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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3개월 보장했지만...아이는 하루도 머물지 못했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 자리는 있는데 왜 아이들은 시설로 가나

26.04.22 06:50최종 업데이트 26.04.22 06:50

베이비박스 내부 모습. 김지영

2012년 8월 6일 새벽, 입양 절차에 출생 등록을 강제한 개정 입양특례법이 시행된 다음 날이었다. 베이비박스 문이 열렸다. 강보에 싸인 아이가 있었다. 쪽지에는 법 시행에 따른 출생 등록을 할 수 없었다고 적혀 있었다. 거기 함께 써진 이름은 민수(가명)였다.

절차에 따라 경찰과 구청에 동시 신고했다. 구청 보고를 받은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아동일시보호소에서 아이를 데려갔다. 아이는 일시보호소에서 3개월 동안 머물 법적 권리가 있었다. 소장 권한으로 한 번 더 연장하면 최장 6개월까지 가능했다.

법에 따르면 그 기간 동안 지자체는 보호자를 찾는 15일간의 공고 기간을 거친 후 성본창설을 법원을 통해 완료한다. 동시에 아동복지심의위원회(현 사례결정위원회)를 열어 아동복리에 가장 적합한 보호조치를 결정한다. 유엔아동권리협약과 헤이그협약에 따르면 해당 아동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결론은 입양이나 위탁 등의 가정형 보호다.

시설보호는 가장 최후의, 어쩔 수 없는 결론이어야 한다. 심지어는 해외 입양까지 고려한 끝의 보호조치가 시설이다. 3개월이면 이 모든 법적·행정적 절차를 마무리하는 데 충분한 기간이다.

하지만 민수가 일시보호소에 머문 기간은 24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민수는 곧바로 장기양육시설로 인계되었다. 해당 시설장은 곧 민수의 법적 후견인이 되었다. 민수에 대한 모든 보호 권한과 권리는 국가에서 민간으로 이첩되었다. 공적 책임은 이로써 간단하게 종결되었다.

민수가 시설에서 사는 동안 국가는 그 아이를 다시 찾지 않았다. 아이의 보호조치가 옳았는지,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다른 보호조치의 가능성은 없는지 국가는 묻지 않았다. 국가가 한 일은 민수에게 할당된 보조금을 시설장을 통해 입금하는 일이 전부였다.

올해 15살 중학생인 민수는 지금도 시설에 살고 있다. 이 이야기는 민수만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이 나라 아동일시보호소의 실제 작동 방식이었다.

제도의 공백이 아이들 삶에 깊은 상흔

당사자의 알권리를 위해 만든 좋은 법이 현실에서는 공식적으로만 1500여 명의 유기아동을 양산했다.김지영

1961년 12월, 아동복리법이 제정됐다. 아동일시보호시설이 법정 시설로 처음 명시된 순간이다. 조사하고 판단하는 동안 보호받을 권리가 보장되는 곳. 설계 자체는 옳았다. 그러나 이후 60년 동안 시설 수는 2개에서 18개로 늘었지만 아직도 미설치 지자체가 남아 있고 설계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민수가 베이비박스에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2012년 입양특례법은 입양을 위한 출생 등록을 의무화했다. 신원 노출을 꺼리는 생모들에게 출생 등록은 또 다른 벽이었다. 법 시행 전부터 입양 현장에서는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법 동시 입법을 요구했다.

당사자의 알권리를 위한 출생 등록을 원천적으로 반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법의 사각지대를 만들게 분명했다. 유기아동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과는 2015년 253명, 베이비박스 역대 최고 기록이었다.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2024년 7월, 보호출산법이 시행됐다. 그해 유기아동 수는 30명으로 급감했다. 직전년도인 2023년 유기아동 수는 88명이었다. 12년 전 만들어졌어야 할 법이었다. 그 사이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2000명 넘는 아이 중 1500여 명이 민수와 같은 전철을 밟았다. 제도의 공백이 아이들 삶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아동복지법 시행규칙 제26조 제1항은 명확하다. 아동일시보호시설의 보호기간은 3개월 이내로 한다. 시설장이 특별한 사유를 인정할 경우 시장·군수·구청장의 승인을 받아 3개월 범위에서 1회 연장 가능하다. 최장 6개월. 이것이 법이 유기아동에게 약속한 시간이었다.

민수에게도 그 시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었다. 기간 동안 상담·건강검진·심리검사·가정환경 조사가 이루어져야 했다. 지금의 사례결정위원회인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이 결과를 바탕으로 민수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보호조치를 결정해야 했다. 아동일시보호시설은 단순한 보호시설이 아니다. 판단의 관문이다. 이 관문이 작동하지 않으면 아이는 판단 없이 시설에 수용된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아동은 962명이었다. 감사원이 이 시기를 들여다봤을 때 나온 수치는 단 하나로 귀결된다. 시설보호 96.6%. 가정보호로 이어진 아이는 3.4%에 불과했다. 베이비박스 아이들의 보호기관인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아동일시보호소의 변명은 늘 '전문인력과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10년 넘게 아이를 양육시설로 밀어내

정부는 위탁가정 우선보호로 방향을 잡았지만 위탁가정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일시보호소의 역할이 아직은 필요한 시점이다.김지영

2015년 베이비박스 입소 최고점 당시 정원 100명 대비 현원 79명이었다. 그러나 이 수치에는 함정이 있다. 베이비박스 아동은 예외 없이 0세 신생아다. 전체 정원이 아니라 영유아실 침상과 24시간 전담 보육 인력이 기준이어야 한다.

큰 아이들의 방이 비어 있어도 영유아실은 늘 포화였다. 더 결정적인 것은 2021년이다. 학대 피해아동 즉각분리 제도가 도입돼 분리 수요가 법적으로 확대된 바로 그 해, 정원이 100명에서 70명으로 30% 축소됐다. 수요는 늘리고 공급은 줄였다.

서울아동복지센터는 아이를 받은 지 24시간도 안 되어 전국 각지의 양육시설로 밀어내는 강제 순환을 10년 넘게 반복했다. 사실상 방치였다. 구조적 원인은 있었다. 정원은 처음부터 부족했고, 시설에서 가정으로 돌아오는 재배치 경로가 법적으로 없었다. 그리고 단기 순환 인력이 아무 의문 없이 아이가 오면 비어 있는 시설에 전화해서 인계하는 전임자 방식을 반복했다.

감사원은 2019년 보건복지부에 통보했다. "입양 등 가정보호 우선의 원칙이 지켜지도록 절차와 기준을 마련하라." 베이비박스 최성기는 2013~2015년이었다. 감사는 5년이 지나서야 이뤄진 것이다. 복지부는 이에 대해 '가정보호 우선 원칙을 실질화하기 위한 업무 절차 개선과 기준 마련을 추진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지만 7년 후인 지금까지 현장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뒷북 행정마저 선언에 그칠 뿐이었다.

서울의 문제가,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구조라면 지방은 층위가 다르다. 2024년 기준 전국 아동일시보호시설 20개소, 정원 691명이다. 그러나 현원은 248명, 정원 충족률은 35.9%에 불과하다. 17개 광역시도 중 세종 충북 충남 경남 4개 시도에는 전문 시설 자체가 없다.

미설치 지역에서 유기아동 또는 학대아동이 발생하면 경로는 단순해진다. 경찰 신고 → 지자체 인계 → 타 지역 시설 이송 또는 즉시 아동양육시설 배치. 판단의 공간이 없으니 판단도 없다. 상담·심리검사·가정환경 조사는 건너뛰어진다.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느냐가 아이의 첫 행선지를 결정한다.

일시보호시설이 감당해야 하는 수요는 두 종류다. 유기 등 비학대 보호대상아동의 일시보호 조치(2023년 308명)와 아동학대 피해아동의 가정 분리 보호다. 2024년 학대 가정 분리는 2292건으로 이 중 즉각 분리만 1575건이었다. 합치면 연간 2600건이 넘는다.

학대피해아동의 일시보호가 제도적으로 강화되었지만 장시양육시설 중심의 뿌리 깊은 보호관행으로 일시보호소의 역할이 제한적이다.김지영

2024년 정원 691명에 현원 248명. 충족률 35.9%다. 2022년 223명이던 정원은 691명으로 늘었다. 그런데 실제 입소 아동은 248명에 그친다. 정원의 35.9%만 채워졌다는 것은 둘 중 하나다. 아이들이 일시보호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장기 시설로 이송되거나 입소 직후 즉시 전원 되거나.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다. 일시보호소는 판단의 공간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자리가 없다는 변명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2024년 피해 아동 즉각 분리는 1575건으로 2022년(1153건)보다 422건 더 늘었다. 수요는 늘었고 정원도 늘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머물지 않는다.

시작부터 국가로부터 배제된 아이들

아동보호선진국은 일시보호 정책도 위탁가정 제도를 활용한다. 우리나라도 시설 중심에서 가정 중심의 보호제도로 방향을 틀었지만 기본적인 인프라 자체가 부실하다.김지영

긴급 보호가 필요한 아동을 어떻게 처음 맞이하느냐. 나라별 답은 극명하게 갈린다. 일본은 한국과 구조가 가장 유사하다. 아동상담소 내 부설 일시보호소(시설형)가 기본이고, 가정위탁 비율은 12%다. 일본의 아동학대 상담 건수는 33년 연속 증가세다. 시설 중심 구조가 문제를 풀지 못한다는 증거가 33년째 쌓이고 있다.

영국은 1946년부터 방향을 틀었다. 지금 영국의 긴급보호 1차 경로는 긴급 위탁가정이다. 호주는 전체 보호아동의 93.5%를 가정위탁으로 보호한다. 한국이 1961년 시설 체계를 법제화할 때, 영국은 이미 15년 전에 그 방향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한국은 가정위탁 제도 활성화도 아직은 앞이 안 보이는 암담한 현실이다.

지금으로서는 일시보호소가 제 기능을 해야 그다음 단계가 열린다. 아동복지심의위원회는 위탁·입양·원가정 복귀·시설 입소 중 무엇이 이 아이에게 최선인지를 심의하는 기구였다. 위원회가 심의하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 상담 기록, 심리검사 결과, 가정환경 조사 보고서. 이것은 일시보호소에서 체류 기간 동안 만들어진다. 아이가 하루 만에 나가면 자료도 없다. 심의위원회는 빈 서류를 앞에 두고 앉거나 아이가 지나간 자리에 도장만 찍었다.

일시보호소가 제 기능만 했더라도 달랐을 수 있었다. 3개월이라는 법적 시간 안에 상담이 이루어지고 심리검사가 진행됐다면. 아동복지심의위원회가 이 아이에게 가장 이익이 되는 보호조치를 심의할 수 있었다면. 민수는 충분한 기간 보호받으면서 그 결정을 기다릴 수 있었다. 하지만 국가는 민수를 시설로 보내고 방치했다. 시설보다 나은 보호 환경에 대한 고려는 아예 없었다.

민수 같은 아이들의 운명이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었다. 2012년 입양특례법 시행 이후 2024년 보호출산법 시행 이전까지, 그 12년 사이가 가장 불운한 시기였다.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온 2000명 넘는 아이들이 법적 권리를 박탈당한 채 대부분은 시설로 떠넘겨졌다.

일시보호소가 전혀 작동하지 않은 결과였다.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아동일시보호소의 10년의 태만과 무능은 그곳을 거쳐 간 아이들의 삶으로 직결되었다. 자그마치 백 년을 살아가야 할 아이들의 인생이 시작부터 국가로부터 배제되었다.

그리고 지금, 일시보호소는 여전히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보호출산법 시행 이후 급감한 유기아동만의 문제가 아니다. 학대·방임·가정위기로 긴급 보호가 필요한 모든 아동에게 이 구조는 수십 년째 같은 방식으로 실패하고 있다. 아동복지법 시행규칙 제26조 제1항의 3개월은 아이들의 권리였다. 그걸 단 하루 만에 박탈당했던 1500여 아이들의 삶은 지금 시설 안에 있다.

덧붙이는 글 [주요 출처]

아동복지법 시행규칙 제26조 제1항(보건복지부령)

보건복지부, '2024년 아동학대 연차보고서', 2025.8

보건복지부, '2024년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2024.12.31. 기준), 2025

보건복지부, '2023년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 2024

보건복지부, '2023년 아동복지시설 현황'(2022.12.31. 기준)

감사원 2019년 감사결과(OhmyNews·한국일보 보도)

서울특별시아동복지센터 정원·현원(2014~2023) - 보건복지부·서울시 통계연보 기반

국가기록원, 아동복지 분야 주제검색 - 아동복리법(1961)·아동복지법 개정 경과

Borgen Project, 5 Facts About Japan's Foster Care System, 2022

Martin James Foundation, Exploring Foster Care: A Global Perspective, 2023

ISP Fostering(영국), Emergency Foster Care 운영 현황

UN General Assembly, Guidelines for the Alternative Care of Children (A/RES/64/142), 2009

#아동일시보호소 #서울시아동복지센터 #보호출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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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경찰, CU 화물연대 사망 사고 탑차 운전자 구속영장 신청···‘살인’ 혐의

수정 2026.04.22 08:42

진주물류센터 앞 집회 현장서 조합원 3명 들이받아

경찰, ‘미필적 고의’ 판단···운전자 “고의 없었다”

‘화물연대 사망 조합원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촉구 결의대회’가 열린 지난 21일 오후 경남 진주시 정촌면 BGF로지스 진주센터 주변에 전날 발생한 차 사고의 화물차가 주차돼 있다. 연합뉴스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집회에서 조합원들을 차로 쳐 숨지게 한 혐의(살인 등)로 40대 비조합원 남성 A씨에 대해 구속영장 신청했다고 22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일 오전 10시 32분쯤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CU진주물류센터 앞 집회 현장 인근에서 2.5t 탑차를 몰고 화물연대 조합원 3명을 들이받은 혐의를 받는다.

이 사고로 50대 조합원 1명이 심정지 상태에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고, 또 다른 조합원 2명도 각각 중상과 경상을 입었다.

수사전담팀을 구성한 경찰은 A씨가 트럭을 운전 중 이를 막는 피해자들을 충격하고 정차없이 계속 진행해 사망이나 부상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사고 당시 A씨를 특수상해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으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단해 살인 혐의로 변경해 적용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현장이 혼란스러워 빨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 차를 몰았을 뿐, 고의로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사고 직구 A씨를 특수상해로 긴급체포한 뒤 관련자 조사, 영상 또는 전자정보 분석 등의 집중수사를 벌여 혐의를 입증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전국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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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핵시설’ 논란에 순방 중인 李대통령 직접 ‘등판’

  • 김미란 기자

  • 업데이트 2026.04.21 12:07

  • 댓글 0

민주당 “팩트 드러나자 딴소리하는 국힘…지선 패배 그림자만 짙어질 것”

이재명 대통령이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북한 ‘구성 핵시설’ 발언 논란에 대해 “정 장관이 ‘미국이 알려준 기밀을 누설’했음을 전제한 모든 주장과 행동은 잘못”이라고 직접 반박했다.

