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답변을 듣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 답변을 듣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6년 5월 20일 국무회의에서 이스라엘의 가자 구호선단 나포와 한국인 활동가 억류를 비난하면서 네타냐후에 대한 국제형사재판소(ICC)의 체포영장 집행을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한국인 김동현과 김아현 씨가 탑승한 구호선은 각각 5월 18일과 20일 새벽 이스라엘군에 억류됐다. 이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행위를 두고 “최소한의 국제 규범이라는 게 있는데 다 어기고 있다”면서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고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네타냐후에 대한 ICC 체포 문제에 대해 “우리도 판단을 해 보자”고 말했다.

 

ICC는 2024년 11월 네타냐후와 국방장관 요아브 갈란트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혐의는 가자 전쟁과 관련한 전쟁범죄, 특히 “전쟁 수단으로서의 기아 사용”, 그리고 반인도 범죄인 살인·박해·기타 비인도적 행위 등이다. 물론 유죄 판결이 아니라 체포영장 단계다. ICC가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보고 재판 출석을 확보하기 위해 영장을 낸 것이다. 여러 나라들이 네타냐후가 자국에 들어오면 체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ICC를 설립한 로마규정은 ICC가 체포·인도 요청을 보낼 경우 당사국이 국내 절차에 따라 이에 응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한국을 포함한 125개국이 당사국이다. ICC 자체 경찰력이 없으므로 실제 집행은 각국 사법·경찰 당국이 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총리가 명시적으로 체포 의사를 밝힌 나라는 네덜란드, 캐나다, 아일랜드, 슬로베니아, 말레이시아, 콜롬비아, 헝가리 등이다. 행정수반이 직접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스페인과 리투아니아도 체포영장 집행 의사를 강하게 보이고 있다. 반대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는 유보적이다.

5월 21일 조선일보는 “대통령이 외국 수반 체포 언급, 외교 언사로 부적절”이라는 제목의 사설로 이 대통령의 언사를 비판했다. 신문은 “국가 정상이 상대국 정상에게 체포 영장 집행을 거론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고 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 신문은 이어 미국이 ICC의 네타냐후 체포 결정에 “터무니없다”고 반발했다면서 “미국과 동맹국인 한국이 이스라엘과 단교라도 불사할 만큼 중대한 사안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이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지나치다는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언어가 동맹 미국에 대한 도전이라는 뜻이렷다.

국가원수가 공개 석상에서 타국 현직 총리의 체포 가능성을 거론하는 것은 외교적으로 거친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요는 현직 총리라 해서 전쟁 범죄 혐의를 받고 있는 자를 예우할 가치는 없다는 점이다. 여러 서방 국가 정상들도 네타냐후와 이스라엘의 반인류적 범죄 행위를 거칠게 다루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 문제를 “미국이 반대하는데 한국 대통령이 왜 나서느냐”는 식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그것은 국제형사사법의 보편성보다 한미동맹 질서를 우선시하는 숭미의 프레임일 뿐이다. 동맹이니까 범죄도 감싸야한다고 말할 셈인가.

이스라엘은 ‘악의 축’이다. 자위와 국가의 생존에는 한계가 있고 최소한의 절제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이 보여주는 것은 방어가 아니라 응징의 중독이며, 생존이 아니라 타인의 생존권까지 짓밟아도 된다는 위험한 특권의식이다. 박해의 기억을 가진 국가가 그 기억을 절제의 윤리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지배와 파괴의 면허로 바꾸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역사의 피해자가 아니라 현재의 가해자로 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침묵이나 예우가 아니라 가장 단호한 언어를 선택해야 한다.

지난 4월 이 대통령의 첫 이스라엘 비판 발언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경제 규모로 보나 민주주의로 보나 세계 일류의 수준을 자처하면서도 정작 국제정치의 중대한 갈림길에 서면 우리는 늘 미국의 어법을 번역하거나 모호한 중간지대로 숨어버리기 일쑤였다. 자주적인 외교는 말해야 할 때 말하고, 불편한 상대에게도 보편적 기준을 들이밀며, 동맹국이라 해서 모든 사안에 무조건 입을 닫지 않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네타냐후의 체포 검토 역시 당연한 일이다. 로마규정의 당사국으로서 우리는 응당 ICC의 요청에 협력해야 한다.

이 대통령은 우리가 이스라엘의 악행을 “너무 많이 인내했다”고 직격했다. 사실 더 필요한 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에서 그치지 않는 용기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극적인 침략전쟁은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공동보조 아래 진행되는 만행이다. 그러니 전쟁범죄와 반인도범죄 나아가 침략전쟁의 책임은 둘 다에게 지워져야 하고, ICC의 체포영장 역시 네타냐후와 함께 트럼프를 겨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훨씬 더 오래 인내해 왔고 훨씬 더 크게 분개해야할 일이 따로 있다. 한마디로 한미동맹의 ‘굴레’가 그것이다. 지난 70년 넘게 뒤집어쓰고 있는 굴레다. 군사 작전권도 갖지 못하고, 우리 땅인 DMZ 안으로 마음대로 들어가지도 못하며, 서해상에서 우리도 모르게 무단으로 훈련하면서 우리의 안위를 위태롭게 하는 미군을 통제하지도 못하는 상황을 우리는 언제까지 인내할 것이며 언제까지 분개해하지 않을 것인가.

5월 17일 이 대통령은 트럼프와 전화 통화를 갖고 한미 공동 팩트시트를 가리켜 “한미동맹을 새로운 차원으로 업그레이드한 역사적 합의”라고 평가했다. 고충이 서린 외교적 언사임을 감안한다 해도 주변 참모들의 숭미적 언사를 대통령이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은 아쉬운 대목이 다. 숭미 참모들은 한국인 억류의 부당함을 강조하는 이 대통령의 지적에 이스라엘의 입장을 대변해 상황의 불가피성을 호소한다. 또 그들은 베트남전 당시 주한미군의 동원 사례를 들어 지금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옹호하고 있다. 굴레를 국익으로 포장하는 숭미의식이다.

팩트시트에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간접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문안에는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 유지”와 “일방적인 현상 변경 반대”라고 표현되어 있다. 물론 이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실제로 발휘될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시나리오, 즉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 전력 전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주한미군은 미국이 추진하는 ‘반중국 연합’의 역내 핵심 축이 되는 것이고, 이에 따라 한국은 중국의 타격 목표가 되는 것이다. 정신 차려야 한다.

이 대통령은 작년 8월 말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으로 향하는 특별기 안에서 미군의 유연화는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라고 분명히 말했었다. 그래놓고 팩트시트를 향해 한미동맹의 업그레이드라고 평가한다면 앞뒤가 안 맞는다. 우리가 지난 70년 이상을 인내해 온 한미동맹의 굴레에 대한 분노를 잊는 일이기도 하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우리가 전작권을 당장 회수해야 하는 이유와 똑 같다. 그것이 우리가 비로소 독립주권국이 되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한미동맹의 굴레에 대한 분노가 더욱 시급하다. 자국민 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생방송으로 힘차게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진짜 대한민국과 진짜 주권국으로 우뚝 서는 길로 나아가기 위한 위대한 분노를 조용히 표출하는 것은 더욱 절실한 일이다. 러시아 시인 니콜라이 네크라소프는 1877년에 발표한 <정직한 이들의 죽음에 붙여>라는 시에 이렇게 읊었다. “슬픔도 없고 분노도 없이 사는 자, 그는 자기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