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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대행 사퇴...경향 “실망스럽고 무책임” 조선 “정권 압박 시달려”

[아침신문 솎아보기]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이후 검찰 ‘대행의 대행’ 체제로

한겨레 “검찰의 선택적 반발과 과도한 부풀리기 국민들 혼란스럽게”
한국일보, 노만석 대행에 “거취와 별도로 외압 유무 명백히 밝혀야”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지난 10일 대검찰청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지난 10일 대검찰청에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찰청 차장검사)이 12일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7월 심우정 당시 검찰총장의 사퇴로 총장 직무대행을 맡은 지 4개월 만이다. 언론은 이같은 상황에 대해 ‘대행의 대행’ 체제라며 초유의 사태라 명했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이후 검찰 내부 집단 반발 사태 등이 일어나자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은 노 대행의 거취와는 무관하게 외압 유무 등이 있었는지에 대해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언론은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사퇴를 일제히 1면으로 배치했다. 대부분의 일간지들은 노만석 사퇴와 검찰의 집단행동을 중심으로 제목을 뽑았지만 조선일보는 노만석 대행이 12일 저녁 자택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인 “저쪽(현 정권) 요구 수용 어려워 많이 부대꼈다”를 제목으로 뽑았다. 다음은 노만석 사퇴와 관련한 주요 일간지 1면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대장동 1차 수사 지휘부 “검찰, 선택적 집단행동”>
국민일보 <노만석 사퇴…檢초유 ‘대행의 대행’ 체제>
동아일보 <노만석 檢총장대행 사의…‘대장동 항소포기’ 5일만>
서울신문 <노만석 대행 사의 검찰 수뇌부 공백>
세계일보 <‘항소포기’ 닷새만에 노만석 결국 사의>
조선일보 <“저쪽(현 정권) 요구 수용 어려워 많이 부대꼈다”>
중앙일보 <노만석 사의, 대검부장단 퇴진 종용에 결심>
한겨레 <검란 번지자…노만석 사의>
한국일보 <노만석 사의…검찰 초유의 ‘리더십 공백’>

노 대행은 지난 7일 ‘대장동 사건’에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의 항소 의견을 불허하고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 이후 검찰 내부에서 평검사부터 검사장까지 사퇴 요구가 나오는 등 검란(檢亂) 사태가 일어났다.

대부분의 주요 일간지들은 노만석 대행이 사의를 표명하고 검찰 조직의 ‘대행의 대행’ 체제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기사를 1면으로 배치했다. 한겨레 등은 1면 기사에서 노만석 대행이 사의를 표명한 후 정성호 법무부 장관, 더불어민주당 등의 반응을 종합했다.

▲13일 조선일보 1면.
▲13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노 대행이 12일 저녁 자택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을 1면에 담았다. 조선일보 1면 기사 <“저쪽(현 정권) 요구 수용 어려워 많이 부대꼈다”>에 따르면 12일 사의를 표명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저쪽에서는 지우려고 하고 우리는 지울 수 없는 상황이지 않나. 참 스스로 많이 부대껴 왔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4개월간 검찰 수장으로 있으면서 현 정권의 요구와 압박에 시달려왔다는 뜻으로 풀이된다”며 “법조계에서는 ‘지우려는 쪽은 현 정권, 지우려고 하는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기소된 사건들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나왔다”고 전했다.

노 대행은 12일 오후 9시 30분쯤 자택에서 기자들을 만나 “옛날에는 정권하고 (검찰이) 방향이 같았는데 지금은 정권하고 (검찰이) 방향이 솔직히 좀 다르다”면서 “전 정권이 기소해 놓았던 게 전부 다 현 정권의 문제가 돼버리니까 현재 검찰이 저쪽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받아주기 어려운 상황이지 않느냐”, “그쪽에 가는 것도 솔직히 쉽지는 않았다. 그래서 홀가분해 시원섭섭하다”고 말했다. 이어 노 대행은 또 “제가 한 일이 비굴한 것도 아니고 저 나름대로 우리 검찰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며 “이 시점에서는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부득부득 우겨갖고 조직이 득 될 거 없다 싶어서 이 정도에서 빠져주자 이렇게 결정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이에 따라 법무부가 ‘항소 포기’를 시키려고 노 대행을 압박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정성호 법무장관과 이진수 법무차관이 실제 노 대행에게 외압을 행사했는지에 시선이 쏠리게 됐다”고 전했다. 동아일보 역시 1면 기사에서 노만석 대행이 12일 오후 기자들과 만나 한 말을 주로 전했다.

▲13일 경향신문 1면.
▲13일 경향신문 1면.

경향신문 1면 기사는 검찰의 내분 분위기를 전했다. <대장동 1차 수사 지휘부 “검찰, 선택적 집단행동”> 기사에서 경향신문은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1심 선고 항소 포기 사태’ 이후 검찰 내부의 반발이 이어지자 대장동 사건을 처음 맡아 수사했던 ‘1차 수사팀’ 일부가 ‘선택적 문제 제기’라고 비판했다”며 “이들은 ‘2차 수사팀’의 반발과 일부 검사장과 지청장들의 집단성명 등에 대해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에 대한 검찰총장의 즉시항고 포기 때와 다른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밝혔다며 이번 사태로 검찰 내분 양상까지 드러나는 분위기”라 전했다.

경향신문, 1면 이어 사설에서도 검사들의 ‘선택적인 검란’ 등 내분 전해

주요 일간지들은 사설에서도 노만석의 사퇴를 다뤘다. 경향신문·한겨레·한국일보는 노만석 대행의 설명 부족과 항소 포기 경위 불투명성을 비판했다. 특히 경향신문은 1면에 이어 검사들의 ‘선택적 검란’을 지적했다. 국민일보·서울신문 역시 노 대행 사퇴로 끝날 사안이 아니며 외압 여부 등 진상 조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세계일보는 대통령실의 입장 표명 촉구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민주당의 검사 비판 발언을 문제 삼는 사설을 실었다.

다음은 노만석 대행의 사퇴와 관련한 사설 제목이다.

경향신문 <노만석의 ‘침묵 사퇴’도, 선택적인 ‘검란’도 무책임하다>
국민일보 <항소 포기, 총장대행 사퇴로 끝낼 일 아냐… 외압 규명이 핵심>
서울신문 <‘항소 포기’ 책임, 검찰총장 대행 사퇴로 덮을 일 아니다>
세계일보 <대통령실이 입장 표명하고, 與는 검사들 겁박 멈춰라>
조선일보 <옳은 말 한 검사들에게 “사법 처리” “겁먹은 개”라니>
중앙일보 <검사 반발을 ‘친윤 항명’으로 몰아가는 민주당의 억지>
한겨레 <노만석 대행, 책임 회피 말고 사실관계 명확히 밝혀라>
한국일보 <사의 표명 노만석, 외압 의혹 진실 밝히고 물러나는 게 마땅>

경향신문은 사설에서 “기본적으로 노 대행의 결정과 사퇴 과정은 매우 부적절했다”며 “법리보다 정무적 판단만을 앞세우다보니, 온갖 설과 억측만 키운 꼴이다. 정진우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 했지만, 정작 정 지검장은 사의를 표했다. 검찰의 수장으로서, 노 대행이 국민과 검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해도 부족한 판에 ‘다음에 말씀드리겠다’며 입을 닫은 것도 실망스럽고 무책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사태로 검찰에 대한 신뢰도는 더욱 추락했다”며 “항소 포기를 이재명 정부 공격 소재로 삼아 벌떼처럼 일어난 검사장과 검사들의 모습에서 공익의 대변자는 없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 해결사 노릇을 한 것에 사과와 반성 한마디 없던 자들이 벌인 ‘선택적 검란’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13일 경향신문 사설.
▲13일 경향신문 사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노 대행의 사퇴로 이 문제가 온전히 매듭지어질지는 의문이다. 노 대행은 사실관계를 명확히 밝혀 불필요한 오해를 낳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이번 검찰의 항소 포기가 이례적이라 하더라도, 검찰의 선택적 반발과 과도한 부풀리기는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검찰청 해체와 수사권 박탈에 대한 저항을 조직화하려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다.

한국일보 사설 “노 대행, 거취와 별도로 외압 유무 명백히 밝혀야”

한국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노 대행이 항소 포기 경위조차 제대로 밝히지도 않고 물러나는 것은 무책임하다. 거취와 별도로 △외압 유무 △정치적 고려 여부 △‘항소 포기-보완수사권 거래설’ 진위를 국민 앞에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전했다.

국민일보와 서울신문은 이번 일이 노 대행의 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라며 이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주장했다. 국민일보는 사설에서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결정을 둘러싼 외압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책임선상에 있는 이들이 모두 ‘내겐 잘못이 없다’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식의 해명을 내놓고 있다.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의 설명이 엇갈려 진실 공방으로까지 비화되면서 이번 사태는 특정인이 물러나는 식으로 정리되기는 어렵게 됐다”며 “노 대행이 답할 차례다. 사의를 표명하고 수리된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이번 사태의 책임을 제대로 지는 일”이라 전했다. 서울신문도 이날 사설에서 “떠넘기기 양상까지 보이고 있는 대검찰청과 법무부 사이의 철저한 책임 규명과 함께 검찰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실질적 개혁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 전했다.

세계일보는 대통령실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세계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대통령실은 입을 꽉 다물고 주무 장관은 ‘대통령실과 무관하다’는 주장을 편다고 해서 ‘항소 포기는 이 대통령 방탄이 목적’이란 의구심이 사라지겠는가”라며 “앞서 이른바 ‘재판중지법’ 입법에 반대한다고 밝힌 것처럼 이번에도 대통령실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순리일 것”이라 전했다.

▲13일 조선일보 사설.
▲13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관련해 민주당의 발언을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장동 항소 자제에 대해 지검장, 지청장이 집단 반발하는 것은 항명, 겁먹은 개가 요란하게 짖는 법”라고 한 발언에 대해 “협박에 가까운 비난”이라 전하고 “터무니없는 검찰의 항소 포기에 분노하는 것은 검사들만이 아니다. 국민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중앙일보 역시 사설에서 않으면 모두 친윤계이고 내란 세력이란 말인가”라고 전했다.

“여당 지도부가 국민적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에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검찰 전체를 범죄 집단인 것처럼 매도하고 나선 것”이라며 “민주당의 일방적인 주장에 동조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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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보당 최나영 의원, “의정활동, 주민 마음 헤아리는 것부터”

기자명

  •  한경준 기자
  •  
  •  승인 2025.11.12 17:40
  •  
  •  댓글 0
 
 

주민이 문자로 남긴 민원, 3년간 마음에 담고‥ 끝내 해결
의원 되기 전후, 정보 접근성이 가장 큰 변화
'이 사람은 우리와 같구나', 가장 기쁜 말
100가지 중에 97가지를 남겨 놓고 하루를 마감하는 죄책감

ⓒ김준 기자
ⓒ김준 기자

주민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제 의정활동의 원칙이었던 것 같습니다.

노원구의회 최나영 의원(진보당)은 인터뷰 내내 '주민의 마음'을 가장 앞자리에 놓았다. 지난 2022년 서울에서 유일하게 진보정당 당선자가 된 최 의원은 이제 의정활동 4년 차를 맞았다. 그는 사소해 보이는 민원 속에서도 주민 삶의 애환이 서린 핵심 문제를 포착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슬로건이 아니라, 그의 하루하루를 채우는 실천의 출발점 같아 보였다.

ⓒ김준 기자
ⓒ김준 기자

주민의 절박함을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최 의원의 진정성은 구체적인 민원 해결 과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선거운동 중 접수된 '국민은행 ATM 설치' 요구는 그의 집념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금융 공백으로 현금 생활이 어려워진 고령층 주민들을 위해 그는 은행을 상대로 한 치열한 협상을 이끌어 설치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ATM 설치 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 제기한 '출입문 접근성' 문제를 추가로 해결하며, 진정한 문제 해결은 한 번이 아니라 끝까지 함께하는 것임을 증명했다.

다시 설치된 국민은행 ATM(왼쪽) 이후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해 1개월 만에 다시 조정된 휠체어 오름길(오른쪽)
다시 설치된 국민은행 ATM(왼쪽) 이후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려해 1개월 만에 다시 조정된 휠체어 오름길(오른쪽)

그의 성실함은 시간을 관통한다. 3년 전, 공릉동 체육센터 건립 당시 한 특수교육 실무사로부터 "장애인 수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장문의 문자를 받았다. 그는 이 한 통의 문자를 3년 동안 마음에 간직하며 프로그램이 상시 운영되도록 관철시켰다.

처음 민원을 주신 그분의 마음이 너무 인상 깊었습니다. 그 마음을 3년간 가슴에 담아두고, 중간중간 계속 체크했죠.

그의 말에서 주민의 고충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는 진보당의 '민중성'이 단순한 이념이 아닌, 한 사람의 삶을 향한 깊은 공감과 책임감으로 이어짐을 확인할 수 있다.

7회 노원 주민대회, '주민 의원'과 함께 한 직접정치의 현장

최나영 의원에게 주민대회는 단순한 의견 수렴의 장이 아니다. 그것은 주민이 직접 정치의 주체가 되는 살아있는 민주주의 현장이다. 특히 지난 7회 주민대회는 '주민 의원' 제도를 통해 한 단계 진화했다. 단순히 의제를 발의하는 것을 넘어, 실행과 면담, 해결 과정 전반에 직접 참여하는 주민들에게 '주민 의원'이라는 이름을 부여한 것이다.

정보 접근성이 가장 크게 변했어요.

노원 주민대회가 벌써 7회를 맞았다. 최 의원은 의원이 되기 전과 후, 주민대회의 가장 큰 변화는 ‘정보 접근성’이라고 즉답했다.

구의원이 된 최 의원은 자료 요구권 등을 통해 알게 된 행정 시스템을 '주민 의원'들과 적극 공유한다. 이를 통해 학교 급식·미화 노동자들의 휴게실 개선, 어린이집 우수 식재료 지원 예산 지키기 등 구체적인 주민 요구가 제도 안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했다.

 
ⓒ김준 기자
ⓒ김준 기자

예전에는 '구청 할 일이 아니다'로 끝났던 문제들을, 이제는 주민들과 함께 파고들어 예산을 확보하고 해결책을 만들어갑니다.

이번 주민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의제는 '아픈 아이 돌봄센터 확대'였다. 이는 그의 남은 임기 동안 가장 절실하게 풀고자 하는 과제와 직결된다. 현재 행정의 답답함에 마음 아파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서울 시민 운동으로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주민대회는 이런 중대한 과제를 주민의 목소리로 증폭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겸손의 정치, 스스로를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는 마음

최나영 의원은 스스로를 '낮은 자세로 한결같이' 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최나영 하면 무슨 색이 생각나요?"라는 질문에 주민들이 "따뜻한 주황색"이라고 답하거나, "의원님은 항상 정신없이 뛰어다닌다"고 한 말을 기억한다. 이처럼 그는 화려한 정치인이 아닌, 주민들과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웃으로 남고 싶어 한다. 이런 그의 모습은 오히려 주민들에게 더 큰 신뢰를 준다.

제가 주민들 곁에서 늘 똑같이 뛰어다니는 모습이, '이 사람은 우리와 같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그게 좋더라고요.

그의 겸손은 스스로에 대한 평가에서 더욱 빛난다. 주변에서 '일을 정말 많이 한다'는 칭찬을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김준 기자
ⓒ김준 기자

늘 100가지 일 중에 3개 해결하고 97가지를 남겨놓고 하루를 마감하는 기분입니다. 의원이 된 날부터 지금까지 해드린 일보다 못 한 일이 많아 늘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이 말은 그가 주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는 강한 사명감과 책임감에 기인한다. 그의 성실함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끊임없이 전진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셈이다.

최나영 의원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보다, 주민의 곁에서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묵묵히 길을 파고드는 정치인이다. 7회 노원 주민대회는 그의 이런 정치 철학이 '주민 의원'들과 함께 구체적인 성과로 피어나는 현장이었다.

