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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항쟁 39주년, 그 뜨거웠던 초여름을 반추하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샘터교회 원로목사. 시인. 부산예수살기 대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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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기념 넘어 현재를 점검하는 작업이기도

박종철, 이한열, 직선제 그리고 인간다운 삶

‘시민’이라는 자각은 이때 구체적인 현실로

명동성당과 서울광장이 이끌어낸 6·29선언

변화의 출발점은 여전히 시민의 인식과 행동

참여의 폭 넓히며, 공론장 질을 높이는 과제

기억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 여름은 살아나

1987년 6월 26일 부산에서 열린 국민평화대행진에 참가한 한 시민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달리고 있다.(나무위키)

1987년 초여름, 한국 사회는 더 이상 뒤로 물러설 수 없는 경계에 서 있었다. 오랜 억압 속에서 누적된 긴장이 한계에 도달했고, 마침내 거리 위에서 폭발했다.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그보다 더 큰 것은 인간다운 삶을 향한 열망이었다. 이 흐름은 특정 집단의 행동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전환의 순간이었다.

그 불씨를 드러낸 사건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었다. 권력은 사건의 진실을 축소하고 왜곡하려 했지만, 그러한 시도는 오히려 체제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다. 한 개인의 죽음은 더 이상 개인의 비극에 머물지 않았다. 그것은 국가 권력이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으로 확장되었고, 시민들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이후 거리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학생들이 먼저 움직였고, 직장인과 노동자, 종교인과 상인들이 뒤를 이었다.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공통의 이름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시민’이라는 자각은 이때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다.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주체로서의 의식이 형성된 것이다.

이 흐름의 분수령에는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이 놓여 있었다.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청년의 모습은 많은 이들의 내면을 흔들었다. 슬픔은 행동으로 이어졌고, 행동은 연대로 확장되었다. 개인의 희생은 공동체의 결단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으며, 거리의 분위기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1987년 7월 9일 이한열 열사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서울광장과 소공로, 서소문로 등을 가득 메우고 있다. (나무위키)

명동성당은 그 시기 중요한 공간으로 기능했다. 시위 참가자들이 몸을 피하고 숨을 고르며 다시 나설 힘을 얻던 장소였다. 이곳은 신앙의 영역을 넘어 사회적 양심이 머무는 자리로 자리 잡았다. 침묵을 강요받던 시대에,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켜주는 울타리 역할을 수행했다.

거리에서 형성된 힘은 점차 거대한 흐름으로 성장했다. 각자의 목소리는 하나의 요구로 모였고, 그 요구는 정치적 변화를 압박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권력은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으며, 결국 양보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6·29 선언이었다. 대통령 직선제 수용과 기본권 확대 약속은 분명 중요한 전환점이었지만, 그것은 완결이 아니라 새로운 국면의 출발이었다.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핵심은 민주주의가 단일 사건으로 완성되는 체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도는 마련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이후의 시간 속에서 결정된다. 1987년 이후 한국 사회는 이러한 과정을 압축적으로 경험해 왔다. 정기적인 선거를 통한 권력 교체, 다양한 정치 세력의 등장, 표현의 자유 확대 등은 외형적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다. 그러나 외형의 안정이 곧 내용의 충실함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권력은 형태를 바꾸며 영향력을 유지하기도 한다. 노골적인 강압 대신 행정, 자본, 정보가 결합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새로운 지배 구조를 형성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문제의식이 흐려지기 쉽고, 시민의 참여 역시 특정 시기에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일상 속에서 공공의 문제에 관여하는 경험이 축소될 경우,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고 실질은 약화될 수 있다.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1987년 6월 9일 학교 정문 앞에서 박종철 변사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의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피를 흘리며 의식을 잃자 친구가 일으켜 세우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후유증에 시달리던 이한열은 다음달 5일 세상을 떠났다. (나무위키)

경제적 조건 역시 중요한 변수다. 삶의 격차가 커질수록 정치적 권리의 실질적 행사 능력은 불균등해진다. 생존의 부담이 클수록 공적 참여는 뒤로 밀려나고, 그 결과 일부의 목소리만이 공론장을 주도하게 된다. 이러한 구조는 다시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순환으로 이어진다.

정보 환경의 변화 또한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과거에는 검열이 문제였다면, 오늘날에는 과잉과 왜곡이 문제로 등장한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방대한 정보가 유통되지만,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감정적 반응이 이성적 판단을 압도하거나 특정 시각이 반복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은 공론장의 균형을 흔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의 출발점은 여전히 시민의 인식과 행동에 있다. 1987년의 경험은 개인의 선택이 사회를 움직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공적인 행동으로 연결할 때 제도는 살아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러한 감각이 유지될 때 민주주의는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로 작동한다.

서울광장과 같은 공간은 이러한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다양한 집회와 토론, 문화적 표현이 이루어지는 장소로서 시민이 공공의 문제를 공유하고 확장하는 장이 되어 왔다. 과거와 같은 긴박함은 아닐지라도, 의견을 모으고 사회적 방향을 모색하는 과정은 다른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초기 수사 결과를 전한 1987년 1월 19일 동아일보 1면. (나무위키)

남아 있는 과제는 분명하다.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참여의 폭을 넓히며, 공론장의 질을 높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과 언론, 시민사회 전반의 역할이 중요하다. 특정 집단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주체가 각자의 위치에서 책임을 나눌 때 균형 있는 발전이 가능해진다.

이 시기를 돌아보는 일은 단순한 기념을 넘어 현재를 점검하는 작업이다. 과거의 경험은 완결된 답을 제공하지 않지만, 방향을 설정하는 기준을 제시한다. 무엇이 부족했는지, 무엇이 가능했는지를 성찰할 때 새로운 선택의 근거가 마련된다.

결국 남는 것은 공동체의 방향에 대한 물음이다. 어떤 사회를 지향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특정 시기에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계속 수정되고 보완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서로의 차이를 어떻게 조율하느냐다.

1987년의 여름은 하나의 출발점이었다. 그 이후의 시간은 그 출발이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연속된 과정이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역시 그 흐름 위에 놓여 있다. 과거의 경험을 단절된 기억으로 남겨 둘 것인지, 현재의 선택으로 이어갈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기억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그 여름은 현재 속에서 살아 있게 된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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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디 섬의 ‘땅울림’이 절대로 작동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

  • 기자명 이경렬 전 대사
  •  
  •  승인 2026.06.10 08:32
  •  
  •  댓글 0
 
 

조선의 비핵화는 ‘먼 훗날’ 전 세계의 비핵화로 풀어야

일본의 대하 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에 외부 세계로부터 절멸 위협을 받는 고립 공동체 파라디 섬이 나온다. 그곳 사람들은 과거 거인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했던 에르디아 제국의 후예다. 성벽 바깥에 파라디를 위협하는 마레 제국이 있다. 과거 에르디아 제국의 폭압을 기억하면서 파라디를 멸절하려는 세력이다. 파라디 공동체가 마레 제국에 맞서 유지하는 최후의 억제력이 ‘땅울림’(rumbling)이다. 거인들을 동원해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외부 세계에게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힘이지만 에르디아인에게는 없으면 망하는 힘이다.

조선은 한 때 고립되어 있었다. 핵이 있어야 공격받지 않는다고 믿었다. 미국의 적대정책과 군사위협 때문에 핵을 가졌으며, 핵을 포기하면 리비아나 이라크처럼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미국과 주변국은 북한이 핵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고 믿는다. 조선의 핵은 평양의 ‘땅울림’이다. 워싱턴과 서울과 도쿄에는 제거해야 할 종말장치이지만, 평양에는 포기하는 순간 자신들이 짓밟힌다고 믿는 최후의 성벽이다. 그러나 <진격의 거인>에서 ‘땅울림’은 실제로 작동해 세계가 멸망의 순간에 처하지만, 조선의 핵은 결코 터져서는 안 되는 물질이다.

6월 8일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갖고 조선의 핵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접근을 강조했다. 비핵화를 협상의 문턱에 두려는 주장을 ‘이상론’으로 규정하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년 10-20개의 핵탄두를 제조할 수 있는 핵물질의 생산과 탄도미사일 기술의 최상급 고도화 추세를 현 단계에서 멈추게 하는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국제사회에 이익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조선에 대한 경제제재도 그다지 효과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제재를 앞세운 비핵화 억압 역시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견해를 드러냈다. 일보 전진이다.

그렇다고 조선이 즉각 긍정적으로 반응할 것 같지는 않다. 이 대통령이 “비핵화 목표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 이상, 조선으로서는 이를 핵보유국 지위 부정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북은 지금 핵을 협상 카드가 아니라 헌법적 지위, 국가 정체성, 대미 억제력의 핵심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은가. 조선에게 비핵화 요구는 주권과 생존권 포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조선의 반응은 침묵, 냉소적 평가절하, 또는 비난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럼에도 이 발언은 중요하다. 한국이 앞으로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적 기반이기 때문이다.

6월 4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새로 조업한 핵물질 생산 공장을 현장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지난 5년간 무기급 핵물질 생산능력이 종전의 2배를 능가했다”고 말하고, 핵무력을 “질량적으로, 지속적으로, 가속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미국의 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공개된 사진의 원심분리기 배열과 통로 구조가 기존 영변, 강선 시설과 달라 새로운 시설일 가능성이 있으며, 정상 가동 시 연간 약 70-80kg의 고농축우라늄, 즉 최소 핵무기 4기분 정도를 생산할 수 있다. 조선은 멀리 나아가고 있다.

미국의 대북 강경파 빅터 차의 시각이 이 대통령의 관점에 근접한다. 차는 4월 21일 <포린어페어> 기고문(North Korea As It Is: The Case for a Cold Peace)에 미국이 비핵화를 포기해서는 안 되지만, 이제는 그것이 “먼 목표”임을 인정해야 하며, 당장의 안보 필요를 가로막게 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그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도 “비핵화는 고귀한 목표지만 과거 정책 실패와 조선의 집요한 핵보유 의지 때문에 당장은 달성 불가능하다”면서 미국은 “그 핵무기에 맞서 미국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 즉각적 목표”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거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조선의 비핵화를 협상의 입구에 위치시키고 있다. 5월 17일 백악관이 발표한 미중 정상회담 팩트시트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은 북한을 비핵화한다는 공동 목표를 확인했다”고 적었다. 하지만 중국 외교부는 “중국의 한반도 문제 입장과 정책은 일관되고 연속적이며, 정치적 해결을 추진하겠다”라고만 말한다. 미 국무부 대변인이 6월 5일 시 주석 방북과 관련해 팩트시트의 내용을 되풀이하자 김여정은 비핵화란 “시대착오적 망상”이라면서 미중 정상이 북한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미국 발표를 “허위정보”라고 비난했다.

 

핵탄두를 보유한 나라가 제재나 협박으로 핵무기를 포기한 사례는 없다. 남아공이 과거 핵무기를 폐기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그것이 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과 조선의 반발은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 5월 26일 QUAD 외교장관이 공동성명에서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하자 조선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비핵화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이상론일 뿐이다. 조선에게 “비핵화는 끝난 의제”이고 “핵보유국 지위는 불가역”이다.

