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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평화가 밥이고 최고안보…강력한 국방력으로 한반도 평화”

  • 민일성 기자

  • 업데이트 2026.03.2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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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수호의 날 참석..“고귀한 희생 합당하게 예우..싸울 필요 없는 평화가 중요”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27일 “평화가 밥이고, 평화가 곧 민생이고, 평화가 최고의 안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싸워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싸울 필요가 없는 평화”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강력한 국방력으로 우리 국민과 영토를 흔들림 없이 지켜내는 동시에 전쟁과 적대의 걱정이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일이야말로 서해 수호 영웅들이 우리에게 남긴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은 제2연평해전(2002년 6월29일)과 천안함 피격(2010년 3월26일)·연평도 포격전(2010년 11월23일) 등에서 서해를 지키다 숨진 ‘서해 55 영웅’을 기리는 행사다.

이 대통령은 “포화와 혼돈 속에서도 주저함이 없던 그대들의 눈동자는 조국의 밤하늘을 밝히는 ‘호국의 별’이 됐다”며 “고귀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았던 55인의 서해 수호 영웅들에게, 머리 숙여 깊은 경의와 추모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주권정부는 여러분을 결코 외롭게 두지 않겠다”며 “반드시 기억하고, 기록하고, 합당하게 예우하겠다”고 말했다.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자랑스러운 우리 해군과 해병대 장병들이 거친 파도를 헤치며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고 있다”며 “최전방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서해5도 주민들, 어선들의 뱃길을 안전하게 밝혀주는 등대의 공직자들, 깨끗한 서해를 위해 땀 흘리는 자원봉사자들까지, 모두가 서해를 수호하는 또 다른 주인공들”이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영웅들이 피땀으로 지켜낸 넓은 바다 위에, 대한민국 경제와 산업이 미래를 향해 도약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 번영의 그 밑바탕에 공동체를 위한 특별한 희생이 자리 잡고 있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희생된 영웅들과 유가족, 현직 장병 등에 대한 예우를 거듭 강조했다. 그는 “올해 5월부터, 생활이 어려운 참전유공자 배우자에게 매달 생계지원금이 지급될 것”이며 “2030년까지 보훈 위탁 의료기관을 전국 2,000곳으로 확대하여 국가유공자들이 가까운 병원에서 언제든지 편리하게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또 “공공부문에서 제대군인의 호봉이나 임금을 산정할 때, 근무 경력에 반드시 의무복무기간을 포함하도록 했다”며 “국가와 공동체를 위한 희생에 합당한 대우로 보답하면 할수록 우리의 안보는 더욱 튼튼해지고,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향해 한 걸음씩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제 우리의 책임은 분명하다”며 “그들이 목숨으로 지켜낸 바다를 더 이상 ‘분쟁과 갈등의 경계’가 아니라 ‘평화와 번영의 터전’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대결과 긴장이 감돌던 서해의 과거를 끝내고, 공동 성장과 공동 번영의 새 역사를 써 내려가는 일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1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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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억5천 다이아 분실·혼인으로 재산 60배 증가···1억짜리 훈민정음해례본NFT도 있다고?

수정 2026.03.27 08:09

국회 고위공직자 재산 변동 이모저모

페라리·한우·하프 등 다양한 품목 눈길

국회의사당 전경. 정지윤 선임기자

26일 공개된 국회의원 재산내역을 보면 국회의원 중 가장 많은 가상자산을 보유한 이는 1억2072만원을 신고한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1억5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를 분실했다고 신고하거나 대체불가토큰(NFT), 고급 스포츠카를 보유한 의원들의 재산변동 내역도 눈에 띄었다.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이날 공개한 국회 고위공직자 재산변동 내역을 보면 박 의원 재산은 지난해에 5550만3000원에서 올해 33억8387만8000원으로 약 60배 급증했다.

1986년생인 박 의원의 재산 증가 사유는 혼인이었다. 박 의원 배우자는 이더리움 7.1353252개 등을 비롯한 1억2072만원의 가상자산과 함께 아파트와 오피스텔, 근린생활시설 등도 재산으로 신고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정헌 의원의 배우자와 장남이 총 8600만원 상당의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었다.

독특한 재산변동 내역도 있었다. 이상식 민주당 의원은 배우자 소유 1억5000만원짜리 다이아몬드를 분실했다고 신고했다. 이 의원 배우자는 45억7700만원의 예술품 보유도 신고했다. 보유 작품 중에는 이우환 화백의 작품 5점도 있는데, 이 중 새로 신고된 12억원인 작품 1점과 각 8000만원인 작품 2점은 채무자로부터 예술품으로 반환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대표를 지낸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1억원 상당의 훈민정음해례본NFT 1개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1억9097만원짜리 2021년식 페라리를 배우자와 공동소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임미애 민주당 의원은 배우자인 김현권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관리위원장의 소유의 한우 가격을 사육두수 감소에 따른 변동으로 지난해보다 3000만원 감소한 1억2000만원으로 신고했다. 한정애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비상장주식인 300만원 상당의 매일노동뉴스 600주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하피스트인 배우자가 총 1억3000만원 상당의 하프 3대를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금을 보유한 의원들은 금값 상승 등 시세변동에 따른 재산 변동을 신고했다. 김재원 조국혁신당 의원은 24k 금 150g 가격을 지난해보다 1178만원 상승한 3286만원으로 신고했다.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24k 금 130g이 971만3000원 상승한 2680만5000원으로 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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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헌법행위자열전'…역사의 법정이 소환한 312명

김성수 시민기자

wadans@empas.com

현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저서에 [함석헌 평전], [고문과 학살의 현대사], [해외입양 그 이후],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퀘이커교도. 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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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용산 효창공원에서 기자회견

"역사의 법정에는 공소시효가 없다"

12권으로 엮어 …4월 1~4권 출간

1권 다섯 대통령 반헌법 행위 수두룩

2권 법원, 3·4권 법무부와 검찰 간부

10년간 540회 회의, 시민 모금 충당

청산되지 않은 역사 어떻게 반복되나

오는 31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꽤나 묵직한 기자회견이 열린다. 주인공은 『반헌법행위자열전』(모두 12권), 10여 년간 수백 명의 연구자와 시민들이 피와 땀으로 빚은 역사의 공소장이다.

상임공동대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과 책임편집인 한홍구 성공회대 석좌교수가 이끄는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이하 편찬위)가 2015년 출범한 이래 햇수로 꼬박 12년 만에 첫 결실을 내놓는 것이다.

출간 장소를 백범기념관으로 잡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 헌법 전문은 대한민국의 법통이 임시정부를 잇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일생을 조국 독립에 바친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이 해방 후 암살당한 사건 자체가, 친일 청산의 좌절과 민간인 학살이라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편찬위는 바로 그 상징적인 공간에서, 그 비극을 초래한 책임이 있는 312명의 이름을 역사 앞에 불러낸다.

 

반헌법행위자열전 편찬위원회 기자회견 포스터

"정부수립 후 45년, 대통령 5명이 모두 1권에 들어갔습니다"

1차 출간분인 1~4권에는 전직 대통령, 정치판사, 정치검사 등 81명이 수록된다. 이 중 36명이 2026년 3월 현재 생존해 있다.

1권 〈대통령 편〉에 이름을 올린 다섯 명을 보자.

이승만(1875~1965). 초대~3대 대통령. 민간인 학살, 내란, 고문조작, 부정선거, 언론탄압, 다섯 분야 전부 해당. 말하자면 반헌법행위의 '완전체'다.

박정희(1917~1979). 5대~9대 대통령. 민간인 학살만 빼고 네 개 분야. 그래도 충분히 넘치고도 남는다.

최규하(1919~2006). 10대 대통령. 신군부 쿠데타를 방조·방기함으로써 5·18 광주 학살에 책임을 지는 네 분야. '최 주사'라는 별명처럼 실권도, 의지도, 역사적 결단도 없었다는 평가는 이제 역사가 공식 기록한 셈이다.

전두환(1931~2021). 11·12대 대통령. 내란, 민간인 학살, 고문조작, 언론탄압 네 분야. 부정선거만 없는데, 애초에 직접선거를 안 했으니 부정선거를 저지를 기회조차 없었던 덕분이다.

노태우(1932~2021). 13대 대통령. 전두환과 똑같이 네 분야.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선서하고 대통령이 된 다섯 명이 모조리 1권에 실렸다. 대한민국 헌정사의 비극을 이보다 더 압축해 보여주는 통계가 있을까. 마치 어느 부도덕 기업의 임원 명단처럼, 정부 수립 후 45년치 대통령 명단이 통째로 '반헌법행위자' 항목에 올라간 것이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실린 반헌법행위자들

사법의 보루는 어디 있었나, 판검사들의 이름을 부른다

2권 〈법원 편〉에는 대법원장 세 명이 포함된 정치판사 27명이, 3·4권 〈법무·검찰 편〉에는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을 지낸 인물들을 포함한 정치검사 49명이 수록된다.

2권의 대표 선수들을 보자.

민복기(1913~2007). 5·6대 대법원장으로 역대 최장수 10년 2개월 재임. 1975년 인혁당재건위 사건에서 상고를 기각, 8명의 사형을 확정했다. 판결 이튿날 새벽, 형이 집행됐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법부의 역할은 그날 아침 사라졌다.

유태흥(1919~2005). 8대 대법원장. 1985년 소신 있는 판사를 좌천시켜 2차 사법파동을 일으킨 장본인. 2005년 마포대교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 마지막 걸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양승태(1948~ ). 15대 대법원장. '사법농단'으로 재판 거래, 판사 블랙리스트를 주도한 혐의로 2019년 구속기소됐다. 아직 살아 있으니, 스스로 해명할 기회는 남아 있다.

흔히 "사법부는 인권의 최후 보루"라고 한다. 그런데 이 열전에 이름이 오른 판·검사들은 그 보루를 제 손으로 허물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들이 저지른 고문조작·간첩조작 사건 대부분이 이후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과 재심을 거쳐 무죄 판결을 받았음에도, 그 누구도 단 한 마디 사과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역사의 법정이 뒤늦게라도 이름을 불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실린 반헌법행위자들

10년, 회의 540차례,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편찬위가 2015년 출범하여 2017년 2월 집중검토 대상 405명을 처음 발표하고, 그 중 312명을 최종 선별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박사급 연구자들이 주도한 조사위원회 회의만 2026년 3월까지 540여 차례에 달한다. 매주 한 번씩 10년이다.

더욱 주목할 것은 이 방대한 작업이 정부나 공공기관의 지원 없이 오직 시민들의 후원금으로만 이뤄졌다는 점이다. 한 달에 5000원, 만 원씩 묵묵히 보내온 수많은 시민편찬위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이미 그 제작 방식 자체가 '시민이 판단의 주체'라는 편찬위의 철학을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실린 반헌법행위자들

역사의 공소시효는 없다,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편찬위 기자회견문은 이렇게 묻는다.

"군대가 동원된 내란을 어떻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진압할 수 있었을까요?"

2024년 12월 3일 새벽, 현직 대통령 윤석열(1960~)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회의원들이 계엄군의 봉쇄를 몸으로 막으며 의사당 담을 넘었고, 시민들이 장갑차 앞에 섰다. 그리고 계엄은 몇 시간 만에 해제됐다. 윤석열은 현재 내란 혐의로 수감 중이다.

편찬위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한다.

"지난겨울 우리는 과거로부터, 죽은 이들로부터 엄청난 도움을 받았습니다."

1948년, 1950년, 1960년, 1980년에 그 숱한 골짜기와 광장에서 쓰러진 이들의 희생이 2024년 겨울의 시민들을 지탱한 힘이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반헌법행위자열전』이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이 책은 단순히 나쁜 사람들의 명단을 모아놓은 고발장이 아니다. 그것은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방서다. 권력은 늘 법복을 입고, 헌법을 입에 올리며, 국가안보를 외치면서 인권을 짓밟아왔다. 그 패턴을 낱낱이 기록해 두지 않으면, 역사는 반드시 반복된다, 그것도 더 교묘하게.

열전 수록 312명 중 44명은 친일 경력이 확인된다. 일제 강점기에 권력에 복무하다가 해방 후에도 그대로 대한민국 권력기관에 흘러들어와 다시 국민을 짓밟았다. 청산되지 않은 역사가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예시다.

 

『반헌법행위자열전』에 실린 반헌법행위자들

봉헌과 애도의 공동체

기자회견 말미에 편찬위 대표들은 백범 김구 선생 좌상 앞으로 이동해 책을 봉헌한다. 고유문을 낭독하는 이는 시인 이산하(본명 이상백), 1987년 제주 4·3 연작시 「한라산」을 발표했다가 국가폭력의 피해를 당한 바로 그 시인이다.

어떤 나라가 건강한 나라인가. 가해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피해자의 고통을 애도하며, 그 위에서 미래를 쌓아 올리는 나라다. 편찬위의 말처럼,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는 너무 늦었지만, 결코 늦은 것이 아니다."

81명 중 36명은 지금도 살아 있다. 그들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역사의 법정은 그 시간보다 오래 간다.

문의: 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02-735-5812

블로그: https://blog.naver.com/unconstitutionaldeed

 

편찬위는 1-4권 수록자의 개인별 반헌법행위 내용을 웹사이트(반헌법행위자열전편찬위원회 블로그 https://blog.naver.com/unconstitutionaldeed와 평화박물관 홈페이지 https://peacemuseum.or.kr)에 게시하여 당사자나 가족·유가족들의 사실확인을 거쳐 소명 또는 반론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4월 10일까지 의견서를 작성해 소명자료와 함께 이메일 unconstitutionaldeeds@gmail.com로 보내면 원고에 반영할 것입니다. 지난 2017년 집중검토 대상 발표 당시에도 4개월여에 걸쳐 이의신청을 받은 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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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지프차에 깔려 초죽음...단순 '교통사고' 아니었다

[1980 사북, 늦은 메아리] 사북 사건의 도화선... 전두환 신군부가 저지른 기억 조작

26.03.27 06:35최종 업데이트 26.03.27 06:35

특별기획 '1980 사북, 늦은 메아리'는 박봉남 감독의 영화 <1980 사북> 전국 상영을 계기로 공론화한 사북 사건을 단지 과거사로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의 역사적 의미와 국가의 대응, 공동체와 시민 사회의 변화 과정을 추적 기록해 국가 폭력의 기억과 치유 과정을 시민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기자말]

짓눌린 두 얼굴, 완전히 다른 두 결말

2020년 5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한 거리에서 검은 얼굴의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는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질식 당하고 있었다. 그는 "숨을 쉴 수 없다"고 호소했지만 경찰들은 그의 목소리를 끝까지 외면했다. 백인 경찰들의 인종차별적 폭력에 분노한 시민들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고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이것은 세계적으로 확산했던 인권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1980년 4월, 한국 강원도 사북의 좁은 언덕길에서 검은 얼굴의 광부 원일오는 경찰 지프차 바퀴에 짓눌려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마치 죽은 듯 보였지만, 지프차에 탄 순경들은 바퀴가 사람 몸통을 완전히 타 넘은 것을 알고도 그냥 도망쳐 버렸다. 경찰 지프차의 만행에 분노한 수백 명의 광부들은 "경찰이 사람을 죽였다"고 외치며 시내로 몰려가 사북지서를 파괴했고, 이것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북항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두 사건은 여러 면에서 놀랍도록 닮아 있다. 사건의 피해자들은 검은 색으로 상징 되는 사회적 약자들이었고, 그를 단속하는 과정에서 도를 넘는 공권력의 폭압이 발생했으며, 피해자의 고통은 철저히 무시되었고, 그로 인해 집단적 분노가 대규모로 촉발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그 이후의 경로는 두 사건이 완전히 달랐다.