해외 순방중인 이 대통령은 20일 ‘X’(옛 트위터)를 통해 “정 장관 ‘구성 핵시설’ 발언 이전에 구성 핵시설 존재 사실은 각종 논문과 언론보도로 이미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던 점은 명백한 팩트”라며 “대체 왜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 겠다”고 밝혔다.

<이미지 출처=이재명 대통령 'X' 캡처>

당사자인 정 장관 역시 자신이 북한 구성 지역의 핵 시설을 언급해 한미 정보 공유가 중단됐다는 취지의 <한겨레> 보도와 관련해,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와 올해 3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는 발언이 “느닷없이 문제가 되고 있는 사실이 매우 당혹스럽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같은 날 SNS를 통해 “작년 7월25일 통일부장관 취임 후 국내외 관계정보기관으로부터 핵시설 관련 정보보고를 일체 받은 적이 없다”며 “통일부가 보유하고 있는 일반정보와 제가 오랜 기간 스스로 체득한 북핵 일반상식에 근거해서 국민들과 소통하고 국회에 보고해 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보누출이라는 주장은 얼토당토않은 말”이라며 “정보보고를 받지 않았는데 무슨 정보누출을 한다는 말이냐”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한마디 없다가 이제 와서 한미 간 무슨 큰 이견이라도 있는 듯 부풀리며 정부를 공격하는 야당 등 일각의 행태도 참으로 보기 민망하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로 들어서고 있는 모습. 이날 정 장관은 '북한 구성시 핵시설' 발언과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사진제공=뉴시스>

관련해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1일 서면브리핑에서 “국민의힘은 ‘구성 핵시설’이 이미 과거에 각종 논문과 언론보도로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던 사안이라는 팩트가 드러나자 ‘문제의 본질은 해당 정보의 언론 노출 여부가 아니다’라며 또 다시 엉뚱한 주장을 내놨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힘을 향해 “더 이상 국가안보를 정략의 도구로 삼지 말라”며 “무너져가는 당 지지율을 만회할 탈출구로 기껏 꺼내 든 것이 색깔론이라면, 지방선거 패배의 그림자는 더욱 짙어질 뿐”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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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쏘아올린 '반미 자주', 새로운 상상력으로 꽃피우도록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4/22 08:40
  • 수정일
    2026/04/22 08:41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세진·이재호 열사 투쟁 40주년 학술토론회, "그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4.22 04:57
  •  
  •  수정 2026.04.22 05:03
  •  
  •  댓글 0
 
 
'김세진·이재호 열사 투쟁 40주년 학술토론회'가 21일 오후 3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세진·이재호 열사 투쟁 40주년 학술토론회'가 21일 오후 3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986년 4월 28일 오전 9시 서울 신림사거리에서 '반전! 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산화해 간 김세진·이재호 열사의 투쟁이 있었다.

두 사람은 서울대 83학번으로 23살이었다. 당시 현장에는 전방입소교육 대상자이자 이를 거부하는 대열에 나섰다가 온몸이 불덩이가 된 선배들을 지켜보며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쳤던 수백명의 85학번들이 있었다.

40년이 지나 그때의 85학번들은 환갑이 되었고, 김세진·이재호 열사는 23살의 영원한 청년, 사월의 불꽃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그들의 자식들이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그 사이 많은 것이 변하고, 또 변하지 않았다.

'김세진·이재호 열사 투쟁 40주년 학술토론회'가 21일 오후 3시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진행됐다.

'영원한 청년 김세진, 이재호가 시대에 묻다!'라는 학술토론회 주제는 40년 전 그날 '급진적'이고 '예각적'으로 폭발시킨 '반미·자주'의 지향이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곰곰히 되새기게 하는 화두였다.  

학술토론회에 앞서 '김세진, 이재호를 기억하는 서울대 85학번'들은 이날 △이스라엘의 침략행위와 미국의 폭주를 규탄한다 △우리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는 한국군 파병에 반대한다 △우리는 지금 벌어지는 학살에 눈감지 않고 전쟁반대, 평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겠다는 내용의 '반전반핵 전방입소 거부투쟁 40주년 서울대 85학번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앞으로 서명자를 늘려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공동성명에서 "그날의 투쟁은 파쇼정권의 군사훈련 강요를 거부하고, 80년 5월 광주 민주시민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에 맞선 외침이었다. 또한 그 진압을 묵인한 미군의 존재와 한국 주둔에 대한 공개적 문제제기였다"라고 짚고는 "민족대결, 전쟁연습, 군사훈련을 반대하며 온몸을 던졌던 그들이 40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 묻고 있다. 지금 당신들은 어떤 시대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 침묵하고 있는가?"라고 김세진·이재호 열사와 함께 한 '반미 자주'를 소환했다.

발표자들과 토론자 모두 뜨겁고 진지하게, 정성을 다해 자리에 임했다.

학술토론회는 변학문 평화너머 정책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이남주 성공회대학교 교수(반미·자주 투쟁 40년의 회고와 평가)와 △장창준 한신대학교 한반도평화학술원 특임교수(향후 자주 평화운동의 방향과 과제), △박아름 동국대학교 북한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자주평화운동의 저변 확대와 다각화 : 기후위기, 청년운동 등)가 주제 발표를 하고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 △나원준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김세진, 이재호 열사 40주년과 사회경제 분야 실천), △최은아 자주통일평화연대 사무처장(김세진, 이재호 열사 40주년, 자주평화운동의 과제), △전지예 평화주권행동 평화너머 공동대표(청년들은 새 질서의 주인이 될 수 있는가), △정단우 서울대학교 사회대 학생회장이 지정토론자로 나섰다.(이하 직함, 호칭 생략)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비평』주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 『창작과비평』주간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남주는 명확하게 반미 자주 지향을 드러낸 4.28투쟁 다음 날(4.29) 함석헌·이민우·문익환·계훈제·백기완·이돈명·김대중이 연명한 한국민주화를 위한 연락위원회 명의의 성명에서 '반미'라는 표현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고 지적하고는 "이 투쟁이 추구한 자주권의 확보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였으나 투쟁주체들의 의도와는 달리 당시 사회적 수용성과의 격차는 컸고, 이를 의식할 수 밖에 없었던 정치인들이나 전체 민주화투쟁에서 중심적으로 역할을 했던 분들은 정면으로 다루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또 "더 큰 문제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미국이 하나의 이데올로기 혹은 신화로 작용해 왔고 권위주의와 민주화 세력의 갈등이 최고조로 이르던 1987년 시점에서 이에 대한 이성적 토론이 가능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태을 돌파하지 못하고서는  한국의 자주권 문제에 대한 논의도 진전될 수 없었다"고 짚었다.

4.28투쟁을 거치면서 미국 문제에 대한 논의 공간이 넓어지고 한미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일부 진전이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반미자주'의 의제화가 어려워진 측면이 있었다고 진단했다.

△냉전체제 해체 이후 세계화 기획과 함께 진행된 미국의 패권이 강화되고 한국이 이의 주요 수혜자가 되면서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한국의 인식에 큰 변화가 있었고 △민주화 과정에 국가주의,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적 경향이 강화되면서 국가단위 기획이 될 수 밖에 없는 자주권 의제를 낡은 의제처럼 보이게 만들었던 것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주권을 의제화하기 위한 동력은 약화되었다"고 하면서 "이와 관련한 활동은 주로 개별적 사안에 대한 대응을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최근까지도 한국사회의 대전환 기획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흐름은 이른바 '진보정부'시기에도 큰 차이가 없었는데, 작전지휘권 반환 등의 시도가 없지 않았지만 적어도 수사적으로는 진보정부도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이남주는 이를 '반미자주 의제의 주변화'라고 표현했다. 

아무튼 한국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자주의 문제는 주요 의제로 제기해야 하는 당위도 있고, 40년전 반미 자주투쟁이 직면했던 곤경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 필요성과 절박성은 더 커지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폭넓은 논의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제는 충격요법에 의존하기보다 이러한 공간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식을 찾아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절대적 자주는 실현할 수도 없고 목표가 될 수도 없으니, 한미관계를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로 전환시키고 평화·안보·외교 영역에서 자주적 힘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자고 제안했다.

'작전지휘권 반환'이 그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작전지휘권 반환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면 외교나 내정 전반에서 한국의 자주적 역할을 높일 수 있고 한미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촉진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궁극적으로 분단체제가 유지되는 한 미국과의 관계 조정이나 한국의 국방·외교 자주권 강화와 이에 대한 사회적 수용성 사이의 격차는 계속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관계와도 복잡하게 얽혀있는 북의 적대적 두 국가론이 쉽게 철회되지도 않겠지만, "한국이 남북관계의 적대적 성격을 약화시키기 위한 적극적 노력을 한다면 국가관계로서의 안정성을 확보해 가면서 남북관계를 더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표시했다. 
 
자주와 남북관계 전환이 진짜 문제로 등장했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야 할 시점이니 추상적이고 원칙적 선언에 그치지 않고 국방·외교에서 자주성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모든 일에 앞서는 전제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자주와 평화'의 선순환을 만들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욱식은 토론문에서 "핵심은 '분단체제 극복의 새로운 상상력과 실천"이라고 하면서, 미국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 '친미 한국'과 '반미 조선' 구도의 분단체제가 적대적 관계의 중심축이라는 관점에서는 '조선 대 미국'에서 '조선 대 한국'으로 이동하고 있으니 이 지점에 역설적인 기회가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분단체제는 네가지 범주로 나눠볼 수 있는데, △최악은 냉전시대 존재했던 '통일지향적인 적대 관계' △최선은 매우 짧았고 당분간 복원 불가능한 '통일지향적인 우호관계' △북이 주장하고 한국이 거부하는 '적대적 두 국가'는 차악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관계지만 '평화적 두 국가'는 차선이다.

"이제는 차선을 도모할 때"라는 것이 요지이다.

정욱식은 세계적 범위에서 미국 패권이 약해지고 다극화 추구가 일어나고 있지만, 패권의 종말이 아니라 패권의 변질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라고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한 나라들"을 향한 미국의 난폭함을 염두에 두고 우리의 현실이 어떠한 지를 자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정부가 평화공존을 목표로 제시하는 정책방향이 북(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막혀 있는 가운데 군사력 강화를 동반하는 자주국방론을 표방하는 것은 "남북(한조)관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자주적 역량을 저해할 소지마저 있다"고 우려했다.

평화공존은 상호 군비경쟁을 완화하고 군비통제의 토대를 닦을 때 접근할 수 있는데, 이와 긴밀하게 연계되지 않는 자주국방론은 북의 '핵무력·재래식무력 병진'과 맞물려 군비경쟁 가속화로 흐를 수 있다는 것. 

최은아는 이남주의 4.28투쟁에 대한 평가에 대해 "당시 재야운동의 대표적 인사들조차 '급진적인 구호'로 치부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1986년을 기점으로 학생운동에서 본격화된 '주한미군 철수' 요구가 불과 2년만인 1988년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교회 선언'에서 공개 언급될 정도로 종교, 사회운동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는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거치면서 넓어진 민주화운동의 공간에서 그동안 금기시됐던 미국과 미군 문제에 대한 전면적 문제제기, 그리고 평화적 통일문제가 사회운동의 의제로 본격화된 것이며, 이후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대미 예속성과 불평등한 한미관계, 전쟁정책과 전쟁체제에 대한 투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또 "40년 전 김세진, 이재호 열사의 문제제기는 현 시점까지도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있으며, 자주와 평화를 실현하는 과제는 한국 사회에 여전히 상존한다"고 말했다.

특히 패권의 약화를 동맹에 대한 '약탈'적 양태로 전가하는 미국의 패권정책에 맞서 저항을 확장하는 한편, 근본적인 사회대전환의 담론을 함께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자주평화운동의 과제를 제시했다.

최은아는 빛의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매우 높고 주권에 대한 의지도 강한만큼 이재명 정부가 '국민주권'을 표방하는 것 역시 이를 의식한 것이겠지만 미국의 패권정책에 자발적으로 포섭, 협력하는 정책이 확인된다며 '자주로 포장한 대미종속'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패권정책에 대한 비판과 함께 이를 극복해야 할 한국 정부의 자주 정책에 대한 요구도 계속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주권에 대한 지향이 미국의 패권정책에 대한 자발적 협력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자주와 평화, 역사정의가 결합된 일관된 담론 형성과 실천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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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춘부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 그 말을 깨부순 여성들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프랑스 '성매매 폐지' 법안 통과 10년... 한국이 배워야 할 점

26.04.21 06:47최종 업데이트 26.04.21 09:37

지난 13일, 프랑스 하원에서 열린 프랑스 성평등모델 10주년 기념 국제 포럼. 시민사회운동 세션에 참석한 활동가들의 모습. 오른쪽에서 세번째가 프랑스의 '생존자'로 10년전 입법에 지대한 공을 세운 로젠 이셰르다.목수정

"매춘부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종종 들을 수 있던 이 말은, 성매매라는 악습에 저항하려는 시도가 있을 때마다 '어차피 사라질 순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 앞에 사람들을 무력하게 투항시켜 왔다. 지난 13일 " 그 말은 틀렸을 뿐 아니라, 아주 위험한 말이다. 매춘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여성에 대한 지배 시스템이다"라는 말을 프랑스 전 여성부 장관 입을 통해 듣기 전까지 나 역시 그랬다.

이날은 프랑스 의회가 10년 전, 성매매 폐지를 위한 법안(성 매수자만 처벌하는 법)을 통과시킨 날이다. 법 제정 10주년을 기념하여, 전 세계 30여 개국에서 성매매 폐지를 위해 힘을 모아온 활동가들과 정치인들이 함께한 프랑스 성평등 모델 10주년 기념 국제 포럼이 프랑스 의회에서 열렸다.

법이 통과될 당시 사회당 정부의 여성부 장관이던 나자트 발로벨카셈은 성매매 폐지 법안을 지지하는 자신을 조롱하던 주류 언론들의 공세를 회고하며, "매춘부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직업"이라는 도시 괴담을 그 자리에서 다시 한번 확인 사살했다.

12일 파리 팡테옹에서 앵발리드까지 이어진 전 세계 성매매 폐지 활동가들의 거리 행진으로부터 13일 8개의 방대한 세션으로 구성된 국회에서의 포럼까지 이틀 간의 뜨거웠던 순간들을 담아본다.

"성 구매는 폭력행위, 구매자는 범죄자"

4월 12일 파리 팡테옹 앞에서 시작된 성매매 폐지를 위한 집회에서 각국의 생존자(성매매에서 탈출한 여성들)이 성매매하다 죽어간 여성들의 초상화를 들고 서 있다.이하영

지난 12일 파리, 집회가 예고된 팡테옹 앞엔 '생존자'라 불리는 각국 여성들이 또 다른 여성들의 초상화를 들고 서 있었다. '생존자'는 성매매의 늪에서 탈출하여 완전히 다른 삶을 시작한 이들을 일컫는 세계 공통의 명칭이다. 성매매 여성의 사망률은 일반인들에 비해 6~12배까지 높다(2004년 영국 보건부 조사 결과).