러시아는 조선을 ‘NPT상의 공식 핵보유국’으로 승인한 것은 아니지만, 정치·외교적으로는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024년 9월 “조선의 비핵화는 종결된 문제”라 말하면서 조선의 핵무기를 방어 전략의 핵심 요소로 이해한다고 언급했다. 중국 역시 조선의 핵무기국 지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6월 7일 시 주석의 평양 방문과 관련 “조선의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시키는 일은 중국의 의제에서 빠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중국의 조선 핵지위에 대한 묵시적 수용이라고 썼다.

6월 8일 시진핑과 김정은은 정상회담을 갖고 조중관계의 ‘새 시대’를 열기로 합의했다. 조선은 핵보유국 지위를 접지 않은 채 중국의 전략적 후원을 얻었고,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자신이 핵심 후견자라는 점을 과시했다. 시진핑은 노동신문에 패권주의와 군국주의 부활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냈다. 미국, 한미일 안보협력,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겨냥한 표현이다. 두 정상이 대미 협상 카드를 조율했을 가능성도 크다. 조선은 중국을 통해 미국에 “비핵화가 아니라 핵군축, 제재완화, 평화공존을 논의하라”는 메시지를 보내려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인류의 비핵화를 포기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것은 빅터 차의 말처럼 ‘먼 목표’요 ‘고귀한 목표’로 간직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이 대통령의 비핵화 불포기 발언이 그러한 맥락이라면 그의 ‘현실론’은 이보 진전이다. ‘완전한 비핵화’라는 이상론만 되풀이해 온 국제사회의 압박문법은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제 한국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미국에 현실적 접근법을 취하도록 설득하는 일이다. 굳이 비핵화라는 말은 꺼낼 필요가 없다. 그것은 아주 멀리 가닿아야 할 종착지일 뿐이다. 이를 바로 인식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진격의 거인>에서 파라디 섬은 외부 세계가 자신들을 절멸시키리라는 공포 속에서 끝내 ‘땅울림’을 가동한다. 실제로 작동한 최후의 억제력은 인류와 세계를 멸망으로 몰아넣는다. 조선의 핵은 결코 그런 길로 들어서면 안 된다. 그것을 막는 길은 파라디의 성벽을 향해 ‘비땅울림화’를 압박하는 일이 아니다. 압박은 늘 재앙을 불러오는 법이다. ‘땅울림’을 인정하고 파라디와 조선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적 번영의 길을 열고, 적대정책과 핵우산과 전략자산 전개까지 함께 다루는 한반도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 결국 모두가 이기는 길은 조선의 비핵화 강요가 아니라 ‘먼 훗날’의 한반도 비핵화다. 그리고 그 ‘먼 훗날’에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미국을 포함한 NPT상의 모든 핵보유국들도 비핵화를 완료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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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보] 미군, 헬기 격추 보복…호르무즈 인근 도시·섬 공습

김지훈기자

  • 수정 2026-06-10 07:55

8일(현지시각) 미 해군 조지부시함에서 밤중 작전을 진행 중인 승조원과 전투기의 모습. 출처 미 중부사령부

미국이 아파치 헬리콥터 격추에 대응해 이란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이에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인근 도시와 섬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단호한 대응을 예고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10일(현지시각) “오늘 오후 5시(미 동부시각·한국 시각 오전 6시) 최고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이란에 대한 자위적 공습을 시작했다”며 “이는 어제 발생한 미 육군 아파치 헬리콥터 격추에 대한 대응 조처”라고 밝혔다.

미 중부사령부는 이어 “이번 공습은 정당하지 않은 이란의 공격에 대한 비례적인 대응”이라고 설명했다. 미군 최고사령관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미군은 그동안 이란의 공격에 대응할 때 ‘자위적’, ‘비례적’이란 표현을 사용하며 확전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이란 국영방송(IRIB)은 잠시 후 현지에 나가 있는 기자들을 보고를 토대로 호르무즈해협 인근에 있는 시리크와 케슘섬, 자스크가 적의 포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이란 혁명수비대와 연계된 타스님 통신은 “이란은 몇 시간 전 경고했듯이 아파치 헬기 격추를 구실로 자행된 미국의 공격에 대해 단호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타스님 통신은 아랍 소식통을 인용해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의 미군 기지에 최고 수준의 경계 태세가 발령됐다”고 보도했다.

이어 이란 국영방송은 미국의 공격 사실을 처음으로 보도한 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남부 지역에 대한 미국의 공격 물결은 잦아들었고, 케슘섬, 시리크, 자스크, 모바라케 산에서 발생한 적대 행위 이후 현재 상황은 안정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보도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미 육군 소속 아파치 헬기가 전날 밤 호르무즈해협 상공을 순찰하던 중 이란의 무인기 공격을 받아 격추됐다고 밝힌 바 있다. 조종사 2명은 최신형 수상무인기의 도움을 받아 구조됐다.

이란은 헬기 공격을 명시적으로는 아니나 부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타스님은 “군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24시간 동안 호르무즈해협에서 공중 공격 작전은 수행되지 않았다”라면서도 “만약 적이 군용 헬리콥터 격추를 구실로 또 다른 악행을 저지른다면, 단호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에 “이란 영토 인근의 외국군은 자신들의 실수, 사고, 또는 교전에 휘말릴 가능성으로 인해 항상 위험에 처해 있다”며 “위험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은 그들이 떠나는 것이다. 우리는 외교의 언어를 선호하지만, 다른 언어도 할 줄 안다”고 밝혔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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與, ‘투표용지 부족’ 사태 국조 착수… ‘선거제도개혁 TF’도 설치

  • 김미란 기자

  • 업데이트 2026.06.09 17:06

  • 댓글 0

한병도 “국힘, 무책임한 선동정치 멈추고 국정조사 합의 나서야”

더불어민주당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진상 규명을 위해 국정조사에 즉각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국정조사와 함께 선거관리 체계 전반에 대한 제도 개선에도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 입장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한병도 원내대표는 9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번 사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참정권 모두를 치명적으로 훼손한 참사”라며 “단순한 행정 착오나 실수로 치부할 일이 결코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이번 주 본회의를 소집해 국정조사 요구서를 보고하고, 다음 주 본회의에서 이를 의결해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를 가동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선거관리 체계의 전면적인 개혁을 위해 공직선거법과 선관위법 개정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국정조사와 별도로 ‘선거제도개혁 태스크포스(TF)’를 조속히 구성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 원내대표는 “국민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두 번 다시 흔들리지 않도록, 민주당은 모든 역량과 노력을 집중할 것”이라며 “국민의 참정권이 침해받은 이 중차대한 상황에서 공당이 해야 할 일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나아가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국민의힘을 향해 “국정조사 대상에 대통령과 청와대를 넣으라고 주장하는데 대체 뭐 하자는 거냐”며 “실체 규명은 뒷전으로 미루고 자극적인 언행만 앞세우며 자신의 정치적 위기 타개와 정쟁에만 골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무책임한 선동 정치를 그만두고,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한 국정조사 실시 합의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김민수(가운데)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지난 4일 오전 경기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열린 투표용지 부족 사태 관련 항의 집회에서 '부정선거, 원천무효'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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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마르는 단식 26일 차, “먹튀 자본 청산 방관할 것인가”

  • 기자명 김준 기자
  •  
  •  승인 2026.06.08 17:36
  •  
  •  댓글 0
 
   
 

37개 매장 결국 폐점, 3500명 길거리로?
조합원 병원 이송, “잘 안 들리고 두통”
“마지막 단식자는 단식 중단할 수 있을까”

8일, 단식 중이던 홈플러스 노동자가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 마트노조 제공
8일, 단식 중이던 홈플러스 노동자가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 마트노조 제공

우려가 현실이 됐다. 기습적으로 영업이 중단된 37개 홈플러스 매장이 결국 폐점된다. 올해에만 홈플러스에서 2,600여 명이 퇴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3,500여 명의 직원이 더 일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정부에 홈플러스 정상화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단식 중이던 조합원 한 명이 오늘 또 병원으로 이송됐다.

단식 26일 차인 안수용 지부장은 “지난 4일 MBK가 휴점 상태였던 37개 점포의 폐점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지난 5월 기습적인 휴점 이후, 폐점을 통해, 노동자들이 대량해고될 거란 노조의 예상대로 들어맞은 거다.

안 지부장은 “휴점을 결정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이번 폐점 결정 또한 사전에 어떠한 협의도, 설명도, 대책도 없이 당일 통보가 전부였다”며 “불안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던 노동자들과 상인들에게 MBK는 또 한 번 혼란과 절망만 안겼다”고 비판했다.

민주노총 마트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말 17,986명이었던 홈플러스 직원은 4월 말 15,398명 으로 줄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2,588명이 해고된 거다. 여기에 더해 37개 매장이 폐점되면 약 3,500여 명의 직원이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홈플러스 직원들의 불안은 날로 커진다. 

안 지부장은 “비단 37개 점포 뿐이겠냐”며 “MBK는 회생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하지만 자신들은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모든 짐을 전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를 향해 “MBK가 버젓이 자신들의 계획대로 홈플러스를 청산하고 있는데 이들을 처벌하지도 못하고 청산을 방관할 것이냐” 따졌다.

한편, 8일에는 함께 단식 중이던 조합원 한 명이 건강 악화로 녹색병원으로 이송됐다. 노조 측은 조합원 상태에 대해 “귀가 잘 들리지않고, 먹먹한 상태가 계속 유지됐다”며 “두통과 속쓰림의 통증이 계속 강해졌다”고 전했다.

 

이제 남은 단식자는 7명이다. 4일부터 단식을 시작한 최철한 마트노조 홈플러스 노조 사무국장은 “오늘 단식을 중단한 단식자는 뒤에 남은 단식자들이 있기에 중단했지만, 마지막 남은 단식자는 과연 중단할 수 있을까”라며 “정부가 하루빨리 약속을 지켜 노동자들을 살려내야 한다”고 말했다.

진보당도 브리핑 통해, 정부에게 “즉각 홈플러스 정상화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이미선 진보당 대변인은 “무차별적인 폐점으로 지역 경제마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며 “정부는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냐”고 따졌다.

이어 “정부는 노동자들의 단식 때마다 정상화를 약속해 오지 않았냐”며 “하지만 노동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는 단 하나도 없었다”고 꾸짖었다.

이 대변인은 “37개 폐점 기한인 7월 3일 전에,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며 정부에 아래 세 가지를 요구했다.