2020년 미니애폴리스의 경찰 폭력 사건은 당시 체포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은 부당하게 핍박 받는 약자들의 상징이 되었고, 결국 가해자인 경찰 데릭 쇼빈(Derek Chauvin)은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세워졌다.

그러나 1980년 사북의 경찰 폭주 사건은 지금까지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아 피해자의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고, 그 일로 이름이 밝혀진 경찰 중 그 누구도 처벌 받지 않았다.

이 차이는 단순한 사법적 결과를 넘어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에 관한 문제와 연결된다. 사북에서는 사건의 원인이었던 경찰 폭력 대신, 그로 인해 촉발된 광부들의 폭력성이 부각되었다. 비상계엄으로 온 나라가 숨죽이던 시절, 난데없이 전해진 인질난동극, 파괴된 지서, 박살난 광업소 등 온갖 파괴적 이미지로 인해 원일오와 광부들은 '피해자'이기는커녕 '폭도'로 낙인 찍혔다.

지워진 출발점

영화 <1980 사북> 스틸컷. 광부들이 광업소 언덕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 경찰 측 지프차들.엣나인필름

1980년 사북사건은 광부들의 이유 없는 난동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 배경에는 적어도 1년 가까이 누적된 노조 파행과 이로 인한 광부들의 좌절감이 있었다. 1979년 노조지부장 선거에 대한 무효 결정 이후 재선거 지연 사태, 광부 2568명의 노조직선제 청원, 정보기관의 개입과 직선제 무산, 1980년 3월 노조지부장 직무대리와 회사 간 임금협상 일방 합의 등 광부들의 불만을 키운 여러 일들이 있었다(광산노조, <사북사태 발생에 대한 진상>, 1980, 23쪽).

그러나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해서 1980년의 사북이 광부 항쟁의 필연적인 무대가 되어야 할 것은 아니었다. 노조직선제를 위한 사북 광부들의 운동이 폭발적인 항쟁으로 전화된 데는 사태를 악화시킨 공권력의 결정적인 폭압 장면이 있었다.

1980. 4. 21. 14:00경 사북지서장과 노조지부장 이재기가 약속했던 노조집회가 계엄당국에 의해 불허된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노조원들은 노조사무실에 몰려가 노조부지부장 홍금종에게 항의하였다. 이때 현장에서 사진 채증을 하던 정선경찰서 소속 사복 경찰관이 광부들에 의해 발각되었다. 사복 경찰관이 노조사무실 1층 창문을 넘어 노조사무실 앞마당에 대기 중이던 경찰차량을 타고 달아나려 하자 주위의 광부들이 경찰차량을 가로막았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2008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03. 진실화해위원회 제5차 보고서>, 151쪽)

경찰들은 광부들을 향해 그대로 지프차를 몰았고 이때 노조원 원일오 등 서너 명이 차량에 치어 나뒹굴었다. 진술과 의료 기록을 종합하면 경찰 지프차의 바퀴는 광부 원일오의 허리와 골반을 타고 넘어가 방광 탈구 등 치명적인 부상을 입혔다. 그런데도 경찰차는 멈추지 않았고 그대로 달아났다. 사람들은 "경찰이 사람을 죽였다"고 외치며 경찰 지프를 뒤따라 사북지서로 몰려갔다. 사북항쟁의 첫 장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신군부는 경찰이 관여된 최초의 폭력 사건을 감추는 대신, 그것이 촉발한 광부들의 집단 폭력을 확대해 사건의 서사를 바꾸고 책임의 소재를 이동시켰다. 그 때부터 광부들은 누군가의 조종을 받아 난동을 저지른 통제 불능의 폭도로 재현 되었다. 그 바람에 사건의 핵심 당사자로서 공권력의 1차적인 책임과 그 이후의 잔혹한 국가 폭력마저 대중의 시야에서 멀어지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사북사건'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광업소 파괴나 노조지부장 부인 폭행과 같은 광부들의 폭력적 대응을 떠올린다. 물론 그것들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신군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이다. 사북사건에 대한 기억은 시작부터 이런 식으로 교묘하게 뒤틀렸다.

기억 조작에 희생된 또 다른 피해자들

전두환 신군부는 사태를 촉발한 공권력의 책임을 의도적으로 가리고, 이후 벌어진 광부들의 폭력성을 더 크게 부각했다. 특히 성난 광부들에게 붙들린 채 공포에 질려 있는 노조지부장 부인의 모습을 이 사건 전체를 대표하는 장면으로 내세우고 자극적으로 소비하게 만들었다. 사북 광부 전체를 폭도로, 사북항쟁 전체를 난동으로 몰아가기 위한 신군부의 치밀한 시나리오 안에 마치 사건의 주역 마냥 부각된 이들과 그 가족들이 평생 동안 겪을 치욕에 대한 고려는 애당초 없었다.

특히, 노조지부장의 부인과 자식들은 폭력의 피해자로서 보호받기는 커녕 그 치욕스러운 장면을 박제 당함으로써 또 다른 국가폭력의 희생자가 되고 말았다. 2008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노조지부장의 아내와 그 가족을 위한 국가의 조치를 별도로 권고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국가는 김○○와 그 가족의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고 관련자들 사이의 화해를 이루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08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03. 진실화해위원회 제5차 보고서>, 217쪽)

마치 남편의 죄를 대속하는 희생양인 듯 아내에게 전가한 고통의 책임은 그 못된 일을 저지르고 비겁하게 숨어버린 자들에게 있지만, 그 이후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노출된 어머니의 사진으로 인해 당사자와 그 가족들이 겪게 된 평생의 굴욕에는 언론과 국가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교통사고'로 포장된 국가 폭력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신군부가 의도한 이런 기억의 조작이 꽤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북 사건을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로 규정한 보고서조차도 이 사건을 "교통사고"로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진화위가 발행한 조사보고서는 사북 사건의 발생 및 전개 과정을 설명하면서 "1980.4.21. 교통사고와 사태의 확대 과정"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1980. 4. 21. 14:00 노조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오전부터 광부들이 삼삼오오 노조사무실로 모여들었다. 당시 경찰 측 상황일지에 의하면, 정선경찰서 소속 정 사복 경찰(지휘부 2명, 경찰 66명)이 오전부터 노조사무실 2층과 정문 등에 배치되었다. (중략) 같은 날 15:00경 노조사무실 내에서 광부들 수십 명과 노조 부지부장 홍금종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고, 그 주위에서 정선경찰서 소속 사복경찰 김성한, 이운선, 최흥식 등이 사진 채증하다가 (중략) 광부들이 "저놈 잡아라"며 외치자 이운선은 위급함을 느껴 노조사무실 1층 창문을 넘어 건물 앞마당에 세워 둔 경찰 지프차(운전수 장인택 순경)에 올라탔고, 앞마당에 모여 있던 광부들이 경찰 차량을 에워싸고 진로를 막자 운전수 장인택 순경이 그대로 군중 사이를 경찰차로 밀고 나가면서 광부 원일오 등을 치어 중상을 입히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08년 상반기 조사보고서 03. 진실화해위원회 제5차 보고서> 159-160쪽)

인권을 다루는 20년 전의 문제 의식이 낮아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 줄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에 나온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문 역시 다르지 않았다. 여기서도 사북항쟁을 촉발시킨 경찰 폭압 사건을 또다시 "교통사고"로 적은 걸 보면 이 문제는 자못 심각하게 볼 필요가 있다.

1980. 4. 18. 노조 지부장 이재기의 퇴진을 요구하는 노조원들에게 이재기와 사북지서장 어윤철 경위는 4.21. 노조 집회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4.21. 노조 집회가 계엄사에 의해 불허되었고, 집결한 노조원들과 현장에 출동한 경찰 간의 충돌로 이어졌다. 이 가운데 경찰 차량이 광부들을 치고 달아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제2기 진실·화해위원회, <2024년 하반기 조사보고서>, 제20권, 581쪽)

이 문장 뒤에는 "교통사고 직후 경찰이 구호 조치도 취하지 않고 도주하자 광부들의 누적된 분노가 폭발하면서 주민들이 가세"했다는 부연 설명이 이어진다. 하지만 교통사고 처리에 대한 불만이 수천 명의 광부와 주민이 합세한 대규모 폭력 사태로 전화되었다는 설명은 인과 관계에 대한 해명 치고는 터무니없다. 결국 2024년판 국가 기관의 보고서도 신군부가 만들어낸 기억의 조작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왜 사북의 원일오를 기억하지 못하는가

경찰 지프차에 치여 중상을 입고 동원보건원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원일오 광부.정선지역사회연구소 제공

신군부의 기억 조작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집회 불허로 웅성거리던 노조사무실, 사복 경찰의 사찰 채증과 발각, 광부 무리를 향해 그대로 돌진한 경찰 지프, 바퀴에 깔리고 튕겨나간 광부들, 초죽음이 된 광부들을 버려두고 달아난 경찰들, 그 뒤를 쫓아 사북 지서로 몰려갔던 수백 명의 광부들. 이것은 절대로 '교통사고'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국가폭력의 가학적인 장면이자 아비규환의 현장이다.

그런데 이것이 교통사고로 기록되는 순간, 광부 원일오에 대한 기억과 사건의 운명은 극적으로 달라진다. 2020년 미니애폴리스 사건의 경우에는 피해자 조지 플로이드의 이름과 가해자 데릭 쇼빈의 이름이 함께 기록되었지만, 1980년 사북 사건에서는 피해자의 이름도, 가해자 경찰의 이름도 제대로 기록되지 못했다.

왜 어떤 사회에서는 공권력이 저지른 폭압을 분명히 단죄하고 희생자의 이름을 기록하는데, 왜 우리는 공권력의 폭압과 비열한 도주 행위를 '교통사고'로 취급하며 아무도 단죄하지 않는가?

1980년 4월 21일 사북에서 발생한 사건에 관해 신군부는 많은 진실을 감추어 왔다. 그 중에서 가장 결정적인 첫 장면이자 아직 복원되지 않은 진실 중 하나는, 바로 경찰 지프차에 깔려 초죽음에 몰린 광부 원일오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첫 장면을 온전히 복원하지 않는 한, 사북사건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여전히 신군부가 조작해 낸 허상 속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사북사태"만이 신군부의 언어가 아니다. 사북사건을 설명하면서 계속 등장하는 "교통사고", "역상사고"라는 말도 결국은 신군부의 언어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눌려 희생당한 검은 약자 조지 플로이드를 기억하는 당신이, 경찰 지프차에 깔려 시름시름 앓다 죽어간 사북의 검은 광부 원일오는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은 결국 아픈 질문으로 이렇게 돌아온다.

"우리는 무엇을 잊도록 길들여졌는가?"

많은 사람들이 사북 사건의 첫 장면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과거사 조사관들에게 그 장면이 여전히 교통사고의 순간으로 남아 있는 한, 이 사건은 진실이 규명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없다. 왜곡된 역사는 언제든 진실을 짓누를 것이며, 기억되지 않은 폭력은 언젠가 더 잔혹한 형태로 되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 영화 <1980 사북> 오마이뉴스 초청 무료 상영회 신청하기(https://omn.kr/2hfje)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www.jcrc.kr(정선지역사회연구소 1980사북 특별페이지)에도 실립니다. 저자는 정선지역사회연구소장을 맡고 있으며 <사북항쟁과 국가폭력>(지식공작소, 2021)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1980사북 #국가폭력 #원일오 #조지플로이드 #늦은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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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경기지사 차출론… 경기일보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 경기도민 모욕”

[아침신문 솎아보기] 정동영 한조관계 발언, 한국일보 “한조관계, 조한관계라는 말은 해괴해”

10월 검찰청 폐지, 중앙일보 “전국 10개 차장검사를 둔 지방검찰청 검사 정원 절반 수준”

조선일보도 “천안지청 검사 1인당 미제 500건 배당, 피해 국민이 입을 것”

기자명박서연 기자

  • 입력 2026.03.27 07:34

  • 수정 2026.03.27 07:43

▲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3월23일 오전 국민의힘 대구시당 회의실에서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가 결정한 자신의 대구시장 후보자 컷오프(공천배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 차출설에 “저는 경기도지사 출마할 생각이 전혀 없다”라고 밝혔다.

이진숙 전 위원장은 지난 25일 조선일보 유튜브에 출연해 ‘경기지사 후보로 차출해야 된다’라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두고 “감사한 일”이라면서도 “차라리 서울시장으로 출마하라고 했으면 얘기가 되죠. 저 서울에서도 좀 살았으니까. 서울시장, 대구시장은 맞지만 경기지사는 맞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진숙 전 위원장은 이어 “인지도를 가지고 경기 지사할래? 경기도민에 대한 우롱이고 이거 역시 민주적 절차에 대한 능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일각에서는 경기지사 차출설이 지속적으로 나온다. 조광한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같은 날 YTN라디오 ‘김준우의 뉴스정면승부’에 출연해 “이진숙 위원장님이 딱 저기 그 ‘그래 내가 대구를 떠나서 경기도에서 한번 해보겠다’ 이렇게 하신다면 저는 굉장히 그 의미 있는”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 23일 유튜버 고성국씨는 자신의 유튜브채널에서 “(이 전 위원장이) 서울시장이나 경기지사 출마를 하면 해볼 만하지 않냐는 주장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에서 이진숙 전 위원장이 경기도지사 후보로 내세워질 거라는 소식에 27일자 경기도 지역 신문들은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국힘의 이진숙 경기지사 차출론, 경기일보 “경기도민 모욕”

경기일보는 <국힘, 경기지사가 경선 탈락자 처리장이냐> 사설에서 “가정을 해 보자. 경기도에서 몇 달을 선거운동했다. 경기도지사가 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런데 그제 컷오프됐다. 그러더니 오늘 대구시장 후보로 차출돼 뛰어들었다. 대구 유권자들이 순순히 받아들이겠나”라며 “똑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전국 최대 1천400만 경기도지사다. 31개 시·군을 두고 있는 거대 광역이다. 이 자리가 대구시장 컷오프 사흘 만에 대체될 수 있는 자리인가. 성사 여부를 떠나 보기에 불편하다. 이런 일을 듣는 것도 처음”이라고 비판했다.

▲27일자 경기일보 4면.

▲27일자 경기일보 사설.

이어 “(국민의힘에) 쉽지 않은 선거가 예상된다. 그러자 유력 후보군이 모조리 백기를 들었다. 선두권인 김은혜·안철수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했다. 정당 밖의 유승민 전 의원도 선을 그었다. 실제로 경선에 나선 주자는 2명이다. 중량감, 연고성 등이 모두 부족하다는 평”이라며 “그러더니 급기야 대구시장 탈락자 차출설이다. 이쯤 되면 경기도민 모욕 아닌가”라고 반발했다.

경기일보는 “자질이 웬만해야 한다. 상황이 어느 정도여야 한다. 엊그제까지 다른 지역 발전 공약 외우던 사람이다. 고향에서 지역구까지 모든 게 무관한 사람이다. 불출마를 입에 달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경기도지사감이라며 계측을 하고 있다. 직접 내놓기 미안한지 빙빙 둘러서 내놓는다. 이제는 도민도 다 안다. 그래서 자존심에 상처받고 화내기 시작했다”라며 “이제라도 겸손하고 진지해라. 그리고 상식적으로 풀어가라. 그게 작은 불씨나마 살리는 길”이라고 했다.