'생존자'들은 성매매 중 죽어간 여자들의 초상화를 들고서, 그 지옥의 삶을 탈출해서 생존하고 있는 자신들의 존재 자체가 투쟁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집회에 참석한 한국의 생존자 '무무'(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 운영위원장)는 한국 남성 2명 중 1명이 성 구매 경험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한국엔 성매매 방지법이 있으나 성매매 여성을 '자발'과 '비자발'로 나누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발'로 판단될 경우, 매수자와 마찬가지로 처벌의 대상으로 삼으면서, 법의 실효성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경험한바 "성매매 현장은 자유로운 선택의 공간이 아니라, 가난, 폭력, 차별, 사회적 고립 속에서 밀려난 결과"였다.

프랑스에 앞서 최초로, 여성 몸의 상품화를 범죄화한 나라는 스웨덴이다. 스웨덴 의회는 '성 구매자를 가해자로, 성매매 여성은 피해자로 규정하는' 성매매방지법을 1999년 통과시켰다. 이 법에서 성 매수자는 포주와 함께 처벌의 대상이 되고, 성매매 여성은 자활을 위한 지원을 받는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스웨덴 성평등부 장관 니나 라슨은 법 제정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법은 스웨덴 사회에서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여성의 몸을 사는 것이 쉬운 사회에서 진정한 성평등이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입법자들의 의지는 명료했으나, 여론은 그들 편이 아니었다. 반대 목소리와 그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 속에 법이 통과됐지만, 효과는 즉각 드러났다. 10년 뒤, 거리의 성매매 종사자 수는 절반 이상 감소했고 무엇보다 "성을 사는 것은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적 상식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다. 법 도입 전엔 13.6%에 이르던 스웨덴 남성들의 성 구매 경험 비율이 10년 후엔 7.8%로 떨어졌다. 법 통과 당시, 30%의 국민만이 지지했으나, 10년 뒤엔 70% 이상의 국민이 해당 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스웨덴 경찰청과 국가범죄수사국의 통계는 범죄 조직들이 스웨덴을 기피하게 되었음을 보여줬다. 스웨덴에서의 이러한 성과는 북유럽 국가 대부분의 성매매방지법을 바꾸게 했고, 프랑스의 법 개정에도 영감을 제공했다. 니나 라슨 장관은 프랑스가 스웨덴의 뒤를 이었을 뿐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음을 지적하며 양국 간의 연대를 통해 성매매 폐지법이 전 세계에 확산되도록 할 것을 다짐했다.

프랑스를 각성시킨 생존자 로젠 이셰르

성매매 폐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타국의 사례 발표 세션에 참석한 인물들 : 좌로부터, 한국을 대표해 발표한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 타이나 비앙에메 미국 Coalition Against Trafficking in Women 사무총장, 스페인 생존자 아멜리아 티가누스, 리디아 모레노 스페인 국회의원, 레기날도 프롤레스 멕시코 국회의원.목수정

2016년 법의 산파 역할을 한 오드 올리비에 전 사회당 의원은 평범한 시민들이 여성의 신체를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고 취약 계층 여성들을 소비할 때, 인간의 존엄성에도, 평등의 원칙에도 반드시 균열이 온다고 생각했다. 스웨덴에서의 성과를 본 올리비에 의원은 공화당 기 조프루아 의원과 함께 2011년 성매매 관련 결의안을 마련했고 국회는 만장일치로 이를 채택했다. "성매매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폭력이고, 프랑스는 성매매 규제가 아니라 폐지로 나아갈 것이며, 이 시스템을 유지시키는 근본 원인은 성 매수자에게 있음"을 결의안을 통해 천명한다.

인간의 몸을 상품으로 취급하는 행위를 단죄한다는 철학적 바탕 위에, 매수자에게 책임을 묻고, 성매매 여성에겐 새로운 삶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이 2014년 발의되었다. 하원은 압도적 표차로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상원은 이 법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표결을 미뤘다. 소비자의 권리 혹은 직업 선택권과 성적 자기 결정권을 주장하는 세력들, 그들을 대변하는 주류 언론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 판세를 뒤집은 것은 '생존자'의 증언이었다. "생존자 로젠 이셰르(당시 57세)와 로랑스 노엘(당시 47세)이 없었다면, 이 법은 만들어질 수 없었다"라고 로랑스 로시뇰 전 상원의원은 증언한다.

사회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류라고 소개하고 싶다"라며 로젠 이셰르를 소개했을 때, 포럼에 참석한 350명의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뜨거운 박수와 경의를 표했다.

22년간 성매매를 해왔던 로젠은 어느 날 자신의 삶이 온통 폭력 속에 내던져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늘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며 살아야 했던 그녀는, 더 이상 분열되고 파괴된 삶 속에 머물 수 없었다. 탈출을 결심했고, 탈출에 성공한 뒤엔, 세상 모든 성매매 여성들이 자신처럼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성 구매자가 여자를 구매하는 순간, 한 여인의 영혼을 파괴하는데 동참하는 것이며, 그들이 있는 한 성매매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증언을 멈추지 않았다. 방송에서, 크고 작은 모임에, 국회에서 그녀는 성매매가 여성의 육체와 정신에 가하는 폭력과 굴욕을 생생하게 전했다. 상원이 법안 표결을 미루었을 때, 그녀는 800km를 걸으며 여론을 움직였다.

"내가 처음 성매매를 시작했던 도시 생트에서 시작, 파리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각 지역의 시의원, 시장, 언론인, 시민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왜 성매매가 인간성을 파괴하는 일인지 설명했다. 새로운 도시에 발을 딛을 때마다, 모두가 나를 놀랍도록 환대해 주었다. 내가 걸으면 걸을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어갔다."

성매매란 행위의 비인간성을 그 속에서 생활하던 여인의 육성으로 들었을 때, 그녀의 호소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법은 바로 그녀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았다.

헌법재판소 "성 구매는 인간의 자유도, 권리도 아니다"

2024년 파리올림픽 당시 프랑스 정부가 만들어 시내 곳곳에 부착한 성매매 근절 캠페인 포스터. "너 얼마야? 프랑스에서 15만 유로(2억 6000만 원)입니다." 성매매가 금지된 프랑스에선 성 매수를 하는 자에게 최대 15만 유로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는 내용이다.목수정

마침내 2016년 4월, 성 구매자와 포주에 대한 처벌, 성매매 여성 비처벌 및 탈성매매 지원 등을 골자로 한 성매매폐지법이 채택되었으나, 반대 진영은 해당 법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위헌 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19년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보다 더 상위에 있는 가치이며, 타인의 신체를 구매할 권리까지 자유의 범주에 포함되지는 않는다"라며 그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반대 진영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건을 유럽인권재판소까지 끌고 갔다. 이 재판은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성매매 정책 방향을 결정지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2024년 프랑스 정부가 다시 한번 승소하면서, 법적·사회적으로 완벽한 명분을 구축했다. 프랑스의 법은 적발된 성 구매자에게 1500유로(260만 원)의 벌금과 성교육 프로그램 수강, 재범일 땐 3750유로(65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며, 18세 미만의 청소년을 구매했을 경우엔 7만 5000유로(1억 3000만 원)와 5년 이하의 징역, 15세 미만인 경우 15만 유로(2억 6000만 원)와 최대 10년의 징역형을 선고하고 있다.

현재 약 80%의 프랑스인들이 인간의 몸이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성 구매자만 처벌하는 이 법에 동의한다. 법 제정 전의 여론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그러나 해당 법을 통해 실제 성매매가 근절되고 성매매 여성들이 새 삶을 찾았는지, 즉 법의 실효성에 대해서는 아직 성공을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법 제정 이전, 1년 이내에 성 구매를 한 적이 있는가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10~12%가 있다고 답했으나, 최근 조사에서 이는 약 5~6% 수준으로 절반가량 하락했다. 이로써 성매매 시장을 유지시키는 '수요자층'은 확실히 얇아지는 성과가 있었으나, 가시적 성매매가 줄었을 뿐, 인터넷을 통한 성매매 비중(62%)이 압도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이 현실의 냉혹한 평가다.

법 집행 이후, 3만여 명이 적발(연평균 약 3000명), 벌금을 지불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성교육을 받았으나, 이 중 58%가 파리와 그 인근 지역에 집중되어 있고, 전체 100개의 도에서 33개 지역에선 한 번도 단속이 이뤄진 적이 없다. 이처럼 지역별 법 적용의 격차 극복도 중요한 과제다.

프랑스 성매매 종사자 중 90%가 이주 여성들인데, 이들 중 정부가 제시하는 탈성매매 지원 경로를 통해 체류증 취득, 직업교육, 생활비 지원 등의 혜택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탈성매매의 길을 간 경우는 2025년 말 집계로 약 1000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3만 7000여 명의 성매매 종사자가 프랑스에 있는 것으로 집계되는바, 이 또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과다. 불법 체류 중인 성매매 이주 여성에게는 합법적인 체류증을 제시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 있어, 경찰 당국은 오히려 이 통로를 이용해 체류증을 얻고자 하는 여성이 없는지를 색출하는데 골몰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성년자 대상 범죄·조직적인 성매매 범죄 등에 대한 수사가 57%가량 늘어났고, 성매매 조직들로부터 몰수된 수익이 그대로 피해자 보호와 그들의 탈성매매 지원금으로 전해지면서, 더디지만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청신호들이 보여진다. 무엇보다 프랑스 사회가 '성매매는 범죄'라는 사실이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 가장 큰 성과다. 포럼에 참석한 오로르 베르제 성평등부 장관은 디지털 성매매에 대한 수사인력 강화, 성매매 광고를 방치하는 웹사이트와 SNS 플랫폼에 대해 천문학적인 벌금 부과 등을 통해 변모해 가는 성매매 환경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합법화의 길을 걸은 독일의 경우

독일은 프랑스와 달리 2002년 성매매를 합법화했다. 어차피 없어지지 않을 바엔, 드러내 놓고 영업하게 하는 것이 오히려 성매매 산업을 건강하게 관리하는 길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독일의 사례는 성매매 합법화가 가져온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힌다. 합법화 이후 독일은 유럽의 사창가라는 오명을 얻었고, 성매매 여성의 사망 사고는 폭증했다.

성매매가 합법이 되자 수요가 폭발했고, 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신매매 조직이 독일로 밀려들었다. 2024년 말 기준 등록된 성매매 종사자는 약 3만 2000명이지만, 실제 종사자는 15만~20만 명으로 추산된다. 80% 이상이 여전히 불법 영역에서 범죄 조직의 통제 하에 있는 셈이다. 독일 성매매 시장에서도 이주 여성들의 비율은 83%로 압도적이다. 결국 합법화라는 독일의 선택은 사회적 안전망에서 제외된 외국 여성들의 성을 합법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 셈이 되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독일의 마리아 노이클 사회민주당 의원은 2023년 9월 유럽의회에서 자신이 주도한 결의안(성매매를 '인권 침해'이자 '여성에 대한 폭력'으로 규정하는)이 찬성 234, 반대 175로 채택된 바 있음을 전하며, 독일 내부에서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스웨덴식 모델에 동참하려는 움직임이 또렷해지고 있음을 전했다.

이날 포럼에서 한국 사례를 발표한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이하영 공동대표는 일제의 일본군 성노예 제도 이후, 독재 정권의 주한 미군과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성매매가 국가에 의해 관리되면서 관 주도로 이어져 왔던 한국 성매매 제도의 역사적 특수성을 설명했다.

2004년 개정된 법에 따라 한국에서도 성매매가 불법으로 규정되어 있긴 하나, 여전히 남성들은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성 구매를 쉽게 할 수 있는 모순된 현실을 전했다. 프랑스나 스웨덴 사례처럼 구매자만 처벌하는 대신 성매매 여성도 함께 처벌하고 있고, 이 때문에 성매매 여성들이 폭력, 협박, 사기 같은 피해를 당해도 신고하기 어려워서 법이 제 기능을 못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한국도 실질적인 폐지제 국가에 동참할 수 있기 위해 국제적인 연대를 호소했다.

불과 1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에선 노예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노비는 주인의 사유재산이었고, 노비의 자식은 노비여야 했다. 그들에겐 그 어떤 인간의 권리도 주어지지 않는 것이 모두에게 익숙한 관행이었다. 1894년 갑오경장이 노비제를 폐지하였으나, 그것이 실질적으로 사라진 것은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모든 질서가 전복되면서다.

이제 한국 사회의 누구도 노예를 부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같은 논리로 얼마간의 돈을 지불했다는 이유로 타인의 몸을 소비하는 행위가 인간사의 자연스러운 관행일 순 없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결합한 이 오래된 착취의 구조는 필연적으로 '인간성 파괴'라는 고통스러운 대가를 동반한다.

사랑의 결실을 맺는 모든 과정을 생략하고, 돈으로 행위만 구매하는 인간관계가 만연할 때, 건강한 관계가 훼손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 사회는 이미 성매매를 폐지하기로 법 제도를 마련하였으나 선명하지 못한 이중잣대를 방치함으로써, 제도는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제도 정착을 위한 의지의 문제다. 젊은 세대에서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젠더 간 갈등에도 이 어정쩡한 제도가 한몫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포럼 마지막 세션의 사회자였던 스웨덴 활동가 카즈사 에크만의 말처럼 "신자유주의 체제가 기승을 부리며 인간성을 파괴하던 시절에 기적처럼 만들어진 이 제도"에 한국도 온전히 동참할 날을 고대한다.

#뭉치 #전국연대 #성매매폐지 #생존자 #로젠이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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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모디 "한국의 기술·스피드, 인도의 스케일 결합"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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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6.04.21 08:20

  • 수정 2026.04.21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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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바이 코리아 센터를 상설 K-팝 공연장으로

이 대통령, 김수로 왕-허왕후 고대 인연 소환

모디 총리 "공통의 유산…한국은 동방의 등불"

"간디 님의 평화정신으로 평화 가득하길"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인도 국빈 방문은 2박3일이란 짧은 여정이었지만, 한국과 인도 두 나라가 오랜 인연과 함께 상호보완적 존재임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먼저 고대의 인연은 이 대통령이 소환했다. 20일 양국 경제인이 참석한 가운데 뉴델리에서 열린 비즈니스포럼 인사말을 통해서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가야국 김수로 왕과 (인도 고대국가인) 아유타국의 허왕후가 만나면서 인도의 해양 문명은 2000년 전 한반도에 와 닿았다"고 말했다. 이어 파사석탑을 싣고 오던 허왕후의 배가 거센 풍랑을 이겨낸 삼국유사 얘기를 거론한 뒤 "파도가 두렵다고 항해를 포기했다면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교류를 더 확장하며 더 많은 파사석탑을 쌓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뉴델리 영빈관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6.4.20 [공동취재 제공] 연합뉴스

이 대통령, 김수로 왕-허왕후 이야기 소환

모디 "공통의 유산…한국은 동방의 등불"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허왕후와 김수로 왕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의 공통된 유산"이라고 화답했다. 그리곤 "오늘날에는 K팝이 인도에서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소개한 뒤 "한국에서도 인도의 영화와 문화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 대통령도 인도 영화를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듣고 정말 기뻤다"라고 말했다.