그의 진정성과 성실함, 그리고 늘 부족함을 느끼며 더 높이 뛰려는 그의 겸손함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정치가 되찾아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최나영 의원과의 일문일답]

Q. 의원 4년차에 접어들었는데, 그간 스스로 세운 의정활동의 원칙이 있었다면?

A. "주민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하면서 활동하자"라는 것이 제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슬로겐이 아니라, 겉으로는 사소해 보이는 민원 속에 담긴 주민들의 삶의 애환을 읽어내는 '포착하는 힘'의 중요성으로 이어집니다. 예를 들어, 월계역 배차 간격 문제처럼 다른 정치인들은 중요하게 보지 않았지만, 수많은 노동자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캐치해 주민 운동으로 발전시킨 경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진보당의 '민중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주민들의 삶과 지배 구조를 이해하기 때문에 가능한 차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민원 사항은?

A. 두 가지 사례가 특히 인상 깊습니다. 첫째는 국민은행 ATM기 설치 사업입니다. 금융자본의 비용 절감으로 인한 지점 통합으로 고령층 주민들이 현금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선거운동 기간 주민들과 함께 은행을 상대로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단순히 ATM을 설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장애인 이용자의 휠체어 접근성을 위해 경사로와 출입문 위치를 재설계하는 추가 공사까지 진행했습니다. 이는 문제 해결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둘째는 장애인 수영 프로그램 도입입니다. 3년 전 한 특수교육 실무사로부터 장문의 문자를 받았는데, 장애 아이들에게 수영이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 해소에 얼마나 중요한지 상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당시 노원구에는 상시 운영되는 장애인 수영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3년 동안 이 문제를 간직하며 새로 지어지는 공릉 구민체육센터에 프로그램이 반드시 도입되도록 관철시켰습니다. 그러나 개관을 앞두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사용하면 불편할 것"이라는 행정 측의 판단으로 프로그램이 무산될 뻔했으나, 2주간의 집중적인 행정 압박 끝에 결국 프로그램을 설립했습니다.

Q. 소개하고 싶은 지역주민이 있다면?

A. 방금 언급한 특수교육 실무사 선생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본인이나 가족이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니셨습니다. 직업적인 경험을 통해 장애 아동들에게 수영이 얼마나 치료적인 효과가 있는지 깨닫고, 직접 장문의 문자를 보내 민원을 제기하셨습니다. 그분의 그 마음 - 타인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그 마음이 너무나 인상 깊었습니다.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프로그램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함께 해주셨습니다.

Q. 남은 임기 동안 가장 집중하고 싶은 과제?

A. 소아 의료 공백과 아픈 아이 돌봄 센터 확대 문제에 가장 집중하고 싶습니다. 현재 노원구에는 아픈 아이 돌봄 센터가 하나뿐이며, 운영 시간과 규모 모두 턱없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문제는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행정측에서 추가 확대를 어려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울산 동구 김종훈 구청장님의 말씀처럼 "세상에 해결 못할 일은 없다"고 믿습니다. 현재 이 문제를 노원구의 단일 문제가 아닌, 서울 시민 모두의 과제로 만들어가는 운동을 준비 중입니다. 공공의료 확대의 일환으로, 특히 소아과 의사 부족과 돌봄 공백 문제를 체계적으로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Q. 노원 주민대회, 의원이 되기 전과 후의 가장 큰 변화는?

A. 정보 접근성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발생했습니다. 의원이 되어 자료 요구권 등을 통해 행정 시스템의 내부 구조를 파악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초중고등학교 미화 노동자들의 휴게실 개선 문제를 들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주민들이 "다리 뻗을 데 없고 샤워실이 너무 춥다"는 식의 호소만 있었고, "이건 교육청 할 일"이라는 답변으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의 교육경비 보조금 제도 안에 '급식 미화 노동자 휴게시설 개선'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고, 19개 학교에 예산을 확보해 실제 시설을 개선할 수 있었습니다.

Q. 7회 주민대회의 가장 의미 있는 성과는?

A. 가장 큰 성과는 '주민 의원' 제도를 본격 도입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의제를 발굴하는 것을 넘어, 해당 의제를 직접 실행하고 행정 기관과의 면담에 동행하며 해결 과정 전반에 참여하는 주민들에게 부여된 명칭입니다. 약 80여 명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연차를 내고 구청 면담에 동행하는 등 높은 참여도를 보였습니다. 이를 통해 단기적인 행사가 아닌, 일년 내내 지속되는 주민 참여의 토대를 마련했다고 생각합니다.

Q. 노원 주민들에게 '최나영 의원' 하면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A. "낮은 자세로 한결같이" 활동하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습니다. 저는 주민 분들이 저를 두고 "의원님이 항상 정신없이 뛰어다니신다"거나, "아직도 중고등학생 자녀 밥 챙겨드리는 게 걱정될 정도로 바쁘게 산다"고 말씀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을 때, 저는 주민들과 같은 일상을 공유하는 이웃으로 남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오히려 기분이 좋습니다. 화려한 정치인보다는, 때로는 허술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러나 항상 주민 곁을 지키려 노력하는 진실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가장 소중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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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 재판부, '인사이동 전 반드시 처리' 입장 누누이 밝혀…'지연된 정의' 안 된다는 데 모든 법관 공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수괴 혐의 재판 지연 우려에 대해, 대법원이 "저희들도 정의가 지체되면 실질적 정의가 아니란 생각을 가지고 신속한 재판을 위해 많이 노력하고 있다"며 "해당 재판부도 '국민이 지켜보는 중요한 재판이라서 인사이동 전에 반드시 처리한다'는 입장을 누누이 밝힌 바 있는 것으로 알고, 저희도 그렇게 믿고 지켜보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12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의원이 "(내란죄) 재판이 이 정도까지 시간이 지연될 이유가 뭐냐"며 "지귀연 판사가 윤석열과 원팀이 됐다", "내란 수괴에게 시간을 벌어주는 행태"라고 비난한 데 대해 이같이 답변했다.

 

천 처장은 '12.3 비상계엄이 위헌·위법이라는 것이 상식 아니냐'는 지적에는 "저희들도 그런 입장을 가졌고, 제가 법사위에서 그런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며 "엄중한 헌법 위반 사항"이라고 확인했다.

천 처장은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지적에 "의원이 말씀한 정의의 기본원칙에 깊이 공감한다"며 "이 시간에도 관련 사건 재판이 국민을 위해서라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신속하게, 지연된 정의가 되지 않도록 (그) 결론을 떠나서 재판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모든 법관이 공감하고 있으리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해당 재판, 또 같은 유형의 재판이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중앙지방법원뿐 아니라 법원행정처에서도 여러 물적·외적 지원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며 다만 "그것(지원)을 넘어서서 개별 재판에 대해 저희가 관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한계를 이해해 달라"고 부연했다.

천 처장은 지귀연 부장판사가 재판을 진행하며 가벼운 언행을 보여 논란이 일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법원행정처장이) 개별 재판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씀은 있지만 말씀드리지 않겠다"고 언급을 피했다.

 

지 부장판사의 휴대전화 교체 논란에 대해, 그가 최근 2차례 휴대전화를 바꾼 이유를 파악해 봤냐는 질문이 나오자 천 처장은 "하지 않았다"며 "사법행정이 개인 사생활에 대해 관여하면 그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절차를 통하지 않고서 저희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룸살롱 접대' 의혹 등 지 부장판사의 개인 비위 의혹에 대해 법원 윤리감사관실이 결론을 내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서는 "윤리감사관실은 독립된 기관"이라며 "(다만) 지금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국민이 주시하는 사안이다 보니 공수처 수사 결과를 참고해 최종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언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천대엽 법원행정처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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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가협 40년, 어머니들의 눈물로 세운 인권의 역사” 기록 시작

민가협 창립 40주년 기념사업 본격 추진

  • 기자명 김래곤 통신원 
  •  
  •  입력 2025.11.12 15:49
  •  
  •  수정 2025.11.12 21:57
  •  
  •  댓글 0
민가협 어머니들이 참석자들과 함께 2014년 10월 16일, 탑골공원앞에서 민가협 1000회 목요집회를 끝마치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민가협 어머니들이 참석자들과 함께 2014년 10월 16일, 탑골공원앞에서 민가협 1000회 목요집회를 끝마치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1980~90년대 군사독재 시절, 부당하게 구속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보랏빛 스카프를 두르고 거리로 나섰던 어머니들의 산실,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이하 민가협)이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민가협은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 인권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며, 고문과 불법 구금, 교도소 내 인권 침해에 맞섰다. 시위 현장에서는 학생과 시민을 몸으로 지켜냈고, 교도소와 수사기관 앞에서는 고문 중단과 재발 방지를 강력히 촉구했다.

민가협은 1985년 12월 12일, 국가폭력과 인권유린 피해자 가족들이 결성한 단체로, 지난 40년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해왔다.

1980년, 90년대 민가협 어머니들이 거리에서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1980년, 90년대 민가협 어머니들이 거리에서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1980년, 90년대 민가협 어머니들이 거리에서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1980년, 90년대 민가협 어머니들이 거리에서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민가협은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각 대학 민주동문회와 독재시절의 ‘양심수’들이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결성하고, 민가협 40년 역사를 정리한 아카이브 구축, 사진집, 기념도서 발간, 헌정공연 등 다양한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민가협 창립 40주년을 기념하여 우원식 국회의장은 “민가협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활동은 민주주의를 제도적 수준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는 숭고한 실천이었다”며 “민가협의 정신이 다음 세대와 함께 나누어지길 바란다”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순덕 민가협 의장이 지난 9월 11일, 이재명 대통령 당선 100일 기자회견을 하는날, 당대표실에서 서로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업사업회]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순덕 민가협 의장이 지난 9월 11일, 이재명 대통령 당선 100일 기자회견을 하는날, 당대표실에서 서로 손을 잡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업사업회]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민가협 어머니들이 꿈꾸셨던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완전한 내란의 종식과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통해 그 뜻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김영훈 노동부 장관, 손솔 진보당 국회의원, 배우 안내상·우현·정진영·조진웅,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 등도 영상 메시지로 40주년을 축하했다.

1980년, 90년대 민가협 어머니들이 거리에서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1980년, 90년대 민가협 어머니들이 거리에서 양심수를 전원 석방하라고 외치고 있다.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기념사업위원회는 “민가협은 지난 40년간 ‘촛불혁명’과 ‘빛의 혁명’의 모태가 된 단체로, 어머니들의 희생과 헌신이 민주주의의 뿌리를 세웠다”며 “민가협의 정신이 잊히지 않고 계승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다음은 지난 40년간 민가협의 주요 활동을 정리한 것이다.

독재정권도 벌벌 떨게 만든 ‘보랏빛 스카프’의 힘.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독재정권도 벌벌 떨게 만든 ‘보랏빛 스카프’의 힘.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①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1989~2007)

1989년 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첫 공연을 개최한 뒤, 매년 겨울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을 열며 양심수 석방과 인권보호를 호소했다. 민족예술인에서 대중예술인까지 폭넓은 참여가 이어지며 18년간 지속된 대표적 인권문화제였다.

② 목요집회 –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1993~2020)

1993년 9월 23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2020년 2월까지 27년간 총 1,257회 진행된 ‘목요집회’는 양심수 현실과 국가보안법의 문제를 사회에 알리는 장이었다. 이 집회를 통해 초장기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고, 어머니들은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③ 민가협장터 – 양심수석방 기금 마련(1992~2018)

서울대학교 오월제와 대동제 기간에 열린 민가협장터는 ‘양심수석방기금 마련 장터’로 27년간 총 54회 개최되었다. 어머니들의 손맛이 담긴 음식으로 모은 수익금은 영치금과 석방운동 기금으로 쓰였다.

④ 교도소 인권투쟁 및 면회운동

교도소 내 폭력과 차별을 근절하기 위한 방문투쟁을 이어가며, 안기부·대공분실 등 무소불위 기관의 인권침해를 고발했다. 경찰에 연행되고 폭력을 당하면서도 어머니들의 투쟁은 ‘인권 119’로 불리며 수많은 양심수에게 힘이 되었다.

세상을 바꾼 어머니들이 ‘3대 인권투쟁’.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세상을 바꾼 어머니들이 ‘3대 인권투쟁’.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⑤ 반민주악법 철폐 운동

민가협은 국가보안법·사회안전법·보안관찰법 등 반민주악법 철폐를 위해 지속적으로 투쟁했다. 그 결과 사회안전법(1989), 전향제도(1998), 준법서약서(2003)가 폐지됐다. 또한 공안문제연구소 폐지(2004)를 이끌며, 민주화운동보상법 제정에도 참여했다.

⑥ 비전향장기수 송환 및 조작간첩 사건 공론화

1990년대 중반부터 초장기수 문제를 세상에 알리고, 1999년 12월 31일까지 모든 비전향장기수를 석방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이어 2000년 9월에는 63명의 비전향장기수가 북녘 고향으로 송환되는 역사적 사건을 이끌었다.

⑦ 고문기술자 이근안 현상수배(1989)

1989년 2월, 민가협은 국민수사를 선언하며 고문경관 이근안을 현상수배했다. 이후 10년간 200여 명의 고문수사관을 고발하는 활동으로 1999년 이근안의 자수를 이끌어냈다. 이 운동은 고문 근절을 위한 인권투쟁의 상징으로 남았다.

⑧ 민주화운동 관련 법 제정 참여

민가협은 피해자 가족이라는 특수한 위치에서 입법 로비와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단순한 지원단체가 아닌 입법 추진 주체로서 민주화운동 관련 보상법 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⑨ 인권강좌 및 시민교육(2000~2007)

총 49회에 걸쳐 열린 인권강좌는 악법 연구, 한미관계, 검찰개혁, 한반도 평화문제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인권·평화교육의 장이 되었다.

⑩ 해외 연대 및 국제인권활동

민가협은 국내 투쟁을 넘어 아르헨티나 ‘5월 광장 어머니회’ 등과 연대하며 세계 인권운동과 보폭을 맞췄다. 또한 국제인권활동가들과 함께 목요집회를 이어가며 보편적 인권의 가치를 확산시켰다.

40년간 ‘보랏빛 스카프’로 상징된 민가협 어머니들은 국가폭력에 맞서 싸운 민주화운동의 주역이자, 오늘날 인권운동의 뿌리로 남아 있다.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폐지, 그리고 인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향한 그들의 외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음은 민가협 40주년 주요 일정이다.

‘엄마의 보랏빛 꿈’ 제목의 치열한 현장 사진전 포스터.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엄마의 보랏빛 꿈’ 제목의 치열한 현장 사진전 포스터.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① 기념 사진전 : 11월 13일(목)~21일(금), 인사동 아지트미술관 제1전시관

‘보랏빛 어머니들’의 치열한 현장 사진 공개

② 기념 심포지엄 : ‘민주와 인권을 향한 40년, 어머니의 위대한 여정’: 11월 27일(목), 국회의원회관 8간담회실에서 김준혁, 김영진, 김태년, 민병덕, 박홍근, 이인영, 진성준 의원 등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40명의 국회의원이 공동주최로 참여할 예정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민가협 40주년 기념 특별헌정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민가협 40주년 기념 특별헌정 공연 포스터.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③ 헌정공연 : ‘어머니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12월 13일(토), 한양대학교 올림픽체육관, 김준혁, 김영진, 김태년, 이인영, 진성준 의원 등 40명의 여야 의원 공동주최, 정태춘·박은옥, 안치환, 이은미, 동물원, 꽃다지, 노래마을, 도종환 시인 출연 / 사회: 권해효·최광기

‘엄마의 보랏빛 꿈’ 제목의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진집 표지 모습.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엄마의 보랏빛 꿈’ 제목의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진집 표지 모습.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④ 또한, 온라인 기록관(https://www.archivecenter.net/minkahyup)을 통해 민가협의 40년 활동 기록이 디지털 아카이브로 공개되며, 기념도서와 사진집, 구술영상도 순차적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기념사업위원회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발자취는 한국 민주주의의 살아있는 역사”라며 “다음 세대가 기억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참여 및 문의>

보라빛스카프단 참여: https://bit.ly/민가협40주년기념사업
후원계좌: 국민은행 031601-04-164394 (예금주: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홈페이지: www.m40.kr
문의: 안영민 상임운영위원장(010-8010-7013), 이병인 사무국장(010-3786-3535)

사진전·심포지엄·헌정공연으로 이어지는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은, 거리의 인권지킴이로 살아온 어머니들의 뜨거운 역사를 되새기는 시간으로 자리할 전망이다.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 동참 포스터.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 동참 포스터. [사진제공-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회]

안영민 민가협 4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상임운영위원장(전대협동우회 회장)은 “민가협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기억과 기록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기억이 전달되고 기록이 전승되지 않으면 그것은 역사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 위원장은 “기억과 기록이 없는 기념사업은 그저 일회성 이벤트에 불과하다”며 “현재 민가협 어머님들의 상황은 매우 안타깝다. 많은 분들이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생존하신 분들 중 상당수는 요양원에 계시거나 투병 중”이라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활동이 가능한 분은 열 분도 채 되지 않는다”며 “지금의 흐름대로라면 50주년에는 어머님들이 세상에 계시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어 “어머님들이 살아계실 때 그들의 발자취를 정리해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기념사업위원회를 구성했다”며 “이번 40주년 기념사업은 그 기억을 남기기 위한 투쟁의 연장선”이라고 밝혔다.