경인일보도 <전국 자중지란 벌인 국민의힘의 경기지시 전략공천> 사설에서 “전국선거판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은 공관위원장이 이제서야 경기도에 관심을 갖더니 일성이 전략공천이다. 전략공천만 잘하면 선거를 뒤집을 수 있다고 큰소리친다. 양, 함 두 예비후보는 졸지에 2등급 후보가 됐다. 그런데 전략공천 대상이 10개월 전 대선 후보였던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출마의지가 없는 유승민 전 의원이다.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까지 들먹인다”라고 비판했다.

▲27일자 경인일보 사설.

이어 “국민의힘이 경기도지사 선거판을 뒤집을 생각이었다면, 당력을 총동원했어도 부족했을 선거판세다. 민주당의 김동연-추미애-한준호 경선구도의 중량감을 감안하면 더욱 그랬다. 이를 외면하고 전국적인 자중지란으로 여론을 잔뜩 악화시킨 채 경기지사 전략공천을 거론하니, 민심과 격리된 국민의힘의 현실만 더욱 또렷해졌다”라며 “전략공천의 초라한 실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의 ‘선거판을 뒤집을 경기지사 공천’ 발언이 허언으로 들린다. 전략공천이 성사돼도 후유증으로 판을 뒤집을 판세 형성이 가능할지 의문이고, 전략공천이 좌절될 경우엔 공관위원장이 2등급 후보로 격하한 예비후보 자원으로 본선을 치러야 한다. 또 한번의 자충수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한조관계 발언, 한국일보 “한조관계, 조한관계라는 말은 해괴해”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25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적대의 종식과 평화공존을 위한 한반도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학술회의 개회식에서 “한국-조선관계, 한조관계이든,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통해서 남과 북이 함께 공동이익을 창출해 나가길 강력히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남측에도 북측에도, 대한민국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책임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용기 있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한의 공식 국호고, 북한은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선언한 후 조한관계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이재명 정부에서 한조관계라는 명칭을 쓰자는 입장이 아닌 상황에서 통일부 장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한조관계라는 표현을 쓴 것을 두고 비판이 나왔다.

한국일보는 <남북관계가 ‘한조관계’라니... 통일장관의 아집 지나치다> 사설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북한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불렀다. 정 장관이 공식 자리에서 북한이 호명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한 건 처음이다. 심지어 남북관계는 ‘한조관계’라고 했다. 우리 정부 입장도 아니고 국민 다수의 공감대도 없는데 이래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호칭은 대한민국 정체성과 직결된 중차대한 사안이다. 북한을 상대하는 주무부처 장관이 이재명 정부의 조율된 입장이 아닌 상황에서 아집에 사로잡히는 건 공직자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27일자 한국일보 사설.

이어 “북한은 스스로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칭하지만 우리가 북한으로 부르는 건 헌법에 근거한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3조)이고,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4조).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특수한 관계다. 그래서 한조관계가 아니라 남북관계다. 통일부라는 특별한 부처가 존속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북한과 국가관계라면 외교부가 대북정책을 도맡으면 될 일이다. 정 장관은 헌법을 무시하고 통일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라고 썼다.

한국일보는 “북한이 우리를 한국으로 부르니 우리도 저들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부르자는 정 장관의 발상은 터무니없다. 북한과 평화공존을 추구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노력은 평가받아야 하지만 한조관계, 조한관계라는 말은 해괴하다. 16년 전 오늘 천안함 46용사가 북한의 어뢰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정 장관 주장대로 북한 국호를 인정하려면 갈 길이 멀다”라고 했다.

10월 검찰청 폐지, 중앙일보 “전국 10개 차장검사를 둔 지방검찰청 검사 정원 절반 수준”

조선일보도 “천안지청 검사 1인당 미제 500건 배당, 피해 국민이 입을 것”

오는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둔 가운데, 지방 형사사법 기능을 책임지는 전국 차장검사를 둔 지방검찰청의 검사 인력이 정원의 절반 수준까지 급감했다 분석 기사가 나왔다. 현재 3특검, 상설특검, 2차 종합특검 등 5개 특검에 파견된 검사만 67명에 달해 많은 검사 인력이 차출됐고, 올해 사직 검사만 최소 60명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검사 1인당 미제 사건이 전년도에 배당이 200건이었는데, 500건으로 늘어나 마비 상태라 그 피해를 국민이 입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27일자 중앙일보 3면.

중앙일보는 2면 <절반은 텅 빈 검사실…“이미 파산지청 됐다” 눈물> 기사에서 “26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10개 차치지청(차장검사를 둔 지방검찰청) 안산·성남·고양·부천·천안·대구서부·안양·부산동부·부산서부·순천지청의 실제 근무 검사 수는 파견과 휴직자를 제외하고 총 213명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정원(383명)의 55%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차치지청은 지검이 직접 관할하기 힘든 다수의 지방 도시 사법을 책임지는 핵심 기관이다. 예컨대 순천지청은 순천뿐 아니라 여수·광양·보성·구례·고흥 등 전남 동부권 전체를 관할한다. 검사 14명이 남게 될 천안지청은 인구 110만 명 규모의 천안·아산시를, 정원 절반만 근무하는 안양지청은 안양·군포·과천·의왕시(약 105만 명)를 책임진다. 인구 100만 명 규모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기소 여부 판단, 경찰 신청 영장 청구 검토, 공소유지 등 업무를 10여 명이 감당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중앙일보에 “과거에는 정원에서 5~6명의 결원만 생겨도 비상이 걸렸는데, 지금처럼 절반 가까이 빠지면 정상적인 청 운영이 불가능하다. 지방 지청의 붕괴는 단순히 검찰 조직의 허리가 무너지는 것을 넘어, 지방 의료 붕괴처럼 지역 사법 시스템 전체의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안미현 천안지청 검사는 지난 25일 페이스북에 “천안지청은 수사검사 8명, 공판검사 4명인데 이 중 초임 검사가 7명”이라며 “수사 검사 1인당 미제 사건은 이미 500건을 넘겼다.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기 위안을 하다가도, 두통과 호흡곤란이 오고 침대에 누우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라고 썼다.

중앙일보는 “최악의 인력난을 부른 핵심 원인으로는 이른바 ‘특검 블랙홀’이 꼽힌다. 현재 3특검, 상설특검, 2차 종합특검 등 5개 특검에 파견된 검사만 67명에 달한다. 정경유착 합동수사본부 파견 인력까지 합치면 약 80명의 핵심 연차 검사들이 현장을 떠났다”고 한 뒤 “검사들의 줄사직은 인력난을 가중하는 또 다른 악재다. 올해 들어 최근까지 수리된 사직서만 58건으로 집계됐다. 사직이 임박한 천안지청 검사들을 포함하면 이미 60명 이상이 현장을 떠난 셈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지난해 기록한 역대 최다 사직 규모(175명)를 올해 가뿐히 넘길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조선일보도 <폐지 예정 검찰 이미 ‘파산’, 범죄자들 좋은 세상 될 판> 사설에서 “대전지검 천안지청 소속 검사의 1인당 미제 사건이 500건을 넘었다고 한다. 1인당 200건 수준이던 1년 전보다 배 이상 늘었다. 무엇보다 현 정권이 만든 각종 특검과 합동수사본부가 검사들을 대거 차출한 탓이 크다. 실제 정원 30명인 천안지청 평검사 인원은 현재 12명으로 줄었는데 그나마 남은 검사 중 7명은 초임 검사라고 한다. 사건 처리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이 와중에 검사 2명은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곧 검찰 폐지로 희망이 없으니 다른 길을 찾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천안지청은 기능 마비 상태에 빠질 것이다. 사실상 ‘파산’”이라고 했다.

▲27일자 조선일보 사설.

이어 “부산지검과 수원지검 등 대형 검찰청 상황도 비슷하다. 두 곳에서 지금 근무하는 평검사도 정원의 절반 수준에 그친다고 한다. 사건 처리가 제대로 될 리 없다. 실제 검찰이 3개월 넘게 결론 내지 못한 장기 미제 사건이 1년 새 두 배 넘게 늘었다. 2024년 1만8198건에서 지난해 3만7421건으로 늘었다”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검사들이 일을 할 수 없는 구조가 됐고 검사들은 의욕을 잃었다. 의무감 책임감도 없어졌다. 수사기관이 파산하고 식물기관으로 전락하면 득을 보는 것은 범죄자들 뿐이다. 그 피해는 국민이 입는다”라며 “중수청이 설립되면 검찰은 맡고 있던 사건을 중수청 등 다른 수사기관에 넘겨야 한다. 공소시효가 임박해 계속 담당할 수밖에 없는 사건도 90일 이내에 처리하거나 다른 수사기관으로 넘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범죄자가 법망을 빠져나갈 가능성이 있다”라고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만약 미제 사건이 급증한 상태에서 중수청이 들어서면 수사에 앞서 산더미 같은 사건 처리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이다. 정부 여당은 검찰을 흔들지만 말고 남은 6개월이라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줄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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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이란대사 “한국은 비적대국…미 파병 요구에 선 그어야”

  • 기자명 박재산 기자
  •  
  •  승인 2026.03.26 17:28
  •  
  •  댓글 0
 
   
 

어린이 167명 희생... "미·이스라엘 만행 세계가 봐야"
"한국은 비적대국... 미 파병 요구에 선 그어야"
호르무즈 해협 '새 원칙' 예고... "파병은 또 다른 위험"
"트럼프 휴전 제안은 기만... 지상군 투입 시 미군 위험"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공습 첫날인 2월 28일의 참상이 고스란히 담긴 피 묻은 교실과 아이들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울부짖는 부모들의 장면이 기자회견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이스라엘 공습에 따른 민간인 피해를 규탄하며 호르무즈 해협 통행, 트럼프의 휴전 제안 등 현안에 대해 입장을 밝혔다.

주한 이란대사관에 전시중인 사진전
주한 이란대사관에 전시중인 사진전

어린이 167명 희생... "미·이스라엘 만행 세계가 봐야"

이날 회견은 전쟁 참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상영으로 시작됐다. 영상에는 이란 남부 미나브시 학교 공습 현장 수습 장면이 담겼으며, 영상 속 현장 시민은 “이 장면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만행을 알 수 있도록 세계 모든 사람이 봐야 한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또 생존 학생은 희생된 친구들을 떠올리며 “얘들아 아직 선생님이 숙제를 확인하지도 않았잖아”, “아직 수학 시험도 안 봤잖아”라고 울부짖었다.

이란 측에 따르면 이번 학교 공습으로 7세에서 12세 사이 어린이 167명을 포함해 총 180명의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 쿠제치 대사는 “남녀 학생이 포함된 단일 학교 기준 세계 최대 규모의 학살로 기록될 것”이라며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한국은 비적대국... 미 파병 요구에 선 그어야"

쿠제치 대사는 질의응답에서 한국을 ‘비적대국’으로 규정하며 우호 관계를 강조했다. 그는 “이란 정부는 한국 정부가 미국 요구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란다”며 “미국은 타국이 전쟁에 연루돼 피해를 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내 한국 선박과 관련해 “외교 채널을 통해 선박 정보를 요청하는 등 긴밀히 소통하고 있고, 현재까지 한국 선원과 교민 피해는 없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한국 대기업이 과거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한 데 대해서는 유감을 표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호르무즈 해협 '새 원칙' 예고... "파병은 또 다른 위험"

해협 통행과 관련해 그는 “전쟁 이후 상황은 이전과 다를 것이며 새로운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향후 통제 강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현재는 이란군과의 사전 협의와 허락하에 안전 항로 이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쿠제치 대사는 미국의 파병 요청에 동조하는 행위에는 단호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기뢰 제거함 파견은 상식 밖의 일이며, 선박 호위함 파병도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며 “이란 국민이 막대한 피해를 입는 상황에서 미국 관련 기업의 경제 활동을 차단하는 것은 정당한 자위적 권리”라고 말했다.

"트럼프 휴전 제안은 기만... 지상군 투입 시 미군 위험"

트럼프 행정부의 휴전 제안에 대해서는 “다시 공격하기 위한 시간을 벌려는 기만 행위”라며 “이란은 이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또 미국이 제시한 15개 항목과 관련해 “단적으로 핵 활동 포기 요구는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확인한 평화적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상군 투입은 미군을 위험에 빠뜨리는 잘못된 선택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며 “외부세력이 지원을 한 이라크와의 8년 전쟁을 견딘 경험과 저력, 국민적 단합이 있는 한 누구도 이란을 굴복시킬 수 없다”며 항전 의지를 재확인했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26일 서울 용산구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긴급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질의응답]

Q1. 이란은 한국을 비적대국으로 보는가?

A. 우리는 한국을 비적대국으로 보고 있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요구에 무조건 따르지 않는다고 평가하며, 앞으로도 그런 정책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호르무즈 해협 통과는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다. 다만 우리 정부와 사전 협의가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 선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최근에도 우리 외무장관이 한국 측과 통화하면서 선박 정보를 요청하는 등 협력 채널이 유지되고 있다.

Q2. 트럼프의 휴전 제안에 대한 입장은?

A. 우리는 트럼프 행정부의 발언을 신뢰하지 않는다. 오만의 중재로 두 차례 미국과 소통했고, 작년 6월에는 다섯 번째 회의 이후 여섯 번째 회의를 기다리는 상황에서 공격을 받았다.

올해 2월에도 새로운 대화를 시작했고, 빈에서 기술적 합의를 마무리하기로 했으나 그 직전에 공습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 지난 2년간 미국과의 관계는 배신과 기만의 연속이었다. 미국은 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휴전 제안 역시 진정한 평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시 공격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판단한다.

Q3. 미국의 평화안(15개안)에 대한 입장은?

A. 우리는 트럼프가 제시한 15개 안을 불법적이며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이는 모험주의적 작전이 실패한 이후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목표를 달성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특히 핵활동 포기 요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 우리의 핵활동은 평화적이며, IAEA 회원국으로서 정당한 권리다. 실제로 IAEA 보고에서도 군사적 활동이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반면 이스라엘은 핵무기를 보유하면서도 사찰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우리의 핵활동을 문제 삼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우리는 현재 미국과 어떤 대화도 하지 않고 있으며, 백악관의 요구를 고려할 상황도 아니다.

Q4. 호르무즈 해협 통제에 대한 입장은?

A. 우리는 현재 전쟁 상황에 있다. 전쟁 첫날 호르무즈 해협 인근 미나브 지역이 공습을 받았고, 학교가 공격당해 180명의 어린 학생이 희생됐다.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그 이익에 동조하는 세력에 대해 제재를 가할 것이다. 미국 기업과 투자자들이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활동하며 이익을 얻고 있는데, 이러한 활동을 차단하는 것은 우리의 자위권이다.

우리 국민은 공장, 민간시설, 의료시설, 주거지 등에서 잔혹한 공격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관련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그대로 두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Q5. 해협 통과 요금 부과 및 관련 법안은?