문화교류와 관련해 <디 인디언익스프레스>는 이 대통령이 '뭄바이 코리아 센터'를 "상설 K-팝 공연장이자 K-컬처의 국제적 허브로 출범시켜, K-팝과 발리우드가 만나 새로운 문화적 협력을 창출하는 장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으며 모디 총리는 2028년에 한·인도 우정의 축제를 열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특히 모디 총리는 "100여 년 전 타고르라는 인도 시인이 대한민국을 향해 '동방의 등불'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데 한국은 정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뒤이어 정상회담에 앞서 두 정상은 인도 총리 관저에 '평안'을 뜻하는 아소카라는 나무를 함께 심었다.

정상회담을 마친 이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영빈관인 '하이데라바드 하우스'에서 공동 언론발표 행사를 열었다. 여기서 이 대통령은 인도를 "세계 4위 경제 대국이자 글로벌 사우스의 리더"로, 그리고 한국을 "조선·반도체·방산·문화산업의 선도국"으로 각각 평가한 뒤 "양 정상은 서로가 성장을 촉진하는 최적의 전방위적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데 공감대를 이뤘다"고 소개했다.

 

2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대통령궁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국빈 방문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가 사열해 있다. 2026.4.20 [공동취재 제공] 연합뉴스

모디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 배워야"

2030년까지 교역액 500억 달러로 확대

모디 총리도 장단을 맞췄다. 그는 "조선업, AI, 반도체, 청정에너지 등이 향후 10년간 매우 중요하다"며 "인도의 스케일과 한국의 스피드가 결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두 정상은 경제협력 촉진을 위한 '전담 데스크'를 인도의 총리실과 한국의 청와대에 각각 설치하는 방안에 의견을 모았다.

정상회담에 앞서 모디 총리는 본인이 마련한 한국 경제인 초청 오찬에서도 "앞으로 협력 범위를 더 과감하게 넓혀야 한다"며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를 배워 파트너십을 강화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소년공 출신인 이 대통령은 모디의 '짜이 왈라'(홍차 판매상) 시절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정상회담 결과를 보면, 두 나라는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 협상의 연내 개최 등 속도를 높이는 동시에 교역액을 현재 250억 달러 수준에서 2030년까지 500억 달러로 확대하는 데 힘을 모으기로 했다.

또한 AI와 중소기업, 스포츠, 문화 분야의 디지털 협력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한-인도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위한 공동 전략 비전과 조선, 해운, 해양 물류 분야의 협력을 위한 포괄적 프레임워크에도 합의했다. 이와 관련해 이 대통령은 "조선 분야에서는 한국의 기술력과 인도의 '시설 건설지원' 및 '선박 발주 수요 보장' 등 정책적 지원을 결합할 것"이라며 "우리 기업이 인도 조선 시장에서 새로운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뉴델리 영빈관에서 확대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6.4.20 [공동취재 제공] 연합뉴스

인도 채굴에 한국 기술 결합 방식 제안

"인도와 에너지·나프타 안정 수급 협력"

핵심 광물에 대한 양국 협력 방안도 깊이 있게 논의됐다. 이 대통령은 공동 언론발표 자리에서 "최근의 중동 정세를 고려, 인도와 에너지 자원 및 나프타 등 핵심 원자재의 안정적 수급을 위한 협력을 계속해 가겠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양국 간 장관급 경제협력 플랫폼인 '산업협력위원회'를 신설해 핵심 광물·원전 등 전략 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통적인 원료 수입 모델을 뛰어넘어 인도의 채굴·제련 산업과 한국의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우리는 안정적인 핵심 광물 공급망을 함께 구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모디 총리는 "한국과 핵심기술 및 공급망 관련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뿐만 아니라 양국 간 경제 안보 대화 역시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두 정상이 중동전쟁 등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역내 평화와 글로벌 현안 대응에 계속 긴밀하게 공조하기로 했고, 중동의 안정과 평화 회복이 세계 안보와 경제에 매우 중요하다는 데 공감했다고 밝혔다. 또한 이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 구축을 위한 우리 정부의 노력을 설명했고...앞으로도 한반도와 역내 평화를 위해 인도가 건설적 역할을 이어가 달라"고 당부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가 20일(현지시간) 인도 뉴델리 간디 추모공원에서 헌화하고 있다. 2026.4.20 연합뉴스

이 대통령 부부, 간디 추모공원 찾아 헌화

"간디 님의 평화정신으로 평화 가득하길"

한편, 이 대통령과 부인 김혜경 여사는 이날 오전 뉴델리 마하트마 간디 추모공원을 찾아 헌화하며 세계 평화를 기원했다. 이 대통령은 방명록에 "마하트마 간디님의 평화정신으로 온 세상이 평화로 가득하길 기대하며 함께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헌화에 앞서 인도가 준비한 공식 환영식에는 모디 총리와 드로우파디 무르무 대통령이 모두 나와 이 대통령 부부를 맞이했다.

인도가 이번 이 대통령의 국빈 방문을 어떻게 비중 있게 보는지는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가 전한 모디 총리의 발언에서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극히 중요하다. 민주적 가치, 시장 경제, 법치 존중은 우리 양국의 DNA 속에 있다. 우리는 또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동의 전망을 지니고 있다. 이런 모든 걸 바탕으로 우리는 지난 십 년 더 역동적이고 포괄적인 관계가 됐다. 오늘 이 대통령의 방문을 통해 우리는 이 신뢰의 파트너십을 미래지향의 파트너십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우리는 반도체에서 조선, 재능에서 기술, 환경에서 에너지 등 모든 분야에서 협력의 새로운 기회들을 실현하고, 양국의 진보와 번영을 함께 확실하게 만들 것이다."

 

인도를 국빈 방문 중인 이재명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뉴델리 총리 청사에서 열린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주최 오찬 및 한-인도 경제인 대화에서 모디 총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4.20 [공동취재 제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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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친환경’이라던 한강버스, ‘내연차 3700대 수준’ 온실가스 내뿜는다···연 5674t 달해

수정 2026.04.21 09:40

12척 중 하이브리드 선박 8척, 연간 700t씩 배출

“온실가스 배출 상당한 증가 예상되는 사업” 분류

시, 인지 뒤에도 “모든 선박은 친환경 선박” 홍보

지난달 1일 서울 여의도 선착장에서 서울 한강버스 운행이 재개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서울시가 ‘새로운 친환경 수상 대중교통수단’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한강버스 12대가 매년 내연기관차 3700대가 내뿜는 것과 비슷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향신문과 그린피스가 20일 2024~2026년 서울시 기후예산서를 분석한 결과, 한강버스 12대 중 하이브리드(디젤·전기) 선박 8대가 운행하며 내뿜는 온실가스가 연간 5674t 수준으로 예산서에 명시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린피스가 이를 내연기관 승용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로 환산한 결과, 이산화탄소 5674t는 승용차 3700대가 1년간 내뿜는 이산화탄소와 맞먹는 양인 것으로 추산됐다. 하이브리드 한강버스 한 대당 약 700t을 내뿜는 것으로, 한 대당 연간 81t의 탄소를 배출하는 천연가스 버스에 비해 약 8배 많은 수준이다. 나머지 선박 4대는 전기 선박이라 운항 중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기후예산서는 서울시가 2022년 도입한 제도로, 공공 예산·기금이 10억원 이상 투입되는 사업을 온실가스 영향에 따라 감축·배출·혼합·중립 등 4가지 형태로 나눠 분류하는 일종의 ‘기후 성적표’다. 감축 사업은 예산 편성에 우선 반영하고 배출사업은 저감 방안을 마련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서울시는 이 가운데 “사업 이행으로 온실가스 배출의 상당한 증가가 예상되는 사업”을 ‘배출사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한강버스는 2024년과 2025년 기후예산서에서 ‘배출’ 사업에 포함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한강버스 등의 선착장 조성 사업이 온실가스의 배출 증가를 유발할 것으로 보고 이같이 분류했다. 서울시는 선착장 공사에 따른 배출량은 별도로 추산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기후예산서 작성 과정을 통해 하이브리드 선박 운항 과정에서 6000t에 가까운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에도 “한강버스 모든 선박은 친환경 선박”이라며 “디젤기관 선박과 비교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52%가량 줄였고 전기 선박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고 홍보했다.

다만 서울시 미래한강본부는 최근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에 제출한 별도 산정 자료를 근거로 선박 한 척당 연간 약 645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시 예산서를 보면 2024년 208억원, 2025년 25억5889만6000원 등 총 233억6000만원가량이 한강버스 사업에 쓰였다. 2026년에도 최소 22억541만2000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민재 서울시 미래한강본부 수상교통사업과장은 “최근 운항시간이 6시간으로 줄어 온실가스 배출량이 더 감소했을 것”이라며 “한강버스를 친환경 선박으로 홍보한 이유는 기존 디젤 선박 대비 배출량을 절반 가까이 줄였기 때문이다. 선박은 물의 저항을 받는 구조적 특성이 있어 버스 등 기존 대중교통과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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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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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2차 계엄’ 의혹 새 국면…“추가 병력 투입 검토 정황 확인”

  • 김미란 기자

  • 업데이트 2026.04.20 11:29

  • 댓글 0

특검, 전·현직 합참 관계자 진술 확보…“관여자 철저 규명해야”

‘12·3 내란’ 관련 추가 의혹을 수사하는 종합특검팀이 윤석열의 ‘2차 계엄’ 시도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졌다.

20일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종합특검(특별검사 권창영)은 최근 전·현직 합참 관계자를 조사하면서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통과 후, 계엄 해제 국무회의 의결 전에 합참에 추가 병력 투입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또한 합참이 후방 부대 등 일부 부대에 병력 추가 투입이 가능한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정황도 드러났다.

특검은 김명수 전 의장 등 12·3 내란 수사망 바깥에 있던 합참 지휘부가 2차 계엄 등에 관여했을 것으로 의심하며 수사를 벌이고 있다.

특검은 합참 관계자로부터 “김 전 의장이 국무회의 계엄 해제 의결 전 ‘국무회의에서 국회와 다른 내용으로 의결할 수도 있느냐’고 참모에게 물었다”는 취지의 진술도 확보했다.

특검은 최근 박모 당시 합참 법무실장을 조사하면서 그가 “계엄사령관의 추가 병력 파견 요청이 있을 경우 거부해야 한다”는 취지로 김 전 의장에게 조언한 사실을 확인했고, 김 전 의장은 이를 수용해 추가 병력 투입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특검은 합참이 후방 부대 등 상황을 점검한 정황을 볼 때, 김 전 의장이 실제 병력 투입 요청을 거부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향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그동안 윤석열이 2차 계엄을 선포하려 했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은 여럿 나왔지만 추가 병력 투입까지 검토한 정황이 확인된 건 처음”이라며 “윤석열이 왜 국회가 요구안을 결의한 지 3시간 넘게 지나서야 비상계엄을 해제했는지 밝혀줄 중요한 단서”라고 강조했다.

윤석열(오른쪽 위)이 지난 2월 19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1심 선고기일에서 지귀연 부장판사의 판결문을 듣고 있는 모습. 법원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오른쪽 아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사진제공=뉴시스>

윤석열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계엄 유지나 추가 조치를 검토한 정황은 재판에서도 일부 확인됐다.

앞서 1심 법원은 윤석열이 국회 결의안 통과 뒤에도 이진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에게 “결의안이 통과됐다고 하더라도 내가 두 번, 세 번 계엄하면 된다”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이 당일 새벽 추가 병력 투입 가능성을 확인한 사실도 인정됐다.

경향은 “1심 법원도 인정한 이런 사실에 추가 병력 투입을 검토한 정황까지 포개면 윤석열 측이 계엄을 지속하거나 2차 계엄을 선포하려고 궁리하다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마지못해 계엄을 해제한 걸로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검을 향해 “2차 계엄 의혹의 실체는 물론 누가 관여했는지까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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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르트헤이트 전범 국가 이스라엘과 관계를 끊어야 한다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4/21 09:37
  • 수정일
    2026/04/21 09:38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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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년째 이어지는 가자 집단학살을 멈추기 위해 전 세계가 노력해야 할 때

장영태 닻별 출판사 대표 | 기사입력 2026.04.21. 07:47:28

2월 28일(이하 현지시간)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을 기습 침공하여 벌어진 전쟁이 일단 멈추었으나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4월 7일 파키스탄이 중재한 2주간 조건부 휴전안을 미국과 이란이 받아들여 휴전이 이루어졌으나 4월 11일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의회 의장이 대표단으로 참가한 휴전 협상이 결렬되고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전쟁이 다시 시작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한편 이스라엘-레바논 간 휴전 협상이 4월 15일 합의되어 역시 열흘짜리 조건부 휴전이 발효되었다.

원래 파키스탄이 중재한 조건부 휴전안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지역에서 전투를 중단하는 것이었으나, 이스라엘은 이를 무시하고 휴전이 발효된 첫날인 4월 8일, 전쟁이 벌어진 이후 최대 규모로 레바논을 공습했다. 단 몇 분 만에 레바논에서 최소 357명이 목숨을 잃었고 1200명 이상이 다쳤다.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와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사망자 대다수인 300명 이상이 민간인으로 밝혀졌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는 이날 숨진 357명 중 어린이가 33명이라고 밝혔다. 확인된 사례만 집계하므로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스라엘군이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대낮에 사람이 붐비는 거리를 폭격한 탓에 민간인 희생자가 많았다. 공격 후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통화한 후 휴전안에 레바논이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을 바꿨다. 이스라엘은 4월 15일 휴전 발효 몇 시간 전까지 레바논을 계속 공습했으며, 휴전이 발효된 뒤에도 레바논 쿠닌 마을에서 구급차를 공습하여 의료진을 죽이는 등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과 레바논에서 수많은 사람이 죽고 삶의 터전과 민간시설, 문화유산이 파괴되었다. 이란 협상단이 휴전 협상을 위해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비행기 이름을 미나브168로 지었다는 소식에서 전쟁 첫날 미나브 시 샤자레 타예베 초등학교에서 벌어진 학살을 떠올리게 된다. 미국은 이란 정권을 무너뜨린다는 전쟁 명분을 내세우고 그 어떠한 책임도 없는 어린이들을 학살했다. 미나브는 이 부당한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이란 법의학기구는 이번 전쟁으로 이란에서 숨진 3375명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미성년자는 383명이다. 샤자레 타예베 초등학교를 비롯해 파르스 주 라메르드 체육관에서 체육 활동 중 공습으로 숨진 21명 중 어린이 최소 네 명, 이스파한에서 학교 공습으로 숨진 유치원생을 포함한 초등학생 아홉 명 등 많은 어린이가 목숨을 잃었다.

트럼프가 이란을 석기시대로 돌려놓겠다고 말한 다음 날, 미국은 이란의 카라즈 B1 다리를 폭격해서 파괴했다. 이 공격으로 시즈다 베다르 명절을 맞아 놀러 나온 민간인 여덟 명이 숨졌다. 트럼프는 이 전쟁 범죄를 전쟁 성과로 소셜미디어에 올려 자랑하며 이란을 위협했다.