안 위원장은 또 “만약 윤석열 정권의 비상계엄과 내란 음모가 성공했다면, 우리는 다시 1980년대의 암흑기로 되돌아갔을 것”이라며 “그 시절처럼 구속과 수배, 고문이 일상이 되고 감옥이 양심수들로 가득 찼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1980~9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싸운 단체 중 하나가 바로 민가협이었다”며 “민가협 어머니들은 고문과 구속, 폭력의 위협 앞에서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웠다”고 회고했다.

안 위원장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 기반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과 희생, 헌신이 있었다”며 “그들을 끝까지 지켜주고 가족의 이름으로 싸워온 이들이 바로 민가협의 어머니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민가협의 40년은 단지 한 단체의 역사가 아니라, 이 땅의 민주주의가 피로 써 내려온 역사이자 그 기억을 남기기 위한 오늘의 투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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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 열풍에 신용대출 급증…불안 커지는 금융시장

이태경 편집위원다른 기사 보기
 

5대 은행 '마통' 등 1주 새 1.2조 원 증가

빚 내서 주식 · 집 사는 개인 늘어난 영향

취약성 지수 팬데믹 후 처음 3분기 연속↑

한은 "금융 불균형 축적 우려 잠재" 경고

5대 은행의 마이너스 통장 등 신용대출 잔액이 이달 들어 한 주만에 무려 1조 2000억 원 가까이 폭증했다. 증시가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는데다 주택담보대출 규제의 우회로로 신용대출이 동원되는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한편 한국은행이 집계한 금융취약성지수가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3분기 연속 상승해, 금융 불균형 축적 우려가 여전하다고 경고했다. 

 

16일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입구에 대출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5.10.16. 연합뉴스
16일 서울 시내의 한 은행 입구에 대출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5.10.16. 연합뉴스

고작 1주일 만에 1조 2000억 원 근접하게 폭증한 신용대출 잔액

11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7일 기준 가계신용대출 잔액은 105조 9137억 원으로 집계됐다. 10월 말(104조 7330억 원)보다 1조 1807억 원 늘어, 1주일 만에 10월 한 달 증가 폭(9251억 원)을 넘어섰다.

통상 신용대출 잔액은 변동성이 크지만 7일 간의 증가 폭으로는 지난 2021년 7월(+1조 8637억 원) 이후 약 4년 4개월 만에 최대 규모다. 대출 종류별로 보면, 마이너스통장 잔액이 1조 659억 급증했고, 일반신용대출도 1148억 원 늘었다.

 

5대 은행 가계신용대출 추이. 자료 : 5대 은행 자료 취합
5대 은행 가계신용대출 추이. 자료 : 5대 은행 자료 취합

빚내서 주식 사고, 집 사는 개인들 속출 

신용대출 급증세는 개인들의 주식 투자 확대와 맞물려 있다. 코스피 지수가 이달 초 4200선을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 랠리를 이어가다가 인공지능(AI) 업종 과대평가 우려로 급락했지만, 개인투자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순매수를 이어갔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주 외국인이 코스피에서 7조 2638억 원을 순매도했지만, 개인은 7조 4433억 원을 순매수하며 외국인들이 던진 매물을 전부 받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코스피가 장 중 6% 넘게 밀리면서 3800대까지 떨어졌던 지난 5일에는 하루 새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6238억 원이나 급증했다. 지수가 급등할 때 포모(FOMO·소외 공포)를 느꼈던 투자자들이 변동성 확대 국면을 '저가 매수' 기회로 보고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은행권 신용대출뿐 아니라 대표적인 빚투 지표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6조 2165억 원으로, 5일에 지난 2021년 9월 이후 약 4년 만에 최대를 기록한 데 이어 사흘 연속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보유한 주식 등을 담보로 자금을 빌린 뒤 아직 갚지 않은 금액을 뜻한다.

현장에서는 신용대출 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를 개인들의 주식매수와 주택매수로 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스피가 조정받고 있지만 여전히 고점권을 유지하면서 투자 심리가 식지 않았다"며 "레버리지 효과를 노린 투자자들의 마이너스 통장 활용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주택 관련 대출 규제를 강화함에 따라 부족한 주택 관련 자금을 신용대출로 마련하려는 수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가 이자·수수료로 올해 3분기까지 15조원이 넘는 최대 이익을 거뒀지만, 동시에 부실 대출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수년간 저성장·고금리 환경이 이어지면서 한계에 이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취약차주(대출자)들이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9일 서울 시내에 설치된 은행 ATM기를 시민들이 이용하는 모습. 2025.11.9. 연합뉴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가 이자·수수료로 올해 3분기까지 15조원이 넘는 최대 이익을 거뒀지만, 동시에 부실 대출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수년간 저성장·고금리 환경이 이어지면서 한계에 이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취약차주(대출자)들이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9일 서울 시내에 설치된 은행 ATM기를 시민들이 이용하는 모습. 2025.11.9. 연합뉴스

금융취약성지수 3분기 연속 상승세

'빚투' 열풍에 신용대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가계와 기업의 금융 취약성이 눈에 띄게 악화하고 있다.

1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금융취약성지수(FVI)는 32.9로, 2분기(31.9)보다 1포인트(p) 높아진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취약성지수는 한은은 신용 축적, 자산 가격, 금융기관 복원력 등을 종합해 분기마다 산출한다. 통상 가계와 기업 부채가 늘고, 부동산 등의 가격이 오르면 지수가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금융취약성지수는 지난해 4분기 28.6에서 올해 1분기 30.7로 오른 뒤 3분기 연속 상승세를 이어왔다. 코로나 팬데믹이 절정이던 2020년 2분기∼2021년 3분기(5분기 연속) 이후 최장 기간 상승이다.

금융취약성지수는 팬데믹 영향이 최고조에 달했던 2021년 3분기 55.2로 단기 고점을 찍은 뒤 지난해 말까지 하락세를 지속했다. 2023년 4분기 31.3으로 장기 평균(33.9)을 하회하고, 지난해 1분기 28.6으로 2018년 4분기(28.6) 이후 최저점을 기록한 뒤 소폭 등락을 반복했다.

최근 이 지수의 반등 추세는 여러 거시건전성 지표 악화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해 2분기 말 89.7%로, 1분기 말(89.4%)보다 0.3%p 상승했다. 이 비율이 상승한 것은 2021년 2분기 말 98.8%에서 3분기 말 99.2%로 오른 이후 15분기 만에 처음이다.

특히 정부가 6.27 대출 규제에 이어 후속 대책을 연달아 발표한 뒤로도 수도권 중심의 주택 가격 상승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월별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 지수는 올해 10월 100.984(2022년 1월=100)로, 2022년 9월(100.297) 이후 처음 100선을 넘었다. 이 지수는 지난해 5월(90.130) 이후 17개월 연속 상승했다.

금융기관 건전성 지표도 나빠졌다.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의 올해 3분기 말 요주의여신(1∼3개월 연체된 대출)은 총 18조 3490억 원에 달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이들 지주의 고정이하여신(3개월 이상 연체)도 9조 2682억 원으로 1년 전보다 20% 가까이 늘었다.

 

한국은행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금융취약성지수 추이. 자료 : 한국은행
금융취약성지수 추이. 자료 : 한국은행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가 여전함을 근심하는 한은

한은은 지난 9월 25일에 출간한 금융안정 상황 보고서에서 "가계대출 증가세 둔화에도 수도권 주택 가격 상승 기대가 유지되고 있어 금융 불균형 축적 우려가 여전히 잠재해 있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취약부문과 장기 업황 부진 산업 관련 익스포저 비중이 높은 금융기관 건전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서울을 위시한 수도권의 터무니 없이 높은 집값과 그 집값이 더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금융시장에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지를 한국은행은 직격하면서 염려하고 있다.

 

한국은행 전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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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만 유사시 한국을 병참기지로…일본, 자위대 진출 논란 확산

기자명

  •  한경준 기자
  •  
  •  승인 2025.11.11 18:30
  •  
  •  댓글 0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확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안규백 국방부 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열린 제57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확대회의에서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7일 국회 답변에서 “대만 유사 사태 발생은 ‘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밝혔다. 10일에는 이 주장을 “철회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중국의 항의가 이어지자 일본 정부는 수습에 나섰지만,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존립위기사태’는 2015년 평화안전법제가 규정한 요건이다. 밀접한 타국이 무력 공격을 받고, 그로 인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으며, 국민의 기본권이 근본적으로 침해될 명백한 위험이 있는 상황이다. 일본이 공격받지 않아도, 존립위기사태에 해당한다고 판단되면 자위대가 진출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존립위기사태’ 발언은 대만 사태를 일본 자위대의 작전 범위로 끌어들이는 신호탄이다. 이는 2015년 집단적 자위권을 근거로 평화안전법제를 실전 적용하려는 움직임을 예고하며, 일본이 대만 유사시 사실상 참전국 지위를 자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한편 미국 내에서는 대만 유사시 동맹국이 병참기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의 Eyck Freymann과 요크타운연구소의 Harry Halem은 11월 4일 ‘브레이킹 디펜스’ 기고에서 “일본과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소와 견고한 상선대를 보유하고 있어, 동맹과의 공동투자로 수송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미 의회의 ‘인도·태평양 억제구상’ 자금 운용도 군수·보급망에 집중하라고 촉구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의 조선·해운 인프라를 미국의 대중국 억제 병참망으로 편입하라는 제안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앤드루 여 선임연구원은 지난 3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해 2006년 한미의 공식 입장 합의 이후 한미동맹의 역할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거의 20년 동안 확대된 반면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유사시 미군은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 기지를 비롯한 한국 내 미군기지와 시설을 활용하려 할 것”이라며 오산·군산·부산의 미군기지도 대만 위기 시 어떻게 이용할지 계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연구기관과 군사 전문 매체를 중심으로 제기되는 병참기지 구상은 사실상 ‘한·미·일 병참동맹’을 의미한다. 평택·오산·군산·부산 등 주한미군 시설이 이미 인도·태평양 전역의 작전 지원 거점으로 전환되고 있으며, 이는 한반도 방위 목적을 넘어선 역외 작전용 병참체계로의 구조적 변환이다.

대만 유사시 미군은 자국의 병참 능력 부족을 동맹의 민간 인프라로 보완하려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의 조선·해운·항만 산업이 전시 병참망의 역할로 활용될 조짐이 뚜렷하다. 한국의 조선소를 활용한 미국 선박 건조 추진도 그 일부다.

결국 대만 유사시를 대비한 한·미·일 군사 동맹은 한국을 자주적 판단을 거치지 않는 전쟁 후병참 기지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다. 미국은 한국의 돈으로 보급망을 구축하려 하고, 일본은 자위대의 개입을 선언하며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그 구조 속에서 한국의 역할은 ‘결정권 있는 파트너’가 아니라 병참·보급을 담당하는 종속적 역할에 머무르게 된다. 대만 해협 위기를 명분으로 추진되는 동맹 현대화는, 결국 한국을 스스로의 안보를 지키는 주권국가가 아니라 미국 전략의 하위 기지로 전락시키는 길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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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계엄 사전에 알고도 국회 보고 안해…조태용 구속영장 발부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5/11/12 09:04
  • 수정일
    2025/11/12 09:12
  • 글쓴이
    이필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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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법 위반, 국회 의증 등의 혐의도

조태용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검찰청에 마련된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위해 출석하고 있다. 2025.10.15 ⓒ뉴스1 
 
직무유기와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이 구속됐다.

박정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2일 오전 5시 30분쯤 조 전 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박 부장판사는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은 전날 오전 10시 10분부터 오후 2시쯤까지 4시간가량 진행됐다.

내란특검팀은 지난 7일 조 전 원장에 대해 직무 유기, 국정원법 위반, 위증, 국회증언감정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조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 전 윤 전 대통령에게 관련 계획을 듣고도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하지 않았다. 또한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윤 전 대통령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통화 내용을 알렸는데도 역시 국회에 보고하지 않았다. 특검팀은 이를 직무유기로 판단했다.

또한 홍 전 1차장의 국정원 내 움직임이 담긴 CCTV 영상을 국민의힘에만 제공하고 더불어민주당이 요구한 자신의 행적이 담긴 CCTV 영상은 제공하지 않는 등 사실상 정치행위를 해 국정원법상 정치 관여 금지 의무 위반 혐의도 받고 있다.

조 전 원장이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비상대권이란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증언했으나 특검팀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윤 전 대통령의 비화폰 내역 삭제에도 관여하는 등 증거인멸 행위도 가담했다고 의심받고 있다.
 
“ 홍민철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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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복원'이라더니... 산림청이 손댄 숲의 참혹한 모습

[최병성 리포트] 산사태와 유적 파괴 우려된다... 산림사업 전수 조사가 필요한 이유

25.11.12 06:40최종 업데이트 25.11.12 07:06
단풍 숲에 하얀 첫눈이 온 것일까?최병성

단풍 숲에 첫눈이 온 걸까? 언뜻 보면 화려한 빛깔의 단풍과 백설로 덮인 나무가 어울리는 황홀한 풍경이다.

하지만 이는 '흰 눈'이 아니라 산불에 타 죽은 소나무가 잎을 다 떨어뜨린 채 반짝이는 모습이었다. 하얗게 빛나는 소나무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참나무들이 빚어내는 알록달록 무지갯빛 단풍이었다.
 
산불 후 3년여에 불과한데, 참나무들이 가득한 숲으로 자연 복원되고 있다.최병성

이곳은 국내 최대 피해 산불로 기록되었던, 지난 2022년 3월 발생한 경북 울진 산불 현장이다. 지난 4일과 5일, 이틀간 울진 산불 현장을 돌아보았다. 2022년 산불로부터 겨우 3년 7개월 정도 지났을 뿐인데, 숲은 벌써 높이 수미터에 이르는 참나무 숲으로 스스로 회복하고 있었다. 소나무가 다 타버리자 불탄 숲에서 참나무가 올라온 것이다.

산불 직후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진 새까만 숯덩이 숲이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이렇게 자연 스스로 회복하여 화려한 단풍으로 빛난다는 게 참으로 놀라웠다.
 
2022년 3월 산불 직후 새까맣게 불탔던 숲이었는데, 자연은 3년만에 불에 강한 참나무 숲으로 스스로 회복하고 있다.최병성

복원인가? 산림 파괴인가?

산불 피해지역 중 일부를 자연복원지로 남겨두는 곳이 있는데 이곳 울진이 산림청의 인공복원과 자연복원의 차이를 한 눈에 비교할 수 있는 곳이다. 자연 스스로 회복 중인 숲과 산림청이 복원한 숲은 극명한 차이가 있었다.

산림청이 조림한 나무들 대부분은 고사했다. 조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가느다란 대나무 막대기만 남아 있다. 나무가 없기에, 비만 오면 언제든 대형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불탄 곳인데, 자연 복원과 산림청의 복원이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자연이 스스로 복원한 숲(좌)과 산림청이 복원했다는 숲(우)과의 차이. 자연 복원 숲은 산사태 위험도 없고, 숲의 빠른 회복을 이루고 있으나, 우측의 산림청이 복원한 숲은 조림한 나무들은 대부분 고사됐다.최병성
 
불탄 소나무를 벌목하고 새로 나무를 심은 곳이다. 나무를 조림했다는 표시 막대는 있으나, 조림한 나무들이 고사되고 없고, 주변에 싸리나무 등이 다시 올라오고 있다. 최병성
 
자연 스스로 복원 중인 숲과는 달리, 산림청이 복원했다는 숲은 조림목은 사라지고, 지지대만 남아 있을 뿐이다.최병성
 
자연 복원과 산림청 산불 복원의 차이.최병성

산림청의 복원 현장 일부만 이런 것일까? 좀 더 넓게 살펴보았더니, 참혹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사방으로 보이는 모든 산이 마치 거대한 사막처럼 민둥산이다. 황폐해진 숲 사이사이에 임도가 사방팔방으로 펼쳐졌다.