A. 우리는 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미국의 압박과 제재를 받았지만, 그동안 해협 통과는 자유롭게 협조해왔다.

현재 이란 의회에서 통과 요금과 관련된 법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다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모험적인 군사 행동을 시작한 이상, 전쟁 이후에는 해협 관리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Q6. 해협 통과에 관한 한국과의 소통 상황은?

A. 우리는 해협을 봉쇄하지 않았다. 26일간의 전쟁 상황에서도 많은 선박이 통과했다.

우리 군은 선박들이 통과할 수 있는 안전한 항로를 안내하고 있으며, 우리와의 합의 하에 선박이 통과할 수 있다.

한국과도 외교장관 간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고, 주한 이란 대사관을 통해 한국 정부에 선박 정보를 요청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법 공습이 지속되는 한 현재 상황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Q7. 통행 허용, 불허 국가 명단 존재 여부 및 비용 부과설은 사실인가?

A. 우리는 그러한 명단을 들어본 적도 없고 인정하지도 않는다. 통과 비용 부과 역시 사실이 아니다.

해협 관련 조치는 재정 문제가 아니라 안보 문제다.

우리는 한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전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다만 일부 한국 대기업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동참한 점은 유감스럽다.

양국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며, 이러한 협력이 확대되기를 바란다.

Q8. 지상군 투입 가능성에 대한 입장은?

A.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 지상군이 투입된다면 미군은 심각한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현재 이란 국민들은 단결하여 정부와 군을 지지하고 있으며, 계속된 공습 속에서도 거리로 나와 이를 보여주고 있다.

Q9. 기뢰제거함·호위함 파견에 대한 입장은?

A. 현재 해협에는 기뢰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기뢰제거함 파견은 명분이 없다. 또한 선박 호위함 파견 역시 새로운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

미국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기 위해 다른 국가들을 전쟁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Q10. 전쟁 이후 해협 관리 구상은?

A. 우리는 전쟁 이후 상황이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새로운 원칙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약 2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국민들은 이번에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대응할 것이다.

Q11. 이란의 전쟁 지속 능력의 원천은?

A. 우리의 저력은 역사적 경험과 국민의 단결에서 나온다. 우리는 이라크와 8년간 전쟁을 치렀고, 그 과정에서 외부 지원과 화학무기까지 동원된 상황을 겪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비윤리적인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현재도 국민들은 정부와 군을 강하게 지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애초 계획과 달리 내부 혼란이나 반란은 발생하지 않고 있다.

국민의 지지가 있는 한 우리는 결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Q12. 추가 메시지 (한국 및 국제사회에 대한 입장)

A. 우리는 한국 언론과 국민이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이란이 겪고 있는 피해와 긴장 상황에도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가짜 휴전을 원하지 않는다. 휴전을 명분으로 다시 공격하는 상황을 우려한다.

평화는 이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전체의 문제다. 이스라엘의 팽창 정책이 통제되지 않는 한 전쟁과 긴장은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을 신뢰하지 말고,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기를 바란다. 미국은 민간인의 피해에 관심이 없으며, 다른 국가들이 전쟁에 연루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이번 사태는 세계 에너지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에도 미국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동맹국의 이익조차 무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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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숲 방치한 지 1년…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입력 2026.03.26 07:00

영남산불 1년, 고운사 실험의 결과는?

‘역대 최대 규모’ 사찰림 98% 탔다

1년 뒤, 불에 탄 나무에서 움튼 새싹

회복 빠른 자연복원, 동물도 돌아와

고운사, ‘자연복원 참고 사례’ 될까

경북 의성군 고운사의 지난해 3월26일(왼쪽) 화재 당시 모습과 지난 17일(오른쪽) 자연복원이 진행된 모습. 성동훈·백경열 기자

어제(25일)는 산불 피해에 대처하는, 고운사의 ‘무심한’ 실험이 시작된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실험이란 불에 탄 숲의 복원을 자연에 맡기는 건데요. 환경단체들은 이곳에서 자연의 탁월한 회복력이 관찰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직 ‘인공조림보다 낫다’고 단언하긴 이르지만 주목할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 건 사실인데요. 1년 동안 경북 의성군 고운사 숲에서 벌어진 일들과 그 의미, 점선면이 정리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 사찰림 98% 탔다

지난해 3월25일 고운사 서남쪽 16㎞ 떨어진 곳에서 시작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졌습니다. ‘천년고찰’로 널리 알려진 고운사도 불길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절과 주변 숲이 송두리째 타버린 겁니다.

이 산불로 연수전·가운루 등 보물뿐 아니라 고운사의 자랑이던 사찰림의 97.6%(243㏊)가 타버렸는데요. 국내 사찰림 산불 피해 중 역대 최대 규모였습니다. 당시 고운사 스님은 “열기가 있어 새싹이 못 자란다”며 기약할 수 없는 복원에 막막한 심정을 드러냈습니다.

지난해 3월25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주차장에서 바라본 산들이 불타고 있다. 경북도 제공

1년 뒤, 불에 탄 나무에서 싹이 텄다

그런데 1년 만인 지난 17일 고운사 사찰림에는 1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무들이 솟아 있었습니다. 검게 변한 나무에는 수십개의 흰구름버섯류(곰팡이)가 점처럼 박혀 있었고요. 현장을 둘러본 이규송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불에 탔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나무가 살아남은 조직에서 싹을 틔우려고 시도하는 현상”이라고 말했습니다.

숲의 회복을 지켜본 고운사 주지 등운스님도 “산 능선을 따라 나무가 되살아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는데요. 실제로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연구진에 따르면 고운사 사찰림 면적의 약 4분의 3(76.6%)에서 높은 자연 회복력이 관찰됐습니다. 빠른 회복에 비례해 토양침식 위험도도 크게 감소했고요.

“자연에 맡기는 것이 지혜”

이런 변화는 고운사가 숲 복원을 자연에 맡긴 결과입니다. 등운스님은 지난해 7월 경향신문과 만나 “이렇게 땅과 산이 다 타버린 열악한 환경에서는 자연에 맡기는 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라며 자연이 스스로 상처를 치유하도록 기다리겠다고 말했는데요. 그것이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가르침과 합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언뜻 도교의 ‘무위자연’도 떠오르지만 철학적인 개념만은 아닙니다. 최근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인공조림의 한계를 극복할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거든요. 인공조림은 침엽수를 주로 심는데, 침엽수가 산불에 취약할 뿐 아니라 조림 시 산불 피해목과 뿌리를 제거하기 때문에 산사태 등 추가 재난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자연복원은 비용이 적게 들고, 탄소 저장량·수종 다양성 측면에서 인공조림보다 낫다는 연구가 나오고 있고요.

지난해 9월 고운사 인근 야산에 불에 탄 나무 사이로 풀이 자라나 있다. 이규송 교수 제공

회복 속도 빠른 ‘자연복원’, 동물도 돌아왔다

실제로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 뒤 인공조림(52%)과 자연복원(48%)으로 비교하는 실험이 진행된 바 있는데요. 2020년 중간 점검 당시 자연복원지의 숲이 더 촘촘한 것으로 관찰됐습니다. 초반 회복 속도도 더 빠른 것으로 평가됐고요.

원래 숲으로 돌아가는 건 아닙니다. 침엽수림이었던 고운사 사찰림은 활엽수림으로 바뀌고 있는데요. 산불 전 침엽수림 면적이 235.8㏊에 달했지만 이후 3.4㏊로 급감했습니다. 반면 활엽수림은 25.3㏊에서 363.5㏊로 크게 증가했습니다.

뛰어난 회복력 덕분에 고운사에서는 멸종위기종 등 야생 생물의 관찰 빈도도 크게 늘었습니다. 삵은 고운사 경내에서, 수달·담비는 숲에서 관찰됐는데요. 지금까지 포유류 17종과 조류 35종 등이 확인됐습니다. 향후 조류는 70~80종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됩니다.

자연복원도 한계는 분명히 있습니다. 환경생태학자 오충현 동국대 바이오환경과학과 교수는 “한국의 산림은 마을이나 농경지와 가까운 곳이 많아 산사태 등의 2차 피해 우려가 있어 자연복원이 어렵다”고 지적했는데요. 자연복원만 기다리다 인명·재산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척박한 토양에서는 소나무 위주의 인공조림이 낫다는 주장도 있고요.

지난해 8월22일 경북 의성 고운사 인근 숲에서 오소리 한 마리가 풀 밭에서 배설을 한 뒤 지나가고 있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 소장 제공

“고운사 사례 참고해 자연복원 과정 만들자”

전문가들은 고운사 사찰림의 자연복원 조사를 계기로 인공조림 일변도였던 국내 산림정책의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산불 피해지역에 자연복원을 기본으로 하고 식생의 회복력을 진단한 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복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겁니다.

이규송 강원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숲의 대부분은 자연복원에 의해 회복된 것”이라며 “고운사의 사례를 참고해서 자연복원 과정을 만들도록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지난해 영남산불 피해지의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최소 10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후변화로 산불은 더 잦아지고,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요. 그런 규모라면 변화에 적응하는 해법은 자연만이 알고 있는 걸지도 모릅니다.

일단 고운사 자연복원 프로젝트는 오는 5월까지 이어집니다. 연구진은 어떤 결론을 내릴까요? 직접 변화를 확인하고 싶은 분께는 고운사 방문을 추천드립니다. 산불에도 살아남은 일주문 기둥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운사에 갈 이유는 충분합니다.

고운사 일주문. 고운사 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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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미대사관 앞 ‘항의’… “제국주의 맞서 민주노총이 앞장 선다”

  • 기자명 김준 기자
  •  
  •  승인 2026.03.25 19:12
  •  
  •  댓글 0
 
   
 

“수탈에 맞서 민주노총이 앞장서야”
“군대 보낸 부모, 파병 말만 들어도..”
“사드 반출, 한국 병참기지화 한 것”

20260325-미국 이스라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민주노총 결의대회 ⓒ 민주노총
20260325-미국 이스라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민주노총 결의대회 ⓒ 민주노총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략이 노동자 민중의 삶까지 흔드는 실정이다. 이에 민주노총이 청와대부터 미대사관까지 행진하며 “파병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을 내라”고 촉구했다. 미대사관 앞에서는 그 자리에 누워, 전쟁 중단을 요구하며 항의 행동을 이어갔다.

25일 민주노총이 청와대 앞에서 긴급 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현지는 물론, 자국민에게까지 악영향이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란 침략으로 인해, 세계 석유 가격이 상승하며 경제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국내에서는 나프타 수급 불안으로 일부 마트에서 비닐 대란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이에 청와대도 발맞춰, 추경을 추진하는 한편, ‘비상경제상황실’을 설치해 상황에 따른 대응 준비에 나섰다. 

그러나 파병에 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에 민주노총은 현 정세를 “미 제국주의적 침탈이 심화되는 국면”이라고 판단하며, 전쟁 확대에 맞선 반전·평화, 자주권 수호 투쟁을 결의했다.

20260325-미국 이스라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민주노총 결의대회 ⓒ 민주노총
20260325-미국 이스라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민주노총 결의대회 ⓒ 민주노총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름값의 폭등으로 노동자, 서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다”며 “심지어 쓰레기봉투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침략 전쟁은 제국주의적인 수탈의 면모를 분명히 보인다”며 “베네수엘라의 석유를 빼앗기 위해 대통령 부부를 납치하고 그린란드의 자원을 강탈하기 위해 영토를 탐하더니만 석유 패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탐욕이 이란과 중동을 불바다로 몰아넣고 있다”고 규탄했다.

박영환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은 파병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낸 국민의힘 의원들을 질타했다. 안철수, 조정훈,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을 지적하면서 “특히 조정훈 의원은 교육위원회 간사임에도 청년을 보내야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냐”고 따졌다.

 

이어 “우리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정의롭고 평화로워야 한다는 명제를 가르치는데, 이번 비극은 많은 교사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피눈물나게 했다”고 지적하며 “이 모든 비극을 종식시킬 유일한 길은 전쟁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일병으로 아들이 군 복무 중이라 밝힌 전지현 전국돌봄서비스노조 위원장은 “군에 자식을 보낸 부모의 입장에서 파병 논의 자체가 큰 불안”이라며 부모의 입장을 대변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의원이 동맹을 강조하며 파병을 이야기 할 때 아직도 내란세력이 남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분노스럽다”고 말했다.

전 위원장은 정부와 민주당을 향해 “뭘 하고 있냐” 따지며 “전쟁광 트럼프 전쟁에 반대한다는 말을 왜 못하냐”고 지적했다. 이어 “반년 동안 계엄을 넘고 광장에서 새로운 정부를 만든 이유는 안전한 세상이었다”며 “국민의힘으로 어려움과 고통을 함께 넘어온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자랑스럽게 해달라”고 촉구했다.

20260325-미국 이스라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민주노총 결의대회 ⓒ 민주노총
20260325-미국 이스라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민주노총 결의대회 ⓒ 민주노총

연대 발언에 나선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는 미국이 성주에 있던 사드를 반출한 것을 두고 “미군 기지는 우리나라 안보와 평화가 아닌, 미국 침략 전쟁의 병참기지였단 것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침략 전쟁을 위한 미군이 침략 무기를 비충하는 곳간임이 여실히 드러났다”며 “대한민국도 총체적 위기에 빠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우리 노동자 민중들과 각계각층 국민들은 지난 더 추웠던 겨울 여의도 한남동, 광화문과 안국동에서 세월 윤석열 퇴진 투쟁의 길을 연 민주노총 여러분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며 “윤석열 퇴진 때 길을 열었던 것처럼 미국의 침략 전쟁을 규탄하고 파병 반대 투쟁에 민주노총이 길을 열고 이 집회를 한 것을 항상 지지하고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60325-미국 이스라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민주노총 결의대회 ⓒ 민주노총
20260325-미국 이스라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민주노총 결의대회 ⓒ 민주노총
20260325-미국 이스라엘 침략전쟁 규탄 파병 반대 민주노총 결의대회 ⓒ 민주노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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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최저' 트럼프, 또 이란 뒤통수 치기? '협상' 외치며 공수부대 파병하나

며칠 내 중동에 해병대·공수부대 수천 명 도착할 듯…이란 "미, 자기 자신과 협상" 조롱

김효진 기자 | 기사입력 2026.03.25. 22:29:08

지지율이 취임 뒤 최저치로 떨어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과의 협상을 연일 언급하며 전쟁 종결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지만 동시에 미 육군 정예 공수사단 병력이 이란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와 지상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장한 이란 최후 통첩 시한에 맞춰 공수사단과 미 해병대 병력 수천 명이 중동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돼 미국이 최소 협상과 군사 위협 양면 작전을 펴고 있거나 시간을 끌고 있다는 의혹이 가라앉지 않는 상황이다.

24일(이하 현지시간) 공개된 로이터-입소스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의 트럼프 대통령 지지율이 2기 취임 뒤 최저치인 36%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7~19일 실시된 같은 기관 조사 결과(40%)에 비해 4%포인트(p) 하락한 수치다. 이번 조사는 20~22일 미국 성인 1272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미국의 이란 공격 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소매 휘발유값까지 뛴 것이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조사에서 응답자 25%만 트럼프 대통령의 생활비 문제 대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대통령의 생활비 문제 대응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 공화당원 비율도 지난주 27%에서 이번 조사 34%로 뛰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정책 지지율은 29%에 불과했다. 이는 취임 뒤 가장 낮은 수치일 뿐 아니라 30%를 웃돌았던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 정책에 대한 최저 지지율보다도 낮다고 <로이터> 통신은 짚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 아래 물가 상승을 비판하며 집권했다. 이번 조사에서 미국인의 63%가 미국 경제가 약하다고 평가했다.