▲공적 성격을 가진 유암코를 중심으로 즉각적인 정상화 방안을 가동할 것 ▲김병주 MBK 회장 구속 등을 통해 홈플러스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투기자본 MBK의 책임을 철저히 규명할 것 ▲하루아침에 생존 기반을 잃은 노동자와 입점 점주,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생존권과 고용 안정을 최우선으로 보장할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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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반헌법행위 매달린 문호철의 짧은 41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6/09 09:39
  • 수정일
    2026/06/09 09:3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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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문호철 편

오제도 강연 듣고 공안검사 되겠다고 결심

대학 때 경찰과 싸우며 "난 판검사 될 사람"

아이히만처럼 악의 아닌 상부 압박에 순종

공화당 의원 선거법 위반 봐주고 출세길에

남산 부활절 예배 박 목사 허위 진술 유도

인혁당 재건위 조작, 사형 구형장에 서명

야당 의원 13명 불법 구금 알고도 기소해

'어쩔 수 없음'이란 핑계가 치명적 결과 낳아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4권을 펼쳤다. 문호철(文鎬喆, 1937~1978) 항목은 이 책에 수록된 인물들 중에서 가장 짧은 생애를 가진 사람의 이야기다. 41세. 1978년 3월 26일 중앙정보부 파견 근무 중에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그 41년 안에 담긴 반헌법 행위의 목록은 결코 짧지 않다.

그리고 이 인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박형규(1922~2016) 목사에게 한 말이다.

"어렵게 고시에 합격해 어쩔 수 없이 공안부에 배속됐는데 기소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니 도와주는 셈치고 '폭력시위'라는 어귀 하나만 쓰게 해달라."

 

이 말이 이 글의 핵심이다. "어쩔 수 없이" 이 한 마디가 한국 공안검찰의 구조를 가장 정직하게 드러낸다.

 

 

문호철.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오제도의 제자, 출발점이 말해주는 것

문호철은 1937년 7월 19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957년 고려대 법대에 입학한 그는 재학 중 극우 공안검사 오제도의 순회강연을 듣고 감동해 오제도가 이끌던 '한국 청년도덕재무장기구(OMRY)의 학생위원으로 활동했다. 오제도는 이승만 정권 시절 반공 사냥개 노릇을 한 검사로, 『반헌법행위자열전』에서 "재판소 서기 출신으로 옆문으로 검사가 된" 인물로 묘사된 바 있다. 그 오제도에게 감동받아 반공 학생운동을 한 청년이 나중에 인혁당재건위 사건의 검찰관이 됐다.

 

출발점이 말해주는 것이 있다. 그는 확신으로 공안검사가 됐다. 적어도 처음에는. 대학생 때 경찰과 싸우다 구속됐을 때 "나는 판검사가 될 사람이야"라며 난동을 부렸다는 기록도 있다. 특권의식과 확신이 결합된 출발이었다.

1962년 제15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하고 1964년 춘천지검 검사로 시작했다. 고시 동기로는 가재환(1940~2025), 이철환, 정상학 등이 있는데 이들 모두 나란히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에 이름을 올렸다. 결혼식 주례는 법무부장관 민복기(1913~2007)가 섰다. 민복기도 『반헌법행위자열전』 2권의 인물이다. 1965년 결혼식에서 이미 두 명의 반헌법행위자가 만났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세계사 속의 동류, '명령을 따른' 사람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독일 역사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의 연구가 떠오른다. 아렌트는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 1906~1962) 재판을 취재하며 "악의 평범성"을 말했다.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었다. 그는 명령을 따랐고, 출세를 원했고,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다.

 

문호철은 아이히만보다 작은 규모의 악을 행했다. 그러나 구조는 같다. "어쩔 수 없이 공안부에 배속됐는데", 그 '어쩔 수 없음'이 박형규 목사를 괴롭히고, 인혁당 사건의 조작에 참여하고, 고문당한 국회의원의 호소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개인의 악의가 아니라 구조의 압박이 그를 움직였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더 무서운 이유다.

 

 

1942년의 아돌프 아이히만(위키피디아)

1967년 6·8 총선, 부정선거 수사를 중단하다

문호철의 반헌법 행위 첫 번째 장면은 1967년 6·8 총선 공화당 부정선거 수사중단이다. 강원도 영월·정선에서 당선된 공화당 장승태의 선거법 위반혐의를 수사했다. 박쥐작전, 베트콩작전, 두더지작전, 울타리작전, 흑색작전. 공화당의 부정선거 수법은 그 작전 이름도 다채로웠다. 문호철은 현지로 가서 관련자 70여명을 소환해 부정선거 사실을 확인했다.

 

그런데 장승태 측이 증인을 매수·협박하고 고소인이 고소를 취하하자 문호철은 다른 증인을 확보하는 대신 수사를 접었다. 그 결과 장승태는 국회의원 세 번, 체신부장관까지 지냈다. 부정선거를 덮은 검사와 부정선거로 당선된 의원이 각자의 길을 걸었다.

 

남산 부활절예배, 할머니들이 KBS 점령한다는 공소장

1973년 4월 남산에서 부활절 예배를 마치고 유신반대 플래카드를 들었다가 경찰에 제지된 박형규 목사 등을 문호철은 '내란음모'로 기소했다. 공소장의 내용은 걸작이었다. 할머니들이 다수인 십만 군중이 두 대열로 나뉘어 한쪽은 KBS를, 다른 한쪽은 서울 중앙청을 점령한다는 것이었다. 방청석에서 킥킥대는 웃음이 끊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문호철은 이 공소장을 쓰기 전 박형규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렵게 고시에 합격해 어쩔 수 없이 공안부에 배속됐는데 기소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니 도와주는 셈치고 '폭력시위'라는 어귀 하나만 쓰게 해달라."

 

박형규는 문호철이 "측은해 보이기도 하고 입씨름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아" 허위진술에 동의했다. 그 허위진술이 내란음모 공소장의 씨앗이 됐다.

 

이 사건은 1988년 5월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사건 발생 15년 만이었다. 문호철은 이미 10년 전에 세상을 등진 뒤였다.

 

유신독재 체제에 가장 먼저 도전장을 내민 1973년 4월22일 ‘남산 부활절 연합예배 사건’ 이래 개신교 진보세력은 박정희 정권 내내 탄압에 시달려야 했다. 사진은 1975년 4월 구속된 박형규(왼쪽부터)·김관석·조승혁·권호경 목사가 재판을 받는 모습.([길을 찾아서] 미수에 그친 유신반대 시위도 내란음모죄 / 이룰태림)-이룰태림은 고 성유보 선생의 필명이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사형 구형에 서명한 검찰관

문호철 반헌법 행위의 정점은 1974년 비상보통군법회의 검찰관으로서 인혁당재건위 사건과 민청학련 사건을 조작 기소한 것이다. 중앙정보부가 고문으로 조작한 사건에서 피의자들을 속이거나 직접 폭행했으며, 법정에서 진술 중인 피고인을 협박해 "악질검사"로 불렸다. 사형을 구형하는 공소장에 서명했다. 1975년 4월 8일 대법원 상고기각, 18시간 후 8명이 처형됐다. 국제법학자위원회는 "사법역사상 최악의 사법살인"이라 규정했다.

 

2007년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 관련해 문호철이 기소에 참여한 사건들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판결 18시간 만에 사형당한 인혁당재건위사건으로 희생자들, 후에 무죄로 밝혀졌다. ⓒ 의문사위 자료사진

야당 국회의원 고문호소를 외면하다

1972년 10월 유신 직후 보안사령부는 야당 국회의원 13명을 불법감금하고 고문해 개인비리로 검찰에 송치했다. 문호철은 국회의원들이 불법 감금되어 고문당한 사실을 알 수 있었음에도 이를 외면하고 보안사령부 송치내용 그대로 기소했다. 국회의원의 허위자백에는 이런 상황이 있었다. 중앙정보부 수사관들이 "높은 사람 앞에 가서 지금까지 진술한 대로 해"라고 협박했고, 서울구치소 앞을 지키고 있었다. 문호철은 그 상황을 알면서 기소했다.

 

문호철.(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41세의 죽음,역사의 법정에 서지 못한 이유

문호철은 1974년 하반기 중앙정보부 6국(대공수사국) 수사단장 및 부국장으로 파견됐다. 1977년 8월 부장검사로 승진했다. 그리고 1978년 3월 26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41세. 아직 인혁당 사건의 재심도 열리지 않은 때였다. 그가 기소한 피해자들이 여전히 감옥 안에 있거나 이미 처형된 채였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있다. 박정희 정권이 1978년 3월 19일 그에게 홍조 근정훈장을 수여했다. 사망 일주일 전이었다. 국가가 그의 충성에 마지막으로 보답했다. 훈장을 받은 지 일주일 후 그는 눈을 감았고, 훗날 자신이 기소한 사건들은 모두 재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윤석열과 박정희(박정희, 윤석열 그리고 반복되는 계엄의 역사)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아이히만 재판 이후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는 변명이 면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국제법리의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뉘른베르크 원칙이라고 한다.

 

"상관의 명령 또는 정부의 명령에 따른 행위는 국제법상의 책임으로부터 행위자를 면제시키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공안부에 배속됐는데." 문호철의 이 말이 뉘른베르크 원칙 앞에서 얼마나 초라한지를 영국에서 생각한다. 어쩔 수 없었다면, 왜 박형규 목사에게 허위진술을 회유했는가. 어쩔 수 없었다면, 왜 피의자를 직접 폭행했는가. '어쩔 수 없음'은 구조의 압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어쩔 수 없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 밤 무장병력을 국회로 보낸 사람들 중에도 "어쩔 수 없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어쩔 수 없음'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를 역사는 반복해서 보여준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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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 대통령, 민심 두렵다면서 공소취소에 힘 싣는 모순”

[아침신문 솎아보기] 이 대통령, 선 진상규명, 후 공소취소 결정 입장

한겨레 “공소취소 권한 누가 행사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선 언급 없어”

보유세 인상 시사한 이 대통령에 조선일보 “선거 끝나니 증세 카드”

조선 인터뷰 나선 오세훈 시장 “장동혁 대표가 지향하는 노선 실패”

기자명박재령 기자

  • 입력 2026.06.09 07:29

▲ 지난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 중인 이재명 대통령. 사진=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자신과 관련된 공소취소 문제를 놓고 진상규명을 먼저한 뒤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면 그때 공소취소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여당이 추진했던 ‘특검 공소취소’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아 “공소취소 권한까지 부여한 특검 추진에 힘 싣는 발언”(중앙일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좀 더 분명한 입장을 밝혔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공소취소 관련) 최소한 진상규명은 해야 되겠다”며 “잘못된 게 있으면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고, 잘못된 게 없으면 그냥 놔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대해 “객관적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것들이 꽤 많다”며 검경에 대규모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할 수도 있었지만, “국민이나 야당 입장에선 중립적인 특검이 하는 게 낫지 않나”라고 말했다. 여당은 지난달 공소취소 권한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에 부여하는 안을 추진한 바 있다.

중앙일보 “대통령 임명 특검, 중립적일 수 있겠나”

중앙일보는 9일 <민심 두렵다면서 공소 취소에 힘 싣는 모순> 사설을 내고 이 대통령이 “‘선 진상 규명, 후 공소 취소 결정’이란 원론을 내세우긴 했으나 내용을 뜯어 보면 자신이 피고인인 사건에의 공소 취소 권한까지 부여한 특검 추진에 힘을 싣는 발언”이라고 해석했다.

