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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李 대통령 개인기로 핵잠 성과…윤석열이 지금도 대통령이었으면 못했다"저장 문서]

[정세현-박인규의 정세토크 시즌 2] "대통령은 9.19 복원 경축사에 넣었는데 참모들은 반대…참모들이 '방해'하나"

에이펙(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핵추진잠수함 건조를 승인받았다.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을 정상회담에서 제안했고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를 승인하면서 군에서는 30년 숙원을 이뤘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박인규 <프레시안> 고문과 대담에서 에이펙 기간 중에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이 장면을 꼽았다.

 

그는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기로 돼 있는데도 이 대통령이 북한과 중국 때문에라도 핵추진잠수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한중관계가 우려되기도 했지만 저렇게 트럼프 대통령을 흔들어서 핵잠 기술을 주겠다고 말하게 하는 건 참모가 '말씀자료'를 써서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순발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기"라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은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소위 일선 행정의 달인으로 각인돼 있어서 국제정치적 식견이나 외교술은 약하다고 봤는데, 이번에 보니까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정도로 실력을 발휘했다"며 "소년공으로 일하면서 터득한 생존의 기술, 살아남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이런 순발력이 생겼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핵추진잠수함 건조 승인과 관련 "이번 에이펙 회의가 그동안 자주외교를 위한 역량의 양적 축적이 질적 전환을 가져온 계기가 됐는데, 자주국방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미국으로부터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도 함께 진행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정 전 장관은 이번 에이펙에서의 또 하나의 포인트로 미중 정상회담을 짚었다. 그는 "시기적으로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5년 부산에서 열렸던 에이펙 정상회의 때만 하더라도 미국이 중국을 의식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2010년이 되면서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의 40%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세계 2위가 됐다"며 20년 동안 미중 간 상황이 변화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박 고문은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를 통해 중국을 무릎꿇리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중국의 대두 수입 재개 및 희토류 공급으로 관세 전쟁을 봉합했다"며 "이는 미국이 당초 목표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정 전 장관 역시 "미국이 중국에 무릎을 꿇은 거라고 볼 수 있다. 무역 전쟁을 1년 휴전한 건데, 내년이라고 중국이 희토류를 미국에 양보하겠나?"라며 "앞으로 대략 10년 정도 지나면 미국이 중국을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한편 정 전 장관은 지난 9월 이재명 정부의 관료들을 자주파와 동맹파로 나누면서 대통령 주변에 동맹파가 너무 많다고 발언한 데 대해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들어 보니 9.19군사분야합의 복원에 반대하는 참모들도 있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경축사에 넣었다고 한다. 대통령은 9.19군가분야합의 이행을 국가장책으로 공표했는대, 참모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러면 참모들이 트럼프라는 '피스메이커'를 돕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보조자(assistant)가 되기는커녕, '페이스 디스럽터'(disruptor, 방해자)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한마디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담은 5일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사)한국통일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대담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왼쪽) 전 통일부 장관과 박인규 <프레시안> 상임고문. ⓒ프레시안(이재호)

 

박인규 : 지난 9월에 더불어민주당에서 개최한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세미나에 참석하셔서 대통령 주변에 동맹파가 너무 많다고 말씀하셔서 화제가 됐다.

 

정세현 : 지난 광복절 경축사에 9.19 군사분야합의의 선제적·단계적 복원이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이게 8.15 광복절로부터 한달이 넘도록 이행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대통령 주변에 동맹파가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복수의 관계자들로부터 들어 보니 9.19군사분야합의 복원에 반대하는 참모들도 있었는데 이재명 대통령이 경축사에 넣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공식연설은 바로 국가정책이다. 대통령은 9.19군가분야합의 이행을 국가장책으로 공표했는대, 참모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셈이다.

 

이러면 참모들이 트럼프라는 '피스메이커'를 돕는 '페이스메이커'가 되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보조자(assistant)가 되기는커녕, '페이스 디스럽터'(disruptor, 방해자)역할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서 한마디 했던 것이다.

 

박인규 : 일부에서는 동맹파와 자주파로 나누는 것 자체가 자주파는 '동맹 생각 안하고 북한만 추종하는 세력'으로 프레임을 씌우려 하는 것으로 평가하기도 한다.

 

정세현 : 내가 규정하는 동맹파는 한미관계를 더 중시하는 세력들이고 자주파는 남북관계를 더 중시하는 세력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한미관계만, 남북관계만 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자주파는 전체가 100이라면 남북관계를 70-80 정도로 중시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고, 동맹파는 70-80 정도를 한미관계에 주력하고 있다는 뜻이다. 즉 비율의 문제지 대미 종속, 대북 추종 이런 의미가 아니다.

 

자주파는 미국 이야기 들을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다. 한미관계를 중시하지만 남북관계를 우선적으로 생각하자는 것이다. 동맹파도 남북관계를 완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한미관계를 더 중시하면서 남북관계를 풀어가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를 복잡하게 말할 수 없으니 자주파-동맹파로 이야기한 것이다.

 

20년 전에 있었던 논쟁을 다시 끄집어 내는 이유가 뭐냐고 이야기들을 하는데, 남북관계가 평화적 관계로 안정되고 미국의 간섭이 줄어들 때까지는 언제든지 자주파 동맹파로 나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박인규 : 지난달 말에 열렸던 에이펙(APEC)에서 경주 선언이 채택됐다. '자유무역'이라는 말은 못 넣었지만 무역 확대를 강조했다. 에이펙 계기로 가진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 추진을 언급하기도 했다. 에이펙에서 한국의 외교적 성과는 무엇이며 앞으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정세현 : 한미 정상회담도 중요하고 한중 정상회담도 의미가 있지만 미중 정상회담이 한국에서 열렸다는 것이 시기적으로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2005년 부산에서 열렸던 에이펙 정상회의 때만 하더라도 미국이 중국을 의식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2010년이 되면서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미국의 40%까지 치고 올라오면서 세계 2위가 됐다.

 

이후 2012년 11월 시진핑(習近平)이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오른 뒤 2013년 3월 중국의 국가주석직도 겸직을 하게 됐다. 그러더니 2013년 6월 미국으로 가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시진핑은 미국과 중국이 '신형 대국관계'를 구축하자고 했다. 이는 과거 미국과 소련의 경우 '제로섬' 게임의 대국관계였지만 미중은 '윈-윈'하는 대국관계를 구축하자는 의미였다.

 

그런데 중국을 소위 '대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과 함께 "지금은 내가 완전히 무릎 꿇은 것은 아니지만 잠시 네 밑에 들어갈 수 있어. 하지만 언젠가는 내가 너를 이길 수 있어. 그때까지는 내가 너 앞에서 먼저 인사할 수 있어. 그러나 우리를 대국 취급해줘"라는 의미가 숨어있었다.

 

미국 입장에서 더 놀랐던 것은 시진핑이 "태평양은 중국과 미국이 나눠 써도 충분할만큼 넓다"고 이야기했던 지점이다. 이건 미국에 하와이를 기준으로 서쪽은 신경쓰지 말고 동쪽으로 나가라는 의미다. 그 이야기를 들은 미국이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등에 보냈던 미군을 철수하고 '아시아로의 회귀'(피벗투아시아·Pivot to Asia)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부산 공군 제5공중기동비행단 내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 2017년 트럼프 첫 번째 집권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당시 일본 총리가 '인도-태평양 개념'을 내놨는데, 이걸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서 '인도-태평양전략'이라고 부르며 중국을 에워싸고 있는 국가들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여서 중국을 압박해 들어가는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고 중국 경제는 계속 성장했고 따라서 군사력도 커졌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생존해 있던 1987년, 개혁개방이 시작된지 8-9년 만인 1987년 '두 개의 백년론'을 내놨다.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이 되는 2021년에는 '소강(小康)사회' 건설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인 2049년에는 '대동(大同)사회' 건설을 목표로 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2021년 중국은 1인당 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중국은 빈부격차는 있지만 국민들이 그런대로 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면서 '소강사회'를 건설하게 됐다고 선언했다. 이제 남은 것은 대동사회 건설인 셈이다.

 

'대동사회'란 중국의 휘하에서 천하가 태평해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를 대체할 팍스 시니카(Pax Sinica: 중국중심의 국제질서)를 2049년까지 건설하겠다는 것이 덩샤오핑이 제시한 두 개의 백년론인데, 시진핑은 팍스 시니카 달성을 '중국몽(中國夢)'이라고 규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같은 과정으로 보면 이번 미중정상회담은 미국이 중국에 무릎을 꿇은 거라고 볼 수 있다. 무역 전쟁을 1년 휴전한 건데, 내년이라고 중국이 희토류를 미국에 양보하겠나? 앞으로 대략 10년 정도 지나면 미국이 중국을 저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으로 본다.

 

이런 상황을 트럼프가 예상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상대에 대한 파악을 먼저 한 뒤 자신의 능력을 분석함)할 수 있는 지혜가 없는 셈이다. 중국이 국제적인 경쟁력 있는 물건을 만들어 내는 세계의 공장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대중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데 그런 것 없이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이다.

 

박인규 : 당초 트럼프 대통령이 고율의 관세를 통해 중국을 무릎꿇리려고 했지만 실패했고 중국의 대두 수입 재개 및 희토류 공급으로 관세 전쟁을 봉합했다. 이는 미국이 당초 목표를 포기했다는 점에서 미국의 패배라고 볼 수 있다.

 

정세현 : 이번 APEC을 계기로 한국이 미중 정상 간 만나는 자리를 만들어 준 셈인데, 이 틈새를 파고 들어가서 한중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과는 핵추진잠수함 문제를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승낙 받았고, 시진핑과 관계를 잘 관리해서 적어도 윤석열 정부 이전으로 한중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에이펙 회의는 한국 외교의 지평을 넓히는 출발점이 된 것으로 본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치면서 소위 일선 행정의 달인으로 각인돼 있어서 국제정치적 식견이나 외교술은 약하다고 봤는데, 이번에 보니까 어디서 배웠는지 모를 정도로 실력을 발휘했다. 소년공으로 일하면서 터득한 생존의 기술, 살아남기 위한 투쟁 과정에서 이런 순발력이 생겼다고 본다.

 

일부 행운도 좀 있었던 것 같다.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한 것이 결과적으로 한국에는 잘 됐다. 지금 윤석열이 대통령 자리에 아직도 있었다면 이렇게 못했을 것이다. 즉석에서 시진핑과 농담하면서 시진핑으로 하여금 한중관계에 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가능했겠나.

 

박인규 : 이번 에이펙을 계기로 각종 정상회담과 회의가 열렸는데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을 만한 일이 있었다면?

 

정세현 : 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추진잠수함 이야기를 꺼낸 장면이다. 시진핑 주석을 만나기로 돼 있는데도 북한과 중국 때문에라도 핵추진잠수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보며, 한중관계가 우려되기도 했지만 저렇게 트럼프 대통령을 흔들어서 핵잠 기술을 주겠다고 말하게 하는 건 참모가 '말씀자료'를 써서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그런 순발력은 이재명 대통령의 개인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 힐튼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이 대통령 주최 정상 특별만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축사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박인규 : 지난 8월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트럼프에게 당신이 '피스메이커'를 해라, 내가 '페이스메이커'를 하겠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핵추진잠수함 이야기를 꺼냈다. 의도가 있어서 이야기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세현 : 트럼프의 과시욕 성정을 건드려서 받아낸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역사적으로 평가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기에 기초한 것이긴 하지만 한미 외교사에서 그 대목이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라고 본다.

 

또 이 대통령이 미국과 관세협상에서 절대로 시한에 쫓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협상 전략에 입각해보면 협상할 때는 '원칙의 굴래'나 '시한의 굴레'를 쓰면 안되는데, 이 대통령은 협상대표단에게 시한을 의식하지 말고 경제적 합리성과 국익만을 생각하고 버티라고 했다. 결국 미국이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

 

박인규 : 한미 양측은 핵추진잠수함 도입과 한국의 방위비를 높인다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정세현 : 방위비 올리는 것은 미국 요구를 들어주는 것 같지만 한국의 군사대국화로 연결되는 길이기도 하다. 대북 저지로만 사용된다면 낭비지만, 무기 산업 발전의 토대를 갖추고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을 찾아오기 위한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려면 방위비 증액이 필요하다.

 

박인규 : 자주 국방의 초석을 놓기 위한 국방비 증액이라는 뜻인가?

 

정세현 : 그렇다. 이번 에이펙 회의가 그동안 자주외교를 위한 역량의 양적 축적이 질적 전환을 가져온 계기가 됐는데, 자주국방의 물질적 토대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러면서 전작권 환수를 시작해야 한다.

 

원래 노무현 정부 때 한미가 2012년 4월 17일 전작권 환수를 하기로 합의를 해서 발표까지 했얶더.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이걸 2015년 연말로 미뤘고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는 환수 기준을 시한이 아닌 북한의 비핵화라는 조건으로 바꾸면서 전작권 환수 문제가 표류를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건 동아시아 정세의 변화도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 2010년대부터 중국이 부상하면서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에 전작권을 돌려주는 것이 아시아에서의 군사적인 패권을 유지하는데 불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에 대한 압박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박인규 : 전작권을 환수하게 되면 유엔사령부는 없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정세현 : 지금 유엔 사무처나 사무총장은 유엔사와 상관이 없다. 유엔 깃발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유엔의 깃발을 계속 쓸 것인지의 문제가 나올 것이다. 법리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는 법무부든 대통령 안보실에서든 국제법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해결하고 넘어가야 한다. 현 상황이면 전작권 환수 이야기 못한다. 환수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인식시키려면 유엔사 깃발 내려야 한다.

 

박인규 :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 등 민주 정부들은 안보에 취약하다는 여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국방비를 늘려온 측면이 있다. 이재명 정부도 이같은 흐름에서 국방비를 늘렸는데 이렇게 된 거 핵추진잠수함 문제를 확 질러버리면서 국내 정치에서 우위를 차지해 보자는 생각이 있지 않았나 싶은데, 이럴 경우 남북관계에는 좋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 같다.

 

정세현 : 북한한테는 아마 굉장히 민감하게 꽂혔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을 공격해 들어오는 '행동'이 일어난 건 아니지만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핵추진잠수함을 만들어서 지금은 재래식 무기를 싣고 다닌다고 그러지만 얼마든지 SLBM(잠수함 발사 탄도 미사일)로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에 제해권을 사실상 뺏길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남한이 자금도 많고 잠수함 건조 능력도 좋기 때문에 군비 경쟁에 돌입하면 북한이 따라오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물론 1~2년 내에 핵추진잠수함 건조가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한국 사람들의 '빨리빨리' 정신 때문에 10년 이상 걸릴 사업의 시간이 단축될 가능성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해부터 시작한 '지방발전 20X10정책'을 통해 2033년까지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소위 북한판 '소강사회'를 만드려고 하는데, 이게 생각처럼 잘 진행되지 않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남한이 핵추진잠수함을 만들면 북한 입장에서는 자기들 바다에 들어와서 무슨 장난을 치고 갈지 모르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이를 감시·경계 견제하기 위해 국방 분야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 북한은 처음에는 강하게 반발하다가 투자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외교적 해결책을 찾으려 할 수도 있다. 지금이야 남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있지만.

