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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다로 바뀐 가자 병원…피난처 아닌 죽음의 덫으로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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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전쟁범죄 ④] 의료체계 파괴

근거없이 하마스와 한패 몰아 병원 930개 폭격

의료진 993명 피살… 감옥 끌려간 520명 고문

'병원 안전하겠지" 대피한 주민 많아 피해 더 커

MRI "0"…손 놓은 의사들 “환자 앞에서 울기만”

의사 공격은 환자생명 위태롭게 하는 '예비 살인'

국제사회, 감옥 끌려간 아드완 병원장 석방 운동

유엔총장 "인종청소" 비판에 이스라엘은 귀막아

가자지구 남부 라파의 알-나자르 병원에서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이들을 슬퍼하는 가족들(2023년 11월7일) ⒸAbed Rahim Khatib/Flash9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는 지구촌의 변두리처럼 모든 물품이 귀한 곳이다. 이스라엘의 봉쇄정책 탓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크게 느끼는 탓일까, 줄담배를 피우는 골초들이 많다. 가자지구로 취재를 갈 때마다 그곳 통역자는 “미스터 킴, 빨간 말보로 담배를 가방에 넣을 수 있을 만큼 많이 사오라”고 이메일로 거듭 부탁했다. 담배야 건강에 좋지 않으니 그렇다 치고, 가자지구엔 치약이나 칫솔 같은 기본적인 생필품조차 늘 부족하다. 의약품은 더 구하기 어렵다. 다시 말하지만, 이스라엘의 봉쇄 탓이다.

가자지구의 의료 인프라는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지기 전부터 매우 열악했다. 지난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을 통해 합법적으로 세워진 하마스 정권을 이스라엘은 미국과 손잡고 1년 뒤 무너뜨렸다. 그로부터 빚어진 크고 작은 무력충돌을 거치면서 이스라엘은 20년 동안 봉쇄정책을 펴왔다. 의료 서비스를 포함한 사람과 물자의 가자 출입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에 따라 가자 주민들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그런 판에 또 전쟁이 터졌다.

“의사로서 우리는 눈먼 장님이 됐다”

가자지구 병원들은 지난 2년 반 동안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이스라엘군은 폭격기 공습, 대포와 탱크 포격, 보병의 지상작전 등으로 병원들을 두들겼다. 갓 태어난 신생아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질 못해 숨지고, 임신한 여인들이 스트레스를 받아 조산을 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졌다. 미숙아를 살리는 인큐베이터, MRI 등 고가의 의료장비를 비롯해 거의 모든 시설물이 망가졌다. 저격수들은 병원 안에서 일하는 의료진이 하마스에 연루된 ‘불법 전투원‘이라며 붙잡아갔다. 환자를 나르는 구급차도 공격 목표가 됐다. 이렇듯 전쟁범죄 논란을 부르는 마구잡이 살상과 파괴 행위가 잇따랐다.

국제형사재판소(ICC) 로마 규정 제8조에는 ‘병원 및 병자와 부상자를 수용하는 장소가 군사 목표가 아닌 한, 이들에 대해 의도적으로 공격을 하는 행위’(제2항)를 전쟁범죄로 못 박고 있다. ‘병원, 의료수송수단, 의료 포장을 한 건물에 대한 고의적인 공격’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은 (굳이 법조문을 외울 것 없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정치군사 지도부는 이를 아예 무시하는 모습이다.

[가자지구의 보건 시스템은 지속적인 공격으로 인해 체계적으로 악화되었다. 36개의 모든 병원과 대부분의 1차 보건센터가 파괴되었다. 2023년 10월 이후 의료 시설에 대한 공격이 930건 이상 기록되었다. 현재 모든 병원의 절반만이 부분적으로 운영되며, 많은 병원이 수용 능력을 넘어선 지 오래다.]

(https://www.un.org/unispal/document/occupied-palestinian-territory-who-health-emergency-appeal-2026/)

위에 옮긴 글은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가 팔레스타인(특히 가자지구)의 보건 상황이 위기에 처했음을 세계에 알리면서 긴급 지원을 호소하는 대목이다. 현재 많은 부상자와 만성 질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분쟁으로 인한 정신건강 피해 또한 매우 심각하다. 어린이들을 포함해 100만 명 넘는 사람들이 심리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의료 인력의 부족, 필수 의약품과 장비 부족 등도 큰 문제다.

지난 2년 반 동안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36개 병원 가운데 특히 알-시파(Al-Shifa), 나세르(Nasser), 카말 아드완(Kamal Adwan) 병원 등 이른바 거점 병원들을 거듭 공격해 망가뜨렸다. 2026년 5월 현재 암, 뇌졸중, 간질 등 수백 가지 질병을 진단하는 데 필수적인 MRI 장비가 가자지구에서는 한 대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그곳에 딱 하나 있는 암 전문 병원인 ’터키-팔레스타인 우정병원‘의 소아신경과 전문의 모하메드 아부 나다의 한탄을 들어보자.

“MRI 장비의 손실은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치명적인 장벽이다. 의사로서 우리는 사실상 눈이 먼 장님과 마찬가지다. 난치성 간질, 뇌염, 또는 소아종양 초기 단계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 우리는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 도구가 (망가진 채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방에 쓸모없이 놓여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이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https://www.972mag.com/doctors-blinded-gaza-mri-crisis/)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는 2023년 11월과 2024년 3월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촬영작가 미상

병원은 더 이상 안전지대 아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슨 이유로 병원과 의료진을 공격하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리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평화적 생존권과 건강권을 앗아가 말살시키려는 속셈 말고 다른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공격 근거는 “하마스가 병원을 보호막 삼아 군사기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병원 밑에 지하 터널을 파놓고 엄청난 양의 무기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주장도 편다. 의료진들 가운데 일부는 하마스와 밀착돼 있다고도 했다. 따라서 가자 병원들은 보호받아야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이스라엘은 병원과 하마스의 밀착 관계를 증명하는 빼도 박도 못할 구체적인 물증을 내놓지 못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와 같은 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 병원 시설물들의 보호 조치를 거둘만한 어떠한 결정적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라고 거듭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병원뿐 아니라 이슬람 사원(모스크)과 학교를 하마스가 군사 목적의 시설물로 바꾸었다”는 주장을 펴면서 이들 공공 시설물을 공격하곤 했다. 그에 따라 병원이나 학교, 모스크를 ’안전지대‘로 여기고 피난해 온 민간인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

병원에는 환자만 많은 게 아니었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해 주민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설마 병원을 포격하겠느냐”며 병원마다 주차장이나 복도에 난민들이 꽉 들어찼다. 이를테면,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 병원에는 한때 5~6만 명의 사람들이 머물렀다. 하지만 병원은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병원이 공격을 받게 되자, 난민들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진료 자체가 쉽지 않다. 중상을 입고 의식마저 없는 어린이를 비롯한 부상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의료진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그저 울면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답니다.”

1000명 가까이 의료인 희생

병원들에 대한 공격은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의 목숨뿐 아니라 그곳에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그뿐 아니다. 언젠가 그곳에서 치료받으면 목숨을 건질 이들의 생명줄마저 미리 끊어버리는 ‘예비 살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10월 이후 2026년 3월까지 2년 반 동안 가자지구에서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이 930건을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국제법상 보건의료 인력은 분쟁 중에도 절대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의료 중립성(medical neutrality)’의 대상으로 꼽힌다. 가자지구에서는 병원 자체가 군사작전의 주요 공격 목표물 목록에 오르면서 의료 전문인력과 환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WHO 집계에 따르면, 의료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 등 보건 의료 인력의 누적 사망자 숫자는 993명에 이른다(2023년 10월7일~2026년 1월31일). 여기에는 가자지구의 거점 병원(대형 병원)을 지키던 이름난 전문의(정형외과 과장, 의대 학장 등)뿐만 아니라, 의료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실어 나르던 구급대원, 간호사, 조산사 등이 포함돼 있다(https://www.emro.who.int/images/stories/palestine/Sitrep_68.pdf).

위의 같은 자료에서 부상자 수는 1654명으로 기록된다. 이들은 이스라엘군의 병원 공습, 구급차 포격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거나, 병원 주변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군-하마스대원 사이의 전투에서 날아든 유탄에 다친 의료진까지 포함한 숫자다. 이들은 총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대체 인력이 없어 현장에서 붕대를 감고 진료를 이어가는 등 민간인들의 목숨을 구하려 애썼다.

병원 점령 자체가 전쟁범죄이지만, 이스라엘군은 점령 뒤에도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가자지구의 주요병원 3개(가자시티의 알-시파 병원, 베이트 라히아의 카말 아드완 병원,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가 점령됐을 때 현장에 있던 의료진과 환자들을 인터뷰해 이스라엘군의 전쟁범죄를 낱낱이 드러냈다(2025년 3월 20일). 그 한 대목을 보자.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점령한 뒤 부상자와 아픈 환자들의 치료에 심각하게 간섭했다. 의사들의 약품 전달 요청을 거부하고 병원과 구급차 접근을 막았다. 그 때문에 부상자와 만성 환자, 투석 중인 어린이들이 죽었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다리를 잃고 목발을 써야 했던 안삼 알샤리프는 "우리는 (이스라엘군 점령) 나흘 동안 음식, 물, 약도 없이 지냈다"고 말했다. 알샤리프는 그 시기에 4명의 노년 환자가 숨을 거두는 것을 봤다.]

(https://www.hrw.org/news/2025/03/20/gaza-israeli-military-war-crimes-while-occupying-hospitals).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는 2023년 11월과 2024년 3월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뒤 폐허처럼 바뀌었다. 이스라엘군이 물러난 뒤 병원 마당에서 처형된 것으로 보이는 시신들이 포함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어 충격을 안겼다. 일부 희생자들은 양손이 묶인 채 숨져 있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이스라엘 쪽의 조사나 처벌은 아직 없다. 다만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전쟁범죄를 조사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들이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파괴된 알-시파 병원 부지에서 의료진들이 이스라엘 감옥에 갇힌 의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오페르 감옥에서 고문 받아 2024년 4월에 숨진 아드난 알-부르시의 사진도 보인다(왼쪽 두 번째). ⒸYousef Zaanoun/Activestills

감옥행 의료진 520명, 고문받고 숨지기도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와 내통했다’ 또는 ‘하마스 협조자’란 구실을 붙여 가자지구의 의료인들을 붙잡아갔다.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습격·점령하는 과정에서 붙잡아 강제로 끌고간 이들이다. 현재 이스라엘의 여러 구금시설에 갇힌 숫자는 적어도 520명에 이른다. 대부분이 이렇다 할 기소 절차도 없이 장기 구금되어 있다. 더구나 일부 의료진은 실종상태다.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어 가족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감옥으로 끌려간 의사들은 그 안에서 고문을 받기도 했다.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의료 시설인 알-시파 병원 정형외과 과장 아드난 알-부르시가 그러했다. 2023년 10월 전쟁이 터진 뒤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알-시파 병원의 기능이 마비되자, 그는 북부 가자의 알-아우다 병원으로 옮겨 가 환자들을 치료했다. 그해 12월 말, 이스라엘군이 알-아우다 병원을 습격했을 때 수십 명의 의료진과 함께 붙들려갔다. 구체적인 체포 사유도 듣지 못하고 ‘불법 전투원(unlawful combatant)’으로 분류된 그는 여러 수용소를 거쳐 오페르 감옥에 갇혔다(팔레스타인 저항을 옥죄기 위해 지난 20002년 만들어진 ‘불법전투원 구금법’은 이스라엘 인권침해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문제의 악법이다).

예루살렘 북서쪽에 있는 오페르 감옥은 팔레스타인 저항운동가들에게는 인권 침해로 악명 높은 수용시설이다. 그곳에 갇혔다가 풀려난 동료 의료진들의 증언에 따르면, 알-부르시는 수감 직후부터 심한 구타와 가혹 행위에 시달리다가 끝내 숨졌다. 그의 사망일은 2024년 4월19일. 그는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부상을 입었음에도 숨지기 직전까지도 감옥 안의 다른 수감자들을 돌보려 애썼다고 한다.

알-부르시의 체포와 사망 과정은 의료진에 대한 조직적 폭력의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이스라엘 교정국은 쉬쉬하며 숨기다가 2주가 지나서야 사망 사실을 알렸다.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국가 안보상’의 이유‘를 들어 밝히지 않았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Amnesty International)은 “알-부르시 박사의 사망은 이스라엘 교도소 내 고문의 증거”라며 독립적인 부검과 조사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엔 인권위 최고대표사무소(OHCHR)도 알-부르시의 사망에 깊은 우려를 나타내며, 의료진을 겨냥한 초법적 고문 및 처형 가능성을 꼽았다. 알-부르시 의문사를 둘러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전쟁 뒤 국제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이스라엘군의 마구잡이 공격이 빚은 가자 의료체계의 붕괴와 그곳 의료진이 겪는 가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들은 한둘이 아니다. 가자지구 북부 카말 아드완 병원의 원장인 후삼 아부 사피야와 그의 아들이 겪은 비극적 사건도 빼놓을 수 없다. 2024년 10월 25일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급습했다. 그때 병원 입구에 있던 사피야 원장의 15살 아들 이브라힘은 이스라엘군이 띄운 드론의 공격을 받아 죽었다. 병원 마당에 아들을 묻은 사피야 원장은 슬퍼할 겨를도 없이 곧바로 수술실로 돌아가 그의 손길이 필요한 환자들을 돌보아야 했다.

2024년 12월 27일 이스라엘군이 카말 아드완 병원을 다시 공격해 왔다. 이번엔 의료시설을 파괴하고 화재를 일으켜 병원 기능을 아예 마비시켰다. 그런 다음 사피야 원장을 비롯한 의료진 350여 명을 붙잡아 갔다. 앞의 알-부르시와 마찬가지로 '불법 전투원’이란 혐의를 걸어서였다.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감옥에 갇힌 사피야는 갈비뼈 4개가 골절되는 지독한 고문을 받았다. 밥도 제대로 주질 않아 몸무게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건강이 아주 나빠졌다고 알려진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이 인권침해의 중범죄를 사피야에게 저지르고 있다고 여긴다. 이탈리아 출신의 UN 팔레스타인 인권상황 특별보고관 프란체스카 알바네세는 2026년 3월 ‘명백히 자의적이며 국제법 위반’이라 비판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샤피아 석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알-부르시와 샤피아, 이 두 사람의 경우는 드러난 사례일 뿐, 이스라엘의 인권침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는 중이다(이스라엘 감옥 상황에 대해선 따로 곧 살펴볼 참이다).

