를 합한 정당 의석수를 미리 정하고, 각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가 거기에 미달하는 경우 비례의석으로 그 차이를 메워주는 제도다.

 

우리나라에서는 차이 전체가 아니라 절반만 메워주고, 메워주는 의석수가 미리 정해진 총 비례 의석수(현재 46석)를 초과할 때는 메워주는 의석수를 비례적으로 축소하기 때문에 완전한 연동형이 아니다. 그래서 '준' 자를 붙이는 것이다.

 

2020년 병립형으로 유지하던 비례제도를 준연동형으로 바꾼 데는 이유가 있다. 소선거구제에서 지역구 방식으로만 국회의원을 선출하면 득표율과 의석수 비율 간에 큰 괴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를 병립형 비례제도로 보완하더라도 괴리는 거의 해소되지 않는다(특히 우리나라처럼 전체 비례 의석수가 적을 때는 더 그렇다). 정당 득표율은 제법 높지만 모든 지역구에서 1위를 하지 못해서 지역구 의석을 1석도 얻지 못한 정당은 병립형 비례제도 하에서는 유권자의 지지에 한참 미달하는 의석수밖에 얻지 못한다.

 

준연동형 비례제도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 비율 간의 괴리를 완화해 선거의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되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상당한 정당 지지율을 얻는데도 불구하고 의석수를 제대로 얻지 못한 진보 정당들이 약진하리라는 기대도 있었다. 한마디로 당시의 제도 변화는 '정치개혁'의 일환이었다.

 

선거제도의 병립형 회귀는 투표의 비례성을 높이려는 정치개혁의 취지에 역행하는 것이었고 민주당의 지역구 의석 확보에도 불리한 것(지역구 후보 난립, 약속 위반에 대한 비난 등을 생각해보라)이었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절대로 선택해서는 안 되는 방향이었다. 하지만 민주당 지도부는 병립형 회귀로 기울었다. 이는 비례대표 의석 몇 개를 더 확보하려는 목적에 불과했고, 만약 그랬다면 비례대표 몇 석을 더 확보하려다가 지역구에서 훨씬 많은 의석을 잃을 수밖에 없었으니 소탐대실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민사회와 나라를 걱정하는 지식인들의 눈물 어린 노력이 있었다. 마침내 이재명 대표는 마음을 돌려서 현행 연동형 제도를 유지하겠다고 결단했다.

 

필자가 듣기로 민주당 최고위원 대부분이 병립형 회귀에 찬성했다고 한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가 연동형 유지 결단을 내린 다음날인 2월 6일, 그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에 나와서 자기는 "그런 말 했던 기억이 없다"며 껄껄거렸다. 게다가 자신이 '이 시대 참 연동형 주장자'라고 강변하기까지 했다. 실수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해야 하는 자리에서 '오리발'을 내밀다니 참으로 염치없는 짓 아닌가.

 

사실, 이 제도가 없었다면 이번 총선에서 조국혁신당의 약진은 불가능했을 것이고 윤석열 정권 심판의 열기도 그처럼 고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민주당이 지역구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쯤은 민주당 인사들은 압승의 토대가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도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병립형 회귀를 목소리 높여 주장했던 사람들 중 누구라도 나서서 그때 '잘못 판단했다. 미안하게 생각한다'라고 고백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민주당에 꼭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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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당선자(경기 하남시갑)가 지난 19일 오전 서울 강북구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64주년 4.19혁명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현재 민주당에서 최대 이슈는 국회의장 선출 문제다. 과거 같으면 최다선 고령자 우선으로 조용하게 결정되었을 텐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출마자가 여럿 등장해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이를 두고 당내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겠으나, 그 와중에 민주당의 '고질병'과도 같은 이야기가 또 흘러나오고 있어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차기 국회의장 유력 후보인 추미애 당선인을 두고 추-윤 갈등의 당사자라는 둥, 정권교체에 책임이 있다는 둥 철 지난 레코드를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니 말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보수 언론과 국민의힘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지금 민주당에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승자의 성찰'이다. 이것이 없이는 민주당은 또 한 번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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