 

박인규 : 남북관계에는 악화 요인인데, 이걸 좋게 포장해서 보면 '힘을 통한 평화 추구' 이기도 한 것 같다.

 

정세현 : 미소 군비 경쟁에서 소련은 군비 경쟁을 계속하다 보면 인민 경제가 망하게 될 것이라 보고 결국 미국에 손을 들게 됐다. 북한도 비슷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핵추진잠수함 도입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요구에 순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국방력을 늘릴 수 있는 방위 투자를 높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북한이 감당을 못하게 된다. 지금은 말로 비판할 수 있지만 더 이상 말 가지고 안 되고 군사적으로 대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 전에 군비 통제 또는 감축으로 가자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5년 안에 온다고 본다.

 

12월 중순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서 내년 초 9차 당 대회를 계획해야 하는데, 다음 당 대회가 열릴 2031년까지 5년 동안 인민들에게 경제 발전 목표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언제까지 이렇게 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이 전쟁 끝나면 북한이 어디에 손을 벌리겠나.

 

박인규 : 결국 북한에게도 북미 관계 정상화가 필요해 보인다.

 

정세현 : 트럼프가 북한이 핵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동결하라는 말을 풀어서 한 것이라고 본다. 즉 북한에 비핵화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니 동결이나 비확산 정도에서 끝내자는 것과 함께 NPT(핵확산방지조약) 체제로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가 들어있다고 본다.

 

근데 그것만 가지고는 김정은 위원장이 못나간다고 하면서, 트럼프를 좀 초조하게 만들어서 다른 협상 카드를 내놓게 하기 위해 최선희 외무상을 러시아로 보냈다고 본다. 원래 벨라루스에서 열리는 회의를 앞두고 최선희를 러시아로 보냈는데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인 러시아 방문이었던 것 같다. 김정은의 방러는 아직 결정된 바가 없다는 얘기가 오히려 러시아 쪽에서 나왔다. 그러니까 이런 중요한 논의를 하러 간 것은 아니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창건 80주년 경축행사가 지난 10월 9일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0일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최선희가 10월 26일 러시아로 떠났다고 하니 트럼프는 27일 말레이시아에서 일본으로 오면서 북한이 회담에 나오면 제재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김정은 입장에서는 이것보다는 2018년 6월 12일 첫 북미정상회담 당시 싱가포르에서 했던 약속을 받고 싶을 것이다.

 

물론 북한도 계속 버티기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지방발전 20X10정책' 성공시켜야 하는데 이거 하려면 필요한 자금이나 원부자재가 외부로부터 들어와야 한다. 그러려면 미국이든 남한이든 관계 개선을 해야 하는데, 미국은 사실 직접 지원해주고 이러지는 않는다. 러시아는 전쟁 끝나면 모른척 할 거고 중국은 북한을 키워놓으면 대들었던 경험만 있기 때문에 '불가근불가원'의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결국 남한과 해야 하는 건데,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입장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박인규 : 북미 간 물밑대화 가능성은 없나?

 

정세현 : 주유엔 북한 차석대사 자리가 비워져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미국에서 말을 걸어도 대꾸할 창구가 없었다는 얘기다.

 

다만 케빈 킴 미 대사대리가 얼마 전에 부임했는데 그는 트럼프 1기 정부 때 스티븐 비건 당시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밑에서 일하면서 2018~2019년 북미 스톡홀름 실무협상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을 보면 뉴욕에서 워싱턴을 왔다 갔다 하면서 북한외교관들과 대화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북한이 트럼프 방한 전 혹시 모를 회동에 대비해 판문점 청소하고 손님 맞이할 준비를 한 것일 수도 있어 보인다. 이렇게 보면 북한은 미국이 주려고 하는 반대급부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때 합의했지만, 이후 당시 국무장관 폼페이로 등 네오곤의 반대 때문에 입구에도 다가가지 못했던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을 원하는데 이걸 해주겠다는 사인을 안 보내니까 김정은으로서는 이번 트럼프와의 만남이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박인규 : 워낙 세계적 혼란기라서 앞으로 많은 외교적 도전이 있을 텐데, 지금은 불통이지만 남북관계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인가가 중요할 것 같다.

 

정세현 : 우리가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려면 우선 내년 북미정상회담이 순탄하게 준비될 수 있도록 한국이 아이디어를 내고 로드맵까지 만들어서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 이번에 트럼프가 에이펙을 전후해서 내놓은 1) 핵보유국 지위 인정 2) 대북제재문제 논의 등 반대급부가 북한에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 2018년 싱가포르 합의로 돌아가서 종전선언 하고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협상을 해야 한다고 미국을 부추기고 설득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의 체면 상하지 않게 인도적 지원이라든지 이런 것을 하라고 남한에서도 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북미정상회담으로 아스팔트가 깔리면 남북 민간 차원에서의 버스가 달리고 그 뒤에 관용차가 따라가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말하자면 선북미 후남북(先北美 後南北), 선민후관(先民後官)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박인규 : 트럼프는 내년 중간선거에서 이겨야 하는데 우크라이나-러시아, 이스라엘-하마스 간 전쟁 문제는 어려워졌고 북핵 문제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풀기 쉽지 않나.

 

정세현 : 트럼프가 노벨평화상 받고 싶으면 김정은과의 회담에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와야 하는데, 내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 마감일인 10월 10일 이전에 북미수교를 위한 연락사무소 설치 정도가 되면 트럼프의 노벨평화상 수상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상 받으면 중간선거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려면 트럼프 1기 때 폼페이오 국무장관 같은 네오콘이나 아베신조(安部晉三) 같이 북미관계 개선 반대하는 일본의 극우세력들이 파놓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트럼프 2기 정부에 국무장관이 된 루비오는 극단적인 반북반중(反北反中) 인사라는데, 1기 때 폼페이오가 그랬던 것처럼 루비오도 트럼프와 김정은 정상회담 후 합의이행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거나 북한의 반발을 유도하는 꼼수를 쓰지 못하도록 단속을 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2의 아베신조'-'여자 이베신조'라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리를 비롯한 극우성향 일본 정부의 북미관계 개선 방해 동향도 견제하도록 한미 간에 긴밀한 협력을 해야 할 것이다.

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남북관계 및 국제적 사안들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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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온 5도 미만’ 초겨울 성큼…“두꺼운 옷 챙기세요”

김규원기자

  • 수정 2025-11-10 08:30
  • 등록 2025-11-10 08:17
추운 날씨를 보인 지난 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외투를 입은 채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추운 날씨를 보인 지난 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외투를 입은 채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10일 월요일은 기온이 크게 떨어져 내륙을 중심으로 5도 미만이 된다. 겨울옷을 챙겨야 한다.

이날 기상청은 “북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와 오늘 아침 기온은 어제보다 4~8도가량 떨어지고 내륙을 중심으로 5도 미만이 된다. 모레 수요일 아침까지 춥다. 오늘은 경기 동부와 강원 내륙·산지, 남부 높은 산지를 중심으로 아침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곳이 있다. 이들 지역에선 서리가 내리는 곳이 있고, 물이 어는 곳도 있다”고 예보했다.

오늘은 전국이 대체로 맑지만, 제주도는 오전까지 가끔 구름이 많다. 오늘 오전까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바람이 강하게 불고, 동해 먼바다를 중심으로 매우 강한 바람이 분다. 물결도 매우 높다.

오늘 최고기온은 10~16도로 평년과 비슷하거나 조금 낮다. 주요 도시의 최고기온은 서울 11도, 인천 10도, 수원 11도, 백령도 10도, 춘천 12도, 강릉 15도, 청주 12도, 대전 13도, 세종 12도, 전주 13도, 광주 14도, 제주 16도, 대구 14도, 울릉도 11도, 부산 16도, 울산 14도로 예상된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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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와 노인세대의 불평등은 다르다

[전혀 다른 불평등이 온다1] 자산 형성 포기하는 Z세대...소득·건강 등 불평등 집약된 노인세대

김백겸 기자 kbg@vop.co.kr

서울 아파트 자료사진 ⓒ뉴스1

수치상 한국의 불평등은 점차 완화되는 추세로 나타난다. 그러나 실제 사회에서는 여러 계층에서 불평등을 호소하고 있다. 숫자와 현실의 차이는 불평등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대표적인 불평등 척도는 소득 지니계수였다. 경제 성장의 결실을 얼마나 평등하게 분배하고 있는지가 지금까지 불평등을 가늠하는 기준이었던 것이다.

한국의 소득 지니계수는 최근 14년 동안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지난 2011년(처분가능소득 기준) 0.387에서 2023년 0.323으로 꾸준히 낮아졌다. 2023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자료에 따르면 37개 회원국 중 한국은 11번째로 소득 지니계수가 높다. 다른 국가보다 소득 불평등 정도가 높은 편이지만, 미국(0.375), 일본(0.357), 영국(0.355)보다 낮은 수준이다.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정도가 높은 것을 뜻한다. 

수치상으로는 예전보다 불평등 정도가 나아졌다고 하지만, 현실에서는 곳곳에서 양극화 심화 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더 이상 소득만으로 불평등을 측정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입체적으로 바라본 불평등...다차원 불평등 지수


지난달 28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다차원적 불평등 지수' 연구는 이 같은 고민에서 시작됐다.

수치상 소득 불평등은 완화되고 있지만, 이것으로 사회 불평등이 완화됐는지는 잘 체감되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서는 삶의 질을 결정하는 요소가 훨씬 다양하기 때문이다. 이에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더 나은 삶 지수'(Better Life Index, BLI)나, UN의 '인간개발지수(HDI)'처럼 교육, 건강, 주거, 사회적 관계, 환경 등 비물질적 요소를 포함한 지표들이 등장했다. 이는 불평등을 소득의 재분배만 기준으로 두지 않고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다.

과거에는 소득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이었다. 소득 수준에 따라 교육, 경제 등 다른 지표들도 개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하고, 개인의 소득 수준이 높아진 현재에는 행복이나 건강이 개선되지 않는 '비동조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소득만으로 불평등이 완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돌봄, 고립, 외로움 등 관계 기반의 '신사회적 위험'이 부상하면서, 사회적 연결의 격차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에 소득을 비롯해 자산, 교육, 건강 등 다양한 차원의 불평등을 수치화해 입체적인 지표를 만든 것이 다차원 불평등 지수다.

 

 

 

 

 

 

소득에서 자산으로 옮겨간 불평등


다차원 불평등 지수는 소득, 자산, 교육, 건강의 네 가지 차원을 중심으로 불평등 지수(지니계수)를 산출하고, 각 차원이 전체 불평등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분석했다. 지수가 높을수록 불평등 수준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2011년부터 2023년까지의 추이를 살펴본 결과, 전체 다차원 불평등 지수는 우상향하는 경향을 보였다. 2011년 다차원 불평등 지수는 0.176였으나, 2023년 0.190으로 점차 상승했다. 지금까지 불평등의 척도로 삼았던 소득 지니계수가 완화된 것과는 다른 결과다.

과거 불평등의 주요 요인이었던 소득의 불평등이 완화됐음에도 불평등 정도가 점차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불평등의 주요 요인이 다른 곳으로 옮겨갔다는 이야기다.

다차원 불평등 지수를 형성한 기여도를 보면 자산에 대한 불평등이 전체 불평등에서 가장 높은 기여도를 보이고 있다. 2011년에는 소득의 기여도가 38.9%를 차지하면서 불평등의 주된 요인이었으나, 2023년에는 자산(35.8%)이 소득(35.2%)을 앞질렀다. 2022년에는 소득의 기여도가 31.7%, 자산이 40.3%를 기록하면서 차이가 더 벌어지기도 했다. 더 이상 소득만이 불평등을 결정짓는 주된 요인이 아니라는 뜻이다.

특히 최근 몇 년간 자산 불평등의 비중이 빠르게 증가했다. 이는 부동산 가격 상승과 자산 축적의 격차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다차원 불평등 지수 및 차원별 기여도 변동 추이 ⓒ국회 입법조사처

 

 

 

 

세대별로 달리 느끼는 불평등


다차원 불평등 지수를 세대별로 살펴보면 각 세대가 단순한 소득의 불평등을 넘어 다양한 양상의 불평등을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번 연구에서는 ▲노인세대(1960년 이전 출생) ▲386세대(1961~70년생) ▲X세대(1971~80년생) ▲밀레니얼(M)세대(1981~90년생) ▲Z세대(91년 이후 출생) 등으로 구분해 각 세대별 불평등 추이를 분석했다.

Z세대는 전체 세대 중에서 가장 낮은 다차원 불평등 지수를 기록하고 있다. 노인세대가 2023년 0.226으로 가장 높고, Z세대가 0.145로 낮다. 특히 교육 기간과 건강에 대한 불평등 기여도가 세대가 어려질 수록 낮아지는 것도 특징이다.

Z세대는 교육 기간과 건강 면에서 비교적 균형 잡힌 삶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자산 축적이 미흡해 자산 불평등의 기여도가 점차 상승하고 있다. Z세대의 자산 불평등 기여도를 보면 2011년 42.8%에서 2023년 44.7%로 꾸준히 상승했다. 특히 2022년 자산의 기여도는 53.5%까지 차지했다.

이는 향후 자산 격차가 Z세대의 주요 불평등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초기 경력 단계에서의 소득 안정성과 주거 지원, 금융 접근성 개선이 요구된다.

M세대는 다차원 불평등 지수가 점진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인다. 2011년 0.125에서 2023년 0.144로 꾸준히 상승했다. M세대는 경력 중반기에 접어들며 소득 격차가 확대되고 있으며, 특히 부동산 가격 상승과 자산 형성의 어려움으로 인해 자산 불평등의 기여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M세대의 자산 불평등의 기여도는 2011년 34.3%에서 43.8%로 올랐다. M세대의 역시 자산과 소득 격차가 불평등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인 모양새다.

X세대는 소득, 자산과 함께 건강 격차가 세대 내 불평등의 주요 기여 요인으로 부상한 것이 눈에 띈다. 중산층 내 양극화가 심화와 함께 나이가 들면서 발생하는 만성질환 등 건강 문제도 점차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소가 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대별 다차원 불평등 지수 변동 추이 ⓒ국회 입법조사처


386세대 또한 자산 불평등 정도가 점차 높아지는 양상을 보이지만, 소득 불평등 지수도 높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최근 5년(2019년~2023)년 사이 소득 불평등 지수는 32%에서 36% 사이에서 등락을 반복하고 있어 소득 불평등이 고착화되는 모양새다. 이들은 은퇴 전후의 소득 격차와 부동산 보유 여부에 따른 자산 격차가 불평등을 주도하고 있다. 또 노화로 인한 건강 격차 역시 386세대의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노인세대는 모든 세대 중 가장 높은 다차원 불평등 지수를 기록하고 있다. 다른 세대처럼 불충분한 소득 보장, 자산 보유 격차가 주된 불평등 요인이지만, 낮은 교육 수준과 불균형한 건강 상태로 인한 불평등 지수도 높아 거의 모든 차원에서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교육기간에 대한 불평등 기여도를 보면 Z~X세대는 6~9%대(2023년)를 보이지만 노인세대는 24.2%로 높다. 건강 불평등 기여도도 2023년 12.5%로 어느 세대보다 높은 수준이다.