학교, 병원, 에너지 시설과 사회기반 시설에 대한 공격에 더해 문화유산과 종교시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에서 100곳이 넘는 문화유산이 파괴되거나 피해를 당했다. 사파비 왕조 시대에 지어진 라슈케 제난(라슈크 궁전)이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테헤란 유대인 공동체의 핵심 종교시설인 라피-니아 시나고그(유대교 회당)가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의 코르니쉬 알 마즈라에서 한 가족이 레바논과 이스라엘 간의 10일간의 휴전 이후 4월 8일에 발생한 이스라엘 공습 현장을 방문하고 있다. ⓒREUTERS=연합뉴스

레바논에서는 3월 1일부터 4월 17일까지 어린이 177명을 포함해 229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은 3월 4일 리타니강 남쪽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에 대피 명령을 내린 뒤로 리타니강 남쪽의 모든 마을과 주거지역을 군사 목표물로 삼고 공격했다. 이스라엘은 리타니강 남쪽을 고립시키기 위해 리타니강 다리를 모두 파괴했다. 열흘간 휴전이 발효되었지만, 이스라엘은 리타니강 남쪽에 주둔하며 자흐라니강까지 공습을 통해 통제권을 확보하려 하고 이스라엘군에 맞서 헤즈볼라가 반격하고 있다. 휴전 직전까지 레바논에서 총피난민 수는 최대 120만 명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에서 1400여 채의 건물을 파괴하면서 이 지역을 가자 지구처럼 초토화하는 작전을 펼쳤다. 이스라엘은 병원을 공습하고 현장에 출동하는 구급차를 폭격해서 3월 2일부터 최근까지 90명 이상의 의료진을 살해했다. 레바논 보건부에 따르면 60대 이상의 구급차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파괴됐다. 3월 1일 이후 이스라엘에 레바논 언론인 일곱 명이 살해되었다. 3월 28일 PRESS 표시 차량을 공습해서 기자 세 명을 죽인 사건은 가자 집단학살 동안 팔레스타인 언론인 최소 270명을 죽인 언론인 표적 살해 방식과 같다.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이란에 대한 공격 중에도 가자 집단학살을 멈추지 않았다. 가자 지구에서는 2월 28일부터 4월 17일까지 단 나흘만 공격이 없었다. 가자 휴전이 발효된 2025년 10월 10일부터 4월 17일까지 190일 동안 168일에 걸쳐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공격해서 팔레스타인인 766명을 죽였다. 이는 날마다 4~5명이 군사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것과 같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2025년 10월 19일 45명, 10월 29일 109명, 11월 22일 24명 이상, 2026년 1월 31일 32명, 2월 4일 23명을 죽이는 등 휴전 간판과 트럼프의 평화위원회를 가림막 삼아 대량 학살을 저지르고 있다.

아홉 살 소녀 리타즈 압둘라흐만 리한은 4월 9일 가자 북부 베이트 라히아에 있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다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4월 14일에는 가자 시티에서 이스라엘 전투기가 경찰차를 공습하여 세 살 사내아이 야히야 알-말라히를 포함한 네 명이 죽었고, 자발리아에서 이스라엘의 발포로 14살 소년 아담 아흐메드 할라아가 죽는 등 이날 어린이 두 명을 포함한 열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4월 16일에는 가자 시티 자이툰 지역에서 아홉 살 소년 살레 바다위가 이스라엘 저격수의 총에 맞아 숨졌다.

구호•의료 인력도 이스라엘의 학살에서 예외가 아니다. 4월 6일에는 이스라엘군이 가자 남부에서 세계보건기구(WHO) 소속 차량에 발포해서 운전기사가 숨지고 의사를 포함한 여러 명이 다쳤다. 4월 17일에는 가자 북부에서 식수 공급을 위해 일하는 유니세프 계약직 트럭 운전기사 두 명이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아 숨졌다.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역대 최대 규모로 공격을 벌인 4월 8일, 가자 지구에서 알자지라 특파원 모하메드 위스와시가 드론 표적 공격으로 살해됐다. 이로써 가자 휴전 발효 이후 가자 지구에서 최소 아홉 명의 언론인이 이스라엘군에 의해 살해됐다.

이스라엘은 휴전 합의에 따라 부상자 해외 이송과 원조 물자를 실은 트럭 통행을 보장해야 하지만, 일부만 통행을 허가해 왔고 그마저도 2월 28일 전쟁을 이유로 모든 통행 검문소를 폐쇄했다가 3월 19일 제한적으로 개방했다. 현재 가자 지구에는 집단학살 동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크게 다친 중상자들과 가자 의료시설 파괴로 가자 지구에서 치료받을 수 없는 만성질환자 등 어린이 4천 명을 포함해 1만8500명이 넘는 중환자가 긴급한 의료 후송이 필요하다.

휴전 합의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하루 50명의 환자가 치료를 위해 해외로 이송되도록 허용해야 한다. 해외 이송이 필요한 환자 수를 볼 때 합의된 하루 50명도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지만, 이스라엘이 국경을 다시 봉쇄한 2월 28일 이후 이마저도 8%의 환자만 해외로 나갈 수 있었다. 3월 23일 가자 보건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 5월 라파 검문소를 봉쇄한 이후 약 1400명의 팔레스타인인이 해외 의료 이송을 기다리다가 사망했다.

식량과 의약품을 실은 원조 트럭 반입도 2월 28일 이후 약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스라엘이 집단학살 동안 가자 지구의 거의 모든 농지를 파괴했으며,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업 활동조차 금지하고 배를 공격하기 때문에 식량을 원조 물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원조 물자조차 필요한 양에 미치지 못함에 따라 가자 지구에서는 다시 기근 위험이 커지고 있다. IPC(통합 식량 안보 단계 분류)에 따르면 거의 전 지역이 하루 한 끼로 생존해야 하는 Phase 4(긴급) 단계 이상에 접어들었다. 지난해까지 이스라엘이 봉쇄를 통해 조장한 기근으로 최소 459명이 기아로 사망한 일이 다시 벌어질 수도 있다.

서안 지구에서는 이스라엘 정착민을 앞세운 공격과 강탈이 멈추지 않고 있다. 무장한 정착민들의 공격이 날마다 일어나고 있으며, 4월 16일을 예로 들면 하루 동안에만 31건의 정착민 공격이 있었다. 이러한 공격은 팔레스타인인이 소유한 올리브나무 수백 그루를 뿌리 뽑거나, 상수도를 파괴하거나, 어린이를 차로 치려 하거나, 팔레스타인인을 폭행하거나 가축을 훔치는 일들이다. 올해 서안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 33명이 살해되었으며, 그중 여덟 명은 정착민에 의해 살해되었다.

3월 30일 이스라엘 의회는 팔레스타인인에만 적용되는 사형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에 따르면 이스라엘인을 테러 행위나 목적으로 살해한 경우 군사법원이 관할하는 사건에 한해 기본적으로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 이스라엘 법체계에서 이스라엘 시민은 민간 형사법원에서 재판받고 팔레스타인인은 군사법원에서 재판받는다. 그렇기에 이 법은 팔레스타인인을 겨냥한 법이다.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한 이스라엘인은 여간해서는 체포되지도 않지만, 설령 체포되어 재판까지 가더라도 민간 형사법원에서 재판받으므로 사형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 반면, 정착민들의 공격을 막는 팔레스타인인은 곧잘 체포되어 구금된다. 이스라엘은 생존을 위해 저항하는 팔레스타인인을 '테러리스트'라고 불러왔다. 이스라엘 군사법원은 증거 조작과 고문으로 자백을 받아내고 유죄 판결을 내린다. 폴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 법이 전쟁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4월 초 현재 이스라엘 교도소에는 96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수감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테러리스트' 정치범들이다. 이 중 3532명은 기소나 재판 없이 6개월 단위로 구금 기간을 무기한 연장할 수 있는 행정 구금 상태다. 이스라엘은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증거를 확보할 때까지 행정 구금을 연장한다.

이스라엘은 이미 1970년대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와 비슷하다고 평가받기 시작했다. 2001년 세계 인종차별 반대 회의(더반 회의)에서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명시한 이래 오늘날 유엔 기관부터 국제적인 인권단체까지 이스라엘을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라고 규정한다. 이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 사형법으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더 강화했다. 가자 지구에서 팔레스타인인을 절멸하려는 의도로 3년째 집단학살을 진행하는 가운데, 서안 지구에서 불법 정착촌을 계속 늘리면서 팔레스타인 땅과 재산을 빼앗고 인종차별 정책으로 팔레스타인인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 전쟁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람이라면 이스라엘의 범죄를 막기 위해 이스라엘과 모든 외교, 무역 관계를 끊도록 하는 데 힘써야 한다.

장영태 닻별 출판사 대표 최근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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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86세 노인에게 고개 숙인 까닭

[재심: 바로잡은 역사] 통일운동가 김낙중의 인생궤적

26.04.19 18:50최종 업데이트 26.04.19 18:50

자신이 만든 평화통일 방안을 북에 전하기 위해 목숨 걸고 임진강을 건넜던 사람, 평화통일운동가 김낙중씨는 남북을 오가며 다섯 차례나 간첩으로 몰려 모두 18년여 동안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2005년 6월, 김낙중씨의 살아생전 사진.오마이뉴스 남소연

1992년 12·18 대선을 앞두고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고정간첩 김낙중을 또다시 붙잡았다며 그가 김일성으로부터 산삼과 녹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그의 집 장독대 밑에서 달러 뭉치가 발견됐다고도 밝혔다.

10월 6일 발표될 남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이선실 사건)의 관련자로 부각될 김낙중은 산삼·녹용과 장독대 달러 같은 인상적인 표현들과 함께 거물급 간첩으로 부각됐다. 안기부 발표문에 기초한 그해 9월 8일 자 <조선일보> 보도다.

"김씨는 북한의 대남공작기구인 사회문화부(옛 연락부) 소속 거물 공작원이며, 90년 2월부터 92년 4월까지 세 차례 서울에 남파돼 1년 4개월간 서울 관악구 봉천동 등지에서 잠복하면서 비밀 지도부를 구성한 임모 등으로부터 수시로 공작지령을 하달받아 간첩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김씨가 북한에서 받은 공작금은 모두 2백 10만 달러(한화 16억 상당)로 이 중 쓰고 남은 1백만 달러가 그의 집 장독대 밑에서 발견됐다. 이 공작금은 간첩사건 사상 최대 규모이다."

그해 4월 16일 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3월의 서울시 짜장면 평균값은 1590원이었다. 이를 감안하면, 위 공작금 16억 원에 4나 5를 곱해야 현재 가치가 대략 도출된다. 그런 돈의 절반 가까이가 그 집 장독대 밑에 숨겨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안기부가 발표한 김낙중의 혐의는 그 돈을 갖고 민중당도 지원하고 세미나도 열고 양심수 석방 및 국가보안법 철폐운동도 벌이고 대학생 통일논문 현상모집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 자체는 간첩과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만 대법원은 무기징역 선고를 확정지었다.

김낙중의 통일운동... 그는 북한과도 충돌했다

김낙중은 훗날 전방지대가 될 경기도 파주군 탄현면에서 1931년에 출생했다. 할머니까지 식모살이를 해야 했던 가난한 소작농 집에서 태어난 그는 상당히 독특한 학생이었다.

<사림> 2003년 제19호에 실린 장숙경 교수의 '김낙중의 삶을 통해 본 분단과 평화, 그 영원한 평행선'에 따르면, 결핵에 걸려 중학교를 휴학한 김낙중은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일요일마다 서울 새문안교회와 조계사(당시의 태고사)와 사상가 함석헌 집을 골고루 찾아다녔다. 주중에는 기독교 신학서와 불경과 철학서적 등을 읽었다.

그는 생활력도 있었다. 한국전쟁 중에 미군부대 취사부에 근무하며 주경야독을 해서 스물한 살 때인 1952년에 서울대 사회학과에 들어갔다. 그런 뒤, 자기만의 통일운동에 뛰어들었다. 눈물을 탐색하겠다며 통일 퍼포먼스를 벌인 일이 그 시작이다. 위 논문의 설명이다.

"1954년 2월, 그는 삭발을 하고 흰옷을 입고 탐루(探淚)라고 쓴 등불을 들고 광복동 거리를 다니며 이렇게 외쳤다. '눈물을 가진 사람은 없는가? 전선에서 피를 토하며 죄 없이 쓰러져 가는 가난한 이 땅의 아들들을 위하여 전쟁을 반대하며 눈물을 흘려줄 사람은 없는가? 무력북진 반대, 평화통일 만세! 무력북진 반대, 평화통일 만세!' 그의 첫 평화통일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중학교 휴학 이후로 많이 읽었던 책들의 영향을 받은 통일운동이었다. 현직 대통령의 북진통일정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이 1인 시위 때문에 그는 체포됐다가 풀려났다.

그의 통일운동은 계속됐다. 대학을 자퇴한 뒤인 1955년 6월 25일, '고려민족' 통일 로드맵과 통일정부 조직도와 통일정부 조약문 등을 담은 <수립안>이라는 자료를 들고 그는 임진강을 건넜다. 김일성을 설득해 통일운동을 벌이기 위해서였다.

미군 보트를 타고 월북한 그는 그러나 그곳에서 간첩조작의 희생양이 됐다. 그는 자신이 미제 간첩이며, <수립안>은 한·미 당국이 작성했다는 허위 자백을 해야 했다. 북한 당국은 그를 간첩죄로 기소했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이유로 기소중지처분을 받고 1956년 6월 20일 남쪽으로 추방된 그는 이번에는 미군수사대에 붙들리고 재판에 넘겨졌다. 1심에서 간첩죄 무죄 및 국가보안법 유죄를 받고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은 그는 4·19혁명 뒤에 대법원에서 면소판결을 받고 법적 부담을 덜었다.

그는 출소 3개월 뒤인 1957년 9월 고려대 경제학과에 편입해 1960년에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런 뒤 1961년 10월에 입대해 복무하던 중에 화를 입었다.

1962년 4월, 육군방첩대가 그를 연행했다. 북한의 무상의료와 자신의 월북 경로를 친구에게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무슨 지령을 받게 하려고 월북 경로를 이야기해주었느냐?"는 추궁이 가해졌다. 이때는 간첩 혐의는 인정되지 않고 반공법 위반죄가 인정돼 징역 3년 6개월을 받았다.

김낙중은 36세 때인 1967년 고려대 노동문제연구소에 적을 뒀다. 이는 1973년에 고려대 NH회 사건(고려대 민우지 사건)에 연루돼 서울 남산 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원인이 됐다. 그는 고대 학생들이 민족주의(Nationalism)와 인간주의(Humanism)를 내걸고 간첩활동을 했다고 포장된 이 사건의 중심인물로 부각됐다. 중앙정보부와 검찰은 그가 NH회를 이끌고 반정부 봉기를 획책했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그는 7년 형을 받았다.

1980년대는 그에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시기였다. 이때는 집필과 통일운동에 매진했다. 1989년에는 국회 통일정책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3차 7개년 계획에 의한 4단계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스물넷 때 <수립안>을 품고 북한 당국을 설득하고자 임진강을 건넜던 그가 58세 때는 7개년 계획 통일방안을 들고 남한 국회를 설득하고자 한강을 건넜던 것이다.