중앙일보는 “누구든 검찰 기소가 명백하게 잘못되었으면 취소하는 게 옳을 수 있다. 그게 공소 취소 제도를 따로 둔 취지일 것”이라면서도 “특검은 각 정당이 추천한 복수 후보 가운데 대통령이 선정해 임명한다. 과연 대통령의 말처럼 특검이 중립적일 수 있겠나. 당사자인 대통령이 사건의 공소 취소로 연결되는 특검 도입을 스스로 언급하는 것이 적절한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 9일자 중앙일보 사설.

한겨레도 <조작기소 특검 필요, ‘공소취소권 논란’은 해소해야> 사설에서 “최대 쟁점인 공소취소 권한을 누가 행사하느냐는 문제에 대해선 별도 언급이 없었다”고 지적한 뒤 “특검 수사를 통해 조작이 있었던 게 확인되면 법원 판결까지 가기 전 공소를 취소해 절차적 부정의를 바로잡는 게 맞다. 다만 이 대통령이 이날 회견에서 공소취소 권한을 특검에 주는 게 맞는지에 대해 확실한 의견 표명을 하지 않은 것은 아쉽다. 이 문제가 6·3 지방선거의 흐름에 영향을 미친 주요 변수로 지목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고 했다.

한겨레는 “특검법은 국회가 만드는 것인 만큼, 행정 수반인 대통령이 법안의 구체적 방향과 내용에 대해서까지 견해를 밝히는 건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분명한 입장을 밝혔어야 한다”며 “지금의 쟁점은 특검 실시 여부가 아니라, 공소취소권의 행사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유세 인상 의지에 조선일보 “선거 끝나니 증세 카드”

9일자 아침신문 1면은 이 대통령의 취임 1주년 회견 소식이 차지했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등 일부 경합지에서 더불어민주당이 패한 6·3 지방선거 결과를 놓고 “국민들이 주는 경고”라며 “최소한 성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련해 조선일보 <“지선, 국민의 경고… 국정기조는 유지”>, 경향신문 <“이번 선거, 결국 국민이 제게 준 경고”>, 한겨레 <이 대통령 “선거결과, 국민이 제게 준 경고”> 등의 1면 기사가 나왔다.

이 대통령은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보유세가 대체로 낮다. 서구 선진국만큼 보유 부담을 갖게 하는 게 맞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월급은 일정 수준을 넘으면 소득의 절반 가까이 내는데, (부동산) 투자 소득은 왜 그렇게 많이 깎아줘야 하느냐”라고 말했다.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 당시 “세금으로 집값 잡는 건 웬만하면 안 하겠다”라고 했던 것과 대비된다. 관련해선 중앙일보 <“보유세 낮아… 전세 감소는 정상화 과정”>, 동아일보 <李 “한국 보유세 낮다… 7월에 세제 정리”> 등의 1면 기사가 나왔다.

▲ 9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 9일자 중앙일보 1면 기사.

조선일보는 9일 <선거 끝나니 부동산 증세 카드 꺼내나> 사설에서 지난 3월 이 대통령이 부동산 세금을 ‘핵폭탄’에 비유한 것을 언급하며 “‘최후의 수단으로 반드시 써야 한다면 써야 한다’며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핵과 같은 최후 수단이라던 증세 카드를 지방선거가 끝나자마자 꺼내 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부동산 정책이 성공적이었다고 자평하면서 최후의 수단인 세금 카드를 꺼낸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득표에 불리한 정책은 선거 뒤로 미뤘다는 얘기와 다를 게 없다”며 “부동산 시장 안정은 모든 국민의 바람이다. 그러나 충분한 공급 대책 없이 세금으로 수요를 억누르는 정책은 신중해야 한다. 노무현·문재인 정부가 ‘세금 폭탄’이라고 불릴 만큼 보유세·양도세를 강화했지만 집값을 잡는 데는 실패하고, 서울과 지방 격차를 확대시켰다”고 했다.

오세훈 시장 “서울시장 재선거, 공직선거법상 불가능”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오세훈 시장이 조선일보 인터뷰에 나섰다. 오 시장은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장동혁 대표가 지향하는 노선이 실패했다는 의미”라며 “지금 국민의힘은 중도의 거친 바다로 나아가느냐, 아니면 강성 지지층의 가려운 곳만 긁어주는 ‘유튜브 정당’으로 전락하느냐 기로에 섰다”라고 했다.

오 시장은 “선거에서 이겨야 비로소 유능한 정당이다. 중도 확장적인 실용 가치를 정당 노선으로 세우지 않는다면, 우리 당은 앞으로도 계속 미로 속에서 헤맬 수밖에 없다”며 “장 대표가 대표직에서 끝까지 버티든지 아니면 물러나든지 이제는 어떤 선택을 해도 박수받기 어렵게 됐다. 그렇다고 장 대표는 강성 지지층을 지향하는 정치적 노선을 이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 대표가 향후 보수 정국의 변수로 작용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 9일자 조선일보 6면 기사.

▲ 9일자 경향신문 사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를 오 시장이 승리했음에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이유로 ‘재선거’를 주장하고 있다. 관련해 오 시장은 “정치공학적인 이해관계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공직선거법에는 선거 행정 절차상의 하자가 당락을 바꿀 만한 중대한 위법이 아니라면 전면적인 재선거는 치를 수 없도록 엄격하게 명시되어 있다”라고 했다.

관련기사

경향신문은 9일 <장동혁, 재선거 주장하려면 오세훈부터 설득하라> 사설에서 “대다수 지역에선 큰 문제 없이 선거가 치러졌음을 감안하면 ‘전국 재선거’ 주장은 시민의 문제 제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장 대표는 정부·여당이 어떤 의도와 방식으로 이번 사태를 일으켰다는 것인지, 근거는 뭔지 밝혀야 한다”며 “그게 아니라면 ‘부정선거 음모론’을 불 지피려는 선동에 불과하다”고 했다.

경향신문은 “잠실 개표소 봉쇄 현장에선 우려스러운 일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부 시위대가 경기장에 들어가려는 여자 핸드볼 주니어 대표팀의 소지품을 검사하는가 하면, 이 과정에서 어린 선수들의 ‘양말을 벗겨야 한다’는 극언까지 했다고 한다”며 “부정선거 음모론을 확산하려는 일체의 시도에 대해 현장 시민들이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래야 ‘참정권 침해에 대한 정당한 항의’라는 공감도, 명분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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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세대가 민심을 읽지 못하는 이유

[오찬호의 틈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더불어민주당의 나쁜 태도

오찬호 작가 | 기사입력 2026.06.09. 07:35:12

"너, 보수였어?"

극우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내가 주로 다루는 주제들이 난민, 무슬림, 페미니즘, 성소수자 그리고 불평등 해소인데 이게 극우가 가장 싫어하는 의제라서 그런 것 같다. 극우가 차별과 혐오를 결집의 동력으로 사용하는 건 깊은 분석이 없어도 관찰되는 현상이니까 말이다. 답을 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진단이 쉽겠는가. 양극화, 이민자 유입으로 인한 정체성 위기, 극우 정치의 출현, 확증편향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알고리즘 등을 큰 그림으로 말할 수 있지만 찝찝하다. 그런다고 왜 그래? 이 의문을 해소하기 어렵다.

거시적 변수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개인은 없다. 자신의 삶을 위기로 인지하고 억울하다는 추임새를 넣는다 해도, 그 억울함이 역차별 논리로 늘 확장되진 않는다. 무슬림, 성소수자, 페미니스트에 대한 무조건적인 짜증과 살벌한 적대행위로 나아가진 않는다. 촉발되는 무엇인가가 개인의 삶 속에 있어야만 한다. 그 미시적, 그래서 사람마다 같을 리 없는 일상 속에서 교집합을 포착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여러 가설이 있지만, 그런다고 '왜 그렇게까지 되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겹쳐지는 게 하나 있다. 극우가 되는 단서까지는 아닌데, '죽어도 진보가 싫다'는 입장이 어떻게 생기는지에 대한 비슷한 증언이 있다. 바로 진보의 태도다. 보수의 태도가 싫어서 진보가 됐다는 사람은 드물지만, 반대는 정말 많다. 386 세대와 자녀 세대의 충돌도 비슷한 문법에서 발생한다. 지난 대선에서 자녀가 이준석이나 김문수를 지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386 세대와 그 언저리의 어른들이 꽤 있었다. 그러면서 젊은 세대의 보수화를 한탄했지만, 전제부터가 틀렸다. 자녀가 왜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같아야 한다 말인가. 본인들은 부모님과 전혀 다른 세계관으로 살았으면 말이다. 그러니 충돌한다. 자녀가 진보적이길 바라고 진보적 부모로서 솔선수범하는 것과, 나는 민주화 세대이니 너도 그런 정체성을 가져라는 건 간격이 너무 크다. 너무 비민주적이다.

그래서 자녀가 극우가 된다는 말이 아니라, 이 충돌은 누군가를 생각보다 강력하게 반대 방향으로 달리게 하는 연료가 된다. 한 번쯤이라면 변수가 되겠는가. 지속되니, 에너지로 전환된다. 386 세대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입장만큼은 죽어도 타협하지 않는다. 같은 말을 반복 또 반복한다. 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는 전제에서 진행되는 숙의민주주의가 전혀 없다.

토론을 가장하지만, 평등하게 상대를 대하지 않는다. 자녀가 일곱 살 때는 물론이고 열일곱 살 때도 말이다. 스물일곱 살이라고 다르지도 않다. 서른일곱 살이 되어도 분명 그럴 거다. 늘 듣기만 해야 하는 자는 어느 순간 선택한다. 강을 건너기로. 그리고 다짐한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고. 늘 말만 하는 이들은 이 상황을 나중에야 인지하고 화들짝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취조하듯이 묻는다. "너, 보수였어?"

티 나지 않게 티 내는 법을 모르는 세대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보여준 모습도 비슷했다. 답답했고 투박했다. 충성을 맹세한 진영 안에서만 통할 말을 밖으로 내뱉는다. 유권자를 고민 끝에 한 표를 행사하는 시민이 아닌, 당연히 진보를 선택해야 하는 정치적 미숙아로 대한다. 내란 종식이란 말이 그렇다. 세상에나. 용지 여섯 일곱 장에 기표를 하는 지방선거에서 누가 하나의 의제로 투표를 한다 말인가.

설사 그게 중요하다 해도, 왜 자신들이 이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진솔하게 보여줘 상대가 진정성을 알게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할 줄 모르고 사상검증에 능숙하다. 너, 보수냐면서 부모가 자녀를 의심하는 것과 닮았다. 이런 느낌이다. "내란 종식해야지? / 어, 그거 중요하지 / 그럼 민주당 찍어야지? / 아, 난 아직 잘 모르겠네 / 내란 종식하자며? / 어 그렇지 / 그러면서 국민의 힘 찍는다고?"