이란 공격에 대한 지지율도 여전히 낮았다. 응답자 35%만 공격에 찬성했고 이는 지난 조사 결과인 37%보다도 하락한 수치다. 응답자 61%는 이란 공격에 반대했다.

<로이터>는 민주당 전략가 더그 패러가 이번 결과를 두고 "민주당이 국가안보, 경제, 이민 등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더 많이 다루는 문제에 집중해 중간선거에서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평가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이란, 협상 간절히 원해"…이란 "미, 자기 자신과 협상 중"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 전쟁에 대한 지지율 확보에 실패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이란과의 협상과 작전 성과를 언급하며 전쟁 종결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24일 백악관에서 열린 마크웨인 멀린 신임 국토안보부 장관 선서식에서 취재진에 "우린 적절한 지도자들과 대화하고 있고 그들은 협상 타결을 간절히 원한다"며 사위 재러드 쿠슈너, JD 밴스 미 부통령, 스티브 위트코프 미 특사,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협상에 참여 중이라고 밝혔다. 이란 쪽 협상 대상자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쪽이 "우리에게 선물을 줬고 오늘 도착했다"며 '선물' 내용이 "석유와 가스 관련"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이란 "정권 교체"를 이뤘다고 주장하고 "성공"을 거뒀다며 목표 달성에 가까워졌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미국과 이스라엘 공격으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를 포함해 이란 지도부가 대거 사망했지만 하메네이의 아들이 이후 최고지도자에 오르는 등 기존 정권 인사들이 후임자가 돼 정권 교체를 이뤘다고 보긴 어렵다.

복수의 외신이 파키스탄이 미-이란 협상 중재를 주도하고 있다고 보도한 가운데 셰바즈 샤리프 파키스탄 총리는 24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파키스탄이 양국 회담을 주최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과 이란이 동의하면 파키스탄은 진행 중인 분쟁을 포괄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의미 있고 결정적인 회담을 가능하게 하는 주최국 역할을 기꺼이 맡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파키스탄, 이집트, 튀르키예(터키) 중재자들이 향후 48시간 내, 26일까지 미-이란 회담 성사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다만 양쪽 입장 차이가 여전히 크다고 아랍 및 미 당국자들이 전했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파키스탄을 통해 이란에 15개항 요구안을 전달했다는 보도도 나온다. 24일 <뉴욕타임스>(NYT)는 외교 상황에 정통한 두 당국자를 인용해 종전을 위한 이 요구안에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핵프로그램, 호르무즈 해협 봉쇄 등 해상 항로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란이 이를 협상 기반으로 받아 들일지는 불분명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전쟁 종식 노력 강화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NYT "미, 82공수사단 중동 이동 명령…하르그섬 장악 투입될 수도"

다만 트럼프 정부가 미 육군 정예 부대 82공수사단을 이란에 투입할 거라는 보도가 나와 협상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히 제기된다. 미 CNN 방송은 82공수사단 소속 병력 약 1000명이 며칠 내 중동에 배치될 예정이라고 이 사안에 정통한 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파병 인원엔 82공수사단에서 신속대응군(IRF) 역할을 맡고 있는 제1전투여단 소속 대대가 포함된다고 전해졌다. 신속대응군은 전세계 어디든 18시간 내 배치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82공수사단에서 중동으로 이동하는 인원이 2000명에 달하며 이미 국방부에서 이동 명령이 떨어졌다고 국방부 관계자 2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분쟁 지역에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 주요 영토와 비행장을 확보하는 훈련을 받는 공수사단 병력이 이란 석유 수출기지인 페르시아만 하르그섬 장악에 투입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제31해병원정대(MEU) 소속 해병대 2500명도 이번 주 후반 중동에 도착할 것으로 추정돼 이들 또한 하르그섬 점령이나 호르무즈 해협 통행 지원에 투입될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신문은 최근 미국 공습으로 하르그섬 비행장이 파손됐기 때문에 이를 빠르게 복구할 수 있는 전투 공병을 갖춘 해병대가 이 섬에 먼저 투입될 수 있다고 미군 전직 지휘관들이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3~4주 안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11해병원정대 소속 해병대 2200명을 포함한 4500명 병력이 더해지면 병력 약 1만 명이 추가돼 미군은 이 지역에 6만 명을 배치하게 된다.

해병대 일부 및 공수사단 도착 시점이 트럼프 대통령이 연기한 호르무즈 해협 관련 최후통첩 기한인 이번 주말과 맞물릴 걸로 예상돼 협상 언급을 시간 벌기, 최소 대화와 군사 위협 양면 작전으로 볼 유인이 충분한 셈이다.

이란은 미국과의 협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란 반관영 <타스님> 통신을 보면 25일 이란군 중앙군사본부 카탐 알안비야는 미국에 "자기 자신과 협상 중인 건가"라고 반문하고 이란이 "타협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역내에서 치열한 공격을 주고 받는 중이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이란이 24일에만 13차례 미사일 공격을 가한 데 이어 25일 오전에도 미사일을 발사해 이스라엘 중부 및 남부에 경보가 울렸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이란이 24일 공격 때 집속탄을 사용해 중부 브네이브라크에서 어린이 6명과 80대 고령 여성 1명을 포함해 9명이 다쳤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군(IDF)도 24일 이란 내 탄도미사일 발사대, 무기 생산 시설 등 수십 개 목표물에 120발 이상의 폭탄을 투하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25일에도 이란 수도 테헤란의 주요 해상순항미사일 생산 시설 2곳을 공습했다고 공개했다.

이란의 인근 걸프국 공격도 계속됐다. <워싱턴포스트>(WP)를 보면 사우디아라비아 당국자들은 24일 오전 수도 리야드 방공망이 무인기(드론) 20대 이상을 요격했다고 밝혔고 아랍에미리트(UAE)는 탄도미사일 5대와 무인기 17대에 대한 방어 작전을 수행했다고 했다. 바레인에선 이란 공격으로 인해 상업 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있었고 쿠웨이트군도 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보면 공격은 25일 오전에도 계속돼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등이 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25일(현지시간) 이란 미사일 공격 뒤 이스라엘 해안 도시 네타냐 상공에 로켓 궤적이 보인다. ⓒAFP=연합뉴스

김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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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안중근 의사 유해, 뤼순감옥 묘지 지하 2.1미터 아래 잠들어 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3/26 07:59
  • 수정일
    2026/03/26 08:0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규수 전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교수, 매장지 특정할 미공개 사료 최초 공개 (전문)

  • 기자명 이승현 기자 
  •  
  •  입력 2026.03.26 06:00
  •  
  •  댓글 0
 
 

116년전 오늘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다롄의 뤼순감옥에서 일제에 의해 사형 집행을 당한, 순국일이다. 

형제들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하라"는 유언을 남겼지만 안 의사의 유언은 116년이 지나도록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사형 집행 후 유해가 어디에 매장되어 있는지 조차 명확치 않다. 일제가 철저히 은폐한 탓도 있지만 노력이 부족했다는 자책을 피할 길 없다.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중국 다롄의 뤼순감옥에서 동쪽으로 약 1km 떨어진 마잉푸(馬營浦) 위쪽 산 중턱의 지하 약 2.1미터 깊이에 매장되어 있다는 사료가 최초로 확인됐다.

이규수 전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특임교수는 1910년 9월 10일 '방외생'(方外生, 기자 고마츠 모토고(小松元吾)의 필명)이 일본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에 기고한 '안중근의 묘'라는 제목의 르포기사를 발굴해 안 의사 순국 116주기를 앞두고 공개했다.

지금까지 국내외에 알려지지 않은 미공개 사료이다.

안중근 의사 순국(1910.3.26) 5개월여 뒤에 나온 '고마츠 모토고' 기자의 기사는 안 의사의 매장 위치를 특정할 수 있을 만큼  결정적인 단서가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뤼순감옥 소장의 증언과 현지 답사를 통해 작성된 기사의 신뢰도 높고, 매장지의 구체적인 위치와 거리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묘사가 구체적이다. 특히 안 의사와 바로 이웃해 묻힌 일본인 및 중국인 사형수의 실명이 기록되어 있어 이를 확인할 경우 안 의사의 매장지를 1~2m내로 좁힐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1910년 9월 10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의 '안중근 의사 묘' 관련 기사 [사진-이규수 교수 제공]
1910년 9월 10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의 '안중근 의사 묘' 관련 기사 [사진-이규수 교수 제공]

"실은 당시 안중근의 형제가 너무나 유해를 원했던 점과 우리 일본인들의 격앙이 심했던 탓에 신중하게 고려했다. 다른 죄수들처럼 그 묘표(墓標, 무덤 표시)라고 하기에는 정말 간단한 나무 표식으로, 높이는 지상 1척(약 30cm) 남짓, 폭 4촌(약 12cm) 가량의 널빤지 겉에는 성명을, 뒤에는 사망 연월일을 기록한 것을 묘표로 세우지 않고, (관과 함께) 묻어서 흙을 덮고, 그 위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두어, 일부러 매장 지점의 형태와 흔적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

이 때문에 유해에 관한 갖가지 억측이 나돌았고, 지금도 그 억측을 믿는 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실상은 당시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보도와 같이 특별히 들여온 백목(白木, 원목을 제재하여 표면을 가공하지 않은 목재) 두꺼운 판자의 좋은 재목으로써 파격적인 일본식 침관(寝棺, 시신을 눕히는 관)을 만들었고, 또한 만에 하나 발굴되는 일이 없도록 일반 죄수와 같은 지하 4척(약 1.2m) 이내에 묻지 않고, 특별히 7척(약 2.1m) 아래로 깊이 묻었으며, 매장한 장소는 물론 이 감옥 부속 수인 묘지 안이다."

안 의사 수감 당시 뤼순감옥의 전옥(典獄, 교도소장)이며, 고마츠 기자가 취재할 당시에도 소장으로 근무하던 구리하라 사다키치(栗原貞吉)의 증언이다.

구리하라 소장은 안 의사가 순국 직전 "어머니가 보내주신 흰 한복을 입고 죽고 싶다"고 한 요청을 흔쾌히 허락하고 사형집행 현장에서 사형집행문을 낭독한 인물.

항아리 모양의 관에 세로로 세워 묻은 일반 죄수들과 달리 안 의사의 유해는 백목으로 침관을 만들어 뤼순감옥 부속 수인묘지 구역 안에 매장했으며, 불의의 발굴을 예방하기 위해 약 2.1m 깊이에 묻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고마츠 기자는 이에 대해 "안중근의 유해는 실은 감옥 묘지에 매장되지 않았다거나, 일단 매장되었으나 지금은 그곳에 없다"는 등의 소문이 있었으나 구리하라 전옥의 이야기를 듣고 의구심이 눈녹듯 풀렸다고 기록했다.

뤼순감옥 묘지로 알려진 이 구역은 현재 뤼순감옥박물관과 민간단체 등에서 유력한 매장지로 추정하는 일명 '동산파'(東山坡) 지역이다.

국가보훈부가 △1910년 3월 26일 관동도독부 작성 『사형집행보고』(안중근 금일 사형집행. 유해는 뤼순에 매장함) △조선통감부 1910년 작성 『사형집행보고서』(안의 사체는 감옥서에서 제작한 침관에 넣고 백포를 덮어 (중략) 오후 1시 감옥서의 묘지에 매장하였다) △오사카아사히신문 1910년 3월 27일자(안의 시체는 침관에 안치되는 대우를 받고 감옥묘지에 매장되었다) △만주신보 1910년 3월 29일자(사체는 오후 감옥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등 단서를 근거로 안 의사 매장지를 뤼순감옥 묘지로 지목하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결론이다.

이어 고마츠 기자는 구리하라 소장이 특별히 동행시킨 안내자와 함께 감옥으로부터 약 10정(약 1km) 떨어진 묘지로 향했다.

"안내자는 두 산이 서로 근접해 길이 막 끝나려 하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곳이라고 알려 주었다"며, 묘지의 위치를 설명했다.

"묘지는 자세히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그 곳임을 알 수 있었다. 울타리도 담도 없는 산 중턱, 무성한 잡초 사이에 규칙적으로 두 줄을 이루어 50~60기의 무덤이 서 있었다. 산은 높지 않아서 약 1정(약 109m) 앞까지는 마차도 다닐 수 있고 골짜기는 깊지 않아 건장한 남자라면 오르내릴 수 있다. 

고개를 들어 보면 정면 마주 보이는 산등성이 정상에 청나라 통치 시대의 기병영(騎兵營) 터가 거의 흙담이 완전한 형태로 있고, 고개를 숙이면 오른편으로 마잉푸(馬營浦)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으로 약 1정(약 109m) 남쪽 산기슭과 가깝고, 눈앞 바로 아래에는 개인 소유의 화약고와 그 파수막 등 빈집이 각각 한 채씩 계곡에 임하여 서 있다."

묘지의 위치는 감옥에서 약 10정(약 1km) 떨어진 곳. 감옥 담장 옆이 아니라 감옥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는 산중턱에 있는데, 정면의 언덕 정상에는 청나라 시대 기병영의 흙담 잔해가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마잉푸라 불리는 작은 부락의 끝자락이 산기슭에 닿아 있으며, 바로 아래에는 계곡을 굽어보는 위치에 개인 소유의 화약고와 파수꾼의 빈 오두막이 있다는 것.

묘지에서 바라 본 전망에 대한 묘사도 나온다.

"칭하기를 감옥의 공동묘지라 하나, 그 실상은 하등(下等) 중국인의 버려진 무덤(廢墳)과 거의 맞닿을 만큼 근접해 있고, 그 수는 20~30기에 불과하다. 그중에는 아주 오래되지 않은 것도 1~2기가 있다. 지명과 산의 이름은 미상이나, 이름을 붙이자면 '마잉푸(馬營浦)의 위쪽'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까. 3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오직 남쪽만이 마잉푸 마을을 넘어서 멀리 황금산(黄金山)과 라오후웨이(老虎尾)를 마주하고 있어, 그 사이로 항구 밖의 바닷물(海水)을 바라보고, 조금 서쪽으로 치우쳐 백옥산(白玉山) 꼭대기의 표충탑(表忠塔)이 우뚝하니 하늘에 솟아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마침내 "잡초 아래 침관(浸棺) 크기라고 인정할 만할 형태를 희미하게나마 지상에 드러내고 있으나, 한 조각의 나무 표식도 세우지 않고, 한 덩어리 돌멩이(石卵)도 놓지 않은 곳, 바로 이곳이 그해 천하를 뒤흔들었던 광한(狂漢) 안중근의 형여(刑餘, 처형된 몸)가 영원히 누워 있는 곳"이라며, 안 의사의 매장지를 확인한다.

고마츠 기자는 "2~3년전 다롄에서 중국인 환전상을 꿰어내어 2천엔을 강탈한 뒤 교살한 모토야마 겐이치(本山謙市)와 야마무라 세이이치(山村精一), 그리고 불과 얼마 전 처형된 중국인 살해범 혼다 오토마쓰(本田音松), 일본인 살해범 위안광가오(袁廣高) 등 두 강도의 흙이 마르지 않은 새 무덤과 인접한 지점"이라고 안 의사의 자리를 특정했다.