 

2023년 10월19일 요아브 갈란트 당시 국방장관이 가자지구 장벽 인근 집결지에서 이스라엘 군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2024년 11월 국방장관에서 물러난 갈란트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체포영장이 나온 전범 수배자 신분이다. ⒸChaim Goldberg/Flash90

‘치유와 회복’의 장소가 ‘죽음과 학대’로

이제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병원에서 ‘점령군이자 지배자’로서 행동했다. 군인들은 의료진들에게 거칠게 굴고 환자들에게 물과 전기 공급을 거부함으로써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막판엔 총구를 앞세워 ‘대피’라는 구실 아래 환자와 의료진을 강제로 내몰고, 병원을 파괴했다. 하마스 연루자로 몰아 의료진들을 감옥에 가두고 고문해 숨지게 만들기도 했다. 가자지구 병원의 피해를 조사했던 휴먼라이츠워치(HRW)의 아동권리 부국장 빌 반 에스벨트는 “이스라엘 군대가 병원을 점령하면서, 치유와 회복의 장소들이 죽음과 학대의 중심지로 바뀌었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전쟁범죄 관련자들은 모두 언젠가는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가자지구의 끊임없는 폭격과 심각한 인도주의적 상황만으로도 매우 고통스러운데,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느껴야 할 유일한 피난처가 오히려 죽음의 덫이 되었다. 전쟁 중 병원 보호는 최우선 과제이며, 모든 당사자가 언제나 이를 존중해야 한다.”(https://www.un.org/unispal/document/pattern-of-israeli-attacks-on-gaza-31dec24/)

위에 옮긴 글은 유엔 인권위 최고대표사무소(OHCHR)가 보고서(「가자지구 병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 패턴은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 2024년 12월31일)를 내면서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UN High Commissioner for Human Rights)가 했던 말이다. 보고서는 국제 인도법 및 인권법을 노골적으로 무시한 공격으로 의료인들과 환자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는 사실을 짚으면서, 이스라엘의 전쟁범죄를 비판했다.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정치학 박사)

돌이켜 보면, 지난 2년 반 동안 “이스라엘이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국제기구와 인권단체의 공식 발표와 보고서는 한둘이 아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가자지구의 상황이 ‘대재앙(catastrophe)’이며 “이스라엘의 공격 목적이 인종청소(ethnic cleansing)일 수 있다”고 나무라는 등 비판적 담화를 여러 번 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초강대국 미국의 뒷심을 믿고 그런 비판들에 귀를 막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고, 국제평화유지군 파병이라는 물리력으로, 또는 전쟁범죄 관련 국제법으로 이스라엘을 제대로 응징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 그런 날이 오기나 할까.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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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줄리 재판 증인 출석… 첫 결혼엔 진술거부

검사 신문선 "모두 거짓"… 반대신문서 양재택·조남욱과 밀접 관계 잇단 진술

김건희 '쥴리 아닌 제니' 부인, 첫 결혼 의혹엔 진술거부

양재택 사무실 개업 돕고 제자 소개, 대선 캠프 방문까지 본인이 진술

조남욱이 윤석열 결혼 주선 인정, 교생 사진엔 '국정원 제자' 거론

2026-05-21 08:36:02
 

김건희씨가 자신을 둘러싼 '쥴리' 의혹 보도의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직접 나왔다. 검사 신문에서는 모든 보도를 "거짓"이라며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피고인 측 변호인의 반대신문에서는 양재택 전 검사,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과의 밀접한 관계가 김씨 진술로 잇따라 드러났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결혼하기 전 산부인과 의사와 결혼식을 올렸다는 의혹을 묻자, 김씨는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검사 신문에선 "모두 거짓"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4부(재판장 한성진)는 20일 안해욱 전 대한초등학교태권도협회장과 정천수 전 열린공감TV 대표 등의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공표) 등 혐의 공판을 열었다. 이들은 2022년 대선을 앞두고 김씨가 과거 '쥴리'라는 예명으로 유흥업소에서 일했다는 취지의 허위사실을 퍼뜨린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는 그동안 증인 소환에 응하지 않아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받았으나, 이날 출석으로 과태료는 취소됐다. 재판부는 방청석과 피고인석에서 김씨를 볼 수 없도록 가림막을 설치했다. 신문은 재판장에 이어 검사, 변호인 순으로 약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검사 신문에서 김씨는 쥴리 의혹과 양재택 동거설, 결혼·이혼설, 결혼 전 불임설, 건진법사와의 관계설을 하나씩 부인했다. "쥴리라는 예명을 사용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는 "단 한 번도 없다"고 답했다. 라마다르네상스 호텔 나이트클럽 출입 여부에도 "전혀 없다"고 했다. 6층 연회장에는 가본 적이 없다면서도, 조남욱 회장실에는 한 번 가봤다고 인정했다. 안해욱 전 회장에 대해서는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다"며 면식 자체를 부인했다. 검사가 제시한 사진 여덟 장에 대해서는 모두 자신의 실제 사진이 맞다고 인정했다. 김씨는 "쥴리라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6년째 정신과 약을 먹고 있다"며 피고인들의 처벌을 원한다고 밝혔다.

 

"쥴리 아닌 제니"… 외국 이름 호칭은 인정

 

반대신문에서 김씨는 "쥴리의 줄자도 쓴 적이 없다"고 거듭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채팅방이나 미니홈피에서 쓴 별명은 제니였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나를 제니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쥴리'는 부인했지만, 외국식 이름으로 불렸다는 사실은 김씨 본인이 확인했다. 변호인이 김씨의 작은외할머니의 딸인 이씨의 녹취록을 제시하자 김씨는 그 목소리가 이씨가 맞다고 했다. 해당 녹취에는 김씨가 모임에서 본명 대신 외국 이름으로 불렸다는 이씨의 증언이 담겨 있다.

 

첫 결혼·개명 이유엔 입 닫아

 

첫 결혼 의혹을 다룬 대목에서 김씨는 입을 닫았다. 변호인이 "윤석열과 결혼하기 전 산부인과 의사와 결혼식을 올린 사실이 있느냐"고 묻자, 김씨는 잠시 뜸을 들인 뒤 "진술을 거부하겠다"고 답했다. 같은 취지의 질문에 두 차례 모두 같은 답이었다. 의혹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36세이던 2008년 김명신에서 김건희로 이름을 바꾼 이유를 묻는 질문에도 "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만 한 뒤 끝내 답하지 않았다.

 

양재택·조남욱과의 관계, 본인 진술로 확인

 

반대신문이 길어지면서 김씨가 그동안 거리를 둬 온 인물들과의 관계가 김씨 진술로 드러났다. 김씨는 양재택 전 검사가 변호사 사무실을 열 때 물품을 사다 주고 도자기를 선물했으며, 자신의 제자 한 명을 그 사무실 직원으로 소개했다고 인정했다. 양재택은 앞선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김씨가 소개한 직원이 자기 사무실에 근무한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 두 사람의 진술이 정면으로 어긋난다. 서로의 증언을 사실상 위증으로 모는 모양새가 됐다.

 

김씨는 자신의 어머니 최은순씨, 양재택의 모친과 함께 경남 사천의 한 단식원에서 열흘을 보냈다고도 밝혔다. 양재택과 그 부인이 2022년 대선 당시 자신의 선거 사무실을 여러 차례 찾아왔다는 진술도 나왔다. 동거설의 상대로 지목돼 온 인물이 남편 윤석열의 대선 국면까지 김씨 곁에 가까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가락동 대련 아파트에는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살았다고 했다. 양재택과의 동거설이 제기된 시기와 겹친다. 김씨는 2004년 아크로비스타에 입주했다고 했다. 이 집은 당시 다른 사람 명의로 보존등기가 돼 있었고, 김씨 명의로는 2006년에야 넘어왔다.

 

조남욱 전 삼부토건 회장과의 관계도 드러났다. 김씨는 "조남욱 회장이 윤석열과의 결혼을 적극적으로 성사시키도록 노력해 주신 분"이라고 말했다. 윤석열과 결혼시키기 위한 "대형 프로젝트"가 있었다는 표현도 썼다. 호텔 식당 토스카나에 양재택, 최은순씨와 자주 드나들었고 조 회장이 세 사람을 단골로 대했다는 직원 증언에는 "찾아왔다"며 출입 사실을 인정했다. 김씨는 일부 질문에는 "약을 많이 먹어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며 답을 피했다.

 

교생 사진엔 '국정원 제자' 거론

 

김씨는 검사가 제시한 사진 가운데 1997년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교생 실습 시절 사진을 꼽았다. 이 사진은 2023년 언론에 보도됐다. 김씨는 "내가 배포한 게 아니라 내게 배운 학생이 낸 것"이라며 "그 학생이 국정원에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사진이 퍼진 경위를 설명하면서 김씨가 스스로 국가정보원을 끌어들였다. 정보기관 출신 인물이 사진 유포에 관여했다는 취지의 주장이지만, 김씨는 그 학생이 누구인지, 어떤 경위로 사진을 입수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부친 얘기를 꺼내며 "내가 뭐가 아쉬워 술 파는 곳에서 손님을 접대하겠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다만 앞선 신문에서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손길을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자랐다고 진술해, 두 진술이 맞물리지 않았다. 부친의 양평군청 근무 이력과 건설 사업 의혹을 묻는 질문에는 "태어나기 전 일이라 잘 모른다"며 비켜갔다.

 

이 사건은 윤석열 정권 출범 직후 시작된 언론 압박과 맞닿아 있다. 경찰은 2023년 쥴리 의혹 보도 관계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넘겼고, 2024년 1월에는 안 전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다. 김씨는 이날 법정에서 "내가 쥴리였다면 이 자리에서 죽을 용기도 있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명예훼손과 허위사실 공표 재판의 핵심 쟁점은 보도 내용이 허위인지 여부다. 검찰은 김씨를 증인으로 세워 의혹이 허위임을 입증하려 했다. 그러나 김씨가 반대신문에서 양재택·조남욱과의 관계를 스스로 인정하면서, 보도의 핵심 정황이 오히려 확인되는 장면이 반복됐다. 국내 언론 상당수는 이날 '제니' 발언만 단신으로 다뤘을 뿐, 이 대목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다음 재판은 오는 6월 23일 열린다. 증인으로는 '쥴리' 호칭을 처음 증언한 김씨의 작은외할머니의 딸 이씨가 나올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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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를 넘어 한미동맹의 ‘굴레’에 대한 분노로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5.22 06:30
  •  
  •  댓글 0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답변을 듣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답변을 듣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5월 20일 국무회의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구호선단 나포와 한국인 활동가 억류를 비난하면서 네타냐후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 집행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한국인 김동현과 김아현 씨가 탑승한 구호선은 각각 5월 18일과 20일 새벽 이스라엘군에 억류됐다.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행위를 두고 “최소한의 국제 규범이라는 게 있는데 다 어기고 있다”면서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네타냐후에 대한 ICC 체포 문제에 대해 “우리도 판단을 해 보자”고 말했다.

 

ICC는 2024년 11월 네타냐후와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혐의는 가자 전쟁과 관련한 전쟁범죄, 특히 “전쟁 수단으로서의 기아 사용”, 그리고 반인도 범죄인 살인·박해·기타 비인도적 행위 등이다. 물론 유죄 판결이 아니라 체포영장 단계다. ICC가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보고 재판 출석을 확보하기 위해 영장을 낸 것이다. 여러 나라들이 네타냐후가 자국에 들어오면 체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ICC를 설립한 로마규정은 ICC가 체포·인도 요청을 보낼 경우 당사국이 국내 절차에 따라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한국을 포함한 125개국이 당사국이다. ICC 자체 경찰력이 없으므로 실제 집행은 각국 사법·경찰 당국이 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명시적으로 체포 의사를 밝힌 나라는 네덜란드, 캐나다, 아일랜드, 슬로베니아, 말레이시아, 콜롬비아, 헝가리 등이다. 행정수반이 직접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스페인과 리투아니아도 체포영장 집행 의사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반대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유보적이다.

5월 21일 조선일보는 “대통령이 외국 수반 체포 언급, 외교 언사로 부적절”이라는 제목의 사설로 이 대통령의 언사를 비판했다. 신문은 “국가 정상이 상대국 정상에게 체포 영장 집행을 거론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신문은 이어 미국이 ICC의 네타냐후 체포 결정에 “터무니없다”고 반발했다면서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이 이스라엘과 단교라도 불사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지나치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언어가 동맹 미국에 대한 도전이라는 뜻이렷다.

국가원수가 공개 석상에서 타국 현직 총리의 체포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거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요는 현직 총리라 해서 전쟁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자를 예우할 가치는 없다는 점이다. 여러 서방 국가 정상들도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의 반인류적 범죄 행위를 거칠게 다루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문제를 “미국이 반대하는데 한국 대통령이 왜 나서느냐”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은 국제형사사법의 보편성보다 한미동맹 질서를 우선시하는 숭미의 프레임일 뿐이다. 동맹이니까 범죄도 감싸야한다고 말할 셈인가.

이스라엘은 ‘악의 축’이다. 자위와 국가의 생존에는 한계가 있고 최소한의 절제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것은 방어가 아니라 응징의 중독이며, 생존이 아니라 타인의 생존권까지 짓밟아도 된다는 위험한 특권의식이다. 박해의 기억을 가진 국가가 그 기억을 절제의 윤리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지배와 파괴의 면허로 바꾸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역사의 피해자가 아니라 현재의 가해자로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침묵이나 예우가 아니라 가장 단호한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지난 4월 이 대통령의 첫 이스라엘 비판 발언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경제 규모로 보나 민주주의로 보나 세계 일류의 수준을 자처하면서도 정작 국제정치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면 우리는 늘 미국의 어법을 번역하거나 모호한 중간지대로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자주적인 외교는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불편한 상대에게도 보편적 기준을 들이밀며, 동맹국이라 해서 모든 사안에 무조건 입을 닫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네타냐후의 체포 검토 역시 당연한 일이다. 로마규정의 당사국으로서 우리는 응당 ICC의 요청에 협력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이스라엘의 악행을 “너무 많이 인내했다”고 직격했다. 사실 더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에서 그치지 않는 용기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침략전쟁은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공동보조 아래 진행되는 만행이다. 그러니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 나아가 침략전쟁의 책임은 둘 다에게 지워져야 하고, ICC의 체포영장 역시 네타냐후와 함께 트럼프를 겨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훨씬 더 오래 인내해 왔고 훨씬 더 크게 분개해야할 일이 따로 있다. 한마디로 한미동맹의 ‘굴레’가 그것이다. 지난 70년 넘게 뒤집어쓰고 있는 굴레다. 군사 작전권도 갖지 못하고, 우리 땅인 DMZ 안으로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하며, 서해상에서 우리도 모르게 무단으로 훈련하면서 우리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미군을 통제하지도 못하는 상황을 우리는 언제까지 인내할 것이며 언제까지 분개해하지 않을 것인가.

5월 17일 이 대통령은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갖고 한미 공동 팩트시트를 가리켜 “한미동맹을 새로운 차원으로 업그레이드한 역사적 합의”라고 평가했다. 고충이 서린 외교적 언사임을 감안한다 해도 주변 참모들의 숭미적 언사를 대통령이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은 아쉬운 대목이 다. 숭미 참모들은 한국인 억류의 부당함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의 지적에 이스라엘의 입장을 대변해 상황의 불가피성을 호소한다. 또 그들은 베트남전 당시 주한미군의 동원 사례를 들어 지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옹호하고 있다. 굴레를 국익으로 포장하는 숭미의식이다.

팩트시트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문안에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와 “일방적인 현상 변경 반대”라고 표현되어 있다. 물론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실제로 발휘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시나리오, 즉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전력 전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주한미군은 미국이 추진하는 ‘반중국 연합’의 역내 핵심 축이 되는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은 중국의 타격 목표가 되는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이 대통령은 작년 8월 말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하는 특별기 안에서 미군의 유연화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그래놓고 팩트시트를 향해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라고 평가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다. 우리가 지난 70년 이상을 인내해 온 한미동맹의 굴레에 대한 분노를 잊는 일이기도 하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우리가 전작권을 당장 회수해야 하는 이유와 똑 같다. 그것이 우리가 비로소 독립주권국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한미동맹의 굴레에 대한 분노가 더욱 시급하다. 자국민 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힘차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진짜 대한민국과 진짜 주권국으로 우뚝 서는 길로 나아가기 위한 위대한 분노를 조용히 표출하는 것은 더욱 절실한 일이다.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1877년에 발표한 <정직한 이들의 죽음에 붙여>라는 시에 이렇게 읊었다. “슬픔도 없고 분노도 없이 사는 자, 그는 자기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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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호황이 만든 초과세수, 이렇게 쓰자... 4가지 원칙

[소셜 코리아] 새로운 재정 원칙으로 미래투자와 재분배 위한 제도적 통로를 만들자

26.05.21 16:53최종 업데이트 26.05.21 16:53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김용범 정책실장이 13일 호텔현대 바이 라한 울산에서 열린 이재명 대통령 주재 K-조선 미래비전 간담회에 참석해 있다.연합뉴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최근 페이스북에 '차원이 다른 나라: AI 시대 한국의 장기 전략'이라는 글을 올렸다. AI 인프라 공급망에서 한국이 차지한 전략적 위치, 반도체 호황이 가져올 구조적 초과세수, 그리고 그 재원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관한 문제 제기였다.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지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일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곧 마주하게 될 중요한 질문을 앞당겨 드러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외신과 국내 언론은 이를 기업의 초과이윤을 정부가 국민에게 나눠주려는 구상으로 해석했고, "김용범 발언 때문에 코스피가 급락했다"는 인과관계를 덧씌웠다. 그러나 이는 오비이락에 가깝다. 5월 11일 한국 증시가 장중 크게 흔들린 것은 사실이지만, 당시 동아시아 주요 증시 역시 중동 불확실성 확대, 차익실현 압력, 단기 과열 경계감이 겹치며 유사한 변동성을 보였다. 이후 대통령실은 블룸버그가 '초과세수'를 '초과이익'으로 해석했다며 공식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더욱 중대한 문제는, 이러한 혼선으로 인해 정작 다루어져야 할 핵심 쟁점이 충분히 부각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기업의 사적 이윤을 정부가 환수하자는 논의와, 법에 따라 거둬들인 추가세수를 국가가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시장경제의 원칙과 기업지배구조의 문제이고, 후자는 재정제도와 사회계약의 문제다. 두 문제를 섞으면 시장에는 불필요한 공포를 주고, 공론장에는 이념 논쟁만 남는다.