카카오맵 항공사진을 보자. 2022년 사진엔 온 숲이 새카맣게 불탔다. 2024년 항공사진엔 불탄 나무를 싹쓸이 벌목하고 없던 임도가 만들어지고 있는 게 보인다. 이미 불탄 숲에 왜 이렇게 많은 임도가 필요한 것일까?
 
카카오맵 항공사진의 모습. 2022년 항공사진엔 온 숲이 새카맣게 불탔다. 2024년 항공사진에 불탄 나무가 싹쓸이 벌목되고, 없던 임도가 만들어지고 있음이 보인다. 최병성
 
산림청이 복원한 현장이다. 자연이 스스로 복원하는 숲과는 달리 산사태 위험이 높을 수밖에 없다.최병성

임도를 만들며 급경사면을 깊게 파내면서 산림의 심각한 훼손도 가져온 것으로 보였다. 절토 사면이 여기저기 무너지고 있었다. 무너진 절토면을 보수하면, 또 무너지기를 반복되는 현장들이 눈에 들어왔다.
 
무리한 임도 공사로 절토사면이 곳곳에 무너지고 있었다. 좌측의 임도 역시 두 곳이 무너져 있다최병성

더 놀라운 광경도 있었다. 과도한 임도 건설공사로 인해 산이 정상부로부터 붕괴된 현장이었다. 붕괴 사면을 보수 공사했으나 여전히 무너져 내리며 산사태가 지속되고 있었다.
 
무리한 임도 공사로 산이 붕괴되었다. 보수공사를 했으나 여전히 계속 무너지고 있다. 임도 절토 사면엔 무너지는 곳이 곳곳에 보인다.최병성

바로 인근의 임도 성토 사면 역시 줄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언제든 대형 산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 현장이었고, 이런 곳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미 불탄 숲에 거대한 임도를 만들었다. 임도가 언제든 산사태로 무너질 수 있는 위험한 지뢰밭임을 보여주고 있다.최병성

곳곳에 대형 콘크리트 사방댐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나 대형 콘크리트 사방시설만으로는 산 아래 마을 주민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산을 위태롭게 만든 후, 산사태 막는다며 사방시설들을 해 놓았다.최병성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산림청은 불탄 나무들을 위험목이라며, 산사태를 막기 위해 긴급 벌채를 하고 어린나무를 조림해왔다. 그러나 조림한 나무들이 대부분 고사되면서, 산사태 위험이 도사리는 위험한 지뢰밭이 만들어졌다.

산림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위반?

특히, 산림청이 지금껏 벌목·임도·산불 피해지 복구·소나무 재선충 수종갱신 사업 등을 실시하며, 국가유산기본법(전, 문화재보호법)을 제대로 지켰는지도 살펴봐야 한다.

'개발사업이 매장유산 또는 지정유산의 보존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인지 여부를 미리 조사·예측·진단하여 국가유산의 가치를 보호하고 이를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유산영향진단법 제9조에 따르면 사업면적이 3만제곱미터(3ha) 이상일 경우 영향 진단을 실시하도록 되어 있다.

산림청의 벌목 등 산림사업도 이 법에 의해 역사유적 지표 조사를 해야 한다. 산불 피해지 벌목 역시 마찬가지다. 산불특별법이라 할지라도 이 법을 초월할 수 없다.

법제처는 지난 9월 10일 "사업 면적 3만제곱킬로미터 이상인 벌채지에서 작업로·임산물 운반로가 산지의 형질을 변경하는 경우, '국가유산영향진단법 시행규칙' 규칙 제4조제1항제1호 및 제2호에 따른 지표조사 및 유존지역평가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산림청의 질의에 "지표조사 및 유존지역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산림의 형질변경을 초래하는 3ha 이상의 벌목 사업은 반드시 역사유적 지표 조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림의 형질변경을 초래하는 3ha 이상의 벌목 사업은 반드시 역사유적 지표 조사를 해야한다고 법제처가 산림청에 답을 했다.법제처

법제처는 "이 사안의 경우에는 '산지관리법' 제15조2제4항제7호에 따른 작업로·임산물 운반로의 개설을 수반하는 입목의 벌채는 산지의 형질 변경을 유발하게 되므로, '국가유산영향진단법' 제9조제1항에 따른 영향진단을 실시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적 사항에 해당되지 않으며, 국가유산의 가치보호라는 '국가유산영향진단법'의 입법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산림청의 벌목 사업 등도 "지표조사 및 유존지역평가를 받아야 한다"라고 그 이유를 부연 설명했다.

대법원은 '산림의 형질 변경'을 '절토, 성토, 정지 등으로 산림의 형상을 변경함으로써 산림의 형질을 외형적으로 사실상 변경시키고 또 그 변경으로 말미암아 원상회복이 어려운 상태로 만드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산림청은 그동안 벌목과 조림 등이 산림 훼손에 미치는 영향이 미비하다며 국가유산영향진단법 시행규칙 제4조제2항의 예외 규정(지표조사 및 유존지역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본다)을 적용해 역사유적 지표조사를 하지 않았다. 이는 지난 2006년 국민권익위원회에 '벌목과 조림사업 등이 산림 훼손 영향이 미비함에도 역사유적 지표 조사를 의무적으로 해야 한다는 국가유산영향진단법으로 인해 벌목과 조림 사업에 어려움이 있다'며 제외해 줄 것을 요청한 결과에 따른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위 산림청의 말을 근거로 국가유산청(전, 문화재청)에 산림청의 산림사업을 '예외적으로 지표조사 및 유존지역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본다'는 국가유산영향진단법 시행규칙 제4조제2항에 포함시켰다.

산림청이 국민권익위원회를 통해 받아낸 '지표조사 및 유존지역평가를 실시한 것으로 본다'는 국가유산영향진단법 시행규칙 제4조제2항에 포함된 것은 산지의 형질 변경이 없는 벌목과 조림 사업에 한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산림청은 이를 근거로 지금까지 역사유적 지표조사 없이 산림의 심각한 훼손을 일으키는 사업을 오랜 시간 지속해왔다. 핀란드처럼 평지인 외국의 산림과 달리, 대한민국은 급경사 산림에서 벌목 작업이 진행된다. 벌목한 나무를 끌어내기 위해 중장비가 오가는 작업로가 만들어지며, 이 때 산지 훼손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06년 벌목사업의 역사유적 지표 조사를 제외토록 하게했다. 그러나 예외조항에 포함되는 벌목사업은 작업로 등의 형질변경이 없는 경우에만 해당된다.국민권익위원회

대한민국 산림에 가득한 국가유산

많은 사람들이 깊은 산에 무슨 국가유산이 있는지 의아해 한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은 우리 산림에 어떤 역사 유적들이 있는지, 또 산림청의 벌목과 임도에 의한 역사 유적 훼손이 왜 문제인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의 산림은 단순한 자연 환경만이 아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산림은 삶의 터전, 군사적 요충지, 그리고 피난처로서 기능해 왔다. 우리 산림에는 1300여 개의 산성이 분포해있다는 조사 기록이 있으며, 독특하고 광범위한 역사 유적들이 산림에 밀집되어 있다.

산성은 산악 지형을 이용한 국경 방어선일 뿐만 아니라 전시 피난처로서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해왔고, 이러한 산성들은 적을 효과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능선이나 고지대에 축조되었다. 이뿐 아니라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전란을 겪었는데, 깊은 산림은 가장 안전한 은신처이자 거주지로 이용되었고, 근대까지 화전민(火田民) 문화가 있는 등, 산림에 많은 역사 유적들이 남겨져 있는데, 이에 대한 지표조사 없는 벌목과 임도 공사 등에 의한 역사 유적 훼손이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지난 2018년 5월 29일, 영남고고학회는 성명을 통해 '경북 고령의 대가야 고분군에 폭 2m가 넘는 임도가 약 1㎞에 걸쳐 조성되며 고분 10기 이상이 파괴되었다"라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한 바 있다.

또, <계족산 임도 신설 공사 구간 내 문화재 지표조사 보고서>(2008)에 따르면, 개발 행위 이전에 시행했어야 할 역사유적 지표조사 없이 임도 공사하다가 뒤늦게 문제가 되어 지표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산림사업들이 지표조사 없이 시행되며 역사 유적 훼손을 해왔을까?
 
역사 유적 지표조사 없이 임도 공사를 진행하다 뒤늦게 지표조사를 하게 되었다는 보고서.계족산 임도공사

이게 산불 피해지 '복구'가 맞나?

거미줄처럼 작업로와 임도가 온 산을 헤집어 놓았다. 2019년 산불이 발생한 강릉 옥계 산불 피해지 복원 현장의 2024년 모습이다. 항공사진을 통해 산림 면적을 계산해보니 무려 1200ha에 이른다. 지표조사 기준 면적의 400배가 넘는다.
 
강릉 옥계산불(2019)의 2024년 복원 현장 모습. 임도와 작업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최병성

산불 피해지를 복원한다며 온 산을 헤집어 놓은 울산 울주군이다. 2020년 산불이 발생 한 후 2025년 3월 현장 모습이다. 현장에 세워진 팻말엔 조림 면적이 18ha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게 정말 산림 복원일까? 아니면 산림사업자들의 돈벌이를 위한 산림파괴일까?
 
울주산불(2020년)의 복원 현장의 2025년 3월 모습. 이곳 역시 임도와 작업로가 온 산을 헤집어 놓았다.최병성

이곳은 지난 3월 역대 최악의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경북 안동. 산불 피해지 복원 사업이 한창인 현장이다. 지난 10월 말 산불 피해지 복구사업 현장을 돌아보았다. 벌목을 위한 작업로 때문에 곳곳에 파헤쳐진 산림이 눈에 들어왔다. 살아있는 참나무들까지 불법 벌목된 모습도 보였다.
 
벌목을 위한 작업로들이 산을 헤집고 있다.최병성

지금 한창 진행 중인 2025년 산불 피해 복구 현장들에선 과연 역사유적 지표 조사가 제대로 이뤄졌을까?

지난 7일 안동시청 산림과에 문의했다. 안동시가 산림청으로부터 할당받은 산불 피해지 벌목 면적은 813ha라고 했다. 역사유적 지표조사 면적 기준 3ha의 271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산불 피해목 벌목 사업 중 역사유적 지표조사가 이뤄진 게 있는지 물었다. 그 부분은 문화유적과 담당이라고 했다. 문화유적 담당부서에 문의했다. 돌아온 대답은 "지금까지 한 건도 없다"였다.

경북 의성군청에도 문의했다. 의성군이 산림청으로부터 할당받은 산불 피해지 벌목 면적은 334ha(지표조사 기준 3ha의 약 111배 면적)라고 했다. 의성군 역시 역사유적 지표조사 서류가 접수된 것이 한 건도 없었다.

산사태 유발, 문화재 파괴... 산불특별법 우려된다

지자체 산림 담당자들과 통화하며 산림 형질 변경이 발생하는 3ha 이상의 벌목 사업에 대한 역사 유적 지표 조사를 해야 한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산림청이 지금까지 알려주지 않아 아직 모르고 있었다며, 이런 사실을 왜 이렇게 다른 경로로 알아야 하는지 답답하다고 했다.

의성,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 지난 3월 의성산불 피해지에 벌목이 시작된 지 오래다. 법제처의 역사유적 지표 조사에 관한 유권해석(9월 10일)이 나온 지도 벌써 두 달이 되었다. 그러나 산림청은 이같이 중요한 사실을 지자체 산림 담당자들에게 공지하지 않은 채, 살아 있는 나무들의 불법 벌목은 물론 산불 피해지의 역사 유적 훼손을 사실상 방조하고 있다.
 
안동산불 복원 현장이다. 살아있는 참나무들이 참혹하게 잘려나가는 불법 벌목 모습이다.최병성

산불 피해지 벌목과 소나무 재선충병 피해지 벌목 이외에도 산림청은 해마다 평균 2만~2만5000ha를 벌목 조림해 왔다. 이는 역사 유적 지표조사를 해야 하는 기준 3ha의 6666배~8333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에게 지금까지 산림청이 역사유적 지표조사를 신청한 사례가 얼마나 있는지 물었다. 그는 법제처와 해당 법률의 유권해석을 하며 산림청의 지표조사 신청 목록을 뽑아보니 약 150건 정도였으며, 이 중에 벌목과 산림사업 등과 관계된 것은 약 100건 미만이라고 했다.

국가유산청은 현재 진행 중인 산림청의 산불피해지 벌목과 소나무재선충 피해지 벌목 등을 중단시켜야 한다. 정부는 벌목과 임도 등 산림청의 산림사업을 전수 조사를 실시하고, 위법행위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산불특별법에 의한 산사태와 문화재 훼손 우려돼
 
불탄 나무가 위험한 게 아니다. 불탄 나무를 위험목이라며 잘라내는 산림청의 산불 복원사업이 더 위험하다.최병성

지난 7월 산청 산사태로 많은 인명 피해와 큰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방문했던 산청 부리마을의 산사태는 지난 2009년 발생한 산불 피해지 복구 사업이 진행된 곳이다.

산청 산사태만 아니다. 2010년 남원 목동마을 산사태, 2002년 강릉 사천면 산사태, 2009년 7월 제천 봉양 팔송리 산사태 등은 산불 발생 후 산림청의 복구 사업이 진행됐던 곳이다. 이처럼 산림청의 산불 피해지의 복구 사업이 내일의 산사태를 유발함을 수없이 목격해 왔다.

대형 산불 발생 원인과 산불 재발 방지책은 단 하나도 마련하지 않은 채, 지난 9월 18일 산불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많은 시민단체들은 산불특별법이 산불 피해주민 지원을 핑계로 '산주 동의 없는 위험목 제거'와 '골프장과 콘도 등의 난개발을 초래 할 수 있는 각종 특혜 조항'들을 담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산불과 산사태를 초래하는 악법이라고 지적하였음에도, 지난 10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 법을 재가했다.
 
지난 7월 산사태가 줄줄이 발생한 산청 모고리마을의 모습. 2009년 산불 후 복원한다며 싹쓸이 벌목을 한 곳이다. 산불특별법이 불러 올 미래가 두렵다.최병성

괴물산불이라 불리는 지난 3월 의성산불은 서울시 두 배가 넘는 면적이 불타는 대한민국 역사 이래 최대 산불 피해를 기록했다. 여러 독소 조항까지 넣은 산불 특별법은 대한민국 역사 이래 최악의 산사태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처럼 역사유적 조사 없는 산불 피해지 복구 사업이 계속 진행된다면 '역사 유적 파괴'라는 또 다른 재앙을 불러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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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란 가담 공직자’ 걸러낼 TF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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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광길 기자 
  •  
  •  입력 2025.11.11 16:14
  •  
  •  수정 2025.11.11 17:44
  •  
  •  댓글 0
 

정부가 내란에 가담하거나 협조한 공직자들을 걸러낼 조직을 설치하기로 했다. 

11일 국무회의에서 김민석 국무총리는 “「헌법존중 정부혁신 TF」를 정부 내에 구성했으면 좋겠다”면서 “TF는 비상계엄 등 내란에 참여하거나 협조한 공직자를 대상으로 신속한 내부조사를 거쳐서 합당한 인사 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그는 “공직자 개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헌법수호 의지를 바로 세워서 공직 내부의 갈등을 조속히 해소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정부 내 각 부처와 기관별로 공정한 TF를 구성해서 내년 1월까지 신속하게 질서 있게 조사를 마치고 설 전에 후속조치까지 마련”하겠다며 “대통령님과 국무위원들께서 동의해지시면 총리 책임 하에 총리실에서 보다 상세한 추진지침을 만들어서 배포 드리고 추진해 나갈까 한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 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확립”인데 “현재 내란 재판과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내란 극복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가령 경찰의 국회 출입 통제, 계엄 정당성 옹호 전문 발송 이런 것들이 정부 내부에서 내란에 동조한 행태인데 이에 대해서 국회 국정감사, 언론 등을 통해 그간 계속 문제제기가 되어 왔다. 내란에 가담한 사람이 승진 명부에 이름을 올리게 되는 등 문제도 제기되고 결국은 이것이 공직 내부에서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있고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공직 사회 내부에서도 반목을 일으키고 궁극적으로 국정 추진 동력을 저하시킨다는 목소리가 많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내란에 관한 문제는 특검에서 수사를 거쳐 형사처벌을 하고 있는 건데 내란에 관한 책임은 관여 정도에 따라서 형사처벌할 사안도 있겠고 또는 행정책임을 물을 사안도 있고 또는 인사상의 문책이나 인사 조치를 할 낮은 수준도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1일 오후 브리핑하는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 [사진 갈무리-KTV 유튜브]
11일 오후 브리핑하는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 [사진 갈무리-KTV 유튜브]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새 정부 출범 5개월이 지나서야 내란 가담 공직자 조사에 나서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은 강유정 대변인은 김민석 국무총리의 발언을 빌려 대답했다. 