노인세대가 복합적이고 누적된 불평등에 가장 취약한 집단이라는 것이 지표로 나타난 것이다.

다차원 불평등 지수는 한국 사회의 복합적 격차가 단일한 소득 재분배 중심 정책으로는 해소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각 세대별로 다르게 나타나는 삶의 조건과 불평등 요인을 반영하는 맞춤형 불평등 완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처럼 한국 사회 불평등 완화를 위한 정책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소득을 불평등의 단일한 지표로 삼던 것에서 벗어나 입체적으로 불평등을 측정하는 노력이 계속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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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항소', 안한 게 맞다

[이충재의 인사이트] 검찰 항소 남용 관행에 경종, 무리한 기소 드러났고 법리적으로도 타당...민감한 시기 고려 않은 건 '실책'

25.11.10 06:18최종 업데이트 25.11.10 06:57
검찰이 대장동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항소하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이 이는 가운데 '항소 포기'가 아니라 '항소 자제'가 옳다는 지적이 나온다.연합뉴스

검찰이 대장동 1심 재판 결과에 대해 항소하지 않은 것을 두고 논란이 이는 가운데 '항소 포기'가 아니라 '항소 자제'가 옳다는 평이 나옵니다. 최근 대장동 사건의 주요 피의자인 남욱 변호사의 진술 번복 등으로 검찰의 무리한 기소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다, 항소권 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을 반영한 조처라는 반응입니다. 특히 검찰 내부의 항소 기준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법리적으로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검찰개혁이 진행 중인 민감한 시기에 항소를 포기해 논란을 자초한 건 실책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대장동 사건 수사팀은 반발하고 있지만 법조계에서는 이번 조처가 검찰의 잘못된 항소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견해가 적지 않습니다. 그간 무분별한 항소로 피고인들이 과도한 정신적, 경제적 피해를 입는다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검찰에선 1심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무턱대고 항소하고 보는 관행이 이어져 왔습니다. 선고형량이 검찰 구형보다 크게 낮을 경우 혐의 입증이 충분했는지 돌아보기보단 구형 대비 선고형의 비율만 따져 기준에 미달하면 기계적으로 항소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검찰의 대장동 재판 항소 포기는 당연한 결정이라는 반응이 나옵니다. 실제 검찰 내규로 정해진 항소 기준을 따르더라도 문제가 없습니다. '선고 형량이 구형의 3분의1 이하일 때 항소'하도록 돼있는데 대장동 1심 재판 피고인 전원이 이에 해당합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정민용 변호사의 경우 검찰이 각각 징역 7년과 5년을 구형했는데, 법원은 이보다 높은 8년과 6년을 선고했습니다. 김만배와 정영학 회계사, 남욱 변호사 등 다른 3명에게는 구형의 절반 이상이 선고됐습니다.

항소 포기의 당위성은 검찰 기소가 억지임을 보여주는 정황에서도 확인됩니다. 대장동 민간업자인 남욱 변호사는 지난 7일 열린 정진상 재판에서 "검사가 배를 갈라버리겠다고 했다"며 구체적으로 검찰의 회유 압박에 대해 털어놨습니다. 이 정도면 검찰의 협박이 명확해 진상을 규명하고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할 사안입니다. 항소 포기에 반발하는 수사팀과 검찰 간부진에는 당시 수사를 주도한 검사들이 거의 그대로 있습니다. 반인권적 강압 수사의 당사자들이 항소를 하지 않은 데 불만을 품는 건 적반하장에 가깝습니다.

1심 판결문에서도 검찰의 기소가 엉터리였다는 사실이 드러난 바 있습니다. 검찰이 '이재명 저수지 자금' 등으로 몰아붙였던 428억원에 대해 재판부는 이재명 대통령이 아닌 '유동규 자금'으로 결론내렸습니다. 실제 검찰은 이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나 공소장에서 이 대통령이 뇌물을 받기로 했다는 주장은 넣지 못했습니다. 뇌물을 받은 대가로 공공이익을 몰아줬다고 수백번의 압수수색과 언론플레이를 한 결과치고는 너무도 초라합니다. 검찰이 압박 수사로 얻어낸 진술과 추측으로 짜맞춘 프레임은 이미 크게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대장동 수사팀 비롯한 일부 검사들 반발, 이중적

수사팀의 입장이 무조건 반영돼야 한다는 주장도 터무니 없습니다. 수사 방향과 기소 등에서 수사팀의 의견이 존중되는 것은 맞지만 지휘부 생각이 다른 경우 조율을 거치는 게 일반적입니다. 이번 사태는 항소에 대한 일선 수사팀과 대검의 의견이 달랐고, 그 과정에서 서울중앙지검과 대검이 협의해 항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게 중론입니다. 사의를 표명한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9일 입장문을 내고 "중앙지검의 의견을 설득했지만 관철하지 못했다"고 말한 건 변명에 불과합니다. 항소 여부는 정 지검장 전결사항이어서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는데 그는 결국 대검 의견을 수용했습니다. 수사팀 반발이 표면화되자 뒤늦게 사의 표명으로 빠져나가려는 건 무책임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대장동 수사팀을 비롯한 일부 검사들의 반발이 이중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지난해 검찰이 김건희의 명품백과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을 '황제조사' 하면서 무혐의 처분했을 때 수사팀은 물론 검찰 내부에선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지귀연 판사의 황당한 윤석열 석방에 대검이 즉시항고를 포기할 때도 검찰에선 한마디의 이의제기도 없었습니다. 검찰은 그간 여당에서 불법을 저지른 검사를 탄핵하려 하자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집단행동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대장동 수사팀에서 검찰 지휘부의 책임론을 거론하며 공개 입장문을 냈습니다. 불의하고 비겁한 검찰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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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조작 수사 드러나도…항소 포기에 '검란' 조짐 문서]

김성진 기자다른 기사 보기
 

수사팀 반발, 중앙지검장 사의…집단 항명

대장동 수사·공소유지 '친윤' 강백신이 주도

검찰 구형량보다 높은 중형, 항소 실익 없어

무차별적인 항소에 대한 문제도 고려된 듯 

국힘 박수영 선거법 사건에서도 항소 포기

윤석열 구속취소 즉시항고 포기 때도 조용

한동훈은 장관 시절 '패소할 결심' 상고 포기

'남욱 배 가른다'던 검찰, 사건 조작 의혹 고조

"조폭보다 무서운 검사들, 다 책임 물어야"

"이재명 위한 항소 포기처럼 눈속임 말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모습. 2025.5.13.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모습. 2025.5.13. 연합뉴스 자료사진

검찰이 대장동 사건의 항소를 포기한 데 대해 수사팀이 항의 입장문을 내고,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검란'(檢亂)으로 비화할 조짐이 보인다. 검찰 출신인 한동훈 전 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장동 사건이라는 이유만으로 '이재명 방탄' 프레임으로 몰아 정쟁으로 키우며 검사들의 항명을 부추기는 양상이다. 검찰개혁 과제 등이 추진 중인 상황에서 불필요한 논란으로 번지지 않도록 조기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

검찰, 대장동 1심 항소 포기…수사팀 반발
중앙지검장도 사의 표명 등 집단 반발 관측

앞서 8일 0시를 기해 서울중앙지검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유동규 씨와 김만배 씨를 비롯한 대장동 사업 민간업자들에 대한 항소를 포기했다. 이들의 1심 판결 항소 시한은 7일 자정까지였다.

형사 사건은 판결에 불복할 경우 선고일로부터 7일 이내에 항소해야 한다. 항소를 포기하면 형사소송법상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 따라 1심보다 형량을 높일 수 없다. 유동규 씨, 김만배 씨 등 피고인 5명은 전원 항소한 상태다.

대장동 사건 수사를 주도했고 공소유지도 담당한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가 앞장서 반발했다. '윤석열 사단'에 속한 대표적 친윤 검사로 통하는 그는 8일 새벽 검찰 내부망 글을 통해 전날 오후 서울중앙지검장이 항소장을 결재했지만 대검 반부패부장이 재검토하라며 항소 제기를 불허했다고 적었다. 또 "대검이 법무부에 항소 여부를 승인받기 위해 보고를 했고, 검찰과가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항소의 필요성을 보고했으나 장관과 차관이 이를 반대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했다.

강 검사의 글이 올라온 뒤 대장동 수사·공판팀도 이날 오전 입장문을 배포해 "모든 내부 결재 절차가 마무리된 이후인 전날 오후 무렵 갑자기 대검과 중앙지검 지휘부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항소장 제출을 보류하도록 지시했다"며 "항소장 제출 시한이 임박하도록 지시 없이 기다려보라고만 하다가 자정이 임박한 시점에 '항소 금지'라는 부당하고 전례 없는 지시를 해 항소장을 제출하지 못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5.10.23. 연합뉴스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2025.10.23. 연합뉴스

공판팀의 반발 뒤인 이날 오전엔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항소 포기에 대한 반발로 읽힌다. 검찰 안팎에서는 정 검사장을 시작으로 당시 항소 포기 결정에 관여한 검사들이 연이어 사의를 표명한다거나, 수사·공소 유지 등을 담당하는 일선 검사들의 반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페이스북에 항소 포기 소식이 전해지자 "11월 8일 0시 대한민국 검찰은 자살했다"고 적었다. 또 "이재명 한 사람을 위한 항소 포기라는 더러운 불법 지시를 한 대통령실, 법무부, 대검, 중앙지검 관련자들은 모두 감옥에 가야한다"며 "권력의 오더를 받고 개처럼 항소를 포기해주는 이따위 검찰을 폐지하는데 국민이 반대해줘야할 이유가 뭐냐"고 했다.

이미 1심서 중형 선고…항소 실익 없어
무차별 항소에 대한 문제도 고려된 듯 

검찰 수뇌부가 항소 포기 판단을 내린 데에는 대장동 사건 피고인들의 선고 형량 등을 고려했을 때 항소에 실익이 없다는 법무부 쪽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언론 민들레> 취재를 종합하면, 법무부는 내부적으로 1심 판결이 기존 대법원 판례에 충실했고, 형량도 구형과 비교해 충분히 선고된 만큼 검찰의 항소 기준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검찰 쪽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장동 1심 재판부가 특경가법상 배임죄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하고 형법상 일반 업무상 배임죄만 인정했지만, 양형 자체는 형량이 센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에 준해 적절한 선고가 내려졌다는 판단이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5.10.31 [공동취재]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며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5.10.31 [공동취재] 연합뉴스

특경법상 배임죄는 이득액이 5억 원 이상 50억 미만이면 3년 이상의 징역, 이득액이 50억 이상인 경우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는 그보다 낮은 10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이다.

1심 선고에서 유동규 씨에게는 징역 8년과 벌금 4억 원, 추징 8억 1000만 원이 내려졌다. 대장동 민간업자인 김만배 씨는 징역 8년과 추징 428억 원을 선고 받았다. 남욱 변호사는 징역 4년, 정영학 회계사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고,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사업실에서 투자사업팀장으로 일했던 정민용 변호사는 징역 6년, 벌금 38억 원, 추징금 37억 2200만 원이 선고됐다.

특히 1심 재판부는 유동규 씨, 정민용 변호사 등 성남도시개발공사에 관여하며 민간업자들에게 개발 편익을 봐준 이들에게는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을 선고했다. 통상 검찰 구형보다 적게 선고되는 관행을 고려하면 되레 검찰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민들레>와 통화에서 "보통 검사가 자동 항소하는 기준은 구형량의 3분의 1(미만)이다. 이 사건은 전체적인 평균을 놓고 보면 구형량의 70% 가까이 선고됐다고 볼 수 있다"며 "기준대로 (항소 포기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대장동 사업이 공공 기여를 얼마나 환수했느냐는 성과에 대해 정치적 논란만 있을 뿐, 대장동 비리 자체는 다툼이 없다"며 "죄에 상응하는 만큼 구형했고, 구형에 상응하는 만큼 선고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일부 검사와 국민의힘 반발에 대해 "무리하게 1심 패소한 걸 항소하지 말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잖느냐"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0.14.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0.14. 연합뉴스

법무부 안팎에선 이 대통령이 검찰의 무분별하고 기계적인 상소를 지적한 것이 검찰의 항소 포기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앞서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에게 "검사들이 (죄가) 되지도 않는 것을 기소하거나, 무죄가 나와도 책임을 면하려고 항소·상고해서 국민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무죄를 받고도 검찰의 무조건적인 항소에 고통받는 일반 국민의 사례를 언급했지만, 검찰의 관행을 개선하는 과정도 항소 포기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국힘 박수영 선거법 사건도 항소 포기했는데
왜 대장동만 난리?…항소 기준이나 있긴 하나

기성 언론 대부분에서 정치 사건이 된 '대장동 사건'을 항소 포기한 게 '매우 이례적'이라는 평가를 내놓지만, 이 역시 검찰이 오랫동안 쌓아온 '반 이재명' 프레임에 근거한 분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항소 포기 사례는 대장동 사건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친윤석열계'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지난해 10월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 당시 자당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단체 문자를 발송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1심에서 검찰이 150만 원(의원직 상실)을 구형했지만 그에 한참 못 미치는 벌금 90만 원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법원에 의원직 상실형을 요청했으나, 그 목표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항소를 포기했다. 항소를 해도 벌금 100만 원 이상이 나오긴 어렵다는 판단에서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박 의원의 선거법 사건과 대장동 사건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박 의원에 대해 항소 포기한 것과 같은 잣대로 본다면, 선고에 적용된 법리를 떠나 특경가법상 배임죄 수준의 더 센 형량을 받아낸 대장동 사건의 경우 항소해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을 따져 포기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해 보인다. 법조계 일각에선 대장동 사건 2심에서 특경가법이 적용되더라도 양형 변화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그만큼 이미 중형이 선고됐다는 의미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2025.3.3. 연합뉴스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서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2025.3.3. 연합뉴스

또한 검찰의 항소 포기가 명확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엿장수' '고무줄' 기준이다. 과거 항소 행태를 보면, 무조건 기계적으로 항소를 했던 것도 아니다.

검찰은 지난 2021년에도 조수진 당시 국민의힘 의원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150만원을 구형했지만, 1심에서 벌금 90만원이 나오자 항소를 포기했다. 반면 2019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던 은수미 성남시장에 대해선 똑같이 150만 원을 구형하고 벌금 90만 원(시장직 유지)을 선고 받았지만, 검찰은 "형이 너무 가법다"며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항소 여부는 결국 '검사 마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배 가르겠다는 검찰, 항소하는 게 타당한가
윤 구속취소 즉시항고 포기 땐 조용하더니
대장동 사건엔 지검장 사퇴하며 집단 반발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항소 포기 결정에는 검찰의 그동안 무리한 '조작 수사' '증언 조작'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남욱 변호사의 충격적인 증언 등을 고려하면 검사들이 항소하는 건 검찰에 대한 국민적 비난이나 분노를 더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했다.

전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이진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정무조정실장 뇌물 혐의 재판에서는 '대장동 수사 과정에서 배를 가르고 장기를 꺼낸다는 협박에 못 이겨 검사의 수사 방향에 맞춰 진술했다'는 취지의 폭로가 나왔다.