2026년 5월 11일 KOSPI·니케이·가권·STI 오전 9~11시 추이. 현지 시각을 한국 시각으로 전환·비교한 뒤 Yahoo Finance를 이용해서 그렸다. ⓒ우석진 제공

반도체 사이클 한복판 속 역대급 초과세수가 온다

한국경제는 지금 반도체 사이클의 한복판에 있다.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가 폭발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 D램, 낸드 수요가 동시에 살아나고 있다. 그 결과 SK하이닉스는 2025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47조 2063억원의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삼성전자의 2025년 영업이익도 43조 5300억원 수준이었다. 두 회사의 합산 영업이익만 약 90조 7000억 원이었다.

더 놀라운 것은 향후 전망이다. 노무라증권 전망을 인용한 일부 보도에서는 양사의 합산 영업이익이 2026년 432조 원, 2027년 589조 원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다. 확정치는 아니다. 실제 세수는 세액공제, 이월결손금, 연결납세, 과세표준 조정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감세 조치로 법인세 부담이 줄어든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시나리오별로 보면, 2026년 합산 영업이익을 370조 원으로 가정하고 한계세율 25%를 적용하면 추가 법인세만 약 70조 원이다. 500조원 시나리오라면 추가세수는 약 102조 원에 달한다. 성과급 증가에 따른 소득세, 소비 증가에 따른 부가가치세까지 고려하면 추가세수는 역대급 규모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당기순이익 대비 총부담세액(2017년~2024년). 국세통계연보 2017년부터 2023년까지 관측치로 회귀선을 추정한 후, 2024년 실적치와 비교했다.우석진 제공

'초과이윤'과 '초과세수'는 다른 문제다

반드시 구분해야 할 것이 있다. 하나는 기업의 초과이윤을 주주, 노동자, 협력업체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의 문제다. 다른 하나는 그 결과 국가에 들어오는 추가세수를 정부가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다. 두 문제는 연결되어 있지만 같은 문제는 아니다.

기업의 초과이윤은 기업 내부와 시장질서의 문제다. 주주는 배당과 기업가치 상승을, 노동자는 임금·성과급·고용 안정을, 협력업체는 공정한 거래 조건을 요구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은 소재·부품·장비·설계·물류·전력·연구인력이 결합된 생태계 산업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부가 기업 이윤을 임의로 가져다 나눠줄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정부의 역할은 초과이윤을 직접 몰수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경쟁질서, 하도급 거래의 투명성, 노동자의 협상력, 장기 투자 유인을 제도적으로 설계하는 데 있다.

반면, 법에 따라 정당하게 걷힌 세금은 더 이상 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공공재원이다. 그때부터 질문은 달라진다. "기업의 돈을 누가 가져갈 것인가"가 아니라, "국가가 뜻밖에 확보한 재정 여력을 어디에 쓸 것인가"가 된다.

소극적 대응은 역사적 기회를 잃는다... 1997년 교훈을 보라

바로 여기에서 현행 재정제도의 한계가 드러난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세계잉여금은 교부세와 교부금 정산 후, 30% 이상을 공적자금상환기금에 출연하고, 남은 금액의 30% 이상은 채무상환에 써야 한다. 이 과정을 거친 뒤에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사용할 수 있다. 추경 편성 요건도 전쟁·대규모 재해·경기침체 등으로 한정한다.

이 제도는 평상시에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장치이긴 하다. 고령화, 연금지출, 건강보험 비용이 빠르게 늘어날 한국에서 채무상환 원칙을 가볍게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반도체 슈퍼사이클처럼 막대한 초과세수가 발생하는 상황에서는 문제가 달라진다. 결국 거대한 초과세수가 생겨도 정부의 선택지는 좁다. 빚을 갚거나, 다음 해로 넘기거나, 추경을 통해 임시 사업을 편성하는 방식이 반복된다. AI와 반도체가 만들어낸 초과세수를 단순히 부채비율을 낮추는 데만 쓰고 끝낸다면, 한국은 역사적 기회를 회계 처리로 소진하는 셈이다.

우리는 이미 한 번 비슷한 경험을 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빠르게 회복했지만, 그 과실은 고르게 배분되지 않았다. 구조조정·비정규직 확대·부동산 가격 상승은 소득과 자산의 격차를 크게 벌렸고, 우리가 직면한 불평등 문제의 상당 부분은 그때 시작됐다.

지금 우리는 그때와 정반대 방향의 국면에 서 있다. 외환위기가 '결핍의 충격'이었다면, 반도체 슈퍼사이클은 '초과의 충격'이다. 그러나 분배의 통로가 없다는 점에서는 같은 위험을 안고 있다. 반도체 호황의 과실이 일부 기업·주주·고숙련 노동자에게만 집중되고, 초과세수마저 채무상환으로만 사라진다면 10년, 20년 뒤에 우리는 "그때 잘했어야 했다" 등의 말을 반복할지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순한 부채상환이 아니라 '미래투자'와 '소득재분배'를 위한 제도적 채널을 미리 확보하는 일이다.

네 가지 재정 원칙 제안... 미래성장과 재분배가 핵심

코스피가 8000 포인트를 돌파한 지난 15일 서울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딜러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초과세수가 생길 때마다 부채를 상환할지, 추경을 편성할지, 임시로 나눠줄지를 두고 정치적 논쟁을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일정 규모 이상의 초과세수가 발생하면 그 일부가 자동적으로 미래세대와 취약계층, 산업 전환의 피해자, 청년과 고령층 등을 위한 계정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

이제 국가재정법 개정을 논의해야 한다. 채무상환 원칙은 유지해야 한다. 다만 특정 산업 호황으로 대규모 초과세수가 발생할 때 그 일부를 중장기 국가전략 투자와 소득재분배에 배분할 수 있는 법적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네 가지 원칙을 제안한다.

첫째, 초과세수의 일정 부분은 기존처럼 채무상환에 쓴다. 재정건전성은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둘째, 일정 규모를 넘는 경기순환적·산업순환적 초과세수는 별도의 중장기 기금으로 적립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그 재원은 잠재성장률을 높이고 소득·자산 격차를 완화하는 분야에 제한적으로 사용한다. 넷째, 모든 지출은 성과평가, 일몰제, 국회 통제, 사후 공개를 전제로 한다.

'미래성장 및 사회전환 계정'과 같은 별도 장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AI 인프라, 반도체 전력망, 연구개발 인력, 직업전환 훈련, 청년 자산형성, 고령화 대응 기술, 돌봄 생산성 향상 같은 분야가 후보다. 잘 설계하면 미래의 세입 기반을 키우고, 산업구조 전환 비용을 줄이며, 청년과 고령층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이는 투자가 될 수 있다.

'초과세수 배당'이라는 표현은 신중해야 한다. 모든 국민에게 현금을 나눠주는 방식은 정치적으로 매력적이지만 최선의 재정정책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나눠주느냐, 안 나눠주느냐"가 아니라 어떤 원칙으로, 어떤 제도 안에서, 어떤 성과를 목표로 사용할 것인가다.

반도체 사이클은 새로운 사회계약을 설계할 기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중동 사태 대응 등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안에 대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공동취재사진

이번 논란은 오보에 가까운 시장 소동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소동이 던진 질문은 유효하다. 초과이윤은 기업 생태계 안에서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초과세수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전략적으로 사용되어야 한다. 그 사용처 안에는 분명한 재분배의 통로가 포함되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면, 성장의 과실이 제때 나눠지지 않으면 그 비용은 한 세대 뒤 사회 전체가 치르게 된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만든 재정 여력은 일회성 행운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계약을 설계할 기회다. 초과세수를 채무상환과 추경 재원으로만 처리하는 관성을 넘어, 미래성장과 재분배를 위한 제도적 채널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AI와 반도체 시대의 국가재정이 해야 할 일이다.

우석진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교수본인

필자 소개 : 우석진은 현재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응용데이터사이언스 교수로 있습니다. 명지대 빅데이터연구소 소장, 한국경제학회 이사, 한국재정학회 이사, 미국 메릴랜드 대학교 방문교수, 한국조세연구원 전문연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초과세수 #초과이윤 #반도체사이클 #김용범 #국가재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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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는 어떻게 '광주' 지우고 민주주의 무너뜨리는가

정승호 시민기자

jeong.seungho@hoasen.edu.vn

베트남 호아센대학교 언어심리학부 전임강사, 정치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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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불참·스벅 탱크데이·국힘 맞장구 맞물려

'극우 5·18 밈' 대형매장 통해 공적 언어 둔갑

말의 폭력이 왜 제동 받지 않았는지 파헤쳐야

"내일 스벅 들러야지"…정당이 냉소에 편승

5·18 직접 부정 안해도 조롱 통해 상처 입혀

커뮤니티→기업→정당→국회로 냉소 유통

잔혹한 기억을 광고와 농담, 수사로 희석

냉소적 이데올로기가 노리는 교활한 승리

국가 폭력의 공포, 제도와 언어에 새겨야

우원식 국회의장이 8일 국회에서 열린 5월 임시국회 제2차 본회의 산회를 선포한 뒤 의장석에서 내려가고 있다. 앞서 국민의힘은 대한민국헌법 개정안과 다른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우 의장은 이날 본회의에 대한민국헌법 개정안 등을 상정하지 않았다. 2026.5.8 연합뉴스

5월 7일,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헌법 전문에 새기고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는 개헌안이 국회 본회의에 올랐다. 원내 6개 정당 의원 181명과 무소속 의원 6명, 총 187명이 서명한 안건이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한 명도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다. 투표함은 열어보지도 못한 채 불성립 처리됐다. 이튿날 우원식 국회의장은 재표결을 시도하려 했으나,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신청 앞에서 개헌안 상정을 포기하고 절차 중단을 선언했다. 산회를 선포한 그는 의장석을 내려오며 눈물을 훔쳤다. 6·3 지방선거와 동시에 국민투표에 부쳐질 수 있었던 39년 만의 개헌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5월 18일, 5·18민주화운동 46주년 기념식이 열리던 바로 그 시각, 스타벅스코리아는 ‘탱크데이’ 이벤트를 시작했다. ‘5/18’이라는 날짜와 함께 ‘탱크데이’라는 문구가 홍보물에 올랐고, ‘책상에 탁!’이라는 카피가 붙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탱크가 광주를 짓밟던 기억과, 박종철 열사를 고문하고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둘러댄 그 언어가 텀블러 광고에 부활했다.

두 사건은 서로 다른 뉴스처럼 보인다. 하나는 국회의 정치적 교착이고, 다른 하나는 기업의 마케팅 사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사건의 밑바닥에는 같은 감각이 흐른다. 광주의 공포를 기억하지 않으려는 태도. 그 공포를 가벼운 장난으로 만들어도 괜찮다고 여기는 태도. 그리고 그런 태도에 제도적 제동을 거는 일마저 피하는 정치다.

스타벅스 사태를 두고 ‘실수냐 의도냐’라는 논쟁이 오갔다. 물론 고의가 있었다면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고의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5·18 기념일에 ‘탱크’와 ‘5/18’과 ‘책상에 탁’이 한 홍보물 안에서 만났는데도 왜 아무도 멈추지 않았는가. 왜 그 조합이 위험하다는 감각이 작동하지 않았는가. 이 사건은 한 사람의 악의보다 넓은 무감각을 드러낸다.

사람들은 몰라서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안다. 알고도 한다. ‘전땅크’가 누구를 가리키는지, ‘탁’이라는 소리가 어떤 죽음을 건드리는지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히려 그 앎이 웃음의 재료가 된다. 금기인 줄 알기 때문에 더 웃기다고 여긴다.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이 말한 냉소적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믿지 않는 척하면서 즐기고, 즐기면서 책임을 피한다.

“그냥 드립인데 왜 진지해?”라는 말은 이 냉소의 방패다. 농담이라는 형식은 발화자에게 두 개의 출구를 준다. 하나는 “진지하게 말한 게 아니다”라는 부인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이 과민반응하는 것”이라는 책임 전가다. 그러면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조롱한 사람은 가벼워지고, 기억하자는 사람은 무거워진다. 피해자의 고통을 말하는 쪽이 오히려 “유머를 모르는 사람”으로 밀려난다.

 

문제는 이 냉소가 더 이상 변방의 게시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베식 5·18 밈이 폐쇄적 하위문화 안에서만 돌고 돈다면 파급력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 언어가 전국 매장을 가진 대기업의 공식 프로모션을 통과하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하위문화의 은어가 자본의 공적 언어로 세탁된다. 탱크는 텀블러의 이름이 되고, 고문의 언어는 광고 카피가 된다. 죽음의 잔해가 마케팅의 장식으로 옮겨진다.

이번 사태가 실무자의 돌발 행동인지, 조직문화 안에서 ‘말해도 되는 것’의 경계가 이미 무너진 결과인지는 조사로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질문은 피할 수 없다. 왜 이 문구는 기획되고, 승인되고, 공개될 때까지 아무 제동도 받지 않았는가. 어떤 조직에서는 탱크와 고문의 언어가 위험신호가 아니라 마케팅 소재로 보이는가. 말의 폭력은 물리적 폭력이 끝난 뒤에도 살아남는다. 피해자의 기억은 시장의 진열대 위에 다시 눕혀질 수 있다.

그런데 이 냉소적 감각은 기업에서 멈추지 않았다. 스타벅스 사과문이 나온 직후, 국민의힘 충북도당은 SNS에 “내일 스타벅스에 들렀다가 출근해야지”라는 글을 올렸다. 김선민 국민의힘 거제시장 후보 측 계정은 “가서 샌드위치를 먹겠다”는 댓글을 달았다. 불매운동이 벌어지는 한복판에서 일부러 스타벅스 방문을 과시하는 듯한 문장이었다. 논란이 커지자 “의도한 게 아니다”, “담당자가 한 것이다”, “5·18이나 박종철 열사 사건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는 해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그 해명은 문제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공당의 책임은 의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말은 행위다. 특히 공식 계정의 말은 정당이 시민에게 보내는 공적 행위다. 문제는 누가 정말 스타벅스에 갔는지가 아니다. 문제는 왜 그 순간, 그 문장을 공당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다고 여겼는가이다.

 

국민의힘 충북도당 스레드 갈무리

“내일 스타벅스에 들렀다가 출근해야지”라는 문장은 짧다. 그러나 정당의 언어에서 짧음은 결코 무죄가 아니다. 이 문장은 커피 취향에 대한 감상이 아니다. 5·18 기념일의 ‘탱크데이’가 왜 문제인지 묻는 시민들 앞에서, 공당의 계정이 내놓은 정치적 눈짓이다. 그것은 논증하지 않는다. 반박하지도 않는다. 다만 신호를 보낸다. 우리는 그 분노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정치는 말로 한다. 그래서 정치인의 말, 정당의 말은 가볍게 흘릴 수 없다. 아렌트가 두려워한 것도 거대한 악의 음모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하는 말이 어떤 세계를 부수는지 생각하지 않는 무능, 공적 현실을 사적 농담의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생각 없음이었다. 5·18을 직접 부정하지 않아도, 5·18을 기억하려는 시민들의 고통을 조롱의 배경으로 삼는 순간 정치는 공통 세계를 갉아먹는다.

