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헌정 파괴와 민주주의 유린에 대한 주권자의 가장 확실한 심판이다. 국가의 근간을 흔든 세력과 그에 동조한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가장 합법적이고 강력한 무기가 오늘 주권자의 손에 쥐어진다. 투표로써 ‘헌정 질서 수호’와 ‘내란 세력 단죄’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완성해야 한다.
선거일인 오늘 6월 3일은, 지난해 12·3 비상계엄 사태가 발생한 지 정확히 6개월 만에 치러진 대선으로부터 다시 1년이 되는 날이다. ‘12·3’과 ‘6·3’이라는 날짜의 묘한 중첩은 단순한 우연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마치 역사의 거대한 톱니바퀴가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듯한 이 일치는, 우리에게 뭔가 보이지 않는 섭리마저 느끼게 한다.
물론 이는 사전에 설계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 우연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암흑의 12월 3일을 지나, 정확히 반년 후, 그리고 다시 1년 후 같은 6월 3일에 우리는 다시 투표를 앞두고 있다. 파괴된 헌정 질서를 시민의 손으로 복구하는 이 엄숙한 시간표가 이토록 대칭적으로 맞아떨어진다는 사실은 오늘 선거가 지닌 역사적 책무를 다시금 일깨운다. 1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은 우리가 흘린 땀과 선택이 제대로 뿌리내렸는지 돌아보게 한다. 12월 3일이 민주주의가 일시 정지된 ‘오욕의 날’이었다면, 두 번째 맞는 6월 3일을 주권자인 국민이 표를 통해 민주주의를 더욱 공고히하는 ‘회복의 날’로 삼아야겠다.
지방선거는 중앙 권력의 교체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풀뿌리 민주주의를 새롭게 세우는 것이다. 지방자치에서부터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시민의 뜻을 받드는 인물들이 자리 잡아야 중앙 정치의 독단과 헌정 유린을 견제할 수 있는 건강한 민주주의 토양이 만들어진다. 광장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든 시민들의 힘도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지역에서 쌓인 시민 역량이 폭발한 결과였다. 그것은 지방자치가 키워낸 힘이며 역량이기도 하다.
지방자치의 출발부터가 국민들이 피와 땀으로 되찾은 민주주의의 결실이었다. 1991년 지방의회 부활, 1995년 전국 동시지방선거까지 그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김대중의 13일간 목숨을 건 단식과 수많은 시민의 열망과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오늘 시장·도지사, 지역의원, 교육감을 뽑을 권리를 얻었다.
그 권리는 시민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힘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가 일상으로부터 먼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교육 방향, 동네 하천 관리, 장애인 이동권 예산, 노인 돌봄 서비스까지 매일 우리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이다. 그 모든 결정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지방정부다. 자신의 삶을 구체적으로 바꾸는 일에 빠져선 안 되는 이유다.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로는 역대 최고 사전투표율을 기록하며, 뜨거운 참여 열기를 보여줬다. 그러나 그 높은 투표율조차 이번 선거에 부여된 역사적 무게 앞에서는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손으로, 오늘 모두들 투표용지 위에 자신의 주권을 행사해야겠다.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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