남욱 변호사는 수사 과정에서 "검사들한테 '배를 가르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배를 갈라서 장기를 다 꺼낼 수도 있고, 환부만 도려낼 수도 있으니 네가 선택하라'고 했다"며 "이런 말까지 들으면 검사의 수사 방향을 따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또 "(정일권 부장 검사가) 애들 사진을 보여주면서 '애들 봐야 할 것 아니냐. 여기 있을 거냐'고 했다. 그날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도 말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민들레>와 통화에서 "누가 그딴 식으로 수사를 하느냐"고 어이없어했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 변호사가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5.10.31 [공동취재]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 변호사가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25.10.31 [공동취재] 연합뉴스

앞서 남 변호사는 지난 9월 대장동·위례신도시·성남에프시(FC) 사건 공판에서도 유동규 씨가 정 전 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진술과 관련해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 2022년 검찰 수사 받을 당시에 검사에게 처음으로 전해 들은 내용"이라는 취지로 증언한 바 있다. 검찰이 그동안 이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해 조작된 증언으로 구속시키고 재판에 넘겼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진술 짜맞추기' '허위 진술 강요'는 과거에도 증언이 됐지만, 윤석열 정권 시기 모두 무시됐다. 김만배 씨는 2023년 4월 법정에서 "남욱이 '동생들 좀 살려달라'며 이재명 대표에게 돈을 줬다는 취지로 진술을 맞춰달라고 요청했다"고 폭탄 발언을 했지만, 언론에선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당시 제1야당 대표였던 이 대통령은 같은 해 9월 단식 투쟁 중 두 번째 구속 위기를 맞았다가 가까스로 풀려났다.

일각에선 대장동 사건과 관련한 조작 수사 정황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검찰이 항소 포기를 이유로 자신들의 문제를 덮기 위해 집단 반발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3월 지귀연 부장판사의 어처구니 없는 내란 수괴 '구속 취소' 결정에 대해 심우정 당시 검찰총장이 즉시 항고를 포기했을 때에도 검찰 내부에서 이 정도의 반발은 없었다. 하지만 대장동 사건에서는 항소 포기 이유만으로 서울중앙지검장이 사퇴하고 검사들이 집단으로 성명을 내며 반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뿌리 깊은 정치검찰의 단면을 보여준다. 공소유지 검사들의 심야 단체 입장 발표야 말로 최근 몇 년 내에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집단 항명으로 볼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이 열린 4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을 규탄하며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2025.11.4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이 열린 4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송언석 원내대표 등 의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등을 규탄하며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2025.11.4 [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검란 부추기는 국민의힘…"이재명 방탄"

그간 검찰의 조작 수사에 대해 함구하고 내란을 옹호해 온 국민의힘은 이번 항소 포기를 고리로 '검란'을 부추기며 정쟁화하려 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페이스북에 "항소 포기는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의 공범인 이재명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며 "포기할 것은 항소가 아니라 정성호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이라고 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에서 "이재명 정권의 권력형 수사 방해, 수사외압 의혹이 있다"며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처벌을 방해하기 위해 국가 사법 시스템을 뒤흔드는 정권 차원의 조직적 국기문란 범죄"라고 했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친명(친이재명) 좌장'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대통령 방탄을 위해 검찰 항소를 막았다"며 "정치적 개입에 따른 사건 무마 시도"라고 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시절에 '상고 포기'
'패소할 결심' 해놓고 비판할 자격 있나

한동훈 전 대표는 "검찰이 자살했다" "모두 감옥에 가야한다" 등 강도 높은 표현까지 써가면서 최일선에서 비난하고 있지만, 항소 포기를 언급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본인도 법무부 장관 시절 '상고 포기'를 지휘했기 때문이다.

한 전 대표는 2022~2023년 법무부 장관 시절,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처분 취소청구소송 2심 재판에서 1심에서 승소한 '추미애 법무부' 변호사들을 갈아치우고 부실한 변론을 하며 '패소할 결심'으로 질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 법무부의 징계에 소를 제기했지만,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자 셀프로 대통령 자신을 징계하는 꼴이 돼 법무부 장관이 나선 것이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법무부 장관으로, 2심에서 윤석열 총장 징계 취소를 선고하자 상고 포기를 지휘하며 노골적으로 윤석열의 편을 들었다. 심지어 소송의 대상이었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는 한동훈 검사장 관련 감찰 방해·무마가 이유 중 하나였다. 한 전 대표의 '패소할 결심'은 윤석열을 위한 패소일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패소이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7.24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7.24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이재명 위한 항소 포기처럼 눈속임 말라"
"조폭보다 무서운 검사들, 다 책임 물어야"

여당인 민주당은 항소 포기가 아니라 법리 판단에 따른 '자제'라며 근거 없는 선동을 하지 말라고 반박하고 있다. 대통령실에서 이른바 재판중지법에도 제동을 걸었는데, 정치적인 판단으로 결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장윤미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검찰이 공소유지에 성공해도, 무분별하게 항소를 제기해 오던 관행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이미 4년에서 6년의 중형이 선고된 대장동 일당들에 대해 항소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을 두고 '대장동 일당 봐주기'라거나 이례적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장 대변인은 "'검찰이 권력 앞에 무릎을 꿇었다'거나 '대한민국 검찰이 자살했다'는 국민의힘의 반응은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라며 "특히 이재명 대통령을 걸고 넘어지며, 공개적인 재판 불복 선언이라고 하는 것은 도를 넘었다"고 했다.

그는 "이미 법원이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 대통령이 민간업자들의 유착을 모르는 상태에서 자유롭게 수용방식을 결정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시했다"며 "이러한 법원 판단에 눈을 감고, 마치 이번 항소 자제가 이재명 대통령을 위한 것처럼 교묘하게 눈속임을 하려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고 했다.

백승아 원내대변인 서면 브리핑을 통해 "국민의힘이 대장동 항소심 결정을 두고 '정치적 개입'이라며 이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지만, 이는 사실관계와 법리를 무시한 채 이미 무너진 정치적 프레임에 기대려는 구태 정치"라며, 항소 포기에 대해 "법률 원칙에 따라 결정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 원내대변인은 "검찰의 무리한 기소였던 것이 드러나고 있는데, 법원이 무죄라 한 부분을 검찰이 항소하고 이의제기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라며 "국민의힘은 '대장동 항소심'을 대통령과 억지로 연결 짓는 정치공세를 멈춰야 한다"라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연합뉴스 자료사진
더불어민주당. 연합뉴스 자료사진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남욱 변호사가 전날 검찰로부터 "배를 가르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법정에서 증언한 것과 관련, "검사가 아니라 조폭"이라며 "정치검찰의 회유와 협박으로 조작된 대장동 사건에 대해 즉시 공소 취하하고 진상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 서영교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검사가 조폭보다 더 무섭고 더 나빴다. 잡으라는 범죄자는 안 잡고 이재명 잡겠다고 남욱의 배를 가르겠다고 했다"라며 "나쁜 검사들 꼭 책임을 물어야 한다. 법무부는 이 검사들 다 책임 물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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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막힌 사건 조작... 물고기 잡다가 고문당한 어부들

[재심: 바로잡은 역사] 월북으로 조작된 '태영호 납북 사건'

25.11.08 19:38최종 업데이트 25.11.08 19:38
25.11.08 19:38최종 업데이트 25.11.08 19:38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납북귀환 어부들이 50년의 기다림 끝에 2023년 5월 12일 오후 춘천지법에서 열린 재심에서 마침내 무죄를 선고받은 뒤 기뻐하고 있다. 춘천지법 형사1부(심현근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또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았던 납북귀환 어부 32명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태영호 사건과는 다른 납북귀환어부 간첩 조작 사건)연합뉴스

납북이 월북으로 조작된 사례가 있다. 1970년대 대표적 조작사건 중 하나인 태영호 납북이 그것이다.

어선 태영호의 탑승자는 8명이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는 "전북 부안군 위도면에 사는 강대광(선주), 정몽치(선장), 박헌태, 이종섭, 박상용, 강용태(이상 선원), 전남 여수에 사는 박종윤(기관장), 박종옥(선원)"이었다고 알려준다.

민주공화당 정권이 대통령 재선(1967.5.3.)에 성공한 여세를 몰아 3선 개헌 국민투표(1969.10.17.)를 향해 나아가던 때인 1968년 6월 4일이었다. 이날 목조기관선인 태영호가 위도면에서 출항했다. 이 배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인 경기도 옹진군 연평도 해역으로 가서 병치잡이를 했다. 그러던 중 7월 3일, 북한 경비정에 나포됐다.

북한의 표적이 된 어민들

'남조선혁명과 통일은 동시에 이루어지리라'는 김일성의 구상은 1960년 4·19혁명을 계기로 벽에 부딪혔다. 북한 군대가 무너트리지 못했던 이승만 정권이 남한 민중에 의해 붕괴되자, 김일성은 남한 민중이 만만치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그래서 그는 남한부터 먼저 혁명시킨 뒤 그 뒤에 통일을 추진한다는 남조선혁명론을 1961년 9월 제4차 조선노동당 당대회에서 천명했다.

북한은 남조선혁명을 유발시킬 위와 같은 목적과 더불어, 베트남전쟁에 투입되는 미국의 군사 역량을 분산시킬 목적으로 1960년대 후반에 무장공비들을 대거 파견했다. 미국 외교협회가 2011년 11월 10일 발표한 <한국의 군사적 긴장 고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전문가들이 1955~2010년까지의 한반도 군사충돌로 인정한 1436건 중에서 49.4%인 709건이 1960년대 후반에 발생했다.

이 시기에 김일성 정권은 북에서 남으로 무장공비를 파견하는 동시에 남에서 북으로 어민들을 납치했다. 남한 주민들에게 북한의 발전상을 보여줘 남한 민심을 흔들기 위함이었다. 북한 경제가 남한을 앞섰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데 육로를 통해 농민들을 납치하는 것은 용이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민들이 표적이 됐다.

1970년 7월 29일자 <동아일보> 기사 '귀환어부 좌담회'는 "최근 들어 북괴는 걸핏하면 생업에 종사하는 무고한 어부들조차 마구 납치해 허위선전, 강제 관광, 간첩 지령까지도 서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북에 의한 '강제 관광'은 '수학여행'으로도 불렸다. 1968년 12월 3일 피랍됐다가 귀환한 속초 어민 남기룡은 만경대대극장·황해제철소·청산리협동농장 등을 답사했다. 그런 곳들을 둘러본 소감을 남한에 가서 홍보하라는 게 북의 요구였다.

태영호 납북 때까지만 해도 남한 정부는 납북어부들을 가급적 처벌하지 않았다. 위의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는 "당시에는 고의로 월선하였다는 점이 입증되지 않는 한 무죄 선고를 받는 것이 통례였다"고 말한다. 월선했더라도 고의 입증이 되지 않으면 처벌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방침이 계속 유지됐다면 태영호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태영호 선원들은 정부 방침이 강경해지는 시점에 북에서 풀려났다. 이들이 귀환한 날은 강원도 울진·삼척에 무장공비가 출현하기 이틀 전인 1968년 10월 31일이다. 이로부터 9일 뒤 '월경 선박에 대한 전원 구속'을 경고하는 정부 방침이 나왔다. 11월 9일자 <경향신문> 7면 하단의 보도다.

"내무부는 요즘 동해에서 어부들의 납북사건이 자주 일어남에 따라 앞으로 어로저지선을 넘어 고기를 잡다가 납북되는 어부들은 모조리 수산업법 위반으로 입건, 휴전선을 넘어 고기를 잡다 납북되는 어부들은 수산업법과 반공법을 아울러 적용, 모조리 구속한다고 9일 상오 관하 경찰에 지시했다."

이 신문의 같은 해 3월 25일자 7면에 따르면, 이날 수산청은 서해 어로저지선을 NLL 남쪽 2마일에 설정했다. 어로저지선을 넘은 뒤 납북되면 수산업법 위반으로 모조리, NLL를 넘은 뒤 납북되면 수산업법 위반에 더해 반공법 위반(탈출·잠입 등)으로 모조리 구속시키겠다고 내무부가 경고한 것이다.

고문에 괴롭힘까지... 태영호 선원들의 억울함
 
민주노총 경남본부 건물 외벽에 "무죄로 판명된 조작사건들"이라고 새겨진 펼침막이 걸려 있다.윤성효

박정희 정권은 격증하는 어선 납북으로 사회가 어수선해지는 데다가, 어민들이 이북에서 진술한 남한 지형 및 초소 위치가 무장공비 침투에 활용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부 납북어민들에게 중형을 가하는 방법으로 분위기를 잡고자 했던 것이다.

태영호는 정부 방침이 강경해질 때 귀환했다. 이런 가운데 선원들에 대한 당국의 조사는 가급적 처벌을 관철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당국은 이들이 스스로 월북했다는 쪽으로 상황을 몰아갔다.

10월 31일 북에서 풀려난 선원들은 인천경찰서에서 사흘간 조사를 받았다. 이 사건은 그 뒤 인천서와 여수경찰서를 거쳐 광주지방검찰청 순천지청과 전주지검 정읍지청으로 이송됐다. 위도면 선원들은 부안경찰서에서도 수사를 받았다. 이 경찰서에서는 고의 월북을 인정하라며 몽둥이로 구타하는 등의 가혹행위가 있었다고 위 보고서는 말한다.

사건이 순천지청에서 정읍지청으로 넘어간 것은 1969년 4월 29일이다. 4개월여 뒤인 9월 9일, 정읍지청은 해군본부 및 해군인천경비부에 '1968년 7월 3일에 연평도 근해에서 북한 경비정에 납북된 어선이 있는지를 확인해달라'는 공문을 발송했다.

9월 9일에 공문을 받은 해군분부는 27일에 회신을 보냈다. 진실화해위원회 보고서는 "태영호 선원들이 월선하지 않았으며 북한 경비정이 남한 해상으로 넘어와 나포해갔다"는 내용이 회신에 담겼다고 알려준다.

그런데 정읍지청은 회신이 도착하기 전인 9월 12일에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에게 기소 의견을 보고했다. '월북하겠다는 확정적 고의가 없었다 해도, 월북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냥 가보자는 미필적 고의는 있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9월 16일, 선원들은 반공법 및 수산업법 위반 혐의로 전주지방법원 정읍지원에 기소됐다. 9일 뒤에 도착한 위 회신은 검찰의 사건기록 목록에도 기재되지 않고 정읍지원에도 제출되지 않았다고 위 보고서는 지적한다.

고의 월북이라는 검찰 측 주장을 무너트릴 결정적 자료가 은폐됐다. 납북어민들에 대해 강경해지는 정부 방침에 편승하는 사건 조작이었다. 선주 강대광을 비롯한 선원 8명은 당시의 반공법 제6조 제1항이 규정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 탈출한 자"로 인정돼 징역 1년에서 1년 6개월 및 자격정지 1년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선원들은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했다. 일례로, 강대광은 "경찰관이 집에 하숙하면서 감시하였다"고 진실화해위원회에 진술했다. 그는 박정희 정권 말기인 1978년에 다시 수사를 받았다. 남한으로 귀환한 뒤에 북으로 탈출할 시도를 하고 북을 찬양·고무했으며 위도 주변의 군사기밀을 탐지했다는 혐의였다. 1979년에 광주고등법원은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함께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은 사람들은 징역 5년을 받거나, 징역 3년에 집행유예를 받았다.