공당의 SNS는 낙서장이 아니다. 그것은 정당이 시민에게 내미는 가장 가벼운 얼굴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에서 가장 가벼운 얼굴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공식 논평보다 더 솔직하게, 그 정당이 무엇을 우습게 여기고 무엇 앞에서 멈추지 않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진보당 김재연 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가 18일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열린 제46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고 있다. 2026.5.18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연합뉴스

국민의힘 지도부가 5·18 기념식에서 보인 태도도 이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다. 장동혁 대표는 기념식에 참석했지만, 참석을 앞두고 이미 SNS에 민주당이 5·18을 권력 확장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려두었다. 기념식 직후에도 대통령의 기념사를 겨냥한 비판을 이어갔다. 몸은 기념식장에 있었지만, 언어는 광주를 다시 정쟁의 무대로 되돌리고 있었다. 송언석 원내대표는 기념식 불참과 관련해 “더러워서 안 간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보도로 논란에 휩싸였고, 국민의힘은 “서러워서”였다고 반박했다. 표현을 둘러싼 공방은 남아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핵심은 분명하다.

광주는 그들에게 함께 감당해야 할 헌정의 기억이 아니라, 불편하거나 억울한 정치 현장으로 이해되고 있었다.

기념식 참석은 면죄부가 아니다. 광주에 몸을 두었다고 해서 광주를 존중한 것이 자동으로 증명되지는 않는다. 5·18을 기리는 자리에 서면서도 곧장 그 기억을 “상대 당의 도구”로 환원한다면, 추모는 의례가 아니라 알리바이가 된다. 광주를 헌법에는 새기지 않으면서 기념식에는 참석하고, 광주의 항의를 들으면서도 그것을 민주주의의 고통이 아니라 진영의 소음으로 여기는 정치. 바로 그 틈에서 냉소는 자란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정당이 불과 며칠 전 5·18 정신의 헌법 수록을 표결 불참으로 무산시킨 바로 그 정당이라는 사실이다. 제도적 차원에서 5·18의 기억을 헌법에 새기는 일을 거부한 정치세력이, 문화적 차원에서 5·18을 조롱하는 밈에 동조하는 듯한 신호를 보냈다. 그리고 기념식의 공간에서도 그 기억을 정쟁의 언어로 되돌렸다. 이것을 우연의 일치로만 보기 어렵다. 커뮤니티에서 기업으로, 기업에서 정당으로, 정당에서 국회 본회의장으로, 다시 기념식장으로 이어지는 냉소의 경로가 보인다.

보수정당은 원래 국가를 소중히 여긴다고 말한다. 헌법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법질서를 지키자고 말한다. 그렇다면 국가가 시민에게 총을 겨눈 사건 앞에서는 누구보다 먼저 멈춰 서야 한다. 5·18은 보수가 회피할 기억이 아니라, 국가권력이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헌정의 교과서여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헌법 전문에 5·18을 새기는 일에는 불참했고, 소속 도당과 후보 측 계정은 스타벅스 논란 직후 조롱으로 읽힐 수 있는 말을 남겼으며, 지도부는 기념식의 자리에서도 광주를 정쟁의 언어로 밀어 넣었다. 이것은 호남 민심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헌정 보수의 자기배반이다. 국가와 헌법을 말하는 정당이 국가폭력의 기억 앞에서 멈추지 못한다면, 그 보수는 무엇을 보존하겠다는 것인가.

미국의 정치이론가 주디스 슈클라는 자유주의의 출발점을 자유, 평등, 정의 같은 높은 이상에서 찾지 않았다. 슈클라는 “잔혹함을 최고의 악으로 놓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하며 ‘공포의 자유주의’를 언급했는데, 국가가 시민에게 가할 수 있는 물리적·정신적 공포를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데 자유주의 정치의 가장 낮고 단단한 토대가 있다는 생각이다.

이 렌즈로 보면, 5·18의 본질은 “누가 이념적으로 옳았는가”가 아니다. “국가가 시민을 탱크로 짓밟을 권리를 가지는가”라는, 자유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질문이다. 대한민국의 현행 헌법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그 대답은 아직 미완이다. 현행 헌법은 5·18을 지나 6월항쟁으로 이어진 민주주의의 피 묻은 경로를 전문에 온전히 적지 못했다. 이번 개헌안은 그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였다.

5·18 정신을 헌법에 명시적으로 수록하려 한 개헌안은 국가폭력의 기억을 헌정 질서 안에 묶어두는 작업이다. 비상계엄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강화하려 한 것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12·3 내란의 기억이 채 마르지 않은 시점에서, 이 개헌안은 군부독재의 불법 계엄과 헌정 유린을 다시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방어벽이었다.

국민의힘은 이 방어벽을 세우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뒤 5·18 기념식에 참석해 “5·18 정신”을 말했다. 이것은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넘어선다. 잔혹함의 기억을 제도화하는 것은 거부하면서, 그 기억을 수사적으로 전유하는 일이다. 광주를 헌법에는 새기지 않으면서 기념사에는 호명하는 정치. 광주에 참석하면서도 광주를 정쟁의 도구로 되돌리는 정치. 바로 그 틈에서 냉소는 자란다.

냉소적 이데올로기는 가해의 방법이고, 공포의 삭제는 그 가해가 도달하는 목적지다. “알면서 즐기는” 사람들은 국가폭력의 공포를 유희로 전환한다. 그렇게 해서 그 공포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민주주의적 합의의 토대를 깎아낸다. 탱크와 고문을 밈으로 소비하는 감각은 피해자가 느낀 공포를 공적 기억에서 용해시키고, 가해의 언어를 장난감으로 만든다. 잔혹함의 기억이 사라지면, 잔혹함을 경계하는 감각도 함께 사라진다. 슈클라가 두려워한 것은 바로 그 감각의 마비였다.

스타벅스의 ‘탱크데이’는 공포의 기억을 밈으로 용해시키는 것이고, 개헌 무산은 공포의 기억을 헌법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기념식 태도는 그 배제와 용해가 의례의 공간에서도 반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방법은 다르지만 도달하는 곳은 같다. 잔혹함을 경계하는 감각이 제도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동시에 해체되는 곳이다.

 

스타벅스 텀블러와 머그컵을 망치로 망가뜨린 모습 소셜미디어 갈무리 연합뉴스

민주주의는 아름다운 이상으로만 세워지지 않는다. 잔혹함에 대한 공포를 잊지 않는 것으로 유지된다. 텀블러를 부수는 분노는 정당하다. 불매운동도 의미 있다. 그러나 분노와 불매를 넘어, 이 냉소의 구조 자체를 해부하고 이름 붙이는 작업이 필요하다.

“진지충”이라는 낙인, “선거용 개헌”이라는 프레임, “그냥 실수”라는 해명, “권력 확장의 도구”라는 역공은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같은 기능을 수행한다. 잔혹함의 기억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것. 냉소적 이데올로기의 가장 교활한 승리는, 바로 이 사소화를 통해 비판 자체를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 “그냥 드립인데 왜 진지해?”라는 말에 웃어넘기는 순간, 우리는 그 냉소에 가장 값싼 승리를 헌납한다.

5월의 광주가 묻는 질문은 46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국가는 시민을 짓밟을 권리를 가지는가. 그 질문을 헌법에 새기는 일을 거부하고, 그 질문의 무게를 텀블러 광고와 SNS 농담과 기념식장의 정쟁 언어로 희석시키는 일이 같은 시기에 벌어지는 나라에서, 우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분명하다. 냉소에 맞서는 것은 비장한 표정을 짓는 일이 아니다. 공포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을 제도와 언어와 문화 안에 단단히 박아 넣는 것이다.

슈클라가 옳다면, 민주주의는 잔혹함을 이긴 체제가 아니라 잔혹함을 잊지 않으려는 체제다. 그러므로 5·18을 농담으로 만드는 냉소 앞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광주의 명예에 그치지 않는다. 국가가 다시 시민을 적으로 부르지 못하게 하는 감각, 그 감각을 헌법과 제도와 언어 속에 묶어두는 일이다. 그 기억이 사소해지는 순간, 민주주의는 먼저 웃음 속에서 무너진다.

정승호 시민기자 jeong.seungho@hoasen.edu.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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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고 반갑다. 어쨌든, 무조건 반갑다. 내고향여자축구단

내고향 2:1 역전승으로 결승진출, 23일 日 도쿄 베르디벨레자와 결승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5.21 03:41
  •  
  •  댓글 0
 
20일 저녁 수원종합경기장에서 진행된 아시아축구연맹(AFC) 주최 '여자 챔피언스리그'(AFC Women's Champions League(AWCL) Final 2026' 준결승 경기에서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수원FC위민'을 2:1로 이겨 23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멜버른시티 FC(호주)를 3:1로 꺾은 도쿄 베르디벨레자(일본). 준결승 경기에서 승리한 '내고향' 선수들이 코칭스태프들에게 달려가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20일 저녁 수원종합경기장에서 진행된 아시아축구연맹(AFC) 주최 '여자 챔피언스리그'(AFC Women's Champions League(AWCL) Final 2026' 준결승 경기에서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수원FC위민'을 2:1로 이겨 23일 오후 2시 같은 장소에서 열리는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 상대는 멜버른시티 FC(호주)를 3:1로 꺾은 도쿄 베르디벨레자(일본). 준결승 경기에서 승리한 '내고향' 선수들이 코칭스태프들에게 달려가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아시아 최강팀을 가리는 여자클럽 대항전인 아시아축구연맹(AFC) 주최 '여자 챔피언스리그'(AFC Women's Champions League(AWCL) Final 2026' 준결승이 열리는 20일 저녁 수원종합경기장.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도무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쉴새없이 하루 종일 내리더니 경기가 시작되는 저녁 7시무렵엔 아예 한여름 폭우를 방불케한다.

악천후속에 경기장에 입장한 5천 700여 명의 관중은 우비속으로 스며드는 빗물과 한기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기대와 설렘 가득한 표정들이다.

내고향 센터 서클 배너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내고향 센터 서클 배너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경기 시작 전 자원봉사자들이 대형 원형 천(센터 서클 배너)의 끝을 잡고 입장한 뒤 운동장 가운데서 대회 공식 로고와 '내고향여자축구단', '수원FC위민'의 엠블럼을 펼치는 퍼포먼스가 시작되고, 곧이어 흰색 유니폼을 입은 내고향선수단과 청홍색 유니폼의 수원FC위민팀 선수들이 입장하자 서서히 응원단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기는 '내고향'이 잡았으나 전반전 경기흐름은 수원이 끌고 갔다. 전반 5분 김경영의 슛이 골망을 흔들었지만 오프사이드 판정으로 무효가 됐다.

'수원'은 전반 내내 윤수정과 하루히 스즈키, 밀레니냐, 지소연이 여러 차례 기회를 만들어냈지만 골대를 맞고 튕겨나오거나 내고향 골기퍼 박주경의 선방에 막혔다.

수원 서포터즈의 응원 모습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수원 서포터즈의 응원 모습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수원 골문 뒤편 응원석에 자리잡고 응원깃발과 응원가를 부르는 수원 서포터즈는 홈팀답게 일사분란한 응원실력을 뽐냈고, 본부석 맞은 편 중앙 응원석에 두루 자리한 '공동응원단'은 '내고향'과 '수원', '우리가 응원한다'를 번갈아 연호했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차분하게 느껴졌다. 

대회 주최측에서 단일기(한반도기) 등 반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사전 공지가 있어서인지 '내고향' 엠블럼이 그려진 손깃발과 소형 현수막이 보이는 정도였다.

전반전이 끝난 뒤 만난 이조영 박사는 "오늘 경기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선수들이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많이 아쉽다"고 말했다.

2018년 평양에서 열린 '제4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에 후원사 직원으로 참가한 일이 계기가 되어 남북 스포츠교류와 평화에 관심을 쏟고 있는 이 박사는 은행 프로축구단에서 퇴직한 뒤 북한학을 전공한 전문가답게 경기 분석도 날카롭다.

"그라운드가 비에 젖어서 공도 제대로 안나가고 선수들의 체력 소모도 많은데다가, '내고향'은 수중전이 조금 낯선 것 같다. 수중전에서는 공이 바운드도 잘 안되고 속도도 많이 떨어지는데 그 속도감을 제대로 못 찾아서 전반전에 게임이 잘 안풀린 것 같다. 적응하면 후반전에는 좀 많이 나아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장엔 5,700여 명의 응원단이 모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날 경기장엔 5,700여 명의 응원단이 모였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탓에 더 이상 경기 관람을 하지 못하고 귀가하는 노약자도 생겼다.

국가보안법 피해자인 김호 님의 부친인 김권옥 선생은 "오늘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두팀이 저렇게 열심히 뛰는 걸 보니 참 뿌듯하고 앞으로 이런 기회를 더 만들어서 남북이 서로 으르렁대지 않고 왕래하며 통일하는 길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 어린 선수들이 희망의 등불이 돼서 남과 북, 북과 남이 힘찬 목소리로 통일을 외치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왼쪽부터 김영식, 양희철, 안학섭, 김영승  등 장기수 선생들이 경기관람과 응원을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왼쪽부터 김영식, 양희철, 안학섭, 김영승  등 장기수 선생들이 경기관람과 응원을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97살의 비전향장기수 안학섭 선생은 경기장을 떠나면서 "8년만에 왔다죠. 참 반갑습니다. 그런데 미제 점령하에서 우리가 이런 경기를 하지 말고 통일된 조건하에서 자유롭게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런 아쉬움이 있습니다"라는 비감을 남겼다.

후반전 휘슬이 울리고 4분 뒤 전반전의 기세를 이어 '수원'의 하루히 스즈키가 튀어 오른 공을 '내고향' 페널티박스 안으로 뛰어들며 선제골을 터뜨렸다.

1:0으로 뒤진 '내고향'은 곧 바로 반격에 나섰다. 6분뒤 세트피스 기회를 놓치지 않은 최금옥이 동점골을 뽑고, 후반 22분 수원의 골문 앞 혼전 상황에서 김경영이 높이 뜬 공을 헤더로 처리해 역전골을 만들었다.

수원은 후반 33분 페널티킥 기회를 잡았으나 지소연의 슈팅이 골대를 벗어나 추격의 기회를 놓쳤고, 결국 경기는 '내고향'의 2:1 승리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뒤 '내고향'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기뻐하며 코칭스태프와 기념촬영을 했으며, 패배가 아쉬운 수원 선수들은 망연자실하며 눈물을 흘렸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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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와 함께 한 남북체육교류협회 관계자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와 함께 한 남북체육교류협회 관계자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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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이 터질 때마다 공동응원단에서 '내고향'을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깃발은 더 힘차게 휘날렸다. 수원 응원단도 마찬가지다. 

서로가 서로에게 뜨거운 이곳에 '관제응원' 따위는 없다. 적대의식을 감춘, 시대착오적인 낡은 '관제적 상상력'이 이 거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고 할까.   

운동장에서 공을 굴리며 싸웠으니 오늘 누군가는 웃고 또 누군가는 울 수 있다. 우리를 대신한 일이라는 생각이 미치면 가슴 아플 뿐. 젊은 그들은 다시 털고 일어나 내일을 위해 연습하고 실력을 높이면 될 일이다.

경기가 끝난 뒤 '내고향' 선수들이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AFC]
경기가 끝난 뒤 '내고향' 선수들이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AFC]

지난 2003년부터 남북체육교류, 특히 남북 유소년축구와 여자축구에 애정을 다해 온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은 이날 경기를 본 뒤 SNS에 "쏟아지는 빗속에서 치열하게 맞붙은 양 팀 선수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는 소감을 적었다. 

"승리를 거둔 내고향여자축구단의 저력에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비록 승패는 갈렸지만 끝까지 비를 뚫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명승부를 만들어낸 우리 수원FC 위민 선수들의 투혼에도 가슴 벅찬 응원을 보낸다"고 모두를 응원했다.

남북체육교류협회 후원회장인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는 "수원에서 열리는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챔피언스리그(AWCL) 결승 경기에 북측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와서 경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남북체육교류협회가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를 원산에서 이어가겠다는 계획을 이제 더 자신감을 갖고 추진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기대를 표명했다.

"내고향여자축구단이 수원에 온 것도 남북 정치상황과 상관없이 국제대회의 규칙에 맞춰서 온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리스포츠컵도 북과 남이 공유하는 국제대회인만큼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란다"는 것.