"이(李), 오(呉), 원(袁), 유(劉), 형(邢) 등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처형된 마적들이 나란히 있는 그 열 바로 아래, 즉 앞 열"이라고 덧붙였다.

사료를 발굴한 이규수 교수는 뤼순감옥 '옛터'(舊址, 구지)를 기점으로 반경 약 1km 지점에 대해 위성지도 및 고지도와 대조해 청나라 기병영 터와 마잉푸 부락의 위치를 확인해 산 중턱 골짜기의 실제 매장지를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발굴범위를 획기적으로 좁혀주는 좌표이기 때문이다.

또 안 의사 주변에 묻힌 것으로 명시된 모토야마 겐이치, 야마무라 세이이치, 혼다 오토마츠, 위안광가오의 판결문과 사형집행 및 매장보고서는 일본 법무성이나 외무성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들의 묘지번호(매장 위치) 등을 확인하면 안 의사의 묘는 바로 그 옆으로 특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하 2~3m 심도를 탐색하는 고성능 GPR(Ground Penetrating Radar, 지표투과레이더) 탐사를 통해 두꺼운 소나무관 등의 이질적인 신호(Anomaly)를 탐지하면 안 의사의 유해를 찾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며, 중국측에 탐사 협조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마츠 모토고 기자 [사진-이규수 교수 제공]
고마츠 모토고 기자 [사진-이규수 교수 제공]

한편, 이 글을 쓴 고마츠 모토고 기자는 1875년 일본 고치현 우사기다(兎田) 태생으로 24살부터 28살까지 미국에서 생활하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다롄의 요동신보(遼東新報)에 입사했으며, 이때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의 특파원으로 안중근 의사 재판을 방청하고 법정 스케치를 남긴 인물이다.

고마츠 기자는 당시 일본의 국익을 대변하는 취재진의 일원으로 안 의사를 '광한'(狂漢, 미친 사내)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사형이 예견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안 의사가 보여준 당당한 기개와 논리 정연한 '동양평화론', 그리고 적국 일본의 천황이나 민중을 증오하기보다 동양의 진정한 평화를 역설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사뿐만 아니라 당시 법정의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한 삽화를 남기며 안 의사의 마지막 투쟁을 충실히 기록했다.

사형집행을 앞둔 1910년 3월, 고마츠 기자는 안 의사를 면회해 평소 품었던 경의를 표시하며 글씨를 청했고, 안 의사가 그에게 써 준 유목과 가족사진첩은 그의 외손자인 고마츠 료지가 2016년 11월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했다.

《일본어 원문 번각》(전문)

○ 安重根の墓

○ 於旅順

○ 方外生

○ 《大阪每日新聞》 1910年 9月 10日

毒彈一射、我伊藤公の生命を哈爾賓に奪ひて一時天下の視聴を其一身に集めたる狂漢安重根は、爾来月を閲する滿五の本年三月二十六日を以て刑に就き、茲に關東州未曾有の大裁判も局を結び、世人の記憶漸く將に弱からんとする今日、忽ち韓國併合條約成立して故公の遺業殆んど完きを告げんとす、予は一種の感に打たれつゝ、大連より旅順に來り、故公を弔する心を以て重根の墓を探り兼ねて、當時の共犯三囚の現狀を見るべく旅順監獄を訪へり。

重根の遺骸は處刑の當時、其骨肉數名旅順に來り、故郷に葬らんことを哀訴愁願する所あり。我官憲は陽に之を諒として陰に之を拒みたるも、彼等は尙之を覺らず最後に斷然其哀訴を排斥せらるゝや安の二弟は忽ち獄門に怒號憤泣して誓つて日本に報ひんと揚言せり。

然るに後に到りて說の耳より耳に傅へらるゝものあり曰く重根の遺骸實は監獄墓地に埋められず否一たび埋められたるも今や無しと、予輩心窃に其必無を斷ずべからざるを思ひ其眞相を知らんと期したり。

而も顧みて假令其眞相を探究するとも輕々しく之を發表すべきにあらざるを思ひ其儘打過ぎしが、今や此探究に適當なる時機とはなれり。

當時の主任者にして現に尙其職に在る栗原典獄は終に口を開きて曰く「實は當時餘りに安の兄弟が遺骸を欲しがりたると邦人の激昂甚しかりしに慮る所ありて他囚の如く其墓標と言つてもホンの簡單なる木標で高さ地上一尺餘幅四寸許の板に表は姓名、裏は死亡年月日を記したるを立てず埋めて土を着せ、其上を雑草の生ひ茂るに任せて、故らに埋葬地點を明にせず、全く形跡を糊塗し去りたるより、種々の臆說行はれ、現に依然臆說を信ずる者少からざる由なれど、其實當時貴紙報道の如く、特に取寄せたる白木厚板の良松材を以て、破格の日本式寢棺を作り、且萬一發掘せらるゝが如きことなきやう、一般囚は地中四尺以下に埋むる例なるを以て、特に七尺以下となしたり。其場所は勿論當監獄附属の囚人墓地内なり」と。

予輩の愚かなる疑念は此一言にて容易に氷解したり。乃ち予は典獄が特に附し吳れたる案内者に從ひ、監獄より約十町なる墓地に向ひ、兩山相逼つて道將に盡きんとする所、案内者歩を停めて「此處です」と告ぐ。  

墓地は細視して後始めて其れと知られたり柵なく墻なき山腹菁々たる雜草の間に、規律正く二列となりて五六十基立てり。山高からず一町程手前迄馬車を通じ得べく谷深からず屈強の男ならば下りて又上るべし。

仰げば正面對崗の頂上に清治時代の騎兵營の残墟略ぼ土墻を完うし。伏せば右方馬營浦と稱する小部落市街の一端となりて約一町の南なる山脚に迫り、眼前直下には私人の火薬庫と其番小屋の空家各一棟溪に臨みて立つ。

稱して監獄の共同墓地となすも其實下等支那人の廢墳と殆んど相觸るゝばかりに接近し、其數は二三十個に過ぎざるも二三個甚だしく古からぬものあり。地名山名共に詳ならず、假に名くれば馬營浦の上手とも稱すべきか。三方塞がり唯南方のみ馬營浦を越えて遙に黄金山と老虎尾とに對し、其間より港外の海水を望み、少しく西に偏して白玉山頭の表忠塔屹として天空に聳立するを見る。

立て列ねたる墓標の主は、何れ關東州內外、我行政圈を騷がせたる馬賊、強盗、殺人犯の類ならぬは無きが中に李、呉、袁、劉、邢など一時に刑せられたる馬賊の並べる其列の眞下卽ち前列にして二三年前大連に於て支那人の兩替商人を誘き出し二千圓を奪ひて之れを絞殺したる本山謙市、山村精一等を始め纔に此程刑せられたる許りの支那人殺し本田音松、日本人殺し袁廣高兩強盗の土未だ乾かざる新墓と隣接せる地點に雜莠の下、正に寢棺大と認めらるゝ形を覺束なげながら地上に現はし、一片の木標も立てず、一塊の石卵も置かざる所、卽ち是れ當年天下を聳動したる狂漢安重根の刑餘の身体が永く横はる所なり

秋漸く深くして蟲晝鳴く、知らず唧々たる聲亦大韓獨立を叫ぶや否や。(번각 : 이규수, 감수 : 최세경)  * 쉼표와 마침표 등은 번각자가 편의상 삽입한 것입니다.

 

《기사 한국어 번역》(전문)

○ 안중근의 묘(安重根の墓)
○ 장소 : 뤼순(旅順)에서
○ 필자 : 방외생(方外生, 기자 고마쓰 모토고의 필명)
○ 출전 :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大阪每日新聞》 1910년 9월 10일

흉탄 한 발로 하얼빈에서 우리 이토 공(公)의 생명을 앗아가, 한때 천하의 이목을 그 한 몸에 집중시킨 광한(狂漢) 안중근은 그 후 해를 넘겨 만 5개월이 되는 올해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에 관동주(關東州) 미증유의 대재판도 종결되고 세인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려 하는 작금, 홀연 한국 병합조약이 성립되어 고(故) 이토 공의 유업이 거의 완성을 고하려 한다. 

나는 감회에 젖어 다롄(大連)에서 뤼순(旅順)으로 와 고인을 애도(이토 히로부미를 의미함-이규수)하는 마음으로 안중근의 묘를 찾고, 동시에 당시 공범이었던 세 수인(囚人,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이규수)의 현황을 살피고자 뤼순감옥을 방문하였다. 안중근의 유해는 처형 당시 그 혈육 몇 명이 뤼순에 찾아와 고향에 안장하기를 애소하고 애원했는데, 우리 관헌은 겉으로는 이를 승낙하는 체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이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를 깨닫지 못했고 결국 그 애소가 단호히 거절당하자, 안중근의 두 동생(안정근, 안공근–이규수)은 돌연 감옥 문 앞에서 분노하여 울부짖고 통곡하며 맹세코 일본에 보복하겠노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훗날 귀에서 귀로 전해지는 소문에 따르면, 안중근의 유해는 실은 감옥 묘지에 매장되지 않았다거나, 일단 매장되었으나 지금은 그곳에 없다고 한다. 나는 내심 정말로 없다고 단정할 수 없어 그 진상을 알고자 하였다.

게다가 돌이켜보건대, 가령 그 진상을 탐구한다 해도 경솔하게 이를 발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지나쳐 왔으나, 이제야말로 탐구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되었다. 

당시 감옥의 주임으로서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 직에 있는 구리하라(栗原) 전옥(典獄, 교도소장)은 마침내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은 당시 안중근의 형제가 너무나 유해를 원했던 점과 우리 일본인들의 격앙이 심했던 탓에 신중하게 고려했다. 다른 죄수들처럼 그 묘표(墓標, 무덤 표시)라고 하기에는 정말 간단한 나무 표식으로, 높이는 지상 1척(약 30cm) 남짓, 폭 4촌(약 12cm) 가량의 널빤지 겉에는 성명을, 뒤에는 사망 연월일을 기록한 것을 묘표로 세우지 않고, (관과 함께) 묻어서 흙을 덮고, 그 위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두어, 일부러 매장 지점의 형태와 흔적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 이 때문에 유해에 관한 갖가지 억측이 나돌았고, 지금도 그 억측을 믿는 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실상은 당시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보도와 같이 특별히 들여온 백목(白木, 원목을 제재하여 표면을 가공하지 않은 목재) 두꺼운 판자의 좋은 재목으로써 파격적인 일본식 침관(寝棺, 시신을 눕히는 관)을 만들었고, 또한 만에 하나 발굴되는 일이 없도록 일반 죄수와 같은 지하 4척(약 1.2m) 이내에 묻지 않고, 특별히 7척(약 2.1m) 아래로 깊이 묻었으며, 매장한 장소는 물론 이 감옥 부속 수인 묘지 안이다”라고 말하였다. 

나의 어리석은 의구심은 이 한마디로 눈 녹듯 쉽게 풀렸다. 이에 나는 전옥이 특별히 붙여준 안내자를 따라 감옥에서 약 10정(약 1km) 떨어진 묘지로 향했다. 
안내자는 두 산이 서로 근접해 길이 막 끝나려 하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곳이라고 알려 주었다. 묘지는 자세히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그곳임을 알 수 있었다. 

울타리도 담도없는 산 중턱, 무성한 잡초 사이에 규칙적으로 두 줄을 이루어 50~60기의 무덤이 서 있었다. 산은 높지 않아, 약 1정(약 109m) 앞까지는 마차도 다닐 수 있고, 골짜기는 깊지 않아 건장한 남자라면 오르내릴 수 있다. 고개를 들어 보면 정면 마주 보이는 산등성이 정상에 청나라 통치 시대의 기병영(騎兵營, 기병대 병영) 터가 거의 흙담이 완전한 형태로 있고, 고개를 숙이면 오른편으로 마잉푸(馬營浦)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으로 약 1정(약 109m) 남쪽 산기슭과 가깝고, 눈앞 바로 아래에는 개인 소유의 화약고와 그 파수막 등 빈집이 각각 한 채씩 계곡에 임하여 서 있다. 

칭하기를 감옥의 공동묘지라 하나, 그 실상은 하등(下等) 중국인의 버려진 무덤(廢墳)과 거의 맞닿을 만큼 근접해 있고, 그 수는 20~30기에 불과하다. 그중에는 아주 오래되지 않은 것도 1~2기가 있다. 지명과 산의 이름은 미상이나, 이름을 붙이자면 ‘마잉푸(馬營浦)의 위쪽’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까. 

3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오직 남쪽만이 마잉푸 마을을 넘어서 멀리 황금산(黄金山)과 라오후웨이(老虎尾)를 마주하고 있어, 그 사이로 항구 밖의 바닷물(海水)을 바라보고, 조금 서쪽으로 치우쳐 백옥산(白玉山) 꼭대기의 표충탑(表忠塔)이 우뚝하니 하늘에 솟아 있는 것을 본다. 

줄지어 선 묘표의 주인은, 모두 관동주 안팎에서 우리 행정권을 어지럽힌 마적, 강도, 살인범의 부류가 아닌 자가 없는 와중에 이(李), 오(呉), 원(袁), 유(劉), 형(邢) 등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처형된 마적들이 나란히 있는 그 열 바로 아래, 즉 앞 열에는 2~3년 전 다롄에서 중국인 환전상을 꾀어내어 2천 엔을 강탈하고 그를 교살한 모토야마 겐이치(本山謙市), 야마무라 세이이치(山村精一) 등을 비롯해, 불과 얼마 전 처형된 중국인 살해범 혼다 오토마쓰(本田音松), 일본인 살해범 위안광가오(袁廣高) 등 두 강도의 흙이 마르지 않은 새 무덤과 인접한 지점에, 잡초 아래 침관(浸棺) 크기라고 인정할 만할 형태를 희미하게나마 지상에 드러내고 있으나, 한 조각의 나무 표식도 세우지 않고, 한 덩어리 돌멩이(石卵)도 놓지 않은 곳, 바로 이곳이 그해 천하를 뒤흔들었던 광한(狂漢) 안중근의 형여(刑餘, 처형된 몸)가 영원히 누워 있는 곳이다. 가을이 점차 깊어져 벌레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알지 못하겠구나, 찌르르
우는 소리 또한 대한독립을 외치는 것일까 아닐까. (번역 : 이규수, 감수 : 최세경)

*3월 27일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 현황과 남북 공동대응 과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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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운명 걸린 원전 미래, 기명 국민투표로 결정을

이원영 국토미래연구소장, 시민인권위 공동위원장

leewy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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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지뢰' 위에 살 것인지 주권자가 선택해야

정권에 따라 탈원전·친원전 오락가락 그만

'에너지 전환 30년 로드맵' 법제화 필요

공습 당한 이란 원전의 서늘한 경고 새겨야

최근 이스라엘이 이란의 부쉐르 원전 인근을 타격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직접 타격은 아니었으나, 체르노빌의 악몽이 재현될 뻔한 순간이었다. 우크라이나의 자포리자 원전은 또 어떠한가. 전쟁 중 외부 전원이 여섯 차례나 완전히 끊겼고, 비상발전기로 간신히 노심 용융을 막아왔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매번 "아슬아슬하게 재앙을 피했다"고 경고한다.