2006년에 진실화해위원회는 증거도 없이 고의 월북으로 처리되고, 영장 없이 장기간 구속됐으며, 고문과 폭행이 있었던 점 등을 이유로 국가의 사과와 재심을 권고했다. 2008년에 정읍지원은 강대광 등 5명이 신청한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 선고는 검찰 항소가 없어 확정됐다. 2017년에 검찰이 직권으로 청구한 박종옥 재심과 관련해서도 정읍지원의 무죄 선고가 있었다.

태영호 선원들은 납북됐다가 귀환하는 어부들 때문에 고심하던 박정희 정권이 김일성 정권이 아니라 귀환어부들을 혼내주기로 결심한 시기에 공안조작의 대상이 됐다. 태영호 선원들은 국민에 대한 겁주기와 화풀이의 시범 케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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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북미회담 실현하려면 한미훈련 조정 불가피”

“내년 4월 트럼프 방중 전후 결정적 시기”

김해정기자 등록 2025-11-08 18:37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8일 서초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2025 청년페스타'에서 강연한 후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8일 서초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2025 청년페스타'에서 강연한 후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스님 등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8일 “(내년 상반기) 북-미 회담이 실현되려면 한미연합훈련의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날 서울 서초구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2025 청년페스타' 강연 후 연합뉴스와 “아주 예민한 문제이긴 하나 한-미 군사훈련을 하면서 북-미 회담으로 갈 수는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지난 4일 국회 정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향후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이 내년 3월 한-미 연합훈련을 분기점으로 삼아 미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방한을 앞두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남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으나 북한이 이에 호응하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이에 정 장관은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계기에 (양측이) 만날 수 있었는데 북쪽에서 계산을 잘못한 거 같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정 장관은 “내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정상회담차 베이징을 방문하는 전후가 결정적 시기”라며 “우리는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다섯 달 동안 (북미 정상 만남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아펙(APEC) 계기 북미 회동 무산 후 ‘대승적이고 더욱 적극적인 선제 조치'를 언급한 데 대해선 정 장관은 “이미 9·19 남북군사합의 복원을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며 “군사분계선(MDL) 일대의 군사훈련 중단이 그 첫 단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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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주년 전국노동자대회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될 것”

전국서 노동자 5만여명 집결...“트럼프의 경제수탈 방관하지 않을 것”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과 조합원들이 8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근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1.08 ⓒ민중의소리


30주년을 맞은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민주노총)이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해 투쟁하겠다"며 새로운 30년에 대한 결의를 밝혔다.

민주노총은 8일 동대문구 장충단로 동대문구 DDP 앞에서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를 진행했다.

이날 대회에는 5만여명의 노동자가 모여 "민주주의와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낸 민주노총이 이제는 울타리 밖 모든 일하는 사람과 함께 나아가겠다"고 결의를 모았다.

이날 대회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지난 30년은 신자유주의와 싸운 30년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여전히 절반의 노동자가 비정규직이고,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는 노동자로조차 인정받지 못한다"며 "이제 모든 일하는 사람의 자부심이 되는 민주노총으로 거듭 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위원장은 "이제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이 되기 위해, 모든 노동자들의 자부심이 되기 위하여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쟁취하자"며 "업종의 담벼락을 넘어 초기업 교섭을 조직하고 울타리 밖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민주노총이 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 지도위원은 축사에서 "오늘의 민주노총이 전태일의 뜻을 잇는다는 것은, 정규직·비정규직 차별 없는 노동 현장을 만들고, 모든 노동자가 동등한 권리를 누리는 일터를 만드는 것"이라며 "이제 다시 민주노총다운 민주노총의 길을 걸어가자"고 말했다.

또한 권 지도위원은 "트럼프의 통상 조치는 한국 노동자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베어져 있는 돈을 뺏어가는 날강도 짓"이라며 "미국의 경제침략에 맞서 자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세우는 투쟁에 민주노총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모든 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고 우리 사회의 자주와 평등을 실현하는 날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민주노총의 새로운 30년을 결의했다.

이들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하청·특수고용노동자들의 교섭권 보장 및 원청교섭 실현 ▲특수고용·플랫폼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 초기업교섭 제도화, 작업중지권 쟁취 ▲미국의 경제침략 저지 ▲국민의힘을 비롯한 내란세력 청산과 사회대개혁 실현 등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이들은 "우리는 미국 트럼프 정권의 경제수탈과 일자리 약탈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라며 "굴욕적인 대미협상을 전면 백지화하고 3,500억달러 조공을 중단할 것을 이재명 정부에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벌들은 노동자, 민중의 피땀으로 축적한 국부를 미국에 투자할 것이 아니라 한국에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장의 노동자들은 미국의 관세조치와 이를 피하려는 기업의 외국 투자로 한국의 제조업이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정준현 지부장은 "미친 관세와 미국의 횡포는 미국 정권이 바뀌어도 계속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차 울산1공장은 물량이 없어 휴업을 밥 먹듯 하는 와중에도 현대차 자본은 태국에서 현지 생산하겠다고 발표했다"며 "현대제철은 포항2공장은 폐쇄하면서, 미국에다 대규모 일관제철소를 짓겠다고 한다. 도대체 어느 나라 기업이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정부는 한국 제조업을 보호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대회 종료 후 참가자들은 명동 세종호텔과 서울고용노동청 방면으로 두 개 행진대열로 나뉘어 "모든 노동자의 민주노총으로"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한편, 이날 전국노동자대회에는 개별 노조와 각 단체들이 27개의 부스를 운영하며 여러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서비스연맹 학교비정규직노조는 학교급식법 제정을 위한 100만 청원운동을 진행했으며, 보건의료노조 대한적십자사본부지부는 무상수혈 제도를 알리는 부스를 열었다.

이 밖에도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이 인권, 성소수자, 장애, 평화 등 다양한 분야의 주장들을 담은 부스를 열었다.

 

 

 

8일 동대문구 장충단로 동대문구 DDP 앞에서 진행된 '전태일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에서 다양한 단체들의 부스가 운영되고 있다. ⓒ민주노총

민주노총 30주년을 기념하는 부스와 전시도 눈에 띄었다. 민주노총 교육선전실에서 운영한 '민주노총 굿즈 부스'에는 여러 사람이 몰려 민주노총 30주년의 의미를 담은 기념품 굿즈를 판매했다. 준비한 굿즈 중에서는 현수막을 재활용한 제품과 민주노총의 마스코트 민총이가 그려진 티셔츠 등이 눈에 띄었다.

김진숙 교육선전실장은 "민주노총 30주년과 전국노동자대회를 맞아 각 노조에서도 참석을 기념할 수 있는 기념품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굿즈를 제각하게 됐다"며 "윤석열 파면 투쟁 당시 쓰인 현수막을 업사이클링(재활용)한 가방 등으로 자연보호의 의미도 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격이 저렴하지 않지만, 재활용의 의미와 윤석열 파면 투쟁에 민주노총이 함께했다는 의미도 담겨서 반응이 좋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노총의 30년을 담은 사진 전시회도 진행됐다. 전시된 사진을 유심히 보던 구로구에서 온 김아라(32) 씨는 "생각했던 것보다 민주노총에 대해 모르던 것을 많이 보면서 뜻 깊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함께 사진전을 지켜본 김민주(27) 씨도 "예전 90년대 일어난 일은 그땐 어려서 잘 모르는 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8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근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11.08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8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근에서 열린 민주노총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를 마친 뒤 행진을 하고 있다. 2025.11.08 ⓒ민중의소리

 

8일 서울 중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인근에서 민주노총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2025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고 있다. 2025.11.8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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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위원장은 왜 트럼프 대통령 손을 뿌리쳤나?

장정수 편집위원다른 기사 보기
 

앞으로도 북미 대화 시기와 조건은 북한이 선택할 것

장정수 편집위원, 전 한겨레 편집인
장정수 편집위원, 전 한겨레 편집인

경주 APEC 정상회의 기간 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회동을 거듭 제안했다. “김 위원장과 잘 지낸다”는 친근한 어조에도 북한의 반응은 냉담했다. 미사일 발사와 침묵뿐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요구를 사실상 철회하고 대북 제재 완화 의사까지 밝히며 북한의 대화 전제조건을 대부분 수용했으나, 김 위원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싱가포르, 하노이, 판문점에 이은 네 번째 정상회담은 결국 무산됐다.

당장은 우선순위에 있는 러시아와의 관계 고려

김정은 위원장의 거부 뒤에는 복잡한 지정학적 변수가 얽혀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북한은 러시아에 수만 명의 정예 병력을 파병하며 사실상 군사동맹을 구축했다. 김정은 위원장으로서는 미국과의 대화에 응할 경우 북러 관계에 균열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특히 지난 3월 착수한 핵추진 잠수함 개발은 러시아의 기술 지원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점도 고려됐을 터이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0일 '자주의 기치, 자력부강의 진로 따라 전진해온 승리의 해' 제목의 새 기록영화를 방영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9년 행적을 돌아봤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회담하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2020.1.10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TV는 10일 '자주의 기치, 자력부강의 진로 따라 전진해온 승리의 해' 제목의 새 기록영화를 방영하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9년 행적을 돌아봤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남측 자유의 집에서 회담하는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2020.1.10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연합뉴스

북한은 파병 대가로 러시아로부터 퇴역 핵잠수함의 원자로·증기터빈·냉각 시스템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핵추진 잠수함의 핵심부품인 원자로 세트를 손에 넣었더라도 러시아 기술 지원 없이는 잠수함 장착·가동이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핵추진 잠수함의 건조 성공은 북한에 있어서 대미 핵억제력의 완성을 의미하며 대미 협상력을 극대화하는 빅 카드가 된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에게 러시아 관계 유지는 미국 대화보다 우선순위가 높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의 뒤에 이뤄진 최선희 외무상의 러시아 급파도 트럼프 제의에 대한 푸틴 입장을 타진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은 8월 트럼프-푸틴 알래스카 회담과 10월 부다페스트 회담 취소 사태를 보며 미러 관계 개선 가능성을 낮게 봤을 것이다. 설령 트럼프와 합의에 도달하더라도 하노이 회담 때처럼 네오콘 강경파에 의해 백지화될 수 있다는 회의적 시각도 작용했음 직하다.

북한의 경제 상황 호전도 북미 대화 시급성 떨어뜨려

흥미로운 것은 푸틴 대통령의 역설적 태도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을 만난 푸틴 대통령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국의 입장을 묻고, 김정은 위원장에게 한국의 메시지를 전달할 테니 말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유럽화’를 포기한 푸틴은 아시아 동진정책을 모색 중이며, 이를 위해 한반도 안정을 선결과제로 본다. 북미 대화 재개가 한국-러시아 경제협력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푸틴 대통령은 한국과 경제 교류 재개를 강력하게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변수도 김정은 위원장의 발목을 잡았다. 경주 APEC에서 예정된 트럼프-시진핑 회담에 앞서 김정은 위원장이 서둘러 트럼프를 만나면 북중 관계에 미묘한 난기류가 생길 소지가 있다. 변덕스러운 트럼프의 성향을 고려할 때, 시진핑-트럼프 회동 결과를 지켜보는 게 전략적으로 현명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의 정상회담이 예정된 상황에서 김정은-트럼프 만남은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었다.

북한의 최근 경제 호전도 김정은 위원장이 대화를 서두르지 않는 배경이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인사들은 북한이 식량 자급을 이루고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크게 좋아졌다고 전한다. 중국 및 러시아와의 경제협력 확대는 과거에 비해 안정된 경제 기반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국내 사정의 변화는 북미 대화는 물론이고 남북대화의 시급성을 떨어뜨린다.

지금 더 급한 건 트럼프 아닌가

CNN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은 37%로 집권 2기 최저치를 찍었고, 부정 평가는 63%로 취임 후 최고를 기록했다. 응답자 68%가 국가 상황을, 72%가 경제 상황을 좋지 않다고 답했다. 관세 전쟁으로 민생이 피폐해지면서 미국 여론은 트럼프에게 싸늘해지고 있다.

11월 4일 뉴욕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조란 맘다니가 당선됐다.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와 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34세 민주사회주의자이자 인도계 무슬림인 맘다니는 뉴욕 최초 무슬림 시장이자 최연소 시장이 됐다. 임대료 동결, 최저임금 인상, 무상버스·보육 확대 등 획기적 민생 공약으로 승리한 이 사건은 미국 민심의 흐름을 상징한다. 이대로 가면 2026년 가을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역대급 패배를 당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빅딜'을 통해 노벨평화상 수상에 주력하는 이유는,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부정적 여론을 반전시킬 만한 다른 카드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발표 시점(통상 10월 초)을 고려해 그 전에 김정은 위원장과 북미 수교 같은 역사적인 합의를 이끌어내고, 실제 수상이 발표되면 그 여세를 몰아 불리한 중간선거 판세를 역전시키려는 계산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 북미 수교·대북제재 해제, 한국전쟁 종전선언 및 평화조약 체결이라는 역사적 합의를 이끌어 낸다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물론 동북아 질서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다. 과거 북미 대화에 매달리던 김정은 위원장은 이제 여유롭게 러·중과 손잡고 시간을 끌며 핵억제력 완성이라는 전략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반면 트럼프는 지지율 급락과 내년 중간선거 패배 위기 속에서 북한과의 극적 합의 카드가 절실하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2025.10.29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여전히 남북 관계 ‘피스 메이커’ 역할 해야

북미 대화 재개는 일차적으로 북미 수교라는 트럼프의 ‘마지막 카드’에 달렸다. 그러나 그 카드가 나오기 전까지 북한은 러시아 기술 지원으로 핵잠수함 건조를 가속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화하며 경제를 회복할 것이다. 경주 APEC에서의 일방적 구애가 보여주듯이 지금 대화를 간절히 바라는 쪽은 트럼프이지 김정은 위원장이 아니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판도를 뒤바꿀 트럼프-김정은 회동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 미중 관계의 추이, 러시아의 동진 전략, 트럼프의 중간선거 계산 등 복잡한 변수가 얽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를 모두 계산하며 최적의 타이밍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6일 국회 예결위에서 내년 3월 김정은-트럼프 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해 “합리적 기대”를 밝혔다. 그러나 이는 기대에 불과하며 정확한 타이밍은 미지수다. 분명한 건 북미 대화 조건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 밀어붙이기 구도가 아니다. 북한이 시기와 조건을 선택하는 새로운 국면이 열린 것이다.

그러나 남북 관계가 극도로 경색된 상황에서 이재명-트럼프 경주 정상회담을 계기로 시작된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계획은 남북 군비경쟁을 촉발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북미 관계 개선의 ‘페이스 메이커’를 넘어 남북 관계의 ‘피스 메이커’가 되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으로 파탄 난 남북 관계에서 극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면 북미 해빙이 이뤄져도 한반도 평화체제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최대 난관을 넘긴 이재명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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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욱 "정일권 부장검사, 배 가르겠다고 말해"...눈물의 법정 폭로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11/08 09:49
  • 수정일
    2025/11/08 09:4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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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정진상 공판] 남 변호사, 검찰 압박 상세하게 공개...정 부장검사 "치유에 비유한 것" 반박

선고공판 출석하는 남욱 변호사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 변호사가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선고공판 출석하는 남욱 변호사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 변호사가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 7일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의 뇌물 혐의 사건 재판 증인으로 출석한 남욱 변호사는 자신에게 '배를 가르겠다'고 말한 검사가 정일권 부장검사라고 증언했다.
     