최 전지사는 "처음 시작할 때는 약간의 긴장감이 있는데 끝날 때는, 선수들은 금방 가까워지더라. 특히 우리가 했던 유소년들은 더 빨리 가까워지고 금방 정이 들더라"라고 하면서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만 접근하지 말고 스포츠, 문화 등 비정치적인 분야부터 계속 교류를 늘려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준결승 승리로 결승 진출을 확정지은 내고향여자축구단은 오는 23일 오후 2시 멜버른시티 FC(호주)를3:1로 꺾은 도쿄 베르디벨레자(일본)와 최종 결승 경기를 갖는다. 24일 귀국할 예정이다.

시민단체 공동응원단으로 참가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경기장 바깥 어린이야구장 앞 대기장소에서 입장권을 수령하기 위해 빗속에 길게 줄을 서 기다리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다. [사진-통일뉴스]
시민단체 공동응원단으로 참가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은 경기장 바깥 어린이야구장 앞 대기장소에서 입장권을 수령하기 위해 빗속에 길게 줄을 서 기다리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다. [사진-통일뉴스]
남북연합 응원깃발을 준비해 온 응원단 [사진-통일뉴스]
남북연합 응원깃발을 준비해 온 응원단 [사진-통일뉴스]
평안남도중앙도민회가 준비한 여성독립투사 현수막 [사진-통일뉴스]
평안남도중앙도민회가 준비한 여성독립투사 현수막 [사진-통일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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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 노동자 상담 '과부하', 정규직화 '실종'…서울 노동행정 현 주소

['약자 동행' 서울의 그늘] ③ 노동정책

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6.05.21. 09:05:04

한때 서울시는 '노동 존중' 행정의 앞줄에 서 있었다. 2014년 서울시는 전국 최초로 지역 노동권익센터를 설립해 민관 협력을 통한 취약노동자 상담·지원 모델을 만들었다. 2018년에는 서울시교육청이 전국 교육청 중 네 번째로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조례를 만들었고, 꾸준히 관련 예산이 편성됐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도 문재인 정부 집권 전인 2012년 서울시가 먼저 시작했다.

공공부문이 취약 노동자 상담·지원체계 마련, 예비 노동자에 대한 노동교육, 비정규직 문제에 있어 모범 사용자 역할 수행 등을 꾀한 대표적 지역이 서울이었다.

지난 6년 세 정책이 모두 흔들렸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효율화를 명분으로 폐지된 권역별 노동권익센터의 업무까지 맡으며 과부하에 시달리고 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예산은 서울시의회에서 한 차례 전액 삭감됐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멈춰섰다. 이를 정리했다.

줄어든 청소년노동교육·노동권익센터 예산…멈춰선 정규직화

노동권익센터,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예산 삭감은 2022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나고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희 의석 다수를 차지한 2023년 예산 심사 시기에 집중됐다.

그해 본예산안 심사에서 서울노동권익센터 예산은 직전 해 36억 8200만 원에서 28억 2755만 원으로 8억 원가량 삭감됐다. 이로 인해 직원들의 임금이 6개월가량 체불되는 일까지 발생했다.

다음 해 서울노동권익센터 예산은 52억 9547만 원으로 올랐다. 그러나 이는 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와 4개 권역 노동권익센터를 점진적으로 폐지하고, 업무를 서울노동권익센터로 몰아넣는 과정에서 일어난 예산 증액이었다.

노동센터 전체 예산과 비교하면 이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2021년 서울노동권익센터, 감정노동센터, 권역별 노동센터 등 6개 센터의 예산 총액은 86억 7325만 원이었다. 나머지 5개 센터가 모두 폐지된 가운데, 올해 서울노동권익센터 예산은 54억 9830만 원으로 책정됐다.

▲2021~2026년 서울노동권익센터와 해당 센터에 통폐합된 센터 운영 예산 그래프. 백만 단위 이하는 반올림. ⓒ프레시안(최용락)

2023년 본예산안 심사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올린 청소년노동인권 예산 3억 2600만 원도 전액 삭감됐다. 2차 추경예산안 심사에서 서울시교육청은 절반 가까이 줄인 1억 7276만 원 예산 편성을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전액 삭감됐다. 당시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편향된 교육'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예비 노동자에 대한 노동인권교육은 꼭 필요하다는 여론에 힘입어 다음 해인 2024년 서울시교육청의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예산은 2억 6625만 원이 편성됐다. 그러나 2025년과 2026년에는 각각 1억 5220만 원, 1억 7184만 원으로 예산이 줄었다.

▲ 서울시교육청 '2026학년도 학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기본계획' 중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신청학급 대비 시행학급.

▲2021~2026년서울시교육청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예산. 백만 단위 이하는 반올림. ⓒ프레시안(최용락)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아예 멈춰 섰다. 문재인 정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에 따라 2020년 12월 정규직화 대상에 포함된 서울신용보증재단·서울교통공사·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 콜센터 민간위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6년째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급이 수요 못 따라가는데 사업 축소…정규직화? 오히려 구조조정 중

현장에서는 세 사업의 확대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다. 박지수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서울노동권익센터분회장은 "권역별 노동센터와 감정노동센터를 서울노동권익센터에 통합한 뒤 전체적으로 볼 때 예산과 인원은 줄었지만, 최대한 사업 수는 유지하고 있다"며 취약 노동자 지원·상담 체계의 과부하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감정노동센터에서 13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3명인 팀 하나가 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여름쯤 예산이 소진돼 하반기에는 심리상담을 할 수가 없었다"며 "법률상담도 중요 업무인데, 인건비가 부족해 노무사가 한 명뿐이다. 위촉 노무사를 두고 있지만, 상담 데이터를 쌓고 추가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부연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도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다. 서울시교육청의 '2026학년도 학교 노동인권교육 활성화 기본계획'을 보면, '학교로 찾아가는 노동인권 및 진로탐색 교실'을 신청한 학급은 2021년 271학급에서 2025년 1358학급으로 5배가량 늘었지만, 시행 학급은 130학급에서 270학급으로 2배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올해 신청 대비 시행률은 19.9%다.

박내현 서울청소년노동인권교육넷 활동가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예산이 삭감된 뒤 매년 교육을 나가던 학교에서 '신청했는데 예산을 못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며 "무상으로 교육을 하기도 하고, 학교가 자체적으로 마련한 교통비 정도를 받고 가기도 하는데 모든 강사가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 서울시 콜센터 민간위탁 비정규직이 속한 희망연대노조의 박경수 조직국장은 "(오 시장이) 후보 시절에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한다고 했는데, 당선된 뒤 단 한 명의 정규직 전환도 없었다"며 "오히려 위수탁 재계약 때마다 인원을 줄이며 구조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노동민간위탁분회가2023년 6월 서울노동권익센터 임금체불 문제 해결을 위한 서울시의회에 추경 예산 편성을 촉구하는 필리버스터 문화제를 개최했다. ⓒ민주노총

취약 노동자 지원·공공부문 정규직화…지방정부 따라 흔들리면 안 돼

일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처한 취약 노동자에 대한 상담·지원, 예비 노동자에 대한 노동교육, 비정규직에 대한 모범 사용자 역할은 취약 노동자 처우 개선을 꾀한다면, 공공부문이 지속적으로 해야 할 일이다. 지방정부가 바뀌는 데 따라 노동정책이 흔들리는 일을 막기 위한 방안은 없을까.

박지수 분회장은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일하는 시민에게 서울시를 대표해 법률상담, 심리상담 등 정책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며 "서울시가 이를 직접 내재화해 수행하기에는 현실적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서울시가 하기 어려운 필수정책을 수행하는 기관이라면, 재단이나 시 출자·출연기관으로 만들어 독립성과 자율성, 안정성을 보장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박내현 활동가는 "청소년노동인권교육이 교과서에 들어가고 교사들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노동교육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갑작스럽게 교육 체제를 바꾸면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법제화하되, 전문성을 쌓은 외부 강사와 협력하는 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박재범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를 대표해 시민에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콜센터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남겨두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이미 정규직 전환 대상으로 선정된 만큼 서울시 콜센터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완료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시설관리, 출자·출연기관 등 상시지속업무를 함에도 비정규직 고용이 이뤄지는 영역이 여전히 많을 것"이라며 "사각지대 해소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21년 7월 1일 'SH공사 콜센터, 정규직 전환 노사전협의회 구성 촉구’ 기자회견. ⓒ연합뉴스

한편 서울시는 노동권익센터 축소에 대해 "예산 감소는 서울노동권익센터 중심의 기능 재편 과정에서 중복 관리 인력을 조정하고, 자치구에 대한 시비 보조금 지원을 단계적으로 낮춘 데 따른 것"이라며 "센터 통합 이후에도 인력 구조를 재편하고, 위촉노무사 운영을 확대하는 등 상담업무를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청소년노동인권교육 예산 감소에 대해서는 "서울교육청과 시의회 소관이라 서울시가 답할 내용이 아니다"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 측은 "전체적으로 긴축재정에 들어가며 예산이 줄어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예산 편성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보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이 줄어든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에 대해 서울시는 "각 기관의 독립적인 인사권과 조직 운영에 관한 사항으로, 기관별로 노사 간 합의에 의해 자율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안"이라며 "시는 2020년 12월 '투자출연기관 민간위탁 콜센터 노동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각 기관이 '노사전협의회'를 구성하여 정규직 전환을 위한 협의 절차를 진행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최용락 기자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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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의 SNS는 칼...수술 도구로만 쓰자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5/21 09:33
  • 수정일
    2026/05/21 09:3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1%를 위한 제1보] 바벨탑이 사라지니 빛나는 정상들의 'X 사용법'

26.05.21 06:52최종 업데이트 26.05.21 06:52

2025년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인천 계양구 사저에서 군 통수권 이양 보고를 받기 위해 김명수 합참의장과의 전화 통화를 준비하고 있다.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기 생각과 의견을 과감하게 드러내는 스타일이다. 혹자는 그만큼 전문가의 필터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검수를 거치다가, SNS 특유의 생동감이 떨어질 수 있다. 대통령실과 외교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게 짚는다면, 이 대통령의 성향이 반영된 SNS 메시지를 '국익의 문법으로 만드는 것, 더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 정상들이 메시지 전달을 위해 선호하는 SNS는 엑스(X, 구 트위터)다. 현재 X는 자동 번역 기능을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고 지원하고 있다. 어떤 언어로 게시물을 올리든 그 게시물이 각각의 나라에서 그 나라 언어로 자동으로 번역된다. 외국인들도 함께 주목하는 훨씬 커다란 무대가 어느 날 생겨났다.

한국 대통령으로서 이 무대는 기회이자 위험이다. 공직자, 특히 대통령의 메시지는 나라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SNS 문구는 외교부 브리핑보다 먼저 번역되고, 대통령실 공식 성명보다 먼저 퍼지는 '외교 메시지'다. 해외 여론을 움직이는 '실시간 외교 도구'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SNS 메시지는 '오래가는 말', '책임지는 말'을 목표로 해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익 중심의 실용 외교'를 표명했다. 글로벌 사우스(주로 남반구에 위치한 개발도상국)와 글로벌 노스(주로 북반구에 위치한 선진국)를 잇는 다리 역할, 디지털 전환, 기후 대응, 공급망 갈등 중재 등을 한국 외교의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국제 사회는 한국이 실제로 행하는지 보고 있다. 전통적인 한미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 러시아 등 역내 다른 강대국과는 얼마나 유연하게 관계 맺는지, 글로벌 사우스에는 어떤 협력 모델을 제시할지 주시하고 있다. SNS에서는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정상도 자신을 브랜딩해야 한다. 오늘은 한국 대통령이 참고할 만한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프랑스, 조롱하지 않고 초청하다

작년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자국의 이공계 대학과 연구 기관에 '예산을 삭감하라며' 압박하고 있었다. 북미 연구자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X에 전 세계 연구자들을 향해 '유럽을 대신 선택하라'(Choose Europe for Science)는 메시지를 냈다. "프랑스에서는 연구가 우선순위이고, 혁신은 문화이며, 과학은 무한한 지평"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실상 북미의 연구자들에게 보낸 초대장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미국을 조롱하지 않았다. '미국은 희망이 없으니 와라'가 아니라 '프랑스와 유럽은 열려 있다'라고 말했다. 상대국의 혼란을 공격하지 않으면서, 자기 나라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소개했다.

또 마크롱 대통령은 그가 장담한 대로 실천했다. 메시지를 내고 16일 뒤인 2025년 5월 5일 그는 소르본에서 'Choose Europe for Science'를 공식 출범시켰다. 엘리제궁은 이 프로그램의 목표가 '전 세계 연구자와 공공, 민간 혁신가들이 유럽과 프랑스를 연구지로 삼는 것'이라 전했다. 같은 날 유럽연합(EU)과 프랑스는 해외 연구자 유치를 위한 약 5억 유로(8750억 원) 규모의 인센티브를 발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차원에서 1억 유로(1750억 원) 지원을 약속했다.

체코, 작은 나라가 연합의 틀을 만들다

2025년 9월 23일(현지시간) 이재명 대통령과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이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외교의 틀을 빠르게 제시하기 위해 SNS를 사용한 정상이 있다. 2025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유럽의 공동 대응 체제 구성을 촉구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이다. 파벨 대통령은 2025년 3월 X에서 우크라이나의 정의로운 평화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국가들의 광범위한) 연합'(Coalition of the Willing)을 고려할 때가 왔다고 밝혔다.

이 메시지는 유럽에 큰 영향을 주었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 제안에 호응해 연합을 결성했다. 2025년 3월 15일 EU,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언급했고, 우크라이나는 지원하고 러시아를 압박하도록 분명히 다짐했다. 2025년 11월, 프랑스, 영국, 독일이 공동 주재한 회의에는 우크라이나, 미국 국무장관, 35개국 대표,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참여했고, 우크라이나 주권, 유엔헌장 원칙, 장기 안보 보장을 강조하는 공동성명이 발표되었다.

작은 나라의 정상도 SNS 한 문장으로 외교적 프레임을 선점할 수 있다. 파벨 대통령은 막연한 바람만 제시하지 않고 'Coalition of the Willing'이라는 분명한 방향을 정했다.

멕시코, 미국의 압박에 차분히 대응하다

북미에서 참고할 만한 최근 사례도 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이 한 일이다. 2025년 2월, 트럼프 행정부가 멕시코산 제품에 25% 관세를 압박했을 때, 셰인바움 대통령은 감정적으로 맞받아치지 않았다. 대신 클라우디아 대통령은 X를 통해 트럼프와의 전화 통화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미국의 펜타닐 차단 요구에 대해서, 멕시코는 마약, 특히 펜타닐 유입을 막기 위해 북부 국경에 방위군 1만 명을 즉시 배치하고, 미국은 멕시코로 들어오는 고성능 무기 밀매를 막기 위해 노력하며, 대신 관세는 한 달 유예된다는 내용이었다.

셰인바움의 메시지는 다음 세 가지를 담았다. 첫째, 멕시코는 주권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통제가 아닌, 멕시코 스스로 관세 조건을 통제했다. 둘째, 미국에는 요구 사항을 받아들였다는, '국경 통제'가 잘 진행되고 있다고 전달함으로 미국의 체면을 세워줬다. 셋째, 자국 시장에 이 상황이 잘 통제되고, 관리되고 있다는 신호를 줬다. 로이터 통신은 셰인바움이 신중하고 절제된 톤으로 X에 메시지를 남긴 걸 칭찬했다. 이어서 셰인바움이 '미국의 일방적인 압박에 대한 멕시코의 차분한 대응(Cool Head)을 잘 보여줬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인도, 메시지 반복으로 브랜드 만들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글로벌 사우스 외교'를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다. 2025년 7월, 가나, 트리니다드토바고, 아르헨티나, 브라질, 나미비아 5개국 순방을 했다. 인도 외교부는 이 순방을 아프리카·중남미·카리브해 국가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일정으로 설명했다.

모디 총리의 SNS 메시지에는 일종의 형식이 있다. 방문 전에는 방문을 기대하도록 말하고, 도착 후에는 역사적 유대와 파트너십을 말하고, 회담 뒤에는 구체 협력 분야를 강조한다. '글로벌 사우스, 공동 성장, 개발 파트너십' 같은 중요한 표현은 반복해서 말한다.