그의 통일운동에서 나타나는 것은 자기만의 신념과 더불어 특유의 개성이다. 그의 조직 생활은 자신의 뜻을 따라주는 조직이 있을 때는 무난히 수행됐다. 자신이 주도하는 세미나나 자신이 지원하는 정당 활동에는 그의 열정이 발휘됐다.

대부분의 남한 통일운동가들이 북한 당국의 정책과 크게 충돌하지 않는 데 비해, 그는 북한과도 충돌해 미제 간첩으로 몰렸다. 북한이라는 조직과도 맞지 않았던 것이다. 남북 어느 정부에도 순응하지 않는 그가 북한 지령을 받고 통일운동을 했다는 수사 결과는 그의 인생 궤적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철학대로 통일운동을 하는 인물이었다.

조작된 간첩사건... 판사들은 고개를 숙였다

1993년 6월 17일, 조선노동당 간첩사건으로 구속기소된 김낙중 전 민중당 대표가 항소심 선고공판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연합뉴스

그가 북으로부터 자금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위 장숙경 논문에 인용된 법정 진술서에 의하면, 그는 "북측 당국의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북한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돈을 받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들로부터 어떤 간첩 임무를 받거나 대한민국의 국가기밀을 탐지·수집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바도 없고, 또 본인이 자진해서 그와 같은 기밀을 수집·전달한 바도 없었음을 분명히 합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금품 수수와 간첩행위 사이의 대가관계가 없다는 점은 국가정보원의 사후 조사에서도 확인됐다. 국정원이 발간한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주요 의혹사건 편 하권(III)>은 "김낙중의 민중당 입당과 활동이 북한 공작원의 요구와 민중당 관련자들의 강력한 요청 중 어느 한 일방에 의해 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임"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북의 돈을 받기는 했지만 간첩행위를 하지는 않았다고 국정원도 인정했다. 북한 역시 돈을 주면서 그런 요구를 한 적이 없다고 김낙중은 진술했다. 북을 도울 의사도 없이 북한 돈을 받아 자기 활동을 했던 것이다. 그의 인생 궤적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아니다.

김낙중이 간첩이 아니라는 점은 국정원 보고서뿐 아니라 사법부 판결로도 확인됐다. 2017년 9월 22일, 서울고등법원은 고려대 NH회 사건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이 사건이 조작됐음을 인정했다. 판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까지 숙인 이 재심사건에 대해 검찰은 상고를 포기했다.

이전의 판결들도 국가보안법 위반이나 반공법 위반은 인정하면서도 간첩죄 위반만큼은 인정하지 않았다. 김낙중은 신념이 독특해 국가보안법이나 반공법을 무시하고 살았지만, 북한을 위해 간첩 활동을 하지는 않았다. 툭 하면 간첩으로 몰려 감옥을 수시로 출입했던 이 통일운동가는 2020년에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김낙중 #간첩조작 #공안사건 #중부지역당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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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 피해의 역사가 '가해의 면허' 될 수 없다

유정길의 생명정치

ecogil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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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학살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이스라엘

기억을 팔아 권력을 잡는 ‘홀코코스트 산업’

이스라엘 정책 비판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다

이스라엘 우익의 정치자산이 된 홀로코스트

할리우드와 서사권력-500편 영화가 만든 세계

홀로코스트 기억의 독점으로 다른 학살 주변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주권적 발언의 정당성

유대인 편들기 아닌 고통받는 이들 편에 서기

4월 16일, 레바논 나바티에에서 이스라엘군이 공습을 한 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2026.4.16. 로이터 연합뉴스

홀로코스트 자행하는 이스라엘 정책 비판은 반유대주의인가채

2023년 하마스의 공격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보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은 2026년 현재까지 가자지구에서 7만 2300여 명의 사망자와 17만 2000여 명의 부상자를 냈다. 서안지구에서도 약 1000여 명이 사망하였고, 레바논 역시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4000여 명 이상이 숨지고 90만 명 이상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2024년 휴전 이후에도 이스라엘은 1653회 이상의 공격을 감행하여 하루 평균 5회꼴로 공습을 이어 갔으며, 이란·미국 간 휴전 논의가 시작된 이후에도 레바논을 재차 공격했다.

2026년 2월 28일에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이란의 핵시설 파괴와 정권 교체를 목표로 대규모 공습을 감행함으로써 본격적인 이란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테헤란과 이스파한 등 이란의 주요 도시를 공습했고, 이란은 이에 맞서 이스라엘 본토와 인근 미군 기지, 나아가 쿠웨이트·UAE 등 주변국에까지 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퍼부었다. 그 이전인 2020년부터 2025년 사이에도 이스라엘은 시리아에 250여 차례 이상, 서안지구에 900회 이상의 군사 작전을 전개했으며, 예멘에 48회, 걸프 국가 카타르에까지 공격을 가했다.

가자지구 사망자 7만 2000여 명 가운데 80%가 민간인이며, 그 중에는 저널리스트 248명, 학자 120명, 구호 활동가 224명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 사망자의 56.2%가 어린이·여성·노인이었다. 레바논에 대한 공습은 헤즈볼라를 넘어 민간지역을 무차별적으로 강타했고, 이란에 대한 직접 군사 타격으로까지 이어지며 중동 전체가 전면전의 위기에 직면했다. 병원이 폭격당하고, 학교가 무너지고, 유엔 구호 시설이 표적이 되는 장면들이 전 세계 화면을 통해 생중계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대한민국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4월 10일 이스라엘의 행태를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이례적으로 분명한 정부 입장에 이스라엘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스라엘 외무부는 "홀로코스트 추모일을 앞두고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듯한 발언은 용납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통령을 규탄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것은 과연 유대인 학살을 경시하는 행위인가? 홀로코스트 피해자라는 역사적 사실이 현재 자신들이 벌이는 살육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이 글은 이스라엘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환원하는 논리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 글은 유대인을 혐오하는 글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를 정치적으로 도구화함으로써 그 희생자들을 어떻게 모욕하는지를 살피는 글이다.

 

나치 독일군의 유대인 집단학살. 구덩이를 향해 않혀 놓고 뒤에서 총을 쏘아 죽였다. 위키피디아

인류 최대의 비극, 홀로코스트 - 이스라엘의 강력한 정치적 자산

홀로코스트는 20세기 인류가 저지른 가장 끔찍한 범죄 중 하나다. 나치 독일은 1933년부터 1945년까지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을 조직적으로 학살했다. 아우슈비츠, 트레블린카, 소비부르 등 절멸 수용소에서 벌어진 살육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잔혹함의 극한을 상징한다. 홀로코스트를 기억하고 이러한 살육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인류 전체의 도덕적 의무이다.

문제는 이 비극이 언제부터인가 이스라엘 국가 권력의 가장 강력한 '정치적 자산'으로 배타적으로 전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홀로코스트가 이스라엘의 건국 서사를 정당화하는 핵심 논거가 되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곧 홀로코스트 부정 내지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하는 담론 구조가 형성되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사실상의 '홀로코스트 면죄부'가 되었다.

이 구조는 매우 교묘하고도 공고하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가하는 폭력을 비판하면, 즉각 '나치의 편에 서는 것'이라는 낙인이 찍힌다. 유대인의 역사적 고통을 강조하는 일이 현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가리는 방패가 된 것이다. 이스라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평화 운동가 아모스 오즈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홀로코스트를 이용해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하는 것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에 대한 모욕이다."

피해의 역사가 가해의 면허가 될 때, 그 피해의 기억은 치유가 아니라 무기가 된다. 그리고 그 무기는 지금 가자의 어린이들을 향해 겨누어져 있다.

기억을 팔아 권력을 잡는 ‘홀로코스트 산업’

홀로코스트의 기억이 정치적으로 도구화되는 현상을 가장 정면으로, 용감하게 비판한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 학자였다. 미국의 정치학자 노르만 핀켈슈타인(Norman Finkelstein)은 2000년에 출간한 저서 『홀로코스트 산업』(The Holocaust Industry: Reflections on the Exploitation of Jewish Suffering. Verso, 2000. 한국어판: 『홀로코스트 산업—홀로코스트를 초대형 돈벌이로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한겨레출판, 2004)』에서 미국 유대인 기득권 집단이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조직적으로 산업화하여 정치적·재정적 이익을 취해왔음을 정밀하게 분석했다.

핀켈슈타인의 부모는 모두 홀로코스트 생존자였으며, 그의 친척 대부분은 나치의 손에 살해당했다. 그는 어머니의 실제 경험과 미국 유대인 기관들이 공적으로 재현하는 홀로코스트 서사 사이의 극심한 간극이 있다고 판단하여 연구를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그의 논지는 충격적이다.

홀로코스트는 (1948년 건국부터) 1960년대 중반 이전까지 약 20여 년간 미국 유대인 사회에서 그다지 중심적인 의제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거대한 정치적·문화적 산업으로 부상한 것은 1967년 이스라엘의 '6일 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집트·시리아·요르단 영토를 점령하여 국제적 비판을 받기 시작한 시점과 정확히 겹친다. 다시 말해, '홀로코스트 산업'의 본격적인 가동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에 대한 국제 여론의 비판을 차단하고, 미국 내 유대인 기관들의 정치적·재정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적 필요에서 추동되었다는 것이다. 핀켈슈타인은 이 과정을 '기억의 착취(exploitation of memory)'라고 규정한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유대인 학살을 기억하기 위한 기념물. 위키피디아

홀로코스트 산업의 구체적인 작동 방식-세가지 층위

첫째, 보상금 산업이다. 핀켈슈타인은 전후 독일 및 스위스 은행을 상대로 한 홀로코스트 배상 협상 과정에서 미국 유대인 기관들이 실제 생존자들에게 돌아갈 보상금을 조직적으로 착복했다고 고발한다. 수십억 달러의 배상금 중 실제 생존자들, 특히 노년의 가난한 생존자들에게 돌아간 몫은 극히 미미했고, 상당 부분은 각종 유대인 기관과 로비 조직의 운영 자금으로 흘러들어 갔다.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이름으로 거둔 돈이 정작 피해자가 아니라 그들을 '대표'한다고 자처하는 기관들에 의해 소비된 것이다.

둘째, 기억의 독점이다.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관(USHMM)은 연방 예산으로 운영되는 국가 기관이지만 사실상 미국 유대인 기관들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이 기관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역사상 전례 없는 유일한 사건이며 다른 어떤 역사적 참사와도 비교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유일성 테제'가 만들어지면서 아르메니아인 학살, 르완다 학살, 캄보디아 킬링필드, 그리고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나크바 등 다른 집단학살과의 비교를 사실상 금기시하는 담론이 생산되었다. 이는 다른 학살 피해자들의 고통을 상대적으로 주변화하며, 이스라엘 국가 정책에 대한 비판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셋째, 이스라엘 국가의 절대성 강화다. 반유대주의의 위협을 과장·확대함으로써 유대인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즉각 반유대주의로 규정하는 낙인 찍기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이스라엘 정책을 비판한 정치인·학자·언론인은 '반유대주의자' 낙인과 함께 조직적인 압박을 받았다. 핀켈슈타인 자신도 이 연구로 인해 드폴 대학에서 종신 재직권을 거부당하고 사실상 해고되었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 정책을 정당화하고 미국 내 유대인 기관의 정치적·재정적 영향력을 강화하는 이 과정이야말로 핀켈슈타인이 말하는 '홀로코스트의 이데올로기화'이다.

한편 미국이 중동을 통제하기 위해 강력한 친미 국가를 필요로 했고 그 역할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점에서, 미국은 이 이데올로기에 적극 부응하고 동조하는 역할에 자발적으로 동참했다. 그리고 이 '홀로코스트 산업'이 가장 완벽하게 작동하는 무대가 바로 미국 할리우드였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포스터들. 나무위키

할리우드와 서사 권력 - 500편 홀로코스트 영화가 만든 세계

이스라엘의 정치적 영향력은 군사력과 외교력에만 그치지 않는다. 미국 할리우드를 통해 형성된 서사 권력은 어떤 군대보다 더 넓은 영토를 지배해왔다. 홀로코스트 산업이 학술·정치 영역에서 작동한다면, 할리우드는 그것을 전 세계 대중의 감성과 무의식에 심어넣는 가장 강력한 전달 기제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는 약 500편에 달한다. 〈쉰들러 리스트〉(1993), 〈피아니스트〉(2002), 〈인생은 아름다워〉(1997), 〈사울의 아들〉(2016)에 이르기까지, 이 영화들은 유대인의 고통과 생존을 전 세계 관객의 가슴에 깊이 새겼다.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는 예술의 역할은 소중하다.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방대한 서사 생산이 만들어낸 '인식의 불균형'이다. 수백 편의 홀로코스트 영화가 쌓아 올린 세계적 공감의 정서 위에서,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은 언제나 '비참한 역사를 딛고 선 정당한 자기 방어'로 프레이밍된다. 반면 팔레스타인의 삶과 역사, 그 서사는 주류 미디어에서 철저히 주변화된다. 아르메니아 학살을 다룬 영화는 몇 편이나 있는가? 가자의 어린이가 주인공인 영화는? 캄보디아 킬링필드, 벵골 대기근,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 학살을 다룬 영화는 몇 편인가?

미국 영화산업과 주류 미디어 내 유대계 인사들의 영향력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음모론을 제기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영향력이 특정 서사를 구조적으로 선호하고 반대 서사를 구조적으로 억압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왔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 이후 할리우드 내에서 팔레스타인 지지 발언을 했던 배우·감독·작가 상당수가 에이전시 계약 해지, 캐스팅 배제, 소셜 미디어 압박 등의 불이익을 경험했다고 증언한다.

이 불균형한 서사 지형 위에서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자동으로 '악당'의 위치에 놓인다. 비판자는 먼저 해명해야 하고, 결국 뒷전으로 밀린다. 이것이 서사 권력의 작동 방식이다. 미국 내 많은 대학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비판한 교수들이 반유대주의자로 고발당하고 해고 압력을 받은 사례가 이어졌으며, 영국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수년간 '반유대주의자'라는 낙인과 싸워야 했다. 핀켈슈타인이 예언하고 분석했던 이 메커니즘은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비판을 혐오와 동일시하는 이 메커니즘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정당한 공론장을 봉쇄한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과 유대인을 혐오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이 구분을 의도적으로 흐리는 것이야말로 가장 교묘한 형태의 여론 조작이며, 홀로코스트 산업의 가장 음험한 성과이다.

 

일본의 침략전쟁으로 촉발된 아시아태평양전쟁(2차 세계대전) 당시 점령지에서 학살을 자행하는 일본군. 나무위키

홀로코스트 기억의 독점과 다른 학살의 주변화

홀로코스트 산업의 또 다른 문제는 홀로코스트를 '비교 불가능한 유일한 비극'으로 성화(聖化)시킴으로써 다른 집단학살 피해자들의 고통을 상대적으로 주변화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홀로코스트에 버금가는 집단학살은 여러 차례 있었다. 1915년 오스만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150만 명 추정), 1930~40년대 스탈린의 대숙청과 강제 집단화로 인한 대규모 아사 및 학살(700만 명 추정), 1975~79년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킬링필드(200만 명 추정), 1994년 르완다의 100일 학살(80만 명 추정), 그리고 1948년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을 잃은 나크바(대재앙)까지. 이 모든 비극들은 홀로코스트 서사의 압도적인 문화적 존재감에 가려져 훨씬 적은 국제적 관심을 받아왔다.