    이진관 재판장 : "증인은 기존과 다른 진술을 하고 있어서 물어본다. ('배를 가르겠다'라고 발언 한 검사가) '선임검사', '높은 검사'라고 했다. 누군지에 대해서 진술을 안 하고 다음에 수사받을 때는 한다는 식으로 했다. 말해봐라. 단순한 증언이 아니고, 기존 진술과 달라서 질문을 하는 거다."

    남욱 : "정일권 부장검사다. 2022년 9월 당시 정일권 부장검사가 첫날 수사 끝나고 (자정 무렵) 불렀다. 애들 사진... (울먹이며) 죄송하다. 애들 사진 보여주면서 '애들 봐야할 거 아니냐', '여기 계속 있을 거냐'라고 했다. 그러면서 '배를 갈라서 장기를 다 꺼낼 수 있고, 환부를 도려낼 수 있다, 내려가서 곰곰이 생각해보고 내일 담당 검사랑 이야기를 해봐라'라고 했다."

    남 변호사는 '배를 가른다'는 표현에 대해 "제가 많은 죄를 지어서, 우리가 하는 수사에 협조하면 봐주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 반대로 모든 걸 까서 예컨대 저에게 돈 받은 사람을 모두 범죄수익은닉으로 기소하겠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제 친구들은 대한민국에서 멀쩡히 회사 다니고 사업하는 사람들이라, 저랑 돈거래가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된다면 그들의 인생을 제가 책임질 수 없다"며 "밤중에 불러서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심리적으로 버틸 수 없더라"고 덧붙였다.
     
    남 변호사의 발언 이후 정일권 부장검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때 남욱 피고인이 진술을 거부하고 있던 상황이었다"면서 "배를 가른다고 말한 적은 없다. 수사하는 과정이 의사가 치료하는 과정과 같기 때문에 환부만 신속하게 도려낼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아픈 사람이 아프지 않다고 하면 의사 입장에서는 어디가 아픈지 모르니까 경우에 따라서는 개복 수술도 해야되고, 아니면 알약으로 치료할 수도 있다. 여러 방법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며 "어디가 아픈지 알 수 있도록, 신속하게 환부를 도려낼 수 있도록 설명해 달라는 그런 취지였다. 배를 가른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애들 사진을 왜 보여줬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포렌식 자료 중에 사진이 있었고, 오랫동안 아이들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도의적, 인도적 차원에서 보여준 것"이라고 대답했다.

    정일권 부장검사는 2022년 여름부터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 부부장검사로서 대장동 수사를 주도했고, 지난해 6월 공판5부장검사로 승진했다. 현재는 의정부지검 남양주지청 형사1부장검사로 재직 중이다.

    남욱, 눈물의 작심 발언... 왜?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 심리로 진행된 재판에서 남 변호사는 검찰 공소사실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지난달 31일 대장동 사건 재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구속 수감 중이다.

    당초 검찰은 남 변호사를 상대로 한 재주신문을 1시간 30분에 걸쳐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오후 공판 시작과 동시에 "준비한 건 많지만 몇 개만 물어보고 나머지 신문은 생략한다"라고 했다.

     
    검사 : "공모지침서 작성에 관여했나?"
    남욱 : "관여한 적은 없지만, 관여된 걸로 (1심에서) 판단됐다."

    검사 : "사업수지와 예산수지 산정에 관여했나?"
    남욱 : "전혀 관여한 게 없지만 판결문에서는 저도 상의를 한 것으로 판단됐다."

    검사 : "공모지침서나 사업계획서, 예산 및 수지 산정을 증인이 알고 있던 게 있다면 증인은 자료를 보거나 들어서 알게 된 것이지, 당시에 경험한 사실은 아니라는 거냐?"
    남욱 : "검사님 말이 맞다. 다만 초기 정영학 회계사와 검사가 저와 상의했다고 그렇게 조사가 이뤄져서 저도 공범자로 기소가 됐다. 정영학 조서가 인정이 돼서 저도 유죄가 된 거다."

    남 변호사는 "추가로 말하겠다"면서 아래와 같이 덧붙였다.

    "초기 수사에서 정영학이 회유됐고, 자료도 허위로 만들어졌다. 허위 진술을 강요받았다고 들었다. 이런 내용은 형사소송법 규정 등을 이유로 증거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초기 진술이 인정돼 배임이 인정된 것으로 판결문에 나왔다. 제가 알기로 수사한 검사들이 공수처에 고발됐지만, 그 이후로 진행된 것은 없는 것으로 안다."

     
    선고공판 출석하는 남욱 변호사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 변호사가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선고공판 출석하는 남욱 변호사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남욱 변호사가 10월 31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남 변호사는 검찰에 협조할 수밖에 없었던 심경도 설명했다. "수사가 끝이 없다. 기억도 없는 말을 수사관이 '그런 것 같다'고 하니, 나중에 와서 '모르겠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수사 과정에서 그렇게 진술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정진상 측 : "그런 심정이라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나?"
    남욱 : "가급적 검찰에, 이재명, 정진상 수사에 가급적 협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진상 측 : "증인이 알지 못하는 것을 이해한다, 생각한다고 말하며 검사에 맞춰서 진술했나?"
    남욱 : "그런 면이 있다."

    정진상 측 : "진술조서 보면 끝에 '이해한다', '생각한다' 이렇게 끝난다."
    남욱 : "제가 경험한 게 아니라서 타협점을 찾은 거다."

    정진상 측 : "유동규가 보석 조건 없이 석방될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
    남욱 : "만감이 교차했다. 어쨌든 유동규로 시작된 일인데 먼저 나갔다. 저희는 나가네, 못나가네 설왕설래 있었다. 나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정진상 측 : "그래서 증인 어떻게 했나?"
    남욱 : "당시 수사하시는 분들 방향에 특별히 어긋나는 발언을 진술하진 않았다."


    이진관 재판장은 남 변호사에게 "이 사건 관련해서 증인의 진술도 우리 사건 쟁점"이라면서 "판결문을 보고 하고픈 이야기를 서면으로 내주면 다 읽어보겠다. 양이 많아도 좋다. 저희 재판부에 접수를 하면 읽어보겠다"라고 말했다. 남 변호사는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며 "시간이 걸려도 다 제출하겠다"라고 뜻을 밝혔다.

    한편, 재판부는 정 전 실장 측 요청을 받아들여 핵심 증인들의 구치소 출정과 접견 기록이 확보했다. 증언을 잇달아 번복한 남욱 변호사를 비롯한 사건 관련자들의 기록을 확보해 검찰 조사나 접견이 진술 번복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지 확인하겠다는 취지다. 다음 공판 11월 21일이다. 증인은 대장동 비리 사건의 장본인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다.

     

    #남욱#검찰#이재명#유동규#정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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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구속영장이 기각되든 말든, 전혀 상관이 없는 이유

[박세열 칼럼] 국힘은 추경호가 구속되길 바라는 게 차라리 나을 지도 모른다

내란의 밤, 여당 원내대표 추경호의 행보는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이 어떤 상황이고 어떤 증상을 앓고 있는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내란특검이 추경호에 대해 내란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지금 그는 구속 갈림길에 서 있게 됐지만 추경호가 구속되느냐, 되지 않느냐는 별로 중요치 않다. 왜냐하면 안타깝게도 사법 체계는 '어리석음'과 '무능함'까지 엄벌할 수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내란의 밤 추경호의 행보는 국민의힘이라는 정당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 참담한 수준의 어리석음을 이미 상징하고 있다.

 

의원총회를 국회가 아닌 당사에서 연다는 얘기는 과문한지 모르겠으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원내대표실은 국회 본청에 있고, 의원총회는 국회의원들의 활동 공간인 국회에서 열린다. 그런데 추경호는 11시 3분에 국회로, 11시 9분에 당사로, 다시 11시 33분에 국회 예결위회의장으로, 또 다시 12시 3분에 당사로 의원총회 장소를 바꿨다. 두 번이나 의원총회를 국회 밖인 당사에서 열겠다고 공지했는데, 경찰이 막아 의원들의 국회 진입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의원들을 의정활동 공간이 아닌 국회 밖으로 한데 모으려 했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정작 추경호 본인은 국회 본청 원내대표실에 있었다. 본회의장까지 2분 거리에 있었음에도 계엄 해제 결의안 표결에 불참했다. 심지어 18명의 의원들을 이끌고 본회의장에 있는 당대표 한동훈을 본회의장에서 나오라고 요구했다. 추경호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인 한덕수와 통화했고, 정무수석 홍철호와 통화했다. 이어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통화하면서 '표결 불참'을 당부하는 취지의 협조 요청을 받았다고 한다. 추경호 측의 반응은 이렇다. "윤 전 대통령이 먼저 전화를 건 뒤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끊었다", "계엄을 왜 했느냐 따져 물을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추경호 변호인 측, 동아일보 6일자 보도)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행동 지침도 내릴 수 없었던 무능한 원내대표다'라는 게 추경호의 변호 요지다. 조희대 법원의 그간 행보를 봤을 때 추경호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비상계엄이 위법한 지 몰랐다는 박성재의 손을 들어줄 때처럼, '무능함'과 '어리석음'은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는 논리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추경호와 윤석열의 통화 내용은 둘이 입을 닫으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일이고, 추경호가 계엄 직전인 11월 29일 윤석열과 만찬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도 그들이 밝히지 않으면 알 도리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추경호 측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표결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언제든 야당 단독으로 본회의 개의와 의결이 가능했다"고 강변한다. '내란의 밤'에 국정을 책임져야 할 여당이 '야당의 의석수'에 나라를 맡겼다는 자기 고백이다. '본회의장에 모여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라'는 당 대표의 지시를, 정작 금뱃지를 단 헌법기관들은 대놓고 거부했다. 총 든 군인들이 국회로 몰려드는 그 밤에, 그들은 알 길 없는 계엄의 속사정이나 가늠하면서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국민이 위임한 권한을 방치했다.

 

그 중 몇이나 윤석열의 쿠데타 구상에 충실히 따르려 했는지, 우린 알 수 없다. 그래서 더 섬뜩하다. 계엄은 잘못했지만 탄핵은 반대하고, 부정선거를 외치지만 내가 당선된 것과는 무관하며, '윤어게인'은 있을 수 없지만, 그걸 외치는 사람들의 표는 탐내는, 저런 사람들이 정말 민의를 대변한다는 '국회의원'들이란 말인가?

 

만약 추경호가 구속된다면 그가 윤석열 친위 쿠데타의 장기말이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확인하는 일이 될 것이다. 내란을 모의하고, 계엄 해제 표결을 적극 방어했다는 정황들이 부각될 것이고, 추경호에 동조했던 의원들의 혐의들도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내란 음모'를 꾸몄다는 이유로 해체된 통합진보당의 사례를 따라 국민의힘은 위헌정당 해산 심판대에 서게 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우린 새 보수정당의 탄생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연쇄 파장을 '조희대 법원'이 감당할 자신이 있는지 의문이다. 윤석열을 석방하고 박성재 법무장관의 영장을 기각했던, 지금까지 법원의 행보들을 보면 그렇다.

 

그럼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 만약 추경호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국민의힘은 정치적 동력을 회복했다는 착각에 빠져들 것이다. 내란 특검을 공격하고, 채상병 특검을 공격하고, 김건희 특검을 공격할 것이다. 마치 그들에게 면죄부가 주어졌다는 것처럼. 법정에서 자신의 부하들과 싸우고 있는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또다시 면회하고, 장외로 뛰쳐나가 이재명 정권을 끝장내자고 목 놓아 외칠 것이다. 구속영장이 기각되면 보수 언론은 '특검 수사가 엉터리였다는 게 입증됐다'며 대대적으로 역공을 펼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일들은 국민의힘이 '내란의 늪'에 더 깊숙히 빠져들도록 만들 것이다. '우린 내란 세력이 아니다'라는 헛된 희망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내란 정당' 딱지를 뗄 수 없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구속이 되든, 불구속이 되든 어쨌든 추경호는 특검에 의해 기소될 것이고, 윤석열의 불법 계엄과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국회의원들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법원은 규범을 마련해 줄 것으로 믿는다.

 

추경호가 구속되든 말든, 영부인의 각종 비리를 감싸기 급급했던 여당, 만취해 군인들과 술 먹었다는 걸 자랑스레 말하는 대통령에 쩔쩔 매는 여당, 그런 대통령 밑에서 이리저리 허수아비처럼 끌려다니던 지리멸렬한 모습이 그날 생중계 된, 그리고 특검이 밝혀낸 '내란의 밤' 국민의힘의 모습이었다. 전한길 같은 극우 유튜버에 휘둘리는 정당, 당대표가 내란 우두머리혐의로 수감된 윤석열 면회를 가고, 최고위원은 허섭한 논리의 혐중 음모론을 제기하는 그런 정당. 정치브로커 명태균에게 휘둘리고, 사이비 종교 신천지, 통일교에 휘둘리는 정당, 그래놓고도 반성도 없는 정당이 '내란 프레임'에서 벗어났다고 자평한들 유권자들이 믿어줄 수 있을까?

 

추경호는 '국민의힘'이라는 블랙코미디의 조연 배우일 뿐이다. 불법 무도한 계엄 앞에서 본회의장 표결에 불참하고도 뻔뻔하게 "야당만으로도 계엄 해제가 가능"했다느니, "표결 거부권도 의원의 권한"이라느니, 기껏 '처벌'을 피하고자 변명하고 있는 걸 "당당함"으로 포장할수록 모순은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고, 중도층 유권자들은 더욱 국민의힘을 외면하게 될 것이다.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인정받고 취해있을 바에야, 국민의힘은 차라리 추경호가 구속되는 걸 바라는 게 미래를 위해 더 좋은 일 수 있다. 홍준표의 말처럼, 새로운 '보수정당'을 만드는 게 나라를 위해서도 더 좋은 일일 것이다. 법원은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심판하기 어렵지만, 유권자는 그 모습들을 전부 기억하고 있다. 추경호가 구속되건 말건, 국민의힘이 해산되건 말건, 크게 상관 없는 이유다.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윤석열 전 대통령 ⓒ연합뉴스
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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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 배당’은 허울뿐? 내란 사건, 이미 정해진 재판부였나

기자명

  •  김준 기자
  •  
  •  승인 2025.11.07 17:38
  •  
  •  댓글 0
 
 

'업무 과중' 등 이유로 재판부 특정 가능성
유일하게 확인 가능한 로그기록 비공개
"법원장, 내란사건 지귀연에 내리 꽂았나"

지귀연 부장판사가 지난달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번째 공판에서 취재진들의 퇴장을 명령하고 있다. ⓒ 뉴시스
지귀연 부장판사가 지난달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2번째 공판에서 취재진들의 퇴장을 명령하고 있다. ⓒ 뉴시스

윤석열 내란 사건이 지귀연(형사합의25부) 부장판사에게 무작위 배당됐다는 사법부의 주장에 금이 간다. 맨 처음 재판을 받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처음 지정배당이었다가 나중에 무작위 배당으로 바뀐 게 확인됐다. 이렇게 되면 특정 재판부 안에서만 배당할 가능성이 생긴다.