스스로를 너무 잘났다고 여기면, 옆 사람이 불쾌하다. 그 들뜬 모습을 마주하는 건 괴롭다. 말을 해도 통하지 않을 저 괴이함 때문에, 겉으로 들어주는 척만 한다. '그래, 너 잘났다. 평생 그렇게 살아라'라는 속마음은 감춘다. 그러니 잘난 척을 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오만한 지를 모르는 괴물이 된다. 세상 어디에나 마찬가지지만 권력의 크기가 어마어마한 정치는 그 강도의 차원이 다르다. 그 안에서도 진보가 더 위험하다.

진보는 성향 자체가 기존의 문법을 깨는 것이기에, "내가 알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권력이 없을 때, 이건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양심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권력을 과하게 가지면 타인의 접근을 봉쇄하는 바리케이드가 된다. 자기만 안다는 사람에게는 늘 본인만 좋아하는 이야기가 다가오니, 그는 남들 다 아는 사실을 본인만 모르고 살아간다. (웃긴 건, 이게 윤석열의 인생이었다는 거다. 그는 타협하지 않는 검사였고, 아무 말도 듣지 않는 대통령이었다.)

부산 북구 보궐선거의 결과는 진보 진영의 잘난 척을 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정우란 사람을 청와대에서 끌고 와 선거판에 집어넣는 것부터 너무 소란스러웠다. 정청래 대표는 영입 과정이 힘들었다고 훗날 자서전에 한 줄 정도로 적으면 될 일을, 삼고초려가 아닌 삼십고초려라도 하겠다는 소문을 동네방네에 내기 바빴다. 오른손이 한 일을 대한민국 사람 모두가 알게 해야 한다는 태도였다. 이 사람들은 늘 이렇다. 티 나지 않게 티를 내는 법을 모른다.

그런데 청와대 AI 미래기획수석비서관은 보통 사람의 입장, 특히 유권자 입장에서는 그저 요즘 시대와 어울리는 전문가에 불과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알 수 있는 조각은 되겠지만, 그걸 이유로 국회의원을 뽑아야 한다면 그게 이유가 되는지에 대한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시작부터, 거물을 어렵게 모시고 왔다는 느낌이니 기분이 어떻겠는가. 뭐야? 고마워라도 하라는 건가?

웃긴 건 정청래 대표 스스로가 하정우 전 비서관을 거물 취급을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빠라 해봐요"라는 꼴불견 에피소드가 등장했겠는가. 정치 신인을 도와주려다가 벌어진 일이라 해명하겠지만, 정확히는 하정우란 사람을 어린아이처럼 보기에 가능한 일이다. 낮춰보니, 본인 태도가 엉망이 된다. 유권자를 어리게 보니 거물 모셔왔다고 난리를 치는 거고, 하정우를 어리게 보니 저딴 말을 농담이랍시고 한다. 이런 태도는 진보 진영에 넓게 퍼져있다. TV 토론이 끝나고 하정우와 한동훈이 토론하는 영상이 여기저기 부유했는데, 진보 쪽 평론은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잘했다, 예리하다 이런 게 아니라 어린이집 장기자랑 시간에 아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처럼 추임새를 넣는다. 49세(1977년생) 성인에게 말이다.

젊은 때 젊다고, 늙어선 늙었다고 주류가 된 세대

객관적으로 사람이 젊은데 무엇이 문제냐고? 정청래는 39세에 국회의원이 됐다. 유시민 작가가 보건복지부 장관에 발탁됐을 때의 나이가 47세다. 왕 어르신 같은 대우를 받는 김부겸은 43세에, 추미애는 38세에 국회에 입성했다. 민주당 역사 자체라는 고(故) 이해찬 총리는 36세에,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42세에 의원이 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성남시장에 당선됐을 때의 나이가 46세였다. 보수도 비슷하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39세에 국회의원, 45세에 서울시장이 됐다. 김문수는 45세, 홍준표는 43세에 배지를 달았다.

20년 전에도 40대 정치인을 젊은 사람이라고 했지만, 어린애 취급을 하지 않았다. 패기가 있다고 했지, 젊은 사람이 패기가 있는 모습이 흐뭇하네 따위의 관전평이 드물었다. 참고로 국회의원 당선자 중 49세 이하 비중이 2004년 선거에는 43%였는데, 2024년에는 15%도 되지 않는다. 반대로 16%였던 60대 이상 국회의원은 35%로 두 배 넘게 늘었다. 그들은 젊은 때 젊어서 주류였고, 늙어선 늙었다고 주류가 됐다.

그래서 대선후보로 291만 표를 얻은 41세 이준석 의원을 언제나 애처럼 대한다. 본인들이 그 나이 때 얼마나 거들먹거렸는지는 잊은 채 말이다. 그들이 존중받았던 건, 많은 이들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채의식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 운동권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누구누구 보좌관 출신이라는 경력만으로도 사회에 필요한 인물이라면서 깍듯하게 대했다. 그런 시대였고, 그렇게라도 민주화 세력이 커지고 단단해지길 간절히 원했다.

지금은 이 부채의식이 없다. 있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그게 사라졌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옆에 없으니 늘 저런 태도다. 본인이 설득하지 못한 걸 죽어도 반성하지 않고, 내란 세력에 동조한 거냐는 따위의 말만 한다. 장담컨대, 다음 선거에서도 그럴 거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총괄상임선대위원장이 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기에 앞서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오찬호 작가

오찬호 작가는 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2년 간 여러 대학에서 강의했다.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는 사회학적 시선을 바탕으로 일상 속 평범한 사례에 어떤 사회구조가 얽혀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드러내는 글을 쓰고 있다. 자기계발 강박이 능력주의로 연결되어 공동체를 어그러트리는 모습을 추적한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대학의 기업화를 비판한 <진격의 대학교>(2015), 경쟁사회의 내면을 파헤친 <결혼과 육아의 사회학>(2018) 등 많은 책을 집필했다. 최근작으로는 <세상 멋져 보이는 것들의 사회학>(2024), <납작한 말들>(202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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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패권에 맞선 ‘다극화’ 추진…북-중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

박민희기자

  • 수정 2026-06-08 22:17

김정은·시진핑 ‘새로운 협력’ 신호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환영 의식을 하고 있다. 뒤에 시 주석의 부인 펑리위안과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가 서 있다. 평양/신화 연합뉴스

7년 만에 북한을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8일 평양 정상회담에서 북-중 관계를 전면 복원하고 ‘전략적 동반자’라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로 했다. 두 정상은 통관의 전면적 재개를 비롯해 양국의 경제 교류를 대폭 강화하고, 군사적 협력 가능성도 시사했다. ‘비핵화’ 언급은 완전히 사라졌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김정은 위원장이 평양 금수산 영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북-중 관계를 “국가의 가장 중대한 제1전략사업”으로 규정하고 “새 시대 조-중(북한과 중국) 우호를 공고히 하고 발전시키는 것은 인민의 선택이자 시대의 요구”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하고 중국이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취하는 정책과 입장을 확고히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 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핵심 이익 수호 입장을 지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시 주석도 김 위원장에게 “이번 방문을 계기로 새 시기 조-중(북-중) 관계의 최고위 설계와 전략적 지침을 강화하고 조-중 관계가 시대와 함께 발전하여 더 큰 발전을 이룩하도록 추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두 정상은 △고위급 교류를 통한 정치적 신뢰 강화 △인민 복지 증진을 위한 실무 협력 △우호 전통을 동력으로 한 유대 강화 △전략적 협력 강화 등 4가지 의견도 제시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시 주석이 “국경 통상구 전면 재개통, 민간 항공 노선 및 국제 여객 열차의 운행 재개를 계기로 인적 왕래를 확대하고 쌍방향 교류를 실현해야 한다”고 한 부분이다. 완공 뒤 10여년 동안 개통하지 못한 북한 신의주-중국 단둥 간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포함해 양국 경제 협력을 전면적으로 확대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시 주석은 “양국의 발전 전략 연계를 강화한다”고도 했는데 과거 중국의 대북 지원과는 차원이 다른, 경제 협력 확대를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두 정상은 군사·외교 협력도 강조했다. 시 주석은 “올해는 ‘조-중 우호협조 및 호상원조에 관한 조약 체결 65주년이 되는 해”라며 “양쪽이 외교, 법 집행, 군대 등의 교류를 강화하고, 중요 컨센서스를 잘 이행해 조-중 관계 발전을 위한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시 주석은 이날 방북에 맞춰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1면에 실린 기고문에서 북·중이 “국가주권과 안전, 발전 리익(이익)을 수호하는 것을 굳게 지지하고, 전후 국제질서를 공동으로 수호해야 한다”면서 북-중 관계가 한반도를 넘어 미-중 경쟁과 북·중·러 협력 속에서 작동하는 국제질서 차원의 중요한 동반자 관계임을 부각했다. 시 주석은 “패권주의와 강권정치를 반대하며,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고 지역의 안전과 안정에 위해를 주는 모든 야욕과 책동을 반대해야 한다”며 “세계의 다극화와 경제 세계화를 공동으로 추진하자”고 했다. 시 주석이 언급한 ‘세계의 다극화’는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중국의 대외전략이다. ‘군국주의 부활 반대’는 일본의 재무장에 함께 반대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중 정상회담과 시 주석의 기고에서 북한 비핵화나 남북 관계 등 한반도 문제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2019년 시 주석이 방북할 때 기고문에서 북-미 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조선반도’(한반도)를 여섯 차례 언급했던 것과는 대비되는 부분이다. 북-중 관계에서 ‘비핵화’는 더는 우선순위가 아니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사실상 묵인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국의 대북 접근 패러다임이 ‘북-미 비핵화 중재자’에서 ‘구조적 대미 견제를 위한 결속력 높은 전략적 동반자’로 완전히 이동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박민희 선임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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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보는 이 대통령 취임 1주년 '대체불가 대한민국' 기자회견

▲질문 받는 이재명 대통령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월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신년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오전 10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한다.

취임 30일과 100일, 신년 기자회견에 이은 네 번째 기자회견이다. 청와대는 7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기자회견의 슬로건은 '대체불가 대한민국'으로,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에서 세계가 꼭 필요로 하는 나라로 도약하겠다는 비전과 의지를 함축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취임 1주년 기념사를 통해 지난 1년의 소회를 밝히고 2년 차 국정 비전과 4대 목표를 제시할 예정이다.

참고로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 당시 임기 2년 차부터는 수출 등 핵심 경제 지표 개선 성과를 민생 전반으로 확신시키는 모두의 성장, 인공지능 혁명 및 에너지 전환 가속을 위한 물적·제도적 기반 구축, 반도체·로봇·방산 등 첨단산업 육성, 지역 균형 발전과 국토 대전환 가속 추진, 글로벌 외교·안보 강국 위상 강화 등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통령의 임기 2년 차 국정운영 방향은 질의응답을 통해 보다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번에도 기자회견에 참석한 내·외신 기자 160여 명으로부터 ▲ 민생·경제 ▲ 정치·외교·안보 ▲ 사회·문화 등 세 분야로 나누어 자유롭게 질문을 받는다. 또한 대학 언론 기자 출신 대학생 2명이 이 대통령에게 청년 세대의 고민과 과제를 질문할 예정이기도 하다.

