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9월 18일, 일본 관동군은 남만주철도 선로 폭파 사건을 빌미로 중국군을 공격해 만주를 점령한다. 일본이 조작한 사건이었다. 당시 만주작전은 현지 관동군이 먼저 일을 벌이고 도쿄 정부가 뒤따라 승인하는 식이었다. 1932년 3월 1일 창춘(長春)을 수도로 만주국이 출범한다. 겉으로는 ‘독립국’이었지만 실제로는 일본의 괴뢰국가였다.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가 처음에는 집정, 1934년부터는 황제로 세워졌지만 명색뿐이었다. 1945년 8월 소련군의 만주 침공으로 일본은 패했고 만주국도 순식간에 무너진다.
건국신묘는 만주국을 세운 신으로 일본 황실의 조상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셨다. 건국신묘와 나란히 놓여 있는 건국충령묘는 만주국판 야스쿠니 신사다. 만주국 수립과 일본의 만주 정복 과정에서 죽은 일본군을 ‘건국의 영령’으로 모신 곳이다. 각 도시의 기념물 역시 일본의 희생을 추모한다. 이런 시설들이 만주국 주민에게 준 메시지는 일본군이 피를 흘려 이 땅에 새 질서를 세웠으니 경배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느닷없이 식민의 굴레에 사로잡힌 대다수 주민들의 내적 저항과는 별도로 숭일 체제는 만주국 존립 기간 내내 견고했다.
일제 말기 조선에서 벌어진 황국신민화도 친일 엘리트들에게는 출세의 길이요 보은의 길이었다. 일반 민중들이 식민의 멍에를 벗으려 발버둥치고 있을 때 숭일 세력들은 조선의 독립적 존재보다 일본 제국의 일부가 되는 것을 근대화의 길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 자기 정체성이란 바로 일본이었고 그것만이 살 길이었다. 그들은 일본을 구원과 문명화와 존립의 기반으로 생각했고 그에 대한 감사를 자기 의무로 내면화했다.
1945년 한국의 해방은 일제의 식민을 미제의 식민으로 전환한 것에 불과했다. 반민족적 이승만과 미국의 야합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은 미국의 간섭을 항상 흔쾌히 여기는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리고 한국전쟁 과정에서의 군사 작전통제권 이양과 한미 동맹조약 체결은 대한민국을 더 이상 개선할 여지가 없는 견고한 숭미체제로 업그레이드했다. 지금 전국에는 미군과 유엔군을 기리는 파주 임진각의 미국군 참전 기념비와 부산 유엔 기념공원과 같은 기념물들이 수백 개가 널려 있다. 우리의 생존과 존재의 기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려는 인공물들이다.
대한민국의 성격 규정, 한국전쟁의 기원과 책임론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국가관에 대해서는 좌우의 논쟁이 있고 당장 시비를 가리기 어렵다. 예컨대 “애초에 분단체제와 미군정의 산물인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였다”고 보는 사람에게는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은 ‘구원’이 아니라 ‘민족 분열 영구화’의 비극이다. 그들이 지금 ‘선진 조국’ 대한민국에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으니 그들도 이를 가능케 한 미국과 유엔에 감사와 은혜의 마음을 가져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것은 논리가 안 맞는 억지다. 특정한 역사관의 강요다.
유엔군 참전은 “무조건적 선행”이 아니라 각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국제정치 행위였다. 이해관계가 있는 행위에 대해 고마움을 느낄 수는 있지만 반드시 감격하고 복종해야 할 이유는 없다. 또 유엔군 참전은 남한의 붕괴는 막았지만, 전쟁은 장기화되었고 한반도는 초토화되었으며 분단은 더 굳어졌다. 어떤 역사적 개입이 장기적 비극을 낳았다면 그 개입에 대한 평가는 단순한 감사로 끝날 수 없다. 그리고 감사는 개인의 윤리이지 국가 이데올로기가 될 수 없다. “국민이라면 반드시 유엔과 미국에 감사해야 한다”는 충성 요구는 숭미의 가치관이다.
후대에게 세습 채무를 부과하려는 것도 불합리하다. 1950년에 어떤 외국 군대가 남한을 도왔다는 사실이 2026년의 한국 시민에게 “미국에 계속 고마워하라”는 정치적 빚으로 자동 승계되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기억은 가능하지만, 그것이 외교적 종속이나 비판 금지의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유엔군 참전이 남한을 도운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서, 오늘의 우리가 그것을 반드시 감사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요는 숭미세력들이 미국과 합세해 대한민국을 한미동맹의 ‘굴레’에 묶으려 별의별 일을 다 벌인다는 것이다.

서울시장 오세훈이 조성해 5월 12일 공개한 광화문 광장의 ‘감사의 정원’은 “받들어 총” 모양 조형물로 한국과 22개 참전국을 기리고 있다. 외국 군대에 대한 충성과 감사의 자세를 조형물로 세운 셈이다. 한국 외무부 건물 바로 앞이면서 미 대사관 맞은편에 자리 잡은 조형물은 대한민국의 기원을 유엔군과 미국이 주도한 자유진영의 구원 서사로 강조하고 있다. “한국전 참전국을 기억하자”는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은 자유진영의 희생으로 보존되었으니 우리는 그 은혜를 광화문 한복판에서 영구히 기억해야 한다고 강압하고 있는 셈이다.
이 조형물이 미국만을 바라보고 가지 않겠다는 이재명 정부의 자주적 외교 행보에 대해 국힘과 극우세력이 극렬히 저항하고 있는 시점에 공개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미국의 이해를 앞장서 대변했던 윤석열이 내란을 일으키기 직전에 승인된 계획이다. 광화문을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한 희생에 대한 감사의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감사의 정원’은 대한민국의 탄생과 생존을 내부의 민중적이고 민주적인 역량보다 미국 주도 질서의 공헌임을 강조한다. 숭미적 국가기원론이다. 만주국과 일제 식민지 하의 숭일세력이 가졌던 자기의식의 본질이다.
6·25 참전국을 기억하는 사업은 이미 차고 넘친다. 우리 해방이후 역사와 전쟁에 대한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 작업은 턱없이 부족한 마당에 과거 숭미정권들이 앞 다투어 벌여온 감사와 보은의 행정을 언제까지 용인할 생각인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장소에서까지 외국 군대에 충성하는 몸짓을 보이려는 세력을 얼마나 더 인내할 생각인가.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란 결국 미국 주도 유엔군의 구원이라고 무의식에라도 인정할 것인가. 나라를 주권독립국으로 우뚝 서지 못하게 할 불순한 저의로 조성된 광화문 ‘숭미의 정원’은 당장 폐기할 일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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