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은 더 이상 안전지대 아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무슨 이유로 병원과 의료진을 공격하는 것일까.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우리들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평화적 생존권과 건강권을 앗아가 말살시키려는 속셈 말고 다른 이유가 없다”고 여긴다. 이스라엘이 내세우는 공격 근거는 “하마스가 병원을 보호막 삼아 군사기지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병원 밑에 지하 터널을 파놓고 엄청난 양의 무기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주장도 편다. 의료진들 가운데 일부는 하마스와 밀착돼 있다고도 했다. 따라서 가자 병원들은 보호받아야 할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껏 이스라엘은 병원과 하마스의 밀착 관계를 증명하는 빼도 박도 못할 구체적인 물증을 내놓지 못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와 같은 인권단체들은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 병원 시설물들의 보호 조치를 거둘만한 어떠한 결정적 증거도 내놓지 않았다. 병원을 공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라고 거듭 지적해왔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병원뿐 아니라 이슬람 사원(모스크)과 학교를 하마스가 군사 목적의 시설물로 바꾸었다”는 주장을 펴면서 이들 공공 시설물을 공격하곤 했다. 그에 따라 병원이나 학교, 모스크를 ’안전지대‘로 여기고 피난해 온 민간인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
병원에는 환자만 많은 게 아니었다. 전쟁 초기 이스라엘군의 공습을 피해 주민들이 병원으로 몰려들었다. “설마 병원을 포격하겠느냐”며 병원마다 주차장이나 복도에 난민들이 꽉 들어찼다. 이를테면,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 병원에는 한때 5~6만 명의 사람들이 머물렀다. 하지만 병원은 ‘안전지대’가 아니었다. 병원이 공격을 받게 되자, 난민들은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 진료 자체가 쉽지 않다. 중상을 입고 의식마저 없는 어린이를 비롯한 부상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의료진은 그저 발을 동동 구르며 안타까워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린 그저 울면서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답니다.”
1000명 가까이 의료인 희생
병원들에 대한 공격은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진의 목숨뿐 아니라 그곳에 입원한 환자와 보호자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한다. 그뿐 아니다. 언젠가 그곳에서 치료받으면 목숨을 건질 이들의 생명줄마저 미리 끊어버리는 ‘예비 살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23년 10월 이후 2026년 3월까지 2년 반 동안 가자지구에서 의료시설에 대한 공격이 930건을 넘어섰다고 지적한다. 국제법상 보건의료 인력은 분쟁 중에도 절대적인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의료 중립성(medical neutrality)’의 대상으로 꼽힌다. 가자지구에서는 병원 자체가 군사작전의 주요 공격 목표물 목록에 오르면서 의료 전문인력과 환자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WHO 집계에 따르면, 의료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의사, 간호사, 구급대원 등 보건 의료 인력의 누적 사망자 숫자는 993명에 이른다(2023년 10월7일~2026년 1월31일). 여기에는 가자지구의 거점 병원(대형 병원)을 지키던 이름난 전문의(정형외과 과장, 의대 학장 등)뿐만 아니라, 의료 최전선에서 환자들을 실어 나르던 구급대원, 간호사, 조산사 등이 포함돼 있다(https://www.emro.who.int/images/stories/palestine/Sitrep_68.pdf).
위의 같은 자료에서 부상자 수는 1654명으로 기록된다. 이들은 이스라엘군의 병원 공습, 구급차 포격으로 심각한 외상을 입거나, 병원 주변에서 벌어진 이스라엘군-하마스대원 사이의 전투에서 날아든 유탄에 다친 의료진까지 포함한 숫자다. 이들은 총상으로 피를 흘리면서도 대체 인력이 없어 현장에서 붕대를 감고 진료를 이어가는 등 민간인들의 목숨을 구하려 애썼다.
병원 점령 자체가 전쟁범죄이지만, 이스라엘군은 점령 뒤에도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가자지구의 주요병원 3개(가자시티의 알-시파 병원, 베이트 라히아의 카말 아드완 병원,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가 점령됐을 때 현장에 있던 의료진과 환자들을 인터뷰해 이스라엘군의 전쟁범죄를 낱낱이 드러냈다(2025년 3월 20일). 그 한 대목을 보자.
[이스라엘군이 병원을 점령한 뒤 부상자와 아픈 환자들의 치료에 심각하게 간섭했다. 의사들의 약품 전달 요청을 거부하고 병원과 구급차 접근을 막았다. 그 때문에 부상자와 만성 환자, 투석 중인 어린이들이 죽었다.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다리를 잃고 목발을 써야 했던 안삼 알샤리프는 "우리는 (이스라엘군 점령) 나흘 동안 음식, 물, 약도 없이 지냈다"고 말했다. 알샤리프는 그 시기에 4명의 노년 환자가 숨을 거두는 것을 봤다.]
(https://www.hrw.org/news/2025/03/20/gaza-israeli-military-war-crimes-while-occupying-hospitals).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알-시파는 2023년 11월과 2024년 3월 두 번에 걸쳐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은 뒤 폐허처럼 바뀌었다. 이스라엘군이 물러난 뒤 병원 마당에서 처형된 것으로 보이는 시신들이 포함된 집단 매장지가 발견되어 충격을 안겼다. 일부 희생자들은 양손이 묶인 채 숨져 있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이스라엘 쪽의 조사나 처벌은 아직 없다. 다만 이스라엘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전쟁범죄를 조사하는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들이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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