이 두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원전은 미사일에 직접 맞지 않아도 위험하다는 사실이다. 원전의 아킬레스건은 '냉각'이며, 냉각의 핵심은 '전력 공급'이다. 변전소 하나, 송전탑 몇 기만 무너져도 원전은 거대한 시한폭탄으로 변한다. 우리나라는 고리·한울·한빛·월성 4개 단지에 24기의 원전이 밀집해 있다. 전시에 송전망 계통이 무너지면 동시다발적 위기가 시작된다. 그 피해는 한반도를 넘어 중국, 일본, 러시아까지 미친다. 세계 어느 분쟁 지역보다 위험한 '핵지뢰' 위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스라엘군으로부터 공습을 당한 이란 부쉐르 원전 부지를 2026년 3월 7일에 촬영한 위성 사진. 연합뉴스

5년 단임제가 100년의 미래를 결정하는 모순

원전의 설계 수명은 40~60년이며, 해체와 폐기물 처리까지 고려하면 그 영향력은 100년을 훌쩍 넘긴다. 그러나 이 거대한 시간축을 결정하는 우리 정치 시스템은 고작 '5년'이라는 단기 사이클에 갇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정책은 180도 뒤집힌다. 탈원전에서 친원전으로, 다시 그 반대로 춤을 추는 동안 국가 전략의 일관성은 증발했고 사회적 갈등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쌓였다.

이것은 단순히 특정 정권의 과오가 아니다. 1987년 체제의 구조적 한계다. 당시의 시대정신은 '독재 방지'였고, 그 결과 권력의 분산과 단임제를 얻었으나 '장기적 국가 전략' 수립 능력은 상실했다.

민주화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더 치명적인 위협은 독재의 회귀인가, 아니면 국가 생존이 걸린 전략적 일관성의 부재인가. 이제는 87년 체제가 남긴 공백을 채울 새로운 의사결정 모델이 필요하다.

기실 현재 대의제 민주정은 자본권력의 대리인이나 다름없다. 이 현상은 21세기에 극심해졌다. 공산권의 독재처럼 민주정에서도 의사결정능력 저하가 인류의 진짜 위기다. 윤석열과 트럼프가 단적인 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새로 발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젠 민치제(民治制)가 병행되어야 한다. 시행착오가 있겠지만 국민이 책임을 갖고 손수 결정하는 흐름이 중시되지 않으면 안된다.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모습. 2011년 3월 25일. AP 연합뉴스

대의제의 한계와 '숙의 민주주의'의 필요성

대리운전 같은 현행 대의제는 구조적으로 '현재의 유권자'만을 대변한다. 30년 후 이 땅의 주인일 미래 세대는 오늘 투표권이 없다. 원전, 기후위기, 연금 문제는 모두 미래의 몫을 현재가 가로채는 구조적 모순 속에 방치되어 왔다.

이미 세계는 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아일랜드는 무작위로 추출된 시민 99명이 수개월간 전문가와 숙의하여 낙태권 같은 초장기적 사회 갈등을 해결했다.

우리 역시 에너지 전환 30년 로드맵을 단순한 정쟁의 도구로 두어서는 안 된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숙의 과정을 거쳐 로드맵을 확정하고, 이를 어떤 정권도 뒤집지 못하도록 헌법적 수준으로 법제화하는 '에너지 헌법'이 절실하다.

'기명(記名) 투표', 역사 앞에 선 주권자의 명예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에너지 전환 로드맵에 대한 국민투표를 '기명(記名)'으로 실시하자는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비밀투표의 원칙은 신성시되지만, 이는 과거 권력의 압박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나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초장기 과제에서 익명성은 때로 '무책임'의 가면이 된다. 19세기 미국 민주주의 초기에는 시민들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공개적으로 투표하며 주권자의 자부심을 드러냈다. 지금도 스위스의 일부 지역(란츠게마인데)에서는 광장에 모여 손을 들어 공개적으로 정책을 결정한다.

우리에게는 '족보(族譜)' 문화가 있다. 후손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조이고자 하는 마음, 내 이름 석 자에 책임을 지는 명예 문화가 DNA 속에 흐르고 있다. 기명 투표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현재의 편익만 좇는 나를 버리고, 역사와 미래 세대 앞에 선 주권자로서의 나를 소환하는 성스러운 의식이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56인이 자신의 목숨과 명예를 걸고 이름을 남긴 것처럼, 우리도 한반도의 미래를 결정하는 계약서에 당당히 이름을 남겨야 한다.

세대 간의 신성한 계약

"30년 후 우리는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를 지금 결정하는 것은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진화이며 세대 간의 신성한 계약이다. 기명 투표를 통해 남겨진 기록은 훗날 우리 자손들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런 미래를 꿈꾸며 책임 있는 선택을 하셨구나"라고 확인하는 역사적 유산이 될 것이다.

국가의 명운은 5년 정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 국민이 직접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핵지뢰의 공포를 걷어낼 대장정의 첫걸음을 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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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통령, ‘그알 보고 윤석열 뽑았다’ 글 공유하며 “조작 보도는 선거방해”

수정 2026.03.24 23:40

이재명 대통령이 24일 엑스에 올린 SBS 뉴스 시청자 게시판 갈무리. 엑스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은 24일 ‘20대 대선 당시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방송을 보고 이 대통령이 아닌 윤석열 전 대통령을 뽑았다’는 취지의 누리꾼 글을 공유하며 “악의적 조작 보도로 주권자의 결단을 비트는 것은 민주공화정을 부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엑스에 “이 캡처는 그알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라는데 진위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글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엄중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글은 지난 22일 SBS 뉴스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SBS 노조는 진정한 언론이 뭐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이다.

해당 글에서 이 누리꾼은 “언론의 자유는 분명히 중요하다. 그러나 그 자유는 거짓을 포장하여 만든 기사에 대한 언론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며 “저도 그때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를 봤고 제 주위에도 그 프로그램을 보고 이재명이라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여 투표 당시 윤석열을 뽑았다”고 주장했다.

이 누리꾼은 이어 “윤석열 당선 후 며칠 안 돼서 저는 그 프로그램을 본 저를 그리고 그 프로를 원망했다”며 “그런데 확실히 거짓 보도였다는 판결이 난 지금은 너무 저주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에 대한 권리만 따지지 말고 먼저 거짓 기사로 인한 결과에 대해 먼저 반성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적었다. 앞서 SBS 노조가 그알을 향한 이 대통령의 사과 요구에 “언론 길들이기”라며 반발한 일을 비판하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그알의 문제된 보도처럼 정치적 목적에 따라 정치인을 악마화한 조작 보도로 주권자의 선택을 바꾼 것은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이기도 하지만, 이를 넘어 주권자의 국민주권을 탈취하는 선거방해, 민주주의 파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주의는 자유로운 주권자의 선택으로 완성되는데 악의적 조작 보도로 주권자의 결단을 비트는 것은 민주공화정을 부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라며 “사실 이 방송의 제작·송출 관련자들이 사과할 대상은 정치인 이재명보다 대통령 선택권을 박탈당하거나 심지어 이분처럼 반대의 선택을 강요당한 후 억울함과 후회에 가슴을 치는 대한민국 주권자들”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방송에 속아 다른 선택을 하고 가슴 아파하시거나 지금도 저를 살인 조폭 연루자로 알고 계신 분들께 말씀드린다”며 “지연된 그 몇 배로 열과 성을 다해 지금 된 것이 그때 된 것보다 훨씬 더 나은 대한민국을 반드시 만들 테니 안타까워 마시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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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명 희생자 낳은 참사에…안전공업 대표는 "유족이고 XX이고" 폭언

이대희 기자 | 기사입력 2026.03.25. 07:30:02

74명의 사상자가 나온 대전 안전공업 화재 사건과 관련해 이 회사 대표인 손주환 씨가 일부 직원을 향해 폭언했다는 뉴스 보도가 나왔다.

25일 SBS 보도를 보면, 손 대표는 이번 화재 참사 관련 언론보도를 본 후 회사 임직원을 향해 "야 어떤 X이 (언론을) 만나는지 말하란 말이야. 뉴스에 뭐 '사장이 뭐라고 큰소리치고 후배들에게 얘기한다'고 하는데 거기에 대한 변명이 전혀 없는 거냐'라고 폭언했다.

언론에 평소 손 대표가 직원들에게 막말을 일삼았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를 질책하면서 또 막말하는 내용이 보도된 셈이다.

손 대표는 심지어 화재 참사 희생자를 향해서도 막말했다.

손 대표는 특정 희생자 실명을 거론하면서 "조장·반장·리더가, 대표가 죽은 거다. 집에 어머니가 자식이 누구 불에 타 죽을까 봐 뒤돌아보다가 늦어서 죽은 것"이라고 했다.

또 "늦게 나와서 죽었다. 늦게 나오면 되겠느냐"는 취지의 발언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는 또 자신의 발언 중 누군가가 유가족을 만나러 가야 한다고 하자 "뭘 가만히 있어봐. 유족이고 XX이고 간에!"라며 욕설까지 섞어 유가족을 향해 막말했다.

▲대형 화재로 74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전 안전공업의 손주환 대표이사가 23일 오후 합동 감식과 압수수색이 진행 중인 안전공업 본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언론에 제보한 이들은 손 대표의 막말을 보다 못한 가족이 그를 말려 회의가 종료됐다고 밝혔다.

손 대표 가족은 회의 참석자들에게 손 대표를 대신해 사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 대표의 이런 막말이 나온 회의 당시 참석자 가운데는 이번 참사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직원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막말이 나온데 대해 손 대표 가족 중 한 명은 "이런 상황을 이겨내고 어떻게든지 재건해서 회사를 다시 만들"고자 이런 말이 나온 것 같다며 "사장님 행위를 너그럽게 생각해 달라. 제가 미안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에도 관리직 등을 향해 막말을 일삼은 것으로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손 대표는 이번 참사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위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됐다.

▲23일 오후 대전시청 1층 로비에 마련된 대덕구 안전공업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대희 기자

독자 여러분의 제보는 소중합니다. eday@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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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필요한 노인들 도와야" 공습중 문 연 이란 약사 폭사

임병선 에디터

byeongseon1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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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6.03.24 17:11

  • 수정 2026.03.2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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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스라엘 공격 3주째 민간인 1500명 희생

인터넷 차단, 국제전화 불통에도 일부 알려져

같은 건물 IT 회사 겨냥한 공습에 다하긴 폭사

집이 그리워 돌아와 잠자던 몰라니 목숨 잃어

세 살 배기 일마 빌키 중상 하루 만에 세상 떠

남부 미나브 초등학교 희생 58명만 신원 확인

BBC "병원 20여곳 공격 당한 사실 확인했다"

파라스테시 다하긴(왼쪽)과 베리반 몰라니는 미국과 이스라엘 공격에 스러진 민간인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극히 일부다. 소셜미디어 갈무리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과 이란의 항전이 3주를 넘긴 가운데 이란 수도 테헤란을 비롯해 여러 도시들의 수천 개 목표물이 타격을 받아 1400명 넘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이 차단됐고 국제전화도 이란에서 해외로 거는 것만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민간인 희생자들의 신원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전쟁의 짙고 검은 연기와 인터넷 차단 속에서도 이란에서 아주 적은 분량의 정보들이 새나오며 민간인 희생자 가운데 극히 일부의 이름들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고 영국 BBC가 23일(현지시간) 전해 눈길을 끈다.

파라스테시 다하긴은 약국에서 일하던 중 폭사한 젊은 약사였다. 집이 그리워 테헤란 자택에 돌아온 블로거 베리반 몰라니는 다음날 침대에 누워 있을 때 공습 잔해에 머리를 다쳐 결국 목숨을 잃었다. 세 살배기 일마 빌키는 서부 사르다슈트에서 부상 하루 만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인권문서센터에 따르면, 다하긴은 테헤란 아파다나 지역에 있는 자신의 약국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이란의 인터넷 차단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정보통신(IT) 회사를 겨냥한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오빠 푸랴는 인스타그램에 여동생이 살해될 때 단지 자신의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라고 적었다. 그는 테헤란이 안전하지 않다며 일하는 것을 그만 두라고 말렸지만, 여동생은 "다친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한다"고 대꾸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오빠에게 "노인들이 약이 필요해 약국에 온다. 난 여기 남아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는 것이다. 푸랴는 "너는 정말 고귀했어"라고 경의를 표했다.

 

일마 빌키는 이달 초 미-이스라엘 공습 이후 사망했다. 헹가우 제공

세 살배기 일마 빌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적다. 그의 사진은 쿠르드 인권 단체 헹가우가 BBC에 제공했다. 이 단체는 그 아이가 이달 초 미국과 이스라엘 공습에 중상을 입은 지 하루 만에 사망했다고만 전했다.

몰라니는 스물여섯 살의 라이프스타일 블로거로 온라인 의류점을 운영했다. 외동딸로 집을 몹시 그리워했다. 이란 북부의 안전한 곳에 머무르다 전날 테헤란 집으로 돌아왔는데 변을 당했다. 그녀의 가족은 에스마일 카티브 정보부 장관이 부유층 동네에 위치한 자택의 건너편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친구 라지에 잔바즈가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이란 적신월사가 공개한 야간 동영상을 보면 구조팀이 무너진 석조물을 치우고 그 속에 갇힌 베리반의 어머니에게 접근하려 애쓰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녀는 "우리 딸이 살아 있나요?"라고 애원하듯 묻는다. 베리반은 이미 잔해에서 구출된 상태였지만, 치명적인 부상을 당한 몸이었다.

잔바즈는 "그녀는 3월 17일 미사일 공격 당시 잠자리에 들기 직전 침대에서 사망했다"고 적었다.

이란 핸드볼 대표팀 출신인 잔바즈는 지난주 카티브 장관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베리반의 이웃 몇 명이 사망했다고 말했다. 그는 소식을 듣고 현장에 갔는데 친구의 운동화 한 켤레가 길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잔바즈는 "이 가족은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결국 그녀를 잃었다"고 말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운동가 통신(HRANA)는 지금까지 1400명 이상의 민간인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집계했는데, 그 중 15%가 어린이다. 가장 치명적인 단일 사건 가운데 하나는 전쟁 초기에 남부 미나브의 한 초등학교에 대한 미사일 공격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이 인근 군사기지를 표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미군은 학교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쿠르드 인권단체 헹가우는 학교에서 사망한 어린이 48명과 성인 10명의 신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헹가우는 증가하는 민간인 사상자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란은 자국의 군사 손실을 보고하지 않는다. HRANA는 개전 후 적어도 1167명의 군인이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전쟁 중 많은 이란인들이 인터넷 사용으로 체포됐다. 하지만 강력한 현지 인맥을 가진 인권단체들조차 사상자 정보를 수집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헹가우는 이란 국경수비대가 이라크의 전화 및 인터넷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사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 네트워크들은 때때로 양국 국경 근처에서 접속할 수 있다. 정권은 인구와 전쟁 서사를 통제하려 한다. 헹가우의 아와이어 셰키는 "사람들에게 정말 가슴 아픈 상황"이라면서 사람들이 "두려워한다"고 BBC에 말했다. 그는 "올해 초 이란 정부에 의해 거리에서 살해당했고, 이제는 폭탄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고 개탄했다.

그는 주거 지역에도 정부 건물이 있다고 덧붙였으며, 테헤란 같은 대도시에도 민간 방공호가 없다고 덧붙였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민간인들이 전쟁으로 인해 "충격적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밝혔다. 적신월사 활동가 하미드레자 자한박쉬도 희생됐다.