“국정감사 그리고 언론 등을 통해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거나 “여전히 공직사회 내부에서 반목을 일으키거나 내지는 국정 추진 동력을 저하하는 경우 그리고 때때로는 인사 승진 대상 목록에도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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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평양·핵시설 타깃" 여인형 메모 속 전쟁도발 계획... 특검, 윤석열 일반이적 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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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국
  •  
  •  승인 2025.11.11 08:54
  •  
  •  댓글 0

 

 

출근길 뉴스 브리핑 (2025.11.11.)
-송미령 장관 증언 "윤석열과 한덕수는 그날‥" 재판정 술렁
-채해병 특검, 임성근 전 사단장 구속기소···2년여 만에 재판으로
-진보당 울산, ‘감사 쪽지’로 드러난 당권 조작 의혹 “김기현, 철저히 수사하라”
-일본 총리 “대만 유사시, 자위대 출동”…중국 총영사 “그 더러운 목 베어버릴 수밖에”
-미국의 대중국 병참 기지, “한국 활용해야”
-조선중앙통신 “황해남도 배천군 새집들이 모임 진행”

"평양·핵시설 타깃" 여인형 메모 속 전쟁도발 계획... 특검, 윤석열 일반이적 기소 

내란·외환 특검팀이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과 관련해 윤석열과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여인형(전 국군방첩사령관)을 일반이적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특검팀은 근거로 여 전 사령관이 지난해 10~11월 작성한 휴대폰 메모 일부를 공개했다.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기간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찾아 공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불안정한 상황을 만들거나 만들어진 기회를 잡아야 한다. 타깃은 평양, 핵시설 2개소. (10월 18일)

▲풍선, 드론, 사이버, 테러, 국지포격, 격침 등 적의 전략적 무력시위 시 이를 군사적 명분화할 수 있을까. (10월 23일)

▲포고령 위반 최우선 검거 및 압수수색. (10월 27일)

▲비상계엄 당시 체포 명단에 오른 "이재명, 조국, 한동훈, 정청래, 김민석" 언급. (11월 9일)

특검은 메모를 근거로 비상계엄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전쟁 도발을 시도했다는 결론이다.

송미령 장관 증언 "윤석열과 한덕수는 그날‥" 재판정 술렁

내란수괴 윤석열이 12·3 계엄 선포 당일 “(계엄을) 막상 해보면 별것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는 송미령 당시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증언이 나왔다. 윤석열은 또 ‘마실 걸 갖고 와라’고 했고, 한덕수 총리에게 “당분간 대통령이 가야 할 일정이나 행사를 대신 가달라”고 지시했다. 여기서 ‘당분간’이 문제가 된다. ‘당분간’ 이라면 ‘일회성 경고 계엄’이라는 윤석열의 주장이 거짓이기 때문이다. 또한 송 장관은 한 전 총리가 ‘좀 더 빨리 오시면 안 되냐’고 서너차례 이야기했다고 증언했다. 한 총리가 국무회의 의사 정족수를 채워 불법 계엄에 정당성을 부여했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채해병 특검, 임성근 전 사단장 구속기소···2년여 만에 재판으로

채해병 특검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을 구속 기소했다. 정민영 특검보는 “임 전 사단장은 (당시 수중) 수색 상황을 인식하면서도 묵인 방치했다”며 “임 전 사단장의 작전 지휘가 업무상과실에 해당되고 (채 해병의) 사망 원인이라 판단했다”고 밝혔다.

임 전 사단장은 채 해병 순직 2년만에 순직사건에 대한 책임을 법정에서 판단받게 됐다. 채 해병 순직 당시 해병대 수사단은 임 전 사단장을 경북경찰청에 송치했는데, 윤석열의 격노 소식이 전해지자 군검찰은 이날 사건을 회수했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회수한 사건을 이첩받아 재조사한 뒤, 임 전 사단장을 명단에서 뺐다.

진보당 울산, ‘감사 쪽지’로 드러난 당권 조작 의혹 “김기현, 철저히 수사하라”

 

진보당 울산시당 김진석 부위원장은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지난 주말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아크로비스타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김기현 의원의 당대표 당선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쪽지와 고가의 명품 가방이 발견됐다. 이에 김진석 부위원장은 “이것이 단순한 선물 전달로 보이십니까?”라고 반문하며 “이는 집권 권력이 여당 당대표 선거에 개입했을 가능성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매우 중대한 정황”이라고 밝혔다. 이어 “김기현 의원의 해명은 국민 기만에 불과하다”며 “대통령 배우자와 여당 대표 배우자가 ‘사적 관계일 뿐’이라는 주장에 국민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라고 일갈했다.

일본 총리 “대만 유사시, 자위대 출동”…중국 총영사 “그 더러운 목 베어버릴 수밖에”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고 공식적으로 발언해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7일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의 비상사태가 '존립위기상태'에 해당한다”라고 밝혔다. 10일 또다시 “만약 군함이 사용되고 무력 행사가 이루어진다면, 어떻게 보더라도 실존론적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존립위기상태'는 지난 2015년 아베 총리 당시 제정한 안보 관련법에 명시된 개념으로, 일본이 공격을 받지 않은 상황에서도 일본과 밀접한 다른 국가가 공격을 받아 일본의 영토가 국민 생명에 위협이 되는 경우 이를 '존립위기상태'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런 경우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여 자위대를 출동시킬 수 있다. 이는 한반도 유사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따라서 다카이치 총리의 발언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했을 때 일본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8일 쉐젠 중국 총영사는 다키이치 총리를 향해 "멋대로 들어오는 그 더러운 목은 한 순간의 망설임 없이 베어버릴 수밖에 없다”라며 “각오가 되어 있나"라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대중국 병참 기지, “한국 활용해야”

미 군사 전문 매체를 통해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미국의 대중국 억지 전략에 있어 최대 약점은 병참이 될 수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한국 등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스탠퍼드대 후버 연구소의 에이크 프레이먼 연구원)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병참은 평화 시기 비용 절감에 최적화되어 있으며 광활한 태평양에서 치러질 전쟁을 지속하기 위한 해상 병참 시스템이 불안정한 상황이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6천 척 이상이었던 미국 상선은 현재 200척 미만이고 미군 해상수송 사령부는 승선원 부족으로 인해 선박을 퇴역시키고 있다.

연구진은 미군이 병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 등의 동맹과 서둘러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소와 탄탄한 상선을 갖추고 있어 병참망 구축을 위한 주요 동맹국이란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한편 지난 5월 주한미군사령관 제이비어 브런슨는 “한국은 중국 앞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fixed aircraft carrier floating in the water)이다.”라고 언급했다.

조선중앙통신 “황해남도 배천군 새집들이 모임 진행”

“서해곡창 연백벌에 위치한 황해남도 배천군 역구도농장이 새시대 농촌혁명의 자랑찬 실체로 전변되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통신은 “조형 예술성과 편리성 보장의 원칙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룬 역구도농장에는 우리식 사회주의 농촌의 문명과 발전상이 비껴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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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李대통령, 항소 포기 지시 안 했다면 국민 앞에 해명해야”

[아침신문 솎아보기] 전국 검사장 18명 집단성명 “경위와 이유 납득 안돼”

한겨레 “반성 없는 선택적 집단행동” 조선 “힘으로만 누르면 검란 국민적 확산”
종묘 앞 고층 건물 이슈로 오세훈·김민석 서울시장 선거 전초전?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일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검찰의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항소 포기 논란이 계속 커지는 가운데, 10일 검찰 내부에서는 검사들의 집단반발이 나왔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항소를 포기한 이유에 대해 지난 9일 “법무부 의견 참고 후 항소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밝힌 것이 납득이 안 간다는 입장이다. 이에 박재억 수원지검장이 18개 지검장과 공동명의로 작성한 입장문에서 “검찰총장 권한대행께서 밝힌 입장은 항소 포기의 구체적인 경위와 법리적 이유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아 납득이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대검에서 근무하는 평검사들인 검찰연구관들은 노만석 대행을 향해 “거취 표명을 포함한 합당한 책임을 다하시기를 요구한다”라며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11일 자 아침신문들은 일제히 이 소식을 1면에 보도했다. 검찰의 이례적인 항소포기를 두고 신문들은 “납득이 안 된다”라고 대체로 공통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검사들의 집단반발을 두고 조선일보와 한겨레는 정반대의 사설을 썼다. 한겨레는 “검찰의 반성 없는 집단 행동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겠냐”라고 했고, 조선일보는 “검찰을 힘으로만 누르면 검란(檢亂)은 국민적 반발로 확산할 수 있다”라고 했다.

▲11일 조선일보 1면.
▲11일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 “李대통령이 항소 포기 지시하지 않았다면 국민 앞에 해명해야”

조선일보는 검찰의 이번 항소 포기에 대통령실이 어느 정도 관여했을 것이라 주장하는 국민의힘의 입장을 주요하게 다뤘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실도 법무부가 민정수석실에 사전에 관련 내용을 공유했지만 어떤 지침도 내린 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권은 이재명 대통령 변호인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실 민정 라인과 법무부 등에 포진해 있으면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이어 “일선 검찰청은 주요 사건의 수사·재판 경과를 수시로 대검에 보고하고, 대검은 법무부에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부는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에 보고하는 게 관행”이라고 덧붙였다.

▲11일 조선일보 2면.
▲11일 조선일보 2면.

국민의힘은 “법무부와 대검, 민정수석실까지 대통령 관련 인사들이 포진해 있다. 법무부·검찰청·민정수석실이 다 관여됐을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조선일보는 “실제 봉욱 대통령실 민정수석 밑에 있는 비서관 4명 중 3명이 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이다. 이태형 민정비서관은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쌍방울의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의 변호인이었다. 부장검사 출신인 그는 검찰 내 인맥도 여럿 있다. 이 비서관은 2018년 이 대통령이 경기지사 시절 기소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의 변호인으로도 일했다. 이 사건에서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 파생되기도 했다. 이장형 법무비서관은 쌍방울 사건의 변호인 출신이다. 전치영 공직기강비서관은 대법원이 지난 5월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의 변호인이었다. 법무부에도 대장동 변호인이 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조상호 장관 정책 보좌관이 대장동·쌍방울·위증교사 사건의 변호인 출신”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검사들로부터 사퇴를 요구받고 있는 노만석 직무대행과 직접 통화했다. 중앙일보는 1면 기사에서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10일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사의 표명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라며 “노 대행이 사퇴할 경우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놓고 촉발된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 이후 13년 만에 검찰 내부의 요구에 의해 검찰 수장이 물러나게 된다”라고 보도했다.

▲11일 중앙일보 1면.
▲11일 중앙일보 1면.

노만석 직무대행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몸이 좋지 않아 하루(11일) 쉬면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할 것이다. 홀가분한 심정이다. 검사 노만석이 아닌 인간 노만석으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어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검찰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리(항소 포기를 지휘) 했는데 후배들은 동의를 안 하는 것 같다. (용산 언급은) 검찰총장으로서 구체적인 사건이 아니라 모든 일 처리에서 용산과 법무부는 항상 염두에 두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취지”라고 덧붙였다.

조선일보는 이재명 대통령이 이번 항소 포기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국민 앞에 나와 해명해야 한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검찰 ‘대장동’ 항소 포기, 이 대통령 뜻인가> 사설에서 “정 장관은 공식적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노만석 검찰총장 대행에게 항소 포기를 지휘하는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았다. 사실상 뒤에서 수사 지휘를 했다. 그 자체로 검찰청법 위반이자 직권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한 뒤 “가장 큰 의문은 이 충격적인 지시를 정 장관 단독으로 했겠느냐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신문은 “대장동 항소 포기를 하면 대장동 일당이 검사의 손발을 묶어 놓고 재판을 할 수 있다. 재판이 일방적으로 흘러간다는 뜻이다. 대장동 일당에게 수천억 원의 돈이 그대로 흘러들어 가게 된다. 이런 결과를 낳을 항소 포기가 국민적 반발을 살 것이란 사실도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이런 큰 일을 정 장관 한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1일 조선일보 사설.
▲11일 조선일보 사설.

이어 “현재 이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증거는 없다”라면서도 “하지만 정황상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대장동 항소 포기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대장동 일당과 이 대통령이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이 대통령 최측근 인사이고, 현재 검찰을 담당하는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이 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이다. 이 대통령이 항소 포기 문제를 몰랐다고 한다면 상식 밖이다. 대통령실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현황 보고는 받았지만 지침을 대통령실이 내린 것은 아니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지시하지 않았다면 의혹이 더 커지기 전에 국민 앞에 나와 해명해야 한다”라고 했다.

한겨레 “반성 없는 선택적 집단행동” 조선 “힘으로만 누르면 검란 국민적 확산”

한겨레와 조선일보는 검사들의 집단반발에 정반대 사설을 보도했다.

한겨레는 윤석열 정부 당시 검찰의 행동을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검찰의 선택적 반발, 부끄럽진 않은가> 사설에서 “국민들은 이보다 더한 사건에서도 지금 이 검사들이 침묵했던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반성이 없는 선택적 집단 행동에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공감하겠는가”라고 비판했다.

▲11일 한겨레 사설.
▲11일 한겨레 사설.

이어 “검찰 수뇌부가 담당 검사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단적 결정을 내렸다면, 검사들이 합당한 설명과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검찰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 부지기수였던 윤석열 정권에서는 왜 이런 요구가 없었나. 지금 기준이라면 범죄 혐의가 명백한 김건희씨를 무혐의 처분했을 때나, 윤석열 구속취소 결정에 대해 즉시항고를 포기했을 때도 들고일어났어야 하는 게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검사들 반발, 힘으로 누르면 국민 반발로 확대될 것> 사설에서 “(노만석 직무대행을 향한) 입장문을 발표한 검사장 18명과 노 대행 사퇴를 요구한 대검 부장 7명은 현 정부 출범 후 이재명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 간부들이다. 여기엔 이 대통령이 임명한 요직인 전국 지검장 15명도 포함돼 있다”라고 한 뒤 “민주당은 이번에도 막강한 권력을 앞세워 정치적 편 가르기와 검찰 악마화로 국면을 바꿔보려고 한다. 하지만 대장동 항소 포기는 국민의 법 상식과 정의감에 너무도 동떨어졌다. 대장동 일당이 6000억원 이상을 차지하게 만들어준다면 법치가 어디에 있나. 힘으로만 누르면 검란(檢亂)은 국민적 반발로 확산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11일 조선일보 사설.
▲11일 조선일보 사설.

대체로 11일 자 아침신문들 사설은 항소 포기가 납득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특히 노만석 직무대행은 지난 9일 “법무부 의견 참고 후 항소 제기하지 않는 것이 판단했다”라고 말했는데, 정성호 법무장관은 지난 10일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의견만 전달했다”라고 말한 뒤 외압 행사는 부인했다.

한국일보는 <대장동 항소 포기 일파만파… 대통령 관련 아니어도 그랬겠나> 사설에서 “정 장관 설명을 받아들이더라도, 하필 왜 이런 결정이 이재명 대통령 관련 사건에서 이뤄졌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정 장관은 ‘이 대통령은 이 사건과 관계 없다’고 했지만, 이 대통령이 대장동 별도 재판(배임 혐의)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 무관하다고 보긴 어렵다. 헌법은 현직 대통령이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고 했을 뿐 소추 자체를 무효로 간주하지 않는다. 대통령 사건에서 이런 예외가 계속된다면, 국민은 여권이 이 대통령 기소 자체를 무효로 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도 <대장동 항소 포기, 현명한 결정 아니다> 사설에서 “윤석열 정부 때는 침묵하던 검찰이 이번 일에 집단 반발하는 모습은 볼썽사납지만, 실익이 뭔지 알 수 없는 항소 포기를 해서 이 혼란이 벌어진 상황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한 뒤 “항소 포기의 실익은 무엇인가. 표면적으로는 대장동 일당이 검찰을 상대하지 않고 2심 재판을 하게 됐다. 검찰이 그간의 무리한 수사·기소나 기계적 상소 관행을 바로잡고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모범 사례는 결코 될 수 없다. 정 장관은 남욱 변호사가 ‘검사가 배를 가른다고 했다’고 한 점을 언급하며 ‘사건이 계속되면 오히려 더 정치적인 문제가 될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검찰이 ‘정치 사건’에 매달리지 말고 혁신·개혁에 집중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오히려 항소 포기로 정치적 문제가 더 커졌다. 그만큼 이 대통령의 부담도 커지게 만들었다”라고 지적했다.