이 반복이 중요한데, 반복을 통해 의미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를 보는 사람들도 인도의 '글로벌 사우스 외교'의 확고한 의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글로벌 사우스 외교를 지향하는 이 대통령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브라질, 기후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다

2025년 7월 8일(현지시간) 브라질 브라질리아의 알보라다 궁전에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오른쪽)으로부터 남십자성 국가 훈장을 수여받은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AFP 연합뉴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2025년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를 앞두고 X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COP30을 '진실의 순간'으로 표현하며, 아마존 브라질에서 열리는 벨렝 정상회의를 세계 기후 정치의 '핵'으로 포장했다. 특히 주목받은 메시지는 영구 열대림 기금(Tropical Forests Forever Fund, TFFF) 조성이다. 룰라 대통령은 X에서 이 기금이 브라질 주도의 프로젝트이며, 열대림을 보호, 보존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 기금은 "기부가 아니라 투자"라고 강조했다.

브라질 사례에서 주목할 점은 '단어 선택'이다. 기후 외교에서 글로벌 사우스가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선진국의 시혜"다. 기후 보전을 위해 모두를 위한 기금임에도, 마치 '불쌍한 나라에 주는 돈'이라 생각하는 것이 싫어서다. 그걸 파악한 룰라 대통령이 기금을 "숲을 지키는 국가에 대한 투자"로 다시 정의한 것이다.

AP통신은 TFFF 조성에 대해 보도하면서 그가 지금까지 사람들이 생각했던 '국제적 기부'에 만족하지 않고 (전 지구를 위해) 숲을 보전하는 국가에 (마땅한) 보상을 하는 모델, 그걸 목표로 한다고 전했다. 이런 세심한 언어 사용은 많은 호응을 끌어냈고, 콜롬비아, 가나, 콩고민주공화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이 TFFF 참여를 선언했다.

대통령의 SNS, 줄이지 말고 전략적으로

어떤 사람은 이재명 대통령이 SNS를 줄일 필요가 있다며 비꼰다. 그러나 위험이 있다고 지금 같은 기회를 포기할 수 없다. 자동 번역 시대, 한국 대통령이 한국어로 쓴 게시물을 전 세계가 읽는 건 한국 외교에 드문 기회다. 한국어도, 한국 대통령의 문장도, 이제 세계 정치의 타임라인에 올라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국제 사회는 한국이 국제적 문제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관심 있게 보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공동 성장, 국제 공급망 안정, 기후·에너지 전환, 인공지능(AI) 수용, 다국적 해양 안보, 초국가 범죄 공동 대응, 한반도 평화 등이다. 위에서 언급한 각 나라가 처한 상황들과 정상들이 X를 활용한 내용은 좋은 참고서다.

대통령의 SNS는 칼이다. 각국 정상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문제를 쓰러트렸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도 마찬가지다. 다만 그 칼을 수술 도구로 쓰자. 날카롭지만 정확하게, 빠르지만 손 떨림 없는 의사처럼 말이다. SNS 게시물 자동 번역 시대, 한국 대통령의 SNS는 국익 수호의 가장 날카로운 시작이자 끝이다.

덧붙이는 글 위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2965

필자 김정호는 미국에서 사회윤리와 국제정치를, 인도네시아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현재 한국에서 인문교양 온라인교육 회사인 '알투스인'을 운영한다. 동시에 인도네시아에서는 한국 관련 콘텐츠를 공급하는 회사를 운영한다. 미중 G2 대립이 격화되는 시대에 대한민국의 활로를 동남아에서 찾아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대통령 #이재명 #SNS #X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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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이재명 면전에서 이스라엘 총칼 대변...누구의 안보실장인가

  • 기자명 박재산 기자
  •  
  •  승인 2026.05.21 07:31
  •  
  •  댓글 0
 
   
 

우리 국민이 외국 군대에 체포·구금됐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가안보실장은 국민을 지키는 국가의 언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군사 통제 논리를 먼저 대변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던진 질문은 명확했다.

“거기가 이스라엘 영해냐.”

“제3국 선박을 나포해도 되느냐.”

“항의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는 정세 분석이 아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어떤 원칙으로 대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사안의 본질은 단순하다. 우리 국민이 가자지구로 향하던 국제 구호선단에 탑승했다가 이스라엘군에 나포됐다. 무장 세력도, 교전 참여자도 아니다. 정부의 첫 번째 원칙은 자국민 보호와 신병 확보, 그리고 이스라엘의 불법 행위에 대한 강력한 항의여야 했다.

그러나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답변은 이스라엘의 해명과 닮아 있었다.

 

“이스라엘이 교전중이라 군사 통제를 하고 있다”

“가자 사태는 하마스의 공격에서 촉발됐다”

상대국의 군사 논리를 그대로 읊은 셈이다. 외교안보 책임자가 먼저 흘린 말은 “여행금지구역에 왜 갔느냐”는 국민 탓이었다.

위기에 처한 국민 앞에서 국가가 가장 먼저 “왜 거길 갔느냐”부터 묻는다면, 그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여행금지구역 위반 여부는 국민을 구출한 뒤 국내법에 따라 따지면 될 일이다. 국민 보호라는 기본 책무가 흔들리는 순간 국가에 대한 신뢰는 무너진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안보 논리는 맹목적으로 수용하면서, 정작 우리 국민의 안녕은 부차적으로 여기는 외교안보라인의 사대적 인식이 고스란히 드러난 결과다.

“교전 중이라 통제한다”는 안보실장의 강변은 이스라엘의 공해상 나포와 불법 체포를 사실상 용인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가자지구 봉쇄는 국제사회에서도 지속적으로 국제법 위반 지적을 받는 범죄적 군사 행동이다.

대한민국 안보실장이 우리 국민보다 이스라엘의 총칼을 먼저 변호하는 현실 앞에서 대중은 묻는다. 위성락은 과연 누구를 위한 안보실장인가.

"우리 국민을 잡아갔으니 하는 말!" 분노한 이재명 대통령에 진땀 흘리는 위성락 안보실장 "네타냐후는 전쟁범죄자!" 직격 ㅣ 출처 : 안동M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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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미국의 은혜를 한시라도 잊으면 안 되는 국가인가

  • 기자명 현장언론 민플러스
  •  
  •  승인 2026.05.20 07:44
  •  
  •  댓글 0
 

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은 남만주철도 선로 폭파 사건을 빌미로 중국군을 공격해 만주를 점령한다. 일본이 조작한 사건이었다. 당시 만주작전은 현지 관동군이 먼저 일을 벌이고 도쿄 정부가 뒤따라 승인하는 식이었다. 1932년 3월 1일 창춘(長春)을 수도로 만주국이 출범한다. 겉으로는 ‘독립국’이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괴뢰국가였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처음에는 집정, 1934년부터는 황제로 세워졌지만 명색뿐이었다. 1945년 8월 소련군의 만주 침공으로 일본은 패했고 만주국도 순식간에 무너진다.

만주국은 자기 존재의 이유를 “일본 제국의 은혜와 보호”에 두었다. 겉으로는 오족협화(五族協和)와 왕도낙토(王道樂土)를 내세웠지만, 일본의 대륙 침략을 포장하는 이데올로기였을 뿐이다. 만주국의 친일 엘리트에게 일본은 단순한 동맹이 아니라 자기 국가의 창조자였다. 그들은 일본 덕분에 국가가 태어났으니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되뇌었다. 친일 엘리트 지배층은 건국신묘(建國神廟)와 건국충령묘(建國忠靈廟)와 각 도시의 충령탑, 전적기념비, 일본군 전몰자 기념물을 건축해 일본의 희생을 기렸다.
 

건국신묘는 만주국을 세운 신으로 일본 황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셨다. 건국신묘와 나란히 놓여 있는 건국충령묘는 만주국판 야스쿠니 신사다. 만주국 수립과 일본의 만주 정복 과정에서 죽은 일본군을 ‘건국의 영령’으로 모신 곳이다. 각 도시의 기념물 역시 일본의 희생을 추모한다. 이런 시설들이 만주국 주민에게 준 메시지는 일본군이 피를 흘려 이 땅에 새 질서를 세웠으니 경배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느닷없이 식민의 굴레에 사로잡힌 대다수 주민들의 내적 저항과는 별도로 숭일 체제는 만주국 존립 기간 내내 견고했다.

일제 말기 조선에서 벌어진 황국신민화도 친일 엘리트들에게는 출세의 길이요 보은의 길이었다. 일반 민중들이 식민의 멍에를 벗으려 발버둥치고 있을 때 숭일 세력들은 조선의 독립적 존재보다 일본 제국의 일부가 되는 것을 근대화의 길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자기 정체성이란 바로 일본이었고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그들은 일본을 구원과 문명화와 존립의 기반으로 생각했고 그에 대한 감사를 자기 의무로 내면화했다.

1945년 한국의 해방은 일제의 식민을 미제의 식민으로 전환한 것에 불과했다. 반민족적 이승만과 미국의 야합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은 미국의 간섭을 항상 흔쾌히 여기는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한국전쟁 과정에서의 군사 작전통제권 이양과 한미 동맹조약 체결은 대한민국을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는 견고한 숭미체제로 업그레이드했다. 지금 전국에는 미군과 유엔군을 기리는 파주 임진각의 미국군 참전 기념비와 부산 유엔 기념공원과 같은 기념물들이 수백 개가 널려 있다. 우리의 생존과 존재의 기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려는 인공물들이다.

대한민국의 성격 규정, 한국전쟁의 기원과 책임론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국가관에 대해서는 좌우의 논쟁이 있고 당장 시비를 가리기 어렵다. 예컨대 “애초에 분단체제와 미군정의 산물인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였다”고 보는 사람에게는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은 ‘구원’이 아니라 ‘민족 분열 영구화’의 비극이다. 그들이 지금 ‘선진 조국’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으니 그들도 이를 가능케 한 미국과 유엔에 감사와 은혜의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논리가 안 맞는 억지다. 특정한 역사관의 강요다.

 

유엔군 참전은 “무조건적 선행”이 아니라 각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국제정치 행위였다. 이해관계가 있는 행위에 대해 고마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감격하고 복종해야 할 이유는 없다. 또 유엔군 참전은 남한의 붕괴는 막았지만,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한반도는 초토화되었으며 분단은 더 굳어졌다. 어떤 역사적 개입이 장기적 비극을 낳았다면 그 개입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감사로 끝날 수 없다. 그리고 감사는 개인의 윤리이지 국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다. “국민이라면 반드시 유엔과 미국에 감사해야 한다”는 충성 요구는 숭미의 가치관이다.

후대에게 세습 채무를 부과하려는 것도 불합리하다. 1950년에 어떤 외국 군대가 남한을 도왔다는 사실이 2026년의 한국 시민에게 “미국에 계속 고마워하라”는 정치적 빚으로 자동 승계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기억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외교적 종속이나 비판 금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유엔군 참전이 남한을 도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오늘의 우리가 그것을 반드시 감사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는 숭미세력들이 미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을 한미동맹의 ‘굴레’에 묶으려 별의별 일을 다 벌인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조성해 5월 12일 공개한 광화문 광장의 ‘감사의 정원’은 “받들어 총” 모양 조형물로 한국과 22개 참전국을 기리고 있다. 외국 군대에 대한 충성과 감사의 자세를 조형물로 세운 셈이다. 한국 외무부 건물 바로 앞이면서 미 대사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조형물은 대한민국의 기원을 유엔군과 미국이 주도한 자유진영의 구원 서사로 강조하고 있다. “한국전 참전국을 기억하자”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은 자유진영의 희생으로 보존되었으니 우리는 그 은혜를 광화문 한복판에서 영구히 기억해야 한다고 강압하고 있는 셈이다.

이 조형물이 미국만을 바라보고 가지 않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자주적 외교 행보에 대해 국힘과 극우세력이 극렬히 저항하고 있는 시점에 공개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이해를 앞장서 대변했던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키기 직전에 승인된 계획이다. 광화문을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한 희생에 대한 감사의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감사의 정원’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생존을 내부의 민중적이고 민주적인 역량보다 미국 주도 질서의 공헌임을 강조한다. 숭미적 국가기원론이다. 만주국과 일제 식민지 하의 숭일세력이 가졌던 자기의식의 본질이다.

6·25 참전국을 기억하는 사업은 이미 차고 넘친다. 우리 해방이후 역사와 전쟁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 작업은 턱없이 부족한 마당에 과거 숭미정권들이 앞 다투어 벌여온 감사와 보은의 행정을 언제까지 용인할 생각인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장소에서까지 외국 군대에 충성하는 몸짓을 보이려는 세력을 얼마나 더 인내할 생각인가.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란 결국 미국 주도 유엔군의 구원이라고 무의식에라도 인정할 것인가. 나라를 주권독립국으로 우뚝 서지 못하게 할 불순한 저의로 조성된 광화문 ‘숭미의 정원’은 당장 폐기할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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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탄'에 죽어가는 도시…그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탈(脫) 석탄의 딜레마] ① 폐쇄되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허환주 기자 | 기사입력 2026.05.20. 08:52:44

태안 시내에서 25km 떨어진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왕복 2차선으로 된 좁은 길을 40분 정도 차로 달리면 하늘 높이 우뚝 솟은 커다란 굴뚝들, 그리고 그 끄트머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를 볼 수 있다. 말이 수증기지 석탄을 태우는 과정에서 나오는 대기오염물질인 질소산화물과 황산화물, 먼지 등이 섞여 있다.

한국서부발전에서 운영하는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에는 10기의 발전 호기가 자리 잡고 있다. 인근에는 인적도, 이렇다 할 가게도 없다. 그나마 발전소 정문에서 상당 거리에 식당과 편의점 하나가 있을 뿐이다. 발전소 변압기에서 나오는 '웅웅'거리는 저주파 소음과 전자파가 뿜어져 나오는 송전탑은 사람들의 기피 대상이다.

▲ 태안 화력발전소 앞에 서 있는 송전탑. ⓒ프레시안(허환주)

2037년까지 총 10호기 중 1~8호기가 폐쇄

태안 화력발전소를 찾은 이유는 한 통의 전화였다. 충청도에서 노동자를 위해 활동하는 노무사였다. 태안에 위치한 석탄화력발전소가 2025년 12월 1호기, 2026년 2호기를 시작으로 2037년까지 총 10호기 중 1~8호기가 순차적으로 폐쇄된다고 했다.

문제는 그렇게 폐쇄될 경우,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이미 폐쇄된 1호기는 LNG 발전소로 대체되나, 태안이 아닌 구미에 지어진다. 올해 폐쇄되는 2호기의 대체 발전소도 공주에 만들어질 예정이다.

2028년 폐쇄되는 태안 3호기(여수), 2029년 폐쇄 예정인 태안 4호기(아산), 2032년 폐쇄되는 태안 5호기(용인), 6호기(용인)도 마찬가지다. 2037년에 폐쇄되는 7호기와 8호기만 대체 발전소가 어디에 지어질지 미정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다른 지역에 지어진다는 게 중론이다.

결국 석탄발전소가 LNG 발전소로 대체된다 해도 태안에서는 일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결국 우리는 죽거나 다쳐서 사라지거나, 잘려서 사라져요. 그래도 아무런 말도 못해요."

노무사 이야기를 들으며 15년 전 대량 해고 바람이 불던 조선소를 취재할 때, 그곳 하청 노동자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자신들을 찍소리도 못하고 사라지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이는 조선소든 발전소든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

태안 화력발전소에서는 2018년 김용균, 2025년 김충현, 두 명의 노동자가 일하다 사망했다. 둘 다 하청 노동자들이었다.

