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수(匕首)라는 말은 오래된 한자 어휘다. 최근에 현대 한국판 ‘비수’가 등장했다. 주한미군사령관 브런슨이 5월 22일 공개된 미 육군전쟁대학의 팟캐스트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진행자가 브런슨에게 “중국의 관점에서 지도를 동쪽이 위로 오도록 돌려 보면 무엇이 보이느냐”고 묻는다. 이에 브런슨은 중국 동해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면 “한국은 아시아의 심장에 박힌 비수(dagger)이고, 그 뒤로 일본은 일종의 방패 또는 후방 차단선이며, 남동쪽에는 필리핀이 있다”고 말한다. 중국을 향해 한국은 공격용 무기가 되어야 한다는 가당찮은 의사표현이다.
망발의 핵심은 세 가지다. 첫째, 브런슨이나 미국은 한국을 주권국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노는 한낱 흉기쯤으로 여긴다는 뜻이다. 둘째, 중국의 심장에 단도를 꽂는 한국의 모습을 부각시켜 한중관계를 이간질하려는 저의를 드러낸다. 셋째, 그리하여 한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중국 견제의 고정 플랫폼 이상은 아니라는 얘기다. 넷째, 한반도의 ‘비수’가 중국을 겨누듯 주한미군의 역할 역시 북한 억제가 아니라 중국 공격용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가만히 두고 보기에는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자존의 모멸감’이다.
야콥 메켈(Jakob Meckel)이라는 프로이센 육군 장교가 있었다. 1866년 보오전쟁, 1870-71년 보불전쟁을 겪었다. 1881년 소령이 되었고 1885년부터 3년 간 일본에서 교관으로 지낸다. 프로이센식 개혁을 선택한 일본 육군의 지원으로 메켈은 일본 육군을 주둔부대 중심의 프랑스식 체계에서 기동형 프로이센식 사단체제로 바꾸었다. 동시에 그는 충성, 복종, 의무 같은 프로이센 장교단의 윤리를 일본 천황제 군대의 규율과 결합시켰다. 일본 군국주의사의 관점에서 보면 메켈은 단순한 기술고문이 아니라 일본 육군의 전략적 세계관을 바꾼 인물이다.
1885년 메켈은 일본군에 새로운 전략적 시각을 제공한다. 조선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던 메이지 일본에게 메켈은 한반도를 “일본의 심장을 겨눈 비수”라고 비유하면서, 조선이 적대세력의 손에 들어가면 일본 본토를 위협하는 전진기지가 된다고 경고했다. 조선이 독립적이고 안정된 완충지대라면 문제가 덜하지만, 러시아나 청나라 같은 제3국에 장악되면 일본 본토를 직접 위협하는 전진기지가 된다는 논리였다. 물론 그것은 조선이 하나의 국가가 아니라 강대국들이 활용하는 도구로 취급하는 인식론이다. 브런슨의 사고가 바로 이것이다.
메켈이 쓴 ‘비수’라는 단어의 독일어 원어는 없고 일본어로는 ‘다가’(ダガ: 短刀), 영어로는 dagger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어도 영어 음차다. 한자 비수(匕首)는 ‘숟가락(匕) 머리(首)’라는 기묘한 조합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자객열전〉은 “비수는 소매 속에 숨길 수 있는 짧은 칼로, 그 머리가 숟가락(匕)과 같아서 비수라 부른다”고 기록한다. 기원전 227년 자객 형가(荊軻)가 암살 목적으로 진왕에게 바칠 지도 속에 돌돌 말아 숨겨 들어간 무기가 역사상 가장 유명한 단검인 독약이 발라진 조나라의 비수(趙國匕首)다.
브런슨은 한국을 미국의 다채로운 전력수단인냥 조롱한다. 그는 2025년 5월 15일 하와이에서 열린 미국육군협회 심포지움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야간 위성사진으로 보면 한국은 물 위에 떠 있는 고정된 항공모함”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첫째, 한반도는 중국 동부 연안과 가까운 고정 군사 플랫폼이라는 뜻이다. 둘째, 주한미군은 “거리의 횡포”를 줄이는 전진 배치 자산이라는 뜻이다. 셋째, 미국은 한국-일본-필리핀을 잇는 삼각 구도를 통해 중국의 방어 구역 안쪽에서 작전할 수 있다고 본다는 뜻이다.
1983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는 워싱턴 방문 중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열도를 미국의 대소련 전진기지, 즉 “불침항모(unsinkable aircraft carrier)”처럼 만들겠다고 말한다. 미국에 나라를 바치겠다는 매국발언이었다. 일본 내에서 소동이 일었지만 자주성 상실이라는 측면보다 일본의 재무장 야욕이라는 차원의 비판이 대부분이었다. 브런슨의 “한국항모” 발언은 나카소네의 불침항모 정신이 한국에서도 고취되기를 바라는 기대를 깔고 있다. 스스로 미국의 항모가 되지 못해 안달하는 일본처럼은 아닐지언정, 나라를 영광스러운 미국의 항모로 만들어주겠다는 주인국의 후의에 감지덕지할지니. 더 이상 고약하기 어려운 극도의 오만함이다.