▲11일 한겨레 사설.
▲11일 한겨레 사설.

종묘 앞 고층 건물 이슈로 오세훈·김민석 서울시장 선거 전초전?

오세훈 서울시장이 추진하는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이 정부와 대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고시를 바꿔 종묘 인근 건물의 최고 높이를 기존 71.9m에서 141.9m로 두 배 올린 사업계획을 세우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그러나 지난 6일 대법원은 서울시의회가 문화재 인근 개발 공사를 규제하는 조례를 일방 폐지한 것에 반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제기한 소송을 각하해 절차적 정당성을 인정했다.

지난 10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서울시 종묘 일대를 직접 방문하면서 “국익과 국부를 해치는 근시안적 단견”이라고 비판에 나섰고, 오세훈 서울시장은 “정부와 서울시의 입장 중 무엇이 근시안적 단견인지 공개토론을 제안한다”라며 반박했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두 후보가 선거 전초전을 벌인다는 해석이 나왔다.

▲11일 경향신문 5면.
▲11일 경향신문 5면.
▲11일 조선일보 5면.
▲11일 조선일보 5면.

경향신문은 빌딩을 세우려고 한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142m 개발 앞의 종묘, 세계유산영향 평가 받았어야> 사설에서 “김건희식의 무도한 차담회나 초고층 건물 피해로부터 종묘를 보존하는 건 문화·역사의 가치와 미래를 중시하는 결정이다. 이제라도 유네스코 권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서울시는 눈앞의 개발이익 논리보다 문화유산과 공존하고 그 가치를 소중히 키워가는 도시계획을 짜기 바란다”라고 했다.

반면 조선일보는 <與, 문화재 문제 이슈 만들어 서울시장 선거운동 하나> 사설에서 “문화재 보호를 주무로 하는 부처들의 입장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고 상충하는 가치는 서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지금은 문화재 쪽에 너무 치우쳐 도시의 정상적 발전과 시민의 재산권 행사를 가로막는 지경”이라며 “이상한 것은 이 문제에 갑자기 장관이 나서 아무 상관 없는 ‘김건희’까지 들먹이며 격하게 반응하더니 이제 총리까지 나선 사실이다. 이들도 대법원 판결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잘 알 것이다. 결국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현직 오세훈 시장을 공격할 소재가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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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 특검 '첫 번째 기소'…임성근 사단장 구속기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5/11/11 08:55
  • 수정일
    2025/11/11 08:5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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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다니와 코놀리의 승리가 던진 질문

 [장석준 칼럼] 선거제도는 어떻게 변화를 이끄는가

11월 4일 미국 뉴욕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 조란 맘다니가 당선되자 언론 지면과 사회관계망 서비스 화면은 온통 '맘다니'라는 낯선 이름으로 도배됐다. 몇 달 전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 예비경선에서 맘다니 시의원이 쟁쟁한 다른 주자들을 제치고 후보로 선출됐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만 해도 다들 '만다니'인지 '망담니'인지 이름마저 헷갈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이름을 모르면 상식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할 지경이다. 그만큼 자칭 '민주사회주의자'가 자본주의 유일체제 시대에 뉴욕시장이 됐다는 사실이 세계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런가 하면 뉴욕시장 선거 있기 며칠 전인 10월 25일에는 아일랜드 대통령 선거에서 좌파 단일후보 캐서린 코놀리가 압승을 거뒀다. 아일랜드에서는 노선이야 달랐더라도 어쨌든 반영국 독립투쟁에 뿌리를 둔 두 우파정당, '피어너 팔'(흔히 '공화당'이라 소개된다)과 '피너 게일'(흔히 '통합아일랜드당'이라 소개된다)이 오랫동안 교대로 집권해왔다.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재정위기 이후 줄곧 신페인당, 사회민주당, '이윤보다 인간-연대' 같은 좌파 정치세력들이 지지를 늘리더니 급기야 이들이 함께 지지한 코놀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NATO의 군비 확장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아일랜드공화국 대통령의 등장은 맘다니 당선과 함께 또 다른 신선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두 사건 모두 떠들썩한 주목을 받을만하다. 그리고 이런 흐름이 뉴욕과 아일랜드를 넘어 과연 어떤 보편적이며 중장기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이런 이변이 도대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분석하고 진단할 필요가 있다. 한데 뜬금없이 '서울의 맘다니'를 자처하고 나서거나 다른 이들의 '맘다니'론에 훈수와 핀잔을 토하는 글들은 많아도 정작 두 사건을 관통하는 특정한 민주주의 제도의 중대한 역할에 충분히 눈길을 주는 경우는 찾기 쉽지 않다. 그 제도란 바로 선거제도다.

▲4일(현지시간) 뉴욕 시장으로 선출된 조란 맘다니 민주당 후보가 브루클린의 파라마운트 극장에서 열린 축하 연설에 지지자들의 환호에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jpg

 

맘다니와 코놀리, 즉석결선투표제도를 통과하다

뉴욕시장 선거를 앞둔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민주당 주류가 지지한 후보는 앤드루 쿠오모였다. 쿠오모는 예비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본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맘다니에게 결국 패배하고 말았는데, 어쨌든 예비경선에서 민주당 주류 성향 유권자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쿠오모 말고 다른 유력 주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 주류를 심판하고자 한 진보적 유권자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맘다니 말고도 유능하고 원칙 있는 후보가 한 사람 더 있었기 때문이다. 2009년에 처음 뉴욕시의원으로 당선돼 12년 동안이나 시의회에서 활약했고 2021년에는 뉴욕시 회계감사관으로 선출된 브래드 랜더가 그 사람이었다.

 

랜더는 시의원으로 있으면서 뉴욕시에 참여예산제를 도입하는 데 앞장섰고, 노동자와 세입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정 활동을 펼쳤다. 이번 선거에서 맘다니 지지를 선언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하원의원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2021년 회계감사관 선거에서는 랜더의 공식 지지자였다. 맘다니와 랜더의 차이라면, 맘다니는 민주당 후보이기 이전에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SA)'의 회원이라는 정체성이 강한 데 반해 랜더는 좀 더 전통적인 민주당 좌파 혹은 리버럴 좌파라는 정도였다.

 

한국이었다면 예비경선에 참여한 진보 성향 시민들이 맘다니와 랜더, 둘 사이에서 엄청나게 고민을 해야 했을 것이다. 평소 시의회나 시청에서는 막역한 동지 관계였던 두 후보가 경선 과정에서 서로를 깎아내리다 둘 다 상처투성이가 됐을 가능성이 높고, 유권자들은 둘 중 누가 쿠오모를 꺾는 데 더 유리한지 따지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허비했을 것이다.

 

그러나 뉴욕시 민주당 예비경선에서는 후보와 유권자 모두 이런 시련을 겪지 않아도 된다. '즉석결선투표제(instant-runoff voting)'로 시장 후보를 선출하기 때문이다. 즉석결선투표제는 '대안투표제(alternative voting)' 혹은 '선호투표제(preferential voting)'라 불리기도 한다. 한데 '대안투표제'나 '선호투표제'라고 하면, 이름만 들어서는 도대체 어떤 투표제도인지 감이 잘 안 온다. 반면에 '즉석결선투표제'는 그 의미를 직관적으로 전달해준다. 이 제도는 한 마디로, 유권자가 투표를 한 번만 하고도 1차 선거와 결선을 동시에 치르는 효과를 거두게 하는 투표제도다.

 

민주당 뉴욕시장 후보가 되려면 예비경선 투표자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결선투표제 원리와 같다. 그러나 뉴욕시 민주당은 시장 후보 결선을 따로 치르지 않는다. 유권자는 투표용지에 적힌 시장 후보 모두에 대해 선호 순위를 매긴다. 가령 맘다니를 1순위 지지 후보로 기표하고, 랜더를 2순위로, 쿠오모는 가장 낮은 순위로 기표하는 식이다. 이런 유권자의 선호도 표시 덕분에 즉석결선투표제에서는 굳이 결선투표를 따로 실시하지 않아도 된다.

 

이번 예비경선에서는 1순위 투표만 개표했을 때 맘다니가 44%, 쿠오모가 36%, 랜더가 11%를 득표했다. 맘다니가 1위를 달리기는 했지만, 민주당 시장 후보가 되는 데 필요한 과반은 획득하지 못했다. 그래서 각각 1위, 2위를 한 맘다니와 쿠오모를 제외하고 나머지 후보들을 탈락시킨 뒤에 이 후보들을 1순위로 지지한 표 가운데 2순위로 맘다니나 쿠오모를 지지한 표를 두 후보의 득표에 각각 합산했다. 그랬더니 맘다니 56%, 쿠오모 44%라는 결과가 나왔고, 맘다니가 과반수 지지를 받는 시장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이런 투표제도 아래에서 경쟁했기에 맘다니 진영과 랜더 진영은 굳이 복잡한 정치 게임을 벌일 이유가 없었다. 두 진영은 예비경선 캠페인 기간부터 서로 연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고, 진보적 유권자들은 맘다니와 랜더를 1순위나 2순위로 기표하는 단순한 선택을 통해 이런 연대를 손쉽게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실제로, 맘다니가 시장 후보로 결정된 뒤에 랜더는 맘다니 선거운동에 발 벗고 뛰어들었다.

 

뉴욕시 민주당에 이런 투표제도가 도입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6년 전인 2019년에 뉴욕시는 시민투표를 통해 처음으로 각 당의 시 공직자 예비경선에서 즉석결선투표제를 실시할 수 있다는(정확히는, 투표자가 복수 후보를 선택하는 투표제도를 실시할 수 있다는)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2021년 민주당 예비경선부터 즉석결선투표제로 시장 후보를 선출했고, 이번에 두 번째로 이런 방식에 따라 맘다니를 시장 후보로 선택했다. 소선거구제-단순다수대표제만 완강히 고집하는 것 같은 미국에서도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이렇게 조금씩이나 기존 제도를 바꾸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었던 것이다.

 

뉴욕이 이제 막 이 길에 들어섰다면, 아일랜드는 즉석결선투표제의 본고장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그 역사가 오래 됐다. 아일랜드에서는, 이번에 캐서린 코놀리가 승리한 대통령 선거를 오래 전부터 즉석결선투표제로 치러왔다. 이 제도 덕분에 양대 정당, '피어너 팔'과 '피너 게일' 말고도 노동당 같은 상대적 소수 정당 역시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었다. 다만 이번 선거에서는 코놀리 후보가 워낙 압도적인 1순위지지 표(63%)를 얻는 바람에 결선투표에 해당하는 추가 개표 절차를 진행하지 않아도 되었다.

 

뉴욕뿐만 아니라 이런 아일랜드 사례까지 확인하고 나면, 이제 눈길이 우리 자신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 대통령도 투표자 과반수 지지로 선출해야 한다는 주장, 즉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정치개혁을 외치는 이들의 오랜 숙원이다. 지금 당장 헌법 개정을 추진한다면, 가장 확실하게 국민투표를 통과할 개헌 의제는 결선투표제 도입일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 시야를 조금만 더 확장하면, 결선투표제 도입 취지를 구현할 또 다른 방안으로서 아일랜드 대통령선거식 즉석결선투표제가 눈에 들어오게 된다. 결선투표를 실시하면 국력을 낭비할 뿐이라는, 지겨운 반론에 굳이 대꾸할 필요 없이 우리도 대통령을 즉석결선투표제로 뽑는 게 어떨까. 민주주의의 이상과 원칙을 구현하려는 제도적 틀은 이처럼, 대한민국 제6공화국이 허용해온 상식의 한계보다 훨씬 더 광범하고 다양하다.

 

▲지난 6월 25일 뉴욕 한 공립학교 근처에서 조란 맘다니 선거운동원들이 임대료 동결 등 구호를 걸고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SWinxy, CC BY 4.0

 

아일랜드 정치의 역동성을 일군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

 

아일랜드 이야기가 나왔으니, 아일랜드 하원의원 선거의 독특한 투표 방식도 짚어볼까 한다. 아일랜드는 '단기이양식 비례대표제(single transferable voting)'로 하원의원을 선출한다. '단기이양식'이라니, '대안투표제'나 '선호투표제' 같은 말보다 더 아리송하기만 하다. 일단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 제도가 어쨌든 비례대표제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다만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익숙한 독일식 소선거구-정당명부 연동형 비례대표제나 북유럽식 광역별(대선거구)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비례대표제다.

 

아일랜드식 비례대표제는 우선 광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마찬가지로 선거구마다 복수의 하원의원을 선출한다. 보통 한 선거구에서 3명에서 5명의 하원의원을 선출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제5공화국 시절의 중선거구제처럼 유권자가 한 명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고 종다수로 2위 득표를 한 후보까지 국회의원으로 선출하는 방식이 '결코' 아니다. 유권자들은 마치 즉석결선투표제의 경우처럼 복수의 후보에 대해 선호도를 기표한다. 단, 이 경우에 복수의 후보를 선택하는 이유는 한 후보를 과반 득표자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서다.

 

이 대목에서 좀 복잡한 논의가 등장한다. 아일랜드식 비례대표제에서는 각 선거구마다 복수 당선자의 당선 기준이 될 '기준수'를 산출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산정 방식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 결론만 말하면, 3인 선거구에서 기준수는 26%이고, 4인 선거구에서는 21%, 5인 선거구에서는 17%다(데이비드 파렐, 󰡔선거제도의 이해󰡕, 전용주 옮김, 한울, 2012. 203쪽). 즉, 3인 선거구에서 당선자는 득표율이 26%를 넘어야 한다. 1순위 지지 표가 이미 기준수, 즉 26%를 넘는다면, 그 후보는 단번에 당선이 확정된다.

 

문제는 나머지 2인의 당선자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두 가지 방향에서 차순위 지지표를 각 후보에게 합산해 기준수인 26%를 넘는 또 다른 당선자들을 산정해낸다. 한편으로는 이미 당선이 확정된 후보의 득표 중 26%를 초과하여 '남은' 표를 2순위 지지 기표 내용에 따라 다른 후보에게 배분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1순위 지지 표를 가장 적게 받은 후보부터 탈락시키면서 그가 받은 표를 2순위 지지 기표 내용에 따라 남은 다른 후보에게 배분한다. 이런 절차에 따라 결국 최종 합산이 26%를 넘는 3인의 하원의원 당선자를 확정한다.

 

글로만 봐서는 누구든 단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누구나 모의 투표를 한 번만 해보면, 단박에 익숙해질 수 있다. 아일랜드 국민 500여만 명이 다 수학 천재라서 이런 투표제도를 시행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민주 사회의 시민이면 누구나 경험으로 익힐 수 있는 제도이기에 아일랜드에서 지금껏 운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일단 이런 아일랜드 하원의원 선출 방식이 다른 비례대표제들과 크게 다른 점이 무엇인지만 확인하고 넘어가자. 독일식이든 북유럽식이든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결국 유권자가 '하나의 지지 정당'을 선택하는 투표제도다. 그러나 아일랜드식은 비례대표제임에도 유권자가 '복수의 후보'를 선택한다. 유권자는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을 선택하기보다는 자기가 선호하는 전체적인 정치 지형을 염두에 두고 그에 걸맞게 후보들에게 순위를 매긴다. 결과적으로 다른 비례대표제와 마찬가지로 승자 독식을 피하고 다당 구도를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동하는 유권자의 선택 논리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들과는 다르다.