▲ 태안 석탄화력발전소. ⓒ프레시안(허환주)

대형마트도, 기차도, 고속도로도 없는 태안

취재를 위해 찾은 태안 석탄화력발전소에서 태안 시내로 돌아오는 길은 쉽지 않았다. 흔한 콜택시도 없었다. 발전소 정문에서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으나, 하루 6번 운행되는 이 버스는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근처 편의점 주인에게 물어보니 1시간 20분 후에나 온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터벅터벅 인도도 없는 왕복 2차선 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발전소에서 시내로 향하던 SUV 차 한 대가 기자 앞에 섰다. 발전소에서 일하는 40대 여성이었다. 버스도 택시도 없는 길 한쪽을 걸어가는 게 안쓰러워 보였나 보다. 태안 시내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여성분은 이곳 발전소에서 일한 지 3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이전에는 서인천에 있는 발전소에서 근무했다. 태안 발전소는 서로 가지 않으려 하는 곳이기에 의무 순환직으로 돌리고 있다고 했다. 이번이 자기 차례였다.

'뭐가 없는 곳.' 태안 화력발전소가 주는 이미지라고 했다. 그래도 없으면 뭐가 얼마나 없겠냐며 이사를 왔는데,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태안에는 대형마트도, 기차도 고속도로도 없다. 충청남도에서 고속도로가 없는 유일한 군이다. 그나마 관광지로 안면도가 유명하기에 거기만 사람들이 붐빈다.

1989년 서산군에서 분리될 당시 8만4000여명이던 태안군 인구는 올해 처음으로 6만 명 아래로 내려갔다. 태안군이 의뢰한 연구용역 보고서를 보면 태안 화력발전소 폐지로 2040년까지 발전소 직원·가족 등 4500여명이 태안을 떠난다. 동시에 지역 경제에는 12조7644억8000만 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사실상 죽어가는 도시인 셈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발전소 노동자들은 어떤 일을 해왔을까. 그리고 그들은 어떻게 발전소에서 일하게 됐을까. 폐쇄를 앞두고 세운 계획은 무엇일까. 40대 여성이 태워준 SUV 차량에서 내리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이 이어졌다. 태안 화력발전소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다.

허환주 기자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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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서울시, 국토부와 12번 현장 회의하고도 ‘GTX 삼성역 철근 누락’ 보고 안 했다

수정 2026.05.20 07:59

1~4월 넉달간 국토부와 현장점검서도 보고 안해

서울시 ‘철근 누락 인지’ 지난해 11월, 은폐 의혹

서울 강남구 GTX-A 노선 구간인 영동대로 지하 공간 복합개발 현장 모습. 연합뉴스

서울시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노선의 삼성역 구간 공사에서 국토교통부와 10번 넘게 현장 회의를 했으면서도 현대건설의 철근 누락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면접촉까지 수차례 하면서도 국토부에 철근 누락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서울시가 이를 은폐하려는 것 아니었느냐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경향신문이 19일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25년 11월10일 이후 서울시, 국가철도공단, 국토부 현장 방문 기록’ 문서를 보면, 삼성역 공사 발주처인 서울시와 공사 위탁자인 국가철도공단은 국토부와 함께 지난 1월29일부터 4월25일까지 삼성역 공사현장에서 열두 차례 점검 회의를 열었다.

기록을 보면, 서울시는 철근 누락 사실을 인지한 이후 국토부 관계자, 외부 전문가와 함께 지난 1월29일 ‘균열점검’을 했다. 이때에도 국토부에선 실무 책임자인 광역급행철도건설과장 등이, 서울시에서는 영동대로복합개발사업총괄과장 등이 참석했지만 철근 누락 사실은 보고되지 않았다.

특히 3월31일에는 서울시와 국토부의 ‘합동점검’이 진행됐다. 철도국장, 광역급행철도과장 등 국토부 실무 책임자들과 서울시 영동대로복합개발추진단장, 영동대로복합개발사업총괄과장 등 서울시 실무 책임자들을 모두 포함해 10여명이 모인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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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참석한 국토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서울시로부터 철근 누락 사실을)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가철도공단 측도 “그동안 서울시, 국토부와 현장 점검을 했지만 (서울시는) 중대 결함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직접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4월25일에는 ‘열차 투입 전 최종 점검’을 했지만 서울시는 이때도 철근 누락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상황을 종합하면, 지난해 10월23일 처음 철근 누락 사실을 인지한 현대건설은 그해 11월10일 서울시에 철근 누락 사실을 이메일로 보고했고, 서울시는 6개월이 지난 지난달 29일 국토부에 철근누락 사실을 보고했다.

서울시는 현대건설에서 보강 공사계획을 보고받은 뒤 국토부에 알리려고 했다고 반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대건설로부터 보강 대책을 보고받은 다음 국토부에 통보를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 것일 뿐, 사고에 대한 대책도 안 세우고 통보하는 건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통보 시기의 문제일 뿐 이걸 숨기고 은폐하려던 건 아니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철근 누락 사실을 인지한 시점을 두고 서울시 관계자의 발언도 엇갈리며 의혹을 키우고 있다. 삼성역 공사의 실무를 총괄하는 임춘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은 지난 18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철근 누락 사실을 처음 인지하게 된 시점을 “제 기억으로는 3월 언저리”라고 답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입수한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 현장방문 계획’ 문건에 따르면, 임 본부장은 지난 1월16월 현장 관계자 격려차 삼성역 공사현장에 방문해 현장점검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 의원은 “삼성역 공사의 총괄 책임자인 본부장이 철근 누락 같은 중대한 공사 결함을 보고받고도 오세훈 시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면 그게 더 문제”라며 “오세훈 후보의 입지를 위해 시민의 안전을 도외시하고 사건을 은폐한 것은 아닌지 철저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영문번역(English Trans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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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33년 전 죽은 동생, 한국 '5·18 테이프'에 살아 있다니

[내 이름은 원덕기: 누나 록산, 미네소타 인터뷰①] 죽기 전 그날의 '목소리' 찾던 팀 원버그..."동생에게 광주는 공동체"

26.05.20 06:48최종 업데이트 26.05.20 07:11

5·18민주화운동 46주년 및 위르겐 힌츠페터 10주기를 맞아 다큐멘터리 영화 <내 이름은 원덕기>를 제작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 참여자의 이름을 기재합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광주를 사랑한 팀 원버그(한국 이름 원덕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펀딩 바로가기 https://omn.kr/2i36q[편집자말]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다 5·18민주화운동을 목격한 팀 원버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 지난 3월 1일 미네소타에서의 인터뷰 도중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촬영한 미공개 테이프 영상을 지켜보고 있다. 이희훈

33년 전 지병으로 죽은 동생이 건강한 모습으로 서 있다. 노트북 화면 속 동생은 떨리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2분 30초 동안 머나먼 나라의 학살을 증언하고 있었다. 말로만 들었던 "광주" 한복판에서 동생은 못 보던 선글라스를 쓰고 "군인들이 잔혹하게 때려 사람들의 머리가 찢어지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고 연신 목소리를 높였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작고)가 촬영·편집한 총 30여 분의 이 영상은 동생의 모습 외에도 그의 말을 증명하는 내용으로 가득했다. 사실 처음 듣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동생은 죽기 전까지 그날의 광주를 이야기했다.

다만 동생이 목격한 참상을 두 눈으로 본 건 처음이었다. 50년 넘게 간호사로 일했고 인간의 신체에 익숙했지만, 잔혹한 폭력의 잔상은 누나의 뇌리를 뒤흔들었다. 왜 그토록 동생이 광주의 진실을 알리려고 했는지 이제야 제대로 이해했다.

고 위르겐 힌츠페터가 5·18민주화운동 중인 1980년 5월 24일 촬영한 인터뷰 영상의 화면을 갈무리한 것. 영상 속 인물은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팀 원버그(Tim Warnberg, 한국 이름 원덕기)다. 5·18기념재단이 보관하고 있던 이 영상은 그 동안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으며, 항쟁 한복판에 있던 인물의 현장 인터뷰는 5·18 관련 기록물 중 이 영상이 유일하다.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그의 미소 닮은 누나

미국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1978년부터 광주에 머물다 5·18민주화운동을 한복판에서 경험한 고 팀 원버그(Tim Warnberg, 5·18 당시 25세). <오마이뉴스>는 5·18기념재단이 보관한 힌츠페터의 미공개 테이프에서 46년 전 팀의 인터뷰를 발견했고 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Roxanne Warnberg Wilson, 72)을 만나러 지난 겨울 끝자락에 미국 미네소타로 향했다. 5·18 당시 촬영된 누군가의 인터뷰 영상은 그동안 볼 수 없는 기록물이었다.

열흘 간의 항쟁을 목격한 팀은 시민들을 구타하는 계엄군을 말리다 곤봉에 얻어맞기도 하고, 총칼을 찬 군인들 사이로 부상자들을 병원에 이송하기도 했다. 서울로 돌아오라는 주한 미대사관의 지시를 거부하고, 유창한 한국어로 외신기자들의 통역을 도왔으며, "5월 18일에 광주에 있었다"며 힌츠페터가 제안한 인터뷰에도 기꺼이 응한 그였다. 1987년 외국인 최초로 5·18을 폭도의 소행이 아닌 시민의 항쟁으로 정의한 논문을 발표한 팀은 6년 뒤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말 처음 힌츠페터 테이프에서 팀의 인터뷰 영상을 발견했을 때, 취재진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고 싶었다. 팀과 함께 5·18을 목격한 다른 평화봉사단원 데이비드 돌린저, 폴 코트라이트에게 그의 누나 록산이 미네소타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연락처를 받았다.

영상통화로 만난 록산은 팀과 같은 갈색 눈동자를 갖고 있었다. 장난스러운 미소도 비슷했다. 의사를 꿈꾸며 광주에서 의료 봉사를 했던 팀처럼, 록산도 50년 넘게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다.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고 위르겐 힌츠페터의 촬영 테이프에 담긴 영상 갈무리.위르겐 힌츠페터, 5·18기념재단 제공

매년 동생의 기일이면 록산은 소셜미디어에 그가 46년 전 광주에서 들것을 든 모습을 올린다고 했다. 팀을 더 알고 싶다는 취재진의 목표는 그때부터 바뀌었다. 스물다섯 청년 팀의 육성을 팀을 꼭 닮은 그의 가족에게 뒤늦게라도 직접 들려주고 싶었다.

지난 2월 28일, 12시간 비행 끝에 도착한 미네소타는 영하 15도에 육박했다. 도로 곳곳에는 직전 내린 눈이 얼음으로 단단히 굳어 있었고, 지난 1월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를 동원한 국가폭력과 이에 대응한 대규모 저항의 여파도 남아 있었다.

우리는 3월 1일과 4일 두 차례 록산을 인터뷰했다. 두 번째 만남은 이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그 사이 달라진 점은, 록산이 힌츠페터 영상 속 동생의 모습과 광주의 참상을 눈으로 봤다는 것뿐이었다.

첫날 인터뷰 중 영상을 본 록산은 "정말 끔찍하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그날 밤 취재진에게 메시지를 보냈고, 이 영상을 "선물이자 무거운 과제"라고 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잔혹한 폭력을 저지를 수 있다니, 정말 충격적입니다. 피해자들, 목격자들, 심지어 군인들에게도 참혹한 마음이 듭니다. 영상을 직접 보니, 동생이 무엇을 위해 그렇게 용감하게 나섰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마치 선물이자 무거운 과제(a gift and a burden to carry)입니다. 지금도 세상 곳곳에는 우리가 맞서야 할 일들이 있고, 함께 지켜야 할 가치들도 있으니까요."

5·18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 5월 19일, 들것에 실린 환자를 옮기는 미국 평화봉사단원 팀 원버그(체크무늬 셔츠)와 광주 시민들. 전일빌딩에 있던 나경택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가 건너편 당시 광주관광호텔(현 무등빌딩)을 지나는 이들을 촬영했다.나경택 제공

따뜻함에서 나온 팀의 용기

록산은 "사람들이 동생의 용감함과 담대함에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어쩌면 더 중요한 건 그의 따뜻함"이라고 했다. 광주에서 보여준 팀의 용기가 "사람들을 따뜻하게 대하던 그의 성정"에 기반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뜻하다(kind)고 할지, 타인의 고통에 깊이 공감한다(compassionate)고 해야 할지 고민했어요. 팀은 타인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뒤에서 묵묵히 챙기던 사람이었어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팀의 친구를 몇 년 후 만났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어요. '아무도 나에게 다정하지 않았을 때, 팀은 우리 집에 놀러 와 나와 이야기를 나눴어요. 팀은 내가 어떻게 버티고 있는지 걱정했죠. 그때 저는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팀이 정말 좋은 친구가 돼줬어요'."

록산은 팀의 이런 면모를 두고 "부모님의 좋은 점을 고루 물려 받았다"고 떠올렸다. 그는 "어머니는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할 때 조용히 알아차리고 챙겼다"며 "어디에 있든 사람들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능력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우리 지역 치안의 총책임자(한국의 지방경찰서장과 비슷한 개념인데 차이점은 선출직 - 기자 주)였는데 다양한 계층과 친구가 되는 능력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한국에 머물다가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팀 원버그의 어린 시절 모습. 뒷줄 가장 키가 큰 두 사람이 팀과 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다.록산 원버그 윌슨 제공

이러한 맥락에서 록산은, 팀의 용기가 5·18 전 2년 간 광주에 살며 광주를 "자신의 마을"이자 "공동체"로 여겼기 때문에 발휘됐을 것이라고 짚었다.

"광주는 팀에게 자신의 마을이자 스스로 속해 있다고 느끼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는 '한국은 내가 아끼는 나라고, 광주 시민들은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다. 침묵할 수 없다. 목소리를 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팀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항쟁에 나서기도 했고 다치기도 했거든요. 그래서 미국인인 자신이 현장에 몸을 던져서 '멈추라'고 외치고, 외신기자들에게 이 상황을 알린다면 뭔가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적어도 아끼는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건 막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록산을 통해 제공받은 대학원생 팀의 글에도 한국을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사실 나는 한국을 선택한 게 아니라 미국 정부에 의해 평화봉사단원(1960년대 미국 정부가 만든 청년 봉사단체로 주로 개발도상국에 파견 - 기자 주)으로 한국에 파견됐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기대가 그다지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 (...) 내가 만난 한국인들의 친절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인내심에 매료됐다. 몇 달이 지나자 나는 한국에서 꽤 편안함을 느끼게 됐고, 미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다. 한국은 나의 집이 됐다(Korea was to be my home)."

5·18민주화운동을 경험한 팀 원버그가 미국 평화봉사단원 자격으로 광주에 머물던 중 한국인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는 장면. 오른쪽은 함께 5·18을 목격한 데이비드 돌린저.데이비드 돌린저 제공

동생의 삶 뒤흔든 광주

특히 록산은 "광주가 동생의 삶을 뒤흔들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팀은 한국 정부, 그리고 미국 정부까지 5·18에 연루됐다고 생각했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그런 잔혹함과 폭력이 용인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팀에게 충격이었죠. 다른 면에서는 그 경험으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용감해질 수 있을지 깨달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도와 식사를 준비하는 것과 실제로 누군가를 위해 총 앞에 서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니까요.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죠."

정말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애초 의대 진학을 위해 평화봉사단원이 됐던 팀은 의대에 가지 않았다. 5·18 이후 5년을 더 한국에 머무른 뒤, 1986년 미국 하와이대학 한국학 석·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대학원 첫 학기 수업에서, 그는 자신이 직접 목격한 5·18에 관한 논문을 쓰기로 결심하고, 1년 뒤 이를 발표했다. < The Kwangju Uprising: An Inside View(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 >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록산은 그 논문이 실린 하와이대학 한국학 학술지를 지금도 갖고 있었다.

"당시 팀은 저에게 그 논문이 담긴 책을 보여줬어요. 제 기억으로 팀은 자신이 5·18에 관한 글을 쓴 최초의 외국인이라고도 했어요. 팀은 광주에서의 일을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어요. 실제로 그렇게 했고요."

팀 원버그의 누나 록산 원버그 윌슨이 지난 3월 1일 미네소타서의 인터뷰에서 동생이 쓴 5·18민주화운동 관련 논문의 원본을 내보이고 있다.이희훈

록산은 팀이 박사과정 중 집필한 여러 글 또한 내보였다. 팀은 5·18 논문을 쓴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의 정치상황, 특히 직접 겪은 5·18이 학생운동과 한국의 민주화에 미친 영향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었다. 팀이 1991년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학생운동의 정체성 위기(Identity crisis for the student movement)>라는 제목의 글엔 이런 내용이 담겼다.