기자회견 시간은 100분 정도로 예고됐지만, 더 늘어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 당시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총 2시간 53분가량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 받은 바 있다. 취임 30일, 100일 기자회견 때와 비교하면 매 기자회견 때마다 약 30분씩, 문답은 7개에서 10개까지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후임 총리 한성숙 이유? 부동산 세제는 개편? 선관위 어떻게 개혁?

6.3지방선거에서 서울 송파구 등 일부지역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발생한 가운데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사랑채 부근에서 열린 '선관위 해체, 재선거 실시'를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 권우성

무엇보다 각종 첨예한 현안에 대한 이 대통령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예상되는 질문 중 하나는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오는 8~9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출마를 위해 사의를 표명할 김민석 국무총리의 후임으로 지명한 이유다. 앞서 그를 포함해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과 정성호 법무부장관을 차기 총리 후보로 놓고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던 이 대통령은 7일 오후 한 장관을 후보로 최종 낙점했다.

한 장관을 차기 총리로 선택하면서 그에 따른 개각 및 청와대 참모진 개편도 불가피한 상황.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이 '국민주권정부 2기 체제'를 어떤 방향과 기조로 구축할 것인지 관심이 주목된다.

6.3 지방선거 및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도 예상된다. 특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 및 경기 일부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를 갈랐다는 일각의 평에 대한 생각, 또한 "핵폭탄과 같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던 보유세를 포함한 부동산 세제 개편 가능성에 대한 입장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부각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개혁 및 쇄신 요구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을 묻는 질문도 예상된다. 현재 참정권 훼손 등을 이유로 재선거 실시를 요구하는 시위가 도심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는데다 야당 일각에서는 이를 정치 쟁점화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도체 호황 재분배냐 재투자냐... 치솟는 환율 잡는 방법은?

20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경기고용노동청에서 열린 삼성전자 임금협상을 마친 후 여명구 삼성전자 DS(디바이스솔루션·반도체 사업 담당) 피플팀장과 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잠정 합의안에 서명한 후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손을 맞잡고 있다. 2026.5.20 ⓒ 연합뉴스

삼성전자 성과급 분배 논란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를 묻는 질문이 나올 수도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산업이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면서 거둔 막대한 이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정부는 그를 통해 얻은 막대한 세수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막 시작된 상황이다.

특히 정부 내의 의견도 엇갈리는 상황. 예를 들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지금은 반도체 산업이 만들어내는 이윤을 미래를 위한 생산적 재투자로 연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시간"이라며 '재투자'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해 분배의 새로운 규칙을 세워야 할 때"라며 협력업체와의 계약 단가 조정 등으로 초과이익의 일부를 배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적극 재정을 통해 잠재성장률과 생산성을 제고하고 국가 역량을 키우는 투자를 강조해 왔던 이 대통령이 이러한 양론 가운데 어떻게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구현하려 하는지 주목된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고유가·고물가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외환위기 이후 최고수준으로 치솟은 원·달러 환율로 인해 지금보다 더 상승 압박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장바구니 물가에 대한 정부 대책에 대한 질문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코스피 8천 시대 달성 및 사상 최대 수출 흑자 경신 등에도 환율은 외국인의 대규모 매도세와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예고 등으로 좀처럼 안정되지 않는 상황. 참고로 이 대통령은 "물가 안정 없이는 경제 성장도, 양극화 개선도, 국가의 지속적 발전도 불가능하다"면서 실질적 대응책 마련을 주문한 바 있다.

선거 후로 미뤘던 조작기소 특검법과 검사 보완수사권 폐지는?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송언석 원내대표 등 최고위원들이 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조작기소 특검(윤석열 정부 조작 수사·기소 의혹 특검법안)' 반대와 이재명 대통령 재판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졌던 현안에 대한 질문도 있다.

먼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했던 '윤석열 정권 조작기소 특검법'에 대해서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월 홍익표 청와대 정무수석을 통해 "특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고 사법적 정의를 바로세우는 것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서 "구체적인 시기와 절차에 대해서는 여당인 민주당이 국민적 의견 수렴과 숙의 과정을 거쳐서 판단해달라"고 밝힌 바 있다.

관련해 이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구자현 검찰총장 직무대행의 지난 1년 성과에 대한 보고를 받고 "무오류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누구나 잘못할 수 있다. 잘못하면 사과하고 취소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권 폐지 여부를 다루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도 초미의 관심사다. 오는 10월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 출범을 앞둔 가운데 반드시 선결돼야 할 법안이지만 여권 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앞서 공소청·중수청 설치법 논란 과정에서 "당정 간 제대로 된 숙의를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논란이 벌어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한 바 있다. 보완수사권에 대해서는 신년 기자회견 당시 "아주 예외적인 경우에, 남용의 여지가 없게 안전장치를 만든 다음에 그런 것 정도는 해 주는 게 실제로 국가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개혁"이라고 했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그리고 남북관계 개선 구상 있을까

호르무즈 해협 안쪽 UAE 인근 해역에서 정박중에 공격을 받은 HMM나무호의 피격 부위 사진. 정부 합동조사단의 현장조사 결과 “5월 4일 현지시간 15시 30분경 미상의 비행체 2기가 HMM 나무호 선미 좌현 평형수 탱크 외판을 약 1분 간격으로 2차례 타격하였고, 타격으로 인한 충격 후 진동을 동반한 화염 및 연기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좌측 선미 외판이 폭 약 5m, 선체 내부로 깊이 약 7m까지 훼손되었으며, 선체 안 프레임은 내부 방향으로 굴곡되었고 선체 외판은 외부 방향으로 돌출 및 굴곡되었다”고 외교부가 발표했다. ⓒ 외교부제공

중동 정세와 한미·한중 관계, 특히 남북 관계에 대한 구상과 고민도 들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8∼9일 북한을 국빈 방문한다. 이 대통령이 지난 1월 한중 정상회담 때 시 주석에게 북핵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재 역할을 요청한 만큼, 시 주석 방북을 계기로 현재 단절된 남북 관계에 다시 돌파구가 마련될 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최근 실무 협의가 시작된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비롯해 제이미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한 질문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다음 달에 적용키로 한 미국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한 12.5% 관세에 대한 정부의 대응 방향에 대한 질문도 예상된다.

지난 2월 시작돼 지금도 출구를 찾지 못한 중동 전쟁과 관련해선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 기여 방안과 한국 선박 HMM 나무호를 피격한 이란과 가자지구 구호선단에 탑승한 한국인 활동가를 폭행 구금했던 이스라엘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 등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명대통령#취임1주년기자회견#지방선거#부동산정책#조작기소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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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승리 '씁쓸한 뒷맛'…당장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Thomas Kim 시민기자

songofwoobo@gmail.com

愚步(詩人作詞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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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지연·당 계파싸움 빠지면 유권자 등돌려

서울·평택·대구 국힘 승리는 민심 회초리

'틈 보이면 수구 세력 회귀'는 역사의 교훈

내란 청산·검찰 해체·사법 개혁 서둘러라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Thomas Kim 시민기자

2026년 6월 3일,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14곳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동시에 열렸다. 이재명 정부 출범 1년 만에 치러진 이번 선거는 이재명 정부에 대한 중간 성적표로 봐야 할 것이다. 광역단체장 16곳 중 민주당이 12곳에서 승리했고, 국민의힘은 4곳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4년 전인 2022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이 17곳 중 12곳을 가져갔던 것과 완전히 뒤집힌 결과다. 아쉽게도 서울시장을 갖지 못했지만, 충남, 충북, 세종, 대전 등 충청권을 되찾았고, 강원도지사도 민주당이 가져갔다. 부산시정도 이번에 민주당 품에 들어왔다. 당선 숫자만 보면 민주 진영의 승리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서울시장 탈환에 실패하면서 '빛바랜 승리'라는 평가가 나왔다. 서울시장 선거는 말 그대로 드라마였다. 개표 13시간 내내 민주당 정원오 후보가 앞서다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역전하며 승리했다. 최종 개표 결과 오세훈 후보가 49.22%, 정원오 후보가 48.07%를 기록하며 1.15%포인트 차이로 승부가 갈렸다. 그것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라는 혼란 속에서 말이다.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성적표는 아프다. 재보궐 14개 선거구 가운데 13곳은 기존 민주당 의석이었다. 쉽게 말해 지키기만 하면 됐다. 그런데 민주당은 격전지로 꼽았던 5곳, 경기 평택을, 충남 공주·부여·청양, 대구 달성, 울산 남갑, 부산 북갑을 모두 보수 진영에 내줬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9곳, 국민의힘이 4곳, 무소속이 1곳을 차지해 국민의힘이 상대적으로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재보궐 지방선거 이후 민주당은 의석수를 보탠 것이 아니라 4석을 손해 봤다.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은 64% 선으로 안정적이었고, 국민의힘이 내건 '정권 견제론'을 민심이 거부했다는 건 분명하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패배, 재·보궐 선거의 실패는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재명 정부 견제와 민주당 심판에 공감한 유권자 10명 중 7명 이상이 국민의힘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아직 민심이 민주당을 완전히 믿는 것이 아님을 대변하고 있다.

민주당이 내세운 서울시장 후보는 이재명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한 후보라는 점에서 패착이 됐고, 광주에서의 공천 파동과 불복 등으로 당 지도부에 대한 신뢰가 추락했다. 정당의 공천이 개혁의 언어가 아니라 계파의 언어로 느껴지게 되면, 국민은 냉정하게 투표로 민심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이번 선거는 또 한 번 각인시켜줬다.

선거 결과를 놓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지선이 전국적인 민주당의 승리이며 서울의 패배는 아프다는 식의 당 대표 인식은 나태하고 만연하며, 민심과 너무도 차이가 크다"라는 거센 비판이 쏟아졌다. 김민석 총리의 사퇴와 함께 정청래 대표의 연임 여부를 둘러싼 친명계와 친청계의 신경전도 본격화하는 양상이라 보기에 불편한 것도 사실이다.

지역색이 이전보다 옅어졌고, 특정 정당의 불모지라 불리던 지역들에서 새 바람이 불었다는 분석은 희망적이다. 그러나 지방선거 결과를 '승리'로 자축하며 현실에 안주하는 순간, 민심은 바로 회초리를 든다. 민주시민의 바람은 개혁을 향한 실천의 진정성이 보일 때만 계속 불 것이다.