특히 팔레스타인의 나크바는 이스라엘 건국의 이면에 있는 어두운 진실임에도 이스라엘에서는 오랫동안 공식적으로 부정되거나 은폐되어 왔다. '우리의 비극은 기억되어야 하지만, 우리가 만든 비극은 기억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중 기준이 국가 정책의 수준에서 실행되는 것이다.

홀로코스트 기억의 보편적 교훈은 '유대인을 다시는 박해하지 말라'는 특수한 교훈이 아니라 '어떤 민족이나 집단도 박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보편적 교훈이어야 한다. 홀로코스트 산업은 이 보편적 교훈을 특수한 면죄부로 축소시킴으로써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진정한 유산을 배반하고 왜곡한다.

나치의 피해자가 나치가 되는 역설

역사는 때로 끔찍한 역설을 만들어낸다.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이 세운 국가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이라는 또 다른 민족에게 자신들을 가해한 나치와 닮은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깊은 슬픔과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나치 독일은 유대인의 이동을 통제·차단하는 게토(ghetto)를 만들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를 세계 최대의 '야외 감옥'으로 만들었다. 수십 년에 걸쳐 식량·의약품·연료 반입을 봉쇄해온 것이다. 나치는 점령지에서 레지스탕스 1명이 독일군을 죽이면 인근 마을 주민 50~100명을 무작위로 처형하는 집단 처벌(collective punishment)을 실시했다. 이스라엘군 역시 하마스 대원 한 명을 잡기 위해 아파트 전체를 폭격하는 동일한 논리를 적용한다.

나치는 유대인을 '해충'에 비유하는 비인간화 언어를 구사했다. 이스라엘의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팔레스타인인을 '인간 동물(human animals)'이라 불렀고,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아말렉(악마)을 멸절하라'는 구약성서의 구절을 가자 작전과 연결지어 인용했다. 비인간화 언어가 학살의 예비 단계라는 사실을 우리는 나치즘의 역사에서 이미 배우지 않았던가.

이 같은 비판은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전직 총리 에후드 바라크는 "이스라엘을 유대 국가로만 유지하려 한다면 아파르트헤이트로 가게 될 것"이라 경고했다. 이스라엘 인권단체 베첼렘(B'Tselem)은 2021년 공식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배를 '아파르트헤이트'로 규정했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국방장관을 전쟁범죄 및 반인도적 범죄 혐의로 체포 영장을 청구했다. 과연 이들(비판자들) 모두 반유대주의자인가?

'피해자성의 무기화'는 도덕적 무한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거에 당한 고통이 현재의 폭력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홀로코스트 산업이 아무리 강력한 서사 권력을 구축했다 해도, 그 서사는 병원에 떨어지는 폭탄 앞에서, 잔해 속에서 아이를 안고 우는 어머니 앞에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의 눈빛 앞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11일 엑스(X·옛 트위터)에 글을 올려 이스라엘 외무부 측의 반발을 겨냥해 "끊임없는 반인권적·반국제법적 행동으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전 세계인의 지적을 한 번쯤은 되돌아볼 만도 한데 실망"이라고 비판했다. 사진=이 대통령 엑스 게시글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 주권적 발언의 정당성

이재명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을 비판한 것은 외교적으로는 이례적이지만 도덕적으로는 지극히 정당한 발언이었다. 그간 한국 정부는 국제 분쟁에 신중한, 사실상 침묵에 가까운 태도를 유지해 왔다. 미국과의 동맹관계, 이스라엘과의 방산·외교 협력, 국내 보수진영의 친이스라엘 기조 등 여러 정치적 고려가 작동해 온 것이다.

이 침묵의 구조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의미 있는 균열이다. 국제법상 민간인 보호 의무를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에 대해 주권 국가의 지도자로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 속에서 외세의 폭력과 점령이 무엇인지 체험한 나라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고통에 대한 공감은 한국인의 역사적 경험과도 깊이 공명한다.

이스라엘 대사관의 항의는 예상된 반응이다. 이는 앞서 살펴본 '비판 봉쇄 메커니즘'의 전형적인 작동이다.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등치시키거나 외교적 불이익을 시사하며 압박하는 방식으로 다른 나라의 정당한 비판을 잠재우려 하는 것이다. 이 압박에 굴복하는 것이야말로 국제 공론장의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이다.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이미 이스라엘의 행태에 공개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을 제노사이드 혐의로 제소했다. 노르웨이·스페인·아일랜드는 팔레스타인 국가를 공식 승인했다. 유엔 총회는 압도적 다수결로 가자 휴전 결의안을 채택했다. 한국이 이 흐름과 함께하는 것은 반유대주의가 아니라, 국제인도법과 기본적 인권 가치에 대한 지지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나아가 한국이 중견 국가로서 세계 평화를 위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으로도 읽힌다. 그간 한국의 많은 시민단체·종교계·학계·예술계는 이미 팔레스타인과 가자 전쟁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 왔다. 2026년 3월 19~21일에 진행된 ‘생명평화 전환 한마당’에서도 '생명평화 관점에서 본 이스라엘-가자 전쟁' 세션이 마련되었다. 이스라엘의 항의는 오히려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더욱 분명한 입장을 갖도록 촉구하는 역효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홀로코스트의 교훈 — 유대인 편들기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 편에 서는 것

노르만 핀켈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홀로코스트를 신성시하는 것은 홀로코스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홀로코스트를 이용하는 것이다." 진정한 홀로코스트의 기억은 유대인의 고통을 특권화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자행되는 집단적 폭력에 저항하는 보편적 양심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아우슈비츠 생존자들이 목숨을 걸고 증언한 내용이기도 하다. 홀로코스트의 진정한 교훈은 '다시는 어떤 민족도 이렇게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기억은 새로운 폭력의 면죄부가 아니라, 폭력에 저항하는 동력이어야 한다.

유정길 불교환경연대녹색불교연구소 소장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을 지지하며, 동시에 더 많은 이들과 국가들이 이 침묵을 깨길 촉구한다. 진정한 반(反)나치즘의 정신은 유대인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고통받고 학살당하는 민중의 편에 서는 것이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홀로코스트로부터 배워야 할, 가장 고통스럽지만 가장 필요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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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군 “미군이 우리 상선에 발포, 휴전 위반…보복할 것”

천호성기자

  • 수정 2026-04-20 09:24

18일 호르무즈해협 케슘섬 인근에 화물선들이 정박한 모습. AP 연합뉴스

이란군이 자국 상선에 대한 미국의 발포가 ‘휴전 위반’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아에프페(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란 군사작전을 총괄하는 이란군 중앙사령부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각) 미군이 오만만에서 이란 상선에 발포해 휴전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군은 ‘해적 행위’와 미군에 대해 곧 대응하고 보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19일 미군은 오만만에서 미군의 해상 봉쇄를 뚫으려던 이란 국적 화물선 ‘투스카’호를 무력으로 나포했다. 기관실에 함포를 쏴 선박을 정지시켰다고 미군 중부사령부가 밝혔다. 이란 매체들은 이 배가 중국에서 출발해 이란으로 가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란군이 자국 상선에 대한 미국의 발포가 ‘휴전 위반’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아에프페(AFP)·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란 군사작전을 총괄하는 이란군 중앙사령부 대변인은 20일(현지시각) 미군이 오만만에서 이란 상선에 발포해 휴전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군은 ‘해적 행위’와 미군에 대해 곧 대응하고 보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19일 미군은 오만만에서 미군의 해상 봉쇄를 뚫으려던 이란 국적 화물선 ‘투스카’호를 무력으로 나포했다. 기관실에 함포를 쏴 선박을 정지시켰다고 미군 중부사령부가 밝혔다. 이란 매체들은 이 배가 중국에서 출발해 이란으로 가고 있었다고 전했다.

이란이 미국의 호르무즈해협 ‘역봉쇄’와 이번 나포를 문제 삼아 미국과의 협상을 중단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이란 국영방송(IRIB)은 이날 이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지금으로서는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예정된) 다음번 이란-미국 회담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이란 파르스·타스님 통신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반적인 분위기가 매우 긍적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며, 미국의 봉쇄 해제가 협상의 전제 조건이라고 했다.

두 나라 간 2주 임시 휴전은 오는 22일 종료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1일 2차 종전 협상을 예고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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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채비율 급등 우려"에 김용범 조목조목 반박 "재정 논쟁 이념 공방 넘어서야"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26.04.20. 07:01:20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내년에는 선진 비기축통화국 평균을 넘어서리라는 전망이 나왔다. 이에 대해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적극 반박했다.

19일 저녁 김 실장은 페이스북에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부채 관련) 발표가 나올 때마다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보도가 국내 헤드라인을 장식하곤 한다. 그러나 국가부채비율을 둘러싼 논쟁은 종종 숫자 자체보다 정치적 프레임에 의해 과장되거나 단순화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같은 날 기획예산처 등에 따르면 IMF는 최근 발간한 '재정모니터(Fiscal Monitor)' 4월호에서 한국의 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비율이 올해 54.4%에서 내년에는 56.6%로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일반정부부채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채무에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까지 포함한 지표다.

한국의 이같은 전망치는 비기축통화국 중 IMF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11개국의 내년 평균치 55.0%를 웃돈다. 올해 한국의 부채비율(54.4%)은 이들 국가 평균치인 54.7%를 소폭 밑돌았으나 내년에는 평균을 넘어선다는 게 IMF 예측이다.

이는 고령화 등으로 인해 복지지출 수요가 갈수록 커지는 한국 상황에 대한 우려, 아울러 특히 이재명 정부의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재정정책 등에 대한 우려와 맞물리면서 국내에서 정치적으로 논쟁이 될 소지가 있다는 게 김 실장의 지적이다.

김 실장은 구체적으로 "한국 국가부채비율은 과연 보도대로 높은가"를 따졌다.

김 실장은 "2025년 결산보고서 기준 한국의 국가채무비율(D1)은 49% 수준인 반면, 2024년 OECD 평균은 109%에 달한다"며 "절대 수준만 놓고 보면 한국은 여전히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군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외국환평형기금채권처럼 대응 자산이 존재하는 채무가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한다"며 "단순한 총부채 숫자만으로 재정 부담을 판단하는 것은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고 적극 반박했다.

'한국이 비기축통화국이어서 한국의 부채비율 증가는 더 우려스럽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김 실장은 현실과 동떨어진 우려라고 반박했다.

김 실장은 "최근 '한국은 비기축통화국이므로 같은 그룹 국가들과 비교해야 하며, 그 안에서는 부채비율이 높은 편'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일정 부분 참고할 만한 시각이지만, 기축통화 여부가 재정 건전성을 가르는 결정적 기준인지는 의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실장은 "2022년 영국의 이른바 '트러스 모먼트'"를 사례로 꼽았다. "기축통화국인 영국도 시장 신뢰를 잃자 국채 금리가 급등하고 파운드화가 급락했다"는 게 김 실장 지적이다.

'트러스 모먼트'란 영국의 최단 재임 총리 기록을 세운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정책 실패를 지적한다. 트러스 전 총리는 경제 건전성 재고를 목적으로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으나 오히려 시장은 즉각 국채를 투매하면서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하고 국채 금리는 급등하는 부작용을 낳았다. 트러스 전 총리는 결국 취임 45일 만에 그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 실장은 "최근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에도 영국·프랑스·독일·일본·미국 등 주요 선진국 국채 금리가 한국·인도 등 일부 국가보다 오히려 더 큰 폭으로 상승했다"고 반박했다. "기축통화 보유 여부만으로 적정 국가부채비율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게 김 실장 지적이다.

김 실장은 단순히 부채비율만으로 국가 재정 건전성을 평가하는 건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이라고도 강조했다.

김 실장은 "2011~2012년 남유럽 재정위기 당시 ‘PIIGS’라 불리던 국가들의 최근 국채 스프레드가 오히려 독일보다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며 "반대로 부채비율이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장기국채 금리가 크게 뛰었다. 국가부채비율의 절대치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나라 경제의 미래와 중기 재정 여건"이라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아울러 한국의 국가부채비율이 선진국 중 가장 빠르게 늘어날 우려도 크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미국·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 일부가 최근 GDP 대비 6% 안팎의 재정적자를 이어가는 반면, 한국은 3% 내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최근 발표된 중기재정계획 역시 비교적 신중한 재정 운용 기조를 반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부채는 분명 관리해야 할 위험 요인"이지만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성숙 경제에서의 재정 논쟁은, 단순히 부채비율 숫자 하나를 놓고 이념 공방을 벌이는 수준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대신 "핵심은 성장 잠재력"이라며 "기업 경쟁력이 높아지고 자본시장이 성장하며 생산성이 개선된다면 세입 기반은 자연스럽게 확대된다. GDP가 커지고 차입 수요가 줄면 부채비율은 충분히 관리 가능한 범위에 머무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실장은 그 맥락에서 "최근 정부가 경기 대응을 위해 확장적 재정을 일부 활용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며 "경기 침체기에는 재정이 완충 역할을 해야 하고, 위기 상황에서는 신속한 대응도 필요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도 중장기 지속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MF의 이번 보고서에 관한 언론 보도에 대한 반박이면서 동시에 현 정부의 확장 재정 정책에 대한 우려를 일축하는 발언으로 풀이할 수 있다.

▲강훈식 비서실장(왼쪽)과 김용범 정책실장(오른쪽). ⓒ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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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얼굴 뒤에 숨지 마라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4.19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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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0
 
   
 

네타냐후만이 아니라 트럼프도 함께 국제법정에 세워야

이란전쟁을 다루는 한국 언론의 보도 방식에는 맹점이 있다. 전쟁의 실체를 한 개인에 과도하게 초점을 맞춘다는 점이다. 네타냐후가 핵심 인물임은 분명하다. 가자지구에서 그랬듯 이란을 상대로도 초토화 전략을 먼저 세워놓은 후 이란과 레바논 공격에 앞장섰고 휴전을 방해하며 판을 흔들어왔다. 그래서 더 경계해야 한다. 네타냐후를 중심 괴물로 악마화하게 되면 정작 이 전쟁을 완성하고 있는 ‘절대악’이 안개 속으로 숨어버리기 때문이다. 트럼프다.

작년 6월 13일 이스라엘은 이란을 선제 타격했다. 그리고 열흘도 채 지나지 않아 미국은 ‘한밤의 망치 작전’으로 포르도와 나탄즈의 핵시설에 결정타를 날렸다. 미국이 마지못해 전쟁에 끌려 들어온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문을 열고 미국이 들어가 방점을 찍는 정교한 합작품이었다. 이번 전쟁도 명분은 같았다. 이번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동시에 습격했다. 전선은 넓어졌고 적의는 짙어졌으며 수많은 아이들과 무고한 민간인들이 죽어 나갔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으로 전장을 확장해 무차별 학살을 자행하고 100만 이상의 피란민을 발생시켰다.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을 향한 비판은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발언이 국내 언론보도의 흐름에 자칫 기이한 착시현상을 더할 수 있다는 점은 짚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분노가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에만 쏠릴수록 미국은 이상하리만치 가벼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뒤에서 말리다 휩쓸린 조연처럼 보이고, 트럼프는 네타냐후의 꾐에 넘어간 얼간이로 묘사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전면에 나선 것은 이스라엘인지 몰라도 전쟁을 실질적으로 완성한 것은 미국의 승인과 군사력이다.