장경태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3일 서면질의와 20일 서울고등법원 등에 대한 국정감사 과정에 윤석열 내란사건이 ‘적시처리 필요 중요사건’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난해 12월 30일 김 전 장관이 지귀연 재판부로 배당된 것이 시작이었다. 

당시 사건을 접수한 서울중앙지법은 같은 달 27일 해당 사건을 “사회적 파장이 크다”는 이유로 ‘적시처리가 필요한 중요사건’으로 판단했다. 무작위 배당이 아닌, 지정을 통해 담당 판사를 배당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적시처리 사건으로 접수됐던 김 전 장관 사건은 갑자기 일반사건으로 바뀌었고, 이후 경제·식품·보건 분야 전문인 지귀연 재판부에 배당됐다.

문제는 이런 경우, ‘업무 과중’ 등의 이유로 무작위 배당을 돌릴 재판부 수를 줄일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거다. 외형상 무작위로 배당하면서 그 과정에 개입을 하게 되는 셈이다. 이후 1월 31일, 윤석열 재판도 ‘관련 사건’으로 묶여 지 판사에게 배당됐다.

양승태 사법농단 사태 당시에도 같은 논란이 일었다. 양승태는 통합진보당 의원 소송에 “법원행정처가 관심이 많은 사건”이라며 김광태 당시 부장판사에게 “해당 사건을 서울고법 행정6부에 배당해달라” 요구했다. 이는 양승태의 공소사실에도 포함됐다.

이후 법원은 사건 배당 결과와 사유 등을 ‘로그기록’에 적시하며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안들을 내놨다. 그러나 법원은 로그기록 등 이번 내란사건 배당 과정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박은정 조국혁신당 의원은 “내란사건을 일반사건으로 분류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적시처리 필요 중요사건은 신속하게 재판하기 위해 배당하기 것인데 지귀연 이토록 사건을 지연시켰다”고 지적했다.

이어 “배당을 하는 배당권자는 법원장으로 돼 있다”며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지귀연 재판부에 꽂은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사법부가 처음 김 전 장관 ‘적시처리 필요 사건’으로 선정했다는 것을 두고도 자가당착이란 비판이 나온다. 그동안 내란사건 재판부 도입 주장에 ‘사건 배당의 무작위성을 훼손한다’며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추미애 법사위원장도 지난 10월 30일 법사위 종합감사에서 법원행정처를 향해 “수차례 법원행정처장은 무작위 배당이니까 공정하다, 공정성 담보 취지로 무작위 배당을 강변하셨다”며 “(내란)전담재판부에 대한 위헌 논거도 ‘무작위성을 깬다, 침해한다’였는데 지금 보니까 오히려 적시처리 필요 중요사건으로 지정만 하면 입맛에 맞는 판사에게 배당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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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 1번 과제 무산 위기... 국회 말고, 국민 믿고 가라

[2026 개헌 로드맵] 38년 동안 보장받지 못한 권리,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25.11.07 06:56최종 업데이트 25.11.07 06:56
1987년 민주항쟁의 결과로 개정된 헌법은 현재 시대적 변화와 국민적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민개헌넷은 시민사회가 제안하는 개헌의 방향과 내용을 쟁점별로 소개하고 필요성과 절차를 심도 있게 다룸으로써 국회의 개헌 논의를 촉구하고 시민 주도의 개헌 공론화를 이끌어내고자 합니다.[기자말]
8월 13일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정기획위원회 국민보고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국정기획위원회는 국민보고대회에서 새 정부의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밝혔다.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제1번 과제는 '진짜 대한민국을 위한 헌법개정'이었다. 개헌의 내용도 예시적으로 제안했다.

▲ 5·18 광주 민주화운동 정신 등 헌법 전문 수록 ▲ 대통령 책임 강화 및 권한 분산(4년 연임제 및 결선투표제 도입, 감사원 국회 소속 이관, 대통령 거부권 제한, 비상명령 및 계엄 선포 시 국회 통제권 강화,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 도입, 중립성 요구 기관장 임명 시 국회 동의 의무화) ▲ 검찰 영장 청구권 독점 폐지 ▲ 안전권 등 기본권 강화 및 확대 ▲ 지방자치와 균형발전을 위한 논의기구 신설 ▲ 행정수도 명문화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보면 개헌이 과연 성사될지부터 의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회에 개헌논의를 맡기겠다는 생각으로 보인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좌절된 경험을 돌아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생각이 이해되는 면도 있다.

그러나 지금 국회 상황을 보면 '과연 개헌 논의가 가능하겠는가'라는 생각조차 든다. 개헌특위조차 구성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설사 국회에서 개헌특위가 구성된다고 해도 여야 간에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동안 개헌을 하자는 얘기가 한두 번 나왔던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직후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3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매머드급 특별위원회였지만,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하고 끝났다. 초안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니 국회에 맡겨서는 개헌이 성사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따라서 지금은 개헌의 성사를 위해 다른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개헌 여부에서부터 개헌의 내용에 이르기까지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해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1987년 10월 헌법개정 이후 '개헌 불능 국가' 상태에 빠져있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물론 지금도 개헌 여부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로 결정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투표에 부쳐지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렵다. 헌법 개정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지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찬성이 필요한데, 거대 양당 중 어느 한쪽이 반대하면 3분의 2를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권자인 국민은 국회 논의만 바라보고 있다가 번번이 실망하게 된다. 국민의 참정권 중 하나인 국민투표권을 행사할 기회조차 38년 동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도 그런 씁쓸한 경험만 반복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국민 참여 개헌 절차 정하자
 
2025년 11월 4일 시민개헌넷은 헌법재판소에 국회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개헌을 하려면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지만, 국회는 2014년에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아 11년째 국민투표가 불가능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시민개헌넷

그래서 이번에는 개헌 논의를 단순화해서 각 정치세력의 입장을 밝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제안하는 질문은 3가지이다.

1. 개헌을 할 의지는 있는지?
2. 개헌의 과정에서 국민 참여를 보장할 것인지?
3. 앞의 2가지에 동의한다면 '국민 참여 개헌 절차법'을 제정할 의지가 있는지?

개헌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개헌이 또다시 무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각 정당이 위 3가지 질문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지금 '국민 참여 개헌 절차법'의 제정이 필요한 이유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회에 맡겨놓아서는 헌법개정의 성사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헌법개정이 불가능한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 따라서 주권자인 국민이 참여해 개헌의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둘째, 헌법 개정안을 작성하는 단계부터 국민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국민투표로 결정하게 되더라도, 그때는 찬성-반대 투표만 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헌법 개정안에 어떤 내용이 담기느냐이다. 그래서 헌법 개정안을 작성하는 단계부터 국민의 참여가 필요하다.

대표적으로 아일랜드의 경우에는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된 국민으로 '헌법개정 시민의회'를 구성해서 운영하고 있다. 결정은 국회에서 하되 시민의회에서 취합된 의견을 국회에 전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는 국회에서 국민투표에 부치고 있다.

또한 앞으로 단계적·연속적 개헌이 불가피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더라도 개헌절차법이 필요하다. 한 번의 개헌으로 모든 내용을 담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개헌 절차법을 마련해서 헌법 개정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국민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
 
2023년 마약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아일랜드 시민의회가 소집되었다. 아일랜드는 헌법 개정 등 주요 사안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100명의 시민들로 시민의회를 구성한다.아일랜드 시민의회

개헌과 개헌절차법 동시 추진해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는 없다.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부터 명확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개헌을 할 의지는 있는지? 개헌의 과정에 주권자인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겠다는 생각은 있는지? 개헌 절차법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정청래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가 '다시는 내란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헌법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 12.3 내란 과정에서 헌법의 허점이 이미 드러난 상황이다.

예를 들어 국회에서 계엄 해제를 의결하더라도, 대통령이 계엄 해제 조치를 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만으로 곧바로 계엄 해제의 효력이 발생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내란죄의 경우에는 사면권 행사 대상에서 아예 제외하도록 하는 것도 헌법에 담을 필요가 있다.

물론 개헌은 민주당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국민적인 개헌 동력을 만드는 것이 숙제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개헌 절차법이 필요하다. 그래야 38년 동안 헌법을 한 줄도 고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은 개헌과 '국민 참여 개헌 절차법'을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필자 소개] 하승수 : 시민개헌넷 정책기획위원이자 전국시국회의 헌법개정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다. 농민의 목소리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공익법률센터 농본, 권력남용과 예산낭비를 감시하는 세금도둑잡아라에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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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어정쩡” “의지 박약” “자해”

[아침신문 솎아보기] 주요국 미치지 못한 정부 국가온실감축 목표에 비판

‘배치기’ 집중된 국회 운영위 국감…장동혁 광주행에 “‘윤 어게인’ 절연하라”

 
▲2025년 11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안영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정책 분과위원장이 좌장으로 토론을 진행하는 가운데 한 참석자가 2035 NDC 정부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정부는 2035 NDC 최종 후보로 2018년 대비 '50∼60%' 감축 안과 '53∼60%' 감축 안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2025년 11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2035 NDC) 대국민 공개 논의 공청회에서 안영환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기후변화정책 분과위원장이 좌장으로 토론을 진행하는 가운데 한 참석자가 2035 NDC 정부안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날 정부는 2035 NDC 최종 후보로 2018년 대비 '50∼60%' 감축 안과 '53∼60%' 감축 안을 제시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6일 발표한 2035 국가온실감축목표(NDC)를 2018년 대비 최소 50~53%에서 최대 60%로 제시했다. 유럽연합(EU)은 66.25~72.5%, 미국은 61~66%, 일본은 60%를 제시했으나 한국은 하한선을 50% 초반대로 제시했다. 최종 방안은 다음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국무회의를 거쳐 유엔(UN)에 제출된다. 7일자 주요 종합일간지(조간) 중 동아일보를 제외한 8개 신문이 관련 기사를 1면에 배치했다. 제목은 아래와 같다.

경향신문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 ’50%대’로 결정>
국민일보 <온실가스 감축 목표 50~60%·53~60%>
서울신문 <무조건 50% 이상 감축… ‘온실가스 청구서’ 온다>
세계일보 <정부 NDC ‘50~60% 또는 53~60%’ 제시 논란>
조선일보 <온실가스 감축 목표 ‘53~60%’ 유력>
중앙일보 <온실가스 최대 60%↓ 내연차 제한 불가피>
한국일보 <2035 탄소감축 목표 두 개 案 내놓은 정부 ‘국제 권고’ 못 지켰다>
한겨레 <온실가스 감축 목표 ‘어정쩡한 절충’>

▲2025년 11월 7일 경향신문 기사
▲2025년 11월 7일 경향신문 기사

경향신문은 1면에서 이어진 <사실상 산업계 손 들어준 미온적 목표… 그마저도 달성 불투명> 기사에서 “정부가 현실론을 앞세워 방어적 목표치를 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목표치도 미온적이지만, 그간 지연된 기후 정책을 고려할 때 이마저도 달성 가능할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기준 재생에너지 설비는 34.7GW에 불과해 매년 10GW 이상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이 늘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 기조가 윤석열 정부 때 크게 후퇴한 탓이 크다”라며 “50% 이상 감축해야 하는 수송부문에서도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내연차 퇴출 수준의 과감한 조치 없이는 목표 달성이 어렵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50%대 온실가스 감축 목표, ‘기후 대응’ 의지 박약하다>에서 “온실가스가 온난화를 부추겨 다시 온실가스 농도 폭증을 불러오는 심각한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의 감축 목표나 제시 방식이 타당한지 의문이다”에서 “EU는 탄소세라는 무역장벽도 가시화하고 있다.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속도를 질적 양적으로 높이는 정책 전환에 나서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민과 기업들도 이해시키고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5년 11월 7일 한국일보 기사
▲2025년 11월 7일 한국일보 기사

한국일보는 <구체적 수치 대신 ‘50~60%’ 면피성 범위 값... “혼란만 키울 것”> 기사에서 “범위 값 설정 시 상한 선인 60%는 ‘ 형식상 목표’로 남고, NDC와 연계된 배출권 거래제 등 각종 기후 규제는 하한선(50% 또는 53%)이 기준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점”이라며 “면피성으로 내놓은 ‘범위 값’ 방식이 혼란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고 했다.

특히 2035년까지 산업 부분감축률을 24.3~28.0%로 다른 부문에 비해 낮게 제시한 것을 두고 기후시민단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강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기후 행동의원 모임 ‘비상’은 “ 정부안은 대한민국이 스스로 천명한 2050 탄소중립 목표를 포기한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며 “국제 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미온적 목표를 제시하며 우리 산업과 기업, 미래 세대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와 조선의 경우 원전(핵발전소)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주장과 산업계 반발을 주로 전했다. 중앙일보 4면 <“온실가스 50% 이상 감축, 원전 뒷받침 없인 달성 어려워”> 기사는 “전력 부문의 배출량 감축을 위해 정부는 재생에너지를 신속히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2030년까지 현재의 3배 수준으로 재생에너지용량을 늘리기로 했다. 재생에너지 확산을 가로막는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를 완화하거나 폐지하고, 풍력 발전 인허가도 신속하게 처리한다. 영농형 태양광의 확대를 위해 올해 내 특별법도 제정한다”라며 “하지만 원전 등 다른 무탄소 에너지원없이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 가능하냐는 의문이 제기된다”고 했다.

중앙일보는 또한 <차 업계 “사실상 내연차 퇴출 … 2035년엔 판매량 94% 무공해차로 채워야”> 기사에선 “자동차 업계는 정부가 NDC에 따라 제시한 ‘ 2035년 무공해 차(전기차·수소차) 보급 목표 840만~980만 대(전체 자동차의 30~35%)’가 사실상 내연기관차 퇴출 수준이라며 반발했다”고도 전했다.

▲2025년 11월 7일 조선일보 사설
▲2025년 11월 7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의 경우 <미·중 외면하는 탄소 감축, 왜 우리가 앞장서 자해하나> 제목의 사설을 통해 “한국은 세계 온실가스 배출 비율이 1.4%”라며 “온실가스 배출 1위인 중국(배출 비율 28%)은 지난 9월 2035년까지 정점 대비 7~10%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사실상 안 하겠다는 것이다. 배출 비율 2위인 미국(12%)은 트럼프가 “기후 환경 문제는 전부 사기”라며 파리협정에서 탈퇴해 버렸다”는 사례를 들었다. 김성환 기후부 장관이 최근에만 “석탄 발전소는 2040년까지 모두 폐지하겠다” “2035년이나 2040년쯤 내연차 판매를 중단하는 결정도 필요하다”고 한 것을 두고는 “마치 ‘기후 탈레반’을 보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배치기’가 주요 키워드로 오른 운영위 국감

6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대통령실 국정감사를 전하는 주요 기사에서 ‘배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을 지낸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 참여를 이해충돌이라 지적하고,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현지 대통령 제1부속실장 불출석을 문제 삼으며 언쟁이 벌어지던 상황이었다. 민주당 원내대표인 김병기 운영위원장이 정회를 선언하자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항의하며 뒤돌아섰고, 이기헌 민주당 의원과 부딪히면서 ‘배치기’ 충돌이 이뤄졌다.