 

Gemini로 생성한 이미지 Thomas Kim 시민기자

정치인들은 민주시민의 준엄한 명령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시민이 주요 지방 권력을 야당에 넘겨준 건 또 다른 명령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개혁이 지체되어 그 명령의 뜻이 흐릿해지니까 서울 시민들은 오세훈을 선택했고, 평택과 대구 시민들은 국민의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유권자는 이미 분명히 밝히며 명령했다. 내란을 청산하라는 명령, 검찰 권력을 해체하라는 명령,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라는 명령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국민은 지난 1년 동안 이 모든 개혁 과제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실현됐는지를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민주시민들은 개혁이 지연되고 당이 이권과 계파 싸움에 빠져들게 되면 먼저 등을 돌린다는 준엄한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이미 반복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줬다. 잠깐이라도 방심하고 기회를 주면, 불법 수구세력의 거침없는 질주는 어김없이 돌아온다. 허술한 통합이란 이름 뒤에 숨은 면죄부는 또 다른 재앙만 될 뿐이다. 내란 청산 없는 통합은 가짜이고, 개혁 없는 민주주의는 빈껍데기이며 사기다. 정치인들은 민주시민이 한없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기억하고, 당장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것이다! 합장(合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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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사무총장부터 싹 교체, 중립 집행부로 경선해야"

호남 단독 인터뷰…여론조사 3사 해촉·8월 전당대회 쇄신 요구

송영길 전 대표, 정청래 체제 공천 여론조사 "검증 안 돼" 직격

신안 김태성, 박우량 꺾고 당선…득표율 52%·1만5546표

진도 이재각, 제명된 현직 김희수 107표차 신승…"모두의 군수"

2026-06-07 07:29:26
 

돈봉투 사건으로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던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 집행부를 갈아엎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 6일 광주 송정역에서 김대중컨벤션센터로 가는 차 안에서다. 호남뉴탐사가 이동 시간을 빌려 인터뷰했다. 그는 한병도 원내대표가 임시 당 대표를 맡는다면 사무총장과 조직국장부터 바꿔 "완전히 중립적 집행부"를 세운 뒤 경선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6·3 지방선거 경선에서 드러난 문제를 그대로 두면 다음 전당대회도 같은 길을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송영길, 공천 여론조사 3사 정조준

 

말이 가장 매서웠던 대목은 여론조사였다. 송 전 대표는 이번 호남 공천 경선에 쓰인 기관 세 곳을 직접 짚었다. 티브릿지, 우리리서치, KSOI다. "저는 여론조사 기관을 믿기 어렵습니다." 그는 KSOI를 빼면 나머지 둘은 자신도 처음 들어본 곳이라고 했다. 티브릿지의 박해성 대표는 정청래 대표의 건국대 후배이자 당직자 출신이라고 했다.

 

문제는 검증이 불가능한 구조라는 점이다. 송 전 대표는 데이터를 다 지우고 수치만 통보하는 방식을 겨냥했다. "결과가 나왔으니까 승복해, 이걸 과연 민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 여론조사 기관 세 군데 전부 해촉하고 보다 알려져 있고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으로 바꿔야 된다"는 것이다.

 

정청래 대표가 당원주권의 상징으로 내세운 1인 1표제를 두고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권리당원 5만명의 표를 200여명짜리 여론조사와 5대 5로 맞바꾸는 셈법을 그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의원제를 없앴다고 만세를 부를 일이 아니라고 했다. 신천지나 통일교 같은 조직이 끼어들 틈을 막는 설계가 먼저라는 지적이다. 정당한 문제 제기를 경선 불복으로 몰아 징계로 다스리는 데 대해서는 "민주적 정당으로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못박았다.

 

백서 이야기에서는 국민의힘을 거울로 들었다. 4·10 총선 참패의 원인은 윤석열·김건희 씨였는데 그 책임을 한동훈에게 씌운 백서가 당을 무너뜨렸다는 진단이다. "그 원인을 한동훈으로 몰아서 한동훈을 죽이는 백서를 만든 거잖아요. 그러면 망하는 겁니다." 같은 실수를 민주당이 반복해선 안 된다는 경고였다. 당 대표 출마 여부는 끝까지 아꼈다. 본인 뜻보다 당원과 이재명 대통령의 생각을 더 살피겠다고 했다. 청담동 술자리 의혹을 묻자 원내에 들어온 한동훈 의원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밤에 뭐 했습니까."

 

박우량 20년 체제 무너뜨린 김태성

 

신안군수 당선인 김태성은 졌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20년 넘게 신안을 쥔 박우량 전 군수, 그것도 정청래 대표의 특보를 내세운 후보를 상대로 한 선거였다. 결과는 52%, 1만5546표. 박 전 군수는 48%에 그쳤다. 많은 언론이 이변이라 불렀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이변이 아니죠. 이변이 아니다 당연한 결과이고 위대한 우리 신안 군민들의 정확하게 선택을 하신 거예요."

 

근거는 발품이었다. 그는 2년 동안 신안 전역을 서너 바퀴 돌며 바닥 민심을 손으로 만졌다고 했다. 박 전 군수가 선거 초반 정청래 대표 특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가 나중에 대통령이 인정한 사람으로 문구를 바꾼 일도 그는 지켜봤다. 신안에서는 그런 셈법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내세워도 정청래의 당 대표를 내세워도 신안 군민들은 신안 군민들이 선택합니다." 그 자신은 정청래 대표 체제의 공천에서 소명 한 번 듣지 못한 채 비상징계로 잘려나간 인물이다. 컷오프 직후 지역민 100여명이 민주당사로 몰려가 항의했다고 한다.

 

뉴탐사를 향한 평가는 절제돼 있었다. 보도는 빠짐없이 챙겨 봤지만 선거 기간에는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짜고 친다는 의혹을 살까 봐 일부러 거리를 뒀다는 것이다. "연락을 드리고 싶어도 일체 연락을 안 드렸습니다." 그가 입을 연 건 선거가 끝난 뒤였다.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끌어와, 거북선이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다고 했다. 보도가 과장이나 왜곡은 아니었느냐는 물음은 한마디로 잘렸다. "없죠 하나도 없어요."

 

"햇빛연금은 연금이 아니다"

 

김 당선인은 구호 대신 숫자로 답하는 사람이었다. 신안 정치의 뇌관인 햇빛연금부터 그랬다. 그 돈의 본질은 태양광 발전 인근 주민에게 주는 피해 보상금이라는 것이다. 협동조합이 꾸려진 곳은 14개 읍면 중 5곳뿐이고, 멀리 떨어진 대다수 주민이 손에 쥐는 돈은 한 달 2만5000원에서 3만원이라고 했다.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 한 해 120만원인데, 연금이라 부르니 매달 120만원을 받는 것처럼 부풀려졌다. "이건 연금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해서 피해 보상금." 대통령까지 속였다는 뉴탐사 보도에 대해서도 "주민들을 속이고 대통령까지 속였다"고 했다.

 

수천억원대 비리 의혹이 제기된 정원수 협동조합은 없애지 않겠다고 했다. 조합원이 550명이고 중국에서 들여온 묘목 값만 730억원, 일각에선 3천억원대라는 말도 돈다고 그는 전했다. 박 전 군수가 당선됐다면 꼬리를 자르려 조합을 없앴을 것이라는 게 그의 짐작이다. 그러나 조합원들이 자기 돈을 넣은 조직이다. 중간 마진을 걷어내고 판로를 열어 조합원 몫으로 돌리겠다고 했다. "정원수 협동조합을 없애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전 군수 밑에서 일한 공무원들을 어떻게 할 거냐는 물음에 그는 군대를 빗댔다. 합법적 명령을 따른 사람은 묻지 않되, 불법인 줄 알고도 따른 사람은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적법하지 않은 행동을 한 사람들은 분명하게 이제 법의 심판을 받아야죠." 민주당 내란 진상조사 위원회에서 군 대표로 활동한 경험이 깔려 있었다. 취임하면 가장 먼저 청렴 서약서를 써서 군민에게 내놓겠다고 했다. 정치를 보는 눈은 단단했다. "정치는 국민을 위해서 또는 자기 군민 아니면 또 특별 시민을 위해 존재하는 거지 특정 정당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습니다." 끝에 한마디를 보탰다. "돈 벌려고 한 사람들은 사업하세요."

 

107표의 무게, 모두의 군수 이재각

 

진도군수 당선인 이재각이 받은 표 차이는 107표였다. 전국에서 다섯 번째로 작았다. 상대는 외국인 여성 수입 발언으로 민주당에서 제명된 뒤 무소속으로 나선 현직 김희수 전 군수. 지역구 의원인 박지원 의원이 민주당 후보인 자신보다 김 전 군수 쪽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는 의혹 속에 그는 외롭게 뛰었다. 그 107표를 그는 자랑이 아니라 경고로 읽었다. 더 겸손하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찍지 않은 절반을 더 듣겠다며 그는 "모두의 군수가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공직을 내려놓고 6년 전 고향에 돌아온 사람이다. 마지막 보직은 병무청장이었다. 그 군 경력을 5·18과 엮은 공격이 선거 내내 따라붙었다. 시기가 맞지 않는 의혹을 세 번에 걸쳐 던졌지만 번번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고 그는 말했다. "정말 터무니없습니다." 기자를 매수했다는 의혹에도 "그건 전혀 진짜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기자를 두세 번 만난 건 맞지만 불리한 기사를 빼달라고 사주한 적은 없다는 것이다. 처음 찾아온 뉴탐사를 두고 상대 쪽이 오래된 사이라는 의혹을 퍼뜨린 일도 그는 일축했다.

 

김희수 전 군수의 군정에 대해서는 박한 점수를 줬다. 직원과의 소통도, 군민과의 소통도 "그렇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측근이 군정에 끼어든다는 말도 군민들이 무겁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진도대교에서 시내로 드는 진입로가 그 상징이었다. 공청회 한 번 없이 막혀 주민 피해가 컸던 길은 선거가 끝나자 슬그머니 트였다. 막는 데 1억원, 다시 트는 데도 예산이 들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그는 전했다.

 

그가 그리는 진도는 스쳐 가는 곳이 아니다. 관광객 소비액이 600억원에서 450억원으로 주저앉은 숫자를 그는 외우고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관광지가 아닌 머무는 관광지를 만들어야 되겠다." 농수산물이 제값을 받게 농협·수협과 손잡고, 진돗개를 앞세운 반려동물 산업도 키우겠다고 했다. 세계 명견을 부르는 국제 박람회를 진도에 유치하고 싶다는 꿈도 꺼냈다. 호남뉴탐사를 두고는 어두운 곳을 들춰 알리는 "참 좋은 기관"이라고 했다. 잘못한 게 있으면 와서 지적해 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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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흘째 이어지는 '재선거 요구'…현장서 "부정선거" 목소리도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26.06.08. 05:44:11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이들의 잠실 개표소 봉쇄가 8일 오전 나흘째 접어들었다.

이날 유튜브 라이브 등을 보면 이날 오전 0시를 지나면서 개표소가 있는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일대에는 경찰 추산 8000여 명의 시민이 몰렸다.

<연합뉴스>는 서울시 실시간 도시 데이터를 인용해 같은 시간 올림픽공원 내 실시간 인구가 9000~9500명으로 추산되며, 이 가운데 20대(33.0%)와 30대(22.2%)가 절반 이상이라고 보도했다.

전날부터 계속된 이번 시위는 전날 오후 6시를 지나면서 2만여 명까지 불어났다가 점차 감소했다.

현장에서는 재선거 요구 구호가 이어졌고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컸다. 이에 재선거만 요구하자는 이들과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 간 다툼이 이어지기도 했다.