"광주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군 내부 세력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규모의 시민을 학살하는 일까지 감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전두환과 그의 측근들은 이후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지만, (...) 그에 대한 국민적 수용은 기껏해야 냉담한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 국민은 민주화를 원하고 있었고, 광주의 참상 또한 잊지도, 용서하지도 않았다. (...) 특히 1987년, 한국이 이른바 '프라하의 봄'과 같은 시기를 맞으며, (...) 정부가 자국민에게 무력을 행사할 리 없다고 믿고 싶어 했던 사람들조차 참혹한 학살을 담은 수많은 비디오 테이프·사진·TV 프로그램·생생한 증언을 접했고 결국 현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록산은 팀이 죽음을 앞두고도, "광주가 잊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강조했다. 그는 "팀은 테리 앤더슨(Terry Anderson, 5·18 중 팀을 인터뷰한 AP통신 소속 미국 기자)에게 연락해 당시 자신이 한 인터뷰의 녹음 테이프가 있는지 물었다"며 "또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광주항쟁' 논문의 존재를 알렸다. 필요할 때 우리가 그 논문을 찾을 수 있도록 굉장히 신경 썼다"라고 설명했다.

록산은 팀이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병이 점점 자신을 잠식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테리 앤더슨 기자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회상하며 "팀은 자신만이 간직했던 광주의 기억을 기록하고 싶어 했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것이 광주를 계속 드러내고 널리 기억되게끔 하려는 팀의 노력이었다"며 "테리가 그 테이프를 잃어버렸다고 해서 팀은 결국 광주를 증언하던 자신의 목소리를 다시는 듣지 못하고 떠났다"라고 설명했다.

아래 팀이 테리 앤더슨 기자에게 쓴 편지를 요약했다.

팀 원버그가 숨지기 1년 전인 1992년 3월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신을 취재한 테리 앤더슨(당시 AP통신 기자)에게 쓴 편지. "제 삶에서 저를 깊이 변화시킨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저는 그 혼란스러웠던 광주의 날들을 떠올리게 됩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록산 원버그 윌슨 제공

친애하는 테리에게

제 이름은 팀 원버그입니다. 12년 전, 제가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 광주에 있고, 당신이 그 도시의 학살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을 때, 우리는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당신은 저를 인터뷰했으며, 녹음도 했습니다.

상태가 다소 호전되기는 했지만, 병은 서서히 저를 잠식하고 있습니다. 제 삶에서 저를 깊이 뒤흔든 사건들을 되돌아보면, 저는 혼란스럽고 참혹했던 광주의 날들(chaotic days in Kwangju)을 떠올리게 됩니다. 학살의 참상에 충격을 받았고 인간이 서로에게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경악했습니다.

지금 가족과 함께 보내고 계신 소중한 시간을 더 방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 상황이 저를 조금은 대담하게 만듭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저를 인터뷰하며 녹음하셨던 테이프가 아직 남아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가능하다면 그 사본을 받아 당시 제가 직접 겪은 학살에 대한 제 증언(my first-hand account of the massacre)을 다시 한 번 들어보고 싶습니다.

진심을 담아, 팀 원버그 드림

1992년 3월 20일

이 편지를 설명하며 록산은 취재진을 통해 본 팀의 인터뷰 영상을 재차 언급했다. 그는 "팀이 인터뷰 영상의 존재를 알았다면 그에게 큰 위로가 됐을 것"이라며 "그가 테리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도 바로 그 당시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고자 한 것" 이라고 말했다.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렵지만, 이 영상을 봤다면 기쁨(joy)도 느꼈을 것 같아요. 끔찍한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을 느낀다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팀은 자신의 말이 여전히 남아 있고, 자신이 본 것을 정확하게 전달하고 있는 모습에 안도했을 거예요."

<내 이름은 원덕기> 제작을 위한 펀딩

당신의 이름을 보태주세요. 오마이뉴스는 다큐멘터리 영화 <내 이름은 원덕기>를 제작하기 위한 펀딩을 진행합니다. 엔딩 크레디트에 펀딩 참여자의 이름을 기재할 계획입니다. 대한민국, 그리고 광주를 사랑한 팀 원버그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에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바로가기 https://omn.kr/2i36q

기획 소중한 취재 소중한·전선정·김화빈·이진민·유지영

촬영 강상우·이희훈 편집 콘텐츠팜 호미

CG 김수연 타이틀 김소설 음향 DMC 사운드 비전 내래이션 이승준

펀딩 기획 장유정·이기종·봉주영

영상 제공 5·18기념재단·루먼 형제(Ben&Sam Luhmann)

영상 번역 자문 로버트 그라찬

사진·자료 제공 고진석·나경택·서나래·유경남·변재원·안영주·록산 원버그 윌슨·데이비드 돌린저·폴 코트라이트·캐롤린 투르비필·케빈 페어뱅크스·로버트 그라찬·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외교사료관·박지원 의원실

촬영 협조 5·18기념재단·5·18민주화운동기록관·전남대병원·전일빌딩245·국가보훈부·별밭·필로스팅하우스

제작 지원 광주광역시·광주광역시 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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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에너지·공급망엔 '의기투합'…북·중 대응엔 '온도차'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5/20 08:28
  • 수정일
    2026/05/20 08:29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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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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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교국방

  • 입력 2026.05.20 07:25

  • 수정 2026.05.20 07:45

  • 댓글 0

다카이치 '중국 저지' vs 이재명 '중국과 동행'

"한·미·일 협력도, 한·중·일 협력도 중요"

다카이치 "북핵 문제 대응 한·미·일 공조"

이재명 "싸울 필요 없는 평화의 한반도"

LNG·원유 스와프, 공급망 협력 본격화

조세이 탄광 유해 DNA 감정 착수 '환영'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이 대통령의 고향 안동에서 마주 앉았다. 올해 1월 다카이치 총리의 고향 나라현에서 만난 지 불과 4개월 만이다. 양국의 셔틀 정상외교가 완전히 자리 잡은 모양새다.

두 정상은 소인수 회담과 확대회담을 합해 총 105분간 정상회담을 했다. 회담 직후 양국 정상은 공동언론발표를 진행했고, 만찬 행사가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경북 안동 하회마을에서 선유줄불놀이를 보고 있다. 2026.5.19 [청와대 제공] 연합뉴스

이재명·다카이치 셔틀 외교 4개월 만 재개

한일 두 정상의 고향 나라현과 안동 오가

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의 브리핑에 따르면, 먼저 소인수 회담에선 중동 정세와 공급망·에너지 안보 등 주요 국제 현안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양국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고, 확대회담에선 한반도 정세와 함께 한일 간 실질 협력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소인수 회담에서 두 정상은 중동 지역의 평화와 안정이 조속히 회복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련 한일 양국의 대응과 협력 진전 방안도 논의했다.

또한 에너지 시장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양국이 에너지 공급망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유사한 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원 공급망 협력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양국은 지난 3월 체결된 '한일 공급망 파트너십'의 성과를 평가하고, 양국 간 공급망 협력을 더욱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고, 다카이치 총리도 "최근의 국제정세를 봤을 때 핵심 광물을 포함한 일한 간 공급망 협력은 중요하다"면서 공감을 표시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9일 경북 안동 한 호텔에서 확대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2026.5.19 연합뉴스

LNG·원유 스와프, 공급망 협력 본격화

조세이 탄광 유해 DNA 감정 착수 '환영'

이와 함께 두 정상은 원유와 LNG 등 핵심 에너지원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양국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원유와 석유 제품의 스와프 및 상호공급과 관련된 민관 대화를 장려하기로 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3월 체결된 'LNG 수급 협력 협약서'를 바탕으로 양국 간 LNG 협력을 확대하고, 원유 수급 및 비축과 관련한 정보공유와 소통 채널도 심화하기로 했다"고 밝혔고, 다카이치는 "원유·석유 제품과 LNG 상호 융통, 스와프 거래를 포함한 에너지 안보 강화 협력을 시작하기로 뜻을 같이했다"고 소개했다.

두 정상은 또한 급변하는 국제정세를 맞아 지난 14일 미·중 정상회담 평가와 미국과의 소통 내용을 포함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한일,・한미일 협력을 지속해서 발전시키는 데에 의견을 같이했다.

양국은 또한 경제협력의 새 동력을 창출하고, AI 등 미래 분야에서 신뢰 기반의 협력을 강화해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을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다. 또한 우주·바이오·지방 활성화·초국가 스캠 범죄 공동 대응 등 실질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양 정상은 1월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조세이 탄광 수몰 사고 희생자 유해 DNA 감정과 관련해 양국 외교당국 간 실무협의가 마무리되고 감정 절차에 착수하게 된 것을 환영했다. 앞으로 우리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일본 경찰이 DNA 감정을 실시하고, 양국이 협력해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며, 양국의 유관 당국은 관련 절차가 조속히 진행되도록 긴밀히 협조하기로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19일 경북 안동 한 호텔에서 열린 확대 정상회담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와 악수한 뒤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 2026.5.19 연합뉴스

다카이치 '중국 저지' vs 이재명 '중국 동행'

"한·미·일 협력도, 한·중·일 협력도 중요해"

그러나, 중국과 북한을 놓고는 두 정상의 발언에 '온도 차'가 드러났다.

다카이치는 공동언론 발표 곳곳에서 중국을 겨냥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이란 표현을 썼다. 특히 "현재 국제 상황을 감안하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촉진하기 위해 일미동맹, 한미동맹 그리고 그 전략적 연대를 통한 억지력, 대처 능력의 유지·강화를 포함해 일한 양국이 능동적으로 노력해 나가는 게 중요하며, 대통령님과 저는 이러한 인식을 공유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통령은 달랐다. '인도·태평양'이란 표현을 전혀 쓰지 않고 중국과의 협력 중요성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국제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한·일 및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도 재확인했다"고 한 뒤 "아울러 저는 동북아 지역이 경제·안보 등 여러 측면에서 서로 밀접하게 연계되어있는 만큼, 역내의 진정한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한·중·일 3국이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며 공통의 이익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이와 관련해 강 수석대변인은 특히 한·중·일 협력 활성화를 위해 민간 중심의 3국 간 협력을 우선 추진하는 방안을 함께 모색하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17일 전군 사·여단 지휘관 회합을 소집하고 연합부대장들과 함께 당중앙 뜨락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8일 보도했다. 2026.5.18 연합뉴스

다카이치 "북한 핵·문제 대응 한·미·일 공조"

이재명 "싸울 필요 없는 평화의 한반도 구축"

북한 관련 기조도 사뭇 달랐다. 다카이치는 "핵·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북한 대응에 대해 논의했으며 일·한, 일·한·미가 긴밀히 연계해서 대응해 나갈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한·미·일 북핵 공조에 방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저는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고 함께 성장하는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의 한반도'를 구축하겠다는 우리 정부 입장을 설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구축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거듭 강조했다.

종합해보면, 이번 안동 정상회담은 에너지와 공급망 위기 공동 대응과 경제분야 협력, 한미일 전략적 협력 강화 등에는 의기투합했지만, 한·미·일의 군사동맹화를 통해 중국을 저지하려는 다카이치와, 한·미·일 결속을 강화하되 동시에 한·중·일 틀도 활성화해 중국과도 함께 하려는 이 대통령 간의 전략적 시각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 자리였다.

이유 에디터 yooillee2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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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기 “국힘당 장동혁 광주 방문 규탄” 거리 연설

 

구본기 “국힘당 장동혁 광주 방문 규탄” 거리 연설

 

김신영 통신원 | 기사입력 2026/05/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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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기 광주 광산구을 국회의원 후보(무소속)가 5.18광주민중항쟁 46주년인 18일 장동혁 국힘당 대표의 5.18기념식 참석을 강력히 비판하며, 5.18민주광장 인근에서 ‘국힘당 해산 촉구’ 1인 시위와 육성 연설을 진행했다.

 

▲ 구본기 후보가 5.18민주광장 인근에서 육성 연설을 하고 있다  © 김신영 통신원

 

 

구 후보는 “국힘당이 시대적·국민적 요구인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무산시킨 것은 광주 학살을 옹호하고 내란을 지지한다는 선언”이라며 “전두환 독재정권의 후예이자 내란의 장본인인 내란 정당 국힘당은 해산이 답”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내란범들이 다시 고개를 쳐들고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며 선거에 출마하는 이 사태 자체가 비상 사건이자 내란”이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힘당을 완전히 그리고 철저히 괴멸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 참석한 장동혁 대표는 광주 시민들과 유가족들로부터 “자격 없는 사람이 여길 왜 오느냐”라는 거센 항의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음은 구본기 후보의 발언 전문이다.

 

「윤 어게인 내란 정당 국힘당 장동혁의 광주 방문을 규탄한다」

 

학살자 전두환의 후예, 내란 수괴 윤석열의 당, 국힘당 대표 장동혁의 광주 방문을 규탄합니다. 

선거를 앞두고 온갖 참배 쇼로 국민을 기만하고 광주를 모욕해왔던 국힘당의 대표 장동혁이 5.18기념식에 참석한다고 합니다. 

광주 학살범의 후예 윤석열을 배출하고,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한 자들이 어떻게 광주에 온다는 것입니까?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히고도 정작 개헌안을 무산시킨 자들이 어떻게 광주 땅을 밟는다는 것입니까?

 

1. 내란 정당 국힘당은 해산이 답이다.

 

내란 수괴 윤석열의 불법 계엄, 내란을 완성하기 위해 계엄 해제를 방해하고 탄핵을 반대했던 국힘당, 윤석열 체포를 막기 위해 인간 방패를 자처한 국힘당, 끊임없이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고 내란 재판을 방해한 국힘당, 정부와 국회의 내란청산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국힘당. 국힘당은 전두환 독재정권의 후예들이자 내란의 장본인, 내란 정당일 뿐입니다. 내란 정당은 국민이 아니라 독재를 대변하고 영원한 독재를 추구하는 범죄집단일 뿐입니다. 내란 정당 국힘당은 강제 해산시켜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헌법을 파괴하고 국민을 학살하려 했던 국힘당을 해산시켜야 합니다. 이자들이 국회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파괴입니다. 국힘당을 해산시키고 민주주의를 지킵시다. 

 

2.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무산시킨 국힘당은 해산하라.

 

5.18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은 시대적 요구이자 국민적 요구입니다. 광주항쟁 정신을 전국가적, 전국민적으로 계승하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국힘당은 이것을 무산시켰습니다. 왜 그랬겠습니까? 광주 학살의 후예들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을 찬양하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전두환의 후예 윤석열의 내란을 옹호하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이자들은 여차하면 또 내란을 일으켜 대국민 학살을 시도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해왔고 무슨 짓이든 할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국힘당이 5.18정신 헌법 전문 수록을 거부한 것은 광주 학살을 옹호하고 내란을 지지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광주 학살 전두환을 찬양하고 광주 학살을 범죄로 기록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선언에 다름 아닙니다.  

 

3. 장동혁의 광주 방문은 광주 시민들에 대한 모욕이다

 

윤 어게인 집단, 국힘당 장동혁의 광주 방문은 광주 시민들에 대한 모욕입니다. 

내란 집단, 범죄 집단, 패륜 집단, 반민주·반헌법 집단에게 광주정신이 공격받는 것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광주 시민 여러분! 국민 여러분!

국힘당은 정당의 탈을 쓴 내란 집단일 뿐입니다. 이자들을 완전히 해산시켜야 합니다. 대한민국에 내란을 영원히 방지하는 길은 국힘당을 해산시키는 것입니다. 내란에 철저한 법적, 역사적, 정치적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다시는 정계에 얼씬도 못하게 해야 합니다. 철저히 수사하고 처벌해야 합니다. 

내란범들 주제에 다시 고개를 쳐들고 이재명 정부를 공격하고 선거에 출마하는 이 사태가 비상 사건이자 내란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국힘당을 완전히, 철저히 괴멸시켜야 합니다. 총칼로 국민을 학살한 전두환에 맞서 목숨을 걸고 항쟁했던 광주 5월영령들의 정신과 염원을 받들어 국힘당을 우리 손으로, 우리 시대에 완전히 해산시킵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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