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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고문치사 경찰관 축소' 관여 검사…수사 뒤 승진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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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읽는 『반헌법행위자열전』 서익원 편

86년 건국대 농성 1288명에게 구속영장 발부

박종철 고문치사 수사에 수수께끼 같은 역할

은폐 공모 아니면 상부 방침에 갈등하다 침묵?

열전 "한직이지만 승진한 건 심각한 문제" 평가

대검 형사부장 복귀한 뒤,수원지검장까지 지내

'선비 검사'로 알려졌지만 윗선 지시 곧잘 이행

2026년 봄, 영국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 3권을 받아 들었다. 서익원(徐翼源, 1940~1999) 항목은 이 책에 수록된 인물들 가운데 가장 해석이 복잡한 사례 중 하나다. 1987년 박종철(1965~1987) 고문치사 사건. 이 사건에서 서울지검 2차장 서익원은 수사 지휘부의 핵심에 있었다. 그런데 그를 바라보는 시각이 엇갈린다.

『반헌법행위자열전』은 이렇게 기록한다.

"정구영과 서익원은 경찰의 고문치사 은폐에 대한 수사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는 서익원이 수사 검사 안상수에게 "수사를 빨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있다. 그리고 그가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다가 나중에 대검찰청으로 복귀한 사실도 있다. 서익원은 은폐의 공모자인가, 아니면 상부의 방침 속에서 갈등하다 결국 침묵을 선택한 사람인가. 이 질문이 이 글의 핵심이다.

 

서익원(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40년 경기도 오산 출생, '선비 검사'로 불리다

서익원은 1940년 경기도 오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1963년 제16회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964년 공군 법무관을 거쳐 1968년 1월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 검사로 임용됐다. 이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비교법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선비 검사'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원칙적이고 강직한 이미지였다고 전해진다.

1975년 서울지검 공안부 검사로서 재일한국인 모국유학생 간첩단 사건, 1976년 3·1민주구국선언 사건 공판에 관여했다. 함석헌(1901~1989), 문익환(1918~1994), 김대중(1924~2009) 등에게 중형을 구형한 공안부 검사들 중 한 명이었다. 이 사건들은 훗날 모두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3·1민주구국선언으로 기소된 인사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포스터를 일본서 제작했다. 김지하는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상태였다.(위에서부터 차례로 함석헌, 문익환, 김대중, 윤보선, 이우정, 안병무, 김지하, 이태영, 정일형, 서남동, 함세웅, 문동환, 이문영)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세계사 속의 동류, '침묵의 공모자'들

영국에서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비슷한 딜레마가 떠오른다. 독일 역사가들이 '내적 망명(Innere Emigration)'이라 부르는 개념이 있다. 나치 체제에 명시적으로 가담하지 않으면서도 저항하지도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 지식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적극적 부역자도 아니고 영웅적 저항자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던 사람들.

서익원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으로 은폐를 설계하지는 않았지만, 수사를 막는 상부의 방침에 맞서지도 않았다. '선비 검사'라는 이미지와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이 그를 복잡한 인물로 만든다.

 

서익원(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1986년 건국대 사태, 1288장의 구속영장

서익원의 반헌법 행위 첫 번째 정점은 1986년 건국대 사태다. 1986년 10월 28일, 전국 26개 대학생 2000여 명이 건국대학교에서 애학투련 발족식을 열었다가 경찰의 무차별 진압을 받았다. 1525명이 한꺼번에 연행됐다. 당시 서울지검 2차장이었던 서익원은 이 사건의 수사 방향을 지휘했다. 서울지검 내에서 "한두 명 정도에게는 사형선고까지 고려하라"는 방침이 세워졌다. 최종적으로 1288명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이것이 서익원의 지휘 아래 진행됐다.

 

건대 사건 전원 연행 소식을 전하는 조선일보 1986년 11월 1일치 1면 기사. 조선일보 지면 갈무리

1987년 1월, '수사를 빨리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1987년 1월 14일 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졌다. 다음날 서울지검장 정구영은 2차장 서익원을 통해 형사2부 검사 안상수에게 부검을 지휘하도록 지시했다. 부검 결과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임이 확인됐다.

이 지점에서 서익원의 역할이 논란거리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따르면 수사 검사 안상수가 서익원과 정구영에게 고문 가담 경찰관이 더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으나, "정구영과 서익원은 경찰의 조사내용과 다르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수사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다른 기록에는 안상수가 신창언 수사팀장과 서익원을 찾아가 "수사를 빨리 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증언도 있다. 즉 서익원이 완전히 수동적이지는 않았을 수 있다.

분명한 것은, 1월 24일 수사결과 발표에서 서울지검장 정구영이 2차장 서익원과 3차장 이건개, 수사팀장 신창언, 수사검사 안상수·박상옥이 배석한 가운데 물고문 이외의 다른 가혹행위는 없다며 사건을 조한경과 강진규, 두 사람의 구속으로 마무리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 발표자리에 서익원이 있었다.

1987년 5월 18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고문 은폐 사실을 폭로하자 진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월 8일 검찰 인사에서 서울지검장 정구영은 광주고검장으로, 차장검사 서익원은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각각 한 단계 승진발령을 받았다.

이 대목에서 『반헌법행위자열전』의 평가가 결정적이다.

"제대로 됐다면 당시 수사 지휘부였던 정구영과 서익원은 형사 책임을 져야 마땅했는데, 비록 한직이지만 승진까지 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안상수의 증언에 따르면, 박종철 사건이 없었다면 서익원은 대구고검 차장이 아니라 서울고검 차장으로 영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좌천성 인사이긴 하지만, 형사책임을 지지 않고 좌천으로 처리됐다는 것이 핵심 문제였다.

 

고 박종철 열사.("'탁'치니 '억'" 경찰 황당 은폐…민주주의 불씨 된 서울대생 죽음[뉴스속오늘] - 이미지 | 머니투데이)

대검 형사부장 복귀 후 수원지검장까지

서익원은 대구고검 차장으로 좌천됐다가 1990년 12월 제23대 검찰총장에 취임한 이종남 체제 이후인 1992년 7월 대검찰청 형사부장에 임명돼 신창언(대검 공판송무부장)과 대검찰청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박종철 사건 수사팀의 핵심인물들이 대검에서 함께 일하게 된 것이다.

이후 제13대 수원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냈고, 1999년 4월 20일 사망했다. 박종철이 숨진 지 12년 만이었다.

 

서익원(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영국에서 2026년을 생각한다

영국에서 박종철 사건과 구조적으로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 '길퍼드 4인' 사건에서 진실을 알면서도 침묵한 경찰관들과 검사들은 나중에 의회 조사와 독립 검토의 대상이 됐다. 일부는 기소됐다. 비록 최종 유죄 선고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책임 추궁의 과정 자체가 공개 기록으로 남았다.

한국에서 서익원은 좌천됐다가 복귀했고, 수원지검장을 지내고 사망했다. 박종철 사건에서 그의 역할은 『반헌법행위자열전』에 기록됐지만, 법적 책임은 묻히고 말았다. '선비 검사'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이 지점에 섰는지, 그 내면의 갈등이 어떠했는지는 이제 알 길이 없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1960~ )의 비상계엄 선포를 영국에서 생중계로 보며 나는 서익원을 떠올렸다. 진실을 알면서 침묵하는 것, 상부의 방침에 맞서지 않는 것. 그 침묵이 때로 적극적인 은폐만큼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서익원의 이력은 보여준다.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그리고 그 법정의 방청석에는 우리가 앉아 있다.

참고문헌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2026, 『반헌법행위자열전 1~4』, 사회평론아카데미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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