경찰은 기동대 6개 중대 등 350여 명의 경찰력을 동원해 현장의 돌발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6·3 지방선거 투표지 부족 사태를 규탄하며 재선거를 요구하는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앞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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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완승 꿈꾸다 ‘절반만 승리’...민심 경고 전당대회서 답할까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6/06/08 07:53
  • 수정일
    2026/06/08 07: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최하얀,심우삼,김해정,김채운기자

  • 수정 2026-06-08 06:50

지방선거 향후 과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한병도 원내대표 등이 지난 5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6·3 지방선거를 마친 정부 여당이 재정비의 시간을 맞았다. 2024년 총선과 2025년 대선에서 승리한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까지 3연승을 노렸지만 결과는 ‘절반의 승리’였다. 중앙정치 대리전 성격을 띠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했고, 경남과 경북, 대구에서 정부 견제론이 확인됐다. 집권 2년차에 들어선 이재명 정부의 개각, 8월 말께 치러질 더불어민주당의 전당대회를 계기로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고 비전 제시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선거 초반 “16개 광역단체장 선거 가운데 경북지사 선거를 뺀 15곳 승리”란 민주당의 낙관적 전망은 완전히 빗나갔다. 내란 청산 구호에만 몰두한 선거 전략과 이재명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율에 기댄 안일한 행보, 새로운 유권자층을 겨냥한 정책 대안 부재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 전면에 내세운 ‘내란심판론’은 ‘야당 시절의 관성’에 빠져 선거를 치렀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접전지인 영남권 후보들은 ‘내란심판론’ 메시지를 발신하는 정청래 지도부와 거리를 두고 지역 발전 공약을 띄우려 노력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여권 정치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7일 한겨레에 “‘내란 청산’ 구호 등에서 민주당은 과유불급의 모습을 보였다”며 “내란 주범이 이미 중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상황에서 선거 내내 내란 청산만 강조한 것이 과연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갔겠느냐”고 말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패배한 지역은 경남 등 보수세가 강한 곳”이라며 “보수세가 강한 곳에서 국민의힘이 지속적으로 파고들었던 게 공소취소 이슈였고 ‘대통령 무죄를 만들려고 민주당이 법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을 특히 젊은 층에서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수도권 한 초선 의원은 “내란 종식에 소극적이란 일부 적극 지지층의 과도한 비판에 지도부가 영향을 받은 것이 중도층엔 불안하게 보였을 수 있다”며 “중도층과 적극 지지층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 고민하는 흔적을 계속 보였어야 하는데 그런 게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격전지 보수층 결집의 결정적 순간으로 평가되는 조작기소 특검법 발의 또한 ‘개혁 노선의 선명성’에만 매몰된 결과라는 해석이 많다. 정부 여당은 지난해 대선 승리 이후 줄곧 검찰청 폐지 등 개혁 기조를 앞세워왔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과 검찰·사법부 간 오랜 악연, 정청래 민주당 대표의 개인 정치 스타일, 여권 내 강성 지지층의 요구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또 다른 수도권 초선 의원은 “당내에서 이번 선거 패배 요인으로 조작기소 특검법 추진 등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전당대회가 시작되면 누가 더 강한 목소리를 내느냐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 결과를 냉정하게 복기하기보다 과거의 정치 방식으로 회귀하는 흐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우려된다”고 했다. 이 대통령과 당 핵심 인사들의 메시지 전달 방식 또한 돌이켜봐야 한단 지적도 있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이 대통령의 에스엔에스(SNS) 등에서의 거친 언어들 또한 보수층에 결집할 명분을 제공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후보들이 이재명 정부의 후광에만 기댄 점도 패착으로 꼽힌다. 대표적 ‘명픽’(이재명 대통령이 선택한) 후보인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 하정우 부산 북갑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의 패배 이유로도 이 점이 거론된다. 지도부 소속 수도권 다선 의원은 “정 후보의 경우 지명도는 낮지만 행정가로서 강남 4구에서 어느 정도 먹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지만 그렇질 않았다”며 “더 공세적인 캠페인을 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이 대통령 지지율에 기대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일부 후보들은 적극적인 캠페인을 하지 않았다”며 “이는 유권자들에게 오만한 모습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유권자 지형에 대한 정책적 고려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잇달았다. 특히 이번 선거에선 민주당 지지 성향이 강한 것으로 여겨졌던 20~30대 여성 유권자들의 이탈 현상이 눈에 띄었다. 이재묵 한국외대 교수(정치학)는 “20~30대는 실용과 생활에 관심이 많다. 막연한 얘기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민주당 캠페인에선 그런 점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또 스타벅스 이슈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개입 등이 반감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고 짚었다.

민주당 물밑에선 벌써부터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8월 말 또는 9월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에서의 손익 계산을 따져보는 분위기가 짙다. 이번 선거 결과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재점검하는 과정 없이 전당대회 국면이 시작되면, 당권 싸움만 부각돼 민심에서 더 이탈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복경 더가능연구소 대표는 “의원들은 벌써 전당대회에 관심이 쏠려 있을지 모르지만, 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며 투표를 독려한 당원들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시·도당별로 당원 대토론회라도 열어 선거를 복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선거 결과에 대해 당원들과 함께 평가하고, 상처받은 당원들이 치유받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최하얀 기자 chy@hani.co.kr 심우삼 기자 wu32@hani.co.kr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김채운 기자 cw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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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상품사회가 만들어낸 새로운 우상

이승규 시민기자

seungkyu0104@gmail.com

비판이론, 가치비판 그룹의 사유를 계승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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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와 최태원 SK회장, 구광모 LG회장,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삼겹살 회동이 진행된 5일 서울 홍대 거리가 취재진과 인파로 가득하다. 그의 이번 방한 행보는 피지컬 인공지능(AI) 동맹 결성 노력이다. 2026.6.5 공동취재단 연합뉴스

2020년대 전 세계가 가장 주목하는 산업은 단연 인공지능(AI)이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로 상징되는 포드주의(Fordism) 혁명이 20세기 중반 서구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열었듯, 21세기의 AI 혁명 역시 자본주의에 또 한 번의 거대한 격변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측은 꽤 합리적이다. 과거 포드주의가 노동권 보장과 자본의 가치 증식을 동시에 이뤄내며 사회적 대타협의 기반이 되었듯, 지금의 AI 산업 역시 기본소득 담론의 주류화, 테크노크라시(기술관료제)의 부상 등을 견인하며 상부구조를 급속히 재편하고 있다.

물론 두 혁신 사이에는 형태적 차이가 존재한다. 포드주의는 노동의 단순화와 분업에 기초한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였다. 반면 지금은 생산력의 발전이 이룩해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다원화된 문화적 시류 위에서, 개별 노동에 고도의 전문성과 복잡성이 요구되는 시대다.

그러나 현상의 표면을 걷어내고 심층을 들여다보면, 두 혁신은 정확히 동일한 토대 위에 서 있다. 두 개념 모두 '기술 진보'를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카를 마르크스의 언어를 빌리자면, 이는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식' 과정이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식이란,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대립하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가 발전을 거듭하는 현상을 말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를 '상품의 가치 증식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로 보았다. 이를 위해 그는 잉여가치의 증식을 두 가지로 구분했다. 노동 시간 연장이나 임금 삭감 등 노동자와 자본가가 정면충돌하는 방식이 '절대적 잉여가치의 증식'이라면, 기술 진보와 생산력 발전 덕분에 임금량이 줄지 않거나 심지어 늘어나는데도 잉여가치율이 높아지는 기조가 '상대적 잉여가치의 증식'이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전자의 방식이 주를 이루었으나, 포드주의는 후자의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고, 다가올 AI 혁명 역시 이 궤도를 따를 것이다. 최근 기본소득과 같은 광범위한 복지 담론이 AI 산업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AI 혁명으로 인간의 노동 시간은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자본주의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노동의 '단순화'가 핵심이었던 포드주의와 달리, AI는 노동의 '감소' 자체를 지향하므로 그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기계가 일하고 인간은 기본소득을 누리며, 수요와 공급이 선순환하는 제2의 자본주의 황금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매일경제신문은 지난 1월 16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를 보도하며 '중국 로봇은 스텝 밟으며 복싱 … 韓은 대기업 빼면 걸음마 수'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뒤처진 한국 로봇 산업의 분발을 촉구했다. 사진은 중국 유니트리의 로봇이 CES 관람객과 권투 시합을 하고 있는 모습. 매일경제신문 홈페이지 갈무리

세계 각국이 AI 패권 경쟁에 사활을 걸고, 주류 학계가 AI를 자본주의의 위기를 구원할 구원자로 칭송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심지어 개혁적 성향의 학자들과 정치인들조차 AI의 발전 자체를 반대하기보다, 그 과실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에 집중하며 기술 진보를 긍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면 최소한의 노동만으로도 풍요로운 사회가 올 것이라는 낙관, 적절한 제도적 제어만 뒤따른다면 기술이 온전히 인간을 위해 복무할 것이라는 믿음은 과연 타당한가. 유감스럽게도 작금의 현실은, 이미 허상으로 판명 난 '상품'이라는 우상이 또다시 형상만 바꾸어 우리를 현혹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초기 자본주의 시대, '상품'은 종교적 원죄를 씻어내는 사명이라는 신성한 탈을 쓰고 노동을 정당화했다. 이후에는 "축적하라, 축적하라! 이것이 모세와 예언자의 말씀이니라!"(『자본』 1권 제 7편 중)라는 외침 속에서, 스스로의 가치 증식을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으로 둔갑시켜 끝없는 무한 경쟁을 조장했다. 자본주의가 지리적 팽창을 원했을 때 상품은 '우생학'과 '사회진화론'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 제국주의적 침략을 구원의 이름으로 포장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으로 이 우상의 본질이 흔들릴 무렵, 상품은 '기술과 풍요'라는 새로운 환상을 빚어내어 스스로를 연명했다. 지금 우리가 열광하는 AI 혁명 역시, 상품 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최신형의 우상일 뿐이다. 상품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한, AI와 기술 진보는 결코 인간의 구원자가 될 수 없다. AI는 죽어가는 자본주의에 인공호흡기를 달아줄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인간과 자연은 또다시 상품이라는 우상에 철저히 종속되고 동일화되는 억압을 견뎌야 한다.

AI의 진보와 제도의 보완이 자본주의의 위기를 구원할 것이라는 주장은 완전한 허구다. 가치비판(Wertkritik)의 시선으로 볼 때, 상품 사회의 진짜 모순은 '빈곤과 굶주림이 만연한 사회' 그 자체가 아니다. 진정한 비극은 '빈곤과 굶주림마저 거래의 대상이 되는 사회', 즉 모든 것이 교환 가치로 치환되는 체제의 구조적 폭력에 있다.

AI 기술은 물리적인 빈곤을 해결해 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인류는 이미 극단적인 빈곤의 문제는 상당 부분 극복해 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상품이라는 우상을 부정하지 못하는 한, 제아무리 경이로운 AI 기술이라도 결국 인간과 자연을 상품 사회로 영원히 예속시키는 정교한 통제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승규 시민기자 seungkyu010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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