지중해의 말타는 1940-42년 추축국의 집중 폭격을 받으면서도 영국 공군과 해군의 전진기지로 기능했다. 1942년 가을 미국과 호주의 언론은 말타를 영국의 “불침항모”로 묘사한다. 이를 처칠 수상이 인용해 유명해진다. 1950년 맥아더는 대만(포모사)이 공산권 손에 들어가면 “불침항모”가 되어 미국을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런슨의 “한국항모” 발언은 말타에서 대만으로,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이어지는 언어의 최신 변형이다. 요는 ‘비수’가 됐든 ‘항모’가 됐든, 스스로 항모가 되든 남이 나를 항모로 만들든, 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1969년에 나온 〈케이마다〉(Queimada)라는 영화가 있다. 극영화를 다큐멘터리 식으로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 질로 폰테코르보 감독의 작품이다. 보통 〈번!〉(Burn!)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져 있다. 영화의 무대는 케이마다라는 가상의 카리브해 섬이다. 포르투갈어로 “불태워진 곳”이라는 뜻이다. 영국인 주인공 워커(말론 브랜도)가 포르투갈의 식민 독점을 깨러 케이마다로 들어간다. 그가 가르친 노예 돌로레스가 앞장 선 반포르투갈 반란이 성공해 포르투갈 지배는 무너지고 노예제는 폐지된다. 그러나 섬은 영국의 지배 아래 들어갔을 뿐이다.
제국주의는 노골적인 점령군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처음의 영국과 워커는 해방자처럼 등장하지만 그들의 목표는 민중의 자유가 아니라 지배권의 확보였다. 일본의 식민을 청산하러 한반도에 들어온 미국 역시 해방자처럼 입장했다. 하지만 미군정은 친일청산을 봉쇄하고 이승만이라는 현지 대리 권력을 통해 분단국가의 폭력적 기초를 놓았다. 이승만은 돌로레스가 아니었다. 돌로레스가 제국에 이용당하다가 다시 맞서는 민중적 저항의 이름이라면, 이승만은 저항의 가능성을 짓밟고 미국의 품 안에서 권력을 움켜쥔 토착 관리인이었다.
현대판 워커가 브런슨이다. 이 자의 “한국항모”와 “아시아의 심장부에 박힌 비수”라는 표현은 한국을 기껏 지들의 전략적 위치와 군사적 기능으로 위축시킨다. 〈번!〉의 케이마다가 영국에게 무역거점이요 해상전략의 요충지였을 뿐이었던 것처럼 미국에게 한국은 주권국이 아니다. 중국에 대들기 위한 전진기지에 병참거점일 뿐이다. 한마디로 한국은 미국의 식민지다. 언제까지 이런 수모를 당하고 살 것인가. 지저분한 입술로 농락을 일삼는 자는 당장 추방시킬 일이다. 지금 우리의 비수가 꽂힐 자리는 이런 자의 정수리요 한미동맹의 명치일지니. 끝.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다. 1985년에 외무부에 처음 들어간 이후 약 15년 이상을 해외에서 지냈다. 보스턴, 파리, 텔아비브, 하노이, 워싱턴, 비슈케크(키르기스스탄), 바르샤바, 루안다(앙골라)가 그의 활동 공간이었다. 1962년에 태어난 저자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에 곧바로 외무부에 입부했다. 자연히 외무부 내에서의 경력도 경제외교 분야에 집중되었다. 코이카 창설, 우리나라의 OECD 가입, 한미 FTA 협상의 과정에 관여했다. 아울러 한미 원자력협정을 협상했고, 보건복지부에서 국제협력 업무를 총괄했으며, 2014년부터 2년간 앙골라에서 대사로 일했다. 이후 2018년 6월 외무부를 퇴직하고 국제기구인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의 사무총장으로 행복도시를 창조하는 도시외교를 추진했다. 2021년 6월 말로 지난 36년간의 공직을 모두 마친 저자는 마침내 자유인이 되어 지금은 시, 소설, 에세이, 칼럼, 인류문명 비평서 등을 쓰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판타스틱 폴란드: 아흔아홉 개 이야기 더하기 하나』(2023. 12, 지만지)의 저자이고, 이창천이라는 필명으로 『명품외교의 길: 좌파 외교관이 보는 한국외교』(2025. 3, 진인진), 『브라보 한미동맹: 숭미동맹의 그늘 벗어나기』(2025. 8, 진인진), 『하늘과 사람과 촛불과 시네마: 청춘 너머의 독서와 영화 읽기』(2026. 1, 진인진)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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