▲2025년 11월 7일 국민일보 1면 사진기사
▲2025년 11월 7일 국민일보 1면 사진기사

서울신문은 사설 <F학점도 모자라 ‘배치기’ 국감… 세금이 아깝다>에서 “처음부터 김 실장은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것이 순리였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소동으로 불씨를 키운 책임은 대통령실과 여당에 있다”면서 “정작 ‘김현지 없는 국감’을 정치 공방의 빌미로 던져 준 쪽은 민주당이다. 이러니 주 의원에 대한 이해충돌 논란을 꺼낸 것도 김 실장 불출석에 쏠린 비판을 돌리려는 궁색한 트집으로 보일 뿐”이라고 민주당 책임을 더 중하게 물었다.

중앙일보도 사설 <여당의 필사적 김현지 감추기, 도대체 무슨 이유이길래>를 통해 “앞으로도 국감 때면 연례행사처럼 김 실장 출석을 두고 여야 간 대립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의 오랜 참모가 정쟁의 불씨로 남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라며 “김 실장 한 명의 국회 출석을 막기 위해 대통령실과 여당이 노심초사하는 모습은 아무리 지켜봐도 의아할 뿐”이라고 했다. 국민일보는 1면에도 ‘배치기 몸싸움…대통령실 국감 파행’ 제목으로 관련 사진기사를 배치했다.

운영위를 통해 새롭게 제기된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의혹들도 있다. 세계일보는 김영배 민주당 의원을 통해 12·3 비상계엄 이틀 후인 지난해 12월 5일 외교부가 미국 백악관과 도널드 트럼프 당시 대통령 당선인에게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 배경을 설명해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주미대사에게 보낸 정황이 드러났다는 기사 <계엄 직후 ‘尹 입장 전달 對美 공문’ 논란>를 배치했다.

동아일보도 1면, 3면 등에 ‘배치기 국감’이라는 비판을 게재했는데 6면 기사 <김건희 ‘건청궁’ 간 다음날, 용산 “왕실 공예품 대여” 문의>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가 경복궁 건청궁을 방문한 다음 날 대통령 비서실이 건청궁 안에 있는 공예품 대여를 문의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정치권에선 윤 전 대통령 부부가 왕실 공예품을 관저로 가져간 정황이라는 주장이 나왔다”고 전했다. 김준혁 민주당 의원실이 공개한 정황이다.

재판 불출석한 이상민 구인영장에 경향 “쾌도난마” 세계 “규정 위반”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혐의 사건 재판부가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과태료 500만 원을 부과하고 구인영장을 발부하겠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재판장 이진관)의 재판 진행에 경향신문과 세계일보 평가가 엇갈렸다.

▲2025년 11월 7일 경향신문 사설 및 세계일보 기사 제목
▲2025년 11월 7일 경향신문 사설 및 세계일보 기사 제목

경향신문은 사설 <이진관 판사의 호된 추궁과 쾌도난마, ‘내란 재판’은 이래야>에서 “윤석열사건을 심리하는 지귀연 재판부의 한없이 무르고 더딘 재판 진행과는 천양지차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를 막지 못해 놓고 저도 피해자 라고 변명하는 전직 국무위원에게는 그렇게 말하는 게 적절하냐 고 추궁했다”며 “이 중차대하고 역사적인 재판은 이 부장판사처럼 투명하고, 신속하고, 엄정하게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요, 국민 눈높이다. 과거 전두환 노태우 군사반란 재판도 그렇게 진행됐다”고 평가한 것이다.

반면 세계일보는 <법원, 불출석 이상민 구인영장 발부 ‘증인 소환장’ 송달 규정 위반 논란> 기사를 통해 “재판부가 증인 소환장을 ‘출석 일시로부터 24시간’ 이전에 송달하도록 한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했다. 재판부가 보낸 증인 소환장이 재판 전날인 4일 오후 5시40분쯤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이 전 장관에게 전달됐다면서, 이는 증인소환장을 ‘늦어도 출석할 일시로부터 24시간 이전에 송달해야 한다’는 형사소송규칙 70조에 반한다는 것이다. 다만 ‘급속을 요하는 경우엔’ 예외로 하도록 했다”고 부연했다.

광주 찾아 반발 높인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취임 후 처음 광주를 찾았지만, 시민들의 저지로 국립 5·18 묘지를 참배하지 못했다. 주요 신문들이 이를 다룬 가운데 경향신문은 사설  <장동혁 대표, 5·18 계승하려면 ‘윤 어게인’ 절연하라>에서 “윤석열 내란을 옹호해 온 장 대표가 감히 5월 정신을 입에 올릴 수 있는지 묻게 된다”라며 “내란을 옹호하고 부정선거 음모론을 견지하며 계속 윤 어게인을 외칠 것인가. 민주주의 통합을 말하면서 언제까지 내란이라는 국가 폭력을 두둔할 건가. 내란과의 단절 없이, 오월 영령들을 참배하겠다는 건 광주에 대한 모독이다. 장대표는 표리부동한 5 18묘지 참배에 앞서 윤석열 내란 극우 세력부터 절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호남 동행” 외치며 광주 간 장동혁, 방명록도 못 썼다> 기사에서 국민의힘의 한 영남권 의원이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승리하려면 이제는 외연 확장까지 병행해야 하는 상황이라 장 대표도 지지층·중도층 ‘줄타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다만 장 대표의 행보에 대해 “ 기본적으로 쌍끌이 전략처럼 보이지만 ‘체제 전쟁’을 외치는 분들이 중도층 민심과 양립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는 윤태곤 더 모아 정치분석 실장의 분석도 함께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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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낯두꺼운 '계엄' 마케팅…"잊히기 싫어 발버둥"

김호경 에디터다른 기사 보기
 

"내가 계엄 막는 데 앞장" "이재명이 계엄할 듯"

연일 무리수로 정치적 활로 모색 '노이즈 마케팅'

"추경호 구속영장 기각돼야"…국힘 환심도 사려

민주 "윤석열 총 맞을 걸 구해줬더니 배은망덕"

박은정 "과연 부역자…목숨 부지에 감사나 하라"

전우용 "금수(禽獸)도 은혜 아는데 금수만도 못해"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7.24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파인그라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만찬에서 한동훈 대표(왼쪽), 추경호 원내대표(오른쪽) 등과 함께 손을 맞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4.7.24 [대통령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뜬금없이 이재명 대통령의 계엄 선포 가능성을 연일 거론하고 나서면서 민주 진영으로부터 뭇매를 맞고 있다. 보수-극우 진영에서조차 '배신자'로 규정돼 정치적 존재감이 갈수록 작아지는 추세인 한 전 대표는 극단적인 '반(反) 이재명' 발언으로 어떻게든 활로를 모색하며 내란 잔당 세력에게서라도 환심을 사려 애쓰는 것으로 보인다. '노이즈 마케팅'에는 일단 성공했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듯하다.

그는 6일에도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 재판 재개에 대한 민주당 정권의 '플랜B'가 계엄인가"라며 "재판 재개되면 그걸 막을 유일한 수단인 계엄을 선포할 것이라는 저의 예측은 전혀 무리하지 않다. 이재명 민주당 정권은 재판이 재개되면 무슨 짓이든 할 것"이라고 되풀이 말했다. 전날에는 "민주당은 쫄리고 할 말 없을 때마다 자기들이 계엄의 밤 저를 구했다고 거짓말하는데, 여당 대표인 제가 계엄을 막는 데 앞장서서 민주당 정치인들이 체포되는 것을 막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민주당이 저를 구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추경호 전 원내대표에 대한 내란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를 두고는 "지금까지 알려진 특검 수사 결과를 볼 때 추경호 의원 등 우리당 의원들이 계엄을 사전에 알거나 도왔다는 증거가 없다. 우리당 추경호 의원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돼야 한다"면서 '우리당'을 거듭 내세워 국민의힘 측에 구애를 하는 모습도 보였다. 앞서 그는 지난 4일 YTN 라디오 '김영수의 더 인터뷰'에 출연해 "어떤 용기 있는 판사가 (이 대통령 관련) 재판을 재개하면 이 대통령이 계엄령을 발동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언론의 무수한 받아쓰기 보도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한동훈 국민의당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가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면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당 대표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대표가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가결하면서 악수를 하고 있다. 2024.12.4. 연합뉴스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연히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정말로 뻔뻔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불법 비상계엄으로 무너뜨린 사람들이, 거기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반성을 하지 못하고 자기들이 저질렀던 그 일을 거꾸로 이재명 정부에게 덮어씌울 수 있는가"라며 "한 전 대표는 자신의 정치적 존재감이 잊히지 않도록 계속 무리한 발언들로 주목받고 싶은 모양인데, 정말 나라의 지도자가 되고 싶으면 꼼수보다는 대한민국에 비전을 제시하라"고 질타했다.

문진석 원내수석부대표도 이날 BBS 라디오 '금태섭의 아침저널'에서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이재명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 아닌가? 부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는 얘기가 있듯이 계엄 DNA가 있는 정당 사람들의 눈에는 계엄만 보이는 모양"이라며 "이재명 대통령은 헌정질서를 지키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겠다는 얘기를 수차례 천명했다. 계엄 운운하는 것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드는 정치적 술수 또는 '어그로'를 끌기 위한 발언 아닌가 생각한다"고 했다.

김용민 의원은 YTN 라디오 '김준우의 뉴스 정면승부'에서 "한동훈 전 대표는 계엄 얘기를 저렇게 함부로 꺼내면 안 된다. 잊히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것"이라며 "민주당은 비상계엄 내란을 국민과 함께 극복하고 국민주권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러니 내란을 저지른 정권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쾌하고 잘못된 얘기"라고 분노했다. 이어 "당시 여당 대표였는데 내란을 못 막았으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라면서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근거 중의 하나가, 그때 김건희 특검법을 통과시켰으면 내란 함부로 못 했다. 특검이 돌아가 정권의 민낯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면 비상계엄 못 했을 것이다. 정계 은퇴를 포함해 뭐가 됐든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4.12.8.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국정 수습 방안을 담은 공동 담화문을 발표하기 위해 회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2024.12.8. 연합뉴스

페이스북에서도 민주당 의원들의 성토가 봇물을 이루는 중이다. 박정 의원은 "2025년 한동훈의 '플랜B' 주장은 '망상과학소설'이다. 이재명 정부에는 윤석열 같은 대통령도, 김건희 같은 영부인도, 한덕수 같은 총리도, 김용현과 박성재 같은 장관도 없기 때문"이라며 "나라가 APEC을 통해 정상화하고 회복해가는 이 시점에 다시 계엄 타령을 하면서 국기문란을 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인가? 형님이자 정치적 동지인 내란 수괴한테 총 맞아 죽을 뻔했는데도 그 상처 위에 또 거짓을 얹는 모습이 참담하다"고 개탄했다. 아울러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낸 검사 출신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이 정도 수준이라는 게 부끄럽다"면서 "국민 여러분이 왜 강력하게 검찰개혁을 원하는지 돌아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강득구 의원은 "윤석열이 총까지 쏴서 죽이려 했다는 험담을 들었는데, 그런 말을 듣고도 도대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내란 세력을 옹호하는 건지 모르겠다. 거기에다 '간염 수괴'이자 '일베 검사' 주진우는 여전히 내란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 두 사람, 저는 대표적인 폐족(廢族)이라고 생각한다"며 "수많은 증거가 쏟아져 나오는 김건희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못 하면서 윤석열과 김건희가 망쳐놓은 대한민국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재명 정부만 비난하고 있다. 본인들이 폐족임을 인정하고 깨끗하게 정계를 떠나는 것이 대한민국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도부의 공개 발언도 이어지고 있다. 한준호 최고위원은 전날 국회 본청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동훈 전 대표는 조금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는데 느닷없이 헛된 망상을 떠들고 다닌다. 그러니까 친했던 형님(윤석열)이 '총으로 쏴 죽이겠다'고까지 이야기한 것이 아닌가?"라며 "한 전 대표가 계엄 트라우마가 매우 심한 것 같은데, 계엄 당일 본회의장에 진입도 못하고 하얗게 질렸던 모습이 오버랩 돼서 상당히 안쓰럽다. 대한민국 계엄의 역사를 이어왔던 그 집안 단속이나 잘하길 바란다"고 꼬집었다.

김병주 최고위원은 "망조 든 정당 국민의힘이 갈수록 가관이다. 현직 대표 장동혁은 대국민 선전포고로 체제전복 내란을 선동하고, 전직 대표 한동훈은 계엄 발발 유언비어로 국민 불안을 유포하니, 권커니 잣거니 나라 말아먹을 환장을 뛰어넘는 '한장'할 듀엣"이라며 "한동훈은 윤석열 보고 놀란 가슴을 왜 이재명 대통령에게 들이대나? 내란의 밤 기껏 윤석열 총구에서 구해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뒤통수를 치는 배은망덕 병증은 정권을 가리지 않는다. 못된 인간은 결코 고쳐서 쓸 수 없음을 또 한 번 여실히 증명했다"고 목청을 높였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저서 중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할 가능성을 거론하는 부분. 사진=한 전 대표 페이스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저서 중 이재명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발동할 가능성을 거론하는 부분. 사진=한 전 대표 페이스북

조국혁신당에서는 특히 같은 검사 출신인 박은정 의원이 '한동훈의 천적'으로서 다시 직격탄을 날렸다. 박 의원은 <목숨을 부지한 것에 감사나 하십시오>라는 제목의 페이스북 글에서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77조 5항을 들어 "한동훈 비(非)국회의원이 내란의 밤 계엄 해제하러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왔다는 헌법에도 맞지 않는 아무 말에 웃음이 난다"며 "본회의장 바로 앞까지 쳐들어온 무장 계엄군이 무서워서 숨어 들어온 거 아닌가? 본회의장에 본인 좌석이나 있나?"라고 따져 물었다.

또 "그 밤에 당장 나가라고 하지 않고 목숨이 불쌍해서 두었더니 과연 내란을 저지른 윤석열 정권의 부역자답다. 지금이라도 검찰에 가서 본인 휴대폰 비밀번호나 풀고 채널A 검언유착 사건 재수사 받으라"면서 "폐문부재로 송달 안 되는 증인출석요구서나 제때 송달받아 내란 재판에 성실하게 증인으로 출석하기 바란다. 살아있는 게 고맙다면 그 도리를 다하는 게 인간"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우용 역사학자의 비평도 눈길을 끈다. 그는 "윤석열이 한동훈을 총으로 쏴서 죽이겠다고 한 건 그가 '배은망덕'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계엄 당일 밤, 국회의원도 아닌 한동훈이 본회의장에 들어와 벌벌 떨던 모습을 온 국민이 기억하고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의원들을 국회로 소집하고 국민들에게 국회 앞으로 달려와 달라고 부탁했기에 가까스로 계엄령을 해제할 수 있었다. 그때 계엄령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지금 한동훈 이름 앞에는 한 글자(故)가 더 붙어야 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어지간한 금수(禽獸)도 은혜는 안다. '배은망덕'한 인간을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고 하는 이유"라고 일갈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계엄 관련 주장을 풍자해 페이스북에서 회자되고 있는 박성호 님의 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계엄 관련 주장을 풍자해 페이스북에서 회자되고 있는 박성호 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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