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12·3 비상계엄 종합특검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국정원의 행태는 한국 정치의 낡고도 부끄러운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국정원장 조태용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해외담당 부서가 주한 미국 CIA 책임자를 불러 비상계엄의 배경과 정당성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은 해외 업무를 총괄하던 1차장 홍장원이 이 과정을 보고받고 재가한 인물인지 들여다보고 있으나 본인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핵심은 특정 개인의 재가 여부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뒤흔든 비상계엄 사태 직후, 국가정보기관이 외국 정보기관 책임자에게 계엄의 논리를 번역해 갖다 바쳤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권력의 정당성을 국민에게서 찾지 못한 세력이 미국 정보기관의 이해와 승인 속에서 자기 생존의 근거를 확인하려 한 행위다. 주권국가의 정보기관이 아니라 식민지 총독부의 연락사무소처럼 움직인 것이다.

굴종의 역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 정치가 헌정 위기에 빠질 때마다 정통성 없는 권력은 반복해서 국민이 아니라 미국을 쳐다보았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와 장도영 등 쿠데타 세력은 주한미대사와 유엔군 사령관이 완강히 반대하자, 미국의 의구심을 지우기 위해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는다”는 혁명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변 직후 창설된 중앙정보부는 미 CIA 본부와 한국지부를 향해 자신들이 ‘용공 세력’이 아니라 철저한 친미·반공 정권임을 홍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총칼로 민주정부를 무너뜨린 자들이 가장 먼저 매달린 것은 국민의 동의가 아니라 미국의 사후 승인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도 마찬가지였다. 박정희는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직전 중앙정보부장 이후락을 보내 필립 하비브 대사에게 이를 비밀리에 통보했다.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닉슨 독트린으로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으니 남북대화를 안정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체제 정비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민주주의를 짓밟고 영구집권 체제를 세우면서도 그들은 그것을 국민에게 먼저 묻는 대신 미국에 미리 설명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권위주의 권력의 본능이었고 숭미동맹의 본질이었다. 국민은 통치의 대상이고 미국은 허락을 받아야 할 상전이었다.

전두환 신군부 역시 이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직후 보안사령관 전두환은 윌리엄 글라이스틴 미 대사와 로버트 브루스터 CIA 한국지부장을 만나 “이것은 정권 찬탈이 아니라 박 대통령 시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일어난 우발적 충돌”이라고 강변했다.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와 5·18 광주 학살 과정에서도 신군부는 오로지 미국만을 바라보았다. 주미대사 김경원은 리처드 홀브루크 국무부 차관보를 찾아가 미국이 한국의 계엄 조치를 공개 비판하면 동맹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제발 톤을 낮춰달라고 애걸했다.

이처럼 수십 년간 한국의 정치 위기 때마다 미국과 CIA는 단순한 외부 관찰자가 아니었다. 때로는 승인했고 때로는 묵인했으며 때로는 압박했다. 그러나 더 수치스러운 것은 우리 내부의 지배 세력이 스스로 그 문을 열어주었다는 점이다. 독재자들은 위기 때마다 정상적인 외교 채널조차 우회하여 중앙정보부, 안기부, 국정원의 은밀한 파이프라인을 통해 미국 정보기관에 매달렸다. 국민에게 정당성을 인정받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쿠데타와 비상계엄과 학살의 주범들에게 미국의 내정간섭이란 거부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응당 있어야 하는 일이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전직 안보 인사나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는 윤석열의 집권 과정과 12·3 비상계엄을 둘러싸고 CIA가 사전에 알고 있었거나 일정하게 관여했다는 주장까지 제기된 바 있다. 문제는 그러한 의혹이 터무니없는 헛소리로만 들리지 않을 만큼 한국 정치가 오랫동안 미국 정보기관과 비정상적으로 얽혀 있었다는 점이다. 2023년 CIA의 한국 대통령실 도청이 사실로 드러났음에도 국가안보실 차장 김태효는 “동맹국인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악의를 가지고 했다는 정황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말한 장면은 굴종적 인식의 더러운 민낯이다.

 

물론 미국과 CIA의 모든 개입이 언제나 같은 성격이었다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1973년부터 1975년까지 CIA 한국지부장을 맡았고 훗날 주한대사를 지낸 도널드 그레그는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이 벌어졌을 때 CIA 본부와 백악관에 긴급히 알림으로써 김대중의 목숨을 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한편 최종길 서울대 법대교수가 중앙정보부에서 수사를 받다가 의문사한 사건에 관해서도 본부의 지시를 어기고 한국 정부에 항의했다. 그 결과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경질되고 후임 신직수 부장이 고문금지 지시를 내리는 흐름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바로 그 사례가 역설적으로 더 본질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김대중을 살린 것도, 중앙정보부의 고문 문제에 제동을 건 것도, 한국의 헌정기관이나 사법체계가 아니라 미국 정보기관 고위 인사의 판단과 개입이었다. 이것을 고마워해야 할 일로만 보아야 할 것인가. 좋은 개입이든 나쁜 개입이든 CIA가 한국 내정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다. 선의의 간섭은 수용가능하다는 이유로 간섭의 구조를 용인하는 순간 우리는 악의의 간섭도 함께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과거 5·16 군사정변이나 5·18 광주 학살을 미국이 왜 막지 않았는지를 추궁하는 일은 별도로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의 역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정당한 과제다. 그러나 그 질문이 교묘하게 뒤틀려 “한국의 정치 위기에는 결국 미국의 개입이나 중재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되어서는 도무지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아울러 미국이 과거에 잘못 개입했으니 앞으로는 올바르게 개입해야 한다는 식의 발상 역시 또 다른 지독한 사대주의일 뿐이다. 미국의 책임을 묻는 것과 미국의 간섭을 청원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6월 1일 월스트리트저널 오피니언 란에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강경 좌파’로 규정하며 한미동맹과 한국의 자유가 위협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저급한 칼럼이 실렸다. 이에 국민의힘 비례의원 김건은 “왜 미국에서 이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지 되돌아봐야 한다”면서 일개 미국 보수 논객의 시선을 곧바로 한국 정치의 심판관처럼 모셔오는 태도를 보였다. 쿠데타 세력이 CIA에 계엄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것이나 사대 숭미인이 미국 학자의 말로 자국 정부를 꾸짖는 것이나 굴종의 인식론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자주독립 대한민국은 없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문화, 산업, 기술 모든 영역에서 세계무대의 중심에 선 나라다. 그런 나라가 아직도 정치 위기 때마다 미국 대사관과 CIA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것은 국격의 문제요 주권 의식의 문제다. 과거 중남미 후진국들의 예속정권들 얘기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숭미주의자 내란범 윤석열의 경우를 마지막으로 외국 정보기관에 문건을 번역해 넘기며 스스로의 정당성을 설명하려는 노예적 습속은 앞으로 영원히 끊어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다. 더 이상 한국 정치를 미국의 손아귀에 쥐어주는 일은 없어야 한다. 끝.