 

아무튼 아일랜드는 독립 이후 계속 이런 비례대표제를 실시했기 때문에 '피어너 팔'과 '피너 게일'이 교대로 집권하는 와중에도 상대적 소수 세력이나 신진 세력의 원내 진출 통로를 열어놓을 수 있었다. 덕분에 캐스팅보트 역할을 통해 현실 정치에 계속 개입하면서 양대 우파정당의 정책 변화에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대표적 정치세력이 20세기에 아일랜드에서 좌파-노동계급 여론을 대변한 노동당이다.

 

그리고 오늘날은 아일랜드식 비례대표제를 바탕으로 새 세대 좌파 정치세력들이 노동당을 대체하며 성장하고 있다. 남북 아일랜드 통일과 사회주의를 동시에 강조하는 신페인당이 2020년 총선에서 제1당(1순위 지지 24.5%)으로 부상할 만큼 약진했으며, 사회민주주의 정치의 세대교체를 내걸고 노동당에서 분리한 사회민주당이 2024년 총선에서 노동당보다 많은 1순위 지지(4.8%, 노동당은 4.6%)를 기록하는가 하면 트로츠키주의 정파들의 연합인 '이윤보다 인간-연대'가 원내에 계속 교두보를 마련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이번 대선에서 코놀리 후보의 승리를 이뤄낸 주역들이다.

 

'그럼에도' 선거제도 개혁은 중요하다

 

한국 진보정당운동의 필생의 과제였던 선거제도 개혁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과 비례위성정당의 일상화라는 난장판으로 귀결된 이후에 '선거제도 개혁'은 다시 꺼내기 쉽지 않은 구호가 되어 버렸다. 혁명의 원대한 꿈을 꾸는 이들은 여전히 이따위 하찮은 '개량'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현실 정치를 파고들자고 하는 이들은 더 이상 선거제도를 탓하지 말고 '한국형' 정치 지형에 익숙해지라고 훈계한다.

 

그러나 문제는 진보정당의 성장 여부가 아니다. 선거제도 개혁이 필요한 것은 다른 무엇보다 민주주의 자체의 더 풍부하고 생생한 발전을 위해서다. 그런 성숙해진 민주주의가 있기에 좌파나 신진 세력이 진출하기도 수월해지는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선거운동원의 호별 방문을 허용하는 민주주의였기에 맘다니 시의원 같은 신진 후보가 돌풍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고, 독특한 비례대표제를 시행하는 민주주의였기에 금융-재정위기 속에 신페인당 같은 대안 세력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한국의 '가난한' 정치 지형에 던져진다면, 맘다니는 '공직 박탈이 확정된 선거법 위반 사범'일 뿐이고, 북아일랜드 투쟁에서 잔뼈가 굵은 신페인당 고참 당원들은 '현실 정치에 무능한 늙은 운동권'이 될 뿐이다.

 

 

그래서, 이 모든 아수라장'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의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이라면 선거제도 개혁을 다시 의제에 올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한 과제들의 긴 목록에서 민주주의 '제도'를 바꾸는 일은 여러 과제들의 하나일 수는 있어도 절대로 생략되거나 주변으로 밀릴 수는 없다.

장석준 전환사회연구소 기획의원은 오랫동안 진보 정당 운동의 정책 및 교육 활동에 참여해왔으며, 자본주의 위기에 맞선 진보적 사회과학을 재구성하고자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에서 연구 및 출간 사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레프트 사이드 스토리 : 세계의 좌파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사회주의>, <장석준의 적록 서재>, <신자유주의의 탄생 : 왜 우리는 신자유주의를 막을 수 없었나>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국가 대 시장 : 지구 경제의 출현>, <안토니오 그람시 : 옥중수고 이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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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피 4천시대, 한국 보수언론의 천박함... 세계적으로 드문 행태

경영의 돈과 시간 이야기] 붕괴, 부글부글, 어포더블

25.11.11 06:54최종 업데이트 25.11.11 06:54
지난 10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이날 코스피는 상승 출발해 개장 직후 4000선을 재돌파했다. 코스피는 이날 오전 9시 3분 현재 전장보다 59.79포인트(1.51%) 오른 4,013.55에 거래되고 있다.연합뉴스

1. 붕괴

주가는 오르거나 떨어진다. 이런 현상을 표현하는 단어는 여러 가지다. 주가가 올랐다. 상승했다. 급등했다. 폭등했다. 내렸다. 하락했다. 급락했다. 폭락했다 등이다.

그렇다면 '붕괴'란 어떤 의미인가? 붕괴란 무너지고, 내려앉고, 허물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집이 붕괴하고, 건물이 붕괴하면 폭삭 무너져 내려앉는 것이다. 폭락이나 급락해서 망해버렸다는 뉘앙스다.

아래 <주간조선> 기사는 주가지수 3900선이 붕괴됐다고 말하면서 앞에 "내 돈이 휴짓조각 됐다"고 표현했다. 4200정도가 고점이었는데 300포인트, 그러니까 7% 정도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투자한 돈은 휴짓조각이 된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해석하면 2000선에 머물던 주가가 4200까지 치솟았다가 3900선으로 밀리자 내 돈이 갑자기 휴짓조각이 됐다는 말이다. 그럼 불과 1년전만해도 2000선에 머물렀던 그 시기 내 돈은 무엇이었다는 말이지?
 
기사는 "장 초반 낙폭을 키워가던 코스피는 10시 25분 전장보다 5.67% 하락한 3887.95를 기록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주간조선> 보도 갈무리

아래 <뉴스핌> 기사는 코스피 하락폭이 확대되며 장중 3820선이 붕괴됐다고 표현한다. 코스피 4000선이 붕괴됐다는 표현은 그나마 어색하지라도 않다. 그러나 코스피 3820선이 붕괴됐다면, 3810선도, 3790선도 붕괴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퍼센티지로 따지면 주가지수가 0.2% 정도만 떨어져도, 매 10단위로 주가지수가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가지수가 0.2% 떨어지면 주식시장이 무너지고, 내려앉고, 허물어져서 망해버릴 것 같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언론이라니…
 
10월 22일 자 <뉴스핌> 기사뉴스핌 홈페이지 캡처

반면 주식시장의 전문가들은 주식시장이 이렇게 최고점 대비 7% 정도 하락하는 시점에 한결같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주가지수가 '조정'받고 있다".

'조정'과 '붕괴'는 투자자에게 주는 어감뿐만 아니라 본질적 의미가 다르다. 한국어를 배운 사람 중 조정과 붕괴를 똑같은 의미의 단어라고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조정은 급등했다가 숨 고르기를 한다는 의미지만, 붕괴는 종말, 끝, 죽음이다.

그런데 왜 기자들은 '붕괴'와 같은 선정적인 단어를 주로 쓰는 것일까? 전문가들처럼 투자이론을 배우지 못해서? 아니다. 저널리즘 교육을 할때도 기자들에게 이렇게 쓰지 말라고 가르친다.

세계 최대의 통신사인 미국의 <AP통신>은 매년 AP스타일북이라는 것을 발간하는데, 거기에도 경제 현상을 표현할 때는 언론 소비자들에게 절제된 표현을 하라고 명기되어 있다.

예를 들어 2분기 이상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거나 그럴 조짐이 확실히 보여야 경기침체(recession)라는 단어를 쓰라고 조언한다.

경제의 상당 부분은 소비자, 투자자, 기업인들의 소비 및 투자 심리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중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건 언론이다. 그래서 언론은 최대한 절제된 표현을 통해 객관적으로 상황을 설명해야 할 책무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하루에 6%가 폭락했다면 폭락이 맞다. 누가 봐도 상식적이고 객관적인 표현이다. 그러나 3900선이 붕괴되고, 3820선이 붕괴되고, 3800선이 붕괴되고, 3750선이 붕괴됐다고 말하는 건 장삿속 가득한 선정주의다.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들의 기사를 자극적 헤드라인으로 팔아먹기 위해 쓰는 천박한 상업주의다.

2. 부글부글
 
<한국경제> 11월 6일 자 기사 "서울 자가 대기업 김부장에 눈물?"…2030 '부글부글'한 이유한국경제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언론이 이렇게 과격한 형용사를 쓰는 이유가 꼭 선정주의 때문인가? 다른 이유는 없을까?
여기 또 다른 형용사가 있다. '부글부글'. 100도 이상에서 물이 끓을 때처럼 화가 넘쳐 나 있는 상황을 묘사한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라는 웹소설 기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서 2030이 화가 나 있다는 것이다.

청년들은 직장 구하기도 어려운데 극 중 50대의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은 서울에 자기 집도 있으면서 그런 사람에게 무슨 눈물을 짓느냐는 힐난이다. 드라마까지도 세대 갈등을 부추긴다고 비판하지만 이 기사가 헤드라인과 부제를 통해 주려는 메시지는 '청년들이여 분노하라'는 것이다.

누구를 향해? 자신들의 삼촌이나 아버지뻘들을 향해. 자신들이 좋은 직장을 선택할 기회를 미리 빼앗은 것 같은 세대를 향해. 자신들의 좋은 집을 미리 빼앗은 것 같은 중장년층을 향해. 자신들의 연금도 빼앗을 것 같은 기성세대를 향해 분노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언론은 지난 20여 년 동안 이런 식의 분노를 부추겨왔다. 그리고 그 분노의 기준, 분노의 방향은 이른바 보수 정치권에서 정치적 이유로 설파해 온 이른바 '세대 갈라치기'와 맥을 같이 해왔다. 공교롭다. 2030과 나이든 보수세대가 연합해서 4060을 사회적으로 왕따시켜보려는 보수 정치권의 선거 전략과 흡사하다.

이들은 586을 겨냥했다. 기초연금을 받는 가난한 노인들을 겨냥했다. 지하철을 타는 65세 이상 노인들을 겨냥했다. 집이 있는 중장년 세대를 겨냥했다. 앞으로 청년세대들은 국민연금도 못 받는다고 불안과 공포를 부추긴다. 그 모든 게 기성세대 중장년층의 잘못이라는 투였다.

그러나 기초연금을 받는 노인들이 기초연금을 받고 싶어서 받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이란 제도는 90년대 초반 도입돼서 90년대 중반이후에나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전후세대인 40~50년대 생들은 뼈 빠지게 노동했지만 돈을 벌 기회가 많지 않았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의 GDP는 북한에도 뒤졌다.

IMF전후 취업한 중장년세대는 1200조 원의 국민연금 대부분을 낸 주축 세대다. 상당수의 그들은 고등학교때까지 학교에서 몽둥이로 교사들에게 맞고 살았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불심검문을 당하면서 경찰에게 맞았다. 학생인권조례도 없었고, 대학교 장학금도 희귀했다. 복지제도도 열악했다.

실업급여제도가 도입된 연도도 겨우 1995년이다.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고 직장에서 쫓겨나도 어디에 하소연도 못 했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극중에 나오는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52세 김부장'도 만약 그 나이에 실직하면 국민연금을 받는 65세까지 남은 13년을 뭐로 먹고 살아야 할 지 막막한 가장일 뿐이다. 거기에 만약 갚아야 할 아파트 대출금까지 많이 남아 있다면 중산층에서 하층으로 떨어지는 건 시간 문제다.

그렇다고 2030 청년세대가 무슨 죄를 지었나? 그들의 미래도 불안한 건 사실이다. 이들이 선망하는 직장 대부분은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는데 무엇보다 서울 및 수도권의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평균 12억 원이라는 서울 아파트를 자가 소유하려면 매년 5000만 원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4년 모아야 한다. 결혼이 아니라 연애도 포기했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런데 집도 없고 직장 구하기도 힘든 청년들의 미래를 그렇게도 걱정한다는 이른바 한국의 보수언론들은 신기하게도 서울 집값이 떨어지는 모든 정책들은 또 노골적으로 반대한다. 집값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집값 하락 조짐에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었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서울 집값이 오르고 분양가가 오르면 부동산 시장이 호황을 맞고 있다고 환호한다.

그러면서 기회가 될 때마다 세대 간 분노를 부추긴다. 정치권을 향해서는 대화와 타협을 하라고 하면서 본인들은 본인들의 독자와 시청자들을 향해 서로가 서로에 주먹질을 하라는 투다. 자식이나 조카가 삼촌이나 아버지의 재산을 뺏으라는 말인가? 한국기자협회 윤리강령 9조는 이렇게 명기하고 있다.

"우리는 취재의 과정 및 보도의 내용에서 지역·계층·종교··집단간의 갈등을 유발하거나 차별을 조장하지 않는다."

3.어포더블
 
지난 10월 8일 미국 뉴욕시에서 뉴욕 시장 후보 조란 맘다니가 무료 고속 버스 도입 제안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 M57번 버스를 타고 이동 중 승객과 대화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적 도시인 뉴욕시의 시장이 된 조란 맘다니의 핵심 캠페인 전략을 한 단어로 정의하라면 "감당이 되는"(affordable) 도시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감당되지 못했기에 뉴욕시민들은 맘다니를 선택했는가?

우리들은 일상에서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주거비가 감당이 안 된다."
"아이들 교육비가 감당이 안 된다."
"요즘 물가가 감당이 안 된다."

맘디니는 약 100만 가구의 임대료를 동결하고, 생후 6주부터 5세까지의 모든 아동에게 무상 보육을 제공하고, 시내버스를 무료로 하고, 공공주택을 확대하고, 시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식료품점을 설립해서 물가를 안정시키고 저렴한 가격에 식료품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건 사회주의인가? 맘다니를 공격하는 한국 언론의 주장대로 그의 정체성을 "무슬림 사회주의자"라고 정의한다면 미국적 자본주의를 만끽해 온 뉴욕 시민들은 하루아침에 맘다니의 마술에 걸려 사회주의자들이 되어버린 것인가? 갑자기 이교도적 이데올로기에 매혹되어 맘다니를 시장으로 뽑아버린 것인가?

그럴리가.

미국의 뉴욕시민들은 여전히 미국 자본주의의 신봉자들이다. 부자를 동경하고, 투자를 좋아하고, 돈을 사랑한다. 다만 그들의 형편이 어려웠을 뿐이다. 주거비가 감당이 안 되고, 교육비가 감당이 안 되고, 물가가 감당이 안 됐기 때문이다.

1년여 전 뉴욕에서 우버 택시를 탔을때 그의 월 소득을 물어보니 우리 돈으로 600~700만원 정도였다. 그가 사는 원룸의 월세가 400만 원이었는데 아프리카에서 이민 온 2명의 친구와 함께 3분의 1씩 부담한다고 했다. 월 소득 600만 원으로 혼자 월세 400만 원짜리 원룸에 산다는 건 감당이 안 된다.

그런데 앞으로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이를 낳는다면? 가정을 꾸린다면? 지금의 소득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 근로소득 상승은 쥐꼬리, 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미래가 불투명하면 좌절하기 쉽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의식주는 삶의 기본이다. 그런 측면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뉴욕은 당장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기본도 안 된 도시다. 뉴욕 시민들이 조란 맘다니를 선택한 이유다.

물론 그가 임기 내 약속을 다 지킬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재원 조달이 문제다. 슈퍼리치나 법인에 대한 증세도 이미 저항을 맞고 있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각종 보조금 중단을 공언해왔다. 그의 실험은 성공할 가능성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것은 문제에 대한 나름의 해법이었다. 힐난이 아니라 힐링이었다. 부정이 아니라 긍정이었다. 갈등이나 대립을 부추기는 게 아니라 조정을 통해 화해와 통합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상징하는 핵심 단어는 뉴욕시민들의 삶의 형편, 어포더빌리티(affordability)였다. "당신 소득으로 뉴욕에서 살 형편이 되나요?"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질문이었다.

4. 한국인으로 어포더블하게 살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인간 삶의 기본은 의식주다. 먹을 것, 입을 것, 나와 내 가족이 저녁에 들어와 살 곳. 그게 기본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언론은 빵값과 라면값은 몇백 원만 올라도 비싸다고 난리 치지만 신기하게도 집값은 1~2억 원이 일주일 새 올라도 눈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서울 수도권 집값의 하향 안정화를 외치는 정치인, 전문가 등을 '좌파' 또는 '폭락론자'로 낙인찍는다.

한국의 보수언론들처럼 자기들의 주요 소비자인 독자, 시청자, 대중의 절반 이상(중장년층과 가난한 노인들)을 힐난하며 공격하는 언론은 전 세계적으로 희귀하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스스로를 이른바 '정론지'로 자처한다. 일베같은 극우 커뮤니티처럼 세대 간 갈등을 부추기고 부정확한 정보로 왜곡된 분노를 돋우는 '정론지'는 없다. 형용모순이다.