 

벵상 카사르 ICRC 대표단 단장은 "국제 인도법은 명확하다. 민간인과 민간 인프라는 공격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의료진과 응급 구조대원, 의료 운송 및 시설, 인도주의 인력은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 나흘째인 지난 3일(현지시간) 수도 테헤란의 간디 병원은 공습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위 사진은 위성 사진 업체 밴터(Vantor)가 제공한 지난 1일의 사진이며 아래는 3일 공습 이후 촬영한 사진이다. 직접 타격을 받지 않은 건물 지붕이 재로 뒤덮여 새카맣게 변했다. 밴터 제공 AFP 연합뉴스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20건이 넘는 의료 시설 공격을 확인했으며, 더 많은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최소 9명의 보건 요원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테헤란 국영방송 본사 근처 간디 병원의 영상은 광범위한 피해를 보여준다. 중동 전쟁에 대한 WHO의 대응을 지휘하는 이안 클라크는 "공격이 그 시설을 직접 겨냥했는지, 아니면 인접한 시설을 겨냥했는지 판단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면서 "이것은 건강에 대한 공격이며, 분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민간인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의료 시설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조치를 취할 책임이 있다. 의료에 대한 어떤 공격도 국제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BBC는 간디 병원은 물론, 서부 마하바드 마을의 적신월사 병원, 그리고 지난 3일 인큐베이터 안의 아기들이 대피되는 모습이 목격된 남부 항구 부쉐르의 병원 등 여러 피해 병원의 영상을 확인했다.

현재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지만, 테헤란의 옛 동료들과 연락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힌 외과의사 하심 모아젠자데는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다가 다친 이들의 목숨을 구하려 한 지 몇 주 만에 공공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이 이제는 공습 부상자들을 돌보다 "극도로 탈진한 상태"라고 전했다. 폭탄의 위력이 매우 크고 민간인 사상자도 매우 많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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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처벌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경찰 앞에서 지문 닦아낸 목사

[보이지 않는 아이들] 베이비박스 17년, 이종락 목사가 아직 그 자리를 지키는 이유

26.03.25 06:46최종 업데이트 26.03.25 06:46

베이비박스(재)주사랑공동체

몇 년 전 베이비박스를 찾아 서울시 관악구 난곡동 언덕길을 처음 올랐다. 예상보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면서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이 험한 길을 찾아든 절박한 사연의 사람들과 영문도 모른 채 박스 안에 넣어졌을 아이들이 떠올라서였다.

어느 추운 겨울 새벽, 대문 앞 생선 박스에 담겨 있던 아이를 맞이하면서 시작된 베이비박스였다. 이를 계기로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던 유기아동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양육이 포기되는 보호아동과 그 부모들의 참혹한 사연도 함께 떠올랐다.

베이비박스 하면 자동으로 따라오는 이름인 이종락 목사는 그 뒤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이 목사의 베이비박스에서 시작된 고민의 갈래가 유기아동에서 모든 보호아동으로, 여성이 처한 현실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로까지 확장되어 왔다.

한때 우리 사회의 격렬한 논쟁거리였던 베이비박스는 이제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은 아니다. 다만 불완전한 존재인 인간 사회에서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불멸의 고통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고통을 오롯이 받아 안은 장치가 베이비박스였고 그곳에서 시작된 아이들의 미래는 우리 사회가 안전하게 받아 안아야 마땅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미래는 베이비박스가 생긴 이래 현재까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아이들을 위해 작동해야 할 법과 제도의 공백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나마 존재하는 법과 제도는 사각지대를 만들었고 그늘진 그곳에서 아이들은 신음하고 있다.

찬반 논란에 휩싸였던 베이비박스

이종락 목사(재)주사랑공동체

난곡동 언덕길을 다시 올랐다. 베이비박스로 오는 아이들 숫자는 그새 80~90%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이종락 목사는 아직 거기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베이비박스가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하자 곧 찬반 논란에 휩싸였다. 와중에 찾아온 것은 격려가 아닌 공문이었다. 베이비박스가 유기를 조장한다는 내용이었다. 발송처는 보건복지부와 서울시, 구청과 경찰이었다. 공문은 폐쇄와 처벌을 예고하며 3년 동안 반복해서 날아왔다. 이 목사는 항변했다.

"아니 당신들이 공무원 맞나. 내 집에 내가 구멍을 뚫어서 만든 생명 살리는 박스를. 정부에서 하지 못한 일을 (아이들을) 살리고 있는데 정부는 대책도 없잖아. 그러면 법 제도 행정 복지로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안 들어오도록 만들어라. 외국에서는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결국 구청이 철거하러 오겠다고 최후 통첩했다. 이 목사는 날짜와 시간을 특정해달라 요구하고 KBS·MBC·SBS에 연락했다.

"3사 방송국이 다 온다고 그랬어요. 그게 그 사람들이 알고 난 뒤에 철거를 무산시켰죠."

방송보도에 따른 여론의 비난이 두려웠던 것 같았다. 경찰도 가만있지 않았다. 과학수사대가 출동해 베이비박스로 아이가 들어 온 직후 지문 채취를 시도했다. 이 목사는 경찰이 보는 앞에서 수건으로 지문을 닦아낸 뒤 자기 지문을 찍고 말했다.

"(이 지문의 당사자가) 아이를 맡긴 사람이니까 지문 조사해서 처벌해라. 국가가 보호자가 보호할 수 없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무작정) 엄마를 처벌하겠다는 게 말이 되냐."

경찰은 '목사님 뜻 알겠습니다'라며 돌아갔다. 그 뒤로 지문 채취 시도는 없었다.

국가기관과 별개로 민간에서도 반대 움직임이 있었다. 여성운동 단체 활동가들이 직접 베이비박스 앞에서 상주하기도 했다. 그들은 베이비박스가 아이를 유괴하는 곳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베이비박스를 찾아온 여성들을 직접 상담해서 아이를 받겠다고 했다. 그들은 24시간 3교대로 편성해 베이비박스 앞을 지키고 서서 한 달 가까이 버텼다.

하지만 찾아온 여성들과 마주쳐도 상담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 목사가 추운데 안으로 들어와 차도 마시고 라면도 먹자고 권했지만 이들은 끝내 들어오지 않고 버티다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철수했다.

연락 끊어버린 남성들, 혼자 남겨진 여성들

이 목사의 문제의식은 국가나 단체와의 대치에서 멈추지 않았다. 베이비박스를 찾은 생모들과 쌓아온 상담 경험이 그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끌었다. 이 목사는 10년 넘게 천 건 넘은 상담을 직접 했다. 그러면서 반복적으로 지겹게 들어야 했던 사연이 있었다. 임신만 시키고 연락을 끊어버린 남성들과 혼자 남겨진 여성들이었다.

"상담을 해보니까 엄마들이 임신만 시키고 도망간 아빠들에 대한 증오심이 어마어마했어요. 그로 인한 강박관념과 정신적 고통, 출산 우울증까지. 성이라는 게 생존의 도구이기 때문에 책임감이 따라야 된다는 말이야. 쾌락의 도구로만 사용하고 아무 책임을 안 지려는 행동에 대해... 그래서 부성애법까지 만든 거예요."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목사가 직접 법을 설계했다는 사실이 단순하게 들리지 않는다. 현장에서 10년 이상 쌓아온 상담 경험이 제도의 공백을 가장 먼저 알게 했고 아이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의 사연은 법조문을 만드는 질료가 되었다.

2024년 7월 시행된 보호출산법의 기원이 이종락 목사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2015년 그는 지금의 보호출산법의 모태가 되는 '비밀출산법'을 직접 설계하고 입법을 추진했다.

"11년 전에 비밀출산법을 만들었어요. 부성애법까지 함께요. 이 법이 왜 필요하냐. 항상 이야기했던 것처럼 법 제도 행정 복지가 잘 되면 베이비박스가 큰 기능을 안 해도 된단 말이야. 선진국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이 지금 되고 있으니까 우리 한국에(서)도 할 수 있다. 이 생각이 들었고 그러므로 베이비박스가 큰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비밀출산법을 만들기 시작했죠."

성산생명윤리연구소에 용역을 의뢰해 법학 교수, 변호사, 판사 출신 인사들과 함께 일 년 반에 걸쳐 설계했다. 수천만 원 비용으로 만들어진 법안은 당시 오신환 국회의원(서울 관악을, 19·20대)을 통해 발의됐지만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그 법안이 10년 뒤 김미애 국회의원(부산 해운대을, 21·22대) 손을 거치면서 '위기임산보호출산법'으로 부활했다. 이 목사는 부성애법을 비밀출산법에 함께 담았다. 주 내용은 양육비 미납 시 운전면허 취소에 이어 여권취소와 월급 압류까지 가능하도록 했다. 소득이 없다면 국가가 먼저 대납하고 소득이 생겼을 때 환수하는 구상권 조항까지 포함된 법안이었다. 이 원안의 핵심 두 가지는 10년이 지나서야 현실이 됐다.

운전면허 제재는 2021년 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됐고 2024년 9월에 적용 기준이 갖춰졌다. 국가 선지급 후 구상 제도는 2025년 7월에야 시행됐다. 아쉽게도 방향은 이 목사의 원안을 따랐지만 강도는 달랐다. 운전면허 취소가 아닌 6개월 정지였고, 여권 취소 조항은 빠졌다. 이 목사의 평가는 냉정했다.

"이거는 이 사람 안 잡는 법이야. 없으면 안 되니까 마지못해 한 거예요. 느슨하게. 이래가지고는 어떻게 책임감 있는 아버지가 생겨요?"

다시 베이비박스로 돌아오는 사람들

감사원 감사결과 2012년 입양특례법 시행 후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베이비박스 아동의 시설보호율은 96.6%였다. 아이들이 입법의 피해자였음이 확인됐다. 무려 1000명이 넘는 아이들의 삶을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시설로 떠넘긴 셈이다. 출처 : 감사원 감사보고서(2019) / 보건복지부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김지영

한편 2024년 7월 보호출산제가 시행됐다. 베이비박스 입소 아동 수는 눈에 띄게 줄었다. 2023년 79명이던 수치가 2024년 52명으로 2025년에는 26명으로 내려갔다. 이 목사는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단서를 달았다.

"법 제도 행정 복지가 잘 돼서 줄어드는 건 아니에요. 출산이 전반적으로 줄고, 결혼을 안 하고, 철저한 생명 경시가 팽배해졌죠."

베이비박스 입소 아동이 줄어드는 수치만 놓고 보면 보호출산제는 분명 가시적인 효과를 거뒀다. 그러나 출생아 수는 10년 사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고, 보호 출산 아동은 기존 유기아동 통계와 다른 항목으로 분류된다. 줄어드는 숫자가 현실의 개선인지, 측정 방식의 변화인지는 구분이 필요하다.

주사랑공동체가 별도 집계하는 병원 밖 출산 비율은 2018년 12.4%에서 7년이 지난 2025년에는 23.1%로 오히려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베이비박스로 오는 상담자를 보호출산제의 공적 상담 창구인 1308로 넘기고 있지만 다시 베이비박스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공무원과의 상담이 주는 심리적 부담과 익명성의 한계 때문이다.

"상담이 지금 잘 안되고 있잖아요. 상담 자체가 자기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이 아닌 거예요. 공무원한테 상담할 때 벌써 부담이 엄청나게 되는 것 같아. 우리는 익명 상담이잖아요. 엄마의 상담이기도 하고 아빠의 상담이기도 하고 가족 상담처럼 편안하게 자기 마음을 다 오픈할 수 있는 상담이 돼야 되는데 그게 잘 안되는 것 같아요."

보호출산법이 품지 못하는 사각지대는 또 있다. 불법 체류 외국인 산모다. 이들은 해마다 빠지지 않고 통계에 잡힌다. 법적으로 도무지 국적 문제 해결이 난망하다. 아직 이 부분에 대한 책임 있는 말을 듣지 못했다. 문제는 있는데 답이 없다.

이 목사는 홍콩에서는 출산 즉시 270~280만 원을 지원하고 산후조리와 주거지까지 연계하는 정책을 예로 들며 '선지원 후행정' 원칙 도입을 강조했다.

"한국은 신청하고 두 달은 지나야 지원이 나와요. 동남아에서도 하는 지원이 왜 대한민국에선 안 되느냐는 말이야. 약자들한테 호의를 베풀지 못하는 복지가 지금 생명 경시를 일으키고 있어요."

입양 시스템의 붕괴 또한 이 목사는 강하게 질타했다. 2025년 7월 입양특례법 시행으로 공적입양체계가 본격화한 이후 입양 건수가 사실상 제로인 현실을 지적하면서다.

"법이 통과되고 시행까지 2년이 넘도록 세팅이 안 됐어요. 이거는 변명할 여지가 없어요. 국가가 아이들 인권을 짓밟는 몰지각한 행위가 아닌가. 회개해야 돼요."

이종락 목사가 아직 그 자리에 있는 이유

베이비박스 아동의 공적 보호경로김지영

2009년부터 시작된 베이비박스다. 처음 입소한 아이가 만으로 17세가 됐다. 시설에서 자란 그 아이가 내년이면 사회로 나온다. 이 목사는 이들의 사회 정착이 또 다른 벽에 부딪힐 것을 우려했다.

"보육원 출신 아이들이 이력서를 내면 통과가 안 된대요. 소년원 출신하고 범죄자 취급을 같이 한다는 거야. 정착을 하려고 하다가 안 되니까 나쁜 길로 빠지거나, 하다 하다 안 되면 자살 하잖아요. 자살이 많아요."

베이비박스 아동의 약 50%가 시설에 배치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목사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그가 준비하는 다음 단계는 시설을 나온 청년들의 사회 정착을 돕기 위한 '달란트 학교'다. 직업 연계 대안학교 형태다. 보육원 출신 아동 중 64%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에서 구상했다.

"ADHD는 장애가 아니에요. 한쪽만 바라보고 한 우물을 파는 사람들이 그럴 가능성이 많아요. 에디슨, 아인슈타인이 다 그래요. 달란트를 찾아주면 돼요. 전국 중소기업과 업무협약(MOU)을 맺고 적성 상담사를 불러서 자기가 제일 잘 하고 기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스마트팜 유기농 기술까지 연계해서 시골에 정착시키려고 해요."

일산에 짓는다는 달란트 학교는 2026년 하반기 설계 착수 예정이다. 그 외 영아일시보호소는 사단법인으로 이미 설립을 마쳤고, 베이비박스 건물 1층에는 서너 명의 산모가 아이와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서 시작된 보살핌을 말이 아닌 자리로 증명해 왔다. 아이가 들어오는 자리, 위기 산모가 머무는 자리에 이어 퇴소한 청년이 다시 설 자리까지.

마지막으로 물었다. 베이비박스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순간이 올까요?

"제로는 안 돼요. 독일에도, 미국에도, 프랑스에도, 체코에도 1년에 30~40명은 들어와요. 병원 밖 출산이라는 극한 상황은 어쩔 수 없어요. 한 명이라도 살려야 되니까 그 한 명 때문에라도 존재는 해야죠."

난곡동 언덕길을 다시 떠올렸다. 세월이 흐르고 법이 만들어지고 숫자가 줄어드는 동안에도 그 언덕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파른 그 길을 17년째 오르내리는 이종락 목사가 아직 거기 그 자리에 있는 이유였다.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2026년 3월 10일 서울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72분 55초간 진행됐습니다. 인터뷰이의 발언은 내용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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