1982년 사브라와 샤틸라의 학살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베이루트 서부를 장악한 상황에서 레바논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들어가 수천 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세상은 먼저 민병대의 잔혹함에 분노했지만 그 학살은 이스라엘군의 철저한 통제 아래 벌어졌고, 이스라엘 내부 조사위조차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의 책임을 인정했다. 앞줄에 선 것은 민병대였지만 몸통은 그 뒤에 있었다. 지금 한국 언론이 네타냐후의 얼굴에만 줌을 당길수록 트럼프와 미국은 그 뒤로 은근히 숨어버리고 있다.

1980년대 니카라과 콘트라 전쟁도 맥락은 같다. 마을을 파괴하고 민간인을 살상한 것은 현지 반군인 콘트라였지만 그들에게 총을 쥐어 주고 의회의 제한까지 우회하며 세력을 키운 것은 미국이었다. 손에 피를 묻힌 얼굴은 현지에 있었지만 그 손을 움직인 동력은 워싱턴에 있었다. 제국은 늘 이 방식을 선호한다. 언론이 직접적인 가해자의 얼굴에만 시선을 고정하면 책임의 본질적인 구조는 흐려진다. 이란전쟁을 네타냐후 개인의 광기로만 설명하게 되면 진짜 사탄은 교활한 비웃음을 흘리며 전쟁책임을 회피할 방법을 궁리할 것이다.

4월 16일 펜타곤 기도회에서 피트 해그세스 국방장관이 읊어댄 종교적 언어는 이 전쟁의 섬뜩한 배경을 드러낸다. 국가 안보라는 임무에 ‘섭리’와 ‘사명’이라는 포장지를 씌웠다. 구약 성경 에스겔 25장 17절이 등장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악을 행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분노와 응징이 임한다는 요지의 이 구절은 영화 <펄프 픽션>에서 살육을 행하는 자가 무고한 상대를 처단하면서 내뱉은 언사다. 미국은 폭력에 종교라는 외투를 입히면서 도륙행위를 심판의 집행으로 둔갑시키고 있다. 전쟁범죄와 신의 뜻을 동일시하는 방식은 미국의 면죄부 문법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전쟁의 실상을 정확히 불러야 한다. 네타냐후의 전쟁만이 아니다.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공동 책임 아래 진행된 전쟁이다. 누가 먼저 판을 깔았는지, 누가 더 잔인한 얼굴을 하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핵심은 누가 실제로 국가권력을 동원해 총력 공격을 기획하고 국제법을 짓밟고 민간인 희생이 예견된 작전을 밀어붙였는지 여부다.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 나아가 침략전쟁의 책임은 둘 다에게 지워져야 한다. 네타냐후는 이미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 대상이다. 트럼프 역시 그 옆자리에 서야 한다.

국내에서 자주연합을 비롯한 시민사회가 국제형사재판소 제소와 범시민 서명운동에 나서는 것은 그래서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그것이 당장 법적 결과를 낳느냐를 떠나 인류가 최소한 어디에 선을 긋고 무엇을 용납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언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국제형사재판소를 향한 요구는 결코 과한 것이 아니다. 탄핵이나 선거 심판은 국내적인 절차일 뿐이다. 그러나 국경을 넘어 벌어진 대규모 범죄는 별도로 국제 심판대에 세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강대국 지도자가 벌인 전쟁은 늘 자국 정치의 소음 속에서 적당히 증발되고 말 것이다.

전례는 여럿이다. 2001년 세르비아의 전직 대통령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집단학살과 반인도범죄 혐의로 헤이그 법정에 섰다. 재판 도중 사망해 유죄 확정은 피했으나 국가원수도 국제법정의 피고가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라이베리아의 전직 대통령 찰스 테일러 역시 2012년 전쟁범죄 방조 혐의로 50년형을 선고받고 지금도 복역하고 있다. 인간의 존엄과 인류 문명의 숭고함을 짓밟은 인간은 그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법망 바깥에 영원히 머물 수 없다는 원칙은 이미 수백 번도 더 확인됐다.

우리와 관계없는 남의 일이 아니다. 외세의 개입과 전쟁, 민간인 학살과 분단의 역사를 관통해온 우리가 국제법의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추상적인 도덕주의가 아니다. 오히려 처절한 역사적 경험을 가진 시민의 능동적이고 현실적인 감각이다. 지금 우리는 네타냐후를 향한 손쉬운 분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네타냐후의 얼굴 뒤로 숨는 미국까지 함께 끌어내는 정밀한 분노가 필요할 때다. 그래야만 이 전쟁의 실체도, 책임의 순서도, 우리가 지켜야 할 문명의 마지노선도 흐려지지 않을 것이다. 인류는 트럼프와 네타냐후를 나란히 심판대에 올려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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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게인 2018’ 승부처 경남…앞선 김경수, 따라붙는 박완수

강동형 에디터

yunbin6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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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 입력 2026.04.18 19:00

  • 수정 2026.04.18 19:22

  • 댓글 0

[여론조사꽃] 김경수 48.4%, 박완수 42.1%

김경수 가상 양자·다자 대결에서 모두 우세

김경수 개인역량 압도…박완수 조직표 견고

김경수 김해·창원, 박완수는 진주·밀양 우세

박완수 후보 확정되자 '샤이 보수' 지지 늘어

김경수 앞서지만 경남은 끝나지 않은 승부처

6·3 지방선거에서 경남 도지사 선거 역시 부산 못지않은 관심 지역이다. 민주당에서는 도지사를 경험한 김경수 후보가 실지 회복에 나섰고, 국민의힘은 현 도지사인 박완수 후보가 방어에 나섰다. 민주당이 부산과 울산, 경남에서 ‘어게인 2018’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남에서의 승리가 관건이다.

여론조사 수치만 놓고 보면 부·울·경에서 경남이 가장 힘든 험지로 꼽힌다. 정당지지율이 오차범위내에 있고, 김경수 후보와 박완수 후보의 지지율 격차만 봐도 오차범위내에서 승부가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 김경수 후보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정당지지율이나 지방선거 인식조사보다도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 역시 지역기반이 만만치 않다. 따라서 김경수 후보는 끝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고, 늦춰서도 안 되는 상황이다.

어게인 2018을 이루기 위해서는 김경수 후보가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사진은 김경수(가운데) 후보가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지난 14일 전재수 부산시장 후보, 김상욱 울산시장 후보와 함께 부울경 메가시티 공동 출정식을 가진뒤 손을 맞잡고 있다.. 2026, 03,14 연합뉴스

여론조사꽃이 14일부터 15일까지 이틀동안 경상남도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상대로 실시한 무선자동응답전화조사(ARS, 표본오차 ±3.1% 포인트, 응답률 8%) 결과 경남지사 가상양자대결에서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후보가 48.4%의 지지를 받아 1위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는 42.1%로 두 후보의 지지율 격차는 6.3% 포인트로 집계됐다. 그 외 다른 인물은 3.7% , 투표할 인물이 없다는 3.7%였다.

민주당 김경수후보 ,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 가상양자대결

두 후보간 지지율 격차 6.3% 포인트는 오차범위( 표본오차 ±3.1% 포인트에서 오차범위내 최고치는 6.2% 포인트) 밖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차범위를 벗어났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수치라 할 수 있다.

김경수 후보는 권역별로는 2권역(김해시, 양산시)에서 60.1%의 높은 지지율로 박완수 후보(29.9%)에 우세했고, 1권역(창원시 ) 에서도 47.5%로 박완수 후보 40.4%를 따돌렸다.

서부경남 남해안벨트인 4권역( 통영시 사천시 거제시 고성군 하동군 남해군)에서는 김경수 후보 48%, 박완수 후보 45.1%로 박빙의 접전을 벌였다. 진주시를 포함한 내륙 시군구 지역을 포함하고 있어 보수성향이 강한 3권역(진주시 밀양시 의령군 함안군 창령군 산청군 함양군 거창군 합천군) 에서는 김경수 후보가 36.3%, 박완수 후보는 56.1%로 박 후보가 우세한 양상을 보였다.

연령별로는 지지세가 뚜렷하게 갈렸다. 김경수 후보는 40대(67.3%)와 50대(57.1%)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였고, 30대(46.9%)에서는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다. 박완수 후보는 70세 이상(60.8%)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였고, 18~29세(47.2%)에서 앞섰다. 60대에서는 두 후보가 초박빙 접전 구도를 형성했다.

여론조사 꽃은 올해 들어 민주당 김경수 후보와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의 가상양자대결을 이번 조사를 포함해 모두 세차례 실시했다.

약 한 달 전인 3월 18일부터 19일 이틀 동안 도민 1009명을 상대로 무선전화면접조사(CATI, 응답률 ±3.1% 포인트, 응답률 13.6%) 가상양자대결에서 김경수 후보는 44%, 박완수 후보는 33.4%의 지지를 받았다. 후보가 없다거나 잘 모른다, 그 외 인물은 22.6%였다. 물론 한 달 전 조사는 조사방법이 달라 단순 비교하는 데 무리가 따르지만 전체적인 흐름은 알 수 있다. 이번 조사와 비교하면 김경수 후보는 4% 포인트 증가하고, 박완수 후보는 11.7% 포인트 상승해 박완수 후보의 상승폭이 컸다. 경남 유권자 중에서도 부산과 마찬가지로 후보 선택을 주저하는 샤이보수가, 국민의힘 후보가 확정되자 자신들의 표심을 드러내면서 자연스럽게 박완수 후보의 지지율이 올라간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김경수 후보의 지지기반은 흔들리지 않아, 김 후가 견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꽃이 1월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동안 경남도민 1005명을 상대로 실시한 무선자동응답전화조사(ARS, 표본오차 ±3.1% 포인트,응답률 6.5%) 가상양자대결에서는 김경수 후보가 47.7%, 박완수 후보가 37.4%로 두 후보간 지지율 격차는 10.3% 포인트였다. 1월 조사는 이번 조사와 같은 방식의 여론조사(ARS)_여서 서로 비교하면 지지율 등락이 왜 일어 났는지를 좀 더 분명히 파악할 수 있다.

꽃이 지난 1월 달에 조사한 데이터와 이번 조사를 비교하면 김경수 후보는 0.3% 포인트 증가했고, 박완수 후보는 7.7% 포인트 증가했다. 김경수 후보 역시 큰 폭은 아니지만 약간 증가했기 때문에 박완수 후보가 지지율 증가에 영향을 미친 집단은 적절한 후보가 없다거나 모른다거나 무응답층에서 옮겨간 유권자라고 할 수 있다. ‘내란옹호당’ ‘윤어게인을’ 외치는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할 수 없어 선택을 유보하며 숨어 있던 이른바 ‘샤이보수’가 국민의힘 후보가 확정되면서 국민의힘 지지를 드러낸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여론조사 분석을 하다보면 보수정권하에서는 무응답층에 샤이진보가 더 많이 숨어 있고, 진보정권에서는 샤이보수가 더 많이 숨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번 조사에서 가상양자대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그룹은 약 10% 포인트 정도다. 이들 상당수는 샤이보수로 국민의힘 박완수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후보 지지를 표명하지 않던 그룹이 모두 박완수 후보를 지지할 경우 김경수 후보의 당선은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선거에는 여론조사를 포함해 후보 개개인에 대한 평가 , 선거 구도와 공약 등 많은 변수들이 있다. 이들 변수들을 고려해 이번 경남도지사 선거를 분석해 보면 김경수 후보가 박완수 후보에 비해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울러 김경수 후보는 진보당 전희영 후보를 포함 한 가상다자대결에서도 우세를 이어갔다. 꽃 조사 가상다자구도 대결에서 김경수 후보는 46.8%의 지지율을 얻어 1위를 기록했다. 박완수 후보는 39.3%로 뒤를 이었으며, 두 후보 간 격차는 7.5%포인트였다.

진보당 전희영 후보 함한 가상 다자대결

양자구도 보다 다자구도에서 1위와 2위의 지지율 격차가 더 벌어진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결과다.

이어 진보당 전희영 후보는 2.6%, 그 외 다른 인물 3.3%, 투표할 인물 없음은 5%로 집계됐다.

권역별로는 양자구도와 마찬가지로 다자구도에서도 1,2권역에서 우세하고, 4권역에서는 박빙우세, 3권역에서는 박완수 후보가 우세했다.

연령별 역시 가상양자대결과 마찬가지로 세대간 지지 구도가 뚜렷했다. 김경수 후보는 40대, 50대에서 우세했고, 30대에서도 앞섰다. 60대에서는 두 후보가 초박빙 구도를 형성했다. 박완수 후보는 70세 이상에서 우세했고, 18~29세에서도 앞섰다.

경남도 지방선거 인식조사

지방선거 인식조사에서 ‘정부 지지를 위해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46.1%, ‘정부 견제를 위해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은 42.1%로 집계됐다. 두 응답 간 격차는 4%포인트로, 오차범위 안에서 팽팽한 접전 양상을 보였다.

이 수치 보다 김경수 후보의 지지율(48.4%)이 더 높다. 후보 가운데 지방선거 인식조사 보다 민주당 후보 지지율이 높은 후보는 찾아보기 힘들다.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한 김부겸 후보가 손꼽힐 정도다. 김경수 후보가 개인 경쟁력으로 상당한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박완수 후보는 양자대결 지지율 42.1%와 지방선거 인식조사 수치가 동일해 개인 역량 보다는 전통적인 국민의힘 성향 유권자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당지지율은 민주당이 45.3%, 국민의힘 40.7%를 기록했다. 양당 간 격차는 4.6% 포인트로 오차범위 안에서 팽팽한 형국이다.

이어 진보당 3%, 개혁신당 2.5%, 조국혁신당 1.8%, 그 외 정당 2.5%, 지지정당 없음이나 모름은 4.2%였다. 정치 고관여층이 주로 응답하는 ARS 조사지만 범여권 정당의 지지율합이 50.1%여서 경남의 정당지지 구도에 큰 변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상남도 정당지지율

이재명대통령 국정운영평가

이재명 대통령 국정운영 평가는 긍정평가 63%, 부정평가 33.7%로 집계됐다. 긍·부정 격차는 29.3% 포인트로 나타났다. 권역별로는 경남 전 권역에서 긍정 평가가 부정평가에 비해 앞서거나 우세했다. 3권역에서도 54.3%로 과반을 기록해 경남도민의 이 대통령에 대한 변화된 민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꽃 여론조사의 이념성향 표본(가중치 적용사례) 구성비를 살펴보면 진보성향 표본 22.6%, 중도성향 34.5%, 보수성향 표본 28.7%, 잘모름 14.2%로 보수성향 표본이 다소 많은 편이다. 하지만 보수세가 강한 경상남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표본 추출이 양호한 편이다. 김경수 후보가 본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론조사의 보다 상세한 내용은 여론조사꽃 보도자료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 위원회 홈페이지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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