이들이 왜 이러는지, 그 정치경제적 이유는 앞의 설명으로, 지난 한국사의 경험으로 충분히 짐작 가능할 것이다. 다만 독자나 시청자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이런 '정론지'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국 경제가, 우리가 실질적 피해를 입는다는 점이다.

소비도, 투자도, 경제도 심리가 절반이다. 경제는 자기실현적(self-fulfilling)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대중의 심리가 부정적이면 경제에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제 현실이 진짜 그런지, 객관적으로 폭락한 것인지, 붕괴한 것인지, 아니면 먹고 살만한 것인지, 서울 집값은 미친 집값이 아닌지를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따져보는 습관을 가져보자. 많은 언론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일부러 감정적이고 선정적이라면, 독자나 시청자들이라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경제 현상들을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 한국인으로 '어포더블'하게 살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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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KT…'국민기업' 개혁의 시금석 삼아야"

정숙 시민기자아이들 공부를 가르치는 공부방 선생님이자40대 후반 늦은 나이에 리포액트 시민기자로 글을 쓰기 시작해 민들레 시민기자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다른 기사 보기
 

[인터뷰]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IMF 이후 주인 없는 기업 된 국민기업들

정권 낙하산 인사, 국민 기업 사적 이용

김영섭 대표도 공적 역할 도외시한 책임 

KT사태 통신업계 전반 문제…보안신뢰 떨궈

문재인 정부에 여러차례 건의했지만 침묵

국민기업 개혁, 공공 가치 바로 세우는 일

지난 24일 경기 고양시 사무실에서 1차 인터뷰 중인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2025.10.24.정숙 시민기자
지난 24일 경기 고양시 사무실에서 1차 인터뷰 중인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 2025.10.24.정숙 시민기자

김영섭 케이티(KT) 대표이사가 무단 소액결제 해킹 사태에 책임을 지겠다는 뜻을 밝히고 지난 4일 KT 이사회에서 대표이사직 연임을 포기했다. KT는 초기 대응까지 최소 7일이 걸렸고, 지난달 11일 1차 브리핑에서 피해자를 278명이라고 발표했다가 이후 2~3차 발표에서는 피해 규모를 확대 발표하는 등 사후 대응 한계를 드러내 소비자 불신을 더욱 키웠다.

2017년부터 KT 관련 의혹들을 추적해 온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이번 KT 해킹 사태에서 보여준 미온적인 사후 대응도 민영화로 인해 국민기업이 '주인 없는 기업'이 되면서 공적 역할을 도외시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IMF 이후 한국 사회가 떠안은 '구조적 병폐'들이 KT와 같은 국민기업의 민영화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단언했다.

<시민언론 민들레>는 지난달 24일 경기 고양시 사무실에서 안 전 청장을 만나 공공성과 공익이 사라진 민영화의 민낯을 짚어 보며 KT를 비롯한 국민기업을 개혁해 공공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4일 김영섭 대표이사 사의 표명 이후엔 추가로 서면 인터뷰를 통해 KT 무단 소액결제 해킹 사태에 대해 문답을 주고 받았다.

IMF 이후 주인 없는 기업 된 국민기업
정권 낙하산, 국민기업 사적 이용

-먼저 '국민기업'의 개념을 설명해 주세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은 구제 금융의 조건으로 한국 정부에 공기업 민영화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포스코, KT, 케이티엔지(KT&G) 같은 국가 기간산업 기업들이 지분을 외국인들과 국민들에게 개방하면서 줄줄이 민영화 됐습니다. 그 결과 이들 기업은 '국민기업'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됐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인 없는 기업'이 됐습니다. 국민이 주식을 가지고 있지만 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으니 형식적인 주주일 뿐 실질적인 통제권은 없는 거죠. 국가가 100% 소유하던 공기업이 주식회사로 전환되면서 국민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소유권을 조금씩 나눠 가진 구조로 바뀐 겁니다."

-민영화 이후 어떤 문제점이 발생했나요?

"국민 개개인이 경영에 참여할 수 없다 보니 주식은 국민이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기업이 됐습니다. 이런 틈을 타서 권력을 잡은 정권이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고 그 경영진들이 회사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국민기업은 국민의 것이 아니게 된 거죠."

 

황창규 전 KT 대표이사(전 삼성전자 사장 출신 ). 연합뉴스 자료사진
황창규 전 KT 대표이사(전 삼성전자 사장 출신 ). 연합뉴스 자료사진

황창규 전 대표, 사적 재판에  KT 자금 사용
조선일보 사주 사위 회사 고가 매입 의혹도

특정 로펌 출장소 된 KT 감사실…내부감사 무력

-구조적 문제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KT를 언급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민영화 이후 KT는 정권의 놀이터가 됐습니다. 이명박 정부부터 낙하산 대표이사를 내려보내고 그 사람이 자기 입맛에 맞는 이사들을 뽑고 그 이사들이 다시 대표이사를 재선임하는 방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사회를 장악한 사람들이 대표이사를 다시 뽑으니 권력의 사슬이 끊어질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어떤 방식으로 포스코, KT, KT&G 등을 사적으로 이용했나요?

"회사를 이용해 돈을 빼돌리고, 알짜 회사를 헐값에 팔고, 반대로 부실 회사를 비싼 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회사 자산을 빼돌렸습니다. 하지만 오너가 없으니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고 결국은 국민의 자산만 사라지게 된 겁니다."

-KT 내부의 대표적인 비리 의혹은 어떤 것이 있나요?

"황창규 전 대표이사 시절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입니다.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후원금을 주기 위해 이사들에게 쪼개서 돈을 나눠준 사건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변호사 비용을 KT 돈으로 냈습니다. KT는 국민기업인데 사적 범죄를 방어하는 일에 국민의 돈을 쓴 거죠. 이런 일은 오너가 있는 사기업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또 다른 문제는 계열사 거래입니다. KT는 앤서치마케팅 같은 자회사를 조선일보 사주의 사위가 운영하는 사모펀드에 헐값으로 팔고 나중에 다시 고가로 사들였습니다. 이건 단순한 경영상의 판단이 아니라 사실상 권력층과 언론사 간의 유착 거래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회사 돈을 빼돌려도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는 구조가 돼버렸죠."

"인사와 감사 시스템도 무력화됐습니다. 감사실이 특정 로펌 출신 변호사들로 구성돼 있어 회사 내부를 감사해야 할 기관이 오히려 경영진의 법적 방패막이가 된 겁니다. 사실상 KT의 감사실은 특정 로펌의 출장소나 다름없는 거죠. 이런 구조에서는 어떤 비리도 드러날 수 없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민영화지만 실제로는 국가 자산이 사유화 돼 책임은 분산되고 이익은 특정 집단으로 집중됩니다."

 

지난 9월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해킹 대응을 위한 과기정통부-금융위 합동 브리핑을 마친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과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왼쪽 네번째)이 대화하고 있다. 맨 왼쪽은 롯데카드, 맨 오른쪽은 KT 관계자. 2025.9.19. 연합뉴스
지난 9월 1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해킹 대응을 위한 과기정통부-금융위 합동 브리핑을 마친 류제명 과기정통부 제2차관과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왼쪽 네번째)이 대화하고 있다. 맨 왼쪽은 롯데카드, 맨 오른쪽은 KT 관계자. 2025.9.19. 연합뉴스

보안 불감증이 부른 KT 무단 소액결제 해킹
김영섭, 공적 역할 도외시…실적 위주 구조조정
KT 사태, 통신업계 전반 문제…보안신뢰 흔들어

-지난 9월 18일 KT에서 무단 소액결제 및 해킹 정황이 발견됐는데 이번 사태의 본질적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이번 사건은 펨토셀이라는 소형기지국 장비를 해킹해 소비자 비밀번호를 빼내 통장에서 자금을 결제하는 신종 범죄행위 수법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KT 자체 서버를 침해한 흔적도 보여서 유심칩 전체를 교체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불법 소액결제와 해킹은 보안 불감증이 근본 원인입니다. 통신기술 진전에 따라 범죄도 고도화되는데 문제의식 없이 대응에 미진했던 것입니다."

-해킹 정황이 9월에 신고됐지만 공식 대응은 한참 뒤에 이뤄졌는데 사후 대응이 늦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식 대응이 늦었다는 것은 책임 회피를 위함이거나 사건을 감추기 위한 것이고 고객을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보안 불감증과 고객 무시 사고에서 비롯된 사태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섭 대표이사 취임 후 검찰 출신, 정치권 출신 인사 등을 주요 보직에 대거 영입하면서 '낙하산 인사' '검찰 기업화'에는 열을 올리고 정작 보안사고에는 미온적 대응으로 위기 대응의 한계를 보였습니다.

"김영섭 대표이사는 엘지시엔에스(LG CNS)에서도 국책사업인 차세대 사회보장시스템 구축 지연으로 LG를 부정적 이미지로 평가 받게 한 인물이고, KT에서도 공적 역할을 도외시한 실적 위주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에게는 매우 부정적인 인물로 평가됩니다. 특히 검찰 출신 특정 로펌 변호사들을 대거 주요 보직에 배치하여 KT를 검찰기업화 한 인물이기도 하고요."

 

김영섭 KT 대표이사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10.29. 연합뉴스
김영섭 KT 대표이사가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에 대한 종합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5.10.29. 연합뉴스

-어떤 제도적 보안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SK텔레콤도 유심을 무상으로 교체를 해주고 위약금을 면제하는 조치를 했는데 KT의 조치는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요. 통신 자체 보안도 중요하지만 핀테크 기업들은 인공지능(AI)과 디지털화폐 시대에 통신기기 금융서비스에 대한 보안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대응 방식과 속도에 고객 신뢰와 기업의 성패가 달렸습니다. 최적의 보안체계를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건설 현장의 실적위주 안전 불감증처럼 통신업계도 보안 불감증이 작금의 사태를 야기했다고 봅니다. 신뢰를 회복하려면 세계적인 AI기반 보안시스템 업체와 협력체계 구축은 물론이고 불법 펨토셀같은 장치에 대해 상시 감시체계를 위한 인력보강을 하는 한편 소비자들에게 보안이 강화된 유심을 공급하여 주고 더 나아가 기기 사용시 안면인식이나 지문인식 같은 2차, 3차 인증시스템을 구축하여 보안에 만전을 기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은 단순히 KT만의 문제가 아니라 통신업계 전반의 보안 신뢰를 흔들고 있는 큰 사건입니다."

-이번 사태가 KT 중장기 경쟁력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전망하나요?

"이번 사태는 KT만의 문제가 아니라 통신업계 전반의 문제입니다. 사후 수습과 대책 마련의 결과에 따라 고객들의 신뢰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신뢰 회복에 따라 사운이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KT의 방대한 데이터와 전국망을 활용하여 AI로 비정상 상황을 미리 체크하고 학습 시키면 사전 감지한 데이타로 신속하게 비정상 상황에 대처하는 보안 솔루션 분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로 사고와 자살률 급증
공공 책임 문제, 문재인 정부도 침묵·방조
국민기업 책임 있는 주주가 주인이 돼야

-KT의 노동 환경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죠?

"한때 KT는 복지 좋은 직장으로 꼽혔지만, 하청과 외주화의 전형이 됐습니다. 외주화를 통해 인건비를 줄이려다 보니 정규직을 줄이고 협력업체를 늘렸죠. 그 결과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와 자살률이 급증하기도 했습니다. 가령 통신선이나 와이파이 설비 작업은 보통 2인 1조가 기본입니다. 한 사람은 위에서 작업하고 다른 사람은 아래에서 안전을 확인해야 하는데, 비용을 아끼려 한 사람이 혼자 작업하는 구조가 되니 일을 하다가 떨어져서 다치거나 죽고 감전 사고를 당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건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니라 기업 구조의 문제입니다. 공공성을 잃은 국민기업이 국민의 생명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9년 4월 17일 KT상용직노조, KT전국민주동지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KT의 청문회 방해공작 진상규명 및 아현화재ㆍ채용비리 황창규의 신속한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난 2019년 4월 17일 KT상용직노조, KT전국민주동지회 관계자들이 17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KT의 청문회 방해공작 진상규명 및 아현화재ㆍ채용비리 황창규의 신속한 수사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문재인 정부 시절에서도 이런 문제를 제기했다면서요?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민간 기업이니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는 말뿐이었어요. 통신망은 국가 안보의 핵심 인프라이기 때문에 이런 대응을 한 문재인 정부는 명백한 직무 유기이자 방조입니다. 전쟁이 나면 제일 먼저 타격받는 게 통신입니다. 그런데 국가가 민간 기업이니까 손을 놓고 있는건 공공의 책임을 포기한 행위죠. 민간기업이라며 개입하지 않을 게 아니라 오히려 국민의 생명과 국가 안보를 위해 개입해야 할 사안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국민기업들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요?

"KT를 국민기업 개혁의 시금석으로 삼아야 합니다. 회사의 정관을 바꾸어 이사회 구조를 완전히 새로 짜야 합니다. 대주주, 정부, 노동조합, 소액 주주, 정보통신업 협회 등 이해관계자들이 모두 이사회에 참여해야 합니다. 이사회가 투명해지고 감사가 제 역할을 하면 정권이 손댈 여지가 사라집니다."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면요?

"첫 번째는 이사회의 다원화입니다. 국민연금, 현대자동차. 신한은행 같은 대주주뿐 아니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노동조합, 소액 주주 단체, 통신업 협회 등이 추천하는 각계 인사들을 이사회에 포함해야 합니다. 정권의 낙하산 인사가 아니라 국민이 참여하는 이사회가 경영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감사가 본연의 기능을 다해야 합니다. 특정 로펌과의 유착을 단절하고 세무조사에 준하는 감사가 되도록 회계 전문가로 감사위원회를 설치해 지금처럼 경영진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감사는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는 노동 이사제 도입입니다. 현장 노동자의 안전과 인권 문제를 이사회 차원에서 다뤄 노동자를 회사의 동반자로 봐야 합니다.  이번 정부에서 이런 방식으로 KT의 개혁이 이루어진다면 최초로 노동자들의 염원과 한을 풀어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KT 무단 소액결제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 기지국 아이디 개수와 해킹에 노출된 피해자 수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민희 위원장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범행에 쓰인 기지국 아이디(셀 아이디) 4개 외에도 추가 불법 아이디가 발견돼 현재까지 모두 20개가량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KT 대리점 모습. 2025.10.16. 연합뉴스
KT 무단 소액결제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법 기지국 아이디 개수와 해킹에 노출된 피해자 수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최민희 위원장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범행에 쓰인 기지국 아이디(셀 아이디) 4개 외에도 추가 불법 아이디가 발견돼 현재까지 모두 20개가량이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서울 한 KT 대리점 모습. 2025.10.16. 연합뉴스

KT를 국민기업 개혁의 시금석으로 삼아야
국민기업 개혁, 공공 가치 바로 세우는 일

-왜 KT를 바꾸면 KT&G와 포스코 등도 바뀐다고 생각하나요?

"KT는 기업 규모와 성격상 국민기업 재도약의 실험 모델로 적합합니다. 정권의 입김을 막고 국민의 감시가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저는 2017년부터 KT 관련 의혹을 추적하면서 KT가 자산을 사적으로 어떻게 빼돌렸는지, 계열사 거래를 어떻게 악용했는지 추적해 왔습니다. KT를 구조조정할 방대한 자료도 모았습니다.

또한 KT도 망 사업자라 AI, 디지털화폐 시대, 스카이라이프를 통한 K-문화 수출로 미래 먹거리를 KT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비전도 가지고 있습니다. KT가 표준모델로 안착하면 다른 국민기업도 이 방식을 적용할 수가 있습니다. 그동안 KT를 추적하며 모은 많은 정보와 자료로 국민기업의 개혁에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주식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주인이 되는 게 아닙니다. 기업의 방향을 결정할 권한과 감시할 권리가 있어야 진짜 주인입니다. 지금 국민은 주주로 이름만 남았고 권력과 그 하수인들이 국민기업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이 국민기업에게 공공성과 투명성을 요구해야 합니다."

"KT는 민영화로 효율을 높인다고 했지만 특정 개인이나 기업에 이권과 이익을 몰아주는 부패의 통로로 악용되고 있습니다. 국민기업 개혁은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정의와 민주주의, 공공가치를 바로 세우는 일입니다. 국민기업은 국민이 진짜 주인이 돼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국민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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